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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우리 삶에서
단어들이 차지하는 역할
인간의 삶에서 단어의 역할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정보 채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의 감각적 흐름에서 특정 대상들을 뇌가 구별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 마인드가 현실의 모델을 만든다는 것을 우린 이미 살펴봤다.
이밖에, 우리 삶이 대부분 펼쳐지는 추상적 현실이 (세계가, 실재가) 언어 덕분에 만들어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의 말을 구성하는 단어와 용어들이다. 우리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데 하도 익숙해진 바람에, 단어가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됐다.
이제는 단어들이 문자 그대로 우리의 현실을 이루고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편이 됐다. 언어 자체와 언어 구조가 우리네 주관적 실재의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식에서 큰 오류가 하나 벌어졌으니, 우리가 단어를 실제 대상과 혼동하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살펴본다.
단어들의 의미는 어떻게 형성되나
모든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다. 그 단어에 부합하는 이미지 세트가 그 단어의 의미이다.
‘공’이란 단어를 예로 들자. 만약, 아이가 어려서부터 축구공들만 보았으며, 공은 둥글고 발로 차면서 놀 수 있다고 어른들이 말하고 공을 갖고 노는 방법을 보여주었다면, 어린애는 ‘공’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둥글며’, ‘갖고 놀 수 있다’는 이미지와 함께 공을 차고 놀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공’이란 단어에 대한 이해와 개념이 굳어지는데,
그때 또 이런 것을 본다.
그리고 “이것도 공인데, 미식축구에서는 이런 공을 쓴단다” 하는 얘기를 듣는다. 아이가 처음엔 당황할지 모른다. 공은 둥근 모양이라고 확실히 알고 있는데 이건 고구마처럼 길쭉하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아이의 마인드는 이것도 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고, 이때 아이의 인식에서 ‘공’이란 단어의 의미가 조금 바뀌게 된다.
이제 이 개념의 의미가 넓어져서 둥근 형태의 공만이 아니라 고구마처럼 생긴 공도 포함된다. 게다가 저런 공으로 미식축구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사람이 겪는 경험을 통해서 단어들의 의미가 형성된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사내애가 둘 있다. 하나는 동그란 모양의 공만 본 한국 소년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마 모양의 공만 본 미국 소년. 둘이 만나서 공 모양이 어떤지를 두고 다투기 시작한다. 하나는 공이란 다 둥글다고 열변을 토하고, 다른 하나는 공은 다 고구마처럼 생겼다고 입에 게거품을 문다.
둘 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면서, 아니라면 손가락에 장을 지져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은, 둘 다 옳다. 둘 다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옳다. 다만 두 사내애는 우리네 각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형성된 주관적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또한 ‘공’이란 사람의 경험을 가리키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당신의 경험을 그 사람도 맛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 공 같은 경우 문제는 아주 간단히 해결된다. 서로 상대에게 자신의 공을 내보이면서 이것이 ‘공’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공에 대한 경험을 두 소년이 금방 서로 나누게 되고, 언쟁이고 자시고 더 이상 따질 것도 없을 것이다.
보았다시피,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 하나는 1) 사람의 경험이다. 사람이 어떤 경험을 겪는다. “그 경험은 무엇무엇이라 불려” 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말한다. 그러면 이 명칭을 그 사람은 자기가 겪은 경험과 연관 지을 것이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이 또 있는데, 바로 2) 그 단어를 정의하는 것이다.
단어의 정의란… 그 단어의 의미를 다른 단어들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바로 앞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정의에 대한 예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단어의 정의는 단어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다음 예를 보자.
한국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 따위로 나타낸 종이를 겹쳐서 한데 꿰맨 물건.
러시아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인쇄물의 하나로서, 용량이 48쪽 넘고 통상 하드커버로 제작되며, 텍스트 정보와 그래픽 정보를 담은 종이들을 한데 묶은 비정기적 출판물.
어떤 정의든 상관없다. 만약 당신이 책이란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저런 정의로써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한 권이라도 봤다면, 이 정의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다. 안 그러면, 저런 문장들로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단어를 정의할 때는 그 의미를 생생히 보여주는 예를 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례는 어떤 단어의 의미를 실제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생생하게 준다.
키워드
아마존강 유역에 ‘피라하’란 부족이 있다. 그들 언어는 아주 독특하다. 그들 말에는 ‘어제’, ‘내일’, ‘엄마’, ‘아빠’, ‘전부’, ‘일부’, ‘나의’ 같은 개념이 없다. (‘부모’라는 단어는 있다.) 한데 이런 개념이 없이도 그들은 아주 잘 산다. 그들의 세상 모델에는 시간, 소유, 재산, 분할이란 개념이 없다. 이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한데,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려면 그들 속에서 살아볼 필요가 있다. 그 문화에서 태어나면 더 좋고.
어쨌든, ‘내일’이나 ‘부분/몫’ 같은 기본적 단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다시금 입증한다. 즉, 우리가 익숙하게 쓰면서 그 이면에 실제로 뭔가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아주 많은 단어가 사실은 실재의 (현실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네 언어와 문화의 답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피라하 부족의 언어와 달리 우리네 언어에는 그런 용어들이 있고, 이것이 이 용어들을 토대로 하는, 세상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우리한테 일관되게 만든다. 게다가 우리네 언어에는 특별한 단어와 개념이 여럿 있어서, 이것이 우리 세계관에 아주 강하게 작용하여 우리의 주관적 세계를 만들고 체계화한다.
이는 우리 언어의 주요어, 키워드들이다. 이 핵심 단어들이 우리 경험의 구조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있다’, ‘…이다’, ‘존재하다’, ‘시간’, ‘미래’, ‘현재’, ‘과거’, ‘공간’, ‘나’, ‘…을 하다’, ‘대상’, ‘물건’, ‘원인’, ‘결과’, ‘나의’, ‘가지다’, ‘소유하다’, ‘속하다’, ‘과정’ 등등.
“이건 내 전화기야” 하고 말할 때, 나와 이 전화기를 연결하는 특별한 뭔가가 세상에 있나? 전화기가 나한테 귀속됨이 목전의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건 아예 없다. 한데 우리는 그런 귀속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의’ 전화기가 망가지면 아주 속상할 정도로 믿는다. 피라한 부족에겐 ‘나의’라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둘러싼 문제도 없다. 한데 우리는 이웃보다 더 많은 사유재산을 차지하려고 열 올리며 자기 삶을 쏟아붓는다.
이 키워드들이 우리 언어의 구조를 어떻게 만드나? 몇 가지 예를 들자.
- 시간 개념이 언어에 아주 깊이 침투해서, 그 언어의 모든 동사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다. 예를 들면… 갔다, 간다, 갈 것이다.
- 뭔가를 소유한다는 생각 또한 우리네 언어에 잘 파고들었다. “내 집 마당에 밤꽃이 피었어.”
- ‘있다’와 ‘존재하다’ 같은 단어는 뭔가가 있거나 없다는 생각을 우리가 품게 한다. 예를 들어, “화성에는 생명체가 있다.”
- ‘…이다’라는 단어는 비일비재하게 쓰인다. “나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은 진보적이야”, “입만 열면 불평이다” 등.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뒤에서 따로 살펴보겠다. 그 단어들에 들어있는 착각이나 환상의 속성을 알게 되면, 당신의 세계관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단어들의 작위성
단어의 다른 측면 가운데 작위성을 살펴보자. 단어와 용어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언어에 도입된다. 주로 편리함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에 관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할 때, 그는 자신의 어휘에 있는 단어들을 쓰려고 한다. 어휘가 충분치 못하다면, 새로운 단어와 용어를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쉽게 하는 모든 장치를 가리키기 위해 ‘운송 수단’이란 용어가 도입됐다. 자연에는 ‘운송 수단’ 같은 물체나 대상이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언어에 도입됐으며,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특정 장치를 가리키는 데 쓸 수 있다.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장치’라는 어구를 두 번 쓴 점에 주목하라. 이 기다란 표현 대신 이제 우리는 ‘운송 수단’이란 용어를 간편하게 쓸 수 있다. 게다가 이 표현을 다른 용어들과 결합하여 여러 문장에서 아주 잘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송 수단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도시에서 교외로 실어 날랐다.”
여기에는 어떤 운송 수단을 이용했는지, 얼마나 되는 사람들인지, 어떤 도시인지가 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 과정의 어떤 장면을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기까지 한다.
또 다른 예로 ‘질병’이란 단어를 보자. 질병이란 단어는 대개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아주 다양한 불쾌한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질병’이란 단어 하나로 언급함으로써 우리는 몸에서 느끼는 갖가지 징후를 사실상 단순화하고 마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질병의 증상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간과하거나 과대평가하기 쉽다.
다시 강조하건대, ‘운송 수단’이나 ‘질병’ 같은 것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사람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을 가리키는 편리한 용어일 뿐이다. 즉, 개인적 경험의 어떤 부분을, 대상이나 과정의 어떤 집합을, 이 용어로 정의하는 것이다.
곧, 단어란… 사람의 어떤 경험을 가리키며 철자들로 이뤄지고 어떻게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한데 단어가 그냥 뭔가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면 난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부를 수 있다. ‘램프’라는 단어를 예로 든다면, 그 단어로써 보통사람은 빛을 내며 대개 유리로 둘러싸인 어떤 물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내가 내 언어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램프’가 아니라 이를테면 ‘팡켄’이라 부르고, 그래서 예를 들어 “팡켄 불빛이 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팡켄’이라는 단어에 내가 집어넣은 의미를 당신은 집어넣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우리가 대화하면서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용어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이것이 그냥 중요한 게 아니라 때론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마인드’라는 단어를 이용하면서 우리는 그 단어에 ‘들어오는 감각 정보의 흐름으로 현실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뇌의 능력’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데 많은 사람이 ‘마인드’라는 단어로 전혀 다른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뜻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이 구구할 수 있는) 단어들이 우리 언어에 아주 많다. 예를 들면, ‘자유’, ‘정의’, ‘평화’, ‘사랑’, ‘가족’, ‘행복’ 등이 그렇지 않은가?
이런저런 단어에 사람마다 여러 의미를 집어넣는다는 점을 알아차린다면, 이런 말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즉, “당신은 마인드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마인드는 생각이자 정보 처리 능력이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마인드는 주로 마음을 뜻하지요.” 따라서 어떤 주제를 두고 대화하기 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우리 대화에서는 다들 쓰는 단순한 용어들을 사용하며, 이 용어들로 널리 통용되는 의미에 최대한 가까운 의미를 담으려고 한다. 어떤 경우에든 각 용어에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필요하다면 정의를 덧붙인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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