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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망설임이 적고 식욕은 좋은 농촌 처녀들이며 도시 과부들과 함께 주임신부는 원하는 만큼 자기초월을 얻을 수 있었다. 한데 이제 필리프 트렌캉이 가장 쾌적하고 멋진 종류의 자아확인 기회를 제공했다. 거기엔 정복이 완료됐을 때, 뭔가 특별하고 맛난 종류의 관능적 자기초월이라는 속편이 따르리라는 설렘까지 곁들였다. 정말 즐거운 꿈이야! 

 

  그러나 그 실행 노선에 상당히 골치 아픈 장애물이 버티고 있었다. 필리프의 아버지는 루이 트렌캉이고, 그는 주임신부의 가장 좋은 친구요, 수도사들이며 경찰 책임자며 기타 여러 적대자들과의 투쟁에서 가장 든든하고 단호한 우군이었다. 트렌캉은 그를 신뢰했다. 그냥 신뢰한 게 아니라 딸들이 예전 고해사제를 거부하고 그랑디에한테 고해성사를 받게 할 만큼 전적으로 신뢰했다. 

 

  우리 딸들한테 주임신부께서 자식의 도리와 여성의 정숙함을 일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신부께서는 어떻게 여기시나요, 필리프한테 기욤 루제는 짝으로서 좀 떨어지지 않나요? 그 청년을 프랑수아즈와 혼인시키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필리프가 라틴어를 잊으면 안 되겠지요. 틈틈이 돌봐줄 만한 시간을 내실 수 있겠는지? 

  그런 신뢰를 악용한다는 것은 가장 사악한 범죄일 터. 그런데 바로 그 사악한 성격 자체가 그것을 저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달리 말하자면, 도덕적 관점에서 행위의 불허용성 자체가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 

 

  육체 활동과 감각 수준에서부터 도덕과 지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모든 존재 수준에서 어떤 경향과 의도는 전부 그 반대되는 것을 발생시킨다. 빨간 뭔가를 볼 때 우리의 시각 감응은 녹색 지각을 강화하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 빨간 대상 주변에서 심지어 녹색 후광을, 또 대상을 치운 뒤에도 녹색 잔상을 보게끔 만든다. 우리가 움직이려고 할 때 근육 한 세트가 자극을 받고, 반대되는 근육들이 척추 감응에 의해 자동으로 억제된다. 

  의식이라는 더 높은 수준에서도 같은 원리가 유효하다. 모든 ‘yes’마다 그에 상응하는 ‘no’가 초래된다. “어중간한 신조보다 정직한 의심에 신뢰가 더 큰 법, 내 말을 믿어 봐요.”[각주:1] 그리고 (새뮤얼 버틀러[각주:2]가 오래 전에 지적한 대로, 또 우리 이야기 내내 많은 경우에서 알아차릴 기회가 있게 되듯이) 브래들로[각주:3]와 모든 마르크스주의 교재들보다 정직한 믿음에 의혹이 더 많은 법… 내 말을 믿어 보시라. 

 

  도덕 교육에서 감응은 특히 어려운 문제를 내포한다. 만약 모든 ‘yes’가 그에 상응하는 ‘no’를 자동으로 불러내는 경향이 있다면, 올바른 행위에 반대되는 그릇된 행위를 감응 법칙대로 주입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올바른 행위를 어떻게 심어줄 수 있단 말인가? 

  감응을 매끈하게 우회하는 방법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늘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고집 부리며 ‘엇나가는’ 아이들과 시종일관 ‘반정부적인’ 청년들과 심술궂고 율법에 반하는 어른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심지어 양식 있고 자제심 있는 이들조차 행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에 정반대되는 쪽으로 기울고자 하는 유혹을, 모순처럼 간간이 겪는다

 

  악을 행하려는 이 유혹은, 게다가 아무런 목적과 이득도 없이 그냥 하려는 이 유혹은, 상식과 범절에 대한 ‘사심 없는’ 저항이라 부를 만하겠다. 이런 감응적인 유혹은 대부분 제대로 억제되지만, 결단코 전부 그렇지는 않다. 

  합리적이고 반듯한 사람이 난데없는 욕구에 굴하여 뭔가를 저지른 뒤 경악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런 경우, 그 행위는 그 사람에게 낯설고 본래 모습에 적대적인 어떤 힘에 의해 이뤄진다. 사실상 그 사람은 (기계장치들이 종종 그렇듯이) 순종하는 도구에서 통제를 벗어나 명령자로 바뀌는, 완전히 중립적 심리 메커니즘의 희생양이다. 

 

  필리프는 지극히 아름다운데, “아무리 굳은 맹세도 혈관에 있는 불길에는 검불일 뿐이야.”[각주:4] 그러나 혈관에 불길이 있는 것처럼 뇌에는 감응이 있다. 

  자, 트렌캉은 주임신부의 가장 좋은 친구이다. 한데, 배신은 괴물 같은 짓이라는 생각 자체가 친구를 배신하려는 심술궂은 갈망을 야기했다. 그런 유혹에 맞서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대신 그는 거기에 굴복하기 위한 근거를 찾게 됐다.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그렇게 매혹적인 처녀의 아버지가 남을 그리 쉬이 믿어서는 안 되지. 그건 진짜 어리석은 거야, 아니, 어리석은 것보다 더 나쁜 거야. 그렇다면 마땅한 벌을 받아야겠군. 음, 그래, 라틴어 수업을 해야겠어! 

 

  그건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스토리의 재연이었다.[각주:5] 스스로 유혹자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숙부 풀베르의 역할을 여기서는 검찰관이 떠맡았을 뿐. 

  아, 부족한 것이 딱 하나 있어, 엘로이즈의 스승은 필요한 경우 회초리를 쓸 수 있었지. 그렇긴 해도, 그가 청한다면 얼빠진 트렌캉은 그것조차 허락할 테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과부가 여전히 화요일마다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다른 요일에는 대개 그가 검찰관 저택에 머물렀다. 프랑수아즈는 벌써 시집갔지만 필리프는 여전히 아버지 집에 살며 라틴어 공부에서 뛰어난 진전을 보였다. 

 

지상의 모든 피조물은 

사람도, 짐승도, 바다생물도, 가축도, 화려한 새들도 

다 맹렬한 정염을 갈구해. 

사랑은 모두에게 매한가지. 

 

  알고 보니, 식물도 미묘한 정욕을 느끼더라. 

 

야자수들은 똑같은 충동에서 서로 흔들리고, 

포플러들은 뜻을 맞추어 살랑거리며, 

플라타너스들도 역시 그래, 

그리고 오리나무는 다른 오리나무한테 속삭이누나. 

 

  필리프가 스승을 위해 시에서 더 달콤한 구절과 신화에서 가장 외설적인 일화를 부지런히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주임신부는 보기 드문 절제를 발휘하여 (그것도 과부와 정기적인 만남 덕분에 가능한 것) 여제자의 명예를 훼손할 짓이나 혹은 애정 고백이나 파렴치한 암시로 해석될 수 있는 짓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변함없이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제자를 끌어당겼으며, 자기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현명한 여성이라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말해 주었다. 필리프는 아주 가끔 눈길을 내리깔고 두 뺨을 발갛게 물들일 정도로 응시하기만 했다. 그건 다 시간 낭비 같지만 재미가 없지도 않았다. 다행히 곁에 늘 니농이 있었고, 역시 다행히도 처녀가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스토리의 재연

 

  둘이 한 방에 앉아 있지만 같은 세계에 있지는 않았다.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지만 아직 여인이 된 것도 아닌 필리프는 순수와 성숙함 사이에 위치한 장밋빛 판타지 세상의 거주자였다. 그녀의 거주지는 루덩의 지저분한 여자들과 따분한 자들과 촌스러운 남자들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동트는 사랑과 관능적 체험의 빛으로 찬란한 저만의 이상향에 있었다. 이 천국에는 또 그녀의 신이 있고. 

 

  까만 두 눈, 돌돌 말아 올린 콧수염, 잘 다듬은 흰 손… 그런 것들이 양심의 가책처럼 그녀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랐다. 어디 그뿐이야, 위트가 풍부한데다 지식은 또 얼마나 심오해! 대천사와 다를 바가 없어서, 대천사가 아름다운 것만큼이나 그는 현명하고, 대천사가 현명한 것만큼이나 그는 친절해. 나를 총명한 사람이라 여기고, 열심히 공부한다고 칭찬하잖아. 무엇보다도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대하면 마음이 설레는걸. 그이도 역시 그럴까? 아, 아니야, 이런 생각 자체가 신을 모독하고 죄를 짓는 거야. 하지만 내 감정을 어떻게 고백하지? 그이한테 말이야. 

 

그녀가 라틴어 문구에 바짝 집중하려고 했다. 

 

Turpe senex miles, turpe senilis amor.[각주:6]

 

  그러나 잠시 뒤 희미하지만 격렬한 열망에 압도됐다. 상상에서 막 시작된 쾌감의 장면들이 마음을 꿰뚫는 눈길이며 털이 많은 흰 손과 갑자기 연결됐다. 책갈피가 눈앞에서 떠다니는 것만 같아 말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지저분한 늙은 병사”라는 말을 흘렸다. 

  그가 자를 들어 그녀 손등을 가볍게 때리면서 “네가 사내애가 아닌 게 다행이야” 하고 말했다. 만약 사내애가 그런 실수를 했다면 훨씬 더 엄한 벌을 받았을 테니까. 그가 허공에서 자를 흔들었다. 훨씬 더 엄한 모습으로. 필리프가 그를 바라보다가 금방 눈길을 돌렸다. 두 뺨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다. 

 

  행복한 혼인이라는 환상에서 이미 벗어나고 평범한 생활에 익숙해진 프랑수아즈가 부부관계라는 전선에서 언니한테 생생한 리포트를 들고 왔다. 필리프가 흥미롭게 들었지만, 저한테는 모든 게 늘 전혀 다를 것이라고 속으로 확신했다. 

  몽상이 계속되면서 갈수록 더 구체적인 형태를 띠었다. 어떤 순간에는 그녀가 살림을 꾸리며 주임신부와 함께 살았다. 또 어떤 순간에는 그가 푸아티에의 주교로 임명되고 주교 관저와 교외에 있는 그녀 집 사이에 지하통로가 설치됐다. 아니면, 그녀가 10만 리브르를 상속받게 되어 그가 교회를 떠나고 둘이 시골 영지와 궁정을 오가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르든 늦든 매번 몽상이 끝나면, 자신은 필리프 트렌캉이고 그는 주임신부라는 사실을 암울하게 깨달아야 했다. 그래, 그이가 설령 나를 사랑한다 해도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고 밝힐 수 없다는 뜻이야. 설령 그렇다고 고백한다 해도 난 행실 방정한 처녀답게 귀를 꼭 막아야 해. 

  그럼에도 당장에는 바느질고리나 책이나 자수틀을 앞에 두고 상상해선 안 될 것을 상상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가 문 두드리는 소리며 그의 발소리, 그의 목소리를 듣는 건 또 얼마나 큰 기쁨이야! 아버지 서재에서 그이와 함께 앉아 오비디우스를 번역하고, 혼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싶어 일부러 실수하는 것은 근사한 고문이요 천상의 고통이야. 

  추기경과 저항적인 프로테스탄트들, 게르마니아 전쟁, 선행적 은총에 대한 예수회의 입장, 그의 승진 전망 같은 것을 얘기하는 그 성량 풍부하고 울림 좋은 목소리를 듣는 것은… 아, 그건 즐거운 시련이요 천상의 연옥이야. 영원히 이렇게 지낼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건 (마드리갈의 끝이 아주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로, 초저녁 박명이 주변 모든 것을 동화 같은 빛으로 감싼다는 이유 하나로) 여름날 석양이 영원히 지속되고 황금빛 가을이 절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녀는 제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마음 한 구석에서 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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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1. "There lives more faith in honest doubt, Believe me, than in half the creeds." - 알프레드 테니슨 경. [본문으로]
  2. Butler Samuel (1835-1902) - 영국의 철학자, 작가, 화가, 신학자. [본문으로]
  3. 브래들로 (Bradlaugh Charles, 1833-1891) - 영국의 사상가, 급진적 무신론자. the National Secular Society 설립. [본문으로]
  4. “The strongest oaths are straw to the fire in the blood." - 셰익스피어 [본문으로]
  5. 엘로이즈 (Heloise, 1101-1164) - 프랑스 수녀, 명성 높은 철학자 아벨라르의 (Abélard, 1079-1142) 제자이자 애인. 두 사람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르네상스 시대 감상적 유럽 레이디들에게 큰 인기를 거두었다. [본문으로]
  6. An old man‘s soldiering is foulness, and foulness an old man’s love. 늙은 병사는 보기 흉해, 늙은이의 사랑도 보기 흉해. - 오비디우스의 <연가>에서. [본문으로]</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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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 true story of Demonic Possession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상황이 무르익어 갔다. 검찰관은 중년 홀아비인데 혼기 맞은 딸 둘을 데리고 있었다. 장녀 필리프는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1623년 겨우내 주임신부가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그 앳된 처녀가 부친의 손님들 가운데서 오가는 걸 지켜보며 그녀를 한 젊은 과부의 어른거리는 이미지와 조목조목 비교하곤 했다. 

 

  포도주 양조업자인 남편이 일찍 죽은 뒤 그 가엾은 과부를 이제 화요일마다 찾아가 위로하는 중이었다. 니농은 일자무식이어서 제 이름 하나 겨우 쓸 줄 알았다. 그러나 위로할 길 없는 상복 아래 풍만한 육체는 신선함과 탄력을 아직 잃지 않았다. 따스함과 순백의 보물이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관능이 축적돼 있는데, 그건 격정적이면서도 정밀하고 거칠면서도 지극히 고분고분하고 잘 훈련된 것이었다. 게다가 천만다행으로, 거기엔 힘들게 무너뜨려야 하는 조빼는 태도도 없고, 거쳐야 할 플라토닉 이상화라든가 페트라르카 풍의 구애라는 피곤한 예선도 없었으니! 이미 세 번째 만났을 때 그가 애송시의 도입부를 과감하게 들려주었다. 

 

얼마나 자주 마음에 그렸던가, 한밤중 은밀한 위안을. 

나이애드(naiad)의 부드러운 몸을 얼마나 뜨겁게 품곤 했던가. 

하지만 이런 환희를, 오호라, 

그대는 아직 선사하지 않았구려. 

 

  니농이 아무런 저항 없이 경청했다. 아주 솔직한 웃음을 날리며 주변을 흘낏 살필 뿐인데, 그 눈길이 결코 모호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방문을 마칠 때 그가 타위로의 시를 한 번 더 인용했다.[각주:1] 

 

아듀, 오, 감미로운 속삭임이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어깨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가슴이여, 

아듀, 물망초 같은 두 눈이여. 

아듀, 앙증맞은 두 손이여, 

아듀, 친근한 장난들이여, 

영원히 아듀, 소중한 친구여, 

그대와 달콤한 시간 보냈구려. 

하지만 이제 작별 시간에 다시 불러 

한 번이라도 더 사랑을 맛보게 해주구려. 

은보다 더 깨끗한 가슴과 대리석 허벅지 사이에서. 

 

  아듀… 그건 그녀가 주간 고해와 일상적 속죄를 위해 성 베드로 교회에 오게 될 모레까지라는 뜻. (그는 주간 고해성사를 아주 중시했다.) 그때부터 다음 화요일까지 그는 성모축일에 펼칠 강론을 준비했다. 그 설교는 생마르트 노인을 추도해 연설한 이래 그가 행한 가장 성공적인 일이었다. 

 

  어쩜 저렇게 청산유수일까! 주제 선택과 심오한 학식은 또 어떻고! 납득하기 쉽지 않은 신학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솜씨란! 박수갈채와 축하가 쏟아졌다. 하지만 경찰 수뇌가 격노하고 수도사들이 질투 때문에 퍼렇게 질렸다. 

 

그랑디에와 니농의 밀회

 

  주임신부님, 정말 놀라웠어요! 신부님은 둘도 없는 재능이에요! 

  그는 영광의 불꽃 속에서 다음 밀회에 갔으며, 그러면 그녀가 승리자한테 안기는 화관처럼 그를 끌어안고 보상으로 키스와 애무를 퍼부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포옹이라는 천국에서 최고의 대접이었다.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영적 황홀경이며 천상의 거처며 특별한 은혜와 영적 혼인 따위를 실컷 떠들라고 해! 그에겐 니농이 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필리프를 다시 바라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니농 하나로 과연 충분한 거야? 과부들은 물론 남자를 위로할 줄 알아, 화요일 밀회를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지. 그러나 과부들은 결코 처녀가 아니고, 과부들은 너무 많이 알고, 과부들은 뚱뚱해지기 시작했어. 

 

  반면에 필리프는 앳된 처녀의 섬세한 작은 손과 봉긋한 가슴과 감동적인 목으로 사람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런 젊디젊은 장점에다 소녀 같은 수줍음까지 곁들였으니, 이 얼마나 황홀한가 말이냐! 대담하고 거의 무모하게 교태를 부리다가 급작스레 당혹과 놀람으로 바뀌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람 마음을 끄는 동시에 도발적이며 가슴 뛰게 한단 말이냐! 

  필리프는 클레오파트라처럼 굴면서 남자들로 하여금 안토니오 역할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러다가도 누구든 그 역으로 들어설 기미만 보이면, 이집트 여왕은 홀연히 사라지고 놀라서 연민을 간청하는 어린애만 남았다. 그래서 연민을 얻고 나면 즉각 사이렌이 되돌아와서 유혹하는 노래를 부르고 금단의 열매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완전히 타락한 사람이나 완전히 순수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대담함으로 말이다. 

 

  순수와 순결이란 가장 숭고한 주제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얼마나 멋진 결어인가! 교회 설교단에서 때론 우레처럼 때론 가장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그걸 입에 올리면 여신도들이 죄다 눈물 뺄 것이야. 남자들까지도 감동 먹겠지. 이슬 머금은 백합의 순결, 어린 양과 갓난애의 순수에 대한 고찰은 누구한테든 먹혀든다. 그래, 수도사들이 질투하여 또 퍼렇게 질리겠군. 

 

  그러나 진정한 순수와 순결은 오로지 설교와 천국에만 있는 법이야. 모든 백합은 이르든 늦든 썩게 마련이고, 암양은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숫양의 제물이 된 뒤 도살자 손에 넘어가게끔 운명 지워져 있고, 또 지옥에서는 세례 받지 못한 아기들의 작디작은 유해가 깔린 도로 위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이 어슬렁거리지. 

  대 타락 시대 이후 절대적 순결이 실제로는 절대적 타락과 같은 거야. 젊은 여성 누구나 잠재적으로는 미래의 방탕한 과부이고, 가장 순수한 것에도 원죄 때문에 잠재적 불순이 이미 절반 넘게 들어 있잖아. 잠재적 불순이 완전히 발휘되도록 돕는 것이며 아직 앳된 꽃봉오리가 무성하고 흐드러진 꽃으로 벌어지는 걸 지켜보는 것, 오오, 이야말로 오관뿐 아니라 지력과 의지에도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관능이라면, 아주 정신적인, 말하자면 극히 추상적인 성격일 게야. 

 

  게다가 필리프는 그냥 젊은 처녀가 아니었다. 반듯한 가정 출신에다 신을 공경하도록 교육받고 모든 면에서 흠이 없었다. 그림물감처럼 예쁘지만 교리문답을 잘 알고, 류트를 연주하지만 교회에 꼬박꼬박 나오고, 우아한 숙녀의 매너를 지니고 있지만 독서를 좋아하고 라틴어를 좀 알기도 했다. 그런 노획물 획득은 사냥꾼의 자부심을 근질거리게 하고, 주변 사람 누구나 영원히 기억에 남을 업적으로 간주하리라. 

 

  좀 뒤늦은 시기에 살던 뷔시 라뷔탱[각주:2]의 증언에 따르면 귀족 세계에서 「여인들한테 거둔 성공이 남자들한테는 전투에서 거둔 혁혁한 전공 못잖은 명성을 안겼다.」 고귀한 미녀를 차지하는 것은 한 지방의 정복만큼이나 영광된 일이었다. 규방과 침대에서 거둔 연전연승으로 명성 떨친 마르시약, 느무르, 슈발리에 그라몽 같은 귀족들은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나 발렌슈타인[각주:3] 같은 위대한 정복자들보다 명성이 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영광된 작업에 당대 유행어로 ‘승선했다.’ 그것도, 세상에서 더 주목할 만한 인물들을 물리치겠다는 목표를 뚜렷이 가지고 필사적으로, 일부러 배에 올랐다. 

 

  섹스는 자아확인이나 자기초월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 즉, 남의 눈을 끄는 ‘승선’과 영웅적인 정복으로써 에고를 강화하고 사회적 페르소나를 굳히기 위해서, 혹은 관능의 희미한 황홀경과 낭만적 열광에서 페르소나를 깡그리 없애고 자아를 초월해 다른 존재와 합치되기 위해서. 후자의 경우는 흔히 완벽한 혼인생활 때 상호 자애심에서 더 잘 일어난다.  

 

  (망설임이 적고 식욕은 좋은 농촌 처녀들이며 도시 과부들과 함께 주임신부는 원하는 만큼 자기초월을 얻을 수 있었다. 한데 이제...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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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5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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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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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타위로 (Jacques Tahureau, 1527-1555) - 프랑스의 사상가, 시인. [본문으로]
  2. 라뷔탱 백작 (Bussy Rabutin, 1618-1693) - 프랑스의 장군, 회고록 집필자. 유명한 마담 사비네와 사촌지간. [본문으로]
  3. 발렌슈타인 (1583-1634) - 삼십년전쟁 때 합스부르크 군을 지휘한 오스트리아 장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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