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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지금> 순간에 뿌리 내리기  

 

자신을 마인드에서 찾지 않기

  

- 완전한 의식이나 영적 깨달음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내 마인드의 작동에 관해 아직도 많이 알아야 할 것 같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마인드 문제는 마인드 수준에서 해결될 수 없어. 마인드의 기본적인 기능 장애가 무엇인지 납득하게 되면… 따로 알거나 이해해야 할 것이 별로 없다. 

마인드의 복잡한 성질을 연구하면 훌륭한 심리학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마인드를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광기를 연구한다 해서 멀쩡한 정신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인드와 동일시하지 말라
... 거짓된 나인 <에고>가 생겨나고, 여기서 모든 고통과 불행이 시작된다.

 

무자각 상태의 기본 메커니즘을 우린 이미 알아봤다. 즉… 

마인드와 동일시함으로써 --> 
거짓된 나인 <에고>가 생겨나고 --> 
이 에고가 <존재>에 뿌리내린 <참된 나>를 대체하면서 --> 
예수가 이른 대로, 우리는 ‘포도나무에서 잘려 난 가지’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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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의 욕구에는 끝이 없다. 그건 자신이 취약하고 위협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두려움과 결핍의 상태에서 산다. 마인드의 근본적인 기능 장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되면, 그 장애의 무수한 증상을 일일이 탐구할 필요가 없으며 그 장애를 개개인의 복합적인 문제로 만들 필요도 없게 된다. 

 

물론 <에고>는 그런 문제를 아주 좋아한다. 에고는 미망에 빠진 자아감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 ‘빈대 붙을’ 뭔가를 늘 찾고 있으며, 이른바 문제라는 것들에 쾌히 들러붙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 경우 자아감의 상당 부분이 자신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 에고는 문제에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는데… 왜냐하면 그건 자신이 없어진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무자각적인 에고는 아픔과 고통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무자각의 뿌리가 감정이나 마인드와 자신을 동일시함에 있다는 점을 알기만 하면, 우리는 마인드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우리는 실재하게 된다. 실재할 때… 마인드가 본래대로 있게 하면서도 그 그물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다. 

마인드 자체에 기능 장애가 있는 건 아니야. 이건 아주 훌륭한 도구야. 
기능 장애는 우리가 마인드에서 자신을 찾고 그걸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할 때 생긴다. 
그때 마인드는 에고의 마인드가 되어 우리 삶 전체를 쥐고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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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깨어 있는 의식 -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현재에서 더 이상 고통을 만들지 않기

  

- 그 어떤 인생도 아픔과 슬픔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것을 피하려 들기보다는 그런 것을 안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아픔의 진단

사람들이 겪는 아픔 대부분은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마인드를 지켜보지 않고 마인드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놔두는 한 아픔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내는 아픔은 늘…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에 자기도 모르게 저항할 때 생긴다. 

생각 수준에서 하는 저항은… 어떤 형태의 판단이다. (평가, 분류, 낙인찍기, 비판 등). 
감정 수준에서 하는 저항은… 어떤 형태의 부정성이다. (부정적인 생각, 감정, 태도).

아픔의 통렬함은 현재 순간에 저항하는 정도에 따라 다르고, 이 저항의 정도는 또 우리가 마인드와 얼마나 크게 동일시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마인드는 늘 <지금> 순간을 부정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한다. 

달리 말해, 자기 마인드와 더 동일시될수록 더 큰 고통을 겪는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는 순간을 더 많이 존중하고 수용할수록 우리는 아픔과 고통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에고 마인드에서 더 자유로워진다. 

 

그렇다면 마인드는 왜 <지금> 순간을 습관적으로 부정하거나 거기에 맞서는 건가? 

왜냐하면, 마인드는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이 없으면 기능하지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하기 때문인데, 또 그런 이유에서 시간을 초월한 순간인 <지금>을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간과 마인드는 사실상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인류가 없고 식물과 동물들만 있는 지구를 상상해 보라. 거기에도 과거와 미래가 있을까? 

그곳에서도 어떤 의미로든 시간을 얘기할 수 있을까? 

거기서 누군가가 “지금 몇 시야?” 혹은 “오늘은 며칠이야?” 하고 묻는다면, 그런 질문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야. 그런 물음에 참나무나 독수리는 어리둥절하여 “시간이 뭔데?” 하며 되묻고는 이렇게 대꾸하리라. 

“아아, 그건 물론 지금이지. 시간이란 바로 지금이야.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어?!” 

 

그래, 이 세상에서 우리에겐 마인드만큼이나 시간도 필요하지만, 마인드와 시간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지점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마인드의 기능 장애와 아픔과 슬픔이 자리 잡은 곳이다. 

마인드는 자신의 통제력을 담보하기 위해 현재 순간을 과거나 미래로 계속 덮으려 든다. 그 결과, <지금> 순간과 불가분한 <존재>의 생명력과 무한한 창조적 잠재력이 시간에 의해 감춰지고, 우리네 진짜 본질은 마인드에 의해 흐려진다. 

시간이 점점 더 무거운 짐이 되어 인간 마인드에 쌓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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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다 이 무게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지금>이라는 소중한 순간을 무시하고 부정하거나 미래의 어떤 순간에 이르는 수단으로 축소하면서 시간의 하중을 계속 키우고 있다. 미래의 어떤 순간이라는 것은 결코 실제가 아니라 마인드에만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인간의 집단 마인드개별 마인드에 퇴적된 시간 속에는 또한 과거의 아픔이 엄청나게 많이 잔존한다. 

만약 자신이나 다른 이들한테 더 이상 아픔을 초래하지 않고자 한다면, 만약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는 과거 아픔의 잔재에 새 아픔을 보태고 싶지 않다면… (과거나 미래 같은) 시간을 더 이상 만들지 말라. 혹은, 삶의 실제 측면을 다루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은 만들지 말라.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나? 

현재 순간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임을 절실히 깨달으라. 
<지금> 순간을 삶의 주된 초점으로 삼으라. 
만약 예전에는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 속에 주로 머물다가 가끔씩 <지금> 순간에 들르기만 했다면, 이제는 <지금> 순간으로 거처를 옮겨 살면서 실제 상황의 어떤 측면에 필요하다 싶을 때만 과거와 미래를 잠깐 찾아가라. 

현재 순간에 늘 “예스”라고 말하라. 
이미 있는 것에 내면에서 저항하는 것보다 더 무익하고 비합리적인 것이 또 뭐가 있겠나? 
지금 있고 언제나 지금에 있는 삶에 맞서는 것보다 더 비상식적인 것이 또 뭐가 있겠나? 
지금 있는 것에 승복하면서 삶에 “예스”라고 말하라. 
그렇게 할 때… 삶이 어떻게 갑자기 더 잘 풀리기 시작하는지를 직접 보라.  

 

- 현재 순간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더러 있다. 불쾌하거나 끔찍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럴 때는… 현재 순간에 마인드가 어떻게 꼬리표를 붙이는지 지켜보고, 이 분류 과정과 끊임없는 판단이 어떻게 아픔과 불행을 만들어 내는지 관찰하라. 

마인드의 작동 구조를 주시함으로써 마인드의 틀에 박힌 저항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되고, 그때 현재 순간이 있게끔 할 수 있다. 그러면 외부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내면 상태를, 진정한 내적 평온을 맛보게 된다.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냥 관찰하고 필요하거나 가능한 경우에 조치를 취하라. 

먼저 받아들이고 나서 행동하라. 
현재 순간에 어떤 게 담겨 있든 간에, 그걸 마치 내가 선택한 것처럼 받아들이라. 
현재 순간에 있는 것에 맞서지 말고 그것과 함께 늘 일하고 움직이라. 
그것을 적이 아니라 친구요 동맹으로 만들라. 
그러면 삶이 온통 기적처럼 달라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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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구두가 나는 아니야!" 

 

 

- 멋진 자동차를 한 대 뽑았어요. 신나지요. 괜히 ''도 잡고 싶고... 그런데 어느 날 옆구리에 흠집이 난 걸 발견했어요. 속상해요, 안 해요? 화가 나요, 안 나요? 그래서 며칠 동안 우울하고 밥도 잘 안 넘어갔다구요? .

여러 벌의 구두가 있지만, 이 구두들이 나는 아니야

-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자기 시간이나 생활도 팽개치고 직장에 '올인'해요. 몰지각한 상사가 가끔 눈꼴시게 굴어도 꾹 참아요. '에이, 요즘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여기서 떨려나면 어떡해? 이게 내 밥줄이니까 견뎌야지 별 수 있겠어?' .

 

- 자기 일이나 취미 활동도 포기하고 아이들 키우는 데 헌신했어요. 가끔 속 썩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쁘게 잘 크는 걸 보니까 흐뭇했어요. 자신이 대견스럽게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 크고 나니까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내 곁을 떠나서 잘 찾아오지 않아요. 전화도 별로 안 해요. '에그, 자식도 크면 남이야!' 절로 탄식이 나와요. 허전함과 상실감마저 든다구요? .

 

이런 말이 (진리가) 하나 있더군요.

우리는...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들에 지배당하지만, 자신과 분리하는 것들은 지배하고 컨트롤한다.

(이 말에서, 동일시/identification 대신 '집착' 같은 단어를, 분리 대신 '초연(하게 대하다)' 같은 단어를 써도 무방하겠네요.)

 

우리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순간이나 시기에 가장 소중해 (때론, 절실해) 보이는 것을 자기 자신과 같은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커요. , 살면서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신이 주로 수행하는 역할, 혹은 자신의 주된 정신 방향이나 기능을 자신과 동일시해요.

 

자동차며 직장이며 자녀를, 성공이나 출세나 직위를, 아름다운 외모나 옷이나 액세서리를, 근사한 집이나 돈이나 하다못해 구두까지도... '나한테 중요한 것'이라 여길 수는 있는데, 그게 곧 <나 자신>이라 착각할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어떤 문제가 생기냐구요?

'나에게 아주 좋고 소중하고 절실한' 것들에 얽매여, 그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더 소중한 <>를 홀대하면서 그 <>가 한껏 펼 수 있는 것을 가로막는 셈이 되니까요. 게다가 <>가 없는 바에야 자동차며 자녀들이며 출세며 돈이며 예쁜 얼굴이며 정의를 위한 투쟁이며 교회 열심히 나가는 것 등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도 나오지 않았겠어요? (이 대목에서 자칫 곡해를 살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말이 길어지니까 일단 넘어가기로 하지요. ^^)

 

자기 안팎의 어떤 것을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한동안 즐겁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여기엔 심각한 단점이 있어요. <>에게 위험하기까지 해요.

 

먼저, 외적인 요소를 들어볼까요. 결론적으로...

직장을 잃는다고 해서 <>가 죽나요? (당장엔 힘들 수 있지만, 다른 직장을 찾으면 돼요.)

실패했다고 해서 <>가 사라지나요? (칠전팔기는 <>를 잘 간수할 때 가능하잖아요?)

자동차가 긁혔다고 해서 <>까지도 긁어야 (속상해하고 화내야) 하나요?

자식들이 '코빼기도 잘 안 비친다' 해서 원망할 필요가 있나요? 그들에겐 그들 삶이 있는 걸요. 새도 키워 놓으면 나가서 따로 둥지 틀잖아요? 그게 자연과 삶의 정상적인 흐름인 걸요. ', 그래. 어릴 때처럼 늘 곁에서 재롱 떨고 등 두드려 주기를 바랄 순 없어. 열심히 키워서 내보냈으니, 내 할 일은 다 했어. 이젠 나도 내 삶을 살아야지.'

자신의 주된 역할이나 기능을 계속 자신과 동일시하면...
결국엔 사는 게 힘들어질 수 있어요. 아니, 그러기가 십상이에요. 상실감이나 좌절감에 빠지기 쉽고, 그래서 위험하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죠.

 

인형을 끌고 어딘가로 나아가는 어린 아이

나이 들면서 체력이 달리는 운동선수, 젊었을 때의 미모가 시들어 가는 여배우, 졸업 후에 새로운 책임감에 시달리는 대학생, 치열하게 일했지만 어쩌다 실패한 사업가, 근사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재산가... 등이 힘들어하고 절망에 빠진다면, 그건 그들이 '전성기의 체력', '한창 때 미모', '학생 신분', '일이나 돈'을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이에요.

 

내적인 요소로 보자면, 자신의 머리나 (지력이나) 자기감정이나 몸 같이 자신의 특정한 일부와 동일시하는 경우에 일이 더 안 풀리고 삶이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왜냐구요? 왜냐하면... 흔히 하는 이런 말들이 반증이 될 수 있겠네요.

"머리만 믿고 까불다가 낭패를 봤어.'

"자기감정에 사로잡혀서 상황을 직시하지 못했어."

자신의 특정한 일부를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 자신이라 여기는 것은) 우리네 <진짜 나>에 본래부터 깃들어 있는 무한한 힘을 스스로 제한하는 셈이에요. (지금 우리 얘기는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한 토막이에요.)

그 결과, '어디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하든 늘 기껍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내가 요것밖에 안 되나',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야?'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 쉬워요. 그러면 우울해지지 않겠어요? 자칫 열등감에 시달릴 수도 있어요.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Assagioli

이건 다 <> 자체는 지극히 다양하고 심오하고 힘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한 <>의 일부만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진면목을 스스로 다 드러내지 않기 (혹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점을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Assagioli가 알아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과 명상을 결합하여 <psychosynthesis, 정신종합요법>을 만들어 냈어요. '동일시''분리'라는 용어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이론과 실습이 좀 많은데, 여기서는 '개인의 신체며 감정이며 지력과 분리하는' 실습을 하나 간략히 소개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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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곳에 홀로 편하게 앉아서 긴장을 푸세요. (이완 실습을 미리 해도 좋아요.) 

숨을 깊고 느리게 몇 번 들이쉬고 내쉬세요. (이완과 호흡 실습은 우리 블로그에 많아요.) 

다음에 아래 텍스트를 의미 새겨 가면서 자신에게 천천히 말해 주세요.

1.

나에게 몸이 있지만, 몸이 나는 아니다. 내 몸은 건강하거나 아플 수 있고, 피곤하거나 가뿐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상태가 나에게, <참된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내 몸이 내가 세상 살면서 인식하고 활동하는 데 소중한 도구임은 분명해. 하지만, 도구보다 더 큰 무엇은 아니야. 나는 늘 건강하도록 몸가축에 소홀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몸은 아니야. 나에게 몸이 있지만, 이 몸이 곧 는 아니다.

(그 다음엔 눈을 감고 1~2분 동안 뜻을 음미하면서 몇 번 더 비슷하게라도 되풀이하세요. 마지막 어구가 핵심이에요. 이건 요 다음 2번과 3번에서도 마찬가지에요.)

2.

나에게 감정이 있지만, 이 감정이 나는 아니야. 내 감정은 다양하고 변덕스럽고 때론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 감정은 사랑에서 증오로, 평온에서 분노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바뀔 수 있어. 하지만 내 본성과 내 진짜 천질은 바뀌지 않는다. <>는 언제나 그대로 나야. 이를테면, 분노의 파도에 휩쓸릴 때가 더러 있지만, 시간 지나면 그게 사라진다는 걸 난 알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분노가 아니다. 더 나아가, 내 감정이 <>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 내 감정을 내가 지켜보고 이해하면서 다스리고 활용하고 조화롭게 통합하는 법도 점차 배울 수 있어. 내 감정이 나는 아니야. 나에게 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이 곧 나는 아니다.

3.

나에게 마인드가 (마음이, 지력이) 있지만, 마인드가 나는 아니야. 내 마인드는 뭔가를 탐구하고 나를 표현하는 데 소중한 도구야. 하지만 그것이 내 본질은 아니다. 사상이며 지식이며 경험을 새로 얻을 때마다 내 마인드의 내용은 늘 달라진다. 가끔은 내 말을 안 듣기도 해.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인드가 나라고 말할 수는 없어. 마인드는 내 안팎의 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는 기관인 것이지 가 아니야. 나에게 마인드가 있지만, 이 마인드가 곧 나는 아니다.

 

이건... 우리한테 중요하긴 하지만 정작 <> 자신보다는 덜 중요한 것을 떼어내는 (분리하는) 단계에요. 물론, 그 다음에 동일시 단계가 이어지겠지요. 그건 별도로 다루겠어요.

 

결국 <분리> 작업이란 가장, 정말, 진짜 소중하고 본질적인 것과 그 아래로 중요한 것들을 구별하는 일이에요. 구분하고 판별할 줄 알면, 일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삶을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겠어요?

"마음에 너무 담아두지 마."

"뭐 사소한 일에 목숨 걸 일 있나!"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런 말들도 분리의 중요성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보리수 밑에서 명상에 잠기다

 

저 실습을 상황에 맞게 더 확장하고 변형할 수 있어요.

(지금 나에게 소중하고 절실한) 이 자동차가, 이 직장이, 직업이, 출세가, 성공이, 자녀들이, 부모가, 학업이, 발표가, 면접이, 돈이, 집이, 예쁜 얼굴이, 근육질 몸이, 옷이, 하다못해 이 구두까지도... <>인 것은 아니야. 절대 아니야. 

 

여기서 두 가지만 덧붙여야겠네요.

1.

노파심에서 먼저...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해서 일이나 자녀나 학업 등등에 소홀히 대해도 된다는 것은 정말로 절대 아니에요. 저렇게 한다면, 오히려 저 모든 것이 더 잘 될 거예요. 그 이유는... 저렇게 할 때 우리가 더 자유롭고 편해지며 크고 넓게 보게 되니까요.

"잡으려면 먼저 놓아주라" 하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겠어요.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서는 대신, 한 발짝 물러서고 승복하고 용인하고 받아들이기 같은 개념으로 저절로 이어지는 듯한데, 이 역시 우리가 따로 다룰 대목이에요.)

2.

'그렇다면, 그놈의 <>는 도대체 뭔데 돈이나 출세나 권력보다도 더 소중하다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드나요? ... 이건 제법 긴 얘기가 되겠어요. 이때의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만 안기는) '거짓된 나'<에고>가 아니라, 진정 <참된 나>를 가리킨다는 것만 우리가 일단 알아두지요. 그리고 그 안에 (우리 내면에!) 보물이 들어 있어요. (<낡은 궤짝의 비밀> 포스팅을 보면 좋겠어요.)

 

한창 때 미모로 대중의 사랑을 받다가 나이 들어 그 미모가 사라지면서 인기도 사라지자, 실망하고 좌절하던 끝에 아예 세상을 등진 여배우들이 나라 안팎으로 제법 있어요. 그들이 만약 '한창 때 미모'를 곧 자기 자신이라 여기지 않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닦았다면, 나이 들어서도 외려 더 꽃 파웠을 거예요. 예를 들어, 아프리카 아이들 돌보는 오드리 햅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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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루덩의 악마들 11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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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 ‘생각꾼’을 지켜본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

 

만약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요" 하고 말한다면, 정신과의사한테 가보라는 말을 들을 게 분명하다. 실제로 모든 사람은 늘 자기 머릿속에서 그런 목소리를 듣는다. 

이건 자신도 모르게 여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 끝없는 머릿속 독백이나 대화를 멈출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생각꾼을 지켜보기

늘 뭔가를 쉴 새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이른바 '맛이 간' 사람들을 거리에서 간혹 본다. 한데, 그 미친 사람들이 하는 짓과 우리를 포함해 이른바 '정상적인' 사람들이 하는 짓의 차이란 기껏해야 우리는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는다는 점일 뿐이다. 

이 머릿속 목소리는 늘… 누군가나 뭔가를 촌평하고, 주장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불평하고,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이 머릿속 목소리는… 어떤 순간에 우리가 처한 상황과 별반 관련 없는 것이 많다. 이건 대체로 최근이나 먼 과거를 떠올리거나 가능한 미래 상황을 미리 짚어보거나 상상한다.  그러면서 일이 잘못 되거나 안 좋은 결과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우리는 근심 걱정이라 부른다. 
때로는 이 사운드트랙에 시각적 형상이나 '정신적 필름‘이 수반되기도 한다. 

 

머릿속 목소리가 혹시 당면한 상황과 관련된다 하더라도, 그 상황조차 머릿속 목소리는 과거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머릿속 목소리가 조건에 얽매인 마인드에서 나오는데, 또 이 제한된 마인드는 우리네 인생 내력뿐 아니라 우리가 물려받은 사회적, 문화적 사고방식의 반영이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과거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며, 그 결과 현재에 대해 완전히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다. 

 

머릿속 목소리가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징벌하고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갉아먹는 고문자를 자기 머릿속에 둔 채 살고 있다. 이것이 질병뿐 아니라 크나큰 비참함과 불행의 원인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자기 마인드의 전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이 진정한 해방이다. 이 길을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중중대는 목소리에 최대한 자주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하라. 

반복되는 생각 패턴에, 아마도 몇 년씩이나 양쪽 귀 사이에서 뱅뱅 돌았을 낡은 레코드판 소리에, 특히 주목하라. 

이것이 내가 말하는 ‘생각꾼 지켜보기’이다. 

 

달리 말해, 머릿속 목소리를 들으면서 목격자로 머릿속에 실재하라. 

그 목소리를 들을 때 편견을 갖지 말라. 즉, 판단하지 말라. 

듣는 것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라. 그렇게 한다는 것은 같은 목소리가 뒷문으로 다시 들어왔다는 뜻일 테니까. 

 

저기에 목소리가 있고 여기에 그것을 듣고 지켜보는 ‘나’가 있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있다’는 실감이나 나의 실재감은 생각이 아니다. 이건 마인드 너머에서 생기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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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그 생각뿐 아니라 그 생각의 목격자로서 자기 자신도 분명히 알게 된다. 새로운 차원의 의식이 들어선 것이다. 생각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는 그 생각의 이면이나 기저에 있는 의식적인 실재를 느낀다. 

이것이 우리의 더 깊은 자아이다. 

그러면 생각은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잃고 금방 잠잠해진다. 왜냐하면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함으로써 마인드에 에너지 공급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생각하기를 끝내는 작업의 첫걸음이다. 

 

생각이 잠잠해질 때 머릿속 흐름이 중간 중간 끊어지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인드가 없는 틈새이다. 혹은 무념(無念)의 간격이다. 이 틈새들이 처음엔 짧아서 몇 초에 불과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이 틈새들이 생길 때, 우리는 내면에서 고요와 평온을 느낀다. 

이렇게 하여 <존재>와 하나 됐다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나아간다. 

물론 그 이전에 이 상태는 대개 마인드에 의해 가려져 있다. 

 

이 연습을 계속 할수록 고요와 평온의 느낌이 더 깊어질 것이다. 사실, 이 느낌의 깊이에는 끝이 없다. 또한 내면 깊은 곳에서 신비하게 솟아나는 기쁨도 느끼게 될 텐데… 이것이 바로 <존재>의 기쁨이다. 

 

건 트랜스 (꿈결, 비몽사몽) 같은 상태가 아니다. 전혀 아니야. 여기서는 의식이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아. 외려 그 반대이다. 평온을 얻느라고 의식 수준을 낮춰야 하며 고요를 얻느라고 활력과 기민함을 잃는다면, 그런 것은 얻으려 애쓸 가치가 없으리라. 

이 내면의 연결 상태에서는 마인드와 동일시할 때보다 훨씬 더 경계하고 깨어 있게 된다. 

우리는 완전히 현존한다. 게다가 신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에너지장의 진동수가 이 상태에서 높아지기도 한다. 

 

이 무념(無念)의 영역에 더 깊이 들어서면서 우리는 순수 의식 상태를 실감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우리 자신의 현존이 어찌나 강렬하고 기쁘게 느껴지는지, 이에 비하면 생각이며 감정이며 육체며 바깥세상 모든 것이 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건 이기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심 없는 상태이다. 자신의 실재를 실감함으로써 우리는 이전에 ‘나 자신’이라 여기던 것을 훨씬 더 넘어서게 된다. 이 실재는 본질적으로 ‘나’이면서 동시에 이 ‘나’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더 크다. 여기서 내가 전하려는 것이 역설적이거나 모순된 듯이 들릴지 모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생각꾼 지켜보기’ 이외에도 <지금> 순간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머릿속 흐름에서 틈새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순간을 그냥 강렬하게 의식하기만 하라. 그렇게 하는 자체가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마인드의 움직임에서 의식을 끌어내 무심의 틈새를 만드는데, 이 틈새 안에서 우리는 높은 경계심과 인식 상태에 있으면서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이걸 우리는 일상에서도 연습하고 실행할 수 있다. 우리네 일상 움직임은 목적을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것을 행할 때 거기에 온통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 자체가 적어도 그 순간에는 목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이나 직장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계단 하나하나에, 동작 하나하나에, 심지어 호흡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라. 거기에 전적으로 현존하라. 몰입하라. 

또는 손을 씻을 때, 그 행동과 관련된 모든 감각적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라. 즉, 흐르는 물소리며 손놀림이며 비누 냄새 등에 집중하라. 

혹은 차에 탈 때, 차 문을 닫고 나서 아주 잠깐 휴지를 취하고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라.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절절이 느껴 보라. 

 

‘이런 실습을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확인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내면에서 체감하는 평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분리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마인드의 흐름에 틈새를 만들 때마다 (no-mind, 무념의 찰나에 접할 때마다) 의식의 빛이 더 선명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린애들 장난에 미소 짓듯이 머릿속 목소리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자신을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건 자기 마인드의 내용을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자아감이 더 이상 거기에 좌우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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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당신과 당신 마인드는 같은 것이 아니야

 

깨달음에 가장 큰 장애물

 

-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한 거지가 어떤 거리에서 삼십 년 넘게 구걸을 해 왔다. 

어느 날 낯선 사람이 그 곁을 지나갔다. 

거지가 낡은 모자를 기계적으로 내밀면서 “동전 한 닢만 적선하십시오” 하고 우물거렸다.  

행인이 “나한테는 당신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군요” 대꾸하고는 “한데 거기 깔고 앉은 건 뭐지요?” 하고 물었다.   

“아, 이건 별것 아닙니다. 그저 낡은 궤짝이에요. 아주 오래 전부터 깔고 앉던 거지요.”  

“그 안을 한번 들여다보기는 했나요?” 

“아뇨,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러지 말고 한번 들여다보구려.” 행인이 적극 권했다. 

거지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귀찮다는 듯이 궤짝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궤짝 안에는 금덩이가 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니던가!

 

You are not your mid. - Eckhart Tolle


당신에게 줄 것 하나 없이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권하는 행인이 바로 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우화처럼 무슨 궤짝 속을 들여다보라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난 거지가 아니야!” 하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자신의 진정한 보물은 <존재>의 빛나는 기쁨과 여기서 나오는 깊고 확고한 평온인데… 이걸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재산이 아무리 많다 해도 거지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바깥에서 작은 쾌락이나 성취를 찾고 인정받기를 갈망하며 안전을 모색하고 사랑을 원한다. 한데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세상이 제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물이 정작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뭔가 초인적인 성취 같은 걸 떠올리게 하고, 우리네 <에고>는 그런 식으로 몰아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존재>와 하나 된다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일 뿐이다. 

이건 헤아릴 수 없고 불멸인 뭔가와 연결된 상태이며, 좀 역설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자신이면서도 또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무엇과 연결된 상태이다. 

이건 우리의 이름과 형태를 넘어서서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실체를) 찾는 것이다. 

 

이 연결을 느낄 수 없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이며 주변 세상과 분리됐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고립된 파편으로 인식한다. 
이때 두려움이 생기며, 자기 안팎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충돌이 일상사가 된다. 

 

깨달음을 ‘고통의 끝’이라고 간결하게 표현한 붓다의 정의가 정말 마음에 와 닿는다. 여기에 초인적인 것이라곤 없다, 안 그런가?

정의로서는 물론 완전하지 못하다. 깨달음은 고통이 아닌 것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고통이 없을 때 남는 건 무엇인가? 

 

이에 관해 부처는 말을 아끼는데, 그 침묵은 우리 스스로 헤아려 보라는 암시이다. 그는 부정적인 정의를 이용함으로써… 이 정의를 믿어야 할 무엇이나 초인적인 성취로 마인드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즉, 깨달음이 우리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자들은 깨달음이란 붓다가 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한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적어도 이승에서는 아니라고 믿는다.

 

- 당신은 <존재>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존재>란… 태어났다가 죽고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많은 생명 형태들 너머에서 늘 존재하며 영원한 ‘하나의 생명’이다. 하지만 존재는 모든 형태의 가장 안쪽에 보이지 않는 불멸의 본질로서 그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형태의 깊은 곳에도 있다. 즉, <존재>는 우리 각자의 가장 심원한 자아이자 실체로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거기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마인드로 포착하려 들지는 말라. 그걸 이해하려 들지 말라. 

마인드가 고요할 때만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현존하면서 <지금> 순간에 주의를 완전히 집중할 때 비로소 <존재>를 느낄 수 있지만, 마인드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존재>를 다시 또렷하게 인식하고 ‘그 느낌을 실감하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

 

- 당신이 쓰는 <존재>는 신(神)과 같은 뜻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신이란 단어를 안 쓰나?

 

신이란 단어는 수천 년 동안 오용되는 바람에 본래 의미를 다 잃었다. 난 그 단어를 쓴다 해도 아주 가끔만 쓴다. 내가 말하는 오용이란… 이 단어에 깃들어 있는 무한한 광대함과 신성한 영역을 한 순간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마치 자기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아는 것처럼 이 단어를 입에 올린다는 뜻이다.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자기네가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그렇게 한다. 이런 오용 때문에 “우리의 신만이 유일한 진짜 신이고, 너희 신은 가짜야”라거나 니체의 유명한 언급 “신은 죽었다” 같이 터무니없는 확신과 주장, <에고> 식의 망상 따위가 생기는 것이다. 

 

신(神)이란 단어는 닫힌 개념이 되어 버렸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아마도 허연 수염 달린 노인의 심상이 떠오르겠지만, 이건 우리 바깥에 있는 누군가나 무엇인가에 대한 심적 관념인 것일 뿐이다. 아, 그래, 이것이 남성이나 남성적인 것이라는 점도 거의 확실하다. 

 

신이나 <존재>는 물론이고 그 어떤 단어도 그 단어 이면의 형용키 어려운 실체를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단지 중요한 것 하나는… “단어가 가리키는 ‘그것’을 우리가 체감하는 데 이 단어가 도움이 되나, 아니면 방해가 되나?” 하는 점이다. 이 단어는 그 이면의 초월적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머릿속에 아주 쉽게 날아들어 우리가 믿는 어떤 생각이나 정신적 우상이 되는 걸까? 

 

<존재>라는 단어는 신이란 단어처럼 그 무엇 하나 명확히 밝히거나 알려주지 못한다. 하지만 <존재>라는 단어에는 열린 개념의 이점이 있다. 이 단어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것을 (그것의 본질, 역할, 의미를) 어떤 조건적이고 유한한 대상으로 축소시키지 않는다. 

 

<존재>를 심상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존재>를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질이며,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저런 사람이야’ 하면서 자신을 다른 무엇과 동일시하기 이전에 ‘내가 있다’고 실감하고 내 실재를 느낌으로써 즉각 다가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존재>라는 단어에서… <존재>를 체감하는 쪽으로 작은 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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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실체를 체감하는 데 가장 크게 방해되는 건 무엇인가?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즉, 생각이 집요하게 이어지도록 부추기는 마인드를 바로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잡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건 끔찍한 재앙인데, 이런 점을 우리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의 누구나 다 잡생각에 시달리니까, 이게 마치 정상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소음 때문에 내면의 고요한 영역을 찾기 어려워

그리고 이 그칠 줄 모르는 정신적 소음 때문에 우리는 <존재>와 불가분한 내면의 고요한 영역을 발견하기 어렵다. 또 이 소음 때문에 <마인드가 만든 거짓된 나>가 생겨나서 우리한테 두려움과 고통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부분은 잠시 뒤에 자세히 살펴보겠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언급을 내놓았을 때, 그는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발견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상 그건 가장 근본적인 착각을 드러낸 것이다. 즉, 생각을 <존재>와 같은 것으로 보았고, 자신을 생각과 동일시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강박적인 ‘생각꾼’은 자신이며 주변 세계와 확실히 분리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문제며 대립이며 충돌이 끊이지 않는,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마인드는 갈수록 더 분열되고 있다. 

 

깨달음이란… 흠 없이 온전한 상태, 하나가 되기 때문에 평온한 상태이다. 
깨달음이란… 삶이 ‘의식에 나타나고 드러난’ 측면인 이 세상에서 삶과 하나 될 뿐 아니라 우리네 가장 심원한 자아이며 ‘드러나지 않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은’ 삶과도 하나 되는 상태이다. 한마디로, <존재>와 하나가 됨에 깨달음이 있다. 
깨달음이란… 내 안팎으로 끊임없는 갈등이며 고통의 종식일 뿐 아니라, 또한 자기도 모르게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더 이상 노예처럼 얽매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야말로 얼마나 크나큰 해방이란 말인가! 

 

자기 마인드를 자신이라 여길 때… 개념이나 꼬리표, 형상, 단어, 판단, 정의라는 이름의 흐릿한 차단막이 생기고, 그래서 진정한 관계가 다 차단된다!

마인드와 동일시할 때… 나와 나 자신 사이에, 나와 내 동료들 사이에, 나와 자연 사이에, 나와 신(神) 사이에 이 차단막이 드리우고, 이 차단막 때문에 이른바 분리 망상이 생긴다!!

즉, ‘내가 있고 또 나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게 되니… 물질적인 외양과 개개의 형태들 기저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과 하나라는 사실 말이다. ‘잊는다’는 것은 이 일체감을 더 이상 자명한 실체로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과 하나임을 진실이라 믿을 수는 있지만, 그게 과연 진실인지는 알지 못한다. 

믿음이 위안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믿음에 얽매이지 않으며,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믿음이다. 

 

생각하는 과정은 병이 되었다. 질병은 상황의 균형이 깨질 때 생긴다. 이를테면, 신체 세포의 분열과 증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 과정이 신체 전반과 조율되지 않은 채 계속된다면 세포들이 급증하면서 병이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인드는 (머리, 지력, 마음은)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더없이 훌륭한 도구이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아주 파괴적인 도구가 된다.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마인드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대개 그걸 아예 이용하지 않아. 그 대신 마인드가 우리를 이용한다. 바로 이게 병이다. 우리는 자기 마인드가 곧 ‘나 자신’이라고 믿는다. 이건 망상이야. 이 도구가 우리를 점령했다.

 

- 그 말에 난 썩 동의하지 않아. 대다수 사람들처럼 나도 목적 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면서 내 마인드를 이용한다. 늘 그렇다. 

 

크로스워드 퍼즐을 푼다거나 원자탄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마인드를 이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개가 뼈다귀 핥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마인드는 어떤 문제에 매달리기를 좋아한다. 이 때문에 마인드는 십자말풀이를 하고 원자탄을 만드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다. 

이런 질문을 하나 해 보자. 

당신은 원할 때면 언제나 자기 마인드에서 벗어날 수 있나? 

마인드 ‘끄는’ 단추를 발견했나?

 

- 흠, 생각하기를 완전히 멈춘다는 뜻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아주 잠깐이면 몰라도. 

 

그렇다면 그건 마인드가 당신을 이용한다는 뜻이야.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했고, 그래서 마인드의 노예가 됐다는 것도 모른다. 이건 우리가 자기도 모르게 뭔가에 홀리고 난 뒤, 우리를 홀린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자유는… 우리를 점유하고 있는 실체인 ‘생각꾼’이 본연의 우리가 아님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이걸 알 때 그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생각꾼’을 지켜보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이 활성화된다. 

 

그러면 생각 너머에 무한한 지혜가 (혜심/慧心이) 있으며, 생각은 이 지혜의 미미한 일부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아름다움, 사랑, 창의, 기쁨, 내면의 평화 등 정말 중요한 것은 전부 마인드 너머에서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된다. 비로소 우리는 깨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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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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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순간의 힘  

 

일상에서 깨달음 얻기

 

Eckhart Tolle 지음

 

김성호 옮김

 

마인드 너머. 행성, 장미, 어린 왕자

 

차 례

 

옮긴이의 말

머리말

 

1장. 당신과 당신 마인드는 같은 것이 아니야 

 

깨달음에 가장 큰 장애물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깨달음이란 자신의 생각 위로 올라서는 것 

감정은 마인드에 대한 몸의 반응 

 

2장. 깨어 있는 의식: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현재에서 고통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과거의 아픔: 고통의 몸체 녹이기 

 고통의 몸체와 동일시하려는 에고 

두려움의 근본 원인 

<에고>가 완전함을 추구하는 방식

 

3장. <지금> 순간에 뿌리내리기 

 

자신을 마인드에서 찾지 않기

시간이란 망상을 떨치기

<지금> 순간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어

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기

심리적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심리적 시간의 광기 

부정성과 고통의 뿌리는 시간 속에 들어 있어 

당신의 생활 여건에서 삶을 찾기

문제란 전부 마인드의 망상이야

의식 진화에서 급격한 도약 

존재한다는 기쁨 

 

4장. <지금> 순간을 회피하려는 마인드의 술책 

 

<지금> 순간의 상실이 주된 망상이야

평범한 무자각과 심각한 무자각 

“그들은 뭘 추구하는 거야?” 

평범한 무자각에서 벗어나기 

불만과 불행에서 해방되기 

<지금> 어디에 있든, 거기에 온전히 있으라

인생 여정의 내적인 목적 

과거는 당신의 현존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5장. 현존하는 상태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거야

‘기다림’의 심원한 의미 

아름다움은 당신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순수 의식의 구현

그리스도: 당신의 신성한 현존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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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내면의 몸체 

 

<존재>란 당신의 가장 깊은 본질 

단어와 말 너머를 내다보기

자신의 보이지 않는 불멸의 실체를 찾기 

내면의 몸체와 연결하는 방법 

몸을 통한 변용

몸에 대한 수훈(垂訓)

내면에 깊이 뿌리 내리기

몸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용인하기 

<드러나지 않은 세계>와 연결 

노화 과정의 완화 

면역체계 강화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이동하기 

마인드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경청 능력 

 

7장. <드러나지 않은 세계>로 들어서는 들머리 

 

몸 깊숙이 침잠하기 

기(氣) 에너지의 원천 

꿈꾸지 않는 수면 

그 밖의 여러 들머리 

고요 

공간 

공간과 시간의 본래 속성 

의식적인 죽음 

 

8장. 깨달음 얻은 대인관계 

 

어디에 있든 <지금> 순간에 들어서기 

애증 관계 

파멸적인 의존성과 온전함의 추구 

의존 관계에서 깨달음 얻은 관계로 전환하기 

영적 실천으로서 상호관계 

왜 여성들이 깨달음에 더 가까이 있나

여성들의 집단적 아픔덩어리 해소하기 

자신과의 관계를 거부하기 

 

9장. 행불행 너머에 있는 평온 

 

좋고 나쁨 너머에 있는 최고선 

당신의 고달픈 인생 드라마를 끝내기 

삶의 비영속성과 순환

부정성을 활용하고 극복하기 

동정심의 본질

다른 질서의 현실을 향하여 

 

10장. 승복의 의미 

 

<지금> 순간 받아들이기 

마인드 에너지에서 영적 에너지로 승화 

대인관계에서 승복하기 

질병을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재앙이 닥칠 때

고통을 평온으로 바꾸기 

십자가의 길 

선택하는 힘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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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마인드의 위험한 술책

4단계. 의식을 몸에 연결하여 '존재'에 뿌리 내리기 17

5단계. 내면의 목격자가 되기 22

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7단계. 고통의 몸체 다스리기 32

8단계. 승복이라는 의미 37

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42

10단계.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들과도... 47

깨달음 추구하는 사람들

(6) 고통의 몸체 녹여 없애기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1)

신언서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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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ety/우화 동화2019. 3. 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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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궤짝의 비밀>  

 

어떤 도시 외곽에 거지 한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그는 날마다 낡은 궤짝 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구걸하곤 했지요. 

밤이 되면 길에 놓인 그 낡은 궤짝 곁에서 잠을 잤어요. 

 

“이보세요, 그 궤짝엔 뭐가 들었나요?” 한번은 어떤 여인이 물었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궤짝일 뿐이에요. 텅 비었을 겁니다. 부디 먹을 것이나 좀 주세요.” 

 

그리고 얼마 지나서는 한 소년이 다가와서 물었어요. 

“아저씨, 그 궤짝엔 뭐가 들어 있어요?” 

“나도 모르겠다. 이건 그냥 낡은 궤짝일 뿐이야. 아마 텅 비었을 거야. 먹을 거나 주고 가렴.” 

 

그렇게 몇 해가 흘렀습니다. 거지는 여전히 길바닥에 놓인 궤짝 곁에서 잠자며 구걸하고 있었어요. 이젠 꽤나 늙수그레해져서 머리도 더 희끗해지고 얼굴에 주름도 더 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행자가 그에게 물었어요. 

 

“노인장, 그 궤짝엔 뭐가 들었습니까? 뭔가 있지 않을까요. 노인께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뭔가가 들어있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거지가 여느 때처럼 대꾸했지요. 

“뭐가 있는지 난 모른다오. 비어 있을 게요. 나한테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 여행자는 인생 여로를 많이 거치고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지혜를 쌓은 사람이었어요. 그가 제시했어요. 

“그러지 말고 한번 열어서 뭐가 있는지 보기나 할까요.” 

“아, 이건 그저 낡고 지저분한 궤짝이라니까 그러네. 먹을거리나 주시오.” 

하지만 이 여행자가 거지의 대꾸에 아랑곳하지 않고 궤짝을 열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낡은 궤짝 안에는 갖가지 금은보화가 가득했답니다. 

 

이 거지는 평생 동안 자기한테는 아무 것도 없다고 여기면서 길바닥에서 잠자고 구걸했던 겁니다. 스스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관심 쏟지 않은 궤짝 안에 본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보물이 들어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내 안에 있는 보물

우리에겐 어떤 내면의 부유함이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의 궤짝을 열어보았던가요, 아니면 이 거지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손 안에 갖고 있으면서도 운명과 타인들의 적선을 바라고 있나요? 

이 내적인 부를 늘리기 위해 우리는 매일 뭘 하나요?
이 부를 우리는 어떻게 쓸까요? 
다른 이들과 나눌 채비가 돼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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