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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사진

 


 

  일본 임제선 창시의 주요 인물인 남포소명은 이렇게 설파한다. 

  「눈먼 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마음에서 부처가 자신의 황금 입술에서 단어들을 농담조로 흘렸다. 그 뒤로 하늘과 땅이 뒤얽힌 말 덤불로 가득 찼다.」 

  이 덤불들이 극동에서만 자란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가지고’ 왔다면, 그건 그분과 그분 후계자들이 그들 통찰력을 말로써 구체화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말들처럼, 기독교적 언급들은 때론 너무 공격적이고 때론 너무 개괄적이고 불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늘 구구한 해석의 여지를 많이 허용한다. 

  이런 가르침이 작업가설로 활용될 때… 즉, 인간이 존재의 고통을 수습하도록 돕는 지혜의 원천으로 활용될 때, 기독교적 명제들은 거대한 가치를 지녀 왔다. 한데, 그 명제들이 교리요 우상으로 바뀌면서, 그것들은 신학적 증오나 종교전쟁, 교회 제국주의 같은 거대한 악을 낳았다. 이 악에는 루덩에서 벌어진 광란의 향연과 수렝의 자기암시로 인한 광기 같은 부차적인 참사들도 포함된다. 

 

  모럴리스트들은 정욕을 통제해야 한다고 자주 읊어댄다. 물론 옳은 말씀이다. 한데 불행히도 그들 중 대다수는 그에 못지않게 본질적 의무인 말과 말에 근거하는 사유 형태를 통제하지 못한다

  정욕의 범죄는 뜨거운 피에서만 자행되고, 피는 가끔 뜨거워질 뿐이다. 그러나 말은 늘 우리와 함께 있고, 말은 주문과 마법 공식 같은 것도 황당하지 않다고 여기게 만들 정도로 암시적인 힘을 지닌다.  

 

  정욕의 범죄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은 이상주의의 범죄. 이는 바로 신성시 된 말로 쏘삭거리고 조장하고 설교하여 생기는 범죄. 이런 범죄는 맥박이 정상일 때 계획되고 피가 차가운 상태에서 다년간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실행된다. 

  과거에는 이상주의 범죄를 강요한 말들이 주로 종교적인 것이었다면, 오늘날 그런 말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것이다. 도그마들은 이제 추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현실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됐다

 

  유일하게 변치 않은 것은 각종 도그마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맹신이요 조직적 광기요 악마 같은 흉포함이며, 그들은 그런 흉포함을 가지고 저희 믿음을 행한다. 

  실험실과 서재에서 쓰는 작업가설 개념을 이제 교회와 의사당, 정부에서도 이해하고 수용할 때, 인류는 집단 광기에서 벗어나고 대량 학살과 대량 자살이라는 고질적 충동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인류의 주된 문제는 바로 환경. 사람들은 물질 수준부터 영적 수준까지 모든 수준에서 우주와 어떻게 어울려 사는지를 배워야 한다. 생물학적 종으로서 우리는 제한된 규모와 자원을 소유한 행성 위에서 거대하고 급속히 늘어나는 인구가 만족스럽게 계속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 자원 중 많은 것은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소모적 자산이 아닌가. 

  개개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상상하는 무한한 정신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datum과 donum (받지만 말고 주기도 하는) 원칙에 입각함으로써 서로 만족스럽게 지내는 방법을 키우게 될 것이다.[각주:1] 

 

  이런 말이 있다. “먼저 하나님 나라를 찾으라, 그러면 나머지는 다 저절로 따라붙을 것이다.”[각주:2]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행동한다. 먼저 ‘나머지 다’를 찾으려고 기를 쓴다. 즉, 이기적인 돌진과 말의 힘에 대한 맹신에서 생긴, 지나치게 인간적인 사리사욕을 챙기려고 든다. 그 결과 우리네 기본 환경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해결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정치 유희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조직화된 사회가 지구와 좋은 관계를 증진시키기 힘들게 된다

 

  맹신적으로 숭배된 언어 체계에 지나치게 쏠리다 보면, 존재의 ‘원초적 사실’과 좋은 관계를 증진시키기 힘들어진다. 먼저 이차적인 ‘나머지 다’를 찾아다니다가 우리는 그것을 잃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마저 잃으며, 또 그 왕국이 도래할 수 있는 유일한 지구도 잃는다

 

  수렝의 경우, 어떤 명제들을 부동의 도그마로 믿게끔 배운 바람에 공포와 절망에 억눌려서 정신이 나갈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른 명제들이, 똑같이 독단적이지만 더 용기를 북돋운 명제들이 있었다

 

  1655년 10월 12일 (이맘때 수렝이 복귀한) 보르도 칼리지에서 한 수도사가 그의 고해를 듣고 영성체를 준비시키기 위해 방으로 찾아왔다. 병자가 자책할 수 있는 유일한 중죄는 아주 사악하게 처신하지 못했다는 점뿐이었다. 왜냐하면, 신께서 이미 저주를 내린 이상 모든 악에서 뒹굶으로써 그 저주에 합당하게 살아야 할 텐데, 실제로는 늘 고결한 사람이 되고자 애를 썼으니 말이다.  

  「기독교인이 선을 행하는 문제에서 자책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면, 즉 자신의 죄가 충분치 못해 괴롭다 한다면, 독자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웃을지 모르겠다. 이제 내 보기에도 그렇다.」 

 

   이 대목을 1663년도에 썼다. 1655년에도 수렝은 자신을 ‘길 잃은 영혼’이라 여기면서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런 의무감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덕적으로 경건하게 처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자살보다 훨씬 더 중한 죄를 범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적어도 그에겐 그렇게 보였다.

 

  바로 이 죄를 그가 ‘아직 희망을 갖고 지상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저주받은 자들 중 하나로서’ 고해사제에게 고백했다. 고해사제는 필경 어질고 지혜로운 이로서 수렝의 과대망상 성향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참회하는 죄인에게 보증했다. 

  난 이런 일을 잘 모르지만 결국 모든 게 잘 되리라는 인상을 종종 강하게 느꼈다오. 그걸 계시라 불러도 좋아요. “당신은 자신의 오류를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고, 평화롭게 숨을 거둘 것이외다.” 

 

  이 말이 수렝의 마음에 엄청난 인상을 불러일으켰고, 그 순간부터 공포와 비참함으로 숨 막히게 하던 구름이 걷히게 됐다. 하나님이 그에게서 돌아서지 않았다. 아직 희망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질병이 회복된다는 희망, 다음 세상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희망이

  희망과 더불어 건강도 조금씩 회복됐다. 신체 활동 억제와 마비 증세가 차례로 사라졌다. 글을 쓸 수 없던 상태가 먼저 사라졌다. 십팔 년 동안 강요된 병리적 문맹 상태 끝에 1657년 어느 날 그가 펜을 쥐고 영적 생활에 대한 숙고를 세 페이지 끼적일 수 있었다. 철자들이 ‘거의 읽기 힘들 만큼 볼품없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손이 마침내 말을 듣기 시작한 점, 비록 마음먹은 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해도.  

 

  세 해가 지나 보행 능력이 회복됐다. 이건 시골 친구 집에 묵을 때였다. 처음에는 일꾼 둘이 그를 들어 침실에서 식당으로 옮겨 다녔다. 「왜냐면 지독한 통증 없이는 한 발짝도 뗄 수 없었으니까. 이건 마비 환자들이 겪는 통증 같은 게 아니었다. 위가 수축되고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통증이었으며, 그때마다 난 창자가 뒤집히는 것을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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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0년 10월 27일 한 친척이 그를 보러 왔다. 떠날 시간이 됐을 때 수렝이 배웅하려고 문까지 고통스럽게 발을 질질 끌고 갔다. 거기 서서 손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정원으로 눈길을 돌리고는 갑자기 「모든 사물을 아주 또렷하게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건 극도의 신경쇠약 때문에 지난 십오 년 동안 전혀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익숙한 통증 대신 ‘어떤 생기’를 느끼면서 계단을 대여섯 개 내려가 정원에 들어서서 제법 오랜 시간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커먼 이끼며 녹색으로 반짝이는 회양목 울타리를 보고, 풀밭과 갯개미취들과 가지가 뒤엉킨 서어나무 오솔길을 보았다. 더 멀리 창백한 창공 엷은 은색 햇빛 속에 부드러운 갈색 가을 나무들이 서 있는 낮은 구릉들을 보았다. 

 

  바람 한 점 없고 거대한 수정 같은 적막이 깔렸는데, 떠오르는 갖가지 색채와 확연한 형상들과 무수한 선들이 기적 같은 광경을 펼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시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영원의 존재를 느꼈으니까.  

 

갖가지 색채와 확연한 형상들이 나타나는 자연에서 영원의 존재를 느끼다

 

  다음날 그 동안 거의 망각하고 있던 세상으로 다시 외출을 감행했다. 날이 갈수록 탐사가 과감해져서 한번은 우물 있는 데까지 갔다. 우물을 보고도 뛰어들고픈 충동이 일지 않았다. 정원을 벗어나서 수도원 너머 작은 숲으로 들어가 발목까지 차는 낙엽을 밟으며 걸었다.  

 

  장 조셉 수렝이… 치유됐다. 

 

  그는 ‘극심한 신경쇠약’ 때문에 바깥세계를 인식하지 못했노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쇠약 때문에 신학적 개념들이며 그 개념들이 일으킨 환상에 집중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연계에서 그렇게나 비참하게 단절된 것은, 사실은 그가 그런 이미지들이며 추상 관념에 병적으로 몰입한 탓이었다. 그를 삶에서 떼어놓은 질병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그는 말과 거기서 파생된 것들이 사물과 생명보다 더 중요한 세계에서, 주어진 사실들로부터 떨어져 살게끔 자신을 몰아쳤던 것이다

 

  랄망은 믿음의 경계를 모르는 사람의 숭고한 무모함을 가지고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성체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보거나 거기에 경탄해서는 안 된다. 만약 신이 경탄할 수 있다면, 그분은 이 신비와 부활에만 경탄했을 것이다. 신이 인간 모습으로 나타난 이후 우리는 그 무엇에도 놀랄 일이 없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서 그 무엇을 보지도 않고 경탄하지도 않는다는 면에서 수렝은 그저 스승의 금지 명령을 따르기만 했다. 그저 주기(donum)만 꿈꾸면서 아무 것도 받기(datum)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신께서 주시는 최고 선물은 주어진 것으로 이뤄진다. 하나님 왕국은 이 세상에 임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기적인 갈망과 증오로써 일그러진 의지며 도그마들로써 왜곡된 지성에 나타나는 세상을 지각할 게 아니라

 

  수렝은 타락한 세상이 완전히 부패했다고 확신한 엄격주의 신학자였기에 랄망을 좇아 자연에는 바라보거나 경탄할 만한 게 전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그가 직접 겪은 경험과 일치하지 않았다. <영적 교리 문답>에서 이렇게 쓴다. 

  「간혹 성령은 영혼을 꾸준히 점차적으로 일깨운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는 동물이며 나무, 꽃, 기타 모든 피조물 등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죄다 활용한다. 그리하여 영혼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넌지시 이르며 위대한 진리를 알려 주신다.」 

  같은 맥락의 구절이 하나 더 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갖고 계신 지혜와 선의를 모두 꽃송이에서, 미물에서, 영혼들에게 환히 드러내신다. 영혼에 사랑의 불길을 일으키기 위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자신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많은 경우에 내 영혼은 이런 찬미의 상태로 덮였고, 그러면 햇빛이 평소보다 말할 수 없이 더 밝아지는 듯한데, 그러면서도 아주 부드럽고 견딜 만한 것이, 자연광이 아니라 마치 더 드높은 시원에서 나오는 듯싶은 것이다. 한번은 그런 상태에 잠겨서 보르도에 있는 우리 칼리지 정원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 빛이 어찌나 기적 같은지, 내가 마치 낙원에서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모든 색채가 평상시보다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으며’ 모든 형상이 더 우아하고 눈부시게 보였다. 우연한 축복 덕분에 그는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의 문으로 자연스레 들어섰다. 그 세계는 만약 블레이크의 말대로 ‘지각의 문들이 깨끗이 닦여 있다면’ 우리가 매 시간 거주할 곳이다.[각주:3]

  그러나 찬미의 상태는 오래가지 않고, 병고를 겪는 여러 해 내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웅장함이라는 면에서 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아주 강렬한 기억 외에 내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일순간이나마 지상에서 하나님 왕국을 접한 이 사람이 그럼에도 엄격주의자이기에 이 징표를 지각하지 않고 창조의 결실을 다 거부해야 했던 까닭은 단순한 말과 추상적 개념들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이다

  그는 자연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러나 트러헌이 <명상의 시대>에서 한 것처럼 이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성들여 활용하는 대신, 그는 신이 창조한 그 무엇도 보거나 경탄하기를 거부하는 예전 비정상적 정신 상태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러고는 자기 신조에서 더 암울한 명제들과, 그 명제들에 대한 자신만의 감정과 상상에, 온 생각을 쏟아 부었다.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과 아름다움을 스스로 내던지기에 이보다 더 확실한 길도 없었으리라. 

 

  안타이오스[각주:4]는 땅에 닿을 때마다 새로운 위력을 얻었다. 그렇기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이 거인을 들어 올려 허공에서 교살해야 했다. 

  거인이자 동시에 영웅인 수렝은 자연과 접촉하여 치유되는 경험도 했고 의지력 하나로 자신을 지상에서 들어 올려 제 목을 죄기도 했다. 그는 해방을 열망했다. 그러나 성자와 합일을 잘못 해석했다. 그에게는 이 합일이 자연에 깃든 신성을 부정하는 뜻으로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한 세상과 떨어져서 영혼이 성부와 합일하는, 또 갖가지 심리적 체험에서 성령과 합일하는 부분적 깨달음만 얻었다

 

  (초기 단계에서 수렝의 치유는 암흑으로부터 ‘행복하고 건강한 의식’으로 이동하는 데 있지 않았다. 이 건강한 의식은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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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틴어 datum은 '주다'라는 동사 dare의 과거분사로서 '주어진'이란 뜻. 즉, 받은 것. donum은 '선물, 기증, 인간에게 강림한 하느님 은총' 등의 뜻. 성 보나벤투라에 의하면, 다툼과 도눔은 1) datum이 동사의 과거분사로서 시간을 포함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덜 고유한 성질인 반면에 2) donum은 대범함과 규모에서 datum을 훨씬 더 능가한다고. [본문으로]
  2. "But seek ye first the Kingdom, and all the rest shall be added." "다만 그의 왕국을 구하라, 그러면 다른 것은 다 더해지리니." (누가복음 12:31) [본문으로]
  3. If the doors of perception were cleansed, every thing would appear to man as it is, infinite. "지각의 문들이 깨끗이 닦여 있다면, 만물이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무한하게 드러날 것이야." 영국의 시인, 판화 제작자 윌리엄 블레이크가 1790-1793년 어간에 완성한 책 <천국과 지옥의 혼인>에 실려 있다. 올더스 헉슬리는 자신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 중 하나의 제목을 이 구절에서 차용해 <지각의 문>(1954)이라 했다. [본문으로]</지각의></천국과>
  4. Antaios - 그리스와 베르베르 신화에서, 힘이 센 거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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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일러스트레이션

 


 

  몇 번이나 해가 바뀌면서 고통의 양상도 이모저모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결코 가시지 않았다. 그는 그걸 이지적으로 알았다.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하중으로, 신의 심판의 무게로 느꼈다. 그 압박을 견딜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건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느낌은 자꾸만 나타나는 환영들 때문에 더욱 굳어졌다. 그 환영들이 어찌나 생생하고 진짜 같은지, 정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그 자신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거개가 그리스도의 환영이었다. 

  그러나 구세주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의 그리스도였다. 가르치는 그리스도나 수난 겪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최후 심판일의 그리스도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죽음 문턱에서 보는 그리스도, 지옥 불구덩이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에게 나타나는 그리스도, 분노와 질책과 복수심 곁들인 증오의 ‘견디기 힘든 표정’을 한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의 형상

 

  그분은 가끔 주홍빛 망토를 두르고 무장한 사람 모습으로 보였다. 어떤 때는 환영이 창문 높이 공중에 떠서 죄인이 들어가지 못하게 교회 문을 지키고 서 있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보고 만질 수 있는 무엇처럼 그리스도가 성체에서 환한 빛으로 발산되는 듯했는데, 그때 아픈 수렝이 얼마나 강한 혐오를 느꼈는지 한 번은 종교 행렬을 지켜보는 사다리에서 실제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들도 있었으니, 칼뱅이 전적으로 옳으며 그리스도가 성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이는 성실한 믿음이 감응에 의해 독실한 신자의 마음에 일으키는 강한 의심 같은 것. 딜레마의 두 뿔 사이에 다른 길은 전혀 없었다. 성병이 그리스도 몸의 일부임을 직접 경험으로 알았을 때, 그는 그리스도가 자신을 저주했음도 직접 경험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단자들의 교리가 옳고 성병에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에 못잖게 확실한 저주를 받았다.) 

 

  그에게 나타나는 환영은 그리스도만이 아니었다. 간혹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혐오와 분노가 담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손을 쳐들어 복수의 벼락불을 내쏟을 때면 그의 온 존재가, 마음과 몸이 다 고통을 느끼곤 했다. 간혹 다른 성인들이 나타났는데, 그들도 저마다 ‘견디기 힘든 표정’을 짓고 번갯불로 놀라게 했다. 수렝이 그들을 꿈에서도 보았으며, 그때마다 마치 벼락 맞은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서 잠을 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성인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밤에는 ‘성 에드워드, 잉글랜드 왕’의 손에서 나온 번갯불 때문에 오금을 못 폈다.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 수난자 에드워드?[각주:1] 아니면 불행한 고백자 에드워드?[각주:2] 어쨌든, 성 에드워드가 「지독한 분노를 터뜨렸고, 나는 이것이 (성인들이 내던진 번갯불이)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감당하게 될 것임을 굳게 믿었다.」 

 

  하늘과 인간 세상에서 오랜 세월 도피하던 처음 시기, 적어도 좋은 나날에는 수렝에게 아직 주변과 접촉을 복원할 여력이 있었다. 「내 영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마구 늘어놓기 위해 난 상급자들과 다른 수사들을 늘 쫓아다녔다.」 하지만 헛수고. 

  (극심한 신체장애와 마찬가지로 정신 착란의 주된 공포 중 하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 깊은 심연이 고착돼 있다고 느끼는 것. 예를 들어, 긴장성 분열증 환자의 상태는 정상인의 상태와 같은 표준으로 잴 수 없다. 마비된 사람들이 거주하는 세계는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는 세상과 전혀 다르다. 사랑이 가교를 놓을 수는 있지만, 심연까지 제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곳에는 가교조차 없다.) 

 

  수렝이 상급자들과 동료들을 쫓아다니며 고백했지만 그들은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동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테레사 성녀가 하신 말씀의 참됨을 깨달았다. 즉, 네 말을 지나치게 조심스레 듣는 고해신부 수중에 떨어지는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은 없다.」 

  그들은 수렝이 하는 말을 아예 듣지도 않고 피했다. 그가 그들 소매를 움켜쥐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려고 몇 번이나 애를 썼다. 그런 일은 죄다 아주 단순하고 말할 수 없이 끔찍했다!  

 

  동료 수사들은 냉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제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이 사람은 미쳤어, 그것도 제 스스로 광기를 불러들였어. 그들이 그에게 단언했다. 우월감을 품고 튀려고 하니 신께서 당신을 벌하는 게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영적인 존재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회의 방법이 아니라 자신만의 엉뚱한 길을 따라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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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판단에 수렝이 불복했다. 

  「우리네 믿음에 기초하는 상식이 다른 삶의 개념에 맞서서 하도 강하게 굳어진 바람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저주받았다고 단언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은 그 생각을 광기의 표현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멜랑콜리건강 염려증 같은 어리석은 생각은 전혀 다른 부류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물병이나 추기경’이라거나 (진짜 추기경인 알퐁스 리슐리외가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부류다. 

 

  수렝이 주장하기를, 자신이 저주받았다고 믿는 것은 미친 증세가 아니라고 했다. 제 말이 맞음을 입증하기 위해 헨리 수소,[각주:3] 성 이냐시오, 블로시우스,[각주:4] 테레사 성녀, 십자가의 성 요한의 경우를 인용했다. 그들도 다 한 번씩은 저주받았다고 믿었지만, 그러고도 모두 정신 멀쩡하고 성스러운 행동으로 두드러졌소! 그러나 약삭빠르고 타산적인 동료들은 그런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마지못해!) 듣는다 해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로 인해 그가 가뜩이나 크나큰 비참함을 더 키우면서 절망의 길로 더 멀리 내몰렸다. 1645년 5월 17일 보르도 인근 생마케르의 작은 예수회 숙사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전날 밤 내내 그는 자살 유혹과 씨름하고 아침 시간 대부분을 성체 앞에서 기도로 보냈다. 

 

  「점심시간 얼마 전에 내 방으로 올라갔다. 들어서면서 보니 창문이 열려 있기에 다가가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다가 [건물은 돌출된 바위 위에 서 있고 아래에 강이 흘렀다.] 내 안에서 광적인 본능이 꿈틀거리는 바람에 놀라 방 한가운데로 뒷걸음질 쳤다. 눈길은 여전히 창문에 꽂혀 있었다. 그 다음에 의식을 잃고 갑자기 꿈속처럼 무슨 짓을 하는지 인식도 못한 채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몸뚱이가 추락하면서 튀어나온 바위에 부닥친 뒤 강기슭에 떨어졌다. 대퇴부가 부러졌지만 장기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기적을 믿는 성향이 강한 수렝이 이 비극을 거의 코믹한 추신으로 맺는다

 

 「때마침 위그노 한 사람이 말에 앉아 강으로 오던 참이었고, 나는 바로 그의 발 옆에 떨어졌다.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 중에 이 일을 두고 그가 나한테 농담을 퍼부었다. 강을 다 건넌 뒤 그가 다시 말안장에 올라타 초원으로 나섰는데, 완전한 평지에서 말이 갑자기 날뛰는 통에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 이랬다. 

  수도사께서 공중을 날아 보려 시도하셨다고 놀린 것을 두고 신께서 나를 벌하시는군요. 그러니 훨씬 더 낮은 곳에서 떨어졌으면서도 똑같은 상처를 입은 게지요

  한데, 내가 몸을 던진 창문은 워낙 높기 때문에 한 달 뒤 참새를 잡으려고 거기서 뛰어내린 고양이는 죽고 말았다. 다들 알다시피 그 녀석들은 가볍고 탄력 있어서 흔히 사뿐히 뛰어내리곤 하는데도 말이다.」 

 

  부러진 다리에 부목을 댔고 몇 달 뒤 다시 걷게 됐다. 비록 영원히 절름발이가 되긴 했지만. 그러나 마음은 육신처럼 그리 쉬이 치유되지 않는다. 절망의 유혹이 몇 해 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높은 곳들에 자꾸 눈길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칼이나 로프를 볼 때면 목을 베거나 목매달고 싶다는 욕망이 불같이 일곤 했다. 

 

  파괴 충동은 안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 바깥으로도 향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욕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크던 때가 더러 있었다. 건물이며 거기 거주자들, 지혜와 신앙의 보물들이 가득한 도서관, 채플, 성직복, 십자가상들 또 성체 자체도 다 잿더미로 변해야 해

  그런 악의는 악령만이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는 신을 욕되게 하는 자이니, 저주받은 영혼이요 악마의 화신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미움을 샀고 그 응답으로 하나님을 미워했다. 그에게 이런 부류의 사악함은 완전히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길 잃은 영혼임을 알고 있었을지라도, 저주받은 사람으로서 의무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악을 그의 일부는 거부했다. 자살과 방화 유혹이 상당히 컸지만 거기에 맞서 싸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주변 사람들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서 위험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자살 시도 이후 그에겐 수련수사가 붙어서 지켜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침대에 묶여 있게 됐다. 그 이후 삼년 동안 수렝은 우리네 조상들이 미치광이에게 체계적으로 적용했던 비인도적 행위를 겪어야 했다

 

  그런 종류의 일에서 쾌감을 맛보는 자들은 (그런 자들은 꽤 많다) 비정한 행위 자체를 즐기는데, 그럼에도 마음에 꺼리는 구석이 없을 수 없다. 이런 개운치 못한 느낌을 좀 누그러뜨려 볼까 해서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자들이나 사디스트들은 저희 오락을 합리화하려고 별의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인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짓이 규율이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행위로 합리화된다. 바로, “자식에게 매질을 아끼는 자는 제 자식을 미워함이라”[각주:5] 하는 말씀. 또 죄인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행위는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지상명령의 추론적 결과라는 모양새를 갖춘다. 또 종교적 이단이나 정치적 반대 진영에 대한 잔혹 행위는 ‘참된 믿음’을 위한 타격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다른 인종에 대한 잔혹 행위는 그럴듯한 학문적 논거로 정당화된다.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미치광이를 대하던 시대가 있었고, 그런 전통은 아직도 다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광인을 대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잔혹 행위가 과거에는 신학적 용어를 빌어 합리화됐을지언정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

 

  수렝을 포함해서 히스테리나 정신병 앓는 이들을 괴롭힌 자들은 두 가지 계기에서 그랬다

  첫째, 야만적인 상태를 즐겼기 때문.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그냥 좋은 것. 둘째, 그렇게 해야 병자를 도울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가 잘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건 또 왜냐하면, 당시 가설로 그런 질환은 미치광이들이 자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백하거나 은밀한 무슨 죄를 지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불경하고 타락한 자의 영혼에 악마가 들어가도록 허함으로써 징벌하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광인들은 하나님의 적대자요 근본악의 일시적 화신으로 간주됐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학대받아 마땅했다. 학대하는 쪽에서는, 하나님 뜻이 천상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도 이뤄졌다는 보람된 느낌과 좋은 도덕심을 가지고 그리 했다.  

 

  미치광이를 두드려 패고 굶기고 사슬로 묶어 햇볕도 안 드는 쪽방에 가두었다. 미치광이를 성직자가 찾아왔다면, 다 병자 자신의 잘못이며 하나님께서 화를 내신 것이라는 힐난이 빠지지 않았다. 

  일반 군중에게 미치광이는 버림받은 범죄자 같은 성격을 띠며 원숭이와 장터 야바위꾼 중간쯤 되는 무엇이었다. 주일과 공휴일마다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치광이 구경하러 갔다. 오늘날 동물원이나 서커스에 데리고 가듯이. 거기엔 오늘날 동물원처럼 ‘야수들에게 지분거리지 말 것’ 같은 금지도 없었다. 그 반대로, 미치광이는 하나님의 적대자로 간주된 만큼 그를 괴롭히는 행위는 그저 허용된 것이 아니라 의무이기도 했다

 

  (16-17세기 작가들과 극작가들이 가장 즐겨 취한 주제들 중 하나는 정신 멀쩡한 사람을 미쳤다고 공표하고 갖가지 모욕과 조롱을 안기는 것. 예를 들어, 말볼리오가 그렇고, 혹은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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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ng Edward the Martyr (962-978) - 잉글랜드 색슨 왕조의 왕. 통치 3년 만에 살해돼. 살해자가 ‘반종교적’인 반대파요 에드워드는 신실한 기독교도였기에 신성한 순교자로 선포, 즉 1001년 성인으로 시성됐다. [본문으로]
  2. King Edward the Confessor (1003-1066) - 1042년부터 잉글랜드 왕. ‘순교자 에드워드 왕’의 이복 아우인 에설레드 왕의 아들. 유년기를 가족과 떨어져 노르망디에서 보내면서 깊은 신앙심을 지니고 성장. 별명이 ‘고백자’였다. [본문으로]
  3. Henry Suso, 독일어 Heinrich Seuse - 게르마니아의 도미니크회 탁발수사, 저명한 영성 저술가, 신비주의자. 1366년 졸. [본문으로]
  4. Blosius (1506-1566) - 플랑드르의 탁발수사, 신비주의 저술가. 등 라틴어로 쓴 책들이 거의 모든 유럽 언어로 번역됐다. [본문으로]
  5. “He that spareth the rod, hateth his son." "초달(楚撻)을 차마 못하는 자, 그 자식을 미워함이니라.” (잠언 13: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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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삽화

 


 

  악마들이 떠남으로써 정신이 마귀 들림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 한 레비아탄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이제 싸움은 하나님이라는 이데아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해도 화합될 수 없는, 그의 스피릿 안에서 벌어졌다

 

  하나님이라 명명된 무한함은 본성이라 불리는 유한함을 포함해야 하며, 이 무한함은 공간의 모든 점들과 시간의 매 순간에 전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오늘날 우리한테는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명백한 결말을 회피하고 그 현실적인 결과를 모면하기 위해 구학파의 엄격한 기독교 사상가들은 창의력을 소비하고 준엄한 기독교 모럴리스트들은 설득과 강요를 다 허비했다. 그 사상가들은 선포하기를, 이는 타락한 세상이며 인간의 본성은 철저히 썩었다고 했다. 그 모럴리스트들은 말하기를, 그런 고로 모든 전선에서 본성을 상대로 싸워야 하니, 안에서는 억누르고 밖에서는 무시하여 가치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라는 선물을 얻고자 희망함은 오로지 본성의 경험 소여(所與)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한테 주어진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임으로써만이 우리는 신의 선물도 받을 자격을 갖출 터이다. 우리가 원초적 사실에 다가든다는 것은 일상의 많은 자잘한 사실을 거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선종의 한 선사가 이르기를, “진리를 찾아 헤매지 말라, 그저 고정 관념에 붙들려 있지만 않으면 되느니” 했다. 기독교 신비주의자들도 대략 같은 말을 하긴 하되, 본질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그들은 얘기가 교리와 신앙 조문, 경건한 전통 등에 관한 것일 때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고정 관념’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기껏해야 이정표일 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면 우리는 길을 잃을 게 확실하다. 존재라는 원초적 사실에는 일상의 사실들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말로써는, 혹은 말로써 고무된 판타지로는, 그것을 알 수 없다.  

 

  하느님 왕국을 지상에 임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네 상상이나 종작없는 추론으로는 임하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지상에서 실제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분리성이라는 주장이나 갈망과 혐오, 보상의 판타지, 사물의 본성에 대한 기성 전제들 따위가 가득한 영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시늉을 하는 한, 하나님 왕국이 지상에 도래하기란 기대난망. 

  먼저 인간의 왕국이 와야 하고, 그런 뒤에야 하나님 왕국도 올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죽일 게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억누르고 내치는, 우리네 숙명적 성향을 죽여야 한다. 우리는 편견을 떨치고, 현실을 개조한다고 뿜어대는 언어의 덫을 제거하고, 현실이 기대와 맞지 않을 때 숨어드는 몽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는 살레의 성 프랑수아가 보인 ‘거룩한 무심함’이요, 코사드[각주:1]의 ‘내맡김’이요, 삶에서 벌어지는 것을 모두 매 순간 자의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종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완전한 길의 징표인 ‘선호하기를 거부함’이다.

 

  교회 권위자들과 자신의 경험에 의거하여 수렝은 영혼이 세상 존재의 거룩한 근간과 합일돼 변모하면서 하나님을 직접 인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네 최초 조상의 죄 때문에 본성이 완전히 타락한 결과 조물주와 피조물들 사이에 거대한 간격이 생겼다는 견해도 소중히 여겼다. 

  신과 우주에 대해 그런 관념을 견지하면서 수렝은 이런 논리적 귀결에 이르렀다. 즉, 자살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본성적인 요소를 죄다 몸과 마음에서 근절할 필요가 있다고. 한데,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노년에 인정했다.

 

  「여기서 이런 점을 말해둬야 하겠다. 루덩으로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나는 신에게 다가들리라 기대하면서 육욕을 죽이느라고 고행에 너무 몰두했다. 이 노력에 가상한 열의가 있었을지언정 거기엔 또 속박과 편협한 이성도 아주 많았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편협한 도그마에 빠졌고, 그 도그마는 온건할지 몰라도 적잖이 비난받을 만한 것이었다.」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을 구별하며 신이 당신의 피조물과 반대편에 있다는 견해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수렝은 본성에 대한 이기적 태도며 본성 자리에 설정된 몽상과 허황한 생각을 억누른 것이 아니라 본성 자체를, 이 특별한 행성에서 육체를 부여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고행으로 억누르고 극복하려 애썼다. 

  그의 조언은 이렇다. 

  「인간의 원초적 모습인 본성을 증오하라. 그 본성이 신께서 예비하신 모든 굴욕을 감내하게 하라.」 본성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 선고는 공정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께서 마음대로 우리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것이 그분의 의지라는 것을 수렝은 가장 쓰라린 경험으로 알았다. 

 

  본성은 터무니없고 무분별하다는 견해를 소중히 여기면서, 그는 노이로제가 종종 수반되는 지적 피로를 인간적 추잡함에 대한 증오와 사람들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혐오로 바꾸었다. 이 증오와 혐오가 특히 더 강한 것은, 그가 아직도 미련을 품고 있으며 사람이라 불리는 역겨운 존재들이 야기한 갖가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편지에서 그는 누군가가 부탁한 일을 벌써 며칠째 처리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 작업이 입맛에 맞았으며, 그의 병든 본성에 어떤 안도감마저 안겼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하, 상태가 좀 나아진 것은 ‘크리스트교를 배신했기’ 때문이었군. 다시 비참한 상태에 빠지고, 이 상태는 죄책감 때문에 더 악화됐다. 그는 극심한 가책을 느낀다. 그러나 그건 그를 행동케 하는 가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동할 능력이 없는 상태임을 발견하니까. 

  그래서 ‘자기 죄를 물처럼 삼키고 빵처럼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의 의지와 행동 능력은 마비됐지만 감수성은 아직 살아 있다.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이전처럼 고통을 겪을 수는 있다. ‘사람은 더 많이 벗겨질수록, 가격을 더 아프게 느끼는 법.’ 

 

  그는 ‘죽음의 공허’에 있다. 그러나 이 공허는 그냥 텅 빈 곳이 아니다. 그건 격심하고 완전한 공허요, ‘끔찍하고 참담한 나락이며, 거기에는 도움이나 구원 받을 기대가 없고’ 거기서는 조물주가 영혼을 괴롭히며 그 조물주에게 제물은 증오만 품을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주인은 홀로 지배하기를 요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종의 삶을 고난으로 바꾸는 것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본성은 궁지로 내몰려서 죽음을 향해 천천히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이제 인격은 더 이상 없으며 그 혐오스러운 요소들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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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렝은 더 이상 생각이나 연구나 기도를 할 수 없고 좋은 일을 할 수 없으며 사랑과 감사를 지니고 조물주에게 가슴을 열 수도 없다. 그러나 ‘그의 본성의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측면’은 아직 살아서 ‘죄악과 꺼림칙한 일에 빠졌다.’ 뭔가 무관한 작업을 하면서 옆으로 빠지려는 번다하고 경망한 갈망이 거기에 해당하는데, 그건 자만심과 자기본위와 공명심 못지않은 죄이니까. 

  내면에서 노이로제와 엄격주의에 시달린 그가 외면에서 고행으로 본성을 더 빨리 파괴하기를 꿈꾼다. 이전처럼 안도감을 주는 작업이 아직 몇몇 있지만 그 작은 기쁨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외향적인 공허를 내향적 공허와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끼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외부 도움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본성은 철저한 무방비 상태로 신의 자비에 노출될 테니까. 의사들은 고기를 더 많이 먹으라 하지만 그 권고를 따를 수 없다. 신께서 이 질병을 정화의 수단으로 주셨다. 너무 일찍 좋아지려고 애쓴다면 그건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터

 

  그렇게 건강을 거부하고 비즈니스와 휴식도 거부했다. 그러나 재능과 학식을 눈부시게 발휘한 활동 분야가 그래도 남아 있었다. 강론, 신학 저술, 설교집, 경건한 장시들. 거기에 많은 노력을 쏟아 왔고, 그것들을 여전히 일면 뿌듯하게 여긴다. 

  길고 고통스러운 망설임 끝에 그 동안 써온 것을 모조리 파기하기로 결심한다. 몇 권 책의 원고와 다른 많은 글들을 찢어발기고 불태웠다. 이제 그는 「갖고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고통에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가 됐다.」 그는 이제 「내 본성이 거부하는 험로를 걸으라고 하는 그분의 작업을 밀고나가는 숙련공」 같이 됐다

 

  몇 달 지나니 그 길이 어찌나 힘든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1639년부터 1657년까지 그 누구한테도 서신을 보내지 않았다. 이 기간 내내 병리적 문맹이라는 괴이한 질환에 시달리면서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없었다. 말하기조차 힘든 때도 더러 있었다. 그는 홀로 유폐 상태에 있고 바깥세계와 연락을 모두 차단했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 스스로 하나님한테서 도피하기로 내린 결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안시에서 돌아오기 얼마 전 자신이 이미 현생에서 저주를 받았다는 확신에 (여러 해 동안 지탱돼 온 확신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처절한 절망감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일뿐. 그 다음엔 지상의 지옥에서 한층 더 끔찍한 지옥으로 떨어지겠지. 

 

  고해사제와 수도회 상급자들이 안심시켰다.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고 생명이 있는 한 확고부동한 저주란 있을 수 없다오. 이 점을 한 신학자는 장 조셉에게 삼단논법을 동원해 입증하고, 또 다른 이는 2절판 묵직한 서적을 들고 진료소로 찾아와서 교회 박사들의 권위를 들먹이며 입증했다. 

 

  하지만 죄다 소용없었다. 수렝은 자신이 길을 잃었음을 알았다. 한때 자기가 물리쳤던 악마들이 영원한 화염 속에 그의 자리를 환호하며 준비해 두었음을 알았다. 다른 수도사들도 저희 내키는 대로 다 떠들었다. 그러나 사실들과 고통 받는 이의 행위가 그 어떤 말보다 더 크게 말했다. 그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모든 사건, 모든 생각, 모든 느낌이… 절망을 굳히기만 했다. 벽난로 곁에 앉았다면, 이글거리는 잉걸이 (영원한 저주의 상징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교회에 들어섰다면, 그 순간 신의 심판에 대한 어구나 사악한 자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늘 들리고 울렸는데,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설교를 들었다면, 회중에 길 잃은 영혼이 있다고 설교자가 단언하는 것을 꼭 듣게 되는데, 그게 바로 그의 영혼이었다. 

 

자만심의 악마 레비아탄

 

  언젠가 그가 죽어가는 형제의 침상 곁에서 기도할 때, 갑자기 자신이 그랑디에처럼 마법사가 되어 악마들에게 무고한 사람 육신에 들어가라고 명령할 힘을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것을 지금 그가 하고 있다. 즉, 죽어가는 사람에게 주문을 걸고, 자만심의 악마인 레비아탄에게 이 육신으로 들어가라 명령하고, 정욕의 악마인 이사카론못된 장난의 스피릿인 발람신성 모독의 왕인 베게모트로 하여금 무방비 상태의 제물에게, 영겁의 목전에서 마지막 중대한 행보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덤벼들라 권하고 있다. 그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에 영혼이 사랑과 믿음으로 충만하다면 모든 게 다 좋을 것이다. 만약 안 그렇다면… 

 

  수렝이 실제로 유황 냄새를 맡고 울부짖음과 이빨 가는 소리를 들었다. 한데 이게 뭐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혹은 자발적이었나?) 그가 악마들을 계속 부르면서 악마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돌연 침대에서 몸을 뒤틀며 헛소리를 했다. 한데 그건 이전처럼 하나님 뜻에 복종이며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며 거룩한 자비와 천국의 기쁨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검은 날개가 펄럭인다는 둥 공격적인 의심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공포에 관한 횡설수설이었다. 강한 두려움을 느끼며 수렝이 퍼뜩 깨달았다. 그래, 내 느낌이 옳았어, 난 마법사가 된 거야!   

 

  자신이 저주받았다는 이 외적 증거에 어떤 낯설고 초자연적인 힘으로 고무된 내적인 확신이 추가됐다. 이렇게 적는다. 「하나님을 말하는 사람은 엄격함과 (또 감히 말하자면) 상상을 초월하는 괴로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의지가 마비되고 허탈 상태가 갈마들며 근육이 경련돼 침대에 붙박여 있는 오랜 시간에 그는 ‘이와 비교할 통증은 세상에 더 없을 정도로 신의 분노가 거세다는 인상’을 받았다. 

 

  (몇 번이나 해가 바뀌면서 고통의 양상도 이모저모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결코 가시지 않았다. 그는 그걸 이지적으로 알았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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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en Pierre de Caussade (1675-1751) - 프랑스의 예수회 성직자, 종교 저술가. <신의 섭리에 내맡김 abandonment to divine providence>. 그는 현재 순간은 신께서 주신 성찬이요 그것에 내맡김과 그것을 필요로 함은 신성한 상태라고 믿었다. 얼핏 가톨릭 교리에 배치되듯 보이기에 그의 책은 1861년까지 출간 금지. 저자 본래 뜻에 더 합당한 버전은 1966년도에야 출간됐다. 그의 종교적 관점에서 어떤 작가들은 대승불교와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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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젊은 시절 모습

 


11

 

 

  비극에 우리는 참여하고, 코미디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비극의 저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 속에 있다고 느낀다. 독자나 청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코미디에서는 창작자와 문학적 피조물 간에, 구경꾼과 구경거리 간에, 일체화가 전혀 없다. 작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에 투사하지 않으며 관객도 그들과 거리를 둔다. 작자는 바깥에서 보고 판단하고 묘사한다. 관객 역시 바깥에 머물면서 작자가 묘사한 것을 관찰하고 작자가 판단하는 대로 판단하고 코미디가 꽤 괜찮다면 웃음을 터뜨린다. 

 

  순수 코미디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뛰어난 코미디 작가들이 혼합된 코미디 장르를 택하는 것이며, 거기서는 동일시에서 밀어내기로, 또 그 반대로 초점이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순간에 우리는 그저 보고 판단하고 웃기만 한다. 그러다가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지켜보는 대상에 불과했던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나아가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관객들한테서 늘 밀어내기 반응을, 즉 순전히 코믹한 효과를 야기하는 불행한 사람 축에 들었다. 자신이 겪은 큰 고통에 독자들 공감을 사기 위해 고백 서신을 끊임없이 썼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 서신들을 오늘날 우리가 읽으면서 가련한 그녀를 코믹한 형상으로 여기는 까닭은 그녀가 철저하게 배우 같은 인생을 살았으며, 배우로서도 거의 늘 자신한테마저 정직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의 고백을 행하는 ‘나’는 때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잡탕이고 때론 악귀 들린 여인들의 여왕이요 때론 제 2의 테레사 성녀이며, 또 때로는 연기를 다 걷어치운 채 영악하고 일순간 진실한 젊은 여인, 자신이 누구이며 다른 더 공상적인 인물들과 어떻게 결부돼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야 응당 없었겠지만, 그러면서도 코미디 기법을 죄다 동원했으니, 한 마스크에서 다른 얼굴로 급전, 지나치게 과장된 언행, 자신의 진짜 욕망을 아주 단순하게 합리화하는, 경건하면서도 장황한 선동 따위가 그것이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의 위선

 

  게다가 수신자들이 다른 쪽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생각지 않고 제 생각만 담은 편지를 수없이 써 보냈다. 예를 들어, 그랑디에 공소장에서 우리는 원장수녀와 몇몇 수녀가 후회하는 마음에 자기네 진술이 완전히 거짓이라며 철회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데, 허영심과 자만, 냉담함으로 채색된 진부한 공언이 가득한 자서전에서 자신의 가장 큰 범죄, 무고한 사람을 고문과 화형으로 몰아간 악의적인 거짓 증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명성을 안긴, 이 끔찍한 스토리 전반에서 미더운 일화를 단 하나도 들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이며 지은 죄에 대한 공개적인 참회 따위 말이다. 

  그보다는 로바르데몽과 카푸친회 수사들이 “당신의 통회는 악마들의 간책이고, 당신 거짓말은 거짓이 아니라 신성한 진실이오!” 하는 냉소적 장담을 믿는 쪽으로 돌아서자고 작심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녀가 이 사건에 대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한다 해도, 악마의 제물이었다가 하나님 기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필히 손상될 터이다. 잔느는 기이하고 비극적인 사실들은 은폐하면서 자신을 과장되고 허구적인 인물로 만드는 쪽을 택했다. 이야말로 코미디의 특성이 아니고 뭐겠는가.  

 

 장 조셉 수렝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은 삶의 여정에서 어리석고 무분별하고 심지어 괴기한 것을 많이 생각하고 쓰고 행했다. 그러나 그의 서신들과 회고록을 읽은 사람 누구한테든 그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형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괴상하고 어떤 면에서는 마땅하다 싶어도) 그가 겪은 고통에 우리는 금방 공동 참여자가 되니까

  그가 내면에서 꾸밈없이 자신을 알았던 것만큼 우리는 그를 안다. 그의 고백을 행하는 ‘나’는 언제나 장 조셉일 뿐이다. 그의 고백은 진실한 것이라 믿을 수 있다. 가련한 잔느처럼 자신을 몽상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녀처럼 비밀을 흘리고 숭고한 것을 우스꽝스럽고 익살맞은 것으로 바꾸며 끝을 맺는, 사람들 눈길 끌어 모으기에 급급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수렝이 거쳐 간 길고 험한 십자가 길의 시작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다. 이 사람은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니고 영적 완성이라는 최고 이상에 고무됐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잘못 해석한 교리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가뜩이나 허약한 체질이 아주 빨리 망가지고 불안정한 기질이 혹사당했다. 루덩에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아픈 사람이었다. 거기서 다른 엑소시스트들이 과도하게 적용한 악마 숭배를 저지하려 애썼지만, 결국 그 자신이 근본악이라는 생각과 사실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악령의 제물이 됐다

 

예수회 수사 장 조셉 수렝

 

  악마들은 자기네와 삶이 아니라 죽음을 놓고 싸우는 사람들의 맹렬함에서 힘을 빨아들인다. 광란에 빠진 수녀들과 악의에 찬 엑소시스트들은 악령을 더 키웠을 뿐이다. 악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작동하면서 대개는 의식적으로 억제되던 경향이 (엄격한 종교적 규율이 감응하는, 방종과 신성 모독의 경향이) 표면으로 튀어나왔다. 

  랑탕과 트랑킬은 ‘벨리아르에 지배돼 수족이 묶여’ 발작하다가 죽었다. 수렝도 그렇게 자초한 시련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각주:1]   

 

  루덩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엑소시즘을 시행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틈틈이 많은 서신을 썼다. 그러나 경솔한 친구인 아티시 신부에게 보낸 서신에서만 은밀한 속내를 드러냈다. 명상과 고행, 마음 정화 등이 그가 다룬 일반적 주제였다. 악마들과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았다. 한 수도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당신의 정신기도에 관해 말하자면 어떤 주제를 미리 정했음에도 거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보기엔 나쁜 징표가 전혀 아닙니다. 어떤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에 임하시라고 조언합니다. 

  예전에 당신이 얘기 나누고 소일을 돕기 위해 다레락 부인한테 들르곤 하던 때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때 당신은 그녀와 아무 이야기나 다 태평하게 주고받았지요. 무슨 얘기를 할까 미리 정하지 않고서도 서로 즐겁게 대화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친밀함을 만들고 키우겠다는 평범한 의도를 가지고 그녀한테 갔습니다. 하나님께도 바로 그런 식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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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친구한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쓴다. 

  「우리 소중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하자는 대로 하시게. 그분께서 역사하실 때는 영혼이 제멋대로 놀지 않아야 하네. 그렇게 하시게, 그분의 사랑과 권능의 빛에 자신을 드러내시게. 분주한 근심걱정일랑 한 편에 밀어두게나, 그런 것에는 정화를 요하는 결점이 많으니까.」 

 

  그렇다면 영혼이 그 빛을 받아야 하는 이 사랑과 권능이란 무엇인가

  「이 사랑이 하는 역사는 부수고 깨고 무너뜨리고 나서 새롭게 하고 다시 만들고 소생시키는 것일세. 이 역사는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진정 달콤하네. 더 무서울수록 더 바람직하고 더 매혹적이야. 바로 이 사랑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송두리째 내놓아야 하고. 이 사랑이 자네를 사로잡고 소멸시킬 정도로 자네 안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 난 행복하지 못할 것이야.」 

 

  수렝의 경우엔 자신을 소멸하는 과정이 막 시작됐을 뿐이다. 1637년 거의 내내, 또 1638년 초 몇 달 동안 계속 아팠다. 하지만 간간이 차분한 상태가 찾아들기도 했다. 아직 견딜 만큼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꾸 벗어나는 게 병이었다. 이십오 년 뒤 그가 <다른 삶의 연구의 실험 과학>에서 이렇게 쓴다.

  「이 강박 관념에는 비상한 정신적 활기와 쾌활함이 수반됐는데, 바로 그 덕분에 인내하며 만족스럽게 이 멍에를 이겨낼 수 있었다.」

 

  사실, 지속적인 집중은 이미 불가능했다. 공부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생 초기에 쌓은 지식으로도 눈부신 글을 간간이 써 내기에는 충분했다. 제 뜻을 자유로이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모르고 입을 뗄 수나 있을까 염려하면서 죄수가 단두대에 오르는 심정으로 설교단에 오르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느꼈다. 

  「내면 감정의 출렁임과 강한 은혜의 열기를. 그 은혜가 하도 강해서 강력한 목소리와 생각을 가지고 가슴을 트럼펫처럼 확 쏟아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어딘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도관을 따라 힘과 지혜가 내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다가 급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파이프가 막히고 계시의 급류가 말랐다. 질환이 새로운 형태를 띠었다. 그건 하나님과 제법 정상적으로 접촉하는 영혼의 발작적인 강박 관념이 아니라 그 접촉과 빛을 완전히 차단하면서 사람을 본래보다 더 작은 뭔가로 웅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슷한 현상을 겪은 한 수녀에게 1638년도에 보낸 많은 서신들에서 수렝이 자기 질환의 새로운 단계를 묘사한다. 

 

  그의 고통은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기도 했다. 며칠이고 몇 주일이고 계속되는 고열 속에서 허우적대며 극도로 쇠약한 상태에 빠졌다. 어떤 때는 국부 마비 같은 것에 시달렸다. 아직은 수족을 좀 놀릴 수 있지만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고 종종 통증까지 수반됐다. 

  가장 작은 움직임도 고문이요, 가장 사소하고 평범한 일도 헤라클레스의 노동이었다. 예를 들어, 법의에 달린 호크 하나 끄르는 데도 두세 시간이 걸렸다. 옷을 다 벗는 것은 이미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거의 이십 년 동안 옷을 입은 채 잠잤다. 그러나 (지독히 혐오하는 이가 꼬이지 않게 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 셔츠는 갈아입어야 했다.  

 

  「속옷 갈아입는 일이 아주 고통스러웠다. 어떤 때는 지저분한 셔츠를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느라고 토요일 밤부터 주일 아침까지 날을 새기도 했다. 통증이 어찌나 심했든지, 그래도 가냘픈 행복을 찾는 듯싶다면 그건 언제나 목요일 이전이었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셔츠 갈아입을 생각을 하면서 목요일부터는 두려움에 떨었으니까.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이 고문을 다른 그 어떤 고통과도 기꺼이 바꾸었을 것이다.」  

 

  음식 먹는 일도 옷을 입고 벗는 것 못지않게 힘들었다. 셔츠는 일주일에 한 번만 바꾸었다. 그러나 고기를 자르고 포크를 입에 올리고 컵을 쥐고 기울이는 시지포스의 노동은 날마다 겪어야 하는 시련이었다. 입맛이 전혀 없는데다가 먹은 것을 다 토하거나, 그게 아니면 지독한 소화불량에 시달릴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 

 

  의사들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다. 사혈을 하고 하제를 써서 장을 세척하고 온욕을 처방했다. 다 소용없었다. 여러 증상은 분명 신체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원인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환자의 썩은 피와 병든 체액이 아니라 정신에 있었다

 

  (악마들이 떠남으로써 정신이 마귀 들림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 한 레비아탄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이제 싸움은 하나님이라는 이데아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이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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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린도후서 6:15). 4대 악마, 사탄, 바알세불, 벨리아르, 몰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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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The Devils of Loudun

 


 

  리슐리외 추기경은 세속적으로도 성직자로서도, 또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지위에서도 높은 지위에 걸맞게 굴고자 하면서 절반 신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노인은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함께 앉아 있기가 힘들 만큼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질병에 시달렸다.

  오른손 골결핵과 항문균열이 있었으니,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고름 냄새를 늘 풍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사향과 영묘향으로 감추려 했지만 썩은 고기 냄새 같은 악취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한테 물리적 혐오 대상이라는 굴욕적인 사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권위는 절반 신과 같은데 육신은 죽음을 달고 있는 것이 극심한 대비였다. 동시대인들은 이 패러독스에서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받았다. 

 

   (치질 치료에 기적 같은 묘약으로 알려진) 성 피아크르[각주:1]의 성유물을 모(Meaux) 도시에서 추기경 궁으로 가져왔을 때, 익명의 시인이 이 사건을 두고 시를 읊었다. 이 시에 조나단 스위프트[각주:2]가 매우 즐거워했을 터이다. 

 

대신의 집무실들을 거쳐 아주 잽싸게 

성스러운 유해를 날라 왔구나. 

그래봤자 기적의 향내를 

맡는 기쁨은 거의 누리지 못했을 게야.

추기경의 썩은 엉덩이가 끊임없이 줄줄 흘려댔으니. 

 

  위대한 인물의 항문균열을 묘사하는 다른 발라드도 있었다. 현실적 인간의 썩어가는 몸과 그의 영광된 페르소나 간의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줄 고티에의 표현을 빌자면, 이 경우 실제를 판타지와 떼어놓는 ‘보바리 각도’가 180도에 근접했다. 

 

  왕들과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절대 권위를 당연시하도록 교육받고, 그렇기 때문에 지배자들이 풍기는 허식의 거품을 터뜨릴 기회를 즐겁게 받아들인 세대에게 리슐리외 추기경의 경우는 가장 만족스러운 우화였다. 

 

리슐리외 추기경과 로바르데몽

 

  휴브리스[각주:3]는 그에 걸맞은 네메시스[각주:4]를 불러들이게 마련이다. 심한 악취와 살아 있는 몸뚱이에서 배를 채우는 벌레들이 동시대인들 눈에는 추기경의 업보였다

  추기경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성유물도 작용하지 않고 의사들도 포기했을 때, 위대한 인물 곁에 불러들인 사람은 치유 능력이 용하다고 소문난 시골 노파였다. 무슨 주문을 웅얼거리면서 노파가 병자에게 이적을 행한다는 영약을 먹였다. 그건 백포도주 1파인트에 녹인 말똥 4온스. 

  유럽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흔들던 절대자는 그렇게 입에서 배설물을 음미하며 저승으로 떠난 것이다. 

 

  잔느가 만났을 때, 리슐리외는 영광의 절정에 있었지만 이미 병이 깊어서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며 의사가 늘 달라붙어야 했다. 

  「그날 추기경께서는 사혈을 했다. 루엘 대저택의 문들이 굳게 닫혀서 주교들과 프랑스 육군원수들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기실로 안내됐다. 비록 예하께서는 침대에 계셨지만.」 

  저녁식사 후 (「식사는 아주 호사스럽고, 예하의 시동들이 우리를 시중들었다」)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를 처소로 인도했다. 그들이 추기경 예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굽혔고, 예하 계신 곳에서 감히 의자에 앉을 수 있는지를 두고 오랜 시간 설전이 이어졌다. (「예하께서는 예우해주시고 우리로서는 한사코 사양하느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결국 난 권유에 따라야 했다」) 

 

  리슐리외는 원장수녀가 하나님께 큰 책임이 있다는 말로 말문을 텄다. 이런 불신의 시대에 교회의 명예를 세우고 영혼들을 구제하고 악인들을 무찌르라고 그분께서 특별히 당신을 선택하신 게요. 

  잔느 수녀가 감사의 찬가로 응답했다. 세상이 우리를 미친 사기꾼으로 취급하는 마당에 예하께옵서는 저희에게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요 보호자요 수호자 역할을 해주셨음을 저와 제 자매들이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추기경은 그런 감사를 받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했다. 외려 나는 고통 받는 이들을 도울 기회와 수단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낄 뿐이외다. (원장수녀 기록에 의하면, 그는 ‘매혹적으로 우아하고 온화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위대한 인물이 물었다. 당신 왼손에 새겨진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보아도 되겠소? 

  성스러운 글자들에 이어 성 요셉의 성유 차례가 됐다. 잔느가 슈미즈를 펼쳐 보였다. 성물을 손에 들기 전에 추기경이 나이트캡을 경건하게 벗었다. 축복받은 물건을 냄새 맡고는 “참으로 좋은 향기로다!” 하고 외치면서 두 번 입맞춤했다. 그 뒤 슈미즈를 ‘존경과 경탄하는 자세로’ 접어서 침대 곁탁자 위에 놓인 성해함에 넣었다. 그건 성유에 있는 위광이 성해함에 든 물건들에도 전해지게끔 하려는 모양이었다. 

 

  리슐리외의 부탁을 받고 원장수녀가 (글쎄, 이미 천 번도 더 했을) 자신의 치료 이적(異跡)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릎을 꺾자 추기경이 다시 축복했다. 인터뷰가 끝났다. 다음날 예하께서 성지 참배 경비에 쓰라고 그녀에게 500 리브르를 보내 왔다. 

 

  이 면담에 대한 잔느의 기술을 읽다 보면 추기경이 오를레앙 공 가스통[각주:5]에게 보낸 서신들이 절로 떠오른다. 그 서신에서 그는 오를레앙 공이 마귀 들림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믿는다고 역설적으로 빈정댔다

  「루덩의 악령들이 전하 영혼에 변혁을 일으키는 바람에 전하께서 예전에 남용하던 신성 모독적인 언사를 이제 완전히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행복하오이다. 루덩의 악마들 덕분에 전하께서 받은 계시가 전하를 덕행으로 이끄는 오랜 여정에 곧 나서도록 도울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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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에 관한 언급이 하나 더 있다. ‘루덩의 악마들 중 하나’인 전령을 통해 왕제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리슐리외는 그 병이 ‘전하께서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전하께 동정을 표하며, 질병 탈출 방법으로 ‘조셉 신부의 엑소시즘’을 제안한다.    

 

  왕제에게 보낸 이 서신들은 그랑디에를 악마들과 결탁했다 하여 화형에 처한 사람이 쓴 것이면서도 오만한 태도만큼이나 반어적인 의혹으로 가득하다. 오만함은 자신의 사회적 상급자를 ‘깔아뭉개려는’ 다그침에서 드러나는데, 이런 부적절하고 유아적인 요소는 그가 평생 품고 있던 콤플렉스에서 비롯됐다

 

리슐리외 초상화

 

  그렇다면 의심쩍은 태도와 냉소적인 아이러니는 또 어떤가? 마법과 마귀 들림, 손바닥 글자 낙인과 축복받은 슈미즈에 대해 예하의 진정한 견해는 무엇이었나? 내 짐작에… 문외한들 속에서 기분 좋을 때 리슐리외는 루덩 스토리 전체가 완전한 협잡 아니면 자발적인 망상, 혹은 그 둘 다라고 간주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가 만약 악마를 믿는 척했다면, 그건 오로지 정치적 이유에서 나온 것이었을 뿐

 

 한데, 오호라, 그 과정을 대중은 그가 바라던 만큼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그렇게 미심쩍게 여기는 분위기가 커지자 마법과 싸운다는 명분하에 종교재판 식의 게슈타포를 만들어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음, 뭔가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는 것은 언제든 바람직한 자세야. 결과가 신통치 못했다 하더라도 이 실험은 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잖아. 사실,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화형에 처했지. 그러나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오믈렛을 만들 수 있으랴. 게다가 그 주임신부는 골칫거리였으니 제거하는 게 더 좋았어. 

  그러나 그 뒤 어깨 통증이 도지고 상처 때문에 난 누공도 견디기 힘든 통증을 안기면서 밤마다 잠을 깨웠다. 리슐리외가 의사들을 연신 불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에 있었던가! 

 

  그 시대 의술 효험은 주로 ‘자연의 치유력’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의 이 비참한 몸뚱이에서는 자연도 치유력을 잃은 듯 보였다. 리슐리외가 경악했다. 

  이게 혹여 초자연적 것에 기인한 병이라면 어떡하지? 

  성물들과 성상들을 가져오게 하고, 자신의 회복을 위해 다들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이 위대한 인물이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남몰래 별점도 치고, 미덥게 여기는 부적들도 만지작거리고, 어린 시절 늙은 유모한테 배운 주문도 웅얼거려 보았다

 

  병이 깊어졌을 때, 대저택 문들이 ‘추기경과 프랑스 육군원수들한테도’ 굳게 닫혔을 때, 그는 무엇이든 다 믿을 준비가 돼 있었다. 우르뱅 그랑디에가 무죄라는 사실뿐 아니라 이적을 행한다는 성 요셉의 성유조차도

 

  잔느 수녀한테 예하 접견은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후 기나긴 승승장구 여정의 일환일 뿐이었다. 루덩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안시로, 도처에서 열렬한 환영과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동했다. 대귀족들이 베푸는 환대가 그녀 허영심을 가득 가득 채워 주었다

  투르에서는 베르트랑 드쇼 대주교가 ‘극진한 친절과 호의’로 맞이했다. 그는 팔순의 노신사로서 도박에 쏟는 열정으로 유명했는데, 근자에는 오십이나 나이 어린 슈브레즈 부인에게 코믹한 사랑에 빠져 만인의 웃음가마리가 되었다. 슈브레즈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줄 것이야.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을 때 내 허벅지를 슬슬 꼬집도록 놔두기만 하면 돼.”  

 

  잔느의 얘기를 듣고 나서 대주교는 그녀 손바닥에 나타난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의사 위원회가 검사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 검사를 원장수녀가 완벽하게 통과했다. 그녀가 묵고 있는 수녀원 주변에 하루 사천 명씩 몰리던 군중이 단박에 칠천으로 늘었다. 

  대주교 면담이 한 번 더 있었는데, 이번엔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배석했다. 왕제가 투르에 온 까닭은 연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 루이즈 마벨라, 그녀는 나중에 그의 아들을 낳고 버림받은 뒤 결국 수녀가 됐다. 잔느의 기록을 보자. 

 

  「오를레앙 공께서는 객실 문까지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나한테 따스한 인사말을 건네고 악령을 기적처럼 퇴치했다고 축하한 뒤 덧붙였다. “나도 루덩에 가본 적이 있는데 당신 안에 들어앉은 악마들한테 아주 질겁했다오. 그 악마들 덕분에 난 욕하는 버릇을 고치고 앞으로는 더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서 루이즈가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가 투르를 떠나 앙부아즈로 갔다. 성스러운 이름자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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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흥미로운 사실 10가지

 

 

  1. St. Fiacre (?-670) - 아일랜드에서 출생, 정원사들의 수호성인. 프랑스에서 더 잘 알려져. [본문으로]
  2. Jonathan Swift (1667-1745) - 아일랜드 출신 풍자 작가, 에세이스트, 시인, 성직자. <걸리버 여행기> [본문으로]</걸리버>
  3. Hubris 혹은 hybris - 지나친 자부심이나 오만. 현실감을 잃고 자신의 권한이나 업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를 가리킴. 특히 권좌에 있는 자가 그러할 때 자주 쓰인다. 휴브리스는 흔히 '정신박약 상태'와 연결된다. [본문으로]
  4. Nemesis - (그리스 신화에서) 복수의 여신. 인과응보, 필연적 결과, 천벌. [본문으로]
  5. Gaston duc d’Orleans (1608-1660) - 앙리 4세와 마리 메디치의 2남, 루이 13세의 아우.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강력한 왕위 계승 후보자. 다른 귀족들이나 모후와 함께 형인 루이 13세와 리슐리외에 맞서 에스파냐와 내통하는 등 몇 차례 반란을 시도했으나 다 무위에 그쳤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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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오페라 표지

 


 

10 

 

  잔느의 성지 참배를 묘사하면서 우리는 조용한 지방 소도시에서 빠져나와 몇 주일 동안 대처로 나가 보자. 이건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아는 세계. 이건 왕족과 알랑거리는 궁정 신하들의 세계요 사랑 맛을 아는 귀부인들과 권력 맛을 아는 고위 성직자들의 세계, 고도의 정치와 고도의 패션이 있는 세계. 이건 루벤스와 데카르트의 세계이자 과학과 문학과 지식의 세계

  우리 여주인공은 루덩과 신비주의 집단을, 일곱 악마와 열여섯 히스테리 여인들을 떠나 17세기의 모든 화려함 속으로 잠깐 발을 내딛었다

 

  역사의 매력과 수수께끼 같은 교훈은… 여러 시대가 흐르면서도 바뀌는 것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또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다. 다른 시대에 살았으며 낯선 문화에 속한 인물들에 관해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지나치게 인간적인 ‘나’를 알게 되고, 동시에 우리가 삶을 꾸리며 잡는 준거 기준이 그 시대 이후 알아볼 수 없게 바뀌었다는 점도 인식한다. 그때는 공리처럼 보이던 명제들이 이젠 지지받을 수 없게 됐음을 알며, 우리가 지금 자명한 가설로 간주하는 것들이 이전 시대에는 가장 선구적이며 대담한 선조들조차 짐작은커녕 꿈도 못 꾸던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상과 기술, 사회제도, 행동 규준 분야에서 나타난 변화가 아무리 중대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그리 본질적인 게 못 된다. 그 중심에는 근본적인 동일성이 남아 있으니, 이전처럼 세상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인간 존재들이 육체를 가진 정신이요 물리적 쇠퇴와 죽음의 대상이며 고통과 쾌락에 좌우되고 갈망과 혐오에 휘둘리고 자기주장 욕망자기초월 충동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그들은 언제 어디서고 같은 문제에 직면하며 같은 유혹에 부닥치고 타락과 광명 사이에서 같은 선택을 하게 돼 있다. 외견은 바뀌지만 골자와 의미는 불변이다

 

  잔느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과학적 사고와 실제에서 얼마나 거대한 발전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만한 처지에 있지 못했다.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로, 하비[각주:1]와 반 헬몬트[각주:2]로 대표된 17세기 문화의 여러 측면에 원장수녀는 완전히 무지했다. 어려서 알고 있던 것과 이제 성지 참배 중에 다시 발견한 것이라곤 사회계급이며 그 계급제가 야기한 관습적인 생각과 느낌과 행위가 전부였다. 

 

악령에 들씌웠다는 수녀들과 엑소시스트

 

  어떤 측면에서 17세기 문화는, 특히 프랑스에서 소수 지배층에게는, 육체적 존재라는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장기간의 분투였다. 남자고 여자고 이 시대에는 근세 이후 다른 그 어느 시기보다도 사회적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열망이 더 컸다. 고관들은 그저 거창한 타이틀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로 그 자체가 되기를 동경했다. 그들의 욕심은 자기네가 지닌 지위가, 자기네가 얻거나 물려받은 권위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아주 꼼꼼하게 다듬은 바로크 풍의 의례가 생기고 서열과 특권과 고상한 매너에서 엄격하고 골치 아픈 규정이 나왔다. 관계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타이틀과 혈통과 신분 간에 생겨났다. 예를 들어, 누가 옥좌에 앉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나? 18세기 말엽 생시몽[각주:3]한테는 이 문제가 아주 중요했다. 

 

  세 세대 이전에도 어린 루이 13세가 그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 이미 네 살 나이에 그는 이복형 방돔 공작[각주:4]이 저와 식탁을 같이 하거나 제 앞에서 감히 모자를 쓰고 있다는 데 은근히 분개했다. 부왕인 앙리 4세가 ‘페페 방돔’은 왕세자와 같은 식탁에 앉아야 하며 식사 중에도 모자를 벗을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자 어린 왕세자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심으론 못마땅함이 지극히 컸다. 

 

  왕권신수설의 이론과 실제를 왕실의 모자 착용 관행에서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아홉 살 때 루이 13세를 여성 가정교사한테서 떼어 남성 가정교사한테 맡겼다. 신성한 존재인 아이 앞에서는 왕세자의 개인 교수도 응당 모자를 벗어야 했다. 

  이런 룰은 (왕과 왕비가 시켰기에) 가정교사가 제자에게 체벌을 가할 때조차 지켜야 했다. 왕자는 바지를 내리고 피가 날 때까지 맞지만 모자는 쓰고 있고, 신하는 피가 나도록 때리면서도 제단 위 성체 앞에 선 사람처럼 모자를 벗어야 했다. 우리가 상상하듯이 이런 장면은 “우리가 아무리 헐하게 대한다 해도 왕은 신성으로 보호된다”는 견고한 진리의 생생한 사례였다. 

 

  단순한 살덩이와 피보다 더 큰 무엇이 되려는 열망은 그 시대 예술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왕들과 왕비들, 고관대작들과 귀부인들은 루벤스가 그려낸 풍채와 풍유화한 특징처럼 자신을 생각하고 싶어 했다. 즉, 초인적으로 강력하고 더할 나위 없이 강건하고 영웅처럼 위엄 있는 모습으로. 그들은 반다이크가 그린 초상화에 담긴 모습 같은 자신을 보기 위해 터무니없는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즉, 우아하고 세련되고 한없이 귀족적인 모습을. 

  또 극장에서는 코르네유의 남녀 주인공들한테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그건 왜냐하면 그 주인공들이 고관대작인 그들의 힘과 의지와 초인적인 가치를 찬양했기 때문이다. 해가 가고 또 가면서 고전 극장은 한층 더 엄격하게 시간과 장소, 행위의 일치를 고집했다. 왜냐하면 고관대작 관객들이 저희 극장에서 보기 원한 것은 실제 삶의 묘사가 아니라 삶의 알레고리였으니까. 바로 고관대작 관객들에게 부족한, 수정된 삶, 질서 잡힌 삶, 이상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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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택 건축에서도 시대 분위기는 장대함을 갈망했다. 이런 사실은 리슐리외 추기경 궁을 지을 때 소년이었다가 베르사유가 완공되기 얼마 전에 죽은 시인이 언급했다. 바로, 앤드루 마블.[각주:5]

 

  아담의 초라한 아들이여, 

넌 어째서 화려한 궁전을 세웠는지? 

숲 짐승은 굴속에 몸을 감추고, 

새는 나뭇가지들로 둥지 엮고, 

안방샌님 거북이는 무서울 때 

제 갑각 속으로 움츠러들지.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지붕 없는 삶이란 건강에 안 좋아. 

하지만 인간 하나만이 그런 

대저택에 살지 못해 안달하는구나. 

거기 백색 대리석 벽 안에서 

썩어 티끌이 될 뿐이거늘

 

  대리석 벽들이 늘어나면서 그 안에 들어찬 ‘사치스러운 티끌[각주:6]들의 가발은 더 풍성해지고 그들의 구두 뒤축도 더 높아졌다. 태양왕과 그의 궁정 신하들은 한껏 높은 구두 뒤축 위에서 기우뚱거리고 탑처럼 치솟은 말총을 머리에 얹고 다니면서 저희가 실물보다 더 크고 한창 때의 삼손보다도 더 남성답다고 선포했다. 

 

  자연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런 시도가 늘 실패로 끝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도 이중의 실패로. 왜냐하면 우리네 17세기 선조들은 초인적인 존재가 되기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데도 실패했으니 말이다. 이 황당하고 오만한 정신은 달성 못할 과제로 돌진했으나, 오호라, 육신이 너무 연약한 것으로 드러났구나. ‘위대한 세기’는 물적 자원과 조직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으며, 그런 게 없이는 초인적인 체하는 게임이 성립될 수 없었다. 

 

17세기 궁정과 귀족사회의 화려함은 허식

 

  리슐리외와 루이 14세가 그렇게나 갈망하던 그 장엄함과 그 비상한 위풍은 지그펠트나 코크란, 막스 라인하르트 같은 최고의 연출가와 이미지메이커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거대한 쇼맨십은 일단의 장치와 충분히 비축된 소도구실, 관계자들 모두의 고도로 훈련되고 규율 잡힌 협력에 좌우된다. ‘위대한 세기’에는 그런 훈련과 규율이 결여됐고 극장식 장엄함의 물질적 기반조차 부족했다. 즉, 신을 선보이고 실제로 만들어내는 기계장치조차 아직 미완이었다. 

 

  태양왕도 리슐리외조차도 ‘무엇 하나 적절하게 해본 적이 없는 ’테르모필레의 노인들’[각주:7]이었을 뿐. 베르사유 자체는 이상하게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거대하지만 따분하고, 거드름 빼지만 효과가 전혀 없었다. 

  17세기의 화려한 허식은 상당히 날림이었다. 무엇 하나 미리 적절히 연습된 게 없어서 가장 장엄한 예식들조차 아주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사고가 돌발하여 망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루이 14세의 사촌으로 파리 전역에서 조롱거리가 됐던 대공녀의 장례식 스토리를 보자

 

  당대 유별난 관습에 따라 사후에 공주의 시신은 잘게 절단되어 부위 별로 담겼다. 머리는 여기에, 팔다리는 저기에, 심장과 기타 내장은 또 다른 곳에. 그런데 내장을 제대로 방부하지 않은 까닭에 처리 후에도 부패가 계속됐다. 가스가 축적되어 내장을 담은 반암 단지가 일종의 핵폭탄이 되어 버렸다. 이 폭탄이 하필이면 장례식 도중에 터지는 바람에 참석자들이 전부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런 생리적 사고가 사후에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17세기에 관한 회고록 저자들과 일화 수집가들한테는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예배당에서 난데없이 터진 된트림, 왕족이 있는 자리에서 발생한 공기 오염, 식도락을 즐기는 왕들이 풍기는 썩은 고기 냄새, 공작과 장군들한테서 나는 암내… 앙리 4세의 발 냄새와 겨드랑이 암내는 국제적 명성을 누렸다. 궁정 미남자 벨가드가 늘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애정 충만한 바솜피에르는 제 군주 못지않은 발 냄새를 풍겼다. 

 

  이런 일화들이 인구에 널리 회자된 사실이 왕들과 귀족들이 당당함과 고상함을 갖추려는 시도가 얼마나 덧없는 짓이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고관대작들이 인간적인 면보다 더 큰 무엇으로 보이고자 애썼기 때문에, 사회는 그들이 그저 동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얘기는 무엇이든 환영하면서 그들을 놀려댔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세속적으로도 성직자로서도, 또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지위에서도 높은 지위에 걸맞게 굴고자 하면서 절반 신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노인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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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단계.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들과도... 47

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42

8단계. 승복이라는 의미 37

7단계. 고통의 몸체 다스리기 32

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1. William Harvey (1578-1657) - 잉글랜드의 의사, 생리학자, 발생학자, 해부학자. 혈액 순환 체계를 발견, 수혈 등의 치료법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17세기 이전 사람들은 혈액이 간에서 계속 생성되며 신체 기관에서 소비된다고 믿었다. [본문으로]
  2. Jan Baptist van Helmont (1580–1644) - 플랑드르의 화학자, 생리학자, 의사, 신비주의 신지학자. 파라셀수스와 의화학이 유행하던 시기 이후에 활동, '기체 화학 창시자'로 간주돼. '자연 발생'에 대한 개념, 5년 간 버드나무 실험, '가스'라는 단어를 과학사전에 소개. [본문으로]
  3. Saint-Simon de Rouvroy (1760–1825) - 프랑스의 백작, 사상가, 사회학자,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주요 저술 중 하나는 [본문으로]
  4. César, duc de Vendôme (1594-1665) - 앙리 4세와 그의 정부 데스트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이 13세 때 발생한 몇 차례 귀족 반란에 가담. 1626년 리슐리외 암살을 도모했지만 실패. 1640년 다시 리슐리외 독살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자 잉글랜드로 피신했다가 루이 14세가 즉위하지 귀국. [본문으로]
  5. Andrew Marvell (1621-1678) - 잉글랜드의 시인. 형이상학파의 마지막 시인들 중 하나. 는 잉글랜드 고전주의 시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본문으로]
  6. wanton mote - 마블의 유명한 시 <애플턴 하우스에서, 페어팩스 경에게>에 나오는 시구로 인간을 의미. [본문으로]</애플턴>
  7. Thermopylae - 기원 전 480년 스파르타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에 대패한 그리스 해안 협곡.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00킬로미터쯤에 위치. 영화 <300>의 배경. [본문으로]</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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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만년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작하자 일이 분 뒤 발람이 나타났다. 사지를 뒤틀고 경련을 일으키고 하느님을 거세게 모욕하는 말이 나오고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잔느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곧 임신 막달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어서 가슴도 복부만큼이나 산더미처럼 부풀었다. 엑소시스트가 각 부위에 성유물을 대자 부풀어 오른 게 가라앉았다. 

  킬리그루가 한 발짝 다가서서 수녀의 손을 쥐어 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맥박을 짚어 보니, 느리고 희미했다. 원장수녀가 그를 밀치고는 제 두건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거의 배코 치다시피 한 머리가 금방 드러났다. 그녀가 두 눈알을 굴리며 혀를 쑥 빼물었다. 혀는 엄청나게 부풀었는데 색깔이 검으며 모로코가죽처럼 바닥이 우둘투둘했다. 수렝이 발람에게 성체에 경배하라 이르면서 그녀를 풀어주었다. 잔느가 장의자에서 마룻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오랫동안 발람이 완강하게 버텼지만, 결국에는 소정의 의식을 이행했다. 킬리그루의 기록을 계속 보자. 

 

  「그러고는 바닥에 눕자 허리를 뒤로 활처럼 꺾고 발뒤꿈치와 배코 친 맨머리로 몸을 지탱하면서 탁발수사를 따라 마룻바닥을 돌아다녔다. 또 다른 기이하고 부자연스러운 포즈들도 많이 취했는데, 그런 자세를 난 여태 본 적도,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여긴 적도 없었다. 게다가 이건 잠깐 취하다 만 동작이 아니라 한 시간 넘게 계속됐다. 그럼에도 그녀는 호흡 하나 흩트리지 않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내내 혀를 밖으로 빼물고 있었는데, 그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팽창돼 한순간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마치 그녀를 산산조각 내는 듯한 공포의 비명이 나온 뒤 줄곧 한 단어만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바로 “요셉”이었다. 그 소리에 성직자들이 다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건 신의 표시야, 저 자국을 봐!” 

  그녀가 내뻗은 손을 보면서 한 수도사가 자국을 찾았다. 몬태규 씨와 나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그녀 손바닥에서 다소 불그레한 색깔이 짙어지며 정맥을 따라 1인치쯤 반점들이 나타나더니 글자가 뚜렷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건 그녀가 읊조린 것과 같은 단어, ‘요셉’이었다. 이 자국은 악마가 약속한 것이라고, 예수회 수사가 말했다. 떠날 때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는…」 

 

  엑소시즘 과정은 아주 상세하게 기록됐으며 매번 담당 엑소시스트가 그 문건에 서명했다. 그런 문건에 몬태규가 영어로 추신을 달고, 거기에 그와 킬리그루가 자기네 이름을 적었다. 사실, 킬리그루는 서신을 유쾌한 문투로 맺는다. 

  「이런 일을 자네가 다 믿을 것이라 기대하네. 세상에는 자네의 겸손한 친구 토마스 킬리그루보다 더 뻔뻔한 자들과 허풍쟁이들이 많이 있으니 말일세.」 

 

  시간이 흐르면서 손바닥에는 요셉 이외에 예수, 마리아, 살레의 프랑수아 이름자도 나타났다. 처음 나타날 때는 발갛던 이름자들이 한두 주일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그때마다 잔느의 천사가 다시 또렷하게 만들곤 했다. 

  이 현상은 1635년 겨울에 시작돼 1662년 성 요한의 날까지 불규칙하게 계속됐다. 그리고 그날 이후 수렝이 기록한 것처럼 「그걸 보려고 끈질기게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주님께 열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건져 달라고 원장수녀가 정성껏 기도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모를 이유로」 이름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수렝과 동료 몇몇, 또 대다수 일반 구경꾼들은 이 기발한 성흔 형태를 전능자께서 내린 특별한 은혜라고 믿었다. 하지만 더 교육받은 동시대인들은 이 기적에 의문을 품었다. 애초부터 마귀 들림이라는 것도 믿지 않은 마당에 이제 신비한 철자들의 거룩한 근원 따위는 더더욱 안 믿었다

  그들 중 몇몇은, 예를 들어 존 메이틀랜드 같은 이는, 이름자를 산성 물질로 손바닥에 새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다른 이들은 색깔 넣은 전분으로 표면에 선을 넣을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많은 이들은 철자들이 양손이 아니라 왼손에만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오른손잡이가 써 넣기에 더 편하지 않겠어? 

 

  잔느 수녀의 전기를 펴낸 가브리엘 레게 박사와 질 투레트 박사는 둘 다 샤르코[각주:1]의 제자인데, 자기암시에 의해 손바닥에 글자가 생겼다고 믿는 편이며 히스테릭한 낙인의 현대적인 사례 몇몇을 인용하여 그런 관점을 옹호한다. 여기서 덧붙일 것은 많은 히스테리 환자의 피부는 특별한 민감성을 지닌다는 점. 그런 사람의 피부는 손톱으로 살짝 긁기만 해도 붉은 자국이 생겨서 몇 시간이고 없어지지 않는다. 

  자기암시에 의한 것이든 의도적인 속임수이든 혹은 그 둘의 혼합이든 우리에겐 각자 나름대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 그 두 가지가 다 섞인 쪽으로 기운다. 낙인 혹은 성흔은 잔느 스스로도 진정 기적 같은 것이라 여기기에 충분할 만큼 자연스레 생겼을 터이다. 만약 그게 진짜 기적이었다면 대중에게 더 교훈이 되고 그녀 자신에게는 더 신뢰할 만한 것이 되게끔 그 현상을 개량해도 무리가 없었을 텐데. 

  그녀 손바닥에 나타난 거룩한 이름자들은 월터 스코트의 장편소설들과 비슷한 것이었으니, 달리 말하면, 사실에 기초하되 상상력과 가공 기법에 훨씬 더 많이 신세진 것이었으리라.

 

  (내막이야 어떠하든) 잔느 수녀는 이제 본인만의 고유한 이적의 소유자가 됐다. 그건 그냥 개인 차원의 것이 아닐 뿐더러 장기간에 걸친 것이었다. 거룩한 이름자들이 희미해지면 그녀의 천사가 나타나서 즉각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명한 방문객들이나 이적에 갈급한 보통 구경꾼들한테 언제든 보여줄 수 있었다. 이제 그녀 자신이 걸어 다니는 성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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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카론이 1636년 1월 7일 그녀를 떠난 뒤 베게모트만 남았다. 그러나 이 신성 모독의 악령은 다른 악마들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억척같았다. 엑소시즘도 고행도 묵상기도도 다 소용없었다

  의지가 없고 훈련되지 않은 정신에 신앙이 강요되다 보니 역작용이 나타났다. 즉, 정신이 감응(유도)적인 반발을 일으킨 결과 외려 거칠고 충격적인 불신앙으로 접어들었고, 그리하여 그 인격에 강요된 진리들을 다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정과 저항은 악령이 되어 잔느의 무의식에 둥지를 튼 채 혼란과 스캔들을 일으키며 떠나지 않으려 했다

 

악령을 내쫓는 엑소시즘 시행 하의 수녀

 

  수렝이 열 달 넘게 씨름한 끝에 마침내 10월에 베게모트를 완전히 격퇴했다. 수도회 관구장이 그를 보르도로 소환하고, 다른 예수회 수도사가 원장수녀를 감독하게 됐다. 

 

  레쎄 수사는 이른바 ‘단순한 엑소시즘’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잔느 수녀 말에 따르면, 그는 엑소시즘 중에 악마들이 성체를 우러러 받드는 장면을 가장 좋아했다. 수렝이 ‘말을 공격해서 기사를 끌어내리려 했다’면 레쎄는 기사를 직접 대놓고 공격했다. 말의 감정에 개의치 않고, 말을 달래려는 시도도 전혀 하지 않고

  원장수녀의 기록을 보면 「어느 날 저명인사들이 모이자, 수도사가 그들의 영적 복리를 위해 엑소시즘을 시행하기로 했다.」 원장수녀가 자기는 몸이 아픈데 엑소시즘을 거치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영적 지도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엑소시즘을 시행하고 싶어 안달이 난 수사는 나한테 용기를 내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엑소시즘을 시작했다.」 그녀가 평소에 하던 묘기를 잘 해냈는데, 그 결과 고열에 허리 통증이 심하게 도져서 자리에 눕게 됐다.

 

  위그노이지만 도시에서 최고로 꼽히는 의사 팡통을 불렀다. 그녀한테 사혈을 세 번 하고 약제를 주었다. 효과가 있어서 병자가 「속을 다 비우고 더러운 피를 쏟았다. 그게 이레나 여드레쯤 갔다.」 상태가 호전됐다가 며칠 지나 다시 악화됐다. ‘레쎄 수사는 엑소시즘을 재개할 만하다고 여긴 모양이지만 난 극심한 구역질과 구토에 시달렸어.’ 열이 다시 오르고 옆구리 통증이 극심해지고 각혈이 시작됐다. 

  다시 부름 받은 팡통이 흉막염이라고 진단했다. 이레 동안 일곱 번 사혈하고 관장을 네 번 했다. 그런 뒤 그는 병세가 치명적이라고 알렸다. 그날 밤 잔느가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가 하는 말. 넌 죽지 않을 거야, 하지만 하나님이 너를 일부러 지극히 위험한 상태까지 데려가실 텐데, 네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회복하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권능을 똑똑히 보이기 위함이지. 

 

  이틀 동안 상태가 악화되기만 하고 기력도 거의 쇠한 듯 보였기에 2월 7일 죽어가는 여인한테 병자성사를 거행했다. 그 동안에 사람을 보내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그녀가 기도를 읊조렸다. 

  “주여, 당신께서는 이 병을 고치심으로써 당신 권능의 특별한 은혜를 보이고자 하심을 내가 잘 알고 있나이다. 이것이 그런 경우라면, 의사가 볼 때 가망 없다고 판단할 만한 상태로 나를 이끄소서.” 

 

  팡통이 도착해 병자를 살펴보고 진단을 내렸다. 한두 시간 뒤에는 숨이 끊어질 겁니다. 그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서 그때 파리에 머물고 있던 로바르데몽에게 보낼 보고서를 썼다. 

  맥박이 불규칙하고 복부가 비정상적으로 팽창돼 있으며, 관장은 물론이고 그 어떤 치료법으로도 소용없을 정도로 쇠약한 상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고통’을 덜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녀에게 작은 좌약을 하나 삽입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낱 완화제일 뿐이기에 다른 뭔가를 기대해선 안 되지요. 병자는 임종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섯 시 반 잔느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자신의 천사를 보았다. 천사는 기다란 금발 고수머리를 휘날리는 18세 매혹적인 젊은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수렝의 말에 따르자면, 이 천사는 앙리 4세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손자요 세자르 방돔의 아들인 보포르 공작과 똑 닮았다. 이 왕자는 악마들을 보려고 얼마 전 루덩에 왔었는데, 어깨까지 늘어진 금발이 원장수녀한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천사에 이어 성 요셉이 나타나더니 그녀 오른편 옆구리에, 통증이 극심한 부위에, 손을 얹어 무슨 기름을 발라 문질렀다. ‘그러자 난 정신을 차리고 완전히 회복됐다.’ 

 

  (그건 또 하나의 이적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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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an Martin Charcot (1825-1893) - 프랑스의 의사, 신경병 학자, 현대 신경학의 창시자. 히스테리 치료에 최면 기법을 이용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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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Ken Russel film Devils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은 이사카론의 방문. 악마가 거의 밤마다 찾아왔다. 독방 어둠 속에서 그녀가 무슨 기척을 듣고 침대가 흔들리는 걸 느끼곤 했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욧잇을 벗기고, 누군가가 그녀 귀에 달콤하고 음탕한 말을 속삭였다. 방안에 이상한 불빛이 어른거리면서 염소와 사자와 뱀과 남자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때론 강경증 상태에 빠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수 없이 누워 있는 동안, 작은 야수들이 이부자리 아래서 앞발로 간지럼을 태우고 주둥이로 더듬으며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언구럭 부리는 목소리가 간청했다. 한 번만 더, 그냥 사랑만 조금 줘, 그냥 아주 조금만 예뻐해 줘. 그녀가 “내 정조는 하나님 수중에 있으며, 그분께서 뜻대로 처리하실 것”이라 대답하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침대에서 내동이친 뒤 얼마나 무섭게 때렸는지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얼굴이 퉁퉁 붓고 온몸에 시퍼런 멍이 가득했다. 

 

  「그런 일이 아주 종종 생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감히 바란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주셨다. 그런데도 나는 이 자잘한 싸움들을 우쭐댈 만큼 마음이 불량하여, 하느님께 합당하게 처신하는 한 내 소행을 두고 가책할 일은 전혀 없다고 여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책을 억누르기 힘들며, 하나님 뜻대로 내가 처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는 것도 알았고.」 

 

  그러니까 원흉은 이사카론이었다. 그래서 수렝은 이 악마를 상대로 기력을 다 쏟으며 요란한 의식을 거행했다. “내 말을 듣고 썩 물러가라, 사탄아!” 

  하지만, 오호라, 축문이 먹혀들지 않았구나. 「내가 받는 유혹을 그에게 고백하지 않기 때문에, 유혹이 점점 더 거세게 나를 쫓아 다녔어.」 이사카론이 더 못되게 굴면서 잔느 수녀의 절망도 더 커지고 꾸준히 진전되는 임신에 대한 불안도 더 강해졌다. 

 

  성탄절을 얼마 안 남기고 그녀가 약재 몇 가지를 입수했다. 그건 분명 쑥과 쥐방울덩굴과 콜로신스였으리라. 갈레노스 의술에서 추천하며 곤경에 빠진 처녀들이 낙태 효과가 있다고 필사적으로 기대하는 세 가지 약용 식물. 한데 아기가 세례도 받지 않고 죽는다면? 아기 영혼은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거야. 그녀가 제풀에 놀라 약재를 내던졌다. 

  다른 계획이 생겼다. 주방으로 가서 가장 큰 칼을 빌려 와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 세례를 주는 거야, 그 다음엔 살아남든지 아니면… 

다락방으로 향하는 원장수녀 잔느

 

  1635년 새해 첫날 그녀가 총고해를 했다. 「하지만 고해사제한테 내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어.」 다음날 칼을 품고 세례용 물 대접을 들고 수녀원 꼭대기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벽에 그리스도 책형상이 걸려 있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내 죽음과 작은 피조물의 죽음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왜냐하면 세례를 베푼 뒤에 아기를 목 졸라 죽일 생각이었으며, 나도 죽을지 몰랐으니까.」 

 

  옷을 벗는 동안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사악한 의도를 내던지게 할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법의를 벗은 뒤 가위로 슈미즈에 큰 구멍을 내고 칼을 집어 들어 ‘죽을 때까지 쑤셔 넣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위장에 가장 가까운 갈비뼈 사이로 꽂기 시작했다. 

 

  그러나 히스테리를 잘 일으키는 사람들은 자살을 종종 시도하긴 해도, 성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 기적이여, 자비로운 신의 뜻이 나타나 내 손을 붙잡았으니! 갑자기 어떤 힘이 나를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친 거야. 칼이 손에서 빠져나가 십자가 밑에 떨어졌어.」 

  그리고 한 목소리가 외쳤다. “멈추어라!” 

  그녀가 그리스도 책형상으로 눈길을 들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을 그녀에게 내뻗었다. 신의 음성이 들리자 악마들이 놀라서 길길이 날뛰었다.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원장수녀는 앞으로 생활 양상을 싹 바꾸고 처신도 달리 하겠노라 결심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임신 상태는 계속되고 이사카론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한번은 밤중에 그녀에게 협상을 제시했다. 나한테 조금만 더 온순하게 군다면 신통한 고약을 가져다주겠어, 그걸 배에 바르면 임신이 멈출 거야. 원장수녀가 조건에 응하겠다고 거의 마음먹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거부했다. 그러자 대노한 악마가 그녀를 호되게 때렸다. 

  또 어떤 때는 이사카론이 눈물 흘리며 애처롭게 호소하는 바람에 마음이 움직여 ‘그의 간청을 다시 들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충동이 실행됐다. 그런 식의 한밤중 만남이 계속되면 안 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질겁한 로바르데몽이 르망으로 사람을 보내 유명한 의사 두솅을 초빙했다. 의사가 와서 원장수녀를 꼼꼼히 검사한 끝에 임신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 말에 로바르데몽이 기절초풍했다. 이 소식을 프로테스탄트들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데 관계자들한테는 다행스럽게도, 이사카론이 공개 엑소시즘 때 나타나서 의사의 확인을 단호하게 반박했다. 아침 헛구역질부터 젖 분비까지 그런 증상은 죄다 악마들이 꾸민 짓일 뿐이야! 「그러더니 이사카론이 내 몸에 자기가 모아둔 피를 나로 하여금 죄다 쏟아내게 했어. 이 일은 주교와 의사 몇몇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벌어졌다.」 그 뒤로 임신 증세가 다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주님께 찬양을 돌렸고 원장수녀도 그렇게 했다. 적어도 입으로는.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의심을 품었다. 이렇게 기록한다. 「악마들은 나를 설득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생각해 봐라, 네가 배를 가르지 않게 된 기적은 하나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한 짓이었어! 그러니 너는 그 일을 그저 환상이라 여기고 잠자코 있어야 한다. 고해 시간에도 입에 올릴 필요가 없는 거야!」 

  사실, 나중에 그녀는 그런 의심에서 벗어나고, 실제로 기적이 벌어진 것이라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수렝에게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기적이었다. 그에게는 루덩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불가사의했다. 그의 믿음은 게걸스럽고 무분별한 것이었다. 그는, 마귀에 들림을 믿었다. 그는, 그랑디에가 유죄라고 믿었다. 그는, 다른 마법사들이 수녀들을 홀리고 있다고 믿었다. 또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는 교회 원칙도 믿었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이 가톨릭 신앙을 공고히 하며, 성변화가 실재한다고 증언하는 악마들 얘기를 듣고 무수한 자유사상가와 위그노가 개종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 마지막으로, 잔느 수녀를 믿고 그녀 상상의 소산을 다 믿었다

 

  남들 말을 쉽게 믿는 것은 심각한 지적 결함이다. 그런 결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가장 ‘불가항력적인 무지[각주:1]뿐이다

  그러나 수렝의 무지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요, 심지어 자발적인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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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당대에 우세한 지적 풍조인 미신과 맹신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수회 동료들은 수렝처럼 무턱대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마귀 들림이라는 현상을 의심하면서 새 엑소시스트가 하는 짓을 황당하게 보았으며, 동료가 특별한 은혜와 실총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쏟는 뜨거운 관심을 다소 민망하게 여겼다. 우리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어리석음은 수렝의 강점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결함과 숭고한 열정도 그의 강점이었다. 그의 목표는 기독교적 완성, 곧 육욕을 죽임으로써 영혼이 하나님과 합일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 이 목표를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성령에 이르는 온유함과 정화의 길로 그와 함께 나서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제시했다. 

 

  그에게는 이전에도 영적 딸들이 있었다. 이 원장수녀가 그들처럼 하지 못할 것이 무언가? 그런 생각을 이미 마렌에 있을 때 떠올렸고, 그걸 계시처럼 느꼈다. 그저 엑소시즘 하나에 그치지 말고 잔느 수녀를 영적 생활로 이끌어야 해, 그 문을 이미 이사벨 수녀와 랄망 신부께서 내게 열어주지 않았던가. 그녀 영혼을 광명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마귀 들림에서 구해 내겠어

  흉중에 담아둔 과제를 잔느 수녀한테 끄집어낸 것은 루덩에 오고 하룬가 이틀 지나서였다. 그리고 이사카론이 터뜨리는 요란한 웃음소리와 레비아탄이 화가 나서 내뿜는 욕지거리를 응답으로 들어야 했다. 그들이 수렝에게 상기시켰다. 이 여인은 우리 소유이며 악마들의 공용 거처라는 걸 모른단 말이냐! 

 

  그가 그녀에게 영적 훈련을 얘기하면서 다그쳤다. 이제 하나님과 합일하기 위해 영혼을 다듬어야 할 때가 됐소! 왜냐하면, 그녀가 정신 기도를 수행한 지 벌써 이태가 넘었기 때문이다. 관상기도가 정말 필요하오! 기독교적 완성이! 그러자 악마들 웃음소리가 더 낭자하게 울렸다. 

 

  그렇다 하여 물러설 수렝이 아니었다. 신을 모독하는 말과 어지러운 발광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꾸준히 책무를 수행했다. 그녀 궤적에 ‘천국의 사냥개[각주:2]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사냥감을 쫓아다닐 작정이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바로 영생을 의미하니까. 원장수녀가 달아나려 했다. 그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기도와 설교를 계속 들려주었다. 영적 생활을 얘기하고, 몹시 힘든 준비 단계를 이겨내도록 그녀에게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애원하고, 하나님과 합일하는 지복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럴 때마다 잔느가 요란한 웃음을 터뜨리거나 그에게 소중한 부아네트를 두고 놀리거나 트림을 꺽꺽 해대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돼지처럼 꿀꿀거리면서 훼방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가 지칠 줄 모르고 소곤거렸다

 

  한번은 악마가 특히 혐오스러운 언사와 행동을 과시한 뒤에 수렝이 기도했다. 신이여, 그녀한테서 이 고통을 거두시고 차라리 이 죄인한테 시련을 안기소서! 그는 악마들이 잔느 수녀에게 겪게 한 고통을 죄다 느껴 보기 원했다. ‘그녀를 치유하여 덕을 수행하게 인도함으로써 거룩한 신을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설령 나한테 귀신이 든다 해도 개의치 않으리. 그보다 더 심한 것도 간구했다. 미치광이로 취급돼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당하는 것조차 감내하리니. 

 

  한데 그런 식의 기도는 절대 해선 안 된다고 모럴리스트들과 신학자들이 우리한테 못 박는다. 불행히도 조심성은 수렝의 덕목에 들지 못했다. 현명치 못하고 완전히 잘못된 간원을 입에 올린 것이다.[각주:3]

   그러나 기도란 진심 어린 것이라면 응답 얻는 길을 가지고 있다. 간혹 신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어떤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그 생각이 사실이나 상징에서, 현세나 꿈에서, 물질적이든 심리적이든 어떤 형태를 취하며 구체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짐작할 수도 있겠다. 

 

  수렝은 잔느 수녀가 겪은 고통을 자신도 겪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자신이 악마에게 사로잡히기를 꿈꿨다. 그리고 1월 19일 그렇게 됐다. 

  어쩌면 그런 일은 그가 기도하지 않아도 일어났을지 모른다. 악마들은 이미 랑탕 수사를 죽였고 트랑킬 수사도 곧 같은 길을 가야 했다. 수렝에 따르면, 엑소시스트들은 악마를 쫓아내려 했지만 실제로는 외려 불러들여서 살아 있게끔 최선을 다한 셈이 됐고, 그 악마들에 웬만큼 시달리지 않은 엑소시스트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네 관심과 눈길을 악에, 혹은 악이라는 생각에 집중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까!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악마에 맞서 더 많이 투쟁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모든 십자군 전사는 실성하기 쉽다. 적들의 것이라 여기는 사악함을 줄곧 떠올리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악함이 자신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마귀 들림은 초자연적인 것보다 세속적인 경우가 더 흔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증오하는 타인과 증오하는 계급이나 인종, 민족에 대해 맹렬히 생각하기 때문에 마귀에 들씌우게 된다

  작금의 세계 운명은 제 스스로 마귀 들린 자들 손아귀에 있다. 즉, 반대자들한테서 보려고 애쓰는 악에 외려 들씌운 채 그 악을 명백히 드러내는 자들 손에 달렸다. 그들은 악마를 안 믿는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영혼을 악마에 내맡기려 애써 왔고, 성공했다 하여 의기양양하다. 하나님보다 악마를 훨씬 더 많이 믿는 한 그들이 마귀 들림에서 언젠가 벗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초자연적이며 추상적인 악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수렝은 세속적으로 마귀 들린 자들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광기로 자신을 몰아갔다. 하지만 선에 대한 생각 역시 초자연적이며 추상적이었고, 결국엔 선에 대한 믿음이 그를 구했다

 

  (5월 초 친구이자 예수회 동료인 다티시 수사에게 그 동안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적어 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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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nvincible ignorance - 신학적 개념에서, 불가항력적 무지. 개인이 통제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책임이 없는 무지. 현대 영어에서는, ‘구제 불능의 바보’라는 뜻으로도 쓴다. [본문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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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 기둥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수사

 


 

  그 사이 랑탕과 트랑킬은 자백받지 못한 상황을 만회하려 들었다.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다가와서 묻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마법사가 죄를 인정하지 않더군,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말이오. 그 이유야 빤하지, 그자가 하나님을 부르며 힘을 달라고 호소했는데, 그자의 하나님이란 루시퍼이고, 그 루시퍼가 고통을 못 느끼게 만든 게요. 그러니, 우리야 하루 종일 쐐기를 박고 또 박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런 확신이 맞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엑소시스트인 미카엘 수사가 작은 실험을 했다. 며칠 뒤 실험 결과를 공개 강연에서 전했는데,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기록했다. 

  「이 미카엘 수사는 악마가 그랑디에한테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즉, 지옥의 고통을 겪으며 무릎이 다 으스러진 채 녹색 담요를 덮고 장의자에 널브러져 있어서, 수사가 담요를 거칠게 걷어내고 부서진 정강이와 무릎을 쿡쿡 찔렀는데도 끽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카엘 수사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첫째, 그랑디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둘째, 사탄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다. 셋째, (수사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그가 호의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실제로는 악마를 부른 것이며, 악마를 증오한다고 말할 때 그건 하나님을 증오한다는 의미였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기둥에 묶여서 화염 맛을 톡톡히 체감하게끔 우리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미카엘 수사가 사라지자 다시 전권대행 차례가 됐다. 로바르데몽이 자신의 제물 곁에 두 시간 넘게 머물면서 서명을 받기 위해 갖은 설득 기술을 다 동원했다. 서명만 받으면, 자신이 취한 불법적 절차가 다 무마되며, 추기경에 대한 평판이 깔끔해지고, 또 히스테리 부리는 수녀들이 고해사제들에 의해 체제의 적들을 고소하도록 유도되는 모든 경우에서 앞으로 종교재판 식의 수법을 써먹어도 괜찮을 터였다. 서명을 꼭 받아야 했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 설득을 지켜본 가스탱은 ‘그런 번드르르한 근거며 그런 감언이설이며 위선적인 탄식과 흐느낌 같이’ 가증스러운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 어떤 회유에도 그랑디에는 그가 알고 신이 알듯이 (전권대행도 분명 마찬가지이고) 전부가 날조인 자술서에 서명한다는 건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로바르데몽이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간수장 라그랑제에게 형리들을 부르라고 지시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죄인을 끌고 가는 행렬

 

  그들이 왔다. 그랑디에한테 녹황색 긴 셔츠를 입히고 목에 밧줄을 걸고 마당으로 끌고 나갔다. 나귀 여섯 마리를 맨 수레가 대기 중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죄인을 들어 올려 장의자에 묶었다. 마부가 말들한테 고함을 질렀다. 행렬이 천천히 대로로 들어섰다. 일단의 궁수들이 앞에 서고 로바르데몽과 그의 온순한 재판관 열셋이 수레 뒤에서 걸었다. 

  대로 한가운데서 수레가 멈추고, 둘러선 시민들한테 판결문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낭독됐다. 나귀들이 또 움직였다. 

  그 다음엔 (주임신부가 여러 해 동안 의젓한 풍모로 드나들던) 성 베드로 사원 정문 곁에 와서 행렬이 또 멈췄다. 두 손에 2파운드 양초를 들리고 의자에 묶인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들어 내리고는 판결문에 적힌 대로 무릎 꿇고 죄를 사해 달라고 빌게 했다. 그러나 무릎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에, 땅바닥에 내려놓자 그가 얼굴을 땅에 박으며 엎어졌다. 형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 순간 교회에서 코르들리에회 감독관인 그리에 수사가 달려 나와 경비하는 궁수들을 밀치고 몸을 굽혀 죄수를 끌어안았다. 크게 감동한 그랑디에가 신부에게 자신과 교단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사실, 이 코르들리에 교단만이 루덩 전역에서 주임신부의 적들에게 협조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리에 수사가 유죄 판결 받은 이를 위해 기도하겠노라 약속하면서 하나님과 구세주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모친의 전갈을 전했다. 모친께서는 성모마리아 발밑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그대에게 축복을 보냈다오. 

 

  두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몰려든 군중이 짠한 마음이 되어 수군거렸다. 수군거림을 듣고 로바르데몽이 대노했다. 꾸민 대로 척척 되는 일이 어째 하나도 없는 거지?! 정상대로라면 어수선한 군중은 악마와 내통한 자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린치를 가해야 마땅한 것을. 한데 그러기는커녕 그의 가혹한 운명을 안타까이 여기고 있다니! 

 

  그가 황급히 행렬 앞으로 뛰어 나와 경비병들에게 코르들리에회 수사를 내쫓으라고 새된 목소리로 명령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열성을 발휘하여 그랑디에의 배코 친 머리를 곤봉으로 갈겼다. 

 

  질서가 복원되자 주임신부가 판결이 명한 대로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국왕과 사법부에 용서를 구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비록 도덕적으로 크나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 죄는 절대 저지르지 않았소이다.     

  형리들이 그를 다시 수레에 태우는 동안, 탁발수사 하나가 관광객들과 주민들에게 지루하고 장황한 훈계를 해댔다. 

  참회하지 않은 마법사를 위해 기도할 생각일랑 절대 하지들 마시오! 그건 곧 여러분이 아주 무서운 죄를 짓는다는 뜻이니까!! 

 

고문을 당해 하반신이 일그러진 그랑디에

 

  행렬이 움직였다. 우르술라회 수녀원 정문 앞에서 하나님과 국왕과 정의에 용서를 비는 의식이 재현됐다. 그러나 법정 서기가 원장수녀와 수녀들한테도 용서를 간청하라고 명령하자, 죄수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친 적이 없지만, 저 여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는 있소이다. 

 

  그러다가 필리프 트렌캉의 남편이자 가장 사나운 적수인 무소를 보자 지난 일은 다 잊어 달라 청하고는 본연의 정중함을 갖춰 덧붙였다. “난 당신의 온유한 종으로 죽겠소이다.” 무소가 얼굴을 팩 돌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랑디에의 적수들이 모두 그렇게 비기독교적인 가혹함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랑디에가 부적절한 행위로 기소된 1차 재판 때 그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 성직자들 중 한 사람인 베르니에가 군중을 헤치고 나와서 용서를 청하며 그를 위해 미사를 올리겠다고 했다. 주임신부가 그 손을 잡아 감사의 입맞춤을 했다. 

 

  성 십자가 광장에는 육천이 넘는 인파가 그 절반을 수용하기에도 벅찬 공간으로 들어서려고 밀고 밀렸다. 창문들이 전부 임대됐고, 심지어 지붕과 교회 홈통 주둥이 위에도 구경꾼들이 자리 잡았다. 판사들과 로바르데몽의 특별한 친구들을 위해 특별관람석이 설치됐지만, 어중이떠중이가 다 차지했다가 경비병들이 들이대는 창끝에 밀려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일진일퇴의 격전을 치르고 나서야 VIP들이 겨우 저희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인사들조차 지정 좌석까지 가는 데 무진 애를 먹었다. 죄수를 실은 수레가 장작더미 한가운데 선 기둥까지 마지막 백 야드를 가는 데도 자그마치 삼십 분이나 걸렸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호송병들이 미늘창을 휘두르며 길을 내야 했다. 

 

  성 십자가 교회 북쪽 담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높이 15피트 되는 굵은 기둥이 서 있었다. 기둥 밑에는 통나무와 나뭇가지, 짚더미가 잔뜩 쌓이고, 희생자가 으스러진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만큼 장작더미 2피트쯤 위로 작은 철제 의자가 기둥에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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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중대한 성격과 거대한 악평에도 불구하고 처형에 든 비용은 지극히 수수했다. 화형에 드는 장작과 죄인을 매단 기둥 비용으로 들랴르라는 사람한테 19 리브로 16 수를 지불했다. 1 파운드에 3 수 4 데니르 꼴로 무게 12 파운드인 철제 의자와 의자를 기둥에 연결하는 데 든 쇠못 여섯 개 값으로 대장장이 자크가 42 수를 받았다. 시농 시의 본당 신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궁수들을 파견하느라 빌린 말들 하루 임대, 또 나귀 여섯 필 하루 임대와 짐마차와 마부 둘에 비용 108 수가 들었다. 죄수의 셔츠 두 벌 (고문당할 때 입은 것과 화형 당할 때 입은 녹황색 셔츠) 값으로 4 리브르가 들었다. 공식 사죄 의식에 쓴 2 파운드짜리 양초는 값이 40 수이고, 형리들에게 제공한 포도주 값이 13 수였다. 여기에 성 십자가 교회 문지기와 조수들에게 준 수고비까지 계산하면, 도합 29 리브로 2 수 6 데니르가 들었다.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내려 철제 의자에 앉히고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 교회를 둥지고 앉은 그에게 특별관람석과, 또 한때 사제관만큼이나 편하게 지내던 저택 전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저택 담장 안에서, 그가 아담과 만누리에게 상처 되는 농담을 여러 번 던지고, 캐서린 암몽의 편지들을 낭독하여 모임을 즐겁게 하고, 젊은 처녀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며 유혹하고, 가장 좋은 친구를 철천지원수로 만들었다

  그 루이 트렌캉은 이제 자기 거실 창가에 앉아 있고, 그 곁에 참사회 위원 미뇽과 티보가 있었다. 한때 우르뱅 그랑디에였다가 이제 배코 친 불구자로 변한 그를 바라보며 세 사람이 의기양양하여 낄낄거렸다. 

 

  주임신부가 고개를 들다가 그들과 눈길이 마주쳤다. 티보가 오랜 지기한테 하듯 손을 흔들고, 트렌캉이 물 탄 백포도주를 마시다가 제 사생아 손녀의 아비를 위해 축배를 들었다. 

  그랑디에가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일면 수치심 때문에, 왜냐면 라틴어 수업과 절박하게 눈물 흘리는 처녀를 나 몰라라 한 것이 떠올랐으니까. 또 저들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참담한 심정이 되어 하나님이 지금 여기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혹여 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간수장 라그랑제.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짓을 용서해 달라 청하고 두 가지를 약속했다. 군중에게 고별사를 행할 수 있도록 하겠고, 장작에 불을 붙이기 전에 목 졸라 질식시키겠습니다. 그랑디에가 감사를 표했다. 간수장이 몸을 돌려 지시하자, 형리가 즉시 올가미를 준비했다. 

 

  그러는 중에 탁발수사들은 엑소시즘을 수행하느라 분주했다. 그들 입에서 라틴어가 흘러 나왔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의 적들이 놀라 달아나리라. 유다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다윗의 뿌리를 차지했구나. 이제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이름으로, 그의 아들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한 성령의 이름으로 너, 나무의 축생을 물리치나니…”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 연설하는 두 수도사

 

  그들이 장작더미와 짚단과 또 이글거리는 석탄이 담긴 화로에 성수를 뿌렸다. 그들은 땅과 허공에, 희생자와 형리들과 구경꾼들한테도 성수를 뿌렸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저 마법사가 극도의 고통을 겪지 않게끔 악마가 방해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야. 

 

  주임신부가 군중을 향해 몇 번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탁발수사들이 그 얼굴에 성수를 끼얹거나 철제 십자가로 입술을 때렸다. 그가 가격을 피하자,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배교자가 구세주를 외면하는구나! 랑탕 수사는 시종일관 범죄를 시인하라고 요구하며 “Dicas!” 하고 으르렁댔다. 

 

  이 레치타티보는 구경꾼들 뇌리에 박혀서, 짧고 참담한 여생 중에 랑탕은 이미 루덩에서 ‘디카스 수도사’로 유명해졌다

  “Dicas! Dicas!” 

  그랑디에가 시인할 것이 하나 없다고 천 번째로 대꾸하고 덧붙였다. 

  “자, 이제 나한테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죽이시오.” 

  랑탕이 처음엔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비기독교적인 증오를 보임에 군중이 항의하자, 그가 장작더미 위로 기어올라 주임신부 볼에 입맞춤했다. 

  “유다!” 누군가가 외치자 많은 사람들이 가세했다. 

  “유다, 유다!”  

 

  그 함성을 듣자 랑탕이 걷잡을 수 없이 화를 내며 장작더미에서 뛰어내리더니 짚단을 들어 화로에서 불붙이고는 불덩이를 희생자 얼굴 앞에 대고 흔들었다. 네가 누구인지 고백해라! 사탄의 하수인임을 자백하란 말이다! 참회하게 만들겠어, 네 주인을 부정하게끔 만들겠다! 

 

  “수도사여,” 그랑디에가 차분하고 온유한 품위를 보이며 입을 뗐는데, 그건 자신을 박해하는 자의 거의 광적인 증오와 묘하게 대비됐다. “난 이제 곧 하느님을 만날 터이고, 그분께서 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실 것이오.” 

  “인정해라!” 수도사가 절규하다시피 했다. “인정해! 넌 한순간 후면 죽을 것이야!” 

  “한순간 후면...” 주임신부가 느릿느릿 되풀이했다. “한순간 후면, 그때 난 공정하고 무서운 심판장으로 갈 터이고, 존경하는 수도사여, 당신도 곧 그 심판에 부름을 받을 게요.”

 

  랑탕이 그 뒷말을 다 듣기도 전에 들고 있던 횃불을 장작더미에 놓인 짚단 위로 던졌다. 밝은 오후 햇빛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불꽃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지면서 마른 나뭇가지 다발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바지직 소리를 내며 장작더미가 금방 타올랐다. 상대에게 뒤질세라 미카엘 수사가 장작더미 맞은편에서 짚단에 불을 놓았다. 퍼런 연무가 바람 한 점 없는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기둥 주변에 쌓인 나뭇단 하나에 불이 붙으면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장작더미에 불을 던지는 수도사

 

  죄수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흥겨운 불꽃 군무를 보게 됐다.   “나한테 약속한 게 이런 것이오?” 그가 절박하게 항의하는 투로 간수장을 불렀다. 그리고 갑자기 신성한 존재가 사라진 듯했다.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고, 그저 공포뿐이었다

 

  간수장이 화가 잔뜩 나 탁발수사들에게 고함지르며 가까이 있는 불길부터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꺼야 할 불길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트랑킬이 주임신부 뒤편에 쌓인 짚단에 불을 붙이고, 랑탕이 화로에서 다른 횃불을 또 붙였다. 

 

  “그의 목을 졸라라!” 간수장이 지시했다. 그러자 군중이 그 외침을 따라했다. “목을 졸라라, 목을 졸라!” 

  형리가 올가미를 가지러 달려갔지만,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몰래 로프에 매듭을 만들어 놓은 바람에 당장 쓸 수가 없었다. 매듭을 다 끌렀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단말마의 비명에서 구해 주려던 죄인 주변으로 이미 화염이 장벽을 치고 연기 커튼이 자욱했다. 그 동안에 수도사들은 성수 단지를 내두르며 장작불에 끝까지 남은 악마들을 내쫓았다. 

  “물러가라, 마귀들아!” 

  벌겋게 달구어진 통나무들 사이에서 성수가 쉬쉬쉬 하는 소리를 내며 금세 수증기로 변했다. 화염 장벽 저편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래, 엑소시즘이 먹혀들었다는 뜻이지! 탁발수사들이 감사 기도를 읊느라 행동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갱신된 신념과 배가된 힘으로 다시 작업에 나섰다.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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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마법사임을 시인하라고 고문 받은 그랑디에

 


 

  로바르데몽의 시대 이후 악이 발전도상에서 제법 전진했다. 코뮤니스트 독재자들 치하에서 인민재판에 나온 사람들은 기소된 죄를, 심지어 머릿속에서 생각만 한 것조차도, 반드시 시인해야 한다. 예전 시대에는 피고들이 자기네 죄목을 반드시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랑디에 같은 경우 모진 고문을 당하고 화형 기둥에 묶이면서도 자신의 결백을 지켰다. 그런 경우가 절대 독특한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들도 남자 못지않게, 불굴의 의지로써 그런 고통을 견뎌냈다

 

  우리 선조들은 고문대며 ‘아이언 메이든’, ‘에스파냐 부츠’, 물고문 따위를 고안했다. 하지만 그들은 의지를 깨고 인간성을 옥죄는 더 섬세한 기술에서 배울 게 아직 많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것을 아예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인간 의지는 자유롭고 영혼은 불멸이라 가르친 종교 안에서 양육됐고, 적대자들과 관계에서도 그런 신념에 준해 행동했으니까

 

  그래, 반역자라 할지라도, 사탄 숭배로 유죄 판결 받은 사람일지라도, 아직 구제받을 수 있는 영혼을 지녔다.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포악한 재판관들도 종교적 위안을 거부하는 법이 없었다. 완전히 타락한 영혼이란 기독교에서는 없으니까. 처형 전후에 성직자가 늘 가까이 있으면서 떠나는 범죄자를 그의 창조주와 화해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우리네 조상들은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괴롭히거나 바퀴 위에서 찢어놓은 대상들조차, 일종의 축복받은 모순을 가지고, 그 인격만큼은 존중했다

 

  한데, 그때보다 더 개명된 우리 시대의 전체주의자들에겐 영혼과 창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조건반사와 사회적 수단에 의해, 좋게 말해서 아직 인간 존재라 불리는 것으로 주조된 고깃덩이만 있을 뿐이다. 이 생물사회학적 산물에겐 본질적인 값어치가 없으며 자결권 같은 것도 전혀 없다. 그것은 사회를 위해 존재하며 집단 의지에 따라야 한다. 

 

  물론 실제에서 사회란 국민국가에 지나지 않고 집단의지란 독재자의 권력 행사 욕구일 뿐이다. 그런데 그 권력욕이 때론 누그러들고 때론 극단적 광기로 치달으며 ‘휴머니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멋진 미래를 사이비 과학 이론으로 약속하면서 범죄를 자행한다. 이때 개개인은 사회의 생산물이요 도구로 취급된다. 사회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정치적 보스들이 저희가 사회의 적으로 공표한 사람들을 상대로 여하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음이, 바로 이 때문이다. 총을 쏘아 (혹은 이문을 남기려면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혹사시켜)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이 한낱 사회의 생산물이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공식 이론은 사람들이 사회적 동물에 불과하다고 선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거짓을 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의 적들’의 인격을 필히 파괴해야 한다. 이런 과제쯤이야 인간을 짐승으로 바꾸고 자유로운 인격을 복종하는 로봇으로 바꾸는 방법을 꿰고 있는 자들에겐 전혀 어렵지 않다. 

 

  인격은 중세 신학자들이 교리에 따라 억지로 추정한 것보다 훨씬 덜 획일적이고 훨씬 더 자유롭다. 영혼은 정신과 같은 것이 아니지만, 그것과 결합된다. 영혼은 정신과 의식적으로 합치되기 전까지는 썩 안정적이지 못한 심리적 요소들이 헐겁게 묶인 패키지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잔혹한 의지를 갖고 기술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자라면, 누구든 이 견고하지 못한 결합체를 아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 부류의 잔혹성을 17세기에는 거의 생각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연관 기술도 전혀 발달하지 못했다. 로바르데몽은 절실하게 필요했던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 비록 그랑디에한테 고해사제를 선택하도록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유죄 확정된 마법사한테도 영적 위안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트랑킬과 랑탕의 종교 예식이 제시됐지만, 지극히 자연스레 거부됐다. 그러자 그랑디에한테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순교자의 고통을 준비하라고 15분을 주었다. 주임신부가 무릎 꿇고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신이자 의로운 심판자시여, 무기력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구원자시여, 나를 지키시고 이제 닥칠 고통을 견디도록 힘을 주소서. 내 영혼을 당신 성인들의 진복팔단 안에 받아주고, 내 죄를 사하고, 당신 종복들 중에서도 가장 역겹고 천박한 이 몸을 긍휼히 여기소서. 

  오, 우리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여[각주:1], 당신께서는 저들이 지우는 죄를 내가 짓지 않았음을 아시나이다. 내가 감내해야 하는 불길은 내 정욕에 대한 징벌일 뿐임도 아시나이다. 인류의 구세주시여, 내 적수들과 고발인들을 용서하소서. 그러나 그들이 저희 죄를 깨닫고 뉘우치게 하소서. 

  오오, 성모 마리아여, 참회하는 자들의 수호자시여, 내 불행한 모친을 당신 품안에 너그러이 받아 주소서. 아들 잃게 되는 그녀를 위로해 주소서. 그 아들은 이제 곧 떠나게 될 이 세상에서 모친이 견뎌야 할 고통 하나만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그가 잠시 침묵했다. 내 의지가 아니라 당신 의지대로 하소서. 하나님이 여기 고문 형틀 속에 계시고, 그리스도가 지금 극도의 고통 시간에 계시나니. 

 

  주임신부의 기도를 듣고 간수장이 기억나는 대로 노트에 적었다. 로바르데몽이 다가가서 젊은 장교가 무엇을 기록하는지 물었다. 대답을 듣고 화가 나서 노트를 빼앗으려 했지만, 간수장이 제 물건을 내놓지 않았다. 전권대행은 노트를 다른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말라는 명령으로 그쳐야 했다. 그랑디에는 참회하지 않은 마법사인데, 참회하지 않은 마법사들이 무슨 놈의 기도란 말인가. 

 

  재판과 처형에 관해 트랑킬 수사가 기록한 것과 공식 관점에서 기록된 다른 이야기들에서는, 그 마지막 시간에 주임신부가 아주 악마처럼 처신했다고 한다. 기도하는 대신 음란한 노래를 불렀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상을 얼굴에 가져다대자 질색하며 고개 돌렸다. 성모 마리아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고, 가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토해냈지만 누구든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단어로 그가 루시퍼를 암시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이 선전자들한테는 불행하게도 다른 기록들도 우리한테 전해졌다. 로바르데몽은 일을 은밀하게 처리하려 했지만 간수장은 강요된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 이벤트들을 편견 없이 지켜본 증인들이 또 있었다. 그 중에 예를 들어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천문학자 이스마엘 부요가 있고, 다른 몇몇은 익명의 기록을 증거로 남겼다. 

 

두 다리를 참나무 판자 네 개 사이에 압착하고 쐐기를 내리치는 고문

 

  15분이라는, 짧은 집행 연기 시간이 끝났다. 죄인을 묶어 바닥에 길게 뻗게 하고 두 다리를 참나무 판자 네 개 사이에 압착했다. 바깥 두 개는 고정되고 안쪽 두 개는 죌 수 있었다. 움직이는 안쪽 판자 두 개 사이로 쐐기들을 박아 넣을수록 희생자의 두 다리가 기계의 고정된 틀에 끼어 바스러지게 된다.

 

  일반 고문과 특수 고문의 차이는 판자들 사이에 점점 더 두꺼운 쐐기를 얼마나 더 많이 박아 넣느냐에 달렸다. 특수 고문은 (즉각적이 아니라 해도) 필히 죽음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지체 없이 처형될 사형수한테만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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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할 준비를 하는 동안 랑탕과 트랑킬 수사가 밧줄과 판자, 쐐기들, 나무망치 따위에서 귀신을 내쫓았다. 그건 아주 필요한 일이었다. 안 그러면, 죄인한테 육체적 고통으로써 정화되는 고문 효과를 악마들이 교묘한 기술로 방해할 테니까. 탁발수사 둘이 성수를 뿌리며 독경을 마치자 형리가 앞으로 나와 크고 묵직한 나무망치를 들었다가 장작 패는 사람처럼 내리쳤다. 요란한 비명이 터졌다. 랑탕이 제물에게 몸을 숙여 라틴어로 물었다. 시인하지 않겠나? 그랑디에가 고개를 저었다. 

 

  첫 번째 쐐기가 무릎 사이에서 깊이 박혔다. 이어서 두 번째 쐐기를 양발 사이에 끼우고 내려친 뒤, 세 번째 더 두꺼운 쐐기의 얇은 끝이 첫 번째 쐐기 바로 밑으로 들어갔다. 나무망치가 쿵 소리를 내고 날카로운 비명이 터진 뒤 잠시 적막이 깔렸다. 제물의 입술이 실룩였다. 

 

  오, 뭐야, 자백하는 건가? 탁발수사가 귀를 들이댔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단어만 몇 번 반복된 뒤 “나를 버리지 마소서, 이 고통 때문에 당신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하는 말이 들렸다. 

  수사가 형리에게 작업을 계속하라고 일렀다. 

 

  네 번째 쐐기를 두 번째 가격하자 발과 발목의 뼈 여러 개가 부서졌다. 한순간 주임신부가 의식을 잃었다. 

  “Cogne, cogne!” 랑탕 수사가 형리한테 소리쳤다. “쳐라, 더 쳐!” 

  주임신부가 다시 눈을 뜨고 나직하게 말했다. 

  “수도사여, 성 프란체스코의 관대함은 다 어디로 간 게요?” 

  성 프란체스코를 신봉하는 자가 대꾸하지 않았다. 

  “Cogne!” 

  형리에게 다시 소리치고, 나무망치가 떨어진 뒤 죄인을 다그쳤다.

  “Dicas, dicas!” 

  그러나 자백할 것이 없었다. 그러자 다섯 번째 쐐기가 박혔다. 

  “Dicas!” 해머가 허공에서 주춤했다. “자백하라!” 

  희생자가 형리와 탁발수사를 번갈아 쳐다보고 눈을 감았다. 

  “원하는 대로 날 괴롭히시오.” 그가 라틴어로 말했다. “곧 다 끝날 것이오. 영원히.” 

  “Cogne!” 

  나무망치가 다시 곤두박질쳤다. 

 

고문 당하는 주임신부

 

  숨을 헐떡이는 형리가 한여름 더위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나무망치를 조수한테 넘겼다. 이제 트랑킬이 죄수에게 말할 차례였다. 그는 자백하면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다음 세상뿐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여러 모로 좋은 게야. 

 

  주임신부가 다 듣고는 그 말이 끝나자 물었다. 

  “수도사여, 양심적으로 말해 주오. 사람이 행하지도 않은 죄를 그저 일순간 고통 피할 요량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믿는 게요?” 

 

  이 분명 사탄 같은 궤변을 애써 무시하고, 트랑킬이 계속 으르렁거렸다. 주임신부가 자신의 진짜 죄를 인정할 수는 있다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난 남자이고, 여인들을 사랑한 것일 뿐…” 

  그러나 그건 로바르데몽과 수사들이 원한 답변이 아니었다. 

  “넌 마법사이고, 악마들과 내통한 것이야.” 

 

  그런 죄는 짓지 않았다고 주임신부가 다시 항변하자, 여섯 번째 쐐기가 가격을 받아 깊숙이 박히고, 이어서 일곱 번째, 이어서 여덟 번째가 또 박혔다. 일반 고문에서 특수 고문의 전통적 한계까지 이르렀다. 무릎과 정강이, 발목, 발뒤꿈치 뼈들이 으스러졌다. 그러나 수사들은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 그저 절규하는 비명 뒤에 잠시 적막이 이어지고, 간간이 나직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만 들렸을 뿐. 

-

  쐐기 여덟 개가 통상적인 한 벌이었다. 로바르데몽이 쐐기를 더 많이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건 특수 고문마저 넘어서는 잔혹한 짓. 형리가 창고에 가서 쐐기 두 개를 더 가져왔다. 그 쐐기 두 개가 앞의 것들보다 더 두툼하지 않은 것을 알고 로바르데몽이 부아가 나서 형리를 태형에 처하겠다고 을러댔다. 

  그러나 그 새에 수도사들이 꾀를 냈다. 무릎에 박힌 일곱 번째 쐐기를 꺼내 발목에 있는 여덟 번째 쐐기에 이중으로 박으면 돼! 

 

  이번에 나무망치를 흔들어 댄 사람은 랑탕 수사였다. 

  “Dicas!” 내리칠 때마다 외쳤다. “Dicas! Dicas!” 

  트랑킬도 지지 않았다. 동료한테서 나무망치를 넘겨받고 열 번째 쐐기를 조정한 뒤 세 번 있는 힘껏 내리쳐 때려 박았다. 그랑디에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 흠, 이러면 안 돼,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기도 전에 숨이 끊어져서야! 게다가 쐐기들도 동이 났다. 마지못해 로바르데몽이 중단을 명했다. 이런 고집불통은 영원히 고문 받아 마땅하지만, 하는 수 없지. 

 

  그랑디에가 겪은 수난의 첫 단계는 45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형리들이 고문대를 분해하여 치우고 축 늘어진 죄수를 의자에 앉혔다. 그가 무참히 으스러진 다리를 내려다본 뒤 눈을 들어 전권대행과 공범자 열세 명을 응시하며 라틴어를 섞어 말했다. 

 

  “신사 여러분, 당신들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겠소?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각주:2]

 

  로바르데몽의 지시로 죄인을 옆방으로 데리고 가 장의자에 눕혔다. 8월 푹푹 찌는 날이지만 주임신부가 한기에 떨었다. 그건 지나친 외부 충격의 후과. 간수장이 낡은 담요를 덮어주고 포도주를 한 잔 따라 놓았다

 

  (그 사이 랑탕과 트랑킬은 자백 받지 못한 상황을 만회하려 들었다.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다가와서 묻는 사람들에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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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archer of hearts - “마음을 살피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성령이 하느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27) [본문으로]
  2.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한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애가 1:12)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절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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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그랑디에에게서 악마의 흔적을 찾는 작업

 


 

  “이제 눈썹 차례로군” 하는 목소리가 문간에서 들렸다. 

  외과의가 놀라 돌아보니, 로바르데몽이었다. 푸르노가 마지못해 지시를 따랐다. 

한때 숱한 여인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던 그 얼굴이 이제 익살극에 등장하는 어릿광대의 기괴한 마스크로 바뀌었다. 

  “좋소.” 전권 대행이 입을 뗐다. “아주 좋아! 이제 손톱 차례요.” 

  푸르노가 곤혹스러운 표정만 짓자 로바르데몽이 재차 다그쳤다. 

  “손톱 말이오. 그 손톱들을 다 뽑으시오.” 

  하지만 그 지시는 외과의가 따르지 않았다. 남작이 외려 놀랐다. 

  “왜 그러오? 이 자는 마법사라고 판결까지 났단 말이오.” 

  “설령 그렇다 해도, 어디까지나 사람입니다. 사람한테 그렇게 대할 수는 없지요.” 푸르노가 반박했다. 

  전권대행이 화를 내며 여러 모로 을러댔지만 외과의가 꺾이지 않았다. 다른 작업자를 부를 시간이 없었다. 로바르데몽이 그 정도 외관 손상에 만족해야 했다. 

 

  기다란 잠옷용 셔츠 하나 씌우고 낡아빠진 슬리퍼를 신겨서 그랑디에를 거리로 끌고 나와 창살 두른 수레에 집어넣은 뒤 법원 청사로 압송했다. 주민들과 관광객 무리가 법정에 들어가려고 앞을 다투었다. 그러나 선별된 소수만이, 고위 관리들과 처자 거느린 귀현들, 부르주아 계층에서 추기경에게 충실한 십여 명만이 입장할 수 있었다. 비단 옷자락들이 사각거리고, 금실 은실로 수놓은 비로드가 무지갯빛을 발하고, 보석 장신구들이 번쩍이고, 사향과 용연향 입자들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법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랑탕 수사와 트랑킬 수사가 법정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손에 닿는 것마다 성수를 뿌리면서 엑소시즘 주문을 억양 넣어 읊조렸다. 

 

  이어서 문이 열리고 그랑디에가 나타났다. 기다란 셔츠와 슬리퍼 차림이지만 배코 친 머리에 비레타가 얹혀 있었다. 사방에서 끼얹는 성수를 흠뻑 뒤집어쓴 그를 정리들이 재판석 앞으로 데리고 나아가 무릎을 꿀렸다. 두 손이 등 뒤에 묶였기 때문에 모자를 벗기가 불가능했다. 

  법정 서기가 다가가 비레타를 벗기고는 멸시하는 투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허옇게 배코 친 두개골을 보고 몇몇 귀부인이 발작적으로 킥킥댔다. 법정 정리 하나가 정숙을 요청했다. 

 

법정에 선 그랑디에

 

  법정 서기가 안경을 걸치고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선고문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법정에서 쓰는 의례적 서문이 반쪽 분량, 그리고 죄인이 수행해야 하는 참회 의식의 장황한 묘사, 이어서 화형에 처한다는 선고, 이어서 수녀원 채플에 붙일 기념 명판에 관해 불필요하게 상세한 설명, 그 명판 제작비 150 리브르는 죄인한테 압류한 재산에서 지불될 것, 그리고 끝으로 덧붙이는 말처럼, 화형에 앞서 죄인이 받을 ‘일반 심문과 특수 심문’에 대해 담담한 언급. 그리고 서기가 단호하게 낭독을 맺었다. 

 

  “1634년 8월 18일 루덩 시에서 공표된 상기 선고는 당일에 집행된다.”

 

  침묵이 오랫동안 흘렀다. 

  그 뒤 그랑디에가 판사들에게 최후 진술을 했다. 

 

  “존경하는 여러분”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또 내 유일한 수호자인 성처녀의 이름으로 단언합니다. 나는 마법사가 결코 아니며, 신성 모독을 범한 적도 결코 없으며, 내가 늘 신도들에게 전하던, 성서의 이적 이외에는 마법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오. 나는 내 구세주를 숭배하며 그분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눠 받기를 기도하오.” 

 

  그가 눈길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서 전권대행과 그가 고용한 판사 열셋을 응시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얘기하듯이 부드럽고 믿음 가는 말투로, 자신의 구원이 염려된다고, 육신에 가해질 소름 돋는 고문 때문에 영혼이 절망하여 죄의 무덤을 거쳐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지 염려된다고, 말했다. 

 

  "귀하들께서 한 영혼을 죽이려는 것은 분명 아니지 않소이까? 또 만약 그렇다 해도, 자비를 베풀어서 이 형벌의 가혹함을 조금이라도 경감한다면 분명 마음이 흐뭇해지지 않겠소이까?" 

 

  그가 몇 초 동안 말을 멈추고는 물어보는 눈길로 돌처럼 굳어가는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여인들 앉은 자리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또 흘러나왔다. 주임신부는 희망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여기 계시고 나를 버리지 않는 하나님 외에는 희망이 없어. 지금 함께 하시고 내가 고초를 겪는 순간에도 내내 존재하실 그리스도 외에는 희망이 없어. 

 

  그가 다시 입을 열어 수난자들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거룩한 증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생명을 바쳤소이다. 혹자는 바퀴 위에서 죽고 혹자는 불길 속에서, 혹자는 칼 아래서, 혹자는 화살에 꿰여, 혹자는 맹수들 아가리에 물려 죽었지요. 나 자신을 감히 그분들과 비교할 생각은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나한테 적어도 이런 희망은 있으니, 곧, 한없이 자애로운 하나님이 내 허랑하고 무질서한 삶의 모든 죄를 내 육신의 고통으로 속죄하게끔 허용하시지 않겠소이까? 

 

13인의 어용 판관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그랑디에

 

  주임신부의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고 그를 기다리는 운명이 얼마나 가혹했든지, 고질적인 적수들 이외에 홀에 있는 이들이 전부 연민을 느꼈다. 어릿광대처럼 볼품없는 모습에 킥킥대던 여인들 중 몇몇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안내인이 조용히 하라고 촉구했다. 헛수고. 사방에서 훌쩍이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로바르데몽이 위기감을 느꼈다. 이건 계획에 어긋나는 거야. 그랑디에가 고문 받고 화형당할 죄를 짓지 않았음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임신부는 법적으로 공인된 마법사였다. 시시껄렁한 증언 수천 쪽에 근거하여 고용된 판사 열세 명이 그렇게 판결하지 않았던가. 그런 만큼, 확실히 거짓된 것이긴 해도, 어쨌든 참일 수밖에 없다. 게임 룰에 따라 이제 그랑디에는 저를 유혹한 악마와 저를 지옥으로 보낼 하나님을 저주하면서 마지막 몇 시간을 좌절과 저항 속에서 보내야 했다. 

 

  한데 그렇게 하는 대신에 이게 뭐야, 이 무뢰한은 선한 가톨릭교도처럼 떠들고 기독교적인 온유함을 과시하면서 청중을 뒤흔들고 있지 않은가. 이걸 좌시하면 안 돼. 정성 들여 연출해온 세리모니가 그저 관객들로 하여금 주임신부는 결백하다고 확신케 함으로 끝났다는 것을 예하께서 알게 되면, 도대체 뭐라 하시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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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수 있는 방편은 하나뿐이고, 그걸 로바르데몽이 결정권자로서 신속하게 취했다. 

  “방청객들을 다 퇴장시켜라.” 

  지시가 떨어지자 정리들과 궁수들이 급히 실행에 나섰다. 화를 내며 항의하는 시골 귀족들과 그 부인들이 복도와 대기실로 내몰렸다. 그리고 문이 죄다 닫혔다. 그랑디에와 호송인, 판사 열셋, 탁발수사 둘, 한 줌 관리들만 남고 넓은 법정이 텅 비었다. 

 

  로바르데몽이 이제 죄인을 향해 입을 뗐다. 죄를 인정하고 공모자를 밝히시오. 그리 해야만, 가혹한 판결을 경감해 달라는 호소를 판사들이 고려해 볼 것이니. 

  주임신부가 대답했다. 공모자를 댈 수가 없소, 그런 사람들이 전혀 없으니. 죄를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오, 왜냐면 완전히 결백하니… 

 

  로바르데몽이 죄를 시인하라고 다그쳤다. 사실 그에겐 자백이 아주 필요했다. 악마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 입을 다물게 하고, 그가 주도한 재판 과정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면 정말 요긴했다

 

  엄혹하게 굴던 그가 돌연 부드럽게 나왔다. 그랑디에의 결박을 풀어주라 지시한 뒤, 주머니에서 종잇장을 꺼내더니 잉크에 담근 펜을 죄인에게 내밀었다. 서명만 하면 되는 거요, 그러면 반드시 고문당할 일도 없을 테니.  

 

죄를 시인하라고 다그치는 로바르데몽

 

  모든 관례에 따르자면, 유죄 판결 받은 죄인은 작은 자비를 얻을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예를 들어, 마르세유에서 성직자이면서 마법사로 기소된 조프리디 신부는 요구하는 대로 다 고분고분 서명했다. 그러나 그랑디에는 그런 게임 자체를 다시금 거부했다. 

  “미안하오만, 그렇게는 못하겠소이다.” 

  “그냥 펜 한 번 굴리기만 하면 되오!” 로바르데몽이 발끈했다. 

 

  상대가 양심상 거짓말은 못하겠다며 굽히지 않자 전권대행이 잘 생각해 보라면서 달변을 토했다. 

  당신을 위해서요, 가엾은 육신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게 해야지, 위기에 처한 영혼을 구해야지, 악마를 멋지게 골탕 먹이는 거요, 또 당신이 섭섭케 한 하나님과 화해도 하고… 

 

  트랑킬 수사의 증언에 따르면 로바르데몽은 죄를 인정하라고 부탁하면서 막판에는 정말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탁발수사의 말을 우리가 의심할 필요는 없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심복은 ‘눈물 재능’이 뛰어났으니까. 

  나중에, 1642년 리슐리외 추기경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다 적발돼 처형된 생마르 후작과 투 후작의 최후 시간에 참여한 사람들이 얘기하길, 로바르데몽은 자신이 막 사형선고를 내린 그 젊은이들한테도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눈물도 협박과 마찬가지로 먹혀들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거짓 자백에 서명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이 완고함을 랑탕과 트랑킬은 죄인이 유죄라는 최종 증거로 삼았다. 죄인의 입을 틀어막고 참회하지 못하도록 가슴을 강퍅하게 만든 자는 바로 루시퍼요! 

 

  로바르데몽이 눈물을 그쳤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주임신부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푼다고 말했다. 서명하겠소? 그랑디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간수장을 불러 죄인을 위층 고문실로 끌고 가라고 명했다. 

 

  고문실에서 그랑디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암브로시오 수사를 불러 고난의 시간 동안 배석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암브로시오 수사는 도울 형편이 못 됐다. 허가받지 않고 감옥으로 면회 간 뒤 노인은 도시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것. 그러자 그랑디에가 그리에 수사를 불러 달라고 했다. 코르들리에 수도원 감독관. 

 

  그러나 코르들리에 수사들을 로바르데몽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카푸친회의 새 교리를 인정하거나 수녀들의 마귀 들림에 일조하라는 것을 다 거부했으니까. 어떻든, 그리에 수사가 그랑디에며 그의 가족과 친분 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기에 로바르데몽이 이 요청을 거부했다. 만약 죄인이 영적 위안을 바란다면, 랑탕과 트랑킬 수사를 찾으라. 한데, 그 둘은 그랑디에한테 가장 가혹한 적대자들이었다. 

 

  “알 만하오.” 그랑디에가 씁쓸하게 말했다. “당신은 내 육신의 파괴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내 영혼마저 절망의 나락에 빠뜨려 짓밟기 원하는구려. 언젠가 이 일로 인해 당신은 내 구세주 앞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게요.” 

 

  (로바르데몽의 시대 이후 악이 발전도상에서 제법 전진했다. 코뮤니스트 독재자들 치하에서, 인민재판에 나온 사람들은 기소된 죄를, 심지어 머릿속에서 생각만 한 것조차도, 반드시 시인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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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수녀들을 대상으로 엑소시즘을 펼치다

 


 

8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악마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이 대전제에 따르면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 입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바르데몽은 위그노들을 지독히 싫어하는데, 그들이 사탄의 친구이며 충실한 종복이라고 귀신들린 수녀 열일곱 명이 성찬례에서 단언하면 그만이었다. 

 

  상황이 그런 만큼 전권대행은 낭트칙령[각주:1]을 무시해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 느꼈다. 먼저 루덩의 칼뱅주의자들이 자기네 묻힐 곳을 박탈당했다. 그들 죽은 몸뚱이를 어디 다른 곳에 파묻으라고 해. 

 

  이어서 프로테스탄트 칼리지 차례가 됐다. 넓고 편리한 학교 건물이 몰수돼 우르술라회로 넘어갔다. 사실, 그들이 그 동안 수녀원으로 임차한 건물에는 사방에서 도시로 몰려든 독실한 순례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이제 마침내 수녀들이 날씨가 어떻든 성 십자가 교회나 샤토 교회까지 터벅터벅 걸어갈 필요 없이 입에 맞는 관중 앞에서 엑소시즘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위그노 못지않게 가증스러운 자들도 있었으니, 바로 그랑디에가 유죄이고 마귀 들림이 실제로 있으며 카푸친회가 새로 내놓은 교리의 절대적 정통성을 한사코 믿지 않으려 드는, 나쁜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랑탕과 트랑킬이 설교단에서 신랄하게 몰아쳤다. 

  저들은 이단자보다 나을 게 하나 없소! 저들이 의혹을 품는 것은 크나큰 죄이며 저들은 이미 저주받은 것과 진배없단 말이오!! 

 

  또 한편에서는 메스멩과 트렌캉이, 의심하는 자들은 국왕에게 불충하며 (더 흉하게도) 추기경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다녔다. 그리고 미뇽이 맡고 있는 수녀들과 카르멜회 히스테리 환자들의 입을 통해 많은 악마들이, 그자들은 전부 사탄과 결탁한 마법사라고 떠들었다. 

  시농에서 바레가 관장하는 마귀 들린 자들 중 누군가한테서는 흠 잡을 데 없는 치안판사 세리제조차 흑마법으로 장난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 다른 마귀 들린 자는 두 성직자, 부롱 신부와 프로지에 신부가 강간을 기도했다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원장수녀의 고발로 마들렌 드브루가 요술을 부린다는 혐의로 체포돼 수감됐다. 친척들이 재산과 고위층 연줄 덕에 그녀를 간신히 보석으로 빼냈다. 그러나 그랑디에 재판이 끝난 뒤 마들렌은 다시 체포됐다. 그녀가 항소법원[각주:2] 판사들에게 호소하자 로바르데몽에게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전권대행이 자신을 비난한 여인을 맞고소했다. 마들렌에게는 다행히도, 리슐리외는 판사들과 다툴 만큼 그녀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로바르데몽에게 소송을 취하하라는 지시가 내렸고, 원장수녀는 복수의 기쁨을 접어야 했다. 

  그 뒤 가엾은 마들렌은 모친 사후에 제 연인이 하지 말라고 설득했던 일을 하고 말았다. 삭발하고 어느 수녀원 담장 안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

 

  그러는 동안 악마들이 시민들을 겨냥해 내뱉은 이런저런 고발이 바람에 일어난 먼지처럼 난무하게 됐다. 지역 상류층 아가씨들이 그들 공격 대상으로 찍혔다. 아그네스 수녀는, 루덩만큼 음란기로 가득한 도시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클레어 수녀는, 죄 지은 여인들 이름을 꼽으면서 그들의 죄목을 늘어놓았다. 루이스 수녀와 잔느 수녀도 가만있지 않았다. 루덩의 처녀들은 죄다 마녀의 싹을 품고 있어! 

 

  이 엑소시즘은 매번 음란한 몸짓과 추잡한 언사와 광적인 웃음 따위로 끝났다. 

  그 다음에는 도시의 존경받는 인사들한테 비난이 쏠렸다. 

 

  그들이 마녀 집회에 다니면서 악마 엉덩이에 입을 맞추잖아. 

  또 그 부인들은 인큐버스와 사통하고, 그 누이들은 옆집 암탉들에게 마법을 걸고, 그 노처녀 숙모들은 도덕적인 젊은이를 신혼 첫날밤에 임포텐츠로 만들지 뭐야. 

  그랑디에도 그래, 벽돌로 막아놓은 창문의 공기구멍 틈새로 그 동안 자기 정액을 절묘하게 나눠주고 있었던 거야. 마녀들한테는 보상을 하고, 추기경 파의 아내와 딸들에게는 합당치 않은 치욕을 안기려는 속셈에서 말이지. 

 

수녀들한테서 악마를 쫓아내는 의식

 

  그런 고약한 망언들을 로바르데몽과 그의 서기들이 하나도 빼지 않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악마들한테서 비난받은 이들이 (달리 말해, 로바르데몽과 엑소시스트들한테 눈엣가시가 된 이들이) 로바르데몽 집무실로 소환돼 심문 받으며 위협과 협박을 겪었다. 도시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7월 어느 날 로바르데몽이 악마 베헤리트한테 힌트를 얻어 젊은 처녀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는 성 십자가 교회의 문을 다 잠그라고 명령했다. 카푸친회 수도사들이 사탄과 결탁한 흔적을 찾는다는 명분 아래 처녀들 몸을 더듬었다. 철저한 수색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표식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군, 베헤리트가 정식으로 강요당했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 

 

  몇 주일 동안 카푸친회와 레콜레트회와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모든 설교단에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의혹 품은 이들이 납득하지 못했고, 그랑디에 사건을 매우 불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불만과 저항이 더 커지기만 했다

  익명의 운쟁이들이 전권대행을 두고 짤막한 풍자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그 시구에 오래 된 가락을 붙여 거리에서 선술집에서 잔을 들고 노래하며 국왕의 전권대행을 조소했다. 그를 조롱하는 글귀들이 밤마다 교회 현관에 나붙었다. 

 

  도대체 누구 소행인지 개꼬리와 레비아탄에게 추궁하자, 이 악마들이 어떤 신교도와 어린 학생 몇몇을 범인으로 꼽았다. 그들을 체포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수 없게 되자 풀어주어야 했다. 이제 밤마다 파수꾼들이 교회 밖에 배치됐다. 그러자 비판하는 글귀가 다른 대문들에 걸리기 시작했다. 

 

  분개한 전권대행이 7월 2일 포고문을 발동했다. 

  ‘악마 때문에 고통 받는 수녀들이나 다른 주민들, 엑소시스트들이나 엑소시즘 조력자들을 적대시하여’ 행동하거나 또 입을 놀리는 것조차 차후로는 엄금한다. 이를 어긴 자는 누구든 1만 리브르 벌금에 처하고, 필요한 경우 재정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더 중하게 부과할 것이다. 

  그 뒤 비판이 더 조심스러워지자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이 여론을 겁내지 않고 허튼 비방을 마음껏 지껄일 수 있게 됐다. 

 

  <루덩 주임신부 재판에 대한 의견과 판단>이라는 글의 익명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만을 말하는 하나님이 이제 밀려나고 그분 자리에 사탄이 앉아서 거짓과 허튼소리만 해대는데, 그 허튼소리를 진실처럼 믿어야 하다니, 이야말로 이교 사상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게다가 항간에 나도는 얘기로는, 악마가 마법사와 주술사라면서 많은 이름을 읊어대는 것이 권력에는 아주 편리하단다. 이제 이 불행한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고 재산이 압류될 것이다. 그리고 몰수된 재산 일부가 주임신부의 죽음과 도시 대부분 명가들의 파멸을 은근히 바랄지도 모를 피에르 메노와 그의 사촌인 참사회 위원 미뇽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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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초 트랑킬 신부가 새로운 교리를 기술하고 거기에 근거를 부여하여 얇은 책자를 냈다. 그 교리란 바로,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는 것. 이 책자를 푸아티에 주교가 승인하자 로바르데몽은 정통 신학에서 최신의 발견이라 부르며 환영했다

 

  이제 의심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그랑디에는 마법사로 아예 굳어지고, 겁 없이 옳게만 나서는 세리제 판사 역시 주술사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추기경 지지파에 속한 부모를 둔 처녀들을 제외하고, 루덩의 처녀들은 모두 매춘부와 마녀가 됐다. 또 시민 절반에게는 악마의 존재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미 저주가 내렸다. 

 

  트랑킬의 소책자가 나오고 이틀 뒤 수석 치안판사가 도시 명사들을 소집했다. 시민들이 처한 곤경을 논의한 끝에 세리제 판사와 보좌관 쇼베가 파리로 가서 전권대행의 전횡을 막아 달라고 국왕에게 청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반대한 사람은 검찰관 무소, 경찰 수뇌 에르베와 메노뿐이었다. 에르베는 루덩의 시민들을 전부 사탄의 종복으로 규정하는 새 교리에 동의하느냐고 치안판사가 묻자 “국왕과 추기경, 푸아티에 주교께서 마귀 들림을 믿는 바에야 나로서도 달리 방법이 있겠소?” 하고 대꾸했다. 

 

  정치적 보스에 대해 부하들이 무의식적으로 지니는 이 무류(無謬) 의식은 오늘날 우리네 귀에도 낯설지 않으며 아주 자연스러우리라

 

  다음날 세리제와 쇼베가 루덩 시민들의 정당한 불만과 불안이 명료하게 기술된 청원서를 들고 파리로 떠났다. 그 문건에서는 로바르데몽의 처리 방식이 준엄한 비판을 받았고, 카푸친회가 내놓은 새로운 교리는 ‘하나님 율법을 파괴하며’ 교회 박사들과 성 토마스와 소르본대학 학자들의 견해에 상충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소르본 학자들은 비슷한 교리를 이미 1625년에 공식 규탄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루덩의 시민들은 트랑킬의 소책자를 소르본에서 검증하도록 국왕 폐하께서 명해 주십사 탄원하고, 나아가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한테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중상모략 받은 모든 이들이 ‘이런 문제들의 정상적 심판 기구인’ 파리 고등법원에 상소하도록 허용해 주십사고 간청했다. 

  두 치안판사가 궁정에서 다르마냑을 찾아 부탁하자, 그가 즉각 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회답은 퉁명스러운 거절. 그러자 세리제와 쇼베가 국왕의 개인비서에게 청원서를 맡기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이 사람은 추기경의 심복이자 루덩 시민들의 공공연한 적대자였다. 

 

  그들이 파리에 있는 동안 루덩에서는 로바르데몽이 새 포고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그 어떤 공개 집회도 금지하며, 위반할 시 2만 리브로 벌금이 부과될 것이다. 이후로 악마의 존재에 의혹을 품는 이들이 더 이상 골칫거리가 되지 못했다. 

 

엑소시스트들과 국왕 전권대행

 

  이제 예비조사가 다 끝나고 마침내 재판을 개시할 때가 됐다. 로바르데몽은 루덩의 주요 치안판사들 중에서 몇몇을 재판부에 기용할 수 있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무너졌다. 수석 치안판사인 세리제를 비롯해 부르네, 샤를 쇼베, 루이 쇼베 등이 모두 사법살인에 끼어들기를 거부했다. 국왕의 전권대행이 감언이설로 꾀어 보다가 잘 안 먹히자, 추기경 예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어떤 후과가 따를지 생각해 보라고 은근히 겁을 주었다. 그래봤자 헛수고. 법률가 네 사람이 꿋꿋하게 버텼다

 

  할 수 없이 시농, 샤텔로, 푸아티에, 투르, 오를레앙, 라 플레시, 생멕상, 보포르 등 인근 도시에서 재판관을 찾아야 했다. 결국 유순한 판사 열셋으로 재판부를 꾸렸다. 검사를 기용하는 문제도 썩 순탄치 못했다. 피에르 푸르니에라는, 지나치게 꼼꼼한 법률가가 추기경의 룰에 따라 게임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전적으로 신임할 수 있는 도시 검찰관을 선정했다. 

 

  8월 둘째 주 중반에 재판 준비가 다 끝났다. 미사를 드리고 성찬례에 참석한 뒤 재판관들이 카르멜회 수도원에 모여 지난 몇 달 로바르데몽이 수집한 증거를 죄다 청문하기 시작했다. 푸아티에의 주교는 마귀 들림이 실제 있는 현상이라고 공식적으로 담보했다. 이는 곧 진짜 악마들이 우르술라 수녀들의 입을 통해 말한 것이며, 그 진짜 악마들이 그랑디에가 마법사라고 몇 번이나 단언했다는 의미. 한데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즉, 악마들은 엑소시스트들의 감시를 받으며 진실을 말한 것이고, 그렇다면… 증명은 끝난 셈이다. 

  유죄 판결이 아주 확실했고, 그 확실함이 얼마나 소문났는지 처형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이미 루덩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무더운 팔월 (루덩 시 인구보다 두 배가 많은) 3만 명이 음식과 숙소와 처형대 가까운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우리 선조들이 공개 처형이라는 스펙터클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 대다수는 참으로 믿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의 휴머니즘 달성을 자축하기 전에 몇 가지를 기억해 보자. 

  첫째, 오늘날 시민들에게는 처형 현장을 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처형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교수형이 인형극처럼 흥미롭게 보이던 시대에 장작불 위 화형이야말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각주:3]이나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각주:4]처럼 보기 드문 사건이고, 그걸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비가 많이 드는 순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공개 처형이 사라진 것은 대다수가 바랐기 때문이 아니다. 지극히 섬세한 개혁가 소수가 그걸 금할 만큼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문명화(개화)란 개개인이 야만적 행위를 자행할 기회를 체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라 정의할 수도 있겠다. 

  한데 근년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억제되던 끝에 이제 우리보다 더 나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야만적인 행위에 기꺼이 몰두하면서 이전의 양상으로 기꺼이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왕과 추기경, 로바르데몽과 고용된 재판관 열셋, 시민들과 관광객들 모두 결말이 어떻게 날지 알고 있었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은 죄수 하나뿐이었다. 

 

  (8월 첫째 주 끝에 가서도 그랑디에는 자신이 평범한 재판의 피고이며, 이전 조사에서 잘못된 것들은 다 우연한 실수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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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1. 나바르 왕 앙리가 프랑스 왕위 계승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대신 위그노의 종교 자유와 시민권을 보장하는 칙령을 1598년 선포. 이로써 위그노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는 교회의 화합 아래 강대국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칙령에 교황 클레멘스 8세와 프랑스 로마가톨릭, 파리 고등법원 등이 큰 불만. 나중에 리슐리외 추기경은 낭트칙령에서 정치 관련 조항을 국가에 위험하다고 여겨 알레 칙령(1629)으로 무효화. 1685년 루이 14세가 완전히 폐지, [본문으로]
  2. Messieurs des Grands-Jours - 왕국의 전 지역을 다니며 지방 사법부의 스캔들과 오심을 조사하는 순회 항소법원. [본문으로]
  3. Bayreuth Festival -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해마다 열리는 음악 축전. <니벨룽겐의 반지> 등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만 공연. [본문으로]
  4.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 - 독일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 오버아머가우 주민들이 1634년부터 전통적으로 행하는 공연.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1632년 10월에 성인 사망률 1에서 1633년 3월 20까지 올라갔다. 주민들은 하느님이 이 역병을 물리쳐 주신다면 예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공연을 평생 하겠노라고 다짐. 사망률이 점차 줄면서 1633년 7월에 1로 가라앉자 주민들은 구원을 받은 것이라 믿었다. 1634년 처음 공연 시작. 전 세계에서 수십 만 관객이 몰려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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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젊은 시절

 


 

  근세 과학 문헌을 읽다 보면 가장 거친 초자연주의[각주:1]와 가장 거칠고 나이브한 유물주의[각주:2] 같은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데 이 덜 다듬어진 유물주의는 현대의 유물주의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옛 이론이 다루는 ‘물질’[각주:3]은 정확하게 계량되는 무엇이 아니다. 거기서는 그저 따스함과 차가움, 건조함과 축축함, 가벼움과 무거움 따위 얘기만 나온다. 이런 질적 표현을 양적 규모로 밝히려는 시도가 전혀 없다. 우리네 선조들의 관념에서 ‘물질’은 측정되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주 적다

 

  두 번째 차이점이 첫 번째 못잖게 중요하다. 우리 관점에서 ‘물질’은 늘 움직이는 무엇이며, 실제로 그 본질은 바로 움직임에 있다. 모든 물질은 늘 뭔가를 하고 있고, 모든 형태의 물질 중 생체를 구성하는 콜로이드[각주:4]가 가장 미친 듯이 바쁘다. 하지만 콜로이드의 움직임은 놀랍게도 서로 조화를 이루니, 유기체의 한 부위에서 벌어지는 과정이 다른 부위들의 과정을 조절하고 또 그것에 의해 조절되면서 에너지 균형을 만든다. 

 

  고대와 중세 사상가들에게 물질이란 본질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물건일 뿐이었다. 살아있는 신체를 얘기할 때조차 그랬다. 그 생체에서 어떤 움직임이 벌어졌다 하면, 식물에서는 오로지 식물적 영혼이, 짐승들에서는 식물적 영혼과 감각적 영혼이, 또 인간한테서는 그 두 영혼과 더불어 이성적 영혼이 작용한 것이었을 뿐. 

 

  생리 과정은… 과학으로서의 화학이 아직 없었기에 화학 용어로 설명되지 못했고, 전기라는 것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전기 자극으로 설명되지 못했고, 현미경이 없는데다 아무도 세포를 본 적이 없기에 세포 활동으로도 설명되지 못했다. 신체 조직을 구성하는 물질들의 활동 형태는 전부 (전혀 어려움 없이) 그저 영혼의 특별한 기능으로 설명됐다. 

  영혼에는 예를 들어 성장 기능, 영양 공급 기능, 분비 기능이, 한마디로 생리 과정에 관련된 기능이 다 있었다. 이런 가설이 철학자들에겐 참으로 편리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추상적 개념에서 자연 현상으로 옮겨가려 했을 때, ‘영혼의 특별한 기능’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적다는 점을 알았다. 

 

  중세 유물주의의 투박한 성격은 당대 문학에서 사용된 여러 메타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생리적 요소들은 부엌과 변소에서 벌어지는 것에 은유됐다. 당시 문학에는 끓는 것과 끓어서 터지기 직전의 것과 압력으로 일그러지는 것, 오수 구덩이와 대저택 이동 변기의 응고물에서 나오는 부패물과 악취에 관한 얘기가 늘 나왔다. 그런 개념들에 의거하여 신체 기관의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극히 어렵다. 

 

  좋은 의사는 치료자 본능을 타고난 사람으로, 지식이 재능과 직관적 진단을 너무 간섭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자연은 간섭받지 않으면 스스로 치유 기적을 행할 수 있다

 

  버튼의 방대한 편찬물에는 갖가지 헛소리며 위험한 난센스와 더불어 번뜩이는 센스가 적잖이 들어 있다. 난센스는 주로 당대에 횡행하던 과학적 이론들과 연관되고, 지혜로운 센스는 주로 통찰력 있고 선량한 숙련가들이 열린 마음으로 얻은 경험에서 나온 것. 그들은 또 동료를 사랑하고 환자 다루는 비결을 터득하고 자연의 치유력을 믿은 이들이었다

  자연적 원인이든 초자연적 원인이든 멜랑콜리라는 질병을 의사들이 어떻게 치료했는지 관심 있는 이들은 버튼의 황당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우리 이야기를 위해서는 잔느와 다른 동료 수녀들이 재판 기간 내내 의료진의 관리를 받았다는 점을 언급하면 충분하다. 아쉽게도, 버튼이 묘사한 현명한 치료법 어떤 것도 그 수녀들한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을 신선한 대기로 내보내지 않았고, 식이요법을 처방하지 않았고, 몸을 좀 고되게 할 만한 일도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사혈과 관장에 시달리고 별의별 환약과 탕제를 끝없이 삼키고 들이켜야 했을 뿐이다

  그런 치료가 어찌나 괴물 같았던지, 양심적인 의사 몇몇은 수녀들을 검사한 뒤 치료 열성이 지나쳐서 병세가 외려 악화됐다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했다. 수녀들한테 늘 다량의 안티몬이 투여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고생했는지도 모른다. 

 

  [저자 주 → 이런 진단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묘사하는 사건들이 벌어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 세대에 걸쳐 의사들이 안티몬을 두고 대립해 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갈레노스의 관점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을 그 어떤 질병 치료에도 효과가 탁월한 약제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적인 의사들이 압력을 넣자 파리 고등법원은 프랑스 전역에서 안티몬 사용 금지 포고령을 발동했다. 그러나 법령은 준수되지 않았다. 

 

  법안 통과 후 반세기가 지나 그랑디에의 친구이자 루덩에서 가장 저명한 의사인 테오프라스트 르노도[각주:5]가 안티몬의 효능을 열렬히 찬양하고 있었다. 그의 후배뻘이며 유명한 <서신>의 작자인 귀 파탱[각주:6]은 또 그에 상충되는 관점을 맹렬히 옹호했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는 르노도며 다른 갈레노스 반대자들이 아니라 파탱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안티몬 화합물은 칼라아자르라고 알려진 열대병 치료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이용할 가치가 거의 없다. 어찌 됐건, 16세기와 17세기에 안티몬의 무차별 남용은 의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긴 해도 경제적 관점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차고 넘쳤다. 아담과 동료 약제사들은 금속 안티몬으로 ‘영구 환약’을 팔아 돈을 짭짤하게 벌었다. 이 환약은 삼키면 창자를 지나면서 점막을 자극하여 하제처럼 작용했고, 변기통에서 꺼내 씻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무한정 쓸 수 있기 때문에 한번 구비하면 그 다음에는 배변 촉진제에 돈 들일 일이 더 없었다. 의사 파탱이 격렬하게 비난하고, 파리 고등법원이 금지했다. 하지만 변비까지 일으킬 정도로 인색한 프랑스 부르주아에게 안티몬의 매력은 물리치기 힘들었다. 이 영구 환약을 가보처럼 취급하면서 대물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초기 갈레노스 반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명성 높은 파라셀수스[각주:7]가 잘못된 유추 하나로 안티몬에 열정을 품게 됐다는 점을 여담 삼아 언급할 만하다. 이렇게 말했다. “안티몬은 금을 정제하면서 슬래그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인체도 깨끗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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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 세공사와 연금술사의 작업을 의사와 영양사의 작업과 비교함으로써 생긴 또 다른 잘못된 유추는 식료품을 더 많이 가공할수록 유용성이 더 커진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흰 빵이 갈색 빵보다 더 좋고, 부글부글 끓인 부용(bouillon)이 그 안에 든 본래의 고기며 야채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믿음. ‘거친’ 식품을 먹는 사람들은 거칠어진다고 짐작들 했다. 파라셀수스가 이렇게 말한다. “치즈와 우유, 오트밀 비스킷을 먹는 사람은 섬세한 기질을 지닐 수 없다.” 

  우리네 식생활 이론을 연금술에 잘못 유추하면서 벌어지던 혼란은 불과 한 세대 전 비타민이 등장한 뒤에야 멈추게 됐다.] 

 

  하지만 ‘멜랑콜리’ 치료법이 아무리 잘 개발돼 있었다 한들 마귀 들림과 악마의 틈입 때문이라는 믿음이 훨씬 더 널리 퍼진 당시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의사들 가운데서도 그랬다. 버튼의 글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귀신이며 악마 얘기에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법률가며 성직자, 의사, 철학자 대다수가 그 반대편에 있다.’ 

 

  벤 존슨[각주:8]은 <악마는 당나귀처럼 투미해>에서 17세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우리한테 선명하게 남겼는데, 거기에는 맹신과 의심, (특히 도저히 믿을 게 못 되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의존과 응용과학의 새로운 발견에 대한 순진한 자만이 공존한다. 극중 인물인 피츠도트럴은 마술 딜레탕트로서, 악마와 만나기를 갈망한다. 악마들은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고 있으니까. 

 

The Devil is an Ass. by Ben Johnson

 

  그러나 마법과 사탄의 힘을 믿는 마음과 함께 우리 아버지들이 ‘기획자’라 부르던 회사 프로모터며 뭔가 발견했다고 큰소리치는 사기꾼들, 의심쩍은 발명품들에 대한 믿음 역시 아주 강하다. 자기한테 천팔백만 파운드를 확실히 만들어주고 공작 신분까지 얻어주는 계획을 기획자가 세우고 있다고 피츠도트럴이 말하자,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 거짓된 혼령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한다. “혼령이라니!” 피츠도트럴이 소리친다.

 

혼령이라니! 그런 건 없어, 여보, 멀쩡한 이성만 있는 거야. 

이 사람은 악마와 악마의 작업을 다 거부하지. 

이 사람은 엔진과 기계장치로만 일을 해, 이 사람은 그래! 

이 사람은 날개 달린 쟁기를 발명했어, 기적 같지, 

그게 있으면 40에이커 밭도 한순간에 다 갈아엎어! 

그 넓은 밭에 물을 대는 기계도 다 있어

 

  피츠도트럴은 물론 코믹하면서도 그 시대에 아주 전형적인 형상이다. 그가 상징하는 바는 자연적인 세계와 초자연적인 세계, 이 두 세계에 지적인 생활이 불안하게 양다리 걸친 시대. 그가 두 세계의 최선 대신 최악을 취하려고 애쓴 것도 역시 슬프지만 전형적이다. 

  우둔한 자들은 순수한 과학보다 과학적 협잡에, 성령에 대한 믿음보다 밀교와 비술에 훨씬 더 매료를 느낀다

 

  루덩의 수녀들 스토리에서 그렇듯이 버튼의 책에서 이 두 세계는 공존하고 용인된다. 한편에는 공인된 의술로 치료해야 하는 멜랑콜리가 있다. 한데 마법과 귀신들림 또한 잘 알려져서, 그것들이 몸과 마음에 질병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해서 놀랄 건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하늘이나 땅이나 물에, 땅 아래에, 빈 곳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으며, 파라셀수스가 한사코 주장하듯이 대기 중에는 보이지 않는 악령들이 여름날 파리보다 훨씬 더 가득하여 늘 저마다 갖은 혼란을 획책하니 말이다.」 

 

  버튼에 의하면, 혼령의 수효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네 어떤 수학자들 말이 옳다면, 즉 돌멩이가 별들이 빛나는 하늘이나 여덟 번째 천구에서 떨어져 시속 100마일로 날아간다면, 그건 어떤 이들 말대로 1억7천만803마일이라는 엄청난 거리를 지나 지구에 닿기까지 65년이나 그 이상이 걸릴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광활한 공간에 혼령이 얼마나 많이 거처할 수 있겠는가?」 

 

  우주관이 그럴진대, 악마들이 우연히 어떤 사람한테 들어앉는다는 것이 놀라운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대다수 사람들이 귀신들리지 않고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녕 놀라웠다

(7-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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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초자연주의 - 감각적 인식으로 파악되는 자연적 존재를 초월한 정신적 존재가 있다고 단정하고, 그에 관한 인식은 신앙, 계시, 직관 등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 [본문으로]
  2. 유물주의 -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정신이나 의식 따위는 물질의 산물이라는 이론. [본문으로]
  3. 물리에서, 자연계를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질량을 가지는 것. [본문으로]
  4. 원자나 보통 분자보다는 크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작은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 또는 그 물질이 기체, 액체, 고체 속에서 분산되어 있는 상태. 입자 크기는 1~10나노미터, 거름종이는 통과하지만 반투막은 통과하지 못한다. [본문으로]
  5. Théophraste Renaudot (1586-1653) - 프랑스의 의사, 저널리스트. 프랑스 저널리즘의 창시자. 빈민 구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본문으로]
  6. Gui Patin (1602-1672) - 프랑스의 유명한 의사, 저술가. "늙음과 탐욕은 늘 한 패거리". [본문으로]
  7. Paracelsus (1493-1541) - 스위스계 독일의 의사, 식물학자, 연금술사, 자연철학자, 점성가, 밀교 신봉자. 치료화학 창시자들 중 한 사람. 자신이 지은 라틴어 이름은 '셀수스를 능가하는 사람'이라는 뜻. *셀수스 - 고대 로마의 철학자, 의사. 다방면에 박학다식하여 철학, 수사학, 법률, 농업, 군사, 의료에 관한 책을 20권 가량 남겼다. 의학 전문어의 토대를 마련했다. 명료하고 우아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들 중의 키케로'라 불린다. [본문으로]
  8. Benjamin Jonson (1572-1637) - 잉글랜드의 시인, 극작가. 연극배우, 드라마 이론가. 는 제임스 1세 국왕 시대의 코미디. 1616년 초연. 무대는 사탄과 그보다 하급 악마인 퍼그가 있는 지옥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피츠도트럴은 어딘가 땅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겠다는 욕심으로 마법사며 요술쟁이들과 교류하면서 악마를 만나겠다는 생각에 푹 빠져 있는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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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악마의 기운

 


 

  우리의 두 번째 사례는 최면에 걸린 사람으로, 최면에 의해 강경증(强勁症) 상태로 들어선 경우이다. 최면의 본질이며 그 암시가 자율신경계에 어떻게 영향 끼치는지를 우리는 아직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최면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상태에서 그들 잠재의식의 어떤 부분이 최면술사가 건넨 암시에 몸이 따르게 한다는 것쯤은 우리가 알고 있다. 

  피험자가 최면에 잘 걸리는 타입이라면 노련한 최면술사는 그를 언제든 강경증 같은 경직 상태로 유도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경직 상태를 루덩의 독실한 신자들은 사탄의 소행으로 여긴 것이다. 정말 그랬다. 왜냐하면 그 당시 개념으로 보아 그런 희귀한 현상은 수녀들이 속임수를 썼거나, 아니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이 분명하니까. 

 

  만약 당신이 아리스토텔레스며 성 아우구스티누스, 갈레노스[각주:1], 아랍 학자들의 저술을 다 읽는다 해도, 오늘날 우리가 무의식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언급은 눈곱만치도 없다는 점을 발견하리라. 우리네 선조들에겐 한 쪽에 영혼이나 의식적인 자아가, 또 다른 쪽엔 하나님과 성인들, 일단의 선하고 악한 스피릿들만 있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의식적 자아의 활동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며 어떤 면에서는 더 효율적인 무의식의 활동이라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개념을 그 시대에는 도저히 갖출 수 없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당대 이론에는 무의식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지금 우리가 무의식의 활동으로 설명하는 희귀한 현상을 그때는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 인간 외적인, 외계 혼령들의 행위로 치부해야 했다. 그러니까 발작을 일으키면서 나타난 강경증은 속임수 아니면 악마들이 들끓는다는 징후였다

 

  토마스 킬리그루[각주:2]가 젊은 시절인 1635년 가을 루덩에서 시행된 한 엑소시즘을 참관했다. 진행을 맡은 탁발수사가 이 영국인에게 수녀의 돌덩이 같은 팔다리를 만져 보라고 했다. 사탄의 파워와 그보다 더 큰 전투 교회[각주:3] 파워를 느끼고 인정하고서, 하나님 뜻이라면, 이단적 종교를 버리고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의미였다. 친구 월터 몬테규는 그 이전 해에 그렇게 했다. 이 사건을 묘사하는 편지에서 킬리그루가 이렇게 썼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돌덩이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단단한 근육과 강한 팔과 뻣뻣한 다리만 느꼈을 뿐.」 

  (수녀들이 프라이버시와 존중 받을 권리를 얼마나 철저히 박탈당했는지에 주목하자.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도사는 장터에서 여흥 돋우는 쇼의 여리꾼처럼 행동한다. “여러분, 이쪽으로 오시오! 주저 말고! 눈으로 못 믿겠다면 만져 볼 수 있어요. 이 뚱뚱한 여인의 허벅지를 꼬집어 봐요, 그러면 우리가 하는 말이 백 프로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겁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반려자들이 카바레 사회자나 서커스 열광자로 바뀌곤 했다.) 

 

  킬리그루의 편지가 이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수녀 몸뚱이가 아주 딱딱하고 쇳덩이보다도 무거웠다고 긍정한다. 필경 그들은 나보다 믿음이 더 컸고, 그래서 기적이 나보다 그들한테 더 잘 보였나 보다.」 

  여기서 ‘기적’이라는 단어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수녀들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 것이라면 시체처럼 경직된 사지는 초자연적인 원인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데카르트가 등장하고 인간 본성에 관해 더 ‘과학적인’ 이론이 웬만큼 퍼졌다 해도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적었다. 외려 몇몇 측면에서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비현실적인 관점을 견지하게 됐다. 악마를 그 누구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지만, 그와 동시에 한때 악마의 힘으로 치부하던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더 이상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적어도 이전의 엑소시스트들은 트랜스나 강경증, 다중인격, 초감각적 지각 같은 사실을 반박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 기이한 현상을 데카르트 이후에 등장한 심리학자들은 난센스며 허구로 여기거나, 그게 아니라면 ‘상상의 작업’ 결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과학자들에게 ‘상상’이란 ‘환상’과 거의 같은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된 현상들은 (메스머[각주:4]가 자기장 최면으로 효과를 본 치료 같은 것은) 무시하는 게 더 안전하고 적절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관념을 데카르트가 기하학적 범주에 집어넣고자 강력히 시도한 끝에 뭔가 경탄할 정도로 ‘명료한 생각들’이 형성됐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명료한 생각들은 거대한 의미를 지니는 어떤 사실들을 무시하게 만든다. 이 사실들에 데카르트 이전 철학자들은 진지하게 대했지만, 당시 지배적인 몇몇 심리 이론의 영향으로 그 사실들을 그저 초자연적인 원인 탓으로 돌려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이해되지 않는 사실들을 수용할 수 있으며 악마를 들먹이지 않고도 이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스피릿’이나 ‘순수 에고’나 ‘아트만’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인간 마인드를 데카르트 철학의 영혼이며 데카르트 이전 시대의 영혼과는 완연히 다른 뭔가로 납득할 수 있다. 

  예전 철학자들은 영혼이 단일하며 나뉘지 않고 불멸이라는 도그마를 굳게 믿었다. 한데 우리가 보기에 영혼은 명백히 복합적 요소들의 혼합이며, 요소들 덩어리인 영혼은 분해되고, 육신이 죽은 뒤에도 뭔가 다른 형태를 띠면서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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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은 사이키[각주:5]가 아니라 스피릿에 속하며, 이때 사이키가 선택한다면 스피릿과 합치될 수도 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이성의 근간에는 의식이 있다. 이성과 의식은 제 육체와 상호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존재의 육체나 다른 이성이며 의식과는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데카르트는 인간 육신을 자율 규제하는 오토마톤으로 간주했고, 그래서 다른 부차적 영혼들이 존재할 필요성을 못 봤다. 한데 이제 우리는 의식적인 ‘나’와 ‘생리적 무의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사이에 잠재의식의 폭넓은 활동 범주가 있다고 짐작한다. 

 

  게다가 만약 초감각적 작용과 사이코키네시스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무의식 수준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들 의식이며 물적 대상들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데카르트와 그 후계자들이 무시하기로 하고 또 그의 전배들은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악마의 틈입으로만 설명할 수 있었던, 그 기괴한 해프닝들을 오늘날 우리는 인간 심리의 자연스러운 가능성으로 돌린다. 또 이 심리의 영역이며 힘과 약점은 오늘날 과학적 관념을 한참 뛰어넘는다. 

 

  그 당시 사람들은 루덩에서 발생한 일들을 협잡이라 여기지 않았다면 순전히 심리적 측면에서는 마법과 악마의 간계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수녀들 행동을 순전히 심리적 측면이 아니라 생리적 원인으로 돌리려 한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잔느 수녀가 내보인 것 같은 현상을 생리 기능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며, 물리적 대응 수단이 적절하다고 했다. 이 이론을 굳게 믿는 이들은 회초리라는, 오래 된 수단을 써 보라고 제시했다

 

  탈망[각주:6]의 기록을 보면, 쿠드레-몽팡시에 후작은 귀신들렸다 하여 엑소시스트들 손에 맡겼던 딸 둘을 집으로 데려간 뒤 ‘잘 먹이고 호되게 회초리질을 했다. 그러자 악마가 즉각 달아났다.’ 루덩에서도 마귀 들림의 나중 단계에서는 채찍질이 아주 많이 처방됐다. 수렝의 기록을 보면, 교회 의식을 비웃기만 하던 악마들이 회초리를 보자 부리나케 달아난 경우가 왕왕 생겼다. 

 

  많은 경우 예전 회초리질은 아마도 현대의 충격 요법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즉, 무의식이 육체적 고통을 아주 겁내어, 그런 고통을 또 겪느니 차라리 미친 듯 행동하기를 그만 두는 식.[각주:7] 19세기 초까지도 광기가 확실하다 싶은 경우에는 채찍질을 동원한 충격 요법이 어김없이 적용됐다. 

 

베들람의 아늑한 방에서 

스물 하나 될 때까지 나는 

단단한 수갑 차고 달콤한 채찍 맞으며 

기도와 절식도 원 없이 했구나. 

이제 난 노래하니, “아무 음식이든, 

먹을거리든 마시고 입을 거리가 좀 있어요? 

아주머니, 혹은 하녀여, 날 겁내지 말아요. 

불쌍한 톰은 그 누구도 해치지 않아요.”[각주:8]

 

  불쌍한 톰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신민이었다. 그러나 2백 년이 지나 광기 어린 조지 3세 치하에서도 잉글랜드 의회 양원은 궁정 의사들한테 미친 왕을 채찍질하도록 위임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평범한 노이로제나 히스테리에 회초리질이 효과를 본다고 간주됐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었다. 이런 질환은 당시 의학 이론에 따르면 흑담즙이 잘못된 부위에 지나치게 누적돼 생겼다. 로버트 버튼은 이렇게 말한다. 

  「갈레노스는 이런 질환을 모두 검은 냉기 탓으로 돌리면서, 이 질병 탓에 스피릿이 검어지며 뇌 물질이 흐리고 어두워진다고 생각한다. 또 그 결과 주변 대상이 다 끔찍하게 보이며, 마인드 자체는 검은 체액에서 나오는 이 어둡고 칙칙하고 짙은 기운 때문에 늘 어둠과 공포와 비탄에 잠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갈레노스의 이런 판단을 두고 아베로에스[각주:9]가 비웃고 작센의 헤라클레스도 빈정댄다. 그러나 엘레니우스 몬탈투스, 로도비쿠스 메르카투스, 알토마루스, 기네리우스, 브라이트, 라우렌티우스 발레시우스 등은 갈레노스의 관점에 적극 동조했다. 

 

  정신이 흐트러지면 흑담즙이 생성되고, 침울함은 스피릿을 흐리게 하고, 흐려진 스피릿이 공포와 비탄을 야기한다는 게 그들이 내린 결론이다. 라우렌티우스는 검은 기운이 특히 횡격막을 공격하고 이어서 정신을 공격한다고 추정하는데, 그건 태양이 구름에 가려 흐려지는 것과 같다. 

  갈레노스의 견해에 그리스와 아라비아의 거의 모든 저자를 비롯해 라틴계 저자들도 다 동의한다.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겁을 내듯이, 흑담즙질 성향인 사람들은 내면에 늘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 검은 기운이 (예수회 신부 토마스 라이트가 애착에 관한 소론에서 주장하듯이) 심장 부근의 검은 피에서 나오든지 혹은 위장이나 비장, 횡격막, 혹은 뭔가 잘못된 부위들 전부에서 나오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검은 기운이 정신을 집요한 감옥에 잡아두고 끝없는 공포와 불안, 슬픔 따위 힘든 감정으로 괴롭힌다는 점.」 

 

  그런 식으로, 생리적 관점에서 정신질환은 건강하지 못한 혈액이나 병든 내장에서 발생하는 연기나 안개 같은 것으로 여겼으며, 이 ‘검은 기운’이 뇌나 정신을 직접 흐리거나 아니면 자연스럽고 활기차고 생명력 있는 스피릿들이 흘러야 하는 여러 튜브를 막는 것이라 했다. (당시에는 신경 조직을 속이 빈 관처럼 여겼으니까) 

 

  (근세 과학 문헌을 읽다 보면 가장 거친 초자연주의와 가장 거칠고 나이브한 유물주의 같은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데 이 덜 다듬어진 유물주의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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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Claudius Galenus (129-201경) - 고대 로마의 의사, 자연과학자. 고대 의술의 대가. [본문으로]
  2. Killigrew (1612–1683) - 잉글랜드의 극작가, 연출가, 극장 운영. 국왕 찰스 1세의 시동으로 출발해 찰스 2세의 침실 시종관. 위트에 능한 대화 상대, 자유분방한 인물. [본문으로]
  3. Church Militant - 싸우는 교회, 현세에서 악과 싸우는 교회. *기독교 신학에서, 그리스도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렇게 나뉜다. 1) 전투 교회 - 지상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포함 (에베소서 6: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2) 승리의 교회 - 현세에서 악과 싸워 이겨 승천한 천국의 영혼들을 포함 3) 참회의 교회 - 지금 연옥에 있는 이들을 포함. [본문으로]
  4. Friedrich Mesmer (1734-1815) - 유대계 오스트리아 의사. 1775년 ‘동물 자기론(磁氣論)’ 발표. 뉴턴 역학 초기의 가설인 '에테르'란 개념을 환자 치료에 이용했다. [본문으로]
  5. psyche - 전통적으로, 영혼은 살아있는 것에만 고유한 것으로 인식돼 왔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 영혼을 사이키라 불렀다. [본문으로]
  6. Gédéon Tallemant (1619-1692) - 프랑스의 시인. 여러 인물에 관해 간결한 이야기 모음집 덕분에 후세에 기억된다. 루이 14세 시대 파리의 유명한 문학 살롱 주인인 마담 랑부이에가 앙리 4세와 루이 13세 치세의 상세한 자료를 많이 제공. 당대 문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이 저술에 파스칼과 라퐁텐도 들어 있다. [본문으로]
  7. 정신병 치료 방법과 결과가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였다. 한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그 문건들을 연구하고 나한테 들려준 바로는, 아주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니, 정신질환 치유 비율은 2백 년에 걸쳐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전혀 다른 방법들을 쓰고 있음에도 그렇다고 한다. 현대 정신 분석가들의 치료율은 1800년도 정신병 의사들의 치료율보다 더 높지 않다. 1600년도 정신병 의사들도 비슷했을까? 정확한 답을 우린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17세기에는 정신질환자들을 아주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많은 경우 병을 악화시켰을 텐데, 이 주제를 우리는 저 뒷장에 가서 다시 다룰 것이다. - 저자 주. [본문으로]
  8. - 1600년도쯤 잉글랜드에서 널리 퍼진 발라드. 작자 미상. 베들람은 정신병원. '베들람의 톰'은 미치광이라는 뜻으로, 근세 이후 영국에서 미쳤거나 미친 체한 거지와 부랑자를 일컬을 때 쓴다. 그들은 베들람의 환자였다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추정된다. 이 장시는 이후 현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시와 글과 소설과 노래 앨범 등에 영감을 주거나 인용됐다. 예,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서 존 캔티가 에드워드 왕자에게 “베들람의 톰처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고 말한다. [본문으로]
  9. Averroes (1126-1198) - 아랍의 종교철학자. 본명은 이븐 루슈드. 코르도바에서 이슬람 종법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모로코에서 죽다. 자연과학, 의학, 수학, 신학, 철학 등 당대 모든 학문을 섭렵. 독자적 저술도 적잖이 있으나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자로 명성을 떨쳤다. "자연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해석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베로에스가 처음 해석했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유일한 이슬람 학자. 단테는 <신곡>에서 그를 비기독교 세계의 현자 대열에 두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 유대 세계의 최고 철학자인 마이모니드에게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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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루덩의 악마들

 


6

 

  수석 치안판사 세리제는 예비 조사를 통해 확신하게 됐다. 

  그래, 진짜 마귀 들림 같은 건 없어! 그저 수녀들이 질환에 걸렸을 뿐이며, 여기엔 협잡 기미도 좀 보이는군. 게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 쪽의 상당한 악의, 또 이 일에 관련된 교회 관계자들의 맹신과 광기, 개인적 이해관계 따위로 상황이 조장된 게야. 흠, 저 엑소시즘이라는 코미디를 그만두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되겠어. 

  그러나 수녀들의 혼과 넋을 쏙 빼놓는 그 계획을 중단시키려 하자 미뇽과 바레가 주교의 명령서를 의기양양하게 꺼내들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수녀들에게 퇴마 작업을 계속 시행하라. 그걸 보자 세리제가 교회와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엑소시즘을 계속하도록 허락은 했지만 그 퍼포먼스 때 자신이 꼭 참관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몇 번 하던 중 한번은 굴뚝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벽난로에 검은 고양이가 불쑥 나타났다. 저건 사탄의 자식이 틀림없어! 날카로운 단정이 튀어나온 동시에 사탄의 자식이 구석으로 내몰렸다가 결국 붙잡혀서 성수를 홈빡 뒤집어썼다. 수도사들이 분주하게 성호를 그어대며 그 짐승한테 다시 지옥으로 사라지라고 라틴어로 명령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 끝에 알고 보니 이 위장한 악마는 수녀들이 귀여워하는 녀석으로, 이름이 톰이었다. 녀석은 지붕 위에서 뛰어다니다가 더 빠른 길로 집에 들어오려 했던 것일 뿐. 수녀원 아치 밑에서 라블레를 떠올리게 하는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다.[각주:1]     

 

  다음 날 미뇽과 바레가 뻔뻔스럽게도 세리제의 코앞에서 수녀원 숙사 현관을 걸어 잠갔다. 그가 동료 치안판사들과 함께 쌀쌀한 가을 날씨에 밖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종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동안 안에서는 그의 지시를 어기고 두 수도사가 공식 참관인 없이 저희 제물들에게 퇴마 작업을 시행했다. 

 

루덩 수녀들을 대상으로 미뇽이 퇴마 작업

 

  화가 잔뜩 난 치안판사가 집무실로 돌아와 무례한 엑소시스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했다. 그들 행위는 협잡과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게다가 이런 구절도 들었다. 그랑디에가 악마들과 결탁했다면서 원장수녀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마당에 비밀로 해야 할 것이 무에 있겠소. 오히려 이제 모든 것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공정하게 행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런 단호함에 깜짝 놀란 엑소시스트들이 사죄를 구하며 황급히 알렸다. 수녀들이 진정됐으니 당분간은 엑소시즘이 불필요하게 됐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랑디에가 주교한테 호소하기 위해 푸아티에로 말을 달렸다. 그러나 그가 들렀을 때 라로슈포제는 접견을 거부하고 수하를 통해 이런 취지의 메시지만 덜렁 보냈다. 

  그랑디에 신부는 왕실 판사들한테 소를 제기해야 하고, 이 사건에서 정의가 승리한다면 본 주교는 대단히 행복할 것이다. 

 

  주임신부가 루덩으로 돌아와서 즉각 수석 치안판사에게 미뇽과 그 패거리의 못된 짓거리를 금해 달라고 청했다. 세리제가 신속하게 금지 명령을 내렸다. 차후로는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 성 베드로 교회 주임신부에 대한 중상과 비방을 엄금한다. 이와 더불어 미뇽에게 엑소시즘을 더 이상 시행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참사회 위원이 날카롭게 응수했다. 

  나는 교회 지도부에만 매여 있을 뿐이며, 악마가 개입돼 있기에 완전히 종교적인 이 사건에서 사법 당국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소. 

 

  그 사이에 바레가 시농에 있는 제 교구로 돌아갔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을 더 이상 벌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참사회 위원 미뇽은 조프리디 신부 재판을 다룬, 미하엘리스 수사의 베스트셀러를 매일 몇 시간씩 신도들에게 읽어 주면서 그랑디에는 화형 당한 프로방스 동료 못지않게 위험한 마법사이며 당신들 역시 그의 마법에 걸렸다고 떠들어댔다

 

  그 무렵 수녀들이 어찌나 기이하고 난잡하게 행동했는지 수녀원 기숙학교에 딸을 맡긴 부모들이 경악했다. 기숙학교에는 금방 학생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고, 아직 과감하게 수녀원을 드나드는 통학생 몇 명이 가장 불안케 하는 소식을 들고 나와 사람들 상상을 계속 자극했다. 

 

  수학 시간에 클레어 수녀가 대뜸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지 뭐예요, 마치 누군가가 간지럼 태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식당에서 마르타 수녀가 루이즈 수녀와 드잡이를 했는데, 둘 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댔어요! 

 

마귀 들렸다는 수녀를 상대로 엑소시즘을 시행하는 수도사

 

  11월 하순 바레가 시농에서 돌아온 뒤 그의 영향을 받아 수녀들 증세가 대번에 악화됐다. 수녀원이 이제 정신병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외과의 만누리와 약제사 아담이 불안한 마음에 도시 일류 의사들에게 와서 보고 자문 좀 해주십사 청했다. 그들이 수녀원에 와서 수녀들을 일일이 검사한 뒤 수석 치안판사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결론은 이랬다. 

  「수녀들이 물론 제 정신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이 악마며 악령들의 작용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이른바 마귀 들림은 모든 면으로 판단컨대 실제가 아니라 허황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 보고서로 상황이 종료된 듯했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들과 그랑디에의 적수들한테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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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랑디에가 세리제에게 다시 탄원하자 세리제가 엑소시즘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가학을 끝장내려고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똑같은 스토리가 반복됐다. 즉, 미뇽과 바레가 사법 당국 지침을 또 무시했고, 수석 치안판사는 수도사들을 상대로 물리력을 동원할 때 생길 파문을 우려하여 또 움츠러든 것. 

  그 대신 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 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대미문의 불량한 짓’을 예하께서 막아 주십사고 촉구했다. 이런 내용도 적었다. 즉, 그랑디에는 평생 그 수녀들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만약 수녀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악마들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안다면 자신에게 가하는 중상비방과 모욕에 복수하기 위해 왜 악마들을 이용하지 못하겠습니까?」 

  이 서한에 라로슈포제가 응답하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주교의 판결에 감히 반박했을 때 그는 치명적인 모욕감을 느꼈었다. 따라서 시건방진 주임신부를 괴롭힐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전적으로 옳고 적절하고 합당했다. 

 

  그러자 세리제가 서신을 한 통 더 썼다. 이번에는 주교 관구 법률 감독관에게 보냈다. 주교한테 보낸 것보다 더 상세하게 적은 이 서신에서 그는 루덩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광대극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미스터 미뇽은 미스터 바레를 이미 성자로 칭하며, 두 사람은 자기네 상급자들의 평가도 기다리지 않은 채 서로를 성자 반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바레는 악마가 수녀들 목소리로 말하면서 문법이 틀리면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구경꾼들 중에서 의심하는 사람들을 불러내 제가 하는 대로 마귀 들린 수녀 입에 손가락을 넣어 보라 하기도 하지요.[각주:2]

  프란체스코회 루소 수도사는 그렇게 하다가 어찌나 세게 물렸는지 다른 손으로 수녀의 코를 잡아당겨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손가락을 빼내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서 “오, 이 악마, 악마야!”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는 생선 토막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내쫓는 식모들 고함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이 사건 이후 성수에 담근 손가락을 마귀가 왜, 어떻게 깨물 수 있었는지 진지하게 토론한 끝에 성직자들은 주교께서 교회에 성유를 너무 적게 내리는 바람에 주입된 영력이 손가락까지 미치지 못한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몇몇 풋내기 성직자들이 엑소시즘을 해 보겠다고 나섰다. 개중에 필리프 트렌캉의 오빠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젊은이가 라틴어를 워낙 시원치 않게 하는 바람에 학식 있는 이들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는 데뷔하자마자 멋쩍게 물러나야 했다. 세리제의 서한을 보면 그뿐이 아니다. 트렌캉이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녀는 발작의 최고조에서도 그의 손가락을 제 입에 넣지 못하게 하면서 다른 성직자를 붙여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손가락이 너무 지저분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카푸친회의 속관구장 신부는 루덩 주민들의 각박함에 놀라고 믿으려는 마음 없음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면서 투르 시에서는 이런 기적을 주민들이 믿게 만들기가 버터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고 우리한테 장담하지요. 그를 비롯해 몇몇 성직자들이 줄곧 단언하기를, 이런 기적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죄다 무신론자이며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서신에도 역시 답장을 못 받았다. 악몽 같은 광대극이 12월 중순까지 연일 계속됐는데, 그맘때 다행히도 보르도 대주교인 수르디스가 생주앙 드 마른 대수도원에 머물려고 왔다. 그랑디에가 비공식적으로, 세리제가 공식적으로, 대주교에게 작금의 상황을 알리고 개입을 요청했다. 수르디스가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개인 주치의를 득달같이 파견했다. 

  수녀들은 이 의사가 황당무계한 짓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의 주인인 대주교가 이 스토리를 대놓고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서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어린 양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수녀들이 마귀에 들씌웠다는 징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보고서에 그렇게 썼다. 

 

  1632년 12월 말 대주교가 포고령을 공표했다. 미뇽에겐 앞으로 엑소시즘 시행이 금지됐고, 바레는 계속할 수 있지만 대주교가 지명한 두 명의 엑소시스트와, 즉 푸아티에에서 온 예수회 수사와 투르에서 온 오라토리오회 수사와 함께 해야 하게 됐다. 그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엑소시즘에 참여할 권한을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금지령은 거의 불필요했다. 그 뒤 몇 달 동안은 퇴치할 악마들이 없었으니까. 수도사들의 암시와 주입으로 더 이상 자극되지 않은 수녀들의 광란 발작은 암담한 숙취 상태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런 상태에서 정신적 혼란이 수치심이며 자책이며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자각과 뒤섞였다. 

  대주교 말씀이 옳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악마라곤 애초부터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저지른 끔찍한 행위와 언사는 깡그리 우리 죄가 될 수 있잖아!   

  마귀 들렸다고 간주된 상태에서는 아무도 그들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이제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성 모독과 음란한 언행, 거짓과 중상비방에 대해 그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해명해야 하리라. 수녀들한테 지옥이 아가리를 발바투 벌렸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돈줄이 뚝 끊기고 사람들이 모두 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여학생들 부모며 도시의 독실한 귀부인들, 구경꾼 무리, 심지어 일가친척까지 모조리 이 불행한 여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그야말로 일가친척들까지도! 

  왜냐하면, 대주교 판결에서 분명해졌다시피 그들은 협잡꾼 아니면 우울증 환자들로 드러남으로써 집안 명예도 더럽혔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자 다들 내놓은 자식이 되었고 집에서 보내오던 용돈마저 딱 끊겼다. 숙사 식탁에서 고기와 버터가, 주방에서 하녀들이 사라졌다. 숙사의 크고 작은 일을 수녀들이 직접 하게 됐고, 그게 끝나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바느질을 하거나 양털로 실을 뽑았다. 탐욕스러운 장사꾼들은 수녀들의 절박함과 불운을 악용하여 정상적인 노동 대가보다 더 헐한 값을 지불했다. 

  가련한 여인들이 배곯고 힘겨운 작업에 시달리며 극히 추상적인 두려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외려 얼마 전 악령에 사로잡혔을 적의 행복한 나날을 그리워하게 됐다. 겨울 끝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됐건만 그들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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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François Rabelais (1494-1553) -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중견 작가, 의사, 인문학자, 자연주의자, 휴머니스트, 법률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현대 유럽문학에 기초를 놓은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도처에서 횡행하는 끔찍한 사회적 질환에 거대한 웃음보따리를 처방했다.” ‘라블레 풍의 웃음’이란 솔직하고 거칠면서 풍자적이고 유머가 풍부한 웃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2.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요한복음 20: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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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재판에서는 악마와 마법사에 대한 성서 기록뿐 아니라 널리 퍼진 미신도 다 채택하는 것이 관행이며 이 맹신을 판관들은 성서만큼이나 존중했다. 예를 들어, 17세기 말까지만 해도 모든 종교재판관과 대다수 치안판사들은 이른바 마법의 물리적 테스트라는 것을 의심도 않고 받아들였다. 

 

  피고 몸에 뭔가 이상한 표식들은 없었는가? 

  혹시 바늘로 찔러도 통증을 못 느끼는 부위를 발견할 수 있었나? 

  (무엇보다도) 두꺼비나 검은 고양이를 먹여 키울 수 있는 ‘악마의 젖꼭지’가, 그러니까 여분의 미발달된 유두들이 마녀한테 있었나?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의심하는 자는 마녀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야말로 악마가 제 종복을 표시하는 브랜드요 낙인이니까. 

  (모든 남성의 9퍼센트와 모든 여성의 5퍼센트쯤이 미발달된 젖꼭지를 가지고 태어나는 만큼 재판 희생자들은 부족할 턱이 없었다. 자연이 작은 실수를 했는데, 그것을 재판관들은 그저 저희 관점에서 해석하고 말았다). 

 

  공리로 굳어진 다른 통속적 미신들 가운데 적어도 세 가지는 간략하게나마 언급할 만하다. 그것들이 무수한 불행을 야기했기 때문에. 우리네 선조들은 마녀가 악마의 도움으로 폭풍우를 일으키고, 질병을 야기하고, 성교 불능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녀들의 해머>에서 크래머와 슈프렝거는 이 엉뚱한 생각에 관해 인류의 경험뿐 아니라 학덕 높은 성직자들의 권위로도 확증되고 널리 알려진 사실처럼 쓰고 있다. 

  「성 토마스[각주:1]는 <욥기>를 해설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악마들이 하나님 허락 하에 대기를 뒤흔들고 바람을 일으키고 하늘에서 불덩어리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양한 물체들이 어떤 천사가 아니라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만 따라 제 형태를 바꾼다 할지라도 국부적인 움직임에서는 물질들이 영적 본질에 순종해야 하니까… 예를 들어, 바람과 비와 대기 이동은 땅이나 물에서 발산된 증기가 뒤섞임으로써 야기될 수 있다. 그러니까 악마의 권세는 그런 것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성 토마스는 그렇게 확언한다.」 

 

  질병으로 말하자면… 「나병이나 간질은 물론이고 마녀들이 하나님 허락을 얻어 일으키지 못할 질환이란 없다. 이는 권위 있는 의사들의 견해로도 입증된다.」 

  그리고 의사들의 그런 견해를 저자들은 개인적인 관찰로도 응원한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과 함께 묻었던 달걀로 어떤 사람에게 간질이나 발작을 일으킬 수 있음을 우리가 종종 발견했으니까. 죽은 마녀와 함께 묻었던 달걀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병들게 하고 싶은 사람의 음식에 흔히 그런 달걀을 넣는다.」 

 

  성교 불능에 대해서는 이 저자들이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확실히 구분한다. 자연적인 성교 불능은 사람이 그 어떤 이성과도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상태. 이에 비해 주술과 악마의 힘으로 야기된 초자연적 성교 불능은 한 사람하고는 (특히 아내나 남편하고는) 성관계를 갖지 못하면서도 다른 이성들과는 기능을 충분히 지속적으로 발휘하는 상태. 

  저자들은 이런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하나님은 인간 생활 여러 분야에서 특히 생식력에 마법사가 위해를 가하도록 자주 허락하시는데, 그 이유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 이래 ‘인류의 무도한 행위들 중 가장 큰 타락이’ 바로 섹스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괴적인 폭풍은 종종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언제라도 성교 불능 상태를 겪을 수 있으며, 질병이 없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이런 일상적인 불행의 책임을 마녀들에게 덮어씌워야 한다고 법령과 신학과 민간 여론이 입을 모은 세상에서는 염탐과 밀고와 무고를 동원한 개인 사찰 따위가 극성을 부렸다. 16세기 마녀 사냥이 절정일 때 게르마니아 몇몇 지역의 사회생활은 그 나라에서 4백 년 뒤 나치 치하의 사회생활이나 새롭게 코뮤니스트 지배에 종속된 나라의 사회생활과 아주 흡사했다. 고문을 받아서, 혹은 잘못 이해한 의무감이나 어떤 광적인 충동으로, 남자가 제 아내를 마녀라 고발했을 터이고, 여자가 제 친구들을, 아이가 제 부모를, 하인들이 저희 주인을 허위 비방했을 것이다. 

 

  악마가 횡행하고 마녀 사냥에 열 올리는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폐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력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와 악마에 대한 일상적인 경고 따위가 많은 사람 심리에 아주 파멸적으로 작용했다. 소심한 사람들 중 일부는 정신이 나가고, 어떤 사람들은 상존하는 공포심 때문에 실제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위험에 대한 이런 중언부언을, 맹신과 선입견을, 야심만만하고 복수에 불타는 사람들은 저희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광분했으며, 제임스 보스웰 같은 남자들과 몽테스팡 후작부인 같은 여인들은 흑마법을 범죄적이다 싶을 정도로 써먹을 준비가 돼 있었다.[각주:2]     

 

   만약 혹자가 억눌리고 좌절됐다고 느낀다면, 사회와 이웃에 원한을 품는다면, 성 토마스 등의 말대로, 그런 엄청난 재앙을 가할 수 있는 자들한테 호소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있을까? 

  신학자들과 종교재판관들은 끊임없이 악마를 거론하고 마법을 극악무도한 범죄로 대함으로써 저희가 억누르려고 그렇게나 애썼던 관습을 외려 조장하고 그 믿음을 실제로 전파한 꼴이 됐다. 

 

마녀 사냥, 흑마법을 쓴다고 비난하고 처형

 

  18세기 초부터 마법은 더 이상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사멸하고 말았는데, 여러 이유들 중 하나는 그것을 억누르려고 힘쓴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박해를 덜 받으니 선전이 덜 됐다. 사람들 눈길은 초자연적인 것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옮겨갔다

  대략 1700년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 자행된 박해는, 마녀 사냥은, 전부 아주 세속적인 것이었다. 우리한테 근본악은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악이나 경제적 악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실증주의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악’이라 부르기 좋아하니까) 그 근본악이 오늘날에는 마법사나 주술사가 아니라 어떤 증오에 빠진 계급이나 민족한테서 추종자들을 찾는다. 사회적 증오의 인과 구조가 바뀌었지만, 그렇다 하여 증오와 불공정이 더 줄어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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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펴본 대로 교회는 마법을 완전히 현실적인 범죄라고 가르쳤고, 그 도그마에 걸맞게 국법도 무자비하게 작동했다. 그렇다면 민간 여론은 이 문제에 대한 공식 관점과 얼마나 일치했을까? 배우지 못하고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대다수의 심정을 우리는 기록된 행동과 학자들의 코멘트에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마녀들의 해머>는 가축한테 마법 걸기를 다룬 장에서 중세 시골 생활에 관해 흥미로운 자료를 담고 있다. 지금 시대 생활이 못마땅하기 때문에 그 시대의 상당한 공포를 못 보는 감상주의자들이 아직도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품는 그 당시 생활은 이렇다. 

  「아주 작은 마을에서도 아낙네들이 서로 (주문을 걸어) 다른 집 젖소들의 젖을 마르게 하고, 나아가 죽게 하는 일이 아주 흔하다.」 

  네 세대가 지나 잉글랜드 성직자인 조지 기포드와 새뮤얼 하스넷은 맹신적 히스테리에 사로잡힌 당시 사회의 시골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어떤 아낙이 이웃 여자와 척지고 지내던 중 그 여자가 심하게 다치게 되면… 동네 사람들이 뭔가 의심을 품는다. 그 뒤 두어 해 지나서 그 아낙이 다른 여자와 다투었는데, 그 사람도 병에 걸린다. 사람들이 이걸 보며 예전 일을 떠올린다. 다들 수군대기 시작한다. 아무개는 마녀야… 이제 다들 그녀를 꺼리고 겁내게 된다. 이웃들이 감히 아무 말도 못하지만 속으로는 그 아낙이 교수형 당하기를 몹시 바란다. 불과 얼마 뒤 다른 이웃 남자가 병에 걸려 수척해진다. 이웃들이 그에게 와서 묻는다. 

 

  “이봐요, 아저씨, 흉악한 저주의 눈길이 의심되지는 않아? 혹시 아무개 아낙을 화나게 한 적은 없어요?” 

  그가 대답한다. “아, 맞아요, 맞아! 난 오래 전부터 그 아낙이 마음에 안 들었지. 내가 그 여자를 화나게 했는지는 모르겠어. 혹여 내 아내가… 아내가 그 아낙한테 닭들을 우리 채마밭에 풀지 말라고 했거든, 나도 그랬고… 그것 때문에 그 여자가 나한테 마법을 건 게 분명해.” 

  이제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래, 그 여자는 정말 마녀야… 그건 틀림없어, 왜냐면 그 여자 집에서 나온 족제비가 옆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걸 내가 봤거든, 근데 그 직후 그 집 사람이 병에 걸렸잖아! 

  병자는 죽어 가면서 자기가 마법에 걸렸다고 말한다. 마을사람들이 아무개 아낙을 붙잡아 감옥에 보낸다. 재판정에서 혹독한 심문에 이어 유죄를 선고 받는다. 그리고 이미 올가미 아래 서서 자기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항변한다.」 

 

  이건 조지 기포드의 기록이고, 새뮤얼 하스넷은 소론 <로마가톨릭 사칭을 폭로함>에서 이렇게 전한다. 

  「그렇다면, 오호, 경계하고 주변을 살펴보시오, 이웃들이여!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의 암양이 어지럼증에 시달리거나, 돼지가 항아리손님에 걸리거나, 말이 휘청거리거나, 사내애 손이 부러지거나, 계집애가 빈둥거리거나, 젊은 처녀가 퉁퉁거린다면, 또 만약 당신 오트밀에 버터가 없거나 당신 가족이 궁핍하게 산다면… 이건 분명해, 늙은 할망구 놉스가 다 잘못한 거요. 그 여자가 당신 딸을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라고 부르지 않았소? 혹은 악마로 하여금 딸에게 생채기를 내라고 주문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놉스는 틀림없이 마녀인 게요.」 

 

  미신과 두려움과 편견과 상호 악의에 단단히 기초한, 중세 시골 마을들의 이런 장면이 현대의 우리한테도 묘하게 섬뜩해 보인다. 왜냐하면 오늘날에 와서도 그런 것들이 본질적으로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것들이 우리한테 <25시>와 <1984>의 어떤 페이지들을 아주 강하게 연상시킨다. 루마니아 사람이 현재와 바로 얼마 전의 악몽 같은 사건들을 묘사하고, 영국 사람이 사탄의 미래를 예견하는 페이지들.[각주:3] 

 

   당시 세간의 여론이 어떠했는지 중세 식자들이 상당히 소상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단어들보다 기록에 보전된 행위를 보면 우리는 당시 민간의 분위기를 훨씬 더 잘 알게 된다. 즉, 사회는 마법을 철두철미 믿고 악마를 겁내면서 이른바 마녀들에게 주기적으로 린치를 가했다. 우리 책에 기술된 사건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 프랑스 역사에서 한 가지 사례를 든다. 

  1644년 여름 맹렬한 폭풍이 우박을 동반하여 지나간 뒤 본(Beaune) 인근 몇몇 마을 주민들이 자기네 농작물을 죄다 망가뜨린 악마의 화신에게 보복하기 위해 한데 뭉쳤다. 마녀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다고 자신한 17세 젊은이의 지휘 아래 농민들은 많은 여인을 붙잡아 초죽음이 되도록 뭇매를 가했다. 또 다른 용의자 여인들을 불에 달군 삽으로 지지거나 벽돌 가마에 집어넣고 지붕에서 내던졌다. 이 테러의 광란을 끝내기 위해 디종 시 고등법원이 무장 경찰대와 함께 특임관리 둘을 파견했다. 

 

  우리가 보다시피 세간의 여론은 신학자들이며 법률가들의 뜻과 완전히 일치했다. 하지만 식견 있는 이들은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크래머와 슈프렝거는 마법의 실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개하여 적는데, 이미 15세기 말엽에 그런 회의론자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 분명하다

 

  유명한 책의 공저자는 모든 신학자들과 교회법 학자들이 아래와 같이 말하는 불신자들을 준엄하게 질타한다고 지적한다. 즉... 

  「세상에 마법이란 없고, 그건 어떤 숨겨진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적 현상을 악마가 마녀들과 결탁하여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상상일 뿐이며, 그건 또 그들이 아직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원인들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 파멸적인 망상을 모든 교회박사들은 한 목소리로 질타하며, 성 토마스는 이 오류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에서 비롯된다면서 의심하는 자들을 더 격렬하게 공격하며 진짜 이단이라고 낙인찍는다.」 

(5편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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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Saint Thomas Aquinas (1225–1274) - 이탈리아의 가톨릭 신학자, 스콜라학파 전통의 철학자. 자연신학의 선구자. [본문으로]
  2. James Hepburn, 4th Earl of Bothwell (1535-1578) - 스코틀랜드 여왕 마리 스튜어트의 세 번째 남편. 동시대인들한테서 마법과 요술을 쓴다고 비난 받았다. Marquise de Montespan (1641-1707) -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았고, 그 사이에서 일곱 자식을 보았다. 뛰어난 미모, 끝없는 허영심, 정치적 영향력. 나중에 총애를 잃은 가운데 ‘독약 사건’에 연루돼 마법과 사탄 숭배라는 죄명으로 기소됐다. [본문으로]
  3. *<25시> - 루마니아 망명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1916-1992)가 1949년 발표한 소설. *<1984> -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이 1948년 발표한 소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 및 자먀찐의 <우리들>(1921)과 더불어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 [본문으로]</우리들></멋진></1984></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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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vintage Huxley the devils of loudun

 


 

  한때 '천사들의 수녀' 잔느요, 이제 루덩의 우르술라회 수녀원 책임자인 사람의 인격이 완전히 짓밟히고 파괴됐다. 사도 바울을 패러디하여 그녀가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리라. “내가 살고 있긴 하되 이미 내가 아니라, 오물과 굴욕과 생리 기능만이 내 안에서 살고 있구나.”[각주:1]

 

  악마들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더 이상 피험자가 아니라 그저 대단한 흥밋거리일 뿐이었다. 그건 끔찍하지만 또한 놀랍기도 했다. 즉, 인격에 대한 폭력이자 동시에 새로운 것의 발견이요, 문자 그대로 황홀경의 체험, 미우면서도 아주 친숙한 ‘나’한테서 벗어남이었다. 

 

 이 시기에 잔느 수녀는 악마에 들씌웠다는 느낌을 전혀 몰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뇽과 바레가 그녀 안에 악마들이 들끓고 있다고 말하고, 그들의 엑소시즘으로 유도된 광란 상태에서 그런 얘기를 그녀 스스로 입에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일곱 악마에 (아스모데우스를 내쫓은 뒤 여섯이라고 치자) 사로잡혔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이 아주 작은 몸뚱이에 그런 게 들어앉았다고는 말들 하는데… 그 상황에 대해 그녀가 행한 분석이 여기 있다. 

 

  「사람이 악마한테 동의하거나 계약을 맺지 않았는데도 마귀에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당시에 난 믿지 않았다. 한데 그건 착각이었다. 왜냐면 가장 순수한 사람이며 가장 성스러운 사람조차 악마에 지배될 수 있으니까. 물론 나야 순결한 사람 축에 들지 못했다. 죄를 범하고 은혜를 계속 내치면서 나 자신을 악마에게 바친 적이 수천 번은 됐으니… 악마들이 내 마음에 둥지를 틀고 내 의지를 장악했다. 내 영혼에서 악의 싹들을 찾아내 나를 자기네 악마 같은 본성으로 끌어들였어… 

 

  대개 악마들은 내 영혼에 있는 감정을 이용했는데, 어찌나 능숙하고 교묘한지 내 안에 악마가 있다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악마에 사로잡힌 게 아니냐고 사람들이 의심하는 빛을 보일 때 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할 때면 난 맹렬한 분노를 느껴서 적의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그랑디에 꿈을 꾸지 않을 수 없던 사람이요 바레가 실험실 동물처럼 다룬 사람이, 엑소시즘을 받지 않는 동안에는 자신을 비정상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불행한 상황 때문에 수녀원 담장 안에서 산 채로 시들어갈 운명에 처한, 평범한 여인의 감정을 굴욕감이며 환각적 관능이 아직은 다 억누르지 못했다. 

 

  바레와 다른 엑소시스트들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그들은 자서전을 남기지 않고 서신도 쓰지 않았다. 이태쯤 뒤 수렝 수사가 무대에 등장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심리적 난장판에 관여한 남성들은 저희 스토리를 개인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수렝은 내향적인 성격에 자신과 대화하며 동료들의 과묵함을 대신하여 펜과 종이로 메우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우리가 사건들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처음에 루덩에서, 나중에 보르도에서 보낸 이 초기 몇 해를 묘사하면서 수렝은 육체가 거의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렸다고 하소한다. 그가 악귀 들린 수녀들 사이에서 엑소시스트로 살았다는 점으로 보자면 그런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줄곧 성적 흥분 상태에 빠져 히스테리 부리는 여인들 속에서 그는 유일한 남자였다. 그것도 무엇이든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수녀들이 무방비 상태로 복종하는 까닭에 사탄과 싸움의 지휘관으로서 당당한 남성다움을 외려 더 강조해야 했다. 그들의 수동성은 그가 지배한다는 느낌을 더 키워 주었다. 통제되지 않는 광란 한가운데서, 그는 정신이 또렷하고 강했다. 짐승 같은 상태 한가운데서, 그 하나만이 사람다웠다. 악마들 한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의 대표자였다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그는 더 낮은 질서의 이 피조물들을 하고픈 대로 다룰 권한을 지녔으니, 그들이 갖은 재주를 다 부리게 하고 그들을 발작 상태로 이끌고 그들을 감당키 힘든 암퇘지나 암소처럼 거칠게 다루고 관장기나 채찍을 처방하기도 했다. 

 

  [*저자 주 ☞ 토마스 킬리그루는 1635년 루덩에서 본 매혹적인 수녀 아그네스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미모가 뛰어나면서도 충격적일 만큼 추잡한 행위를 보인 이 수녀를 엑소시스트들은 ‘착한 악마’라고 불렀다. 

  「그녀는 아주 젊고 아름답고 늘씬하고 상냥하니, 한마디로 그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다. 사랑스러운 얼굴에 멜랑콜리 수심이 깊게 서렸다. 내가 채플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베일로 얼굴을 가렸지만, 금방 다시 눈길을 드러냈다. (*킬리그루는 당시 스무 살에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으니까.) 비록 노예처럼 꽁꽁 묶여 있다 해도, 그 검은 눈에서 이전 승리들의 반짝임을 읽을 수 있었다.」 

 

  자, 아그네스는 탁발수사의 수중에 든 노예 같았다. 킬리그루의 다음 묘사를 보면 이 불행한 처녀를 수도사가 두 발로 짓밟았다. 그녀가 발작 상태에서 마룻바닥을 대굴대굴 구르자 그가 의기양양하게 내려다보았다. 

  「그건 참으로 애처로운 장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퇴마라는 기적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싹 가시는 바람에 그만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마귀에 들린 여인들은 정신이 좀 들 때마다 저희 주인인 엑소시스트들한테 생리 현상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털어놓고 무의식의 습기 찬 심연에서 훑어 모은 가장 난잡한 몽상들을 낱낱이 묘사했으리라. 그들 인격의 필수 부분이었던 규약과 범절을 깨며 어떤 외설스러운 즐거움을 맛보는지 고백하면서! 

 

  엑소시스트들과 마귀 들렸다고 추정된 수녀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 식인지를 1658년에서 1661년까지 부르고뉴 주 옥손 지역 우르술라회 수녀들의 마귀 들림에 대한 동시대 보고서 중 다음 대목이 잘 알려준다. 

 

  「수녀들이 이렇게 단언한다. (이 점은 성직자들도 그렇다.) 곧, 엑소시즘으로 성직자들이 서혜부 헤르니아, 자궁탈출증, 혹은 자궁통 같은 질환에서 그들을 벗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또 사악한 마법사들 때문에 생긴 자궁 열상을 치료해 주고, 그자들이 심어 놓은 은밀한 가시며 흉한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남은 초 토막과 매듭, 기타 학대 도구들을 부끄러운 부위에서 뽑아내기도 했다. 또 성직자들이 수녀들의 배앓이와 위장통, 편두통을 치료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유방 울혈도 치료했다고 분명히 밝힌다. 

  그뿐 아니라 엑소시즘으로 출혈을 체크하고, 악마들이며 마법사들과 성교로 인한 복부 팽창은 성수를 잔뜩 마시게 하여 없애 버렸다고 단언한다. 수녀들 중 셋은 악마들과 성교하여 처녀성을 빼앗겼다고 서슴지 않고 밝힌다. 또 다른 수녀 다섯은 마법사와 주술사와 악마들 수중에서 고통을 많이 겪었다고 똑똑히 말한다. 그 행위를 수치심 때문에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앞의 셋이 묘사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진술이 사실임을 앞에 나온 엑소시스트들이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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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저분한 것들이 천연스레 나오는데다 외과적 지식은 또 얼마나 상세한가! 도덕적으로 불결한 만큼 육체적으로도 불결하다. 생리적 비참함이 영적이며 지적인 비참함과 맞먹는다. 이 모든 사연 위에 억압된 관능이 악취 물씬 풍기는 연무처럼 드리워 있다. 칼로 벨 수 있을 만큼 두텁게, 도처에, 피할 수 없이! 

  부르고뉴 고등법원 결정에 따라 그 수녀들을 방문한 의사들은 마귀 들렸다는 증거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 대신 거의 모든 수녀들이 예전에 우리네 선조들이 자궁광란이라 부르던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보게 됐다. 이 질환의 증상은 ‘억제할 수 없는 성적 쾌락 욕구가 수반된 신열’과 더 젊은 자매들 경우에 ‘섹스 이외의 것은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귀 들린 수녀들이 있는 수녀원 분위기가 바로 그러했다. 엑소시스트들과 수녀들 간의 내밀한 관계는 부인과 전문의와 환자, 조련사와 동물, 존경받는 정신과 의사와 수다스러운 신경증 환자 간의 친밀한 관계를 전부 합해 놓은 것과 같았다. 담당 성직자는 그들과 매일 밤낮으로 몇 시간씩을 보냈다. 

  옥손 지역 우르술라 수녀들 사건 경우 엑소시스트들의 파워가 지나치게 컸으며, 개중 몇몇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저들 위치와 전권을 남용한 듯 보인다. 그러나 루덩에서 잔느 수녀와 다른 히스테리 환자들을 다룬 신부와 수도사들에게는 그런 비난이 돌아가지 않았다. 거기서도 수렝이 증언한 것처럼 유혹은 늘 있었지만, 엑소시스트들이 잘 물리쳤다. 오랜 기간 긴장된 방탕은 상상에서만 일어났을 뿐 육욕적인 것은 전혀 아니었다

 

  아스모데우스 퇴치는 그 자체로 두드러진 승리였고 수녀들도 그맘때에는 악귀 들린 역할에 훈련이 잘 됐기 때문에, 미뇽을 비롯해 그랑디에의 적대자들이 이제 공식 행동에 돌입해도 충분하겠다는 자신감을 느꼈다. 

  10월 11일 베니에르 교구 주임신부인 피에르 랑지에가 도시의 수석 치안판사인 세리제를 집무실로 찾아갔다. 우르술라회 수녀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간략히 알린 뒤 그와 그의 부관 루이 쇼베가 와서 직접 확인해 보라고 초빙했다. 초빙이 수락됐고, 당일 오후 두 치안판사가 서기를 대동하고 수녀원을 방문했다. 

 

  그들을 바레와 참사회 위원 미뇽이 맞이하여 「천장 높은 방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침대가 일곱 개 놓였는데, 그 중 하나에 수련수녀가, 다른 하나에는 원장수녀가 누워 있었다. 후자 주위에는 카르멜회 수사 몇 명과 수녀 몇 명, 외과의 만누리, 또 성 십자가 교회 참사회 위원이자 성직자인 마튀렝 루소가 둘러서 있었다.」 

 

  수석판사와 부관을 보자 원장수녀가 (서기가 상세히 기록한 것을 보면) 「아주 난폭하게 뒤척이면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불을 끌어올리고는 이를 바드득 갈고 경련을 일으키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몸을 뒤틀어대니 미치광이와 매한가지로 보였다. 그녀 오른편에 카르멜회 수사가, 왼편에 앞에서 말한 미뇽이 서 있는데, 그가 엄지와 검지를 수녀원장 입에 집어넣고 우리더러 보란 듯이 주문을 읊으며 엑소시즘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엑소시즘 실행

 

  이 엑소시즘과 주문 읊는 과정에서 두 가지 ‘징표’ 때문에 잔느 수녀가 악마와 계약을 맺게 됐음이 드러났다. 먼저 그녀 법복에 산사나무 가시 세 개가 들러붙었고, 다음에는 그녀가 층계에서 장미 다발을 발견하고 주워서 허리춤에 꽂은 것. 

 

  「그 순간 오른손이 마구 떨리면서 그랑디에에 대한 날카로운 욕망에 사로잡히고는, 내면에 각인된 그 모습에서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었다. 기도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꽃다발은 누가 보낸 것인가?” 

  라틴어로 한 질문에 원장수녀가 한참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Urbanus.” 

  그러자 미뇽이 말했다. “Dic qualitatem.” 

  그녀가 대답했다. “Sacerdos.” 

  “Cujus ecclesiae?” 그가 묻자 앞의 수녀가 답했다. 

  “Santi Petri.” 

  그런데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나왔다.」[각주:2]

 

  엑소시즘이 끝나자 미뇽이 수석 치안판사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참사회 위원 루소와 부관 쇼베가 있는 자리에서 촌평 삼아 한마디 꺼냈다. 

  지금 이 상황은 루이 조프리디의 경우와 아주 흡사해 보입니다. 

  프로방스의 성직자였던 조프리디는 마르세유 우르술라회 수녀들에게 마법을 걸어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20년 전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조프리디를 언급함으로써 속내가 드러났다. 주임신부를 상대로 한 새로운 싸움 전략이 명백하게 나타났다. 그랑디에는 마법과 주술을 행한다고 기소돼 재판을 받을 터였다. 무죄 판결이 난다 해도 평판이 돌이킬 수 없이 더럽혀지고, 유죄 선고를 받으면 장작불 위에서 산 채로 화형을 당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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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본문으로]
  2. (*우르바누스-우르뱅의 라틴어 이름) (*그의 직분을 말하라) (*성직자) (*어떤 교회의?) (*성 베드로 교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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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그 다음에 일어난 사건은, 이 기나긴 시리즈에서 결국 주임신부를 파멸로 이끈 결정적 사건은, 다소 터무니없는 장난이었다. 이 장난은 젊은 수녀들과 상급 학생 몇몇이 어린 학생들과 독실하고 순진한 늙은 수녀들을 놀래 주려고 꾸민 것으로, 핼러윈 때 흔히 볼 수 있는 유령과 폴터가이스트[각주:1]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수녀들과 기숙학생들이 살고 있는 건물은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에 싸여 있었다. 그런 까닭에 늙은 영적 지도자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연 수의를 둘러쓴 형체가 수녀원 숙사 복도에서 배회하는 장면이 목격됐을 때, 거기 거주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유령이 처음 출현한 뒤 문마다 빗장이 단단히 걸렸다. 그러나 유령들은 길잡이를 따라 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오거나 방안에 있는 제 5열의 도움으로 숨어들었다. 한밤중에 침대 욧잇들이 벗겨지고 자고 있는 얼굴들을 얼음장 같은 손길이 더듬었다. 머리 위 다락방에서 신음소리와 쇠사슬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소녀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존중받는 수녀들이 성호를 그으며 성 요셉을 불렀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유령들은 이삼일 잠자코 있다가 또 나타나는 것이었다. 기숙학교와 수녀원 전체가 패닉에 휩싸였다

 

  참사회 위원 미뇽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장난에 참여한 여학생들이 고해 시간에 죄다 밝혔으니까. 침실에 나타나는 인큐버스, 기숙사를 배회하는 유령들, 다락에 숨어든 몹쓸 장난꾼들… 그 정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줄기 빛이 퍼지고 섭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퍼뜩 깨단했다. 

  그래, 이야말로 최상의 조건이군! 이걸 이용하면 되겠어! 

 

  그가 장난꾼들을 꾸짖고는, 이 몹쓸 짓에 관해 누구한테든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장난질의 희생자들한테는 그들이 본 게 유령이 아니라 악마들임에 틀림없다고 말함으로써 새로운 공포를 불어넣었다. 또 외설스러운 환영에 시달리는 원장수녀와 수녀들한테는 밤마다 찾아오는 방문객이 꿈이 아니며 실제로 사탄의 물리적인 희롱이 분명하다고 확실하게 설명했다

 

  그 뒤 그가 주임신부의 강력한 적대자 네댓 명과 함께 시내에서 5킬로쯤 떨어진, 트렌캉의 교외 저택에 모였다. 그 전략협의회 자리에서 미뇽은 수녀원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설명하고,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그랑디에한테 강력한 타격을 안길 수 있겠다고 선동했다. 서로 머리를 맞댄 결과 비밀 병기들과 심리전과 초자연적 정보부 따위를 죄다 갖춘 작전계획이 수립됐다. 음모자들이 희희낙락했다. 

  그자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번에는 절대 못 빠져나갈 게야! 

 

  작전 계획에 따라 미뇽이 카르멜회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유능한 엑소시스트. 

  수도사들 중에 적임자 한 분 안 계시겠습니까? 

  수도원장이 적극 천거하고 나섰다.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을 추천해 주었다. 성 미셸의 요셉 수사, 성 샤를의 피에르 수사, 앙투안 수사. 

 

   미뇽의 주도로 그들이 간단치 않은 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그들 작전은 아주 성공적이어서 불과 며칠 만에 아주 늙은 두셋을 제외하고 수녀들이 모두 밤마다 주임신부 형상의 악마를 보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수녀원 밖으로 새나가기 시작했다. 소도시 주민들이 다들 수군댔다. 

  아, 글쎄, 그 착한 수녀들이 다 악마에 씌웠다지 뭐야. 그 악마들이 저 도깨비 같은 그랑디에의 사주를 받아서 수녀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지? 

  당연히 프로테스탄트들이 가장 좋아했다. 

  저런, 저런, 로마교황의 성직자가 우르술라회 수녀원 전체를 타락시키려고 사탄과 밀통하다니! 라 로셸을 무참히 함락시키니까 이런 변이 생기는 거야! 

 

  한데 당사자는 그런 수군거림에 그저 어깨 한 번 추썩이는 것으로 반응하고 말았다. 나로서야 원장수녀나 그녀의 정신 나간 자매들을 한 번 본 적도 없는 걸. 그 실성한 여인들이 나에 관해 무슨 얘기를 지껄이든, 그건 그들 정신질환의 소산일 뿐이오. 그러니까, 님포마니아[각주:2]와 결합된 멜랑콜리라는 질환이야. 남자들과 접촉 차단된 가엾은 여인들이 인큐버스와 교접한다고 상상할 만도 하지. 

 

  그런 촌평을 전해 듣자 미뇽이 미소만 가볍게 지으며 덧붙였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웃는 게야. 

 

우르술라회 수녀원에서 엑소시즘을 집행하다

 

  몇 달 동안 악마들과 영웅적으로 씨름하면서도 마귀 들린 여인들한테서 퇴마 작업이 아주 힘겨운데다 성과가 별로 없자 미뇽이 지원군을 요청하게 됐다. 

  먼저 부름받은 사람은 피에르 랑지에, 베니에 교구의 주임신부. 그는 교구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주교의 앞잡이라는 사실 때문에 다들 꺼려했다. 참사회 위원 미뇽이 일부러 랑지에를 초빙한 것은 상부에서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마귀 들림과 엑소시즘이 다 공식적이고 교규에 합당한 작업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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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지에한테 다른 신부가 또 합류했는데, 그는 기질이 전혀 달랐다. 인근 시농 도시에 있는 생 자크 교구의 주임신부인 바레는 하나님보다 악마를 훨씬 더 실제적이고 흥미로운 존재로 보는 부정적인 기독교인 축에 들었다. 그는 모든 것에서 ‘갈라진 발굽’[각주:3] 자국을 보았으며 인간 삶에서 유별나거나 파멸을 초래하거나 지나치게 즐거운 사건은 죄다 사탄의 짓으로 인식했다. 무엇보다도 사악한 벨리아르바알세불과 맞서 드잡이하기를 즐겼고,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하는 짓이 악귀 들린 사람들을 조작해 내고는 엑소시즘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의 수고 덕분에 시농 도시에는 광란하는 처녀들이며 마법에 걸린 아낙네들이며, 또 어떤 마법사들의 악의적인 주문 때문에 부부간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남편들로 득실거렸다. 그의 교구에서는 그 누구도 삶이 따분하다고 불평할 수 없었다. 교구 주임신부와 악마가 있는 한 지루한 순간이란 결코 없었으니까

 

  미뇽의 초대를 바레가 잽싸게 수락했다. 며칠 뒤 제 교구의 가장 광적인 신도들로 구성된 행렬을 이끌고 바레가 루덩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문을 다 닫아 걸고 엑소시즘이 진행됐다는 얘기를 듣고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성스러운 작업을 어떻게 많은 사람한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게요! 군중이 다 보고 신앙심을 더욱 굳힐 기회를 왜 안 주는 거요? 

  그래서 우르술라회 수녀원 문들이 활짝 열리고, 호기심에 끌린 무리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미 세 번째 시도에서 바레는 원장수녀를 심각한 발작 상태로 몰아가는 데 성공했다. ‘이성과 범절을 상실한’느가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굴렀다. 구경꾼들이 매우 즐거워했다. 특히 양쪽 허벅지가 허옇게 드러날 때 더 그랬다. 

 

엑소시스즘 때 바닥에 뒹구는 잔느

 

  많은 ‘격한 몸짓과 저주와 으르렁거림과 입안 뒤쪽 이빨 두 개가 부러질 정도로 이빨 갈기’가 끝난 뒤 마침내 악마가 신부의 명령에 순종하여 제물을 평온하게 놔두었다. 원장수녀가 기진하여 누워 있고, 바레가 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어서 참사회 위원 미뇽의 차례가 되어 클레어 수녀를 택했다. 또 요셉 수사가 보조 수녀를, 랑지에 신부가 가브리엘 자매를 맡았다. 퍼포먼스는 해가 떨어져서야 끝났다. 구경꾼들이 가을 석양 속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야아, 지난번에 난쟁이 둘과 조련된 곰들을 데리고 이동 서커스단이 다녀간 이래로 우리 한적한 루덩 시에서 이렇게 멋진 쇼를 본 건 처음이야! 

  암, 그렇고말고, 게다가 서커스와 달리 여기서는 구경꾼들한테 땡전 한 닢 안 받잖아? 

  아, 그래, 그들이 헌금 쟁반을 들고 다니긴 했지만, 은화 대신 동화를 던진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도 않는 걸. 

 

  이틀 지나 1632년 10월 8일 바레가 처음으로 큰 승리를 거뒀다. 불쌍한 원장수녀 육신에 똬리를 튼 일곱 악마들 가운데 하나인 아스모데우스를 내쫓은 것이다. 귀신들린 여인의 입을 통해 아스모데우스는 그녀 아랫배에 단단히 숨어 있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건 바레가 악마와 두 시간 넘게 사투를 벌인 끝에 올린 전적인데, 그 과정은 이랬다. 

 

  수녀원 숙사 아치 밑에서 라틴어가 연신 낭랑하게 울렸다. 

  "Exorcise te, immuundissime spiritus, omnis incursio adversarii, omne phantasma, omnis legio, in nomine Domini nostri Jesus Christi; eradicare et effugare ab hoc plasmate Dei.”[각주:4]

  이어서 성수를 듬뿍 뿌리고, 고통 받는 여인에게 두 손을 얹고, 영대로 덮고, 성물들을 접하게 하고, 라틴어 기도문이 다시 울렸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관 이름으로, 너의 조물주와 세상의 조물주 이름으로, 너를 지옥 불구덩이로 내던질 권세를 지닌 이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케케묵은 뱀아, 교회 품으로 돌아가야 할 이 주님의 종복한테서 두려움과 환난을 다 끌어안고 속히 물러가거라.” 

  그러나 아스모데우스가 물러가기는커녕 깔깔대며 신을 모독하는 말을 몇 마디 지껄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패배를 인정했겠지만 바레는 달랐다. 원장수녀를 제 독실로 옮기라 이르고 급히 사람을 보내 약제사를 데려오게 했다. 

 

관장기는 17세기에 주요 의료도구

 

  아담이 제 직업의 고전적 상징인 관장기를 들고 달려왔다. 그렇게 커다란 구리 관장기를 오늘날에는 몰리에르 코미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17세기에는 주요 의료 도구였다. 아담이 관장기에 성수를 가득 채운 뒤 원장수녀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아스모데우스가 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감지하고 히스테리를 부렸다. 하지만 헛수고. 원장수녀의 두 팔과 두 다리가 묶이고 뒤틀리는 몸통을 강한 손들이 억눌렀다. 아담이 상당한 기술을 발휘하여 그녀 몸에 이적을 행하는 기구를 집어넣었다. 2분 뒤 아스모데우스가 고분고분 사라졌다.[각주:5]

 

  몇 해 지나 쓴 자서전에서 잔느 수녀는 뭔가에 들씌운 처음 몇 달은 정신이 하도 혼란스러워 저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 진술이 정말일 수 있다. 혹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잊고자 하여 억누르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더 생생하게 뇌리에 남는 것들이 많이 있는 법이니까. 예를 들면, 아담이 사용한 관장기 같은… 

 

  지나치게 과장된 자아에서 완전한 자기비하로 넘어가는 길은 많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타고난 에고이즘과 실망스러운 환경 여건에 억눌리면서 자기초월의 갈망을 더욱 키웠다. 만년에 그녀는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상향적 자기초월을 달성하려 노력하는 척했고 실제로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 그녀에게 유일한 탈출 방법은 성적 관심으로 하향하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일부러 상상에 잠겨서, 개인적으론 모르는 사이지만 성적 자극을 일으키기로 소문난 그랑디에와 음탕한 장면을 마음속에서 조심스레 그렸다. 그러나 조심스레 가끔 하던 탐닉이 시간이 흐르면서 습관으로 변했다. 그리고 습관은 성적 판타지를 이제 절실한 요구로 바꿔 놓았다. 환영들이 그녀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어른거렸다. 제 상상의 주인이 되는 대신 그녀는 이제 그 노예가 됐다

 

  노예 상태는 인간을 굴욕적으로 만들고, 제 생각과 행동을 제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인식은 ‘나’라는 자아의 경계를 파괴한다. 하지만 이때 자기초월 충동은 애석하게도 자아를 위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아래로 끌어내린다. 잔느는 스스로 불러들인 색정적 이미지들의 예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자유는 스스로 혐오하는 자신이 되는 자유였다. 악습과 중독이라는 지하 감옥으로 점점 더 떨어지기만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내면에서 분투하던 중에 이제 무지막지한 바레의 수중에 들게 된 것이다. 하향적 자기초월이라는 판타지가 짐승 같은 현실로 바뀌었으니, 그는 그녀를 인간 이하의 뭔가로 다루었다. 재주 부리는 원숭이처럼 어중이떠중이한테 보여주기 위한 짐승으로 다루었다. 그저 고함치고 조종하고 반복하는 암시에 고분고분 따라서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하고 혼절하기도 하다가, 결국엔 그나마 남아 있던 의지에 반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중인환시 하에 강제로 결장 세척까지 당하고 말았다. 바레와 그의 조수들이 그녀에게 행한 짓은 공중화장실에서 범한 강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 저자 주 ☞ 17-18세기 의술에서 관장기는 오늘날 피하주사기만큼이나 흔하게 쓰였다

  로버트 버튼의 기록을 보면… 「관장기는 인기가 좋다. 트린카벨리[각주:6]는 그걸 일급 치료 수단으로 꼽고, ‘작센의 헤라클레스’[각주:7]는 관장기의 효용성을 한층 더 두둔한다. 그는 건강을 염려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관장기 한 번 사용으로 치료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말한다.」 버튼은 이렇게도 썼다. ‘관장기를 잘만 사용하면 대부분 질환에서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네 선조들은, 물론 의사나 약제사를 부를 형편이 되는 계층이라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커다란 관장기와 좌약에 익숙했다. ‘카스티야 비누, 진하게 끓인 꿀, 혹은 더 강한 것으로는 메꽃이나 크리스마스로즈 같은 약초 우린 물’ 따위를 누구나 상당히 많이 직장에 집어넣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잔느 수녀와 동시대인인) 부샤르가 어린 시절 제 누이들한테 어린 친구들이 놀러오던 때를 회상하면서 당시 사내애들과 계집애들이 ‘의사 놀이’를 하는 중에 관장기 삼아 작고 부드러운 막대기를 서로 집어넣었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유년기 기억은 평생 간다. 그렇기 때문에 약제사의 괴물 같은 관장기는 많은 이들에게 관능적인 상상을 계속 어른거리게 했다. 

 

  바레의 영웅적인 행위 이후 150년이 지나서 사드 후작[각주:8]의 주인공들은 성적 쾌감을 키우기 위해 엑소시스트의 이 비밀 병기를 자주 이용했다. 

  후작보다 한 세대 이전에 프랑수아 부셰[각주:9]는 당대의, 어쩌면 모든 시대의, 가장 멋진 핀업 걸(Pin-up Girl)을 만들어냈는데, 이 그림의 제목이 <관장기를 기다리며>이다. 

 

부셰의 Pin-up Girl 관장기를 기다리며

 

  비루한 음란물이며 고급진 포르노에서 라블레 식의 재미와 끽연실 조크까지는 한 발짝에 불과하다.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걸쭉한 농담 던지는 노파를 우리는 다 기억한다. 몰리에르의 <억지 의사>에서 사랑에 빠진 스가나렐이 떠오르는데, 그는 자클린에게 키스가 아니라 ‘아담하고 부드러운 관장기’를 간청한다. 

 

  바로 그렇게 아담하며 (여기서는) 신성한 관장기를 성수를 채워 바레가 집어넣은 것이다. 이 과정에 부여된 성례의 의미와 상관없이 그건 결국 수녀원장에게는 관능적 체험이며, 수치심에 대한 폭압이며, 포르노 식의 체험으로 농축된 심벌임이 확실하다.] 

 

  (한때 천사들의 수녀 잔느요, 이제 루덩의 우르술라회 수녀원 책임자인 사람의 인격이 완전히 짓밟히고 파괴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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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poltergeist - 떠들썩한 장난꾸러기 요정. 소리를 내거나 물건을 움직여서 자기 존재를 알림. [본문으로]
  2. nymphomania - 여자색정증(色情症) - 여성의 비정상적인 성욕 항진증. [본문으로]
  3. 갈라진 발굽 - 악마의 본성, 사악한 의도, 악마의 간계 등을 의미함. 성서에서 정결한 동물과 불결한 동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 바로 갈라진 발굽. 어떤 문화에서는 악마와 연관돼, 예를 들어, 기독교 미술과 저술에서 사탄은 종종 갈라진 발굽으로 묘사된다.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부정한 것이다.” (레위기 11:4) [본문으로]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더러운 귀신아, 악의 사절아, 물러가라, 너희 군대야 썩 물러가라, 어서 냉큼 달아나 이 신의 종복을 평온하게 내버려 두어라.” [본문으로]
  5. 바레가 그렇게 급진적인 퇴마 방법을 처음 고안한 것은 아니다. 이 사례 이전에도 프랑스의 한 귀족이 그런 식으로 악마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에도 남아프리카 몇몇 부족은 세례식에 성수가 담긴 관장기를 이용한다. - 저자 주. [본문으로]
  6. Vittore Trincavelli (1496-1568) - 이탈리아의 저명한 외과의. 그리스 고전의 편집자. [본문으로]
  7. Hercules of Saxonia (1670-1733) - ‘괴력의 아우구스투스’라 불리기도 했다. 1694년부터 작센의 선거후, 1697년부터 폴란드 왕, 리투아니아 대공. 스웨덴과 맞선 북방전쟁(1700-1721)에서 표트르 1세의 동맹자. [본문으로]
  8. Marquis de Sade (1740-1814) - 프랑스의 귀족, 혁명적 정치가, 철학자, 작가. 도덕과 종교, 법률로도 구속받지 않는 절대 자유를 주창. 그의 이름에서 나중에 ‘사디즘’ 용어가 나왔다. [본문으로]
  9. François Boucher (1703-1770) -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화가, 판화가, 장식미술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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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 수녀원 원장 잔느와 수녀들

 


 

4

 

하나님 섬김이라는 소명을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17세기 수녀원 생활이 죽도록 따분하게 보였을 터이다. 그날이 다 그날 같은 생활은 그저 자잘한 사건과 소문들, 가끔 들르는 방문객들과 담소, 혹은 여가에 시시한 손작업 등으로 그 단조로움이 조금 덜어졌을 뿐. 

수렝 신부가 여러 서신에서 짚을 엮어 만든 장식물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가 아는 많은 수녀들이 남는 시간 대부분을 이 작업으로 보냈다. 그들의 걸작은 역시 지푸라기로 만든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미니어처 지푸라기 마차. 그건 어떤 귀족 여성 후원자의 경대에 놓일 선물이었다. 

 

콜롱비에 신부가 방문동정회[각주:1] 수녀들에 관해 이렇게 적는다. 

이 수도회의 드높은 도덕적 지향과 개중에 고결한 수녀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담장 안에는 규율을 지키고 미사를 드리고 기도회에 다니고 고해성사를 보고 성찬례에 참여하지만, 그걸 다 그저 종이 울리고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수녀들의 행위에는 정성이 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네 작은 생각과 계획들로 바빠서 하나님 일에는 거의 무심하다. 

모든 따스한 감정은 수녀원 안팎에 있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쏟고 주님께는 그저 맥없고 진실성 없는 눈길만 돌리니, 그런 것은 그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든 영혼이 전능자에 대한 사랑으로 영원히 불타는 둥지가 되어야 할 공동체들이 평범하고 지루함 속에서 의미 없이 생활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녀원 모습

 

저 유명한 포르루아얄 수녀원[각주:2]장 라신[각주:3]에게 아주 감탄할 만한 공동체로 보인 까닭은 ‘그 객실들에는 적막이 지배하고, 수녀들이 대화에 끼어들려 안달하지 않고, 헛된 세상사에 관심 두지 않고, 심지어 이웃을 두고 뒷공론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포르루아얄의 이런 보기 드문 장점을 통해 우리는 그보다 못한 수녀원들의 결함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다. 

 

1626년 루덩으로 이전한 우르술라회[각주:4] 수녀원은 다른 여성 거처들보다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열일곱 수녀는 거의 젊은 귀족 영애들이었다. 그들이 수도생활에 들어선 까닭은 복음서 말씀을 따르고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계층의 구혼자들이 수락할 만한 지참금을 집안에서 마련할 여유가 못 됐기 때문이다. 여기 수녀들은 그 어떤 특별한 스캔들로도 경건함으로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켰지만 종교적 열성과 경건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루덩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 주민들은 절반이 신교도로서 수녀원에 아주 인색했고 수녀들한테도 돈이 없었다. 낡고 음울한 하우스 하나만 임차했는데, 그것도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다들 들어와 살기를 마다하는 건물이었다. 건물에 가구도 없어서 수녀들이 처음엔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들은 도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는 수업료로 생활할 요량이었지만 여학생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드 사질리, 데스쿠블로, 바르베지에, 라모테, 벨시엘, 댐피에르 같은 귀족 출신들이 제 손으로 갖은 잡일을 하게 됐고, 재계일인 금요일뿐 아니라 월, 화, 수, 목요일에도 식탁에 고기가 놓이지 못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던 끝에 그들을 구한 것은 속물근성이었다. 

 

루덩의 부르주아들이 알고 보니… 아주 적은 돈으로도 자기네 딸들이 좋은 프랑스어와 궁정 매너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한때 추방됐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재종누이와 수르디스 추기경의 더 가까운 인척과 후작의 작은딸과 푸아티에 주교의 질녀한테서 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수녀원에 기숙 학생들과 통학 학생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여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번영도 찾아왔다. 이제 지저분한 일은 하녀들이 맡고, 식탁에 쇠고기와 양고기가 다시 나오고, 마루에 깔렸던 짚 매트리스가 나무 침상으로 교체됐다. 

 

루덩 소도시 전경

 

이 새 공동체의 원장이 1627년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새 원장이 임명됐다. 그녀 이름은 ‘천사들의 수녀 잔느. 속세에서 이름은 잔느 벨시엘, 코제의 남작인 루이 벨시엘과, 또 남작 가문 못잖게 전통 있고 저명한 가문 출신인 샤를롯데 데실레의 딸이었다. 1602년생이니까 이제 이십대 중반.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쳐져서 몸매가 좀 기형이었다. 아마도 골결핵의 후유증이리라. 

잔느도 당대 대다수 귀족 영애들처럼 빈한한 교육을 받았다. 그 대신 그녀에겐 타고난 지능에다 한가락 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 성격 때문에 그녀가 다른 이들에겐 고통이 되고 제 자신에겐 최악의 적이 됐다. 

 

이 어린애 같은 사람은 기형적인 신체 때문에 볼품이 없었다. 자신이 추하다는 느낌과 혐오나 동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그녀에게 고질적인 분한을 일으켰다. 그 분한 때문에 누구를 좋아할 수도 없고 누구한테서 사랑받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다 보니 그들도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방어적인 갑각 속에 살며 자신의 적들을 공격할 때만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녀에게는 모든 사람이 선험적으로 적이었으며, 난데없는 빈정거림이나 이상하고 발작적으로 터뜨리는 조소가 공격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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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렝이 그녀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알고 보니, 원장수녀의 기질은 뭔가 특이하게 명랑해서 늘 날카로운 웃음과 조롱을 날리는데, 그런 고약함은 그녀 안에 들어앉은 악마 발람이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의 성격은 하나님 사업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진지함과 정반대이며, 뭔가 악의적인 기쁨이 그 영혼을 차지하여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필수적인 양심의 가책을 파괴했다

이 불길한 까불거림을 한 시간만 대해도 내가 여러 날 정성껏 쌓은 공력이 무너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나운 적에게서 그녀가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하려고 난 무던히 애썼다.」

‘하나님 사업’과 아주 잘 양립할 수 있는 웃음이 있다.
곧, 겸허하고 자기비판적인 웃음, 온후하고 너그러운 웃음, 이 세상의 비뚤어진 부조리에 대한 좌절과 분개를 대신하는 웃음. 

 

그러나 잔느의 웃음은 그런 것들과 전혀 달랐으니, 그저 조소 아니면 냉소뿐이었다. 그런 웃음을 늘 다른 이들한테만 퍼부었지 자신에게는 절대 돌리지 않았다. 곱사등이의 비웃음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다 깔보면서 자기 아래에 두려고 들었다. 또 그녀의 냉소란 잠깐일지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갈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대 기준에 엄숙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모든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요 조롱이었다

 

루덩 수녀원 원장수녀 잔느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숱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렇게 불쾌한 아이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부모는 딸을 인근 수녀원 원장으로 있는 늙은 숙모에게 보내고 말았다. 두세 해 만에 불명예스럽게 돌아왔다. 다른 수녀들이 그녀와 잘 지내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세월은 흐르는데 부친 저택에서 사는 게 어찌나 지겨운지 종교적 은둔처라도 차라리 집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그러자 푸아티에에 있는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들어가서 초심자 수련 기간을 보내고 수도서원을 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훌륭한 수녀가 못 됐다. 하지만 집안이 부유하고 영향력 있기 때문에 방자한 피후견인을 수녀원장이 꾹꾹 참으며 데리고 있게 됐다. 

그러다가 거의 하룻밤 새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수녀원이 루덩으로 이전한 뒤 잔느가 아주 경건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바뀐 것! 푸아티에에서는 말도 안 듣고 열의도 안 보이고 제 할 일에도 태만하던 젊은 여인이 이제 완벽하게 독실한 사람이 되어서 온유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처신했다. 그 놀라운 변화에 감명 받은 늙은 수녀원장이 퇴임하면서 잔느 자매를 강력한 후임자로 추천했다. 

 

그 개심 사연을 15년 뒤 잔느가 이렇게 기술한다. 

「난 늘 지도부 눈에 띄려 애썼고, 숙사에 수녀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수녀원장은 곧 공동체의 모든 일을 나한테 맡기게 됐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일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좋은 자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수녀원장에게 숱한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난 그녀 기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그녀는 곧 나를 모든 이들에게 모범으로 삼았다. 그녀는 내가 선하며 덕을 행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한껏 부풀려서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좋게 보이고 내 성향에 호감을 갖게끔 위선을 떨었다. 수녀원장은 나한테 많은 특전을 용인했으며, 그것을 난 마음껏 써먹었다. 그녀 자신이 선하고 덕이 있는데다 나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한다고 믿는 만큼 나를 훌륭한 수도사들과 대화하도록 자주 불렀다. 난 그녀 비위를 맞추려고 거기에 따랐다. 게다가 그건 시간 죽이기에도 좋았다.」 

 

훌륭한 수도사들과 나누는 대화는 숙사의 널따란 객실을 두 부분으로 가른 철창을 통해 벌어졌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영적 삶에 관해 새로 번역된 책들을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었다. 

어떤 날은 블로시우스[각주:5]의 해설서, 또 어떤 날은 테레사 성녀의 자서전 혹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혹은 천사들의 본성에 관한 델 리오의 저술 등이었다. 

 

그런 책들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수녀원장이며 수도사들과 토론하면서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바뀌는 것을 알았다. 객실에서 나누는 경건한 대화와 신비주의 서적 공부는 이제 더 이상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각별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됐다. 단, 그 목표가… 

그녀가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지혜로운 카르멜회 수사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그건 「영적 삶으로 돌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제 지능을 뽐내고, 모든 수녀원에 있는 다른 수녀들을 능가하려는 욕심에 지식을 채우기 위함일 뿐이었다.」 

 

루덩 수녀원 수녀들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곱사등이의 갈구가 또 다른 출구를 찾았다. 남들을 교묘하게 다루는 새롭고 재미난 분야 말이다. 빈정대고 냉소 터뜨리기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신비주의 신학과 영성 연구에 들인 결과, 그 분야에서 학식 갖춘 상담자요 전문가가 됐다. 

새로이 습득한 지식에 기고만장한 그녀가 이제 다른 자매들을 더욱 더 경멸과 연민이 출렁이는 느낌으로 내려다보며 흐뭇해했다. 

 

그래, 이 불쌍한 멍청이들이 신앙심은 깊어서 정결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고 있지. 그러나 정결이 도대체 뭐야! 무지와 둔감함일 뿐이잖아! 특별한 은혜에 대해 저들이 뭘 아나? 영적인 접촉을, 황홀함과 계시를, 감각의 유혹과 죽임을, 제까짓 것들이 알기나 하겠어?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 절로 만족스레 나왔다. 

흥, 저들은 아무 것도 몰라! 반면에, 난 사실상 모든 지혜를 터득했고, 하고 있잖아!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유난히 처지고 키가 난쟁이만한 그녀가 그렇게 우쭐댔다

 

(마담 보바리는 생을 비극적으로 마쳤다. 자신을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그렇다...  <루덩의 악마들> 4편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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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Order of the Visita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 성모 마리아 방문 동정회. 1610년 살레의 성 프랑수아(1567-1622)와 성 쟌느 샹탈(1572-1641)이 설립. [본문으로]
  2. Port Royal -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 1204년 설립돼 17세기에는 얀센파의 거점. 유명한 학자며 계몽된 교육자들이 이 공동체 주변에서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 [본문으로]
  3. Jean Racine (1639-1699) - 고전주의 시대 프랑스 비극 작가, 문필가.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로 꼽힌다. 포르루아얄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피제니’, ‘페드르’. [본문으로]
  4. 우르술라회 - 로마가톨릭 여성 수도회. 성 안젤라 메디치가 1535년 11월 이탈리아 브레시아에 설립. 주로 소녀들 교육, 병자와 빈자 구휼 활동. 그들의 수호성인은 우르술라 성녀. [본문으로]
  5. Blosius - 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인 316년 아르메니아에서 처형된 순교자, 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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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주가이

    감사합니다

    2019.07.14 14:07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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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3-3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각주:1]는 문학예술의 완전한 걸작 축에 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이 얼마나 정밀하고, 문체는 얼마나 우아하며, 명쾌함은 또 얼마나 후련한가! 섬세한 풍자가 얼마나 많으며 세련된 논쟁거리를 얼마나 많이 제공하는가! 

  한데, 파스칼의 솜씨에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 보니까, 이 문필 대가가 예수회와 얀센파의 논쟁에서 옳지 않은 관점을 옹호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놓치기 쉽다.[각주:2]

 

  예수회가 결국 얀센파에 승리한 것도 물론 순수한 축복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파스칼이 지지하는 측이 이겼다면 결과는 더 나빴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운명 지워진 저주라는 얀센파 교리와 확고한 퓨리터니즘이라는 얀센파 윤리에 빠져서 교회는 통제 불능한 악과 강압의 도구가 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예수회가 우위를 점했다. 교회 도그마에서 얀센파가 주창하는 과도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성격은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인 상식이 좀 곁들이면서 완화됐다. 

 

  예수회가 승리한 결과 실제에서 엄격주의는 더 관대한 사고방식으로 대체됐다. 이 더 너그러운 태도는 결의론으로 정당화됐으며, 결의론의 목표는 죽어 마땅해 보이는 죄인 중 많은 이들이 실제로는 용서받을 만하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애쓰는 것.[각주:3] 또 이 결의론은 개연설의 관점에서 합리화됐는데, 이로써 여하한 의혹도 죄인한테 이롭게 해석하기 위해 많은 권위적 견해가 동원됐다. 엄격하고 지나치게 일관된 파스칼에게는 개연설이 아주 부당하게 보였다. 

  우리가 보기에 개연설과 그것이 정당화한 결의론은 한 가지 커다란 장점을 지닌다. 즉, 영원한 저주라는 끔찍한 교리에 종지부를 찍은 것. 즉결심판 판사 마음 하나 움직이지 못할 궤변으로써 사람이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지옥이란 썩 진지한 것일 수 없다. 예수회 결의론자들과 모럴리스트들의 의도는… 가장 속물적이고 죄 많은 남녀들도 관대하게 교회 품에서 지킴으로써 전체로는 교회를, 부분으로는 교파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그들은 웬만큼 달성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내부에서 상당한 분열을 일으켰으며, 정통 기독교의 주된 교리들 중 하나인, 한순간 죄에 대한 무한한 징벌이라는 교리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1650년도 이후 이신론과 ‘자유사상’, 무신론이 급속히 커졌는데, 그 원인들 중에는 예수회의 결의론과 개연설, 또 그 예수회 학자들과 수사들을 파스칼이 대가다운 솜씨를 발휘해 풍자적으로 묘사한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었다

 

  우리의 이상한 드라마에서 직간접적으로 어떤 역할을 한 예수회원들은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성직자들과 전혀 달랐다. 그들은 정치와 무관했고 ‘이 세상’이며 거기 사는 생물들과 거의 접촉이 없었다. 그들의 금욕생활은 이성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었으며, 저희 친구며 신봉자들한테도 그런 금욕을 설교했고, 설교를 듣는 그들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 관상[각주:4]에 헌신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예수회 신비주의 유파의 신봉자이며, 개중에 가장 저명한 대표자는 테레사 성녀의 스승인 알바레즈 수사[각주:5]였다. 알바레즈는 이냐시오 로욜라가 설교 활동을 촉구했음에도 종교적 관상을 행하며 가르친다고 예수회 장군 한 사람한테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그에게 쏠린 비난을 거둬들이면서 관상기도에 관해 예수회 공식 정책을 규정했다. 

 

  「고도의 관상에 너무 이르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사람들은 비난받을 만하다. 하지만 관상을 경시하고 우리 구성원들에게 금지함으로써 수사들의 꾸준한 체험마저 반박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진실하고 심오한 관상은… 자만심을 억누르고 미온적인 사람들이 상사의 명령을 수행하여 영혼 구제에 적극 나서도록 환기시키는 데 다른 모든 기도 방법보다 더 큰 힘과 효험을 지닌다는 것이 많은 성직자들의 체험과 권위로써 잘 입증됐으니까.」 

 

  17세기 전반 내내 예수회가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적극적 활동에 중점을 두었지만, 신비주의 성향에 크게 기운 수사들은 관상에 헌신하도록 허용되고 때론 장려되기도 했다. 나중에 미구엘 몰리노스[각주:6]가 단죄 받고 정적주의[각주:7]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벌어진 뒤, 예수회원들 대다수는 관상에 상당히 의심쩍게 대했다. 

  저서 <프랑스에서 종교 감정의 문학적 역사>의 마지막 두 권에서 앙리 브레몽[각주:8]은 수도회 내부 대다수 ‘금욕주의자들’과 소수의 낙담한 관상 지지자들 간의 충돌을 생생하게 극화한다. 

  한데, 랄망과 그 제자들의 히스토리를 연구한 예수회 학자 포티에는 브레몽의 논제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를 보면, 관상은 예수회에서 공식적으로 비난받은 적이 전혀 없으며 관상을 수행하는 개개인들은 정적주의가 혹독하게 탄압받는 시기에도 예수회 내부에서 계속 활약했다는 것. 

 

  하지만 1630년대는 정적주의가 등장하기까지 아직 반세기나 남아 있었고 관상을 둘러싼 격론이 아직은 이단이라는 비난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예수회 장군 비텔레스키를 수반으로 하는 예수회 상층부는 이 문제를 순전히 실용적 측면에서 보았다. 수사들 훈련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이 더 좋은가, 관상? 아니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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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의 위대한 관상 수행자인 루이 랄망[각주:9] 수사는 1628년부터 건강 때문에 1632년 은퇴할 때까지 루앙 칼리지 교관 직을 맡았다. 1629년 가을 장 조셉 수렝이 루앙으로 파견돼 ‘2차 수련’을 위해 온 다른 젊은 성직자 십여 명과 함께 1630년 늦봄까지 거기 남았다. 이 기억할 만한 학기 내내 수렝은 매일 교관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냐시오 로욜라의 규칙에 걸맞게 기도와 재계를 통해 기독교적 완성의 삶을 준비했다. 

 

 

  랄망의 가르침을 수렝이 간결하게 골자만 기록하고 그의 학우인 리골렉 수사가 더 상세하게 기술했는데, 나중에 다른 예수회원인 샹피옹 수사가 다듬어서 <루이 랄망 수사의 영적 교리>라는 제목으로 17세기 말엽에 발간했다. 

 

 

  랄망의 교리에 기본적으로 참신한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런 게 어디서 나올 수 있었겠나?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상향적 자기초월을 열망하는 모든 사람의 최고 과제인, 하나님을 직관적으로 알기였다. 

  그 목표에 이르는 수단들도 엄격히 정통파적인 것이었으니… 영성체를 자주 하기, 예수회 순종 서약을 꼼꼼하게 지키기, ‘미개인[각주:10]’의 육욕 죽이기, 성찰과 꾸준한 ‘마음 지키기’, 날마다 그리스도 수난을 명상하기, 그리고 그것이 준비된 사람들에겐 ‘단순한 응시’의 소극적 기도, 즉 관상의 은혜가 주입된다는 희망으로 하느님을 긴장하여 기다리기 등이었다. 

 

  주제들도 아주 오래 된 것이었다. 그러나 랄망이 그것들을 먼저 체험하고 나서 표현한 방식은 개인적이며 독창적이었다. 스승과 제자들이 공식화한 교리는 특별한 성격과 격조와 특이한 향내를 담고 있다.      

  랄망의 가르침에서는 마음의 정화와 성령이 이끄는 대로 온유하게 따르기가 특히 강조됐다. 달리 말해… 선행과 기도를 통해 성자와 합일되며, 긴장되고 소극적인 관상에서 성령과 합일돼야만, 성부와의 의식적인 합일도 바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마음의 정화는… 집중적인 기도와 잦은 영성체로써, 또 늘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음욕과 자만과 자기애에 대한 충동을 철저하게 응징함으로써 달성된다. 

  경건한 느낌과 이미지화, 또 그것들이 깨달음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저 뒤편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육욕 억제와 자신 안에서 근절해야 하는 ‘미개인’이 우리 주제이다. 

 

  ‘당신 왕국이 임(臨)하게’ 되면, 그 결과 필히 ‘우리 왕국은 거(去)하게’ 된다. 여기에는 누구나 동의했다. 그러나 인간의 왕국을 어떻게 몰아내야 하는지, 이 방법에 관해서는 성직자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가 없었다. 그 왕국을, 무력으로 내쳐야 하나? 아니면, 설득하여?

  랄망은 엄격주의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타락한 인간 본성은 사악하다고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는 진정한 예수회 수사로서, 죄인들과 불경한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그러나 그의 신학적 사고 풍조는 대단히 음울하여 자신한테도 또 자기완성을 열망하는 모든 이들한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없으니, 바로 육욕을 죽이기 위한 극단의 고행. 

  샹피옹이 랄망 수사의 간략한 전기에서 이렇게 쓴다. 

  「육체적 고행이 그의 체력을 압도한 게 확실하며, 아주 가까운 친구들 생각으로는, 고행 과정이 그의 수명을 상당히 단축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랄망과 같은 시대 사람이요 가톨릭에서 영국성공회로 개종하고 시인에서 설교자며 신학자가 된 존 던이 자기징벌 문제를 두고 쓴 글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3-3편 2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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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얀센주의를 옹호하면서 이단적이라 규탄 받는 친구 앙투안 아르노를 옹호하기 위해 쓴 18편의 서신. 파스칼이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들어가던 즈음과 거의 같은 시기에 쓰기 시작. 1편은 1656년 1월 23일 자. 루이 몽탈트라는 가명으로 쓴 이 서신들에서 파스칼은 신학자들의 궤변을 해학적으로 공격하고 예수회의 느슨해진 도덕률을 비판. 종교적 영향은 차치하고, 뛰어난 위트와 유머와 풍자로 인해 대중에게 널리 읽혔다. 프랑스 산문에서 새로운 문체의 효시로 평가되며 나중에 볼테르와 루소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편지>는 정치와 신학의 수준에서는 실패지만 도덕적 수준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도덕성과 영성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 루이 14세는 1660년 이 책을 소각하라고 명령. 1657년에 쓴 마지막 서신에서는 알렉산더 7세 로마교황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황은 서신들을 공공연히 반대하면서도 파스칼의 논거에 설득됐고, 불과 몇 해 뒤 교회의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고 궤변적인 교회 문건들을 수정하라고 명했다. [본문으로]</편지>
  2. 얀센주의 - 벨기에 신학자 얀센(1585-1638)이 창시한 교리.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과 은총설을 수용해 은총과 자유의지, 예정 구원설에 대해 엄격한 견해를 주장함으로써 17-18세기 프랑스 교회에서 큰 논쟁을 일으켰다. 즉, 타락한 인간은 죄와 정욕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 은총을 통해 선택된 사람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 예수회를 세속주의와 야합해 타락한 집단이라 비난했고 여러 교황들로부터 단죄를 받았지만, 프랑스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파급되면서 엄격한 신앙생활을 필요로 하는 신자들에게 오랜 기간 특히 도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3. 決疑論 (casuistry) - 보편적 규범을 정확히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에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중세 스콜라철학의 윤리 이론. 기독교에서는,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 평가 문제와 의무 규정이 모호한 때 행동 지침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문제로 대두됐다. 예수회 일각에서 결의론을 지나치게 세밀하게 구분하는 경향을 띠면서 반대자들로부터 궤변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본문으로]
  4. 觀想 - 기독교 신비주의, 신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기도 행위. Christian contemplation. [본문으로]
  5. Balthasar Alvarez (1533-1580) -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귀족 출신, 이미 18세에 범상치 않은 기도와 신앙심으로 주목받다. 처음엔 카르토지오 수도회에 기울다가 예수회에 입문. 25세에 성직자가 되고, 젊은 나이에도 테레사 성녀의 영적 지도를 맡게 됐다. [본문으로]
  6. Miguel de Molinos (1628-1696) - 에스파냐 성직자, 가톨릭 신비주의자, 17세기 후반 로마에서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 ‘수동적이고 행동하지 않는’ 믿음을 옹호하는 정적주의 창시.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는 1687년 몰리노스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 [본문으로]
  7. 靜寂主義 (Quietism) - 기독교 영성에 대한 교리. 영혼의 소극적(정적) 상태에서, 즉 인간의 노력을 억제하여 신의 활동이 온전히 펼쳐질 수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적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 행동하려 하는 것은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하느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본문으로]
  8. H. Bremond (1865-1933) -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역사가, 종교 저술가, 수도원장. 유명한 에세이 <순수 시론>(1925). [본문으로]</순수>
  9. Louis Lallemant (1588-1635) - 프랑스의 예수회 수사, '프랑스의 알바레즈'라 불렸다. 그의 금언과 가르침의 모음집인 이 오늘날에도 많이 읽힌다. [본문으로]
  10. natural man - 하늘의 계시에 의해 정신적으로 갱생되지 못하여 동물처럼 행동하는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2: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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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사진

 


 

  그랑디에의 첩보망도 약제사보다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비밀 회동을 아주 빨리 감지했다. 그가 지방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로바르데몽을 각별히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의 상전인 추기경과 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르마냑이 답신을 보내왔는데, 의기양양했다. 폐하께서 아성은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는 친서를 이제 막 전권대행에게 사적으로 보내셨다고 하오. 이것으로 문제는 속 시원히 해결된 셈이오.  

 

 국왕의 친서는 1631년 12월 중순경 도달했다. 로바르데몽이 친서를 받아 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이후 그것에 관해 입을 꾹 다물었다. 외곽 성벽과 탑들은 계속 해체되고 있었다. 다음해 1월 로바르데몽이 어디선가 더 급한 일을 보기 위해 루덩을 떠났다. 일꾼들이 이미 아성까지 바짝 다가들었다. 

 

루덩 성벽 해체 작업

 

  그랑디에가 작업 책임자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마지막 돌덩이까지 싹 제거하랍니다, 그게 대답이었다. 그러자 주임신부가 자신의 주도 하에 지방장관 수하 병사들에게 아성 주변을 둘러싸 비상선을 치라고 지시했다. 

 

  2월에 로바르데몽이 돌아왔다. 자신의 은밀한 계략이 들통 난 것을 알고는 다르마냑 부인한테 갖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작업 감독한테 적절한 지시를 깜빡 잊고 내리지 못했습니다. 폐하의 친서도 어쩌다 그냥 가지고 가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마침내 친서를 내보였다. 

 

  아성이 일단은 무사하게 됐지만,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 것이며 또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나? 

  국왕의 개인 비서인 미셸 루카스는 추기경의 앞잡이이기도 했는데 왕의 눈앞에서 다르마냑의 평판을 깨라는 지시를 받았다. 분수 모르고 날뛰는 주임신부야 아무 때라도 손봐줄 수 있어. 

 

  1632년 초여름 그랑디에와 다르마냑이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건, 아아, 그야말로 자폭 같은 승리였구나. 

  그들이 추기경 일파의 비밀 서신들을 루카스에게 전달하는 파발을 매수하여 사본을 얻게 됐다. 그 서신들에는 지방장관에 대한 고약한 중상비방 외에도, 추기경 지지자들이 고향 도시 루덩을 파괴하려고 구상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다 담겨 있었다. 

  라모트의 시골집에 머물고 있던 다르마냑이 득달같이 도시로 달려와서 경종을 울리라고 지시하여 시민들을 모았다. 탈취한 서신들을 광장에서 큰 소리로 낭독하자 루덩 주민들이 얼마나 분개했는지 에르베와 트렌캉을 비롯해 음모자들이 어디론가 쥐새끼처럼 숨어야 했다. 

 

  그러나 지방장관의 승리는 오래 못 갔다. 며칠 뒤 왕궁에 들어와서 그는 자신이 취한 조치에 추기경이 격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르마냑의 미더운 친구요 국무비서인 라브릴리에가 그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서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귀띔했다. 

  아성과 관직, 둘 중 하나를 택해야겠소. 어떤 경우에도 예하께서는 장관이 그 둘 다를 유지하게끔 놔두지 않을 게요. 지금 폐하의 뜻이 어떠하든 성채는 결국 파괴될 테고. 

  그 암시를 다르마냑이 알아차렸다. 그 이후 불가항력적인 것에 맞서기를 포기했다.

   한 해 지나서 루이 13세가 전권대행에게 친서를 또 보냈다. 

  ‘로바르데몽 남작, 그대의 열성을 우리도 알게 됐구려… 이 친서를 보내서 그대의 노고를 치하하고 성채를 완전히 주춧돌까지 다 제거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바이오.’ 

  예상한 대로 추기경이 제 뜻을 관철시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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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는 동안 그랑디에는 지방장관의 전선 못지않게 자신의 전선에서도 싸워야 했다. 성 베드로 교회의 주임신부로 복권되고 며칠 지나 적수들이 푸아티에 주교에게 청원서를 냈다. 

  원하는 사람들은 여기 교구 주임신부의 ‘지저분한 손’이 아니라 다른 성직자들한테서도 성찬례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로슈포제가 이 요청을 기쁘게 수락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교는 자신의 선고에 감히 항소 제기한 자를 벌하는 동시에 밉상스러운 대주교의 콧대를 꺾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새로운 스캔들이 몇몇 터졌다. 

 

  1632년 여름 루이 무소와 아내 필리프가 처음 본 갓난애 세례를 받게 하려고 성 베드로 교회에 왔다. 그 일을 부제한테 위임하는 대신 그랑디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손수 의식을 거행하겠노라고 했다. 무소가 주교의 결정을 들이밀자 그랑디에가 그것은 불법이라 응대하고는 옛 연인의 남편과 맹렬한 언쟁 끝에 자기주장을 굳히기 위해 교회법정에 소송을 냈다. 

 

  새 송사가 시작되자마자 옛 송사도 부활했다. 감옥에서 서신을 적던 때 기독교도로서 품은 느낌은 까맣게 잊었다. 즉,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었다거나, 복수의 갈증이 그를 오해한 이들한테 봉사하려는 갈망으로 대체됐다는, 그 번지르르한 말들이 다 헛소리가 된 것

  티보는 등나무 지팡이로 나를 내리쳤으니, 대가를 치러야 해! 

  다르마냑이 법정 밖에서 일을 수습하라고 몇 번이나 조언했다. 그러나 주임신부는 티보가 제시한 보상을 다 거부했고, 이제 복권되자마자 소송을 낸 것이다. 하지만 티보도 법정에 친구들이 있고, 그래서 그랑디에가 결국 승소하긴 했지만 상대에게 안기려던 타격은 아주 적었다. 

  금화 24 리브르 때문에 (도덕적 훼손이 바로 그 정도로 평가된 것) 적대자들과 화해하거나 최소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그가 깨고 말았다. 

  (<루덩의 악마들> 2편 끝. 3-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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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의 내막, 3권, 구텐베르크 출판

 


 

  그때 파리에서는 그랑디에가 고등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다르마냑의 주선으로) 국왕을 직접 알현하게 됐다. 루이 13세가 주임신부의 권리 침해에 대한 상세한 하소에 마음이 흔들려서 정의를 낱낱이 바로잡으라고 명령했다. 

  그 며칠 뒤 티보가 파리 고등법원에 소환됐다. 그가 주저하지 않고 길을 나설 수 있던 것은 그랑디에를 체포하라는 주교 명령서를 지참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이 사건을 심리했다. 모든 정황이 주임신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티보가 과장된 제스처로 주교의 체포 영장을 꺼내 재판관들에게 건넸다. 그들이 문건을 읽더니 사건 심리를 즉각 연기했다. 

  주임신부가 교회 상급자와 해명한 뒤에 다시 심리하겠소. 

  그건 주임신부 적수들의 승리였다. 

 

  그러는 동안 루덩에서는 그랑디에의 행적에 대한 공식 조사가 시작됐다. 처음엔 편견 없는 민사 담당 경찰 수뇌 루이 쇼베가 조사를 맡았다가 사건이 깨끗하지 못함을 알고 사퇴하자 바로 그, 탁월하게 편파적인 검찰관이 맡게 됐다. 그러자 그랑디에를 겨냥한 비난과 고발이 사방에서 봇물 터지듯 했다. 

 

 성 베드로 교회에서 그랑디에의 부제들 중 하나인 메샹은 주임신부가 (그런 쾌락을 위한 것치고는 분명히 차갑기만 한) 교회 바닥에서 여인들과 뒹구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고 확언했다. 또 다른 성직자 마르탱 부요 신부는 제 동료가 교회 가족 지정석에서 세리제 씨의 숙모인, 죽은 마담 드뢰와 얘기하는 것을 기둥 뒤에서 훔쳐보았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트렌캉이 부요의 진술을 조금 고쳤다. 주임신부가 ‘앞에 언급된 귀부인과 무슨 얘기를 나눴다’고 한 처음 진술이 ‘앞에 언급된 귀부인과 대화하면서 그녀 팔꿈치를 잡았다’로 바뀌었다. 

  한데 가장 신빙성 있는 증언을 할 만한 사람들은 주임신부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즉, 느긋한 하녀들이며 부도덕한 아내들, 명랑한 과부들 그리고 필리프 트렌캉과 마들렌 드브루 등… 

 

  그랑디에가 자기 대신 라로슈포제와 ‘품위 감독관’에게 서신을 보내겠다고 약속한 다르마냑의 조언을 듣고 주교 재판에 자진 출두하기로 결심했다. 파리에서 은밀히 돌아와 사제관에서 하룻밤 보내고 이튿날 동틀 무렵 다시 말안장에 앉았다. 

  조반 먹을 때쯤 약제사가 전모를 알게 됐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는 이틀 전 루덩으로 돌아온 티보가 푸아티에로 뻗은 대로를 따라 전 속력으로 달렸다. 그는 곧장 주교 궁으로 들어가서 관계 당국자들에게 알렸다. 

  그랑디에가 지금 시내에 있는데, 자수한답시고 쇼를 벌여서 치욕적인 체포를 모면하려는 속셈입니다. 그런 계략은 어떡하든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품위 감독관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랑디에가 주교 궁으로 가려고 숙소를 나서다가 칙선변호사 입회하에 체포되어 주교 관구 감옥으로 연행됐다. 약간의 항변이 있었지만 별다른 충돌 없이.

 

  푸아티에의 주교 관구 감옥은 예하 궁전의 한 탑에 있었다. 주임신부가 여기서 간수에게 넘겨져 습기 많고 볕이 거의 들지 않는 독방에 갇혔다. 1629년 11월 15일 티보와 몸싸움 벌이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독하게 춥지만 죄수한테 따스한 옷 반입이 허용되지 않았고, 며칠 지나 그의 모친이 면회를 요청했지만 그마저 거부됐다. 두 주일을 끔찍이 고생하다가 라로슈포제에게 탄원서를 썼다. 

 

  「예하시여, 나는 심신의 고뇌가 천국에 이르는 참된 길이라고 언제나 믿으며 다른 이들한테 그렇게 강조하기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하의 선하심이 내 지옥행을 염려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구제하고자 갈망하여 나를 이곳에 내던지시기 전까지 나는 그 진리의 옳음을 시험해 볼 길이 전혀 없었나이다. 이곳에서 견디기 힘든 고뇌의 보름 동안 나는 이전 평안했던 사십 년 기간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됐습니다.」 

  이 서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자부심과 성서의 암시들로 가득하고 화려한 문장이 정성스럽게 이어졌다. 이런 식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얼굴을 사자의 얼굴과 기꺼이 합쳐 놓았습니다. 달리 말해, 예하께서 보이신 온화함은 내 적수들의 가혹함과 함께 나를 하늘나라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했습니다. 그 적수들이야 저희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또 다른 요셉처럼 나를 파멸시키려 드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이 죄인을 괴롭힌 증오와 적의가 기독교의 사랑으로 바뀌고 불타는 복수심은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더 맹렬한 갈망으로 대체됐고… 그리고 나사로에 관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 징벌 목적이 삶의 교정이고 두 주간 감옥 생활 끝에 그의 삶이 교정된 만큼 지체 없이 풀려나야 한다는 호소로 결론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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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하고 과장된 스타일이라는 장치에서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글월은 인생과 같지 않다. 기법과 행위를 관장하는 규칙이 서로 다르다. 

  우리한테는 터무니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랑디에의 서한체가 17세기 초에는 아주 자연스럽고 신실한 감정으로 보였다. 시련이 그를 신에게 더 다가들게 했다는 믿음이 진정한 것임을 의심할 근거가 우리에겐 없다. 단지, 그렇게 다시 얻은 평안도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시련의 결실을 원상태로 돌리고야 만다는 것을, 그것도 15일이 아니라 단 15분 만에 그렇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불행히도 그가 제 본성을 너무 몰랐다. 

 

  이 탄원서에 주교가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그런데다가 이제 주교가 다르마냑과 그의 친구인 보르도 대주교의 서신을 또 받았는데… 이 지독히 꺼림칙한 하급 사제가 그런 영향력 있는 친구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극히 불쾌했다. 더더욱 참을 수 없는 점은… 

  흠, 그 친구라는 자들이 나한테, 라로슈포제 가문의 대표자한테, 학식 높은 인사한테, 학식 면에서 대주교는 내 마구간의 말보다도 못한데, 그런 그들이 나더러 교회의 어떤 법규를 따라야 한다고 감히 요구하고 나서다니! 이야말로 도저히 참을 수 없지! 그들이 주제넘게 나서지 않아도 순종하지 않는 젊은 신부를 내 다 알아서 처리할 게야! 

  주교가 죄수를 이전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다루라고 지시했다.

 

  이 힘겨운 나날에 주임신부를 찾아온 이들은 예수회 수사들뿐이었다. 그는 한때 그들의 제자였고 그들은 이제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선량한 수도사들은 영적인 위로뿐 아니라 따뜻한 양말 등속과 바깥세상의 편지들도 들고 왔다. 

  편지를 읽고 그랑디에가 알게 된 사실은… 다르마냑이 법무대신을 포섭했고, 법무대신은 티보와 관련된 사건을 루덩의 검찰관으로서 트렌캉이 다시 수사하라 지시했고, 그 뒤 티보가 다르마냑을 찾아와 화해를 제시했지만 ‘교회 대장부들’이 그건 그들 불법행위를 묵과하는 꼴이 될 터이니 어떤 합의에도 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것. 

 

  주임신부가 다시 힘을 얻어 주교에게 서한을 한 통 더 보냈다. 회답이 없었다. 세 번째 탄원서를 써 보낸 뒤 티보가 감옥으로 찾아와 법정 밖에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거부했다. 

  돈에 팔려 그를 고발한 증인 둘이 12월 초 푸아티에 법정에 나왔다. 한데 그들에게 호의를 보이던 판사들조차 진술을 듣고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 베드로 교회 대리 신부인 메샹에 이어 드뢰 부인과 교회 가족석에 있는 그랑디에를 훔쳐봤다는 다른 성직자가 나섰다. 그들의 증언도 부그로와 세르본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거의 설득력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진술들로는 그 누구한테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라로슈포제 주교는 형평법이나 법적 절차 같이 사소한 것들 때문에 제 길을 못 갈 사람이 아니었다. 1630년 1월 3일 최종 판결이 떨어졌다. 

  그랑디에는 석 달 동안 금요일마다 빵과 물만 먹고 푸아티에 주교 관구와 루덩 시 전역에서 5년 동안 사목 활동을 금지한다. 

  이 판결은 주임신부에게 재정적 몰락과 출세의 좌절을 의미했다. 그 대신 자유로운 몸이 됐다. 이제 다시 난롯불을 쬐고 (금요일 이외엔) 맛난 음식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친척이며 친구들과 얘기 나누고, 자신을 그의 아내라 믿고 (극도로 조심스레!) 찾아오는 여인과 밀회하는 자유를 얻었다. 또 라로슈포제의 상급자인 보르도 대주교에게 호소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그랑디에가 사건을 대주교 관구로 가져가겠다는 결심을 가장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투로 밝힌 서신을 푸아티에로 보냈다. 

 

  라로슈포제가 자부심이 상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이 용인할 수 없는 무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교회법 같은 추잡한 것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단 말이냐?!  교회법은 아무리 직급 낮은 성직자에게도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랑디에가 대주교에게 호소할 것이라는 소식이 트렌캉과 다른 음모자들에게 마뜩할 리 만무했다. 대주교는 다르마냑과 우의가 두텁고 라로슈포제를 싫어했다. 호소가 먹혀들 수 있다고 겁낼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루덩 시가 영원히 주임신부 수중에 들어간다는 뜻이리라. 그 호소가 먹혀들지 못하게 하려고 그랑디에의 적수들도 항소했다. 더 상급 교회법정이 아니라 파리 고등법원에. 

 

  푸아티에 주교와 그의 품위 감독관은 교회재판관들로서 금식이나 (극단적인 경우) 파문 같은 영적 징벌만 부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 법정은 교수형도, 사지절단형도, 낙형도, 강제노동도 선고할 수 없었다. 이런 형벌은 다 세속 법정의 사법권에 속했다. 하지만 그랑디에가 교회재판에서 유죄로 선고된 만큼 지상 권력 앞에서도 유죄가 되기에 충분해! 어쨌든 상소가 제출됐고, 재판이 돌아오는 8월 말로 잡혔다. 

 

  이번에는 주임신부가 노심초사하게 됐다. 불과 6년 전 ‘영적 인세스트[각주:1]와 신성 모독적인 방탕’ 때문에 산 채로 화형당한 시골 주임신부 르네 소피에 사건이 검찰관만큼이나 그의 기억에도 아주 생생했다. 그랑디에가 그해 봄과 여름을 다르마냑의 교외 저택에서 보냈는데 다르마냑이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시오, 소피에 사건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 그는 범죄 현장에서 체포된 데다가 법정에 친구들도 없었잖소. 반면에 이 경우에는 증거가 전혀 없고 법무대신이 도움을 주거나 최소한 호의적인 중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오. 그러니 다 잘 될 게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사건을 심리하게 됐을 때 판사들은 그랑디에의 적수들이 가장 우려하던 결정을 내렸다. 

  심리를 푸아티에의 형사 담당 경찰 수뇌가 맡아 재개하라. 

  그건 거기 판사들이 편견 없으며, 증인들은 가장 면밀한 반대심문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전망이 하도 우려스럽다 보니까 증인 중 하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쪽을 택했고... <2편 5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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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spiritual incest - 동시에 세례를 받은 사람끼리 혼인하거나 육체관계를 맺는 것. 영적 간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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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 1634년 화형

 


 

  아담의 약제용 악어 아래 저녁마다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가 가장 크고 원한이 가장 독했다. 주임신부를 극도로 혐오하지만 그가 일을 하도 교묘하게 처리한 바람에 분한을 그에게 불리한 쪽으로 분출할 수 없었다. 강요된 무위를 험한 언어로 벌충할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지만 적어도 토로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토로했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모욕적인 말로 지껄여댔기 때문에 마들렌의 친척들이 이른바 ‘중상 비방’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고해사제와 마들렌의 밀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트렌캉과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설정된 진실이 가장 좋은 진실이라 믿었다. 

  Magna est veritas legitima, et praevalebit.[각주:1] 이런 금언에 의거하여 그들은 마들렌에게 아담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고 설득했다. 사건을 심리한 파리 고등법원이 약제사한테 유죄를 내렸다. 

 

  그러자 드브루 집안과 썰렁한 관계이고 그랑디에를 가증스럽게 여긴 지역 토호가 약제사 이름으로 항소했다. 두 번째 심리가 이뤄졌고, 거기서 하급법원의 판결이 확정됐다. 가엾은 아담에게 금화 640 리브르를 배상금으로 지불하고 두 차례 소송비용을 다 부담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것만이 아니다. 치안판사들과 마들렌 드브루와 그녀 친척들이 있는 자리에서 무릎 꿇고 모자 벗고 “앞에 언급된 처자를 겨냥해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말을 분별없이 악의적으로 입에 올렸다”고 말하고, 그러니 이제 그녀가 정조 있고 행실 바른 처녀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과 국왕과 법정과 당사자인 마드무아젤 드브루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법적 진실이 화려한 승리를 거두었다. 

  변호사들과 검찰관, 경찰 수뇌가 패배를 인정했다. 

 

  앞으로 그랑디에를 공격하더라도 내연녀인 마들렌만큼은 못 건드리게 됐어! 

  그럴 수밖에 없지, 그녀 외가가 쇼베 가문이고, 세리제가 그녀의 사촌이고, 드브루 집안이 타바 가문이며 드뢰, 젠보 가문과 사돈인 바에야! 

  그렇게 막강한 친인척을 배경으로 둔 여자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정조 있고 행실 바른 처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반면에, 약제사가 정말 안 됐어. 위자료 때문에 파산 지경에 이르렀으니, 쯧쯧. 

 

  오호라, 인생이란 그런 것이고, 신비한 분배 섭리가 그렇구나. 우리는 저마다 작은 십자가를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사도가 공정하게 지적했듯이 누구나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 

 

  새로운 인물 둘이 우르뱅의 적진에 가담했다. 한 사람은 저명한 법률가요 왕실 법률고문인 피에르 메노. 그는 여러 해 동안 줄기찬 청혼으로 마들렌을 괴롭혔다. 매번 거부당하면서도 기죽지 않았으며 언젠가는 마드무아젤과 지참금과 부러운 연줄을 다 차지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마들렌이 주임신부에게 몸을 맡김으로써 제 권리라고 여겼던 것이 좌절됐음을 알고는 분개심이 하늘 끝까지 치솟을 수밖에! 그의 절규를 트렌캉이 공감하는 심정으로 경청하고 위로의 방편으로 참모회의 자리 하나를 제시했다. 제안이 선뜻 수락됐고, 이제부터 메노는 음모 집단의 가장 적극적인 멤버 축에 들게 됐다. 

 

  그랑디에의 두 번째 새로운 적은 메노의 친구인 자크 티보. 지역 토호인 그는 예전에 병사로 복무하다가 이제 리슐리외 추기경의 비공식 에이전트로서 지방 정치에 발을 좀 들여놓고 있었다. 티보는 애초부터 주임신부를 싫어했다. 

  시시껄렁한 하급 사제요 변변치 못한 계층 출신 주제에 카발리에가 기르는 콧수염을 기르고 고관대작처럼 무게를 잡다니! 게다가 라틴어 좀 안다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꼴이란, 소르본 박사처럼 말이야! 그런데 이제 왕실 법률고문의 신붓감을 감히 빼앗아 가? 안 돼, 그런 자는 손 좀 봐줘야 해. 

  티보가 첫 번째 행보로 그랑디에의 가장 막강한 친구요 후견인들 중 한 사람인 벨레 후작을 찾아갔다. 그랑디에의 죄업을 있는 것 없는 것 죄다 들추며 열변을 토하자 후작이 입장을 확 바꾸어서 그 뒤로는 어제의 친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각주:2]처럼 대했다.

 

  그랑디에가 몹시 상처 받고 적잖이 동요했다. 후작이 등 돌린 일에서 티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둘러 귀띔했다. 나중에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주임신부가 (제의를 다 갖춰 입고 마침 성 베드로 교회로 들어가는 중에) 적대자에게 쓰디쓴 질책을 퍼부었다. 응답으로 티보가 말라카 지팡이를 번쩍 들어 그랑디에의 머리를 겨냥해 내리쳤다. 

  루덩 전투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랑디에가 먼저 공세를 취했다. 티보에게 앙갚음하겠노라 다짐하고는 다음날 아침 파리로 떠났다. 

  성직자에게 가한 폭력은 행동으로 보인 신성 모독이요 교회를 더럽힘이야. 이 문제를 고등법원에, 법무대신한테, 재상한테, 국왕한테까지 들고 가겠어. 

 

  그의 출발과 여행 목적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담이 소상히 알게 됐다. 약재 찧던 절굿공이를 내던지고 검찰관에게 알리러 달려갔고, 검찰관은 즉각 하인을 보내 동맹자를 모조리 소집했다. 

  그들이 도착해서 이런저런 논의 끝에 역공 계획을 세웠다. 

  주임신부가 국왕께 호소하러 파리로 가고 없는 동안 우리는 푸아티에로 가서 주교에게 고발하는 거요. 

  문건이 최고의 법적 형식으로 작성됐다. 그 문건에서 주임신부는 수많은 기혼녀와 젊은 처녀들을 유혹했으며, 신을 욕되게 하고 불경스러우며, 기도서를 전혀 읽지 않고, 또한 담당 교회 구역에서 간통을 범했다고 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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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진술을 소위 ‘법적 진실’로 바꾸기란 아주 간단했다. 아담이 우시장에 달려가서 꾀죄죄한 사람 둘을 데리고 금방 돌아왔다. 둘은 보수만 좀 받으면 어떤 문건에든 기꺼이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부그로라는 자는 글을 쓸 줄 알지만 세르봉이라는 자는 겨우 십자 표시만 할 수 있었다. 일이 끝나자 ‘증인들’이 보수를 챙겨서 킬킬대며 선술집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아침 검찰관과 경찰 수뇌가 말에 안장을 얹고 푸아티에로 느긋하게 떠났다. 거기서 그들은 주교의 법률 대리인, ‘품위 감독관’을 찾아갔다. 그들은 그랑디에가 이미 주교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환호했다. 

  주임신부의 애정행각이 그의 상관들 귀에까지 들어갔어! 

  음란함과 무분별에다 더 심각한 죄인 오만불손이 추가돼 있었다. 예를 들어, 바로 얼마 전 이 파렴치한은 사흘간의 사전 혼인 예고도 하지 않은 채 혼례를 허가하고 그 대가를 제 주머니에 넣음으로써 감독기관의 권위를 침범하는 방약무인을 저질렀다. 이 젊은 수탉의 날개를 분질러 놓을 때가 됐다. 루덩의 신사들이 아주 적절한 때에 온 것이다. 

 

  트렌캉과 에르베가 품위 감독관의 추천장을 가지고 주교 예하를 뵈러 말을 달렸다. 주교 관저는 시내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디쎄의 웅장한 성 안에 있었다. 

 

  앙리 루이 라로슈포제는 주교들 중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귀족 가문의 권리로 고위성직자가 됐지만, 그러면서도 학식 있는 인물이요 놀라운 성서 해설서의 저자였다. 그의 부친은 조셉 스칼리제르의 후견인이요 평생지기였고, 바로 이 저명한 학자한테서 젊은 귀족이요 나중에 푸아티에 주교가 된 그가 가르침을 받는 혜택을 누렸다. 마크 패티슨[각주:3]의 표현을 빌자면 조셉 스칼리제르는 ‘지금까지 지식을 얻느라 평생을 보낸 지성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성.’ 

  스칼리제르[각주:4]의 프로테스탄티즘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간 개량에 관한 연구>라는 저서를 두고 예수회에서 진저리날 정도로 비방하는 것도 무릅쓰고 라로슈포제가 옛 스승한테 확고부동하게 충실했다는 점은 그의 신용에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 사실, 다른 모든 이단자들한테는 라로슈포제가 무자비한 적의를 과시했다. 주교 관구에 아주 많은 위그노들을 미워하고 그들 삶을 망가뜨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러나 자선과 마찬가지로 나쁜 기질도 의인들 마당에나 죄인들 마당에나 골고루 내리는 비처럼 신성하게 공평하다. 같은 가톨릭신자라 해도 그를 화나게 하면 주교께서는 신교도 대하듯이 호되게 다룰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 까닭에, 콩데 공이 섭정 마리 메디치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1614년 이백 가구가 도시에서 성 밖으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사건도 그들이 성문을 통과하려 하면 화승총을 일제히 발사하라고 그들의 성직자가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불행한 이들의 죄는 무엇이었나? 왕비가 지명했지만 라로슈포제 자신이 싫어한 지방장관에게 충성한다는 이유였다. 대공이 왕비께 ‘전대미문의 파렴치한 짓을 범한 이 성직자를’ 징벌하라고 청했다. 물론 그 어떤 형벌도 따르지 않았고 이 주교는 고령에 졸중으로 타계한 1651년까지 푸아티에에서 계속 군림했다. 

 

  쉽게 발끈하는 귀족이요 작은 폭군, 책을 사랑하는 학자로서 서재 바깥 세계는 독서라는 진지한 작업에 괘씸한 방해물로 여긴 사람. 그랑디에의 적대자들이 알현하러 간 인물은 그런 성향이었다. 반시간 만에 그가 결정을 내렸다. 

  주임신부가 골칫거리였구나, 교훈을 줄 필요가 있겠소. 

  그랑디에를 체포하여 푸아티에 시에 있는 주교 관구 감옥에 가두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비서가 칙령을 작성한 뒤 서명 받아 봉인했다. 그 문건이, 재량껏 이용하라는 언질과 함께 트렌캉과 에르베에게 전달됐다. 

 

  그때 파리에서는 그랑디에가 고등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국왕을 직접 알현하게... <2편 4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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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1. 법적 진실은 위대하고 우월하다. (라틴어) - 저자 주. [본문으로]
  2. persona non grata - 호감 가지 않는 사람. 주재국 정부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외교관. [본문으로]
  3. Mark Pattison(1813-1884) - 영국 성직자, 옥스퍼드 소재 링컨대학 학장. [본문으로]
  4. Joseph Scaliger(1540-1609) -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활동한 휴머니스트 인문학자, 역사가, 무인. 저서 <시간 개량에 관한 연구 de emendatione temporum>는 현대 연대학의 효시. [본문으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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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우울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희망이 있어, 그럴 듯한 스캔들을 만드는 거지. 그자를 현장에서 붙잡을 수 있게끔 어떡하든 상황을 조장하는 게요. 그 죽은 양조업자의 과부하고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약제사가 우울한 표정으로 알렸다. 

  그쪽에는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정보가 없어요. 여편네가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 그 집 하녀는 매수가 안 되고… 그렇잖아도 내가 간밤에 덧창 틈으로 동정을 살피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누군가가 이층 창문에서 철철 넘치는 요강을 쏟아 붓지 뭐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주임신부는 여전히 태연하고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평소처럼 제 비즈니스와 쾌락을 즐기며 나다녔다. 곧 아주 이상한 소문이 약제사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임신부가 마드무아젤 드브루와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군. 

  아, 그 고상하고 독실한 체하기로 유명한 마들렌하고? 

 

  마들렌은 르네 드브루의 세 딸 가운데 둘째이고, 르네 드브루는 재산이 넉넉한데다가 귀족이며 지역 최고 가문들과 혈연관계가 두터웠다. 마들렌의 두 자매는 이미 시집을 갔다. 하나는 내과의한테, 또 하나는 지방 대지주한테. 그러나 서른이 다 된 마들렌은 미혼으로 자유로이 살았다. 구혼자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그녀가 다 퇴짜를 놓았다. 집에 남아서 늙은 부모를 보살피며 자신만의 관심사를 생각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그녀는 신중하고 초연한 태도 아래 강한 감정을 억누르며 조용하고 수수께끼 같은 젊은 여인 축에 들었다. 나이 든 세대는 그녀를 칭찬하지만 동갑나기와 후배 중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까칠하고 젠체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또 자기네 요란한 놀이에서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흥을 깨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나치게 독실했다. 

  종교야 아주 좋지, 하지만 사생활의 신성함을 침범당해서야 되겠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툭하면 성찬례를 받고 하루걸러 고해를 하고 성모 상 앞에서 몇 시간씩이나 무릎 꿇다니 말이야. 

  아냐,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너무 심해. 

  그들이 그녀를 멀리했다. 그건 마들렌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 부친이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친이 암에 걸렸다. 노부인이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병치레하는 동안 그랑디에가 자주 찾아왔다. 배부른 줄 모르는 과부와 검찰관 딸의 일만으로도 정신없지만, 가엾은 여인에게 종교적 위안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죽음의 침상에서 드부르 부인은 딸한테 그의 조언을 잘 따르라고 당부했다. 주임신부가 마들렌의 물질적, 영적 문제들을 제 일처럼 잘 지켜주겠노라 약속했다. 나중에 약속을 지켰다. 비록 자신의 특유한 방식으로 했지만.

 

  모친이 죽고 한동안 마들렌은 세속 인연을 다 끊고 수녀원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 생각을 영적 조언자한테 밝히면서 상담했을 때, 그가 그 계획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랑디에가 강력히 주장했다. 

  수녀원 안보다 바깥에서 당신은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오. 우르술라회나 카르멜회의 수녀가 되면 자기 재능을 감추는 꼴이 될 게요. 당신 자리는 여기, 루덩에 있소. 당신 소명은 썩기 쉬운 허영심만을 생각하는 멍청한 처녀들한테 반짝이는 지혜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오. 

 

  그가 청산유수로 말했고, 그 말에는 신성한 영력이 있었다. 두 눈에서 불길이 일고, 내면의 열기와 영감으로 얼굴이 환히 빛나는 듯했다. 마들렌이 생각했다. 이분은 사도처럼 보여, 천사처럼 보여. 이 말이 다 옳아,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녀가 양친 모시고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 집이 아주 어둡고 쓸쓸해 보였기에 거의 모든 시간을 친구인 (거의 유일한 친구인) 프랑수아즈 그랑디에와 함께 보냈다. 그녀는 사제관에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둘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깁거나 성모나 성인들을 위해 화려한 수를 놓으며 앉아 있는 자리에 때때로 그랑디에가 끼어들었다. 

이보다 더 자연스러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세상이 갑자기 더 환해지고 신성한 의미로 충만한 것처럼 보였으며, 마들렌 얼굴이 행복에 겨워 장밋빛이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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