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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0 루덩의 악마들 10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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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오페라 표지

 


 

10 

 

  잔느의 성지 참배를 묘사하면서 우리는 조용한 지방 소도시에서 빠져나와 몇 주일 동안 대처로 나가 보자. 이건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아는 세계. 이건 왕족과 알랑거리는 궁정 신하들의 세계요 사랑 맛을 아는 귀부인들과 권력 맛을 아는 고위 성직자들의 세계, 고도의 정치와 고도의 패션이 있는 세계. 이건 루벤스와 데카르트의 세계이자 과학과 문학과 지식의 세계

  우리 여주인공은 루덩과 신비주의 집단을, 일곱 악마와 열여섯 히스테리 여인들을 떠나 17세기의 모든 화려함 속으로 잠깐 발을 내딛었다

 

  역사의 매력과 수수께끼 같은 교훈은… 여러 시대가 흐르면서도 바뀌는 것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또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다. 다른 시대에 살았으며 낯선 문화에 속한 인물들에 관해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지나치게 인간적인 ‘나’를 알게 되고, 동시에 우리가 삶을 꾸리며 잡는 준거 기준이 그 시대 이후 알아볼 수 없게 바뀌었다는 점도 인식한다. 그때는 공리처럼 보이던 명제들이 이젠 지지받을 수 없게 됐음을 알며, 우리가 지금 자명한 가설로 간주하는 것들이 이전 시대에는 가장 선구적이며 대담한 선조들조차 짐작은커녕 꿈도 못 꾸던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상과 기술, 사회제도, 행동 규준 분야에서 나타난 변화가 아무리 중대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그리 본질적인 게 못 된다. 그 중심에는 근본적인 동일성이 남아 있으니, 이전처럼 세상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인간 존재들이 육체를 가진 정신이요 물리적 쇠퇴와 죽음의 대상이며 고통과 쾌락에 좌우되고 갈망과 혐오에 휘둘리고 자기주장 욕망자기초월 충동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그들은 언제 어디서고 같은 문제에 직면하며 같은 유혹에 부닥치고 타락과 광명 사이에서 같은 선택을 하게 돼 있다. 외견은 바뀌지만 골자와 의미는 불변이다

 

  잔느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과학적 사고와 실제에서 얼마나 거대한 발전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만한 처지에 있지 못했다.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로, 하비[각주:1]와 반 헬몬트[각주:2]로 대표된 17세기 문화의 여러 측면에 원장수녀는 완전히 무지했다. 어려서 알고 있던 것과 이제 성지 참배 중에 다시 발견한 것이라곤 사회계급이며 그 계급제가 야기한 관습적인 생각과 느낌과 행위가 전부였다. 

 

악령에 들씌웠다는 수녀들과 엑소시스트

 

  어떤 측면에서 17세기 문화는, 특히 프랑스에서 소수 지배층에게는, 육체적 존재라는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장기간의 분투였다. 남자고 여자고 이 시대에는 근세 이후 다른 그 어느 시기보다도 사회적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열망이 더 컸다. 고관들은 그저 거창한 타이틀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로 그 자체가 되기를 동경했다. 그들의 욕심은 자기네가 지닌 지위가, 자기네가 얻거나 물려받은 권위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아주 꼼꼼하게 다듬은 바로크 풍의 의례가 생기고 서열과 특권과 고상한 매너에서 엄격하고 골치 아픈 규정이 나왔다. 관계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타이틀과 혈통과 신분 간에 생겨났다. 예를 들어, 누가 옥좌에 앉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나? 18세기 말엽 생시몽[각주:3]한테는 이 문제가 아주 중요했다. 

 

  세 세대 이전에도 어린 루이 13세가 그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 이미 네 살 나이에 그는 이복형 방돔 공작[각주:4]이 저와 식탁을 같이 하거나 제 앞에서 감히 모자를 쓰고 있다는 데 은근히 분개했다. 부왕인 앙리 4세가 ‘페페 방돔’은 왕세자와 같은 식탁에 앉아야 하며 식사 중에도 모자를 벗을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자 어린 왕세자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심으론 못마땅함이 지극히 컸다. 

 

  왕권신수설의 이론과 실제를 왕실의 모자 착용 관행에서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아홉 살 때 루이 13세를 여성 가정교사한테서 떼어 남성 가정교사한테 맡겼다. 신성한 존재인 아이 앞에서는 왕세자의 개인 교수도 응당 모자를 벗어야 했다. 

  이런 룰은 (왕과 왕비가 시켰기에) 가정교사가 제자에게 체벌을 가할 때조차 지켜야 했다. 왕자는 바지를 내리고 피가 날 때까지 맞지만 모자는 쓰고 있고, 신하는 피가 나도록 때리면서도 제단 위 성체 앞에 선 사람처럼 모자를 벗어야 했다. 우리가 상상하듯이 이런 장면은 “우리가 아무리 헐하게 대한다 해도 왕은 신성으로 보호된다”는 견고한 진리의 생생한 사례였다. 

 

  단순한 살덩이와 피보다 더 큰 무엇이 되려는 열망은 그 시대 예술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왕들과 왕비들, 고관대작들과 귀부인들은 루벤스가 그려낸 풍채와 풍유화한 특징처럼 자신을 생각하고 싶어 했다. 즉, 초인적으로 강력하고 더할 나위 없이 강건하고 영웅처럼 위엄 있는 모습으로. 그들은 반다이크가 그린 초상화에 담긴 모습 같은 자신을 보기 위해 터무니없는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즉, 우아하고 세련되고 한없이 귀족적인 모습을. 

  또 극장에서는 코르네유의 남녀 주인공들한테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그건 왜냐하면 그 주인공들이 고관대작인 그들의 힘과 의지와 초인적인 가치를 찬양했기 때문이다. 해가 가고 또 가면서 고전 극장은 한층 더 엄격하게 시간과 장소, 행위의 일치를 고집했다. 왜냐하면 고관대작 관객들이 저희 극장에서 보기 원한 것은 실제 삶의 묘사가 아니라 삶의 알레고리였으니까. 바로 고관대작 관객들에게 부족한, 수정된 삶, 질서 잡힌 삶, 이상적인 삶. 

 

  저택 건축에서도 시대 분위기는 장대함을 갈망했다. 이런 사실은 리슐리외 추기경 궁을 지을 때 소년이었다가 베르사유가 완공되기 얼마 전에 죽은 시인이 언급했다. 바로, 앤드루 마블.[각주:5]

 

  아담의 초라한 아들이여, 

넌 어째서 화려한 궁전을 세웠는지? 

숲 짐승은 굴속에 몸을 감추고, 

새는 나뭇가지들로 둥지 엮고, 

안방샌님 거북이는 무서울 때 

제 갑각 속으로 움츠러들지.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지붕 없는 삶이란 건강에 안 좋아. 

하지만 인간 하나만이 그런 

대저택에 살지 못해 안달하는구나. 

거기 백색 대리석 벽 안에서 

썩어 티끌이 될 뿐이거늘

 

  대리석 벽들이 늘어나면서 그 안에 들어찬 ‘사치스러운 티끌[각주:6]들의 가발은 더 풍성해지고 그들의 구두 뒤축도 더 높아졌다. 태양왕과 그의 궁정 신하들은 한껏 높은 구두 뒤축 위에서 기우뚱거리고 탑처럼 치솟은 말총을 머리에 얹고 다니면서 저희가 실물보다 더 크고 한창 때의 삼손보다도 더 남성답다고 선포했다. 

 

  자연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런 시도가 늘 실패로 끝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도 이중의 실패로. 왜냐하면 우리네 17세기 선조들은 초인적인 존재가 되기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데도 실패했으니 말이다. 이 황당하고 오만한 정신은 달성 못할 과제로 돌진했으나, 오호라, 육신이 너무 연약한 것으로 드러났구나. ‘위대한 세기’는 물적 자원과 조직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으며, 그런 게 없이는 초인적인 체하는 게임이 성립될 수 없었다. 

 

17세기 궁정과 귀족사회의 화려함은 허식

 

  리슐리외와 루이 14세가 그렇게나 갈망하던 그 장엄함과 그 비상한 위풍은 지그펠트나 코크란, 막스 라인하르트 같은 최고의 연출가와 이미지메이커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거대한 쇼맨십은 일단의 장치와 충분히 비축된 소도구실, 관계자들 모두의 고도로 훈련되고 규율 잡힌 협력에 좌우된다. ‘위대한 세기’에는 그런 훈련과 규율이 결여됐고 극장식 장엄함의 물질적 기반조차 부족했다. 즉, 신을 선보이고 실제로 만들어내는 기계장치조차 아직 미완이었다. 

 

  태양왕도 리슐리외조차도 ‘무엇 하나 적절하게 해본 적이 없는 ’테르모필레의 노인들’[각주:7]이었을 뿐. 베르사유 자체는 이상하게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거대하지만 따분하고, 거드름 빼지만 효과가 전혀 없었다. 

  17세기의 화려한 허식은 상당히 날림이었다. 무엇 하나 미리 적절히 연습된 게 없어서 가장 장엄한 예식들조차 아주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사고가 돌발하여 망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루이 14세의 사촌으로 파리 전역에서 조롱거리가 됐던 대공녀의 장례식 스토리를 보자

 

  당대 유별난 관습에 따라 사후에 공주의 시신은 잘게 절단되어 부위 별로 담겼다. 머리는 여기에, 팔다리는 저기에, 심장과 기타 내장은 또 다른 곳에. 그런데 내장을 제대로 방부하지 않은 까닭에 처리 후에도 부패가 계속됐다. 가스가 축적되어 내장을 담은 반암 단지가 일종의 핵폭탄이 되어 버렸다. 이 폭탄이 하필이면 장례식 도중에 터지는 바람에 참석자들이 전부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런 생리적 사고가 사후에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17세기에 관한 회고록 저자들과 일화 수집가들한테는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예배당에서 난데없이 터진 된트림, 왕족이 있는 자리에서 발생한 공기 오염, 식도락을 즐기는 왕들이 풍기는 썩은 고기 냄새, 공작과 장군들한테서 나는 암내… 앙리 4세의 발 냄새와 겨드랑이 암내는 국제적 명성을 누렸다. 궁정 미남자 벨가드가 늘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애정 충만한 바솜피에르는 제 군주 못지않은 발 냄새를 풍겼다. 

 

  이런 일화들이 인구에 널리 회자된 사실이 왕들과 귀족들이 당당함과 고상함을 갖추려는 시도가 얼마나 덧없는 짓이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고관대작들이 인간적인 면보다 더 큰 무엇으로 보이고자 애썼기 때문에, 사회는 그들이 그저 동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얘기는 무엇이든 환영하면서 그들을 놀려댔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세속적으로도 성직자로서도, 또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지위에서도 높은 지위에 걸맞게 굴고자 하면서 절반 신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노인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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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단계.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들과도... 47

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42

8단계. 승복이라는 의미 37

7단계. 고통의 몸체 다스리기 32

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1. William Harvey (1578-1657) - 잉글랜드의 의사, 생리학자, 발생학자, 해부학자. 혈액 순환 체계를 발견, 수혈 등의 치료법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17세기 이전 사람들은 혈액이 간에서 계속 생성되며 신체 기관에서 소비된다고 믿었다. [본문으로]
  2. Jan Baptist van Helmont (1580–1644) - 플랑드르의 화학자, 생리학자, 의사, 신비주의 신지학자. 파라셀수스와 의화학이 유행하던 시기 이후에 활동, '기체 화학 창시자'로 간주돼. '자연 발생'에 대한 개념, 5년 간 버드나무 실험, '가스'라는 단어를 과학사전에 소개. [본문으로]
  3. Saint-Simon de Rouvroy (1760–1825) - 프랑스의 백작, 사상가, 사회학자,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주요 저술 중 하나는 [본문으로]
  4. César, duc de Vendôme (1594-1665) - 앙리 4세와 그의 정부 데스트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이 13세 때 발생한 몇 차례 귀족 반란에 가담. 1626년 리슐리외 암살을 도모했지만 실패. 1640년 다시 리슐리외 독살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자 잉글랜드로 피신했다가 루이 14세가 즉위하지 귀국. [본문으로]
  5. Andrew Marvell (1621-1678) - 잉글랜드의 시인. 형이상학파의 마지막 시인들 중 하나. 는 잉글랜드 고전주의 시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본문으로]
  6. wanton mote - 마블의 유명한 시 <애플턴 하우스에서, 페어팩스 경에게>에 나오는 시구로 인간을 의미. [본문으로]</애플턴>
  7. Thermopylae - 기원 전 480년 스파르타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에 대패한 그리스 해안 협곡.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00킬로미터쯤에 위치. 영화 <300>의 배경. [본문으로]</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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