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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07.14 루덩의 악마들 4편 1 (2)
  3. 2019.07.13 루덩의 악마들 3-3편 1
  4. 2019.07.13 루덩의 악마들 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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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일러스트레이션

 


 

  몇 번이나 해가 바뀌면서 고통의 양상도 이모저모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결코 가시지 않았다. 그는 그걸 이지적으로 알았다.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하중으로, 신의 심판의 무게로 느꼈다. 그 압박을 견딜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건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느낌은 자꾸만 나타나는 환영들 때문에 더욱 굳어졌다. 그 환영들이 어찌나 생생하고 진짜 같은지, 정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그 자신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거개가 그리스도의 환영이었다. 

  그러나 구세주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의 그리스도였다. 가르치는 그리스도나 수난 겪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최후 심판일의 그리스도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죽음 문턱에서 보는 그리스도, 지옥 불구덩이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에게 나타나는 그리스도, 분노와 질책과 복수심 곁들인 증오의 ‘견디기 힘든 표정’을 한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의 형상

 

  그분은 가끔 주홍빛 망토를 두르고 무장한 사람 모습으로 보였다. 어떤 때는 환영이 창문 높이 공중에 떠서 죄인이 들어가지 못하게 교회 문을 지키고 서 있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보고 만질 수 있는 무엇처럼 그리스도가 성체에서 환한 빛으로 발산되는 듯했는데, 그때 아픈 수렝이 얼마나 강한 혐오를 느꼈는지 한 번은 종교 행렬을 지켜보는 사다리에서 실제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들도 있었으니, 칼뱅이 전적으로 옳으며 그리스도가 성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이는 성실한 믿음이 감응에 의해 독실한 신자의 마음에 일으키는 강한 의심 같은 것. 딜레마의 두 뿔 사이에 다른 길은 전혀 없었다. 성병이 그리스도 몸의 일부임을 직접 경험으로 알았을 때, 그는 그리스도가 자신을 저주했음도 직접 경험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단자들의 교리가 옳고 성병에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에 못잖게 확실한 저주를 받았다.) 

 

  그에게 나타나는 환영은 그리스도만이 아니었다. 간혹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혐오와 분노가 담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손을 쳐들어 복수의 벼락불을 내쏟을 때면 그의 온 존재가, 마음과 몸이 다 고통을 느끼곤 했다. 간혹 다른 성인들이 나타났는데, 그들도 저마다 ‘견디기 힘든 표정’을 짓고 번갯불로 놀라게 했다. 수렝이 그들을 꿈에서도 보았으며, 그때마다 마치 벼락 맞은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서 잠을 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성인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밤에는 ‘성 에드워드, 잉글랜드 왕’의 손에서 나온 번갯불 때문에 오금을 못 폈다.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 수난자 에드워드?[각주:1] 아니면 불행한 고백자 에드워드?[각주:2] 어쨌든, 성 에드워드가 「지독한 분노를 터뜨렸고, 나는 이것이 (성인들이 내던진 번갯불이)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감당하게 될 것임을 굳게 믿었다.」 

 

  하늘과 인간 세상에서 오랜 세월 도피하던 처음 시기, 적어도 좋은 나날에는 수렝에게 아직 주변과 접촉을 복원할 여력이 있었다. 「내 영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마구 늘어놓기 위해 난 상급자들과 다른 수사들을 늘 쫓아다녔다.」 하지만 헛수고. 

  (극심한 신체장애와 마찬가지로 정신 착란의 주된 공포 중 하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 깊은 심연이 고착돼 있다고 느끼는 것. 예를 들어, 긴장성 분열증 환자의 상태는 정상인의 상태와 같은 표준으로 잴 수 없다. 마비된 사람들이 거주하는 세계는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는 세상과 전혀 다르다. 사랑이 가교를 놓을 수는 있지만, 심연까지 제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곳에는 가교조차 없다.) 

 

  수렝이 상급자들과 동료들을 쫓아다니며 고백했지만 그들은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동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테레사 성녀가 하신 말씀의 참됨을 깨달았다. 즉, 네 말을 지나치게 조심스레 듣는 고해신부 수중에 떨어지는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은 없다.」 

  그들은 수렝이 하는 말을 아예 듣지도 않고 피했다. 그가 그들 소매를 움켜쥐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려고 몇 번이나 애를 썼다. 그런 일은 죄다 아주 단순하고 말할 수 없이 끔찍했다!  

 

  동료 수사들은 냉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제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이 사람은 미쳤어, 그것도 제 스스로 광기를 불러들였어. 그들이 그에게 단언했다. 우월감을 품고 튀려고 하니 신께서 당신을 벌하는 게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영적인 존재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회의 방법이 아니라 자신만의 엉뚱한 길을 따라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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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판단에 수렝이 불복했다. 

  「우리네 믿음에 기초하는 상식이 다른 삶의 개념에 맞서서 하도 강하게 굳어진 바람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저주받았다고 단언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은 그 생각을 광기의 표현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멜랑콜리건강 염려증 같은 어리석은 생각은 전혀 다른 부류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물병이나 추기경’이라거나 (진짜 추기경인 알퐁스 리슐리외가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부류다. 

 

  수렝이 주장하기를, 자신이 저주받았다고 믿는 것은 미친 증세가 아니라고 했다. 제 말이 맞음을 입증하기 위해 헨리 수소,[각주:3] 성 이냐시오, 블로시우스,[각주:4] 테레사 성녀, 십자가의 성 요한의 경우를 인용했다. 그들도 다 한 번씩은 저주받았다고 믿었지만, 그러고도 모두 정신 멀쩡하고 성스러운 행동으로 두드러졌소! 그러나 약삭빠르고 타산적인 동료들은 그런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마지못해!) 듣는다 해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로 인해 그가 가뜩이나 크나큰 비참함을 더 키우면서 절망의 길로 더 멀리 내몰렸다. 1645년 5월 17일 보르도 인근 생마케르의 작은 예수회 숙사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전날 밤 내내 그는 자살 유혹과 씨름하고 아침 시간 대부분을 성체 앞에서 기도로 보냈다. 

 

  「점심시간 얼마 전에 내 방으로 올라갔다. 들어서면서 보니 창문이 열려 있기에 다가가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다가 [건물은 돌출된 바위 위에 서 있고 아래에 강이 흘렀다.] 내 안에서 광적인 본능이 꿈틀거리는 바람에 놀라 방 한가운데로 뒷걸음질 쳤다. 눈길은 여전히 창문에 꽂혀 있었다. 그 다음에 의식을 잃고 갑자기 꿈속처럼 무슨 짓을 하는지 인식도 못한 채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몸뚱이가 추락하면서 튀어나온 바위에 부닥친 뒤 강기슭에 떨어졌다. 대퇴부가 부러졌지만 장기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기적을 믿는 성향이 강한 수렝이 이 비극을 거의 코믹한 추신으로 맺는다

 

 「때마침 위그노 한 사람이 말에 앉아 강으로 오던 참이었고, 나는 바로 그의 발 옆에 떨어졌다.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 중에 이 일을 두고 그가 나한테 농담을 퍼부었다. 강을 다 건넌 뒤 그가 다시 말안장에 올라타 초원으로 나섰는데, 완전한 평지에서 말이 갑자기 날뛰는 통에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 이랬다. 

  수도사께서 공중을 날아 보려 시도하셨다고 놀린 것을 두고 신께서 나를 벌하시는군요. 그러니 훨씬 더 낮은 곳에서 떨어졌으면서도 똑같은 상처를 입은 게지요

  한데, 내가 몸을 던진 창문은 워낙 높기 때문에 한 달 뒤 참새를 잡으려고 거기서 뛰어내린 고양이는 죽고 말았다. 다들 알다시피 그 녀석들은 가볍고 탄력 있어서 흔히 사뿐히 뛰어내리곤 하는데도 말이다.」 

 

  부러진 다리에 부목을 댔고 몇 달 뒤 다시 걷게 됐다. 비록 영원히 절름발이가 되긴 했지만. 그러나 마음은 육신처럼 그리 쉬이 치유되지 않는다. 절망의 유혹이 몇 해 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높은 곳들에 자꾸 눈길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칼이나 로프를 볼 때면 목을 베거나 목매달고 싶다는 욕망이 불같이 일곤 했다. 

 

  파괴 충동은 안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 바깥으로도 향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욕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크던 때가 더러 있었다. 건물이며 거기 거주자들, 지혜와 신앙의 보물들이 가득한 도서관, 채플, 성직복, 십자가상들 또 성체 자체도 다 잿더미로 변해야 해

  그런 악의는 악령만이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는 신을 욕되게 하는 자이니, 저주받은 영혼이요 악마의 화신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미움을 샀고 그 응답으로 하나님을 미워했다. 그에게 이런 부류의 사악함은 완전히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길 잃은 영혼임을 알고 있었을지라도, 저주받은 사람으로서 의무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악을 그의 일부는 거부했다. 자살과 방화 유혹이 상당히 컸지만 거기에 맞서 싸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주변 사람들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서 위험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자살 시도 이후 그에겐 수련수사가 붙어서 지켜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침대에 묶여 있게 됐다. 그 이후 삼년 동안 수렝은 우리네 조상들이 미치광이에게 체계적으로 적용했던 비인도적 행위를 겪어야 했다

 

  그런 종류의 일에서 쾌감을 맛보는 자들은 (그런 자들은 꽤 많다) 비정한 행위 자체를 즐기는데, 그럼에도 마음에 꺼리는 구석이 없을 수 없다. 이런 개운치 못한 느낌을 좀 누그러뜨려 볼까 해서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자들이나 사디스트들은 저희 오락을 합리화하려고 별의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인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짓이 규율이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행위로 합리화된다. 바로, “자식에게 매질을 아끼는 자는 제 자식을 미워함이라”[각주:5] 하는 말씀. 또 죄인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행위는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지상명령의 추론적 결과라는 모양새를 갖춘다. 또 종교적 이단이나 정치적 반대 진영에 대한 잔혹 행위는 ‘참된 믿음’을 위한 타격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다른 인종에 대한 잔혹 행위는 그럴듯한 학문적 논거로 정당화된다.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미치광이를 대하던 시대가 있었고, 그런 전통은 아직도 다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광인을 대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잔혹 행위가 과거에는 신학적 용어를 빌어 합리화됐을지언정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

 

  수렝을 포함해서 히스테리나 정신병 앓는 이들을 괴롭힌 자들은 두 가지 계기에서 그랬다

  첫째, 야만적인 상태를 즐겼기 때문.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그냥 좋은 것. 둘째, 그렇게 해야 병자를 도울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가 잘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건 또 왜냐하면, 당시 가설로 그런 질환은 미치광이들이 자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백하거나 은밀한 무슨 죄를 지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불경하고 타락한 자의 영혼에 악마가 들어가도록 허함으로써 징벌하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광인들은 하나님의 적대자요 근본악의 일시적 화신으로 간주됐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학대받아 마땅했다. 학대하는 쪽에서는, 하나님 뜻이 천상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도 이뤄졌다는 보람된 느낌과 좋은 도덕심을 가지고 그리 했다.  

 

  미치광이를 두드려 패고 굶기고 사슬로 묶어 햇볕도 안 드는 쪽방에 가두었다. 미치광이를 성직자가 찾아왔다면, 다 병자 자신의 잘못이며 하나님께서 화를 내신 것이라는 힐난이 빠지지 않았다. 

  일반 군중에게 미치광이는 버림받은 범죄자 같은 성격을 띠며 원숭이와 장터 야바위꾼 중간쯤 되는 무엇이었다. 주일과 공휴일마다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치광이 구경하러 갔다. 오늘날 동물원이나 서커스에 데리고 가듯이. 거기엔 오늘날 동물원처럼 ‘야수들에게 지분거리지 말 것’ 같은 금지도 없었다. 그 반대로, 미치광이는 하나님의 적대자로 간주된 만큼 그를 괴롭히는 행위는 그저 허용된 것이 아니라 의무이기도 했다

 

  (16-17세기 작가들과 극작가들이 가장 즐겨 취한 주제들 중 하나는 정신 멀쩡한 사람을 미쳤다고 공표하고 갖가지 모욕과 조롱을 안기는 것. 예를 들어, 말볼리오가 그렇고, 혹은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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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King Edward the Martyr (962-978) - 잉글랜드 색슨 왕조의 왕. 통치 3년 만에 살해돼. 살해자가 ‘반종교적’인 반대파요 에드워드는 신실한 기독교도였기에 신성한 순교자로 선포, 즉 1001년 성인으로 시성됐다. [본문으로]
  2. King Edward the Confessor (1003-1066) - 1042년부터 잉글랜드 왕. ‘순교자 에드워드 왕’의 이복 아우인 에설레드 왕의 아들. 유년기를 가족과 떨어져 노르망디에서 보내면서 깊은 신앙심을 지니고 성장. 별명이 ‘고백자’였다. [본문으로]
  3. Henry Suso, 독일어 Heinrich Seuse - 게르마니아의 도미니크회 탁발수사, 저명한 영성 저술가, 신비주의자. 1366년 졸. [본문으로]
  4. Blosius (1506-1566) - 플랑드르의 탁발수사, 신비주의 저술가. 등 라틴어로 쓴 책들이 거의 모든 유럽 언어로 번역됐다. [본문으로]
  5. “He that spareth the rod, hateth his son." "초달(楚撻)을 차마 못하는 자, 그 자식을 미워함이니라.” (잠언 13: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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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 수녀원 원장 잔느와 수녀들

 


 

4

 

하나님 섬김이라는 소명을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17세기 수녀원 생활이 죽도록 따분하게 보였을 터이다. 그날이 다 그날 같은 생활은 그저 자잘한 사건과 소문들, 가끔 들르는 방문객들과 담소, 혹은 여가에 시시한 손작업 등으로 그 단조로움이 조금 덜어졌을 뿐. 

수렝 신부가 여러 서신에서 짚을 엮어 만든 장식물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가 아는 많은 수녀들이 남는 시간 대부분을 이 작업으로 보냈다. 그들의 걸작은 역시 지푸라기로 만든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미니어처 지푸라기 마차. 그건 어떤 귀족 여성 후원자의 경대에 놓일 선물이었다. 

 

콜롱비에 신부가 방문동정회[각주:1] 수녀들에 관해 이렇게 적는다. 

이 수도회의 드높은 도덕적 지향과 개중에 고결한 수녀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담장 안에는 규율을 지키고 미사를 드리고 기도회에 다니고 고해성사를 보고 성찬례에 참여하지만, 그걸 다 그저 종이 울리고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수녀들의 행위에는 정성이 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네 작은 생각과 계획들로 바빠서 하나님 일에는 거의 무심하다. 

모든 따스한 감정은 수녀원 안팎에 있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쏟고 주님께는 그저 맥없고 진실성 없는 눈길만 돌리니, 그런 것은 그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든 영혼이 전능자에 대한 사랑으로 영원히 불타는 둥지가 되어야 할 공동체들이 평범하고 지루함 속에서 의미 없이 생활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녀원 모습

 

저 유명한 포르루아얄 수녀원[각주:2]장 라신[각주:3]에게 아주 감탄할 만한 공동체로 보인 까닭은 ‘그 객실들에는 적막이 지배하고, 수녀들이 대화에 끼어들려 안달하지 않고, 헛된 세상사에 관심 두지 않고, 심지어 이웃을 두고 뒷공론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포르루아얄의 이런 보기 드문 장점을 통해 우리는 그보다 못한 수녀원들의 결함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다. 

 

1626년 루덩으로 이전한 우르술라회[각주:4] 수녀원은 다른 여성 거처들보다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열일곱 수녀는 거의 젊은 귀족 영애들이었다. 그들이 수도생활에 들어선 까닭은 복음서 말씀을 따르고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계층의 구혼자들이 수락할 만한 지참금을 집안에서 마련할 여유가 못 됐기 때문이다. 여기 수녀들은 그 어떤 특별한 스캔들로도 경건함으로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켰지만 종교적 열성과 경건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루덩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 주민들은 절반이 신교도로서 수녀원에 아주 인색했고 수녀들한테도 돈이 없었다. 낡고 음울한 하우스 하나만 임차했는데, 그것도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다들 들어와 살기를 마다하는 건물이었다. 건물에 가구도 없어서 수녀들이 처음엔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들은 도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는 수업료로 생활할 요량이었지만 여학생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드 사질리, 데스쿠블로, 바르베지에, 라모테, 벨시엘, 댐피에르 같은 귀족 출신들이 제 손으로 갖은 잡일을 하게 됐고, 재계일인 금요일뿐 아니라 월, 화, 수, 목요일에도 식탁에 고기가 놓이지 못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던 끝에 그들을 구한 것은 속물근성이었다. 

 

루덩의 부르주아들이 알고 보니… 아주 적은 돈으로도 자기네 딸들이 좋은 프랑스어와 궁정 매너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한때 추방됐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재종누이와 수르디스 추기경의 더 가까운 인척과 후작의 작은딸과 푸아티에 주교의 질녀한테서 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수녀원에 기숙 학생들과 통학 학생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여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번영도 찾아왔다. 이제 지저분한 일은 하녀들이 맡고, 식탁에 쇠고기와 양고기가 다시 나오고, 마루에 깔렸던 짚 매트리스가 나무 침상으로 교체됐다. 

 

루덩 소도시 전경

 

이 새 공동체의 원장이 1627년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새 원장이 임명됐다. 그녀 이름은 ‘천사들의 수녀 잔느. 속세에서 이름은 잔느 벨시엘, 코제의 남작인 루이 벨시엘과, 또 남작 가문 못잖게 전통 있고 저명한 가문 출신인 샤를롯데 데실레의 딸이었다. 1602년생이니까 이제 이십대 중반.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쳐져서 몸매가 좀 기형이었다. 아마도 골결핵의 후유증이리라. 

잔느도 당대 대다수 귀족 영애들처럼 빈한한 교육을 받았다. 그 대신 그녀에겐 타고난 지능에다 한가락 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 성격 때문에 그녀가 다른 이들에겐 고통이 되고 제 자신에겐 최악의 적이 됐다. 

 

이 어린애 같은 사람은 기형적인 신체 때문에 볼품이 없었다. 자신이 추하다는 느낌과 혐오나 동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그녀에게 고질적인 분한을 일으켰다. 그 분한 때문에 누구를 좋아할 수도 없고 누구한테서 사랑받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다 보니 그들도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방어적인 갑각 속에 살며 자신의 적들을 공격할 때만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녀에게는 모든 사람이 선험적으로 적이었으며, 난데없는 빈정거림이나 이상하고 발작적으로 터뜨리는 조소가 공격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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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렝이 그녀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알고 보니, 원장수녀의 기질은 뭔가 특이하게 명랑해서 늘 날카로운 웃음과 조롱을 날리는데, 그런 고약함은 그녀 안에 들어앉은 악마 발람이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의 성격은 하나님 사업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진지함과 정반대이며, 뭔가 악의적인 기쁨이 그 영혼을 차지하여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필수적인 양심의 가책을 파괴했다

이 불길한 까불거림을 한 시간만 대해도 내가 여러 날 정성껏 쌓은 공력이 무너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나운 적에게서 그녀가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하려고 난 무던히 애썼다.」

‘하나님 사업’과 아주 잘 양립할 수 있는 웃음이 있다.
곧, 겸허하고 자기비판적인 웃음, 온후하고 너그러운 웃음, 이 세상의 비뚤어진 부조리에 대한 좌절과 분개를 대신하는 웃음. 

 

그러나 잔느의 웃음은 그런 것들과 전혀 달랐으니, 그저 조소 아니면 냉소뿐이었다. 그런 웃음을 늘 다른 이들한테만 퍼부었지 자신에게는 절대 돌리지 않았다. 곱사등이의 비웃음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다 깔보면서 자기 아래에 두려고 들었다. 또 그녀의 냉소란 잠깐일지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갈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대 기준에 엄숙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모든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요 조롱이었다

 

루덩 수녀원 원장수녀 잔느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숱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렇게 불쾌한 아이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부모는 딸을 인근 수녀원 원장으로 있는 늙은 숙모에게 보내고 말았다. 두세 해 만에 불명예스럽게 돌아왔다. 다른 수녀들이 그녀와 잘 지내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세월은 흐르는데 부친 저택에서 사는 게 어찌나 지겨운지 종교적 은둔처라도 차라리 집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그러자 푸아티에에 있는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들어가서 초심자 수련 기간을 보내고 수도서원을 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훌륭한 수녀가 못 됐다. 하지만 집안이 부유하고 영향력 있기 때문에 방자한 피후견인을 수녀원장이 꾹꾹 참으며 데리고 있게 됐다. 

그러다가 거의 하룻밤 새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수녀원이 루덩으로 이전한 뒤 잔느가 아주 경건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바뀐 것! 푸아티에에서는 말도 안 듣고 열의도 안 보이고 제 할 일에도 태만하던 젊은 여인이 이제 완벽하게 독실한 사람이 되어서 온유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처신했다. 그 놀라운 변화에 감명 받은 늙은 수녀원장이 퇴임하면서 잔느 자매를 강력한 후임자로 추천했다. 

 

그 개심 사연을 15년 뒤 잔느가 이렇게 기술한다. 

「난 늘 지도부 눈에 띄려 애썼고, 숙사에 수녀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수녀원장은 곧 공동체의 모든 일을 나한테 맡기게 됐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일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좋은 자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수녀원장에게 숱한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난 그녀 기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그녀는 곧 나를 모든 이들에게 모범으로 삼았다. 그녀는 내가 선하며 덕을 행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한껏 부풀려서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좋게 보이고 내 성향에 호감을 갖게끔 위선을 떨었다. 수녀원장은 나한테 많은 특전을 용인했으며, 그것을 난 마음껏 써먹었다. 그녀 자신이 선하고 덕이 있는데다 나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한다고 믿는 만큼 나를 훌륭한 수도사들과 대화하도록 자주 불렀다. 난 그녀 비위를 맞추려고 거기에 따랐다. 게다가 그건 시간 죽이기에도 좋았다.」 

 

훌륭한 수도사들과 나누는 대화는 숙사의 널따란 객실을 두 부분으로 가른 철창을 통해 벌어졌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영적 삶에 관해 새로 번역된 책들을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었다. 

어떤 날은 블로시우스[각주:5]의 해설서, 또 어떤 날은 테레사 성녀의 자서전 혹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혹은 천사들의 본성에 관한 델 리오의 저술 등이었다. 

 

그런 책들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수녀원장이며 수도사들과 토론하면서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바뀌는 것을 알았다. 객실에서 나누는 경건한 대화와 신비주의 서적 공부는 이제 더 이상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각별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됐다. 단, 그 목표가… 

그녀가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지혜로운 카르멜회 수사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그건 「영적 삶으로 돌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제 지능을 뽐내고, 모든 수녀원에 있는 다른 수녀들을 능가하려는 욕심에 지식을 채우기 위함일 뿐이었다.」 

 

루덩 수녀원 수녀들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곱사등이의 갈구가 또 다른 출구를 찾았다. 남들을 교묘하게 다루는 새롭고 재미난 분야 말이다. 빈정대고 냉소 터뜨리기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신비주의 신학과 영성 연구에 들인 결과, 그 분야에서 학식 갖춘 상담자요 전문가가 됐다. 

새로이 습득한 지식에 기고만장한 그녀가 이제 다른 자매들을 더욱 더 경멸과 연민이 출렁이는 느낌으로 내려다보며 흐뭇해했다. 

 

그래, 이 불쌍한 멍청이들이 신앙심은 깊어서 정결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고 있지. 그러나 정결이 도대체 뭐야! 무지와 둔감함일 뿐이잖아! 특별한 은혜에 대해 저들이 뭘 아나? 영적인 접촉을, 황홀함과 계시를, 감각의 유혹과 죽임을, 제까짓 것들이 알기나 하겠어?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 절로 만족스레 나왔다. 

흥, 저들은 아무 것도 몰라! 반면에, 난 사실상 모든 지혜를 터득했고, 하고 있잖아!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유난히 처지고 키가 난쟁이만한 그녀가 그렇게 우쭐댔다

 

(마담 보바리는 생을 비극적으로 마쳤다. 자신을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그렇다...  <루덩의 악마들> 4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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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Order of the Visita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 성모 마리아 방문 동정회. 1610년 살레의 성 프랑수아(1567-1622)와 성 쟌느 샹탈(1572-1641)이 설립. [본문으로]
  2. Port Royal -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 1204년 설립돼 17세기에는 얀센파의 거점. 유명한 학자며 계몽된 교육자들이 이 공동체 주변에서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 [본문으로]
  3. Jean Racine (1639-1699) - 고전주의 시대 프랑스 비극 작가, 문필가.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로 꼽힌다. 포르루아얄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피제니’, ‘페드르’. [본문으로]
  4. 우르술라회 - 로마가톨릭 여성 수도회. 성 안젤라 메디치가 1535년 11월 이탈리아 브레시아에 설립. 주로 소녀들 교육, 병자와 빈자 구휼 활동. 그들의 수호성인은 우르술라 성녀. [본문으로]
  5. Blosius - 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인 316년 아르메니아에서 처형된 순교자, 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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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주가이

    감사합니다

    2019.07.14 14:07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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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3-3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각주:1]는 문학예술의 완전한 걸작 축에 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이 얼마나 정밀하고, 문체는 얼마나 우아하며, 명쾌함은 또 얼마나 후련한가! 섬세한 풍자가 얼마나 많으며 세련된 논쟁거리를 얼마나 많이 제공하는가! 

  한데, 파스칼의 솜씨에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 보니까, 이 문필 대가가 예수회와 얀센파의 논쟁에서 옳지 않은 관점을 옹호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놓치기 쉽다.[각주:2]

 

  예수회가 결국 얀센파에 승리한 것도 물론 순수한 축복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파스칼이 지지하는 측이 이겼다면 결과는 더 나빴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운명 지워진 저주라는 얀센파 교리와 확고한 퓨리터니즘이라는 얀센파 윤리에 빠져서 교회는 통제 불능한 악과 강압의 도구가 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예수회가 우위를 점했다. 교회 도그마에서 얀센파가 주창하는 과도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성격은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인 상식이 좀 곁들이면서 완화됐다. 

 

  예수회가 승리한 결과 실제에서 엄격주의는 더 관대한 사고방식으로 대체됐다. 이 더 너그러운 태도는 결의론으로 정당화됐으며, 결의론의 목표는 죽어 마땅해 보이는 죄인 중 많은 이들이 실제로는 용서받을 만하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애쓰는 것.[각주:3] 또 이 결의론은 개연설의 관점에서 합리화됐는데, 이로써 여하한 의혹도 죄인한테 이롭게 해석하기 위해 많은 권위적 견해가 동원됐다. 엄격하고 지나치게 일관된 파스칼에게는 개연설이 아주 부당하게 보였다. 

  우리가 보기에 개연설과 그것이 정당화한 결의론은 한 가지 커다란 장점을 지닌다. 즉, 영원한 저주라는 끔찍한 교리에 종지부를 찍은 것. 즉결심판 판사 마음 하나 움직이지 못할 궤변으로써 사람이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지옥이란 썩 진지한 것일 수 없다. 예수회 결의론자들과 모럴리스트들의 의도는… 가장 속물적이고 죄 많은 남녀들도 관대하게 교회 품에서 지킴으로써 전체로는 교회를, 부분으로는 교파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그들은 웬만큼 달성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내부에서 상당한 분열을 일으켰으며, 정통 기독교의 주된 교리들 중 하나인, 한순간 죄에 대한 무한한 징벌이라는 교리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1650년도 이후 이신론과 ‘자유사상’, 무신론이 급속히 커졌는데, 그 원인들 중에는 예수회의 결의론과 개연설, 또 그 예수회 학자들과 수사들을 파스칼이 대가다운 솜씨를 발휘해 풍자적으로 묘사한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었다

 

  우리의 이상한 드라마에서 직간접적으로 어떤 역할을 한 예수회원들은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성직자들과 전혀 달랐다. 그들은 정치와 무관했고 ‘이 세상’이며 거기 사는 생물들과 거의 접촉이 없었다. 그들의 금욕생활은 이성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었으며, 저희 친구며 신봉자들한테도 그런 금욕을 설교했고, 설교를 듣는 그들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 관상[각주:4]에 헌신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예수회 신비주의 유파의 신봉자이며, 개중에 가장 저명한 대표자는 테레사 성녀의 스승인 알바레즈 수사[각주:5]였다. 알바레즈는 이냐시오 로욜라가 설교 활동을 촉구했음에도 종교적 관상을 행하며 가르친다고 예수회 장군 한 사람한테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그에게 쏠린 비난을 거둬들이면서 관상기도에 관해 예수회 공식 정책을 규정했다. 

 

  「고도의 관상에 너무 이르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사람들은 비난받을 만하다. 하지만 관상을 경시하고 우리 구성원들에게 금지함으로써 수사들의 꾸준한 체험마저 반박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진실하고 심오한 관상은… 자만심을 억누르고 미온적인 사람들이 상사의 명령을 수행하여 영혼 구제에 적극 나서도록 환기시키는 데 다른 모든 기도 방법보다 더 큰 힘과 효험을 지닌다는 것이 많은 성직자들의 체험과 권위로써 잘 입증됐으니까.」 

 

  17세기 전반 내내 예수회가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적극적 활동에 중점을 두었지만, 신비주의 성향에 크게 기운 수사들은 관상에 헌신하도록 허용되고 때론 장려되기도 했다. 나중에 미구엘 몰리노스[각주:6]가 단죄 받고 정적주의[각주:7]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벌어진 뒤, 예수회원들 대다수는 관상에 상당히 의심쩍게 대했다. 

  저서 <프랑스에서 종교 감정의 문학적 역사>의 마지막 두 권에서 앙리 브레몽[각주:8]은 수도회 내부 대다수 ‘금욕주의자들’과 소수의 낙담한 관상 지지자들 간의 충돌을 생생하게 극화한다. 

  한데, 랄망과 그 제자들의 히스토리를 연구한 예수회 학자 포티에는 브레몽의 논제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를 보면, 관상은 예수회에서 공식적으로 비난받은 적이 전혀 없으며 관상을 수행하는 개개인들은 정적주의가 혹독하게 탄압받는 시기에도 예수회 내부에서 계속 활약했다는 것. 

 

  하지만 1630년대는 정적주의가 등장하기까지 아직 반세기나 남아 있었고 관상을 둘러싼 격론이 아직은 이단이라는 비난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예수회 장군 비텔레스키를 수반으로 하는 예수회 상층부는 이 문제를 순전히 실용적 측면에서 보았다. 수사들 훈련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이 더 좋은가, 관상? 아니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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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의 위대한 관상 수행자인 루이 랄망[각주:9] 수사는 1628년부터 건강 때문에 1632년 은퇴할 때까지 루앙 칼리지 교관 직을 맡았다. 1629년 가을 장 조셉 수렝이 루앙으로 파견돼 ‘2차 수련’을 위해 온 다른 젊은 성직자 십여 명과 함께 1630년 늦봄까지 거기 남았다. 이 기억할 만한 학기 내내 수렝은 매일 교관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냐시오 로욜라의 규칙에 걸맞게 기도와 재계를 통해 기독교적 완성의 삶을 준비했다. 

 

 

  랄망의 가르침을 수렝이 간결하게 골자만 기록하고 그의 학우인 리골렉 수사가 더 상세하게 기술했는데, 나중에 다른 예수회원인 샹피옹 수사가 다듬어서 <루이 랄망 수사의 영적 교리>라는 제목으로 17세기 말엽에 발간했다. 

 

 

  랄망의 교리에 기본적으로 참신한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런 게 어디서 나올 수 있었겠나?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상향적 자기초월을 열망하는 모든 사람의 최고 과제인, 하나님을 직관적으로 알기였다. 

  그 목표에 이르는 수단들도 엄격히 정통파적인 것이었으니… 영성체를 자주 하기, 예수회 순종 서약을 꼼꼼하게 지키기, ‘미개인[각주:10]’의 육욕 죽이기, 성찰과 꾸준한 ‘마음 지키기’, 날마다 그리스도 수난을 명상하기, 그리고 그것이 준비된 사람들에겐 ‘단순한 응시’의 소극적 기도, 즉 관상의 은혜가 주입된다는 희망으로 하느님을 긴장하여 기다리기 등이었다. 

 

  주제들도 아주 오래 된 것이었다. 그러나 랄망이 그것들을 먼저 체험하고 나서 표현한 방식은 개인적이며 독창적이었다. 스승과 제자들이 공식화한 교리는 특별한 성격과 격조와 특이한 향내를 담고 있다.      

  랄망의 가르침에서는 마음의 정화와 성령이 이끄는 대로 온유하게 따르기가 특히 강조됐다. 달리 말해… 선행과 기도를 통해 성자와 합일되며, 긴장되고 소극적인 관상에서 성령과 합일돼야만, 성부와의 의식적인 합일도 바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마음의 정화는… 집중적인 기도와 잦은 영성체로써, 또 늘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음욕과 자만과 자기애에 대한 충동을 철저하게 응징함으로써 달성된다. 

  경건한 느낌과 이미지화, 또 그것들이 깨달음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저 뒤편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육욕 억제와 자신 안에서 근절해야 하는 ‘미개인’이 우리 주제이다. 

 

  ‘당신 왕국이 임(臨)하게’ 되면, 그 결과 필히 ‘우리 왕국은 거(去)하게’ 된다. 여기에는 누구나 동의했다. 그러나 인간의 왕국을 어떻게 몰아내야 하는지, 이 방법에 관해서는 성직자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가 없었다. 그 왕국을, 무력으로 내쳐야 하나? 아니면, 설득하여?

  랄망은 엄격주의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타락한 인간 본성은 사악하다고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는 진정한 예수회 수사로서, 죄인들과 불경한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그러나 그의 신학적 사고 풍조는 대단히 음울하여 자신한테도 또 자기완성을 열망하는 모든 이들한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없으니, 바로 육욕을 죽이기 위한 극단의 고행. 

  샹피옹이 랄망 수사의 간략한 전기에서 이렇게 쓴다. 

  「육체적 고행이 그의 체력을 압도한 게 확실하며, 아주 가까운 친구들 생각으로는, 고행 과정이 그의 수명을 상당히 단축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랄망과 같은 시대 사람이요 가톨릭에서 영국성공회로 개종하고 시인에서 설교자며 신학자가 된 존 던이 자기징벌 문제를 두고 쓴 글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3-3편 2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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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얀센주의를 옹호하면서 이단적이라 규탄 받는 친구 앙투안 아르노를 옹호하기 위해 쓴 18편의 서신. 파스칼이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들어가던 즈음과 거의 같은 시기에 쓰기 시작. 1편은 1656년 1월 23일 자. 루이 몽탈트라는 가명으로 쓴 이 서신들에서 파스칼은 신학자들의 궤변을 해학적으로 공격하고 예수회의 느슨해진 도덕률을 비판. 종교적 영향은 차치하고, 뛰어난 위트와 유머와 풍자로 인해 대중에게 널리 읽혔다. 프랑스 산문에서 새로운 문체의 효시로 평가되며 나중에 볼테르와 루소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편지>는 정치와 신학의 수준에서는 실패지만 도덕적 수준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도덕성과 영성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 루이 14세는 1660년 이 책을 소각하라고 명령. 1657년에 쓴 마지막 서신에서는 알렉산더 7세 로마교황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황은 서신들을 공공연히 반대하면서도 파스칼의 논거에 설득됐고, 불과 몇 해 뒤 교회의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고 궤변적인 교회 문건들을 수정하라고 명했다. [본문으로]</편지>
  2. 얀센주의 - 벨기에 신학자 얀센(1585-1638)이 창시한 교리.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과 은총설을 수용해 은총과 자유의지, 예정 구원설에 대해 엄격한 견해를 주장함으로써 17-18세기 프랑스 교회에서 큰 논쟁을 일으켰다. 즉, 타락한 인간은 죄와 정욕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 은총을 통해 선택된 사람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 예수회를 세속주의와 야합해 타락한 집단이라 비난했고 여러 교황들로부터 단죄를 받았지만, 프랑스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파급되면서 엄격한 신앙생활을 필요로 하는 신자들에게 오랜 기간 특히 도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3. 決疑論 (casuistry) - 보편적 규범을 정확히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에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중세 스콜라철학의 윤리 이론. 기독교에서는,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 평가 문제와 의무 규정이 모호한 때 행동 지침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문제로 대두됐다. 예수회 일각에서 결의론을 지나치게 세밀하게 구분하는 경향을 띠면서 반대자들로부터 궤변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본문으로]
  4. 觀想 - 기독교 신비주의, 신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기도 행위. Christian contemplation. [본문으로]
  5. Balthasar Alvarez (1533-1580) -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귀족 출신, 이미 18세에 범상치 않은 기도와 신앙심으로 주목받다. 처음엔 카르토지오 수도회에 기울다가 예수회에 입문. 25세에 성직자가 되고, 젊은 나이에도 테레사 성녀의 영적 지도를 맡게 됐다. [본문으로]
  6. Miguel de Molinos (1628-1696) - 에스파냐 성직자, 가톨릭 신비주의자, 17세기 후반 로마에서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 ‘수동적이고 행동하지 않는’ 믿음을 옹호하는 정적주의 창시.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는 1687년 몰리노스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 [본문으로]
  7. 靜寂主義 (Quietism) - 기독교 영성에 대한 교리. 영혼의 소극적(정적) 상태에서, 즉 인간의 노력을 억제하여 신의 활동이 온전히 펼쳐질 수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적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 행동하려 하는 것은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하느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본문으로]
  8. H. Bremond (1865-1933) -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역사가, 종교 저술가, 수도원장. 유명한 에세이 <순수 시론>(1925). [본문으로]</순수>
  9. Louis Lallemant (1588-1635) - 프랑스의 예수회 수사, '프랑스의 알바레즈'라 불렸다. 그의 금언과 가르침의 모음집인 이 오늘날에도 많이 읽힌다. [본문으로]
  10. natural man - 하늘의 계시에 의해 정신적으로 갱생되지 못하여 동물처럼 행동하는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2: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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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 책 표지

 


 

3편

 

3-1

 

  우르뱅 그랑디에가 승리와 패배와 또 위태로운 승리를 반복하면서 끝없이 싸움을 벌이는 동안 그보다 더 젊은 동시대인도 나름대로 투쟁을 벌였는데, 그건 비교할 수 없이 더 높은 상을 얻기 위한 싸움이었다. 

  보르도 칼리지에서 공부하면서 장 조셉 수렝[각주:1]은 신학생이나 예수회 수련수사들 가운데서 용모 준수한 젊은 성직자를 자주 보고, 그의 근면과 재능을 예로 드는 교사들의 말을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1617년 그랑디에가 보르도를 떠난 뒤 수렝은 그를 더 이상 못 봤다. 1634년 늦가을 그가 루덩에 왔을 때 주임신부는 이미 죽고 그의 유해는 사방으로 흩뿌려진 뒤였다.

 

  나이가 엇비슷한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서 같은 선생들 밑에서 같은 인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했다. 한 사람은 세속의 신부요 다른 사람은 예수회 수도사로 둘 다 성직자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도록 운명 지워졌다

  그랑디에는 평범하고 감각적인 사람이었다. 단지, 관능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두드러졌을 뿐. 그의 삶의 기록이 충분히 증명하듯이 그의 세상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자주 등장하는 의미의 세상이었다. 

  “불행하구나, 유혹이 가득한 이 세상!” 

  “이제 이 세상에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승의 자만이며, 다 아버지한테서 나온 것이 아니요 세상에서 온 것이라. 이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할지니.”[각주:2]

 

  ‘이 세상’이란... 인간의 경험으로 각각의 자아에 나타나고 자아로써 형성되는 것. 그것은 자아의 지시에 따르는, 물질적이고 불충분한 삶. 그것은 우리네 음욕과 공포가 하도 크기에 자연스러움을 상실한 세계. 그것은 영원성에서 분리된 유한. 자체의 비이원적인 근간에서 고립된 상태의 다양함. 불행의 연속 같은 시간 흐름. 그것은 현실이라 불리는, 무수히 많은 아름답고 신비한 개개의 것들을 대신하는 언어적 범주의 체계. 그것은 페티시즘이 되어 버린 거짓 이데아. 그것은 우리네 실용적 어휘와 동일시된 우주. ‘이 세상’ 맞은편 위에 ‘다른 세상’이 있고, 거기 하나님 왕국이 숨어 있다. 

 

  수렝은 자의식적인 삶을 시작한 이래 바로 이 왕국으로 늘 끌렸다. 그의 가족은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데다 신앙이 독실했다. 이 신앙은 실용성과 자기희생 정신을 띠었다. 그의 부친은 임종 전에 상당한 재산을 예수회에 희사했고, 모친은 남편 보낸 뒤 카르멜회 수녀가 됨으로써 자신의 숙원을 이루었다. 부모가 사내애를 체계적이고 양심적으로 엄하게 키울 수밖에 없었다. 

 

장 조셉 수렝 수도사

 

  오십 년 지나 유년기를 돌아보면서 수렝은 아주 짧은 시기 하나만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여덟 살 때 지역에 역병이 창궐했다. 소년을 안전한 시골집으로 보냈다. 때는 여름이고 시골은 그림 같이 아름다우며, 여자 가정교사는 소년한테 공부라는 멍에를 지우지 말고 삶을 마음껏 누리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친척들이 별의별 놀라운 선물을 싸 들고 아이를 찾아오곤 했다.

  「난 날마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놀았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안쓰러운 의미를 담고 있는 문구인가!) 그 격리 기간이 끝난 뒤 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힘겨운 시기가 시작됐다. 하나님을 공부한다는 게 어찌나 힘들었는지 불과 네댓 해 전에야 평생 처음으로 안도감을 맛봤다. 그 이전에는 고통이 계속 커지기만 하여 때로는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한계까지 이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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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조셉이 예수회 수사들의 생도가 됐다. 그들이 그에게 그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쳤고, 그래서 무대를 선택할 시간이 됐을 때 젊은이는 주저 없이 예수회 일원이 됐다. 하지만 다른 원천에서 그는 라틴어보다 더 좋은 뭔가를, 스콜라신학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배웠다. 

 

  수렝이 칼리지에서 공부한 청소년기 다섯 해 동안 보르도 지역 카르멜회 수녀원 원장은 ‘천사들의 수녀 이사벨’이라 불린 에스파냐 수녀였다. 이사벨 수녀는 테레사 성녀[각주:3]의 동료이자 제자였는데, 중년에 들어 다른 수녀 몇 명과 함께 프랑스로 파견돼 테레사 성녀의 가르침과 영성과 신비주의 교리를 전파하고 있었다. 참된 마음으로 듣고자 갈망한 모든 경건한 영혼에게 이사벨 수녀는 이 알아듣기 힘든 가르침을 언제든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찾아와 열심히 듣는 이들 가운데 좀 왜소한 편인 열두 살 남학생이 있었다. 소년은 장 조셉, 그건 그가 자유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편. 

  하나님의 사랑을, 그분과 합일되는 기쁨을, 온유와 겸양, 가슴의 정화, 분주하고 어지러운 마음 비우기 등을 유창하지 못한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목소리를 소년은 널따란 객실 창살 너머에서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듣곤 했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면서 소년은 ‘이 세상’이며 육체와, 지상의 주권자들이며 지상의 권세와 싸우겠다는 단호한 결의로 마음이 꽉 차는 것을 느꼈다. 싸워서 이겨야 비로소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자격이 생길 터. 장 조셉이 주저하지 않고 영적 투쟁의 길을 택했다.

 

  열세 살을 갓 넘겼을 때 하나님 은혜의 신호요 다가올 승리의 전조인 듯싶은 것이 소년에게 시현됐다. 어느 날 카르멜회 교회에서 기도하는 중에 초자연적인 빛을 보게 됐다. 그건 하나님의 본질을 밝히는 동시에 모든 거룩한 특성을 명시하는 듯한 빛이었다. 

  그 계시며 그 체험에 수반된 환희의 기억이 죽는 날까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신비한 느낌이, 그랑디에나 부샤르와 똑같은 사회적, 교육적 환경에 처한 그를 다른 이들과 달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승의 자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물론, 그런 정욕과 자만을 그가 전혀 몰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그런 유혹을 지독하게 감지했다. 

 

  수렝은 몸이 허약하고 신경이 예민하면서 관능적 충동이 특히 강한 유형에 속했다. 게다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나이가 들어서는 그 재능에 자신을 다 바치면서 신앙보다는 미학 문제를 다루는 직업 문인이 되려는 유혹도 자연스레 겪었다. 

  가장 존경받을 만한 ‘안목의 정욕’에 굴복하고 싶다는 마음은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는 야심과 명성 애호 때문에 더 커졌다. 그는 명성이라는 맛을 음미하고 비평가들의 칭송과 열광하는 독자들의 갈채를 거부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즐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저급한 정신이 육적 삶의 유혹에 약하듯이 고급한 정신은 지적 삶의 유혹에 약하다. 장 조셉의 경우 수치스러운 유혹 못지않게 명예로운 유혹도 아주 강했다. 창작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경험으로 알았다. 단지 열세 살 때 접한 그 찬란한 광채를 기억하는 덕분에 헛된 명성이라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수렝은 동정남으로 죽었으며 작품 대부분을 제 손으로 소각했다. 또 명성으로 말하자면, 이름을 날리지 않은 상태로 그친 게 아니라 (우리가 보게 되듯이) 외려 나쁜 평판을 남기는 것에 만족했다. 저 뒤에 가서 묘사되는, 상상도 못할 고난과 시련에 맞서면서 그는 영웅적인 근기를 발휘하며 기독교적 완성을 향해 고통스럽게 나아갔다. 

 

  하지만 그 이상한 고행 스토리를 살펴보기 전에 그런 불가사의한 편력에 나서는 선남선녀들은 어떤 동기를 지니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다른 얘기를 해야겠다. 

(3-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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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Jean-Joseph Surin (1600-1665) - 프랑스의 예수회 신비주의자, 설교가, 종교 저술가, 엑소시스트. 8세에 순결서원, 10세에 카르멜회에서 명상을 배우고, 16세에 수련수사. 20대에 파리 클레르몽 칼리지에서 공부. 성직자로서 준엄한 자기부정을 실행, 사회 접촉을 거의 다 끊었다. 1634년 9월 루덩에 파견돼 잔느의 엑소시스트로 활동하면서 악령에 들씌우게 됐다. 20년 넘도록 환각과 망상, 발작, 신체 마비, 언어 능력 상실 등에 시달렸다. 그런 와중에도 간간이 힘찬 음성과 달변으로 강론을 펼쳐 주치의가 기적 같다고 했다. 죽기 8년 전에 악령을 떨쳤다. 영성에 관해 뛰어난 저술을 몇몇 남겼다. [본문으로]
  2. 마태복음 18:7, 요한복음 12:31, 요한일서 2:15-17. [본문으로]
  3. St. Teresa of Ávila (1515-1582) -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로마가톨릭 성인, 교회박사, 카르멜회 수녀, 반종교개혁에 관한 여러 글의 저자, 정신 기도를 통한 관상 생활 신학자. 카르멜회 개혁가,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맨발의 카르멜회’ 창설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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