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도웰 교수의 머리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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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벨랴예프, 도웰 교수의 머리

 


 

3. 머리가 말하기 시작하다 

 

로랑이 금지된 밸브의 비밀을 알게 된 뒤로 일주일쯤 흘렀다. 

그 동안에 로랑과 머리 사이에는 한층 더 돈독한 관계가 맺어졌다. 코른 교수가 대학이나 병원으로 가는 시간에, 로랑은 밸브를 열고 머리가 웬만큼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공기를 목구멍으로 보냈다. 로랑도 나직이 말했다. 둘은 자기네 대화를 흑인이 듣지 못하도록 조심했다.

그들의 대화가 도웰 교수의 머리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두 눈에 생기가 더 돌게 되고, 양미간의 슬픈 주름들조차 매끈하게 펴졌다. 

머리는 강요된 침묵의 시간을 벌충이라도 하듯이 기꺼이 말을 많이 했다.

 

간밤에 로랑이 도웰 교수의 머리를 꿈에서 보고는 눈을 떠서 생각했었다. ‘도웰의 머리도 꿈을 꿀까?’

그 얘기를 하자 머리가 나직이 속삭였다.

“꿈이라… 그래요, 나도 꿈을 꾸지요. 한데 꿈이 나한테 슬픔과 기쁨 중 어떤 것을 더 많이 주는지는 모르겠소. 꿈에서 나는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데 깨고 나면 두 배로 더 불행해진단 말이오. 신체와 정신, 양면에서 다 박탈된 사람이 되는 거라오. 사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허용된 것을 다 빼앗긴 게 아니겠소? 오로지 생각하는 능력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머리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데카르트의 인용으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요, 나는 존재하오...”

“무슨 꿈을 꾸시나요? 꿈에서 무엇을 보지요?”

“지금 같은 모습의 자신은 한 번도 못 봤다오. 예전... 내 모습을 본다오. 식구들과 친구들도 보고… 얼마 전에는 죽은 아내를 만나서 우리 사랑의 봄날을 함께 맛봤지. 베티는 언젠가 자동차에서 내리다가 다리를 다쳐서 나를 찾아왔어요. 우리는 내 진료실에서 처음 알게 됐다오. 우리 둘은 왠지 금방 가까워졌어요. 다섯 번째 방문 때 내가 그녀에게 책상 위에 놓인 내 약혼녀의 사진을 보라고 했다오. ‘그녀가 승낙한다면 난 그녀와 혼인할 겁니다’ 하고 말하니까, 그녀가 책상으로 다가와서 거기 놓인 작은 거울을 봤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더니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지. ‘내 생각에… 그녀는 거부하지 않을 거예요.’ 일주일 뒤 그녀는 내 아내가 되었다오. 그 장면이 얼마 전 꿈에 나타난 게요… 

베티는 여기 파리에서 죽었다오. 나는 유럽 전쟁 때 외과의사로서 아메리카에서 여기로 오게 됐어요. 여기 대학에서 자리를 제의받고 나에게 소중한 묘지 곁에서 살기 위해 눌러앉았지. 아내는 정말 놀라운 여인이었어…”

머리의 얼굴이 회상에 잠겨 환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일 뿐 다시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아아, 그 시절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

머리가 생각에 잠겼다. 공기가 목구멍을 통과하면서 스스스 소리가 났다. 

 

“간밤에는 아들 꿈을 꾸었다오. 아들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꼴을 보여줄 만한 용기가 안 나… 아들에게 난 죽은 사람이라오.”

“아드님은 다 컸나요? 지금 어디 있지요?”

“그래요, 어른이 됐지. 아가씨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을 게요.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잉글랜드 이모 집에 있을 거야. 아니, 꿈을 꾸지 않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그러나 나를 괴롭히는 것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머리가 계속 말했다. 

 

“꿈만이 아니오. 거짓된 감각도 나를 생생하게 괴롭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때로는 나에게 몸뚱이가 있는 것처럼 느낀다오. 온 가슴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기지개를 켜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싶어지는 게요. 마치 오래 쭈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처럼, 뜬금없이 그런 욕망이 들지. 또 어떤 때는 통풍 때문에 왼발에서 통증을 느끼지. 

당신도 의사니까 이해는 하겠지만, 그래도 우스꽝스럽지 않소? 통증이 얼마나 생생한지 나도 모르게 눈길이 아래로 돌아가요. 하지만 유리판 너머 내 밑으로는 텅 빈 공간과 대리석 바닥만 보일 뿐… 이따금씩 호흡곤란이 발작적으로 시작될 것만 같아, 그럴 때면 적어도 천식에서 나를 벗어나게 한 ‘죽은 존재’에 제법 만족하고... 그런 건 다 언젠가 육체의 생명과 연관됐던 뇌세포들이 순전히 반사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지...” 

“끔찍해라!..” 

그 대목에서 로랑이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소, 끔찍하지… 이상하게도 생전에 난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 사실 연구에만 몰두해서 내 몸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오. 몸을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잃은 것을 느끼다니. 지금은 숲정이 어딘가에 있는 꽃들과 향긋한 건초 냄새를, 오랜 산보와 해안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 따위를 평생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생각해… 

후각과 촉각을 비롯해 다른 감각들도 아직 다 잃지는 않았지만 감각 세계의 많은 형상과는 단절됐다오. 숲의 향기, 아름다운 석양, 새들의 지저귐 따위 수많은 다른 느낌들과 연관될 때 들판의 건초 냄새가 좋지. 인공적인 향기가 내게는 자연적인 향기를 대신할 수 없을 거요. 꽃향기 대신 ‘장미’라는 상표의 향수 냄새? 그런 건 배고픈 사람에게 파이는 없는 파이 냄새처럼 나를 썩 만족시키지 못할 거요.

몸을 잃으니까 세상도 다 잃게 됐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물들의, 쥐고 만지고 동시에 자기의 몸과 자신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사물들의 매혹적인 세계를 잃은 거요. 아아, 굴러다니는 조약돌의 무게를 내 손안에서 느끼는 기쁨 하나만 맛본다면 내 괴물 같은 존재를 기꺼이 다 내놓을 텐데! 아침마다 내 얼굴을 닦아줄 때, 스펀지의 접촉이 나에게 얼마나 만족을 주는지 아가씨가 알아준다면 좋겠소. 사실 촉감이라는 것이 나한테는 실제 사물들의 세계에서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야, 내 혀끝으로 마른 입술 가장자리를 건드리는 정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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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로랑은 얼빠진 상태로 두려움에 떨며 귀가했다. 늙은 어머니가 여느 때처럼 간단한 먹을거리와 차를 내왔다. 그러나 로랑은 샌드위치에 손도 대지 않고 레몬차를 급하게 비운 뒤 자기 방으로 가려고 일어났다. 어머니의 주의 깊은 눈길이 그녀에게 쏠렸다. 

 

“기분이 안 좋으니, 마리?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게냐?”

“아니, 괜찮아요, 마마, 그냥 피곤하고 두통이 좀 있어요…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래요. 나아지겠지.”

어머니가 딸을 보내고는 한숨을 내쉬며 혼자 골똘히 생각했다. 

 

새 일터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딸 마리는 많이 변했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폐쇄적이 되었다. 엄마와 딸은 늘 아주 친한 친구처럼 지내왔고, 둘 사이에 비밀이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비밀이 생긴 것이다. 노부인은 딸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장 일에 관해 묻기라도 하면 마리는 아주 짤막하고 막연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코른 교수는 의학적 측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환자들을 위해 자택에 진료소를 열고 있어요. 그 환자들을 돌보는 게 일이에요.” 

“어떤 환자들인데?”

“여러 부류예요. 아주 위중한 경우도 더러 있고…”

마리는 얼굴을 찌푸리며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곤 했다. 

노부인은 그런 답변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알아보기도 했지만, 딸한테서 들은 것보다 더 많이 알 수가 없었다. 

‘딸이 코른을 일방적으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닐까, 무망하게?..’ 

그런 생각도 해 보다가 곧 지우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으면 딸은 숨기지 않았을 거야. 게다가 마리는 여자로서 정말 좋은 사람이잖아? 코른은 독신이야. 만약에 마리가 사랑하기만 한다면, 코른도 응당 버티지 못할 것이야. 세상 어디에 마리 같이 괜찮은 여자가 또 있겠어? 아니야, 여기엔 뭔가 다른 내막이 있어…

노부인이 두툼한 깃털 요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에게는 잠자는 것처럼 보이려고 불을 껐지만, 어둠 속에서 마리 로랑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침대 위에 앉았다. 머리가 한 말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그런 상태에 있는 자신을 그려 보려고 애썼다. 그래서 혀로 입술과 입천장, 치아를 가볍게 건드려 보고는 생각했다

‘머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야 이게 전부야. 입술과 혀끝을 깨물 수 있고, 눈썹을 꿈틀거리고, 눈알을 굴리고, 눈을 감았다 뜨고, 입과 두 눈을 움직이고. 그 외에는 움직일 수가 없어. 아니, 이맛살도 약간 접었다 펼 수 있지. 그게 전부야…’

마리가 두 눈을 감았다 뜨면서 표정을 일그러뜨리곤 했다. 아아, 그런 딸을 그 순간에 노부인이 보았다면! 어머니는 딸이 정신 나갔다고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신의 어깨와 무릎, 두 팔을 차례로 감싸 안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숱이 많은 머리털을 손으로 빗어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오, 맙소사!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런데도 여태 그런 걸 모르고 살아 왔다니!

 

젊은 몸이 피로를 느꼈다. 마리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그러자 도웰의 머리가 보였다. 그 머리는 그녀를 슬픈 눈길로 뚫어져라 응시했다. 머리가 탁자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허공을 날았다. 마리가 머리 앞에서 내달렸다. 코른이 솔개처럼 머리통으로 달려들었다. 구불구불한 낭하들이 나오고… 육중한 문들이… 마리가 문들을 열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코른이 머리를 따라잡았으며, 머리가 무슨 비명 같은 소리를 냈고, 이미 귓가에서 스스스 소리가 들리고… 마리는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고, 그 빠른 고동에 온몸이 호응한다. 등에서 차가운 전율이 번쩍 스쳐 지나가고… 그녀가 나타나는 문들을 계속 열고… 아아, 참으로 무서웠다!..

 

“마리! 마리! 왜 그러니? 눈을 떠 보렴, 마리! 신음까지 하는구나…”

그건 이미 꿈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베개 곁에 서서 놀란 눈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어머니. 악몽을 꾸었을 뿐이야.”

“요즘 들어 너무 자주 흉측한 꿈을 꾸는구나, 얘야…”

노부인이 탄식하며 나간 뒤에도 마리는 한동안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누워 있었다. 심장이 강하게 고동쳤다. 

“하지만 내 신경은 끄떡없을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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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도웰 교수의 머리 (소개)

도웰 교수의 머리 1장

도웰 교수의 머리 2장

도웰 교수의 머리 4장

도웰 교수의 머리 5장

도웰 교수의 머리 10장

도웰 교수의 머리 11, 12장

도웰 교수의 머리 15, 16장

도웰 교수의 머리 23, 24장

도웰 교수의 머리 25, 26장

도웰 교수의 머리 27장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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