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마법' 태그의 글 목록
728x90

'마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1편 3
  2. 2019.07.15 루덩의 악마들 6편 1
728x90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젊은 시절

 


 

  근세 과학 문헌을 읽다 보면 가장 거친 초자연주의[각주:1]와 가장 거칠고 나이브한 유물주의[각주:2] 같은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데 이 덜 다듬어진 유물주의는 현대의 유물주의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옛 이론이 다루는 ‘물질’[각주:3]은 정확하게 계량되는 무엇이 아니다. 거기서는 그저 따스함과 차가움, 건조함과 축축함, 가벼움과 무거움 따위 얘기만 나온다. 이런 질적 표현을 양적 규모로 밝히려는 시도가 전혀 없다. 우리네 선조들의 관념에서 ‘물질’은 측정되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주 적다

 

  두 번째 차이점이 첫 번째 못잖게 중요하다. 우리 관점에서 ‘물질’은 늘 움직이는 무엇이며, 실제로 그 본질은 바로 움직임에 있다. 모든 물질은 늘 뭔가를 하고 있고, 모든 형태의 물질 중 생체를 구성하는 콜로이드[각주:4]가 가장 미친 듯이 바쁘다. 하지만 콜로이드의 움직임은 놀랍게도 서로 조화를 이루니, 유기체의 한 부위에서 벌어지는 과정이 다른 부위들의 과정을 조절하고 또 그것에 의해 조절되면서 에너지 균형을 만든다. 

 

  고대와 중세 사상가들에게 물질이란 본질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물건일 뿐이었다. 살아있는 신체를 얘기할 때조차 그랬다. 그 생체에서 어떤 움직임이 벌어졌다 하면, 식물에서는 오로지 식물적 영혼이, 짐승들에서는 식물적 영혼과 감각적 영혼이, 또 인간한테서는 그 두 영혼과 더불어 이성적 영혼이 작용한 것이었을 뿐. 

 

  생리 과정은… 과학으로서의 화학이 아직 없었기에 화학 용어로 설명되지 못했고, 전기라는 것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전기 자극으로 설명되지 못했고, 현미경이 없는데다 아무도 세포를 본 적이 없기에 세포 활동으로도 설명되지 못했다. 신체 조직을 구성하는 물질들의 활동 형태는 전부 (전혀 어려움 없이) 그저 영혼의 특별한 기능으로 설명됐다. 

  영혼에는 예를 들어 성장 기능, 영양 공급 기능, 분비 기능이, 한마디로 생리 과정에 관련된 기능이 다 있었다. 이런 가설이 철학자들에겐 참으로 편리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추상적 개념에서 자연 현상으로 옮겨가려 했을 때, ‘영혼의 특별한 기능’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적다는 점을 알았다. 

 

  중세 유물주의의 투박한 성격은 당대 문학에서 사용된 여러 메타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생리적 요소들은 부엌과 변소에서 벌어지는 것에 은유됐다. 당시 문학에는 끓는 것과 끓어서 터지기 직전의 것과 압력으로 일그러지는 것, 오수 구덩이와 대저택 이동 변기의 응고물에서 나오는 부패물과 악취에 관한 얘기가 늘 나왔다. 그런 개념들에 의거하여 신체 기관의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극히 어렵다. 

 

  좋은 의사는 치료자 본능을 타고난 사람으로, 지식이 재능과 직관적 진단을 너무 간섭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자연은 간섭받지 않으면 스스로 치유 기적을 행할 수 있다

 

  버튼의 방대한 편찬물에는 갖가지 헛소리며 위험한 난센스와 더불어 번뜩이는 센스가 적잖이 들어 있다. 난센스는 주로 당대에 횡행하던 과학적 이론들과 연관되고, 지혜로운 센스는 주로 통찰력 있고 선량한 숙련가들이 열린 마음으로 얻은 경험에서 나온 것. 그들은 또 동료를 사랑하고 환자 다루는 비결을 터득하고 자연의 치유력을 믿은 이들이었다

  자연적 원인이든 초자연적 원인이든 멜랑콜리라는 질병을 의사들이 어떻게 치료했는지 관심 있는 이들은 버튼의 황당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우리 이야기를 위해서는 잔느와 다른 동료 수녀들이 재판 기간 내내 의료진의 관리를 받았다는 점을 언급하면 충분하다. 아쉽게도, 버튼이 묘사한 현명한 치료법 어떤 것도 그 수녀들한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을 신선한 대기로 내보내지 않았고, 식이요법을 처방하지 않았고, 몸을 좀 고되게 할 만한 일도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사혈과 관장에 시달리고 별의별 환약과 탕제를 끝없이 삼키고 들이켜야 했을 뿐이다

  그런 치료가 어찌나 괴물 같았던지, 양심적인 의사 몇몇은 수녀들을 검사한 뒤 치료 열성이 지나쳐서 병세가 외려 악화됐다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했다. 수녀들한테 늘 다량의 안티몬이 투여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고생했는지도 모른다. 

 

  [저자 주 → 이런 진단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묘사하는 사건들이 벌어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 세대에 걸쳐 의사들이 안티몬을 두고 대립해 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갈레노스의 관점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을 그 어떤 질병 치료에도 효과가 탁월한 약제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적인 의사들이 압력을 넣자 파리 고등법원은 프랑스 전역에서 안티몬 사용 금지 포고령을 발동했다. 그러나 법령은 준수되지 않았다. 

 

  법안 통과 후 반세기가 지나 그랑디에의 친구이자 루덩에서 가장 저명한 의사인 테오프라스트 르노도[각주:5]가 안티몬의 효능을 열렬히 찬양하고 있었다. 그의 후배뻘이며 유명한 <서신>의 작자인 귀 파탱[각주:6]은 또 그에 상충되는 관점을 맹렬히 옹호했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는 르노도며 다른 갈레노스 반대자들이 아니라 파탱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안티몬 화합물은 칼라아자르라고 알려진 열대병 치료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이용할 가치가 거의 없다. 어찌 됐건, 16세기와 17세기에 안티몬의 무차별 남용은 의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긴 해도 경제적 관점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차고 넘쳤다. 아담과 동료 약제사들은 금속 안티몬으로 ‘영구 환약’을 팔아 돈을 짭짤하게 벌었다. 이 환약은 삼키면 창자를 지나면서 점막을 자극하여 하제처럼 작용했고, 변기통에서 꺼내 씻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무한정 쓸 수 있기 때문에 한번 구비하면 그 다음에는 배변 촉진제에 돈 들일 일이 더 없었다. 의사 파탱이 격렬하게 비난하고, 파리 고등법원이 금지했다. 하지만 변비까지 일으킬 정도로 인색한 프랑스 부르주아에게 안티몬의 매력은 물리치기 힘들었다. 이 영구 환약을 가보처럼 취급하면서 대물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초기 갈레노스 반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명성 높은 파라셀수스[각주:7]가 잘못된 유추 하나로 안티몬에 열정을 품게 됐다는 점을 여담 삼아 언급할 만하다. 이렇게 말했다. “안티몬은 금을 정제하면서 슬래그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인체도 깨끗하게 해준다.” 

 

  금속 세공사와 연금술사의 작업을 의사와 영양사의 작업과 비교함으로써 생긴 또 다른 잘못된 유추는 식료품을 더 많이 가공할수록 유용성이 더 커진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흰 빵이 갈색 빵보다 더 좋고, 부글부글 끓인 부용(bouillon)이 그 안에 든 본래의 고기며 야채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믿음. ‘거친’ 식품을 먹는 사람들은 거칠어진다고 짐작들 했다. 파라셀수스가 이렇게 말한다. “치즈와 우유, 오트밀 비스킷을 먹는 사람은 섬세한 기질을 지닐 수 없다.” 

  우리네 식생활 이론을 연금술에 잘못 유추하면서 벌어지던 혼란은 불과 한 세대 전 비타민이 등장한 뒤에야 멈추게 됐다.] 

 

  하지만 ‘멜랑콜리’ 치료법이 아무리 잘 개발돼 있었다 한들 마귀 들림과 악마의 틈입 때문이라는 믿음이 훨씬 더 널리 퍼진 당시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의사들 가운데서도 그랬다. 버튼의 글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귀신이며 악마 얘기에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법률가며 성직자, 의사, 철학자 대다수가 그 반대편에 있다.’ 

 

  벤 존슨[각주:8]은 <악마는 당나귀처럼 투미해>에서 17세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우리한테 선명하게 남겼는데, 거기에는 맹신과 의심, (특히 도저히 믿을 게 못 되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의존과 응용과학의 새로운 발견에 대한 순진한 자만이 공존한다. 극중 인물인 피츠도트럴은 마술 딜레탕트로서, 악마와 만나기를 갈망한다. 악마들은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고 있으니까. 

 

The Devil is an Ass. by Ben Johnson

 

  그러나 마법과 사탄의 힘을 믿는 마음과 함께 우리 아버지들이 ‘기획자’라 부르던 회사 프로모터며 뭔가 발견했다고 큰소리치는 사기꾼들, 의심쩍은 발명품들에 대한 믿음 역시 아주 강하다. 자기한테 천팔백만 파운드를 확실히 만들어주고 공작 신분까지 얻어주는 계획을 기획자가 세우고 있다고 피츠도트럴이 말하자,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 거짓된 혼령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한다. “혼령이라니!” 피츠도트럴이 소리친다.

 

혼령이라니! 그런 건 없어, 여보, 멀쩡한 이성만 있는 거야. 

이 사람은 악마와 악마의 작업을 다 거부하지. 

이 사람은 엔진과 기계장치로만 일을 해, 이 사람은 그래! 

이 사람은 날개 달린 쟁기를 발명했어, 기적 같지, 

그게 있으면 40에이커 밭도 한순간에 다 갈아엎어! 

그 넓은 밭에 물을 대는 기계도 다 있어

 

  피츠도트럴은 물론 코믹하면서도 그 시대에 아주 전형적인 형상이다. 그가 상징하는 바는 자연적인 세계와 초자연적인 세계, 이 두 세계에 지적인 생활이 불안하게 양다리 걸친 시대. 그가 두 세계의 최선 대신 최악을 취하려고 애쓴 것도 역시 슬프지만 전형적이다. 

  우둔한 자들은 순수한 과학보다 과학적 협잡에, 성령에 대한 믿음보다 밀교와 비술에 훨씬 더 매료를 느낀다

 

  루덩의 수녀들 스토리에서 그렇듯이 버튼의 책에서 이 두 세계는 공존하고 용인된다. 한편에는 공인된 의술로 치료해야 하는 멜랑콜리가 있다. 한데 마법과 귀신들림 또한 잘 알려져서, 그것들이 몸과 마음에 질병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해서 놀랄 건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하늘이나 땅이나 물에, 땅 아래에, 빈 곳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으며, 파라셀수스가 한사코 주장하듯이 대기 중에는 보이지 않는 악령들이 여름날 파리보다 훨씬 더 가득하여 늘 저마다 갖은 혼란을 획책하니 말이다.」 

 

  버튼에 의하면, 혼령의 수효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네 어떤 수학자들 말이 옳다면, 즉 돌멩이가 별들이 빛나는 하늘이나 여덟 번째 천구에서 떨어져 시속 100마일로 날아간다면, 그건 어떤 이들 말대로 1억7천만803마일이라는 엄청난 거리를 지나 지구에 닿기까지 65년이나 그 이상이 걸릴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광활한 공간에 혼령이 얼마나 많이 거처할 수 있겠는가?」 

 

  우주관이 그럴진대, 악마들이 우연히 어떤 사람한테 들어앉는다는 것이 놀라운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대다수 사람들이 귀신들리지 않고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녕 놀라웠다

(7-1편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초자연주의 - 감각적 인식으로 파악되는 자연적 존재를 초월한 정신적 존재가 있다고 단정하고, 그에 관한 인식은 신앙, 계시, 직관 등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 [본문으로]
  2. 유물주의 -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정신이나 의식 따위는 물질의 산물이라는 이론. [본문으로]
  3. 물리에서, 자연계를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질량을 가지는 것. [본문으로]
  4. 원자나 보통 분자보다는 크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작은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 또는 그 물질이 기체, 액체, 고체 속에서 분산되어 있는 상태. 입자 크기는 1~10나노미터, 거름종이는 통과하지만 반투막은 통과하지 못한다. [본문으로]
  5. Théophraste Renaudot (1586-1653) - 프랑스의 의사, 저널리스트. 프랑스 저널리즘의 창시자. 빈민 구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본문으로]
  6. Gui Patin (1602-1672) - 프랑스의 유명한 의사, 저술가. "늙음과 탐욕은 늘 한 패거리". [본문으로]
  7. Paracelsus (1493-1541) - 스위스계 독일의 의사, 식물학자, 연금술사, 자연철학자, 점성가, 밀교 신봉자. 치료화학 창시자들 중 한 사람. 자신이 지은 라틴어 이름은 '셀수스를 능가하는 사람'이라는 뜻. *셀수스 - 고대 로마의 철학자, 의사. 다방면에 박학다식하여 철학, 수사학, 법률, 농업, 군사, 의료에 관한 책을 20권 가량 남겼다. 의학 전문어의 토대를 마련했다. 명료하고 우아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들 중의 키케로'라 불린다. [본문으로]
  8. Benjamin Jonson (1572-1637) - 잉글랜드의 시인, 극작가. 연극배우, 드라마 이론가. 는 제임스 1세 국왕 시대의 코미디. 1616년 초연. 무대는 사탄과 그보다 하급 악마인 퍼그가 있는 지옥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피츠도트럴은 어딘가 땅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겠다는 욕심으로 마법사며 요술쟁이들과 교류하면서 악마를 만나겠다는 생각에 푹 빠져 있는데… [본문으로]
728x90

'루덩의 악마들 (헉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덩의 악마들 7-2편 2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2편 1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1편 2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1편 1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6편 2  (0) 2019.07.16
728x90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루덩의 악마들

 


6

 

  수석 치안판사 세리제는 예비 조사를 통해 확신하게 됐다. 

  그래, 진짜 마귀 들림 같은 건 없어! 그저 수녀들이 질환에 걸렸을 뿐이며, 여기엔 협잡 기미도 좀 보이는군. 게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 쪽의 상당한 악의, 또 이 일에 관련된 교회 관계자들의 맹신과 광기, 개인적 이해관계 따위로 상황이 조장된 게야. 흠, 저 엑소시즘이라는 코미디를 그만두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되겠어. 

  그러나 수녀들의 혼과 넋을 쏙 빼놓는 그 계획을 중단시키려 하자 미뇽과 바레가 주교의 명령서를 의기양양하게 꺼내들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수녀들에게 퇴마 작업을 계속 시행하라. 그걸 보자 세리제가 교회와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엑소시즘을 계속하도록 허락은 했지만 그 퍼포먼스 때 자신이 꼭 참관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몇 번 하던 중 한번은 굴뚝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벽난로에 검은 고양이가 불쑥 나타났다. 저건 사탄의 자식이 틀림없어! 날카로운 단정이 튀어나온 동시에 사탄의 자식이 구석으로 내몰렸다가 결국 붙잡혀서 성수를 홈빡 뒤집어썼다. 수도사들이 분주하게 성호를 그어대며 그 짐승한테 다시 지옥으로 사라지라고 라틴어로 명령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 끝에 알고 보니 이 위장한 악마는 수녀들이 귀여워하는 녀석으로, 이름이 톰이었다. 녀석은 지붕 위에서 뛰어다니다가 더 빠른 길로 집에 들어오려 했던 것일 뿐. 수녀원 아치 밑에서 라블레를 떠올리게 하는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다.[각주:1]     

 

  다음 날 미뇽과 바레가 뻔뻔스럽게도 세리제의 코앞에서 수녀원 숙사 현관을 걸어 잠갔다. 그가 동료 치안판사들과 함께 쌀쌀한 가을 날씨에 밖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종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동안 안에서는 그의 지시를 어기고 두 수도사가 공식 참관인 없이 저희 제물들에게 퇴마 작업을 시행했다. 

 

루덩 수녀들을 대상으로 미뇽이 퇴마 작업

 

  화가 잔뜩 난 치안판사가 집무실로 돌아와 무례한 엑소시스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했다. 그들 행위는 협잡과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게다가 이런 구절도 들었다. 그랑디에가 악마들과 결탁했다면서 원장수녀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마당에 비밀로 해야 할 것이 무에 있겠소. 오히려 이제 모든 것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공정하게 행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런 단호함에 깜짝 놀란 엑소시스트들이 사죄를 구하며 황급히 알렸다. 수녀들이 진정됐으니 당분간은 엑소시즘이 불필요하게 됐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랑디에가 주교한테 호소하기 위해 푸아티에로 말을 달렸다. 그러나 그가 들렀을 때 라로슈포제는 접견을 거부하고 수하를 통해 이런 취지의 메시지만 덜렁 보냈다. 

  그랑디에 신부는 왕실 판사들한테 소를 제기해야 하고, 이 사건에서 정의가 승리한다면 본 주교는 대단히 행복할 것이다. 

 

  주임신부가 루덩으로 돌아와서 즉각 수석 치안판사에게 미뇽과 그 패거리의 못된 짓거리를 금해 달라고 청했다. 세리제가 신속하게 금지 명령을 내렸다. 차후로는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 성 베드로 교회 주임신부에 대한 중상과 비방을 엄금한다. 이와 더불어 미뇽에게 엑소시즘을 더 이상 시행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참사회 위원이 날카롭게 응수했다. 

  나는 교회 지도부에만 매여 있을 뿐이며, 악마가 개입돼 있기에 완전히 종교적인 이 사건에서 사법 당국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소. 

 

  그 사이에 바레가 시농에 있는 제 교구로 돌아갔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을 더 이상 벌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참사회 위원 미뇽은 조프리디 신부 재판을 다룬, 미하엘리스 수사의 베스트셀러를 매일 몇 시간씩 신도들에게 읽어 주면서 그랑디에는 화형 당한 프로방스 동료 못지않게 위험한 마법사이며 당신들 역시 그의 마법에 걸렸다고 떠들어댔다

 

  그 무렵 수녀들이 어찌나 기이하고 난잡하게 행동했는지 수녀원 기숙학교에 딸을 맡긴 부모들이 경악했다. 기숙학교에는 금방 학생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고, 아직 과감하게 수녀원을 드나드는 통학생 몇 명이 가장 불안케 하는 소식을 들고 나와 사람들 상상을 계속 자극했다. 

 

  수학 시간에 클레어 수녀가 대뜸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지 뭐예요, 마치 누군가가 간지럼 태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식당에서 마르타 수녀가 루이즈 수녀와 드잡이를 했는데, 둘 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댔어요! 

 

마귀 들렸다는 수녀를 상대로 엑소시즘을 시행하는 수도사

 

  11월 하순 바레가 시농에서 돌아온 뒤 그의 영향을 받아 수녀들 증세가 대번에 악화됐다. 수녀원이 이제 정신병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외과의 만누리와 약제사 아담이 불안한 마음에 도시 일류 의사들에게 와서 보고 자문 좀 해주십사 청했다. 그들이 수녀원에 와서 수녀들을 일일이 검사한 뒤 수석 치안판사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결론은 이랬다. 

  「수녀들이 물론 제 정신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이 악마며 악령들의 작용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이른바 마귀 들림은 모든 면으로 판단컨대 실제가 아니라 허황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 보고서로 상황이 종료된 듯했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들과 그랑디에의 적수들한테는 그렇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세리제에게 다시 탄원하자 세리제가 엑소시즘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가학을 끝장내려고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똑같은 스토리가 반복됐다. 즉, 미뇽과 바레가 사법 당국 지침을 또 무시했고, 수석 치안판사는 수도사들을 상대로 물리력을 동원할 때 생길 파문을 우려하여 또 움츠러든 것. 

  그 대신 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 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대미문의 불량한 짓’을 예하께서 막아 주십사고 촉구했다. 이런 내용도 적었다. 즉, 그랑디에는 평생 그 수녀들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만약 수녀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악마들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안다면 자신에게 가하는 중상비방과 모욕에 복수하기 위해 왜 악마들을 이용하지 못하겠습니까?」 

  이 서한에 라로슈포제가 응답하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주교의 판결에 감히 반박했을 때 그는 치명적인 모욕감을 느꼈었다. 따라서 시건방진 주임신부를 괴롭힐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전적으로 옳고 적절하고 합당했다. 

 

  그러자 세리제가 서신을 한 통 더 썼다. 이번에는 주교 관구 법률 감독관에게 보냈다. 주교한테 보낸 것보다 더 상세하게 적은 이 서신에서 그는 루덩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광대극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미스터 미뇽은 미스터 바레를 이미 성자로 칭하며, 두 사람은 자기네 상급자들의 평가도 기다리지 않은 채 서로를 성자 반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바레는 악마가 수녀들 목소리로 말하면서 문법이 틀리면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구경꾼들 중에서 의심하는 사람들을 불러내 제가 하는 대로 마귀 들린 수녀 입에 손가락을 넣어 보라 하기도 하지요.[각주:2]

  프란체스코회 루소 수도사는 그렇게 하다가 어찌나 세게 물렸는지 다른 손으로 수녀의 코를 잡아당겨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손가락을 빼내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서 “오, 이 악마, 악마야!”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는 생선 토막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내쫓는 식모들 고함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이 사건 이후 성수에 담근 손가락을 마귀가 왜, 어떻게 깨물 수 있었는지 진지하게 토론한 끝에 성직자들은 주교께서 교회에 성유를 너무 적게 내리는 바람에 주입된 영력이 손가락까지 미치지 못한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몇몇 풋내기 성직자들이 엑소시즘을 해 보겠다고 나섰다. 개중에 필리프 트렌캉의 오빠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젊은이가 라틴어를 워낙 시원치 않게 하는 바람에 학식 있는 이들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는 데뷔하자마자 멋쩍게 물러나야 했다. 세리제의 서한을 보면 그뿐이 아니다. 트렌캉이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녀는 발작의 최고조에서도 그의 손가락을 제 입에 넣지 못하게 하면서 다른 성직자를 붙여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손가락이 너무 지저분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카푸친회의 속관구장 신부는 루덩 주민들의 각박함에 놀라고 믿으려는 마음 없음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면서 투르 시에서는 이런 기적을 주민들이 믿게 만들기가 버터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고 우리한테 장담하지요. 그를 비롯해 몇몇 성직자들이 줄곧 단언하기를, 이런 기적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죄다 무신론자이며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서신에도 역시 답장을 못 받았다. 악몽 같은 광대극이 12월 중순까지 연일 계속됐는데, 그맘때 다행히도 보르도 대주교인 수르디스가 생주앙 드 마른 대수도원에 머물려고 왔다. 그랑디에가 비공식적으로, 세리제가 공식적으로, 대주교에게 작금의 상황을 알리고 개입을 요청했다. 수르디스가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개인 주치의를 득달같이 파견했다. 

  수녀들은 이 의사가 황당무계한 짓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의 주인인 대주교가 이 스토리를 대놓고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서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어린 양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수녀들이 마귀에 들씌웠다는 징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보고서에 그렇게 썼다. 

 

  1632년 12월 말 대주교가 포고령을 공표했다. 미뇽에겐 앞으로 엑소시즘 시행이 금지됐고, 바레는 계속할 수 있지만 대주교가 지명한 두 명의 엑소시스트와, 즉 푸아티에에서 온 예수회 수사와 투르에서 온 오라토리오회 수사와 함께 해야 하게 됐다. 그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엑소시즘에 참여할 권한을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금지령은 거의 불필요했다. 그 뒤 몇 달 동안은 퇴치할 악마들이 없었으니까. 수도사들의 암시와 주입으로 더 이상 자극되지 않은 수녀들의 광란 발작은 암담한 숙취 상태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런 상태에서 정신적 혼란이 수치심이며 자책이며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자각과 뒤섞였다. 

  대주교 말씀이 옳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악마라곤 애초부터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저지른 끔찍한 행위와 언사는 깡그리 우리 죄가 될 수 있잖아!   

  마귀 들렸다고 간주된 상태에서는 아무도 그들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이제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성 모독과 음란한 언행, 거짓과 중상비방에 대해 그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해명해야 하리라. 수녀들한테 지옥이 아가리를 발바투 벌렸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돈줄이 뚝 끊기고 사람들이 모두 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여학생들 부모며 도시의 독실한 귀부인들, 구경꾼 무리, 심지어 일가친척까지 모조리 이 불행한 여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그야말로 일가친척들까지도! 

  왜냐하면, 대주교 판결에서 분명해졌다시피 그들은 협잡꾼 아니면 우울증 환자들로 드러남으로써 집안 명예도 더럽혔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자 다들 내놓은 자식이 되었고 집에서 보내오던 용돈마저 딱 끊겼다. 숙사 식탁에서 고기와 버터가, 주방에서 하녀들이 사라졌다. 숙사의 크고 작은 일을 수녀들이 직접 하게 됐고, 그게 끝나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바느질을 하거나 양털로 실을 뽑았다. 탐욕스러운 장사꾼들은 수녀들의 절박함과 불운을 악용하여 정상적인 노동 대가보다 더 헐한 값을 지불했다. 

  가련한 여인들이 배곯고 힘겨운 작업에 시달리며 극히 추상적인 두려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외려 얼마 전 악령에 사로잡혔을 적의 행복한 나날을 그리워하게 됐다. 겨울 끝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됐건만 그들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4편 3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4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François Rabelais (1494-1553) -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중견 작가, 의사, 인문학자, 자연주의자, 휴머니스트, 법률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현대 유럽문학에 기초를 놓은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도처에서 횡행하는 끔찍한 사회적 질환에 거대한 웃음보따리를 처방했다.” ‘라블레 풍의 웃음’이란 솔직하고 거칠면서 풍자적이고 유머가 풍부한 웃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2.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요한복음 20:27) [본문으로]
728x90

'루덩의 악마들 (헉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덩의 악마들 7-1편 1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6편 2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5편 4  (0) 2019.07.15
루덩의 악마들 5편 3  (0) 2019.07.15
루덩의 악마들 5편 2  (0) 2019.07.15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