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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0 루덩의 악마들 10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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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1648년 삼십년전쟁이 끝났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세가 꺾이고 게르마니아 주민 삼분지 일이 사라졌다. 유럽은 위대한 군주의 의지와 프랑스의 헤게모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였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라는 간주곡이 흐르는 동안 한 프롱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면 다른 프롱드가 나타나곤 했다. 마자랭이 스스로 유배에 내몰렸다가 권좌로 복귀했고, 다시 은퇴했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 다음엔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다.[각주:1]

  그맘때쯤 로바르데몽이 죽었다. 총신 지위에서 쫓겨나고 희미해진 채로. 그의 외아들은 말 타고 출몰하며 노상강도 짓을 하다가 살해됐다. 딸은 고아가 되어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루덩 우르술라회 수녀가 됐고, 거기서 제 아버지의 옛 휘하인 잔느 수녀 밑에 들었다.

 

   1656년 1월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 1부가 출간되고, 넉 달 뒤 위대한 얀센파 기적이 일어났다. 포르루아얄에 보관돼 있는 신성한 가시에 닿자 파스칼의 조카딸 눈이 기적적으로 치료된 것.[각주:2]

 

한 해 뒤 생주르 신부가 죽자 원장수녀한테는 다른 수녀들과 가엾은 수렝 외에는 서신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게 됐다. 한데 장 조셉 수렝은 아직도 병세가 심해 답신을 보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1658년 초 수렝이 직접 쓴 편지를 받았을 때 그 기쁨이란! 그것도 20여 년 만에 처음이었으니. 그녀가 이제 렌에 있는 방문동정회 수녀가 된 친구 마담 뒤우스한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는다. 

   「얼마나 놀라운가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정말 감탄할 만해요. 그분은 나한테서 생주르를 빼앗아 가더니 이제 내 영적 스승이 다시 나한테 편지를 쓸 수 있게 만드셨지 뭐에요! 이 편지를 받기 불과 며칠 전에 내 영혼 상태에 대해 긴 편지를 보냈거든요.」 

 

  그녀는 자신의 영혼 상태에 관해 수렝한테, 마담 뒤우스한테, 자기 편지를 읽고 응답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 그녀의 남아 있는 서신들을 책으로 펴낸다면 몇 권은 좋이 되리라. 소실된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원장수녀는 ‘내면의 삶’이라는 것이 꼭 공개적이고 다중 앞에서 하는 끊임없는 자기분석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로 내면의 삶이란 자신을 분석하지 않을 때 시작되는 법.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에만 집착하여 계속 떠들어대는 영혼은 거룩한 근간을 인식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를 주목하자. 

 

  「내가 여러분께 편지하지 않은 것은 그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오. 왜냐하면 난 진정 여러분 모두에게 선을 바라니까. 편지하지 않은 까닭이라면, 그저 필요한 것은 이미 충분히 언급된 것 같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뭔가 부족하다 싶다면, 그건 글쓰기나 말하기가 아니라오, 그런 것이야 흔히 필요 이상으로 넘치니까. 중요한 것은 침묵과 근면에 있어요.」 

  이 말은 십자가의 성 요한[각주:3]이 자기네 영적 상태를 아주 상세하게 적은 편지에 왜 답하지 않느냐고 불평한 수녀들에게 보낸 것. 그러나 ‘말하기란 마음을 흩뜨리고, 침묵과 근면은 생각을 모아서 스피릿을 굳힌다오.’ 

 

십자가의 성 요한&#44; St. John of the Cross
St. John of the Cross

 

  한데, 오호라, 잔느는 침묵하기를 원치 않았구나. 그녀는 유명한 마담 드 세비네[각주:4]만큼이나 어휘가 풍부하고 표현이 장황했다. 하지만 오로지 자기 자신에 관한 가십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잔느 수녀를 마귀 들림의 절정 시기에 보았던 브리튼 사람 둘이 1660년 왕정복고와 더불어 마침내 저희 자리에 들어섰다. 톰 킬리그루는 궁정 침소관이 됐고, 검열 받지 않고 작품들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을 건축하도록 허가받았다. 존 메이틀랜드로 말하자면, 우스터에서 죄수가 되어 9년을 감금됐다가 이제 새 국왕의 국무비서요 총신 중의 총신이 됐다. 

  그러는 동안 원장수녀가 제 나이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병치레를 하면서, 걸어 다니는 성물이요 권표 받드는 사람, 성스러운 대상이요 수다스러운 안내자라는 이중 역할이 이제 견딜 수 없이 고단해졌다. 성스러운 이름자들은 1662년 마지막으로 나타났고, 그 뒤 독실한 신자들이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몇몇 이적이 멈췄다 해도 잔느의 허황된 영적 자부는 이전처럼 여전히 컸다. 수렝이 그녀한테 보낸 여러 편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아주 중요한 긴급함에 관해, 은혜의 근간에 관해 당신에게 말하려 하오. 곧, 겸허함 말이오. 이 성스러운 겸허함이 당신 영혼의 진정하고 견고한 반석이 되게끔 행동하기를 아주 간절히 바란다오. 우리가 편지로 주고받는, 숭고하고 고아한 본질의 것들이 그 어떤 경우에도 당신한테서 겸허함을 빼앗으면 안 된다오.」 

  아무리 남을 잘 믿고 기적적인 것을 과대평가함에도 불구하고 수렝은 서신으로 소통하는 여인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잔느 수녀는 대단히 널리 퍼진 ‘보바리스트’ 아종에 속했다. 이런 사람들에 관해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에서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스칼테레사 성녀에 관해 이렇게 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계시를 받고도 그녀가 보인 크나큰 겸허함이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녀가 계시를 통해 얻은 인식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녀의 말을 본받으려 무던히 애를 쓰고, 그렇게 하면 그녀의 본질을 본받는다고 상상하면서 우리 마음을 열심히 자극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기꺼워하는 덕목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기꺼운 상태로 들어서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잔느 수녀는 실제로 자신만이 펼치는 코미디의 주인공이었음을 마음 한 구석에서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반대 되는 것을 한층 더 확신했다. 루덩에 몇 차례 방문하고 여러 달 묵었던 마담 뒤우스는 제 가엾은 친구가 거의 모든 시간을 환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잔느는 마지막까지 환상의 노예였을까? 혹은 조명 받는 배우가 아니라 무대 뒤편 모습으로 죽을 수 있었을까? 무대 뒤편 본연의 모습은 황당하고 측은했다. 그러나 사실을 인정하기만 했다면, 테레사 성녀인 체하기를 그만두었다면, 모든 게 더 좋았을 것이다. 한사코 다른 사람인 양 처신한 이상 기회는 없었다. 그녀에겐 정직성과 온유함이 부족했다. 안 그렇다면 자신 안에 더 훌륭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었을 텐데

 

  1665년 1월 그녀가 죽은 뒤 그때까지 그녀가 벌여 온 코미디는 수녀원의 남은 멤버들에 의해 진짜 광대극으로 변했다. 그들은 시신의 목을 베어 잘린 머리를 성스러운 슈미즈와 나란히 크리스털 창이 달리고 은으로 씌운 상자에 담았다

  지역 화가가 주문 받아서 베게모트를 퇴치하는 그림을 엄청나게 크게 그렸다. 화폭 한가운데 원장수녀가 수렝 수사 앞에서 황홀경에 잠겨 무릎 꿇고 있고, 그 수렝을 트랑킬 신부와 어떤 카르멜회 수사가 돕고 있다. 그 장면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동부인하여 위엄 있게 구경하고 있다. 그들 뒤로 창가에는 지체가 좀 낮은 구경꾼들 얼굴이 보인다. 그림 위쪽에는 후광에 둘러싸이고 케루빔을 거느린 성 요셉이 떠 있다. 오른손에 벼락 세 개를 쥐고 있는데, 그것을 마귀 들린 자들 입에서 나오는 시커먼 악마들과 악령들한테 내던지고 있다.  

  이 걸작은 우르술라회 채플에 팔십 년 넘게 걸려 있으면서 만인의 경배 대상이 됐다. 그러나 1750년 푸아티에 주교가 루덩에 왔다가 보고는 어디 멀리 치우라고 지시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순종 의무 사이에서 애를 끓다가 수녀들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래서 화폭 위에 다른 훨씬 더 큰 그림을 걸었다. 원장수녀가 가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수녀원이 쇠락을 거듭하다가 1772년 폐쇄됐다. 그림은 성 십자가 교회 참사회 위원한테 넘어갔고, 슈미즈와 미라가 된 머리는 십중팔구 어떤 좀 더 운이 좋은 수녀원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세 가지 다 지금은 종적이 묘연하다. 

(10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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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롱드의 난’은 프랑스에서 1648-1653 어간에 잇따라 발생한 반정부 폭동으로, 사실상 시민전쟁의 양상을 띠었다. 이는 또 1635년에 시작된 프랑스와 에스파냐 전쟁의 와중이었다. 파리 고등법원의 프롱드와 귀족들의 프롱드로 대별되는데, 전자는 베스트팔렌 조약 직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 프롱드 난은 결국 지역 귀족세력의 권한 약화와 절대군주국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fronde는 본래 투석기를 뜻하는데, 파리 군중이 마자랭 지지자들 집의 창문을 깨는 데 이용했다. 이 와중에 마자랭은 두 번 권좌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했다. 오늘날 프롱드는, 말만 그럴싸하게 하며 실제로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권력자들에 대한 불만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2. 파스칼의 누이의 어린 딸인 마르그뤼트 페리에는 왼쪽 눈의 누공이 썩어 들어가는 질병으로 3년 넘게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기독교 교육을 시키려는 모친의 뜻에 따라, 언니와 함께 포르루아얄 수녀원에 기숙학생으로 들어갔다. ‘fistula lacrymalis’라고 일컫는 질환 때문에 누공이 안에서 심하게 손상되고 코뼈가 썩고 입천장에 구멍이 나서, 분출물이 뺨과 콧구멍, 목구멍으로 흘러내릴 정도. 머리를 만지기만 해도 눈가에 극심한 통증. 그 모습이 참으로 딱한데다가 분비물 냄새가 하도 역겨워서 다른 학생들과 떨어져 독방을 써야 했다. 파리의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다 들러붙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어느 날 신성한 가시를 눈에 댄 뒤 그 즉시 병이 싹 사라졌다. 6명 의사와 5명 외과의가 이 기적을 인정했다. 이 사건의 충격이 어찌나 컸든지, 안 도트리시조차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일설에 의하면 마자랭이 이후 5년 동안 얀센파를 박해하지 않게끔 했다고. 신성한 가시를 접하고 치료받은 사람이 두어 달 사이에 수십 명으로 늘었다. [본문으로]
  3. St. John of the Cross (에스파냐어: San Juan de la Cruz, 1542–1591) - 반종교개혁의 중심인물,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로마가톨릭 성인, 카르멜회 탁발수사요 성직자. 수도원 개혁에 박차. 영성에 관해 에스파냐어로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다. “신앙은 하나님께 가는 두 다리요, 사랑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안내자.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신앙의 신비와 은밀함을 잘 묵상하고 관상케 한다면, 사랑은 신앙 안에 담긴 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해줄 것.” [본문으로]
  4. Marie de Sévigné (1626-96) - 프랑스의 귀족. 나이 스물넷에 남편 잃고 홀로 자녀들 양육. 위트와 생생함이 넘치는 편지들을 남긴 일로 유명한데, 대부분 편지를 딸에게 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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