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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0 루덩의 악마들 1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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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젊은 시절 모습

 


11

 

 

  비극에 우리는 참여하고, 코미디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비극의 저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 속에 있다고 느낀다. 독자나 청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코미디에서는 창작자와 문학적 피조물 간에, 구경꾼과 구경거리 간에, 일체화가 전혀 없다. 작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에 투사하지 않으며 관객도 그들과 거리를 둔다. 작자는 바깥에서 보고 판단하고 묘사한다. 관객 역시 바깥에 머물면서 작자가 묘사한 것을 관찰하고 작자가 판단하는 대로 판단하고 코미디가 꽤 괜찮다면 웃음을 터뜨린다. 

 

  순수 코미디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뛰어난 코미디 작가들이 혼합된 코미디 장르를 택하는 것이며, 거기서는 동일시에서 밀어내기로, 또 그 반대로 초점이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순간에 우리는 그저 보고 판단하고 웃기만 한다. 그러다가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지켜보는 대상에 불과했던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나아가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관객들한테서 늘 밀어내기 반응을, 즉 순전히 코믹한 효과를 야기하는 불행한 사람 축에 들었다. 자신이 겪은 큰 고통에 독자들 공감을 사기 위해 고백 서신을 끊임없이 썼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 서신들을 오늘날 우리가 읽으면서 가련한 그녀를 코믹한 형상으로 여기는 까닭은 그녀가 철저하게 배우 같은 인생을 살았으며, 배우로서도 거의 늘 자신한테마저 정직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의 고백을 행하는 ‘나’는 때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잡탕이고 때론 악귀 들린 여인들의 여왕이요 때론 제 2의 테레사 성녀이며, 또 때로는 연기를 다 걷어치운 채 영악하고 일순간 진실한 젊은 여인, 자신이 누구이며 다른 더 공상적인 인물들과 어떻게 결부돼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야 응당 없었겠지만, 그러면서도 코미디 기법을 죄다 동원했으니, 한 마스크에서 다른 얼굴로 급전, 지나치게 과장된 언행, 자신의 진짜 욕망을 아주 단순하게 합리화하는, 경건하면서도 장황한 선동 따위가 그것이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의 위선

 

  게다가 수신자들이 다른 쪽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생각지 않고 제 생각만 담은 편지를 수없이 써 보냈다. 예를 들어, 그랑디에 공소장에서 우리는 원장수녀와 몇몇 수녀가 후회하는 마음에 자기네 진술이 완전히 거짓이라며 철회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데, 허영심과 자만, 냉담함으로 채색된 진부한 공언이 가득한 자서전에서 자신의 가장 큰 범죄, 무고한 사람을 고문과 화형으로 몰아간 악의적인 거짓 증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명성을 안긴, 이 끔찍한 스토리 전반에서 미더운 일화를 단 하나도 들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이며 지은 죄에 대한 공개적인 참회 따위 말이다. 

  그보다는 로바르데몽과 카푸친회 수사들이 “당신의 통회는 악마들의 간책이고, 당신 거짓말은 거짓이 아니라 신성한 진실이오!” 하는 냉소적 장담을 믿는 쪽으로 돌아서자고 작심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녀가 이 사건에 대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한다 해도, 악마의 제물이었다가 하나님 기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필히 손상될 터이다. 잔느는 기이하고 비극적인 사실들은 은폐하면서 자신을 과장되고 허구적인 인물로 만드는 쪽을 택했다. 이야말로 코미디의 특성이 아니고 뭐겠는가.  

 

 장 조셉 수렝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은 삶의 여정에서 어리석고 무분별하고 심지어 괴기한 것을 많이 생각하고 쓰고 행했다. 그러나 그의 서신들과 회고록을 읽은 사람 누구한테든 그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형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괴상하고 어떤 면에서는 마땅하다 싶어도) 그가 겪은 고통에 우리는 금방 공동 참여자가 되니까

  그가 내면에서 꾸밈없이 자신을 알았던 것만큼 우리는 그를 안다. 그의 고백을 행하는 ‘나’는 언제나 장 조셉일 뿐이다. 그의 고백은 진실한 것이라 믿을 수 있다. 가련한 잔느처럼 자신을 몽상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녀처럼 비밀을 흘리고 숭고한 것을 우스꽝스럽고 익살맞은 것으로 바꾸며 끝을 맺는, 사람들 눈길 끌어 모으기에 급급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수렝이 거쳐 간 길고 험한 십자가 길의 시작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다. 이 사람은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니고 영적 완성이라는 최고 이상에 고무됐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잘못 해석한 교리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가뜩이나 허약한 체질이 아주 빨리 망가지고 불안정한 기질이 혹사당했다. 루덩에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아픈 사람이었다. 거기서 다른 엑소시스트들이 과도하게 적용한 악마 숭배를 저지하려 애썼지만, 결국 그 자신이 근본악이라는 생각과 사실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악령의 제물이 됐다

 

예수회 수사 장 조셉 수렝

 

  악마들은 자기네와 삶이 아니라 죽음을 놓고 싸우는 사람들의 맹렬함에서 힘을 빨아들인다. 광란에 빠진 수녀들과 악의에 찬 엑소시스트들은 악령을 더 키웠을 뿐이다. 악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작동하면서 대개는 의식적으로 억제되던 경향이 (엄격한 종교적 규율이 감응하는, 방종과 신성 모독의 경향이) 표면으로 튀어나왔다. 

  랑탕과 트랑킬은 ‘벨리아르에 지배돼 수족이 묶여’ 발작하다가 죽었다. 수렝도 그렇게 자초한 시련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각주:1]   

 

  루덩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엑소시즘을 시행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틈틈이 많은 서신을 썼다. 그러나 경솔한 친구인 아티시 신부에게 보낸 서신에서만 은밀한 속내를 드러냈다. 명상과 고행, 마음 정화 등이 그가 다룬 일반적 주제였다. 악마들과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았다. 한 수도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당신의 정신기도에 관해 말하자면 어떤 주제를 미리 정했음에도 거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보기엔 나쁜 징표가 전혀 아닙니다. 어떤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에 임하시라고 조언합니다. 

  예전에 당신이 얘기 나누고 소일을 돕기 위해 다레락 부인한테 들르곤 하던 때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때 당신은 그녀와 아무 이야기나 다 태평하게 주고받았지요. 무슨 얘기를 할까 미리 정하지 않고서도 서로 즐겁게 대화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친밀함을 만들고 키우겠다는 평범한 의도를 가지고 그녀한테 갔습니다. 하나님께도 바로 그런 식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다른 친구한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쓴다. 

  「우리 소중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하자는 대로 하시게. 그분께서 역사하실 때는 영혼이 제멋대로 놀지 않아야 하네. 그렇게 하시게, 그분의 사랑과 권능의 빛에 자신을 드러내시게. 분주한 근심걱정일랑 한 편에 밀어두게나, 그런 것에는 정화를 요하는 결점이 많으니까.」 

 

  그렇다면 영혼이 그 빛을 받아야 하는 이 사랑과 권능이란 무엇인가

  「이 사랑이 하는 역사는 부수고 깨고 무너뜨리고 나서 새롭게 하고 다시 만들고 소생시키는 것일세. 이 역사는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진정 달콤하네. 더 무서울수록 더 바람직하고 더 매혹적이야. 바로 이 사랑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송두리째 내놓아야 하고. 이 사랑이 자네를 사로잡고 소멸시킬 정도로 자네 안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 난 행복하지 못할 것이야.」 

 

  수렝의 경우엔 자신을 소멸하는 과정이 막 시작됐을 뿐이다. 1637년 거의 내내, 또 1638년 초 몇 달 동안 계속 아팠다. 하지만 간간이 차분한 상태가 찾아들기도 했다. 아직 견딜 만큼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꾸 벗어나는 게 병이었다. 이십오 년 뒤 그가 <다른 삶의 연구의 실험 과학>에서 이렇게 쓴다.

  「이 강박 관념에는 비상한 정신적 활기와 쾌활함이 수반됐는데, 바로 그 덕분에 인내하며 만족스럽게 이 멍에를 이겨낼 수 있었다.」

 

  사실, 지속적인 집중은 이미 불가능했다. 공부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생 초기에 쌓은 지식으로도 눈부신 글을 간간이 써 내기에는 충분했다. 제 뜻을 자유로이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모르고 입을 뗄 수나 있을까 염려하면서 죄수가 단두대에 오르는 심정으로 설교단에 오르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느꼈다. 

  「내면 감정의 출렁임과 강한 은혜의 열기를. 그 은혜가 하도 강해서 강력한 목소리와 생각을 가지고 가슴을 트럼펫처럼 확 쏟아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어딘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도관을 따라 힘과 지혜가 내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다가 급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파이프가 막히고 계시의 급류가 말랐다. 질환이 새로운 형태를 띠었다. 그건 하나님과 제법 정상적으로 접촉하는 영혼의 발작적인 강박 관념이 아니라 그 접촉과 빛을 완전히 차단하면서 사람을 본래보다 더 작은 뭔가로 웅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슷한 현상을 겪은 한 수녀에게 1638년도에 보낸 많은 서신들에서 수렝이 자기 질환의 새로운 단계를 묘사한다. 

 

  그의 고통은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기도 했다. 며칠이고 몇 주일이고 계속되는 고열 속에서 허우적대며 극도로 쇠약한 상태에 빠졌다. 어떤 때는 국부 마비 같은 것에 시달렸다. 아직은 수족을 좀 놀릴 수 있지만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고 종종 통증까지 수반됐다. 

  가장 작은 움직임도 고문이요, 가장 사소하고 평범한 일도 헤라클레스의 노동이었다. 예를 들어, 법의에 달린 호크 하나 끄르는 데도 두세 시간이 걸렸다. 옷을 다 벗는 것은 이미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거의 이십 년 동안 옷을 입은 채 잠잤다. 그러나 (지독히 혐오하는 이가 꼬이지 않게 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 셔츠는 갈아입어야 했다.  

 

  「속옷 갈아입는 일이 아주 고통스러웠다. 어떤 때는 지저분한 셔츠를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느라고 토요일 밤부터 주일 아침까지 날을 새기도 했다. 통증이 어찌나 심했든지, 그래도 가냘픈 행복을 찾는 듯싶다면 그건 언제나 목요일 이전이었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셔츠 갈아입을 생각을 하면서 목요일부터는 두려움에 떨었으니까.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이 고문을 다른 그 어떤 고통과도 기꺼이 바꾸었을 것이다.」  

 

  음식 먹는 일도 옷을 입고 벗는 것 못지않게 힘들었다. 셔츠는 일주일에 한 번만 바꾸었다. 그러나 고기를 자르고 포크를 입에 올리고 컵을 쥐고 기울이는 시지포스의 노동은 날마다 겪어야 하는 시련이었다. 입맛이 전혀 없는데다가 먹은 것을 다 토하거나, 그게 아니면 지독한 소화불량에 시달릴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 

 

  의사들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다. 사혈을 하고 하제를 써서 장을 세척하고 온욕을 처방했다. 다 소용없었다. 여러 증상은 분명 신체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원인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환자의 썩은 피와 병든 체액이 아니라 정신에 있었다

 

  (악마들이 떠남으로써 정신이 마귀 들림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 한 레비아탄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이제 싸움은 하나님이라는 이데아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이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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