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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9.07.11 루덩의 악마들 2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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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수녀들을 대상으로 엑소시즘을 펼치다

 


 

8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악마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이 대전제에 따르면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 입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바르데몽은 위그노들을 지독히 싫어하는데, 그들이 사탄의 친구이며 충실한 종복이라고 귀신들린 수녀 열일곱 명이 성찬례에서 단언하면 그만이었다. 

 

  상황이 그런 만큼 전권대행은 낭트칙령[각주:1]을 무시해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 느꼈다. 먼저 루덩의 칼뱅주의자들이 자기네 묻힐 곳을 박탈당했다. 그들 죽은 몸뚱이를 어디 다른 곳에 파묻으라고 해. 

 

  이어서 프로테스탄트 칼리지 차례가 됐다. 넓고 편리한 학교 건물이 몰수돼 우르술라회로 넘어갔다. 사실, 그들이 그 동안 수녀원으로 임차한 건물에는 사방에서 도시로 몰려든 독실한 순례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이제 마침내 수녀들이 날씨가 어떻든 성 십자가 교회나 샤토 교회까지 터벅터벅 걸어갈 필요 없이 입에 맞는 관중 앞에서 엑소시즘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위그노 못지않게 가증스러운 자들도 있었으니, 바로 그랑디에가 유죄이고 마귀 들림이 실제로 있으며 카푸친회가 새로 내놓은 교리의 절대적 정통성을 한사코 믿지 않으려 드는, 나쁜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랑탕과 트랑킬이 설교단에서 신랄하게 몰아쳤다. 

  저들은 이단자보다 나을 게 하나 없소! 저들이 의혹을 품는 것은 크나큰 죄이며 저들은 이미 저주받은 것과 진배없단 말이오!! 

 

  또 한편에서는 메스멩과 트렌캉이, 의심하는 자들은 국왕에게 불충하며 (더 흉하게도) 추기경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다녔다. 그리고 미뇽이 맡고 있는 수녀들과 카르멜회 히스테리 환자들의 입을 통해 많은 악마들이, 그자들은 전부 사탄과 결탁한 마법사라고 떠들었다. 

  시농에서 바레가 관장하는 마귀 들린 자들 중 누군가한테서는 흠 잡을 데 없는 치안판사 세리제조차 흑마법으로 장난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 다른 마귀 들린 자는 두 성직자, 부롱 신부와 프로지에 신부가 강간을 기도했다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원장수녀의 고발로 마들렌 드브루가 요술을 부린다는 혐의로 체포돼 수감됐다. 친척들이 재산과 고위층 연줄 덕에 그녀를 간신히 보석으로 빼냈다. 그러나 그랑디에 재판이 끝난 뒤 마들렌은 다시 체포됐다. 그녀가 항소법원[각주:2] 판사들에게 호소하자 로바르데몽에게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전권대행이 자신을 비난한 여인을 맞고소했다. 마들렌에게는 다행히도, 리슐리외는 판사들과 다툴 만큼 그녀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로바르데몽에게 소송을 취하하라는 지시가 내렸고, 원장수녀는 복수의 기쁨을 접어야 했다. 

  그 뒤 가엾은 마들렌은 모친 사후에 제 연인이 하지 말라고 설득했던 일을 하고 말았다. 삭발하고 어느 수녀원 담장 안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

 

  그러는 동안 악마들이 시민들을 겨냥해 내뱉은 이런저런 고발이 바람에 일어난 먼지처럼 난무하게 됐다. 지역 상류층 아가씨들이 그들 공격 대상으로 찍혔다. 아그네스 수녀는, 루덩만큼 음란기로 가득한 도시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클레어 수녀는, 죄 지은 여인들 이름을 꼽으면서 그들의 죄목을 늘어놓았다. 루이스 수녀와 잔느 수녀도 가만있지 않았다. 루덩의 처녀들은 죄다 마녀의 싹을 품고 있어! 

 

  이 엑소시즘은 매번 음란한 몸짓과 추잡한 언사와 광적인 웃음 따위로 끝났다. 

  그 다음에는 도시의 존경받는 인사들한테 비난이 쏠렸다. 

 

  그들이 마녀 집회에 다니면서 악마 엉덩이에 입을 맞추잖아. 

  또 그 부인들은 인큐버스와 사통하고, 그 누이들은 옆집 암탉들에게 마법을 걸고, 그 노처녀 숙모들은 도덕적인 젊은이를 신혼 첫날밤에 임포텐츠로 만들지 뭐야. 

  그랑디에도 그래, 벽돌로 막아놓은 창문의 공기구멍 틈새로 그 동안 자기 정액을 절묘하게 나눠주고 있었던 거야. 마녀들한테는 보상을 하고, 추기경 파의 아내와 딸들에게는 합당치 않은 치욕을 안기려는 속셈에서 말이지. 

 

수녀들한테서 악마를 쫓아내는 의식

 

  그런 고약한 망언들을 로바르데몽과 그의 서기들이 하나도 빼지 않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악마들한테서 비난받은 이들이 (달리 말해, 로바르데몽과 엑소시스트들한테 눈엣가시가 된 이들이) 로바르데몽 집무실로 소환돼 심문 받으며 위협과 협박을 겪었다. 도시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7월 어느 날 로바르데몽이 악마 베헤리트한테 힌트를 얻어 젊은 처녀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는 성 십자가 교회의 문을 다 잠그라고 명령했다. 카푸친회 수도사들이 사탄과 결탁한 흔적을 찾는다는 명분 아래 처녀들 몸을 더듬었다. 철저한 수색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표식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군, 베헤리트가 정식으로 강요당했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 

 

  몇 주일 동안 카푸친회와 레콜레트회와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모든 설교단에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의혹 품은 이들이 납득하지 못했고, 그랑디에 사건을 매우 불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불만과 저항이 더 커지기만 했다

  익명의 운쟁이들이 전권대행을 두고 짤막한 풍자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그 시구에 오래 된 가락을 붙여 거리에서 선술집에서 잔을 들고 노래하며 국왕의 전권대행을 조소했다. 그를 조롱하는 글귀들이 밤마다 교회 현관에 나붙었다. 

 

  도대체 누구 소행인지 개꼬리와 레비아탄에게 추궁하자, 이 악마들이 어떤 신교도와 어린 학생 몇몇을 범인으로 꼽았다. 그들을 체포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수 없게 되자 풀어주어야 했다. 이제 밤마다 파수꾼들이 교회 밖에 배치됐다. 그러자 비판하는 글귀가 다른 대문들에 걸리기 시작했다. 

 

  분개한 전권대행이 7월 2일 포고문을 발동했다. 

  ‘악마 때문에 고통 받는 수녀들이나 다른 주민들, 엑소시스트들이나 엑소시즘 조력자들을 적대시하여’ 행동하거나 또 입을 놀리는 것조차 차후로는 엄금한다. 이를 어긴 자는 누구든 1만 리브르 벌금에 처하고, 필요한 경우 재정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더 중하게 부과할 것이다. 

  그 뒤 비판이 더 조심스러워지자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이 여론을 겁내지 않고 허튼 비방을 마음껏 지껄일 수 있게 됐다. 

 

  <루덩 주임신부 재판에 대한 의견과 판단>이라는 글의 익명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만을 말하는 하나님이 이제 밀려나고 그분 자리에 사탄이 앉아서 거짓과 허튼소리만 해대는데, 그 허튼소리를 진실처럼 믿어야 하다니, 이야말로 이교 사상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게다가 항간에 나도는 얘기로는, 악마가 마법사와 주술사라면서 많은 이름을 읊어대는 것이 권력에는 아주 편리하단다. 이제 이 불행한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고 재산이 압류될 것이다. 그리고 몰수된 재산 일부가 주임신부의 죽음과 도시 대부분 명가들의 파멸을 은근히 바랄지도 모를 피에르 메노와 그의 사촌인 참사회 위원 미뇽에게 돌아갈 것이다.」 

 

  8월 초 트랑킬 신부가 새로운 교리를 기술하고 거기에 근거를 부여하여 얇은 책자를 냈다. 그 교리란 바로,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는 것. 이 책자를 푸아티에 주교가 승인하자 로바르데몽은 정통 신학에서 최신의 발견이라 부르며 환영했다

 

  이제 의심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그랑디에는 마법사로 아예 굳어지고, 겁 없이 옳게만 나서는 세리제 판사 역시 주술사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추기경 지지파에 속한 부모를 둔 처녀들을 제외하고, 루덩의 처녀들은 모두 매춘부와 마녀가 됐다. 또 시민 절반에게는 악마의 존재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미 저주가 내렸다. 

 

  트랑킬의 소책자가 나오고 이틀 뒤 수석 치안판사가 도시 명사들을 소집했다. 시민들이 처한 곤경을 논의한 끝에 세리제 판사와 보좌관 쇼베가 파리로 가서 전권대행의 전횡을 막아 달라고 국왕에게 청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반대한 사람은 검찰관 무소, 경찰 수뇌 에르베와 메노뿐이었다. 에르베는 루덩의 시민들을 전부 사탄의 종복으로 규정하는 새 교리에 동의하느냐고 치안판사가 묻자 “국왕과 추기경, 푸아티에 주교께서 마귀 들림을 믿는 바에야 나로서도 달리 방법이 있겠소?” 하고 대꾸했다. 

 

  정치적 보스에 대해 부하들이 무의식적으로 지니는 이 무류(無謬) 의식은 오늘날 우리네 귀에도 낯설지 않으며 아주 자연스러우리라

 

  다음날 세리제와 쇼베가 루덩 시민들의 정당한 불만과 불안이 명료하게 기술된 청원서를 들고 파리로 떠났다. 그 문건에서는 로바르데몽의 처리 방식이 준엄한 비판을 받았고, 카푸친회가 내놓은 새로운 교리는 ‘하나님 율법을 파괴하며’ 교회 박사들과 성 토마스와 소르본대학 학자들의 견해에 상충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소르본 학자들은 비슷한 교리를 이미 1625년에 공식 규탄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루덩의 시민들은 트랑킬의 소책자를 소르본에서 검증하도록 국왕 폐하께서 명해 주십사 탄원하고, 나아가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한테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중상모략 받은 모든 이들이 ‘이런 문제들의 정상적 심판 기구인’ 파리 고등법원에 상소하도록 허용해 주십사고 간청했다. 

  두 치안판사가 궁정에서 다르마냑을 찾아 부탁하자, 그가 즉각 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회답은 퉁명스러운 거절. 그러자 세리제와 쇼베가 국왕의 개인비서에게 청원서를 맡기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이 사람은 추기경의 심복이자 루덩 시민들의 공공연한 적대자였다. 

 

  그들이 파리에 있는 동안 루덩에서는 로바르데몽이 새 포고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그 어떤 공개 집회도 금지하며, 위반할 시 2만 리브로 벌금이 부과될 것이다. 이후로 악마의 존재에 의혹을 품는 이들이 더 이상 골칫거리가 되지 못했다. 

 

엑소시스트들과 국왕 전권대행

 

  이제 예비조사가 다 끝나고 마침내 재판을 개시할 때가 됐다. 로바르데몽은 루덩의 주요 치안판사들 중에서 몇몇을 재판부에 기용할 수 있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무너졌다. 수석 치안판사인 세리제를 비롯해 부르네, 샤를 쇼베, 루이 쇼베 등이 모두 사법살인에 끼어들기를 거부했다. 국왕의 전권대행이 감언이설로 꾀어 보다가 잘 안 먹히자, 추기경 예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어떤 후과가 따를지 생각해 보라고 은근히 겁을 주었다. 그래봤자 헛수고. 법률가 네 사람이 꿋꿋하게 버텼다

 

  할 수 없이 시농, 샤텔로, 푸아티에, 투르, 오를레앙, 라 플레시, 생멕상, 보포르 등 인근 도시에서 재판관을 찾아야 했다. 결국 유순한 판사 열셋으로 재판부를 꾸렸다. 검사를 기용하는 문제도 썩 순탄치 못했다. 피에르 푸르니에라는, 지나치게 꼼꼼한 법률가가 추기경의 룰에 따라 게임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전적으로 신임할 수 있는 도시 검찰관을 선정했다. 

  8월 둘째 주 중반에 재판 준비가 다 끝났다. 미사를 드리고 성찬례에 참석한 뒤 재판관들이 카르멜회 수도원에 모여 지난 몇 달 로바르데몽이 수집한 증거를 죄다 청문하기 시작했다. 푸아티에의 주교는 마귀 들림이 실제 있는 현상이라고 공식적으로 담보했다. 이는 곧 진짜 악마들이 우르술라 수녀들의 입을 통해 말한 것이며, 그 진짜 악마들이 그랑디에가 마법사라고 몇 번이나 단언했다는 의미. 한데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즉, 악마들은 엑소시스트들의 감시를 받으며 진실을 말한 것이고, 그렇다면… 증명은 끝난 셈이다. 

  유죄 판결이 아주 확실했고, 그 확실함이 얼마나 소문났는지 처형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이미 루덩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무더운 팔월 (루덩 시 인구보다 두 배가 많은) 3만 명이 음식과 숙소와 처형대 가까운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우리 선조들이 공개 처형이라는 스펙터클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 대다수는 참으로 믿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의 휴머니즘 달성을 자축하기 전에 몇 가지를 기억해 보자. 

  첫째, 오늘날 시민들에게는 처형 현장을 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처형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교수형이 인형극처럼 흥미롭게 보이던 시대에 장작불 위 화형이야말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각주:3]이나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각주:4]처럼 보기 드문 사건이고, 그걸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비가 많이 드는 순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공개 처형이 사라진 것은 대다수가 바랐기 때문이 아니다. 지극히 섬세한 개혁가 소수가 그걸 금할 만큼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문명화(개화)란 개개인이 야만적 행위를 자행할 기회를 체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라 정의할 수도 있겠다. 

  한데 근년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억제되던 끝에 이제 우리보다 더 나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야만적인 행위에 기꺼이 몰두하면서 이전의 양상으로 기꺼이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왕과 추기경, 로바르데몽과 고용된 재판관 열셋, 시민들과 관광객들 모두 결말이 어떻게 날지 알고 있었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은 죄수 하나뿐이었다. 

 

  (8월 첫째 주 끝에 가서도 그랑디에는 자신이 평범한 재판의 피고이며, 이전 조사에서 잘못된 것들은 다 우연한 실수이고...  <계속>)

 

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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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1. 나바르 왕 앙리가 프랑스 왕위 계승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대신 위그노의 종교 자유와 시민권을 보장하는 칙령을 1598년 선포. 이로써 위그노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는 교회의 화합 아래 강대국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칙령에 교황 클레멘스 8세와 프랑스 로마가톨릭, 파리 고등법원 등이 큰 불만. 나중에 리슐리외 추기경은 낭트칙령에서 정치 관련 조항을 국가에 위험하다고 여겨 알레 칙령(1629)으로 무효화. 1685년 루이 14세가 완전히 폐지, [본문으로]
  2. Messieurs des Grands-Jours - 왕국의 전 지역을 다니며 지방 사법부의 스캔들과 오심을 조사하는 순회 항소법원. [본문으로]
  3. Bayreuth Festival -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해마다 열리는 음악 축전. <니벨룽겐의 반지> 등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만 공연. [본문으로]
  4.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 - 독일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 오버아머가우 주민들이 1634년부터 전통적으로 행하는 공연.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1632년 10월에 성인 사망률 1에서 1633년 3월 20까지 올라갔다. 주민들은 하느님이 이 역병을 물리쳐 주신다면 예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공연을 평생 하겠노라고 다짐. 사망률이 점차 줄면서 1633년 7월에 1로 가라앉자 주민들은 구원을 받은 것이라 믿었다. 1634년 처음 공연 시작. 전 세계에서 수십 만 관객이 몰려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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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엑소시즘을 받는 수녀

 


 

  진짜 귀신들림을 협잡이나 질병 증세와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가톨릭교회는 네 가지 테스트를 제시한다. 언어 테스트, 초자연적 물리력 테스트, 공중부양 테스트, 투시력과 예지 테스트. 

 

  만약 어떤 사람이 정상 상태에서는 전혀 모르는 언어를 특별한 경우에 이해하거나 말할 수 있다면, 만약 공중부양이라는 물리적 기적을 명백히 보이거나 놀라운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만약 미래를 확실하게 예견하거나 멀리서 일어나는 사건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악마에 사로잡혔다고 볼 수 있다. 

 

  (혹은, 그게 아니라면,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신이 내린 기적과 악마의 기적은 불행히도 겉보기에는 똑같으니까. 성자처럼 무아지경에 빠진 이들의 공중부양은 황홀경에 빠진 귀신들린 자들의 공중부양과 전혀 다르지 않다. 만약 다르다면, 그건 오로지 그들의 도덕적 경력과 그 행위의 결말이다. 

  한데 어떤 사람이 고귀한 모티브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악마 같은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가장 깨끗한 이들조차 ESP와 PK[각주:1] 능력을 선보였다가 악마주의라고 비난받은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공식적이고 시대상으로 본 마귀 들림 범주는 그러하다. 이 초감각적 능력이며 염동과 관련된 현상들은 전에 완벽하게 여겼던 영혼 개념이 충분치 못한 것이었음을 우리 현대인들에게 증명한다. 우리네 의식적 자아 너머에 광활한 무의식 영역이 있는데, 이 무의식은 우리 에고보다 더 좋고 현명할 때도 있고 더 나쁘고 우둔할 때도 있다. 

 

  무의식의 가장자리 어딘가에서 인간 영혼이 외부 심령 매개와 결합하는 지대가 시작되고, 이 매개를 통해 모든 영혼이 서로 소통하고 우주정신과 직접 교류할 수 있다. 이 무의식적 수준들 중 하나에서 정신이 에너지와 접하는데, 이 접촉은 육체 안에서만이 아니라 (숱한 증언과 통계가 증명하듯이) 육체 바깥에서도 이뤄진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이전 시대의 심리학은 독단적 정의 때문에 무의식의 작업을 무시할 수밖에 없으며,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과 부닥치게 되면 모든 것을 악마의 간계로 돌려야 했다

 

  우리는 잠깐 엑소시스트들과 그 동시대인들 입장에 서도록 해 보자. 마귀 들림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기준이 확실한 것이라 가정하고, 수녀들이 악마에 들씌웠으며 주임신부를 마법사라고 공표한 근거를 검증해 보자. 적용하기 가장 쉽기 때문에 실제로 가장 자주 쓰이는 테스트, 곧 언어 테스트로 시작하겠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방언 말하기’는 성령이 베푼 각별한 은사요 무상의 선물이지만, 동시에 (우주 본질이 묘하게도 다의적이듯이) 악마에 들씌웠다는 확실한 증상이기도 했다. 대부분 경우 소위 방언이란 지금까지 모르던 언어를 실수 없이 정확하게 구사한다는 뜻이 아니다. 흔히 그건 웬만큼은 똑똑히 발음되고 웬만큼은 조리가 있는 횡설수설로서 어떤 전통적 스피치 형태와 비슷한 듯싶기에, 호의를 지닌 청자들한테는 친근했던 어떤 언어로 조금 불분명하게 말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다. 

 

  혹자가 의식 상태에서는 몰랐던 언어를 트랜스 상태에서 술술 말하는 경우를 두고 연구한 결과 대체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즉, 그 사람은 머나먼 유년기에 그 언어로 말하다가 그 후 까맣게 잊었거나, 아니면 예전에 그 언어를 듣고 단어 의미를 모르면서도 그 어음들과 무의식적으로 친근해졌다가 이제 재현하게 됐다는 것. 

  F. W. H. 마이어스의 말대로라면, 기타 모든 경우에서 「새로운 언어나 이전에 모르던 수학 지식 같은 지적 정보를 특별한 연구도 없이 실제로 잔뜩 얻을 수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텔레파시 경우는 좀 다르지만.」  

 

  심령술과 자동기술(automatic writing) 연구를 포함해 현대 심리학을 고려할 때 귀신들렸다고 추정된 사람이 방언 테스트를 아주 깨끗하게 통과한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확실한 것은, 완전한 실패로 기록된 경우는 아주 많은 반면에 성공했다는 기록은 대개 편파적이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 마귀에 들렸다고 주장하는 협잡꾼들을 까발리는 데 교회 조사관들이 언어 테스트를 가끔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1598년 마르테 브로시에라는 여성이 악마에 들씌운 증상을 여럿 내보임으로써 유명해졌다. 그 한 증상은 아주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것으로, 그녀한테 라틴어 기도문이나 엑소시즘 문구를 읽어 줄 때마다 발작을 일으켰다. (알려지다시피, 악마들은 하나님과 교회를 증오하기 때문에 성서나 기도서의 거룩한 단어를 접하면 격노한다.) 

 

  이 무식한 여인이 라틴어를 도대체 어떻게 아는 것일까 시험하기 위해 오를레앙의 주교가 페트로니우스[각주:2]의 책을 펼치고 <에페수스의 과부>라는 아주 비교훈적이며 좀 지저분한 대목을 장엄한 어조로 읽었다. 효과는 정말 마술 같았다. 첫 구절이 낭랑하게 다 울리기도 전에 마르테가 마룻바닥에 엎어져 뒹굴면서 신성한(!) 말씀을 들려주어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주교한테 욕설을 퍼부었다.  

 

  한데 이 테스트 불합격에도 불구하고 마귀 들린 여인이라는 명성에 종지부가 찍히기는커녕 마르테가 계속 인기를 누렸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주교를 피해 달아나서 카푸친회 수사들의 보호를 받았다. 그들은 그녀가 부당하게 박해받았다고 선언하고, 저들 엑소시즘에 엄청나게 많은 군중을 끌어들이는 데 그녀를 이용했다. 

 

  내가 아는 한, 루덩의 수녀들은 ‘페트로니우스 테스트’ 같은 것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사실, 참관하러 온 한 귀족이 그와 비슷한 실험을 하긴 했다. 그는 엑소시스트에게 상자를 하나 건네면서, 아주 귀한 성유물이 들어 있다고 귀띔했다. 그 상자를 수도사가 한 수녀 머리 위에 올리자 그녀가 금방 견디기 힘든 통증 때문에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탁발수사가 몹시 흐뭇해하며 상자를 주인에게 돌려주자, 주인이 상자 뚜껑을 열어 주변 사람들에게 보였다. 

 

  그 안에는 숯덩이 두어 조각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아아, 나리, 우리한테 왜 이런 장난을 하시는 겁니까?” 

  엑소시스트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귀족이 응수했다.

  “수도사여, 그대야말로 우리한테 왜 이런 장난을 하는 게요?” 

 

  루덩에서는 단순한 방언 테스트를 종종 시도했지만, 결과가 늘 신통치 못했다. 수녀들이 마귀에 들렸다고 굳게 믿은 니옹이 기록한 에피소드가 여기 있다. 

  님(Nimes)의 주교가 클레어 수녀에게 가서 묵주를 가져와 아베마리아 기도문을 읽으라고 그리스어로 지시한다. 그 말을 듣고 클레어 수녀가 처음엔 머리핀을 가져오고 이어서 아니스 씨 같은 것을 가져온다. 그러나 주교의 못마땅한 표정을 보고서 “아아, 뭔가 다른 것을 원하셨군요” 하고 능청 떨면서 결국 묵주를 가져오고 필요한 기도문을 읽었다. 이 일을 순진한 니옹은 기적 같은 사건으로 여겼다. 

 

엑소시즘 중에 VIP 방문객 손등에 수녀가 입을 맞추다.가

 

  기적이라 불린 방언 테스트 대부분은 설득력이 더 떨어져 보였다. 라틴어를 모르는 수녀들이 역시 라틴어를 모르는 악마들에 들씌웠다. 이 이상한 사실을 해명하기 위해 프란체스코회의 한 엑소시스트는 설교단에서 악마들 중에는 배운 자도 있고 못 배운 자도 있다고 공표했다. 

 

루덩에서 유일하게 교육받은 악마들은 원장수녀에게 파고든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 배웠다는 악마들조차 라틴어 문법은 형편없었다. 세리제 치안판사가 배석한 가운데 1632년 11월 24일 진행된 신문 기록의 일부를 여기 소개한다. 

 

  「바레가 악마에게 묻는다. “Quem adoras?” 

  대답: Jesus Christus. 

  그러나 법정 관리가 큰 소리로 말한다. “이 악마가 하는 말은 뭔가 안 맞소.” 

  그러자 엑소시스트가 질문을 바꾸었다. “Quis est iste quen adoras?” 

  그녀가 대답했다. “Jesu Christie.” 

  그 대답에 몇몇이 지적했다. “라틴어가 틀렸어!”

  그러나 엑소시스트는 그들이 잘 듣지 못했으며 수녀원장이 “Adoro te, Jesu Christe” 하고 말한 것이라고 우겼다. 

  그러고 나서 키 작은 수녀가 달려와서 깔깔대며 “그랑디에, 그랑디에!” 하고 외쳤다. 또 보조 수녀 클레어가 말 울음소리를 내며 들어왔다」[각주:3]

 

  가엾은 잔느! 그녀는 주격이며 대격, 호격 같은 복잡한 격변화를 이해할 만큼 라틴어를 충분히 공부하지 못한 것이다. Jesus Christus, Jesu Christe… 기억할 수 있는 건 다 입에 올렸지만, 그래도 저들은 틀린 라틴어라고 하다니! 

 

  그러자 세리제가 선언했다. “만약 수녀원장이 내 질문 두세 가지에 시원스레 대답한다면” 나도 그녀가 정말 악마에 들씌웠다고 믿어 보겠소. 그러나 질문이 나왔지만 대답이 없었다. 완전히 당황한 잔느는 결국 발작을 일으키고 희미하게 울부짖음으로써 궁지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 설득력 떨어지는 시연을 벌인 다음날 바레가 세리제를 찾아가서 자신은 정말이지 순수하게 행동했으며 악의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가 성합을 머리에 올리고 맹세하기를, 이 모든 일에서 수녀들한테 그 어떤 비행이나 속임수, 강압 따위를 썼다면 자신이 저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카르멜회 수도원장이 앞으로 나와서 비슷한 주장과 저주를 운운했다. 그 역시 성합을 머리 위에 올리고 이 사건에서 자신이 죄를 범했거나 오류를 저질렀다면 다단과 아비람의[각주:4] 저주를 받을 것이라 했다.」   

 

  아마도 바레와 수도원장은 저희 행위의 괴물 같은 측면에 눈이 멀 정도로 광적이었을 것이며, 그런 거창한 서약도 양심적으로 했음이 분명하다. 덧붙이자면, 참사회 위원 미뇽은 제 머리 위에 그 무엇도 올리지 않고 그 어떤 천벌도 자신에게 돌리지 않는 쪽을 택했다. 

 

  (몇 해 동안 마귀 들림 소동이 벌어지는 중에 루덩을 방문한 저명한 영국 여행객들 가운데 젊은 존 메이틀랜드가 있었다. ...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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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8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extrasensory perception - 초감각적 지각, 초능력. *psychokinesis - 사이코키네시스, 염력 행사, 정신력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일 [본문으로]
  2. Gaius Petronius (?20-66) - 고대 로마의 정치가, 소설가. 미모와 정숙함과 정절로 소문났던 ‘에페수스의 과부’가 남편 죽은 뒤 따라서 굶어죽기로 작정했다가 변절하여 타락한다는 삽화는 장편 <사티리콘>에 실려 있다. [본문으로]</사티리콘>
  3. (*넌 누구를 경배하느냐?) (*예수 그리스도) (*네가 경배하는 이가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 - 문법이 틀렸다. “Jesum Christum”으로 대답해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을 경배합니다.) [본문으로]
  4. 민수기 16:1-16: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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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Huxley Aldous

 


 

7-2

 

  우리가 살펴봤듯이 마귀 들림이라는 가설이 그럴 듯해 보인 이유는… 생리학이 아직 세포 구조나 유기체의 화학적 과정을 찾지 못했으며, 심리학이 무의식 수준에서 벌어지는 정신 활동을 사실상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마귀 들림이란 것을 현재는 주로 로마가톨릭과 심령주의자들만 받아들이고 있다. 

 

 심령술사들은 심령술 세션 중에 벌어지는 몇몇 희귀한 현상을 죽은 사람의 혼이 영매의 몸에 잠시 들어앉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톨릭교도들은 떠도는 혼령의 존재를 배척하지만, 어떤 정신적 착란과 육체적 교란을 악마 세력의 작용으로 설명하고, 정신이나 육체가 신비로운 상태에 접어드는 것을 어떤 거룩한 힘의 작용으로 해석한다. 

 

  내가 알 수 있는 한 귀신들림이라는 생각에 자가당착이란 전혀 없다. 이런 개념을 ‘고대 미신의 잔재’라 치부하면서 막연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건 다른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에 조심스레 고려할 수도 있을 작업가설로 취급하는 것이 더 낫겠다. 

  현대 엑소시스트들은 대부분의 마귀 들림이 히스테리 형태이며 그런 강박관념을 정신의학으로 치료하는 게 더 좋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가끔은 단순한 히스테리를 넘어 초자연적인 뭔가가 틈입했다는 증거를 발견하고, 그럴 때는 들러붙은 악령을 엑소시즘으로 몰아내야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육체를 떠난 스피릿이나 죽은 사람의 ‘심령 요소’의 입을 통해 말하는 영매도 희귀한 현상을 설명하는 논거가 됐다. 그런 귀신들림의 초기 증거는 마이어스의 <인격, 그리고 육체적 죽음 이후 인격의 생존>에서 쉽게 살펴볼 수 있다.[각주:1] 이런 부류의 저술로 얼마 전 나온 것으로는 조지 티렐[각주:2]의 <The Personality of Man>이 있다. 

 

  이 주제를 저서 <귀신들린 자들>에서 아주 상세하게 연구한 외스터라이흐[각주:3]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즉, 악마에 대한 믿음은 19세기 내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그 대신 ‘떠도는 혼령’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흔해졌으며, 그런 만큼 이전에 자기네 질병을 악마 탓으로 돌리던 노이로제 환자들이 폭스 자매가 등장한 뒤로는 죽은 악인들의 떠도는 혼령을 비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최근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귀신들림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형태를 띠었다. 이제 신경증 환자는 어떤 적대자가 보낸 무선 메시지 같은 것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고 종종 투덜댄다. 가엾은 에디 부인[각주:4]의 상상 속에서 여러 해 떠돌던 ‘악의적인 동물 자기’가 이제 ‘악의적인 전자 기기’로 바뀌었다. 

  천육백 년대에는 무선통신이 없었고, 떠도는 혼령이라는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로버트 버튼이 악마란 죽은 악인들의 혼령이라는 견해를 인용하지만, 그것이 ‘터무니없는 교리’임을 강조하고자 함이었을 뿐이다. 그가 보기에 마귀 들림이란 명백한 사실이요, 전적으로 악마들의 소행이었다. (250년 지나 마이어스가 보기에도 귀신들림이 실재하는 사실이긴 했으나, 그건 이미 악마가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혼령에 의한 것이었다.) 

 

  악마들은 존재하나?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잔느 수녀와 다른 동료 수녀들 몸에 들어앉았나? 마귀 들림 문제와 마찬가지로, 선하든 악하든 무심하든 인간 외적인 스피릿들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을 그저 황당하거나 자가당착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만은 없다. 인간의 정신만이 우주에서 유일한 정신임을 믿으라고, 그 무엇도 우리를 다그치지 않는다

 

  만약 투시력과 텔레파시, 육감 등이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 한다면 (그런 현상을 거부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공간과 시간과 물질에 덜 좌우되는 정신 작용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 외적인 지능들이, 형태가 없거나 혹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방법으로 우주 에너지와 연결된 인간 외적인 지능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부정할 근거는 전혀 없어 보인다. 

  (덧붙이자면, 우리가 ‘육체’라 부르는, 고도로 조직화된 우주 에너지 응축물과 우리네 마인드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어떤 연관이 있음은 분명하나, 물리적 에너지가 사유 에너지로 어떻게 바뀌는지, 사유 에너지가 물리적 에너지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우리는 아직 모른다.) 

 

  크리스트교에서 악마들은 최근까지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독교가 존재하던 맨 처음부터 그래 왔다. А. 르페브르 신부가 언급하듯이, 이런 이유에서 그렇다. 

  「악마는 구약에서 아주 작은 자리만 차지한다. 악마의 제국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한데 신약은 사탄을 악의 동맹 세력의 우두머리로 들춰낸다.」 

  현재 번역된 <주기도문>에서 우리는 악에서 구해 달라고 전능자에게 청한다. “우리를 유혹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유혹자에게서 구하소서.” 

 

  이론으로나 신학적 정의로나 크리스트교는 마니교[각주:5]처럼 이원론적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인에게 악은 본질적인 게 아니며, 현실적이고 기본적인 원칙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선이 박탈된 것이요, 하나님께 근원을 얻은 자들이 타락한 것일 뿐이다

  기독교의 사탄은 아리만[각주:6]의 다른 이름이 아니요, 빛이라는 신성한 원칙에 맞서는 어둠이라는 영원한 원칙이 아니다. 사탄이란 여러 시기에 하나님한테서 떨어져 나온, 숱한 천사들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자에 불과하다. 그저 정중하게 대한다는 뜻에서 그를 어둠의 제왕이라 부르는 것일 뿐. 악마는 많은데 그 중에 우두머리가 사탄이다. 

 

  악마들은 다 개체이고, 그 각각이 나름대로 성격과 기질, 유머감각, 변덕, 특이성을 지닌다. 권력 지향적인 악마, 음탕한 악마, 탐욕스러운 악마, 오만하고 으스대는 악마 따위가 있다. 게다가 어떤 악마들은 다른 자들보다 더 뚜렷한 지위를 차지한다. 왜냐면, 그들은 타락하기 전 하늘 계급에서 차지한 지위를 지옥에서도 유지하니까. 

  하늘에서 천사나 대천사였던 자들은 중요성이 적은 하급 악마들. 한때 주권자나 권품천사이거나 능품천사였던 자들이 지옥에서 고급 중산층을 이룬다. 왕년에 지품천사며 치품천사로 있다가 타락한 자들은 귀족이 되는데, 그들 권세는 아주 막강하여 (수렝 신부가 아스모데우스에 관해 언급한 바로는) 지름 30 리그[각주:7]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물리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어도 17세기 신학자 시니스트라리[각주:8] 신부는 주장하기를, 사람은 악마뿐 아니라 해롭지 않은 영적 실체들한테도 홀리거나 최소한 사로잡힐 수 있다고 했다. 이 순진한 영으로는 고대인들의 파우누스, 님프, 사티로스, 유럽 농촌의 고블린, 현대 심령 연구자들의 폴터가이스트가 있는데이들이 악마들보다 더 자주 사람한테 들러붙는다고 한다. 

  시니스트라리 신부에 따르면, 대다수 인큐버스와 서큐버스[각주:9]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미나리아재비나 메뚜기보다 더 나쁘지도 않고 더 좋지도 않았다. 

 

incubus succubus

 

  한데 루덩에서는 이런 친절한 이론을 거론하는 사람이 불행하게도 없었다. 수녀들 상상에서 난무하는 색정적 판타지는 죄다 사탄과 그의 전령들 탓으로 돌리고 말았다

 

  반복하건대, 신학자들은 마니교의 이원론으로부터 기독교를 철저히 지켜왔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늘 악마가 마치 하나님과 자격이 동등한 경쟁자인 양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들은 선과 선행을 키우는 방법보다는 악과 악에서 벗어남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악의 치료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을 위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악과 맞서 싸우는 이들은 세상을 좋게 만들기 어렵다. 잘 해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놓아둘 뿐이며, 자칫 더 나쁘게 만들게 되는 경우마저 있다. 악을 더 많이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녔다 할지언정 세상에 악이 더 횡행하도록 조장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기독교는 실제에서 마니교의 이원론에 종종 빠지면서도 교리로 보자면 그런 것이 절대 아니었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는 행위뿐 아니라 신조와 이론에서도 마니교 식 이원론인 코뮤니즘과 내셔널리즘의 맹목적인 숭배와는 차이가 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우리는 빛의 편에 있으나 저들은 어둠 쪽에 있다고 확신한다. 저들이 어둠의 종사자인 한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을 공경하는 우리네 본성이, 가혹함을 다 정당화하지 않는가) 저들을 징벌하고 파괴해야 한다. 

  20세기에 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르마즈드[각주:10]처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다른 동료들을 악의 원리인 아리만으로 간주함으로써 이 시대의 악마주의에, 극악무도한 행위에, 승리를 안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루덩에서 엑소시스트들이 행한 것이 바로 그런 짓 아니겠는가. 단지 무대와 규모가 작았을 뿐이지. 그들은 하나님을 저희 파벌의 정치적 이익과 맹목적으로 동일시하고 저희 생각과 노력을 악마의 힘에 집중했다. 그 결과 그들이 맞서 싸운 사탄이 승리하도록 안간힘을 쓴 꼴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그 승리는 한 도시에 국한되고 한시적인 것이었지만. 

 

  인간 외적 정신들이 우주에 존재하는지 아닌지, 또 그것들이 사람 몸에 들어앉을 수 있는지가 지금 우리 책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은 오직 하나. 즉, 만약 그런 현상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것들이 루덩에서 그런 일을 벌인 것이라 추정할 수 있을까? 

  현대 가톨릭 사가들은 그랑디에가 재판받고 처형될 만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데 한 목소리로 동의한다. 그러나 브레몽 수도원장이 <프랑스에서 종교적 감정의 문학적 역사>에서 거론하는 몇몇 사가들은 수녀들이 정말 마귀 들림의 제물이었다고 아직도 확신한다. 관련 문헌들을 섭렵하고 이상심리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의견을 지닐 수 있는지, 난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수녀들 행위에는 현대 정신과 의사들이 기록한 많은 히스테리 사례에서 벗어나고 훌륭하게 치료될 수 없는 것이 없다. 또 악마 세력의 징표가 된다는 초자연적 능력을 수녀들 중 누군가가 발휘했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짜 귀신들림을 협잡이나 질병 증세와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가톨릭교회는 네 가지 테스트를 제시한다. ...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04.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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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Frederic Myers (1843-1901) - 영국의 고전학자, 인문학자, 시인, 심리학자, 심령 연구가. 런던 '심령 연구 협회' 창설. 는 잠재의식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끼쳤다는 평가. 수면(정상적 징후), 히스테리(비정상적 징후), 텔레파시(비범한 징후) 등을 잠재의식의 기능으로 보다. 현대 초심리학에 영향. [본문으로]
  2. George Tyrrell (1879-1952) - 영국의 초심리학자. 초자연적인 주제를 주류 심리학에 소개. <유령 apparitions>(1953)은 심령 연구 분야에서 고전적 이론서. [본문으로]</유령>
  3. Traugott Oesterreich (1880-1949) - 독일의 철학자, 종교철학의 권위자, 튀빙겐대학 교수, 현대 독일 학자들 중 처음으로 심령 현상을 믿는다고 공표. 유대인 아내와 반군국주의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나치 치하에서 겨우 살아남다. 은 귀신들림과 다중인격을 고대의 경우부터 상세히 연구한 저술로서, 윌리엄 블래티의 소설 <엑소시스트>(1971)에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이 영화화된 이후 귀신들림과 엑소시즘에 대해 관심이 다시 일면서 외스터라이흐의 책들도 다양하게 다시 출간됐다. [본문으로]
  4. Mary Eddy(1821-1922) - 1866년 미국의 신흥 교파 크리스천 사이언스 창시. [본문으로]
  5. 페르시아 사람 마니(216-276)가 창시한 2원론적 종교 운동. 오랜 기간 크리스트교의 이단으로 간주돼 왔지만, 일관된 교리며 엄격한 제도와 조직을 갖추면서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진리에 대한 영적 지식(gnosis)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영지주의(靈知主義)에 속한다.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두 실체, 즉 영혼과 물질, 선과 악, 빛과 어둠이 분리되는 과거와, 두 실체가 혼합되는 현재, 원래의 2원성이 재설정되는 미래의 3단계로 구분. [본문으로]
  6. Ahriman - 아리만 또는 아흐리만. 조로아스터교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악이자 근본적 어둠을 상징하는 존재. 선과 진실의 근원인 아후라 마즈다에 대립하는 신. [본문으로]
  7. league - 프랑스의 거리 단위. 1리그=4.8 킬로미터. [본문으로]
  8. Ludovico Sinistrari (1622-1701) -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회 성직자, 저술가. [본문으로]
  9. succubus - 중세 유럽의 전설과 민속에서, 남성의 꿈에 나타나 유혹하는 여성형 몽마(夢魔). [본문으로]
  10. Ahura Mazda - 조로아스터교에서 아리만과 대립하는, 빛과 선의 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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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젊은 시절

 


 

  근세 과학 문헌을 읽다 보면 가장 거친 초자연주의[각주:1]와 가장 거칠고 나이브한 유물주의[각주:2] 같은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데 이 덜 다듬어진 유물주의는 현대의 유물주의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옛 이론이 다루는 ‘물질’[각주:3]은 정확하게 계량되는 무엇이 아니다. 거기서는 그저 따스함과 차가움, 건조함과 축축함, 가벼움과 무거움 따위 얘기만 나온다. 이런 질적 표현을 양적 규모로 밝히려는 시도가 전혀 없다. 우리네 선조들의 관념에서 ‘물질’은 측정되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주 적다

 

  두 번째 차이점이 첫 번째 못잖게 중요하다. 우리 관점에서 ‘물질’은 늘 움직이는 무엇이며, 실제로 그 본질은 바로 움직임에 있다. 모든 물질은 늘 뭔가를 하고 있고, 모든 형태의 물질 중 생체를 구성하는 콜로이드[각주:4]가 가장 미친 듯이 바쁘다. 하지만 콜로이드의 움직임은 놀랍게도 서로 조화를 이루니, 유기체의 한 부위에서 벌어지는 과정이 다른 부위들의 과정을 조절하고 또 그것에 의해 조절되면서 에너지 균형을 만든다. 

 

  고대와 중세 사상가들에게 물질이란 본질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물건일 뿐이었다. 살아있는 신체를 얘기할 때조차 그랬다. 그 생체에서 어떤 움직임이 벌어졌다 하면, 식물에서는 오로지 식물적 영혼이, 짐승들에서는 식물적 영혼과 감각적 영혼이, 또 인간한테서는 그 두 영혼과 더불어 이성적 영혼이 작용한 것이었을 뿐. 

 

  생리 과정은… 과학으로서의 화학이 아직 없었기에 화학 용어로 설명되지 못했고, 전기라는 것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전기 자극으로 설명되지 못했고, 현미경이 없는데다 아무도 세포를 본 적이 없기에 세포 활동으로도 설명되지 못했다. 신체 조직을 구성하는 물질들의 활동 형태는 전부 (전혀 어려움 없이) 그저 영혼의 특별한 기능으로 설명됐다. 

  영혼에는 예를 들어 성장 기능, 영양 공급 기능, 분비 기능이, 한마디로 생리 과정에 관련된 기능이 다 있었다. 이런 가설이 철학자들에겐 참으로 편리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추상적 개념에서 자연 현상으로 옮겨가려 했을 때, ‘영혼의 특별한 기능’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적다는 점을 알았다. 

 

  중세 유물주의의 투박한 성격은 당대 문학에서 사용된 여러 메타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생리적 요소들은 부엌과 변소에서 벌어지는 것에 은유됐다. 당시 문학에는 끓는 것과 끓어서 터지기 직전의 것과 압력으로 일그러지는 것, 오수 구덩이와 대저택 이동 변기의 응고물에서 나오는 부패물과 악취에 관한 얘기가 늘 나왔다. 그런 개념들에 의거하여 신체 기관의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극히 어렵다. 

 

  좋은 의사는 치료자 본능을 타고난 사람으로, 지식이 재능과 직관적 진단을 너무 간섭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자연은 간섭받지 않으면 스스로 치유 기적을 행할 수 있다

 

  버튼의 방대한 편찬물에는 갖가지 헛소리며 위험한 난센스와 더불어 번뜩이는 센스가 적잖이 들어 있다. 난센스는 주로 당대에 횡행하던 과학적 이론들과 연관되고, 지혜로운 센스는 주로 통찰력 있고 선량한 숙련가들이 열린 마음으로 얻은 경험에서 나온 것. 그들은 또 동료를 사랑하고 환자 다루는 비결을 터득하고 자연의 치유력을 믿은 이들이었다

  자연적 원인이든 초자연적 원인이든 멜랑콜리라는 질병을 의사들이 어떻게 치료했는지 관심 있는 이들은 버튼의 황당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우리 이야기를 위해서는 잔느와 다른 동료 수녀들이 재판 기간 내내 의료진의 관리를 받았다는 점을 언급하면 충분하다. 아쉽게도, 버튼이 묘사한 현명한 치료법 어떤 것도 그 수녀들한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을 신선한 대기로 내보내지 않았고, 식이요법을 처방하지 않았고, 몸을 좀 고되게 할 만한 일도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사혈과 관장에 시달리고 별의별 환약과 탕제를 끝없이 삼키고 들이켜야 했을 뿐이다

  그런 치료가 어찌나 괴물 같았던지, 양심적인 의사 몇몇은 수녀들을 검사한 뒤 치료 열성이 지나쳐서 병세가 외려 악화됐다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했다. 수녀들한테 늘 다량의 안티몬이 투여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고생했는지도 모른다. 

 

  [저자 주 → 이런 진단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묘사하는 사건들이 벌어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 세대에 걸쳐 의사들이 안티몬을 두고 대립해 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갈레노스의 관점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을 그 어떤 질병 치료에도 효과가 탁월한 약제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적인 의사들이 압력을 넣자 파리 고등법원은 프랑스 전역에서 안티몬 사용 금지 포고령을 발동했다. 그러나 법령은 준수되지 않았다. 

 

  법안 통과 후 반세기가 지나 그랑디에의 친구이자 루덩에서 가장 저명한 의사인 테오프라스트 르노도[각주:5]가 안티몬의 효능을 열렬히 찬양하고 있었다. 그의 후배뻘이며 유명한 <서신>의 작자인 귀 파탱[각주:6]은 또 그에 상충되는 관점을 맹렬히 옹호했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는 르노도며 다른 갈레노스 반대자들이 아니라 파탱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안티몬 화합물은 칼라아자르라고 알려진 열대병 치료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이용할 가치가 거의 없다. 어찌 됐건, 16세기와 17세기에 안티몬의 무차별 남용은 의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긴 해도 경제적 관점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차고 넘쳤다. 아담과 동료 약제사들은 금속 안티몬으로 ‘영구 환약’을 팔아 돈을 짭짤하게 벌었다. 이 환약은 삼키면 창자를 지나면서 점막을 자극하여 하제처럼 작용했고, 변기통에서 꺼내 씻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무한정 쓸 수 있기 때문에 한번 구비하면 그 다음에는 배변 촉진제에 돈 들일 일이 더 없었다. 의사 파탱이 격렬하게 비난하고, 파리 고등법원이 금지했다. 하지만 변비까지 일으킬 정도로 인색한 프랑스 부르주아에게 안티몬의 매력은 물리치기 힘들었다. 이 영구 환약을 가보처럼 취급하면서 대물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초기 갈레노스 반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명성 높은 파라셀수스[각주:7]가 잘못된 유추 하나로 안티몬에 열정을 품게 됐다는 점을 여담 삼아 언급할 만하다. 이렇게 말했다. “안티몬은 금을 정제하면서 슬래그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인체도 깨끗하게 해준다.” 

 

  금속 세공사와 연금술사의 작업을 의사와 영양사의 작업과 비교함으로써 생긴 또 다른 잘못된 유추는 식료품을 더 많이 가공할수록 유용성이 더 커진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흰 빵이 갈색 빵보다 더 좋고, 부글부글 끓인 부용(bouillon)이 그 안에 든 본래의 고기며 야채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믿음. ‘거친’ 식품을 먹는 사람들은 거칠어진다고 짐작들 했다. 파라셀수스가 이렇게 말한다. “치즈와 우유, 오트밀 비스킷을 먹는 사람은 섬세한 기질을 지닐 수 없다.” 

  우리네 식생활 이론을 연금술에 잘못 유추하면서 벌어지던 혼란은 불과 한 세대 전 비타민이 등장한 뒤에야 멈추게 됐다.] 

 

  하지만 ‘멜랑콜리’ 치료법이 아무리 잘 개발돼 있었다 한들 마귀 들림과 악마의 틈입 때문이라는 믿음이 훨씬 더 널리 퍼진 당시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의사들 가운데서도 그랬다. 버튼의 글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귀신이며 악마 얘기에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법률가며 성직자, 의사, 철학자 대다수가 그 반대편에 있다.’ 

 

  벤 존슨[각주:8]은 <악마는 당나귀처럼 투미해>에서 17세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우리한테 선명하게 남겼는데, 거기에는 맹신과 의심, (특히 도저히 믿을 게 못 되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의존과 응용과학의 새로운 발견에 대한 순진한 자만이 공존한다. 극중 인물인 피츠도트럴은 마술 딜레탕트로서, 악마와 만나기를 갈망한다. 악마들은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고 있으니까. 

 

The Devil is an Ass. by Ben Johnson

 

  그러나 마법과 사탄의 힘을 믿는 마음과 함께 우리 아버지들이 ‘기획자’라 부르던 회사 프로모터며 뭔가 발견했다고 큰소리치는 사기꾼들, 의심쩍은 발명품들에 대한 믿음 역시 아주 강하다. 자기한테 천팔백만 파운드를 확실히 만들어주고 공작 신분까지 얻어주는 계획을 기획자가 세우고 있다고 피츠도트럴이 말하자,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 거짓된 혼령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한다. “혼령이라니!” 피츠도트럴이 소리친다.

 

혼령이라니! 그런 건 없어, 여보, 멀쩡한 이성만 있는 거야. 

이 사람은 악마와 악마의 작업을 다 거부하지. 

이 사람은 엔진과 기계장치로만 일을 해, 이 사람은 그래! 

이 사람은 날개 달린 쟁기를 발명했어, 기적 같지, 

그게 있으면 40에이커 밭도 한순간에 다 갈아엎어! 

그 넓은 밭에 물을 대는 기계도 다 있어

 

  피츠도트럴은 물론 코믹하면서도 그 시대에 아주 전형적인 형상이다. 그가 상징하는 바는 자연적인 세계와 초자연적인 세계, 이 두 세계에 지적인 생활이 불안하게 양다리 걸친 시대. 그가 두 세계의 최선 대신 최악을 취하려고 애쓴 것도 역시 슬프지만 전형적이다. 

  우둔한 자들은 순수한 과학보다 과학적 협잡에, 성령에 대한 믿음보다 밀교와 비술에 훨씬 더 매료를 느낀다

 

  루덩의 수녀들 스토리에서 그렇듯이 버튼의 책에서 이 두 세계는 공존하고 용인된다. 한편에는 공인된 의술로 치료해야 하는 멜랑콜리가 있다. 한데 마법과 귀신들림 또한 잘 알려져서, 그것들이 몸과 마음에 질병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해서 놀랄 건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하늘이나 땅이나 물에, 땅 아래에, 빈 곳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으며, 파라셀수스가 한사코 주장하듯이 대기 중에는 보이지 않는 악령들이 여름날 파리보다 훨씬 더 가득하여 늘 저마다 갖은 혼란을 획책하니 말이다.」 

 

  버튼에 의하면, 혼령의 수효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네 어떤 수학자들 말이 옳다면, 즉 돌멩이가 별들이 빛나는 하늘이나 여덟 번째 천구에서 떨어져 시속 100마일로 날아간다면, 그건 어떤 이들 말대로 1억7천만803마일이라는 엄청난 거리를 지나 지구에 닿기까지 65년이나 그 이상이 걸릴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광활한 공간에 혼령이 얼마나 많이 거처할 수 있겠는가?」 

 

  우주관이 그럴진대, 악마들이 우연히 어떤 사람한테 들어앉는다는 것이 놀라운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대다수 사람들이 귀신들리지 않고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녕 놀라웠다

(7-1편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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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7-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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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초자연주의 - 감각적 인식으로 파악되는 자연적 존재를 초월한 정신적 존재가 있다고 단정하고, 그에 관한 인식은 신앙, 계시, 직관 등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 [본문으로]
  2. 유물주의 -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정신이나 의식 따위는 물질의 산물이라는 이론. [본문으로]
  3. 물리에서, 자연계를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질량을 가지는 것. [본문으로]
  4. 원자나 보통 분자보다는 크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작은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 또는 그 물질이 기체, 액체, 고체 속에서 분산되어 있는 상태. 입자 크기는 1~10나노미터, 거름종이는 통과하지만 반투막은 통과하지 못한다. [본문으로]
  5. Théophraste Renaudot (1586-1653) - 프랑스의 의사, 저널리스트. 프랑스 저널리즘의 창시자. 빈민 구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본문으로]
  6. Gui Patin (1602-1672) - 프랑스의 유명한 의사, 저술가. "늙음과 탐욕은 늘 한 패거리". [본문으로]
  7. Paracelsus (1493-1541) - 스위스계 독일의 의사, 식물학자, 연금술사, 자연철학자, 점성가, 밀교 신봉자. 치료화학 창시자들 중 한 사람. 자신이 지은 라틴어 이름은 '셀수스를 능가하는 사람'이라는 뜻. *셀수스 - 고대 로마의 철학자, 의사. 다방면에 박학다식하여 철학, 수사학, 법률, 농업, 군사, 의료에 관한 책을 20권 가량 남겼다. 의학 전문어의 토대를 마련했다. 명료하고 우아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들 중의 키케로'라 불린다. [본문으로]
  8. Benjamin Jonson (1572-1637) - 잉글랜드의 시인, 극작가. 연극배우, 드라마 이론가. 는 제임스 1세 국왕 시대의 코미디. 1616년 초연. 무대는 사탄과 그보다 하급 악마인 퍼그가 있는 지옥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피츠도트럴은 어딘가 땅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겠다는 욕심으로 마법사며 요술쟁이들과 교류하면서 악마를 만나겠다는 생각에 푹 빠져 있는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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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우울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희망이 있어, 그럴 듯한 스캔들을 만드는 거지. 그자를 현장에서 붙잡을 수 있게끔 어떡하든 상황을 조장하는 게요. 그 죽은 양조업자의 과부하고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약제사가 우울한 표정으로 알렸다. 

  그쪽에는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정보가 없어요. 여편네가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 그 집 하녀는 매수가 안 되고… 그렇잖아도 내가 간밤에 덧창 틈으로 동정을 살피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누군가가 이층 창문에서 철철 넘치는 요강을 쏟아 붓지 뭐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주임신부는 여전히 태연하고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평소처럼 제 비즈니스와 쾌락을 즐기며 나다녔다. 곧 아주 이상한 소문이 약제사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임신부가 마드무아젤 드브루와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군. 

  아, 그 고상하고 독실한 체하기로 유명한 마들렌하고? 

 

  마들렌은 르네 드브루의 세 딸 가운데 둘째이고, 르네 드브루는 재산이 넉넉한데다가 귀족이며 지역 최고 가문들과 혈연관계가 두터웠다. 마들렌의 두 자매는 이미 시집을 갔다. 하나는 내과의한테, 또 하나는 지방 대지주한테. 그러나 서른이 다 된 마들렌은 미혼으로 자유로이 살았다. 구혼자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그녀가 다 퇴짜를 놓았다. 집에 남아서 늙은 부모를 보살피며 자신만의 관심사를 생각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그녀는 신중하고 초연한 태도 아래 강한 감정을 억누르며 조용하고 수수께끼 같은 젊은 여인 축에 들었다. 나이 든 세대는 그녀를 칭찬하지만 동갑나기와 후배 중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까칠하고 젠체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또 자기네 요란한 놀이에서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흥을 깨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나치게 독실했다. 

  종교야 아주 좋지, 하지만 사생활의 신성함을 침범당해서야 되겠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툭하면 성찬례를 받고 하루걸러 고해를 하고 성모 상 앞에서 몇 시간씩이나 무릎 꿇다니 말이야. 

  아냐,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너무 심해. 

  그들이 그녀를 멀리했다. 그건 마들렌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 부친이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친이 암에 걸렸다. 노부인이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병치레하는 동안 그랑디에가 자주 찾아왔다. 배부른 줄 모르는 과부와 검찰관 딸의 일만으로도 정신없지만, 가엾은 여인에게 종교적 위안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죽음의 침상에서 드부르 부인은 딸한테 그의 조언을 잘 따르라고 당부했다. 주임신부가 마들렌의 물질적, 영적 문제들을 제 일처럼 잘 지켜주겠노라 약속했다. 나중에 약속을 지켰다. 비록 자신의 특유한 방식으로 했지만.

 

  모친이 죽고 한동안 마들렌은 세속 인연을 다 끊고 수녀원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 생각을 영적 조언자한테 밝히면서 상담했을 때, 그가 그 계획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랑디에가 강력히 주장했다. 

  수녀원 안보다 바깥에서 당신은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오. 우르술라회나 카르멜회의 수녀가 되면 자기 재능을 감추는 꼴이 될 게요. 당신 자리는 여기, 루덩에 있소. 당신 소명은 썩기 쉬운 허영심만을 생각하는 멍청한 처녀들한테 반짝이는 지혜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오. 

 

  그가 청산유수로 말했고, 그 말에는 신성한 영력이 있었다. 두 눈에서 불길이 일고, 내면의 열기와 영감으로 얼굴이 환히 빛나는 듯했다. 마들렌이 생각했다. 이분은 사도처럼 보여, 천사처럼 보여. 이 말이 다 옳아,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녀가 양친 모시고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 집이 아주 어둡고 쓸쓸해 보였기에 거의 모든 시간을 친구인 (거의 유일한 친구인) 프랑수아즈 그랑디에와 함께 보냈다. 그녀는 사제관에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둘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깁거나 성모나 성인들을 위해 화려한 수를 놓으며 앉아 있는 자리에 때때로 그랑디에가 끼어들었다. 

이보다 더 자연스러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세상이 갑자기 더 환해지고 신성한 의미로 충만한 것처럼 보였으며, 마들렌 얼굴이 행복에 겨워 장밋빛이 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랑디에가 제 그물에 걸려들었다. 그의 전략은, 그건 바로 노련한 유혹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인데, 겉으로는 냉담한 척하면서 상대 마음에 불을 지피고, 그걸 정점까지 끌어올린 뒤 결국 제 교활함의 결실을 따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캠페인이 진척되면서 또 뭔가가 잘못 되고 있었다. 혹은, 뭔가가 잘 되고 있었다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저 관능적 만족이나 또 하나의 순진한 제물에게서 거두는 헛된 승리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분방한 기질의 소유자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로 바뀌었다. 이건 도덕적 성장에서 중요한 행보. 하지만 가톨릭교회 성직자에게 혼인이란 윤리와 신학과 교회와 사회라는 측면에서 숱한 곤경을 거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성직자의 독신주의에 관한 소론을 쓴 이유는 바로 그런 곤경에서 조금이라도 헤어나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부도덕한 이단자라 여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면서도 강력한 욕망으로 생긴 행동 방침을 단념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 충동이 본질적으로 좋으며 더 높고 더 풍성한 삶을 향한 것이라 인식될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바로 이런 면에서, 특정 시대와 지역에서 유행하는 철학 용어들을 동원하여 비정통적 행위를 당대 세태에 맞추면서 충동이나 본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흥미진진한 문학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의 소논문은 이런 감동적인 옹호 장르에서 상당히 특이한 모델이었다. 그는 마들렌 드브루를 사랑하며 이 감정에 추한 게 전혀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의 규율로 보자면, 가장 행복한 육적 사랑마저도 악으로 인식됐다. 

  따라서 그런 규율이 축자적으로 해석돼서는 안 되며, 자신이 불혼 서약을 하면서도 그걸 꼭 지키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논거를 찾아내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게 옳은 행동이라고 확신시키는 논거를 찾기란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한텐 식은 죽 먹기. 그에게는 제가 쓴 소논문의 논리가 참으로 그럴듯해 보였다. 

 

  더욱 놀랍게도, 그런 논리가 마들렌이 보기에도 전혀 흠이 없었다. 종교적 성향에 지나치게 기울고 신념이 아니라 습관과 기질에서 정조를 지키는 그녀는 교회 법규를 지상명령으로 간주했기에 순결 깨는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면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본성에 어울리는 열정으로. 가슴에 그런 이유가 있는 마당에 그랑디에가 불혼 서약이 절대적인 게 아니며 성직자도 혼인할 수 있다고 입증하자 그 말을 믿었다. 

  만약 간통이 아니라 교회가 축복하는 혼인으로 사랑하는 이와 맺어졌다면 그녀는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사랑할 수 있었으리라.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그녀의 의무였을 터이다. 사랑의 논리가 완벽했다. 연인이 쓴 소논문의 윤리적, 신학적 논거가 마들렌에게는 아주 미덥게 보였다.

 

  그랑디에는 드브루 부인한테 한 약속도 지켰다. 즉, 언젠가 밤에 어둠침침하고 메아리만 울리는 교회당에서 자신이 후견을 맡은 처녀와 혼례를 치른 것.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는가? 

  성직자로서 그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고는 이제 신랑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그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성직자 역할로 돌아온 그가 축사를 읊조리고 다시 신랑으로 돌아가서 그 축사를 무릎 꺾고 받았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의식이었다. 법과 관습과 교회와 국가에 개의치 않고, 그들은 예식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그러니 하나님 눈에도 그 혼인이 적법한 것이라 확신했다.[각주:1]

 

그랑디에 신부와 마들렌의 혼인

 

  그러나 하나님 눈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사람들 눈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루덩의 선량한 주민들 관점에서 마들렌은 주임신부의 또 다른 내연녀일 뿐이었다. 

  순진하고 얌전한 듯싶지만 사실은 sainte nitouche[각주:2] 였던 거야. 

  숙녀인 체했지만 매춘부라는 게 금방 드러났어. 

  법의 걸친 저 프리아포스[각주:3]에게, 비레타 쓴 숫염소에게, 가장 몰염치한 방식으로 제 몸뚱이를 내준 거지! 

 

  아담의 약제용 악어 아래 저녁마다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가 가장 크고 원한이... <2편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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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0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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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6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1560년 푸아티에 지방의 위그노 교회 회의록을 보면, 성직자들이 내연녀와 몰래 혼인하는 일이 아주 잦았다. 이때 여자가 칼뱅파 신자이면, 교회의 중대한 문제가 됐다. - 저자 주. [본문으로]
  2. ‘성녀 니뚜슈’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관용적 표현을 의인화한 것. 직역하면, ‘남자를 멀리하는 성녀’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마치 성녀라도 되는 듯이 굴며 남자와 손가락만 스쳐도 큰 봉변당한 양 호들갑 떠는 여자를 놀리는 데 쓰는 표현. [본문으로]
  3. priapus - 그리스, 로마 전설에서 남근으로 표시되는 풍요의 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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