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 팜 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어떤 이탈리아 운전사의 애정 무용담에 관해 아버지가 입에 올리곤 하던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노인에게는 사람들이 얘기를 늘어놓게 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어. 하인이며 일꾼들을 포함해 어떤 사람이든. 월터는 그런 재주를 부러워했다).
그 운전사 말대로라면, 어떤 여인들은 옷장과 비슷하단다. Sono come cassettone. 그 일화를 노인이 얼마나 맛깔나게 들려주곤 했던가! 옷장들이 아주 예쁠 수 있지만, 예쁜 옷장을 포옹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한데, 월터 생각에 마저리는 썩 예쁘지도 않았다). 그 운전사가 그랬다고 하지. “아니요, 좀 못생겼다 해도 다른 부류의 여인들이 더 낫습죠. 내 여자가 바로 그런 부류에요. 그녀는 거품 내는 도구, 진짜 달걀 거품기랍니다.”
그리고 노인은 쾌활하며 심술 궂고 늙은 사티로스처럼 모노클 뒤편에서 눈을 반짝였다. 뻣뻣한 옷장, 아니면 기민한 거품기, 어떤 게 더 낫겠어?
월터는 자신의 취향도 그 운전사와 같은 것임을 인정해야 했다. 어쨌든 (‘진정한’ 사랑이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성생활로 무뎌질 때마다) 예쁜 옷장 같은 여인들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았다. 이론적으로 멀리서 보면, 순수성과 선함, 정제된 영성은 우러를 만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접할 때, 그런 것은 매력이 덜했다. 그리고 매력적이지 못한 누군가한테서 나오는 것은, 그게 헌신이든 듣기 좋은 찬사이든 견딜 수 없었다. 그 참을성 있고 순교자 같은 차가움 때문에 마저리를 그가 혼란스럽게 증오했으며, 동시에 돼지 같은 호색 때문에 자신을 비난했다.
그가 루시를 사랑하는 건 미친 짓이고 수치스럽지만, 마저리가 핏기 없고 절반 죽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달리 변명도 필요 없이 즉시 합리화가 됐다. 그래도 결국엔 질책을 더 많이 했다. 그의 관능적 갈망은 저급하고 비열했다. 달걀 거품기와 서랍장이라니, 그런 분류보다 더 불쾌하고 저열한 것이 또 뭐가 있겠나? 아버지의 축축하고 육욕에 찬 웃음소리가 흉중에서 들렸다.
끔찍해!
월터의 의식적 삶은 전부 아버지와 반대로, 아버지의 흥겹고 경솔한 호색과 반대쪽을 지향해 왔다. 의식적으로 그는 늘 어머니 편에, 순수함과 정제됨과 영혼의 편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피는 최소한 절반이 아버지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저리와 이태 동안 살면서 그는 차가운 미덕을 의식적으로 싫어하게 됐다. 그걸 의식적으로 미워했다. 그와 동시에 그런 반감이며 자기의 짐승 같은 관능적 욕망이며 루시에 대한 사랑을 수치로 여기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오오, 마저리가 그를 좀 편안하게 놔두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가 한사코 그에게 강요하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응답을 그만 요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가 그렇게 겁나게 헌신적이기를 그만두기만 한다면! 그는 그녀에게 우정을 줄 수 있었다. 그녀의 선함과 친절함, 충실함과 헌신 때문에 그녀를 정말 좋아했으니까. 그녀도 우정으로 갚아 준다면 그는 기쁠 것이야. 그러나 이 사랑은 숨 막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다른 여인과 싸운다고 상상하면서 자신의 도덕적인 차가움을 깨고 열렬한 애무로 그의 사랑을 되돌리려 했을 때, 오오, 그건 끔찍했어, 정말 끔찍했어.
월터의 생각이 이어졌다. 게다가 그 무겁고 둔감한 성실함 때문에 그녀는 정말 따분해. 교양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것 때문에, 마저리는 좀 어리석어. 물론 그 교양은 정말 괜찮았어. 그녀는 책을 많이 읽고, 읽은 것을 다 기억했어. 그러나 읽은 것을 이해는 했을까? 이해할 수나 있었을까? 온종일 말수가 없다가 가끔 꺼내는 소견, 문화적이고 진지한 소견들이란 얼마나 무거우며 유머나 이해가 얼마나 적은가!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외려 현명했다. 다듬지 않은 대리석에 위대한 조각상이 들어 있듯이 침묵에는 지혜와 기지가 가득 잠재해 있었다. 침묵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 않는다.
마저리는 상대방 얘기를 공감하여 경청할 줄 알았다. 한데 그녀가 침묵을 깰 때, 대화에 꺼내는 말들은 절반이 인용이었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심오한 사유와 화려한 문구들을 버릇처럼 외웠기 때문이다. 침묵과 인용들 이면에 무겁고 가엾을 정도로 이해력 떨어지는 어리석음이 숨어 있음을 월터가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걸 알아보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가 칼링을 떠올렸다. 술주정뱅이에다 자칭 신앙인. 미사 예복이며 성인들이며 원죄 없는 수태를 허구한 날 늘어놓지만, 정작 본인은 술병이나 끼고 사는 역겨운 변태. 그자가 그렇게 혐오스럽지 않았다면, 마저리를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그럼, 어떻게 됐을까? 월터가 자유로운 자신을 상상했다. 그는 동정도 하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았을 것. 칼링이 저지른, 한 역겨운 장면 이후 마저리의 붉게 부어오른 두 눈을 월터가 떠올렸다. 더러운 짐승 같으니!
‘한데 나는 어떻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문을 닫자마자 문 뒤에서 마저리가 울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칼링은 위스키 핑계라도 댔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나이다.(5) 술주정뱅이 칼링과 달리 그 자신은 늘 정신 멀쩡하지 않았던가. 한데 지금 마저리가 울고 있다.
“난 돌아가야 해.” 그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발길을 재촉해 거의 뛰다시피 했다. 그건 자기 양심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욕망을 향한 달음질이었다.
“난 돌아가야 해, 돌아가야 해.” 그가 그녀를 너무 불행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녀를 증오하면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담뱃가게 곁을 지나칠 때 진열장 곁에 선 사람이 갑자기 뒷걸음질 치다가 월터와 세게 부딪쳤다.
“미안합니다.” 그가 기계적으로 말하고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서둘렀다.
“왜 밀고 그러쇼?” 그자가 등 뒤에서 사납게 소리쳤다. “눈은 뒀다 뭐해. 더비 경마에서 우승이라도 한 거야?”
거리에서 빈둥거리는 사내애 둘이 야유하는 웃음을 사납게 터뜨렸다.
“실크해트나 쓰고 다니면 다야!” 남자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얄미운 마음에 계속 쫓아왔다.
제대로 대응하자면 돌아서서 그자가 준 것보다 더 후하게 되돌려줬어야 할 것이다. 아버지라면 그런 자를 말 한마디로 박살 냈을 텐데. 그러나 월터는 재빨리 벗어날 줄만 알았다. 그런 충돌을 꺼렸고 바닥 인생들을 겁냈다. 사내의 욕설이 희미해졌다.
정말 역겨워! 그가 몸서리를 쳤다. 생각이 마저리에게 돌아갔다.
“왜 합리적으로 처신하지 못할까?” 그가 중얼거렸다. “그냥 합리적으로 말이야. 뭔가 하는 일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녀에겐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았고, 그게 문제였다. 그를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사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의 잘못이 있었다. 그녀한테서 직장 일을 빼앗고 오로지 그에게만 열중하게 만든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녀는 실내장식 상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건 켄싱턴에 있는 기품 있고 예술적인 아마추어 실내장식 업체 가운데 하나였다. 램프 갓과 거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젊은 여인들의 친근한 어울림, 또 무엇보다도 사장인 콜 부인에게 쏟는 헌신 따위가 비참한 혼인 생활에 처한 마저리에게 보상이 됐다. 그녀는 칼링과 동떨어져 자신의 작은 세계를 만들었다. 그건 여학생 기숙사와 비슷한 여자들 세계인데, 거기서는 의상이며 상점들에 관해 얘기하고 가십도 듣고 여학생들 표현대로 사감 선생을 ‘열렬히 사랑하고’, 휴식 시간에는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며 예술이라는 명분에 공조한다고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 걸 다 내팽개치라고 속삭인 사람이 바로 월터였다. 하지만 그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콜 부인에게 헌신하고 그녀를 감상적으로 ‘열애’하며 얻는 행복감이 마저리에게는 칼링과 사는 비참한 생활에 대한 보상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칼링이 더 나빠지면서, 그와의 혼인 생활을 콜 부인도 더 이상 보완해 줄 수 없게 됐다. 월터는 그 부인이 제공할 수 없고 또 제공하려 들지도 않았을 것을 제안했다. 즉, 피난처와 보호와 금전적 지원.
게다가 월터는 사내였고, 사내란 전통적으로 사랑하게 돼 있었다. 심지어, 월터가 마저리를 두고 최종 결정 내린 것처럼, 그녀가 남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여자들 모임에만 자연스레 어울리는 때도 그랬다. (이것도 문학의 영향이야! 그가 예술이 인생에 행사할 수 있는 파괴적 영향에 대한 필립 퀄즈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 그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녀가 그에게 줄기차게 말했듯이 여느 남자들과는 ‘다른’ 남자였다. 그 ‘다르다’는 규정을 그가 그때는 듣기 좋은 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그가 의아하게 여겼다. 어쨌든, 그녀는 당시 그가 여느 남자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으며, 두 세계의 가장 좋은 것을, 즉, 아직 남자가 아닌 남자를 얻을 수 있었다. 월터의 설득에 넘어가고 칼링의 만행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그녀가 작업실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건 월터가 혐오하던 콜 부인을 떠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월터가 보기에, 그 부인은 여성을 괴롭히고 노예처럼 부리고 피를 빨아먹는 귀신이었다.
“당신은 아마추어 실내용품 제작자로 일하기엔 정말 아까워요.” 그가 마저리에게 찬사를 늘어놓곤 했다. 당시에는 그녀의 지적 능력을 정말 믿었다.
그녀는 그의 문학 작업을 어떤 식으로든 돕고, 또 자신도 글을 써야 했다. 그리고 그의 영향 아래 에세이와 단편을 쓰게 됐다. 그러나 그것들은 썩 좋지 못했다. 처음엔 그가 격려하다가 그녀의 글들에 좀 뜨악하게 대했으며, 나중엔 아예 언급도 안 했다. 그 부자연스럽고 무익한 작업을 마저리가 곧 내팽개쳤다.
그러고 나서 그녀에겐 월터밖에 없었다. 그가 그녀의 존재 이유가 됐고, 그녀의 인생 전부가 기대는 초석이 됐다. 그 주춧돌이 이제 그녀 밑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를 좀 평온하게 내버려 두면 얼마나 좋을까!’ 월터가 생각했다.
그가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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