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루덩의 악마들 9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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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Ken Russel film Devils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은 이사카론의 방문. 악마가 거의 밤마다 찾아왔다. 독방 어둠 속에서 그녀가 무슨 기척을 듣고 침대가 흔들리는 걸 느끼곤 했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욧잇을 벗기고, 누군가가 그녀 귀에 달콤하고 음탕한 말을 속삭였다. 방안에 이상한 불빛이 어른거리면서 염소와 사자와 뱀과 남자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때론 강경증 상태에 빠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수 없이 누워 있는 동안, 작은 야수들이 이부자리 아래서 앞발로 간지럼을 태우고 주둥이로 더듬으며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언구럭 부리는 목소리가 간청했다. 한 번만 더, 그냥 사랑만 조금 줘, 그냥 아주 조금만 예뻐해 줘. 그녀가 “내 정조는 하나님 수중에 있으며, 그분께서 뜻대로 처리하실 것”이라 대답하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침대에서 내동이친 뒤 얼마나 무섭게 때렸는지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얼굴이 퉁퉁 붓고 온몸에 시퍼런 멍이 가득했다. 

 

  「그런 일이 아주 종종 생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감히 바란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주셨다. 그런데도 나는 이 자잘한 싸움들을 우쭐댈 만큼 마음이 불량하여, 하느님께 합당하게 처신하는 한 내 소행을 두고 가책할 일은 전혀 없다고 여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책을 억누르기 힘들며, 하나님 뜻대로 내가 처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는 것도 알았고.」 

 

  그러니까 원흉은 이사카론이었다. 그래서 수렝은 이 악마를 상대로 기력을 다 쏟으며 요란한 의식을 거행했다. “내 말을 듣고 썩 물러가라, 사탄아!” 

  하지만, 오호라, 축문이 먹혀들지 않았구나. 「내가 받는 유혹을 그에게 고백하지 않기 때문에, 유혹이 점점 더 거세게 나를 쫓아 다녔어.」 이사카론이 더 못되게 굴면서 잔느 수녀의 절망도 더 커지고 꾸준히 진전되는 임신에 대한 불안도 더 강해졌다. 

 

  성탄절을 얼마 안 남기고 그녀가 약재 몇 가지를 입수했다. 그건 분명 쑥과 쥐방울덩굴과 콜로신스였으리라. 갈레노스 의술에서 추천하며 곤경에 빠진 처녀들이 낙태 효과가 있다고 필사적으로 기대하는 세 가지 약용 식물. 한데 아기가 세례도 받지 않고 죽는다면? 아기 영혼은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거야. 그녀가 제풀에 놀라 약재를 내던졌다. 

  다른 계획이 생겼다. 주방으로 가서 가장 큰 칼을 빌려 와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 세례를 주는 거야, 그 다음엔 살아남든지 아니면… 

다락방으로 향하는 원장수녀 잔느

 

  1635년 새해 첫날 그녀가 총고해를 했다. 「하지만 고해사제한테 내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어.」 다음날 칼을 품고 세례용 물 대접을 들고 수녀원 꼭대기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벽에 그리스도 책형상이 걸려 있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내 죽음과 작은 피조물의 죽음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왜냐하면 세례를 베푼 뒤에 아기를 목 졸라 죽일 생각이었으며, 나도 죽을지 몰랐으니까.」 

 

  옷을 벗는 동안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사악한 의도를 내던지게 할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법의를 벗은 뒤 가위로 슈미즈에 큰 구멍을 내고 칼을 집어 들어 ‘죽을 때까지 쑤셔 넣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위장에 가장 가까운 갈비뼈 사이로 꽂기 시작했다. 

 

  그러나 히스테리를 잘 일으키는 사람들은 자살을 종종 시도하긴 해도, 성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 기적이여, 자비로운 신의 뜻이 나타나 내 손을 붙잡았으니! 갑자기 어떤 힘이 나를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친 거야. 칼이 손에서 빠져나가 십자가 밑에 떨어졌어.」 

  그리고 한 목소리가 외쳤다. “멈추어라!” 

  그녀가 그리스도 책형상으로 눈길을 들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을 그녀에게 내뻗었다. 신의 음성이 들리자 악마들이 놀라서 길길이 날뛰었다.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원장수녀는 앞으로 생활 양상을 싹 바꾸고 처신도 달리 하겠노라 결심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임신 상태는 계속되고 이사카론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한번은 밤중에 그녀에게 협상을 제시했다. 나한테 조금만 더 온순하게 군다면 신통한 고약을 가져다주겠어, 그걸 배에 바르면 임신이 멈출 거야. 원장수녀가 조건에 응하겠다고 거의 마음먹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거부했다. 그러자 대노한 악마가 그녀를 호되게 때렸다. 

  또 어떤 때는 이사카론이 눈물 흘리며 애처롭게 호소하는 바람에 마음이 움직여 ‘그의 간청을 다시 들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충동이 실행됐다. 그런 식의 한밤중 만남이 계속되면 안 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질겁한 로바르데몽이 르망으로 사람을 보내 유명한 의사 두솅을 초빙했다. 의사가 와서 원장수녀를 꼼꼼히 검사한 끝에 임신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 말에 로바르데몽이 기절초풍했다. 이 소식을 프로테스탄트들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데 관계자들한테는 다행스럽게도, 이사카론이 공개 엑소시즘 때 나타나서 의사의 확인을 단호하게 반박했다. 아침 헛구역질부터 젖 분비까지 그런 증상은 죄다 악마들이 꾸민 짓일 뿐이야! 「그러더니 이사카론이 내 몸에 자기가 모아둔 피를 나로 하여금 죄다 쏟아내게 했어. 이 일은 주교와 의사 몇몇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벌어졌다.」 그 뒤로 임신 증세가 다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주님께 찬양을 돌렸고 원장수녀도 그렇게 했다. 적어도 입으로는.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의심을 품었다. 이렇게 기록한다. 「악마들은 나를 설득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생각해 봐라, 네가 배를 가르지 않게 된 기적은 하나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한 짓이었어! 그러니 너는 그 일을 그저 환상이라 여기고 잠자코 있어야 한다. 고해 시간에도 입에 올릴 필요가 없는 거야!」 

  사실, 나중에 그녀는 그런 의심에서 벗어나고, 실제로 기적이 벌어진 것이라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수렝에게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기적이었다. 그에게는 루덩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불가사의했다. 그의 믿음은 게걸스럽고 무분별한 것이었다. 그는, 마귀에 들림을 믿었다. 그는, 그랑디에가 유죄라고 믿었다. 그는, 다른 마법사들이 수녀들을 홀리고 있다고 믿었다. 또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는 교회 원칙도 믿었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이 가톨릭 신앙을 공고히 하며, 성변화가 실재한다고 증언하는 악마들 얘기를 듣고 무수한 자유사상가와 위그노가 개종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 마지막으로, 잔느 수녀를 믿고 그녀 상상의 소산을 다 믿었다

 

  남들 말을 쉽게 믿는 것은 심각한 지적 결함이다. 그런 결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가장 ‘불가항력적인 무지[각주:1]뿐이다

  그러나 수렝의 무지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요, 심지어 자발적인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당대에 우세한 지적 풍조인 미신과 맹신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수회 동료들은 수렝처럼 무턱대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마귀 들림이라는 현상을 의심하면서 새 엑소시스트가 하는 짓을 황당하게 보았으며, 동료가 특별한 은혜와 실총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쏟는 뜨거운 관심을 다소 민망하게 여겼다. 우리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어리석음은 수렝의 강점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결함과 숭고한 열정도 그의 강점이었다. 그의 목표는 기독교적 완성, 곧 육욕을 죽임으로써 영혼이 하나님과 합일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 이 목표를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성령에 이르는 온유함과 정화의 길로 그와 함께 나서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제시했다. 

 

  그에게는 이전에도 영적 딸들이 있었다. 이 원장수녀가 그들처럼 하지 못할 것이 무언가? 그런 생각을 이미 마렌에 있을 때 떠올렸고, 그걸 계시처럼 느꼈다. 그저 엑소시즘 하나에 그치지 말고 잔느 수녀를 영적 생활로 이끌어야 해, 그 문을 이미 이사벨 수녀와 랄망 신부께서 내게 열어주지 않았던가. 그녀 영혼을 광명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마귀 들림에서 구해 내겠어

  흉중에 담아둔 과제를 잔느 수녀한테 끄집어낸 것은 루덩에 오고 하룬가 이틀 지나서였다. 그리고 이사카론이 터뜨리는 요란한 웃음소리와 레비아탄이 화가 나서 내뿜는 욕지거리를 응답으로 들어야 했다. 그들이 수렝에게 상기시켰다. 이 여인은 우리 소유이며 악마들의 공용 거처라는 걸 모른단 말이냐! 

 

  그가 그녀에게 영적 훈련을 얘기하면서 다그쳤다. 이제 하나님과 합일하기 위해 영혼을 다듬어야 할 때가 됐소! 왜냐하면, 그녀가 정신 기도를 수행한 지 벌써 이태가 넘었기 때문이다. 관상기도가 정말 필요하오! 기독교적 완성이! 그러자 악마들 웃음소리가 더 낭자하게 울렸다. 

 

  그렇다 하여 물러설 수렝이 아니었다. 신을 모독하는 말과 어지러운 발광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꾸준히 책무를 수행했다. 그녀 궤적에 ‘천국의 사냥개[각주:2]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사냥감을 쫓아다닐 작정이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바로 영생을 의미하니까. 원장수녀가 달아나려 했다. 그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기도와 설교를 계속 들려주었다. 영적 생활을 얘기하고, 몹시 힘든 준비 단계를 이겨내도록 그녀에게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애원하고, 하나님과 합일하는 지복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럴 때마다 잔느가 요란한 웃음을 터뜨리거나 그에게 소중한 부아네트를 두고 놀리거나 트림을 꺽꺽 해대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돼지처럼 꿀꿀거리면서 훼방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가 지칠 줄 모르고 소곤거렸다

 

  한번은 악마가 특히 혐오스러운 언사와 행동을 과시한 뒤에 수렝이 기도했다. 신이여, 그녀한테서 이 고통을 거두시고 차라리 이 죄인한테 시련을 안기소서! 그는 악마들이 잔느 수녀에게 겪게 한 고통을 죄다 느껴 보기 원했다. ‘그녀를 치유하여 덕을 수행하게 인도함으로써 거룩한 신을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설령 나한테 귀신이 든다 해도 개의치 않으리. 그보다 더 심한 것도 간구했다. 미치광이로 취급돼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당하는 것조차 감내하리니. 

 

  한데 그런 식의 기도는 절대 해선 안 된다고 모럴리스트들과 신학자들이 우리한테 못 박는다. 불행히도 조심성은 수렝의 덕목에 들지 못했다. 현명치 못하고 완전히 잘못된 간원을 입에 올린 것이다.[각주:3]

   그러나 기도란 진심 어린 것이라면 응답 얻는 길을 가지고 있다. 간혹 신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어떤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그 생각이 사실이나 상징에서, 현세나 꿈에서, 물질적이든 심리적이든 어떤 형태를 취하며 구체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짐작할 수도 있겠다. 

 

  수렝은 잔느 수녀가 겪은 고통을 자신도 겪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자신이 악마에게 사로잡히기를 꿈꿨다. 그리고 1월 19일 그렇게 됐다. 

  어쩌면 그런 일은 그가 기도하지 않아도 일어났을지 모른다. 악마들은 이미 랑탕 수사를 죽였고 트랑킬 수사도 곧 같은 길을 가야 했다. 수렝에 따르면, 엑소시스트들은 악마를 쫓아내려 했지만 실제로는 외려 불러들여서 살아 있게끔 최선을 다한 셈이 됐고, 그 악마들에 웬만큼 시달리지 않은 엑소시스트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네 관심과 눈길을 악에, 혹은 악이라는 생각에 집중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까!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악마에 맞서 더 많이 투쟁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모든 십자군 전사는 실성하기 쉽다. 적들의 것이라 여기는 사악함을 줄곧 떠올리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악함이 자신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마귀 들림은 초자연적인 것보다 세속적인 경우가 더 흔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증오하는 타인과 증오하는 계급이나 인종, 민족에 대해 맹렬히 생각하기 때문에 마귀에 들씌우게 된다

  작금의 세계 운명은 제 스스로 마귀 들린 자들 손아귀에 있다. 즉, 반대자들한테서 보려고 애쓰는 악에 외려 들씌운 채 그 악을 명백히 드러내는 자들 손에 달렸다. 그들은 악마를 안 믿는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영혼을 악마에 내맡기려 애써 왔고, 성공했다 하여 의기양양하다. 하나님보다 악마를 훨씬 더 많이 믿는 한 그들이 마귀 들림에서 언젠가 벗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초자연적이며 추상적인 악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수렝은 세속적으로 마귀 들린 자들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광기로 자신을 몰아갔다. 하지만 선에 대한 생각 역시 초자연적이며 추상적이었고, 결국엔 선에 대한 믿음이 그를 구했다

 

  (5월 초 친구이자 예수회 동료인 다티시 수사에게 그 동안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적어 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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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Invincible ignorance - 신학적 개념에서, 불가항력적 무지. 개인이 통제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책임이 없는 무지. 현대 영어에서는, ‘구제 불능의 바보’라는 뜻으로도 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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