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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루덩의 악마들

 


6

 

  수석 치안판사 세리제는 예비 조사를 통해 확신하게 됐다. 

  그래, 진짜 마귀 들림 같은 건 없어! 그저 수녀들이 질환에 걸렸을 뿐이며, 여기엔 협잡 기미도 좀 보이는군. 게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 쪽의 상당한 악의, 또 이 일에 관련된 교회 관계자들의 맹신과 광기, 개인적 이해관계 따위로 상황이 조장된 게야. 흠, 저 엑소시즘이라는 코미디를 그만두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되겠어. 

  그러나 수녀들의 혼과 넋을 쏙 빼놓는 그 계획을 중단시키려 하자 미뇽과 바레가 주교의 명령서를 의기양양하게 꺼내들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수녀들에게 퇴마 작업을 계속 시행하라. 그걸 보자 세리제가 교회와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엑소시즘을 계속하도록 허락은 했지만 그 퍼포먼스 때 자신이 꼭 참관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몇 번 하던 중 한번은 굴뚝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벽난로에 검은 고양이가 불쑥 나타났다. 저건 사탄의 자식이 틀림없어! 날카로운 단정이 튀어나온 동시에 사탄의 자식이 구석으로 내몰렸다가 결국 붙잡혀서 성수를 홈빡 뒤집어썼다. 수도사들이 분주하게 성호를 그어대며 그 짐승한테 다시 지옥으로 사라지라고 라틴어로 명령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 끝에 알고 보니 이 위장한 악마는 수녀들이 귀여워하는 녀석으로, 이름이 톰이었다. 녀석은 지붕 위에서 뛰어다니다가 더 빠른 길로 집에 들어오려 했던 것일 뿐. 수녀원 아치 밑에서 라블레를 떠올리게 하는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다.[각주:1]     

 

  다음 날 미뇽과 바레가 뻔뻔스럽게도 세리제의 코앞에서 수녀원 숙사 현관을 걸어 잠갔다. 그가 동료 치안판사들과 함께 쌀쌀한 가을 날씨에 밖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종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동안 안에서는 그의 지시를 어기고 두 수도사가 공식 참관인 없이 저희 제물들에게 퇴마 작업을 시행했다. 

 

루덩 수녀들을 대상으로 미뇽이 퇴마 작업

 

  화가 잔뜩 난 치안판사가 집무실로 돌아와 무례한 엑소시스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했다. 그들 행위는 협잡과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게다가 이런 구절도 들었다. 그랑디에가 악마들과 결탁했다면서 원장수녀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마당에 비밀로 해야 할 것이 무에 있겠소. 오히려 이제 모든 것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공정하게 행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런 단호함에 깜짝 놀란 엑소시스트들이 사죄를 구하며 황급히 알렸다. 수녀들이 진정됐으니 당분간은 엑소시즘이 불필요하게 됐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랑디에가 주교한테 호소하기 위해 푸아티에로 말을 달렸다. 그러나 그가 들렀을 때 라로슈포제는 접견을 거부하고 수하를 통해 이런 취지의 메시지만 덜렁 보냈다. 

  그랑디에 신부는 왕실 판사들한테 소를 제기해야 하고, 이 사건에서 정의가 승리한다면 본 주교는 대단히 행복할 것이다. 

 

  주임신부가 루덩으로 돌아와서 즉각 수석 치안판사에게 미뇽과 그 패거리의 못된 짓거리를 금해 달라고 청했다. 세리제가 신속하게 금지 명령을 내렸다. 차후로는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 성 베드로 교회 주임신부에 대한 중상과 비방을 엄금한다. 이와 더불어 미뇽에게 엑소시즘을 더 이상 시행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참사회 위원이 날카롭게 응수했다. 

  나는 교회 지도부에만 매여 있을 뿐이며, 악마가 개입돼 있기에 완전히 종교적인 이 사건에서 사법 당국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소. 

 

  그 사이에 바레가 시농에 있는 제 교구로 돌아갔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을 더 이상 벌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참사회 위원 미뇽은 조프리디 신부 재판을 다룬, 미하엘리스 수사의 베스트셀러를 매일 몇 시간씩 신도들에게 읽어 주면서 그랑디에는 화형 당한 프로방스 동료 못지않게 위험한 마법사이며 당신들 역시 그의 마법에 걸렸다고 떠들어댔다

 

  그 무렵 수녀들이 어찌나 기이하고 난잡하게 행동했는지 수녀원 기숙학교에 딸을 맡긴 부모들이 경악했다. 기숙학교에는 금방 학생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고, 아직 과감하게 수녀원을 드나드는 통학생 몇 명이 가장 불안케 하는 소식을 들고 나와 사람들 상상을 계속 자극했다. 

 

  수학 시간에 클레어 수녀가 대뜸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지 뭐예요, 마치 누군가가 간지럼 태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식당에서 마르타 수녀가 루이즈 수녀와 드잡이를 했는데, 둘 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댔어요! 

 

마귀 들렸다는 수녀를 상대로 엑소시즘을 시행하는 수도사

 

  11월 하순 바레가 시농에서 돌아온 뒤 그의 영향을 받아 수녀들 증세가 대번에 악화됐다. 수녀원이 이제 정신병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외과의 만누리와 약제사 아담이 불안한 마음에 도시 일류 의사들에게 와서 보고 자문 좀 해주십사 청했다. 그들이 수녀원에 와서 수녀들을 일일이 검사한 뒤 수석 치안판사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결론은 이랬다. 

  「수녀들이 물론 제 정신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이 악마며 악령들의 작용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이른바 마귀 들림은 모든 면으로 판단컨대 실제가 아니라 허황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 보고서로 상황이 종료된 듯했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들과 그랑디에의 적수들한테는 그렇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세리제에게 다시 탄원하자 세리제가 엑소시즘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가학을 끝장내려고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똑같은 스토리가 반복됐다. 즉, 미뇽과 바레가 사법 당국 지침을 또 무시했고, 수석 치안판사는 수도사들을 상대로 물리력을 동원할 때 생길 파문을 우려하여 또 움츠러든 것. 

  그 대신 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 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대미문의 불량한 짓’을 예하께서 막아 주십사고 촉구했다. 이런 내용도 적었다. 즉, 그랑디에는 평생 그 수녀들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만약 수녀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악마들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안다면 자신에게 가하는 중상비방과 모욕에 복수하기 위해 왜 악마들을 이용하지 못하겠습니까?」 

  이 서한에 라로슈포제가 응답하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주교의 판결에 감히 반박했을 때 그는 치명적인 모욕감을 느꼈었다. 따라서 시건방진 주임신부를 괴롭힐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전적으로 옳고 적절하고 합당했다. 

 

  그러자 세리제가 서신을 한 통 더 썼다. 이번에는 주교 관구 법률 감독관에게 보냈다. 주교한테 보낸 것보다 더 상세하게 적은 이 서신에서 그는 루덩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광대극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미스터 미뇽은 미스터 바레를 이미 성자로 칭하며, 두 사람은 자기네 상급자들의 평가도 기다리지 않은 채 서로를 성자 반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바레는 악마가 수녀들 목소리로 말하면서 문법이 틀리면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구경꾼들 중에서 의심하는 사람들을 불러내 제가 하는 대로 마귀 들린 수녀 입에 손가락을 넣어 보라 하기도 하지요.[각주:2]

  프란체스코회 루소 수도사는 그렇게 하다가 어찌나 세게 물렸는지 다른 손으로 수녀의 코를 잡아당겨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손가락을 빼내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서 “오, 이 악마, 악마야!”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는 생선 토막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내쫓는 식모들 고함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이 사건 이후 성수에 담근 손가락을 마귀가 왜, 어떻게 깨물 수 있었는지 진지하게 토론한 끝에 성직자들은 주교께서 교회에 성유를 너무 적게 내리는 바람에 주입된 영력이 손가락까지 미치지 못한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몇몇 풋내기 성직자들이 엑소시즘을 해 보겠다고 나섰다. 개중에 필리프 트렌캉의 오빠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젊은이가 라틴어를 워낙 시원치 않게 하는 바람에 학식 있는 이들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는 데뷔하자마자 멋쩍게 물러나야 했다. 세리제의 서한을 보면 그뿐이 아니다. 트렌캉이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녀는 발작의 최고조에서도 그의 손가락을 제 입에 넣지 못하게 하면서 다른 성직자를 붙여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손가락이 너무 지저분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카푸친회의 속관구장 신부는 루덩 주민들의 각박함에 놀라고 믿으려는 마음 없음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면서 투르 시에서는 이런 기적을 주민들이 믿게 만들기가 버터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고 우리한테 장담하지요. 그를 비롯해 몇몇 성직자들이 줄곧 단언하기를, 이런 기적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죄다 무신론자이며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서신에도 역시 답장을 못 받았다. 악몽 같은 광대극이 12월 중순까지 연일 계속됐는데, 그맘때 다행히도 보르도 대주교인 수르디스가 생주앙 드 마른 대수도원에 머물려고 왔다. 그랑디에가 비공식적으로, 세리제가 공식적으로, 대주교에게 작금의 상황을 알리고 개입을 요청했다. 수르디스가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개인 주치의를 득달같이 파견했다. 

  수녀들은 이 의사가 황당무계한 짓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의 주인인 대주교가 이 스토리를 대놓고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서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어린 양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수녀들이 마귀에 들씌웠다는 징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보고서에 그렇게 썼다. 

 

  1632년 12월 말 대주교가 포고령을 공표했다. 미뇽에겐 앞으로 엑소시즘 시행이 금지됐고, 바레는 계속할 수 있지만 대주교가 지명한 두 명의 엑소시스트와, 즉 푸아티에에서 온 예수회 수사와 투르에서 온 오라토리오회 수사와 함께 해야 하게 됐다. 그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엑소시즘에 참여할 권한을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금지령은 거의 불필요했다. 그 뒤 몇 달 동안은 퇴치할 악마들이 없었으니까. 수도사들의 암시와 주입으로 더 이상 자극되지 않은 수녀들의 광란 발작은 암담한 숙취 상태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런 상태에서 정신적 혼란이 수치심이며 자책이며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자각과 뒤섞였다. 

  대주교 말씀이 옳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악마라곤 애초부터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저지른 끔찍한 행위와 언사는 깡그리 우리 죄가 될 수 있잖아!   

  마귀 들렸다고 간주된 상태에서는 아무도 그들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이제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성 모독과 음란한 언행, 거짓과 중상비방에 대해 그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해명해야 하리라. 수녀들한테 지옥이 아가리를 발바투 벌렸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돈줄이 뚝 끊기고 사람들이 모두 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여학생들 부모며 도시의 독실한 귀부인들, 구경꾼 무리, 심지어 일가친척까지 모조리 이 불행한 여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그야말로 일가친척들까지도! 

  왜냐하면, 대주교 판결에서 분명해졌다시피 그들은 협잡꾼 아니면 우울증 환자들로 드러남으로써 집안 명예도 더럽혔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자 다들 내놓은 자식이 되었고 집에서 보내오던 용돈마저 딱 끊겼다. 숙사 식탁에서 고기와 버터가, 주방에서 하녀들이 사라졌다. 숙사의 크고 작은 일을 수녀들이 직접 하게 됐고, 그게 끝나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바느질을 하거나 양털로 실을 뽑았다. 탐욕스러운 장사꾼들은 수녀들의 절박함과 불운을 악용하여 정상적인 노동 대가보다 더 헐한 값을 지불했다. 

  가련한 여인들이 배곯고 힘겨운 작업에 시달리며 극히 추상적인 두려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외려 얼마 전 악령에 사로잡혔을 적의 행복한 나날을 그리워하게 됐다. 겨울 끝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됐건만 그들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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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François Rabelais (1494-1553) -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중견 작가, 의사, 인문학자, 자연주의자, 휴머니스트, 법률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현대 유럽문학에 기초를 놓은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도처에서 횡행하는 끔찍한 사회적 질환에 거대한 웃음보따리를 처방했다.” ‘라블레 풍의 웃음’이란 솔직하고 거칠면서 풍자적이고 유머가 풍부한 웃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2.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요한복음 20: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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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 표지 the devils of loudun

 


 

  한데 주임신부가 그런 빚을 지고만 있지는 않았다. 적대자들이 자기를 혐오하는 만큼 그도 그들을 혐오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저주는 사람을 들끓게 하고, 축복은 사람을 온화하게 만든다.”[각주:1] 

  사랑보다 증오와 분노에서 즉각적인 만족을 더 크게 얻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선천적으로 공격적인 그들은 물리적으로 자극된 호르몬에서 나오는 분노를 위하여 가장 추악한 열정에 일부러 탐닉하면서 금방 아드레날린 중독자가 된다. 그들은 하나의 자기주장이 언제나 또 다른 적대적인 자기주장을 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잘 알면서, 자신들의 흉맹함을 부지런히 갈고 닦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주 빨리 걸쭉한 싸움으로 들어선다. 

  싸움이란 그들이 가장 기뻐하는 일, 왜냐하면 싸우면서 피가 끓을 때 본연의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니까. “기분 좋아!” 하면서 당연히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 아드레날린 중독을 의분 표출이라 합리화하고, 결국엔 예언자 요나처럼 그럴 만하니까 분개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거의 루덩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랑디에가 볼품 사납긴 해도 그의 관점에서는 아주 신나는 싸움에 두루 말려들었다. 한 젠틀맨은 주임신부에게 실제로 칼을 빼들었다. 지역 경찰을 대표하는 다른 인물과는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욕설로 난타전을 벌였고, 그건 곧 물리적 폭력 사태로 번졌다. 수효에서 압도된 주임신부와 그의 복사들이 예배당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버텨야 했다. 

  다음날 그랑디에가 교회법정에 호소했고, 경찰 수뇌는 추문을 일으켰다 하여 징계를 받았다. 그건 주임신부의 승리였다. 하지만 대가가 따르는 법. 그를 막연히 꺼림칙하게 여기던 사람이, 영향력 있는 인물이, 이제 그에게 치명적이고 고질적인 적으로 변해 복수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게 됐다.   

 

기독교적 온유함 못지않게 기본적인 조심성 문제로 말하자면, 주임신부는 자신을 둘러싼 적의를 누그러뜨리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회에서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독교 정신을 그리 많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르마냑과 다른 친구들이 하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감정이 개입된 경우에는 진중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오랜 종교적 훈련이 그의 자기애를 제거하거나 심지어 완화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에고에 신학적 ‘알리바이’를 제공했을 뿐이다. 

 

  속이 차지 못한 에고이스트는 제가 원하는 것만 원할 뿐이다. 그런 사람한테 종교 교육을 시키면, 그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요,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의 명분이 진정한 교회의 명분으로 간주되는 것이요, 그 어떤 화합도 근본악을 위무하는 것일 뿐이다. 

  “너를 고소한 사람과 법정에 가는 길에 화해하라.” 예수의 조언이 그랑디에 같은 사람들한테는 바알세불과 협정을 맺으라는 불경한 촉구처럼 보인다. 

  적대자들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주임신부는 자신의 힘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적의를 한층 더 키우려 들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파워는 거의 천재적이었다. 

 

  동화에서는 갖가지 선물을 들고 선한 요정이 아기 요람을 찾아든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선물이 도리어 불행을 안기는 경우가 잦다. 예를 들어 그랑디에한테 선한 요정은 다른 확실한 재능들과 더불어 가장 눈부시면서도 가장 위험한 선물을 주었다. 바로, 달변. 

  뛰어난 설교자며 성공적인 변호사와 정치인은 죄다 비범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 입에서 나온 말은 청자들한테 거의 마법 같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데 이 효력은 필히 비이성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녔다 해도 뛰어난 연설자는 그 말로써 득보다 해를 더 많이 끼친다. 뛰어난 연설자는 풍부한 어휘와 좋은 목소리라는 마법을 동원해 나쁜 주장이 옳은 것이라고 청중을 설득할 수 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어떤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달변 기법에 속하는 재주나 트릭에 의존할 필요가 전혀 없는 법이다. 

 

  본질적으로 근거가 잘못된 신념을 옳은 것이라 주입하기 위해 웅변술 장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인간 본성에 있는 최소한의 신뢰 요소를 우려먹는 죄를 짓는 셈이다. 그들은 재앙적인 입담 재주를 발휘함으로써 일상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빠져 있는 일종의 최면 상태를 더 깊게 만든다. 반면에 진정한 철학과 진정한 종교의 목표와 과제는 그런 최면의 안개와 구름을 걷어내는 데 있다. 

  게다가 지나친 단순화 없이 효과적인 웅변술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화하려면 사실들을 왜곡할 수밖에 없는 법. 심지어 진실을 말하고자 최선을 다할 때조차 노련한 연설자는 그 자체로 이미 거짓말쟁이다. 또 가장 노련한 연설자는, 덧붙일 필요가 거의 없지만, 진실을 말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진실과 거리가 멀어서 동지들에게 공조하고 적대자들을 몰아붙이는 것이니.   

 

  오호라, 그랑디에가 바로 그런 부류의 달변가였구나. 성 베드로 교회 설교단에서 주일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데모스테테스를, 사보나롤라[각주:2]를 열심히 흉내 내고 때로는 라블레까지 모방했다. 왜냐하면 그는 의분 터뜨리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을 조롱하는 데도 능하고 우레 같은 계시를 내뿜는 것 못지않게 빈정거림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자연은 진공 상태를 싫어한다.[각주:3] 우리네 마음도 그렇다. 오늘날 권태라는 골치 아픈 공간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연속극 따위로 채워진다. 이런 면에서 선조들은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다.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더 좋았을지도.) 

  그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교구 성직자의 주간 퍼포먼스에 주로 의존하고 간간이 방문하는 카푸친회 수사들이나 순례하는 예수회 수사들의 강연으로 보충했다. 강론이란 하나의 아트이고, 다른 모든 아트 분야에서 그렇듯이 여기서도 변변치 못한 아티스트들이 좋은 아티스트들보다 훨씬 더 수두룩하다. 

 

  성 베드로 교회 신도들은 그 시장에서 그랑디에 목자라는 최고의 명인을 두고 있음에 자축할 수 있었다. 그는 가장 숭고한 기독교 미스터리에서부터 가장 민감한 풍문과 가장 미묘하고 가장 외설적인 교구 이슈들까지 어떤 주제든 눈부시게 즉흥적으로 소화해 냈다. 제 적대자들을 얼마나 거침없이 몰아쳤으며 고위직 인사들까지 얼마나 겁 없이 비판했던가! 

  만성적 권태에 빠져 있던 대다수가 환호했다. 그들의 박수갈채는 거꾸로 주임신부 웅변의 제물이 된 사람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이 제물들 가운데는 위그노파와 가톨릭교회 간에 노골적인 적의가 멈춘 뒤 왕년의 프로테스탄트 도시에 세워진 여러 교파의 수도사들이 있었다. 그랑디에가 수도사들을 싫어한 주원인은 그 자신이 세속(교구) 성직자이며 제가 속한 카스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충실한 병사가 자기 부대에, 충실한 졸업생이 모교에, 충실한 코뮤니스트나 나치가 자기 당에 충성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A라는 조직에 충성하려면 B, C, D 등 여타 다른 조직을 어느 정도 불신하고 경멸하고 철저히 혐오할 필요가 있는 법. 

  이는 더 큰 상위 조직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 역사를 보면, 이단자와 불신자들에 대한 전반적이고 공식적인 증오에서부터 교단 간의, 학파 간의, 교구 간의, 신학자들 간의 특수한 증오에 이르기까지 증오의 계급구조가 여실히 드러난다. 

  살레의 성 프랑수아가 1612년에 이렇게 썼다. 

  「독실하고 신중한 고위 성직자들이 개입하여 소르본과 예수회 수사들 간에 결속과 상호 이해를 이끌어내면 좋았을 텐데. 만약 프랑스에서 주교들과 소르본 학자들과 수도회들이 철저하게 결속됐다면 십년 이내에 이단이 다 척결됐겠지.」 

  이단이 척결될 수 있었을 근거를 성인이 다른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가지고 설교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단을 전혀 비방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이단에 반대되는 설교를 하는 셈이다.」[각주:4] 

 

  속 깊은 증오로 갈라진 교회는 사랑을 체계적으로 실천할 수 없으며 설교할 수도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명백한 위선일 뿐. 그리하여 결속 대신 끊임없는 불화가 있었고, 사랑 대신 신학자들 간의 완고한 반감과 또 카스트며 학파며 교파의 공격적 애국주의가 있었다. 예수회와 소르본 간의 반목에 이어 얀센파와 또 예수회며 살레시오 동맹 간에 반목이 생겼다. 그 뒤로 정적주의[각주:5]와 ‘사심 없는 사랑’ 지지자들을 둘러싸고 기나긴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프랑스 가톨릭교회 안팎의 불화는 사랑이나 설득이 아니라 권위적인 포고령으로 조정됐다. 이단자들 문제는 용기병[각주:6]의 위그노 박해와 끝에 가서 낭트칙령[각주:7] 폐지로 해결되고, 티격태격하는 성직자들 수습에는 교황의 대칙서들과 파문 위협이 동원됐다. 질서가 복원됐지만, 그건 가장 명예롭지 못한 길에서 전혀 영적이지 못하고 종교와 휴머니티와도 거리가 먼 방법으로 이뤄졌다. 

 

  당파에 대한 충성은 사회적으로는 피해가 막심하지만 개개인에게는 적잖은 보상을, 하다못해 공명심이나 탐욕보다도 여러 모로 더 많은 보상을 안길 수 있다. 뚜쟁이들이며 고리대금업자들은 저들 일에 자부심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당파 투쟁은 거기에 빠지는 사람들이 사욕을 취하면서도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있게 하는 복합적 열정이다

  정당하며 심지어 성스럽다고 정의되는 그룹을 위해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 자신을 훌륭하다 여기고 이웃들을 몹시 싫어할 수 있으며 권력과 돈을 추구하고 공격성과 잔혹함의 쾌감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외려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 자부하기도 한다. 제가 속한 그룹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다 보면 이런 유쾌한 악덕을 행하면서도 영웅처럼 행동한다는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조직이나 당파의 구성원들은 자신을 죄인이나 범죄자가 아니라 이타주의자며 이상주의자로 인식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한데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이타주의란 실상은 훅 불면 꺼질 이기주의일 뿐이며, 많은 경우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이상주의란 실상은 끽해야 당리당략과 파벌적 열성의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탈이 생긴다. 

 

  루덩 지역 수도사들을 비난할 때 그랑디에는 정의로운 열정으로 하나님 사업을 수행한다고 여겼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속 사제단과 그의 좋은 친구들인 예수회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카르멜회와 카푸친회 수사들은 수도원 담장 안에 있으면 충분하잖아. 아니면 인적 드문 마을들에서 미션 활동을 벌이면 되지. 도시 부르주아의 행사와 일에 어찌 감히 코를 들이민단 말인가! 하나님은 부유하고 존중 받는 이들을 세속의 성직자들이 이끌어야 한다고 정하셨어. 필요하다면, 선량한 예수회 수사들 도움을 좀 받아서 말이야. 

 

  새 주임신부가 처음에 취한 조치 하나를 설교단에서 공표했다. 앞으로 모든 신자는 외부 성직자가 아니라 교구 신부한테만 고해해야 합니다. 

  남자들보다 더 자주 고해하러 다니는 여성들이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됐다. 이제 우리 성직자는 단정하고 잘 생긴 젊은 학자인데다 신사 매너까지 지녔어. 카푸친회나 카르멜회 감독 누구라도 그 정도는 못 되잖아! 

 

  거의 하룻밤 사이에 수도사들이 자기네한테 와야 할 참회자들을, 나아가 도시에서 영향력을, 거의 다 잃을 지경이 됐다. 

 

  이 첫 번째 공격에 이어...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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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흰 까마귀 이야기 (Tolerance)

 

  1. "Damn braces: Bless relaxes." 윌리엄 블레이크(1727-1857)의 책 <천국과 지옥의 혼인>에. [본문으로]</천국과>
  2. Girolamo Savonarola (1452-1498) - 이탈리아 도미니크회 성직자, 수도사, 1494-1498 피렌체 독재자. [본문으로]
  3. “Nature abhors a vacuum.” - 아리스토텔레스. [본문으로]
  4. St. Francis de Sales (1567-1622) - 스위스의 반종교개혁 지도자, 제네바 주교, 방문동정회 설립. 가톨릭 성인, 교부. [본문으로]
  5. quietism - 17세기 후반 에스파냐의 몰리나 등이 주창한 가톨릭 신비주의 경향. 몰리니즘. [본문으로]
  6. dragonades - 위그노 가정마다 머물던 용기병들. 프랑스 정부가 위그노들을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키기 위해 시행. [본문으로]
  7. Edict of Nantes - 1598년 앙리 4세가 낭트에서 공포한 칙령. 위그노들에게 광범위한 종교 자유를 부여하고 완전한 시민권을 허용. 그러나 리슐리외 추기경은 낭트 칙령의 정치적 조항들을 1629년 알레 칙령으로 무효화했고, 1685년 루이 14세가 완전히 철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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