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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04 11. 시간의 환상
  2. 2019.09.30 The Piraha Tribe 피라하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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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마인드의 환상  

 


  11. 시간의 환상  

 

사람의 주관적 실재 (현실) 형성에 언어와 단어들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앞에서 다뤘다. 

필요하면, 단어들에 관한 장현실 지각 수준에 관한 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거기서는, 우리 삶에 들어와 우리의 경험 구조를 형성하는 키워드들이 있음을 알아봤다. 

 

the illusion of time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시간, 미래, 과거, 현재’ 같이 시간과 관련된 단어이다.

이 단어들에서 시간이 존재한다는 환상이 나온다. 단어에 관한 장에서 그런 단어들을 쓰지 않는 부족의 사례를 들었다. 그들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어. 사실상 현재에서만 산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이며 주변 세계와 아주 잘 공존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언어와 문화의 산물이란 말인가?
우리는 시간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는 데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 세계관의 정확성 여부는 생각도 않는다. 

 

시간의 몇몇 환상을 살펴보자. 

과거란 무엇인가? 

먼저, 모든 단어에는 우리가 거기에 집어넣는 어떤 뜻과 어떤 이미지가 있음을 기억하자.

당신에게 ‘과거’란 무엇인가?

이 단어에 당신은 어떤 뜻을 부여하나?

이 단어와 관련하여 당신 내면세계에서 어떤 이미지가 나타나나? 

 

대체로 ‘과거’에서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한테 일어난 사건의 장면들을 보게 된다. 여러 환경에 있던 유년기의 자신을 본다. 자기 인생의 여러 시기에 일어나서 기억되는 일들을 본다.

또 ‘과거’라는 단어를 접할 때 손을 흔들며 “이건 지나간 거야” 하고 말할 수 있고, 그러면서 마인드에서는 (내부 화면에서는) 자신의 등 뒤에서 구불구불 뒤쪽으로 이어지는 어떤 길을 보기도 한다. 

당신 경우엔 어떤가? 

‘과거’라는 단어에 대한 반응으로 당신의 정보 채널에서 무엇을 보는가? 

어떤 대답을 하든, 그건 다 내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일 것이다

직접 보고 확인하라. 

 

당신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과거를 지금 나한테 보여줄 수 있나? 

과거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걸 나한테 보여주시라. 

어떤 것을 보여주든, 그건 다 바로 목전의 현실에 있는 무엇이거나, 아니면 자기 마인드의 내부 화면에서 당신이 지각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가 분명 있다고 사람들은 강하게 느낀다. 고고학적 발견이나 고문서, 아니 단순히 당신의 개인적 기억 등이 그 증거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엊저녁에 식사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난 기억해. 아침에 샤워하고 이를 닦은 것도 기억나. 이건 다 있었던 일이야, 비록 지나간 것이긴 하지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열한 것은 전부 당신의 기억이나 회상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한데, 기억이나 회상은 당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 있는 이미지이다. 
즉, 과거에 관한 그 이미지들은 전부 당신 의식에서 사실상 바로 지금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서 나오는 게 전혀 아니다. 

 

또 이런 반박이 나올 수도 있겠다.

“현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의 연속이야, 내가 과거에 어떤 행위를 했기 때문에 현재가 있는 거 아니겠어? 예를 들어, 1분 전에 내가 탁자에 컵을 놓았기에 컵이 지금 거기 있는 거잖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1분 전에 (과거에) 컵을 놓았을 때, 실제로는 그 행위가 현재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지금 그것을 과거처럼 회상하는 것일 뿐.

어제나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기억에서 정보를 끄집어낼 것이다. 기억에서 나오는 정보는 전부 지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생각하는 과거란 전부 바로 지금 떠오르는 회상이고 기억이다.

당신에게 기억이 없다면,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당신의 과거가 있을까? 

 

이제 ‘미래’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미래는 과거에 비하면 한층 더 비현실적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이 기대하는 무엇이나 볼 것이라 예상하는 뭔가가 어떻게 일어날지 상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어떤 행동에 영감을 주는 뭔가를 상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뭔가를 계획할 때 종종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저녁 식사 후 어디로 산책할까 생각하는 것일 수 있고, 혹은 올여름 휴가를 바닷가에서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은 자기 마인드에서, 자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서, 사건의 예견되는 발전이나 미래에 기대하는 것을 상상하며 어떤 장면을 그릴 것이다.

미래에 관해 생각할 때, 그걸 당신은 지금, 현재에서, 한다. 

 

학수고대하던 미래가 도래하는 순간, 그 미래에 있는 현실은 당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상상하던 대로 여름에 정말 바다에 간다 해도, 거기서도 당신은 역시 현재에 있으리라는 점이다.

결국, 미래란…

우리 마인드에서 지금은 없지만 곧 나타날 수 있는 뭔가에 대한 상상이 표현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지금, 현재에, 나타날 것이다. 

 

미래는 환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어떻게?

예를 들어, 미래를 지금 즉시 보여 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엇을 보여주든 그것은 또 현재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는 당면한 현실에 있지 않으며, 우리 상상에 속한다.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여느 추상적인 이미지처럼 환상이며,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편리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과거나 미래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다. 
우리는 (언젠가 그 당시)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난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기억한다.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날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상상한다. 
과거와 미래는 기억과 상상의 작업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상상의 장난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들이 있었고 미래가 어떤 형태로든 도래하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살면서 항상 본다.

이것을… 시간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하나?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지속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영속>, 1931.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객관적 실재라는 게 있다. 그리고 우리 마인드는 거기서 정보를 얻어 우리를 위해 세상 모델을 만든다. 즉, 우리의 주관적인 현실을 (실재를, 세계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객관적 실재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들의 모델이며, 이 과정은 변화와 관련된다.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변화와 관련된 객관적 과정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고, 이 과정을 우리가 주관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심리적 시간이다.

이건 당연히 물리적 시간을 제법 잘 묘사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이미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을 지구에서 발사한다면, 이 로켓에서 흐르는 시간은 지구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이 로켓의 시계에서 1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의 시계로는 1백 년이 지나게 될 것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돌아와 보면 손자들이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한테 경악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마인드가 우리에게 시간의 모델만 만들어 낼 뿐이지 물리적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들이 없고, 그래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의 변화가 하도 작은 까닭에 우리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우리한테 이건 (물리적 시간은) 중요하지 않으며, 시간은 어디서나 똑같이 흐르는 것 같아.'

이게 우리의 주관적인 시간 감각이다. 

 

만약 과거와 미래가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확인할 수 있나?

오직 한 가지만 가능하니,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바로 지금 알아차릴 수 있다.

외부세계도 내면세계도 변화하고 있다. 변화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냥 관찰하라. 항상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이 언제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 이제 직접 관찰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현실(실재, 실체)이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1분 동안 주의를 기울여 보라. 

생각이며 느낌 등 내면세계의 일도 덩달아 관찰할 수 있다. 그것도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과거의 뭔가를 회상한다 해도, 그것 역시 당신의 내부 화면에 나타나는 일련의 생각과 이미지로서 바로 지금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의식에 있는 이미지라는 점을 이해했다면, 그 이미지들에 당신이 얼마나 자주 빠져드는지 추적할 수 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나.

그것을 당신은 지금 회상하고, 이 회상이 지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얼마나 자주 미래로 들어서는지 관찰해 보라. 더 정확히 말해, 당신 마인드에서 기대와 계획을 얼마나 자주 품고 세우는가? 

있을 수 있는 뭔가에 대해 얼마나 자주 불안해하는가. 이 불안은 당신이 바로 지금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는 미래의 무서운 이미지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건 단지 내 마인드의 이미지일 뿐이야’ 하고 자신을 달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주의와 눈길과 관심을 지금 실제로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로, 지금 순간으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목전의 현실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오로지 ‘지금 여기’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영적 대가들이 설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로지 ‘지금’, 오로지 ‘여기’만 있다. 나머지는 죄다 마인드의 한갓된 장난이며,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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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ety/우주정거장2019. 9. 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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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라하 부족  

 

 

인구 수 3-4백 명. 세계에서 가장 원시적인 종족. 아마존강 유역에 살며 사냥과 채취가 주업이고 신을 모른다. 그들 언어는 한때 꽃 피웠던 무라노 어족의 마지막 잔재. 

 

“사람의 생각은 언어에 좌우된다”는 사피어-워프의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을 이 부족이 입증한다. 달리 말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피라하 부족과 선교사 에버렛

 

 

작가이자 전직 선교사인 다이넬 에버렛이 피라하 부족 마을에서 30년을 살았다! 그들은 셈을 할 줄 몰라. 하나(1)도 못 센다. 오로지 ‘지금 여기서’ 살며 미래 계획을 세우지 않아. 과거가 그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시간도 날짜도 아침도 밤도 몰라, 하루 일정은 더더욱 몰라. 배고프면 먹고, 오래 자면 힘을 빼앗긴다고 여기면서 반 시간씩 짬짬이 잠을 잔다.

그들은 사유재산이란 걸 모르며, 현대 문명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죄다 하찮게 본다. 지구상 인구의 99%를 괴롭히는 불안과 두려움, 편견 따위를 그들은 모른다

 

잠자지 않는 사람들 

 

사람들은 잠자리로 향하면서 서로 무슨 말을 하나? 문화권마다 조금씩 다르겠으나, 달콤하게 자고 좋은 꿈 꾸며 아침에 활기차게 일어나기 바란다는 인사를 나눈다. 한데 피라하 부족은 “잘 자!”라는 말 대신 “오래 잠잘 생각일랑 하지 마! 사방에 뱀이 득실거리니까!” 하고 말한다. 

그들은 잠자는 것이 해롭다고 여긴다. 

1) 잠이 사람을 약하게 만드니까 

2) 자면서 사람이 죽는 것 같다가 좀 다른 사람이 되어 눈을 뜨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새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자면 본연의 자신에서 벗어난다는 데 있다. 

3) 뱀이 사방에 득실거니까. 

 

그래서 밤에 안 자고 그저 짬이 날 때마다 20-30분씩 야자수 나뭇잎으로 만든 벽에 기대 졸거나 나무 아래서 선잠을 잔다. 나머지 시간에는 다들 수다 떨고 웃고 뭔가를 손으로 만들고 화톳불 곁에서 춤추고 아이들이며 개들과 함께 논다. 

그렇게 하는데도 잠이 피라하 사람들의 외형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가 보다. 거기 사람들은 누구나 예전엔 사람들이 지금과 달랐음을 기억한다. 

 

피라하 부족의 아이들

 

"그 사람들은 체구가 훨씬 더 작고 섹스할 줄 모르고 심지어 젖을 먹고 컸어. 그런데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들 대신 이제 내가 있는 거야. 만약 오랫동안 잠자지 않는다면, 난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속임수가 먹히지 않고 내가 또 바뀌었음을 알고 나면 난 이름을 또 바꿀 거야…" 

 

그들은 6-7년에 한 번 꼴로 이름을 바꾼다. 그런데 연령대마다 그들에겐 적절한 이름이 있어서, 이름을 들으면 상대가 어린애인지 소년인지 청년인지 중년 사나이인지 노인인지 알 수 있다. 

 

내일이 없는 사람들 

 

밤이 되면 잠을 잠으로써 나날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생활 구조가 아닌 까닭에, 시간에 대해서도 아주 이상한 태도가 형성됐을 것이다. ‘내일’이며 ‘오늘’이 뭔지 모르고,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도 희미하다. 그러니 달력이나 시간 계산 등의 관습을 피라하 부족은 모른다. 그렇기에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도, 그렇게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피라하 사람들이 숲에서 포즈를 취하다.

 

에버렛이 1976년 처음 찾아간 당시 피라하 부족의 존재를 외부세계에서는 전혀 몰랐다. 언어학자요 선교사인 그는 그들이 음식물을 저장하지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상 원시생활을 이어가는 그들은 음식물을 저장하지 않고 그냥 잡아서 먹는다. (혹은 운이 나빠 먹이를 잡지 못하면 먹지도 않는다.) 먹는 것에도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왜 매일 먹어야 하지? 그것도 몇 번씩이나? 그들은 하루에 한두 끼 먹으며, 마을에 먹을거리가 많이 있을 때도 일부러 절식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숫자와 거리가 먼 사람들 

 

선교 조직은 피라하 부족의 마음을 일깨워 신에게 인도하려고 오랜 기간 애썼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그들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선교사들을 친절하게 맞이하고 선물로 받은 예쁜 팬츠로 알몸을 기꺼이 가렸으며 통조림 음식을 흥미롭게 맛보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소통이 사실상 끝나곤 했다. 아무도 피라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젊고 재능 있는 언어학자를 거기로 파송했다. 에버렛은 언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언어는 어렵지 않았다. 단지 아주 독특해서, 지구상에서 그 비슷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피라하 부족의 언어에는 자음 7개와 모음 3개가 전부다. 더 큰 문제는 어휘에 있다. 그들은 대명사를 몰라서, 만약 ‘나’와 ‘너’, ‘그들’의 차이를 말로 표시해야 한다면, (그들이 어떻게든 유일하게 접촉하는 이웃 부족인) 인디언 투피가 쓰는 대명사를 서툴게 사용한다. 

그들 말에서는 동사와 명사가 특별히 나뉘지 않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 규준이 여기서는 대체로 불필요한 듯하다. 예를 들어, 피라하 부족은 ‘하나’라는 개념을 모른다. 오소리와 까마귀, 개들도 아는 것을 피라하 부족은 모른다. 그들에겐 이게 하도 복잡한 철학 같은 것이어서, 이게 무엇인지 설명하려는 사람은 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만큼 품을 들여야 한다. 

 

피라하 부족의 부부와 아기

 

그들은 숫자와 셈을 모르며, 모든 것을 ‘조금/약간’과 ‘많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처리한다. 그들에게 피라냐 두세, 서너 마리는 ‘약간’이며 여섯 마리는 확실히 많은 것이다. 그러면 피라냐 한 마리는 뭔가? 이건 그냥 피라냐이다. 

(그들에겐 셀 필요가 없는) 피라냐를 왜 세어야 하는지 설명하기보다는 작시법을 설명하는 게 차라리 더 쉽다. 따라서 피라하 사람들은 자기네가 소수 부족이라고 절대 믿지 않는다. 그들 보기에 300명은 당연히 많은 것이다. 그들에게 70억 인구를 얘기해봤자 쓸모가 없다. 70억 역시 그냥 많은 것이니까. 너희도 많고 우리도 많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야. 

 

예의 차리지 않는 사람들 

 

“안녕”, “어떻게 지내?”, “감사합니다”, “잘 가”, “미안해요”, “고마워요” 같은 말을 문명사회 사람들이 쓰는 까닭은 서로 상대에게 좋은 태도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피라하 부족은 그런 말을 하나도 쓰지 않는다. 

그런 게 하나 없어도 그들은 서로 아끼며, 주변에서 그들을 보면 다들 반가워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밀히 말해 예의나 정중함이란 상호불신의 부산물이다. 그런데 에버렛에 따르면, 상호불신이란 피라하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감정이란다. 

 

모욕감이나 원한을 모르는 사람들 

 

수치심이나 죄책감, 모욕감, 원한이 무엇인지 피라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만약 하아이오하아아가 물고기를 강물에 떨어뜨렸다면, 이건 나빠. 물고기가 없으니 점심도 없어. 그러나 하아이오하아아가 뭔 잘못이람? 물고기를 강물에 떨어뜨렸을 뿐이잖아. 만약 어린 키이히오아가 오키오히아아를 밀쳤다면, 이건 나빠. 왜냐면 오키오히아아의 다리가 부러져서 치료해야 하니까. 그러나 이건 그런 일이 일어났기에 생긴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피라하 부족은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아

 

여기서는 어린애들을 나무라지 않고 창피 주지도 않는다. 화톳불의 잉걸덩이를 쥐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아이들한테 알릴 수 있고, 강가에서 뛰노는 아이를 강에 빠지지 않도록 붙잡긴 한다. 그러면서도 피라하 부족은 욕하거나 꾸중할 줄을 모른다.

만약 젖먹이가 엄마 젖을 먹지 않더라도 아무도 억지로 먹이려 들지 않는다. 먹지 않는 이유를 아기가 더 잘 아니까. 만약 아기 낳으러 강으로 간 여인이 낳지 못하고 사흘째 숲에서 통곡한다면, 실제로는 출산이 아니라 죽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굳이 거기로 가서 여인을 말릴 이유가 없다. 그래도 남편은 거기로 갈 수 있는 것이, 갑자기 듬직한 설득 근거를 꺼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백인이 왜 상자에 이상한 철제 물건을 담아 거기로 달려가려고 하는 거야? 

 

다른 것을 보는 사람들 

 

피라하 사람들에겐 의식이나 종교적 관념이 극히 적다. 그들은 자기네가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숲의 자식임을 알고 있다. 숲은 신비로 가득해… 아니, 그게 아니야, 숲은 법칙과 논리와 질서가 없는 우주야. 숲에는 수많은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이 다 거기로 간다. 그래서 숲이란 무서운 곳이다. 

 

그러나 피라하 부족이 아는 두려움이란 문명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결이 다르다. 뭔가 두려워한다는 것이 문명인에겐 나쁜 일이다. 그런데 피라하 사람들은 두려움을 어떤 매력이 담긴 아주 강한 감정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두려워하기를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젠가 에버렛이 아침에 잠을 깨어 보니 마을 사람들이 다 강가에 모여 있었다. 부족에게 뭔가를 경고하고 싶은 영혼이 거기에 왔다는 것이다. 강변에 나와 에버렛이 본 장면은… 사람들이 텅 빈 공간을 둘러싼 채 겁에 질려 눈을 휘둥그레 떴으면서도 활기차게 그 빈 공간과 대화하고 있더라. 에버렛이 “거긴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안 보이는걸!” 하고 말하자, 영혼이 피라하 부족에게 온 것이기에 그에겐 당연히 안 보인다는 대답이 나왔다. 만약 필요하다면, 그에게 혼령이 개인적으로 올 것이라 했다. 

 

신이 없어도 사는 사람들 

 

지금까지 나온 얘기로 인해 피라하 부족에게는 선교가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유일신이라는 생각이 그들한테는 겉돌았어. 왜냐면 앞에서 말한 대로 그들은 ‘하나’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누군가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메시지 역시 그들에겐 의아스럽기만 했다. ‘아, 저렇게 덩치 좋고 똑똑해 보이는 사나이가 사람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모른단 말이야?’

 피라하 언어로 번역된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도 썩 설득력 있게 보이지 못했다. ‘시대’나 ‘시간’, ‘역사’라는 개념이 그들에겐 허튼소리이다. 사악한 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아주 선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 그들은 에버렛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 사람을 직접 보았어? 아니라고?

그러면, 이 그리스도를 본 사람을 당신이 보았나? 그것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그때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야?

 

피라하 사람과 에버렛이 강에서 촬영

 

이 체구 작고 허기를 달고 살며,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서두르는 법이 결코 없으며 늘 웃음 짓는 이들과 어울려 살면서, 에버렛이 어떤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이란 성서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이며, 종교는 우리를 더 좋거나 더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몇 해 지나서야 그가 또 깨달은 게 있었으니… 

‘이들을 내가 가르칠 게 아니라, 내가 이들한테서 배워야 해.’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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