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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10 루덩의 악마들 1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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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 true story of Demonic Possession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상황이 무르익어 갔다. 검찰관은 중년 홀아비인데 혼기 맞은 딸 둘을 데리고 있었다. 장녀 필리프는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1623년 겨우내 주임신부가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그 앳된 처녀가 부친의 손님들 가운데서 오가는 걸 지켜보며 그녀를 한 젊은 과부의 어른거리는 이미지와 조목조목 비교하곤 했다. 

 

  포도주 양조업자인 남편이 일찍 죽은 뒤 그 가엾은 과부를 이제 화요일마다 찾아가 위로하는 중이었다. 니농은 일자무식이어서 제 이름 하나 겨우 쓸 줄 알았다. 그러나 위로할 길 없는 상복 아래 풍만한 육체는 신선함과 탄력을 아직 잃지 않았다. 따스함과 순백의 보물이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관능이 축적돼 있는데, 그건 격정적이면서도 정밀하고 거칠면서도 지극히 고분고분하고 잘 훈련된 것이었다. 게다가 천만다행으로, 거기엔 힘들게 무너뜨려야 하는 조빼는 태도도 없고, 거쳐야 할 플라토닉 이상화라든가 페트라르카 풍의 구애라는 피곤한 예선도 없었으니! 이미 세 번째 만났을 때 그가 애송시의 도입부를 과감하게 들려주었다. 

 

얼마나 자주 마음에 그렸던가, 한밤중 은밀한 위안을. 

나이애드(naiad)의 부드러운 몸을 얼마나 뜨겁게 품곤 했던가. 

하지만 이런 환희를, 오호라, 

그대는 아직 선사하지 않았구려. 

 

  니농이 아무런 저항 없이 경청했다. 아주 솔직한 웃음을 날리며 주변을 흘낏 살필 뿐인데, 그 눈길이 결코 모호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방문을 마칠 때 그가 타위로의 시를 한 번 더 인용했다.[각주:1] 

 

아듀, 오, 감미로운 속삭임이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어깨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가슴이여, 

아듀, 물망초 같은 두 눈이여. 

아듀, 앙증맞은 두 손이여, 

아듀, 친근한 장난들이여, 

영원히 아듀, 소중한 친구여, 

그대와 달콤한 시간 보냈구려. 

하지만 이제 작별 시간에 다시 불러 

한 번이라도 더 사랑을 맛보게 해주구려. 

은보다 더 깨끗한 가슴과 대리석 허벅지 사이에서. 

 

  아듀… 그건 그녀가 주간 고해와 일상적 속죄를 위해 성 베드로 교회에 오게 될 모레까지라는 뜻. (그는 주간 고해성사를 아주 중시했다.) 그때부터 다음 화요일까지 그는 성모축일에 펼칠 강론을 준비했다. 그 설교는 생마르트 노인을 추도해 연설한 이래 그가 행한 가장 성공적인 일이었다. 

 

  어쩜 저렇게 청산유수일까! 주제 선택과 심오한 학식은 또 어떻고! 납득하기 쉽지 않은 신학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솜씨란! 박수갈채와 축하가 쏟아졌다. 하지만 경찰 수뇌가 격노하고 수도사들이 질투 때문에 퍼렇게 질렸다. 

 

그랑디에와 니농의 밀회

 

  주임신부님, 정말 놀라웠어요! 신부님은 둘도 없는 재능이에요! 

  그는 영광의 불꽃 속에서 다음 밀회에 갔으며, 그러면 그녀가 승리자한테 안기는 화관처럼 그를 끌어안고 보상으로 키스와 애무를 퍼부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포옹이라는 천국에서 최고의 대접이었다.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영적 황홀경이며 천상의 거처며 특별한 은혜와 영적 혼인 따위를 실컷 떠들라고 해! 그에겐 니농이 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필리프를 다시 바라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니농 하나로 과연 충분한 거야? 과부들은 물론 남자를 위로할 줄 알아, 화요일 밀회를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지. 그러나 과부들은 결코 처녀가 아니고, 과부들은 너무 많이 알고, 과부들은 뚱뚱해지기 시작했어. 

 

  반면에 필리프는 앳된 처녀의 섬세한 작은 손과 봉긋한 가슴과 감동적인 목으로 사람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런 젊디젊은 장점에다 소녀 같은 수줍음까지 곁들였으니, 이 얼마나 황홀한가 말이냐! 대담하고 거의 무모하게 교태를 부리다가 급작스레 당혹과 놀람으로 바뀌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람 마음을 끄는 동시에 도발적이며 가슴 뛰게 한단 말이냐! 

  필리프는 클레오파트라처럼 굴면서 남자들로 하여금 안토니오 역할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러다가도 누구든 그 역으로 들어설 기미만 보이면, 이집트 여왕은 홀연히 사라지고 놀라서 연민을 간청하는 어린애만 남았다. 그래서 연민을 얻고 나면 즉각 사이렌이 되돌아와서 유혹하는 노래를 부르고 금단의 열매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완전히 타락한 사람이나 완전히 순수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대담함으로 말이다. 

 

  순수와 순결이란 가장 숭고한 주제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얼마나 멋진 결어인가! 교회 설교단에서 때론 우레처럼 때론 가장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그걸 입에 올리면 여신도들이 죄다 눈물 뺄 것이야. 남자들까지도 감동 먹겠지. 이슬 머금은 백합의 순결, 어린 양과 갓난애의 순수에 대한 고찰은 누구한테든 먹혀든다. 그래, 수도사들이 질투하여 또 퍼렇게 질리겠군. 

 

  그러나 진정한 순수와 순결은 오로지 설교와 천국에만 있는 법이야. 모든 백합은 이르든 늦든 썩게 마련이고, 암양은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숫양의 제물이 된 뒤 도살자 손에 넘어가게끔 운명 지워져 있고, 또 지옥에서는 세례 받지 못한 아기들의 작디작은 유해가 깔린 도로 위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이 어슬렁거리지. 

  대 타락 시대 이후 절대적 순결이 실제로는 절대적 타락과 같은 거야. 젊은 여성 누구나 잠재적으로는 미래의 방탕한 과부이고, 가장 순수한 것에도 원죄 때문에 잠재적 불순이 이미 절반 넘게 들어 있잖아. 잠재적 불순이 완전히 발휘되도록 돕는 것이며 아직 앳된 꽃봉오리가 무성하고 흐드러진 꽃으로 벌어지는 걸 지켜보는 것, 오오, 이야말로 오관뿐 아니라 지력과 의지에도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관능이라면, 아주 정신적인, 말하자면 극히 추상적인 성격일 게야. 

 

  게다가 필리프는 그냥 젊은 처녀가 아니었다. 반듯한 가정 출신에다 신을 공경하도록 교육받고 모든 면에서 흠이 없었다. 그림물감처럼 예쁘지만 교리문답을 잘 알고, 류트를 연주하지만 교회에 꼬박꼬박 나오고, 우아한 숙녀의 매너를 지니고 있지만 독서를 좋아하고 라틴어를 좀 알기도 했다. 그런 노획물 획득은 사냥꾼의 자부심을 근질거리게 하고, 주변 사람 누구나 영원히 기억에 남을 업적으로 간주하리라. 

 

  좀 뒤늦은 시기에 살던 뷔시 라뷔탱[각주:2]의 증언에 따르면 귀족 세계에서 「여인들한테 거둔 성공이 남자들한테는 전투에서 거둔 혁혁한 전공 못잖은 명성을 안겼다.」 고귀한 미녀를 차지하는 것은 한 지방의 정복만큼이나 영광된 일이었다. 규방과 침대에서 거둔 연전연승으로 명성 떨친 마르시약, 느무르, 슈발리에 그라몽 같은 귀족들은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나 발렌슈타인[각주:3] 같은 위대한 정복자들보다 명성이 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영광된 작업에 당대 유행어로 ‘승선했다.’ 그것도, 세상에서 더 주목할 만한 인물들을 물리치겠다는 목표를 뚜렷이 가지고 필사적으로, 일부러 배에 올랐다. 

 

  섹스는 자아확인이나 자기초월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 즉, 남의 눈을 끄는 ‘승선’과 영웅적인 정복으로써 에고를 강화하고 사회적 페르소나를 굳히기 위해서, 혹은 관능의 희미한 황홀경과 낭만적 열광에서 페르소나를 깡그리 없애고 자아를 초월해 다른 존재와 합치되기 위해서. 후자의 경우는 흔히 완벽한 혼인생활 때 상호 자애심에서 더 잘 일어난다.  

 

  (망설임이 적고 식욕은 좋은 농촌 처녀들이며 도시 과부들과 함께 주임신부는 원하는 만큼 자기초월을 얻을 수 있었다. 한데 이제...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2

루덩의 악마들 5편 3

루덩의 악마들 4편 4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타위로 (Jacques Tahureau, 1527-1555) - 프랑스의 사상가, 시인. [본문으로]
  2. 라뷔탱 백작 (Bussy Rabutin, 1618-1693) - 프랑스의 장군, 회고록 집필자. 유명한 마담 사비네와 사촌지간. [본문으로]
  3. 발렌슈타인 (1583-1634) - 삼십년전쟁 때 합스부르크 군을 지휘한 오스트리아 장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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