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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일러스트레이션

 


 

  몇 번이나 해가 바뀌면서 고통의 양상도 이모저모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결코 가시지 않았다. 그는 그걸 이지적으로 알았다.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하중으로, 신의 심판의 무게로 느꼈다. 그 압박을 견딜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건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느낌은 자꾸만 나타나는 환영들 때문에 더욱 굳어졌다. 그 환영들이 어찌나 생생하고 진짜 같은지, 정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그 자신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거개가 그리스도의 환영이었다. 

  그러나 구세주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의 그리스도였다. 가르치는 그리스도나 수난 겪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최후 심판일의 그리스도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죽음 문턱에서 보는 그리스도, 지옥 불구덩이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에게 나타나는 그리스도, 분노와 질책과 복수심 곁들인 증오의 ‘견디기 힘든 표정’을 한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의 형상

 

  그분은 가끔 주홍빛 망토를 두르고 무장한 사람 모습으로 보였다. 어떤 때는 환영이 창문 높이 공중에 떠서 죄인이 들어가지 못하게 교회 문을 지키고 서 있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보고 만질 수 있는 무엇처럼 그리스도가 성체에서 환한 빛으로 발산되는 듯했는데, 그때 아픈 수렝이 얼마나 강한 혐오를 느꼈는지 한 번은 종교 행렬을 지켜보는 사다리에서 실제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들도 있었으니, 칼뱅이 전적으로 옳으며 그리스도가 성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이는 성실한 믿음이 감응에 의해 독실한 신자의 마음에 일으키는 강한 의심 같은 것. 딜레마의 두 뿔 사이에 다른 길은 전혀 없었다. 성병이 그리스도 몸의 일부임을 직접 경험으로 알았을 때, 그는 그리스도가 자신을 저주했음도 직접 경험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단자들의 교리가 옳고 성병에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에 못잖게 확실한 저주를 받았다.) 

 

  그에게 나타나는 환영은 그리스도만이 아니었다. 간혹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혐오와 분노가 담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손을 쳐들어 복수의 벼락불을 내쏟을 때면 그의 온 존재가, 마음과 몸이 다 고통을 느끼곤 했다. 간혹 다른 성인들이 나타났는데, 그들도 저마다 ‘견디기 힘든 표정’을 짓고 번갯불로 놀라게 했다. 수렝이 그들을 꿈에서도 보았으며, 그때마다 마치 벼락 맞은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서 잠을 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성인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밤에는 ‘성 에드워드, 잉글랜드 왕’의 손에서 나온 번갯불 때문에 오금을 못 폈다.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 수난자 에드워드?[각주:1] 아니면 불행한 고백자 에드워드?[각주:2] 어쨌든, 성 에드워드가 「지독한 분노를 터뜨렸고, 나는 이것이 (성인들이 내던진 번갯불이)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감당하게 될 것임을 굳게 믿었다.」 

 

  하늘과 인간 세상에서 오랜 세월 도피하던 처음 시기, 적어도 좋은 나날에는 수렝에게 아직 주변과 접촉을 복원할 여력이 있었다. 「내 영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마구 늘어놓기 위해 난 상급자들과 다른 수사들을 늘 쫓아다녔다.」 하지만 헛수고. 

  (극심한 신체장애와 마찬가지로 정신 착란의 주된 공포 중 하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 깊은 심연이 고착돼 있다고 느끼는 것. 예를 들어, 긴장성 분열증 환자의 상태는 정상인의 상태와 같은 표준으로 잴 수 없다. 마비된 사람들이 거주하는 세계는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는 세상과 전혀 다르다. 사랑이 가교를 놓을 수는 있지만, 심연까지 제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곳에는 가교조차 없다.) 

 

  수렝이 상급자들과 동료들을 쫓아다니며 고백했지만 그들은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동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테레사 성녀가 하신 말씀의 참됨을 깨달았다. 즉, 네 말을 지나치게 조심스레 듣는 고해신부 수중에 떨어지는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은 없다.」 

  그들은 수렝이 하는 말을 아예 듣지도 않고 피했다. 그가 그들 소매를 움켜쥐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려고 몇 번이나 애를 썼다. 그런 일은 죄다 아주 단순하고 말할 수 없이 끔찍했다!  

 

  동료 수사들은 냉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제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이 사람은 미쳤어, 그것도 제 스스로 광기를 불러들였어. 그들이 그에게 단언했다. 우월감을 품고 튀려고 하니 신께서 당신을 벌하는 게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영적인 존재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회의 방법이 아니라 자신만의 엉뚱한 길을 따라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오

 

  그들 판단에 수렝이 불복했다. 

  「우리네 믿음에 기초하는 상식이 다른 삶의 개념에 맞서서 하도 강하게 굳어진 바람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저주받았다고 단언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은 그 생각을 광기의 표현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멜랑콜리건강 염려증 같은 어리석은 생각은 전혀 다른 부류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물병이나 추기경’이라거나 (진짜 추기경인 알퐁스 리슐리외가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부류다. 

 

  수렝이 주장하기를, 자신이 저주받았다고 믿는 것은 미친 증세가 아니라고 했다. 제 말이 맞음을 입증하기 위해 헨리 수소,[각주:3] 성 이냐시오, 블로시우스,[각주:4] 테레사 성녀, 십자가의 성 요한의 경우를 인용했다. 그들도 다 한 번씩은 저주받았다고 믿었지만, 그러고도 모두 정신 멀쩡하고 성스러운 행동으로 두드러졌소! 그러나 약삭빠르고 타산적인 동료들은 그런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마지못해!) 듣는다 해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로 인해 그가 가뜩이나 크나큰 비참함을 더 키우면서 절망의 길로 더 멀리 내몰렸다. 1645년 5월 17일 보르도 인근 생마케르의 작은 예수회 숙사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전날 밤 내내 그는 자살 유혹과 씨름하고 아침 시간 대부분을 성체 앞에서 기도로 보냈다. 

 

  「점심시간 얼마 전에 내 방으로 올라갔다. 들어서면서 보니 창문이 열려 있기에 다가가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다가 [건물은 돌출된 바위 위에 서 있고 아래에 강이 흘렀다.] 내 안에서 광적인 본능이 꿈틀거리는 바람에 놀라 방 한가운데로 뒷걸음질 쳤다. 눈길은 여전히 창문에 꽂혀 있었다. 그 다음에 의식을 잃고 갑자기 꿈속처럼 무슨 짓을 하는지 인식도 못한 채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몸뚱이가 추락하면서 튀어나온 바위에 부닥친 뒤 강기슭에 떨어졌다. 대퇴부가 부러졌지만 장기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기적을 믿는 성향이 강한 수렝이 이 비극을 거의 코믹한 추신으로 맺는다

 

 「때마침 위그노 한 사람이 말에 앉아 강으로 오던 참이었고, 나는 바로 그의 발 옆에 떨어졌다.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 중에 이 일을 두고 그가 나한테 농담을 퍼부었다. 강을 다 건넌 뒤 그가 다시 말안장에 올라타 초원으로 나섰는데, 완전한 평지에서 말이 갑자기 날뛰는 통에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 이랬다. 

  수도사께서 공중을 날아 보려 시도하셨다고 놀린 것을 두고 신께서 나를 벌하시는군요. 그러니 훨씬 더 낮은 곳에서 떨어졌으면서도 똑같은 상처를 입은 게지요

  한데, 내가 몸을 던진 창문은 워낙 높기 때문에 한 달 뒤 참새를 잡으려고 거기서 뛰어내린 고양이는 죽고 말았다. 다들 알다시피 그 녀석들은 가볍고 탄력 있어서 흔히 사뿐히 뛰어내리곤 하는데도 말이다.」 

 

  부러진 다리에 부목을 댔고 몇 달 뒤 다시 걷게 됐다. 비록 영원히 절름발이가 되긴 했지만. 그러나 마음은 육신처럼 그리 쉬이 치유되지 않는다. 절망의 유혹이 몇 해 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높은 곳들에 자꾸 눈길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칼이나 로프를 볼 때면 목을 베거나 목매달고 싶다는 욕망이 불같이 일곤 했다. 

 

  파괴 충동은 안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 바깥으로도 향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욕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크던 때가 더러 있었다. 건물이며 거기 거주자들, 지혜와 신앙의 보물들이 가득한 도서관, 채플, 성직복, 십자가상들 또 성체 자체도 다 잿더미로 변해야 해

  그런 악의는 악령만이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는 신을 욕되게 하는 자이니, 저주받은 영혼이요 악마의 화신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미움을 샀고 그 응답으로 하나님을 미워했다. 그에게 이런 부류의 사악함은 완전히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길 잃은 영혼임을 알고 있었을지라도, 저주받은 사람으로서 의무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악을 그의 일부는 거부했다. 자살과 방화 유혹이 상당히 컸지만 거기에 맞서 싸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주변 사람들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서 위험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자살 시도 이후 그에겐 수련수사가 붙어서 지켜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침대에 묶여 있게 됐다. 그 이후 삼년 동안 수렝은 우리네 조상들이 미치광이에게 체계적으로 적용했던 비인도적 행위를 겪어야 했다

 

  그런 종류의 일에서 쾌감을 맛보는 자들은 (그런 자들은 꽤 많다) 비정한 행위 자체를 즐기는데, 그럼에도 마음에 꺼리는 구석이 없을 수 없다. 이런 개운치 못한 느낌을 좀 누그러뜨려 볼까 해서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자들이나 사디스트들은 저희 오락을 합리화하려고 별의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인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짓이 규율이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행위로 합리화된다. 바로, “자식에게 매질을 아끼는 자는 제 자식을 미워함이라”[각주:5] 하는 말씀. 또 죄인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행위는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지상명령의 추론적 결과라는 모양새를 갖춘다. 또 종교적 이단이나 정치적 반대 진영에 대한 잔혹 행위는 ‘참된 믿음’을 위한 타격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다른 인종에 대한 잔혹 행위는 그럴듯한 학문적 논거로 정당화된다.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미치광이를 대하던 시대가 있었고, 그런 전통은 아직도 다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광인을 대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잔혹 행위가 과거에는 신학적 용어를 빌어 합리화됐을지언정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

 

  수렝을 포함해서 히스테리나 정신병 앓는 이들을 괴롭힌 자들은 두 가지 계기에서 그랬다

  첫째, 야만적인 상태를 즐겼기 때문.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그냥 좋은 것. 둘째, 그렇게 해야 병자를 도울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가 잘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건 또 왜냐하면, 당시 가설로 그런 질환은 미치광이들이 자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백하거나 은밀한 무슨 죄를 지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불경하고 타락한 자의 영혼에 악마가 들어가도록 허함으로써 징벌하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광인들은 하나님의 적대자요 근본악의 일시적 화신으로 간주됐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학대받아 마땅했다. 학대하는 쪽에서는, 하나님 뜻이 천상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도 이뤄졌다는 보람된 느낌과 좋은 도덕심을 가지고 그리 했다.  

 

  미치광이를 두드려 패고 굶기고 사슬로 묶어 햇볕도 안 드는 쪽방에 가두었다. 미치광이를 성직자가 찾아왔다면, 다 병자 자신의 잘못이며 하나님께서 화를 내신 것이라는 힐난이 빠지지 않았다. 

  일반 군중에게 미치광이는 버림받은 범죄자 같은 성격을 띠며 원숭이와 장터 야바위꾼 중간쯤 되는 무엇이었다. 주일과 공휴일마다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치광이 구경하러 갔다. 오늘날 동물원이나 서커스에 데리고 가듯이. 거기엔 오늘날 동물원처럼 ‘야수들에게 지분거리지 말 것’ 같은 금지도 없었다. 그 반대로, 미치광이는 하나님의 적대자로 간주된 만큼 그를 괴롭히는 행위는 그저 허용된 것이 아니라 의무이기도 했다

 

  (16-17세기 작가들과 극작가들이 가장 즐겨 취한 주제들 중 하나는 정신 멀쩡한 사람을 미쳤다고 공표하고 갖가지 모욕과 조롱을 안기는 것. 예를 들어, 말볼리오가 그렇고, 혹은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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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King Edward the Martyr (962-978) - 잉글랜드 색슨 왕조의 왕. 통치 3년 만에 살해돼. 살해자가 ‘반종교적’인 반대파요 에드워드는 신실한 기독교도였기에 신성한 순교자로 선포, 즉 1001년 성인으로 시성됐다. [본문으로]
  2. King Edward the Confessor (1003-1066) - 1042년부터 잉글랜드 왕. ‘순교자 에드워드 왕’의 이복 아우인 에설레드 왕의 아들. 유년기를 가족과 떨어져 노르망디에서 보내면서 깊은 신앙심을 지니고 성장. 별명이 ‘고백자’였다. [본문으로]
  3. Henry Suso, 독일어 Heinrich Seuse - 게르마니아의 도미니크회 탁발수사, 저명한 영성 저술가, 신비주의자. 1366년 졸. [본문으로]
  4. Blosius (1506-1566) - 플랑드르의 탁발수사, 신비주의 저술가. 등 라틴어로 쓴 책들이 거의 모든 유럽 언어로 번역됐다. [본문으로]
  5. “He that spareth the rod, hateth his son." "초달(楚撻)을 차마 못하는 자, 그 자식을 미워함이니라.” (잠언 13: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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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만년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작하자 일이 분 뒤 발람이 나타났다. 사지를 뒤틀고 경련을 일으키고 하느님을 거세게 모욕하는 말이 나오고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잔느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곧 임신 막달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어서 가슴도 복부만큼이나 산더미처럼 부풀었다. 엑소시스트가 각 부위에 성유물을 대자 부풀어 오른 게 가라앉았다. 

  킬리그루가 한 발짝 다가서서 수녀의 손을 쥐어 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맥박을 짚어 보니, 느리고 희미했다. 원장수녀가 그를 밀치고는 제 두건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거의 배코 치다시피 한 머리가 금방 드러났다. 그녀가 두 눈알을 굴리며 혀를 쑥 빼물었다. 혀는 엄청나게 부풀었는데 색깔이 검으며 모로코가죽처럼 바닥이 우둘투둘했다. 수렝이 발람에게 성체에 경배하라 이르면서 그녀를 풀어주었다. 잔느가 장의자에서 마룻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오랫동안 발람이 완강하게 버텼지만, 결국에는 소정의 의식을 이행했다. 킬리그루의 기록을 계속 보자. 

 

  「그러고는 바닥에 눕자 허리를 뒤로 활처럼 꺾고 발뒤꿈치와 배코 친 맨머리로 몸을 지탱하면서 탁발수사를 따라 마룻바닥을 돌아다녔다. 또 다른 기이하고 부자연스러운 포즈들도 많이 취했는데, 그런 자세를 난 여태 본 적도,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여긴 적도 없었다. 게다가 이건 잠깐 취하다 만 동작이 아니라 한 시간 넘게 계속됐다. 그럼에도 그녀는 호흡 하나 흩트리지 않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내내 혀를 밖으로 빼물고 있었는데, 그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팽창돼 한순간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마치 그녀를 산산조각 내는 듯한 공포의 비명이 나온 뒤 줄곧 한 단어만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바로 “요셉”이었다. 그 소리에 성직자들이 다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건 신의 표시야, 저 자국을 봐!” 

  그녀가 내뻗은 손을 보면서 한 수도사가 자국을 찾았다. 몬태규 씨와 나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그녀 손바닥에서 다소 불그레한 색깔이 짙어지며 정맥을 따라 1인치쯤 반점들이 나타나더니 글자가 뚜렷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건 그녀가 읊조린 것과 같은 단어, ‘요셉’이었다. 이 자국은 악마가 약속한 것이라고, 예수회 수사가 말했다. 떠날 때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는…」 

 

  엑소시즘 과정은 아주 상세하게 기록됐으며 매번 담당 엑소시스트가 그 문건에 서명했다. 그런 문건에 몬태규가 영어로 추신을 달고, 거기에 그와 킬리그루가 자기네 이름을 적었다. 사실, 킬리그루는 서신을 유쾌한 문투로 맺는다. 

  「이런 일을 자네가 다 믿을 것이라 기대하네. 세상에는 자네의 겸손한 친구 토마스 킬리그루보다 더 뻔뻔한 자들과 허풍쟁이들이 많이 있으니 말일세.」 

 

  시간이 흐르면서 손바닥에는 요셉 이외에 예수, 마리아, 살레의 프랑수아 이름자도 나타났다. 처음 나타날 때는 발갛던 이름자들이 한두 주일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그때마다 잔느의 천사가 다시 또렷하게 만들곤 했다. 

  이 현상은 1635년 겨울에 시작돼 1662년 성 요한의 날까지 불규칙하게 계속됐다. 그리고 그날 이후 수렝이 기록한 것처럼 「그걸 보려고 끈질기게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주님께 열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건져 달라고 원장수녀가 정성껏 기도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모를 이유로」 이름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수렝과 동료 몇몇, 또 대다수 일반 구경꾼들은 이 기발한 성흔 형태를 전능자께서 내린 특별한 은혜라고 믿었다. 하지만 더 교육받은 동시대인들은 이 기적에 의문을 품었다. 애초부터 마귀 들림이라는 것도 믿지 않은 마당에 이제 신비한 철자들의 거룩한 근원 따위는 더더욱 안 믿었다

  그들 중 몇몇은, 예를 들어 존 메이틀랜드 같은 이는, 이름자를 산성 물질로 손바닥에 새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다른 이들은 색깔 넣은 전분으로 표면에 선을 넣을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많은 이들은 철자들이 양손이 아니라 왼손에만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오른손잡이가 써 넣기에 더 편하지 않겠어? 

 

  잔느 수녀의 전기를 펴낸 가브리엘 레게 박사와 질 투레트 박사는 둘 다 샤르코[각주:1]의 제자인데, 자기암시에 의해 손바닥에 글자가 생겼다고 믿는 편이며 히스테릭한 낙인의 현대적인 사례 몇몇을 인용하여 그런 관점을 옹호한다. 여기서 덧붙일 것은 많은 히스테리 환자의 피부는 특별한 민감성을 지닌다는 점. 그런 사람의 피부는 손톱으로 살짝 긁기만 해도 붉은 자국이 생겨서 몇 시간이고 없어지지 않는다. 

  자기암시에 의한 것이든 의도적인 속임수이든 혹은 그 둘의 혼합이든 우리에겐 각자 나름대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 그 두 가지가 다 섞인 쪽으로 기운다. 낙인 혹은 성흔은 잔느 스스로도 진정 기적 같은 것이라 여기기에 충분할 만큼 자연스레 생겼을 터이다. 만약 그게 진짜 기적이었다면 대중에게 더 교훈이 되고 그녀 자신에게는 더 신뢰할 만한 것이 되게끔 그 현상을 개량해도 무리가 없었을 텐데. 

  그녀 손바닥에 나타난 거룩한 이름자들은 월터 스코트의 장편소설들과 비슷한 것이었으니, 달리 말하면, 사실에 기초하되 상상력과 가공 기법에 훨씬 더 많이 신세진 것이었으리라.

 

  (내막이야 어떠하든) 잔느 수녀는 이제 본인만의 고유한 이적의 소유자가 됐다. 그건 그냥 개인 차원의 것이 아닐 뿐더러 장기간에 걸친 것이었다. 거룩한 이름자들이 희미해지면 그녀의 천사가 나타나서 즉각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명한 방문객들이나 이적에 갈급한 보통 구경꾼들한테 언제든 보여줄 수 있었다. 이제 그녀 자신이 걸어 다니는 성물이 됐다

 

  이사카론이 1636년 1월 7일 그녀를 떠난 뒤 베게모트만 남았다. 그러나 이 신성 모독의 악령은 다른 악마들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억척같았다. 엑소시즘도 고행도 묵상기도도 다 소용없었다

  의지가 없고 훈련되지 않은 정신에 신앙이 강요되다 보니 역작용이 나타났다. 즉, 정신이 감응(유도)적인 반발을 일으킨 결과 외려 거칠고 충격적인 불신앙으로 접어들었고, 그리하여 그 인격에 강요된 진리들을 다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정과 저항은 악령이 되어 잔느의 무의식에 둥지를 튼 채 혼란과 스캔들을 일으키며 떠나지 않으려 했다

 

악령을 내쫓는 엑소시즘 시행 하의 수녀

 

  수렝이 열 달 넘게 씨름한 끝에 마침내 10월에 베게모트를 완전히 격퇴했다. 수도회 관구장이 그를 보르도로 소환하고, 다른 예수회 수도사가 원장수녀를 감독하게 됐다. 

 

  레쎄 수사는 이른바 ‘단순한 엑소시즘’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잔느 수녀 말에 따르면, 그는 엑소시즘 중에 악마들이 성체를 우러러 받드는 장면을 가장 좋아했다. 수렝이 ‘말을 공격해서 기사를 끌어내리려 했다’면 레쎄는 기사를 직접 대놓고 공격했다. 말의 감정에 개의치 않고, 말을 달래려는 시도도 전혀 하지 않고

  원장수녀의 기록을 보면 「어느 날 저명인사들이 모이자, 수도사가 그들의 영적 복리를 위해 엑소시즘을 시행하기로 했다.」 원장수녀가 자기는 몸이 아픈데 엑소시즘을 거치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영적 지도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엑소시즘을 시행하고 싶어 안달이 난 수사는 나한테 용기를 내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엑소시즘을 시작했다.」 그녀가 평소에 하던 묘기를 잘 해냈는데, 그 결과 고열에 허리 통증이 심하게 도져서 자리에 눕게 됐다.

 

  위그노이지만 도시에서 최고로 꼽히는 의사 팡통을 불렀다. 그녀한테 사혈을 세 번 하고 약제를 주었다. 효과가 있어서 병자가 「속을 다 비우고 더러운 피를 쏟았다. 그게 이레나 여드레쯤 갔다.」 상태가 호전됐다가 며칠 지나 다시 악화됐다. ‘레쎄 수사는 엑소시즘을 재개할 만하다고 여긴 모양이지만 난 극심한 구역질과 구토에 시달렸어.’ 열이 다시 오르고 옆구리 통증이 극심해지고 각혈이 시작됐다. 

  다시 부름 받은 팡통이 흉막염이라고 진단했다. 이레 동안 일곱 번 사혈하고 관장을 네 번 했다. 그런 뒤 그는 병세가 치명적이라고 알렸다. 그날 밤 잔느가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가 하는 말. 넌 죽지 않을 거야, 하지만 하나님이 너를 일부러 지극히 위험한 상태까지 데려가실 텐데, 네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회복하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권능을 똑똑히 보이기 위함이지. 

 

  이틀 동안 상태가 악화되기만 하고 기력도 거의 쇠한 듯 보였기에 2월 7일 죽어가는 여인한테 병자성사를 거행했다. 그 동안에 사람을 보내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그녀가 기도를 읊조렸다. 

  “주여, 당신께서는 이 병을 고치심으로써 당신 권능의 특별한 은혜를 보이고자 하심을 내가 잘 알고 있나이다. 이것이 그런 경우라면, 의사가 볼 때 가망 없다고 판단할 만한 상태로 나를 이끄소서.” 

 

  팡통이 도착해 병자를 살펴보고 진단을 내렸다. 한두 시간 뒤에는 숨이 끊어질 겁니다. 그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서 그때 파리에 머물고 있던 로바르데몽에게 보낼 보고서를 썼다. 

  맥박이 불규칙하고 복부가 비정상적으로 팽창돼 있으며, 관장은 물론이고 그 어떤 치료법으로도 소용없을 정도로 쇠약한 상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고통’을 덜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녀에게 작은 좌약을 하나 삽입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낱 완화제일 뿐이기에 다른 뭔가를 기대해선 안 되지요. 병자는 임종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섯 시 반 잔느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자신의 천사를 보았다. 천사는 기다란 금발 고수머리를 휘날리는 18세 매혹적인 젊은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수렝의 말에 따르자면, 이 천사는 앙리 4세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손자요 세자르 방돔의 아들인 보포르 공작과 똑 닮았다. 이 왕자는 악마들을 보려고 얼마 전 루덩에 왔었는데, 어깨까지 늘어진 금발이 원장수녀한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천사에 이어 성 요셉이 나타나더니 그녀 오른편 옆구리에, 통증이 극심한 부위에, 손을 얹어 무슨 기름을 발라 문질렀다. ‘그러자 난 정신을 차리고 완전히 회복됐다.’ 

 

  (그건 또 하나의 이적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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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an Martin Charcot (1825-1893) - 프랑스의 의사, 신경병 학자, 현대 신경학의 창시자. 히스테리 치료에 최면 기법을 이용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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