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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9.08.02 공연 '기적의 밤' (7장 계속)
  2. 2019.08.01 카를손의 유령 놀이 (2-2)
  3. 2019.07.31 4. 카를손이 내기를 걸다 (2-2)
  4. 2019.07.29 2. 카를손이 탑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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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장 계속) 


    카를손의 수다에 꼬맹이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지금은 어린 강아지 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카를손이 잠시 재미나게 노는 것도 싫지는 않다고 말할 때조차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카를손이 입술을 삐죽이며 밝혔습니다. 


    - 싫으면 관둬라! 넌 이 개하고만 줄곧 장난치는데, 나도 뭔가 하고 싶다.

    구닐라와 크리스터가 편들고 나서자, 카를손이 부은 볼을 가라앉히면서 말했습니다.

    - 얘들아, ‘기적의 밤’ 무대를 만들자. 알아맞혀 봐, 세상에서 제일가는 마법사가 누구지?

    - 물론 카를손이지! - 꼬맹이와 크리스터, 구닐라가 입을 모아 외쳤습니다.  

    - 그렇다면, ‘기적의 밤’이라는 공연을 벌이기로 결정이 된 거냐?

    카를손이 묻자 아이들이 또 입을 모아 대답했습니다. 

    - 그래, 그래!  

    - 공연 입장료는 캔디 하나로 정하는 거야?

    - 맞아. - 아이들이 동의했어요. 

    - 입장료로 받은 캔디는 자선 목적으로 쓴다는 것도 결정한 거지?

    - 어떻게? - 아이들이 어리둥절했습니다.  

    - 진짜 자선이라는 건 하나밖에 없다. 바로 카를손을 돕는 거야. 

    아이들이 어리둥절하여 서로 멀거니 쳐다봤습니다. 


    - 아, 어쩌면… 

    크리스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카를손이 바로 말을 가로막았어요.

    - 아니, 우리는 이미 결정 내렸다! 그게 아니라면 난 안 놀 거야.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은 모은 캔디를 전부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에게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입장료로 캔디를 지불하다.


    크리스터와 구닐라가 거리로 달려 나가서 아이들에게 이제 저 위 꼬맹이 방에서 ‘기적의 밤’이라는 큰 공연이 시작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그러자 백 원짜리 하나만 있는 아이들까지 포함해 다들 상점으로 달려가서 저마다 ‘입장료 캔디’를 샀습니다.

    꼬맹이 방문 앞에 구닐라가 서서 구경꾼들한테 캔디를 받아 ‘자선을 위해’라고 적힌 상자에 넣었습니다. 


    방 한가운데 크리스터가 손님용 의자들을 쭉 늘어놓았습니다. 방 한 구석에 걸려 있는 홑이불 뒤에서 나직하게 어르는 말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키레라는 이름의 사내애가 물었습니다.

    - 우리한테 뭘 보여줄 건데? 만약 시시한 거면 캔디를 돌려달라고 할 거야.

    꼬맹이와 구닐라, 크리스터는 이 키레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애는 늘 불평만 늘어놓는 편이었거든요


    그때 홑이불 뒤에서 꼬맹이가 작은 강아지를 안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의기양양하게 알렸습니다. 

    - 이제 여러분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마술사와 학식이 있는 개 알베르트를 보게 될 겁니다!

    그러자마자 홑이불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어요.

    - 네, 지금 공표한 대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마술사가 등장합니다!!

    그 목소리와 동시에 카를손이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어요. 차림새가 요란했습니다.  


    머리에는 꼬맹이 아빠의 실크해트를 쓰고 어깨에는 엄마의 격자무늬 앞치마를 걸쳤는데, 앞치마를 턱 밑에서 화려한 나비댕기로 묶은 겁니다. 이 앞치마가 카를손에게는 마술사들이 흔히 걸치고 나타나는 검은 망토를 대신했어요. 다들 기대가 커서 따스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키레만 빼고 말이지요. 


꼬맹이가 강아지를 안고 무대로 나와 카를손을 소개하다.



    카를손이 허리 굽혀 인사했습니다. 아주 흡족한 모습이었어요. 인사를 끝내자 실크해트를 벗고는 모자 안이 텅 비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였습니다. 그건 마술사들이 흔히 하는 행동과 아주 똑같았어요.


    - 신사 숙녀 여러분, 이 모자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걸 확인해 주세요. 보시다시피 완전히 텅 비었습니다. 

    꼬맹이는 언젠가 서커스에서 본 마술사의 공연을 떠올리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저 모자에서 잿빛 토끼를 꺼내겠지. 카를손이 실크해트에서 토끼를 꺼낸다면 진짜 재미날 거야!‘ 

    - 이미 말씀드린 대로 여기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 카를손이 우울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 그리고 여러분이 여기에 아무 것도 넣지 않는다면, 여기엔 절대 그 무엇도 있지 않을 겁니다. 지금 보니까, 저 앞에 앉은 어린 대식가들이 캔디를 먹고 있군요. 이제 우리가 이 실크해트를 한 바퀴 돌리면, 여러분은 여기에 캔디를 하나씩 던지게 될 거예요. 자선을 베풀기 위해 여러분이 기부를 하는 거지요.


    꼬맹이가 모자를 들고 한 바퀴 돌았습니다. 사탕이 가득 채워졌어요. 그 모자를 카를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카를손이 건네받은 모자를 흔들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 봐요, 이 모자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네요! 만약 모자가 꽉 채워졌다면, 이렇게 소리가 나지는 않을 겁니다.

    카를손이 캔디를 하나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습니다. 

    - 그래요, 이게 바로 자선이라는 겁니다! - 그렇게 외치고는 턱을 더 부지런히 놀렸습니다. 

    키레 하나만이 손에 두툼한 봉지를 들고 있으면서도 모자에 캔디를 한 개도 넣지 않았습니다. 

    - 자, 소중한 친구들이여, 그리고 키레 너도, 다들 보세요. - 카를손이 말했습니다. - 여러분 앞에 학식 있는 개 알베르트가 있습니다. 이 개는 뭐든지 할 수 있답니다. 전화도 걸고 날아다니기도 하고 빵을 굽기도 하고 말도 하고 다리를 들어올리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 순간 강아지가 정말로 작은 발을 들었어요. 그것도 키레가 앉아 있는 의자 곁에서. 그리고 금방 마룻바닥에 작은 물웅덩이가 생겼습니다. 


    - 이제 여러분은 내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이 개는 정말 공부를 많이 했답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야! - 키레가 쏘아붙이고는 자기 의자를 물웅덩이에서 떼어놓았습니다. - 강아지들이 이런 마술이야 다 하지. 알베르트한테 말을 몇 마디 하게 해 봐. 그게 좀 더 힘들 걸, 헤헤헤!

    그러자 카를손이 강아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 알베르트, 정말 너한테는 말하는 게 힘드니?

    - 아니. - 강아지가 뱃속에서 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 담배 피울 때만 말하기가 힘들어.

    아이들이 깜짝 놀라 다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강아지가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꼬맹이는 강아지 뒤에서 카를손이 말하는 것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기까지 했어요. 왜냐면 말하는 강아지보다 평범한 강아지를 갖고 싶었으니까요.



카를손이 푸들을 데리고 무대에 나와 공연을 벌이다.



    - 사랑스러운 알베르트야, 너는 우리 친구들과 키레에게 개의 생활에 관해 무엇이든 얘기해 줄 수 있겠니?

    카를손이 부탁하자 알베르트가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 얼마든지 할 수 있지. 그저께는 영화관에 갔었어. - 그렇게 말하면서 카를손 주변을 즐겁게 겅중겅중 뛰었어요. 

    - 물론, 그랬겠지. - 카를손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 아, 그래! 내 옆 의자에 빈대 두 마리가 앉아 있더군. - 알베르트가 계속 입을 놀렸습니다. 

    - 어, 그게 무슨 말이냐! - 카를손이 놀랐습니다. 

    - 아, 그래! 나중에 거리로 나와서 얘기 들으니까 한 벼룩이 다른 벼룩에게 그러는 거야. “어떡할래, 집에 걸어서 갈까 아니면 개를 타고 갈까?"


    아이들은 모두 이것이 설령 ‘기적의 밤’과는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좋은 공연이라고 여겼습니다. 키레 하나만 여전히 얼굴을 찌푸렸어요.

    - 이 개가 빵을 구울 줄도 안다고? 

    키레가 비웃듯이 말하자, 카를손이 강아지에게 물었습니다.

    - 알베르트, 넌 빵을 굽니?  

    알베르트가 하품을 하고 바닥에 엎드려서 대답했습니다. 

    - 아니, 할 줄 모르는데…

    - 헤헤헤! 내 그럴 줄 알았지! - 키레가 소리쳤어요. 

    - …왜냐면 지금 누룩이 없으니까. - 알베르트가 말을 마쳤습니다. 


    아이들이 다 알베르트를 아주 좋아했지만, 키레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면서 요구했어요.

    - 그렇다면 한 번 날아 보라고 해. 나는 데는 누룩이 필요 없으니까.

    - 알베르트, 한번 날아 볼래? - 카를손이 강아지에게 물었습니다. 

    강아지는 잠이 든 듯했지만, 그래도 카를손의 물음에 대답은 했어요. 

    - 암, 기꺼이 하지. 그러나 네가 나랑 같이 난다면 나도 날겠어. 왜냐면 나는 어른들 없이 혼자 날지는 않겠다고 엄마한테 약속했으니까.

    - 그렇다면 이리 와라, 귀여운 알베르트야.

    카를손이 강아지를 마룻바닥에서 들어 올렸습니다. 

카를손이 강아지를 안고 창밖으로 날다.

    눈 깜짝할 새에 카를손과 알베르트가 날아올랐습니다. 처음엔 천장으로 날아올라 샹들리에 주변을 몇 바퀴 돌더니 곧장 창밖으로 나갔습니다. 키레가 어찌나 놀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어요.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가서 카를손과 알베르트가 지붕 위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한데 꼬맹이는 겁이 나서 소리쳤어요. 

    - 카를손, 카를손, 내 강아지를 데리고 돌아와!

    카를손이 순순히 말을 들었습니다. 금방 돌아와서 알베르트를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강아지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아주 놀란 표정이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날아 본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 오늘은 이걸로 충분합니다. 더 보여줄 게 없어요. - 카를손이 관객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뒤, 키레에게 다가가서 통통한 손으로 툭 치며 거칠게 말했습니다. - 그리고 넌 앞으로 교육 좀 받아야겠다!

    키레는 카를손이 뭘 원하는지 금방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캔디를 내놔야지! - 카를손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어요. 

    키레가 봉지를 꺼내 카를손에게 넘겼어요. 사실은 캔디 한 개를 더 자기 입에 넣은 뒤 그렇게 한 겁니다.

    - 인색한 꼬마야, 부끄러운 줄 알아라!..

    카를손이 그렇게 말하고는 눈길로 뭔가를 서둘러 찾으면서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 근데 자선기금 상자는 어디에 있는 거야? 

    구닐라가 자기가 모은 ‘입장료 캔디’ 상자를 건네주었습니다. 구닐라는 캔디를 잔뜩 얻은 카를손이 이제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카를손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상자를 낚아채더니 캔디를 열심히 세기 시작했습니다.

    - 전부 열다섯 개로군. 저녁식사로 충분해… 잘들 있어라! 난 저녁 먹으러 집으로 가겠다.

    그러고는 창밖으로 날아갔습니다. 


    아이들이 흩어지기 시작했어요. 구닐라와 크리스터도 자기네 집으로 돌아갔어요. 알베르트와 둘만 남게 되자, 꼬맹이는 아주 좋았습니다. 강아지를 무릎에 앉히고 뭔가를 속삭였습니다. 강아지가 꼬맹이 얼굴을 몇 번 핥다가 코를 골면서 달콤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세탁소에서 돌아온 뒤 모든 게 금방 달라졌습니다. 꼬맹이가 아주 시무룩해졌어요. 엄마는 알베르트가 집 없는 강아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알베르트 목걸이에 새겨진 번호로 전화를 해서 자기 아들이 작고 검은 푸들 강아지를 발견했다고 알렸지 뭡니까. 


    꼬맹이가 강아지를 안고 전화기 곁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안달했어요. 

    - 제발 그 사람들이 주인이 아니어야 할 텐데…

    하지만, 아아, 전화 받은 사람이 강아지 주인인 것으로 드러났어요!

    엄마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말했습니다. 

    - 아들아, 보비의 주인이 누군지 알겠니? 스테판 알베르트라는 이름의 소년이란다.

    - 보비라고? - 꼬맹이가 되물었어요. 

    - 그래, 이 강아지 이름이란다. 스테판은 여태껏 울고 있었다는구나. 일곱 시에 찾으러 올 거야.

    꼬맹이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두 눈에서 불꽃이 일었습니다. 강아지를 더 꼭 끌어안고는 엄마한테 들리지 않게끔 강아지 귀에 대고 소곤소곤 속삭였어요. 

    - 귀여운 알베르트, 네가 내 강아지가 되기를 얼마나 원했는데!

    일곱 시가 되자 스테판 알베르트가 와서 강아지를 데려갔습니다.


    꼬맹이가 침대에 엎어져서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슬픈지 듣는 사람마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관련 포스트: 

1부.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 1. 카를손과 만나다

2. 카를손이 탑을 세우다

3. 카를손이 천막 놀이를 하다

4. 카를손이 내기를 걸다 (2-1)

4. 카를손이 내기를 걸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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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계속) 

    카를손이 선반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구닐라에게 다가가서 뺨을 살짝 꼬집었습니다. 

    - 어때, 네 앞에 있는 내가 작은 허깨비라고?

    - 우린… - 크리스터가 우물거렸습니다. 

    - 흠, 네 이름이 어거스트냐? - 카를손이 크리스터에게 물었습니다. 

    - 그렇지는 않아. - 크리스터가 고개를 저었어요. 

    - 좋아. 더 계속해 보자!.. - 카를손이 말했어요.

    - 이 애들은 구닐라와 크리스터야. - 꼬맹이가 소개했습니다. 


    카를손이 뭔가를 찾듯이 두리번거리다가 서둘러 설명했습니다. 

    - 이제 좀 재미나게 노는 데 난 반대하지 않겠다. 작은 의자들을 창문으로 내던져 볼까? 아니면 그 비슷한 놀이를 한번 궁리해 볼까?

    꼬맹이는 그게 아주 재미난 놀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엄마와 아빠가 그런 장난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지요.

    - 흠, 너희들은 겁쟁이로구나. 그렇게 우물쭈물 망설이기만 하면 뭘 할 수 있겠냐. 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다른 뭔가를 궁리들 해라. 안 그러면 너희들과 안 놀겠어. 난 뭔가 재미난 짓을 해야 돼. - 카를손이 뾰로통해져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 잠깐 기다려, 우리가 이제 뭔가를 생각해낼 거야! - 꼬맹이가 애원하듯이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카를손은 단단히 삐치기로 작정했는지 투덜거렸습니다. 

구닐라가 카를손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다.

  - 지금 당장 여기서 날아갈래… 

    세 아이는 카를손이 같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임을 알거나 느꼈기 때문에 가지 말라고 입을 모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를손이 볼이 부어서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어요. 

    - 물론 확실하진 않지만 안 갈 수도 있을 거야. 만약 저 애가… - 카를손이 통통한 손가락으로 구닐라를 가리켰어요. -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의 다정한 카를손” 하고 말해 준다면 말이야.

    구닐라가 기꺼이 카를손을 쓰다듬으며 정겹게 부탁했어요. 

    - 다정한 카를손, 우리랑 같이 있어 줘! 우리가 재미난 일을 꼭 생각해낼게.

    - 좋아. 그렇다면 안 가겠어. 

    아이들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꼬맹이의 엄마와 아빠는 저녁마다 산보를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엄마가 현관에서 큰 소리로 알리는군요.

    - 꼬맹이야! 크리스터하고 구닐라가 네 방에서 여덟 시까지 놀아도 좋아. 그 다음에 넌 얼른 잠자리에 드는 거다. 아빠랑 산보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너한테 들러서 좋은 꿈을 꾸라고 기도해주마.

    그리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 네 엄마는 왜 내가 몇 시까지 있어도 좋은지는 말하지 않는 거지? - 카를손이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 다들 나를 정 그렇게 홀하게 대한다면, 난 너희들과 안 놀겠어.

    - 넌 있고 싶은 대로 있어도 돼. - 꼬맹이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카를손이 입술을 더 삐죽 내밀었어요. 

    - 나는 왜 다른 애들처럼 정각 여덟 시에 가라고 하지 않는 거냐? - 목소리에 서운함이 잔뜩 담겼어요. - 싫어, 난 그렇게는 못 놀아!

    - 좋아, 엄마한테 부탁해서 너도 여덟 시에 집에 가라고 이르도록 할게. - 꼬맹이가 약속했습니다. - 그래, 뭐하고 놀면 좋을지는 생각했어?

    카를손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해졌습니다. 


    - 유령 놀이를 하면서 사람들을 놀래주자. 내가 작은 홑이불 하나로 뭘 할 수 있는지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걸. 나 때문에 얼이 쏙 빠지도록 놀란 사람들이 백 원씩 준다면, 난 초콜릿을 산더미처럼 살 수 있을 텐데. 난 세상에서 제일가는 유령이잖아! - 그렇게 말하면서 두 눈을 명랑하게 반짝였습니다. 

    꼬맹이와 크리스터, 구닐라가 유령 놀이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꼬맹이가 토를 달았어요. 

    - 사람들을 꼭 무섭게 놀랠 필요는 없는데.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 카를손이 대꾸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가는 유령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너한테 알려주지는 않겠다. 난 모든 이들을 얼이 빠질 정도로 놀라게 할 거지만, 그래도 내가 그랬는지 사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거야. - 카를손이 꼬맹이 침대로 가서 홑이불을 벗겨냈습니다. - 적당한 물건이야. 유령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만들 수 있겠다.


    카를손이 책상 서랍에서 색연필들을 꺼내 홑이불에 무시무시한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러고는 가위를 들더니 꼬맹이가 말릴 새도 없이 재빨리 눈구멍 두 개를 오렸어요. 

    - 홑이불 따위야 하찮은 것이고 일상적인 일이다. 그리고 유령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을 봐야 해. 안 그러면 여기저기 부딪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잖아.

    그러고는 홑이불을 머리부터 푹 덮어쓰고 나니, 작고 통통한 두 손만 보이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그게 홑이불을 덮어쓴 카를손인지 알면서도 좀 놀랐어요. 예파가 미친 듯이 짖어댔습니다. 카를손이 작은 모터를 켜고 샹들리에 주변을 날기 시작하자 (홑이불이 펄럭이면서) 훨씬 더 무섭게 보였습니다. 그건 정말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어요. 


카를손이 홑이불을 뒤집어쓰고 유령 흉내를 내니 아이들이 놀라다.


    - 난 모터가 달린 작은 유령이다! - 카를손이 외쳤습니다. - 좀 거칠기는 해도 호감 가는 유령이야!

    아이들이 날아다니는 유령을 아무 말 없이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예파는 연신 짖어대다가 그만 지치고 말았어요. 

    카를손이 말을 이었습니다. 

    - 대체로 난 비행 중에 윙윙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아주 좋아하지만, 지금은 유령이니까 소음기를 켜겠다. 바로 이렇게!

    그러고는 소리를 전혀 내지 않으면서 몇 바퀴를 돌았는데, 그러니까 진짜 유령처럼 보이는 겁니다. 

    이제 놀래줄 사람을 찾는 일만 남았습니다.


    - 출입문으로 갈까? 누군가가 건물로 들어서다가 혼비백산하겠지!

    바로 그때 아파트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어요. 하지만 꼬맹이는 나가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우리 집에 올 사람은 없는데, 뭐!

    그러는 사이에 카를손이 숨을 헐떡이면서 여러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아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간단히 설명까지 했습니다.

    - 으스스한 숨소리와 신음소리를 낼 줄 모르는 유령은 가치가 없다. 이건 유령 학교에서 어린 유령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거야

    그렇게 준비하느라고 시간이 적잖이 흘렀습니다. 


    유령을 앞세우고 아이들 셋이 현관문 앞에서 행인들을 놀래려고 계단참으로 나가려고 할 때, 발걸음 소리 같은 게 희미하게 들렸어요. 꼬맹이가 처음엔 엄마와 아빠가 산책 나갔다가 돌아오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관문에 달린 우편함 틈새로 누군가가 철사를 쑤셔 넣는 게 아니겠어요? 꼬맹이는 그게 도둑들 짓임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며칠 전 아빠가 엄마한테 신문을 읽어준 것이 떠올랐거든요. 시내에 아파트 도둑들이 아주 많이 나타났다는 기사였어요. 도둑들은 먼저 초인종을 누르고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게 확인되면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서 귀중품을 훔친다는 겁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자 꼬맹이가 상당히 놀랐습니다. 크리스터와 구닐라도 꼬맹이만큼이나 놀랐어요. 크리스터는 예파를 꼬맹이 방에 두고 온 것을 무척 아쉽게 여겼어요. 예파가 짖어서 유령 놀이를 망칠까 봐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카를손 하나만이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 카를손이 속삭였어요. - 이런 경우에 유령이 정말 쓸모가 있다. 조용히 식당으로 가자꾸나. 네 아빠는 금붙이와 보석들을 거기에 보관할 테니 말이야. 


    카를손과 꼬맹이, 크리스터, 구닐라가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식당으로 들어가서 각자 가구 뒤에 숨었습니다. 카를손은 오랜 된 예쁜 찬장으로 기어든 뒤 (엄마는 거기에 식탁보와 냅킨을 두었지요) 어찌어찌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도둑들이 식당으로 몸을 낮추고 들어오는 바람에 찬장 문을 꼭 닫지는 못했습니다. 꼬맹이가 벽난로 곁에 놓인 소파 밑으로 들어가서 조심스레 코를 내밀고 내다봤습니다. 식당 한가운데 아주 추잡하게 생긴 사람 둘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아, 이게 누군가요, 바로 필레와 룰레 아닌가요! 


꼬맹이와 동무들이 소파 밑으로 숨다.


    - 돈을 어디 두는지 알아야 돼. - 필레가 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거야 빤하지, 여기야. - 룰레가 서랍이 많이 달린, 오래 된 장식장을 가리키면서 대꾸했습니다. 

    꼬맹이는 알고 있었어요. 엄마는 그 서랍들 중 하나에 생활비를 넣어두고 다른 서랍에는 할머니가 선사한, 예쁘고 값비싼 반지와 브로치들 또 아빠가 사격대회에서 받은 금메달들을 보관했거든요. 

    ‘그 물건들을 훔쳐 가면 안 되는데.‘ 꼬맹이가 생각했어요.

    - 넌 여기서 찾아봐라. - 필레가 나직이 말했습니다. - 난 주방으로 가서 은제 스푼과 포크들이 있는지 보겠어.

    필레가 사라지고 룰레가 장식장 서랍들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갑자기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돈을 발견한 모양이야.’ 꼬맹이가 생각했습니다. 

    룰레가 다른 서랍을 빼들고는 또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반지와 브로치들을 본 겁니다. 


    그러나 휘파람 소리가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 순간 찬장 문이 활짝 열리고 소름 끼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유령이 튀어나왔으니까요. 룰레가 고개를 돌려 유령을 보자마자 기겁하여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돈이며 반지, 브로치 등속을 죄다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유령으로 변장한 카를손이 도둑 둘을 놀래 쫓아내다.


    유령이 도둑 주변을 뱅뱅 돌면서 신음소리도 내고 탄식하는 소리도 내더니, 갑자기 주방으로 쏜살같이 날았습니다. 일 초도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 필레가 뛰쳐나왔어요.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 울레, 류령이 있어, 저기! - 필레가 울부짖었어요. 

    사실은 “룰레, 유령이 있어, 저기!” 하고 말하려 했지만, 공포에 질려서 혀가 꼬이다 보니 철자가 바뀌어 나온 겁니다.

    그래요, 놀랄 만도 했지요! 유령이 바짝 뒤쫓아 날아오면서 무시무시한 신음소리와 한숨소리를 내는 바람에 그야말로 숨이 멈출 정도였으니까요. 

    룰레와 필레가 문 쪽으로 달려갔지만, 유령이 도둑들 주변을 감돌며 따라붙었습니다. 둘은 어찌나 무서웠든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현관을 거쳐 계단참으로 도망쳤습니다. 유령이 그 뒤를 바짝 쫓아 계단 아래로 내몰면서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로 몇 번 외쳤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이제 내 손에 붙잡히면 너희는 더 재미날 거다!

    그러나 잠시 뒤 유령도 힘이 빠져서 식당으로 돌아왔습니다. 꼬맹이가 마룻바닥에 흩어진 돈과 반지, 브로치 등속을 주워서 다시 제 자리에 돌려놓았습니다. 구닐라와 크리스터는 필레가 주방과 식당 사이에서 쩔쩔매다가 떨어뜨린 포크와 스푼을 다 주워 모았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가는 유령은 바로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다. - 유령이 외치면서 홑이불을 벗었습니다. 

    아이들이 웃었어요. 행복했지요. 그리고 카를손이 한마디 더 했어요.

    - 도둑을 겁줘야 할 때는 유령이 최고다. 그런 사실을 사람들이 안다면, 작고 고약한 유령을 시내에 있는 현금 출납구마다 당장 배치할 거야.

    꼬맹이는 위기를 잘 넘긴 것이 기뻐서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보탰어요. 

    - 사람들이 참 어리석어, 유령을 믿다니 말이야. 웃기는 거지! 아빠 말로는, 초자연적이란 것은 있지도 않대. - 그러면서 그 말을 확인하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저 도둑들은 정말 멍청해. 찬장에서 유령이 튀어나왔다고 생각하다니! 사실, 그건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었는데, 하하하. 초자연적인 것이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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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9. 7. 3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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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손의 작은집은 아주 아늑했습니다. 그걸 꼬맹이는 금방 알아차렸어요. 나무 장의자 외에 방안에는 식탁으로 사용하는 작업대와 옷장, 의자 두 개, 철창과 삼발이 달린 난로가 보였습니다. 그 난로에서 카를손은 음식을 준비하곤 했어요. 그러나 정작 기관차들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꼬맹이가 한참이나 방안을 둘러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자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 근데, 기관차들은 어디 있어?

    - 음… - 카를손이 입속말로 웅얼거렸습니다. - 내 기관차들은… 전부 갑자기 폭발해 버렸다. 안전판에 문제가 있었어.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건 하찮은 거야, 일상적인 일이다. 슬퍼할 거 없어.

    꼬맹이가 다시 사방을 휘둘러보았습니다. 

    - 그러면 수탉 그림들은 어디 있어? 그것들도 폭발했나? - 꼬맹이가 가볍게 이죽거렸습니다

    - 아니, 그림들은 폭발하지 않았다. 저기를 봐라. - 그러면서 옷장 옆으로 벽에 걸어둔 두꺼운 마분지를 가리켰어요. 

    아주 깨끗하고 커다란 종이 아래 귀퉁이에 아주 작고 예쁜 수탉 그림이 들어 있었습니다. 

    - 그림 제목은 <아주 외로운 수탉>이야. - 카를손이 설명했어요.


    꼬맹이가 그 앙증맞은 수탉을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사실 카를손은 별의별 수탉들을 그린 그림이 천여 점이나 있다고 떠벌였는데, 알고 보니 그건 수탉처럼 생긴 불그레한 딱정벌레였던 겁니다!

    - 이 <아주 외로운 수탉>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화가가 그린 거야. - 카를손이 계속 입을 놀리긴 하는데, 목소리가 좀 얼어붙었습니다. - 아아, 이 그림은 얼마나 매혹적이고 슬프단 말이냐!.. 하지만 아니, 아니야, 난 지금 울지 않을 거야, 눈물을 흘리면 체온이 올라가니까… - 카를손이 베개로 파고들면서 머리를 감싸 쥐었어요. - 넌 내 친엄마가 되겠다고 했지? 그렇게 해라.

    그러면서 연신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카를손이 열이 난다는 이유로 장의자에 벌러덩 눕다.


    꼬맹이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자신 없는 투로 물었어요. 

    - 여기, 약 같은 것이 있나?

    - 응. 하지만 약은 먹고 싶지 않고… 백 원짜리 동전, 가지고 있니?

    꼬맹이가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습니다. 

    - 이리 줘 봐.

    꼬맹이가 동전을 내밀자 카를손이 재빨리 낚아채더니 손아귀에 꽉 움켜쥐었어요. 자기 꾀가 통해서 흡족한 표정이었습니다. 


    - 지금 무슨 약을 먹을 건지 너한테 말할까?

    - 무슨 약인데? - 꼬맹이가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 처방한 <달달한 가루약>이다. 초콜릿 약간, 사탕 약간에다 과자도 같은 분량으로 넣고 바짝 찧은 뒤 잘 섞어라. 네가 약을 다 준비하면 내가 먹을게. 그건 열 내리는 데 효과가 아주 좋다.

    - 설마. - 꼬맹이가 미심쩍게 여겼습니다. 

    - 그렇다면 내기를 하자. 내 말이 맞는다는 데 난 초콜릿을 걸겠어. 

    꼬맹이가 잠시 생각했습니다. 다툼거리를 주먹질이 아니라 말로써 해결하는 게 좋다고 엄마가 말한 것이 어쩌면 바로 지금 같은 경우에 필요하지 않나 싶었어요

    - 자, 이제 내기를 하잔 말이다! 

    카를손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꼬맹이도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 그래, 좋아. 


    무엇을 두고 내기를 하는지 확실히 하기 위해서 꼬맹이가 초콜릿을 한 개 작업대 위에 놓고 카를손이 처방한 대로 약을 만들었습니다. 컵에 알사탕 몇 개와 설탕에 절인 호두를 약간 넣고 초콜릿 몇 조각을 보탠 뒤 그걸 다 잘게 찧어 뒤섞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편도과자 몇 개를 부수어서 역시 컵에 넣었습니다. 꼬맹이는 그런 약을 여태껏 본 적이 없는데, 어찌나 맛나게 보이든지 자기도 슬쩍 병이 나서 이 약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카를손이 벌써 장의자에서 일어나 앉아서 새끼 새처럼 입을 쫙 벌렸습니다. 꼬맹이는 <달달한 가루약>을 한 숟가락이라도 자기 입에 넣으면 양심에 찔릴 것 같았습니다. 


    - 더 많이 떠줘. - 카를손이 요구했어요.

    꼬맹이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둘은 카를손의 열이 가라앉기를 말없이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삼십 초가 지나서 카를손이 입을 열었습니다. 

    - 네 말대로 이 약은 열을 내리지 못하는구나. 이제 나에게 초콜릿을 줘라.

    - 너한테? - 꼬맹이가 놀랐어요. - 내가 내기에 이겼잖아!

    - 그래, 네가 이겼지. 그러니까 나는 위로 삼아 초콜릿을 받아야 한단 말이야. 이 세상에 공정함이란 건 없어! 한데 너는 흉악하게도 내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초콜릿을 먹으려고 드는구나.


   꼬맹이가 마지못해 초콜릿을 내밀자 카를손은 순식간에 반쪽을 깨물어 씹으면서 말했습니다. 

    - 떨떠름한 표정 지을 것 없다. 요 다음 내기에서 내가 이기면 네가 초콜릿을 먹어라.

    카를손이 턱을 부지런히 놀렸습니다. 그러고는 마지막 조각을 삼키더니 베개에 몸을 던지고는 무겁게 탄식하는 것이었어요.

    - 앓는 이들은 다 참으로 불쌍해! 난 얼마나 불행하냐! <달달한 가루약>을 2인분은 먹어야 하나? 그 약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확실히 알지만. 

    - 무슨 소리야? 2인분을 먹으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난 믿어. 내기를 해 보자! - 꼬맹이가 제의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꼬맹이가 꾀를 좀 부린다고 해도 죄가 될 것은 없었어요. <달달한 가루약>을 2인분이 아니라 3인분을 먹어봤자 카를손의 열이 떨어지리라고 꼬맹이가 믿은 건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기를 무척 하고 싶었습니다! 초콜릿이 아직 한 개 남아 있고, 카를손이 내기에서 이기면, 당연히 그럴 텐데, 그러면 꼬맹이가 초콜릿을 먹게 되니까요.


    - 그래, 내기해 보자! <달달한 가루약> 2인분을 얼른 나한테 만들어 줘. 열을 내릴 필요가 있을 때는 자잘한 것 하나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다 써 보고 결과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꼬맹이가 가루약 2인분을 만들어서 크게 벌린 카를손 입에 부었어요. 

    그리고 둘은 다시 말없이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꼬맹이가 열 떨어지는 약을 카를손에게 먹이다.


    30초가 지나서 카를손이 환한 얼굴로 의자에서 펄떡 일어났어요. 그리고 외쳤습니다.

    - 기적이 벌어졌다! 열이 떨어졌어! 네가 또 이겼다. 이제 초콜릿을 나한테 줘라.

    꼬맹이가 한숨을 내쉬고서 마지막 초콜릿을 카를손에게 건넸습니다. 

    카를손이 못마땅한 얼굴로 꼬맹이를 쳐다봤습니다.

    - 너 같은 고집쟁이들은 내기를 하면 안 돼. 나 같은 사람들이라야 내기도 할 수 있는 거다. 

    내기에서 지든 이기든 언제나 카를손 얼굴은 잘 닦아 놓은 금화처럼 반짝거렸습니다. 

    침묵이 길어졌습니다. 


    그 동안 카를손이 초콜릿을 다 씹어 먹고 또 입을 놀렸습니다. 

    - 하지만 네가 미식가이고 대식가인 이상, 나머지 것들을 다정하게 나누는 게 가장 좋겠다. 너한테 당과가 아직 남았니?

    꼬맹이가 주머니를 뒤져 보고는 세 개가 남은 것을 알았습니다.  

    설탕에 절인 호두 두 개와 알사탕 한 개를 꺼냈습니다.

    - 세 개는 절반으로 나뉘지 않는다. - 카를손이 진지하게 말했어요. - 이건 코흘리개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 - 그러면서 꼬맹이 손에서 알사탕을 잽싸게 낚아채 입에 넣고 우물거렸습니다. 

    - 이제는 반으로 나눌 수 있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남은 호두 두 개를 게걸스레 쳐다봤어요. 한 개가 다른 것보다 더 컸습니다. 


    - 난 아주 다정하고 겸손한 사람이니까 네가 먼저 선택하도록 양보하겠어. 그러나 기억해라. 먼저 집는 사람은 늘 더 작은 걸 집어야 하는 법이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꼬맹이를 엄한 눈빛으로 쏘아봤습니다. 

    꼬맹이가 잠깐 생각한 뒤 꾀를 냈어요. 

    - 먼저 집을 권리를 너한테 양보할래.

    - 좋아, 정 그렇게 고집한다면! - 카를손이 큰 소리로 말하고는 큰 호두를 집더니 눈 깜빡할 새에 자기 입에 넣었습니다.

    꼬맹이가 자기 손바닥에 하나 남은 작은 호두를 쳐다봤어요.

    - 이게 뭐야? 먼저 집는 사람이 더 작은 걸 집어야 한다고 그러지 않았어?? 

    - 어이, 꼬마 미식가야, 만일 네가 먼저 집었다면 어떤 호두를 집었겠냐?

    - 분명히 더 작은 걸 집었을 거야. - 꼬맹이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 그렇다면 그렇게 못마땅한 얼굴을 할 필요가 뭐 있냐? 네 뜻대로 더 작은 게 네 손에 남았는데!


    꼬맹이가 또 잠깐 생각했습니다. 

    ‘그래, 이런 게 바로 엄마가 말한 것처럼, 주먹질이 아니라 말로써 다툼을 해결하는 걸 거야.’


    꼬맹이가 오랫동안 뾰로통한 상태로 있지는 못했어요. 게다가 카를손의 열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카를손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 난 세상에 있는 모든 의사들에게 편지를 써서 어떤 약이 열 내리는 데 좋은지 알리겠다.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 처방한 대로 만든 <달짝지근한 가루약>을 복용하세요.」 또, 세상에서 제일가는 해열제라고 쓰기도 할 거야.

    꼬맹이가 제 몫의 호두를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그건 여전히 꼬맹이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지요. 하도 근사하고 맛있어 보여서 우선 조금만 맛을 보고 싶었습니다. 한꺼번에 입에 넣기가 무척 아까웠거든요.

    카를손도 꼬맹이 손에 있는 호두를 쳐다봤습니다. 오랫동안 호두에서 눈을 떼지 않더니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했어요.


카를손과 꼬맹이가 사탕과 호두를 두고 내기를 하다.


    - 이 호두를 네가 눈치 채지 못하게끔 내가 집을 수 있는지 내기해 보자.

    - 아니, 내가 쥐고 있는 한 넌 그렇게 할 수 없을 거야.

    - 그럼, 내기를 하잔 말이다. - 카를손이 우겼습니다. 

    - 싫어. 내가 이긴다는 걸 난 알아. 그러면 네가 또 먹겠지.

    그런 내기 방법은 옳지 못하다고 꼬맹이는 굳게 믿었습니다. 사실 보쎄 형이나 베탄 누나와 내기를 할 때면, 이긴 사람이 상을 받곤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 좋아, 정 그렇다면 내기해도 돼. 하지만 예전의 올바른 방법대로 이긴 사람이 호두를 먹도록 하자.

    - 좋으실 대로 해라, 먹보야. 그러니까, 내가 이 호두를 네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집을 수 있는지 내기를 하는 거다.

    - 좋아! - 꼬맹이가 동의했습니다.

    - 수리수리 마하수리! - 카를손이 소리치면서 설탕에 절인 호두를 집었어요. 그리고 “수수리 사바하” 하고 외치면서 호두를 자기 입에 쏙 집어넣었습니다.  

    - 스톱! - 꼬맹이가 소리쳤습니다. - 네가 집는 걸 난 다 봤어.

    - 무슨 소리냐! - 카를손이 허겁지겁 호두를 삼켰어요. - 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네가 이겼구나. 내기를 이렇게 잘 하는 꼬마를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그래… 하지만 호두는… - 꼬맹이가 어쩔 줄 몰라 중얼거렸어요. - 그건 이긴 사람이 가져야 하는 거잖아.

    - 맞아. - 카를손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그러나 그건 이미 없어졌어. 그리고 난 그걸 되찾을 수 없다는 걸 두고 내기할 수 있다.


    꼬맹이가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말이란 누가 옳고 그른지 가리기에 좋은 수단이 전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를 보면 당장 그런 생각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빈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어라, 이게 웬 일인가요, 미처 몰랐던 호두가 하나 아직 남아 있지 뭔가요. 크고 잘 절여지고 보기 좋은 호두가 말이지요. 

    꼬맹이가 속으로 씩 웃으면서 약 올리는 투로 말했습니다.

    - 나한테 설탕에 절인 호두가 있다는 걸 두고 내기를 하자! 그걸 지금 내가 먹는다는 걸 두고 내기하자! 

    그러고는 호두를 잽싸게 입에 넣었습니다. 


    카를손이 의자에 앉았어요. 시무룩한 모습이었습니다.

    - 넌 내 친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하고서는 단것들을 제 입에 집어넣기만 하는구나. 이런 먹보 꼬마를 난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카를손이 슬픈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다.

    그리고 잠시 말없이 앉아 있는데, 더 슬픈 얼굴이 됐습니다.

    - 첫째, 난 목도리 두르는 대가로 백 원짜리 동전을 못 받았다.

    - 그건 그래. 하지만 목도리를 두르지도 않았잖아. - 꼬맹이가 말을 받았습니다.

    - 너한테 목도리가 없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만일 목도리가 있었다면 난 그걸 둘렀을 거고, 목도리가 따가웠을 것이며, 그래서 백 원짜리 동전을 받았을 텐데…

    카를손이 애절한 눈빛으로 꼬맹이를 쳐다봤어요. 그 두 눈에 눈물까지 고였습니다. 

    - 너한테 목도리가 없다는 것 때문에 내가 고통을 받아야 하나? 넌 이게 온당하다고 생각하니?

    아니요, 꼬맹이는 그게 옳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지막 남은 백 원짜리 동전을 카를손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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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사람은 이름이 카를손이고 저 위에, 지붕 위에서 살고 있다고 벌써 말했잖아요. - 꼬맹이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 그게 뭐 유별난 일인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없단 말이야? 

    엄마가 꼬맹이를 지그시 바라보았어요. 

    - 자꾸 우기지 마라, 꼬맹이.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야 해! 그건 진짜 폭발이야. 네가 죽을 수도 있었어! 무슨 짓을 한 건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단 말이니?

    -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카를손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기관차 전문가야. - 꼬맹이가 대답하고 이번에는 엄마를 찬찬히 쳐다봤어요. 

    세상에서 제일가는 기관차 전문가가 안전판을 검사하자고 할 때 “싫어” 하고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을 엄마는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꼬맹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아빠가 엄하게 말씀하시는군요.

    -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단다. 지붕 위의 카를손인지 뭔지, 있지도 않은 사람한테 잘못을 돌리지 말고.

    - 아니, 있어! - 꼬맹이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 거기다가 날아다닐 수도 있대요! - 보쎄 형이 약 올리며 말을 받자, 꼬맹이가 거칠게 대꾸했습니다.

    - 정말 날아다닌단 말이야! 다시 날아오면, 그때 직접 봐라!!

    - 내일이라도 날아오면 좋겠다.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을 내 눈으로 보게 되면, 꼬맹이 너한테 만 원을 주겠어. - 이제는 베탄 누나도 끼어들었습니다. 자기한테는 적지 않은 돈까지 내걸면서 말이지요.

    - 아니, 내일은 못 볼 거야. 내일 그 사람은 모터에 기름칠하러 서비스 센터에 날아가야 하니까.

    - 됐다, 이제 터무니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그 대신 네 책장이 어떤 꼴이 됐는지 보기나 하렴. - 엄마가 가볍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 카를손은, 그런 건 다 하찮고 일상적인 일이라고 했어! - 그러면서 카를손이 손사래 치는 것과 똑같이 자기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건 책장에 난 얼룩 때문에 기가 죽을 일은 전혀 없다는 뜻이었지요.


    그러나 꼬맹이의 말도 손짓도 엄마에게는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엄마 목소리도 이젠 좀 엄격하게 바뀌었어요.

    - 카를손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렇다면, 좋아, 그 사람한테 분명히 전하렴. 만일 한 번 더 우리 집에 코를 들이밀면, 두고두고 기억날 정도로 내가 뺨을 때려주겠다고 말이야.

    꼬맹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기관차 전문가의 뺨을 엄마가 때리려고 한다는 것이 끔찍하게 보일 뿐이었어요. 

    운 나쁘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날에는 좋은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지요. 


    꼬맹이는 문득 카를손이 몹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활기차고 명랑한 사람. 그 사람은 “불쾌한 일도 다 하찮은 거고 일상적인 일이니까 풀 죽을 일은 전혀 없다” 하고 잘라 말하면서 작고 통통한 손을 익살스럽게 내저었었지요.

    ‘카를손이 과연 다시는 오지 않을 건가?’ - 꼬맹이가 불안한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카를손을 흉내 내어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카를손은 분명히 약속했어. 그 사람은 믿을만해. 첫눈에 그렇게 보였어. 하루 이틀 지나면 올 거야, 반드시 올 거야.


꼬맹이가 자기 방에 와서 엎드려 책을 보다



    꼬맹이가 자기 방에서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창밖에서 또 윙윙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카를손이 커다란 땅벌처럼 방으로 날아들었습니다. 뭔지 모를 노래를 흥겹게 흥얼대며 천장 밑에서 몇 바퀴 돌았습니다. 벽에 걸린 그림들 곁을 지나칠 때는 더 잘 보려고 속력을 줄인 채 고개를 한쪽으로 갸우뚱 기울이고 두 눈을 가늘게 뜨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어요. 

    -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정말 아름다워! 내 그림들보다는 당연히 좀 떨어지지만.

    꼬맹이가 발딱 일어났습니다. 카를손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어찌나 반가운지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 거기, 지붕 위에는 그림들이 많아? - 꼬맹이가 대뜸 물었습니다.

    - 수천 점이나 있다. 한가할 때면 내가 직접 그리기도 하지. 작은 수탉과 새를 비롯해서 예쁜 것들은 다 그린다. 나는 세상에서 수탉을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야. - 그렇게 말하면서 카를손이 멋지게 한 바퀴 돈 뒤 꼬맹이 곁으로 내려섰습니다.

    - 정말이야? - 꼬맹이가 놀랐어요. - 너하고 지붕 위로 올라가면 안 되겠니? 네 집과 기관차들이며 그림들을 정말 보고 싶어!

    - 물론, 그럴 수 있지. 당연하다. 넌 귀한 손님일 테고…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가자.

    - 아니, 더 빨리 가면 좋겠어! - 꼬맹이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난 먼저 내 집을 정돈해야 된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 넌 알 거야, 세상에서 제일 빨리 방을 정돈하는 사람이 누구지?

    - 아마도 너겠지. - 꼬맹이가 막연하게 대답했어요.

    - ‘아마도’라고?! - 카를손이 화를 냈습니다. - 넌 아직 ’아마도‘라고 말하는구나! 어떻게 믿지 못한단 말이냐!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은 세상에서 제일 빨리 방을 정돈하는 기술자다.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야.

   

카를손이 프로펠러를 돌이면서 벽게 걸린 그림들을 감상하다



    꼬맹이는 카를손이 모든 면에서 ‘세상 제일가는’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가는 놀이동무임에도 틀림이 없을 거예요. 이걸 꼬맹이는 경험으로 확실히 믿었어요. ‘사실, 크리스터와 구닐라도 좋은 동무들이긴 하지만, 그 애들은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에 비하면 한참 떨어져!’ 크리스터는 예파라고 부르는 자기 개를 늘 자랑하지요. 그때마다 꼬맹이는 그 애를 몹시 부러워했습니다.

    ‘만일 그 애가 내일 또 예파를 자랑한다면 난 카를손 얘기를 해 주겠어.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에 비하면 니네 예파는 아무 것도 아니야! 그 애한테 그렇게 말해 줄 테야.’

    하지만 그렇긴 해도 꼬맹이가 세상에서 제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강아지… 

    카를손이 꼬맹이의 생각을 깼습니다. 


    - 지금 우리 기분을 가볍게 바꾸는 것도 좋을 거다. - 그리고 장난기 어린 눈길로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 혹시, 너한테 새 기관차를 사주지 않았니?

    꼬맹이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기관차를 떠올리면서 생각했어요. 

    ‘그래, 지금 카를손이 여기 있을 때, 엄마와 아빠한테 카를손이 실제로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 보쎄 형과 베탄 누나도 집에 있다면 자기네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야.’

    - 우리 엄마와 아빠하고 인사 나누고 싶어? - 꼬맹이가 물었어요.

    - 물론이지! 기쁜 일이다! 그분들도 나를 보면 아주 기분이 좋을 걸. 난 아주 잘 생겼고 똑똑하니까… - 카를손이 흡족한 얼굴로 방안에서 두어 걸음 걷다가 덧붙였습니다. - 또, 적당히 통통하니까. 간단히 말해, 원기 왕성한 대장부니까 말이다. 맞아, 나를 알게 되면 네 부모님은 기분이 아주 좋을 거다.


    주방에서 고기완자 튀기는 냄새를 맡고 꼬맹이는 곧 점심 먹을 때가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잠시 생각한 끝에, 점심 먹고 나서 카를손을 부모에게 인사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소개해서 엄마가 완자 튀기는 걸 방해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카를손 얘기를 꺼내서 아빠나 엄마가 부서진 기관차와 책장 얼룩을 갑자기 떠올린다면… 그런 대화는 어떡해서라도 막아야 하거든요. 잠시 뒤에 점심 먹으면서 세상에서 제일가는 기관차 전문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꼬맹이가 엄마와 아빠에게 설명할 겁니다. 또 식구들은 꼬맹이가 왜 자기 방으로 초대하는지 이해할 거예요. 꼬맹이는 이렇게 말할 테니까요. 

    “여러분, 내 방으로 같이 가주시겠어요? 지금 내 방에는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 놀러와 있어요.”

    식구들이 얼마나 놀랄까! 그 얼굴들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카를손이 방안에서 바장이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어요. 얼어붙은 사람처럼 우뚝 서서 사냥개처럼 킁킁 냄새를 맡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 이건 고기완자야. 난 육즙이 밴 고기완자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꼬맹이가 당황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카를손이 그렇게 말할 때 대답은 당연히 이렇게 나와야겠지요. “원한다면 가서 우리하고 같이 점심을 먹자.”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겁니다. 엄마와 아빠에게 미리 설명하지 않고 카를손을 점심 식사에 데려가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물론, 크리스터와 구닐라를 데려가는 건 다른 문제지요. 그 애들하고는 식구들이 다 식탁에 둘러앉은 뒤에라도 허겁지겁 뛰어들어 “다정한 엄마, 이 얘들한테도 콩 수프와 팬케이크를 주실래요” 하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전혀 모르는 작고 퉁퉁한 사람을, 그것도 기관차를 폭발시키고 책장 선반에 얼룩을 낸 사람을 점심 식탁에 데려간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

    하지만 지금 막 카를손은 육즙이 흐르는 맛난 고기완자를 아주 좋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 어떡하든 완자를 대접해야 돼요. 안 그러면 삐쳐서 더 이상 같이 놀지 않겠다고 나올지도… 

    아아, 이제 이 맛난 고기완자가 아주 중요하게 됐습니다! 


    - 잠깐만 기다려. 주방에 가서 완자를 가져올게.

    꼬맹이 말에 카를손이 좋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고는 꼬맹이 등 뒤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 얼른 가져와라! 그림 감상으로는 배가 차지 않는다!


    꼬맹이가 주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가 격자무늬 앞치마를 두른 채 가스불 앞에 서서 정말로 맛난 완자를 튀기고 있었어요. 커다란 프라이팬을 간간이 들어 올리는데, 그때마다 작은 고깃덩어리들이 보기 좋게 뒤집혔습니다.  

    - 아, 꼬맹이, 너로구나? 곧 점심 먹을 거야.

    엄마의 말에 꼬맹이가 최대한 살랑거리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 엄마, 완자를 몇 개만 접시에 담아 주세요. 내 방으로 가져갈래.

    - 얘야, 이제 다들 식탁에 둘러앉을 건데. 

    -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필요해… 무슨 일인지는 점심 먹고 나서 설명할게요.

    - 그래, 알았다, 알았어. - 엄마가 작은 접시에 완자 여섯 개를 담았습니다. - 자, 받으렴.


    오, 이건 정말 맛난 완자에요! 냄새도 참으로 구수하고 좋은 고기완자답게 불그레하게 잘 튀겨진 것이었어요. 

    꼬맹이가 접시를 두 손에 들고 자기 방으로 조심해서 가져갔습니다.

    - 내가 왔어, 카를손! - 문을 열면서 외쳤지요. 

    그러나 카를손이 없었습니다. 꼬맹이가 접시를 든 채 방 한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봤어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도 허전한 마음이 들어 기분이 금방 상했습니다.

    - 가버렸네. - 꼬맹이가 중얼거렸어요. - 가버렸어. 





    하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삑!”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꼬맹이가 고개를 돌렸어요. 침대 위 이불 속에서 작은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삑삑 소리를 내지 뭐에요. 

    삑! 삑!

    그러더니 이불 밑에서 카를손이 장난기 어린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 히히! 넌 ‘가버렸네, 가버렸어’ 하고 말했지… 히히히! 한데 그 사람은 떠난 게 아니라, 여기 요렇게 숨어 있었던 거다!

    카를손이 또 삑삑 소리를 냈어요. 


    그러다가 꼬맹이 손에 들린 접시를 보고는 재빨리 배에 달린 단추를 눌렀습니다. 모터가 윙윙 소리를 내자 카를손이 침대에서 접시로 재빨리 날아 내려왔어요. 고기완자를 움켜쥐더니 천장으로 휙 날아 올라가 전등 밑에서 작은 원을 그리고 난 뒤 흡족한 표정으로 먹기 시작했습니다. 

    - 정말 맛난 완자로군! - 카를손이 아주 좋아했어요. - 보기 드물게 맛난 거야! 이건 세상에서 제일가는 완자 전문가가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 그러고는 금방 덧붙였어요. -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을 너는 물론 알고 있겠지.

    그리고 다시 접시로 급강하해서 완자를 또 집었습니다.

    그 순간 주방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꼬맹이, 우린 식탁에 앉는다. 얼른 손 씻고 오렴!

    - 난 가야 돼. - 꼬맹이가 접시를 카를손에게 내밀었습니다. - 하지만 금방 돌아올게.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고 약속해.

    - 좋아, 기다려 주지. 그러나 여기서 나 혼자 뭘 한담? - 카를손이 꼬맹이 곁으로 내려왔습니다. - 네가 없는 동안, 난 뭔가 재미난 걸 하고 싶다. 기관차 같은 건 더 없니?

    - 없어. 기관차는 더 없지만, 집짓기 장난감은 있어.

    - 어디, 보여 줘라. 


    꼬맹이가 장난감들을 넣어 둔 장에서 집짓기 블록이 들어있는 상자를 꺼냈습니다. 그건 사실 상당히 훌륭한 건축 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인 블록들이 아주 많고, 그것들을 짜 맞추면 어떤 물건이든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 자, 이걸 가지고 놀아. - 꼬맹이가 말했어요. - 이 블록들이면 원하는 걸 다 만들 수 있어. 자동차든 기중기든…

    - 허어, 세상에서 제일가는 건축가가 설마 그런 걸 모르겠냐. - 카를손이 꼬맹이 말을 가로막았어요. - 이런 건축 재료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카를손이 완자 한 개를 또 입에 넣고 블록 상자로 달려들었습니다.

    - 멋있는 걸 하나 만들겠다. - 그러면서 블록들을 다 바닥에 쏟았습니다. - 아주 멋진 걸로…


    꼬맹이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건축가의 작업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식당으로 가야 했어요. 문턱에서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카를손은 이미 산더미처럼 쌓인 블록들 곁에 앉아서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정말 멋진 놀이야!

난 잘 생기고 똑똑하고 

솜씨 좋고 강한 사람!

난 놀이를 좋아해, 

또…… 먹는 것도 좋아해.


    마지막 구절은 네 번째 완자를 꿀꺽 삼키고 나서 불렀습니다.





    꼬맹이가 식당에 들어서니 엄마와 아빠, 보쎄 형, 베탄 누나는 벌써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어요. 꼬맹이가 재빨리 자기 자리에 앉아 냅킨을 목에 두르면서 말했습니다. 

    - 엄마, 나한테 한 가지만 약속해요. 그리고 아빠도.

    - 우리가 너한테 무슨 약속을 해야겠니? - 엄마가 물었습니다.

    - 아니, 먼저 약속해!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약속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 그러다가 네가 또 불쑥 강아지를 사 달라고 조르면?

    - 아니, 강아지가 아니야. 물론, 아빠가 원한다면 강아지를 사준다고 약속해도 좋아! 아, 아니야, 그게 아니야. 이건 전혀 다른 일이고 조금도 위험한 게 아니야. 약속하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 그래, 알겠어, 알겠는데… - 엄마가 대답했어요. 


    - 그럼, 약속한 거야. - 꼬맹이가 기뻐하며 엄마 말을 가로챘습니다. - 뭐냐면,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에게 기관차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

    - 재미있군. - 베탄 누나가 끼어들었습니다. - 부모님이 카를손과 만날 일이 없는데 어떻게 기관차 얘기를 꺼내거나 말거나 할 수 있다는 거야?

    - 아니, 만나게 될 거야. - 꼬맹이가 느긋하게 대꾸했습니다. - 왜냐면 카를손이 지금 내 방에 있거든!

    - 오, 이런, 정말 환장하겠군! - 보쎄 형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카를손이 지금 네 방에 있다는 거냐?

    - 그래, 그렇단 말이야! - 꼬맹이가 우쭐거리는 모습으로 식구들을 쓰윽 둘러봤습니다.

    ‘식사를 더 빨리 끝내기만 한다면, 다들 더 빨리 보게 될 텐데.’ 


    - 카를손과 인사 나누면 우린 아주 즐겁겠구나. - 엄마가 말했어요. 

    - 카를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 꼬맹이가 대답했습니다.

    마침내 다들 차를 마시고 나자 엄마가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온 겁니다.

    - 다 함께 가요. - 꼬맹이가 제의했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한다. - 베탄 누나가 말했습니다. - 카를손이라는 사람을 내 눈으로 보지 않는 한, 난 마음 놓을 수가 없어.

  

    꼬맹이가 앞장섰습니다.

    - 단, 약속은 꼭 지키세요. - 꼬맹이가 자기 방문으로 다가가면서 다짐을 받았어요. - 그러니까, 기관차 얘긴 입도 뻥긋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고는 문손잡이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카를손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정말 그 어디에도 없었어요. 꼬맹이 침대에서 작은 덩어리가 꿈틀대지도 않는 겁니다. 

    그 대신 마룻바닥에 블록으로 만든 탑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아주 높은 탑이었어요. 물론, 카를손은 블록으로 기중기를 비롯해 어떤 물건이라도 만들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블록을 하나씩 쌓아 올려서 가늘고 아주 높은 탑을 만들기만 했군요. 

    그리고 탑 꼭대기는 뭔가로 장식해서 둥근 지붕까지 씌웠는데, 알고 보니 그건 꼭대기에 얹은 작고 둥근 고기완자였습니다. 



    그래요, 이건 꼬맹이에겐 아주 힘겨운 순간이었어요. 엄마는 완자들로 블록 탑을 장식한 것을 당연히 못마땅하게 여겼지요. 그리고 그게 꼬맹이 짓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 이건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

    꼬맹이가 입을 열었지만, 아빠가 엄격하게 말을 잘랐습니다.

    - 됐다, 꼬맹이. 카를손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우린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구나! 

    보쎄 형이 킥킥 웃음을 터뜨렸고, 베탄 누나도 덩달아 웃으면서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 카를손이라는 사람은 꾀보인가 봐! 우리가 오는 순간에 자취를 감추다니. 


    풀이 죽은 꼬맹이가 차갑게 식은 완자를 먹고 나서 블록들을 정리했습니다. 카를손에 관해 더 얘기해봤자 지금은 소용이 없었어요.

    ‘카를손이 나한테 아주 못되게 굴었어. 아주 못되게!’

    - 이제 카를손은 잊어버리고 커피를 마시러 가자. - 아빠가 꼬맹이 뺨을 쓰다듬으면서 달랬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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