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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금 순간의 힘] 실전 체득 16. 기다림과 기대에서 벗어나기 (마인드의 비생산적 상태)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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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의 심원한 의미 
  

현존 상태는 어떤 의미에서 기다림에 비교할 수 있다

 

예수는 기다림의 비유를 자주 이용했다. 

이 기다림은… 

앞에서 얘기한 대로 현재를 부정하는, 지루하거나 불안한 종류의 기다림이 아니야. 

이 기다림은… 

주의가 온통 어떤 미래 시점에 가 있으며 현재를 어떤 성취의 장애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그런 기다림이 아니야.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기다림이 있으니, 여기엔 총체적으로 예리한 (깨어 있는) 의식이 필수다. 

뭔가가 어떤 순간에든 일어날 수 있는데, 완전히 깨어 있지 않고 완전히 고요하지 않다면 그 뭔가를 놓치고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설파하는 종류의 기다림이다. 

이 상태에서는 모든 주의가 (눈길이, 관심이) <지금> 순간에 집중돼 있다.

몽상이나 생각, 기억, 기대 따위에 주의 돌릴 여지가 하나도 없다.

이 기다림에는 긴장도 두려움도 없고 오로지 생생하고 예리한 현존만 있을 뿐이다. 자신의 온 <존재>와 함께, 신체의 모든 세포와 함께 실재한다.

이 상태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지니는 나’나 인격은 더 이상 거의 없다.

 

하지만 가치 있는 것은 하나도 잃지 않는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아니,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된다.

아니, 우리가 진정한 본연의 자신이 되는 것은 오로지 이 순간뿐이라고 하는 게 더 옳겠다.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인처럼 되어라” 

하고 예수는 말한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하인은 몰라. 그래서 주인이 도착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줄곧 깨어서 경계하며 침착하게 만전을 기한다. 

예수는 또 이런 비유를 든다. 

 

신랑감의 도착을 기다리는 예비 신부들


열 명의 처녀가 신랑감을 맞이하러 나갔다. 

저마다 등잔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다섯은 우둔하여 기름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슬기로운 처녀 다섯은 등잔과 함께 기름도 따로 그릇에 담아 왔다. 

 

신랑감이 오는 길에 지체되는 바람에 처녀들이 기다리면서 졸다가 잠이 들었다. 

이미 한밤중이 되어서 누군가가 

“저기 신랑이 온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처녀들이 부스스 일어나 제각기 등불을 챙기는데, 등잔불이 이미 꺼져 가고 있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준비한 기름을 붓고 다시 불을 붙이자, 우둔한 처녀들은 그제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기름을 좀 나눠 다오” 

하고 부탁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우리와 너희 등불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너희가 기름을 사러 갔다 오는 게 차라리 더 낫겠어” 

하고 대답했다. 


우둔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했다. 

준비하고 기다리던 처녀들이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 방으로 들어간 뒤 문이 쾅 닫혔다. 

그 순간 우둔한 처녀들이 달려와서 

“나리, 나리, 문 좀 열어 주세요” 

하고 간청하였으나 신랑은 

“아니, 못 열어 주겠어. 난 너희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며 외면하였다. 

이건 부주의한 (무자각적인) 여인 다섯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에겐 

자기 등불을 (현존을) 

계속 켜 놓을 기름이 (의식이) 부족해서 

결국 신랑을 (<지금> 순간을) 놓치고 

혼인잔치에 (깨달음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다섯과 대조적으로 다른 다섯의 슬기로운 여인들 등잔에는 

기름이 (깨어 있는 의식이) 충분했다. 

이 복음서의 작자들조차 이 비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걸 기록할 때 오해와 왜곡이 처음 스며들었다. 

그 뒤 잘못된 해석 때문에 진정한 의미가 완전히 상실됐다. 

이건 세상 종말에 관한 비유가 아니라 심리적 시간의 종말에 관한 비유인 것이다. 

이런 비유들은 에고 마인드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의식 상태에서 삶이 가능함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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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쩝쩝대거나 짝짝거리는 소리를 참기 힘들다면… 

- 당신은 비상한 머리를 지닌 사람일 수 있다. 

 

꿀꺽꿀꺽 삼키고, 쩝쩝거리고, 후루룩 들이키고, 짝짝 씹어대고, 홀짝홀짝 마시고, 신발을 찍찍 끌고, 우두둑 손가락 관절 꺾고, 숨을 시근거리고, 코를 훌쩍이고, 탁자 두드리고, 손톱으로 칠판 긁고… 

(그 외에도 숱하게 있겠으나) 이런 소리를 들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나? 한두 번이 아니라 늘 그렇다고? 

 

소음에 괴로워하는 여인, Misophonia.

 

이 포스트를 읽는 어떤 이들에게는 저런 소리 한두 가지로도 짜증이 밀려들어 폭발하기에 충분하다. 만약, 이게 정말이고, 당신이 (나도 그런 편인데) 이런 불행한 사람 축에 든다면… 여기 새로운 소식이 있으니, 당신이 겪는 건 미소포니아(misophonia)라 불리는 정신장애이다. 

‘misophonia’라는 용어를 문자 그대로 정의하자면, 소리에 대한 혐오나 증오라 할 수 있겠다. 타임지는 

“씹거나 먹고 거칠게 호흡하고 심지어 볼펜 딸깍거리는 등의 소리에 증오를” 유발하는 뇌 이상이라고 전한다.    

하지만 실제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미소포니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귀에 들어오는 소리를 다 못 견디는 건 아니며, 자기도 모르게 증오가 일어나는 소리가 따로 있다. 

이 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들은 지금 우리의 얘기를 이해하고 실감할 것이다. 즉, 신경 건드리는 소리를 듣게 되면, 예를 들어 뭔가에 집중하면서 그 소리를 무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소리에 집착하게 되면서, 그 소리를 내는 누군가에게 냅다 소리치고 싶어진다. “당장 그만둬!” 

 

혹시 당신도 그런가? 만에 하나 그렇다면, 나쁜 소식 외에 또 good news가 있으니… 이건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가 훨씬 더 좋음을 증명하는 별난 습관 중 하나일 뿐이다.

 

영국 뉴캐슬 대학의 연구팀이 다양한 소리를 내면서 미소포니아가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의 MRI 뇌 스캔을 조사했다. 소리는 (빗소리나 물 끓는 소리처럼) 중립적이거나 (아기 울음이나 사람이 비명 지르는 등) 불쾌한 것 혹은 (숨소리나 쩝쩝대며 먹는 등) ‘트리거 사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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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vukipro.com에서 인용. 


그 결과, 연구자들은 미소포니아 환자들이 ‘트리거 사운드’를 듣자 뇌 활동이 크게 달라졌음을 지적했다.
알고 보니, 미소포니아가 있는 사람들은 뇌 전두엽 발달에 차이가 있어서, 이로 인해 뇌가 트리거에 거칠게 반응하더라.
그런 사람들은 또 땀을 흘리고 심박수가 높아지기도 한다. 
그런 만큼, 미소포니아 증세에 시달린다 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연구 결론이다.

 

단, 지금 우리의 얘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즉, 사실상 모든 교양 있는 사람들이 특정한 소리에서 겪는 작은 짜증에 관한 게 아니다. 우리의 얘기는…

몇몇 소리가 어떤 사람들에게 지독히 강한 감정을 일으키고, 사회생활에 극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정신장애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식탁에서 누군가가 음식을 입에 넣고 심하게 쩝쩝거리면 나 같은 경우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는 편이다.

그래서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과 담소에 끼어들지 못하고 음식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가 된다. 그건 왜냐면…

“거, 입 좀 다물고 소리 없이 씹으면 안 되나!”

내 목구멍에서 막 기어 나오려는 소리를 억누르는 데 에너지가 거의 다 쏠리기 때문이다. 

 

쩝쩝거리며 스파게티 먹는 남자애 곁에서 인상 찌푸리는 소녀

 

이런 장애는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에게 심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느닷없이 다툼이 일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가 밥과 반찬을 입에 넣고 쩝쩝거리는 소리 하나 때문에… 서로 얼굴 찌푸리며 소리 지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런 정신장애가 있을 때, 거의 모든 일터에서 얼마나 힘들지도 상상해 보자.

직장 환경이 당신에게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불안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당신을 한없이 자극하는 소리를 내는 누군가의 곁에 매일 앉아 있기란 지독한 고문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당신의 집중력이 떨어질 건 거의 분명하고, 심지어 작업능력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정신장애를 위한 치료제 같은 게 있을까? (망망대해 무인도로 옮겨가는 것 말고!)

미소포니아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침묵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들지 않고 자신도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러다가 용기 내어 그런 얘기를 꺼내면, 지나치게 예민한 게 아니냐고 비난받는다. “그런 자잘한 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참아야 해. 뭐, 그리 어린애처럼 구나.”

 

그들도 정말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게 과히 쉽지는 않다.

만약 당신이 미소포니아에 시달리는지 확실히 모르겠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라. 

다른 사람들이 내는 어떤 소리를 듣는 것이 하도 고통스러워서, 욕을 퍼붓거나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그 소리를 멈추게 하고 싶은 적이 있었나?’ 

이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한다면...

미소포니아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자신에게 무슨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건 사실 당신 머리가 비상하게 좋다는 신호이니까!

 

noise,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

 

찰스 다윈이나 안톤 체호프, 심지어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천재들이 바깥 소음에 하도 예민해서 생산적으로 작업하기 위해 귀마개를 해야 했으며, 프루스트 경우엔 서재 벽에 방음 장치를 할 정도였다. 

노스웨스턴대학의 연구자들이 실행하고 1백 명 넘게 참여한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감각 기관을 통해 몸으로 들어오는 특정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의 부재가 이른바 창의성과 아주 자주 결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지긋지긋하게 짜증 나는 상태에서 벗어날 치료제가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알약은 없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면 더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다.

친지나 친구, 동료들에게 어떤 소리만 들으면 견딜 수 없노라고 설명하고, 가능한 한 그런 소리를 내지 말아 달라고 청하라.

그들이 당신 얘기를 못 믿는다면, 이 포스트를 내보여도 좋겠다. 

만약 작업 환경에 당신을 자극하는 소리로 가득하다면, 다른 부서로 옮기는 방안을 책임자와 상의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최면을 이용하여 이런 증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에크하르트 톨레는 내적 에너지 몸체를 순수하고 투명하게 만듦으로써 외부의 소음이나 잡음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방법을 이용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순수하고 투명한 내적 에너지 몸체 29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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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계

  수용하고 승복하는 연습  

 

물러서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함은… 

치유에 필요한 올바른 진단

 

에크하르트 톨레는 물러서고 승복하는 상태를 무관심과 혼동해선 안 된다고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뭔가를 괴로워하기에 진저리나거나 뭔가에 맞서다가 지칠 때 우리는 “난 두 손 들었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이젠 지겨워졌어‘ 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사물의 자연적인 과정에 승복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무관심은 (혹은, 냉담은) 은밀한 저항과 똑같은 것이다. 

 

무관심이나 냉담은 은밀한 저항이다.

 

무관심 역시 저항의 한 형태인데, 단지 위장된 것일 뿐이에요.

<지금> 순간에 있으면서 사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승복한다는 것은…

일어나는 것에 무관심해진다는 게 절대 아닙니다. 외려 정반대에요. 즉, 무관심이란 현재 순간에서 벗어남이요 현재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음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에 무심할 수 없어요.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면…

고통은 더 이상 없게 됩니다. 고통은 불만과 불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고통이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자각의 특별한 상태는 그렇게 무관심이나 고통과 양립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특별한 자각 상태란 무엇인가?

바로 승복하는 상태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우리가 진정 승복할 때면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평온과 선명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해요. 마치 우리 의식이 내면의 빛으로 갑자기 밝아진 것처럼 말이죠. 

이건 <존재>의 에너지가 우리한테 밀려와서, 그 덕분에 우리가 눈을 뜨고 더 높은 수준에서 진동하기 시작한다는 뜻이에요. 바로 이 때문에 깨달음이 승복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에요.

 

사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승복하지 않고서는 깨달음이 불가능하다. 

 

승복이란 완전히 내적인 상태이자 의식의 상태라는 점에 다시금 주목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승복하면서도 외적 수준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여러 목표를 달성하고 자기 이익을 지킬 수 있습니다

 

꽃이 피면 지는 것처럼 사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는 승복할 필요가 있지만, 나쁜 뭔가에 승복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누군가가 하라고 요구한다 해서, 따를 의무는 없어요. 우리한테는 “아니요”라고 말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해도, 불필요한 해석과 판단과 부정적 감정 없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승복하는 데 어떤 내면 자세가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더 쉽게 이해되게끔 이런 비유를 들어 볼까요.

이를테면, 울창한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칩시다. 이럴 때 흔히 보이기 쉬운 반응은…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에 저항을 하지요.

그래서 당황하여 이쪽저쪽으로 오가다가 결국 한층 더 낯설고 외진 곳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더 버둥댈수록, 올바른 길을 택할 가능성은 더 줄어듭니다.

 

그러나 만약 차분하게 마음 가라앉히고 “음, 내가 길을 잃었군. 이게 사실이야. 이건 현실이야” 하고 자신에게 말한다면…

기정사실이며 실제 현실을 대하는 만큼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겠지요. 

이제는 현실 부정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만큼, 그 다음에는 만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자신을 맡길 수 있게 될 겁니다

패닉 상태에 빠져 허둥대는 대신 자신을 추스르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진짜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면… 아마도 멀지 않은 곳에서 길을 발견하거나, 혹은 태양이나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삼거나, 혹은 자신의 직관이 가리키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겠지요. 

 

한마디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제대로 진단할 때 비로소 올바른 치료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나에게 어떤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동안에는…

치료할 까닭이 없으니, 당연히 치료하지도 않아요. 병은 더 깊어지는데 말이죠.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승복(承服)의 의미입니다. 

 

승복한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잘 이해하고 인정하고 따른다는 것은)

“됐어, 이놈의 병 때문에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지. 난 치료받지 않고 그냥 살래”

하는 뜻이 아니에요. 

그걸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래, 난 병들었어. 이게 사실이야. 앞으로는 이런 사실을 참작해서 행동할 거야.’ 

 

운명에 순종함을 승복하는 자세와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할 수 없지, 이렇게 된 바에야 여기서 살래” 하고 말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것은 승복이 아니라, 운명에 맥없이 복종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싸움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진창에 빠졌다 해서, “이제 여기서 평생 살 거야. 이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야” 하고 말할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이 경우에 진짜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그래, 난 진창에 빠졌어. 이게 현실이야” 하고 인정한 뒤, 그 현실을 기점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서는 것이겠지요. 그때 비로소 우리는 만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합류하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승복하고 물러선다 해서 세상이 달라지고 상황이 바뀌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과 상황을 바꿀 수 있게끔 바로 우리 자신이 내면에서 변모한다는 것이다. 

 

  실습 40  

 

살면서 어떤 상황을 바꾸고 싶어 한 적이 있었나요? 

그런 상황을 어떤 것이든 떠올려 보십시오.

 

예를 들어, 금전 문제나 주거 문제라든지, 아니면 복잡한 대인 관계에서 탈출이나 무질서한 생활 다잡기 등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불만 품는 상황이 다 해당되겠어요.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느껴지고 나타나나.

 

현재 순간에 들어가서 자신의 <참된 나>와 연결하고 <내면의 목격자> 상태로 들어선 뒤, 현 상황에 불만과 저항이 있다면(!) 그게 어떻게 느껴지고 나타나는지 추적해 보세요. 

 

예를 들어, 

‘뭔가에 화가 나는데, 왜 참아야 하지?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 같아.’ 

‘그 일이 잘 안 풀려서 맥 빠지네.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있어.’

‘음, 뭔가 삐딱한 이 상황에 좀 더 공격적으로 맞서서 바로잡아야겠어.’ 등등.  

 

하지만 그런 생각이나 감정은 다 마인드와 그것이 만든 <거짓된 나>의 술책임을 깨달아야겠지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지금 여기에 있자. 이 순간에 존재하자. 있는 것만 보자.” 

 

더 좋은 쪽으로 바꾸고 싶은 상황에 손전등을 비추고 있다고 상상하세요. 

이건 당신의 깨어 있는 의식의 광선입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이 불빛 아래 드러나는 게 진짜 있는 것이야. 이게 실제이고 현실이야. 나는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받아들인다.”

 

불만에 차고 저항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현재 순간이라는 토대 위에서 마음속으로 그려 보십시오. 

‘불쾌함이나 저항, 부정적인 감정을 없앤다면, 이 상황에서 난 어떻게 행동할 수 있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까?’ 

 

점검한 뒤 어떤 가능성이 나타난다면, 그렇게 움직이면 됩니다.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지 말고 결과에 집착하지도 말고, 한 번에 한 가지 행동에만 집중하면서 한 단계씩 나아가세요. 

그리고 이 전체 과정에서,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상태에 계속 머무르세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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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몸체> 변환하기  

 

고통의 몸체가 부정성으로써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

 

만약 앞의 실습을 수행하면서 어떤 저항이 들었다면…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우리가 이미 얘기했다시피, 고통의 몸체는 노출되는 것을 겁내기 때문입니다. 

그건 우리를 무자각 상태로 몰아가며, 심지어 우리한테 어떤 고통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게 만들려 할 겁니다. 

 

고통의 몸체에 지배돼 살던 나

 

어떤 고통이 우리한테 실제로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걸 몇 해 동안 끌어안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 진짜 충격일 수도 있어요. 그런 자각 자체가 종종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해요. 

그래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왜냐하면, 고통의 몸체가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게 내 안에 있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치유도 가능하니까요.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아, 내가 예전에는 이 고통의 몸체가 지시하는 대로 살고 행동했구나’

하면서 자책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정말 몰랐으니까요. 

 

<고통의 몸체>에 지배돼 저지른 행동을 우리가 책임질 수는 없어요. 

예전에 행한 것은 전부 그것의 행위요 결정이요 반응이었습니다. 

그것의 횡포에 저항할 힘이 우리한테 부족했을 뿐이에요. 

 

그러므로 자신을 꾸짖어선 안 됩니다.

자책과 자기비판에 빠지지 말아요.

죄책감을 안고 살면 안 돼요.

예전엔 우리가 본연의 삶 속에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고통의 몸체가 우리를 지배한 것이라는 점만 깨달으면 됩니다. 즉,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의 몸체가 선택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책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 상황에서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젠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진정 존재하는 사람이 됐어요.

자기 자신 안에 있고 현재 순간에 존재해요. 

이제 우리는 일어나는 것을 전부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 맞추어 의식하는 자각 상태에 있어요. 곧, 이젠 우리의 <참된 나>가 우리 삶에서 결정하고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렇게 하기 위한 힘이 이젠 우리한테 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우리가 삶에 존재하지 않고 힘이 없음을 이용하여 고통의 몸체가 선택하고 결정했다면,

이젠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한테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을 주는 것이 바로 현재 순간이에요. 

현재 순간에 있을 때, <존재> 자체와 그 힘에 접근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리고 이 힘으로써 고통의 몸체를 이겨내고 과거의 고통들에 사로잡힌 현실이 아니라 자신에게 새로운 현실을 만들 수 있어요. 

 

당신 삶에 있던 극적인 사건이며 불쾌한 일이며 문제는 전부 고통의 몸체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건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신을 비슷한 불행으로 잇달아 끌어들일 수 있다. 

 

전형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볼까요. 

아버지가 엄마에게 못되게 굴고 술독에 빠져 살면서 딸을 갖가지로 학대하며 폭력까지 휘두른 가정에서 한 소녀가 살았다면…

성인이 됐을 때 이 여성의 아픔덩어리는 아버지와 비슷한 파트너를 선택할 개연성이 아주 높아요.

만약 그녀가 이 아픔덩어리의 에너지를 자각의 빛으로 바꾸면서 그것과 분리되지 않는다면, 유년기에 시작된 일련의 고통이 이후에도 계속될 겁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낯선 (괴물 같은) 에너지에 예속되고 지배받았기 때문에 본연의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이제 우리는 그런 것이 반복되지 않게 할 힘을 갖추었어요. 

 

고통의 몸체가 언제 또 부정적인 감정을 들쑤셔서 우리를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 끌어들이는지 알아차리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런 일이 생기겠다 싶으면 즉각 행동과 생각을 멈추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됐어, 그만. 여기에 끌려드는 건 내 의지가 아니야. 난 다른 건 선택할래.” 

 

그렇게 자각된 자세를 통해 우리는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아주 빨리 바꿀 수 있습니다. 

 

  실습 34  

 

살면서 어떤 불쾌한 일이 생겼거나 뭔가 실패한 상황을 몇 가지 떠올리세요. 

그런 상황을 우선 서너 가지라도 들어 보세요. 종이에 간단히 적어도 좋아요. 

그리고 그 각각의 상황에 앞서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이 발생하기 전 자신의 상태를 기억하는 거예요. 

기분이 어땠는지, 어떤 생각과 감정에 휩싸여 있었는지 등을. 

 

아, 그래. 안 좋은 상황에 빠지기 전에 나에겐 부정적인 감정들이 상당히 컸구나

알게 됐을 거예요. 이를테면, 두려움이나 초조, 긴장, 짜증, 적대감, 뭔가에 대한 저항 같은 것이었어요. 

그 결과,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려 원치 않는 사건들에 뜻하지 않게 빠져들었어요. 

바로 이 파도에 떠밀려 불상사나 실패나 문제에 부닥치게 된 것이었지요

 

 

일련의 불상사가 생기기 전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잘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대답해 보세요. 

 

- 그때 나는 무엇을 하거나 하려 하는지 정말 잘 알고 있었나?

- 그때 난 자제할 수 있었나?

- 어떤 걷잡을 수 없는 힘이 나를 마구 내몬다는 느낌은 없었나?

-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하고 나중에 자신에게 말하진 않았나? 

 

만약,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에 휩쓸려서 바람직하지 못한 뭔가에 끌렸다면…

그건 고통의 몸체에 조종당했다는 표시입니다.

그것 때문에 자각을 잃고,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행동을 한 것이에요.

 

어쩌면, 당시에는 우리한테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달리 행동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사실, 선태의 여지가 없었던 건 맞아요. 왜냐면 그 상황에서는 우리의 <참된 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고통의 몸체가 대신 선택한 거예요. 

그런데 고통은 새로운 고통을 낳기만 할 뿐이지, 다른 것은 전혀 낳을 수 없어요. 

 

그 상황을 다 이제 <참된 나>와 <내면의 증인> 입장에서 차례로 다시 살펴보세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세요. 

판단과 감정의 프리즘을 거치지 말고 선입견 없는 관찰자의 시각으로 보세요.  

 

그 각각의 상황에서 원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을 행동 버전을 몇 가지 찾으세요. 

자신의 <참된 나>가 이끌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실제로 더 좋게 선택할 길이 몇 가지 있었음을 알게 됐을 거예요. 

단지 <거짓된 나>의 눈으로 보는 동안엔 그 길들이 보이지 않았을 뿐, <참된 나>의 눈으로 보면 반드시 보게 될 겁니다. 

 

만약 지금 삶에서 긍정적인 선택을 못 보는 상황이 있다면, 그것도 <내면의 증인> 관점에서 살펴보세요.

그리고 <고통의 몸체> 때문에 비생산적이며 해로운 결정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세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7단계. 고통의 몸체 다스리기 32

내 생각과 관점을 바꾸기 Reframing 31

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목격자 모드로 들어서기 23

4단계. 의식을 몸에 연결하여 '존재'에 뿌리 내리기 17

마인드가 우리에게 안기는 불만 극복하기 15

생각들 사이의 고요한 틈새 9

1단계. 깨달음의 시작: 우리는 누구인가? 1

<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2)

(25) 불만과 불행을 털어내기

(23) 무자각의 수준

(6) 고통의 몸체 녹여 없애기

(7) 에고와 고통의 몸체

(9) <에고>가 완전함을 추구하는 방식

The Power of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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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

  <고통의 몸체> 변환하기  

 

우리가 겪는 감정적인 아픔은
과거의 아픔과 합쳐져서 우리 마인드와 몸에 기식하게 된다.

이 퇴적된 아픔이 우리 몸과 마인드를 점령하고 있는 부정적 에너지장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아픔덩어리, 혹은 고통의 몸체이다. 

 

과거의 아픔이 몸에 만든 부정적 에너지장 감지

 

깨달음 상태에 있지 못하는 동안에는… 

즉, 마인드나 에고나 <거짓된 나>가 아니라 <존재>며 <참된 나>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동안에는…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든 스스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어요. 때로는 아무 이유나 근거도 없이 마인드가 그냥 고통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아주 평온하고 쾌적한 상황에 있을 수 있는데…

하지만 갑자기 어떤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요. 우리 생각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거나 과거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전전긍긍하기 시작해요. 전자도 후자도 현실이나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은 겁니다.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없으니…

걱정거리가 전혀 안 돼요! 

그런데도 우리는 전전긍긍하고, 그러면서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아픔과 고통의 에너지까지 만들어내고, 그 에너지가 우리 몸에 자리를 잡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우리네 몸에 나름의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달리 말해, 몸은 합리적이에요.

그러나 또 뭔가를 아주 쉽게 믿기도 해요. 그래서 실제 상황을 생각하는 상황과 구분하지 못해요.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마치 실제인 양 반응합니다.

 

심지어 따뜻한 침대에 편하고 안전하게 누워 있으면서도

‘흠, 뭔가가 나를 위협할 수 있어’ 하고 생각한다면…

몸은 실제로 위협당하는 것처럼 반응해요.

그래서 심장 박동 수가 늘어나고 호흡이 불규칙하게 바뀌며 근육이 긴장해요.

그렇게 해서 몸은 에너지를 추가로 더 만드는데…

하지만 이 에너지는 그 어디로도 나갈 데가 없어요. 위협이 실제 벌어진 게 아니라 가상이고 허구니까!

출구를 찾지 못한 이 에너지는 독성을 띠고 신체에 축적되어 정상적인 신체 기능을 방해하게 돼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계속 불안한 생각을 만들어 내고 긴장을 키워요. 

 

안 좋은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해도 고통과 아픔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않을 수 있어요. 

독성 에너지주변에서 벌어지는 것을 우리 마인드가 ‘나쁘다’고 평가하는 경우에만 생성됩니다.

그러나 <존재>에게는 이 세상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전혀 없잖아요?

우리의 <참된 나>와 <내면의 목격자>한테 그런 게 없듯이 말이죠.

오로지 있는 것이 있을 뿐이며, “좋네, 나쁘네” 하는 판단은 우리네 마인드가 일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에고>의 삶이 아니라 <참된 나>의 삶을 산다면,

모든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심지어 마인드가 나쁘다고 여기는 것에서도 그렇습니다. 

사실, 세상에 머무는 동안 최고의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이든 다 필요하며 유용하고 ‘좋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목표들 중 하나가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어 의식하는) 자각 상태의 제고라 하겠습니다. 

 

이걸 깨달을 때…
인생에서 아픔과 고통을 더 이상 자초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아픔이 퇴적된 감정의 아픔덩어리, 고통의 몸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나 아픔, 고통 따위는… 쉽게 사라지고 증발될 수 없는 에너지임을 기억해 둬야겠어요. 이 에너지는 몸 안에 쌓여서 완전한 에너지 구성체를 만드는데, 이걸 에크하르트 톨레<고통의 몸체> 혹은 아픔덩어리라 부릅니다.  

 

고통의 몸체란…
부정적으로 충전된 에너지장으로서, 우리 심신을 점령할 수 있다.

 

고통의 몸체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휴면 상태와 활동 상태. 

그것이 늘 활동 상태에 있다면, 그 사람은 평생 고통스럽게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범죄자나 자살자가 나와요. 필사적인 영웅이나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사도 이 부류에 든다고 할 수 있어요. 또 알코올중독자나 마약중독자, 거지, 노숙자처럼 인생 밑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들도 고통의 몸체에 늘 시달리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요.

 

잠자지 않는 고통의 몸체가 겉으로 드러나게 되면…

행복이나 삶의 만족, 진정한 자기실현 등에 대한 희망을 늘 모조리 앗아갑니다. 그러나 줄곧 깨어서 활동 상태에 있는 <고통의 몸체>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대다수 사람들한테서 그건 잠자고 있다가 눈을 뜨고 또 졸기도 해요

고통의 몸체가 눈뜰 때…

아주 다정하던 사람이 갑자기 불쾌하고 못된 사람으로 바뀌거나, 혹은 낙천적인 줄 알았던 사람이 우울하고 비관적인 불평분자로, 혹은 조용하던 사람이 시끄럽고 히스테릭한 사람으로 바뀔 수 있어요. 

 

고통의 몸체가 깨어났다는 징후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잘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바깥에서 명료하게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고통의 몸체가 잠깨는 순간을 추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사자는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으나 그 순간에 그 사람은 본연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으로 변합니다. 헐크처럼 말이죠. 

 

알아차리고 의식하고 추적하고 관찰하기…
오직 이 방법으로만 <고통의 몸체>를 다루어서 그것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도 바로 이 고통의 몸체가 심하게 횡포 부릴 때 나타나는 징후인데, 이걸 막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에요. 고통의 몸체는 자신이 발견되거나 노출되기를 아주 꺼리니까요. 그건 그림자처럼 빛을 겁내요. 그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몰래 숨어 있거나 위장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용기를 내서 그걸 직시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각자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고통의 몸체를 깨우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그것이 언제 돌출할지 알아내기가 더 쉽지 않겠어요? 결국, 그것이 제 스스로 그냥 잠을 깨는 게 아니라 어떤 ‘방아쇠’가 작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과거에 아픔을 야기한 뭔가가 떠오르게 하는 상황이 전부 이 ‘방아쇠’ 역할을 해요. 

예를 들어, 

1) 부모가 생활비 같은 돈 문제로 자주 다투던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은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얘기나 암시가 나오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고통을 겪을 수 있어요. 혹은, 

2) 어려서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버림받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친구가 약속 시간에 겨우 5분 늦은 걸 두고도 그 사람의 아픔덩어리가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어요.

 

누구한테나 있는 이 고통의 몸체가 무엇에 반응하여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차린다면, 그것을 감지하여 다스리기가 더 쉬워질 겁니다. 

 

  실습 32  

 

당신의 아픔덩어리가 어떤 상황에서 잠을 깨는지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어요.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거나 그 비슷한 기미라도 나타나게 된다면…

고통의 몸체가 잠을 깬다는 신호이자 반증입니다. 

 

갑자기 불만이나 짜증이 생기거나 화가 나거나 반감이나 혐오가 들거나 울적함을 맛본 적이 있나요?

자기도 모르게 기분 나빠진 적이 있나요? 

 

그런 것이 때로는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생기기도 해요.

또 때로는 어떤 외부 원인 때문에 그런 상태에 빠지는 듯싶기도 해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한 말에 기분이 상한 경우. 혹은 무슨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난 경우

 

그런데… 그 외부 원인이란

우리 내면의 ‘방아쇠’를 당기는 계기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둬야겠습니다.

실제로, 같은 입장에서 같은 말을 듣거나 같은 실패를 겪었어도 기분 상하거나 화내지 않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 일 때문에 당겨질 ‘방아쇠’가 그에게 없다면… 안 그렇겠어요? 

외부 상황이 우리 상처를 건드립니다. 

과거에 우리한테 아픔이나 마음고생, 고통 겪게 한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외부 상황이 당신한테 과거의 무엇을 떠올리게 했는지 정확히 기억해 내려고 애쓰세요. 

그렇게 하느라고 마음속에서 과거로 이동하여 거기 한참 머무르거나 갇힐 필요는 없어요. 

이야말로 과거 경험을 도움 삼아 현재에서 뭔가를 좋은 쪽으로 바꾸는 경우에요.

이런 상황에서는 회상이 유용해요. 

 

다만, 한 가지 조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요.

즉, 자신의 감정과 그 감정을 야기한 과거 상황을 <내면의 목격자> 눈으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 순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자신의 판단과 감정적 반응으로 흐려지지 않은 장면을 객관적으로 보게 될 겁니다. 

 

‘내 안에서 어떤 감정들이 가장 자주 일어나며 어떤 방아쇠로 촉발되는지’ 끊임없이 추적할 때, 우리는 <고통의 몸체>를 더 경계하고 조심하게 됩니다. 

이건 자신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경각심을 가지면, 고통의 몸체가 당신을 지배하는 힘이 금방 몇 배 더 약해질 거예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내 생각과 관점을 바꾸기 Reframing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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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모드로 들어서기 23

호흡으로 몸 안에 들어서기 19

3단계. 마인드의 위험한 술책

내면의 고요 8

마인드가 에고를 만들어 3

<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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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깨어 있는 의식 - 고통 탈출

(4) 감정이란?

The Power of Now

루덩의 악마들 1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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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8편 2

마음의 평화를 간직하는 방법 10가지

16-3.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징표 11가지 (1)

삶에 대한 고통스럽고 불쾌한 진실 10가지.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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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부정적인 감정과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 생각을 바꾸는 방법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게 하는 좋은 방법이 더 있습니다. 

감정이 생각과 판단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잖아요? 

 

우리는 살면서 ‘아, 뭔가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있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겼어’ 하고 먼저 판단을 해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만 그 생각에 해당되는 감정이 뒤따릅니다.

불만이나 모욕감, 좌절, 분노 같은 것 말이에요. 

우리는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나?’ 할 정도로 생각 자체는 인식하지 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그 감정에 해당하는 생각을 했다는 뜻이에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 생각을 바꾸는 방법

 

하지만 우리가 정말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판단하는) 것일까요? 

에크하르트 톨레가 한 저서에서 셰익스피어의 경구를 인용합니다. 

“세상에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단지 생각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는 십중팔구

“오늘 날씨가 사납네, 끔찍해!”

하고 말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판단한 결과, 기분 잡치고 움츠러들어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지요. 

 

그런데 그런 날씨가 정말 그렇게 끔찍한 걸까요? 

만약,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거짓된 나>의 눈이 아니라 <참된 나>의 눈으로 창밖 날씨를 보았다면, 우리는 이 하루를 있는 그대로 볼 것이며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에서 시작했겠지요. 

 

그래서, 예를 들면, 옷을 더 따뜻하고 든든하게 차려입고 우산 쓰고 빗속을 거닐며 자신과 건강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 않았겠어요? 아니면, 외출하는 대신 집에서 방안 온도를 좀 높이고 창문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들으며 따스함과 아늑함을 누릴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면 이날이 끔찍할 리가 없어요. 오히려 “오늘은 참 멋진 하루였어!” 하고 말할 수 있었을 거예요.

 

에크하르트 톨레

우리가 뭔가를 두고 “나빠! 싫어!” 하고 말할 때 우리 내면이 전부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감정적인 위축이 우리를 자기 삶의 힘에서 떼어내고 차단합니다

 

주변 모든 것을 ‘좋거나 나쁘다는’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게 될 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있게 할 때…

우리는 위축되는 게 아니라 당당해지고, 우주 에너지가 거침없이 자유롭게 우리를 거쳐 흐르면서 거대한 힘을 우리한테 안깁니다.  

 

한마디로, 우리네 생각과 판단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그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관점이 최소한 몇 가지는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에고>한테는 늘 불만의 관점을 택하는 습성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현재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쩍하면

“아아, 일이 잘 안 풀려. 사는 게 참 고되고 힘들어. 끔찍해, 악몽이야!”

하고 푸념하거나 한탄하는 이들이 많아요.

이건 그들의 에고가, <거짓된 나>가 내는 목소리입니다.

<에고>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게 하나 없어. 죄다 나쁘다’는 생각에 빠지게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아주 하찮은 걸 두고도 계기만 있다면 습관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며 끝없이 볼 부은 사람들이 줄어들면 좋겠어요. <에고>의 그런 거짓된 판단과 잘못된 자세를 그때마다 바로바로 적발해 내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어요. 

 

내면에서 어떤 목소리가 ‘좋은 게 하나도 없어, 최악이야’ 하고 불평할 때,

어떤 일이나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 즉시 그건 <거짓된 나>의 목소리라는 점을 떠올리세요.

자신에게 상기시키세요. 

“이건 내가 불평하는 게 아니야. 에고가 불만을 품는 거지. 나에겐 불만이 없어!”

 

그런 다음에 판단과 해석을 멈추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쓰세요. 

즉, ‘이건 나쁘거나 좋은 게 아니야. 그냥 현실이야’ 하고 여기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뭔가 이로움을 반드시 얻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아주 나빠 보이는 것에도 그 반대되는 밝은 측면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네 <에고>는 이 밝은 면을 보지 못해요. 

왜냐하면 “정말 온통 다 나빠”에 묶여 있으니까요. 

하지만 <참된 나>는 객관적이고 건전하고 현실적인 눈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우리한테 복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뭔가를 꼭 찾아낼 겁니다. 

 

  실습 31  

 

불만스러운 느낌을 비롯해 부정적인 감정을 어떤 경우에 가장 자주 느끼게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런 불평불만의 밑바닥에 어떤 생각과 판단이 놓여 있는지 간단히 적으세요. 

 

예를 들어,

– 날씨가 고약하네.

– 집안 허드렛일에 지쳤어.

– 그자가 나한테 어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나.

– 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 걱정이야.

 

이제 <내면의 증인> 상태로 들어서서 이 상황을 직시해 보세요. 

즉,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자는 얘기에요.

 

이 여러 상황이 객관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적으세요. 예를 들어, 

–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군.

– 집안일이 정말 많아.

– 그자가 나한테 무례하게 말했어.

– 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돈이 요만큼밖에 없어.

 

(그렇게 달리 보고 나니까) 이 상황들이 더 이상 ‘나쁘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렸나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황이 됐네요.  

 

내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달리 말해 내 감정을 집어넣지 않은 상태에서,

이 여러 상황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드러내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각 상황을 어떤 결론이나 결정, 변화, 행동을 취하기 위한 원인이나 동기로 간주해 보세요.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적어 보세요. 예를 들어, 

 

– 비가 내리네. 우산을 갖고 나가야지.

– 집안일이 정말 많아. 먼저 해야 할 일과 천천히 해도 될 일을 정해야 되겠군.

– 그자가 나한테 무례하게 말했어. 그런 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해 줘야겠다.

– 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돈이 요만큼밖에 없어. 예산을 잘 짜서 당장 급하지 않은 건 놔두고 필요한 것만 사야겠어.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고민할 일이 없어진다는 점을 알게 될 거예요. 

자신이 불행하다거나 불만스럽게 느끼지 않게 돼요.

짜증이나 화를 낼 필요도 없지요. 

 

뭔가 속이 뻥 뚫린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 (하지 않아도 될, 방향을 잘못 잡은) 자신의 판단으로 더 이상 고민거리를 자초하지 않으며, <에고>의 판단과 해석으로 왜곡된 현실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대하여 살고 행동하니까 그렇습니다. 

<에고>며 마인드며 감정들과 분리되는 법을 익힐 때, 우리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쓸데없이 자꾸 만들어 내지 않게 될 거예요. 

 

고통이며 고민거리를 우리가 스스로 자신에게 안긴다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고통은...

주변 모든 것을 우리네 마인드가 해석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마인드의 판단과 그 판단에서 빚어지는 감정 때문에 생겨나요. 

고통과 고민거리는 우리네 <에고>가 모든 것을 좋고 나쁨으로 나누는 습성에서 생겨나요

 

실제와 <존재>한테는 좋고 나쁜 게 없어요. 오로지 있는 것만 있을 뿐이에요

만약 <내면의 증인> 상태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오로지 있는 것만 볼 뿐이지 그 이상 다른 것은 보지도 않고 생각도 안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있는 것에 즐거워하며 만족을 느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증인>의 눈이… 바로 이 세상을 보는 <존재>의 눈이니까. 

<존재>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것이든 새로운 경험을 즐깁니다. 

 

판단과 감정을 배제하고 현실과 실제를 있는 그대로 자각하기

 

이 때문에 <지금> 순간에 머무름으로써 (이건 또, 증인 상태에 있다는 뜻인데) 우리는 늘 기본적으로 행복할 수 있어요.

부정적인 감정을 비롯해 마인드가 ‘나쁘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가 증인으로서 확인하고 나설 때…

그 ‘나쁜 것’은 우리와 무관해집니다

 

“이건 그냥 있는 이거야” 하고 말할 때,

우리는 이 현실을 (실제를) 자각하고 (즉,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어 의식하고),

그럼으로써 이 현실에 초연해져서 <내면의 증인/목격자> 눈으로 바깥에서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현실을 지켜보지만, 이 현실에 있는 그 무엇도 우리 상태를 이미 바꾸지 못하며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고통으로 끌어들일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부정적인 뭔가를 보면서도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즉, 언제 어디서 그 무엇에든 행복하게 느끼며, 우리 주변과 우리 삶에서 부정적인 생각이며 감정이 줄어든다는 것! 

이런 법칙이 효력을 발휘합니다. 

“먼저 행복하다고 느끼라… 그러면 당신 인생에서 행복한 일들이 시작될 거야.” 

  

이 법칙은 작동해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걸 몰라요. 

그들은 자기네 인생에서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그 이전에는 행복하다고 느끼려 하지 않아요. 그런 좋은 일이 오려면 당연히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 거예요. 

또 어쩌다 좋은 일이 찾아오면, 그들은 거기에 집착하면서 그걸 잃을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이건 악순환이에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행복한 상태가 외부 조건에 좌우되지 않을 때라야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돼요

 

사실, 행복이란… 우리 안에 있는 것 아니겠어요? 

존재하는 순간순간 우리는 행복을 재현할 수 있어요. 

마인드가 기승부리게 놔두지 말고 <내면의 증인> 되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확실히 깨달아 받아들이면…

그러면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사라져서 더 이상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 무엇도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지 못할 거예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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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내면의 목격자> 찾아내기  

 

 

<드러나지 않는 세계>와 연결 통로

 - 고요에 귀 기울이기

 

<내면의 목격자> 덕분에

우리는 바깥세계에서 살고 활동하면서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며 <존재>와 늘 연결 상태에 머물 수 있습니다.

바로 내면의 목격자가 그 들머리를 열어 줍니다. 혹은, 이 채널들이 내면의 목격자를 지나간다고 말해도 되겠어요

 

고요에 귀 기울이면...

 

이 채널들을 여는 좋은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1) 고요에 귀 기울이기

2) 빈 공간 응시하기. 

 

에크하르트 톨레우리네 바깥세상에서 신(하나님)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것은 고요나 적막이라고 간주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은 우리네 현실에서 바로 고요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고요에 주의를 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심지어 소음이나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이 고요를 포착하면 됩니다. 어떤 소음에든 고요한 휴지나 갭이나 동안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런 점을 알아차린다면, 우리 내면의 고요도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 ‘내면의 목격자’가 이 고요를 관찰하고 주변 세계에서 확인하도록 해야겠어요.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한순간에 <드러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서 그 일부가 되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지식과 지혜와 고도의 진리와 지혜에 다가들 수 있을 겁니다

 

내면의 목격자 혹은 증인이란…

모든 것을 절대 진리의 빛에서 보는 천안(天眼)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문제나 물음에 대한 답을 모두 <내면의 목격자>한테서 얻을 수 있어요. 복잡한 상황에 처해서 예전엔 아무리 궁리해도 찾아내지 못하던 해결책을 분명히 얻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진정한 갈망과 욕구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어요. 

이건 놀라운 일도 아닌 것이… <내면의 증인>은 결국 <존재>의 일부니까요

 

이건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세계와 우리를 이어주는 중개자요 연결고리이다. 
이 드러나지 않은 세계는 빛과 사랑과 에너지와 진리와 지혜와 힘의 세계이다. 

 

만약 어떤 물음에 답을 찾거나 어떤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굳이 머리 감싸고 숙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 참, 뭐 이런 조언이 다 있나?’

이상하게 보일지도 몰라요. 마인드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데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말이에요. 

 

그러나 마인드가 우리를 즐겨 우롱한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지 않았습니까? 

마인드의 들끓는 활동의 환상 이면에는 허튼 것이 숨어 있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마인드보다 <내면의 목격자>를 믿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이 목격자가 입을 열게 하려고 무슨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외려 정반대로… 내면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이 고요는 우리가 <드러나지 않은 것>에 이르는 길이거든요. 

 

  실습 25  

 

 

생각이며 말이며 단어들 사이에 있는 고요한 순간을 어떻게 포착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았습니다.

이제는 외부의 여러 소리에서, 심지어 소음에서도, 내적 고요의 순간들을 포착해 봅시다. 

 

먼저 자신이 있는 곳에서 갖가지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소리가 요란하든 크지 않든 혹은 아주 나직하든 상관없어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 다음, 일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소리는 없다고 상상하세요. 

소리는 전부 진동입니다.  즉, 소리와 고요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것이며, 이건 모든 소리에는 휴지가, 고요의 순간이 있다는 뜻이에요. 

그 고요한 순간이 귀에 들리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존재하는 건 분명합니다.

 

소리에서 이 고요의 순간을 찾겠다는 목표를 잡고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이렇게 상상하면 좋을 거예요. 

소리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이 소리를 거치면서 소리 뒤편에 있는 것을 듣는다고 말이지요.  

 

고요한 순간을 물리적으로는 듣지 못할 수 있지만 (들을 수도 있고), 분명히 느끼기는 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우리는 늘 현재 순간에 침잠해서 그 안에 깊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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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

  신체 작업 - <존재>에 이르는 지점  

 

일상에서 현존을 유지한다는 것은... 
자기 몸에 완전히 들어앉아 산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신이 보고 만질 수 있는 몸은… 
당신을 <존재> 안으로 데려가지 못한다. 
가시적이고 형태를 지니는 몸은 그저 바깥 껍질일 뿐이다. 

‘몸에 들어앉아 산다’는 것은… 
내면에서 몸체를 느끼고 몸체 안에서 생명을 느끼며
그리하여 당신이 외적인 형태 너머에 있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존재>에 뿌리 내리려면 의식과 몸을 연결해야 

 

지금까지 우리는 가끔이나마 마인드에서 분리되는 법을 익혔고, 우리를 현실에서 떼어놓는 마인드의 전략을 파헤쳤고, <참된 나>는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 내는 거짓 ‘나’가 절대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지금> 순간의 힘을 얻고 본연의 자신이 되고 진정한 삶을 살기에 필요한 것을 제법 많이 했어요. 자신과 자기 삶의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업을 끝내려면 아직 멀었어요. 아니, 이제 시작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새롭게 사는 법을 찾아내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행복이 우리에게 순간순간 나타날 뿐 아니라 우리 현존 전반에 꾸준한 동반자가 되겠지요. 

다행히도 우리에겐 아주 좋은 도구가 있어요. 이 도구를 통해 모든 변화가 더 좋은 쪽으로 굳어지고 지속되게 하면서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수준에서… 말 그대로 세포 수준에서 달라질 수가 있어요. 이 도구는 바로 우리의 몸입니다. 가치와 중요성이 아직 충분히 평가되지 못한 신체에요. 

 

&#39;존재&#39;에 뿌리 내리기는 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몸을 아주 소중하게 건사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러나 어느 쪽이든 대체로 아주 심각한 오류를 범합니다. 즉, 몸 안에서 살지 않고 몸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 

이런 실수를 저지르게 하는 게 또 마인드인데, 이 마인드가 우리를 생각과 감정으로 채우는 바람에 우린 결국 생각과 감정이 곧 나인 양 여기면서 몸은 잊고 맙니다.  

 

만약 사람들이 생각과 감정만 갖고 산다면, 자신이 늘 몸 밖에 있는 듯이 느낍니다. 몸이 그 안에 의식도 영혼도 자신에 대한 느낌도 없는, 별개의 생명 없는 구조인 것처럼 말이지요. 

자신이 마치 몸 밖에 있는 듯 여기면서 에너지를 다 생각과 감정에만 쏟는 것은 사실상 몸에서 에너지를 빼앗는 셈이에요. 이 때문에 몸이 실제로 생기를 잃어서 병들고 골골하고 일찍 노화합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많은 영적 구도자들이 육신을 방해물이나 심지어 죄악처럼 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여깁니다. 세상에 득도자들이 아주 적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에요. 그들은 몸을 부정하면서 영적 탐구 노정에 장애물로 취급해요. 하지만 몸이야말로 영적 통찰과 고도의 진리로 이끄는 매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 올더스 헉슬리의 자기초월 (깨달음, 득도)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4

루덩의 악마들 3-3편 1

 

영적 변화는 전부 몸을 통해 이뤄질 수 있어요. 몸을 도외시하고는 불가능해요

하지만 이때의 몸이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몸은 아닙니다

 

“어라? 내가 곧 몸은 아닌데. 나의 <참된 나>는 <존재>의 일부이지 몸이 아니잖아!” 

맞아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을 무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에요. 

우리는 몸을 통해서만 자신의 <참된 나>와 제대로 연결될 수 있게끔 설계돼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기도 한 <존재>에 이르는 접점이 바로 몸에 있으니까. 

몸을 통해서만 <존재>에 뿌리 내리고, 이 덕분에 그것과 늘 접촉하여 살 수 있어요. 즉, 현재 순간과 접촉하며 살 수 있어요.

 

몸을 통해 <존재>에 뿌리를 내려야만
현재 삶에 접하여 거기에 뿌리 내릴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그래서 먼저 자기 몸을 기본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당신은 자기 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안다고 해도, 그건 분명 추상적인 것일 거예요. 건성으로 아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뜻이에요. 

그래요, 우리는 다 나한테 몸이 있음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몸을 제대로 느끼나요, 그 안에서 살고 있나요? 

 

많은 이들이 제 몸 안에서 살고 있지 않아요. 몸과 의식이 서로 분리돼 있으니까요. 

마인드가 몸 밖에 살면서 또 의식을 제 편으로 끌어당겨요. 

의식과 마인드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인드는 생각과 감정이며, 의식은 <존재>의 깊은 속성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인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의식을 마인드에서 떼어내 몸과 연결하는 겁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주의의 초점을 생각에서 몸으로 전환하기

 

주의 초점을 생각과 감정에서 몸으로 전환하기

 

  실습 17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으세요. 

몸 안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마음속으로 몸을 내면에서 탐구해 보세요. 

 

몸이 살아 있다고 느끼나요? 

거기에 생명의 움직임이나 에너지 움직임이 있나요? 

아니면, 돌덩이가 된 듯이 아무 것도 움직임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나요?

 

신체 여러 부위로 주의를 돌리면서,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느껴 보세요.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말할 수 있겠어요. 

“나는 왼쪽 발을 느껴… 오른발을 전부 느껴… 나는 종아리와 무릎을 느껴…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다 느껴… 팔과 등, 목, 어깨, 얼굴을 느낀다…”

 

단, 말이 아니라 느낌에 비중을 두세요. 말은 도움 된다면 보조수단으로만 이용하세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말없이 한 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주의를 돌리면서 느낌에 집중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몸이 내면에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생길 거예요. 

긴장이 풀려 딱딱한 느낌이 사라지고, 각 세포에서 생명이 흐르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온몸을 동시에 감지해 보세요. 

몸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에너지로 채워졌는지, 얼마나 더 가뿐하고 시원해졌는지… 이건 우리가 몸 안에 자리 잡아 마침내 몸과 하나가 되고 바깥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섰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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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단계

  마인드의 위험한 술책 파헤치기  

 

두려움은 마인드가 우리를 붙잡아두려고 꾸민 환상 

 

마인드가 현재 순간과 일대 일로 직면할까 두려워하여 우리를 현재에서 끌어내려 한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마인드가 현재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자연스레 현존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에요. 

마인드는 무엇이든 다 장악하고 싶어 하는데,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과 진정한 삶을 그리할 수는 없지요. 사실, 꾸며낸 규칙과 법칙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절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흐름을 그 누가 장악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마인드가 우리를 확실히 보호해 주려니 여기는 함정에 가끔씩 빠지곤 합니다. 논리와 상식과 마인드(지력)을 동원하여 모든 것을 계산하고는, 그 어떤 힘도 우리 계획을 깰 수 없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그건 오판입니다. 왜냐하면, 엄밀히 검증된 계획마저 망가뜨릴 수 있는 요소들이 인생에는 예상치 못하게 많으니까요. 

 

바로 이 예측 불가능성과 자연발생적인 것을 우리네 마인드는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을 우리한테 옮기지요. 

이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자신과 <존재>에서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고는 진짜 보호를 그렇게 스스로 차단한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해요. 왜냐하면, 진정한 보호란 우리가 <존재>와 하나 되고 거기에 헌신할 때 <존재>가 해주는 것이니까요.  

 

마인드는 보호한다는 환상만 주는 것일 뿐,
진정한 보호는 우리가 <존재>와 합일될 때 이 <존재>에서 나온다. 

 

두려움이란 마인드가 우리를 붙잡아 두려고 꾸민 술책

 

그러나 <존재>와 합일하여 그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 순간과 연결되고 거기에 푹 잠겨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 대한 두려움을… 안절부절못하는 마인드가 우리한테 심어 놓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를 겁내지 않으려면 또 무슨 묘책이 있을까요? 

먼저 이런 점을 인식해야겠습니다. 즉, 직접적인 위험에 접하여 그 반응으로 두려움이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 우리에게 있는 두려움 대부분은… 진짜 원인이 없는 두려움이에요. 이것이 걱정 근심이나 동요, 불안, 신경증 등 갖가지 형태의 포비아로 나타납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지금 여기서> 실제 벌어지는 것을 겁내는 게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것을 겁내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아요. 왜냐하면, 마인드가 우리를 상상의 미래로 데려가는데, 이 미래가 실제 벌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것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모든 두려움은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의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라고 흔히들 간주합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렇게 제시합니다.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죽음의 두려움이 실제로는 <거짓된 나>인 에고에 속하는 것임을 알아차리라!” 

바로 에고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인데, 물리적인 죽음보다는 소멸을 무서워해요. 

에고는 존재하지 못하게 될까봐 겁내며, 마인드는 에고를 고스란히 따라 이 두려움에 맞장구칩니다.  

 

우리는 <존재>의 일부로서 영원합니다. 

<존재>는 사라지고 소멸될까 겁내지 않아요. 사라질 수가 없으니까

한데 <에고>는 늘 소멸될까 두려워해요. 바로 이 때문에 에고는 실제 위험을 겁내기보다는 자신을 무너뜨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예를 들면, <에고>는 창피당하거나 놀림 받는 것을 두려워해요. 하다못해 말싸움에서 지는 것까지 겁을 내지요. 왜냐면, 그런 것이 에고한테는 파멸과 다를 바 없으니까. 우리가 자신의 의견이나 관점을 부득부득 주장하고 자기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바로 <에고> 때문인데, 그 이유 역시 매한가지에요. 에고 자체가 소멸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두려움 대부분이 (실제가 아니라) 현혹된 것임을 실감하려면, 현재 순간과 결합하여 당장 이 순간에 나를 위협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당장 이 순간에 그런 위협이 없는데 뭔가를 두려워한다면… 마인드가 실제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환상을 만들면서 우리를 (보호하기는커녕 외려) 겁준다는 뜻이에요. 마인드의 농간입니다

 

마인드는 두려워함을 보호와 헷갈리면서 이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실제로, 만약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치과에 가거나 성패가 걸린 스피치를 해야 한다면, 어찌 겁나지 않겠어?’ 

그러면서 이 두려움이 자신을 보호한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건 미망일 뿐입니다. 겁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다고 여기면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셈입니다. 

 

두려움은 전혀 도움 되지 못함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건 보호 장치가 아니라 착각이고 환상이다.

 

이 두려움이란 것은 또 우리 삶의 실제 사건들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에이, 괜히 걱정했네, 공연히 마음 졸였어” 하고 중얼거린 적이 얼마나 되나요? 

두려움이 있기에 앞으로 닥칠 사건을 준비하여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더러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지켜주거나 도울 수 있다는 환상을 낱낱이 파헤쳐 보세요. 

그러면 두려움이 없어질 겁니다. 

 

  실습 14  

 

‘난 무엇을 두려워하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일이나 앞날이 어떤 불안과 염려를 일으키나요? 어떤 불상사가 생길까봐 겁이 날 수도 있어요. 책임 있는 일 때문에 걱정될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냥 막연히 불안한가요?

 

눈을 감으세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오로지 현재만 있다고 상상하세요.

그리고 자문하세요. ‘지금 누가 겁을 내는 거야?’ 

 

두려움을 품는 것은 참된 나가 아니라 거짓된 나

 

겁내는 것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참된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겠습니다.

내가 아니라 <에고>가, <참된 나>가 아니라 <거짓된 나>가 두려워하는 거예요. 

 

에고는 뭔가를 놓치고 잃을까봐, 실패하거나 소멸될까봐 겁을 냅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발동하여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해요. 하지만 이건 착각이고 망상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그 무엇에서도 지켜주지 못합니다.  

 

현재 순간에 있는 동안 우리는 <에고>와 분리되며, 에고의 두려움이 우리한테 영향을 미칠 수 없어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나야, <존재>의 일부야. 나는 영원무궁한 공간에, <지금 여기에> 있어, 두려움은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나는 힘과 보호의 진정한 근원과 연결돼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헤쳐 나아가야 할 것을 죄다 가장 멋지게 해낸다.”

 

두려움과 걱정근심, 불안과 초조함이 다 사라졌음을 느낄 거예요. 

우리가 현재 순간에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겁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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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계

  마인드에서 벗어나기: 

 <참된 나>를 얻는 길  

 


생각의 흐름 멈추기 - <지금> 순간에 깊이 머물기

 

여러 생각을 떨치고 나면 본연의 자신과 결합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차립니다.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는 의식 상태인) 자각으로 보통 때보다 훨씬 더 깊게 들어설 거예요. 

이때의 느낌을 에크하르트 톨레는 현존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존재> 안에 깊이 들어가 있어요. 

현재 순간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삶의 여정에 완전하고 충실하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잔잔하면서도 정말 기뻐하는 상태가 꼭 따라붙습니다. 진짜 살아 있다고 느끼는 바람에, 다른 생각이며 감정이며 체험 등이 죄다 썩 대수롭지 않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상태란… 현실 도피가 아니라, 거꾸로 현실을 더 깊고 객관적으로 자각하여 납득하는 것입니다. 에고의 상태가 아니라, 에고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상의 물질세계에서 살고 행동하는 법을 서서히 익히면서도 평온하고 조화로운 <존재>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이 때문에 우리네 활동이 주눅 드는 건 결코 아니며, 되레 이전보다 힘을 훨씬 덜 들이고도 훨씬 더 큰 효과를 얻게 될 거예요. 

지금 순간과 하나 되기

비결은 단순합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의 힘이 돕는 것이죠. 

마인드와 분리되어 잡념의 흐름을 멈춰 세우고 <지금> 순간과 하나가 된 덕분에 자기 안에서 <존재>를 찾은 사람에게는 우주의 힘이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생각의 흐름을 멈추어서 우리가 더 우매해지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총기를 띠고 나아가 현명해지기까지 합니다. 무의미한 생각의 흐름 대신 알짜 지식을 갖추게 되니까 말이지요. 

 

잡다한 생각들의 끊임없는 흐름은 무익한 마인드 상태요,
내면의 고요는 마인드가 유일하게 거두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존재>란… 마르지 않는 힘의 원천입니다. 마인드와 이것이 낳은 생각의 줄기가 우리와 <존재> 사이에 장벽을 만드는데 이것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우리는 <존재>에 담겨 있는 힘을 전부 마음껏 쓸 수 있습니다

 

자신이나 자기 생각에 심각하게 대하는 태도가 때로는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데 방해가 됩니다. 그런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은 바로 <에고>요 <거짓된 나>입니다. 바로 이 에고가 자기 자신이며 (생각을 포함하여) 자기가 생산하는 것을 죄다 아주 심각하게 여기는 거예요

반면에 <참된 나>의 관점에서는 우리의 생각이 중요해 보일 때가 더러 있긴 해도 보기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잠깐이라도 마인드의 속박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세상의 본질과 진정 융합됨을 느낄 수 있으며, 이때 생각이며 문제며 걱정 따위가 다 의미를 잃고 중요하지 않게 돼요. 그리고 이 덕분에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러워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여러 문제를 대체로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에 더 심각하게 대할수록 해결은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에요. 그렇다고 경솔하게 대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단지,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맞추라는… 평범한 일들과 일상의 걱정근심을 본래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들은 삶의 본질이 결코 아니에요. 인생의 으뜸 요소가 아니에요

 

가장 급한 것은… <존재>와 하나 되는 것, 또 이 합일을 얻어 <존재>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잡다한 생각에 빠져서는 이 점을 이해하기 힘들어요.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중요한 것을 부차적인 것으로, 대수롭지 않은 것을 대단한 것인 양 착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생각의 흐름을 멈추면,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네 마인드 대부분을 차지하는 잡생각의 내용이 공허한 수다에 불과하여 아무 데도 쓸모없으며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린 이미 확인했습니다. 이런 점을 확실히 깨달았다면, 자기 생각을 그저 귀하게만 여겨 마냥 매달리는 일은 더 이상 없겠지요.  

 

  실습 11  

 

나중에 마인드에서 또 생각이 줄줄 이어지는 것을 알게 되면, 이렇게 중얼거리십시오. 

“이 생각들에는 별 의미가 없어. 중요하지 않아. 진지하거나 심각한 게 아니야.”

그러고 나서 그 생각들을 떨쳐버리세요. 

 

마인드가 무의미한 수다를 떨고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이 생각들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반복하여 자신에게 말하세요.  

 

마인드의 무익한 생각 흐름 차단하기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나면... 내면이 고요하고 평온해지면서 매혹적이고 조화로운 순간을 접하게 돼요. 거기엔 오직 기쁨만 있을 뿐이요, 아픔이나 고통 따위는 전혀 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진짜 자신과 진짜 삶에 파고들었다는 뜻입니다. 

 

이젠, 그런 상태를 간간이 누리기만 할 게 아니라, 그 상태에서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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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드가 

 <거짓된 나>를 만드는 방식  

 

마인드가 감정과 결탁하지 않았다면 사람을 그다지 크게 지배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한데, 마인드는 사실상 감정을 만들어 냄으로써 사람을 더 단단히 얽어맵니다

생각이 정보에 불과한 것이라면, 감정은… 에너지에요. 즉, 실질적인 힘입니다. 

이 힘이 아주 단단한 틀을 만들어서 사람을 가둘 수 있는 겁니다. 

 

마인드는 감정을 생산하면서 거짓된 나인 에고를 만든다.

 

감정이란… 마인드의 작동에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음, 누군가가 나를 공격할지도 몰라’ 하고 생각한다면… 몸이 나 몰라라 가만있지 않아요. 그 생각에 반응하여 두려움이나 분노, 적대감 같은 감정을 분출합니다

 

생각이 신체 수준에서 계속되고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감정입니다.

어떤 사람의 어떤 감정을 접하면서, 우리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거나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늘 인식하지는 못해요. 자신의 진짜 생각을 늘 인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게다가… 생각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요.

한데 감정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마인드가 이런 말을 하는데 감정은 저런 것을 드러낸다면, 언제나 감정 쪽이 솔직한 겁니다. 예를 들어, 계속 화를 내면서도 ‘내 머릿속에 노여움 같은 건 없어’ 하면서 인정하지는 않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자신한테도(!) 말이지요.

반면에 감정은 화난 상태를 곧이곧대로 드러내요. (소통에서 이른바 신체언어가, 혹은 비언어적 소통 수단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마인드가 감정을 촉발하면 우리 몸에서는 그 감정에 걸맞은 특정 에너지가 충전됩니다. 

이 에너지는 우리를 지배할 뿐 아니라, 자기를 낳은 생각을 더 키우기도 해요. 악순환이죠! 

마인드가 족쇄를 더 바짝 조이면서, 우린 이미 자유롭지 못하고 더 이상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해요. 그 대신 마인드가 감정과 연합하여 우리의 행동을 지배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과 결부된 마인드를…

바로 우리의 인격이요 이른바 <나>라고 불리는 것이라 여기기 쉽습니다. 그렇게들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건… 본연의 <나>가 아니에요. 

<존재>의 참된 본질과 연결되며 그 일부인 <나>가 아니에요! 

이건 <거짓된 나>입니다. 

 

이 <거짓된 나>라는 개념을 에크하르트 톨레는 <에고 ego>와 같은 것으로 봅니다. 

사전의 정의로 에고는

1) 인식과 행위의 주체가 되는 자기 자신. 자아(自我)

2) 자기 자신의 이익만 꾀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 등을 가리킵니다. 

이런 정의를 염두에 두면서,

에크하르트 톨레는 <거짓된 나>를 가리키기 위해 <에고>라는 단어를 쓴다고 알아두면 되겠어요. 즉,

마인드와 감정의 결탁으로 생겨났으며, 만물과 하나이고 <존재>의 일부인 <참된 나>에서 우리를 떼어놓는 <거짓된 나>를 에고라 칭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나 기쁨이나 감사 같은, 이른바 긍정적인 감정은 뭐지? 이것도 마인드가 만들어 내는 거 아니야?’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어요. 

에크하르트 톨레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사랑, 기쁨, 감사, 마음의 평화 등은… 제대로 이해한다면,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넘어서서 <지금 여기 살아 있음>의 깊은 상태라는 것이지요

<존재>와 짧은 순간 접하기만 해도,

우리는 지극한 행복과 조용한 기쁨, 평온, 사랑, 감사를 맛보게 됩니다.

그런 상태를 접할 만한 계기가 없다 해도, 마인드에서 그런 생각을 일구지 않았다 해도, 그런 걸 다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사랑이요 기쁨이라 부르면서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여기는 것은…

실제로는 바라던 것을 얻은 데서 나오는, 짧은 만족감이나 기대 충족감, 혹은 만족하리라는 예감인 것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런 느낌들은 아주 빨리 지나가고, 그게 있던 자리에 떨치기 힘든 고통이 다시 들어선다는 점이에요.

<거짓된 나>가 우리를 지배하는 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실습 3  

 

이런 걸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대체로 어떤 감정을 더 많이 품고 드러내나?’ 

하나씩 나열하세요. 노트에 적어도 좋겠지요.  

감정이란 마인드의 (혹은, 생각)의 작동에 몸이 반응하여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 두세요. 

‘어떤 생각이 어떤 감정을 유발했을까? (혹은, 유발할 수 없었을까?)’

하고 자문자답해 보십시오. 

 

감정 계수. 불안&#44; 사랑&#44; 우울&#44; 경멸&#44; 자부심&#44; 수치심&#44; 질투

 

이때 주의할 것은…

우리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을 때도 마인드는 ‘(그 감정을 유발하는) 생각이 나에겐 없었고 없다’고 주장하기 쉽다는 점이에요. 즉, 흔히 부정하고 나설 수 있는 마인드의 이 저항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어떤 감정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생각도 당연히 (반드시) 있는 법이라는 점을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모욕감을 느꼈다고 쳐요.

그런 느낌은 어떤 생각 때문에 일어났을까요. 

이런 거 아닐까요.

‘저 사람이 날 깔보는군, 업신여기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지는 얼마나 잘 났는데? 에이, 기분 나빠, 적당한 때 한번 따져야겠어.’ 

혹은, 누군가에게 화가 난다면, 이 감정의 밑바닥에는 이런 생각이 도사리고 있을 거예요. 

‘이 사람은 못됐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잖아.’

 

어떤 감정 상태에 빠져서도 그 상태를 불러일으킨 어떤 생각이 있다는 점을 우리는 미처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알아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 감정을 어떤 생각이 촉발하는지’ 인식하는 법을 알아야겠어요. 

 

이 생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하, 내가 실제 벌어지는 것과 좀 다르게 생각하고 있군. 과장되거나 한쪽으로 치우쳐서 생각했네’

하는 점을 깨닫게 될 거예요.

혹은, 그런 생각이 전부 진실만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때론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마인드가 우리를 갖고 놀면서 착각과 망상으로 이끄는 겁니다. 

감정은 이 망상을 더 키울 뿐이고

이것이 바로 마인드가 감정과 한통속이 되어 거짓된 실체를 만들어 내는 수법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거짓된 현실의 포로가 되는데,
이 거짓을 파헤치고 나면 망상이나 착각의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 실제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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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드와 시간  

우리를 <존재>와 갈라서게 하는 장애 요소 

 

하지만, 정말로 깨달음을 얻고 늘 그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왜 그리 적을까요? 

깨달음의 상태가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번뜩 다가옵니다. 

다만, 대다수는 그런 번뜩임을 겪고 나서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원하며 무한한 <존재>와 늘 하나 되어 산다는 것이 정말이지 소수에게만 허용된 특출한 기법처럼 보일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는 누구든 그렇게 할 수 있다! 
단지, 그걸 달성하려면 두 가지 방해물을 버려야 하는데,
그건 바로
마인드와 시간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가 우리로 하여금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며 우리를 <존재>와 갈라서게 하는 것이니까.  

 

마인드가 생각의 차단막을 만들어 우리를 주변과 분리되게 한다

 

이 개념을 이제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보지요. 부디 선입견을 다 버리면 좋겠군요. 

이런 개념을 접하면서 처음 내보이는 반응은 아마도 이런 저항일 테니까요. 

“아니, 마인드와 시간을 어떻게 내버릴 수 있단 말이야? 마인드와 시간 없이 살 수 있겠어? 그건 정신 나가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된다거나, 아니면 존재하기를 아예 끝낸다는 뜻 아니야?” 

 

그렇게 우려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을 곧 확인하게 될 겁니다. 마인드를 갖추지 못하고 시간 개념이 없는 동물 수준으로 내려간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외려 그 반대로, 의식의 다음 진화 단계로 올라선다는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즉,

제한된 인간 마인드에서 우주 마인드로,

선형적 시간이라는 함정에서 영원하고 무한한 공간으로 나아간다는…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시간과 마인드를 장악하게 되겠지요. 장악한다고 해서 마인드와 시간한테 무슨 거창한 짓을 한다는 건 아니고,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돌려둔다는 뜻일 뿐이에요. 그 두 가지가 우리를 지배하여 우리 삶을 저희 뜻대로 결정하게 놔두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둘을 지배하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과제들을 해결하는 도구로 쓰겠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마인드와 시간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두 개념은 서로 관계가 아주 밀접한데, 어떻게 그런지는 이제 곧 알아볼 겁니다. 마인드는 시간과 어울려서 우리가 <존재>로 달려가지 못하게 함정을 만들어요. 그런 일이 어떻게 생기는지, 살펴볼까요. 

 

마인드는 어떻게 작동하나

 

사람에게 마인드가 부여된 데는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할 때, 마인드만큼 필요한 것도 없잖아요? 예를 들어, 집을 짓거나 과학적인 발견을 이루거나, 혹은 뭔가를 손수 만들거나 사업 전략을 세우거나 책을 쓰거나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물론, 계획을 세우고 자기 역량을 분석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최선을 택하고, 그걸 어떤 식으로 실행할지 궁리해야겠지요. 

구체적인 뭔가를 입안하고 실행할 때, 상황을 분석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때…

우리는 마인드를 그 본래 소명에 걸맞게 활용합니다. 이때 마인드는 우리가 작업에 동원하는 도구로서 아주 유용하고 필요한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우리네 마인드의 역할이 그런 일에만 국한돼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데, 인류는 사실상 큰 과오를 저질렀으니… 이 마인드에게 파워를 지나치게 많이 내주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내 마인드가 바로 나야!’ 하고 자기도 모르게 확신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사람이 마인드를 과제 해결 도구로 쓰는 게 아니라, 거꾸로 마인드가 사람을 제멋대로 쥐고 흔들게 됐습니다.

 

마인드가 우리 머릿속을 다 지배해

 

자신에게 조용히 주의를 집중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흠, 내 머릿속을 마인드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군, 거기서 제멋대로 따로 살면서 말이야.’ 

어디 이것뿐이겠어요?

마인드가 당신에게 뭔가를 끊임없이 주절대고 속삭이고 지시하고 주장하고 요구한다는 사실도 분명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리고…

이 끝없이 이어지는 머릿속 대화 때문에 사람들은 정말이지 잠깐이나마 쉴 틈조차 누리지 못합니다.

 

이건 곧 우리가 마인드를 그 본래 소명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혹은, 마인드가 제 본연의 자리와 역할을 망각했다는 뜻이기도 해요.

주인에게 봉사해야 할 마인드가 외려 주인을 쥐고 흔들어요.

마인드가… 사람을 노예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 모든 것을 마인드가 제 나름대로 설명하고 판단하고, 그 모든 것에 의견 덧달고 꼬리표 붙여서 분류하고 낙인을 찍습니다. 주변의 사물과 현상과 사안과 사람에 대해 당신이 명료하게 이해하고 느끼고 깊이 규명하고 인식할 시간을 채 다 쓰지도 못했는데, 마인드가 먼저 중뿔나게 제 판단을 들이밉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실에서 당신을 떼어놓는 (혹은, 보호하는) 방패처럼 말이에요

이것이 생각의 차단막입니다. 

 

이 차단막이 당신과 당신 자신을, 당신과 동료들을, 당신과 세상을, 당신과 자연을, 그리고 당신과 신을 갈라놓습니다.

그래서 분리 망상을 일으킵니다.

덧붙이자면, 이 분리 망상을 우리의 거짓된 나인 <에고>가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점을 전혀 인식도 못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과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쓰일 때 마인드는… 유용하다. 
갖가지 생각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주체가 될 때 마인드는… 해롭다.

 

자신의 머릿속 대화를 유심히 관찰해 보세요. 대부분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될 거예요. 그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은커녕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야 할 순간에는 역부족이 될 정도로 우리 힘을 잔뜩 빼앗기만 할 뿐이에요.  

머릿속 대화에 들어가는 힘은 다 허튼 데에… 그 무엇에도 소용없는 말과 생각들을 찧고 빻는 데 쓰이기만 합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거리에서 간혹 마주치는 광인들을 떠올려 보라고 하는군요.

그들은 저 혼자서 뭔지 모를 소리를 끊임없이 중얼거려요. 

그러나 광인이라 불리는 그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이른바 ‘정상인’들은 기껏해야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것일 뿐이니까요.

엄밀히 보자면, 우리네 대다수가 사실은 광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왜냐하면 ‘머릿속 목소리’의 힘에 전혀 맞서지 못하여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계속 중얼거리니까요. 

 

자신의 ‘머릿속 목소리’를 한번 가만히 들어보세요. 

‘얘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거야?’ 

 

우리네 ‘머릿속 목소리’는…

멀고 가까운 기억을 더듬고, 불평하며 비탄에 빠지고, 뭔가를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뭔가에 화내고 뭔가를 예상하고, 뭔가를 우려하고 희망하고 후회하고, 누군가와 비교하고 화내고 욕하고, 판단하며 비판하고 분노하고, 때론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다면 모욕감을 느낄 만한 단어들을 동원하여 주인을 공격하기도 하잖아요

☞ 내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법

 

내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법

 내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면? 누구한테나 사실상 가장 중요한 조언자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이다. (혹은, 머릿속 목소리). 그렇기에 정보 공간이 급변하는 오늘날에는 그 내면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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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우리가 좋아해야 할까요?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나요?

그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진정한 삶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우리한테서 <지금> 순간을 빼앗는다. 
그것은 우리를 본연의 자신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명료하게 의식하고 느낄 수 없어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지절대는 목소리가 방해하니까요

우리를 잠시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 이 마인드를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는 이런 마인드보다 더 큰 무엇이라고 여겨야 하나요? 

“거야 당연히 후자 아니겠어?!” 하고 대답한다면, 마인드가 앞으로도 전횡을 휘두르게 놔둬선 안 되겠지요. 

 

에크하르트 톨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경구가 사실은 가장 큰 오류라고 여깁니다.

생각을 <존재>와 동등하게 보고 사람을 생각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사실상 마인드가 만들어 낸 아주 좁은 틀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며,

따라서 진정한 <살아 있음>이며 <존재>에서 분리된다는 뜻이니까요. 

 

행복과 내면의 평화, 아름다움과 조화의 향유, 창의성, 사랑 같이 우리한테 정말 중요한 것은 전부 머릿속에서 끝없이 중중대는 목소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 진정한 가치들은 대개 마인드 너머에 있어요.

하지만 자기 마인드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그런 소중한 것들에 다가가기 힘듭니다

 

  실습 2  

 

자기 자신과 (물론, 소리 내지 않고!) 나누는 대화, 마인드가 끊임없이 이끄는 내면의 대화…

그 주된 내용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주로 어떤 주제들을 다루고 있나요? 

예를 들어, 오늘 하루 당신은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답할 수 있을까요? 

 

대답하기가 썩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글쎄, 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고 대꾸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네 머릿속에서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자, 그 생각들은 과연 어떤 것이었나요? 

그것을 당신은 충분히 알고 있었나요?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오가는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더러 있어요.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분명히 깨닫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건 왜냐하면, 필요한 사고를 했다기보다는 단어며 말이며 생각으로 의미 없는 잡탕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어떠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그래도 기억할 수 있다면, 그 생각들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 자신에게 대답해 보세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 결과, 나에게 정말 중요한 뭔가를 결정하거나 이해하거나 규명했나요?

만약 그렇다면, 축하를 받아 마땅합니다. 마인드를 제대로 활용한 것이니까요. 

만약 이런저런 생각들이 그저 왔다가 사라지고, 그 결과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면…

이건 마인드에 휘둘려서 공연히 힘만 빼앗기고 정작 중요한 것에는 눈길 돌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1) 마인드를 제대로 활용하여 어떤 문제 해결에 도움 받는 때는 언제인지 

2) 마인드가 머릿속을 불필요한 잡담으로 채우면서 헛되이 작동하는 때는 언제인지… 

최대한 자세히 살펴보겠다는 목표를 잡고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상태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우세한지, 짬짬이 비교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지금>이라는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 결과, 잡념을 떨치게 되고), 쓸데없이 주절대는 마인드를 단속하여 제대로 활용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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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기

(11) 시간이란 망상에서 벗어나기

The Power of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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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순간의 힘 트레이닝  

 

지금 순간의 힘 Practice 톨레 지음, 김성호 번안

 


차  례 

 

머리말 

1부.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기 

1장. <존재>와 깨달음 

2장. 두려움의 근본 원인   

3장. <지금> 순간으로 들어서기   

4장. 무자각적인 것을 녹여 없애기   

5장. 아름다움은 당신의 고요한 현존에서 생겨나 

 

2부. 영적 수행으로서 인간관계 

6장. 고통의 몸체 녹여 없애기 73

7장. 중독성 관계에서 깨달음의 관계로 전환 87

 

3부. 수용과 승복

8장. <지금> 순간 받아들이기 103

9장. 질병과 고통의 승화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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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1)

에고 (ego)

내면의 목소리는 친구인가, 적인가?

삶의 법칙 30가지 (2-1)

7단계. 고통의 몸체 다스리기 32

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5단계. 내면의 목격자가 되기 22

4단계. 의식을 몸에 연결하여 '존재'에 뿌리 내리기 17

3단계. 마인드의 위험한 술책

2단계. 생각의 흐름 추적하기 7

1단계. 깨달음의 시작: 우리는 누구인가? 1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아름다움은 당신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 금방 당신이 설명한 것을 난 자연에 둘러싸여 혼자 있을 때 가끔 순간적으로나마 경험한다. = 바로 그거야. (일본 선의 영향을 받은 서구에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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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ety/우주정거장2019. 5. 1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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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렌츠 유년기의 동경과 

 감자토프의 백학 (Crane)  


(<백학 Журавли>: 노래말 - 라술 감자토프, 작곡 - 얀 프렌켈, 노래: 그룹 <세레브로>)

우리 곁을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이 노랫말과 노래와 백학은 러시아에서 전몰장병들을 기리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시 <백학 cranes>이 나오게 된 배경 

사다코 사다코 사사키

러시아연방 다게스탄 공화국의 자토프 시인이 1960년중반 히로시마에 있는 한 일본 소녀의 추모비를 찾았다가 어떤 영감을 떠올린다. 이 소녀는 사다코 사사키, 두 살 때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됐고, 이로 인해 백혈병으로 고생하다가 1955년에 12세로 죽었다.

사다코는 병마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안고 색종이로 종이학을 접었다. 종이학 천 개를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믿음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고, 다게스탄 사람인 감자토프 시인은 러시아 고전 시가의 번역가로서 그런 개념을 잘 알고 있었다. 

감자토프 시인이 일본을 방문하던 기간에 모친 사망 소식을 접한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머니를 생각했다. 또 2차 대전 때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죽은 형과 행방불명된 다른 형을, 또 그 피범벅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다른 가까운 이들도 떠올렸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나치 군대와 그 동맹인 일본국에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던가.


라술 감자토프 라술 감자토프 (1923-2003)

그리고 시에서 토로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학의 외침이, 울음소리가, 어쩌면 아바르어와 까마득한 옛날부터 비슷한 것이 아닐까?” (*아바르어는 까프까즈 산악지대 다게스탄 주민들의 언어이다.) 그에게는 일본의 백학이 아바르의 것과 매한가지였다. (어쩌면, 일본의 백학도, 러시아의 백학도, 아바르의 백학도, 한국의 백학도 감수성 충만하고 마음씨 따스한 이들에겐 다 똑같지 않을까.) 


아바르어로 쓴 시가 1968년 러시아로 번역돼 한 저널에 실렸다. 이 시가 가수 마크 번스의 눈길을 끌었다. 단어 몇 개를 수정하고, 얀 프렌켈이 두 달만에 곡을 완성했다. 


이 노래가 나오고 몇 년 뒤, 소비에트연방 정부는 2차 대전 격전지마다 비석과 기념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중앙에는 날아가는 백학들이 (먼저 떠난 이들의 영혼) 자리 잡았다. 이 노래의 백학은 전몰장병들을 기리는 상징으로 굳어졌다. 


백학 - 전몰장병들과 그 영혼의 상징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불렀다. 앞으로도 또 부를 것이다. 좋은 노래는 그렇게 사랑받으면서 점점 더 진화한다.  소개하는 몇 가지 버전을 통해 그 맛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실감할 수 있다. 


(노래: 얀 프렌켈, 작곡자)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가로 울려 퍼지면서 많은 한국인들의 심금도 건드렸다. 그 장중하고 애절한 선율로... 하지만 노랫말을 안다면 훨씬 더 큰 감동의 물결에 휩싸이게 된다.


Мне кажется порою, что солдаты, С кровавых не пришедшие полей,

Не в землю нашу полегли когда-то, А превратились в белых журавлей.


Они до сей поры с времен тех дальних Летят и подают нам голоса.

Не потому ль так часто и печально Мы замолкаем, глядя в небеса?


Летит, летит по небу клин усталый, Летит в тумане на исходе дня.

И в том строю есть промежуток малый, Быть может, это место для меня.


Настанет день, и с журавлиной стаей Я поплыву в такой же сизой мгле,

Из-под небес по-птичьи окликая Всех вас, кого оставил на земле.


Мне кажется порою, что солдаты, С кровавых не пришедшие полей,

Не в землю нашу полегли когда-то, А превратились в белых журавлей…


(노래: 요시프 코브존)


THE  CRANES


I often  sense that our fallen soldiers, who left on battlefields their bloody stains,

did not lay down in their graves for solace –  but have been transformed into white-winged cranes.

                 

And  we have seen since many years ago:  they soar above and send their mournful cry.

We are transfixed with our deepest sorrow becoming speechless as the cranes soar by.


They soar, they soar, exhausted white triangles, and pierce the fog in a spell-bound line…       

I spy a gap in their ranks – not for angels. This space, I clearly see, may soon be mine.


The day will come, when I will join the row   of  birds inside their even flying chain,

and call you, whom I left behind, below, by voice of a slender, white-winged crane.


(노래: 드미뜨리 흐보로스똡스끼)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조금 다른 이야기 

이 포스팅은 사실 좀 '충동적으로' 나오게 됐다. 

여름 끝물 무렵은 아마도 알프스 북부 지역에서 가장 멋진 시기일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을 늘 반추하게 된다. 비록 70년이 지난 일이지만 말이다. 그때 난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고 글자를 읽을 줄 몰랐던 나이였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다뉴브 강이 흐르는 초원을 자주 거닐었는데, 조심스러운 엄마와 한층 더 조심스러운 이모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난 혼자 앞으로 달려가서 강변 관목들 사이에 서 있곤 했다. 머리 위쪽에서 기묘한 금속성 소리가 울리면서 높은 하늘에서 강을 따라 내려오는 야생오리 떼를 자주 보았다. 

인간의 감정은 아주 일찍부터 발달해서 죽을 때까지 그대로 남는다. 

그때 맛보았던 느낌을 난 이제 다시금 맛본다. 

그 오리들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몰랐지만, 난 정말 그들과 함께 가고 싶었다. 편력의 갈망이 낭만적으로 가득 차서 어린 가슴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려는 갈망이 내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그래, 그게 최초의 경험이었다. 

지금도 내 머리 위로 우리의 야생오리들이 높이 날아갈 때면… 어린 시절 품었던 낭만적인 동경과 이상이 다시금 솟아난다. 또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내가 부르는 소리에 그들이 밑으로 내려올 때면… 어린 시절 꿈이 실제가 된다.


이건 오스트리아 동물학자 콘래드 로렌츠의 회상.


유년기 콘래드 로렌츠, 야생오리와 대화


그럼, 내 머릿속에서 로렌츠의 유년기 회상은 왜 나왔나?

소통의 한 분야로서 요즘 <부모와 자녀의 소통, 어른들과 아이들의 대화>에 관한 원고를 다듬고 있다. 활동성 (적극성), 독자성 추구, 쉽게 몰입하는 성향, 유연성, 예민한 감수성, 풍부한 감정 등 '아이들의 내면세계'를 우리 어른들이 알고 이해하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에서 생생한 사례로 저 회상을 인용하느라고 나왔다. 


그러다가... <백학>이 떠올랐다. 

‘아, 이 노랫말과 노래를 언젠가 포스팅한 적이 있었는데...’ 

찾아보니까, 이 블로그엔 없다. 몇 년 전 다른 <밴드>에 올렸더라. 그래서 여기에도 좀 소상하게 소개하게 됐다. 즉흥적으로. ^^ 

우리네 (사람들의) 생각이란 그렇게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에크하르트 톨레는 '생각의 흐름'을 차단하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때의 '생각'이란  물론 '잡생각, 잡념'을 뜻한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백학>은 나도 아주 좋아하는 노랫말이요 선율이다.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미어진다. 아프다. 하지만 이건 다 긍정적인 아픔이다. 카타르시스. 정화되는... 


*노랫말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올려야 하는데… 예전에 제법 깔끔하게 다듬고 다듬은 것이 어디로 사라졌다. (자료 보관의 중요성!) 다시 다듬을 생각을 하니까 좀 피곤해진다. 공력을 제법 들여야 하니까! 일단은 영어 번역판으로도 독자들께서 감을 잡으시리라 믿는다. 조만간 우리말 번역을 올려야겠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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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구, 아포리즘, 금언 - 프로이트  

 

• 우리는 홀로 (외로이) 세상에 왔다가 홀로 (외로이) 세상을 떠난다. 

• 겉으로 더 흠이 없는 사람일수록,
  그 속에는 악마가 더 득실거려.
(*그러니 조심해!) 

 

지그문트 프로이트 1856-1939

 

• 불행하게도, 억눌린 감정은 죽거나 사라지지 않아.
  그저 입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한 것일 뿐인 그것은 당사자의 내면에서 그에게 계속 (나쁜) 영향을 끼친다.  

참고: (6) 고통의 몸체 녹여 없애기

•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세상 창조 계획에 들어간 과제가 아니었어. 

• 많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여자를 알지만,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사랑을 알지. 

참고: 남녀 사고방식의 차이 (23-1)

• 우리는 힘과 자신감을 줄곧 바깥에서 찾는데, 그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돼.
  힘과 자신감은 항상 우리 안에 있었으니까.  

참고: (28) 인생 여정의 내적인 목적

       내 안에 있는 보물

• 대다수 사람들은 사실상 자유를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인데, 대다수 사람은 책임이라는 말에 잔뜩 겁먹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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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면의 목소리'는 친구인가 적인가?  

 

 

우리네 머릿속에서 살랑거리는 <내면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없겠지. 

많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 그건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참된 무엇이야,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이 목소리가 우리한테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이 더 좋은지 확실히 알고 있어.’ (이런 경우도 물론 있긴 하다. 관이나 통찰.) 

 

머릿속 목소리


한데, 그 내면의 목소리가 뭔가 부정적인 것을 말할 때, 궁극적으로 옳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어떡하지? 

내면의 목소리 뭔가를 말할 때, 우린 그걸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리 머릿속에 있는 목소리 

 

딱히 특별한 사유도 없이 진급에 자꾸 누락된 당신이 직장 상사에게 승진을 요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치자.

고심 끝에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 당신은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리라 예상하고, 거기에 준비도 거의 다 한 상태야.

하지만 갑자기 머릿속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괜히 중뿔나게 나서지 말고 그냥 잠자코 있어, 안 그러면 아예 쫓겨날지도 몰라.” 

 

혹은 예를 들어, 목소리나 소통 훈련, 스피치 공부를 위해 <나나나 커뮤니티> 웹 세미나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고 치자.

‘이 작업은 흔히 말하는 자기계발의 근본이잖아, 사람들을 많이 접하는 나한테는 특히 필요한 거야’ 하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가 또 이렇게 속삭인다.

‘그런 거 안 하고도 지금까지 잘 살았잖아, 한데 이제 와서 이 나이에 애들처럼 공부는 무슨 공부야?’

그리고 이 내면의 목소리 하나 때문에 당신의 열정은 비눗방울처럼 꺼지고 만다. 

 

저런 상황들이 익숙하지 않은가? 저 비슷한 일들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전에, 우리 어렸을 적에, 혼자 뭔가를 계속 중얼대며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듯 하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그들은 자꾸 무슨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주변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건 또 별개의 곁가지이다.) 

 

지금 우리가 다루는 내면의 목소리는 우리 안에 있는 비판자로서 효율적인 제어시스템 같이 작동한다.
그리고 아주 많은 경우,
그런 내면의 목소리가 하는 일은 열정을 식히고 자신감을 파괴하고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
.
이럴 때, 내면 목소리는 또 궁리가 아주 멀쩡해서,
새로운 뭔가를 하지 않게 하는 핑계를 잔뜩 들이대며 합리화에 나선다. 

 

내면의 목소리가 신통치 못한 소리를 지껄이고 우리가 그 목소리에 지배된다면, 인생은 무채색이 되며 새로운 것이라곤 하나도 시도해 보지 못하겠지, 왜냐면 두려움과 의혹에 사로잡히니까.

그런 내면 목소리의 99%는 우리를 제 자리에 붙잡아둔다. 복지부동하게 만든다.

한데, 전진하지 않는 자는 퇴보하는 것 아니던가? 

 

내면의 목소리는 직관인가?

     

우리는 내면에서 벌어지는 독백이나 (자신과의) 대화를 대체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왜?

왜냐하면, 그 목소리가 진정한 ‘나’이며 잠재의식의 시그널이거나 직관이라고 여길 때가 많으니까.

사실, 목소리 형태로만 (혼자 중얼거려야) 직관이 번뜩인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그들은 자기 머릿속에서 뭔가를 분명히 듣는다고 말한다. 이런 <우주의 조력>과 <내적인 제동>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나? 

     

이건 사실 아주 간단해.

진짜 번뜩이는 직관에는 비판도 논쟁도 설명도 없다.

직관과 통찰의 본질은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단순할 것이다.

이를테면, ‘저쪽 어디로는 가지 마’, ‘다른 길로 가라’, ‘집에 전화해 봐’ 등등.

이때 '뭔가에 대처하지 못하거나 길을 잃을 테니까 그쪽으로 가지 마' 같은 말을 머릿속에서 듣는 것이 아니다. 직관은 ‘거기로 가지 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같은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한데 대부분의 <내면 목소리>에는 하나의 목표만 있어.

즉, 우리를 심리적으로 약하게 만들어 자신의 제물로 삼으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거나 최소한 그것을 통제하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두 귀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여러 목소리가 마구 일어나는 경우에 부닥친다. 그렇다 하여 ‘내가 미친 건가?’ 하는 의문을 품을 필요도 없고 내면의 독백 때문에 우울해할 까닭도 없다. 단지 하나, 이런 현상이 꿈의 실현을 가로막는다는 사실 때문에 어떡하든 잘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것. 

그런 (내면의) 목소리가 우리 행위를 통제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이 통째로 달라질 것이다. 

 

1. 극복을 위한 첫걸음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기, 국외자 입장에서 관찰하기, 또 관점을 바꾸기. 

우리는 우주나 세상의 손아귀에 붙들린 볼모가 아니며 장난감도 아니지 않는가. 우리 자신이 우리 행위의 주역이요 주인공 아니던가. 그럼, 내면의 목소리가 뭔가 안 좋은 쪽으로 또 속삭일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소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자문하라.

"이건 내 내면의 목소리이지 본연의 ’나‘가 아니야" 하고 말하면서 자신을 다독이라. 그리고 정말 그렇게 믿어야 한다. 

 

2. 두 번째 스텝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 결점 따위를 다 허용하는 거야.

뭔가가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잘못 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해.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왜냐하면, 자신의 약점이나 결점을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세상에 더 이상 감추려 들지 않게 되니까.

누구한테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천사와 악마가, 영웅과 악한이 다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느 쪽이 이기느냐 하는 점.

‘애써 봤자 아무 것도 안 될 거야,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나’

같은 목소리가 내면에서 꿈틀대며 일어날 때,

“스톱!”

하고 외치면서 그 목소리를 단호하게 차단하라.

그런 생각이며 마인드의 (혹은 더 정확히 말해, 잡념의) 장난에 말려들지 말아야 할 것이며, 어떡하든 더 좋은 생각으로 마음을 즐겁게 할 일이다. 바로 여기서 <긍정적 자기암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의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목소리>는 나름대로 설득력과 창의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우리는 그것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이 목소리가 뭔가 안 좋은 것을 속삭일 때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녀석을 과대평가할 필요가 없어.

많은 경우에 그건 번뜩이는 직관도 신의 계시도 아니며,

그저 우리네 의혹과 반신반의가 쭈뼛거리며 내미는 '상판대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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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고(ego)를 보신 분, 계세요?  

 

 

우리 각자에게는 두 개의 '나'가 있습니다. 

'참된 나'와 '거짓된 나'. 

 

착각과 환상과 미망에 사로잡혀 있는, 이 '거짓된 나'를 

에크하르트 톨레는 에고(ego)라고 부릅니다.

우리도 (나도) 그렇게 부르려고 합니다. 

 

고목
우리네 에고(ego)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아주 아주 안타깝게도, 우리네 대다수는 

이 '거짓되고 잘못된 나'를 본연의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개인의 고통과 불행이 비롯되어 늘 따라 다니는 것이겠죠? 

이런 개인들로 가득한 사회에서 발생하지 못할 비극이 무엇이며 어디 있겠습니까? 

 

에고를 내던지고 에고에서 벗어나고 

'참된 나'를 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겠습니다.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놈의 껍데기를 훌훌 내던지게 될 날은 

과연 언제나 되어야 찾아올까요?  

 

(* 영주 부석사에 들르기 전 잠시 곁길로 샜다가 발견한 물건. 

나의 에고가 저런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빠졌더랬다.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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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 있든, 

 거기서 온전하고 충실하게 있으라  

 

∫ 

 

뭔가를 걱정하고 있나? 

‘만약 …하다면’, ‘만약 …이라면’ 같은 생각을 많이 하나?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의 마인드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며, 이 마인드가 상상의 미래 상황에 투영되어 두려움을 만들기 때문에 걱정거리가 생기는 거야. 그건 어떻게 하든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 자체가 실재하지 않으니까. 그건 머릿속 허깨비일 뿐이다. 

 

지금 여기에

 

건강을 해치고 삶을 파괴하는 이 광기를 간단히 멈출 수 있다. 

현재 순간을 인정하기만 하면 돼. 

호흡을 의식하라. 
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공기를 느끼라. 
내면의 에너지장을 느끼라. 

 

허구적인 마인드 투영과 반대로, 당신이 실생활에서 다루고 처리해야 하는 것은 전부 지금 순간이다내년이나 내일이나 5분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자문하라. 

 

지금 이 순간에 뭔가 잘못 된 게 있나? 무슨 문제가 있나?

<지금> 순간에 우리는 언제나 대처하고 수습할 수 있지만, 미래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해답이나 힘, 미더운 행동이나 자원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비로소 있게 될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가 아니라. 

 

“난 언젠가 이걸 해낼 거야” 다짐하면서 그 목표에 주의를 많이 돌리는 바람에... 

현재 순간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축소되고 있나? 
그 미래의 목표가 지금 하는 일에서 기쁨을 앗아가나? 
인생을 다시 시작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나? 

 

그런 식의 마인드 패턴을 고수하거나 키운다면,

그 무엇을 달성하고 획득한다 해도 현재 순간은 늘 썩 신통치 못하고 미래가 늘 더 좋아 보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항상 불만과 결핍감에 시달린다. 안 그런가? 

 

당신은 혹시 뭔가를 습관적으로 기다리나?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시기를 기다림으로 보내나? 

 

내가 ‘작은 기다림’이라 부르는 것은 은행 창구나 공항에서 줄서기, 교통 정체, 혹은 누군가가 오거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등을 말한다. ‘큰 기다림’이란 다음 휴가나 더 좋은 일자리, 아이들 성장, 진정 소중한 대인관계, 성공과 좋은 돈벌이, 중요한 위치, 깨달음 얻기 등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삶을 새롭게 시작할 때를 기다리(기만 하)다가 평생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다림은 마인드의 상태이다이건 기본적으로 현재를 원치 않고 미래를 원한다는 뜻이야. 가진 것을 원치 않고 갖고 있지 않는 것을 원한다는 뜻이야. 모순이고 비합리적이다. 

 

어떤 형태로든 기다리고 기대할 때…

우리는 있기 원치 않는 ‘지금, 여기’와 가 있기 원하는 투영된 미래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현재를 잃음으로써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삶의 상황을 (여건을,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데 잘못 된 건 하나도 없어. 그걸 향상시킬 수 있어. 하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삶이 개선되거나 향상되지는 않는다. 삶이 으뜸이고 우선이다. 삶이란… 우리의 가장 유현한 내적 <존재>이다. 그건 이미 온전하고 완벽하며 완성돼 있다. 

 

우리네 인생 상황은 다양한 처지와 경험으로 이뤄진다.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뛰는 데 잘못된 건 하나 없어.

그것으로 삶의 체감과 <존재>를 대신한다는 데 잘못이 있다.

삶의 체감과 <존재>에 이르는 접점은 <지금> 순간 하나밖에 없다. 이 순간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기초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상부 구조물 세우는 데만 잔뜩 시간 들이는 건축가가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번영과 번창을 기다리는데, 그것이 미래에 올 수는 없다. 지금 있는 곳과 지금의 자신과 지금 하는 일 등 지금의 현실과 실체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완전히 받아들일 때,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가진 것에 감사하며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하며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 

현재 순간과 지금 삶의 충만함에 감사함이… 진정한 번영이다. 그것이 미래에 올 수는 없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번영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한테 나타난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현재의 부족함을 두고 좌절하거나 화를 낸다면, 이건 부자가 되게끔 동기를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설령 부를 쌓는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되고 내면 깊은 곳에서도 여전히 다 채우지 못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자극적인 것을 많이 즐길 수 있겠지만, 그런 건 다 왔다가 사라지고, 남는 것은 허전한 느낌이요 육체적 쾌락이나 심리적 만족을 더 채워야겠다는 욕구뿐이다. 그때 우리는 <존재> 안에 머물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유일하고 참된 번영인 지금 삶의 충만함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마인드의 상태인 기다림을 거부하라. 
기다리는 상태에 빠져든 자신을 포착하게 되면… 거기서 얼른 빠져나오라. 
현재 순간으로 들어서라. 
그냥 현존하면서 그 상태를 즐기라. 

 

우리가 현존하고 실재한다면, 그때는 뭔가를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니 다음에 혹시 누군가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하고 말한다면,

“아, 괜찮아요, 기다리지 않았어. 여기서 난 그냥 내 자신의 기쁨 속에서 나 자신을 즐기고 있었어”

하고 응답할 수 있다. 

 

현재 순간을 부정하는 것은 평범한 무자각의 일부이며, 이를 위해 마인드가 상습적으로 동원하는 술책이 몇 가지 있다. 이런 술책을 간과하기가 쉬운데, 왜냐면 그것이 일상적인 삶에 아주 자연스레 배어 있기 때문이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처럼 끊임없는 불만의 정적인 배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의 정신적 감정적 상태를 더 많이 모니터할수록, 과거나 미래에 빠지는 순간을 (즉, 무자각 상태를) 알아차리고 시간이라는 동면에서 깨어나 현재로 들어오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조심하라. 
마인드와 동일시에 기반을 두고 불만에 찬 <거짓된 나>는 시간을 먹고 산다
그건 현재 순간이 자기한테는 죽음임을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큰 위협으로 느낀다. 
‘거짓되고 불만에 찬 나’인 <에고>는 우리를 현재에서 밀어내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쓴다. 
그래서 시간이라는 올가미에 잡아두려고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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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생활 여건에서 삶을 찾기  

 

 

- 지금 내가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돼. 공교롭게도 나는 현재 내 삶에 불만이 아주 크다. 이건 사실이야,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데 “모든 게 잘 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려 든다면, 자신을 속이는 짓이겠지. 

내 현재 순간은 아주 불행하다. 전혀 자유롭지 못해. 그나마 계속 움직이는 것은 미래에 좀 나아질까 하는 희망과 가능성 때문이야. 

 

생활 여건에서 삶을 찾기

 

당신은 현재 순간에 주의를 집중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주의와 관심과 눈길은 완전히 시간에 얽매여 있다. <지금> 순간에 전적으로 실재하면서 동시에 불행할 수는 없어. 

당신이 ‘내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엄밀히 하자면 ‘나의 생활 형편이나 상황’이라 불러야 한다. 이것이 과거나 미래라는 심리적 시간이다. 

 

과거의 어떤 일들은 당신이 원하던 대로 잘 풀리지 않았어. 당신은 지금도 과거에 일어난 일에 여전히 저항하며, 이젠 지금 있는 것에도 저항하고 있다. 

희망이 당신을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도 당신 주의의 초점을 미래에 맞추게 한다. 이렇게 초점을 계속 미래에 집중하면서 현재 순간을 계속 부정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늘 불만인 것이다. 

 

- 맞아, 내 지금의 생활 형편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후과이지만 그게 여전히 내 현재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갇혀 있다는 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자신의 생활 여건이나 상황을 잠시 잊고, 자신의 삶에 주의를 돌리라.

 

 

- 그게 뭐가 다른데?

 

당신 삶의 상황은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당신의 삶은 지금이다.

당신 삶의 상황은 마인드의 산물이지만, 당신의 삶은 생생한 실체이다. 

 

‘삶으로 이어지는 좁은 문’을 찾아내라. 그건 <지금> 순간이라 불린다. 

이 순간까지로 자기 삶을 좁혀 보라. 

대부분 삶의 상황이 그렇듯이, 당신 삶의 상황에는 문제들이 가득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당장 이 순간에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나?’ 

찾아보라. 10분 뒤나 내일 말고 지금 당장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찾아냈나?

우리가 문제로 가득 차 있을 때, 거기엔 새로운 뭔가가 들어설 여지가 없고 해결책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마다 여지를 좀 만들고 공간을 좀 비워 두라. 그러면 삶의 상황 속에서 삶을 찾을 수 있다.

 

감각을 충분히 활용하라.

지금 있는 곳에 있으라. 

 

주변을 둘러보라. 해석하지 말고 그냥 둘러봐.

빛과 모양과 색상과 질감을 보라. 

 

사물 하나하나가 조용히 실재하고 있음을 감지하라. 

그 모든 것이 있게끔 하는 공간을 감지하라. 

 

여러 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판단하지는 말라. 

이 소리들 아래 있는 고요에 귀를 기울이라. 

 

무엇이든 만져 보라. 그것의 <존재>를 느끼고 인정하라. 

자기 호흡 리듬을 관찰하면서, 드나드는 공기를 느끼라. 몸 안의 생명 에너지를 느끼라.

 

내 안팎에 있는 모든 것이 있게끔 하라. 

모든 것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지금> 순간으로 더 깊이 들어서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비실제적 관념의 죽은 세계를 떠나며 시간이라는 죽음의 세계를 넘어서는 것이야. 병들고 무분별해져서 우리 생명력을 헛되이 소모케 하는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이 미친 마인드는 지구도 서서히 망가뜨리고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현재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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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성과 고통의 뿌리는 

 시간 속에 들어 있어  

 

 

- 하지만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늘 망상인 건 아니잖아. 현재는 아주 힘들지만 미래에는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대개 미래는 과거의 복제이다. 피상적인 변화는 가능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드물며, 이마저도 우리가 <지금> 순간의 힘에 접근함으로써 과거를 녹여 없앨 만큼 충분히 현존할 수 있는지 여부에 좌우된다. 미래라고 인지하는 것은 지금 우리 의식 상태의 고유한 부분이다. 

 

부정적 성향과 고통의 뿌리

 

만약 마인드가 과거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우리는 같은 것을 더 많이 겪을 것이다. 

과거는 현재가 부족할 때 영속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네 의식의 성질이 미래를 형성하는데… 이 미래는 물론 <지금> 순간으로서만 체감할 수 있다. 

 

당신은 어쩌다가 1천만 달러를 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의 변화는 미미한 것이다. 거액이 들어왔다 해도 환경만 좀 더 호사해졌을 뿐이지 예전 패턴대로 계속 행동할 거야. 

인류는 원자를 분리할 줄 알게 됐다. 예전에는 나무 몽둥이로 사람을 열, 스물 죽일 수 있었던 데 비해 지금은 한 사람이 단추만 누르면 백만 명을 죽일 수 있다. 

이게 진정한 변화일까? 

 

만약 지금 이 순간 우리네 의식의 질이 미래를 결정한다면, 이 의식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우리가 현존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과거가 녹아 사라질 수 있는 곳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지금> 순간이다. 

 

∫ 

 

 

부정성은 죄다 심리적 시간의 퇴적과 현재의 부정에서 야기된다. 

 

불안이나 걱정, 긴장, 압박감, 고심 등 든 형태의 두려움은 다 미래가 너무 많고 현재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죄책감이나 후회, 분노, 불만, 슬픔, 낙담, 괴로움, 갖가지 불용(不容) 등은 다 과거가 지나치게 많고 현재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부정적 성향을 전혀 띠지 않는 의식 상태가 가능하다는 점을 대다수 사람들은 믿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모든 영적 가르침이 가리키는 해방된 상태이다. 이것이 또 환상적인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구원의 약속이다. 

 

시간이 우리네 고통이나 문제의 원인임을 인정하기가 힘들 수도 있어. 

그런 것들은 우리 인생의 특정한 상황 때문에 생긴다고 믿는다. 

진부한 관점에서는 그게 맞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에 애착을 갖고 <지금> 순간을 거부하면서 문제 일으키는 마인드의 기본적인 기능 장애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이른바 문제들이 실제로 줄줄이 나올 것이다.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나 문제가 모두 오늘 어떻게 해서 기적처럼 제거됐다 해도 더 많이 실재하지 않고 더 자각하지 않았다면, 비슷한 문제나 고통의 원인이 그림자처럼 계속 따라다님을 곧 발견할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단 하나인데… 시간이란 족쇄에 묶여 있는 마인드가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다.  

 

- 나의 여러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시점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맞는 말이야. 당신이 그 시점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거야. 왜냐면 지금 그 시점에 있으니까. 

 

시간 속에는 구원이 없다. 우리는 미래에 가서 자유로워질 수 없어. 

자유에 이르는 열쇠는 현재이므로, 오직 지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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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 시간의 광기  

 

 

심리적 시간의 집단적 증상을 들여다본다면 이것이 정신질환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러 증상은... 

이를테면 코뮤니즘이나 국가사회주의(나치즘), 여러 형태의 내셔널리즘 같은 이데올로기 형태에서, 혹은 지복이 미래에 있으므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맹목적인 전제 하에 작동하는 경직된 종교적 신앙 체계에서 발견된다. 

 

심리적 시간

 

목적이 되는 그 끝은… 

마인드가 투사된 미래의 한 시점이요 미래에 대한 관념이며, 이 미래에 행복이나 성취, 평등, 해방 등 어떠한 형태로든 구원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거기에 도달하려는 수단이 현재에서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고문하고 죽이는 일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소비에트연방이나 중국 등 몇몇 국가에서 코뮤니즘이라는 사회적 이상을 발전시키고 이른바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명분 아래 5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건 미래의 천국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현재에서 지옥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으스스한 사례이다. 

 

 

심리적 시간이 심각하고 위험한 정신병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이런 마인드 패턴이 우리 각자의 삶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나? 

당신은 지금 있는 곳 말고 다른 어떤 곳으로 가려고 늘 애쓰나? 
당신이 하는 일 대부분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성취나 실현 가능성이 항상 코앞에 있거나, 아니면 섹스나 먹을거리, 술, 마약, 혹은 스릴이나 흥분 같은 잠깐의 쾌락에 국한돼 있나? 
당신은 뭔가가 되거나 뭔가를 달성하고 얻는 데 늘 집중하나? 혹은 그 대신에 새로운 스릴이나 쾌락을 쫓아다니나? 

이런저런 물건을 더 많이 갖게 되면, 성취감을 더 느끼거나 충분히 만족하거나 심리적으로 든든해진다고 믿나? 
당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어떤 남자나 여자를 기다리고 있나?

마인드와 동일시되거나 깨닫지 못한 보통의 의식 상태에서는… 

<지금> 순간에 숨어 있는 파워와 무한한 창의적 잠재력이 심리적 시간에 완전히 가려 있다. 

 그러면 삶은 활력과 신선함과 경이감을 잃는다. 

 

생각과 감정과 행동과 반응과 욕망의 낡은 패턴이 끝없이 반복되고, 우리한테 일종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마인드의 각본은 <지금> 순간의 실체를 왜곡하거나 은폐한다.  

그런 다음에 마인드는… 불만족스러운 현재에서 도피하기 위해 미래에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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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시간의 함정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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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실생활에서 시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라. 

이런 시간을 우린 ‘시계의 시간’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실무를 처리한 뒤에는 즉각 현재 순간의 깨어 있는 의식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과거와 동일시되고 미래에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투영하는 심리적 시간이 늘어나지 않는다.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기

 

시계의 시간은 단순히 약속을 잡거나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필요한 건 아니야.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때도 필요하다. 

시계의 시간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일할 때도 필요해. 또 과거에서 얻은 물리나 수학의 법칙들과 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기초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할 때도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나 미래에 눈길 돌리지 않고서는 뭔가를 할 수 없는 실생활 영역에서도 현재 순간은 여전히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즉, 과거의 모든 교훈이 지금 적절해지고 지금 적용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뿐 아니라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업도 지금 이뤄진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늘 <지금>에 주의를 집중하면서도 지엽적으로는 여전히 시간을 의식한다.

달리 말해, 그들은 시계의 시간을 계속 이용하지만 심리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걸 실행하면서 물리적 시간을 부지중에 심리적 시간으로 전환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예를 들어… 

과거에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제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면, 이건 시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과거 실수를 마음에 담아둔 채 자신을 탓하거나 후회하거나 죄책감이 든다면, 이건 그 실수를 ‘나'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이 실수를 자아감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며, 
그것이 심리적 시간이 되고, 
이 심리적 시간은 늘 그릇된 정체성 감각과 연결된다.
용서하지 않으면 심리적 시간의 무거운 짐이 반드시 뒤따른다.

 

목표를 세우고 그걸 향해 노력한다면, 시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고 있지만, 이 순간에 밟고 있는 단계를 존중하며 거기에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혹시 행복과 성취를 추구하거나 거기서 더 완벽한 자아감을 찾느라고 목표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지금> 순간이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 그건 본래 가치를 상실하고 미래로 가는 단순한 디딤돌 정도로 축소된다. 

 

그러면 시계의 시간이 심리적 시간으로 바뀐다. 

그러면 우리네 인생 여정은 더 이상 가슴 설레는 체험이 아니라 제 기한에 도달하고 뭔가를 얻고 뭔가를 해내야 하는 욕구가 된다. 

그러면 길가의 꽃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그 향내를 못 느낄 뿐 아니라, <지금> 순간에 존재할 때 주변에 펼쳐지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감지하지도 못한다. 

 

 

- <지금>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은 알겠는데, 시간이 완전히 환상이라는 말에는 썩 동의하기 어렵다. 

 

‘시간은 환상’이라고 말할 때, 내 의도는 철학적 언급을 하자는 게 아니야. 단지 간단한 사실 하나를 상기시키는 거야.

이 사실은 하도 뻔해서 포착하기 힘들지 모르고 무의미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일단 충분히 실감하기만 하면 마인드가 만들어 낸 이른바 ‘문제들’과 복잡함을 날카로운 칼처럼 자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순간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전부야. 

우리네 삶이 ‘이 순간’이 아닌 적은 절대 없어. 이것이 사실 아닌가?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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