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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1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2. 2019.07.10 루덩의 악마들 (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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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the doors of perception

 


 

  초기 단계에서 수렝의 치유는 암흑으로부터 ‘행복하고 건강한 의식’으로 이동하는 데 있지 않았다. 이 건강한 의식은 인간 마인드가 절대자의 마인드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정말 누구인지 문득 인식할 때 다가온다. 한데 그는 그저 하나의 병적 상태에서 다른 병적 상태로 옮겨갔을 뿐이며, 그 상태에서 ‘특별한 은혜’는 이전에 있던 특별한 슬픔처럼 평범해진 것이다.  

 

  이런 점은 언급해야겠다. 즉, 병고에 가장 시달린 시기에도 수렝은 기쁨의 찰나를 여러 번 경험했으며, 그럴 때마다 저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께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이라고 짧게나마 확신했다는 점. 

  기쁨의 번쩍임이 이제 더 늘어나고, 그런 확신이 순간적인 것에서 지속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영적 체험이 잇따르고, 모든 계시가 환하여 기운을 주고, 모든 느낌이 더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합당하게 섬기려면, 영적 환희와 알 수 있는 은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 현상에 매달리는 건 금물이에요. 믿음이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야지요. 믿음 하나만이 우리를 순결한 상태에서 하느님께 들어 올립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 영혼을 텅 빈 상태로 만드는데, 바로 이 빈 자리를 하나님이 채워 주시니까요.」 

 

  이십여 년 전 조언을 청한 한 수녀에게 수렝이 그렇게 적어 보냈다. 자비를 베풀어 처음 치료에 나선 바스티드 수사가 수렝에게 한 말도 그런 맥락이었다. 

  영적 체험이란, 그게 아무리 고양된 것이든 위안을 주는 것이든 깨달음이 아니요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조차 못 되지요. 

  이런 말을 바스티드가 혼자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기독교계의 공인된 신비주의자들이 있고,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 말씀도 인용했다. 

 

  한동안 수렝은 바스티드의 조언을 따르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의 특별한 은혜가 그에게 끊임없이 줄기차게 내렸다. 그리고 그 특별한 은혜를 거부하자 신의 기적은 무미건조함과 황량함으로 바뀌었다. 신께서 다시 돌아섰으며, 그를 예전의 절망 끝에 남겨둔 것만 같았다. 바스티드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성 요한이 남긴 언급에도 불구하고, 수렝이 다시 자신의 환영들과 자신의 화법으로, 자신의 황홀경과 신령 감응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바스티드와 수렝 간에 논란이 벌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두 논쟁자와 그들의 상급자인 앙기노 신부가 천사들의 수녀 잔느에게 부탁하게 됐다. 

  특별한 은혜에 대해 당신 수호천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봐 주시려오? 

  수호천사가 처음엔 바스티드의 관점에 호의를 보였다. 수렝이 이의를 제기했고, 잔느 수녀와 예수회 수사 세 사람 간에 많은 서신이 오간 끝에 천사는 양측이 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정성을 다하는 만큼 양쪽 다 옳다고 공표했다. 수렝도 앙기노도 만족하게 됐다. 

  하지만 바스티드가 제 입장을 고수하면서, 더 나아가 잔느 수녀가 이제는 보포르라는 천상의 카운터파트와 소통을 그만둘 때가 됐다고 말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관계를 반대한 사람은 바스티드만이 아니었다. 

 

  1659년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알리기를, 어떤 저명한 성직자께서 불평하신다고 했다. 「마치 당신이 당신 천사의 조언을 팔아먹는 상점을 열었으며, 사람들이 혼인이나 송사 같은 일을 앞두고 궁금할 때마다 안내소처럼 당신을 찾아간다고 말이오.」 그런 일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바스티드 수사 말씀대로 천사와 관계를 아주 끊으라는 건 아니고 영적 자문만 구해야 한다. 

 

  세월이 흘렀다. 수렝이 많이 좋아져서 병자들을 직접 찾아보고 고해를 듣고 설교하고 글을 쓰고 신자들에게 구두와 서면으로 가르침을 베풀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의 행동은 여전히 뭔가 좀 특이했고, 그래서 상급자들은 그가 주고받는 편지들을 검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혹여 정통 교리에 어긋나거나 최소한 곤경에 빠뜨릴 만치 황당한 언사가 나오지는 않을까 두려워한 것. 그러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면서 <영적 교리 문답>을 구술했던 인물은 이제 아주 신중해져서 부주의한 행동과 거리가 멀었다. 

 

  1663년 <실험 과학>을 썼고, 이 책에서 자신의 귀신들림과 이후에 체험한 시련을 기술했다. 당시는 루이 14세의 재앙적인 국정 운영이 이미 출범한 때였다. 그러나 수렝은 ‘현세의 공적 업무와 원대한 도모’ 따위에 흥미가 없었다. 그에겐 성체 성사가 있고, 읽고 되새길 복음서가 있고,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실 어떤 면에서 그것들은 충분하다 못해 그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늙어가고 기력이 점차 쇠했으며 「사랑은 쇠약함과는 썩 잘 어울리지 않으니까. 또 왜냐하면 사랑은 그 활동의 압력을 견디는 튼튼한 그릇을 요하니까.」 

 

  두어 해 거의 조병 상태에서 보낸 안녕 기간이 지나갔다. 주기적으로 쉽게 찾아들던 특별한 은혜가 이젠 과거지사가 됐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더 좋은 뭔가가 있었다. 잔느 수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하나님께서 근자에 그분 사랑을 조금 알게 해 주셨다오. 하지만 영혼의 깊이와 활동은 얼마나 다른지! 왜냐하면, 요컨대 영혼의 깊이는 끝이 없어서 거기에 은혜라는 초자연적인 보물로 꽉 차는데, 그 영혼이 움직임에서는 아주 빈약하니 말이외다. 

  정말 그래요, 영혼은 깊숙한 곳에서 하나님을 정말 확실하고 섬세하고 풍부하게 느끼며, 이때 크나큰 위안을 주는 사랑과 경이로운 심장 확장도 수반되는데, 문제는 이런 것 무엇 하나 다른 이들한테 전달할 수가 없다는 것.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은 자칫 외부에 이런 인상을 줄 수도 있어요. 곧 (종교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재능이 다 결여되고 완전히 하찮은 존재로 작아졌다는…  

  영혼이 활동하여 바깥으로 세차게 분출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다는 건 참으로 비통한 일이외다. 그게 심해지면 압박이 생기는데, 그 고통이란 상상을 초월하지요. 영혼 깊은 곳에서는 마치 수분이 축적되는 듯하며, 이 많은 수분이 빠져나갈 출구가 없는 까닭에 견딜 수 없는 무게로 영혼을 짓누르면서 영혼의 힘을 소진한다오.」 

 

  지독히 역설적으로 보자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에 영원의 요소가 담겨 있고, 바로 이 모순이 파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것은 축복받은 고통이요, 경건하게 바라는 죽음이거늘. 

 

  황홀경을 체험하며 환영들 속에서 수렝은 분명 그림 같은 풍경을 거치지만 화려하게 빛나는 막다른 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었다. 이제 ‘특별한 은혜’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총체적 인식(지각)에 자유로이 근접할 수 있기에 그는 참된 각성과 광명을 감득할 준비가 됐다

  이제 드디어 그는 바스티드가 촉구한 대로 ‘선한 믿음’ 안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그는 세상과 제 삶의 정해진 사실들 앞에서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벌거벗은 상태가 됐다. 즉, 제 삶을 텅 비웠으니 신께서 채울 수 있게 하려는 것이요, 가난한 사람이 됐으니 신께서 최고 부자로 만드실 수 있게 됐다

 

 죽기 이태 전에 이렇게 썼다. 

  「듣자하니, 진주조개를 채취하는 잠수부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닥에서 수면으로 뻗어 물 위에서 코르크나무에 묶여 떠 있는 파이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파이프를 통해 바다 바닥에 머물면서 숨 쉰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훤히 설명해주는 알레고리다. 

  영혼에도 숨 쉬는 파이프가 있어 땅에서 하늘로 뻗어 있고, 제노바의 성 캐서린 말씀대로 채널이 있어 하나님 가슴으로 바로 이어진다. 이 파이프를 통해 영혼이 지혜와 사랑을 호흡하며 유지되는 것이다. 

  영혼은 지상이라는 바닥에서 진주를 찾으려 헤매면서 다른 영혼들과 소통하고 신의 뜻을 설파하고 하나님 사업을 수행한다. 이때 늘 파이프가 있어서, 영생과 평안을 안기기 위해 하늘로 이어지고… 이런 상태에서 영혼은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 보기에 영혼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이… 왜냐하면 환영이나 무아지경이나 일시적 감각 정지 없이, 현세의 일상적 고통 속에서, 연약함과 많은 무기력 속에서, 우리 주께서는 우리네 이해력과 잣대를 뛰어넘는 귀중한 뭔가를 주시니까…  

  이 귀중한 무엇이란 바로 사랑의 상처 같은 것, 그건 피 한 방울 내지 않으면서 영혼에 파고들어 영혼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을 동경하게 만든다.」 

 

  그렇게 파이프를 입에 물고 다른 세계의 공기를 들이마셔 폐가 확장된 가운데 지상이라는 바닥에서 진주를 찾으면서 노인은 완성을 향해 전진했다. 죽기 몇 달 전 자신의 마지막 신앙 저술을 끝냈다. <하나님 사랑에 관한 물음 Questions sur l'Amour de Dieu>. 

장 조셉 수렝 Questions sur l&#39;Amour de Dieu

  이 책을 몇 대목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마지막 장벽이 무너졌고 또 하나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 왕국이 지상에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 가슴과 바로 연결된 채널을 통해, 이 영혼에 흘러든 것은 바로… 

 

  「평정. 하지만 그저 잔잔한 바다나 조용한 강물 같은 평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평정이요 안식으로서 홍수 때 급류처럼 우리한테 들어오고, 숱한 폭풍우를 거친 영혼은 마침내 이 범람하는 평정을 누린다. 또 하늘이 내린 안식은 영혼에 들어서서 영혼을 정복할 뿐 아니라 수많은 물살이 하나로 합치듯 영혼과 합류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이 하프와 류트의 아름다운 음악을 천둥소리처럼 언급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그러하니, 천둥소리를 잘 조율된 류트처럼, 또 류트의 심포니를 천둥 굉음처럼 만드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정 또한 제방들을 쓸어버리고 강안으로 차오르며 호안을 산산이 부수는 격류 같은 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과연 믿을까? 

  한데 바로 그런 일이 나한테 벌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평화와 잔잔한 사랑이 그 노정에 있는 것들을 죄다 분쇄하게 할 권능을 갖고 계시니…     

  하늘이 주신 평정은 한 지역을 흐르다가 제방을 부순 뒤 다른 지역으로 휘도는 강물과 같다. 이때 만물의 질서가 다 깨지는 듯한데, 왜냐하면 이 흐름이 멈출 줄 모르고 도도하게 밀려드니까. 그런 평정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다. 오직 하나님의 평정만이 그렇게 행진할 수 있다. 땅은 파괴하지 않고, 전능자께서 예정하신 하상을 채우기만 하면서

 

  그 물은 고요하다 해도 그 흐름은 굉음을 내며 맹렬하게 움직인다. 굉음은 분노 때문이 아니라 수량이 넘치기 때문에 나오는 것, 물은 폭풍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연의 평온을 간직하면서 스스로 이동하는 것, 그것은 바람 한 점 없을 때도 움직인다. 바다가 땅과 만나며 그 경계와 입맞춤을 한다. 바다는 위풍당당하게 육지로 진격한다.     

  영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니, 오랜 시련 끝에 무한한 평정이 영혼에 강림할 때, 그때는 바람이 불어도 그 표면에 파문이 일지 않는다. 하나님의 평정이란 바로 그런 것이며, 거기엔 신의 보물과 그분 왕국의 풍요가 다 들어 있다. 

 

  이 범람에는 그것이 닥칠 것임을 알리는 바다제비와 예고자가 있으니, 그것은 홍수보다 먼저 나타는 천사들. 그들은 다른 세계의 표식을 갖고 있으며, 그들 목소리는 천상의 하모니로 가득하고, 영혼이 헐떡거릴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다. 하지만 이 헐떡임은 공포가 아니라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     

  이 범람은 과하다 하여 그 누구며 무엇에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저 그 노정에서 장애물들을 쳐내는 것일 뿐. 탐욕의 짐승들은 모두 급습하는 평정을 피해 달아난다. 그리고 평정과 함께 예루살렘에 약속된 보물이, 계피나무며 호박이며 진귀한 것들이 모두 다가온다. 

  천상의 평정은 바로 그렇게, 모든 지복을 수반하며 풍요롭고 성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삼십여 년 전 마렌에서 젊은 수도사는 대서양 조류가 조용히 저항할 수 없이 차오르는 것을 자주 지켜보았다. 매일 보던 그 기적의 기억은… 이 완성된 영혼이 존재의 ‘원초적 사실’을 아름답게 찬미하면서 적어도 ‘영혼을 다 분출할’ 수 있게 한 수단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제 영혼이 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1665년 봄 죽음이 왔을 때, 야콥 뵈메[각주:1]의 말대로, “그는 더 이상 어디로도 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거기에 가 있으니까. 

  (끝)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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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kob Böhme (1575-1624) - 게르마니아 기독교 신비주의자, 설교가, 신지학자, 예언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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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1

 

이름난 풍자 작가요 나중에 주교가 된 조셉 홀[각주:1]이 1605년 처음으로 플랑드르[각주:2] 지역을 방문했다. 

「여로에서 우리는 파괴된 교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도처에 남은 거친 잔해들이 신앙과 더불어 동족상쟁 역시 처절했음을 여행자에게 말해준다. 오오, 전쟁의 참혹한 흔적이여! 그러나 교회들은 무너졌다 해도 (경탄스럽게) 도처에서 예수회 칼리지들이 나타난다. 내가 들른 도시마다 이 학교들이 이미 문을 열었거나 세워지는 중이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연 정책이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이 사람들은 저주를 가장 많이 받는 곳에서 (여우처럼) 일을 가장 잘 꾸려 간다. 저희 진영에서 극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모든 이들한테 미움을 받고 우리의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이 독한 잡초들은 쑥쑥 자란다.」   

 

칼리지들은 아주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바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 홀과 그 세대가 잘 알고 있었듯이 예수회원들은 이른바 ‘정책’을 가장 중시했다. 예수회가 학교를 계속 세운 까닭은 적대자며 자유사상가며 프로테스탄트들에 맞서 로마가톨릭교회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예수회원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쳐 교회 이익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계층을 만들고자 했다.[각주:3]

 

이런 현상을 체루티가 아주 잘 표현했다. 「우리가 다리를 곧게 펴 주려고 갓난애 아랫도리를 천으로 동여매듯이, 사람을 평생 건강하고 유복한 상태로 만들려면 유년기부터 의지를 동여매야 한다.」 (이 언급에 줄 미슐레[각주:4]가 극도로 분개했다.) 

교육자들 의도야 정말 단호했지만 그 뜻을 알리고 지도하는 방법이 미흡했다. 학생들 의지를 천으로 동여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최우수 생도들 중 몇몇은 칼리지를 졸업하자 열렬한 자유사상가가 됐고, 장 라바디[각주:5]처럼 프로테스탄트가 된 이들도 있었다. ‘정책’이 관련된 이상 교육 체계는 설립자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다중은 정략적 측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저희 자식들이 젊은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것을 다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중요할 뿐이었다. 이런 요구에 예수회원들이 다른 대다수 교육 공급자들보다 더 잘 부응했다.

 

「예수회 지붕 아래서 보낸 일곱 해 동안 나는 무엇을 눈여겨보았던가? 온건하고 근면하고 절도 있는 생활. 예수회 수사들은 하루 모든 시간을 우리들 교육에, 혹은 그들 서원을 엄격히 실행하는 데 바쳤다. 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나처럼 그들 밑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이 증언하기를 바란다.」  

볼테르가 그렇게 적었다. 이 말은 예수회 교수법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와 동시에, 볼테르의 생애 자체는 학습을 ‘정책’이라는 목표에 맞추려고 한 교육자들의 시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한층 더 확실하게 입증한다.[각주:6]   

 

볼테르가 칼리지에서 공부하던 때, 예수회 학교들은 이미 잘 알려지고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 이전 교육 현장에서는 칼리지의 많은 장점이 정말 혁명적이었다. 대다수 교육자들이 회초리 휘두르는 능력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이던 그 시기에, 예수회원들의 교육 방식은 제법 인도적이었으며 교수진도 신중하게 선별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여기서는 고급 라틴어를 가르치고 광학과 지리와 수학, 극작 분야에서 최신의 성취를 들려주고 (그들의 학기 말 연극 공연은 유명했다), 좋은 예절과 교회에 대한 존중과 (적어도 프랑스에서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는) 국왕 권위에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회 칼리지들이 전형적인 상류 부유층 취향에 맞았다. 즉, 애지중지하는 아이가 구식 교육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다고 마음먹은 어머니들, 그 자신이 학식을 갖추고 있으며 건전한 교리와 키케로 식 달변에 관심이 큰 숙부들, 또 그 자신이 애국심 있는 관리로서 군주제 원칙을 인정하거나 미리 앞을 내다보는 부르주아로서 예수회가 폭넓은 연줄로 제자들한테 좋은 직무나 궁정의 한 자리, 교회 명예직 따위를 찾아주겠지 기대한 아버지들… 바로 그들 입맛에 딱 맞은 것이다. 

 

예를 들어, 루앙 시의 코르네유 부부 같은 이들을 보자. 가장은 왕실 고문변호인이고 아내는 변호사 딸인 마르트 르 프장. 어린 아들 피에르가 특출한 재주를 보이는데, 어떻게 칼리지에 보내지 않을 수 있겠나?[각주:7] 

혹은 렌 시의회 고문인 조아킴 데카르트를 보자. 그는 1604년 총명한 막내아들 르네를 여덟 살밖에 안 됐지만 공부시키느라 라 플레시로 데려간다.[각주:8] 얼마 전 국왕의 승인을 받아 문을 연 예수회 칼리지로. 

 

또 거의 비슷한 시기, 생트 시에 학식 있는 참사회 위원인 그랑디에가 있다. 그에게 조카가 있으니, 비록 데카르트나 코르네유 같이 부유한 귀족은 못 되더라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인 또 다른 법률가의 아들이다. 우르뱅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이제 열네 살이며 지극히 영리하다.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생트 인근에는 보르도의 예수회 칼리지보다 더 좋은 학교가 없었다. 

이 유명한 배움터에는 소년들을 위한 중등 과정과 우아한 예술을 가르치는 칼리지, 신학교, 사제 임명 뒤에도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형제들을 위한 심화 과정이 다 있었다. 조숙하고 영리한 우르뱅 그랑디에가 여기서 십년을 넘게 보냈다. 중등학생에서 신학 대학생으로, 그리고 나이 스물다섯 된 1615년 이후 예수회 수련수사로… 그렇긴 해도 수도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예수회 엄한 규율을 따를 소명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니야, 수도회 안이 아니라 수도원 담장 밖에서 교구 신부로 커리어를 쌓고 싶어. 재주가 뛰어난데다가 막강한 교회 조직의 비호를 받는 사람은 이 직업에서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어떤 고관대작의 종교의식 담당이나 나중에 프랑스 육군원수나 추기경이 될 사람의 영적 카운슬러가 되는 거야. 또 주교 회의나 왕실 공주들 앞에서, 심지어 왕비 면전에서 뛰어난 언변을 과시할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야. 어디 그뿐이랴, 외교 사절이나 고위 행정직, 수입 좋은 명예직, 구미 당기는 불로소득 따위도 가능해. 또 (귀족 출신이 아니기에 확률이 떨어지긴 해도) 운이 좋다면 주교 예모로 머리를 장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생 노년이 화려하게 보장되는 거야. 

 

그의 이력 초기에는 그런 장밋빛 꿈이 다 이뤄질 수 있는 듯싶었다. 신학과 철학을 이태 동안 깊이 연구한 뒤 스물일곱 나이 젊은 그랑디에 신부가 오랜 기간 근면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예수회가 루덩 시에 있는 생피에르 뒤 마르셰 교구라는 중요한 생활 수단을 선사한 것. 같은 후견인들 덕분에 성 십자가 공주 성직자단 교회의 참사회 위원도 됐다. 사다리에 발을 걸쳤으니, 이제 할 일은 올라가는 것만 남았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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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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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1

 

  1. 조셉 홀 (Joseph Hall1, 574-1656) - 잉글랜드의 주교, 모럴리스트 문인, 풍자가. 호주가 발견되기 이전 남부 대륙의 환상적인 여행과 거기 풍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다르면서도 같은 세상 mundus alter et idem>(1605)의 저자. 이 책은 여러 모로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전신으로 평가된다. [본문으로]</걸리버></다르면서도>
  2. 플랑드르 - 현재의 벨기에 서부,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서부를 포함하는 지역. [본문으로]
  3. 예수회 - 종교개혁 시기인 1534년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로마가톨릭 수도회. 과격한 전투적 가톨릭 수호 선교기관. 1. 교육에 중점 2. 종교개혁에 대항 3. 세계 선교 등이 주요 목표. [본문으로]
  4. Jules Michelet (1797-1874) - 프랑스의 역사가, 사회평론가. 교회권력 반대자. 역사와 사회, 자연에 관해 아주 주관적인 책을 명료하고 격동적인 언어로 여러 편 썼다. ‘르네상스’ 용어의 창시자. [본문으로]
  5. Jean Labadie (1610-1674) - 프랑스 신학자,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고 경건주의 단체인 라바디파를 만들었다. (경건주의/Pietism - 정통 프로테스탄트에 맞서는 신비주의적 가르침, 보수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특색) [본문으로]
  6. Voltaire (1694-1778) - 프랑스의 작가, 사상가,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자. 18세기 유럽의 전제 정치와 종교적 맹신에 저항하고 진보적 이상을 고취. 비판 정신과 재치, 풍자 같은 프랑스 정서 특유의 자질을 구현한 작품 활동으로 유럽 문명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7. 피에르 코르네유(1606-1684) - 몰리에르,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 [본문으로]
  8.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프랑스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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