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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15 루덩의 악마들 5편 2
  2. 2019.05.15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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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재판에서는 악마와 마법사에 대한 성서 기록뿐 아니라 널리 퍼진 미신도 다 채택하는 것이 관행이며 이 맹신을 판관들은 성서만큼이나 존중했다. 예를 들어, 17세기 말까지만 해도 모든 종교재판관과 대다수 치안판사들은 이른바 마법의 물리적 테스트라는 것을 의심도 않고 받아들였다. 

 

  피고 몸에 뭔가 이상한 표식들은 없었는가? 

  혹시 바늘로 찔러도 통증을 못 느끼는 부위를 발견할 수 있었나? 

  (무엇보다도) 두꺼비나 검은 고양이를 먹여 키울 수 있는 ‘악마의 젖꼭지’가, 그러니까 여분의 미발달된 유두들이 마녀한테 있었나?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의심하는 자는 마녀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야말로 악마가 제 종복을 표시하는 브랜드요 낙인이니까. 

  (모든 남성의 9퍼센트와 모든 여성의 5퍼센트쯤이 미발달된 젖꼭지를 가지고 태어나는 만큼 재판 희생자들은 부족할 턱이 없었다. 자연이 작은 실수를 했는데, 그것을 재판관들은 그저 저희 관점에서 해석하고 말았다). 

 

  공리로 굳어진 다른 통속적 미신들 가운데 적어도 세 가지는 간략하게나마 언급할 만하다. 그것들이 무수한 불행을 야기했기 때문에. 우리네 선조들은 마녀가 악마의 도움으로 폭풍우를 일으키고, 질병을 야기하고, 성교 불능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녀들의 해머>에서 크래머와 슈프렝거는 이 엉뚱한 생각에 관해 인류의 경험뿐 아니라 학덕 높은 성직자들의 권위로도 확증되고 널리 알려진 사실처럼 쓰고 있다. 

  「성 토마스[각주:1]는 <욥기>를 해설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악마들이 하나님 허락 하에 대기를 뒤흔들고 바람을 일으키고 하늘에서 불덩어리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양한 물체들이 어떤 천사가 아니라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만 따라 제 형태를 바꾼다 할지라도 국부적인 움직임에서는 물질들이 영적 본질에 순종해야 하니까… 예를 들어, 바람과 비와 대기 이동은 땅이나 물에서 발산된 증기가 뒤섞임으로써 야기될 수 있다. 그러니까 악마의 권세는 그런 것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성 토마스는 그렇게 확언한다.」 

 

  질병으로 말하자면… 「나병이나 간질은 물론이고 마녀들이 하나님 허락을 얻어 일으키지 못할 질환이란 없다. 이는 권위 있는 의사들의 견해로도 입증된다.」 

  그리고 의사들의 그런 견해를 저자들은 개인적인 관찰로도 응원한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과 함께 묻었던 달걀로 어떤 사람에게 간질이나 발작을 일으킬 수 있음을 우리가 종종 발견했으니까. 죽은 마녀와 함께 묻었던 달걀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병들게 하고 싶은 사람의 음식에 흔히 그런 달걀을 넣는다.」 

 

  성교 불능에 대해서는 이 저자들이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확실히 구분한다. 자연적인 성교 불능은 사람이 그 어떤 이성과도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상태. 이에 비해 주술과 악마의 힘으로 야기된 초자연적 성교 불능은 한 사람하고는 (특히 아내나 남편하고는) 성관계를 갖지 못하면서도 다른 이성들과는 기능을 충분히 지속적으로 발휘하는 상태. 

  저자들은 이런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하나님은 인간 생활 여러 분야에서 특히 생식력에 마법사가 위해를 가하도록 자주 허락하시는데, 그 이유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 이래 ‘인류의 무도한 행위들 중 가장 큰 타락이’ 바로 섹스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괴적인 폭풍은 종종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언제라도 성교 불능 상태를 겪을 수 있으며, 질병이 없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이런 일상적인 불행의 책임을 마녀들에게 덮어씌워야 한다고 법령과 신학과 민간 여론이 입을 모은 세상에서는 염탐과 밀고와 무고를 동원한 개인 사찰 따위가 극성을 부렸다. 16세기 마녀 사냥이 절정일 때 게르마니아 몇몇 지역의 사회생활은 그 나라에서 4백 년 뒤 나치 치하의 사회생활이나 새롭게 코뮤니스트 지배에 종속된 나라의 사회생활과 아주 흡사했다. 고문을 받아서, 혹은 잘못 이해한 의무감이나 어떤 광적인 충동으로, 남자가 제 아내를 마녀라 고발했을 터이고, 여자가 제 친구들을, 아이가 제 부모를, 하인들이 저희 주인을 허위 비방했을 것이다. 

 

  악마가 횡행하고 마녀 사냥에 열 올리는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폐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력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와 악마에 대한 일상적인 경고 따위가 많은 사람 심리에 아주 파멸적으로 작용했다. 소심한 사람들 중 일부는 정신이 나가고, 어떤 사람들은 상존하는 공포심 때문에 실제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위험에 대한 이런 중언부언을, 맹신과 선입견을, 야심만만하고 복수에 불타는 사람들은 저희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광분했으며, 제임스 보스웰 같은 남자들과 몽테스팡 후작부인 같은 여인들은 흑마법을 범죄적이다 싶을 정도로 써먹을 준비가 돼 있었다.[각주:2]     

 

   만약 혹자가 억눌리고 좌절됐다고 느낀다면, 사회와 이웃에 원한을 품는다면, 성 토마스 등의 말대로, 그런 엄청난 재앙을 가할 수 있는 자들한테 호소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있을까? 

  신학자들과 종교재판관들은 끊임없이 악마를 거론하고 마법을 극악무도한 범죄로 대함으로써 저희가 억누르려고 그렇게나 애썼던 관습을 외려 조장하고 그 믿음을 실제로 전파한 꼴이 됐다. 

 

마녀 사냥, 흑마법을 쓴다고 비난하고 처형

 

  18세기 초부터 마법은 더 이상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사멸하고 말았는데, 여러 이유들 중 하나는 그것을 억누르려고 힘쓴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박해를 덜 받으니 선전이 덜 됐다. 사람들 눈길은 초자연적인 것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옮겨갔다

  대략 1700년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 자행된 박해는, 마녀 사냥은, 전부 아주 세속적인 것이었다. 우리한테 근본악은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악이나 경제적 악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실증주의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악’이라 부르기 좋아하니까) 그 근본악이 오늘날에는 마법사나 주술사가 아니라 어떤 증오에 빠진 계급이나 민족한테서 추종자들을 찾는다. 사회적 증오의 인과 구조가 바뀌었지만, 그렇다 하여 증오와 불공정이 더 줄어들지는 않았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교회는 마법을 완전히 현실적인 범죄라고 가르쳤고, 그 도그마에 걸맞게 국법도 무자비하게 작동했다. 그렇다면 민간 여론은 이 문제에 대한 공식 관점과 얼마나 일치했을까? 배우지 못하고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대다수의 심정을 우리는 기록된 행동과 학자들의 코멘트에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마녀들의 해머>는 가축한테 마법 걸기를 다룬 장에서 중세 시골 생활에 관해 흥미로운 자료를 담고 있다. 지금 시대 생활이 못마땅하기 때문에 그 시대의 상당한 공포를 못 보는 감상주의자들이 아직도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품는 그 당시 생활은 이렇다. 

  「아주 작은 마을에서도 아낙네들이 서로 (주문을 걸어) 다른 집 젖소들의 젖을 마르게 하고, 나아가 죽게 하는 일이 아주 흔하다.」 

  네 세대가 지나 잉글랜드 성직자인 조지 기포드와 새뮤얼 하스넷은 맹신적 히스테리에 사로잡힌 당시 사회의 시골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어떤 아낙이 이웃 여자와 척지고 지내던 중 그 여자가 심하게 다치게 되면… 동네 사람들이 뭔가 의심을 품는다. 그 뒤 두어 해 지나서 그 아낙이 다른 여자와 다투었는데, 그 사람도 병에 걸린다. 사람들이 이걸 보며 예전 일을 떠올린다. 다들 수군대기 시작한다. 아무개는 마녀야… 이제 다들 그녀를 꺼리고 겁내게 된다. 이웃들이 감히 아무 말도 못하지만 속으로는 그 아낙이 교수형 당하기를 몹시 바란다. 불과 얼마 뒤 다른 이웃 남자가 병에 걸려 수척해진다. 이웃들이 그에게 와서 묻는다. 

 

  “이봐요, 아저씨, 흉악한 저주의 눈길이 의심되지는 않아? 혹시 아무개 아낙을 화나게 한 적은 없어요?” 

  그가 대답한다. “아, 맞아요, 맞아! 난 오래 전부터 그 아낙이 마음에 안 들었지. 내가 그 여자를 화나게 했는지는 모르겠어. 혹여 내 아내가… 아내가 그 아낙한테 닭들을 우리 채마밭에 풀지 말라고 했거든, 나도 그랬고… 그것 때문에 그 여자가 나한테 마법을 건 게 분명해.” 

  이제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래, 그 여자는 정말 마녀야… 그건 틀림없어, 왜냐면 그 여자 집에서 나온 족제비가 옆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걸 내가 봤거든, 근데 그 직후 그 집 사람이 병에 걸렸잖아! 

  병자는 죽어 가면서 자기가 마법에 걸렸다고 말한다. 마을사람들이 아무개 아낙을 붙잡아 감옥에 보낸다. 재판정에서 혹독한 심문에 이어 유죄를 선고 받는다. 그리고 이미 올가미 아래 서서 자기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항변한다.」 

 

  이건 조지 기포드의 기록이고, 새뮤얼 하스넷은 소론 <로마가톨릭 사칭을 폭로함>에서 이렇게 전한다. 

  「그렇다면, 오호, 경계하고 주변을 살펴보시오, 이웃들이여!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의 암양이 어지럼증에 시달리거나, 돼지가 항아리손님에 걸리거나, 말이 휘청거리거나, 사내애 손이 부러지거나, 계집애가 빈둥거리거나, 젊은 처녀가 퉁퉁거린다면, 또 만약 당신 오트밀에 버터가 없거나 당신 가족이 궁핍하게 산다면… 이건 분명해, 늙은 할망구 놉스가 다 잘못한 거요. 그 여자가 당신 딸을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라고 부르지 않았소? 혹은 악마로 하여금 딸에게 생채기를 내라고 주문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놉스는 틀림없이 마녀인 게요.」 

 

  미신과 두려움과 편견과 상호 악의에 단단히 기초한, 중세 시골 마을들의 이런 장면이 현대의 우리한테도 묘하게 섬뜩해 보인다. 왜냐하면 오늘날에 와서도 그런 것들이 본질적으로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것들이 우리한테 <25시>와 <1984>의 어떤 페이지들을 아주 강하게 연상시킨다. 루마니아 사람이 현재와 바로 얼마 전의 악몽 같은 사건들을 묘사하고, 영국 사람이 사탄의 미래를 예견하는 페이지들.[각주:3] 

 

   당시 세간의 여론이 어떠했는지 중세 식자들이 상당히 소상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단어들보다 기록에 보전된 행위를 보면 우리는 당시 민간의 분위기를 훨씬 더 잘 알게 된다. 즉, 사회는 마법을 철두철미 믿고 악마를 겁내면서 이른바 마녀들에게 주기적으로 린치를 가했다. 우리 책에 기술된 사건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 프랑스 역사에서 한 가지 사례를 든다. 

  1644년 여름 맹렬한 폭풍이 우박을 동반하여 지나간 뒤 본(Beaune) 인근 몇몇 마을 주민들이 자기네 농작물을 죄다 망가뜨린 악마의 화신에게 보복하기 위해 한데 뭉쳤다. 마녀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다고 자신한 17세 젊은이의 지휘 아래 농민들은 많은 여인을 붙잡아 초죽음이 되도록 뭇매를 가했다. 또 다른 용의자 여인들을 불에 달군 삽으로 지지거나 벽돌 가마에 집어넣고 지붕에서 내던졌다. 이 테러의 광란을 끝내기 위해 디종 시 고등법원이 무장 경찰대와 함께 특임관리 둘을 파견했다. 

 

  우리가 보다시피 세간의 여론은 신학자들이며 법률가들의 뜻과 완전히 일치했다. 하지만 식견 있는 이들은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크래머와 슈프렝거는 마법의 실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개하여 적는데, 이미 15세기 말엽에 그런 회의론자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 분명하다

 

  유명한 책의 공저자는 모든 신학자들과 교회법 학자들이 아래와 같이 말하는 불신자들을 준엄하게 질타한다고 지적한다. 즉... 

  「세상에 마법이란 없고, 그건 어떤 숨겨진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적 현상을 악마가 마녀들과 결탁하여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상상일 뿐이며, 그건 또 그들이 아직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원인들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 파멸적인 망상을 모든 교회박사들은 한 목소리로 질타하며, 성 토마스는 이 오류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에서 비롯된다면서 의심하는 자들을 더 격렬하게 공격하며 진짜 이단이라고 낙인찍는다.」 

(5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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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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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Saint Thomas Aquinas (1225–1274) - 이탈리아의 가톨릭 신학자, 스콜라학파 전통의 철학자. 자연신학의 선구자. [본문으로]
  2. James Hepburn, 4th Earl of Bothwell (1535-1578) - 스코틀랜드 여왕 마리 스튜어트의 세 번째 남편. 동시대인들한테서 마법과 요술을 쓴다고 비난 받았다. Marquise de Montespan (1641-1707) -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았고, 그 사이에서 일곱 자식을 보았다. 뛰어난 미모, 끝없는 허영심, 정치적 영향력. 나중에 총애를 잃은 가운데 ‘독약 사건’에 연루돼 마법과 사탄 숭배라는 죄명으로 기소됐다. [본문으로]
  3. *<25시> - 루마니아 망명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1916-1992)가 1949년 발표한 소설. *<1984> -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이 1948년 발표한 소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 및 자먀찐의 <우리들>(1921)과 더불어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 [본문으로]</우리들></멋진></1984></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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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2) 

 

 

악마들, 올리버 리드, 켄 러셀,

 

 

3

 

 

  대학 졸업하던 해부터 네 해에 걸쳐 시집을 네 권 냈다. 그 배경에 깔린 비탄이며 신랄함, 냉소주의, 또 거기서 벗어나려는 역설적 품위는 나중에 그가 몰입하게 되는 신비주의며 영적 삶에 대한 전조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청소년기에 겪은 세 가지 사건의 정신적 외상은 (모친이 암으로 사망, 자신의 실명 상태, 작은형의 자살 같은 육체적 고통에 노출된 경험은) 그의 많은 소설에서 종종 인간 정신과 육신의 갈등으로 표출된다. 

 

  단편집 <림보>도 발표했지만,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1921년 첫 번째 장편 <크롬 옐로우>. 이건 바로 오톨라인 모렐 부인의 저택과 거기 드나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눈부신 대화와 기지 넘치는 세태 비평과 냉소주의가 결합된 문체로 인해 그는 10년 어간에 가장 인기 있는 문학 활동가 축에 든다는 평판을 얻었다. 

 

 20년대는 그에게 가장 생산적인 기간일 뿐 아니라 평생 창작과 사상의 정초가 형성된 시기이기도 했다. 시력 때문에 1차 대전 전선에 나가지 못했지만, 많은 동시대인들처럼 전쟁이 야기한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분위기의 주된 정서는 일정하게 흐르던 시간이 단절된 느낌, 불과 얼마 전까지도 확고하고 영원한 듯 보이던 가치며 토대가 붕괴된 느낌. 전쟁은 경제와 정치, 학문, 문화 등에서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 시대와 지나간 시대 사이에 경계가 뚜렷하게 설정되고, 인간과 문명에 대해 지난 시대에 다듬어진 관념들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됐음을 많은 이들이 분명히 알게 됐다.

 

  그 결과, 다른 세계의 장면을 만들고, 철학이며 미학의 측면에서 새로운 현실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들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나온다. 바로 이 때문에 유럽 문화에서 1920년대는 실험 시대가 된 것. 

  M. 프루스트J. 조이스의 소설, T. S. 엘리엇과 마야코프스키의 시, 피카소와 K. 말레비치의 그림, 이젠슈테인의 필름 등이 저마다 가장 중요한 존재 특성이라 본 것을 새로운 예술 언어로 이야기했다. 

 

  당대 많은 영국인들처럼 헉슬리에게 새로운 역사 시대의 도래는 무엇보다도 산업 발달과 물질적 번영, 정치적 자유를 이룩한 빅토리아 시대의 종말과 연관됐다. 

 

  그렇다면 새 시대는 어떤 것이며, 새 시대의 가능성과 전망은?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그의 작품들. 헉슬리는 세태 묘사와 풍자라는 전통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 근간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함께 내보였다. 

  그것은 그가 20년대 사상과 관념의 미학적 전투에서 상당히 빨리 제 자리를 찾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의 생각에… 문필은 사회생활의 일부여야 하고, 예술가의 과제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가능한 한 거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는 어떤 정치적이나 미학적 운동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그가 평생 접한 동아리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었다. 예를 들어, 문인 친구들 중에는 앙리 바르뷔스가 세운 <클라르테 그룹>의 멤버들, T. S. 엘리엇과 버지니아 울프 같은 모더니즘의 기둥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니타 루스 등이 있고, 또 런던 인근 블룸스버리 지역에 살던 당대 지성인, 작가, 화가들의 엘리트 그룹에도 들었다. 여기서 예술비평가 클라이브 벨, 역사가요 전기 작가인 스트레이치 리튼, 소설가 에드워드 포스터, 경제학자 케인즈 등과 교류했다. 

 

  1928년 출간된 <연애 대위법>은 헉슬리의 가장 복잡한 소설들 중 하나. 전형적 관념 소설인 이 작품으로 헉슬리는 독일식 철학소설과는 또 다르며 토마스 만의 표현을 빌자면 이른바 ‘지성 소설’이라는 장르의 개척자가 됐다. 

 

  2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 살면서 친구 같은 선배 D. H. 로렌스와 자주 만났다. 삶에 대한 로렌스의 관점을 아주 높이 샀고, <연애 대위법>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묘사한 램피언의 모델이 로렌스였다. 1930년 로렌스가 죽자 그의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내고 나중에 전기를 쓰기도 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기계문명이 판치는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로렌스가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통찰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면, 헉슬리는 그런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비판을 작품의 주제로 삼으면서 인간의 본능보다는 지성으로 접근했다. 

 

  즉,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을 비판하면서도 19세기 전통적 세계관에 대한 맹신으로 퇴행한다거나 안이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섣부른 낙관주의로 전락하지만은 않는 균형감각을 보여 주었다. 

  

4

 

    30년대 초 지중해 연안 툴롱 인근으로 거처를 옮겨서 쓰고 1932년에 출간돼 헉슬리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굳혔으며 20세기 최고의 미래 소설이 된 <멋진 신세계>는 그의 다섯 번째 장편이요 첫 번째 디스토피아 소설. H. G. 웰스가 <현대 유토피아>, <사람들은 신들을 좋아해> 같은 유토피아 소설에서 과학적 낙관론을 희망차게 제시함에 대한 패러디… 

  당시 널리 인기 끄는 낙관적 유토피아 소설들과 달리 헉슬리는 소름끼치는 미래상을 제시하려 했다. 여기 등장하는 미개인 청년의 원형은 마거릿 미드의 <사아의 성>서 힌트를 얻었다. 

 

  과학과 의학과 기술을 현대인들이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그 발전에 의존하다 보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이고자 했다. 

  인공 수정으로 동일한 인간을 시험관에서 대량 생산하는 미래 사회를 그림으로써 현대 사회가 암묵적으로 지향하는 관리 사회, 통제국가의 무시무시한 비극적 종말을 예언했는데… 

  시험관 아기나 유전자 복제를 비롯해 오늘날 의학과 생명공학의 경이적인 성취를 우리가 목격할 때, 그의 예언이 결코 근거 없는 환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올더스 헉슬리는, 과연 예언자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십년 전 타계한 미국의 미디어 이론가요 문화비평가 닐 포스트먼이 1985년에 내놓은, 우리 시대 미디어 생태 환경에 관해 가장 중요한 텍스트들 중 하나인 <죽는 줄 모르고 즐기는 사람들 Amusing ourselves to death>에서 보게 된다. 

 

죽는 줄 모르고 즐기는 사람들, 닐 포스트먼

 

  「우리는 1984에 주목해 왔다. 그 해가 닥쳤지만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고 생각 있는 미국인들은 나직이 흥얼대며 안도했다. 
  봐, 자유민주주의의 뿌리가 뽑히지 않았네! 테러 같은 것이 있기는 해도 오웰의 악몽이 찾아들지는 않았어! 

  그러나 오웰의 어두운 예언과 더불어 또 다른 예언이, 똑같이 으스스한 전망이, 있음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바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교양인들도 자칫 간과하기 쉬운데, 헉슬리와 오웰의 어두운 미래 전망은 같은 게 아니었다. 오웰은 우리가 외부 폭압에 억눌릴 것이라 경고한다. 그러나 헉슬리가 예견하기에는… 독재자 때문에 사람들이 자율과 성숙과 역사를 박탈당하지 않는다. 그가 내다본 것처럼… 사람들은 외려 통제받기 좋아하고 테크놀로지를 떠받들며, 그 결과 사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오웰과 헉슬리의 예언을 포스트먼이 조목조목 비교하여 결론을 낸다.

 

  「오웰은 서적을 금지할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서적을 금할 까닭이 없게 될 것을 우려했다. 왜? 왜냐하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테니. 

  오웰은 우리한테서 정보를 박탈할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우리가 아예 무감각하게 허투루 대할 만큼 정보가 차고 넘칠 것을 우려했다. 

  오웰은 (독재자가) 진실을 우리한테 숨길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무의미한 정보의 바다에 진실이 파묻힐 것을 우려했다. 

  오웰은 우리 문화가 선택의 자유를 빼앗을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우리 문화가 허접한 필름과 난잡한 파티, 관능적 유희 따위로 채워져 지질해질 것을 우려했다.  

  <멋진 신세계>에서 지적하듯이, 시민적 자유를 옹호하는 이들과 합리주의자들은 늘 긴장하여 독재와 폭정에 맞서면서도... “인간에게 재미와 오락에 거의 죽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속성이 있다는 점은 감안하지 못했다.” 

  헉슬리가 또 말하길, 사람들이 <1984>에서는 가해지는 고통에 의해 통제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는 제공되는 즐거움에 지배된다. 
  간단히 말해… 오웰은 우리가 싫어하는 것이 우리를 멸망시킬까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우리가 탐닉하는 것이 우리를 멸망시킬까 우려했다.」   

 

  닐 포스트먼은 티브이가 자잘한 즐거움인 연예오락을 주지만 교육이나 주요 이슈에 관해 의미 있는 토론은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가 미국 사회의 미래라는 토론의 틀을 잡기 위해 오웰과 헉슬리의 소설을 동원한 까닭은... 현대 사회가 헉슬리의 끔찍한 예언대로 얼마나 충실하게 좇아가고 있는지에 사람들 눈길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티브이는 1906년 이래 사람들이 생각 없이 사는 데 크게 이바지해 왔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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