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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5.12 (49) 호칭과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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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호칭과 지칭  

 

‘어떻게’를 아는 사람은 늘 일자리를 얻을 것이고, 

‘왜’를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의 보스가 될 것이다. 

 

- 다이앤 라비치 (1938- , 미국의 교육사가, 저술가)

다이앤 라비치

 

이제 우리는 한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어떤 방향을 잡아야 할 때가 됐습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을 만큼 중차대하고 화급한 문제입니다. 

이것 때문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한국인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이로 인해 사람들 간에 크고 작은 충돌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이것 때문에상생활에서든 직장에서든 도처에서 소통 경색이 빚어지며,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며 시간과 에너지를 무의미하게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런 손실을 돈으로 따지면 해마다 수천억 원에 이른다는 추정까지 나옵니다.

 

바로 호칭과 지칭의 문제입니다. 

 

- 아, 그거? 그거라면 백 번 동의해! 그것 때문에 난감할 때가 참 많잖아. 음식점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저기요!”, “여기요!” 하다 보면 전달도 잘 안 되고, 몇 번씩이나 소리치는 내가 무슨 바보처럼 보이기까지 하거든. “언니!”, “이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건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처음 만난 사람을 어떻게 칭하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혼자 속으로 얼마나 고민하나! 이거, 스트레스 엄청나게 받아. 사람을 새로 접하는 게 겁난다 싶을 정도야. 그리고 아무개가 어떤 회사의 부장이라고 쳐, 근데 그 회사와 상관없는 내가 왜 그 사람을 “부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지? 

 

- 그 정도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야. 한데, 무슨 직책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칭해야 하나? “아무개 씨” 하고 부르면 저쪽에서 싫어하는 것 같고… 그렇다면 우리는 다 무슨 조직의 타이틀을 하나씩 달고 다녀야 하는 거야? 조직원이 아닌 사람은 살기 힘들어야 해?

 

- 헤헤, 한국사람 치고 타이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들 ‘사장님’이고 ‘대표님’, ‘선생님’, ‘사모님’, ‘여사님’인 바에야… 한데 그게 실제와 영 동 떨어진다는 데 문제가 있지. 구멍가게 주인도 자신을 CEO라고 부르는 세상이잖아? 근데 그게 온당한 거야?

 

명칭 인플레 때문에 우리 사회가 겪는 혼란은 또 어떻고? 그냥 기술학교 하면 될 것을 무슨 폴리테크닉대학 어쩌고 해서 이름만 뻔지르르하게 바꾸잖아? 그 단적인 폐해가 바로 저축은행 사태 아니겠어? “저축은행이 아니라 본래대로 신용금고라고 불렀으면, 그렇게 믿고 돈을 다 넣지 않았을 거예요!” 하고 절규하는 예금자들을 봐. 

 

도대체 우리말의 호칭과 지칭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거야? 말에 문제가 있는 거야, 아니면 우리네 문화와 사고방식에,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문제가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런 경험담과 생각을 한번 들어보지요.

「나부터도 나이에 따른 위계와 호칭에 민감하다는 것을 어떤 회의에서 깨달은 적이 있다. 
나이 두세 살 적은 어떤 학자가 나를 “권 선생!” 하고 불렀을 때 기분이 묘하고 마음이 좀 불편했다. ‘선생’은 상황에 따라 높임말이지만 일상적으로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쓰는 호칭이 아닌가. 

인권 운동을 하는 분들과 접하면서 곧바로 호칭 문제가 대두됐다. 서로 ‘아무개 선생’, ‘아무개 선생님’ 하다가 왜 누구는 ‘선생’이고 누구는 ‘선생님’이냐 싶어 합의를 보았다. 그 뒤 우리는 서로를 “김 상(さん)!”, “권 상!” 하고 부르기로 했다. 
일본말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부담 없는 호칭이 됐다.

문화적 위계질서가 호칭 문제를 유발하는 것인지, 한국어가 가진 특징 때문에 호칭 문제가 위계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한국 사회에서 호칭과 존대 문제는 참으로 어렵다. 
이런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문화운동 같은 것은 안 생기나?」

 

이 글은 <미묘한 호칭 갈등>이라는 제목으로 대전대학의 권혁범 교수가 쓴 칼럼의 일부입니다. 우리말 호칭 문제로 얼마나 고심이 심했기에 일본식 호칭 さん까지 쓰면서야 비로소 서로 부담을 털게 됐을까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이제 <영어의 인칭대명사 you와 한국어의 존댓말>에 관한 생각을 들어볼까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 한국계 미국인 코니 강의 얘기입니다.

「한국어를 배우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말할 때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나이와 교육 수준, 직업, 사회적 위치 등을 파악해서 거기에 적당한 어휘를 골라야 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 따위가 높아 보이면 ‘존댓말’, 그렇지 않으면 ‘반말’을 쓴다. 

영어의 you는 그 모든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you를 쓰면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과도 편하게 대화를 즐길 수 있다. 이는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 나이 많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 한국 젊은이들은 항상 긴장해야 한다. 그저 듣기만 해야 할 때도 더러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는 변호사 서통 씨는 이렇게 말한다. 
“you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표현하는 단어라 해도 무방해요. you는 우리를 한국의 카스트제도에서 벗어나게 해주지요. 삶이 훨씬 편해집니다.” 
한국에서 자라 미국으로 이민 온 여성은 you라는 단어를 쓰면서부터 인생이 달라졌다고 한다. 한국에서 살 때는 숨어 있기 좋아했던 수줍은 여성이 you를 사용하게 되면서 자기주장도 쉽게 드러낼 수 있게 됐다. 
“영어로 얘기하면, 상대가 회사 사장이라 해도 ‘네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말할 수 있어요.”」

 

아, 참으로 부럽네! 사는 게 훨씬 편해진다잖아!! 정말 그럴 것 같아. 근데 우리는 왜 그렇게 안 해? 못하는 거야?! 나도 사람들과 좀 편하게 대화하고 싶어. 상대가 누구든 말이야! 나이나 사회적 위치 따위에 개의치 않고! 눈치 보지 않고!!

 

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걸 꿈꿀 걸요. 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네요. 소위 각 분야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말 호칭과 지칭의 구조나 쓰임새에서 불편함을 별로 못 느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지금 우리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편하고 좋은 길이 무엇인지를 모색하자는 것, 아니겠어요? 

 

호칭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시각을 하나 소개하지요. 

그 당사자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그런 정보를 접하지 않고서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관점이 아닌가 싶어요. 카를로스 올리베라스, 푸에르토리코 혈통의 미국인, 한국의 한 고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는 그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한국어가 서툴렀던 시기에 학생들이 나를 “쌤”이라고 부를 때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샘(Sam)은 내 친구 이름이고 내 이름은 카를로스인데, 왜 나를 샘이라고 부르지?’ 몹시 의아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그렇게 부른다는 걸 알았을 때 일종의 문화 충격을 느꼈다. 

미국에서 교사는 직업을 뜻하는 ‘명칭’이지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다. 선생이라는 명칭이 사람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 게다가 정규 학교는 물론 사설 학원에서 가르치는 강사에게도 같은 호칭을 사용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어떻습니까? 카를로스 상의 고백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어쩌면 우리 한국인들은 사장님, 대표님, 선생님, 선배님, 장군님, 의원님, 사모님 따위 명칭(지칭어) 뒤에 숨어서 본연의 얼굴은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 

세상 만물에는 거의 다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이 사물에는 명칭이 되고 사람에게는 호칭이 되니,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요? 

 

- 그러면, 예를 들어, 김철수 교사를 “선생님!”대신 “철수!” 하고 부르자는 말이야? 하기야 미국 드라마를 보니까 그렇긴 하더군. 동생이 형 이름 부르는 건 물론이고, 자식이 제 부모도 이름으로 부르더군. 그건 후레자식들이나 할 짓이야! 근본 없는 것들이나 그렇게 하지, 원…

 

으음…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고정하소서. 

저도 그런 생각에 동의합니다. 한국인이니까요. 코리언의 유전 인자가 어디 가겠습니까? 

하지만… 저 카를로스 상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 않나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네 호칭과 지칭 문제로 우리가, 사회 전체가 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어떤 식으로든! 

정말이지 ‘악마한테 영혼을 잡혀서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앞에서 권혁범 상은 “문화적 위계질서가 호칭 문제를 유발하는 것인지, 한국어가 가진 특징 때문에 호칭 문제가 위계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합니다. 

그만큼 간단치 않다는 뜻이겠지요. 

말은 생각의 도구이고 생각과 감정의 표현 수단라고 하지 않습니까? 

호칭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면, 적어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우리네 생각과 의식이 그만큼 어지럽고 복잡하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위계질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위계질서를 지키는 것이지, 위계질서가 사람을 억눌러서야 되겠습니까?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 시대가 있었고, 이제는 경제 민주화라는 구호도 나오는데, 우리 의식의 민주화는 필요치 않을까요? 

2인칭 대명사로만 보더라도, 영어에서는 you하나로 족합니다. 

독일어에서는  Sie와 du, 불어에서는 vous와 tu, 이탈리아어 Lei와 tu, 러시아어에서는 Вы와 Ты… 같이 이분 체계로 충분합니다. 

당신, 그대, 자네, 너… 이렇게까지 나누어 쓸 필요가 있을까요? 

게다가 그런 인칭대명사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언어에 우리 자신을 얽매는 족쇄 같은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이것이 족쇄보다는 미풍양속이나 연장자 존중의 미덕으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수평적 인간관계를 저해하는 요소의 하나로 작용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폭넓고 자유로운 사회 활동을 가로막는 요소가 됐다. 

만일 우리가 호칭과 지칭에 과민하지 않고 직접 이름을 부르고 상대를 너, 당신 같은 이인칭 대명사로 충분히 부를 수 있다면, 우리 인간관계는 사뭇 달라질 것이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다. 인간관계가 중시되는 전통적 호칭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언어는 사회적 반영이기도 하다. 사회적 관계 변화에 따라 호칭과 지칭을 단순화해서 경제성을 추구하는 것이 추세 아닐까.
앞으로 우리말에서 2인칭의 낮춤말로는 ‘너’를, 높임말로는 ‘당신’을 쓰는 쪽으로 정리되기를 기대해 본다.」

국어문화 운동가 남영신 선생의 조심스러운(!) 제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끼리 우리말로 얘기 나누면서 상대를 you로 칭하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그건 코니 강이 말하는 이유 때문이겠지요. 복잡한 우리말 호칭에 얽매여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는 자구책일 거예요. 남영신 상의 말대로, 우리도 이제는 호칭과 지칭을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러시아어의 경우, 2인칭 대명사 때문에 마찰을 빚는 경우는 보기 드뭅니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Ты(뜨이, 너)를 쓰고, 아랫사람은 Вы(브이, 당신)으로 칭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교양 있는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도 Вы를 씁니다. 만약 지인들 간에 서로 Вы로 칭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누군가가 제의하지요. 

“아, 이 Вы(당신)는 너무 공식적이고 지나치게 격을 차려서 인간미가 없어요.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거리를 두고 지낼 수야 없잖아요? 어때요, 앞으로는 서로 Ты(너)로 칭하는 것이?” 

그리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이른바 ‘너나들이’를 합니다. 

그렇게 하자고 서로 뜻을 모으고 합의한 겁니다.

그래요, 우리네 호칭도 중론을 모아서 약속하면 됩니다. 사회적 합의를 보면 됩니다.
국력을 낭비하지 않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약 ‘아무개 씨’라는 표현이 어떤 국어사전에서 이르듯이 ‘성이나 이름 뒤에 붙여 그 사람을 대접하여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인데, 보통 아랫사람에게 쓴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나이와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쓰는’ 것으로 사회가 정하고 사용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를테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은…’ 같이 우스꽝스럽고 비효율적인 표현보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는…, 전 씨는…’ 같은 식으로 쓰고 말하면 훨씬 더 편하고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런 식의 용법이 우리 정서와 잘 안 맞고 우리 인식을 바꾸기가 정 어렵다면, 그렇다면, 일본어 상(さん) 같은 호칭을 수입해 쓰는 수밖에 없겠지요. 2인칭 대명사를 합의하기가 정 어렵다면, 그렇다면, you 같은 것을 들여와 쓰는 수밖에 없겠지요. 필요하고 좋은 것이면 다 들여오는 판에, 우리의 고통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물건을 왜 못 들여오겠어요? (노파심에서 토를 달자면, 이건 역설적 표현입니다.)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음으로써 사회가 더 안정되고, 국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남으로써 국력이 더 강해지는데 말입니다! “이런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문화 운동 같은 것”을 이제부터라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 당신 생각을 정리하여 스피치를 준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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