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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12. 끝까지 부른 노래 

 

 

솜씨 좋고 유연하고 힘이 있는 새 몸통의 도움으로 담장을 뛰어넘어 거리로 나온 뒤 브리케는 택시를 잡아서 이상한 주소를 댔다.
“페르-라셰즈(Pére-Lachaise) 공원묘지로 가세요.”

 

그러나 공원묘지에 이르기 전에 택시를 바꿔 타고는 몽마르트로 향했다. 

탈출하기 전에 로랑의 지갑을 빼냈는데, 거기엔 몇 십 프랑이 들어 있었다. 
‘이 정도는 아주 큰 죄가 아닐 거야. 게다가 나한테는 불가피하잖아.’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자신을 달랬다. 저지른 범죄에 대한 참회는 오랜 기간 연기됐다. 

 

그녀는 다시 온전하고 살아 있고 건강한 사람임을 느꼈다. 게다가 이전보다 더 젊어지기까지 했다. 

수술하기 전에 그녀의 여성적 계산으로 그녀는 나이 서른쯤 됐다. 새 몸뚱이는 갓 스물을 넘긴 정도였다. 이 신체의 분비선들이 브리케의 머리를 젊어지게 했다. 즉, 얼굴 주름이 사라지고 얼굴색도 더 좋아졌다. 


‘이제 재미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지갑에 들어 있던 작은 손거울을 몽상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 세워 주세요.”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린 뒤에는 걸어서 갔다. 

 

새벽 세 시쯤이었다. 

늘 다니던 카바레 ‘샤누와(*Chat Noir, 검은 고양이)’를 찾아갔다. 

날아든 총탄이 그녀가 부르던 명랑한 샹송을 채 끝내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숙명의 밤에 그녀는 이 카바레 무대에 서 있었다. 카바레 창문들에서는 아직 선명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별달리 주저함도 없이 눈에 익은 현관으로 들어섰다. 피곤에 빠진 문지기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가 측면에 난 문으로 재빨리 들어가서 복도를 지나쳐 무대에 붙어 있는 출연자 대기실로 들어섰다. 

그녀와 먼저 마주친 사람은 빨강머리 마르타였다. 

마르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탈의실로 숨었다. 

브리케가 웃으면서 문을 두드렸지만, 빨강머리 마르타는 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 라스토츠카(*러시아어로 제비. 여성에 대한 애칭)!”  
그녀는 상표에 제비가 그려 있는 코냑을 하도 좋아하는 바람에 카바레에서 그런 애칭으로 널리 불렸다. 
“아직 살아 있는 거야? 우리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브리케가 몸을 돌리니 아주 잘 생기고 우아하게 차려입고 퍼런빛이 날 만큼 면도한 남자가 보였다. 

그렇게 창백한 얼굴은 햇빛을 잘 안 보는 사람들한테서 보이기 마련이다.

 그는 빨강머리 마르타의 남편인 장이었다. 그는 자기 직업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술 동료들은 그의 생활 수단에 대해 묻기를 꺼렸다. 임기응변에 능한 장에게 자주 돈이 들어오고 그가 ‘젊은이들의 리더’라는 것으로 충분했다.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와인이 강물처럼 흐르는 밤마다 장이 활수 좋게 다 계산했다. 

 

“어디서 날아온 거야, 라스토츠카?”
“병원에서.” 
브리케는 몸통 주인의 일가나 친구들이 새 몸뚱이를 빼앗아갈까 겁이 나서 그 기적 같은 수술에 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른 말을 꾸며댔다. 
“내 상태는 아주 심각했었어. 다들 내가 죽었다고 판정하고 시체 안치소로 보내기까지 한 거야. 그러나 거기서 시신을 검사하는 한 대학생이 내 손목을 잡고 희미한 맥박을 감지했지. 난 아직 숨이 붙어 있었던 거야. 총탄이 심장을 건드리지 않고 살짝 비껴 나갔어. 나는 즉각 병원으로 옮겨지고, 다행히 다 잘 됐지.”
“아주 좋아! 친구들이 다 놀라 자빠질 거야. 너의 부활을 축하해야지.”
장이 외쳤다. 

 

탈의실 문의 자물쇠가 딸각거렸다. 

빨강머리 마르타가 문 뒤에서 대화를 듣다가 브리케가 유령이 아님을 확신하고 문을 열었다. 두 친구가 포옹하고 힘차게 키스를 나눴다.
“제비야, 넌 더 마르고 키가 크고 우아해진 것 같아.” 
전혀 예기치 않게 나타난 친구의 자태를 호기심과 약간의 놀람을 가지고 살피면서 빨강머리 마르타가 말했다.

 

그 호기심 어린 눈길에 브리케가 약간 당황했다.
“살이 좀 빠진 게 당연하지. 멀건 수프만 먹이니 그렇지 않겠어? 키는 어떠냐고? 뒤축이 아주 높은 구두를 신었지. 원피스 모양은…”
“근데 왜 이렇게 늦은 시각에 온 거야?”
“아, 사연이 한참 길어… 넌 벌써 출연을 마쳤니? 나하고 잠깐 얘기 좀 할래?”
마르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큰 거울이 달린 화장대 곁에 앉았다. 
장이 이집트 권련을 피우면서 곁에 앉았다. 

 

 


브리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병원에서 도망 나온 거야, 공식적으로는.”  
“왜?”
“부용(bouillon)이 지긋지긋했어. 허구한 날 멀건 수프만 나오니... 너도 이해하겠지? 멀건 수프에 사래가 들릴까봐 겁이 날 정도였어. 근데 의사는 날 내보내려 하지 않는 거야. 나를 의대생들에게 보여야 한대나 어쨌대나. 경찰에서 나를 찾을까봐 무서워… 내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고 네 신세를 좀 져야 할까봐. 며칠이라도 파리에서 아주 떠나면 가장 좋고... 하지만 돈이 별로 없어.” 

 

빨강머리 마르타가 손뼉까지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만큼 흥미로웠던 것이다.
“물론 우리 집에 있어도 돼.” 

 

장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생각에 잠겨 거들었다.
“나도 경찰이 수배할까봐 걱정된다. 나 역시 며칠 동안 지평선에서 사라져 있어야 돼.” 
라스토츠카는 친구였고, 장은 그녀한데 자기 직업을 숨기지 않았다. 라스토츠카는 장이 ‘큰 비행’을 하는 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전문은 금고털이였다. 

 

“제비야, 우리 함께 남쪽으로 날아가자. 너하고 나, 마르타 셋이서. 리비에라에서 바닷바람을 좀 들이키는 거야. 난 오래 웅크리고 있었어, 바람을 쐬어야 돼. 두 달 넘게 태양을 못 보니 이젠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가물가물하다면, 믿겠어?”
“아이 좋아라.” 
빨강머리 마르타가 손뼉을 쳤다. 

 

장이 값비싼 팔찌 시계를 들여다봤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있어. 젠장, 넌 우리한테 노래를 마저 들려주어야 해… 그리고 날아가는 거지. 그 의사든 경찰이든 너를 찾으려면 찾아보라고 해.”
장의 제의를 브리케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녀의 등장은 그녀가 예기한 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장이 사회자로서 무대에 나가 몇 달 전 여기서 브리케에게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상기시키고는, 마드무아젤 브리케가 자기가, 장이 그녀 목구멍에 ‘제비’ 코냑을 한 잔 부은 뒤에 대중의 갈망을 좇아서 되살아났다고 밝혔다.

 

“라스토츠카! 라스토츠카!” 
홀 안에 있던 술꾼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손짓을 하여 함성이 가라앉자 장이 말을 이었다. 

“라스토츠카가 뜻하지 않게 끊긴 대목부터 샹송을 다시 부를 겁니다. 악단, <검은 고양이>를 준비해 줘요!”

 

악단이 연주를 시작했고, 요란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브리케가 지난번에 끊긴 노래를 마지막까지 다 불렀다. 사실 함성이 어찌나 큰지 그녀가 자기 목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했고, 자기를 사람들이 잊지 않고 따스하게 맞아주었다는 점에 감격했다. 사실 그 따스함이 술기운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그녀에겐 상관이 없었다. 

 

노래를 마치고 그녀가 뜻밖에도 오른손으로 우아한 제스처를 취했다. 예전에는 못 보던 것이었다. 홀에서 한층 더 큰 박수갈채가 터졌다.
‘저런 우아한 제스처가 어디서 났지? 정말 아름다운 자세야. 저 제스처를 배워야 돼…’
빨강머리 마르타가 생각에 잠겼다.

 

브리케가 무대에서 홀로 내려왔다. 여자 친구들이 입을 맞추고 잔들을 높이 들어 부딪쳤다. 브리케의 두 뺨이 발그레 물들고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성공과 와인이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그녀는 추적의 위험도 잊은 채 여기서 밤새 앉아 있을 태세였다. 

그러나 다른 이들보다 덜 마신 장이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그가 짬짬이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결국 브리케에게 다가가서 손을 건드렸다.

 

“때가 됐어!”
“하지만 난 싫어. 너희들끼리 가도 돼.” 
브리케가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장이 두 말 않고 그녀를 일으켜서 출구로 데려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평과 아쉬움이 피어났다. 

 

“공연은 끝났어! 다음 부활 때까지 안녕!”
문가에서 잠시 발을 멈춘 장이 홀을 향해 소리쳤다.

 

그가 비틀거리는 브리케를 거리로 데려나와 자동차에 태웠다. 곧 마르타도 크지 않은 여행 가방을 들고 왔다.
“공화국 광장으로 갑시다.” 
장이 종착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중간 지점을 운전수에게 말했다. 

그는 자동차를 갈아타고 다니는 데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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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머리들이 기분을 전환하다 

 

 

톰과 브리케의 머리들은 새로운 존재에 적응하기가 도웰의 머리보다 더 힘들었다. 

도웰 교수의 뇌는 이전에 흥미를 보였던 과학 연구에 지금도 전념하고 있었다. 

톰과 브리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몸통 없이 산다는 건 그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아주 금세 우울해진 것은 당연했다. 


톰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걸 사는 거라고 할 수 있겠어? 나무 등걸처럼 웅크리고서 구멍 날 정도로 벽만 쳐다봐야 하니…”

 

코른은 그들을 농담 삼아 ‘과학의 포로들’이라고 불렀는데, 이 포로들이 시무룩한 모습만 보이자 그도 역시 몹시 안달했다. 대중에 공개할 날이 오기도 전에 머리들이 우울증으로 쇠약해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떡하든 그들이 재미나게 지내게 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영사기를 들여놓고, 로랑과 존이 저녁마다 필름을 틀었다. 실험실 흰 벽이 스크린 구실을 했다.

 

톰의 머리는 찰리 채플린과 몬티 뱅크스(Monty Banks)가 출연하는 코미디 필름들을 특히 좋아했다.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면서 톰은 한동안이라도 자신의 구차한 존재를 잊었다. 그의 목구멍에서 웃음소리 같은 것이 터지기도 하고 두 눈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러다가 방안 흰 벽에 영사된 한 필름에서 뱅크스가 까불거리는 뒤편으로 시골 농장 전경이 나타났다. 

작은 계집애가 닭들에게 먹이를 준다. 볏을 꼿꼿이 세운 암탉이 병아리들을 열심히 거둬 먹인다. 

뒤편에 있는 외양간에서는 젊고 튼튼한 여인이 어미 젖통으로 파고드는 송아지를 팔꿈치로 밀면서 암소의 젖을 짜고 있다. 

털북숭이 개가 좋다고 꼬리를 흔들면서 마당을 달려갔고, 그 뒤로 농부가 나타났다. 그가 말고삐를 잡아끌었다. 

 

그때 톰이 가성 같이 아주 높은 소리를 쉭쉭 내더니 고함을 쳤다. 
“그만! 그만둬요!..”

영사기 곁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존이 무슨 뜻인지 언뜻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연을 멈춰요!” 

로랑이 소리치면서 서둘러 불을 켰다. 

희끄무레해진 장면이 여전히 얼마 동안 어른거리다가 마침내 사라졌다. 존이 영사기 작동을 멈췄다.
로랑이 톰을 쳐다봤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는데, 그건 이미 웃음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모욕당한 아이처럼 온통 찌그러들고 입매가 일그러졌다. 

 

톰의 머리가 흐느꼈다. 
“꼭 우리… 시골 같아… 암소… 암탉… 그것들이 사라졌어, 이젠 다 사라졌어…”

 

영사기 곁에서 로랑이 필름을 바꾸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곧 다시 불이 꺼지고 흰 벽에 그림자들이 어른거렸다. 해롤드 로이드(Harold Lloyd)가 추적하는 경찰들을 피해 황급히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톰의 상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 움직이는 사람들 모습이 그에게 더 큰 우울증을 안기게 됐다. 

 

톰의 머리가 투덜댔다. 
“저런, 탄내 맡은 놈처럼 정신없이 다니는군. 저자를 나처럼 주저앉히면, 저렇게 팔딱거리며 뛰지 못할 텐데.”

로랑이 프로그램을 다시 바꿔야 했다. 

 

사교계 무도회 장면에 브리케의 기분이 완전히 잡쳤다. 

어여쁜 여인들과 그들의 호사한 성장에 짜증스러운 반응을 예민하게 보였다. 
“필요 없어… 난 다른 이들이 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영사기를 내갔다.   

 

라디오가 그들을 조금 더 오래 즐겁게 해주었다. 
음악이 흐르자 둘 다 흥분했다. 특히 댄스곡이 나오자 더 달아올랐다. 

 

“아아, 내가 이 춤을 얼마나 많이 추었는데!”
브리케의 머리가 왈칵 눈물을 쏟으면서 외쳤다.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려면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브리케는 변덕이 심했다. 

짬만 나면 거울을 비춰 달라고 하지 않나, 툭하면 가르마를 바꾸어라, 아이라인을 그리고 파운데이션과 연지를 발라라, 요구가 많았다. 

화장에 크게 관심이 없는 로랑이 무슨 짓인가 싶어 불쾌해졌다. 
그러자 브리케의 머리가 짜증을 냈다. 
“정말 모르겠단 말이에요? 오른쪽 눈이 왼쪽보다 더 어둡게 됐잖아요. 거울을 더 올려요.” 

 

브리케는 패션잡지들과 옷감을 가져다 달라고 청하고 자기 머리가 놓인 탁자를 천 같은 것으로 가리라고 했다. 

나이가 다 들어 수줍음을 타면서, 한 방에서 남자와 잠을 잘 수 없다고 하는 등 괴벽을 보이기까지 했다. 


“밤에는 병풍으로, 아니면 책으로라도 나를 가려 줘요.”
로랑이 하는 수 없이 큰 책으로 ‘병풍’을 만들어 브리케의 머리 곁 유리판 위에 세워 두었다.

 

 

톰도 브리케 못지않게 사람들을 귀찮게 했다. 
한 번은 포도주를 요구했다. 

코른 교수가 영양분을 공급하는 용액에 알코올을 조금 집어넣어서 그가 술 취한 기분을 맛보도록 했다.

 

가끔 톰과 브리케는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빈약한 성대가 받쳐주지 못했다. 그건 듣기에 딱한 이중창이었다. 

 

“내 가련한 목소리… 예전에 내가 어떻게 노래를 불렀는지 당신이 들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게 말하면서 브리케가 괴롭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녁마다 그들은 상념에 잠겼다. 

이상한 존재 방식 때문에 이 평범한 존재들조차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들을 숙고하게 됐다. 
브리케는 불멸을 믿었다. 톰은 유물론자였다. 

 

“물론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아요. 영혼이 육체와 함께 죽는다면, 머리로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브리케의 머리가 종알거리자, 톰이 신랄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영혼은 머리와 몸 중 어디에 깃들었나요?”
“물론, 몸에 있었지요… 아니, 어디에나 있었어…” 
상대가 자기를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브리케의 머리가 자신 없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당신 몸통의 영혼은 지금 저승에서 머리가 없이 다니고 있나요?”
“당신한테도 머리가 없는걸요, 뭐.” 
브리케가 퉁명스레 대꾸했지만, 톰이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나야 머리하고 있지요. 그것 하나만 남은 걸요. 한데 당신 머리의 영혼은 저 세상에 남지 않았어요? 이 고무 창자를 따라서 지상으로 돌아왔나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그의 말투가 이제 심각하게 바뀌었다. 
“우리는 기계와 같아서, 증기를 넣으면 다시 작동했지요. 한데 지금은 산산조각이 나서 아무리 증기를 넣어도 소용이 없는 거고…”

그러고 나서 그들은 또 각자 상념에 잠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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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수수께끼 여인 


지중해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백사장으로 몰려들었다. 가벼운 해풍에 흰색 요트들과 어선들이 저마다 돛을 살짝살짝 흔들었다. 머리 위 짙푸른 창공에서는 니스와 망통을 오가며 흥겨운 레이스를 펼치는 수상비행기들이 보기 좋게 흔들렸다. (*망통/Menton - 니스에서 북동쪽으로 30킬로미터에 위치한 프랑스 휴양지이자 항구)

흰색 테니스 복 차림의 젊은이가 대나무로 엮은 안락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의자 곁에는 테니스 라켓과 영국의 과학 저널 몇 부가 든 가방이 놓였다. 그 젊은이 옆, 커다란 흰색 파라솔 밑에 놓인 캔버스 앞에서는 그의 친구인 아르망이 부지런히 붓을 놀렸다.


고인이 된 도웰 교수의 아들, 아르투아 도웰과 아르망은 막역지우였다. 이 우정은 극과 극은 통한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음을 그 무엇보다도 잘 입증했다.

아르투아 도웰은 말수가 적은 편에다 냉철한 타입이었다. 정돈을 좋아하고 끈기 있게 체계적으로 작업할 줄 알았다. 졸업을 한 해 남기고 벌써 대학에서 생물학부에 자리를 받았다. 아르망은 진짜 남부 프랑스인답게 늘 어수선하며 뭔가에 쉽게 몰두하는 기질이었다. 한두 주일은 붓과 물감을 내팽개치다가 또 다시 작업에 들어서면, 그때는 그 어떤 힘도 그를 화가(畵架)에서 떼어놓지 못했다. 

한 가지 점에서만 두 친구는 서로 비슷했다. 즉, 둘 다 재능이 있고 한 번 설정한 목표를 비록 목표에 이르는 길은 다르지만 달성할 줄 알았다. 한 사람은 차근차근 밟아서 나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사이를 두었다가 성큼성큼 도약했다.  

아르투아 도웰의 생물학 연구는 중진 학자들의 눈길을 끌었고, 그에게는 학계에서 눈부신 성장이 보장돼 있었다. 아르망의 그림들은 여러 전시회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개중 몇 점은 벌써 몇몇 나라의 유명한 갤러리들에 팔렸다. 


아르투아 도웰이 신문을 모래바닥에 내던지고는 안락의자 등받이에 고개를 기울인 채 눈을 감고 말했다.

“안젤리카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어.”

아르망이 한없는 비탄에 잠겨 고개를 흔들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건가?” 

도웰 교수의 아들 아르투아와 친구 아르망이 지중해 연안 망통에서 휴양하다

그 물음에 아르망이 자기 쪽으로 팩 몸을 돌리는 걸 보고 아르투아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아르망은 이미 열렬한 화가가 아니라 왼손에 팔레트 방패와 팔 받침 창을 들고 오른손은 붓 칼로 무장한 기사였다. 자신에게 치명적인 모욕을 가한 자를 무찌를 준비가 된 기사처럼 보였다. 


그가 무기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안젤리카를 잊다니! 그런 여인을 어떻게 잊을 수가…”

스르르 소리를 내며 갑자기 몰려든 파도가 그의 무릎까지 덮었고, 그가 우수에 찬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안젤리카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노래들이 사라진 뒤로 세상은 더 따분해졌어…”


안젤리카의 죽음을,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아르망은 <런던 안개 심포니>를 그리기 위해 갔던 런던에서 처음 접했다. 그는 안젤리카라는 가수의 재능에 심취한 팬일 뿐 아니라 또한 그녀의 친구요 흑기사이기도 했다. 그가 남부 프로방스에서, 중세 성들의 잔해 속에서 태어난 것이 그의 기질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안젤리카에게 생긴 불행을 알고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창작의 최고 절정에서 난생 처음 ‘그림의 폭음’을 그만두었다. 캠브리지에서 런던으로 온 아르투아가 친구의 기분을 돌리려고 함께 지중해 해안으로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르망은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백사장에서 호텔로 돌아와 그는 옷을 갈아입은 뒤 기차에 몸을 싣고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으로, 몬테카를로 도박장으로 향했다. 머릿속을 다 비우고 싶었다.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육중한 건물 주변에는 벌써 사람들이 들끓었다. 아르망이 첫 번째 홀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서 한 판 노시지요, 손님!”

돈을 긁어모으는 데 쓰는 작은 부삽을 흔들면서 지배인이 손님들을 불러들였다. 

아르망이 발길을 멈추지 않고 다음 홀로 갔다. 벽마다 수렵과 질주, 펜싱을 하는 반라의 여자들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건 다 한마디로 도박 심리를 충동하는 것이었다. 그 그림들에서는 치열한 싸움과 흥분과 탐욕이 긴장감 있게 배어 나왔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도박판 주변에 모인,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더 많이, 더 날카롭게 그려져 있었다.


창백한 얼굴의 뚱뚱한 상인이 붉은 솜털로 덮이고 퉁퉁한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돈을 끌어당겼다. 천식 환자처럼 힘겹게 숨을 쉬었다. 그의 두 눈이 돌아가는 구슬을 긴장하여 지켜본다. 뚱보는 벌써 거액을 잃고 지금은 복구하려는 기대로 마지막 돈을 거는 것이리라. 아르망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만약 마지막 판돈마저 날린다면, 살이 쪄서 흐느적거리는 이 사람은 자살자들의 거리로 가서, 거기서 인생과 마지막 정산을 할지도 모르지…


뚱보 뒤에는 옷차림 꾀죄죄한 노인이 백발을 흩뜨린 채 핏줄 불거진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손에는 수첩과 연필을 들고 이기는 숫자들을 적으면서 뭔가 계산을 하는데… 그는 벌써 오래 전에 전 재산을 다 날리고 룰렛의 노예가 되었다. 카지노 측에서 그에게 매달 많지 않은 용돈을 쥐어주고 있을 것이다. 생활도 하고 도박도 하라고. 그건 일종의 광고였다. 

이제 그는 자신만의 ‘확률 이론’을 세우고, 행운의 여신이 얼마나 변덕을 부리는지 연구하고 있다. 자신의 추측이 틀릴 때면 화가 나서 연필로 수첩을 콕콕 찍고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다시금 계산에 빠진다. 짐작이 맞아 떨어지면 얼굴이 환해져서 고개를 옆 사람들에게 돌린다, “봐요, 드디어 나는 확률 법칙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어.” 하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종업원 둘이서 검은 비단 드레스 차림의 노부인을 부축하여 안락의자에 앉힌다. 주름이 많은 목에 보석 목걸이가 걸려 있다. 노부인의 얼굴은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 비탄과 환희를 갈라놓는 비밀스러운 구슬을 보자 노부인의 움푹 들어간 두 눈에서 탐욕의 불꽃이 타오르고 반지를 줄줄이 낀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떨기 시작한다.

젊고 예쁘고 몸매 좋은 여성이 우아한 암녹색 의상을 입고 테이블 곁을 지나치다가 천 프랑 티켓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는 잃은 것을 확인한 뒤 태평하게 냉소를 짓고 다음 방으로 간다.


아르망이 레드에 백 프랑을 걸어 이겼다. 

‘난 오늘 이겨야 돼.’

그렇게 마음먹으면서 천 프랑을 걸었지만 잃고 말았다. 그러나 결국엔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이미 도박 욕구에 사로잡혔다. 

룰렛 테이블로 세 명이 다가왔다. 남자는 키가 크고 몸매가 좋고 아주 얼굴이 창백하고, 두 여자 중 하나는 빨강머리, 다른 하나는 잿빛 원피스 차림… 아르망이 마지막 여자를 흘낏 쳐다봤다. 뭔가 불안감이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마음이 불안한지 알지 못하면서 화가는 잿빛 옷차림의 여성을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그녀가 취한 오른손 제스처 하나에 깜짝 놀랐다. 

아르망이 카지노에서 브리케 일행을 우연히 보다

‘뭔가 눈에 익어! 아, 그래, 안젤리카가 저런 제스처를 취하곤 했어!’ 

그런 생각에 어찌나 놀랐던지 그는 더 이상 룰렛에 낄 수도 없었다. 미지의 세 인물이 웃으면서 테이블을 떠나자, 아르망이 딴 돈을 테이블에서 거두는 것도 잊어버린 채 그들 뒤를 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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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아르투아 도웰의 객실 문을 마구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도웰이 화를 내며 실내복을 걸치고는 문을 열었다. 

방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선 사람은 아르망이었다. 그가 피곤에 지쳐서 안락의자에 털썩 몸을 던지고는 말했다. 


“미칠 것만 같네.” 

“무슨 일이야, 친구?” 

도웰이 놀라서 물었다. 

“뭐냐면… 자네한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어제부터 새벽 두 시까지 카지노에 있었네. 처음엔 따다가 돈이 나갔지. 그런데 문득 어떤 여인을 본 거야. 그녀의 제스처 하나에 얼마나 놀랐든지 게임을 그만두고 그 뒤를 따라 레스토랑으로 갔어. 탁자에 자리 잡고 진한 블랙커피를 한 잔 시켰지. 신경이 너무 예민해질 때 커피를 마시면 난 늘 좀 안정이 되거든… 

그 모르는 여인은 옆 탁자에 앉아 있었네. 그녀 일행으로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있는데, 남자는 옷을 근사하게 차려입었지만 썩 신뢰가 가는 타입은 아니고, 여자는 빨강머리인데 아주 천박해 보여. 그들은 와인을 마시면서 즐겁게 수다를 떨었지. 잿빛 드레스 차림의 여인이 샹송을 부르기 시작했어. 들어 보니 목소리가 아주 불쾌한 음색에다 빽빽거리는 거야. 그러나 문득 그녀가 다소 낮은 저음을 가슴에서 내자…” 

아르망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르투아! 그건 바로 안젤리카의 목소리였단 말이네. 수천 개의 목소리 중에서도 난 그걸 알아들을 수 있어.”

‘가엾은 친구! 이렇게까지 상하다니.’ 

도웰이 그런 생각 끝에 상대 어깨에 손을 부드럽게 얹고 말했다. 

“그건 자네한테 그렇게 들린 것이야, 아르망. 정신 차리게. 어쩌다가 비슷한 목소리를 들은 거야…”

“아니, 그렇지 않아! 정말이네.” 아르망이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노래하는 여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네. 프로필이 또렷하고 사랑스러운 두 눈 하며 상당히 예뻐. 그러나 몸매가, 몸이 말이야! 아르투아, 만약 그 여자의 몸매가 안젤리카와 물방울 두 개처럼 닮지 않았다면, 난 악마한테 물려가도 좋아.”

“그래, 그렇다 치고, 아르망, 브롬을 좀 마시게.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눕게나.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지, 자네가 눈을 뜰 때면…” 


아르망이 힐난하는 눈길로 도웰을 응시했다. 

“자네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나?.. 아직 그렇게 단정 짓지 말게나. 내 말을 끝까지 들어봐. 아직 다 말하지 않았네. 그 여자가 노래를 부를 때 바로 이런 제스처를 손으로 취했어. 이건 안젤리카가 즐겨 취하는 제스처야, 이건 그녀한테 독특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제스처란 말일세.”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 낯선 여자가 안젤리카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모르겠네… 이것 때문에 내가 정말 미칠지도 몰라…” 아르망이 이마를 훔쳤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보게. 그 여자의 목에 정교한 목걸이가 걸려 있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목걸이도 아니야, 작은 진주가 박히고 넓이가 사 센티미터쯤 되는 고정 칼라야. 한데 가슴은 깊이 파여서, 그 사이로 어깨의 작은 반점이 보이는데, 그건 바로 안젤리카의 반점이란 말이야. 

목걸이는 마치 붕대처럼 보인다네. 목걸이 위로는 내가 모르는 여인의 머리통이, 아래로는 나에게 친숙하고, 그 선이며 형태 하나하나 내가 연구한 안젤리카의 몸이 있다는 것일세. 내가 화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나, 아르투아. 나는 인체의 독특한 선들과 개인적 특성을 잘 기억한다네… 안젤리카를 모델로 스케치와 습작을 내가 얼마나 많이 그렸나, 초상화를 얼마나 많이 그렸나. 그러니 실수란 있을 수 없네.” 


“아니야, 자네가 말하는 건 불가능해!” 도웰이 외쳤다. “안젤리카는 정말이지...”

“죽었다고? 정말 죽었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 중요하네. 그녀는, 혹은 그녀의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리고 이제…”

“자네가 안젤리카의 되살아난 시신을 만났다고?”

“오-오!..” 아르망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바로 그렇게 생각한 거네.”

도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바장였다. 이제 더 이상 잠을 청하기는 글렀다. 

“우리 냉철하게 판단해 보세. 자네 말로는, 그 여자가 마치 두 가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는 거지? 하나는 자기 목소리, 그저 평범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안젤리카의 목소리라는 건가?”

“낮은 음역은 바로 안젤리카의 독특한 콘트랄토야.”

아르망이 단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건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네. 자네는 사람이 고음을 성대 위쪽 끝으로, 낮은 음을 성대 아랫부분을 움직여 목구멍에서 뽑아낸다고 가정하는 건 아닌가? 소리 높이는 성대의 크기나 작은 긴장에 좌우되네. 그건 현악기 줄과 비슷해서, 더 팽팽하게 당겨질수록 현은 더 많은 진동과 더 큰 고음을 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게다가 만약 그런 수술을 한다면, 성대는 더 짧아졌을 테고, 그러니까 목소리가 아주 높아질 거라는 얘기지. 

그런데 사람은 그런 수술을 받은 뒤에 노래를 거의 할 수 없을 거야. 절단면이 성대의 올바른 진동을 방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목소리는 아무리 좋게 나온다 해도 아주 쉰 소리일 테고… 아니야, 이건 확실히 불가능해. 끝으로, 안젤리카의 몸을 ‘되살리려면’ 머리가 있어야 하네, 누군가의 몸통 없는 머리가...”

도웰이 문득 말을 멈췄다. 아르망의 가정을 어느 정도 입증하는 뭔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르투아 도웰은 아버지의 몇몇 실험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었다. 도웰 교수는 죽은 개의 맥관(脈管)에 섭씨 37도까지 데운 자양분 액체를 아드레날린을 섞어 주입했다. 아드레날린은 혈관을 자극하여 위축되지 않도록 해 주었다. 이 용액이 어떤 압력 하에서 심장에 들어가자, 심장이 다시 뛰면서 혈액을 혈관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혈액이 조금씩 순환하면서 동물이 살아났었다.

그때 아버지는 분명히 말했다.

기관이 죽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기관들에 혈액과 혈액에 담긴 산소 공급이 끊기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사람도 이런 식으로 살릴 수 있다는 뜻인가요?

아르투아의 물음에 아버지가 흔쾌히 답했다.  

그렇지. 나는 소생술을 완성하려고 해, 언젠가 이 ’기적‘을 만들어낼 거야. 그래서 많은 실험을 하고 있단다.


아버지 말대로라면 시신을 소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몸통은 이 사람 것이고 머리는 저 사람 것인 시체를 되살리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런 수술이 과연 가능할까? 그 점에서 아르투아는 확신이 없었다. 사실 그는 아버지가 조직과 피부를 이식하는 아주 과감하고 성공적인 수술들을 한 것을 직접 보았다. 그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아버지가 척척 해낸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안젤리카의 몸에 다른 머리가 있을 수 있다는, 아르망의 가정이 틀리지 않을지도 몰라. 아버지만이 그런 복잡하고 비범한 수술을 해내실 수 있었지. 그 실험을 조수들이 계속한 건 아닌가?’ 


도웰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머리나 시신 전부를 되살리는 것과 한 사람의 머리를 다른 사람의 몸통에 붙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야.’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도웰이 생각을 멈추고 물었다. 

“잿빛 원피스의 여인을 찾아내서 안면을 튼 뒤 비밀을 파헤치고 싶네. 자네가 도와줄 텐가?”

“당연하네.”

아르망이 도웰의 손을 굳게 쥐었다. 

그들이 향후 행동 계획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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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흥겨운 뱃놀이 


며칠 지나 아르망이 브리케와 그녀의 여자 친구, 장 등과 이미 알게 되었다. 그가 그들에게 요트를 타고 바다 유람을 하자고 제의했고, 제의는 쾌히 수락됐다.


장과 빨강머리 마르타가 갑판에서 도웰과 얘기 나누는 동안, 아르망은 브리케에게 밑으로 내려가 선실을 구경하라고 권했다. 그리 넓지 않은 선실이 두 칸인데, 그 중 하나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오, 여기에도 악기가 있다니!” 

브리케가 반갑게 소리쳤다.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아 폭스트로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요트가 파도 위에서 율동적으로 흔들렸다. 아르망이 피아노 곁에 서서 브리케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어떻게 조사를 시작할지 궁리했다. 

“아무 거나 한 곡 불러 봐요.” 

브리케가 선선히 응했다. 아르망에게 교태 어린 눈길을 던지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당신 목소리는... 좀 이상하군요.” 

아르망이 그녀의 얼굴을 예리하게 응시하면서 말했다. 

“당신 목구멍에는 두 개의 목소리가, 두 여인의 목소리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브리케가 일순 당황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어색한 웃음을 날렸다…

“아, 그래요!..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어떤 음악 선생은 내 목소리가 콘트랄토라 하고, 다른 선생은 메조소프라노라고 했지요. 누구나 목소리를 나름대로 평가했고, 그렇게… 근데 난 얼마 전에 감기에 걸렸어요…”

그런 말을 듣자 아르망의 궁금증이 더 커졌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거지? 내 짐작이 맞는다. 여기엔 뭔가 비밀이 있어.’ 

선실에서 브리케가 아르망에게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아르망이 우울하게 입을 뗐다. 

“당신이 저음으로 노래할 때는... 내가 잘 아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 같아요. 그녀는 유명한 가수였지요. 가엾게도 기차 전복 사고로 죽었어요. 놀랍게도 그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녀 몸매는 당신 몸매와 너무나도 똑 닮았어요. 두 개의 물방울처럼… 당신 몸이 그녀의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상대를 쳐다보는 브리케의 눈빛에는 이미 두려움이 감춰지지 않았다. 이런 대화를 아르망이 괜히 꺼내는 것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응수했다. 

“서로 빼닮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래요. 그렇지만 그렇게 닮은 사람들을 난 여태껏 못 봤어요. 그뿐 아니라… 당신 제스처… 바로 손을 쓰는 제스처가… 또 있어요… 지금 당신은 흐트러진 머릿결을 다듬으려는 것처럼 손으로 머리를 쥐었지요. 그런 머리채가 안젤리카에게도 있었고, 그녀도 관자놀이에 흘러내린 머리를 그런 식으로 쓸어 올리곤 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기다란 머리대신 최신 유행으로 짧게 잘랐군요.”

“예전에는 나도 머리를 길렀어요.” 

브리케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얼굴이 창백하고, 손가락 끝이 유난히 떨렸다. 

“여긴 갑갑해요... 위로 올라가지요...” 

아르망이 역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그녀를 세웠다.

“잠깐만이요. 당신하고 얘기를 꼭 나눠야 합니다.”

그가 두꺼운 유리창 앞에 놓인 안락의자에 그녀를 억지로 앉혔다. 

“속이 안 좋아요… 난 뱃놀이에 익숙하지 못해요!” 

브리케가 일어나려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짧은 옥신각신 중에 아르망의 손이 우연히 그녀의 목을 건드리면서 목걸이가 약간 벗겨졌다. 그러자 장밋빛 절단면이 훤히 드러났다. 


브리케가 비틀거렸다. 아르망이 그녀를 간신히 부축했다. 그녀가 기절한 것이다. 

화가가 어찌할 줄 몰라서 호리병에 있는 물을 그녀 얼굴에 끼얹었다. 그녀가 곧 정신을 차렸다. 두 눈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서렸다. 제법 오랫동안 둘은 서로를 말없이 바라봤다. 브리케는 자신에게 징벌의 시간이 닥친 것 같았다. 남의 몸을 자기 것처럼 걸치고 다닌 대가를 지불할 무서운 시간이 말이다.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겨우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나를 망가뜨리지 말아요!.. 가엾게 봐 주세요…”

“진정해요. 난 당신을 망칠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이 비밀은 꼭 알아야겠어요.”

아르망이 브리케의 축 늘어진 팔을 들어 올려서 세게 눌렀다.

“말해요, 이건 당신의 몸이 아니지요? 이걸 어디서 났지요? 사실대로 고해요!”

“장!” 

브리케가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아르망이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을러댔다. 

“한 번만 더 소리를 지르면, 이 선실에서 영원히 못 나갈 거요.”

그러고는 브리케에게서 떨어져 선실 문을 재빨리 잠그고 유리창을 꼭꼭 닫았다. 

브리케가 어린애처럼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르망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울어도 소용없어요! 내 인내심이 고갈되기 전에 얼른 말해요!”

브리케가 흐느끼면서 입을 떼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난 유탄을 맞고 죽었는데... 하지만 그 뒤 다시 살아났어요... 머리 하나만 유리판 위에 놓였지요… 그건 아주 무서웠어요!.. 톰의 머리도 거기 놓여 있었고… 그런 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요… 코른 교수,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살려냈어요… 나에게 몸통을 붙여달라고 부탁했지요. 그가 약속을 했고… 그러더니 어디선가 바로 이 몸을 가져온 거예요…” 

그녀가 자신의 어깨와 두 팔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바라봤다.  

“그러나 죽은 몸을 보고서는 거부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게 싫어서 내 머리를 시체에 붙이지 말라고 애원했지요… 이런 사실은 로랑이 증명할 수 있어요. 그녀가 우리를 돌보았으니까. 그러나 코른은 나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나를 마취시켰고, 깨어 보니 이런 모습이었어요. 난 코른의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아서 파리로 달아났다가 여기로 오게 된 거지요… 코른이 나를 추적할 것임을 알았어요… 제발 나를 죽이지 말아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이제 나는 몸통 없이 남기를 원치 않아요, 이건 나의 일부가 되었어요... 이렇게 경쾌한 움직임을 난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어요. 단지 발이 아픈데... 하지만 통증은 사라지겠지요… 코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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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횡설수설을 들으면서 아르망이 생각했다. 

‘이 여인한테는 정말 죄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코른이란 자는… 어떻게 안젤리카의 시신을 빼내서 이런 끔찍한 실험에 쓸 수가 있었단 말인가? 코른! 그래, 그 이름을 아르투아한테서 들은 적이 있어. 코른은 아르투아 아버지의 조수였던 것 같아. 이 비밀을 반드시 밝혀내고 말리라.’

아르망이 엄격한 투로 말했다. 

“울음을 멈추고 내 얘기를 잘 들어요. 내가 당신을 돕겠어요. 하지만 이 순간까지 당신에게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지켜야 합니다. 이제 여기로 올 사람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이오. 여기로 올 사람은 바로 아르투아 도웰이오. 당신도 그를 이미 알고 있어요. 당신은 모든 면에서 내 말을 따라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어깃장을 놓는다면, 그 즉시 지독한 형벌을 받게 될 거요. 

당신은 사형을 받아 마땅한 범죄를 저질렀어요. 당신의 머리와 당신이 입수한 남의 몸을 그 어디에도 숨기지 못할 것이오. 기요틴 집행자들이 당신을 찾아낼 거요. 내 말을 똑똑히 들어요. 첫째, 진정하시고, 둘째, 피아노 앞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요. 위에서도 들을 수 있게끔 최대한 크게 불러요. 당신은 아주 즐거워서 갑판으로 올라갈 마음이 없는 겁니다.”


브리케가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앉고는 겨우 말을 듣는 손가락들을 놀려 반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더 크게, 더 명랑하게.” 

아르망이 유리창과 선실 문을 열면서 지시했다. 

그건 참으로 이상한 노래였다. 씩씩하고 유쾌한 장조 풍으로 옮겨진, 절망과 공포의 비명이었으니 말이다. 

“건반을 더 힘차게 두드려요! 그래, 그렇게! 연주하면서 기다려요. 당신은 우리와 함께 파리로 갈 거요. 달아날 생각일랑 접으시오. 파리에서 당신은 안전할 거요. 우리가 당신을 보호할 수 있어요.”


아르망이 명랑한 얼굴을 하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요트는 오른편으로 기운 채 작은 파도를 따라 빠르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축축한 바닷바람이 상큼했다. 아르망이 아르투아 도웰에게 다가가서 다른 두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한 옆으로 데리고 와 말했다.

“밑에 선실로 가 보게나. 그녀가 나한테 한 얘기를 다시 그대로 말하도록 시키게. 그 동안 손님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


“어때요, 요트가 마음에 들어요, 마담?”

아르망이 빨강머리 마르타에게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장은 장의자에 널브러져서 경찰과 수사관들을 피해 멀리 도망 온 기쁨을 만끽했다. 더 이상 조바심 떨고 싶지 않았으며, 늘 긴장하는 생활을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작은 상자에서 고급 코냑을 느긋하게 꺼내 들면서 꿈만 같고 명상적인 상태에 한층 더 빠져들었다. 그건 다 아르망 덕분이었다. 

빨강머리 마르타도 아주 만족스러운 상태에 있었다. 선실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노래를 들으면서 경쾌한 가락들 사이사이에 자신의 목소리를 섞었다.


한 판의 연주와 노래에 진정된 것인가, 아니면 아르투아가 덜 위험한 상대로 보였기 때문인가, 어쨌든 브리케가 이번에는 자신의 죽음과 소생에 관한 사연을 좀 더 조리 있고 알아듣게 읊었다.

“그게 전부예요. 내가 과연 죄를 저질렀나요?” 

그녀가 이젠 웃음기마저 띠면서 묻고는 <내가 잘못인가요?>라는 제목의 짧은 샹송을 부르기까지 했다. 그 노래를 갑판에 있는 마르타가 따라 불렀다. 

아르투아 도웰이 부친 사진을 꺼내 브리케에게 보여주다

아르투아 도웰이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코른 교수 집에서 본 세 번째 머리에 대해 자세히 말해 봐요.”

“톰이요?”

“아니요, 코른 교수가 어떤 머리에게 당신을 보여줬다면서! 그렇지만…” 


도웰이 바지 주머니에서 서둘러 지갑을 꺼내 뒤지더니 사진을 빼서 브리케에게 보였다.

“말해 봐요, 여기 이 남자분이 당신이 코른 집에서 본, 나의... 아는 머리와 닮았나요?”

“네, 아주 똑같아요!”

브리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건반을 두드리는 것조차 그만두었다. 

“정말 놀랍군요! 어깨가 있네요. 몸이 달린 머리로군요. 이 사람에게 벌써 몸을 달아주었단 말이에요? 아니, 왜 그러세요?” 

그녀가 놀라움과 정감이 뒤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르투아가 비틀거렸다.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간신히 자신을 추슬러서 몇 발짝을 떼고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왜 그러세요?”

브리케가 재차 물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의 입에서 나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불쌍한 아버지.” 

그러나 브리케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아르투아 도웰이 아주 빨리 정신을 수습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얼굴은 거의 차분했다.

“미안해요. 당신을 놀라게 한 것 같군요. 이따금 가벼운 심장 발작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제 다 지나갔어요.”

“근데 그 사람은 누구지요? 당신과 닮은 듯한데... 형인가요?”

브리케가 호기심을 보였다. 

“그가 누구이든 간에 당신은 그 머리를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갑시다. 우리가 은신처를 만들어 주겠어요. 그 누구도 당신을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언제 떠날 수 있겠어요?”

“오늘이라도. 한데 당신은... 내 몸뚱이를 떼어내지는 않을 건가요?”

도웰이 언뜻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아니지요… 당신이 우리 얘기를 잘 듣고 협조만 한다면. 갑판으로 올라갑시다.”

“아, 뱃놀이가 어떤가요?”

갑판으로 올라와서 도웰이 명랑하게 물었다. 그리고 노련한 뱃사람처럼 수평선을 응시하고는 걱정스럽게 고개를 저으면서 덧붙였다.

”바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저기 수평선 위에 어둑어둑한 띠가 보이지요?.. 제 시간에 돌아가지 않으면…“

“오, 얼른 돌아가요! 난 바다에 빠져 죽고 싶지 않아요.” 

브리케가 농 반 진 반으로 외쳤다. 

돌풍의 기미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빨리 해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웰이 바다에 생소한 손님들을 그저 놀라게 한 것일 뿐이었다.

아르망이 점심식사 뒤에 ‘돌풍이 불지 않으면’ 테니스 코트에서 만나기로 브리케와 약속했다. 


호텔로 돌아오자 도웰이 말했다. 

“이보게, 아르망, 우리가 커다란 비밀의 흔적을 우연히 접하게 됐어. 코른이 누구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지 아나? 바로 내 부친, 도웰 교수의 머리야!

벌써 의자에 앉았던 아르망이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났다. 

“머리라고? 자네 부친의 살아있는 머리라고?! 하지만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이게 다 코른의 짓이야! 그자는… 내가 그자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겠어! 이제 한 시라도 빨리 자네 부친의 머리를 찾아야 하네.” 

아르투아가 비감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살아있는 상태로 찾아내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야. 부친은 몸에서 떼어낸 머리들의 소생 가능성을 몸소 입증하셨지. 하지만 그 머리들은 두 시간도 채 못 살고 죽었다네. 왜냐하면 혈액이 엉겨 붙었고, 인공영양 액체로는 생명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아르투아 도웰은 부친이 숨지기 얼마 전에 <도웰 217>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코른이 <코른 271>로 개명한 약제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약제는 혈관에 주입되어 혈액의 응고를 완벽하게 막아주고, 그래서 머리가 더 오래 생존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살아 있든 죽었든 아버지 머리를 찾아내야 해. 얼른 파리로 떠나세!”

아르망이 짐을 꾸리려고 자기 객실로 달려갔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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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도웰 교수의 머리

 


 

11. 달아난 전시품 

 

브리케의 삶에서 마침내 위대한 날이 도래했다.

마지막 깁스붕대를 제거한 뒤 코른 교수가 그녀에게 일어나 보라고 했다.

그녀가 일어나서 로랑의 손에 의지하여 방안에서 걸었다. 동작이 확실치 않고 다소 위태로웠다.

가끔 그녀는 손으로 이상한 제스처를 썼다. 즉, 손이 어느 범위까지는 고르게 움직였는데 그 다음에는 멈칫하는 것이었다. 마치 다시 고르게 움직이기 위해 강요된 동작처럼.

그걸 보면서 코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다 괜찮아질 거야.” 

 

그는 브리케의 발바닥에 난 크지 않은 상처에 다소 안도했다.

상처는 서서히 아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브리케가 아픈 발로 짚을 때조차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물었다.

며칠 지나서 브리케는 벌써 춤을 추려고 들었다.

그러다가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어떤 움직임들은 마음대로 되는데, 또 어떤 것들은 어려워요. 아마도 새 몸뚱이를 내가 아직 잘 통제하지 못하나 봐… 그래도 이 몸통은 아주 훌륭해! 이 다리를 보세요, 마드무아젤 로랑. 키도 늘씬하잖아요. 단지 목에 이 수술 자국이… 가려야 되겠지요. 그러나 그 대신 어깨에 있는 이 반점은 정말 매력적이지 않아요? 이 점이 보이도록 드레스를 해 입을래요… 아, 내 몸뚱이에 아주 만족해요.”

브리케의 수다를 들으면서 로랑이 생각했다.     

‘자기 몸이라니! 아아, 안젤리카가 가엾어라!’

 

브리케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내면에 묶어두었던 것이 모두 단번에 겉으로 터졌다. 그녀는 로랑에게 드레스와 외투, 구두, 모자, 패션잡지, 화장품 따위를 요구하고 주문하고 부탁했다. 

 

몸을 결합한 브리케가 원피스를 입어 보다

 

잿빛 비단 원피스를 새로 지어 입히고서 코른이 그녀를 도웰 교수의 머리에게 소개했다.

남성의 머리가 눈앞에 나오자 브리케가 이전 습관대로 교태를 부렸다. 그리고 도웰의 머리가 쉰 소리로,

“아주 좋소! 당신은 과제를 탁월하게 수행했구려, 동료. 축하하오!”

하고 말하자 코른이 아주 좋아했다. 

코른이 브리케와 팔짱을 끼고 새 신랑처럼 얼굴이 환해져서 방을 나갔다.

 

서재에 들어서자 코른이 정중한 기사처럼 예의 갖추어 말했다.

“편히 앉아요, 마드무아젤.” 

“어떻게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교수님.” 

그녀가 난처한 듯이 눈을 내리깔다가 코른을 애교 있게 응시하면서 말했다. 

“나한테 많은 것을 주셨어요… 한데 나는 보답할 게 없네요.”

“보답 같은 건 필요 없소.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난 더 많이 보답을 받았으니까.”

브리케가 코른에게 더 반짝이는 눈길을 던졌다.

“아주 기뻐요. 이제 내가 떠나도록... 그러니까 진료소에서 나가도록 해주세요.”

“나가다니? 어떤 진료소에서?” 

코른이 얼핏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집으로 가야지요. 내가 나타나면 친구들한테 엄청난 센세이션이 될 거예요!” 

 

그 말에 코른이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려고 한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가장 복잡한 과제를 완성했고 아예 불가능한 일을 해냈는데... 그건 브리케가 자기의 경박한 친구들한테 센세이션이나 주려고 한 게 아니야. 브리케를 학술대회에서 공개함으로써 나 자신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려 한 것이지. 나중에야 그녀에게 자유를 좀 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절대로!’

 

“안됐지만 당신을 내보낼 수 없소, 마드무아젤 브리케. 당신은 한동안 내 집에서 관찰을 받으며 지내야 해요.”

“도대체 왜 그래야지요? 난 상태가 아주 좋아요.” 

그녀가 손을 흔들면서 반박했다. 

“그래요, 하지만 악화될 수 있소.”

“그때 다시 오면 되잖아요.”

“당신이 언제 여기서 떠날 수 있는지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소. 내가 없었다면 당신 꼴이 어떠했을지 잊지 마시오.”

코른의 말투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벌써 감사를 표한 걸요. 그리고 난 어린 계집애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에요.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란 말이에요!

‘이런, 한 성질 하는군.’ 

케른이 내심 놀라서 말을 잘랐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일단은 당신 방으로 돌아가요. 존이 벌써 수프를 대령했을 거요.”

브리케가 입술을 빼물고 일어나더니 코른을 쳐다보지도 않고 나갔다. 

 

브리케가 로랑의 방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녀가 들어설 때 로랑은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

브리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오른손으로 아무렇게나 제스처를 취했는데, 그게 아주 우아하게 보였다. 

그런 제스처를 로랑이 벌써 여러 번 보면서, 그 제스처가 누구한테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안젤리카일까 아니면 브리케의 몸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나 안젤리카의 몸에 굳어진 운동신경이 과연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단 말일까? 

그런 질문은 로랑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 문제는 생리학자들이 연구할 거야.’ 하고 생각했다. 

 

“또 수프네! 이 진료소의 음식은 진저리가 나요. 신선한 굴을 먹고 샤블리(*Chablis, 프랑스의 전통 백포도주)를 마시면 좋겠는데.” 

브리케가 변덕스럽게 말했다.

접시에 있는 맑은 수프를 몇 모금 삼키고 또 입을 놀렸다. 

“코른 교수가 금방 한 말인데, 앞으로도 며칠 동안 나를 집으로 보내지 않을 거라네요. 그러면 안 되지요! 나는 새장에 갇힌 새도 아닌데. 여기는 따분해 죽겠어요. 이건 아니야, 난 환한 불빛과 음악과 꽃다발, 샴페인 같은 게 다 어우러져서 흥청대는 삶을 좋아해요.”

그렇게 쉴 새 없이 지껄이면서 후닥닥 배를 채우고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창가로 다가가서 아래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말했다.

“잘 자요, 마드무아젤 로랑. 오늘은 일찍 누울래요. 내일 아침에 나를 깨우지 말아요. 이 집에서는 시간을 때우려면 잠자는 게 가장 좋지요.”  

그러고는 고개를 까닥이고 자기 방으로 갔다.

 

로랑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편지는 다 코른의 통제를 받았다. 그가 얼마나 심하게 감시하는지 로랑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몰래 편지를 보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설령 코른 몰래 편지를 보낼 수 있다 해도 강제로 구금돼 있다는 사실은 쓰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날 밤 로랑이 유독 잠을 설쳤다.

앞날을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오랫동안 뒤척였다. 그녀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다.

그녀가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려고’ 코른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보아하니 브리케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창문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새 드레스를 입어 보나?’ 하고 로랑이 생각했다. 그러더니 잠잠해졌다.

잠결에 어디선가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들린 듯하여 잠을 깼다. 

‘하지만 내 신경은 끄떡없을 거야.’ 생각하고 다시 새벽잠에 깊이 빠졌다. 

 

여느 때처럼 아침 일곱 시에 눈을 떴다. 브리케의 방은 여전히 조용했다.

로랑은 그녀를 건드리지 않기로 하고 톰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갔다. 머리는 이전처럼 음울한 모습이었다. 코른이 브리케의 머리에 ‘몸통을 이식한’ 뒤 톰은 한층 더 우울해졌다. 그는 자기한테도 새 몸통을 빨리 달라고 부탁하고 애원하고 요구하다가 결국엔 거친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를 달래느라고 로랑이 꽤나 애를 먹었다.

머리의 아침 치장을 끝내고서 로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도웰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갔다. 

 

도웰은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삶이란 정말 이상한 물건이오! 불과 얼마 전에 난 죽기를 원했다오. 그러나 나의 뇌는 여전히 작동하고, 그저껜가는 아주 과감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그 생각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의학계에는 천지개벽이 일어날 텐데. 그걸 코른에게 알렸더니, 오오, 그의 두 눈이 어떻게 불타오르는지 아가씨가 봤어야 하는데. 그의 눈앞에서는 동시대인들이 감사하여 세운 자신의 동상이 어른거렸을 거야... 그래서 나는 그를 위해, 아이디어를 위해, 곧 나를 위해 살아야 하오. 사실 이건 무슨 멍에 같은 게지요.” 

“어떤 아이디어인데요?”

“내 뇌에서 윤곽이 더 뚜렷하게 잡히면... 그때 들려주리다...” 

 

아홉 시에 로랑이 브리케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문을 열려고 했지만 꿈쩍도 안했다. 안에서 잠겨 있었다. 코른 교수에게 즉각 알리는 것 외에는 달리 두수가 없었다.

코른이 늘 그렇듯이 민첩하고 단호하게 행동했다. 

“문을 부숴라!”

지시를 받은 흑인이 어깨를 부딪쳤다. 묵직한 문이 바지직 소리를 내면서 경첩에서 툭 떨어졌다. 코른과 로랑, 존이 방으로 들어섰다. 

브리케의 구겨진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코른이 창문으로 달려갔다. 창틀 손잡이 밑으로 욧잇 조각들과 수건 두 장을 이은 노끈이 늘어져 있었다. 창 아래 화단에 발자국이 어지러웠다. 

 

코른이 로랑에게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대면서 고함을 쳤다.

“이건 당신 짓이야!”

“신에게 맹세하건대, 마드무아젤 브리케의 탈주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로랑이 똑 부러지게 대응했다.

“좋아, 당신하고는 따로 얘기하지.” 

로랑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브리케가 단독으로 탈주를 감행했다는 것을 금방 느꼈음에도 코른은 여운을 남겼다. 

“지금은 도망자를 체포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니까.” 

 

브리케가 코른의 개인병원을 탈출하다

 

코른이 서재로 돌아와서 불안감을 억누르며 벽난로와 책상 사이를 바장였다.

먼저 경찰을 부를까 생각했다. 그러나 금방 지웠다.

이 일에 경찰을 개입시켜서는 절대 안 돼. 개인 탐정 사무소에 의뢰하는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내 잘못이야… 감시를 붙여야 했는데! 그러나 어제까지만 해도 시체였던 것이 달아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 텐가!

코른이 고약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 여자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사방에 나발 불고 다닐 텐데... 자신의 등장이 일으키는 센세이션 어쩌고 떠들지 않았던가… 신문기자들이 사건을 냄새 맡으면… 그녀를 도웰의 머리통한테 보여주는 게 아니었어… 일을 꼬이게 만드는군.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

 

코른이 전화로 탐정사무소 에이전트를 불러서 거금의 비용을 주며 수색을 의뢰했다. 찾아내는 경우에 더 많이 사례하겠다고 약속하고, 사라진 여인의 인상착의를 상세하게 알렸다. 

 

사설탐정이 탈주 장소에서 정원 철제 담장까지 이어진 흔적들을 둘러보았다. 담장은 키가 높고 꼭대기가 뾰족뾰족했다.

탐정이 고개를 저었다. ‘용케 빠져나갔군!’

뾰족한 철창 하나에 잿빛 비단 조각이 걸려 있었다. 그걸 떼어내 주머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달아날 때 이 드레스를 입고 있었군요. 잿빛 원피스를 입은 여인을 찾을 겁니다.”

‘잿빛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늦어도 하루 밤낮 안에는 찾아내겠다고 코른에게 다짐하고서 탐정이 떠났다. 

 

탐정은 자기 일에서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브리케가 마지막으로 살던 아파트 주소와 그녀의 이전 여자 친구 몇몇의 주소를 알아내고 그들과 안면을 트고, 한 여자 친구에게서 브리케의 사진을 발견하고 브리케가 어떤 카바레들의 무대에 섰는지 알아냈다. 도망자를 찾기 위해 다른 탐정 몇 명이 여러 장소에 파견됐다.

“새가 멀리 날아가지는 못할 겁니다.” 

탐정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실수했다. 이틀이 흘렀지만 브리케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사흘째 되는 날 몽마르트에 있는 한 선술집 단골이 사흘 전 한밤중에 ‘소생한’ 브리케가 거기 왔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코른이 한층 더 걱정에 빠졌다.

이제는 브리케가 그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귀중한 ‘전시품’을 아주 잃어버릴까봐 겁이 났다.

사실 그는 톰의 머리로 다른 것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시간과 엄청난 수고가 따라야 했다. 

게다가 새 실험이 훌륭하게 끝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소생시킨 개를 공표하는 것은 당연히 그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아니야,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브리케를 반드시 찾아내야 해. 그는 ‘달아난 전시품’ 수색에 건 사례금을 두 배로, 세 배로 늘렸다.

 

탐정들이 날마다 수색 결과를 보고해 왔지만, 신통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브리케가 땅 속으로 사라진 것만 같았다. 행방이 묘연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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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Бедяев Голова профессора Доуэля Фантастика
벨랴예프 도웰 교수의 머리 판타지

 


 

 

 

10. 죽은 다이애나 

 

브리케의 머리가 보기에는 적당한 새 몸을 골라서 사람 머리에 접합하는 것이 새 원피스의 치수를 재고 바느질하는 것처럼 쉬운 일 같았다. 목둘레를 재고, 그 사이즈에 맞는 목을 가지고 있는 시신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냐 싶었다.

하지만 머리는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님을 곧 확신하게 됐다. 

 

아침에 코른 교수와 로랑, 존이 흰 가운 차림으로 브리케의 머리에게 나타났다. 코른은 브리케의 머리를 유리판에서 조심스레 떼어내 목의 절단면이 자세히 보이게끔 얼굴을 위로 돌려놓으라고 지시했다. 산소를 가득 담고 있는 혈액이 여전히 머리에 공급됐다. 코른이 꼼꼼히 살피고는 목의 굵기를 쟀다.

 

“인간 구조가 기본적으로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몸은 다 나름대로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 예를 들어, 경동맥도 이게 외경동맥인지 내경동맥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가끔 있거든. 목둘레가 같은 사람들한테서도 동맥 굵기와 목구멍 넓이가 일정하지 않아. 신경들에도 적잖이 손을 대야 하고.”

로랑이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수술하실 겁니까? 목의 절단면에 몸통 절단면을 붙인 뒤, 바로 다 봉합하는 건가요.”

“그게 가장 중요하오. 이 문제를 내가 도웰과 함께 자세히 검토했다오. 중심에서 바깥으로 종단으로 절개해야 돼. 아주 복잡한 작업이오. 아직 죽지 않고 활동하는 세포들을 얻으려면 목 부위가 죽지 않게끔 절단해야 하는 거요. 그러나 그게 가장 큰 난관은 아니오. 중요한 것은, 부패가 시작됐거나 세균에 감염된 부위들을 시체에서 어떻게 제거하느냐, 또 어떻게 혈관의 손상된 혈액을 씻어내고 신선한 피를 채워서 신체의 ‘모터’인 심장이 작동하게 만드느냐… 그러면 척수는? 그건 아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가장 강력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종종 수습하기 어려울 수가 있소.”

 

“그렇게 어려운 작업들을 어떻게 해내시려는 겁니까?”

“아, 그건 일단 내 비밀이오. 실험이 성공하면, 죽은 자들을 소생시키는 내막을 다 공개할 거요. 자, 오늘은 이걸로 충분해. 머리를 제 자리에 돌려놓고, 공기를 흘려 넣으시오.”

그러고는 코른이 브리케의 머리에게 물었다. 

코른과 로랑이 브리케 머리를 두고 의논하다

 

“기분이 어때요, 마드무아젤?”

“감사합니다. 좋아요. 하지만 교수님, 난 아주 불안해요… 지금 여러 가지 알아듣기 힘든 말씀을 하셨는데, 그래도 한 가지는 이해했어요. 당신은 내 목을 종횡으로 마구 난도질하려는 거지요? 그건 정말 꼴불견일 거예요. 커틀릿 같이 보일 목을 달고 내가 어디에 나타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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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덜 보이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자국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할 거야. 실망하는 눈빛 짓지 말아요, 마드무아젤, 목에 비로드 리본이나 목걸이를 하면 될 거야. 그래, 당신 ‘생일’에 그런 목걸이를 하나 선사하지. 아, 그리고 하나 더. 지금 당신 머리는 다소 말랐어요. 당신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머리에 살이 좀 붙어야 돼. 당신의 정상적인 목둘레를 알기 위해 이제 당신을 ‘포동포동하게 살 찌워야’ 할 것 같아. 안 그러면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먹을 수가 없는 걸요.” 

머리가 불평했다.

“우리가 관을 통해서 살을 찌우지. 내가 특별한 종합 영양식을 준비했어.” 

그러고는 로랑에게 말했다. 

“그것 말고도 혈액 공급을 더 늘려야겠소.”

“영양 용액에다 지방질을 넣으시려고요?”

코른이 모호하게 손을 저었다. 

 

“머리에 기름기가 좀 끼어서 포동포동하게 되지 않으면 ‘수분이라도 넣어서 부풀려야’ 하오. 그게 우리한테 필요해. 자아,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어. 하느님에게 기도해요, 마드무아젤 브리케. 당신에게 아름다운 몸을 선사할 어떤 미녀가 한시라도 빨리 죽게 해 달라고 말이오.”

“그런 말씀 마세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내가 몸을 얻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니… 무서워요, 의사 선생님. 그건 죽은 사람 몸이잖아요. 갑자기 그녀가 와서 자기 몸을 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누가?”

“죽은 사람이 말이에요.”

코른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하지만 당신에게 오고 싶어도 다리가 없는데. 만약에 나타난다고 해도, 그녀가 당신에게 몸을 준 게 아니라 당신이 그녀에게 머리를 준 것이라고 말해요. 그러면 그녀는 오히려 선물에 감사할 거야. 이제 난 시체 안치소에 가 봐야겠어. 내 성공을 빌어 주오!”

 

실험 성공 여부는 최대한 신선한 시신을 확보하는 데 크게 좌우됐다. 그래서 코른은 만사를 제치고 행운을 기다리며 시체 안치소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입에 시가를 문 채 그는 기다란 건물을 마치 가로수 길 산책하듯이 느긋하게 오고갔다. 길게 늘어선 대리석 탁자들 위로 희끄무레한 불빛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탁자마다 이미 물줄기로 세척된 시체들이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시가 연기를 내뿜으면서 코른이 기다란 탁자 대열을 따라 천천히 발을 옮겼다. 얼굴들을 들여다보고 몸통을 보기 위해 틈틈이 가죽 덮개를 들추곤 했다. 

코른이 시체 안치소에서 갓 죽은 시신을 찾는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와 함께 오갔다. 코른은 그들을 마뜩잖은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적당한 시신을 찾았다 해도 그들이 도로 빼앗아 가면 말짱 헛일이었다. 적당한 시신을 확보하기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유족들이 사흘이 지나기 전까지 시신에 대한 권리를 제기할 수 있고, 사흘이 넘어서 절반 부패한 시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주 신선하고, 가능하면 식지 않은 시신이 필요했다.

 

신선한 시신을 즉각 얻기 위해 코른은 돈도 아끼지 않았다. 시신의 번호를 바꿔치기하면 그만이고, 그 다음에 어떤 불행한 시신이 결국 ‘행방불명’으로 처리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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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리케의 입맛에 맞는 다이애나를 찾기란 쉽지 않아.’ 

시체들의 넓적한 발바닥과 군살 박힌 손들을 보면서 코른이 생각했다. 여기에 누워 있는 시신들 대다수는 자가용차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코른이 저편 끝에서 이편 끝으로 지나왔다. 그 동안에 신원 확인된 시신 몇 구가 밖으로 들려나가고, 그들 자리를 벌써 새로운 시신들이 채웠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시신들 중에서도 수술에 적합한 재료를 코른은 구할 수 없었다. 

머리가 없는 시신들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체격이 맞지 않거나 몸에 상처가 났거나, 그도 아니면 이미 부패가 시작된 것들이었다. 하루가 또 저물어가고 있었다. 시장기를 느낀 코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접에 담긴 닭 커틀릿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셨다.

 

‘오늘도 글렀어.’

회중시계를 꺼내 보았다. 그러고는 여러 시신들 곁에서 절망과 경악과 오열에 가득 차서 움직이는 인파를 뚫고 출구 쪽으로 발을 옮겼다. 저편에서 마주 오는 일꾼들이 머리가 없는 여인의 몸통을 옮기고 있었다. 말끔하게 씻긴 젊은 몸이 흰 대리석처럼 빛을 냈다. 

‘오, 저건 쓸 만해 보이는데.’

그가 잡역부들을 뒤따라갔다. 탁자 위에 놓인 시신을 대충 훑어보고서는 필요한 것을 찾았다는 확신이 더 커졌다. 코른이 일꾼들에게 그 시신을 내가자고 귀엣말을 하려는 순간, 수염이 텁수룩하고 입성 남루한 늙은이가 시신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 아이야, 마르타가 맞아!” 

늙은이가 소리 지르면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빌어먹을, 어디서 나타난 거야!”

코른이 입속에서 욕설을 내뱉고는 늙은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시신을 확인하셨습니까? 머리가 없는데.”

늙은이가 왼쪽 어깨에 박힌 커다란 점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걸 보면 알 수 있지요.”

늙은이가 하도 태연하게 말하는 바람에 코른이 놀랐다. 

“그녀는 누구지요? 당신의 아내? 아니면 딸이었나요?”

늙은이는 수다스러웠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조카딸이지요, 그것도 친조카는 아니고. 사촌누이가 아이들 셋을 남기고 죽는 바람에 내가 키웠어요. 내 자식들만 해도 넷이나 되는 통에 입에 풀칠하기도 쉽지 않은 판인데. 하지만 어떡하겠수, 신사 양반? 울타리 아래 있는 고양이를 내쫓지는 않는 법이라우. 그렇게 살았지요. 한데 불행이 생겼지 뭡니까. 우리는 낡은 건물에서 살고 있는데, 무너질 염려가 있다고 벌써부터 거기서 우리를 나가라고 했지요. 하지만 갈 데가 있어야지? 그냥 버티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다른 아이들은 부상한 채 빠져나왔는데, 이 아이는 이렇게 목이 잘리고 말았군요. 나하고 할미는 집에 없었어요, 군밤을 팔러 나갔었지.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마르타를 벌써 시체 안치소로 옮긴 뒤였다우. 왜 시체 안치소냐? 다른 아파트들에 살던 사람들도 함께 깔려 죽었는데, 개중에 어떤 이들은 혼자 살았어, 그래서 다 여기로 옮겼다는 거지요. 내가 도착해 보니, 집이 사라져 버렸어, 들어갈 수가 없어요, 지진 난 것 같으니...“

 

‘음, 좋아, 딱 적당해.’

코른이 수다스러운 늙은이를 한 편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기왕 벌어진 일이야 어떡하겠소. 보다시피 난 의사이고, 시신이 필요하오. 까놓고 말하리다. 백 프랑을 받고 싶으면 집으로 그냥 돌아가요.”

“내장을 긁어내려고 그러우?”

늙은이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어차피 죽은 몸이고…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래도 남의 피가 아닌데…“

“이백 프랑.”

“정말 필요한 돈이우, 아이들이 배를 곯고 있으니… 하지만 그래도 가엾지… 좋은 처녀였는데, 아주 예쁘고 아주 착하고, 얼굴은 장미꽃 같고, 여기 잡동사니들하고는 다르지…”

늙은이가 탁자 위에 놓인 시신들을 향해 아무렇게나 손을 흔들었다. 

‘이 늙은이 좀 보게! 물건 값을 올리려고 하는 모양일세.’

그런 생각이 들자 코른이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무심한 투로 말했다. 

 

 “내키는 대로 하시오. 여기에는 시신들이 적지 않고, 몇 구는 당신 조카딸보다 떨어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늙은이한테서 몇 발짝 물러섰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좀 주셔야…” 

늙은이가 잽싸게 바투 다가서는데, 그 정도에서 흥정을 마치자는 투였다. 

코른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상황이 또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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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가 먼저 온 게유?” 

노파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코른이 몸을 돌려 보니, 깨끗한 흰 두건을 쓰고 몸집이 퉁퉁한 노파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더니 늙은이가 자기도 모르게 꽥꽥 소리를 냈다. 

“찾았수?”

노파가 거친 눈길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기도문을 중얼거리면서 물었다.

 

늙은이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시신을 가리켰다. 

“오오, 얘야, 마르타, 불쌍한 것!”

노파가 머리 없는 시신 쪽으로 다가서면서 슬프게 목을 놓았다. 

코른은 노파와 흥정하기가 어려울 것임을 알았다. 그래도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속셈으로 예의를 갖추어 말을 걸었다.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부인. 지금 부인 남편과 얘기를 나누고는 당신네가 아주 궁핍하게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궁핍하든 않든 남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아요.” 

노파가 제법 당당하게 말을 무질렀다. 

“그렇지요, 하지만… 나는 자선장례협회 회원입니다. 협회 경비로 내가 조카딸 장례를 치를 수 있고 필요한 일들을 다 처리할 겁니다. 원한다면 나에게 맡기고 부인은 아무 걱정 없이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요. 자녀들과 고아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파가 남편에게 호통을 쳤다. 

“당신, 여기서 무슨 소릴 지껄인 게유?”

그러고는 코른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말씀은 고맙수, 신사 양반. 그러나 남들처럼 나도 내 손으로 처리할 거유. 당신네 자선협회 도움 없이도 어떡하든 수습할 거라오. 아, 뭐 그렇게 눈알만 굴리고 있는 거유?”

노파가 남편과 얘기할 때는 평소의 어조로 돌아갔다. 

“얼른 시신을 거두어 떠나요. 내가 손수레를 가져왔어요.”

 

어찌나 단호하게 들리는지, 코른이 형식적으로 고개를 까닥이고 떠나야 했다.

‘분하군! 에이,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날이야.’

출구 쪽으로 가서 문지기를 한쪽으로 데리고 나와 나직하게 일렀다. 

“이보우, 적당하다 싶은 게 나오면, 즉각 전화해요.”

“아, 나리, 여부가 있겠습니까.”

코른이 쥐어준 지폐 뭉치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문지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른이 레스토랑에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브리케가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근래에 흔한 질문으로 맞이했다. 

“찾았어요?”

“찾긴 찾았는데 잘 안 됐어, 빌어먹을! 좀 더 참아요.“

그가 뚱하게 대꾸했지만 브리케가 물러서지 않았다. 

“적당한 것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요?” 

“오징어처럼 다리가 휜 여자들은 있었어. 원한다면 그거라도…”

“아이, 싫어요. 차라리 더 기다릴래요. 안짱다리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코른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다시 시체 안치소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침대 곁에 놓인 전화기가 부르르 떨었다. 코른이 투덜대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말하세요. 네, 코른 교숩니다. 뭐라구요? 역 부근에서 열차가 전복됐다고? 시체들이 널렸다고? 아, 물론, 당장 달려가지요. 고맙구려.”

서둘러 의복을 갖춰 입고는 존을 불러 소리쳤다. 

“자동차!”

십오 분 뒤 그가 벌써 한밤중의 거리를 소방차처럼 달렸다. 

한밤중에 철도 사고 현장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다.

 

시체 안치소 문지기의 말이 맞았다. 그날 밤 죽음은 많은 수확을 거둬들였다. 시체들이 쉴 새 없이 운반됐다. 탁자들이 다 차는 바람에 곧 시체들을 마룻바닥에 놓아야 했다. 코른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재앙이 낮에 일어나지 않은 것을 두고 운명에 감사했다. 사고 소식은 아직 시내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시체 안치소에 외부인들은 아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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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른이 아직 옷을 벗기지 않고 씻기지도 않은 시체들을 살펴보았다. 그건 다 아주 신선했다.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 단지 하나, 이 좋은 기회가 코른의 특별한 필요에 썩 걸맞지 않다는 점이 흠이었다. 시체 대부분이 으깨졌거나 여러 부위에 훼손이 심한 것이다. 그러나 시체들이 계속 도착했기 때문에 기대를 잃지 않았다. 

 

“이 시신을 보여 주오.” 

잿빛 원피스 차림의 처녀 시체를 옮기는 일꾼에게 말을 걸었다.

두개골이 뒤통수 쪽에서 으깨졌다. 머리털과 원피스가 피범벅이지만, 원피스가 엉망으로 구겨지지는 않았다. 

‘몸통이 심하게 상하지는 않은 것 같아… 괜찮아. 체격이 상당히 조잡하군, 필경 남의 하녀로 일했을 거야, 하지만 이런 몸뚱이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 

“여기는 어떻소?”

코른이 다른 들것들을 가리켰다. 

“아, 이거야말로 정말 흔치 않아! 보물이야! 빌어먹을, 아무리 그래도 이런 여인이 죽다니, 아깝군!“

 

젊은 여인의 시신이 바닥에 놓였다. 흔치 않게 아름다운 얼굴에 심한 경악이 얼어붙어 있었다. 오른편 귀 위쪽으로 두개골이 함몰됐다. 필경 죽음이 순식간에 닥쳤을 것이다. 하얀 목에는 진주 목걸이가 걸렸다. 우아한 검은 비단 드레스가 아래쪽과 옷깃에서 어깨까지 조금 찢어졌을 뿐이다. 드러난 어깨 위에 반점이 보였다. 

‘아까 그것과 같군. 하지만 이건… 참으로 예뻐!’ 

코른이 잽싸게 목둘레를 쟀다. 

’안성맞춤이야.‘

코른이 굵은 진주들로 엮은 목걸이를 잡아채어 일꾼에게 주고는 말했다.

“이 시체를 가져가겠소. 여기서 시체들을 일일이 살펴볼 시간이 없으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이것도 가져가지.” - 그가 처음 본 처녀의 시신을 가리켰다. “자, 빨리 움직입시다. 아마포로 둘러서 내가시오. 알아들었소? 사람들이 떼로 몰려올 거요. 시체 안치소 문을 열고 몇 분 뒤면 사람들이 바글바글 들끓겠지.”

 

두 구의 시신이 자동차에 실려서 코른의 자택으로 금방 옮겨졌다.

수술에 필요한 준비는 진작 다 끝낸 상태였다. 브리케의 부활의 날이, 아니 엄밀히 말해 부활의 밤이 다가왔다. 코른이 일 분도 늦추기를 바라지 않았다.

시신 두 구가 말끔하게 씻긴 뒤 흰 천에 둘둘 말려서 브리케의 방으로 옮겨져 수술대 위에 놓였다.

브리케의 머리가 자신의 새로운 몸통을 보고 싶어 안달했지만, 코른은 준비가 다 끝날 때까지 머리한테 시체들이 보이지 않게끔 수술대를 옮겨 놓았다.

코른이 시체들에서 머리를 재빨리 잘라냈다. 잘라낸 머리들을 아마포에 싸서 존이 밖으로 내갔다. 절단 부위와 수술대가 깨끗이 닦이고 몸통들이 정돈됐다. 

흑인 조수가 잘라낸 머리를 밖으로 내가다.

몸통들을 다시금 미덥지 못한 얼굴로 훑어보고서 코른이 우려하는 낯빛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깨에 반점이 있는 몸은 온전하게 아름다운 형태를 간직한데다가, 하녀처럼 보인 몸과 비교하면 특히 더 뛰어났다. 굵직하고 단단한 골격에 어깨가 쳐지지 않았으며 기품이 엿보였다. 브리케야 두말 않고 이 예술적인 다이애나의 몸통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면밀하게 살펴본 결과, 그가 다이애나라고 부른 시체에는 결함이 드러났다. 오른편 발바닥에 크지 않은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쇳조각에 베인 모양이었다.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코른이 상처 부위를 불로 지졌다. 혈액 감염을 염려할 근거가 아직은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하녀’의 몸을 접합하는 것이 더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었다. 

 

“브리케의 머리를 돌려놓으시오.” 

코른이 로랑에게 지시했다. 수술 준비하는 동안 브리케가 수다를 떨어 방해하지 못하도록 그녀의 입이 닫혔다. 즉, 압축 공기가 든 용기의 밸브가 잠겼다. 

코른이 턱짓으로 밸브를 가리켰다.

“이제 공기를 불어넣어도 좋아요.”

시신들을 보자마자 브리케의 머리가 불 맞은 노루처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공포에 질린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 시신들 중 하나가 그녀의 몸이 될 판이었다. 이 수술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처음으로 통증이 날 만큼 아프게 느끼고는 주저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때요? 이 시체... 아니, 몸통이 마음에 드나?” 

“난… 겁이 나요…” - 머리가 쉭쉭 소리를 냈다. “아아, 이렇게 무서운 일인 줄은 몰랐어… 내키지 않아…”

“내키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이 시체에 톰의 머리를 접합하지. 톰이 여자가 되는 거야. 톰, 지금 몸통을 얻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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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잠깐만이요.” 브리케의 머리가 놀랐다. “좋아, 하겠어요. 저 몸통... 어깨에 반점이 있는 걸 갖고 싶어요.”

“이쪽 것이 더 좋을 텐데. 썩 예쁘지는 않지만, 그 대신 상처가 하나도 없으니까.” 

“나는 세탁부가 아니라 가수에요.” 브리케의 머리가 뽐내듯이 지적했다. “아름다운 몸을 원해요. 어깨에 난 반점은… 그런 걸 남자들이 좋아해요.”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코른이 대답했다. “마드무아젤 로랑, 마드무아젤 브리케의 머리를 수술대로 옮기시오. 조심해야 하오. 머리의 인공 혈액 순환이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면 안 돼.”

 

로랑이 브리케의 머리를 만져서 마지막으로 준비했다. 브리케의 얼굴에 극도의 긴장과 동요가 서렸다. 머리가 수술대로 옮겨지자 브리케가 더 견디지 못하고 여태껏 비명을 질러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싫어! 안 하겠어! 그만둬요! 차라리 죽여 줘요! 무섭단 말이야! 아-아-아-아!..”

코른이 손놀림을 멈추지 않은 채 로랑에게 날카롭게 외쳤다. 

“얼른 공기 밸브를 닫으시오! 영양 용액에 모르핀을 넣으시오. 그러면 잠이 들 거야.”

“아니, 아니야! 싫어!!”

밸브가 닫히고 머리가 침묵했다. 그러나 여전히 입술을 달싹이고 두려움과 애원의 빛을 띤 채 응시했다.

 

“교수님, 그녀의 의지에 반해서 수술을 진행해도 될까요?” 

로랑의 물음에 코른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지금은 한가하게 윤리 문제를 논할 시간이 없소. 그녀는 나중에 우리한테 감사하게 될 거요. 맡은 일을 하든지 아니면 방해하지 말고 나가시오.”

그러나 로랑은 자기가 나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도움이 없다면 수술 결과는 더욱 더 불안했다. 마음을 바꾸어 코른을 계속 도왔다. 브리케의 머리가 어찌나 벌벌 떠는지, 혈관들에 연결된 관들이 거의 빠져나올 뻔했다. 존이 도움에 나서서 머리를 두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머리의 경련이 서서히 멈추고 두 눈이 감겼다. 모르핀이 작용한 것이다. 

 

코른 교수가 수술에 착수했다. 

이런저런 수술도구를 요구하는 코른의 짤막한 지시만이 간간이 적막을 깼다. 코른도 심하게 긴장한 탓에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는 기민함과 비상한 면밀함과 조심성을 동원하면서 눈부신 외과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코른에 대한 증오심이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로랑이 그 순간만큼은 그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신들린 아티스트처럼 손을 놀렸다. 그의 노련하고 예민한 손가락들이 기적을 이루었다. 

수술은 한 시간 오십오 분 동안 계속됐다. 

 

마침내 코른이 허리를 펴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브리케는 몸통에서 떨어진 머리가 아니야. 그녀에게 생기만 불어넣으면 되는 거요. 즉, 심장이 뛰고 피가 돌게 하는 거지. 하지만 이 작업은 나 혼자서 하겠어. 당신은 쉬어도 좋아요, 마드무아젤 로랑.”

“더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심신이 몹시 피곤했지만, 이 비범한 수술의 마지막 단계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코른은 소생 비밀을 그녀에게 드러내기 원치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휴식을 취하라고 집요하게 권하는 바람에 로랑이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한 시간이 지나 코른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그는 훨씬 더 지친 모습이었지만, 얼굴에는 만족감이 깊이 배어 있었다.

“맥을 쥐어 봐요.” 

로랑이 속으로 은근히 전율하면서 세 시간 전만 해도 차가운 시신이었던 브리케의 손목을 잡았다. 손에 벌써 온기가 돌고 맥박이 잡혔다. 코른이 브리케의 얼굴에 거울을 들이댔다. 거울 표면에 김이 서렸다. 

“숨을 쉬는군. 이제 우의 신생아를 포대기로 잘 감싸면 돼. 며칠 동안은 꼼짝도 않고 누워 있게 될 거요.” 

브리케의 목에 감긴 붕대 위에 코른이 깁스를 둘렀다. 몸통이 다 천으로 싸이고 입이 꽁꽁 동였다. 코른이 설명했다.

“아예 말할 엄두도 못 내게 하는 거요. 며칠간 우리는 그녀를 수면 상태로 두는 거지, 심장이 용인한다면.” 

브리케를 로랑의 옆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눕히고 뇌수에 전류를 흘려 마취시켰다.

“봉합이 유착될 때까지 우리는 그녀를 인공영양으로 유지할 거요. 당신이 신경을 더 많이 써야겠지.”

 

사흘째가 되어서야 코른은 브리케의 ‘의식이 돌아오도록’ 허용했다. 

오후 네 시였다. 비스듬히 기운 태양 광선이 방안으로 들어와 브리케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그녀가 눈썹을 가볍게 꿈틀거리더니 눈을 떴다. 아직 판단력이 흐릿한 가운데, 햇살 가득한 창문을 보고는 눈길을 로랑에게 돌렸다가 결국 아래로 내려뜨렸다. 거기엔 이미 뭔가가 있었다. 붕긋하게 솟아오른 젖가슴과 몸통이 보였다. 흰 천으로 덮인 몸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가냘픈 미소가 피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말하지 말고 조용히 누워 있어요.” 로랑이 말했다. “수술이 아주 잘 됐고, 이제 모든 건 당신이 처신하기에 달렸어요. 안정을 충분히 취하면 더 빨리 두 다리로 일어설 거예요. 일단은 우리가 표정으로 소통을 하지요. 만약 눈꺼풀을 내려뜨리면 ‘예스’, 올리면 ‘노’로 알아듣겠어요. 혹시 통증을 느끼는 데가 있나요? 여기, 목과 발에? 금방 사라질 거예요. 물을 마시고 싶나요? 뭘 좀 먹고 싶어요?” 

브리케가 시장기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목이 말랐다. 

 

로랑이 코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서재에서 즉각 달려왔다.

“그래, 새로 태어난 기분이 어때요?” 

그녀를 살피고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 잘 됐군. 조금만 더 참으면 춤도 추게 될 거요, 마드무아젤.” 

그가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사라졌다. 

 

‘부활’의 나날이 브리케에게는 아주 길게 지나갔다. 그녀는 모범적인 환자였다. 성급함을 꾹 누르고 차분하게 누워서 지시대로 잘 따랐다. 마침내 온몸을 두르고 있던 천을 벗기는 날이 됐다. 아직 말은 하지 못하게 했다.

“몸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나?” 

코른이 약간 흥분된 기색으로 물었다. 

브리케가 눈꺼풀을 내려뜨렸다. 

“발가락들을 아주 조심해서 움직여 봐요.” 

얼굴빛으로 보아 브리케가 시도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발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중추의 기능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모양이군.” 

코른이 위엄을 지피며 말했다. 

“그러나 곧 복구될 거야, 그러면 움직임도 함께 살아날 게고.” 

그러고는 혼자 생각했다. 

‘브리케가 다리를 절게 되지는 않을까.’

로랑은 수술대 위에 있던 차가운 시신을 떠올리면서 생각했다.

‘이런 단어가 이상하게 들리긴 하지만, 아마 복구될 거야.’

 

브리케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이제 몇 시간이고 발가락들을 움직이는 일에 몰두했다. 그런 노력을 로랑이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다가 어느 날 로랑이 환성을 질렀다.

“움직여! 왼발 엄지발가락이 움직여요.”

 

그 뒤로 일은 더 빨리 진행됐다. 다른 발가락들과 손가락들도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곧 브리케는 손과 발을 조금 들어 올릴 수 있게 됐다.

로랑이 깜짝 놀랐다. 눈앞에서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범죄자라 해도 코른은 비범한 사람이야. 사실 도웰의 머리가 없었다면 코른이 죽은 사람의 이중 소생에 성공할 수 없었을 거야.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재능 있는 사람이야. 그 점을 이미 도웰의 머리가 확인하지 않았던가. 아아, 코른이 도웰 교수도 다시 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다시 며칠이 지나서 브리케는 말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녀에게서 다소 음색이 상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나왔다.

코른이 단언했다.

“나아질 거야. 노래도 부르게 될 거야.”

 

브리케가 곧 노래를 불러 보았다. 그 노랫소리에 로랑이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브리케의 고음들은 상당히 삑삑거려서 듣기에 썩 좋지 않고, 중간 음역에서는 목소리가 쉰 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아주 둔탁하게 울렸는데, 그 대신 저음부의 목소리는 매혹적이었다. 그건 아주 뛰어난 가슴에서 울리는 콘트랄토였던 것이다.

로랑이 생각에 잠겼다.

성대는 절단 부위 위에 있고 브리케의 것이 아니던가. 한데 이 이중의 목소리며 위아래 음역의 서로 다른 음색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생물학적으로는 불가사의야. 새 몸통보다 더 나이가 많은 브리케의 머리가 젊어지기 때문인가? 아니면, 중추신경계의 기능이 깨진 것과 어떻게 연관되는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야… 이 젊고 우아한 몸통의 주인은 누굴까? 어떤 불행한 머리에 달려 있던 것일까…’ 

 

로랑이 브리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차 전복 사고로 죽은 이들의 명단이 실린 신문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곧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이탈리아 가수 안젤리카가 사고 열차에 타고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 그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신문기자들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로랑은 브리케의 머리에 접합한 몸통이 죽은 오페라가수의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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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로랑이 실험실에서 머리를 보고 놀라다

 


 

4. 죽음인가, 아니면 살해인가? 

 

한번은 로랑이 잠들기 전에 의학 저널들을 훑어보다가 코른 교수의 새 논문을 읽었다. 이 논문에서 코른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했다. 그 발췌문들은 다 의학 저널과 서적들에서 따온 것인데, 로랑이 아침 작업 시간에 머리의 지시대로 밑줄을 그은 대목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다음 날 머리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자마자 로랑이 물었다.

“내가 없을 때 코른 교수는 실험실에서 무얼 하지요?”

머리가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그와 나는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오.”

“그러니까 당신은 그를 위해서 중요한 대목들을 표시하는 건가요? 그런데 당신의 작업을 그가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짐작하고 있다오.”

“하지만 그건 묵과할 수 없어요! 당신은 어떻게 그런 짓을 내버려두지요?”

“내가 뭘 할 수 있겠소?”

“당신이 못하신다면, 내가 하겠어요!” 

로랑이 분개하여 외쳤다. 

 

“쉿, 조용히… 쓸 데 없는 일… 내 처지에서 저작권 운운한다면, 그것도 우스운 꼴일 게요. 돈? 그게 나한테 뭔가요? 명성? 그게 나한테 무엇을 줄 수 있겠소?.. 그리고… 그런 일이 폭로된다면 연구는 끝을 못 볼 거야. 한데 나는 연구가 완성되기를 바라오. 고백하자면, 내 연구 결과를 보고 싶은 거라오.”

로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요, 코른 같은 사람은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어요. 코른 교수는 처음 나를 면담할 때 당신이 불치병으로 숨졌고, 학술 연구를 위해 몸을 기증했다고 말하더군요. 그게 사실인가요?”

 

“글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어. 즉, 그건 사실인데... 전부 다 맞는 말은 아닐 수도 있다오. 우리 두 사람은 갓 죽은 시신에서 떼어낸 장기들을 되살리는 연구를 함께 했지. 코른은 나의 조수였다오. 당시 내 연구의 최종 목표는 몸에서 떼어낸 사람 머리를 되살리는 것이었소. 나는 준비 작업을 다 끝냈지. 

우리는 짐승들 머리는 이미 되살렸지만 사람 머리를 소생시키고 시연하게 될 때까지 연구 결과를 공표하지 않기로 했소. 이 마지막 실험을 앞두고, 그 성공을 난 확신했는데, 나는 내가 작성한 모든 연구 원고를 출간 준비하라고 코른에게 건네줬다오. 동시에 우리는 역시 해결책을 거의 다 찾은 다른 과학 문제도 함께 연구하고 있었지. 

그때 나한테 지독한 천식 발작이 일어났소. 그건 내가 의사로서 정복하려고 한 질병들 중의 하나였고, 나는 천식과 오랜 기간 싸우고 있었소. 우리 중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는 시간 문제였지. 내가 천식에게 패할 수 있음을 알았다오. 그리고 실제로 내 몸을 해부용으로 쓰라고 유언했어요, 비록 바로 내 머리가 살아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그런데… 이 마지막 발작 순간에 코른이 내 곁에서 의료 도움을 주었소. 나한테 아드레날린을 주사했는데, 어쩌면… 용량이 과다했던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천식이 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아스픽시아(*asphyxia, 호흡곤란, 질식) 뒤에 임종의 고통이 짤막하게 이어지고 죽음이 뒤따른 게요. 그 죽음이란 내게는 의식 상실일 뿐이었지만… 그 다음에 상당히 이상한 전이 상태를 체험했다오. 의식이 아주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목 부위의 날카로운 통증 때문에 의식이 깨어난 것 같았소.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오. 

당시 나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코른과 내가 개의 몸통에서 절단한 머리들을 되살리는 실험을 했을 때, 개들이 다시 깨어난 뒤에 극심한 통증을 겪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했었소. 개의 머리가 용기 안에서 얼마나 펄떡이든지, 어떤 때는 영양분을 공급하는 관들이 혈관들에서 툭툭 빠질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절단 부위를 마취하자고 제의했다오. 그 부위가 마르지 않고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개의 목을 ‘린겐 록 도웰’이라는 특수 용액에 담갔지. 이 용액에는 영양분과 방부 물질, 마취 물질이 들어 있어요. 

 

내 목의 절단면도 그런 용액에 담기게 됐소. 그런 사전 조치가 없었다면 나는 깨어난 뒤에도 아주 빨리 다시 죽었을 게요. 우리 초기 실험 때 개의 머리들이 그렇게 죽었듯이.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 당시 난 내 머리가 그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소. 모든 것이 흐릿했어, 마치 술을 억병으로 마신 뒤 누군가가 깨웠지만 아직 알코올 기운이 가시지 않을 때처럼. 그러나 내 뇌에서는 그래도 기쁜 마음이 들었다오. ‘비록 흐릿하지만 의식이 돌아온 걸로 보면, 난 죽지 않았다는 뜻이야.’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채 나는 마지막 천식이 이상하게 발작했던 점을 곰곰이 생각했다오. 보통 나한테서 천식은 불현듯 발작했지. 그러다가 고통스러운 호흡곤란이 서서히 약화되곤 했는데, 하지만 발작을 일으킨 뒤에도 정신을 잃는 법은 결코 없었어. 그런데 마지막 발작은 뭔가 달랐소. 목 부위에서 느낀 강한 통증도 역시 새로운 것이었고. 이상한 점이 또 있었다오. 

 

난 전혀 숨을 쉬지 않으면서 호흡곤란을 겪지 않은 것 같았단 말이지. 호흡하려고 해 봤지만 할 수 없었어요. 게다가 내 가슴을 느낄 수 없었어. 내 딴에는 가슴 근육들을 열심히 긴장시켰음에도 흉강을 넓히지 못하겠더군. 이런 생각까지 들더군. ‘뭔가 이상해. 내가 잠을 자고 있거나 꿈을 꾸는 모양이야…’ 어렵사리 눈을 뜨게 됐어요. 사방이 캄캄해. 귓가에는 윙윙 소리만 들려. 다시 눈을 감았어… 

 

아가씨도 알고 있을 게요. 즉, 사람이 죽을 때 감각기관들이 일시에 스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미각을 잃고, 그 다음에 시력이 꺼지고, 그 다음에 청력이 사라진다오. 아마도 내 감각기관들의 복원은 거꾸로 된 모양이오. 시간이 얼마쯤 지난 뒤 나는 다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마치 아주 깊은 물속에 빠진 것처럼 탁한 빛을 보았다오. 그 뒤 연녹색 안개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내 눈앞에서 코른의 얼굴을 희미하게 분간했고 동시에 그의 목소리를 이미 제법 명확하게 들었다오. ‘정신이 돌아왔습니까? 다시 살아난 모습을 보니 아주 기쁩니다.’ 

나는 의지를 다 모아서 더 빨리 정신을 차리게 됐소. 아래로 눈길을 돌리고는 바로 내 턱 밑에 놓인 탁자를 보았지. 그때는 이런 탁자가 없었고, 코른이 실험하느라고 서둘러 들여놓은, 주방용 같은, 평범한 탁자가 있었다오.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아. 

이 탁자 곁에, 조금 높은 곳에 다른 해부용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누군가의 머리 잘린 시신이 누워 있더군. 그걸 보면서 시신이 왠지 아주 친근한 것 같았어, 머리도 없고 흉곽이 열려 있음에도 말이오. 그리고 그 곁에 유리 상자 안에서 누군가의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있고… 

 

난 어리둥절하여 코른을 쳐다봤다오. 내 머리가 왜 탁자 위에 놓여 있고 내 몸이 왜 보이지 않는지 처음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 손을 뻗고 싶었지만 손을 느끼지 못했어. ‘무슨 일이오?’ 하고 코른에게 묻고 싶었지만 소리 없이 입만 달싹거릴 수 있었을 뿐이지. 한데 그는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소. 그가 해부용 탁자 쪽으로 고개를 까딱이면서 ‘모르시겠어요?’ 하고 물었다오. ‘이게 당신 몸입니다. 이제 당신은 천식에서 영원히 벗어났습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농담을 삼가지 않았어!.. 

비로소 난 모든 걸 깨달았다오. 솔직히 말해, 처음 한순간 난 비명을 지르고 탁자에서 굴러 떨어지고 나 자신과 코른을 함께 죽이고 싶었어… 아니, 그게 아니야, 꼭 그렇지는 않아.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길길이 날뛰어야 한다는 것을 뇌로는 알았는데, 다른 한 편으로 나를 덮친 얼음장 같은 태연함에 스스로 놀랐다오. 어쩌면, 분개하면서도 동시에 자신과 세상을 국외에서 보면서 내 마음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난 얼굴만 찌푸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오. 내 심장이 유리 상자 안에서 뛰고 있고 인공심장을 달고 있는 마당에 내가 예전처럼 안달할 수 있었을까?

 

로랑이 깜짝 놀라서 머리를 쳐다봤다.

“그런데도... 그런 내막이 있었는데도 교수님은 그와 계속 일을 하는군요. 그가 아니었다면, 천식을 이겨내고 건강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날강도에다 살인자예요, 그리고 당신은 그가 명성의 절정에 오르도록 돕고 있어요. 당신은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는 기생충처럼 당신의 뇌 활동을 파먹고, 당신 머리에서 이를테면 창의적 발상의 탱크를 만들어, 그걸로 돈과 명성을 얻고 있어요. 한데 당신은!..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주나요?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당신은 모든 것을 잃었어요. 하나의 그루터기로 전락했어요. 한데 거기서는 당신의 고뇌와 더불어 갈망이 여전히 살고 있어요. 코른은 당신에게서 온 세상을 훔쳤습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런 사람을 위해 어떻게 묵묵히 고분고분 일을 하실 수 있단 말인가요?”

 

머리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머리 주제에 폭동이라도 일으켜야 하나? 시도할 수 있겠지. 한데 이 꼴로 뭘 할 수 있었겠소? 인간의 마지막 가능성, 즉 자살할 수단마저도 잃은 마당에.”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연구하기를 거부할 수는 있었잖아요!”

 

“아가씨가 정 듣기 원한다면... 그런 짓도 벌써 해 보았다오. 그러나 내가 저항했던 것은 코른이 내 사유 기구를 이용하기 때문은 아니었소. 궁극적으로 저자나 발명자의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창의가 세상에 나와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내가 저항한 까닭은 새로운 존재에, 존재 양식에 익숙해지기 힘들었기 때문이라오. 난 생명이 꺼지기를 더 바랐어… 그즈음 나한테 벌어진 일화를 하나 얘기하리다. 

언젠가 혼자 실험실에 있을 때, 창문으로 커다란 딱정벌레가 불쑥 날아들었소. 대도시 한복판 어디서 그런 녀석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모르지요. 교외에 나갔던 자동차에 묻어서 왔을 수도 있겠지. 딱정벌레는 내 위에서 빙빙 맴돌다가 내 탁자의 유리판 위, 내 곁에 앉았다오. 쫓아낼 수도 없는 그 흉측한 벌레를 나는 눈동자만 빼뚜름하게 돌린 채 주시했지. 딱정벌레가 반들반들한 유리판 위에서 미끄러져 기우뚱대면서도 많은 관절들을 부지런히 사각거리며 천천히 내 머리 쪽으로 다가왔다오. 

모르겠어, 당신이 내 얘기를 이해할지… 난 그런 벌레들을 아주 싫어했다오. 혐오감이 커서 손가락으로 건드리지도 못했지. 그런데도 그 하찮은 적수 앞에서 나는 무기력하기만 했다오. 그 녀석은 내 머리를 비행에 적당한 도약대로 알았는지, 다리들을 사각거리면서 천천히 계속 다가왔다오. 얼마 동안 애를 쓰더니 턱수염에 들러붙었어. 수염 속에서 오랫동안 버둥거리며 헤매면서도 한사코 더 위로 올라왔어요. 굳게 닫힌 입술을 지나고 코 왼편으로 기어오르고 살짝 뜨고 있는 왼눈을 거쳐서 결국 이마까지 올라왔다가 유리판으로 떨어지고, 거기서 또 바닥으로 떨어졌다오. 하찮은 사건이지. 그러나 나는 거기서 충격적인 인상을 받은 게요… 

 

그리고 코른이 들어왔을 때, 학술 연구를 더 이상 공동으로 진행하지 못하겠다고 극력 거부했소. 그가 내 머리를 공개적으로 선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오. 필요가 없다면 그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머리를 굳이 곁에 둘 필요가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를 죽이겠지. 그게 내 속셈이었어. 

둘 사이에 냉전이 시작됐소. 그가 상당히 가혹한 조치를 취하더군. 한번은 밤늦은 시간에 전기 기구를 들고 와서 내 관자놀이에 양 전극을 부착하고는 아직 전류는 흘리지 않은 채 말을 거는 거요. 팔짱을 끼고 서서 진짜 종교재판관처럼 아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더군. 

 

코른이 도웰 교수의 머리에게 협박과 회유를 가하다

     

‘친애하는 동료여. 지금 우리는 두꺼운 벽 안에서 서로 눈을 맞대고 둘만 있소이다. 벽이 더 얇다 해도 상관은 없어요, 왜냐면 당신은 소리를 지를 수 없으니까. 당신은 완전히 내 손아귀에 들어 있어요. 당신에게 가장 악랄한 고문을 가하고도 난 처벌을 피할 수 있소. 하지만 고문 따위가 왜 필요하겠소? 우리는 둘 다 과학자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난 알아요. 하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지요.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힘겨운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없어요. 또 당신은 내가 없을 때조차 혼자 힘으로는 달아날 수도 없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가 평화롭게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당신은 우리 연구를 계속하게 될 거요…’

 

나는 거부한다는 표시로 눈썹을 움직였고, 내 입술이 ‘아니야!’ 하고 소리 없이 속삭였어. 그러나 그는 계속 입을 놀렸지. 

‘당신은 나를 아주 괴롭게 만드는군요. 권련을 피우고 싶지 않습니까? 니코틴이 혈관으로 흡수되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폐가 없기 때문에 당신이 담배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없다는 걸 알지요. 그러나 그래도 익숙한 느낌은 있을 테니…’ 

그러고는 담배케이스에서 권련을 두 개비 꺼내 하나는 자기가 피우고 다른 하나는 내 입에 물렸지. 그 담배를 내뱉으니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그걸 보고서 그가 여전히 정중하고 화나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더군. 

 

‘아, 좋아요, 동료. 당신은 나로 하여금 제재 조치를 취하도록 만드는군요...’ 그러더니 전류를 흘려보내는 거요. 마치 불에 달군 송곳이 내 뇌를 후벼 파는 것만 같은데… ‘이제 기분이 어떠시오?’ 그가 의사가 환자에게 하듯이 나한테 배려하는 투로 물었다오. ‘머리가 지끈거려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나요? 그러려면 오로지...’ ‘아니야!’ 하고 내 입이 대꾸했소. ‘정말이지 아주 안 됐구려. 전압을 좀 더 올려야겠소. 당신은 꽤나 나를 힘들게 하는군요.’ 

그러고는 얼마나 강한 전류를 흘렸는지 내 머리가 타버리는 것만 같았다오. 그 통증을 견딜 수가 없었어. 나는 이를 부드득 갈았지. 의식이 희미해졌어. 아예 혼절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다오. 그저 눈을 꼭 감고 입술을 윽물기만 했지. 코른이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은근한 불로 내 머리를 계속 지졌어. 

 

하지만 그런 가혹한 수단을 동원해서도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오. 눈을 떠 보니 내 완고함에 광분하는 모습이 보이더군. ‘빌어먹을! 당신 뇌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벌써 기름에 튀겨서 오늘이라도 개한테 먹였을 거야. 퉤, 고집불통 같으니!’ 그러고는 내 머리에서 전선들을 거칠게 떼어내고는 사라졌지. 

그러나 내가 기뻐하기에는 아직 일렀어요. 그가 곧 돌아와서 내 머리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용액에 자극적인 물질을 집어넣기 시작한 거요. 그 물질은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을 내게 일으켰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자 그가 묻더군. ‘어떤가요, 동료, 마음을 정했소? 그래도 여전히 아닌가?’ 난 굴하지 않았다오. 그가 숱한 저주를 퍼부으면서 더 화를 내며 나갔어. 내가 이긴 거지. 며칠 동안 코른은 실험실에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날마다 죽음이 나를 구해주기만을 기다렸다오. 

닷새째 되는 날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면서 들어오더군. 나한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혼자서 계속 작업하기 시작했어. 이틀인가 사흘 동안 나는 실험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채 그를 관찰하기만 했소. 하지만, 아아, 나 스스로가 그 연구에 바짝 호기심이 동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소. 그가 실험을 반복하면서 우리의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 있는 실수를 몇 가지 저질렀을 때,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신호를 보냈다오. 그가 흐뭇한 얼굴로 ‘진작 그랬어야지!’ 하고 말하고는 내 목구멍에 공기를 집어넣었다오. 나는 그에게 무엇이 오류인지를 설명했고, 그 뒤로도 연구를 계속 지도하게 된 것이라오… 그가 내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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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벨랴예프, 도웰 교수의 머리

 


 

3. 머리가 말하기 시작하다 

 

로랑이 금지된 밸브의 비밀을 알게 된 뒤로 일주일쯤 흘렀다. 

그 동안에 로랑과 머리 사이에는 한층 더 돈독한 관계가 맺어졌다. 코른 교수가 대학이나 병원으로 가는 시간에, 로랑은 밸브를 열고 머리가 웬만큼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공기를 목구멍으로 보냈다. 로랑도 나직이 말했다. 둘은 자기네 대화를 흑인이 듣지 못하도록 조심했다.

그들의 대화가 도웰 교수의 머리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두 눈에 생기가 더 돌게 되고, 양미간의 슬픈 주름들조차 매끈하게 펴졌다. 

머리는 강요된 침묵의 시간을 벌충이라도 하듯이 기꺼이 말을 많이 했다.

 

간밤에 로랑이 도웰 교수의 머리를 꿈에서 보고는 눈을 떠서 생각했었다. ‘도웰의 머리도 꿈을 꿀까?’

그 얘기를 하자 머리가 나직이 속삭였다.

“꿈이라… 그래요, 나도 꿈을 꾸지요. 한데 꿈이 나한테 슬픔과 기쁨 중 어떤 것을 더 많이 주는지는 모르겠소. 꿈에서 나는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데 깨고 나면 두 배로 더 불행해진단 말이오. 신체와 정신, 양면에서 다 박탈된 사람이 되는 거라오. 사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허용된 것을 다 빼앗긴 게 아니겠소? 오로지 생각하는 능력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머리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데카르트의 인용으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요, 나는 존재하오...”

“무슨 꿈을 꾸시나요? 꿈에서 무엇을 보지요?”

“지금 같은 모습의 자신은 한 번도 못 봤다오. 예전... 내 모습을 본다오. 식구들과 친구들도 보고… 얼마 전에는 죽은 아내를 만나서 우리 사랑의 봄날을 함께 맛봤지. 베티는 언젠가 자동차에서 내리다가 다리를 다쳐서 나를 찾아왔어요. 우리는 내 진료실에서 처음 알게 됐다오. 우리 둘은 왠지 금방 가까워졌어요. 다섯 번째 방문 때 내가 그녀에게 책상 위에 놓인 내 약혼녀의 사진을 보라고 했다오. ‘그녀가 승낙한다면 난 그녀와 혼인할 겁니다’ 하고 말하니까, 그녀가 책상으로 다가와서 거기 놓인 작은 거울을 봤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더니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지. ‘내 생각에… 그녀는 거부하지 않을 거예요.’ 일주일 뒤 그녀는 내 아내가 되었다오. 그 장면이 얼마 전 꿈에 나타난 게요… 

베티는 여기 파리에서 죽었다오. 나는 유럽 전쟁 때 외과의사로서 아메리카에서 여기로 오게 됐어요. 여기 대학에서 자리를 제의받고 나에게 소중한 묘지 곁에서 살기 위해 눌러앉았지. 아내는 정말 놀라운 여인이었어…”

머리의 얼굴이 회상에 잠겨 환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일 뿐 다시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아아, 그 시절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

머리가 생각에 잠겼다. 공기가 목구멍을 통과하면서 스스스 소리가 났다. 

 

“간밤에는 아들 꿈을 꾸었다오. 아들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꼴을 보여줄 만한 용기가 안 나… 아들에게 난 죽은 사람이라오.”

“아드님은 다 컸나요? 지금 어디 있지요?”

“그래요, 어른이 됐지. 아가씨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을 게요.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잉글랜드 이모 집에 있을 거야. 아니, 꿈을 꾸지 않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그러나 나를 괴롭히는 것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머리가 계속 말했다. 

 

“꿈만이 아니오. 거짓된 감각도 나를 생생하게 괴롭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때로는 나에게 몸뚱이가 있는 것처럼 느낀다오. 온 가슴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기지개를 켜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싶어지는 게요. 마치 오래 쭈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처럼, 뜬금없이 그런 욕망이 들지. 또 어떤 때는 통풍 때문에 왼발에서 통증을 느끼지. 

당신도 의사니까 이해는 하겠지만, 그래도 우스꽝스럽지 않소? 통증이 얼마나 생생한지 나도 모르게 눈길이 아래로 돌아가요. 하지만 유리판 너머 내 밑으로는 텅 빈 공간과 대리석 바닥만 보일 뿐… 이따금씩 호흡곤란이 발작적으로 시작될 것만 같아, 그럴 때면 적어도 천식에서 나를 벗어나게 한 ‘죽은 존재’에 제법 만족하고... 그런 건 다 언젠가 육체의 생명과 연관됐던 뇌세포들이 순전히 반사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지...” 

“끔찍해라!..” 

그 대목에서 로랑이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소, 끔찍하지… 이상하게도 생전에 난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 사실 연구에만 몰두해서 내 몸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오. 몸을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잃은 것을 느끼다니. 지금은 숲정이 어딘가에 있는 꽃들과 향긋한 건초 냄새를, 오랜 산보와 해안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 따위를 평생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생각해… 

후각과 촉각을 비롯해 다른 감각들도 아직 다 잃지는 않았지만 감각 세계의 많은 형상과는 단절됐다오. 숲의 향기, 아름다운 석양, 새들의 지저귐 따위 수많은 다른 느낌들과 연관될 때 들판의 건초 냄새가 좋지. 인공적인 향기가 내게는 자연적인 향기를 대신할 수 없을 거요. 꽃향기 대신 ‘장미’라는 상표의 향수 냄새? 그런 건 배고픈 사람에게 파이는 없는 파이 냄새처럼 나를 썩 만족시키지 못할 거요.

몸을 잃으니까 세상도 다 잃게 됐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물들의, 쥐고 만지고 동시에 자기의 몸과 자신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사물들의 매혹적인 세계를 잃은 거요. 아아, 굴러다니는 조약돌의 무게를 내 손안에서 느끼는 기쁨 하나만 맛본다면 내 괴물 같은 존재를 기꺼이 다 내놓을 텐데! 아침마다 내 얼굴을 닦아줄 때, 스펀지의 접촉이 나에게 얼마나 만족을 주는지 아가씨가 알아준다면 좋겠소. 사실 촉감이라는 것이 나한테는 실제 사물들의 세계에서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야, 내 혀끝으로 마른 입술 가장자리를 건드리는 정도지.”

 

그날 저녁 로랑은 얼빠진 상태로 두려움에 떨며 귀가했다. 늙은 어머니가 여느 때처럼 간단한 먹을거리와 차를 내왔다. 그러나 로랑은 샌드위치에 손도 대지 않고 레몬차를 급하게 비운 뒤 자기 방으로 가려고 일어났다. 어머니의 주의 깊은 눈길이 그녀에게 쏠렸다. 

 

“기분이 안 좋으니, 마리?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게냐?”

“아니, 괜찮아요, 마마, 그냥 피곤하고 두통이 좀 있어요…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래요. 나아지겠지.”

어머니가 딸을 보내고는 한숨을 내쉬며 혼자 골똘히 생각했다. 

 

새 일터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딸 마리는 많이 변했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폐쇄적이 되었다. 엄마와 딸은 늘 아주 친한 친구처럼 지내왔고, 둘 사이에 비밀이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비밀이 생긴 것이다. 노부인은 딸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장 일에 관해 묻기라도 하면 마리는 아주 짤막하고 막연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코른 교수는 의학적 측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환자들을 위해 자택에 진료소를 열고 있어요. 그 환자들을 돌보는 게 일이에요.” 

“어떤 환자들인데?”

“여러 부류예요. 아주 위중한 경우도 더러 있고…”

마리는 얼굴을 찌푸리며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곤 했다. 

노부인은 그런 답변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알아보기도 했지만, 딸한테서 들은 것보다 더 많이 알 수가 없었다. 

‘딸이 코른을 일방적으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닐까, 무망하게?..’ 

그런 생각도 해 보다가 곧 지우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으면 딸은 숨기지 않았을 거야. 게다가 마리는 여자로서 정말 좋은 사람이잖아? 코른은 독신이야. 만약에 마리가 사랑하기만 한다면, 코른도 응당 버티지 못할 것이야. 세상 어디에 마리 같이 괜찮은 여자가 또 있겠어? 아니야, 여기엔 뭔가 다른 내막이 있어…

노부인이 두툼한 깃털 요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에게는 잠자는 것처럼 보이려고 불을 껐지만, 어둠 속에서 마리 로랑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침대 위에 앉았다. 머리가 한 말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그런 상태에 있는 자신을 그려 보려고 애썼다. 그래서 혀로 입술과 입천장, 치아를 가볍게 건드려 보고는 생각했다

‘머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야 이게 전부야. 입술과 혀끝을 깨물 수 있고, 눈썹을 꿈틀거리고, 눈알을 굴리고, 눈을 감았다 뜨고, 입과 두 눈을 움직이고. 그 외에는 움직일 수가 없어. 아니, 이맛살도 약간 접었다 펼 수 있지. 그게 전부야…’

마리가 두 눈을 감았다 뜨면서 표정을 일그러뜨리곤 했다. 아아, 그런 딸을 그 순간에 노부인이 보았다면! 어머니는 딸이 정신 나갔다고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신의 어깨와 무릎, 두 팔을 차례로 감싸 안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숱이 많은 머리털을 손으로 빗어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오, 맙소사!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런데도 여태 그런 걸 모르고 살아 왔다니!

 

젊은 몸이 피로를 느꼈다. 마리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그러자 도웰의 머리가 보였다. 그 머리는 그녀를 슬픈 눈길로 뚫어져라 응시했다. 머리가 탁자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허공을 날았다. 마리가 머리 앞에서 내달렸다. 코른이 솔개처럼 머리통으로 달려들었다. 구불구불한 낭하들이 나오고… 육중한 문들이… 마리가 문들을 열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코른이 머리를 따라잡았으며, 머리가 무슨 비명 같은 소리를 냈고, 이미 귓가에서 스스스 소리가 들리고… 마리는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고, 그 빠른 고동에 온몸이 호응한다. 등에서 차가운 전율이 번쩍 스쳐 지나가고… 그녀가 나타나는 문들을 계속 열고… 아아, 참으로 무서웠다!..

 

“마리! 마리! 왜 그러니? 눈을 떠 보렴, 마리! 신음까지 하는구나…”

그건 이미 꿈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베개 곁에 서서 놀란 눈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어머니. 악몽을 꾸었을 뿐이야.”

“요즘 들어 너무 자주 흉측한 꿈을 꾸는구나, 얘야…”

노부인이 탄식하며 나간 뒤에도 마리는 한동안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누워 있었다. 심장이 강하게 고동쳤다. 

“하지만 내 신경은 끄떡없을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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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도웰 교수의 머리 표지

 


 

차례

 

1. 첫 만남 

2. 금지된 밸브의 비밀

3. 머리가 말하기 시작하다  

4. 죽음인가, 살해인가? 

5. 대도시의 희생자들 

6. 실험실의 새로운 거주자들 

7. 머리들이 기분을 전환하다 

8. 하늘과 땅 

9. 선과 악 

10. 죽은 다이애나 

11. 탈출한 전시품 

12. 끝까지 부른 노래 

13. 수수께끼 여인 

14. 흥겨운 뱃놀이 

15. 파리로 가자! 

16. 코른 교수의 제물 

17. 라위노 의사의 병원 

18. ‘미친 사람들’ 

19. ‘힘든 케이스’ 

20. 신입 환자 

21. 탈주 

22. 생사의 갈림길에서

23. 다시 몸통을 잃다 

24. 톰이 두 번째 죽다 

25. 음모자들 

26. 상처뿐인 승리 

27. 마지막 만남 

 


 

작가 소개

 

알렉산드르 벨랴예프 작가

알렉산드르 벨랴예프 (1884-1942). 

러시아 공상과학 작가. 소련 공상과학소설 창시자들 중 한 사람. 

<도웰 교수의 머리>, <양서류 인간>, <아리엘> 등 70편이 넘는 공상과학소설을 남겼다. 

개중에 13편은 중편과 장편. 러시아의 ‘쥘 베른’이라 불린다.

 

스몰렌스크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뜻에 따라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졸업할 때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부친이 죽은 뒤 돈을 벌어야 했다. 가정교사, 극장 간판 그리기, 서커스 악단에서 바이올린 연주 등을 했다. 이후 23세에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꽤 인정받는 법률가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외국 여행에 나서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머물렀다. 30세에 문학과 극장(연극)에 전념하기 위해 법률가 일을 그만두었다. 

 

35세에 결핵성 늑막염에 걸렸는데 치료가 제대로 되지 못해 척추결핵으로 번지면서 다리까지 마비됐다. 3년 깁스 상태를 포함해 모두 6년 동안 중병으로 침대 생활을 해야 했다. 젊은 아내는 병든 남편을 돌보기 위해 혼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을 떠났다. 전문적인 치료와 요양을 위해 모친과 함께 얄타로 옮겼으며, 거기 병원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기개발에 힘써서, 에스페란토를 비롯해 몇 개 외국어와 의학, 생물학, 역사, 공학을 독학하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특히 ‘과학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쥘 베른, 영국의 과학소설가 허버트 웰스, 현대 러시아 항공우주공학과 로켓 기술의 창시자인 쫄꼽스끼(Tsiolkovsky)에 푹 빠졌다

 

3년 자리보전 끝에 병마를 이기고 38세에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 일하기 시작. 이듬해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겨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 시작. 공상과학 단편과 중편들을 여러 저널에 잇달아 발표. ‘러시아의 쥘 베른’이라는 명성을 얻는다. 1925년 중편 <도웰 교수의 머리>를 발표. 이 작품을 그는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긴 작품이라고 불렀는데, ‘몸통 없는 머리가 무엇을 겪을 수 있는지’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난파선들의 섬>, <아틀란티스에서 온 최후의 1인> 등을 쓰고 단편집을 출간했다. 1928년 레닌그라드로 이사하면서 전업 작가가 됐다. 그래서 나온 작품들이 <세상의 주권자>, <기적의 눈>, <물밑 경작지>와 단편 시리즈 <바그너 교수의 발명>을 썼다. 하지만 곧 병이 재발, 습한 레닌그라드에서 일조량 많은 키예프로 옮겨야 했다. 

 

1930년도는 그에게 아주 힘겨운 해였다. 여섯 살 난 딸이 뇌막염으로 죽고 둘째 딸이 구루병에 걸리고, 곧 그 자신에게도 척추염이 생겼다. 그러는 바람에 이듬해 가족이 레닌그라드로 돌아왔다. 

1934년 레닌그라드를 방문한 허버트 웰스와 만나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얼마 전 다시 수술을 연기했기 때문에 전쟁이 터졌지만 피난 가기를 거부했다. 그가 만년에 살던 푸슈킨 시는 거의 전부 전쟁을 피해 떠났다. 독일군에게 항복을 거부하며 900일 동안 봉쇄된 레닌그라드 한쪽 곁 푸슈킨 시 자기 아파트에서 1942년 1월 굶어죽었다. 그의 손에는 <도웰 교수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살아남은 아내와 딸은 독일군에 의해 폴란드로 강제 이주됐다.

 

그는 매력적인 기질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심취,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를 독학했다. 사진에도 관심이 컸다. 책을 아주 좋아해서 모험소설에 끌렸다. 특히 쥘 베른에 심취했다. 장난이 심하고 호기심이 무척 큰 아이였다. 지붕에서 우산을 펼치고 비행하기를 즐겼다. 결국 등을 크게 다쳤는데, 이 부상이 이후 생활에 악영향을 미쳤다

학교 때는 극장 마니아, 연극에 푹 빠졌다.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이끄는 극단이 수도에서 스몰렌스크로 왔을 때 벨랴예프는 병이 난 배우를 대신해 몇 편 연극에 출연하기도 했다. 

 

인간 심리에 크나큰 관심을 보여서, 뇌 기능, 뇌와 몸의 관계, 뇌와 정신생활의 관계 따위를 집중 연구했다. 뇌가 몸과 떨어져서 독자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 뇌 이식은 가능한가? 소생과 그 광범위한 적용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까? 유전공학의 한계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한 시도가 바로 <도웰 교수의 머리>, < 세상의 주권자>, <얼굴을 잃은 사람> 등의 중편과 <잠자지 않는 사람> 같은 단편들로 나왔다. 

 

자신의 공상과학소설들에서 벨랴예프는 수많은 발명과 과학적 창의를 앞서 내다보았다. 중편 <KEC 별>에서는 현대 우주정거장의 원형이 묘사되며, <양서류 인간>과 <도웰 교수의 머리>에서는 신체기관 이식의 기적들이, <영원한 곡물>에서는 현대 생화학과 유전학의 성과가 제시된다. 

 

1990년 과학소설과 판타지를 대상으로 한 <벨랴예프 문학상>이 제정됐다. 

 


작품 소개

 

<도웰 교수의 머리>는 1925년 모스크바 ‘노동자 신문’에 처음 발표.

    

줄거리

 

배경은 파리. 

외과의이자 교수인 코른은 사람 머리 재생에 관한 성공적인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한다. 그의 사설 병원에 조수로 채용된 마리 로랑은 코른 교수가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성공적인 연구가 코른의 예전 지도교수이며 유명한 외과의로 일하다가 의심쩍은 상황에서 죽은 도웰 교수의 머리 덕분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도웰 교수의 머리의 지도하에 코른은 일련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즉, 죽은 사람들의 머리들을 살리고, 그 중 한 머리에 다른 몸을 봉합하는 등. 전직 카바레 가수인 브리케는 다른 여인의 몸통을 이식 받고는 새 인생을 살기 위해 코른의 자택에서 달아난다. 친구들과 함께 도착한 리비에라에서 브리케는 화가인 아르망과 조우하게 되는데, 아르망은 브리케의 몸이 이전에 자기가 흠모하던 여인의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게다가 브리케가 코른의 병원에서 도웰 교수의 살아 있는 머리를 보았다는 증언을 듣고 아르망과 그의 친구이자 도웰의 아들인 아르투아는 한층 더 놀란다.

 

이즈음 코른은 마리 로랑이 도웰 교수의 머리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알게 됐다는 것을 확인한다. 로랑의 폭로를 우려하여 코른은 그녀를 라위노 의사의 정신 치료소에 강제로 입원시킨다. 이 ‘치료소’는 라위노가 잔혹한 방법을 써서 광인으로 만든 불행한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곳이었다.

 

아르투아 도웰과 친구들이 파리로 가서, 다른 화가 샤우브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을 급습하고 마리 로랑을 구해낸다. 그러는 사이 코른은 소생에 관한 연구를 서둘러 발표하기로 작정한다. 마리 로랑이 친구들과 함께 학술대회장에 잠입하여 코른의 범죄를 폭로한다. 상처뿐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코른은 그래도 교묘하게 빠져나온다. 경찰이 코른의 병원을 수색했지만 범죄 단서를 얻지 못한다. 

아르투아는 부친을 (머리를) 찾으려 애쓰면서 가택 수색을 재개하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 얼굴이 변형된 머리가 바로 도웰 교수임을 로랑이 결국 알아본다. 하지만 머리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머리는 아들 보는 앞에서 죽어가지만 코른의 범죄를 폭로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반인륜적인,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소생을 실현코자 하던 코른은 결국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등장인물

 

코른 - 교수, 외과의

마리 로랑 - 의사, 코른의 조수.

존 - 코른의 하인, 흑인.

도웰 - 저명한 외과의, 코른의 지도교수, 의문사를 당하다.

톰 부시 - 교통사고로 죽은 노동자, 그 머리를 코른이 살려냈다.

브리케 - 유탄에 맞아 죽은 카바레 여 가수, 그 머리를 코른이 살려냈다.

안젤리카 - 열차 전복사고로 죽은 오페라 가수, 시신을 코른이 빼돌려 그 몸을 실험에 썼다.

빨강머리 마르타 - 브리케의 여자 친구.

장 - 마르타의 남편. 금고털이 전문가. 

아르망 라레 - 화가, 안젤리카의 연인

아르투아 도웰 - 도웰 교수의 아들, 생물학자. 

샤우브- 오스트리아 화가, 아르망의 지인

라위노 - 정신과 의사, 범죄자, 사설 정신병원 소유주.

 

1984년 이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 <도웰 교수의 유언>이 제작됐다. (*그의 다른 중편 <난파선들의 섬>도 1987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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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웰 교수의 머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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