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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1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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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The Devils of Loudun

 


 

  리슐리외 추기경은 세속적으로도 성직자로서도, 또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지위에서도 높은 지위에 걸맞게 굴고자 하면서 절반 신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노인은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함께 앉아 있기가 힘들 만큼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질병에 시달렸다.

  오른손 골결핵과 항문균열이 있었으니,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고름 냄새를 늘 풍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사향과 영묘향으로 감추려 했지만 썩은 고기 냄새 같은 악취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한테 물리적 혐오 대상이라는 굴욕적인 사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권위는 절반 신과 같은데 육신은 죽음을 달고 있는 것이 극심한 대비였다. 동시대인들은 이 패러독스에서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받았다. 

 

   (치질 치료에 기적 같은 묘약으로 알려진) 성 피아크르[각주:1]의 성유물을 모(Meaux) 도시에서 추기경 궁으로 가져왔을 때, 익명의 시인이 이 사건을 두고 시를 읊었다. 이 시에 조나단 스위프트[각주:2]가 매우 즐거워했을 터이다. 

 

대신의 집무실들을 거쳐 아주 잽싸게 

성스러운 유해를 날라 왔구나. 

그래봤자 기적의 향내를 

맡는 기쁨은 거의 누리지 못했을 게야.

추기경의 썩은 엉덩이가 끊임없이 줄줄 흘려댔으니. 

 

  위대한 인물의 항문균열을 묘사하는 다른 발라드도 있었다. 현실적 인간의 썩어가는 몸과 그의 영광된 페르소나 간의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줄 고티에의 표현을 빌자면, 이 경우 실제를 판타지와 떼어놓는 ‘보바리 각도’가 180도에 근접했다. 

 

  왕들과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절대 권위를 당연시하도록 교육받고, 그렇기 때문에 지배자들이 풍기는 허식의 거품을 터뜨릴 기회를 즐겁게 받아들인 세대에게 리슐리외 추기경의 경우는 가장 만족스러운 우화였다. 

 

리슐리외 추기경과 로바르데몽

 

  휴브리스[각주:3]는 그에 걸맞은 네메시스[각주:4]를 불러들이게 마련이다. 심한 악취와 살아 있는 몸뚱이에서 배를 채우는 벌레들이 동시대인들 눈에는 추기경의 업보였다

  추기경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성유물도 작용하지 않고 의사들도 포기했을 때, 위대한 인물 곁에 불러들인 사람은 치유 능력이 용하다고 소문난 시골 노파였다. 무슨 주문을 웅얼거리면서 노파가 병자에게 이적을 행한다는 영약을 먹였다. 그건 백포도주 1파인트에 녹인 말똥 4온스. 

  유럽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흔들던 절대자는 그렇게 입에서 배설물을 음미하며 저승으로 떠난 것이다. 

 

  잔느가 만났을 때, 리슐리외는 영광의 절정에 있었지만 이미 병이 깊어서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며 의사가 늘 달라붙어야 했다. 

  「그날 추기경께서는 사혈을 했다. 루엘 대저택의 문들이 굳게 닫혀서 주교들과 프랑스 육군원수들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기실로 안내됐다. 비록 예하께서는 침대에 계셨지만.」 

  저녁식사 후 (「식사는 아주 호사스럽고, 예하의 시동들이 우리를 시중들었다」)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를 처소로 인도했다. 그들이 추기경 예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굽혔고, 예하 계신 곳에서 감히 의자에 앉을 수 있는지를 두고 오랜 시간 설전이 이어졌다. (「예하께서는 예우해주시고 우리로서는 한사코 사양하느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결국 난 권유에 따라야 했다」) 

 

  리슐리외는 원장수녀가 하나님께 큰 책임이 있다는 말로 말문을 텄다. 이런 불신의 시대에 교회의 명예를 세우고 영혼들을 구제하고 악인들을 무찌르라고 그분께서 특별히 당신을 선택하신 게요. 

  잔느 수녀가 감사의 찬가로 응답했다. 세상이 우리를 미친 사기꾼으로 취급하는 마당에 예하께옵서는 저희에게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요 보호자요 수호자 역할을 해주셨음을 저와 제 자매들이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추기경은 그런 감사를 받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했다. 외려 나는 고통 받는 이들을 도울 기회와 수단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낄 뿐이외다. (원장수녀 기록에 의하면, 그는 ‘매혹적으로 우아하고 온화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위대한 인물이 물었다. 당신 왼손에 새겨진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보아도 되겠소? 

  성스러운 글자들에 이어 성 요셉의 성유 차례가 됐다. 잔느가 슈미즈를 펼쳐 보였다. 성물을 손에 들기 전에 추기경이 나이트캡을 경건하게 벗었다. 축복받은 물건을 냄새 맡고는 “참으로 좋은 향기로다!” 하고 외치면서 두 번 입맞춤했다. 그 뒤 슈미즈를 ‘존경과 경탄하는 자세로’ 접어서 침대 곁탁자 위에 놓인 성해함에 넣었다. 그건 성유에 있는 위광이 성해함에 든 물건들에도 전해지게끔 하려는 모양이었다. 

 

  리슐리외의 부탁을 받고 원장수녀가 (글쎄, 이미 천 번도 더 했을) 자신의 치료 이적(異跡)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릎을 꺾자 추기경이 다시 축복했다. 인터뷰가 끝났다. 다음날 예하께서 성지 참배 경비에 쓰라고 그녀에게 500 리브르를 보내 왔다. 

 

  이 면담에 대한 잔느의 기술을 읽다 보면 추기경이 오를레앙 공 가스통[각주:5]에게 보낸 서신들이 절로 떠오른다. 그 서신에서 그는 오를레앙 공이 마귀 들림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믿는다고 역설적으로 빈정댔다

  「루덩의 악령들이 전하 영혼에 변혁을 일으키는 바람에 전하께서 예전에 남용하던 신성 모독적인 언사를 이제 완전히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행복하오이다. 루덩의 악마들 덕분에 전하께서 받은 계시가 전하를 덕행으로 이끄는 오랜 여정에 곧 나서도록 도울 것이외다.」 

 

  루덩에 관한 언급이 하나 더 있다. ‘루덩의 악마들 중 하나’인 전령을 통해 왕제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리슐리외는 그 병이 ‘전하께서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전하께 동정을 표하며, 질병 탈출 방법으로 ‘조셉 신부의 엑소시즘’을 제안한다.    

 

  왕제에게 보낸 이 서신들은 그랑디에를 악마들과 결탁했다 하여 화형에 처한 사람이 쓴 것이면서도 오만한 태도만큼이나 반어적인 의혹으로 가득하다. 오만함은 자신의 사회적 상급자를 ‘깔아뭉개려는’ 다그침에서 드러나는데, 이런 부적절하고 유아적인 요소는 그가 평생 품고 있던 콤플렉스에서 비롯됐다

 

리슐리외 초상화

 

  그렇다면 의심쩍은 태도와 냉소적인 아이러니는 또 어떤가? 마법과 마귀 들림, 손바닥 글자 낙인과 축복받은 슈미즈에 대해 예하의 진정한 견해는 무엇이었나? 내 짐작에… 문외한들 속에서 기분 좋을 때 리슐리외는 루덩 스토리 전체가 완전한 협잡 아니면 자발적인 망상, 혹은 그 둘 다라고 간주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가 만약 악마를 믿는 척했다면, 그건 오로지 정치적 이유에서 나온 것이었을 뿐

 

 한데, 오호라, 그 과정을 대중은 그가 바라던 만큼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그렇게 미심쩍게 여기는 분위기가 커지자 마법과 싸운다는 명분하에 종교재판 식의 게슈타포를 만들어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음, 뭔가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는 것은 언제든 바람직한 자세야. 결과가 신통치 못했다 하더라도 이 실험은 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잖아. 사실,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화형에 처했지. 그러나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오믈렛을 만들 수 있으랴. 게다가 그 주임신부는 골칫거리였으니 제거하는 게 더 좋았어. 

  그러나 그 뒤 어깨 통증이 도지고 상처 때문에 난 누공도 견디기 힘든 통증을 안기면서 밤마다 잠을 깨웠다. 리슐리외가 의사들을 연신 불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에 있었던가! 

 

  그 시대 의술 효험은 주로 ‘자연의 치유력’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의 이 비참한 몸뚱이에서는 자연도 치유력을 잃은 듯 보였다. 리슐리외가 경악했다. 

  이게 혹여 초자연적 것에 기인한 병이라면 어떡하지? 

  성물들과 성상들을 가져오게 하고, 자신의 회복을 위해 다들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이 위대한 인물이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남몰래 별점도 치고, 미덥게 여기는 부적들도 만지작거리고, 어린 시절 늙은 유모한테 배운 주문도 웅얼거려 보았다

 

  병이 깊어졌을 때, 대저택 문들이 ‘추기경과 프랑스 육군원수들한테도’ 굳게 닫혔을 때, 그는 무엇이든 다 믿을 준비가 돼 있었다. 우르뱅 그랑디에가 무죄라는 사실뿐 아니라 이적을 행한다는 성 요셉의 성유조차도

 

  잔느 수녀한테 예하 접견은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후 기나긴 승승장구 여정의 일환일 뿐이었다. 루덩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안시로, 도처에서 열렬한 환영과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동했다. 대귀족들이 베푸는 환대가 그녀 허영심을 가득 가득 채워 주었다

  투르에서는 베르트랑 드쇼 대주교가 ‘극진한 친절과 호의’로 맞이했다. 그는 팔순의 노신사로서 도박에 쏟는 열정으로 유명했는데, 근자에는 오십이나 나이 어린 슈브레즈 부인에게 코믹한 사랑에 빠져 만인의 웃음가마리가 되었다. 슈브레즈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줄 것이야.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을 때 내 허벅지를 슬슬 꼬집도록 놔두기만 하면 돼.”  

 

  잔느의 얘기를 듣고 나서 대주교는 그녀 손바닥에 나타난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의사 위원회가 검사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 검사를 원장수녀가 완벽하게 통과했다. 그녀가 묵고 있는 수녀원 주변에 하루 사천 명씩 몰리던 군중이 단박에 칠천으로 늘었다. 

  대주교 면담이 한 번 더 있었는데, 이번엔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배석했다. 왕제가 투르에 온 까닭은 연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 루이즈 마벨라, 그녀는 나중에 그의 아들을 낳고 버림받은 뒤 결국 수녀가 됐다. 잔느의 기록을 보자. 

 

  「오를레앙 공께서는 객실 문까지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나한테 따스한 인사말을 건네고 악령을 기적처럼 퇴치했다고 축하한 뒤 덧붙였다. “나도 루덩에 가본 적이 있는데 당신 안에 들어앉은 악마들한테 아주 질겁했다오. 그 악마들 덕분에 난 욕하는 버릇을 고치고 앞으로는 더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서 루이즈가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가 투르를 떠나 앙부아즈로 갔다. 성스러운 이름자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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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몸의 연결로 젊어지기 18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흥미로운 사실 10가지

 

 

  1. St. Fiacre (?-670) - 아일랜드에서 출생, 정원사들의 수호성인. 프랑스에서 더 잘 알려져. [본문으로]
  2. Jonathan Swift (1667-1745) - 아일랜드 출신 풍자 작가, 에세이스트, 시인, 성직자. <걸리버 여행기> [본문으로]</걸리버>
  3. Hubris 혹은 hybris - 지나친 자부심이나 오만. 현실감을 잃고 자신의 권한이나 업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를 가리킴. 특히 권좌에 있는 자가 그러할 때 자주 쓰인다. 휴브리스는 흔히 '정신박약 상태'와 연결된다. [본문으로]
  4. Nemesis - (그리스 신화에서) 복수의 여신. 인과응보, 필연적 결과, 천벌. [본문으로]
  5. Gaston duc d’Orleans (1608-1660) - 앙리 4세와 마리 메디치의 2남, 루이 13세의 아우.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강력한 왕위 계승 후보자. 다른 귀족들이나 모후와 함께 형인 루이 13세와 리슐리외에 맞서 에스파냐와 내통하는 등 몇 차례 반란을 시도했으나 다 무위에 그쳤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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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만년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작하자 일이 분 뒤 발람이 나타났다. 사지를 뒤틀고 경련을 일으키고 하느님을 거세게 모욕하는 말이 나오고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잔느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곧 임신 막달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어서 가슴도 복부만큼이나 산더미처럼 부풀었다. 엑소시스트가 각 부위에 성유물을 대자 부풀어 오른 게 가라앉았다. 

  킬리그루가 한 발짝 다가서서 수녀의 손을 쥐어 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맥박을 짚어 보니, 느리고 희미했다. 원장수녀가 그를 밀치고는 제 두건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거의 배코 치다시피 한 머리가 금방 드러났다. 그녀가 두 눈알을 굴리며 혀를 쑥 빼물었다. 혀는 엄청나게 부풀었는데 색깔이 검으며 모로코가죽처럼 바닥이 우둘투둘했다. 수렝이 발람에게 성체에 경배하라 이르면서 그녀를 풀어주었다. 잔느가 장의자에서 마룻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오랫동안 발람이 완강하게 버텼지만, 결국에는 소정의 의식을 이행했다. 킬리그루의 기록을 계속 보자. 

 

  「그러고는 바닥에 눕자 허리를 뒤로 활처럼 꺾고 발뒤꿈치와 배코 친 맨머리로 몸을 지탱하면서 탁발수사를 따라 마룻바닥을 돌아다녔다. 또 다른 기이하고 부자연스러운 포즈들도 많이 취했는데, 그런 자세를 난 여태 본 적도,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여긴 적도 없었다. 게다가 이건 잠깐 취하다 만 동작이 아니라 한 시간 넘게 계속됐다. 그럼에도 그녀는 호흡 하나 흩트리지 않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내내 혀를 밖으로 빼물고 있었는데, 그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팽창돼 한순간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마치 그녀를 산산조각 내는 듯한 공포의 비명이 나온 뒤 줄곧 한 단어만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바로 “요셉”이었다. 그 소리에 성직자들이 다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건 신의 표시야, 저 자국을 봐!” 

  그녀가 내뻗은 손을 보면서 한 수도사가 자국을 찾았다. 몬태규 씨와 나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그녀 손바닥에서 다소 불그레한 색깔이 짙어지며 정맥을 따라 1인치쯤 반점들이 나타나더니 글자가 뚜렷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건 그녀가 읊조린 것과 같은 단어, ‘요셉’이었다. 이 자국은 악마가 약속한 것이라고, 예수회 수사가 말했다. 떠날 때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는…」 

 

  엑소시즘 과정은 아주 상세하게 기록됐으며 매번 담당 엑소시스트가 그 문건에 서명했다. 그런 문건에 몬태규가 영어로 추신을 달고, 거기에 그와 킬리그루가 자기네 이름을 적었다. 사실, 킬리그루는 서신을 유쾌한 문투로 맺는다. 

  「이런 일을 자네가 다 믿을 것이라 기대하네. 세상에는 자네의 겸손한 친구 토마스 킬리그루보다 더 뻔뻔한 자들과 허풍쟁이들이 많이 있으니 말일세.」 

 

  시간이 흐르면서 손바닥에는 요셉 이외에 예수, 마리아, 살레의 프랑수아 이름자도 나타났다. 처음 나타날 때는 발갛던 이름자들이 한두 주일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그때마다 잔느의 천사가 다시 또렷하게 만들곤 했다. 

  이 현상은 1635년 겨울에 시작돼 1662년 성 요한의 날까지 불규칙하게 계속됐다. 그리고 그날 이후 수렝이 기록한 것처럼 「그걸 보려고 끈질기게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주님께 열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건져 달라고 원장수녀가 정성껏 기도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모를 이유로」 이름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수렝과 동료 몇몇, 또 대다수 일반 구경꾼들은 이 기발한 성흔 형태를 전능자께서 내린 특별한 은혜라고 믿었다. 하지만 더 교육받은 동시대인들은 이 기적에 의문을 품었다. 애초부터 마귀 들림이라는 것도 믿지 않은 마당에 이제 신비한 철자들의 거룩한 근원 따위는 더더욱 안 믿었다

  그들 중 몇몇은, 예를 들어 존 메이틀랜드 같은 이는, 이름자를 산성 물질로 손바닥에 새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다른 이들은 색깔 넣은 전분으로 표면에 선을 넣을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많은 이들은 철자들이 양손이 아니라 왼손에만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오른손잡이가 써 넣기에 더 편하지 않겠어? 

 

  잔느 수녀의 전기를 펴낸 가브리엘 레게 박사와 질 투레트 박사는 둘 다 샤르코[각주:1]의 제자인데, 자기암시에 의해 손바닥에 글자가 생겼다고 믿는 편이며 히스테릭한 낙인의 현대적인 사례 몇몇을 인용하여 그런 관점을 옹호한다. 여기서 덧붙일 것은 많은 히스테리 환자의 피부는 특별한 민감성을 지닌다는 점. 그런 사람의 피부는 손톱으로 살짝 긁기만 해도 붉은 자국이 생겨서 몇 시간이고 없어지지 않는다. 

  자기암시에 의한 것이든 의도적인 속임수이든 혹은 그 둘의 혼합이든 우리에겐 각자 나름대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 그 두 가지가 다 섞인 쪽으로 기운다. 낙인 혹은 성흔은 잔느 스스로도 진정 기적 같은 것이라 여기기에 충분할 만큼 자연스레 생겼을 터이다. 만약 그게 진짜 기적이었다면 대중에게 더 교훈이 되고 그녀 자신에게는 더 신뢰할 만한 것이 되게끔 그 현상을 개량해도 무리가 없었을 텐데. 

  그녀 손바닥에 나타난 거룩한 이름자들은 월터 스코트의 장편소설들과 비슷한 것이었으니, 달리 말하면, 사실에 기초하되 상상력과 가공 기법에 훨씬 더 많이 신세진 것이었으리라.

 

  (내막이야 어떠하든) 잔느 수녀는 이제 본인만의 고유한 이적의 소유자가 됐다. 그건 그냥 개인 차원의 것이 아닐 뿐더러 장기간에 걸친 것이었다. 거룩한 이름자들이 희미해지면 그녀의 천사가 나타나서 즉각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명한 방문객들이나 이적에 갈급한 보통 구경꾼들한테 언제든 보여줄 수 있었다. 이제 그녀 자신이 걸어 다니는 성물이 됐다

 

  이사카론이 1636년 1월 7일 그녀를 떠난 뒤 베게모트만 남았다. 그러나 이 신성 모독의 악령은 다른 악마들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억척같았다. 엑소시즘도 고행도 묵상기도도 다 소용없었다

  의지가 없고 훈련되지 않은 정신에 신앙이 강요되다 보니 역작용이 나타났다. 즉, 정신이 감응(유도)적인 반발을 일으킨 결과 외려 거칠고 충격적인 불신앙으로 접어들었고, 그리하여 그 인격에 강요된 진리들을 다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정과 저항은 악령이 되어 잔느의 무의식에 둥지를 튼 채 혼란과 스캔들을 일으키며 떠나지 않으려 했다

 

악령을 내쫓는 엑소시즘 시행 하의 수녀

 

  수렝이 열 달 넘게 씨름한 끝에 마침내 10월에 베게모트를 완전히 격퇴했다. 수도회 관구장이 그를 보르도로 소환하고, 다른 예수회 수도사가 원장수녀를 감독하게 됐다. 

 

  레쎄 수사는 이른바 ‘단순한 엑소시즘’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잔느 수녀 말에 따르면, 그는 엑소시즘 중에 악마들이 성체를 우러러 받드는 장면을 가장 좋아했다. 수렝이 ‘말을 공격해서 기사를 끌어내리려 했다’면 레쎄는 기사를 직접 대놓고 공격했다. 말의 감정에 개의치 않고, 말을 달래려는 시도도 전혀 하지 않고

  원장수녀의 기록을 보면 「어느 날 저명인사들이 모이자, 수도사가 그들의 영적 복리를 위해 엑소시즘을 시행하기로 했다.」 원장수녀가 자기는 몸이 아픈데 엑소시즘을 거치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영적 지도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엑소시즘을 시행하고 싶어 안달이 난 수사는 나한테 용기를 내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엑소시즘을 시작했다.」 그녀가 평소에 하던 묘기를 잘 해냈는데, 그 결과 고열에 허리 통증이 심하게 도져서 자리에 눕게 됐다.

 

  위그노이지만 도시에서 최고로 꼽히는 의사 팡통을 불렀다. 그녀한테 사혈을 세 번 하고 약제를 주었다. 효과가 있어서 병자가 「속을 다 비우고 더러운 피를 쏟았다. 그게 이레나 여드레쯤 갔다.」 상태가 호전됐다가 며칠 지나 다시 악화됐다. ‘레쎄 수사는 엑소시즘을 재개할 만하다고 여긴 모양이지만 난 극심한 구역질과 구토에 시달렸어.’ 열이 다시 오르고 옆구리 통증이 극심해지고 각혈이 시작됐다. 

  다시 부름 받은 팡통이 흉막염이라고 진단했다. 이레 동안 일곱 번 사혈하고 관장을 네 번 했다. 그런 뒤 그는 병세가 치명적이라고 알렸다. 그날 밤 잔느가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가 하는 말. 넌 죽지 않을 거야, 하지만 하나님이 너를 일부러 지극히 위험한 상태까지 데려가실 텐데, 네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회복하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권능을 똑똑히 보이기 위함이지. 

 

  이틀 동안 상태가 악화되기만 하고 기력도 거의 쇠한 듯 보였기에 2월 7일 죽어가는 여인한테 병자성사를 거행했다. 그 동안에 사람을 보내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그녀가 기도를 읊조렸다. 

  “주여, 당신께서는 이 병을 고치심으로써 당신 권능의 특별한 은혜를 보이고자 하심을 내가 잘 알고 있나이다. 이것이 그런 경우라면, 의사가 볼 때 가망 없다고 판단할 만한 상태로 나를 이끄소서.” 

 

  팡통이 도착해 병자를 살펴보고 진단을 내렸다. 한두 시간 뒤에는 숨이 끊어질 겁니다. 그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서 그때 파리에 머물고 있던 로바르데몽에게 보낼 보고서를 썼다. 

  맥박이 불규칙하고 복부가 비정상적으로 팽창돼 있으며, 관장은 물론이고 그 어떤 치료법으로도 소용없을 정도로 쇠약한 상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고통’을 덜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녀에게 작은 좌약을 하나 삽입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낱 완화제일 뿐이기에 다른 뭔가를 기대해선 안 되지요. 병자는 임종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섯 시 반 잔느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자신의 천사를 보았다. 천사는 기다란 금발 고수머리를 휘날리는 18세 매혹적인 젊은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수렝의 말에 따르자면, 이 천사는 앙리 4세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손자요 세자르 방돔의 아들인 보포르 공작과 똑 닮았다. 이 왕자는 악마들을 보려고 얼마 전 루덩에 왔었는데, 어깨까지 늘어진 금발이 원장수녀한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천사에 이어 성 요셉이 나타나더니 그녀 오른편 옆구리에, 통증이 극심한 부위에, 손을 얹어 무슨 기름을 발라 문질렀다. ‘그러자 난 정신을 차리고 완전히 회복됐다.’ 

 

  (그건 또 하나의 이적이었다. ...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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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an Martin Charcot (1825-1893) - 프랑스의 의사, 신경병 학자, 현대 신경학의 창시자. 히스테리 치료에 최면 기법을 이용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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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젊은 시절

 


 

  근세 과학 문헌을 읽다 보면 가장 거친 초자연주의[각주:1]와 가장 거칠고 나이브한 유물주의[각주:2] 같은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데 이 덜 다듬어진 유물주의는 현대의 유물주의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옛 이론이 다루는 ‘물질’[각주:3]은 정확하게 계량되는 무엇이 아니다. 거기서는 그저 따스함과 차가움, 건조함과 축축함, 가벼움과 무거움 따위 얘기만 나온다. 이런 질적 표현을 양적 규모로 밝히려는 시도가 전혀 없다. 우리네 선조들의 관념에서 ‘물질’은 측정되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주 적다

 

  두 번째 차이점이 첫 번째 못잖게 중요하다. 우리 관점에서 ‘물질’은 늘 움직이는 무엇이며, 실제로 그 본질은 바로 움직임에 있다. 모든 물질은 늘 뭔가를 하고 있고, 모든 형태의 물질 중 생체를 구성하는 콜로이드[각주:4]가 가장 미친 듯이 바쁘다. 하지만 콜로이드의 움직임은 놀랍게도 서로 조화를 이루니, 유기체의 한 부위에서 벌어지는 과정이 다른 부위들의 과정을 조절하고 또 그것에 의해 조절되면서 에너지 균형을 만든다. 

 

  고대와 중세 사상가들에게 물질이란 본질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물건일 뿐이었다. 살아있는 신체를 얘기할 때조차 그랬다. 그 생체에서 어떤 움직임이 벌어졌다 하면, 식물에서는 오로지 식물적 영혼이, 짐승들에서는 식물적 영혼과 감각적 영혼이, 또 인간한테서는 그 두 영혼과 더불어 이성적 영혼이 작용한 것이었을 뿐. 

 

  생리 과정은… 과학으로서의 화학이 아직 없었기에 화학 용어로 설명되지 못했고, 전기라는 것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전기 자극으로 설명되지 못했고, 현미경이 없는데다 아무도 세포를 본 적이 없기에 세포 활동으로도 설명되지 못했다. 신체 조직을 구성하는 물질들의 활동 형태는 전부 (전혀 어려움 없이) 그저 영혼의 특별한 기능으로 설명됐다. 

  영혼에는 예를 들어 성장 기능, 영양 공급 기능, 분비 기능이, 한마디로 생리 과정에 관련된 기능이 다 있었다. 이런 가설이 철학자들에겐 참으로 편리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추상적 개념에서 자연 현상으로 옮겨가려 했을 때, ‘영혼의 특별한 기능’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적다는 점을 알았다. 

 

  중세 유물주의의 투박한 성격은 당대 문학에서 사용된 여러 메타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생리적 요소들은 부엌과 변소에서 벌어지는 것에 은유됐다. 당시 문학에는 끓는 것과 끓어서 터지기 직전의 것과 압력으로 일그러지는 것, 오수 구덩이와 대저택 이동 변기의 응고물에서 나오는 부패물과 악취에 관한 얘기가 늘 나왔다. 그런 개념들에 의거하여 신체 기관의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극히 어렵다. 

 

  좋은 의사는 치료자 본능을 타고난 사람으로, 지식이 재능과 직관적 진단을 너무 간섭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자연은 간섭받지 않으면 스스로 치유 기적을 행할 수 있다

 

  버튼의 방대한 편찬물에는 갖가지 헛소리며 위험한 난센스와 더불어 번뜩이는 센스가 적잖이 들어 있다. 난센스는 주로 당대에 횡행하던 과학적 이론들과 연관되고, 지혜로운 센스는 주로 통찰력 있고 선량한 숙련가들이 열린 마음으로 얻은 경험에서 나온 것. 그들은 또 동료를 사랑하고 환자 다루는 비결을 터득하고 자연의 치유력을 믿은 이들이었다

  자연적 원인이든 초자연적 원인이든 멜랑콜리라는 질병을 의사들이 어떻게 치료했는지 관심 있는 이들은 버튼의 황당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우리 이야기를 위해서는 잔느와 다른 동료 수녀들이 재판 기간 내내 의료진의 관리를 받았다는 점을 언급하면 충분하다. 아쉽게도, 버튼이 묘사한 현명한 치료법 어떤 것도 그 수녀들한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을 신선한 대기로 내보내지 않았고, 식이요법을 처방하지 않았고, 몸을 좀 고되게 할 만한 일도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사혈과 관장에 시달리고 별의별 환약과 탕제를 끝없이 삼키고 들이켜야 했을 뿐이다

  그런 치료가 어찌나 괴물 같았던지, 양심적인 의사 몇몇은 수녀들을 검사한 뒤 치료 열성이 지나쳐서 병세가 외려 악화됐다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했다. 수녀들한테 늘 다량의 안티몬이 투여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고생했는지도 모른다. 

 

  [저자 주 → 이런 진단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묘사하는 사건들이 벌어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 세대에 걸쳐 의사들이 안티몬을 두고 대립해 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갈레노스의 관점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을 그 어떤 질병 치료에도 효과가 탁월한 약제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적인 의사들이 압력을 넣자 파리 고등법원은 프랑스 전역에서 안티몬 사용 금지 포고령을 발동했다. 그러나 법령은 준수되지 않았다. 

 

  법안 통과 후 반세기가 지나 그랑디에의 친구이자 루덩에서 가장 저명한 의사인 테오프라스트 르노도[각주:5]가 안티몬의 효능을 열렬히 찬양하고 있었다. 그의 후배뻘이며 유명한 <서신>의 작자인 귀 파탱[각주:6]은 또 그에 상충되는 관점을 맹렬히 옹호했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는 르노도며 다른 갈레노스 반대자들이 아니라 파탱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안티몬 화합물은 칼라아자르라고 알려진 열대병 치료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이용할 가치가 거의 없다. 어찌 됐건, 16세기와 17세기에 안티몬의 무차별 남용은 의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긴 해도 경제적 관점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차고 넘쳤다. 아담과 동료 약제사들은 금속 안티몬으로 ‘영구 환약’을 팔아 돈을 짭짤하게 벌었다. 이 환약은 삼키면 창자를 지나면서 점막을 자극하여 하제처럼 작용했고, 변기통에서 꺼내 씻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무한정 쓸 수 있기 때문에 한번 구비하면 그 다음에는 배변 촉진제에 돈 들일 일이 더 없었다. 의사 파탱이 격렬하게 비난하고, 파리 고등법원이 금지했다. 하지만 변비까지 일으킬 정도로 인색한 프랑스 부르주아에게 안티몬의 매력은 물리치기 힘들었다. 이 영구 환약을 가보처럼 취급하면서 대물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초기 갈레노스 반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명성 높은 파라셀수스[각주:7]가 잘못된 유추 하나로 안티몬에 열정을 품게 됐다는 점을 여담 삼아 언급할 만하다. 이렇게 말했다. “안티몬은 금을 정제하면서 슬래그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인체도 깨끗하게 해준다.” 

 

  금속 세공사와 연금술사의 작업을 의사와 영양사의 작업과 비교함으로써 생긴 또 다른 잘못된 유추는 식료품을 더 많이 가공할수록 유용성이 더 커진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흰 빵이 갈색 빵보다 더 좋고, 부글부글 끓인 부용(bouillon)이 그 안에 든 본래의 고기며 야채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믿음. ‘거친’ 식품을 먹는 사람들은 거칠어진다고 짐작들 했다. 파라셀수스가 이렇게 말한다. “치즈와 우유, 오트밀 비스킷을 먹는 사람은 섬세한 기질을 지닐 수 없다.” 

  우리네 식생활 이론을 연금술에 잘못 유추하면서 벌어지던 혼란은 불과 한 세대 전 비타민이 등장한 뒤에야 멈추게 됐다.] 

 

  하지만 ‘멜랑콜리’ 치료법이 아무리 잘 개발돼 있었다 한들 마귀 들림과 악마의 틈입 때문이라는 믿음이 훨씬 더 널리 퍼진 당시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의사들 가운데서도 그랬다. 버튼의 글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귀신이며 악마 얘기에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법률가며 성직자, 의사, 철학자 대다수가 그 반대편에 있다.’ 

 

  벤 존슨[각주:8]은 <악마는 당나귀처럼 투미해>에서 17세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우리한테 선명하게 남겼는데, 거기에는 맹신과 의심, (특히 도저히 믿을 게 못 되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의존과 응용과학의 새로운 발견에 대한 순진한 자만이 공존한다. 극중 인물인 피츠도트럴은 마술 딜레탕트로서, 악마와 만나기를 갈망한다. 악마들은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고 있으니까. 

 

The Devil is an Ass. by Ben Johnson

 

  그러나 마법과 사탄의 힘을 믿는 마음과 함께 우리 아버지들이 ‘기획자’라 부르던 회사 프로모터며 뭔가 발견했다고 큰소리치는 사기꾼들, 의심쩍은 발명품들에 대한 믿음 역시 아주 강하다. 자기한테 천팔백만 파운드를 확실히 만들어주고 공작 신분까지 얻어주는 계획을 기획자가 세우고 있다고 피츠도트럴이 말하자,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 거짓된 혼령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한다. “혼령이라니!” 피츠도트럴이 소리친다.

 

혼령이라니! 그런 건 없어, 여보, 멀쩡한 이성만 있는 거야. 

이 사람은 악마와 악마의 작업을 다 거부하지. 

이 사람은 엔진과 기계장치로만 일을 해, 이 사람은 그래! 

이 사람은 날개 달린 쟁기를 발명했어, 기적 같지, 

그게 있으면 40에이커 밭도 한순간에 다 갈아엎어! 

그 넓은 밭에 물을 대는 기계도 다 있어

 

  피츠도트럴은 물론 코믹하면서도 그 시대에 아주 전형적인 형상이다. 그가 상징하는 바는 자연적인 세계와 초자연적인 세계, 이 두 세계에 지적인 생활이 불안하게 양다리 걸친 시대. 그가 두 세계의 최선 대신 최악을 취하려고 애쓴 것도 역시 슬프지만 전형적이다. 

  우둔한 자들은 순수한 과학보다 과학적 협잡에, 성령에 대한 믿음보다 밀교와 비술에 훨씬 더 매료를 느낀다

 

  루덩의 수녀들 스토리에서 그렇듯이 버튼의 책에서 이 두 세계는 공존하고 용인된다. 한편에는 공인된 의술로 치료해야 하는 멜랑콜리가 있다. 한데 마법과 귀신들림 또한 잘 알려져서, 그것들이 몸과 마음에 질병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해서 놀랄 건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하늘이나 땅이나 물에, 땅 아래에, 빈 곳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으며, 파라셀수스가 한사코 주장하듯이 대기 중에는 보이지 않는 악령들이 여름날 파리보다 훨씬 더 가득하여 늘 저마다 갖은 혼란을 획책하니 말이다.」 

 

  버튼에 의하면, 혼령의 수효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네 어떤 수학자들 말이 옳다면, 즉 돌멩이가 별들이 빛나는 하늘이나 여덟 번째 천구에서 떨어져 시속 100마일로 날아간다면, 그건 어떤 이들 말대로 1억7천만803마일이라는 엄청난 거리를 지나 지구에 닿기까지 65년이나 그 이상이 걸릴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광활한 공간에 혼령이 얼마나 많이 거처할 수 있겠는가?」 

 

  우주관이 그럴진대, 악마들이 우연히 어떤 사람한테 들어앉는다는 것이 놀라운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대다수 사람들이 귀신들리지 않고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녕 놀라웠다

(7-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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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초자연주의 - 감각적 인식으로 파악되는 자연적 존재를 초월한 정신적 존재가 있다고 단정하고, 그에 관한 인식은 신앙, 계시, 직관 등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 [본문으로]
  2. 유물주의 -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정신이나 의식 따위는 물질의 산물이라는 이론. [본문으로]
  3. 물리에서, 자연계를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질량을 가지는 것. [본문으로]
  4. 원자나 보통 분자보다는 크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작은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 또는 그 물질이 기체, 액체, 고체 속에서 분산되어 있는 상태. 입자 크기는 1~10나노미터, 거름종이는 통과하지만 반투막은 통과하지 못한다. [본문으로]
  5. Théophraste Renaudot (1586-1653) - 프랑스의 의사, 저널리스트. 프랑스 저널리즘의 창시자. 빈민 구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본문으로]
  6. Gui Patin (1602-1672) - 프랑스의 유명한 의사, 저술가. "늙음과 탐욕은 늘 한 패거리". [본문으로]
  7. Paracelsus (1493-1541) - 스위스계 독일의 의사, 식물학자, 연금술사, 자연철학자, 점성가, 밀교 신봉자. 치료화학 창시자들 중 한 사람. 자신이 지은 라틴어 이름은 '셀수스를 능가하는 사람'이라는 뜻. *셀수스 - 고대 로마의 철학자, 의사. 다방면에 박학다식하여 철학, 수사학, 법률, 농업, 군사, 의료에 관한 책을 20권 가량 남겼다. 의학 전문어의 토대를 마련했다. 명료하고 우아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들 중의 키케로'라 불린다. [본문으로]
  8. Benjamin Jonson (1572-1637) - 잉글랜드의 시인, 극작가. 연극배우, 드라마 이론가. 는 제임스 1세 국왕 시대의 코미디. 1616년 초연. 무대는 사탄과 그보다 하급 악마인 퍼그가 있는 지옥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피츠도트럴은 어딘가 땅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겠다는 욕심으로 마법사며 요술쟁이들과 교류하면서 악마를 만나겠다는 생각에 푹 빠져 있는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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