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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장. 동일시의 수준과 유형  

 

자신을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하는 상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살펴봤다. 

자신의 직업이나 젠더, 위치, 생각과의 동일시가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좌우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의 생각이 비판받으면 우리는 풀이 죽고, 칭찬받으면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누군가가 칭찬하거나 헐뜯어도 우리는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나를 두고 엄마 구실을 잘한다고 칭송하거나 못한다고 지적하면, 이건 다른 엄마들에 관해 말하는 것과 달리 내 신경을 건드릴 것이다. 내 몸의 어떤 특성을 좋게 보면 난 기분이 좋고 깎아내리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러나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신체를 두고서는 어떻게 떠들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동일시의 수준과 유형. 바닷가에 홀로 선 사람

 

즉, 뭔가가 실제로 우리와 관련되면 우리는 거기에 안팎으로 반응한다. 또 우리와 상관이 없으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있게 된다. 또 무엇이 우리의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뭔가에 누군가나 무엇인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내 아이, 내 전화기, 내 아파트, 내 친구, 내 소파, 내 나라 등이 그렇다. 누군가가 남의 아이를 윽박지른다면 난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아이한테 그렇게 한다면 난 아주 기분 상하거나 화를 낼 것이다. 남의 집에 불이 나면 내 집에 불났을 때처럼 죽을 듯이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다. 내 개가 애견 대회에서 1등을 하면 아주 좋아.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개가 그러면 나랑 상관없다. 

 

참고: 내 것이나 내 편이라 여기는 뭔가도 역시 나와 연관된다. 사실상 이건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의 연장이다. 따라서 동일시 수준을 이렇게 나눌 수 있다. 1) 나 2) 내 것, 나와 관련된 것 3) 나와 무관한 것. 시각적으로는 이렇게 보일 수 있다.

 

나, 나의, 나와 무관한...

 

‘나’ 범주에 관련된 것은 죄다 내가 자신을 이런저런 유형과 직접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목수야, 나는 엄마야, 난 사장이야, 난 중학생이야, 나는 내 몸이야, 난 남자야 등등. 

 ‘나의 ...’ 영역에는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게 다 들어간다. 내 집, 내 나라,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 내 자녀, 내 사업 등.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게 반드시 내 소유물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라. 예를 들어, 내 사업, 내 아파트, 내 전화기는 내 것이지만, 내 나라나 내 친구, 내 도시는 나 개인에게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의’라는 개념은 내 소유에만 적용되기보다는 외려 어떤 이유로 인해 내가 나의 것이라 여기게 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이건 동일시의 유형이다. 더 정확히 하자면, 동일시의 수준이다. 

 

1) 우리가 자신을 직접 동일시하는 유형과 동일시가 가장 강하게 일어난다. 나는 엄마야, 난 남편이야, 난 사람이야. 이건 우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나’ 수준이다. 

 

2) 다음에 ‘나의’라는 수준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게 나 자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과 어떻게든 관련되며, ‘나의’라는 접두사를 써서 연관성을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개는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개야, 남의 개가 아니라. 

 

3) 끝으로 ‘나와 무관한’ 수준. 나에게 해당하지 않으며 나와 전혀 무관한 것이 여기에 들어간다. 사실, 여기선 동일시가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제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해안에 태풍이 닥쳐서 아무개네 전복 양식장이 망가졌다고 해도 나한테는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내 양식장이 아니고 내 가족도 아니야. 혹은, 시리아에서 전쟁이 계속되어도 난 크게 개의치 않아. 내 나라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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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시 수준 간의 경계는 사실 아주 희미하다. 예를 들어, “나는 교수야” 하고 말할 수 있고, “나는 교수라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어” 하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떻게 말하는지는 그 사람이 자기 직업에 얼마나 동일시됐느냐에 달렸다. 자기 몸을 가리키면서 “이 몸이 바로 나야” 하고 말할 수 있고 “나에겐 이 몸이 있어” 하고 말할 수도 있다. “난 여자야” 혹은 “나의 젠더는 여성이야” 혹은 “난 여자 역할을 해”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몸이나 역할, 이미지 등 특정한 유형과 동일시하는 정도에 달렸다

 

이건 ‘나’와 ‘나의’ 수준 간의 경계가 어떻게 희미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나의’와 ‘나와 무관한’ 수준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사례로는 미인대회에서 내 친구 딸이 입상한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친구 딸이 상을 받는데 나도 기뻐, ‘나의’ 친구의 딸이 아닌가. 혹은,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나에게 직접 관련은 없지만 그래도 걱정돼, 왜냐면 간접적으로 나와 연관되니까. 그 상황이 내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우리는 ‘나’와 ‘나의’와 ‘나와 무관한 것’ 등 동일시의 수준을 살펴봤다.

이건 다 내가 그 무엇과 동일시되는 유형이었다. 이와 다른 동일시 유형이 있는데, 이건 자신을 다른 사람이나 사람 그룹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라는 단어를 이용하면서, ‘나’가 ‘우리’가 된다.

이런 경우 이 사람은 자신을 어떤 사회적 그룹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는 이 그룹이 되어서 별도의 개인보다는 그 일부로 행동한다. 이런 일은 집회나 축구 경기, 가족 등에서 종종 일어난다.

 

그런 동일시 유형의 뚜렷한 사례로 어린애를 둔 엄마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자기 아이를 가리켜 종종 ‘우리’라고 일컫는다. 예를 들면, “우린 병이 났어”, “우리 응가하러 간단다.” 실제론 어린애가 아프고 응가를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말한다. 마치 아기와 하나가 된 듯이 말이다.

또 다른 좋은 예로는 사랑에 빠진 연인 커플이 있다. 함께 있을 때 두 사람은 각자의 경계를 벗어나 상대와 결합한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가 ‘우리’로 확장된다. 

 

이런 유형의 동일시에도 몇몇 수준이 있다. 1) 우리 2) 우리의 3) 우리가 아닌 것.

 

우리, 우리의, 우리가 아닌 것.

 

1) 여기서 ‘우리’의 동일시 수준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군인이야”, “우린 호남인이야”, “우린 어느 학교 동창이야”, “우린 아무개 광팬이야”, “우린 한국인이야” 등등. ‘나’의 경우에 그렇듯이, 그룹 전체가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당신이 자신을 어떤 그룹과 동일시하고 있는지 더 명확히 알고 싶다면, 이런 물음에 대답해 보라. 

당신은 살면서 어떤 그룹들과 동일시돼 있나? 여기엔 이를테면 당신의 가족이나 친구들, 동호회, 독서 클럽, 정당, 대학생 그룹 등이 들어갈 수 있다. 

당신 그룹은 무엇과 동일시돼 있나? 예를 들어, “우린 상류층이야”, “우린 대학생이야”, “우린 진보 그룹이야” 등. 

 

2) ‘우리의 ...’라는 수준에서 동일시는 ‘나의 ...’라는 수준에서 하는 동일시와 비슷하지만, 나보다는 그룹을 더 많이 드러낸다. 예를 들어, 우리 아파트, 우리 자동차, 우리 집안, 우리 영역, 우리 별장 등.

 

3) ‘우리가 아닌 것’ 수준에서는 동일시가 없다. 여기에는 우리 그룹과 아무 관련 없는 것이 다 들어간다. 

 

지금까지 동일시의 유형과 수준을 알아본 까닭은 우리에게 어디서 동일시가 생기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일상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가족과 강하게 동일시됐다면, 가족의 행복이 당신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리라. 즉, 당신 가족과 관련된 것은 전부 당신과도 바로 관련된다.

만약 당신 가족이 가풍 든든한 집안이라고 자부하는데 누군가가 당신 가족을 뼈대도 없는 집안이라 불렀다면, 당신은 당연히 기분이 상한다. 당신 개인을 두고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당신 가족을 그렇게 일컬은 것이지만, 당신이 자신을 가족과 동일시하는 까닭에 당신의 감정 상태가 크게 바뀐다. 

 

어떤 축구팀의 팬클럽과 당신이 강하게 동일시됐다면, 그 그룹이 공격받을 때 당신은 화가 나서 동료들을 옹호하러 나설 것이다. 자기가 속한 그룹과 동일시가 약할 때는, 그룹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애국자들은 종종 자신을 나라와 강하게 동일시한다. 나라가 위협에 처할 때 그들은 나라를 지키러 과감하게 나설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 가족이나 자신을 더 지킬 것이다. 이건 다 그 사람이 자신을 무엇과 더 크게 동일시하는지에 달려 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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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 4부. 나는 누구인가 > ... )

  18. 일시의 작동 원리 (메커니즘)  

 

동일시의 메커니즘과 여러 유형를 살펴보자
앞장에서 규명했듯이, 동일시는 우리에게 엄청난 역할을 한다. 

동일시는 우리의 감정 상태와 신체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우리 삶에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그렇게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면, 동일시가 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동일시의 메커니즘과 유형

 

우리는 자신과 자기 존재에 대한 어떤 느낌이나 촉(?)이 있음을 알아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의미하면서 ‘나, 나, 나…’라고 말할 때 그걸 느낄 수 있다.

이런 경우 생기는 느낌을 우리는 자아감이나 자아의식, 자기인식, 자기 감각 등으로 불렀다. 

 

자아감을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뭔가를 행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할 때, 우리는 그걸 다 우리가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난 먹고 싶어”, “난 내일 뭘 할까 생각해”, “난 기분이 안 좋아” 등등을 말할 때, 이 언급에서 우리가 뜻하는 ‘나’를 우리는 자아감이라 부르는 것이다. 

자아감은 우리 몸 어디에 있나? 흔히들 말하기를…

“나는 내 눈 뒤 머릿속이나 가슴 어딘가에 있어. 거기서 모든 것을 지켜봐.” 

 

‘나’라는 느낌이 내 눈 뒤쪽 어딘가에 있다고 이해하면서도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교수야. 나는 엄마야. 난 한국인이야 등등. 그리고 ‘교수라는 것’은 일이나 직업이지 ‘나’라는 느낌이, 자아감이, 절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내가 정말로 교수라면 난… “교수는 먹고 싶어 해”, “교수가 숲을 거닐고 있어”, “교수가 자녀들을 키워” 같은 식으로 말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정말 우스꽝스러운 발상이요 말법이 아니겠는가. 자녀 양육은 교수가 아니라 아버지가 한다. 즉, 교수란 일이나 직업일 뿐이다. 

 

따라서 “난 교수로 일하고 있어” 하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고 온당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에서는 많은 사람이 “난 교수야” 하고 말하는데, 이건 모든 걸 뿌리째 바꾼다. 왜냐면 ‘나’라는 느낌이 ‘교수’라는 이미지와 동일시되니까

 

여기서 ‘교수’ 대신에 다른 여느 직업을 넣어도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에 다 해당한다. <직업과 동일시>라는 현상을 얘기하고 있으니까. 이 동일시를 예를 들어 “나는 목수야” 하고 말하는 사람이 목수 일을 하는 상황에서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내가 목수이고 어떤 순간 그 일을 한다면, 그 순간에는 자신을 바로 목수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직무상 다른 사람들을 접해야 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행동하는 투를 관찰하면 완벽하게 알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트의 계산원이나 판매원은 당신을 대할 때 바로 계산원이나 판매원으로서 행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그들은 자기 직업과 자신을 확실하게 동일시하니까 그렇다. 

만약 계산원이 업무 현장에서 갑자기 당신에게 자기네 살림살이가 요즘 힘들다거나 어제 시장에서 아는 누구를 보았다거나 최근에 아이들이 엄마인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둥 늘어놓는다면, 이건 계산원 역할과 분리되고 거기서 벗어나 당신의 친구 같은 역할로 들어선 것이다. 다행히 실제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거나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를테면 직업과 같이 자기 역할들 가운데 하나와 동일시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는 순수한 ‘나’ 느낌으로서의 자신을 잊고 액면 그대로 자기 역할이 되어 버린다.

이건 자기 망각이요, 자아 상실이다.

혹은, 자기 역할에 지나치게 빠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어떤 역할이나 일에 그렇게 몰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요리에 하도 몰두하는 바람에 자신을 시야에서 놓친 것처럼 감지하기를 잊는다. 그리고 몰아(沒我) 상태에서 이 시간에 우리가 의식한 것은 요리 과정뿐이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요리 과정이 되고 만 것이다.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항상 의식적으로 ‘나’ 느낌에 주의를 일부 기울이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거나 역할을 진행하는 동안 자기 자신을 기억한다면, 자기 역할을 바깥에서 보듯이 지켜보게 된다. 그때 당신이 곧 그 역할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목수 김 씨가 일터에서 작업하면서 그 일을 하는 자신을 의식한다면, 그는 이미 목수 역할과 동일시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기 일을 계속 수행하면서도 바깥에서 보듯이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아감과 작업 과정을 별개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을 목수라는 직업과 더 이상 동일시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의식하는 상태가 바로 분리(disidentification)라고 불린다. 실제에서 분리는 역할 수행뿐 아니라 몸이며 젠더, 추상적 이미지 등 모든 형태와 자아감이 동일시되는 것과도 연관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어떤 역할과 분리 상태를 알려면, 그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금 순간에 현존하기만 하면 된다. 버스를 타고 간다고 치자. 이 경우 우리는 자신을 승객 역할과 동일시한다. 이 역할에는 어떤 행동 규칙이 있다. 예를 들어, 승차권 구입, 임산부에게 자리 양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내밀한 영역에 들어서도 반발하지 않기 등. 

버스에 올라타는 즉시, 승객의 역할이 시작된다. 이때 의식을 계속 가동한 상태로, 버스에서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해 보라. 그러면서 자아감을 일부나마 시야에 두고 있으라. 이 과정과 자신의 행동이며 생각이며 감정을 관찰하는 동안, 당신은 그것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승객이라는 역할과 분리 상태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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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당신이 동일시될 수 있는 다른 여느 형태하고도 그렇게 하면 분리가 가능하다. 자신의 젠더와 동일시되지 않으려면, 당신이 남자나 여자로서 행동할 때 당신의 젠더와 상관없이 자신을 그냥 관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여자라면, 남자들이나 다른 여자 친구들과 대화하는 동안 당신의 행동과 생각, 감정에 당신의 여성 이미지나 여성관이 들어섬을 알아차리라. 당신은 남자들에게 애교를 피우거나 화장을 하고 다른 여자들과 수다를 떨 수 있다. 당신의 행동에 나타나는 요소가 전부 대개는 당신이 여자라는 이미지에 포함된다. 

당신이 여자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동안, 당신은 그 역할과 분리된다. 하지만 관찰을 멈추는 즉시, 당신은 자신을 그 역할과 자동으로 동일시하게 된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어떤 유형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당신은 자신을 그 형태와 자동으로 동일시하게 된다. 즉, 엄마로 행동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까지, 당신은 엄마이며 그 역할과 동일시될 것이다. 승객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까지, 당신은 승객일 것이다. 당신이 자기 몸과 동일시됐음을 인식하기 전까지, 당신은 당신 몸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나 승객이나 몸 등 동일시 형태에 주의를 기울이는 즉시, 이것은 내가 동일시하는 또 다른 형태일 뿐이며, 진짜 ‘나’는 여기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나는 ‘나’라는 느낌이요, 자아감이다. 
이때 ‘나’가 있고, 또 역할이나 몸이나 생각 등의 동일시 형태가 따로 있다. 
이것이 동일시에서 벗어난 상태, 분리된 상태이다. 

 

그런데, 많은 생각과 분리되기 위해서, 즉, 잡념을 떨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가 필요하다. 여러 생각을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처럼 관찰만 하라.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 뭘 하고 있나?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난 글을 읽고 있어” 하고 말할 수 있다. 이건 물론 사실이야. 그리고 이건 당신 생각이며 이 생각이 당신한테서 나온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렇게 해 보라. “난 글을 읽고 있어” 하고 다시 말하되, 이번엔 이것이 그냥 말이며 당신 마인드에 있는 생각이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라. 이 생각이 있고, 그걸 인식하는 당신이 있다. 이 경우, 같은 생각이 이번엔 당신한테서 나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생각과 분리된 것이다

 

자기 생각과의 분리가 언제 어디서 유익할 수 있는지 아나? 사람들과 대화에서, 특히 논쟁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태백산 밑에 ‘미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는지를 두고 당신이 친구와 갑론을박한다고 치자. 당신은 태백산에 갔다가 그 카페에 들렀기 때문에 그게 있다고 말한다. 한데 친구는 자기가 그 지역에 있는 카페를 다 다녀 봤지만 그런 간판은 못 봤기 때문에 그런 카페는 없다고 말한다. 

당신이 그 카페가 거기 있다고 말할 때, 당신은 자기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이 생각과 동일시될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당신이 틀렸으며 당신은 그 지역을 전혀 모른다’고 말한다면, 이 말에 당신은 상처를 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 당신 생각을 부정하는 것은 당신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당신이 그 생각과 동일시됐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하지만 그건 당신 마인드에 있는 하나의 생각일 뿐임을 관찰한다면…

당신은 그 생각과 분리된다.

더욱이, 생각이 나타나는 순간에 그것과 분리된다.

 

당신의 어떤 생각이 있고, 또 자아감으로서의 당신이 있다.

당신이 틀렸다’고 하는 친구의 말이 이젠 당신 자체가 아니라 당신의 생각만 건드릴 것이다. 그러면 당신도 친구 말에 상처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이건 누군가가 당신 코트를 칼로 찢은 것과 비슷하다. 이때 당신이 상처 입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칼이 당신 피부를 자른다면, 아프겠지.

 

당신의 생각은 당신이 걸친 외투 같은 것이라고 상상하라.

당신 자체는 아니다.

그렇게 여기면, 아픔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어떤 생각이 검증된 게 아니며 불쾌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궁리한 것일 때, 그런 생각과 분리는 아주 유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 여자 친구가 사전에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 어디선가 놀고 있다고 치자. 게다가 그녀가 어떤 남자와 함께 있는 걸 봤다고 누군가 알려줬다. 당신 상상은 그녀가 배신하는 장면을 금방 그려낸다. 그래서 “지금 다른 남자와 노닥거리고 있는 게 분명해!” 하고 혼자 말한다. 

 

만약 그런 생각을 믿으면서 그 생각과 동일시된다면, 강한 질투심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서 불쾌해짐을 인식한다면, 당신은 이것이 한낱 생각일 뿐이며 여자 친구가 배신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 당신은 자신의 생각과 분리되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믿는 대신 정신을 차리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리라. 전화를 걸어 어떤 일인지 알아내리라. 알고 보니, 당신 여자 친구와 함께 있던 젊은 남자는 그녀의 오빠였더라. 

 

이 정보와 새로운 생각이 당신 감정 상태를 순식간에 바꿔 놓음에 주목하라.

그 이전에는 화가 잔뜩 났었는데, 그다음에 화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것이 생각의 진정한 힘이다! 특히 당신이 동일시된 생각의 힘이 그러하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당신에게 가능한 상태가 두 가지 있다. 

동일시와 분리. 

 

전자의 경우, 당신은 어떤 생각이나 역할, 물질적 형태와 동일시됐음을 깨닫지 못한다.

후자의 경우, 당신이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고 인식한다. 혹은, 당신이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고 안다. 혹은, 자신의 다른 어떤 발현을 인식한다. 이때 자신의 현존 의식과 자아감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또 동일시 상태에서는 자신의 발현을 통제할 수 없으며 분리 상태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따라서 많은 영적 멘토들은 의식 상태에 현존하는 것이…
즉, 자신의 어떤 발현을 관찰하고 그것과 별개의 현상으로 자아감을 관찰하면서 분리 상태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것만 제대로 해도 숱한 불필요한 불쾌한 일을 충분히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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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 4부. 나는 누구인가? > ... ) 

  17. 동일시(Identification)의 영향 (1)  

 

실제로 우리가 아닌 무엇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기본 유형을 앞에서 몇 가지 살펴봤다

“나는 걷고 있어”, “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난 생각해” 하고 말할 때,

<나>라는 느낌이 (자아감이) 추상적인 이미지나 느낌, 역할, 생각, 감정 등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the influence of identification

 

이 자아감이 어떤 유형과 동일시되지 않을 때, 그건 <나>라는 순수한 자아감으로 남는다. 

우리가 자신을 어떤 유형과 동일시할 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이름과 동일시는 아마도 자기 이름이나 가문을 자랑스레 여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그리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동일시의 영향은 잠시 놔두자. 다른 더 중요한 유형과의 동일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직업과 동일시를 먼저 본다. 

예를 들어 당신이 경찰서장으로 일한다면, 자신의 비교적 높은 지위와 그 위치가 주는 측면을 크게 평가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자신을 그냥 사람이 아니라 경찰서장으로 여길 것이다. 

“나는 경찰서장으로 일해” 하고 말하는 것과 
“나는 이 지역의 경찰서장이야” 하고 말하는 것은 
차이가 상당히 크다.

 

전자의 경우 당신은 경찰서장이 단지 당신의 직업일 뿐이며 당신이 수행하는 일로 간주한다. 

후자의 경우 당신은 자신을 경찰서장의 직위와 동일시한다. 

전자의 경우, 어떤 사유로든 직위에서 물러나거나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을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대한다 해도, 당신은 크게 괘념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직업이 주는 지위와 권력과 경제적 이점 등과 동일시했다면, 그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사람들이 썩 존중하지 않는다 싶을 때 당신은 크게 상처를 받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인가와 동일시된다면, 이 ‘무엇’에 해를 끼치거나 위협이 되는 것에 강한 두려움을 품고 저항한다는 점이다.

이건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의 타고난 반사 작용이 그렇게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다시 살펴보자.

당신은 자신을 경찰서장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나는 경찰서장이야” 하고 말한다. 이제 당신이 경찰서장 직위에서 밀려난다. 이건 본질적으로 당신 직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요 나아가 수십 년 경찰 생활의 파멸을 뜻할 수도 있다. 

한데 당신이 그 직무와 또 거기서 나오는 지위며 권력이며 보수 등과 동일시된 만큼, 이 위협을 당신은 자신을 겨냥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당신이 자신과 동일시한 직위에서 물러나면서, 사실상 당신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당신의 마인드와 몸은 바로 그렇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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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까지 당신은 한 지역의 경찰서장이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이전까지는 자신을 중요하고 존중받고 물질적으로 모자라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젠 그걸 다 잃었다. 당연히 자신이 파멸된다고 느낄 것이다. 한데 사람이 파멸될 때, 그는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고 거기에 최대한 저항한다. 자신의 직위를 자신과 동일시하다가 그걸 잃은 사람은 그렇게 처신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경찰서장이 아니라 단지 그 직무를 맡고 있는 것임을 아는 사람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런 사람은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한 게 없으며 이 직무가 단지 한시적이라는 것도 잘 이해한다. 
이런 경우, 앞에서 말했듯이, 동일시가 일어나지 않으며,
직위 해제나 면직 따위를 좀 곤혹스럽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사실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자신의 제법 높은 지위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상당히 깊게 발달해야 하며, 동일시가 무엇이며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 

 

이제 자신을 자기 몸과 동일시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보자. 

 

자기 몸과의 동일시. 거울 들여다보면서 뚱뚱하다고 여기는 여인

 

당신이 자기 몸을 자신이라고 간주할 때, 몸과 관련돼 일어나는 일이며 변화가 당신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화, 부상, 아름다움의 상실, 비만이나 비쩍 마름, 신체의 불균형 등이 전부 아주 부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또 아름다운 외모와 균형 있는 신체, 매끈한 몸매, 젊음 등이 우리의 자부심이 되며, 그런 것과 동일시되기가 아주 쉽다.

 

당신이 자신의 미모나 젊음과 동일시된다면, 어떤 이유로든 그것이 사라질 때 당신에겐 극도의 불쾌한 상태가 야기되며 심한 경우 우울증까지 나타날 것이다. 그 이유는 똑같다. 신체 노화를 당신 마인드가 당신 자체의 점진적인 파괴와 같은 것으로 보겠기에 그렇다. 앞에서 말한 대로, 자기 자신을 자기 몸이라 간주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직시하자. 

당신의 자아감이나 자기인식이 당신 몸의 변화와 더불어 어떻게든 달라졌나? 

다시 말하건대, 여기서 자기인식은 자기평가가 아니라 ‘나’라는 느낌을 뜻한다. 

당신의 <나> 느낌은 당신 몸 상태에 좌우되지 않는다.
질병 상태조차도 그 느낌을 건드리지 못한다. 몸이 좀 안 좋다고 느끼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당신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유년기에도 노년기에도 우리는 우리 본연의 자신 그대로이다.
이 때문에 노인들이 젊었을 때와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단지, 몸이 이젠 닳고 노화됐을 뿐이지. 

 

성별과 (gender와) 동일시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당신이 자신을 진짜 사나이라고 여기는 데 익숙하다면, 당신한테서 그런 이미지를 빼앗으려는 시도는 전부 강한 두려움과 분노를 야기할 것이다. 남자라고 여기는 기준에는 성적인 특징뿐 아니라 일정한 행동도 들어간다. 예를 들어, 남자들 무리에서 당신이 사나이라면 술 마실 줄 알고 싸움질도 사양하지 않고 여자도 자빠뜨릴 줄 알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다. 그런 면을 다 갖추고 있다면, 비로소 사나이가 된다. 

하지만 어쩌다가 위궤양이 생겨서 예전처럼 호탕하게 술을 마실 수 없게 됐다. 이제 남자라는 이미지가 좀 흔들린다. 당신은 아직 남자이긴 하지만 예전과 같은 이미지의 사나이는 못 된다. 그러고 나서 결혼하게 됐다. 이제 당신이 무슨 남자란 말인가? 아내 엉덩이에 깔린 신세가 됐는데! 그건 이미 사나이가 아니다. 이제 자신이 남자라는 느낌이 크게 공격을 받는다. 


이런 일은 당신에게 진짜 남자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가 있고 그것과 동일시됐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 이미지와의 동일시뿐 아니라, 남자들 사이에서 존중받음이나 의리나 젊은 여성한테 사랑받음 것처럼 동일시에서 얻는 이점과도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남자라는 이미지에 그렇게 집착한다면, 당신을 조종하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이제 당신에게 뭔가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 넌 남자잖아. 사나이가 뭐 그래.” 

혹은 여성은 당신을 이렇게 조종할 수 있다. 

“당신이 진짜 남자라면 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줄 텐데.” 

그리고 당신은 남자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그들 말대로 끌리게 된다. 

이건 다 당신이 자신을 남자라는 이미지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여성들 경우에도 비슷하다.

젊은 여자가 ‘여자다운’ 여성이라는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면, 그 이미지가 공격받을 때 괴로움이 클 것이다. 

“아직도 사귀는 남자가 없어?!”, 

“넌 이 원피스를 사흘째 입고 다니는구나!”, 

“얘, 넌 뚱뚱해졌어!” 등등 여자 친구가 별생각 없이 하는 말에 심하게 상처받기 쉽다. 

그건 다 자신을 여성이라는 이미지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보이는 반응, 진짜 남자나 진짜 여자에 대한 그들의 관념은 당신 본연의 모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당신을 계속 칭찬하거나, 혹은 그들 보기에 당신이 그리 남자답지 못하거나 여자답지 못하다면 계속 흠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들에 대한 당신 반응은 남자나 여자에 대한 이미지에 당신이 얼마나 동일시되는지에 달려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런 말에 당신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당신을 조종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에 당신은 전혀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당신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당신 본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남녀 이미지에 당신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데 이건 당신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일 뿐이다

 

( 자기 생각이나 감정과 동일시하면 어떻게 되나?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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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4부. 나는 누구인가? > ... )

  16.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3)  

 

(계속)

우리가 우리 몸이 아니고 우리 몸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런 몇 가지 실험에서 보고 알 수 있다. 

 

첫 번째 실험은 한 사람에게 세 번째 손이 있다는 환상이나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피험자를 탁자 앞에 앉혔다. 이때 그의 두 손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오른손 곁에 그 손과 빛깔이며 형태, 크기가 아주 흡사한 모형 손을 놓았다. 그다음에 실험자가 이 사람 손의 한 부위와 모형 손의 같은 부위를 동시에 브러시로 건드렸다. 몇 번을 그렇게 했다. 

 

사람에게 세 번째 손이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실험

(연구자들은 이 환상을 아주 실제처럼 만들었다. 

실험에 참여한 남자와 여자들 모두 그들의 모형 손에 브러시가 아니라 칼을 가져다 대자 

눈에 띄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걸 지켜보면서 피험자에게서는 자기 오른손을 점점 더 잘못 인식하게 됐다.

결국엔 두 개의 손 가운데 어떤 것이 자기 것인지 더이상 분간하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자기한테 오른손이 두 개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즉, 자기한테 손이 3개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이런 느낌은 뇌가 보는 정보를 느끼는 정보와 어떻게든 일치시키기 위해 뇌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실험은 인체 크기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느낌의 유발과 관련된다.

이를 위해 피험자 머리에 3차원 가상현실 헬멧을 씌워서, 마네킹 맞은편에 둔 카메라가 잡은 것을 피험자가 3차원 형태로 보게 했다. 카메라는 고개 숙여 자기 몸을 볼 때 보이는 마네킹 몸체를 보여주게끔 설치했다. 처음엔 피험자 몸 크기의 마네킹을 취하고 다음엔 더 작은 것, 그다음엔 더 큰 마네킹을 이용했다.

 

여러 크기의 마네킹을 이용하여 사람의 환상을 실험

(시각적 트릭과 촉각적 트릭의 결합이 이 실험 성공에 아주 중요하다. 

피험자의 눈으로 본 상황은 아래 제시했다) 

 

이때 실험자가 피험자와 마네킹의 발에서 같은 부위를 두 개의 막대기로 동시에 건드렸다.

피험자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몸을 보는 듯한 상태에서 카메라가 보여준 것을 관찰했다.

카메라에 나타난 장면은 이것이었다. 

 

시각적 트릭과 촉각적 트릭의 결합이 중요해

(시각적 트릭과 촉각적 트릭의 결합이 이 실험 성공에 아주 중요해.

 

그 결과 그의 몸이 다른 몸이 된 듯한 느낌이 생겼다.

피험자는 마네킹을 자기 몸처럼 느꼈다.

이 효과는, 위의 그림에서 보인 대로, 실험자가 인체와 마네킹의 같은 부위를 막대기로 건드림으로써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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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의 크기가 피험자의 몸 크기와 같을 때, 그 사람에겐 자기가 새로운 몸으로, 마네킹의 몸으로, 옮겨 간 듯한 느낌이 생겼다. 즉, 그는 점차 자신을 이 마네킹이라고 여기게 됐다. 이것은 몸이 대체된 환상이 커졌을 때 마네킹에 칼을 찌름으로써 확인됐다. 즉, 피험자가 이제 마네킹을 자기 몸이라 여기기 때문에, 그는 마네킹에 칼이 닿을 때 몸을 떨었다

 

마네킹에 칼자국을 내다

 

인체의 크기보다 더 크거나 작은 마네킹을 이용했을 때, 피험자는 자신을 실제 몸보다 더 크거나 작게 느꼈다.

엄밀히 말해, 어떤 크기의 마네킹을 실험에 이용했느냐에 따라 피험자에겐 실내와 사물들이 평소보다 더 크거나 작게 보였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겪은 것처럼 자기 몸이 커지거나 작아진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여러 크기의 마네킹 4개를 실험에 이용했다.

(실험에 마네킹 4개를 이용했다.) 

 

사람이 자기 몸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 (유체 이탈을 경험한 듯한) 실험도 진행됐다. (자세한 것은 따로 소개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는 것이 뇌의 작업 결과임을 다시금 증명한다.

뇌는 우리가 자기 몸 안에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보다시피, 뇌는 우리가 다른 몸 안에 있다는 느낌뿐 아니라 아예 몸에서 벗어난다는 환상을 만들 수도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몸 안에서 자신을 느낌은 (자아감은) 그런 환상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실재라는 환상에 관한 장에서, 당신 뇌를 다른 몸이 느끼는 것에 연결한 결과 당신이 그 다른 몸으로 옮겨 갔다는 느낌이 생긴 사례를 우리가 살펴봤다. 이건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장면이었다. 이 사례 또한 우리가 몸에 애착하는 것이 뇌가 만든 습관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해 주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이 물질적인 몸체로 느끼는 것은 뇌가 만드는 동일시이다. 
그리고… 이 동일시가 환상이나 착각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이 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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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나는 누구인가?  > ...)

 

  16.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1)  

 

 

이제 우리가 자신을 흔히 ‘누구’ 혹은 ‘무엇’으로 여기는지 살펴본다. 

차례로 보자. 

 

나는 누구인가?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기

 

1

 

당신 이름이 ‘철수’라고 한다면, “난 철수야” 하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부모가 처음에 다른 이름을, 예를 들어 영호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당신은 철수가 아닐 것이다. 이름이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부를 때 쓰는 단어일 뿐이다.

당신을 영호라 부른다 해서 당신의 자기인식이나 자아감이 과연 바뀔까?

아니다.

혹시 당신을 ‘항아리’라 부른다 해도 당신의 자아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있던 그대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음미해 보면, 당신 이름이 곧 당신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당신 이름을 부르면, 당신은 그 사람이 바로 당신에게 말하는 것임을 느낀다. 누군가가 당신을 향하면서 실수로 다른 이름으로 당신을 불렀다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겠지’ 하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향하면서 우리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의식에서는 자아감이 떠오르고, 그래서 우린 자신을 종종 이 단어와 혼동한다.

자신을 다른 무엇과 혼동하는 것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 부른다.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자기 이름과 동일시된 것이다. 

 

2

 

본연의 자신을 잃는 다음 방법은 살면서 자신을 어떤 역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은 자신을 엄마라고 부른다. “난 엄마야” 하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수행하는 엄마 역할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출산 전까지는 엄마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녀의 자아감이 출산을 전후하여 달라진 게 하나 없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하건대, 자아감은 우리가 ‘나’라는 단어를 말할 때 드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그 사람이 부모의 역할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다. 그저 출산 후 엄마라는 새 역할이 생겼을 뿐인데, 그녀가 자신을 그 역할과 동일시한 것이다. 

 

전형적인 (사회적) 역할로는 우리네 각자의 직업을 꼽을 수 있다.

만약 의사로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면 그는 “난 의사요” 하고 대답할 수 있다. 여기서도 엄마의 역할 경우와 같은 도식이 작용한다. 즉, 그는 그저 의사 역할을 해왔을 뿐이며, 어린 시절엔 의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나 유년기에나 그의 자아감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직업에 크게 회의를 느끼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지거나 ‘나에겐 의사 노릇이 어울리지 않나 봐’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자기 직업과의 동일시가 잘못된 것임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패배자야” 혹은 “나는 쿨해” 같은 형태의 동일시도 있다.

자신이 패배자라는 느낌은 사람이 해 온 역할의 하나이다.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어떤 역할을 할 때, 그 역할과 합쳐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면서 그것이 그의 거짓된 자아감일 뿐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난 패배자야” 혹은 “난 쿨해”, 둘 다 역할이다. 이건 다 실제 자아감에 해당하지 않는다. 

 

역할의 예를 더 들어보자.

“나는 사업가야”, “난 2급 정비사야”, “난 사장이야”, “난 아들이야”, “난 노숙자야”, “난 제주도민이야” 등이 다 역할의 일종이다. 

한데, 이런 생각이나 진술 역시 본연의 자신을 어떤 역할과 잘못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런 동일시에서 사람을 끌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예를 들어, ‘쿨한’ 사람에게

“넌 전혀 쿨하지 않으며, 그렇게 말하는 건 네 약점을 숨기기 위한 마스크일 뿐이야”

하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전혀 동의하지 않고 그 이미지를 끝까지 지키려 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동일시에서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그가 쿨하다면, 다른 이들이 그를 멋지게 보고 존중한다. 근데,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럼 그는 누구인가? 시시껄렁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누가 존중하겠어?

 

3

 

다음에, 사람들은 의식의 어떤 발현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야”,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이야” 등이 그렇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게 마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말한다. 이건 바로 내가 말하는 것이요, 이 생각은 내 생각인 것 같다. 머릿속 목소리와 강한 동일시가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종종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걸 우리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즉, 대화하면서 자각 상태를 켜거나 감득력을 가동하기만 하면…

당신이 말하는 생각과 단어들이 있고 또 그걸 다 알아차리는 당신이 있음을 당신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간단한 실험 하나. 

“난 초밥을 좋아해” 하고 속으로 말하거나 중얼거려 보라.

어떤가, 당신한테 생각이 나타나서 그것을 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이때 생각이 있고, 또 그 생각을 보고 듣는 당신이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초밥을 정말 좋아하며 친구나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이걸 바로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유의하라. 

무슨 차이가 있냐고? 

전자의 경우 당신은 자기 생각과 동일시되지 않았고, 후자에서는 동일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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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다.

우리가 화난 상태에 있을 때, 이건 우리가 화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분노의 감정과 합쳐져서 자기 자신을 분노처럼 드러낸다.

그러나 화를 내는 동안 자각 상태를 켜거나 감득력을 가동하기만 하면, 당신이 곧 분노는 (분노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것을 (분노를) 당신은 당신의 여러 발현 가운데 하나로서 관찰하기만 할 뿐이다. 

 

실제로, 자각 상태를 가동할 때, 당신의 동일시가 그 자각 상태로 옮겨가고, 그래서 생각이나 감정과의 동일시에서 멀어진다.

‘자각 상태를 켠다/가동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자각이란

당신이 ‘지금 여기’ 있으면서 지금 당신과 당신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상태, 감각 등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각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

그냥 망각 (혹은, 무자각) 상태에 있는 듯한 경우가 많다. 감정에 압도될 때 이런 일이 특히 자주 일어난다.

예를 들어, 아이가 귀한 그릇을 떨어뜨려 깨졌을 때, 당신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아이한테 소리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퍼뜩 깨닫고 정신이 들어서, 당신이 지금 화를 내고 아이한테 소리치고 있으며 아이가 겁먹은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이것이 당신을 금방 식게 한다. 

당신 자신의 분노와 (동일시가 아니라!) 분리된 것이다. 

 

4

 

그다음에 자주 나타나는 동일시하기는 자신을 어떤 추상적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난 영혼이야”, “난 우주정신이야”, “난 사람이야”, “난 호모사피엔스야” 등이 그것이다. 

영혼을 보거나 느낀 사람이 있나?

영혼은 무엇인가?

다들 나름대로 해석한다. 어떻든 영혼은 추상적인 이미지다. 혹자가 “나는 영혼이야” 하고 말할 때, 그건 필경 누군가가 그에게 그런 말을 하고 그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임이 분명하다. 

 

사실, ‘영혼 soul’이란 개념은 그리스도교에서 우리한테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육신과 영혼으로 나누어 이 개념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다. 지구상에 기독교가 없었다면, 영혼이란 개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혼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결국, 영혼이 무엇인지 알든 모르든 당신의 자아감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알고 보니, 혹자가 자기는 영혼이라고 말할 때, 그는 자신을 자기가 이 용어에 집어넣은 어떤 추상적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주정신이나 호모사피엔스하고 동일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람이야” 하고 말할 때의 동일시를 규명하기가 좀 어렵다.

우리가 사람인 건 당연해 보여. 왜냐면 당신과 나를 포함해 우리는 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것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자.

‘사람’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사회가 우리한테 가르친 추상적 이미지가 아닐까?

그러면, 사회는 ‘사람’이란 단어로 무엇을 의미하나?

대략 다음과 같이 보이고 옷을 입고 어떤 언어로 서로 얘기하는 생물을 사람이라 부른다.

유년기부터 우리는 “그는 사람이야” 하는 말을 들었다. 똑똑한 어른들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나. 생각도 않고 믿어 버렸다. 게다가 알고 보니, 우리 몸이 사람의 몸과 비슷하고 우리가 말을 하더라. 그래서 나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여러 징조를 지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남자와 여자, 벌거벗은 모습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자아감으로 되돌아가자.

이 느낌에 인간과 관련된 뭔가가 과연 있나?

이 자아감은 ‘사람’이라는 추상적 이미지가 아니야. 이건 구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이다. 내 몸은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사람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나의 자아감으로서의 ‘나’가 있고, 내가 보고 느끼는 내 몸이 있으니까. 

 

‘사람’이 추상적이며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임을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옛날 옛적에 ‘사람’이란 단어를 궁리해 내고, 앞의 그림처럼 보이는 남자와 여자를 전부 이 단어로 불렀다. 

한데 이 단어를 통용시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던가. ‘여자’라 불리는 별개의 종이 있고, ‘남자’라 불리는 별개의 종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이것이 진실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왜냐면 여성과 남성의 유기체와 심리 구조는 상당히 다르니까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묶어서 ‘사람’이라 불렀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랬다면 ‘사람’이란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종으로서 남자가 있고 또 별개로 여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나는 사람이야” 대신에 “나는 남자야, 여자야” 하고 말할 수 있었겠지. 

 

이건 다 ‘사람’이란 개념이 인위적인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추상적 이미지이며,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일 수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는 우리 각자를 가리키는 데 ‘사람’이란 단어를 쓸 것이다. 편의상 그렇다. 우리 언어에서 이 단어가 확고하게 뿌리 내렸으니까. 

 

(이제 “나는 남자야”, “나는 여자야”라는 동일시를 분석해 보자.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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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의식의 진화

(23) 무자각의 수준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7-2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무자각 상태에서 벗어나기 12

기쁨과 슬픔 - 칼릴 지브란

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깨달음 추구하는 사람들

내면의 빛

(3) 깨달음이란?

사람, 흥미로운 자료 40가지

10과. 우리의 감정 항아리 (35)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징표 11가지 (1)

버지니아 사티어. 자기가치, 자기평가

에고가 아니라 '참된 나'로 관계를 맺기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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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나는 누구인가?

 

우리네 인식의 특성이며 마인드의 작업과 관련된 자료를 아주 많이 알아봤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기능하기 위해 마인드가 만들어 내는 주된 환상들을 살펴봤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아직 다루지 않았다. 즉,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우리 뇌는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다 하나? 

누가 감정을 느끼고 자기 생각을 인식하나? 

모든 환상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나?

그 모든 환상을 인식하는 것은 누구인가? 

 

뇌 모델을 들여다보는 여자

 

우리 대화의 주요 주제에 이르렀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 알아보기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분명히 인식한다.

“내가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그러나 당신이 있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사람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영혼인가? 

왜 굳이 이런 질문들을 던지나? 우리가 누구인지는 이미 명확하지 않은가? 

만약 명확하지 않다면, ‘실제로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서 좋은 게 무엇인가? 

이건 다 자연스러운 질문이고, 우리는 거기에 차례로 대답할 것이다. 

 


 

  15. 당신은 당신 세계 안에 있다  

 

자,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이 왜 나오나? 

우리네 행동이 다 어떻게든 우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왜냐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영위하는 삶은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 이웃의 삶이 아니라. 

왜냐하면, 당신은 자기 삶을 잘 관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니까.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 잘 모르는 사람을 모욕하거나 함부로 대한다면, 거기에 당신은 거의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니까. 설령 반응한다 해도 잠깐 살짝 화가 나겠지. 한데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렇게 한다면, 당신 반응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지키려 들 것이다. 

즉, 대응하여 욕을 퍼붓거나, 아니면 말조심하라고 점잖게 주의 주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상황을 피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 그것은 당신에게 큰 상처를 주고, 당신은 분노나 두려움을 맛볼 것이다.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과 당신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 당신 반응이 왜 그리 다른가?

왜냐하면,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누군가가 모욕하는 것은 당신을 거의 건드리지 않겠지만, 당신을 모욕한다면 그건 당신에 대한 직접 공격이며, 따라서 당신은 자연스레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를 옹호하나? 자신을? 그렇다면, 이 ‘자신’은 또 누구인가? 

 

내가 만약 내 주머니에서 5만 원 지폐를 꺼내 당신 앞에서 찢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당신의 5만 원 지폐를 잠깐 보여 달라고 한 뒤 그걸 찢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나의 행동은 똑같지만, 내 돈인 경우와 당신 돈인 경우에 당신 반응은 분명 다를 것이다. 당신 돈을 찢으면 화를 내겠지만, 내 돈을 찢으면 당신은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건 또 왜 그런가?

왜냐하면, 내 돈은 당신 것이 아니지만 당신 지폐는 당신 것이니까. 당연한 소린가? 이 지폐가 당신 것이라는 사실이 당신에게 그런 반응을 일으켰다.  

5만 원 지폐. 나의 것과 남의 것.

돈을 포함해 뭔가를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의 자아감이 연루돼 있음을 암시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누가 5만 원 권을 소유하나? 당신이?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지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직장 상사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직원을 칭찬했다면, 당신 기분이 어떨까? 부러움이나 질투? 혹은, 아무렇지도 않다? 상사가 직원들 다 모인 자리에서 당신을 칭찬하며 당신 같은 직원이 필요하고 당신은 정말 소중한 인재라고 말한다면, 그때 당신 느낌은 어떨까? 자기 자신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자랑스레 여기고 당신의 자존감이 커지겠지. 

만약 그 상사가 다음 날 당신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고 나무란다면, 당신은 당혹스럽고 화가 나겠지.

칭찬과 비난이 왜 당신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나?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당신과 관련되고 당신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당신은 잘하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한다.

칭찬과 비난이 누구와 관련되나? 당신과?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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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에게 얼마 전에 획기적인 비듬 치료제가 개발됐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제법 흥미를 보일 것이다. 당신 숙부가 당신에게 10억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를 것이다. 한데 이 유산을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모르는 다른 친척이 받았다면, 당신에겐 어떤 느낌이 들까? 설마 기쁨 같은 것을 느낄 리는 거의 없다.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에서 울릉도 출신의 아무개 여성이 우승했다면, 당신에겐 어떤가? 별다른 느낌이 없을 것이다. 그 대회에서 당신 딸이 우승했다면, 딸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당신과 관계되는 정보는 전부 그렇지 않은 것보다 어떤 식으로든 당신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헤드폰 쓰고 앉아 있는 젊은이 주변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보라!

세상은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만에 하나, 당신이 당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니고 가족이나 사업, 조국이나 자녀를 당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곧바로 이런 질문을 건네겠다.

“그건 누구의 가족이고 누구의 사업이고 누구의 조국이고 누구의 자녀들인가?”

바로 당신 아닌가!

남의 나라, 남의 가족, 남의 자녀들을 두고 당신이 크게 염려할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동정심에서 그럴 뿐이다.

당신이 무엇이나 누군가를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둔다면, 그건 단지 당신이 거기에 강하게 애착을 갖고 자신의 행복을 그의 안녕에 좌우되게 만들었기 때문일 뿐이다. 다시 말하건대, 당신이 없으면 안 된다. 

 

당신이다! 이 삶을 사는 사람은 당신이다.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당신이야. 당신이 고통받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해.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고 기뻐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당신이다. 꿈도 당신이 꾼다. 삶이 당신 것이다. 

당신 삶에서 당신이 없는 순간을 하나라도 꼽아 보라.

어찌어찌 궁리하여 그런 순간을 보여준다면, 마지막으로

“그것은 누구의 의식에서 일어나나?”

하는 질문을 던진다.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를 다 지각할 수 있게 하는 의식은 당신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인가?

누구의 의식인가? 

 

당신이 보고 느끼는 세계는 전부 당신 세계이다. 당신이 의식하고, 당신이 보고 듣고 알고 기억하는 것은 전부 당신의 주관적인 세계임을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주관적 세계가 있고, 거기에 당신은 접근할 수 없다.

이해가 되나? 언젠가 인식하고 알았던 것이 죄다 당신의 주관적 세계 안에 있다.

오로지 당신만이 당신의 개인적인 주관적 세계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모든 게 당신에게 달려 있고 당신이 당신 삶의 중심이라면, 당신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그러니, 당신은 누구인가?

아마 이런 식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철수야”, “나는 사람이야”, “난 엄마야”, “난 여자야”, “나는 영혼이야”, “난 몸이야”, “난 목수야”, “난 과학자야”, “난 사업가야”, “나는 인격이야”, “나는 내 생각이야”, “나는 내 느낌이야”, “난 딸이야”, “난 호모사피엔스야”, 등등. 

 

물론 이것이 다 당신에게 해당하고 적용될 수 있지만, 우린 다른 뭔가를 찾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난 널 사랑해” 하고 말하는데, 이때의 <나>는 누구인가? 

“난 뭘 좀 먹고 싶어” 하고 말할 때, 먹기 원하는 ‘나’에 대한 느낌 같은 것이 있다. 

“난 앞에 놓인 이 텍스트를 보고 있어” 하고 말할 때, 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누가 보는 건가? 

“나에겐 친구들이 있어” 하고 말할 때, 당신이 의미하는 <나>는 누구인가? 

 

저런 말들을 할 때, 우리에겐 ‘나’라는 어떤 느낌이, 자아감이, 있다.

더 이해되게끔, 자신을 염두에 두면서 ‘나, 나, 나, …’를 그냥 말해 보라.

무슨 느낌이 드나? 

뭔가를 느끼고 원하고 실행하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당신 자신에 대한 어떤 느낌이 있다.

자신에 대한 이런 느낌을 우리는 자아감 혹은 ‘나’ 느낌이라 부를 것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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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 미혹 > ... )

  14-2. 세계를 실재라 여기는 환상  

 

좀 더 연습해 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착상이나 계획이 있나?

걸림돌이 무엇인지 아나?

그 착상이나 계획이 당신에겐 존재하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없다. 

당신한테 치통이 있나? (이가 아프다고 상상하자).

대답은 마찬가지야. 치통이 있긴 하지만, 당신한테만 있다.

그런데 의사들이 ‘환상통’이란 용어를 쓴다. 통증의 생리적 원인은 없는데 사람이 통증을 느끼는 것. 그런 통증을 의사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장치를 통한 검사와 분석만 믿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느낌을 인정하지만, 진단에 보충 정보로만 인정한다. 

 

우주가 존재하나?

이건 트릭이 있는 질문이다. 

첫째, 우주란 당신이 어떤 의미를 집어넣는 단어이다.

1) 누군가는 우주를 삼라만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2) 누군가는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돼 계속 팽창하는 무한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3) 혹자에게 우주는 신이 이레 동안 창조한 피조물이고, 

4) 다른 혹자에게 우주는 그저 시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이렇게 ‘우주’는 당신 마인드에서 이미지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오로지 당신에게만 존재한다. 당신이 나한테 우주가 신의 피조물이라고 오랜 시간 설득하고 증명할 수 있지만, 나에게 우주에 대한 다른 관념이 있다면 당신은 자기 이미지를 나에게 강요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식에서 주된 오류로 다시 돌아왔다. 즉,

1) 세상에 대한 자기 생각이 절대적 의미에서 참이라고 믿음과

2)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혼란

우리네 인간이 범하는 주된 잘못이다. 

 

이제 보충 질문을 하나 다뤄본다. 

당신이 안 보는 물건이나 대상이 있나?

예를 들어, 시내를 걸으면서 저 앞에 건물과 자동차, 사람들이 보인다.

등 뒤에는 무엇이 있나? 

 

시내 거리를 걷는 사람의 뒷모습

이런 경우 사람은 흔히 기억을 얼른 작동하여 자기 뒤에 있는 것을 떠올린다.
우리는 등 뒤에 있는 물체의 그림을 마인드에서 생생하게 그리는데, 이것이
단지 마인드에 있는 그림이요 내면세계의 이미지일 뿐임을 잊는다.
이 내면 이미지들을 우리는 별생각 없이 실재와 (현실과) 혼동한다

 

세상 그림을 기억의 정보로 자동 보충하는 것은 사실 우리 마인드의 놀라운 능력이다. 이 경우, 세상을 우리가 사는 거대한 공간으로 여기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에 살며 어떤 거리가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 우리는 주변 세계를 눈앞에 보는 것보다 더 큰 뭔가로 본다. 

예를 들어, 당신이 자기 방에 앉아 있다. 이 방은 당신 아파트 안에 있고, 아파트는 어떤 거리나 구역에 있고, 이 거리는 도시에 있고, 이 도시는 나라 안에 있고, 이 모든 것이 지구상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존재하나?
그렇다,
하지만 객관적 실재가 (현실이) 아니라, 우리 마인드의 이미지로만, 당신의 주관적 세계로만 존재한다. 

 

당신이 뒤를 돌아보지 않을 때 “등 뒤에 뭔가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로서는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당신이 뭔가를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있다’ 없다‘ ’존재하다‘라는 단어를 현명하게 쓸 줄 알기에, 저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하자. 

 

우리는 외부세계의 특정 물체를 우리 마인드가 만드는 외부 이미지로 보는 데 익숙해졌다.

예를 들어 자기 손을 본다면, 그건 당신이 보는 특정 물체의 형태로 당신 의식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 손에는 나름의 형태와 색깔이 있다. 이것은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손의 외부 이미지이다. 

만약 손을 등 뒤로 감추면 직접 볼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외부세계의 특정 물체의 외부 이미지로서 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는 것뿐인데, 기억에서 복원한 손 이미지는 이미 당신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마인드가 만든 내부 이미지일 것이다. 당신이 익숙하게 보던 손 자체는 사라질 것이다. 

 

사실, 이건 ‘사람 없는 숲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있을까’ 하는 물음과 비슷하다.

우린 이 물음을 앞에서 이미 살펴보고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뭔가를 누군가가 관찰하지 않는 한 그것은 없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있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세계의 실재에 대한 이 모든 환상은 이미 여러 철학자와 공상과학소설 작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묘사된 것이다.

예를 들어, 호평을 받은 영화 <매트릭스>가 바로 그렇다. 주인공 네오는 자기가 살고 있으며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익숙한 세계가 사실은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진 컴퓨터 시뮬레이션임을 알게 된다. 현대의 많은 영성 대가들이 깨달음의 아주 좋은 비유로 영화 <매트릭스>를 권한다. 

이 비유는 훌륭한데, 정확하진 않다.

주인공이 그의 세계가 환상임을 발견하고서 그와 비슷한 다른 세계로 들어서지 않고 ‘무’에 있게 됐다면, 깨달음의 더 정확한 은유였을 것이다.

 

깨달음의 대가들이 이에 관해 그렇게 말들 한다.

우리 세계는 단지 환상이고 꿈일 뿐이다. 이건 다 꿈과 비슷하다고 말들 한다.

꿈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잠을 깰 때, 이것이 단지 관념이었을 뿐임을 발견한다. 우린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잠을 깨고 나서는 꿈에서 일어난 것이 전부 진짜였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꿈속에 있는 동안에는 그게 현실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깨달음 얻은 이들은 깨달음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고 입을 모은다.

깨어난 뒤, 그들은 보통 사람이 진짜라고 여기는 것이 전부 환상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이걸 마야라고 부른다.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힘이요 환상의 산물인 마야(maya)는 우리 각자의 주관적인 세계이다. 이건 비현실적임을 우리가 알아봤다. 우리 의식과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우리를 위해 현실의 모델을 만드는 마인드의 작업이 전부 마야이다. 마야는 진짜 실재를 우리한테 숨긴다. 오로지 깨어난 이들과 마야의 최면에서 빠져나온 이들만이 진짜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보통 사람들은 이걸 알 수 없어, 왜냐하면 마야의 경계를 넘어선 상태를 아무리 상상해도, 이건 또 다른 내면 이미지일 뿐일 테니까, 즉 마야의 연속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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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 익숙한 세계의 환상적 속성에 대한 또 다른 좋은 은유는 아바타이다.

아바타는 힌두교 전통에서 지상에 나타난 신의 화신이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 이해가 더 잘 될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캡슐에 집어넣는데, 이 캡슐이 그의 인식을 ‘아바타’라 불리는 어떤 생명체의 인식과 연결한다. 이 ‘아바타’ 생명체는 행성에 서식하는 나비(na’vi)라는 생명체들을 인공적으로 키운 몸체이다. 

주인공이 아바타에 연결되면, 그는 이 아바타라는 생명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그가 아바타 속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인간의 의식이 이 생명체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다. 아바타 몸체 안에 있는 동안 주인공은 그것이 모조품에 불과하며 자신은 그것에 센서가 연결돼 지금 캡슐에 누워 있는 인간임을 점차 잊는다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아름다움은 당신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 금방 당신이 설명한 것을 난 자연에 둘러싸여 혼자 있을 때 가끔 순간적으로나마 경험한다. = 바로 그거야. (일본 선의 영향을 받은 서구에서) 선

mirchimin.tistory.com

 

고대 힌두교 전통에서는 인간이 다 하나님이라고, 인간의 몸체를 통해 이 세상에서 놀기로 작정한 하나님이라고 여겼다. 이 놀이를 전통 힌두교에서는 <릴라>라고 부른다.

우리 몸은… 유일한 의식(consciousness)인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는 데 거치는 것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에게, 유일한 의식에게, 아바타 같은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에서 한 토막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은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기를 거의 그만두고, 자기가 들어앉은 몸체인 나비라는 존재로 자신을 더 많이 보게 됐다.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도 우리의 몸이요 아바타에 들어앉은 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잊었다.
우리가 바로 유일한 의식이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이 인체는 주변 세계에 대해 아주 강하고 진짜 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준다.

이 아바타 몸이 없는 게 어떤 것인지를 우린 잊어 왔다. 

깨달음이란…
‘나는 실제로, 정말로, 진짜로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건 자신의 ‘아바타’와 잠시 떨어져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 세상에 환상적 속성이 강함에 대한 마지막 은유는… 3D 안경, 터치의 환상을 만드는 특수 장갑과 슈트, 컴퓨터가 만든 가상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다른 수단 등 특수 기기의 도움으로 현대 컴퓨터 기술이 만든 가상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이 세상에서, 그 안에서 오랫동안 놀면서 우리가 그저 놀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그리고 놀이에 완전히 빠진다. 그리고 우리가 그저 게이머라는 점을 잊는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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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착각 > ... )

  12. 단일한 원인이라는 환상  

 

 우리는 세상사를 인과관계로 보는 데 익숙하다

내가 어떤 물건을 밀치면, 그건 넘어질 것이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태양이 비치기 때문에 덥다. 

이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카르마 - 인과적 사건들의 사슬. 행동, 시간, 결과

세상에 대한 그런 시각에 우린 익숙하다.

하지만 또 우리는 어떤 사건에 한 가지 원인만 있다는, 하나의 제한되고 환상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이유는 거기에 새가 앉았기 때문이다. 혹은 이런 예도 보자. 전깃줄이 끊어진 것은 태풍 때문이다. 

 

이 세상의 인과관계를 그렇게 보는 건 다소 좁은 안목이다. 그런 시각에 국한돼 있다 보면, 우리네 삶의 흐름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세상 모든 과정이 서로 작용하여 이뤄진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 문제를 다뤄보자. 

 

내가 책상에 놓인 연필을 쥐어 바닥에 던진다고 치자. 연필은 당연히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질문 – 이 연필은 왜 바닥에 떨어졌나? 첫 번째 자연스러운 대답은 내가 그걸 놓았으니까 떨어졌다는 것이겠다. 그렇다. 하지만, 중력이 없다면 연필이 떨어졌을까? 

알고 보니, 연필이 떨어진 데는 적어도 두 가지 원인이 작용했다.

1) 손에 쥔 것을 놓아주고

2) 연필에 중력이 작용했다. 

 

하지만, 난 왜 연필을 놓았을까? 왜냐하면, ‘단일한 원인이라는 환상’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물건을 쥐었다가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단일한 원인의 환상’이라는 원칙을 당신에게 보여주기 원하나?

왜냐하면, 당신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이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지식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건을 쥐었다가 놓는 능력은 어떻게 나한테 생겼나?

어린 시절 부모가 나에게 가르쳐 주어서,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겐 여느 동물처럼 반사적으로 쥐는 행동이 (*grasp reflex) 있기 때문이다. 

아기가 물체나 대상을 본능적으로 꽉 움켜쥐다.
Grasp Reflex (움켜쥐는 반사, 반사적으로 움켜쥐는 행동/본능) - 갓난애가 두 손으로 엄마를 잡을 때 나타나며, 그 쥐는 강도는 아기를 그대로 들어올릴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이런 현상은 생후 3-4개월까지 나타났다가 점차 약해진다. 그 이후, 나이가 더 들어서도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신경성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이제 보라.

물건을 쥐고 놓는 법을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 연필로 시연할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며, 그러면 이 연필이 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관객으로서 당신이 여기에 없다면, 연필 시연을 보여줄 동기도 없고, 그러면 연필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열거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도 없었다면, 연필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연필이 떨어진 데에는 저렇게 여러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또 다른 원인이 많이 있음을 당신은 이제 짐작했을 텐데, 지루해질까 봐 여기서 생략한다. 

 

또 나는 여러 원인을 계속 규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수준에서 멈췄다.

예를 들어, (움켜쥐기 반사, grasp reflex) 반사적으로 쥐는 행동이 왜 나한테 있는 것일까?

나의 유전적 조상들이 생존하기 위해 주변 공간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건 또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그때는 포식자들로 득실거리는, 공격적인 자연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때는 왜 포식자들이 있었나?

왜냐하면, 자연도태가 그렇게 작동하여 가장 강한 것만이 살아남았으니까. 

 

곧, 연필이 바닥에 떨어진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오랜 옛날에 사람들이 포식자들이 있는 야생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반사적으로 움켜쥐는 행동은 (grasp reflex는)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연필을 쥐었다가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연필을 손으로 쥐고 시연해 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필이 바닥에 떨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우리가 열거한 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보자.

대략적인 도표는 이런 식이다. 

하나의 사건을 일으키는 여러 요인의 관계가 어떤 계층적 도식으로 드러났다. 이 시스템의 각 수준에서 한 가지 요인이 여기 다이어그램에서는 또 다른 한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표시돼 있지만, 실상은 훨씬 더 많은 요인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내가 물체를 손으로 쥐었다가 놓을 수 있는 것은…

1) 반사적으로 움켜쥐는 본능을 물려받고

2) 부모의 가르침도 있는 데다가

3) 나한테 손가락들이 있으며

4) 손과 물체 사이에 마찰력이 있고

5) 손을 제어하는 근육이 있다는 사실 외에도

6) 훨씬 더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각 수준의 다른 요인들에 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각 수준에서 요인의 수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점에 주목하라. 수준의 수효 역시 (‘신에 의한 세상 창조’나 ‘빅뱅의 결과 세상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각자 편한 대로) 잠재적으로는 무한하다는 점에 주목하라, 

알고 보니… 이 연필이 지금 바닥에 떨어지기 위해서는 사실상 우주 전체가 이 일이 일어나게끔 항상 작동한 것이더라. 이 무한한 계층 구조에서 한 요인이라도 없었다면, 어떤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점에 다시금 주목하자. 

 

이 계층 구조를 더 발전시키면 이론적으로는 태양광 같은 요인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햇빛이 다른 어떤 요인에 영향을 미치고, 이 다른 요인이 또 다른 요인에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연필이 떨어지는’ 사건에 우리가 계층적으로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연필이 떨어진 원인은 태양광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는 말을 비슷하게 적용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금방 여기서 내린 결론 몇 가지를 요약해 보자. 
1. 어떤 사건이든 그 원인 요소는 얼핏 보듯이 한 가지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 
2. 수많은 원인 요소 가운데서 한 가지라도 빠진다면,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3. 요인들은 계층 구조로 배열돼 있어서, 어떤 요인들이 다른 요인들의 존재에 필요조건이 된다. 

 

이제 어떤 특정한 사건이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자.

내가 바닥에 떨어뜨린 연필을 계속 예로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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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당신은 보고 듣는 사람으로서 이 사건을 보고, 이 사건은 당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낙하의 결과 바닥에 부딪히면서 연필 몸통에 금이 갔다. 연필 떨어지는 것을 당신이 보았기 때문에, 또 내가 연필 낙하의 원인을 얘기했기 때문에, 당신은 이걸 기억하고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목격자 중 한 사람인 영희가 친구 철수에게 연필 낙하에 관해 얘기해 주자, 전공이 경제지만 철학적 단상을 좋아하는 철수는 세상 구조와 그 안에서 인간의 위치에 관해 숙고하게 됐다. 이 때문에 철수가 1년 뒤 직업을 바꾸고 편력하는 데르비시(dervish)가 되어 존재의 우연함에 관한 책을 썼는데, 그것이 히트를 쳤다. 이제 해원이란 여성이 철수의 책을 읽고 선원(禪院)에 들어가 2020년도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이 연필이 지금 바닥에 떨어진 결과가 2020년도 해원의 깨달음이다.

지금 이 사건이 없다면, 영희는 이것을 못 보고 친구 철수에게 얘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철수는 직업을 바꾸지 않고 데르비시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책을 쓰지도 않았겠지. 그러면 해원이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을 테고. 

 

연필이 떨어지면서 금이 갔기 때문에, 이틀 뒤 연필심이 부러졌다. 이때 나는 비전(秘傳)을 논하는 밀교 회의에 참석했는데, 유일한 필기도구가 이 연필이었다. 그게 부러진 줄 몰랐기에, 의식(意識)의 본질에 관해 중요한 생각을 기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옆 사람에게 볼펜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참선의 대가였다. 이 인연으로 나는 그한테서 참선을 배우게 됐고, 아예 일본으로 이주했다.

곧, 연필이 떨어진 또 다른 결과는 내가 2년 뒤 일본에 정착한 것이다. 

 

연필을 떨어뜨린 결과가 물론 지금 예시한 저 둘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편의상 두 가지만 들었을 뿐이다. 연필심이 부러져서 연필을 쓸 수 없게 된 것도 직접적인 결과로 꼽을 수 있다. 

 

여기 제시한 여러 결과는 예를 들기 위해 내가 생각해 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세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건들도 있다. 그런 사건의 결과는 점차 제로가 된다.

예를 들어, 새의 지저귐이 창밖에서 들려온다. 물론, 이 지저귐이 세상에 거의 영향 미치지 못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를 들어, 지나가던 시인이 이 지저귐을 듣고 시를 지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모든 사람 입에 오르게 되고, 이것이 3차 대전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지 누가 알겠나.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물론 있다. 예를 들면, LSD 발견, 일본 후쿠시마 원폭 투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결론을 내리자.

세상 모든 사건은 무한히 많은 결과를 낳는다.

왜 무한하다고 하냐면, 이 사건의 결과인 여느 사건이 그 자체로 사건이며, 거기에도 또 결과들의 사슬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는데, 이것도 결과들의 계층 구조로 그릴 수 있다. 

두 계층 구조를, 즉, 어떤 사건을 촉발하는 요인들의 계층 구조와 그 사건의 결과들의 계층 구조를 비교한다면,

모든 사건에는 그것을 촉발하는 숱한 요인과 (즉, 원인과) 무수히 많은 결과가 (혹은, 파장이) 있음이 드러난다.

이때 우리는 사건들이 서로 영향 미치는 도식을 대략 이렇게 얻을 수 있다. 

 

이 도표는 그저 도표이며, 세상 사건들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모델일 뿐이다. 다른 여느 모델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반영하지 않으며 실재의 어떤 측면을 가리킬 뿐이다. 이 모델은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공통 공간으로서) 객관적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이 모델을 보면 여기 담긴 근본 생각이 저절로 이해될 것이다.

즉, 모든 사건은 서로 연관되고 얽혀 있다는…

 

모든 사건은, 하다못해 하찮게 보이는 것도, 이 세상에서 상호 의존 네트워크의 필수 요소이다. 세상 모든 사건은, 온 세상은, 단일한 하나처럼 작동한다. 이것을 사건들의 단일 캔버스라 부를 수 있다. 온 세상이, 온 우주가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게끔 이끌어왔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는 것은) 사건들 사슬에서 필수 연결 고리이며, 이 고리가 일어나야 할 결과들을 일어나게 할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이런저런 사건의 결과가 무엇일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평범한 인간 마인드가 단번에 커버하기에는 모든 게 상당히 복잡하다. 아니, 아예 불가능하다!

스스로 판단해 보라. 사건들의 발전과 상호관계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이 생각을 확실히 알아보자. 이 시나리오는 허구지만 실제로도 아주 가능다. 

 

젊은이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는 우연히 티브이에서 껌 광고를 보았다.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왜냐면 좋아하는 여배우가 등장한 데다가 광고가 선명해서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 젊은이가 거리를 간다, 얼마 전 세워진 가판대를 지나치다가 그 껌을 보았다. 그 껌이 눈길에 들어온 것은, 광고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한번 맛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판대 주인도 이 껌 광고를 보고 이 껌이 잘 팔리리라 여겼다, 왜냐면 광고 모델로 나온 여배우를 그도 좋아하고 광고도 잘 만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즉, 구매 수요가 제법 있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제 껌을 주문하여 가판대에 내놓았다. 
지나가던 젊은이가 호기심 가는 껌을 사려고 가판대로 다가갔다. 그때 판매인의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껌을 금방 내줄 수 없었다. 젊은이가 잠깐 기다리는 차에 친한 친구가 지나갔다. 오랫동안 못 본 얼굴이기에 껌 사는 건 잊고 친구를 따라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이 이야기에서 모든 사건이 서로 얽히고 연관된다는 점이 충분히 이해된다. 여러 사건 가운데 하나라도 없다면 이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흘렀을 것이다. 

이제, 다른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야기하고 유발하는 사건들이 세상에서 동시에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세상 사건들의 이 거대한 캔버스는 우주 전체와 같다.
이 삶의 캔버스에 우리 각자는 자신의 몫을 조금씩 집어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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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마인드의 환상  

 


  11. 시간의 환상  

 

사람의 주관적 실재 (현실) 형성에 언어와 단어들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앞에서 다뤘다. 

필요하면, 단어들에 관한 장현실 지각 수준에 관한 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거기서는, 우리 삶에 들어와 우리의 경험 구조를 형성하는 키워드들이 있음을 알아봤다. 

 

the illusion of time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시간, 미래, 과거, 현재’ 같이 시간과 관련된 단어이다.

이 단어들에서 시간이 존재한다는 환상이 나온다. 단어에 관한 장에서 그런 단어들을 쓰지 않는 부족의 사례를 들었다. 그들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어. 사실상 현재에서만 산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이며 주변 세계와 아주 잘 공존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언어와 문화의 산물이란 말인가?
우리는 시간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는 데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 세계관의 정확성 여부는 생각도 않는다. 

 

시간의 몇몇 환상을 살펴보자. 

과거란 무엇인가? 

먼저, 모든 단어에는 우리가 거기에 집어넣는 어떤 뜻과 어떤 이미지가 있음을 기억하자.

당신에게 ‘과거’란 무엇인가?

이 단어에 당신은 어떤 뜻을 부여하나?

이 단어와 관련하여 당신 내면세계에서 어떤 이미지가 나타나나? 

 

대체로 ‘과거’에서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한테 일어난 사건의 장면들을 보게 된다. 여러 환경에 있던 유년기의 자신을 본다. 자기 인생의 여러 시기에 일어나서 기억되는 일들을 본다.

또 ‘과거’라는 단어를 접할 때 손을 흔들며 “이건 지나간 거야” 하고 말할 수 있고, 그러면서 마인드에서는 (내부 화면에서는) 자신의 등 뒤에서 구불구불 뒤쪽으로 이어지는 어떤 길을 보기도 한다. 

당신 경우엔 어떤가? 

‘과거’라는 단어에 대한 반응으로 당신의 정보 채널에서 무엇을 보는가? 

어떤 대답을 하든, 그건 다 내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일 것이다

직접 보고 확인하라. 

 

당신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과거를 지금 나한테 보여줄 수 있나? 

과거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걸 나한테 보여주시라. 

어떤 것을 보여주든, 그건 다 바로 목전의 현실에 있는 무엇이거나, 아니면 자기 마인드의 내부 화면에서 당신이 지각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가 분명 있다고 사람들은 강하게 느낀다. 고고학적 발견이나 고문서, 아니 단순히 당신의 개인적 기억 등이 그 증거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엊저녁에 식사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난 기억해. 아침에 샤워하고 이를 닦은 것도 기억나. 이건 다 있었던 일이야, 비록 지나간 것이긴 하지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열한 것은 전부 당신의 기억이나 회상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한데, 기억이나 회상은 당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 있는 이미지이다. 
즉, 과거에 관한 그 이미지들은 전부 당신 의식에서 사실상 바로 지금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서 나오는 게 전혀 아니다. 

 

또 이런 반박이 나올 수도 있겠다.

“현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의 연속이야, 내가 과거에 어떤 행위를 했기 때문에 현재가 있는 거 아니겠어? 예를 들어, 1분 전에 내가 탁자에 컵을 놓았기에 컵이 지금 거기 있는 거잖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1분 전에 (과거에) 컵을 놓았을 때, 실제로는 그 행위가 현재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지금 그것을 과거처럼 회상하는 것일 뿐.

어제나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기억에서 정보를 끄집어낼 것이다. 기억에서 나오는 정보는 전부 지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생각하는 과거란 전부 바로 지금 떠오르는 회상이고 기억이다.

당신에게 기억이 없다면,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당신의 과거가 있을까? 

 

이제 ‘미래’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미래는 과거에 비하면 한층 더 비현실적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이 기대하는 무엇이나 볼 것이라 예상하는 뭔가가 어떻게 일어날지 상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어떤 행동에 영감을 주는 뭔가를 상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뭔가를 계획할 때 종종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저녁 식사 후 어디로 산책할까 생각하는 것일 수 있고, 혹은 올여름 휴가를 바닷가에서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은 자기 마인드에서, 자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서, 사건의 예견되는 발전이나 미래에 기대하는 것을 상상하며 어떤 장면을 그릴 것이다.

미래에 관해 생각할 때, 그걸 당신은 지금, 현재에서, 한다. 

 

학수고대하던 미래가 도래하는 순간, 그 미래에 있는 현실은 당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상상하던 대로 여름에 정말 바다에 간다 해도, 거기서도 당신은 역시 현재에 있으리라는 점이다.

결국, 미래란…

우리 마인드에서 지금은 없지만 곧 나타날 수 있는 뭔가에 대한 상상이 표현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지금, 현재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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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환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어떻게?

예를 들어, 미래를 지금 즉시 보여 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엇을 보여주든 그것은 또 현재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는 당면한 현실에 있지 않으며, 우리 상상에 속한다.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여느 추상적인 이미지처럼 환상이며,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편리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과거나 미래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다. 
우리는 (언젠가 그 당시)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난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기억한다.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날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상상한다. 
과거와 미래는 기억과 상상의 작업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상상의 장난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들이 있었고 미래가 어떤 형태로든 도래하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살면서 항상 본다.

이것을… 시간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하나?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지속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영속>, 1931.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객관적 실재라는 게 있다. 그리고 우리 마인드는 거기서 정보를 얻어 우리를 위해 세상 모델을 만든다. 즉, 우리의 주관적인 현실을 (실재를, 세계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객관적 실재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들의 모델이며, 이 과정은 변화와 관련된다.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변화와 관련된 객관적 과정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고, 이 과정을 우리가 주관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심리적 시간이다.

이건 당연히 물리적 시간을 제법 잘 묘사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이미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을 지구에서 발사한다면, 이 로켓에서 흐르는 시간은 지구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이 로켓의 시계에서 1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의 시계로는 1백 년이 지나게 될 것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돌아와 보면 손자들이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한테 경악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마인드가 우리에게 시간의 모델만 만들어 낼 뿐이지 물리적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들이 없고, 그래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의 변화가 하도 작은 까닭에 우리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우리한테 이건 (물리적 시간은) 중요하지 않으며, 시간은 어디서나 똑같이 흐르는 것 같아.'

이게 우리의 주관적인 시간 감각이다. 

 

만약 과거와 미래가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확인할 수 있나?

오직 한 가지만 가능하니,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바로 지금 알아차릴 수 있다.

외부세계도 내면세계도 변화하고 있다. 변화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냥 관찰하라. 항상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이 언제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 이제 직접 관찰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현실(실재, 실체)이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1분 동안 주의를 기울여 보라. 

생각이며 느낌 등 내면세계의 일도 덩달아 관찰할 수 있다. 그것도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과거의 뭔가를 회상한다 해도, 그것 역시 당신의 내부 화면에 나타나는 일련의 생각과 이미지로서 바로 지금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의식에 있는 이미지라는 점을 이해했다면, 그 이미지들에 당신이 얼마나 자주 빠져드는지 추적할 수 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나.

그것을 당신은 지금 회상하고, 이 회상이 지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얼마나 자주 미래로 들어서는지 관찰해 보라. 더 정확히 말해, 당신 마인드에서 기대와 계획을 얼마나 자주 품고 세우는가? 

있을 수 있는 뭔가에 대해 얼마나 자주 불안해하는가. 이 불안은 당신이 바로 지금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는 미래의 무서운 이미지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건 단지 내 마인드의 이미지일 뿐이야’ 하고 자신을 달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주의와 눈길과 관심을 지금 실제로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로, 지금 순간으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목전의 현실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오로지 ‘지금 여기’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영적 대가들이 설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로지 ‘지금’, 오로지 ‘여기’만 있다. 나머지는 죄다 마인드의 한갓된 장난이며,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현실)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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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

  9장. 우리 삶에서 

 단어들이 차지하는 역할  

 

인간의 삶에서 단어의 역할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정보 채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의 감각적 흐름에서 특정 대상들을 뇌가 구별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 마인드가 현실의 모델을 만든다는 것을 우린 이미 살펴봤다. 

뇌의 여러 감각 정보 처리 센터. 운동, 촉각, 시각, 청각, 말,균형

 

이밖에, 우리 삶이 대부분 펼쳐지는 추상적 현실이 (세계가, 실재가) 언어 덕분에 만들어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의 말을 구성하는 단어와 용어들이다. 우리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데 하도 익숙해진 바람에, 단어가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됐다.

이제는 단어들이 문자 그대로 우리의 현실을 이루고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편이 됐다. 언어 자체와 언어 구조가 우리네 주관적 실재의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식에서 큰 오류가 하나 벌어졌으니, 우리가 단어를 실제 대상과 혼동하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살펴본다.

 

단어들의 의미는 어떻게 형성되나  

 

모든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다. 그 단어에 부합하는 이미지 세트가 그 단어의 의미이다. 

‘공’이란 단어를 예로 들자. 만약, 아이가 어려서부터 축구공들만 보았으며, 공은 둥글고 발로 차면서 놀 수 있다고 어른들이 말하고 공을 갖고 노는 방법을 보여주었다면, 어린애는 ‘공’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둥글며’, ‘갖고 놀 수 있다’는 이미지와 함께 공을 차고 놀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둥근 축구공
아이들이 축구를 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공’이란 단어에 대한 이해와 개념이 굳어지는데,

그때 또 이런 것을 본다. 

럭비공

그리고 “이것도 공인데, 미식축구에서는 이런 공을 쓴단다” 하는 얘기를 듣는다. 아이가 처음엔 당황할지 모른다. 공은 둥근 모양이라고 확실히 알고 있는데 이건 고구마처럼 길쭉하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아이의 마인드는 이것도 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고, 이때 아이의 인식에서 ‘공’이란 단어의 의미가 조금 바뀌게 된다. 

이제 이 개념의 의미가 넓어져서 둥근 형태의 공만이 아니라 고구마처럼 생긴 공도 포함된다. 게다가 저런 공으로 미식축구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사람이 겪는 경험을 통해서 단어들의 의미가 형성된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사내애가 둘 있다. 하나는 동그란 모양의 공만 본 한국 소년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마 모양의 공만 본 미국 소년. 둘이 만나서 공 모양이 어떤지를 두고 다투기 시작한다. 하나는 공이란 다 둥글다고 열변을 토하고, 다른 하나는 공은 다 고구마처럼 생겼다고 입에 게거품을 문다. 

둘 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면서, 아니라면 손가락에 장을 지져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은, 둘 다 옳다. 둘 다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옳다. 다만 두 사내애는 우리네 각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형성된 주관적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또한 ‘공’이란 사람의 경험을 가리키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당신의 경험을 그 사람도 맛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 공 같은 경우 문제는 아주 간단히 해결된다. 서로 상대에게 자신의 공을 내보이면서 이것이 ‘공’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공에 대한 경험을 두 소년이 금방 서로 나누게 되고, 언쟁이고 자시고 더 이상 따질 것도 없을 것이다. 

 

보았다시피,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 하나는 1) 사람의 경험이다. 사람이 어떤 경험을 겪는다. “그 경험은 무엇무엇이라 불려” 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말한다. 그러면 이 명칭을 그 사람은 자기가 겪은 경험과 연관 지을 것이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이 또 있는데, 바로 2) 그 단어를 정의하는 것이다. 

단어의 정의란… 그 단어의 의미를 다른 단어들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바로 앞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정의에 대한 예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단어의 정의는 단어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다음 예를 보자. 

한국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 따위로 나타낸 종이를 겹쳐서 한데 꿰맨 물건
러시아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인쇄물의 하나로서, 용량이 48쪽 넘고 통상 하드커버로 제작되며, 텍스트 정보와 그래픽 정보를 담은 종이들을 한데 묶은 비정기적 출판물.

 

어떤 정의든 상관없다. 만약 당신이 책이란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저런 정의로써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한 권이라도 봤다면, 이 정의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다. 안 그러면, 저런 문장들로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단어를 정의할 때는 그 의미를 생생히 보여주는 예를 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례는 어떤 단어의 의미를 실제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생생하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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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아마존강 유역에 ‘피라하’란 부족이 있다. 그들 언어는 아주 독특하다. 그들 말에는 ‘어제’, ‘내일’, ‘엄마’, ‘아빠’, ‘전부’, ‘일부’, ‘나의’ 같은 개념이 없다. (‘부모’라는 단어는 있다.) 한데 이런 개념이 없이도 그들은 아주 잘 산다. 그들의 세상 모델에는 시간, 소유, 재산, 분할이란 개념이 없다. 이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한데,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려면 그들 속에서 살아볼 필요가 있다. 그 문화에서 태어나면 더 좋고. 

어쨌든, ‘내일’이나 ‘부분/몫’ 같은 기본적 단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다시금 입증한다. 즉, 우리가 익숙하게 쓰면서 그 이면에 실제로 뭔가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아주 많은 단어가 사실은 실재의 (현실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네 언어와 문화의 답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피라하 부족의 언어와 달리 우리네 언어에는 그런 용어들이 있고, 이것이 이 용어들을 토대로 하는, 세상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우리한테 일관되게 만든다. 게다가 우리네 언어에는 특별한 단어와 개념이 여럿 있어서, 이것이 우리 세계관에 아주 강하게 작용하여 우리의 주관적 세계를 만들고 체계화한다. 

 

이는 우리 언어의 주요어, 키워드들이다. 이 핵심 단어들이 우리 경험의 구조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있다’, ‘…이다’, ‘존재하다’, ‘시간’, ‘미래’, ‘현재’, ‘과거’, ‘공간’, ‘나’, ‘…을 하다’, ‘대상’, ‘물건’, ‘원인’, ‘결과’, ‘나의’, ‘가지다’, ‘소유하다’, ‘속하다’, ‘과정’ 등등. 

 

“이건 내 전화기야” 하고 말할 때, 나와 이 전화기를 연결하는 특별한 뭔가가 세상에 있나? 전화기가 나한테 귀속됨이 목전의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건 아예 없다. 한데 우리는 그런 귀속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의’ 전화기가 망가지면 아주 속상할 정도로 믿는다. 피라한 부족에겐 ‘나의’라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둘러싼 문제도 없다. 한데 우리는 이웃보다 더 많은 사유재산을 차지하려고 열 올리며 자기 삶을 쏟아붓는다. 

 

이 키워드들이 우리 언어의 구조를 어떻게 만드나? 몇 가지 예를 들자. 

- 시간 개념이 언어에 아주 깊이 침투해서, 그 언어의 모든 동사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다. 예를 들면… 갔다, 간다, 갈 것이다. 

- 뭔가를 소유한다는 생각 또한 우리네 언어에 잘 파고들었다. “내 집 마당에 밤꽃이 피었어.” 

- ‘있다’와 ‘존재하다’ 같은 단어는 뭔가가 있거나 없다는 생각을 우리가 품게 한다. 예를 들어, “화성에는 생명체가 있다.” 

- ‘…이다’라는 단어는 비일비재하게 쓰인다. “나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은 진보적이야”, “입만 열면 불평이다” 등.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뒤에서 따로 살펴보겠다. 그 단어들에 들어있는 착각이나 환상의 속성을 알게 되면, 당신의 세계관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단어들의 작위성

 

단어의 다른 측면 가운데 작위성을 살펴보자. 단어와 용어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언어에 도입된다. 주로 편리함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에 관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할 때, 그는 자신의 어휘에 있는 단어들을 쓰려고 한다. 어휘가 충분치 못하다면, 새로운 단어와 용어를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쉽게 하는 모든 장치를 가리키기 위해 ‘운송 수단’이란 용어가 도입됐다. 자연에는 ‘운송 수단’ 같은 물체나 대상이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언어에 도입됐으며,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특정 장치를 가리키는 데 쓸 수 있다.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장치’라는 어구를 두 번 쓴 점에 주목하라. 이 기다란 표현 대신 이제 우리는 ‘운송 수단’이란 용어를 간편하게 쓸 수 있다. 게다가 이 표현을 다른 용어들과 결합하여 여러 문장에서 아주 잘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송 수단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도시에서 교외로 실어 날랐다.” 

여기에는 어떤 운송 수단을 이용했는지, 얼마나 되는 사람들인지, 어떤 도시인지가 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 과정의 어떤 장면을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기까지 한다. 

 

또 다른 예로 ‘질병’이란 단어를 보자. 질병이란 단어는 대개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아주 다양한 불쾌한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질병’이란 단어 하나로 언급함으로써 우리는 몸에서 느끼는 갖가지 징후를 사실상 단순화하고 마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질병의 증상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간과하거나 과대평가하기 쉽다. 

 

다시 강조하건대, ‘운송 수단’이나 ‘질병’ 같은 것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사람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을 가리키는 편리한 용어일 뿐이다. 즉, 개인적 경험의 어떤 부분을, 대상이나 과정의 어떤 집합을, 이 용어로 정의하는 것이다.

 

곧, 단어란… 사람의 어떤 경험을 가리키며 철자들로 이뤄지고 어떻게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한데 단어가 그냥 뭔가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면 난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부를 수 있다. ‘램프’라는 단어를 예로 든다면, 그 단어로써 보통사람은 빛을 내며 대개 유리로 둘러싸인 어떤 물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내가 내 언어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램프’가 아니라 이를테면 ‘팡켄’이라 부르고, 그래서 예를 들어 “팡켄 불빛이 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팡켄’이라는 단어에 내가 집어넣은 의미를 당신은 집어넣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우리가 대화하면서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용어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이것이 그냥 중요한 게 아니라 때론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마인드’라는 단어를 이용하면서 우리는 그 단어에 ‘들어오는 감각 정보의 흐름으로 현실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뇌의 능력’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데 많은 사람이 ‘마인드’라는 단어로 전혀 다른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뜻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이 구구할 수 있는) 단어들이 우리 언어에 아주 많다. 예를 들면, ‘자유’, ‘정의’, ‘평화’, ‘사랑’, ‘가족’, ‘행복’ 등이 그렇지 않은가? 

 

이런저런 단어에 사람마다 여러 의미를 집어넣는다는 점을 알아차린다면, 이런 말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즉, “당신은 마인드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마인드는 생각이자 정보 처리 능력이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마인드는 주로 마음을 뜻하지요.” 따라서 어떤 주제를 두고 대화하기 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우리 대화에서는 다들 쓰는 단순한 용어들을 사용하며, 이 용어들로 널리 통용되는 의미에 최대한 가까운 의미를 담으려고 한다. 어떤 경우에든 각 용어에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필요하다면 정의를 덧붙인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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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08-2. 마인드가 실재의 (현실의) 모델을 만들다 (2) 

 

지금까지 다룬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을 다시 반복하자. 

당신이 바로 지금 주변에서 관찰하는 목전의 현실은 (실재는) 세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마인드가 작업한 결과이다. 

마인드는 여러 대상과 물체를 우리 의식에서 바로바로 만들어 낸다. 

 

마인드가 실재의 (현실의) 모델을 만들다

 

목전의 현실 수준에서 세상의 모델을 동물들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이 훨씬 앞섰다. 인간에겐 다른 동물들과 달리 언어가 있다. 앞에서 알아봤듯이, 언어는 단어들이며 단어 결합 형태로 세계를 반영하는 도구이다. 언어 덕분에 세상의 모델을 만드는 두 번째 수준이 나타났으니, 바로 추상적 실재(현실)이다. 세상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전부 마인드가 추상화 수준에서 만들어 낸 세상 모델이다

 

멀리 가지 말고,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당신은 알고 있다. 이 나라에 대통령이 있음을 안다. 우리가 다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에 살고 있음을 당신은 안다. (이걸 모른다면, 당신은 이 과정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어린애이거나, 혹은 당신이 사는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세상을 달리 보는 것이리라.) 

당신이 사는 도시나 마을에 어떤 길들이 있나? 

그 길들이 서로 어떻게 배치돼 있나? 

당신 나라의 통화는 무엇인가? 

당신 은행 계좌에 지금 돈이 얼마나 있나? 

당신의 성별은 무엇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당신 부모의 이름은 무엇인가? 

소리란 무엇인가? 

색깔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사물은 무엇으로 이뤄지나? 

세상에는 어떤 종교들이 있나? 이에 관해 당신 생각은? 

당신이 알고 있는 동물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 

 

좋아, 이런 것이 전부 당신이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임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예가 될 것이다. 이건 다 당신이 마인드에서 세상을 그리는 방식이다. 이건 다 당신이 사는 세상의 모델일 뿐이다. 이런 걸 다 당신이 함께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쳤다. 이것이 당신네 문화유산이다. 

 

같은 질문들을 문명과 동떨어진 아프리카 툼바윰바 섬 원주민에게 물어보라. 그의 답변에 당신은 놀랄 것이다. 그를 무지하다고 여기나? 그의 관점에서는 당신이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아니, 굳이 툼바윰바 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라. 당신의 대답을 종이에 적으라. 다음에 같은 질문을 이웃에게 해 보라. 그의 대답을 당신 것과 비교해 보면 어떤가? 

이웃이 생각하는 '사랑'은 당신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의 세상 모델은 당신 것과 다르다. 

 

이제 보충 질문 하나. 서로 생각이나 관점이 다른, 당신과 이웃 중에 누가 옳은가? 만약 당신이 옳고 이웃은 뭔가를 잘 모른다고 말한다면… 아쉽게도 당신은 내가 전하려는 주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이런 물음들을 제시한다. 여기에 답할 때, 당신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전부 세상 모델일 뿐이지 세상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 질문은 이렇다. 

 

급진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 누가 옳은 건가? 

예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나? 

종합부동산세를 올려야 하나? 

신은 (하나님은) 있을까? 

국가의 질서를 잡기 위해 무기를 사용해도 되는가? 

마약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검찰 개혁이 꼭 필요한 사안이라고 치자. 한데 그 개혁을 도덕성에 의혹이 많은 사람이 꼭 맡아야 하는 걸까? 

 

도발적인 질문들을 일부러 던졌다. 저 몇 가지 물음에 대답이 여러 가지 나올 수 있다. 저 질문들은, “지금 몇 시야?” 하는 물음과 달리, 사회 분열과 갈등과 전쟁을 일으킨다. 저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세상이 자기가 상상하는 것과 같다는 믿음이 사람들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 모델은 세상 자체가 아님을 모를 때 아픔과 고통이 아주 많이 생긴다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전부 현실의 모델일 뿐임을 알아야만 그 모델에서 좀 떨어지고, 이 모델이 당신 의식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자기관찰의 실천이요, 존재와 의식성의 실행이다. 
이것이 거의 모든 영적 가르침이 말하는 수행이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좀 더 뒤에서 이야기하자. 그 이전에 우리는 당신의 본성에 빛을 밝힐 몇 가지 주안점을 다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즉, 어떤 특정한 사람의 세상 모델은 무엇에 좌우되나? 이 물음에 답하다 보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의견과 입장에 더 충실해질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당신의 신경을 다치지 않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 더 동정적이며 관대한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의 세상 모델은 무엇에 좌우되나? 여기에 몇 가지 요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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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어린애는 세상을 전혀 모른 채 세상에 나온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린애가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은 다 주변 환경에서 끌어낸 것이다. 유년기 아이의 환경은 주로 부모와 또 아이가 성장하는 문화이다. 이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부모가 신앙인이라면, 아이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대한 그런 관점을, 즉, 종교적 관점을 받아들이리라. 나중에 많은 사람과 접촉하면서, 아이는 종교에 관해 여러 입장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신을 믿고 누군가는 믿지 않더라. 만약 아이에게 비판적인 마인드가 (혹은, 문제의식이)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종교 성향을 숙고하고 이 문제에서 자신의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람들이다. 부모는 아이한테 행동하는 법과 옳고 그름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부모의 행동 모델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아이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과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게 무엇인지 가르친다. 

이것이 아이의 잠재의식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향후 아이의 세상 그림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세상 모델이 부분적으로 부모에 의해 우리한테 주입된다

 

2) 아이가 태어난 뒤 학교에 다니면, 거기서 과학을 가르친다. 학교에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주 많이 배운다. 사람들과 접하면서 아이는 그들의 행동 양식과 언어, 자기가 속한 사회의 방침 등을 이어받는다. 이런 측면도 쉽게 이해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게 흉이 아니다. 일본인들에게 이건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주로 불교와 힌두교가, 중동에서는 이슬람이, 유럽과 미국에는 기독교가 널리 퍼져 있다.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종교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어떤 종교가 진짜인지를 두고 다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더 나쁜 것은, 자기네 종교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죽이는 짓이다. 

알고 보니, 세상 모델의 일부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의 문화에 좌우되더라. 또, 같은 가정과 같은 문화에서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 다른 세상 모델을 갖고 있다. 

 

3) 어떤 사람이 세상의 모델을 만드는 데 또 무엇이 영향을 미치나? 다음 요소는 사람의 타고난 특성이다. 누군가는 분석적 사고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들에게 세상은 커다란 예측 가능하고 분석되는 기계이다. 그들은 존재의 영적 분야에 무심할 수 있고, 따라서 성직자들을 부정하며 사기꾼이라 부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미묘한 영적 감각에 상당히 민감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특성을 키울 것이며, 따라서 세상을 물질보다는 정신의 발현으로 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이들이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사람이 된다. 또 다른 3의 그룹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에 재능을 지닌다. 그들에게 세상은 물질적이거나 영적인 것보다 사람들 사회이다. 

 

4) 끝으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의 경험이다. 바로 개인 경험이 그 사람의 마인드가 현실의 모델을 세우는 기반이 된다. 바나나를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피리 소리를 한 번도 못 들은 사람이 피리가 어떻게 소리 나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끔 그 소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선천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태양이 붉게 이글거리고 눈부시게 환하다고 말할 때, 그는 무엇을 상상할까? 

이 정도 예를 들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경험을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을 올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진정한 산악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등반가가 경험한 것을 겪어 봐야 그가 하는 말을 진정 알아들을 것이다. 산악인의 세상 모델은 산을 모르는 사람의 세상 모델과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다 저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저만의 독특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세상 모델과 주관적인 세계를 형성한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성장하고 나중에 범죄 집단에 들어선 사람은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세상을 더 옳게 볼 것이다. 그게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을 텐데, 왜냐면 그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확신하는 것이니까. 부유하고 사치스럽게 성장한 사람의 세상 그림은 가난하게 자란 사람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타고난 특성과 우리의 환경은 어떤 사람이 특정한 경험을 겪는 공간을 만든다. 그 사람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마인드에서 나름의 세상을 그린다. 그리고 자신의 이 세상 그림을 통해 세상을 볼 것이다. 

그러니, 당신 보기에 어떤 사람이 이상하게 행동한다 해서 놀랄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은 세상을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을 그와 달리 보는 것이다. 
당신에게 다른 인생 경험이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그가 보기에는 당신이 그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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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08. 마인드가 

 실재의 (현실의) 모델을 만들다 (1)  

 

우리 뇌의 작업을 통해 주관적 실재가 생김을 알아봤다. 

주관적 실재를 만들기 위해 뇌가 하는 작업을 우리는 앞으로 마인드의 작업이라 부르겠다. 마인드는 지각 기관과 기억에서 나오는 정보를 기반으로 주관적 실재를 만드는 뇌의 특별한 역량이다. 즉, 우리가 지금 외적 실재와 내적 실재에서 인식하는 것은 모두 마인드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앞에서 살펴봤다. 이제 우리는 실재의 모델을 만드는 방법으로 이 지식을 일반화할 것이다. 

 

객관적 실재는 직접적인 지식으로 지각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아냈다. 하지만 최소한 생존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객관적 현실에) 어떻게든 적응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해, 객관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면, 인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후손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야수와 자연재해 등 위험에서 자신을 지킬 수도 없었을 테니까. 

따라서 자연은 눈, 귀, 코 등 현실 지각 기관을 우리에게 부여했다. 하지만 외부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 정보를 가공하여 의식에 제시함으로써 사람이 외부세계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연이 뇌를 만든 것이다. 시각과 청각, 운동감각의 이미지들 형태로 실재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은 뇌 덕분이다. 이 이미지들이 의식에 나타나며, 사람은 그것들을 인식하면서 세상에서 방향을 잡기 시작한다. 

 

이미 얘기한 대로, 뇌는 인간 의식에서 현실의 모델을 꽤 적절하게 만든다. 이건 당연한데, 그 모델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실재) 자체가 아니라 현실(실재)의 모델일 뿐이라는 점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모델이 하도 현실적으로 보여서, 우리는 모델을 진짜 현실과 혼동한다. 이것도 자연에 의해 구상된 것이다. 

이 모델은 세상에 존재한다는 환상이 완전하게끔 작동해야 하며, 그때 세상 속에서 방향 잡는 것이 가장 완벽할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각자가 살고 있는 주관적 실재는 (현실은) 세상에 적응하고 거기서 생존하기 위해 마인드가 만들어 낸 현실 모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성인의 주관적 실재는 당면한 실재와 추상적 실재의 두 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모델 층은 동시에 작용한다. 물론, 원한다면 우리가 자신의 의식에서 각 층을 별도로 구별할 수도 있긴 하다. 지각의 여러 수준을 탐구할 때 이것을 우린 이미 해 보았다. 

 

만약 주변을 둘러보고 지금 당장 일어나는 것에 주의를 돌린다면, 당신은 눈앞에 당장 펼쳐지는 실재(현실)의 층을 구별할 것이다. 이건 마인드가 실재(현실)에서 만들어 내는 모델의 첫 번째 수준이다. 당면한 현실 수준에서 세상 모델을 만드는 이 과정은 순간적으로 저절로 일어난다. 이를 확인하려면, 당신이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 흐름에서 어떤 대상을 식별하지 않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간단히 말해, 당신이 어딘가를 바라볼 때,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을 보는 게 아니라 어떤 대상을 자동으로 본다. 이 그림을 한번 보시라.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 자동으로 눈에 들어오는 대상.

 

이것이 사실상 흰 무엇 위에 검은 뭔가가 있는 것일 뿐이지만, 마인드는 자동으로 대상을 식별한다. 여기서는 자동으로 식별되는 대상이 두 개나 된다. 키스하는 커플이 보이지 않나? 이 그림에서 그저 희끗희끗한 얼룩이나 서툰 그림이 아니라 입맞춤하는 두 얼굴과 끌어안은 두 손을 보았다면, 이제 이 형상들을 떨쳐내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 마인드가 당신 의식에서 그 이미지들을 자동으로 만들어 낼 테니까 말이다. 

 

주변 현실을 매 순간 그냥 바라보기만 할 때도 같은 현상이 생긴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여러 감각 정보에서 마인드가 어떤 대상을 만드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하다. 이건 당신이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일어난다. 

 

하지만 마인드가 금방 알아보지 못하는 대상이 시야에 들어올 때는, 마인드가 이 대상에 적절하게 아는 대상을 찾을 때까지 당신의 주의가 그것에 확 쏠린다. 누구한테나 이런 경우가 있었을 텐데, 즉, 모든 게 평소처럼 잘 돌아가다가 눈길이 문득 알지 못할 것에 쏠린다. 그러면 그게 무엇인지 감 잡지 못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다리가 셋인 여자? 눈의 착각

 

이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보기 힘들지 않았나? 다리가 세 개인 여자? 그런 걸 우리 마인드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본 다음에 (이건 당연해, 이미지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항아리를 보고, 이제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다 풀렸다. 실재의 (현실의) 그림을 인식한 것이다. 앞으로 이 그림을 또 보는 경우에는 항아리를 금방 알아볼 것이다

 

그러면 이건 무엇인가?

엉덩이처럼 생긴 버섯

 

우리의 마인드가 그것에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을 금방 구별하고 강조하는 방식이 재미있지 않나? 

그런 예를 몇 가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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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가운데 있는 점을 15초 동안 들여다보라. 

 

그림에 색깔이 있나? 중앙을 보지 말고 확인해 보라. 

 

이번에는 이 그림의 중앙을 잠시 보라. 어떤 색깔의 점이 회전하나? 

원을 따라 점이 있나? 중앙을 보지 말고 확인해 보라. 

 

 

이제 다음에 보는 것은 아마도 착각이나 착시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일 것이다.

 

바둑판 모양의 여러 칸에서 두 칸의 색깔은 서로 다른가? 같은가?

(author: Edward H. Adelson) 

 

А와 В 칸의 색깔이 같다고 생각하나? 다르다고 여기나? 확인해 보라. 

종이에서 1센티 원을 오려서 차례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칸에 가져다 대 보라.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판의 다른 부분은 보이지 않고 저 특정 칸의 색깔만 보이게 하라. 안 그러면 아무것도 안 보일 것이다. 

두 칸의 색깔은 아주 똑같다! 우리 마인드가 하나는 흰색이고 다른 것은 회색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우리의 마인드는 우리의 경험에 따라 우리가 현실을 (실재를) 최종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지금까지 다룬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을 다시 반복한다. 당신이 바로 지금 주변에서 관찰하는 목전의 현실은 (실재는) 세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마인드가 작업한 결과이다. 마인드는 여러 대상과 물체를 우리 의식에서 바로바로 만들어 낸다.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07-1. 객관적 실재, 감각 정보의 수준

06. 인식 수단으로서 과학의 한계

좌뇌와 우뇌, 어느 쪽이 우세한지?

04.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03. 지각의 물리적 현상

남녀 지각과 인식의 특성

창의적인 마인드 활용 방법 46

고통의 몸체에 먹이 주지 않기 35

기다림과 기대함은 마인드의 상태 16

마인드가 우리에게 안기는 불만 극복하기 15

두려움이란 마인드가 꾸며 낸 환상 14

마인드와 심리적 시간 6

마인드가 에고를 만들어 3

루덩의 악마들 3-2편

(19) 문제란 전부 마인드의 착각이야

아마추어와 전문가

(10) 자신을 마인드에서 찾지 않기

(1) 당신 마음은 당신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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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마인드의 작업 >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 ... ) 

  추론의 수준  

 

단어들이 나타난 덕분에, 거기에 담긴 의미를 잘 다룰 수 있게 됐다. 

문장이나 문구가 그렇게 생겨났다. 

예를 들어, “엄마가 창틀을 닦았어” 같은 문구는 서로 연결된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 ‘엄마’, ‘창틀’, ‘닦다’란 단어 각각에 나름의 의미가 있고, 이 의미가 각 개인에게 적절한 이미지 형태로 제시된다

게다가 전체 문구도 당신 마인드에서 어떤 (정적이거나 동적인) 장면으로 역시 반영될 것이다. 

 

문구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실재(현실, 세계)를 지각하는 다음 단계인 추론 수준으로 이동한다. 

이 수준에서 우리는 단어들로 이뤄진 복잡한 의미 구조를 만든다. 문구의 각 단어는 나름의 독특한 뜻을 지닌다. 이 단어들이 일정한 순서로 배열돼 만들어진 문구는 각 단어의 의미를 결합하는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창밖에 비가 내린다”는 문구를 보면 당신 의식에서 창밖에 내리는 비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이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특정 단어들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사람마다 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는 문구를 접할 때 당신 마인드에서 무엇이 생기는지 주의를 기울이라. 그리고 이 사진과 비교해 보라. 

 

비가 내리는 거리를 자동차 창문 너머로 내다보다

 

당신 마인드에는 아마 다른 그림이 나타났을 텐데... 왜냐하면, 어떤 문구를 접할 때 어떤 사람에게 생기는 이미지와 의미는 그 사람이 그 문구의 단어들에 집어넣는 의미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생기니까 그렇다. 

 

여러 문구 덕분에 우리는 마인드에서 아주 복잡한 의미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텍스트를 읽을 때, 당신 마인드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문구와 전체 텍스트의 의미가 한꺼번에 형성될 것이다. 즉, 당신 눈은 지금 이 철자들을 보고 있고, 이때 당신 마인드의 내부화면에서는 이 텍스트의 의미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 주목하라. 

 

이런 텍스트가 있다고 치자. 

Bueno, no es una maravilla de casa, pero se puede vivir bien. Tiene dos habitaciones y una sala espaciosa que usamos como un dormitorio más. Qué vamos a hacer? Somos cuatro personas en mi familia. Tiene también una cocina bastante grande, lo que está muy bien. Y por último un cuarto de baño y un balcón. Como ven ustedes, es una casa normal y corriente. 

놀랐나? 이건 에스파냐어이다.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들이 생겼나? 에스파냐어를 모른다면, 생길 수 없다. 왜냐하면, 저 문구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띠지 않으니까. (<07-2 구체적인 대상들을 지각하는 수준>에서 소개한 동영상과 같은 이치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 관한 여러 댓글 가운데 “오랜만에 진짜 악마를 봤다”는 댓글에 수많은 사람이 찬성을 눌렀다. 

이 문장을 접하면서 당신 마인드에서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가 형성되고 당신의 세계 그림이 바뀌지 않았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바뀌지 않았나? 이 문장을 신뢰도 높은 인쇄매체나 방송매체를 통해 읽거나 듣는다면, 이 정보를 (더 확실하게) 믿을 것이다. 

 

추론 수준에서 우리는 당면한 실재(현실, 세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며, 실재를 이제 자기 마인드에서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 텍스트를 (몰입하여) 읽는 동안 당신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하고 신체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대신 당신 마인드에 생성된 그림과 이미지에 빠져 있다. 게다가 마인드에 있는 이 그림들을 지금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이웃집 여자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해 보자. 

“내일 우리 아파트 동의 보일러를 다 수리할 예정이래요. 오늘 503호에서 물이 새서 아래층 몇 가구가 피해를 봤어요. 관리인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배관을 긴급히 손봐야 한다고 했지요.” 

이것이 당신에게 닥친 당신의 실재(현실)이다. 이제 당신의 실재는 자기 마인드에서 방금 상상한 것이다. 그 뒤 30분 동안 당신은 이모저모 생각할 것이다. ‘내일 배관을 손보는 시간에 집에 있어야 하는데, 직장에서 어떻게 일찍 나오지?’ 

 

이건 다 당신 마인드에서 일어난다. 그런 걸 생각하는 동안, 당신은 자신만의 실재를 (현실을), 단어들로 이뤄진 실재를 만든다. 이 실재는 당신 마인드에서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바로 코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 코앞에 이 텍스트가 흰 종이에 검은 철자들로 있고, 엉덩이 아래 의자를 느끼고, 동시에 창밖 거리에서 어떤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이 텍스트에 내가 담은 의미가 아니라 이 단어들로써 내가 가리키는 것에 주의를 돌린다면, 당신은 목전의 구체적인 실재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런 얘기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왜냐하면,
우리는 마인드의 형상들 수준에서, 추론의 수준에서 사는 데 하도 익숙해지다 보니, 구체적으로 지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인드가 우리한테 말하는 것을 실재라 (현실이라) 여기게 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 믿었나? 확인해 봤나? 우리는 권위 있는 사람이나 정보 소스의 말을 (처음엔 부모, 다음엔 교사나 서적 등을) 믿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사실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일 뿐이다.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 이상, 이것은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 이미지들로 지금 우리의 (주관적) 세계가 이뤄져 있다. 바로 그런 세계에서, 마인드의 이미지들 세계에서,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살고 있다. 

 

자, 단어들과 의미들의 세계가 우리한테는 (우리처럼) 합리적인 사람들이 사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인드 작업의 중요성과 지식을 통한 세상 인식의 이점을 축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 우리의 감각기관이 바로 지금 지각하는 목전의 실재와 (현실과) 우리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이걸 구분하는 게 중요한 것이,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결론이 나오기에 그렇다. 

이제 마인드가 만든 추상적 실재(현실)에서 사는 이점에 눈길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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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눈앞의 당면한 현실에서만 계속 산다면 (어린애들은 그렇게 한다), 우리의 세계가 크게 제한될 것이다. 당신의 세계가 당신이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만 들어있다고 상상해 보라. 상당히 따분하다. 눈앞의 현실이라는 범주에 국한되어 우리 세계가 아주 작아질 것이다. 

언어가 나타날 때, 우리의 주관적 세계는 세상에 대한 지식의 성장과 함께 아주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우리 세계는 우리가 그것에 대한 지식만큼 점차 커질 것이다. 여러 국가와 행성, 우주, 원자, 분자, 경제, 정치, 그 외에 아주 많은 것이 우리 세계 안에 나타난다. 이제 당신의 세계는 온 우주이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주다. 

 

단어들과 언어를 활용할 때 또 다른 이점은, 그것들이 추상적이긴 해도 객관적 실재를 (현실을) 웬만큼은 반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대중매체를 통해 미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건 아직 당신에게 정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갈 수 있다. (한데, 비행기에 대해서도 똑똑한 사람들한테 들었기 때문에 이 이동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예전엔 읽기만 하던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단어들 덕분에, 우리는 언젠가 다른 사람이 획득한 정보를 간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지식을 그가 언어로써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았다면, 이건 그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인류 존재 내내 수많은 사람이 거둔 성취와 달성을 언어 형태로 간직하면서, 우리는 1천 년 전 사람들이 살던 세상과 아주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1천 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우리는 역사 지식 덕분에 안다. 이 지식을 우리는 그것이 정말 사실인 것처럼 이용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 어쩌면 우리 모두 프리메이슨에게 세뇌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관적 세계의 일반 모델  

 

그렇게, 우리에겐 실재를 (현실을) 지각하는 여러 수준의 형태로 주관적 세계의 모델이 나타났다. 전체적인 개관을 한 번 더 제시한다. 

주관적 세계의 일반 모델. 추론 수준, 단어와 명칭 수준, 구체적 대상 수준, 감각 정보의 수준, 추상적 실재, 당면한 실재

유의할 점 – 언어를 쓰는 성인의 경우 이 수준이 전부 동시에 존재하며, 더 높은 수준은 더 낮은 수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 예를 들어, 추론 수준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서 단어들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또, 물질과 마찬가지로, 마인드로 하여금 구체적인 대상을 만들게 하는 감각 정보가 있어야만 의식에 구체적인 대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실재를 지각하는 더 높은 수준들은 사람이 점차 발달하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갓난애한테 추론 수준이란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갓난애는 학습과 마인드 발달의 단계를 많이 거쳐야 한다. 

1. 처음에 갓난애한테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시각, 청각, 운동감각 인상 등의 흐름으로 감각 정보만 나타난다. 
2. 다음에 객관적 세계에 머무는 경험을 쌓으면서, 아이의 마인드가 이 모든 감각적 어수선함 속에서 구체적인 대상들을 식별하기 시작한다. 
3. 그 이후 부모한테서 이런저런 단어를 들으면서 아이는 그 단어들을 자신의 주관적 세계의 특정 대상들과 연결하는 법을 배운다. 단어와 명칭의 수준이 그렇게 나타난다. 
4. 단어들을 문구에 배열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아이는 자기 마인드에서 이미지와 의미의 형태로 가상현실을 만든다. 이것이 추론의 수준이다. 

 

현시점에서 당신은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서 이 수준들 가운데 어떤 것이든 떼어낼 수 있다. 아, 물론, 객관적 실재의 수준은 제외하고 그렇다. 즉, 이 텍스트를 당신 마인드에 나타나는, 의미 정보의 집합으로 지금 당장 인식한다. 그러면서 이건 다 그저 단어들일 뿐이며, 당신이 읽은 각 단어 속에는 거기에 당신이 집어넣는 형상과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 모든 이미지가 마인드에서, 내면세계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 이미지들을 당신 이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실제로 지금 당신 앞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이 종이쪽과 이 철자들, 당신이 바로 지금 듣는 이 소리, 당신 손의 느낌 같은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즐기기만 할 수 있다. 이 여러 느낌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느낌들이 그냥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당연히 어려울 테지만… 당신 의식에 있는 이 구체적인 대상들 이면에서, 시각 채널의 색깔 있는 점들과 청각 채널의 갖가지 소리와 운동감각 채널의 감촉 등의 형태로 감각 정보의 흐름을 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7장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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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계

  수용하고 승복하는 연습  

 

인생을 오래 살았다면,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을 안다.
  인생에서 고통과 슬픔을 없애고 싶다면, 그런 경우에 승복할 필요가 있다.
  있는 것을 수용하는 즉시 마인드와 동일시에서 벗어나며 <존재>와 다시 연결된다.
저항은 마인드가 하는 짓이다. 승복은 순전히 내적인 현상이다. 

 

승복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나 자신을 맡긴다는 뜻

 

양보, 용인, 승복... 무엇에?

 

우리네 마인드는 현재 순간에 저항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거기엔 이유가 있어요. 마인드가 현재 순간을 겁내기 때문이에요. 삶이 매 순간 새롭게 달라지기 때문에 현재라는 순간은 늘 새로운데, 이 새로운 것을 우리네 평범한 마인드는 두려워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유지하려고 애써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한다면,

우리도 역시 새로운 순간을 겁내고 거기에 저항하고, 그래서 현재 순간에서 떨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현재 순간에서 떨려난다는 것은…

삶에서 내몰린다는 뜻 아니겠어요?

게다가 현재 순간에서 떨려난다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고통에 몰아넣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항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에 맞설 때, 우리에겐 불만과 고통이 반드시 따라붙는다.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으로 에크하르트 톨레가 제시하는 것이…

<현재 순간 받아들이기>입니다. 이걸 배우기 위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뭔가요? 

그 개념을 더 깊이 알아볼 시간이 됐습니다.  

 

그건… 현재 순간에 우리가 접하는 것이 전부 실제이며 그것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 인정은 이성에서 더 많이 나올 겁니다. 

현재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 아니라, 또한 거기에 푹 잠겨 그 안에 머물면서 그것을 저항 없이 따르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에크하르트 톨레는 수용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그 개념을 더 또렷하게 만들기 위해 승복이란 단어를 씁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이 대목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승복을 우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힘겨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절대 굴하지 마, 단념하지 마!” 하고 말하는데, 이건 아주 적절하고 올바른 촉구입니다. 또, 자신의 훼손된 권리를 법적 근거에서 옹호하는 사람한테 “자네 입장을 포기하지 마, 양보하지 마!” 하고 말하는데, 이것 역시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단어라도) 다른 맥락에서 쓸 수 있지 않겠어요? 

우리는 존중하는 사람이나 연장자에게 길을 기꺼이 양보합니다. 

돛을 달고 항해하거나 서핑을 한다면, 바람이나 파도의 힘에 굴할 수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길을 갈 때, 우리를 이끄는 권리를 강한 리더에게 맡기면서 스스로 길을 택할 권리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강렬한 느낌이나 열정을 좇음으로써 외려 자유롭고 편안하며 삶의 흐름에 어렵잖게 올라탄다고 느낄 수 있어요. 

 

이렇게 보니까, 양보나 승복이라는 개념이 자기 권리를 내던지거나 자신을 비하하는 등 뭔가 나쁜 쪽과 연관된 것만은 아니로군요. 사실, 세상 거의 대부분의 것은 상대적이지 않겠어요? 

승복한다는 것이 마뜩치 않은 것을 따르거나 나쁜 뭔가를 꾹 참는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그렇게 할 필요는 정말 없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나쁜 것에 승복한다는 게 아니라…

현재 순간에 승복하며, 지금 여기 있는 것과 진짜 현실과 <존재>에 승복한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괴로워하고 불만이나 불안을 느낀다면… 이게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 내가 지금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고 있구나!’ 바로 이것입니다. 

이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있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지금 여기 있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거예요. 

 

만약 삶에서 뭔가가 마음에 안 든다면, 우리는 바꿀 수 있어요.

참기만 하면서 계속 고통 받아선 안 돼요.

그러나 뭔가를 바꿀 수 있으려면…

먼저,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에크하르트 톨레저항하지 않는 것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은 전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저항하기를 멈추면,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원천인 <존재>에서 우리한테 힘이 들어올 테니까요. 게다가 저항이며 저항에 수반되는 부정적 감정에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죠

 

<지금>이라는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임이요 거기에 거스르지 않음을 뜻한다.
만약 삶을 우리가 거기에 섞여 따라가는 흐름으로 느낄 수만 있다면…
현재 순간에 머무는 것은 찰나적인 느낌이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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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습 37  

 

혼자 떨어져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으십시오. 

주의를 내면으로 기울이고 <지금> 순간과 연결하세요.

 

망망대해의 일부분인 파도라고 자신을 상상하자.

 

자신을 파도라고 상상하십시오. 

우리는 다 망망대해의 일부분입니다. 

우리 각자는 그 드넓은 바다가 지닌 힘의 일부요, 바다에 깃든 평온함의 일부입니다. 

그 힘과 평온함이 이제 파도가 된 우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끼면서, 우리는 해면을 따라 천천히 부드럽게 굴러갑니다.

 

우리는 다 파도에 실려 떠다니는 나무토막이 아니라 자체의 힘을 갖고 있는 파도에요. 

그러나 파도의 힘이 바다의 힘을 거스르지는 않습니다. 

파도는 바다와 한 몸입니다. 

파도는 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몸에서 긴장이 사라지는 걸 느껴 보십시오. 

바다와 결합되어 바다의 힘으로 움직이는 파도의 자유로움과 힘을 느껴 보세요.

또한, 자신을 자연의 깊은 힘으로 움직이는 강한 흐름이요 해류라고 느껴 볼 수도 있어요. 

이제… 우리의 삶도 역시 흐름이며 우리 각자는 그 흐름의 일부라고 상상하세요. 

이 삶의 흐름과 하나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바다 위를 거니는 파도처럼 힘과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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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

  <고통의 몸체> 변환하기  

 

우리가 겪는 감정적인 아픔은
과거의 아픔과 합쳐져서 우리 마인드와 몸에 기식하게 된다.

이 퇴적된 아픔이 우리 몸과 마인드를 점령하고 있는 부정적 에너지장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아픔덩어리, 혹은 고통의 몸체이다. 

 

과거의 아픔이 몸에 만든 부정적 에너지장 감지

 

깨달음 상태에 있지 못하는 동안에는… 

즉, 마인드나 에고나 <거짓된 나>가 아니라 <존재>며 <참된 나>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동안에는…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든 스스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어요. 때로는 아무 이유나 근거도 없이 마인드가 그냥 고통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아주 평온하고 쾌적한 상황에 있을 수 있는데…

하지만 갑자기 어떤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요. 우리 생각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거나 과거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전전긍긍하기 시작해요. 전자도 후자도 현실이나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은 겁니다.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없으니…

걱정거리가 전혀 안 돼요! 

그런데도 우리는 전전긍긍하고, 그러면서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아픔과 고통의 에너지까지 만들어내고, 그 에너지가 우리 몸에 자리를 잡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우리네 몸에 나름의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달리 말해, 몸은 합리적이에요.

그러나 또 뭔가를 아주 쉽게 믿기도 해요. 그래서 실제 상황을 생각하는 상황과 구분하지 못해요.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마치 실제인 양 반응합니다.

 

심지어 따뜻한 침대에 편하고 안전하게 누워 있으면서도

‘흠, 뭔가가 나를 위협할 수 있어’ 하고 생각한다면…

몸은 실제로 위협당하는 것처럼 반응해요.

그래서 심장 박동 수가 늘어나고 호흡이 불규칙하게 바뀌며 근육이 긴장해요.

그렇게 해서 몸은 에너지를 추가로 더 만드는데…

하지만 이 에너지는 그 어디로도 나갈 데가 없어요. 위협이 실제 벌어진 게 아니라 가상이고 허구니까!

출구를 찾지 못한 이 에너지는 독성을 띠고 신체에 축적되어 정상적인 신체 기능을 방해하게 돼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계속 불안한 생각을 만들어 내고 긴장을 키워요. 

 

안 좋은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해도 고통과 아픔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않을 수 있어요. 

독성 에너지주변에서 벌어지는 것을 우리 마인드가 ‘나쁘다’고 평가하는 경우에만 생성됩니다.

그러나 <존재>에게는 이 세상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전혀 없잖아요?

우리의 <참된 나>와 <내면의 목격자>한테 그런 게 없듯이 말이죠.

오로지 있는 것이 있을 뿐이며, “좋네, 나쁘네” 하는 판단은 우리네 마인드가 일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에고>의 삶이 아니라 <참된 나>의 삶을 산다면,

모든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심지어 마인드가 나쁘다고 여기는 것에서도 그렇습니다. 

사실, 세상에 머무는 동안 최고의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이든 다 필요하며 유용하고 ‘좋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목표들 중 하나가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어 의식하는) 자각 상태의 제고라 하겠습니다. 

 

이걸 깨달을 때…
인생에서 아픔과 고통을 더 이상 자초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아픔이 퇴적된 감정의 아픔덩어리, 고통의 몸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나 아픔, 고통 따위는… 쉽게 사라지고 증발될 수 없는 에너지임을 기억해 둬야겠어요. 이 에너지는 몸 안에 쌓여서 완전한 에너지 구성체를 만드는데, 이걸 에크하르트 톨레<고통의 몸체> 혹은 아픔덩어리라 부릅니다.  

 

고통의 몸체란…
부정적으로 충전된 에너지장으로서, 우리 심신을 점령할 수 있다.

 

고통의 몸체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휴면 상태와 활동 상태. 

그것이 늘 활동 상태에 있다면, 그 사람은 평생 고통스럽게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범죄자나 자살자가 나와요. 필사적인 영웅이나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사도 이 부류에 든다고 할 수 있어요. 또 알코올중독자나 마약중독자, 거지, 노숙자처럼 인생 밑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들도 고통의 몸체에 늘 시달리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요.

 

잠자지 않는 고통의 몸체가 겉으로 드러나게 되면…

행복이나 삶의 만족, 진정한 자기실현 등에 대한 희망을 늘 모조리 앗아갑니다. 그러나 줄곧 깨어서 활동 상태에 있는 <고통의 몸체>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대다수 사람들한테서 그건 잠자고 있다가 눈을 뜨고 또 졸기도 해요

고통의 몸체가 눈뜰 때…

아주 다정하던 사람이 갑자기 불쾌하고 못된 사람으로 바뀌거나, 혹은 낙천적인 줄 알았던 사람이 우울하고 비관적인 불평분자로, 혹은 조용하던 사람이 시끄럽고 히스테릭한 사람으로 바뀔 수 있어요. 

 

고통의 몸체가 깨어났다는 징후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잘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바깥에서 명료하게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고통의 몸체가 잠깨는 순간을 추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사자는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으나 그 순간에 그 사람은 본연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으로 변합니다. 헐크처럼 말이죠. 

 

알아차리고 의식하고 추적하고 관찰하기…
오직 이 방법으로만 <고통의 몸체>를 다루어서 그것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도 바로 이 고통의 몸체가 심하게 횡포 부릴 때 나타나는 징후인데, 이걸 막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에요. 고통의 몸체는 자신이 발견되거나 노출되기를 아주 꺼리니까요. 그건 그림자처럼 빛을 겁내요. 그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몰래 숨어 있거나 위장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용기를 내서 그걸 직시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각자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고통의 몸체를 깨우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그것이 언제 돌출할지 알아내기가 더 쉽지 않겠어요? 결국, 그것이 제 스스로 그냥 잠을 깨는 게 아니라 어떤 ‘방아쇠’가 작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과거에 아픔을 야기한 뭔가가 떠오르게 하는 상황이 전부 이 ‘방아쇠’ 역할을 해요. 

예를 들어, 

1) 부모가 생활비 같은 돈 문제로 자주 다투던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은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얘기나 암시가 나오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고통을 겪을 수 있어요. 혹은, 

2) 어려서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버림받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친구가 약속 시간에 겨우 5분 늦은 걸 두고도 그 사람의 아픔덩어리가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어요.

 

누구한테나 있는 이 고통의 몸체가 무엇에 반응하여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차린다면, 그것을 감지하여 다스리기가 더 쉬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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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습 32  

 

당신의 아픔덩어리가 어떤 상황에서 잠을 깨는지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어요.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거나 그 비슷한 기미라도 나타나게 된다면…

고통의 몸체가 잠을 깬다는 신호이자 반증입니다. 

 

갑자기 불만이나 짜증이 생기거나 화가 나거나 반감이나 혐오가 들거나 울적함을 맛본 적이 있나요?

자기도 모르게 기분 나빠진 적이 있나요? 

 

그런 것이 때로는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생기기도 해요.

또 때로는 어떤 외부 원인 때문에 그런 상태에 빠지는 듯싶기도 해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한 말에 기분이 상한 경우. 혹은 무슨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난 경우

 

그런데… 그 외부 원인이란

우리 내면의 ‘방아쇠’를 당기는 계기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둬야겠습니다.

실제로, 같은 입장에서 같은 말을 듣거나 같은 실패를 겪었어도 기분 상하거나 화내지 않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 일 때문에 당겨질 ‘방아쇠’가 그에게 없다면… 안 그렇겠어요? 

외부 상황이 우리 상처를 건드립니다. 

과거에 우리한테 아픔이나 마음고생, 고통 겪게 한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외부 상황이 당신한테 과거의 무엇을 떠올리게 했는지 정확히 기억해 내려고 애쓰세요. 

그렇게 하느라고 마음속에서 과거로 이동하여 거기 한참 머무르거나 갇힐 필요는 없어요. 

이야말로 과거 경험을 도움 삼아 현재에서 뭔가를 좋은 쪽으로 바꾸는 경우에요.

이런 상황에서는 회상이 유용해요. 

 

다만, 한 가지 조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요.

즉, 자신의 감정과 그 감정을 야기한 과거 상황을 <내면의 목격자> 눈으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 순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자신의 판단과 감정적 반응으로 흐려지지 않은 장면을 객관적으로 보게 될 겁니다. 

 

‘내 안에서 어떤 감정들이 가장 자주 일어나며 어떤 방아쇠로 촉발되는지’ 끊임없이 추적할 때, 우리는 <고통의 몸체>를 더 경계하고 조심하게 됩니다. 

이건 자신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경각심을 가지면, 고통의 몸체가 당신을 지배하는 힘이 금방 몇 배 더 약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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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부정적인 감정과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 생각을 바꾸는 방법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게 하는 좋은 방법이 더 있습니다. 

감정이 생각과 판단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잖아요? 

 

우리는 살면서 ‘아, 뭔가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있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겼어’ 하고 먼저 판단을 해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만 그 생각에 해당되는 감정이 뒤따릅니다.

불만이나 모욕감, 좌절, 분노 같은 것 말이에요. 

우리는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나?’ 할 정도로 생각 자체는 인식하지 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그 감정에 해당하는 생각을 했다는 뜻이에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 생각을 바꾸는 방법

 

하지만 우리가 정말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판단하는) 것일까요? 

에크하르트 톨레가 한 저서에서 셰익스피어의 경구를 인용합니다. 

“세상에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단지 생각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는 십중팔구

“오늘 날씨가 사납네, 끔찍해!”

하고 말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판단한 결과, 기분 잡치고 움츠러들어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지요. 

 

그런데 그런 날씨가 정말 그렇게 끔찍한 걸까요? 

만약,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거짓된 나>의 눈이 아니라 <참된 나>의 눈으로 창밖 날씨를 보았다면, 우리는 이 하루를 있는 그대로 볼 것이며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에서 시작했겠지요. 

 

그래서, 예를 들면, 옷을 더 따뜻하고 든든하게 차려입고 우산 쓰고 빗속을 거닐며 자신과 건강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 않았겠어요? 아니면, 외출하는 대신 집에서 방안 온도를 좀 높이고 창문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들으며 따스함과 아늑함을 누릴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면 이날이 끔찍할 리가 없어요. 오히려 “오늘은 참 멋진 하루였어!” 하고 말할 수 있었을 거예요.

 

에크하르트 톨레

우리가 뭔가를 두고 “나빠! 싫어!” 하고 말할 때 우리 내면이 전부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감정적인 위축이 우리를 자기 삶의 힘에서 떼어내고 차단합니다

 

주변 모든 것을 ‘좋거나 나쁘다는’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게 될 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있게 할 때…

우리는 위축되는 게 아니라 당당해지고, 우주 에너지가 거침없이 자유롭게 우리를 거쳐 흐르면서 거대한 힘을 우리한테 안깁니다.  

 

한마디로, 우리네 생각과 판단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그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관점이 최소한 몇 가지는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에고>한테는 늘 불만의 관점을 택하는 습성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현재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쩍하면

“아아, 일이 잘 안 풀려. 사는 게 참 고되고 힘들어. 끔찍해, 악몽이야!”

하고 푸념하거나 한탄하는 이들이 많아요.

이건 그들의 에고가, <거짓된 나>가 내는 목소리입니다.

<에고>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게 하나 없어. 죄다 나쁘다’는 생각에 빠지게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아주 하찮은 걸 두고도 계기만 있다면 습관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며 끝없이 볼 부은 사람들이 줄어들면 좋겠어요. <에고>의 그런 거짓된 판단과 잘못된 자세를 그때마다 바로바로 적발해 내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어요. 

 

내면에서 어떤 목소리가 ‘좋은 게 하나도 없어, 최악이야’ 하고 불평할 때,

어떤 일이나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 즉시 그건 <거짓된 나>의 목소리라는 점을 떠올리세요.

자신에게 상기시키세요. 

“이건 내가 불평하는 게 아니야. 에고가 불만을 품는 거지. 나에겐 불만이 없어!”

 

그런 다음에 판단과 해석을 멈추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쓰세요. 

즉, ‘이건 나쁘거나 좋은 게 아니야. 그냥 현실이야’ 하고 여기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뭔가 이로움을 반드시 얻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아주 나빠 보이는 것에도 그 반대되는 밝은 측면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네 <에고>는 이 밝은 면을 보지 못해요. 

왜냐하면 “정말 온통 다 나빠”에 묶여 있으니까요. 

하지만 <참된 나>는 객관적이고 건전하고 현실적인 눈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우리한테 복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뭔가를 꼭 찾아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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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습 31  

 

불만스러운 느낌을 비롯해 부정적인 감정을 어떤 경우에 가장 자주 느끼게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런 불평불만의 밑바닥에 어떤 생각과 판단이 놓여 있는지 간단히 적으세요. 

 

예를 들어,

– 날씨가 고약하네.

– 집안 허드렛일에 지쳤어.

– 그자가 나한테 어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나.

– 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 걱정이야.

 

이제 <내면의 증인> 상태로 들어서서 이 상황을 직시해 보세요. 

즉,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자는 얘기에요.

 

이 여러 상황이 객관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적으세요. 예를 들어, 

–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군.

– 집안일이 정말 많아.

– 그자가 나한테 무례하게 말했어.

– 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돈이 요만큼밖에 없어.

 

(그렇게 달리 보고 나니까) 이 상황들이 더 이상 ‘나쁘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렸나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황이 됐네요.  

 

내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달리 말해 내 감정을 집어넣지 않은 상태에서,

이 여러 상황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드러내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각 상황을 어떤 결론이나 결정, 변화, 행동을 취하기 위한 원인이나 동기로 간주해 보세요.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적어 보세요. 예를 들어, 

 

– 비가 내리네. 우산을 갖고 나가야지.

– 집안일이 정말 많아. 먼저 해야 할 일과 천천히 해도 될 일을 정해야 되겠군.

– 그자가 나한테 무례하게 말했어. 그런 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해 줘야겠다.

– 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돈이 요만큼밖에 없어. 예산을 잘 짜서 당장 급하지 않은 건 놔두고 필요한 것만 사야겠어.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고민할 일이 없어진다는 점을 알게 될 거예요. 

자신이 불행하다거나 불만스럽게 느끼지 않게 돼요.

짜증이나 화를 낼 필요도 없지요. 

 

뭔가 속이 뻥 뚫린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 (하지 않아도 될, 방향을 잘못 잡은) 자신의 판단으로 더 이상 고민거리를 자초하지 않으며, <에고>의 판단과 해석으로 왜곡된 현실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대하여 살고 행동하니까 그렇습니다. 

<에고>며 마인드며 감정들과 분리되는 법을 익힐 때, 우리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쓸데없이 자꾸 만들어 내지 않게 될 거예요. 

 

고통이며 고민거리를 우리가 스스로 자신에게 안긴다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고통은...

주변 모든 것을 우리네 마인드가 해석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마인드의 판단과 그 판단에서 빚어지는 감정 때문에 생겨나요. 

고통과 고민거리는 우리네 <에고>가 모든 것을 좋고 나쁨으로 나누는 습성에서 생겨나요

 

실제와 <존재>한테는 좋고 나쁜 게 없어요. 오로지 있는 것만 있을 뿐이에요

만약 <내면의 증인> 상태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오로지 있는 것만 볼 뿐이지 그 이상 다른 것은 보지도 않고 생각도 안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있는 것에 즐거워하며 만족을 느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증인>의 눈이… 바로 이 세상을 보는 <존재>의 눈이니까. 

<존재>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것이든 새로운 경험을 즐깁니다. 

 

판단과 감정을 배제하고 현실과 실제를 있는 그대로 자각하기

 

이 때문에 <지금> 순간에 머무름으로써 (이건 또, 증인 상태에 있다는 뜻인데) 우리는 늘 기본적으로 행복할 수 있어요.

부정적인 감정을 비롯해 마인드가 ‘나쁘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가 증인으로서 확인하고 나설 때…

그 ‘나쁜 것’은 우리와 무관해집니다

 

“이건 그냥 있는 이거야” 하고 말할 때,

우리는 이 현실을 (실제를) 자각하고 (즉,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어 의식하고),

그럼으로써 이 현실에 초연해져서 <내면의 증인/목격자> 눈으로 바깥에서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현실을 지켜보지만, 이 현실에 있는 그 무엇도 우리 상태를 이미 바꾸지 못하며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고통으로 끌어들일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부정적인 뭔가를 보면서도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즉, 언제 어디서 그 무엇에든 행복하게 느끼며, 우리 주변과 우리 삶에서 부정적인 생각이며 감정이 줄어든다는 것! 

이런 법칙이 효력을 발휘합니다. 

“먼저 행복하다고 느끼라… 그러면 당신 인생에서 행복한 일들이 시작될 거야.” 

  

이 법칙은 작동해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걸 몰라요. 

그들은 자기네 인생에서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그 이전에는 행복하다고 느끼려 하지 않아요. 그런 좋은 일이 오려면 당연히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 거예요. 

또 어쩌다 좋은 일이 찾아오면, 그들은 거기에 집착하면서 그걸 잃을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이건 악순환이에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행복한 상태가 외부 조건에 좌우되지 않을 때라야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돼요

 

사실, 행복이란… 우리 안에 있는 것 아니겠어요? 

존재하는 순간순간 우리는 행복을 재현할 수 있어요. 

마인드가 기승부리게 놔두지 말고 <내면의 증인> 되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확실히 깨달아 받아들이면…

그러면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사라져서 더 이상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 무엇도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지 못할 거예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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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내면의 목격자> 찾아내기  

 

자신을 관찰하다 보면 삶에 현재 순간이 저절로 더 많이 들어온다.
마인드를 관찰할 때, 마인드에 더 이상 갇히지 않는다.
또 관찰 대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뭔가를 느끼게 되는데,
그건… 마인드의 이면에서 조용히 관찰하는 존재, 말없는 감시인이다.  

 

자신에게 침잠하는 동시에 세상에 열린 상태가 되는 방법 

 

내면에 가라앉고 내적 뿌리를 깊이 내린다는 것은…

<지금> 순간에 들어앉아 자신의 깊고 <참된 나>와 접하여 산다는 뜻입니다.

또 진정한 자신이 되어 진정한 삶을 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깥세계를 등진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자신의 <참된 나>와 접속함을…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기, 폐쇄성, 현실에서 차단됨 따위와 혼동하면 안 되겠어요이건 전혀 다르고 상반된 개념들이에요. 확실히 구별해야 합니다. 

 

또 아주 중요한 것은… 그것을 느낌 수준에서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점! 

자신과 자신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의식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내가 지금 <참된 나>와 접함으로써 깨어 있는 상태에 있는지, 아니면 그저 방어막이나 갑옷 속으로 들어가 바깥세상에서 떨어져 있는 것인지’를 언제나 잘 파악해야 합니다. 

 

<참된 나>와 접한 상태는 그렇게 둔감한 자기방어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두려움 속에 사는 자들만이 바깥세상과 스스로 차단됩니다. 

하지만 <참된 나>와 접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거짓된 나>와 무너지기 쉬운 외적 형태를 더 이상 우리 자신이라 여기지 않으니까요.

<내면의 나>와 <참된 나>는 무너질 일이 없어요. 그 무슨 형태라는 게 아예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내면의 나>는 그 무엇도 겁내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내면의 나>를 진짜 자기 자신이라 여긴다면, 우리도 역시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더욱이 <내면의 나>를 접하는 자체로 이미 가장 강력한 보호가 보장됩니다. 그러니 바리케이드를 치거나 갑옷으로 잔뜩 무장할 필요가 있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갑옷을 걸친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참된 나>와 접한 상태는…

완전하게 개방되고 투명하면서도 난공불락의 상태인 겁니다. 

 

<내면의 나>와 연결될 때, 우린 겁낼 필요가 없고 세상을 피해 숨을 이유도 없다. 
우리는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과 대놓고 편하고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어떻게 이를 수 있나? 

내면에 침잠하면서 동시에 바깥세상과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교류하며 접촉하고 소통하고 활동하고 목표 세워 달성하고 세상 바꾸는 상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나? 

 

내면의 목격자,관찰자, 증인

 

이를 위해서는, 바깥세계에서 행동하는 사람인 동시에 그 행동을 내면에서 지켜보는 목격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인격 분열’ 같은 게 아니냐구요?

천만의 말씀, 그 반대로 우리네 세속적인 화신과 영적인 화신이 서로 긴밀히 협력하며 보충하여 완전한 상태입니다. 

 

이건 우리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무엇을 왜 어떻게 하는지 명확하게 의식하는, 깨어 있는 상태에요. 그리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영적 동면에 빠져 자기가 뭘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한데, 영적 동면에 빠져 있는 사람들 경우, 그들의 내면 목격자가 깊은 잠에 취해 있고 <내면의 나>가 눈뜨지 않으며, 그 대신 <거짓된 나>가 살아서 제 행위의 의미도 모르고 결과에 책임지려 하지도 않으면서 마구잡이로 행동해요.  

 

<내면의 나>를 발견한 뒤, 그걸 자기 내면의 관찰자요 목격자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행동과 삶을 스스로 컨트롤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어요.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외부의 사건이며 사건들 흐름에 떠밀려 정처 없이 떠다니며 의지가지없는 나무토막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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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습 22  

 

조용한 곳에서 혼자 눈 감고 긴장을 푸세요.

자기 <내면의 몸체>와 연결하고 내면에 뿌리내린 상태로 들어서세요. 

형태가 없고 시간을 초월하며 무한히 깊은 <내면의 나>와 접촉되는 것을 느끼세요. 

그 느낌에 주의를 집중하세요. 

 

이런 이미지가 혹시 도움 될지 모르겠어요.

즉, 우리네 육안을 우리가 내면 깊은 곳에 머물면서 바깥의 것을 살펴보는 잠망경이라고 그려보는 것 말이지요.

단, 시각적 형상에 집착하지는 마세요.

지금 우리 내면의 목격자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바깥세계로부터 보호받으며 평온하게 있으면서도 외부 공간에 다 접할 수 있는데, 이 목격자가 감지하는 것을 느껴 보세요. 

 

육안을 뜨지 말고, 그 목격자의 눈으로 주변 상황을 본다고 상상하세요. 

눈 감은 채 그렇게 한 다음에, 눈뜨고 이 주변 상황을 내면의 목격자는 어떻게 볼지 상상할 수 있어요. 

<내면의 나>에 계속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눈으로만 세상을 지각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느낄 거예요. 

내면의 목격자는 우리가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을 아주 예리하게 포착해요. 

그 덕분에, 움직이거나 몸을 돌리지 않고서도 공간에 세심하게 귀만 기울이면, 우리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될 거예요. 심지어 벽 뒤나 거리에서 벌어지는 것도… 

 

바깥세계를 내면에서 섬세하게 지각하는 상태가 될 때…

이건 자기 안에서 <내면의 목격자>를 찾아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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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단계

  마인드의 위험한 술책 파헤치기  

 

무자각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 

 

무자각 상태는 우리가 자신을 마인드며 생각의 흐름과 동일시할 때 생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생각하는 과정에는 생각만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여기엔 또 늘 불안에 시달리는 에고가 만들어 내는 욕망과 감정과 신체 반응도 들어갑니다.  

 

무자각이란 본질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건 현재 순간에 대한 저항이다. 
이건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함이다. 
이건 삶과 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대다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합니다. 단적으로,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나도 모르겠어” 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또 “하지만 난 아무 것도 회피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맞서지 않아” 하고 말은 하지만, 자기 자신과 자신의 반응을 잘 살펴본다면 실제로 우리 안에서는 현실과 투쟁이 늘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예를 들어 볼까요. 버스에서 불편하게 앉아 장시간 가야 하는 경우에 우리는 뭔가 불쾌감을 느껴요. 한데, 그걸 느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그냥 꾹 참고 시계 들여다보며 ‘이 상태가 곧 끝나겠지’ 하는 생각만 해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느끼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아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 상황이 얼른 지나가고 다른 뭔가로 대체되기를 바랍니다. 

 

얼핏 보기에는, 불편하거나 불쾌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게 얼른 끝나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 듯싶기도 해요. 우리네 마인드가 ‘그렇게 느끼지 마, 그냥 털어 버려, 받아들이지 마!’ 하고 말하는 것 같아요. 있는 것을 느끼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이건 곧 자각하지 못하거나 않는다는 뜻이거든요

 

마인드는 그렇게 우리를 호립니다. ‘뭔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하고 속삭이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건 사실 자연스러운 게 전혀 아니에요.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겪고 그 무엇도 회피하지 않으면서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세상엔 편안한 것뿐 아니라 불편한 것도 있어요. 불편하고 불쾌하다 해서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것’을 인식하고 수용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고 출구를 못 보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두고 몇 해씩 고민하면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건 그들이 자신의 문제에 눈을 감고 문제를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반증이다.

 

장 흥미로운 점은… 불편한 무엇조차 객관적인 사실로 주어져서 어차피 겪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불편이 스르르 사라지며, ‘아하, 그래, 삶의 매 순간을 정말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존재>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거기엔 오로지 기쁨과 즐거움만 있으며, ‘이건 나쁜 순간이야, 좋은 순간이야. 이건 편하고 저건 불편해’ 하는 판단이 없어집니다. 

 

불편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피할 수 없는 현재 순간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예전엔 알아차리지 못하던 것을 분명 알아차리게 될 거예요. 예를 들어, 1) 앞에 탄 버스에서 불편한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그들 감정과 기분을 느끼면서 어떤 흥미로운 점을 알게 되겠지요. 2) 혹은 차창 너머 스쳐가는 풍경에 흥미를 느끼거나, 그 상황에서 즐길만한 것을 분명히 찾아낼 겁니다. 3) 물론 무엇보다 더 큰 즐거움은 ‘아, 내가 이렇게 살아 있어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것 등이겠습니다. 

 

바로 이렇게 <지금> 순간을 선명하고 충만하게 느낍니다. 우리는 마인드가 강제하는 불편한 상황이나 반응이나 감정의 노예가 더 이상 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사실상 파괴적인 마인드의 작동 이면에서 다른 뭔가를 보고 느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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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습 12  

 

뭔가 불편하거나 걱정되고 불안하게 느껴질 때, 그런 반응을 바깥에서 하듯이 관찰해 보세요. 집중이 잘 안 된다면, 이렇게 자문하십시오.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지금 난 어떻게 느끼고 있지?’ 

‘무엇 때문에 침착하지 못한 건가?’

 

뭔가 불편하거나 걱정되거나 불안하게 느껴질 때...

 

두 가지 실재가 (현실이) 있음을 알아둬야겠습니다. 

하나는 외적인 것으로서 주변 세상의 실재, 다른 하나는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 생각과 감정의 실재… 그리고 외부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내적 실재입니다

이 외부세계를 우리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조화롭고 기쁨 넘치고 평온이 가득한 <존재>의 실제로 말이지요. 

이 외부세계를 우리는 왜곡되게 볼 수도 있어요. 우리의 내적 불안과 불만과 불쾌함이 투영된 것으로 말입니다.   

 

뭔가 불편하거나 불쾌한 게 있다면, 그걸 유발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안에서 찾아보십시오. 

한데, 그런 것은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만 생깁니다. 

당신의 경우, 받아들이지 않는 게 정확히 무엇인가요?  

 

자신에게 말하세요. 

“이건 그냥 있는 거야. 난 이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렇게 받아들이면 불편함이나 불쾌감이 사라지고, 그게 어떤 것이든 매 순간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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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계

  깨달음의 시작: 우리는 누구인가?  

 

<존재>는 물질세계 모든 형태의 보이지 않는 불멸의 본질로서, 
각 형태의 너머에도 있고 그 안에도 있다. 
깨달음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존재>와 하나가 됨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상태일 뿐이다. 

깨달음은…
이름과 형태 너머에 있는, 당신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다.  

 

<존재>와 접촉 - 본연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첫걸음

거대한 바다의 표면, '존재'와 접촉

 

보이는 세상 전체를 한없이 깊고 거대한 바다의 표면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또 사람과 사건과 사물과 현상은 전부 이 표면에 있는 파도나 거품, 제각각의 흐름 같은 것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표면에서는 뭔가가 계속 부글부글 올라오고 웅웅거리고 어지럽게 흔들리고 소용돌이치고 철썩거리지 않나요? 

 

그렇게 들여다보노라면 표면에 나타나는 들끓음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이것이 삶이며 그 외에 다른 삶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세상 모든 일과 자기 자신과 타인들을 마치 서로 무관한 별개의 철썩거림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단일한 전체의 각 부분이요, 모든 것이 한 바다에서 나오며 사실상 바다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는 잊고 맙니다

그 외적인 들끓음과 번다함 아래...
거대하고 장엄한 평온이 있습니다. 
거기에 <존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는 다 그 <존재>에서 나왔습니다. 

 

<존재>란 태어났다가 죽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많은 삶의 형태들 너머에서 늘 있으며 영원히 ‘유일한 삶이요 생명’입니다.

하지만 <존재>는 가장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본질로서, 모든 형태들의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도 있습니다. 

<존재>는 우리 각자의 가장 심원한 자아이자 진정한 본질입니다. 

 

이 <존재>에는 심오한 지혜와 사랑이 가득해요.

바쁘고 치열하게 살다가 한순간 멈춰 보면, 이 조화와 평온, 심연, 지혜, 사랑을 감지하게 될 때가 간혹 있어요. 

 

그리고 이 심연을 우리 내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심연과 그냥 연결되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의 일부니까요. 

이 장중한 평온에서, 이 조화와 아름다움과 지혜와 사랑에서, 우리가 나왔습니다.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것이 바로 우리네 본질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존재>와 연결되고 하나가 되어야 우리는 진정한 자신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어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순간적으로 품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일상생활을 꾸리고 물질세계에서 움직이는 능력을 잃지 않지만, 이제는 삶의 기적과 아름다움에 늘 기뻐하며 살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기뻐하고 만족하는 느낌으로,

자신의 힘과 가능성에 결합된 느낌으로, 살게 되는 겁니다. 

 

이야말로 모든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서 가장 생산적인 존재 상태입니다.

오직 이 상태에서만 삶이 정말 즐겁고 문제들이 사라지며 갖가지 선물이 저절로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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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이 <존재>의 일부임을 감지하고 자기 내면에서 이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에요.

세상에서는 선택된 소수만을 가리켜 깨달음 얻은 이들이라 부르지요. 또, 이 비범한 상태는 아주 꼭꼭 숨겨진 것이어서 보통사람이 이르기는 힘들다고 흔히들 간주합니다. 우리의 <에고>가 그런 식으로 몰고 가기를 좋아하니까요. 

한데 알고 보면, 깨달음이란…

가장 자연스럽고 단순한 상태로서, 자신의 진정한 본성으로, <참된 나>로 되돌아간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 뿐입니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 자연에서 우리는 '존재'를 접할 수 있다.
 

  실습 1  

 

보이지 않지만 뭔가 장엄한 힘이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살면서 누구한테나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 순간들을 떠올려 보세요. 

어쩌면, 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그게 무엇이었는지 당시에는 실감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순간들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나 가없이 펼쳐진 바다, 혹은 빼어난 산악 풍경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그런 걸 느꼈을지도 모르죠.

<존재>를 자연에서 상기하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진정한 행복과 희열을 느낍니다. 

그 순간에는 시간이 멈춘 듯하며, 평소의 걱정과 불안이 다 사라지고…

조용한 기쁨이, 조화롭고 평온하다는 느낌이 우리 내면에 가득 찹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자연이며 세상과 보이지 않게 연결돼 있음을 감지할 수 있어요. 

마치 세상과 자연도 살아 있고 우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그런 직관이나 통찰이 (혹은, 불교 용어로는 보리/菩提가) 때로는 다른 계기로 생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다른 두려움이나 잡생각을 다 떨치고 일에 완전히 몰입할 때,

혹은 어떤 절박한 위험을 간신히 피하게 됐을 때,

은 병이 들어 번다한 일상을 다 젖혀둔 채 자기 자신과 단 둘이만 오롯이 남게 될 때,

혹은 창작 영감에 사로잡힐 때…

 

그렇게 <존재>와 접촉했던 순간이나 그 비슷한 경우를 한 가지라도 꼭 떠올려 보십시오. 

그 순간 느낌이 어떠했는지, 기억해 보세요. 

 

그 느낌이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런 느낌들은 우리와 함께 있으며, 원할 때면 언제든 다시금 맛볼 수 있습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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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은 지혜  

 

당신 파트너에겐 결코 책임이 없어요. 

 

적절한 순간에 지혜를 발휘한다면, 당신은 정말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 순간이 지난 뒤에야 현명해집니다. 

뒷북치는 지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우리는 저지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서로 목소리 높여 언쟁하며 불필요한 말을 잔뜩 퍼붓고 난 뒤

이제 당신은 정신이 들어서 공연히 언쟁했음을 알게 되는데…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이미 상처 주고 해를 끼친 마당에 

그런 지혜는 쓸모가 없어요. 

그건 거짓된 지혜입니다. 

 

그건 에고의 속임수이기도 해요! 

그런 지혜는 도움이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그 순간에, 

자각이 생겨서 그런 행위의 무의미함을 알아야 합니다.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런 짓은 하지 않았겠지요. 

자신의 자각을 거스를 수는 없는데, 그런데도 그렇게 한다면, 

그건 자각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다른 뭔가를 자각이라고 받아들인 겁니다. 

 

파트너에겐 결코 책임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당신 안에서 뭔가가 끓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누구보다도 더 친밀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칫 당신의 쓰레기 하적장이 되기 쉽습니다. 

거리에서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 쓰레기를 내던지지는 않지요. 

 

파트너한테는 잘못이 없어요

 

그러나 그걸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깨지기가 아주 쉬우니까요. 

만약 당신이 지나치게 멀리 나아가 선을 넘는다면, 

사랑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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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에겐 결코 책임이 없어요. 

이 점을 늘 인식하면서 필요한 순간에 떠올릴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누군가한테서 뭔가 잘못을 발견하게 되는 즉시, 

그런 자신을 포착하고 즉각 멈추세요. 

그리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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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문제라 여기는 것은 전부 

마인드가 일으키는 착각이야  

 

- 묵직한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다. 개운해진 느낌을 분명히 느껴… 

하지만 나의 여러 문제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 해결된 게 아니잖아. 

그 문제들을 일시적으로 회피하는 꼴이 되는 건 아닌가? 

 

만약 당신이 천국이나 극락에 있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 못 가서 마인드는 “좋아, 하지만…” 하고 말할 것이야. 우리 대화는 결국 당신의 문제 해결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니야. 그게 아니라… 

문제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하자는 것이다.

 

난 어떤 문제에 시달려” 하고 말할 게 아니라, ‘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상황이란… 
지금 처리하거나, 아니면, 달라지거나 처리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있는 그대로 놔두고 지금 순간에 ‘실재한다는 사실’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만 있다. 

 

모든 문제는 마인드가 만들어 내는 것이며 존속하기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금> 순간에 현존할 때 문제 따위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문제란 마인드의 망상

 

<지금>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고, 이 순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들 해 보시라. 

 

 

“나한테 어떤 골칫거리가 있다”는 답변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군. 그 이유는… 

<지금> 순간에 완전히 주의를 집중할 때는 문제가 생길 수 없기 때문이야. 다만, 처리하거나 받아들여야 할 상황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걸 왜 문제로 삼나? 

그 뭔가를 왜 골칫거리로 바꾸나? 

삶 자체가 도전적이고 흥미진진한 것이 아니던가? 

문제며 골칫거리 따위가 우리한테 왜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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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는 갖가지 문제를 무의식적으로 좋아한다. 

왜냐하면 문제들이 일종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건 일반적인 현상이면서도 무분별한 짓이야. 

 

해결하기 어렵거나 대응하기 곤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지금 당장 진정으로 뭔가 행동할 의향이나 가능성이 없이 그 상황에 정신적으로 머물러 있다는 뜻이며, 또 그 상황을 자기도 모르게 자아감의 일부로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생활 상황에 하도 압도되는 바람에 삶의 감각을, <존재>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는 뜻이다. 혹은,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고, 앞으로 하려거나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어리석은 짐처럼 마인드에 품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만들면, 아픔도 생긴다. 

이것을 막으려면, 간단한 선택과 간단한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자신에게 더 이상 아픔을 초래하지 않을래. 골칫거리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어.” 

 

이건 단순하지만 매우 근본적이고 철저한 선택이다. 

고통에 정말 시달리고 역겨울 정도로 아픔을 겪지 않는 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지 않는 한, 고통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아픔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더 이상 고통을 안기지 않는다. 또한 문제를 일으키는 부정적 성향으로써 아름다운 지구며 자신의 내면 공간, 인간의 집단 심리를 더 이상 더럽히지 않게 된다. 

 

 

생사를 가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다면, 그 순간 자신에게 다른 문제 따위는 전혀 없었음을 알 것이다. 마인드가 멍청한 짓을 하면서 그 상황을 문제로 만들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급박한 상황에서는 마인드가 작동을 멈추고 우리는 <지금>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게 되며, 무한히 더 강력한 뭔가가 상황을 떠맡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용감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가 적잖이 오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긴급한 상황에서 우리는 살아남거나 살아남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야. 

달리 말해, 그런 상황에서는 문제 같은 게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문제라는 것은 전부 환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한테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이 말을 자기네 자아감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잘못된 자아감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어.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전반적인 정체성을 자신의 문제나 고통에서 무의식적으로 규정해 온 것이다. 그런 게 없다면,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사람들이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행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두려움에서 유발되는데, 이 두려움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금> 순간에서 멀어짐과 늘 연결된다. <지금> 순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두려움 역시 전혀 없게 된다.

 

지금 당장 수습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때 현재 순간의 깨어 있는 의식에서 행동이 나온다면, 그건 명확하고 기민할 것이다. 또한 효과적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 행동은 과거라는 조건에 얽매인 마인드에서 나오는 반응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일 것이다. 

시간에 얽매인 마인드가 반응했다면, 그런 경우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금> 순간의 한가운데 그냥 머물러 있는 게 더 효과적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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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성과 고통의 뿌리는 

 시간 속에 들어 있어  

 

 

- 하지만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늘 망상인 건 아니잖아. 현재는 아주 힘들지만 미래에는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대개 미래는 과거의 복제이다. 피상적인 변화는 가능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드물며, 이마저도 우리가 <지금> 순간의 힘에 접근함으로써 과거를 녹여 없앨 만큼 충분히 현존할 수 있는지 여부에 좌우된다. 미래라고 인지하는 것은 지금 우리 의식 상태의 고유한 부분이다. 

 

부정적 성향과 고통의 뿌리

 

만약 마인드가 과거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우리는 같은 것을 더 많이 겪을 것이다. 

과거는 현재가 부족할 때 영속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네 의식의 성질이 미래를 형성하는데… 이 미래는 물론 <지금> 순간으로서만 체감할 수 있다. 

 

당신은 어쩌다가 1천만 달러를 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의 변화는 미미한 것이다. 거액이 들어왔다 해도 환경만 좀 더 호사해졌을 뿐이지 예전 패턴대로 계속 행동할 거야. 

인류는 원자를 분리할 줄 알게 됐다. 예전에는 나무 몽둥이로 사람을 열, 스물 죽일 수 있었던 데 비해 지금은 한 사람이 단추만 누르면 백만 명을 죽일 수 있다. 

이게 진정한 변화일까? 

 

만약 지금 이 순간 우리네 의식의 질이 미래를 결정한다면, 이 의식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우리가 현존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과거가 녹아 사라질 수 있는 곳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지금>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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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성은 죄다 심리적 시간의 퇴적과 현재의 부정에서 야기된다. 

 

불안이나 걱정, 긴장, 압박감, 고심 등 든 형태의 두려움은 다 미래가 너무 많고 현재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죄책감이나 후회, 분노, 불만, 슬픔, 낙담, 괴로움, 갖가지 불용(不容) 등은 다 과거가 지나치게 많고 현재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부정적 성향을 전혀 띠지 않는 의식 상태가 가능하다는 점을 대다수 사람들은 믿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모든 영적 가르침이 가리키는 해방된 상태이다. 이것이 또 환상적인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구원의 약속이다. 

 

시간이 우리네 고통이나 문제의 원인임을 인정하기가 힘들 수도 있어. 

그런 것들은 우리 인생의 특정한 상황 때문에 생긴다고 믿는다. 

진부한 관점에서는 그게 맞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에 애착을 갖고 <지금> 순간을 거부하면서 문제 일으키는 마인드의 기본적인 기능 장애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이른바 문제들이 실제로 줄줄이 나올 것이다.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나 문제가 모두 오늘 어떻게 해서 기적처럼 제거됐다 해도 더 많이 실재하지 않고 더 자각하지 않았다면, 비슷한 문제나 고통의 원인이 그림자처럼 계속 따라다님을 곧 발견할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단 하나인데… 시간이란 족쇄에 묶여 있는 마인드가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다.  

 

- 나의 여러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시점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맞는 말이야. 당신이 그 시점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거야. 왜냐면 지금 그 시점에 있으니까. 

 

시간 속에는 구원이 없다. 우리는 미래에 가서 자유로워질 수 없어. 

자유에 이르는 열쇠는 현재이므로, 오직 지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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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실생활에서 시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라. 

이런 시간을 우린 ‘시계의 시간’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실무를 처리한 뒤에는 즉각 현재 순간의 깨어 있는 의식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과거와 동일시되고 미래에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투영하는 심리적 시간이 늘어나지 않는다.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기

 

시계의 시간은 단순히 약속을 잡거나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필요한 건 아니야.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때도 필요하다. 

시계의 시간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일할 때도 필요해. 또 과거에서 얻은 물리나 수학의 법칙들과 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기초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할 때도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나 미래에 눈길 돌리지 않고서는 뭔가를 할 수 없는 실생활 영역에서도 현재 순간은 여전히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즉, 과거의 모든 교훈이 지금 적절해지고 지금 적용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뿐 아니라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업도 지금 이뤄진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늘 <지금>에 주의를 집중하면서도 지엽적으로는 여전히 시간을 의식한다.

달리 말해, 그들은 시계의 시간을 계속 이용하지만 심리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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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실행하면서 물리적 시간을 부지중에 심리적 시간으로 전환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예를 들어… 

과거에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제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면, 이건 시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과거 실수를 마음에 담아둔 채 자신을 탓하거나 후회하거나 죄책감이 든다면, 이건 그 실수를 ‘나'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이 실수를 자아감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며, 
그것이 심리적 시간이 되고, 
이 심리적 시간은 늘 그릇된 정체성 감각과 연결된다.
용서하지 않으면 심리적 시간의 무거운 짐이 반드시 뒤따른다.

 

목표를 세우고 그걸 향해 노력한다면, 시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고 있지만, 이 순간에 밟고 있는 단계를 존중하며 거기에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혹시 행복과 성취를 추구하거나 거기서 더 완벽한 자아감을 찾느라고 목표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지금> 순간이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 그건 본래 가치를 상실하고 미래로 가는 단순한 디딤돌 정도로 축소된다. 

 

그러면 시계의 시간이 심리적 시간으로 바뀐다. 

그러면 우리네 인생 여정은 더 이상 가슴 설레는 체험이 아니라 제 기한에 도달하고 뭔가를 얻고 뭔가를 해내야 하는 욕구가 된다. 

그러면 길가의 꽃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그 향내를 못 느낄 뿐 아니라, <지금> 순간에 존재할 때 주변에 펼쳐지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감지하지도 못한다. 

 

 

- <지금>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은 알겠는데, 시간이 완전히 환상이라는 말에는 썩 동의하기 어렵다. 

 

‘시간은 환상’이라고 말할 때, 내 의도는 철학적 언급을 하자는 게 아니야. 단지 간단한 사실 하나를 상기시키는 거야.

이 사실은 하도 뻔해서 포착하기 힘들지 모르고 무의미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일단 충분히 실감하기만 하면 마인드가 만들어 낸 이른바 ‘문제들’과 복잡함을 날카로운 칼처럼 자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순간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전부야. 

우리네 삶이 ‘이 순간’이 아닌 적은 절대 없어. 이것이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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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 ‘생각꾼’을 지켜본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

 

만약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요" 하고 말한다면, 정신과의사한테 가보라는 말을 들을 게 분명하다. 실제로 모든 사람은 늘 자기 머릿속에서 그런 목소리를 듣는다. 

이건 자신도 모르게 여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 끝없는 머릿속 독백이나 대화를 멈출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생각꾼을 지켜보기

늘 뭔가를 쉴 새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이른바 '맛이 간' 사람들을 거리에서 간혹 본다. 한데, 그 미친 사람들이 하는 짓과 우리를 포함해 이른바 '정상적인' 사람들이 하는 짓의 차이란 기껏해야 우리는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는다는 점일 뿐이다. 

이 머릿속 목소리는 늘… 누군가나 뭔가를 촌평하고, 주장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불평하고,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이 머릿속 목소리는… 어떤 순간에 우리가 처한 상황과 별반 관련 없는 것이 많다. 이건 대체로 최근이나 먼 과거를 떠올리거나 가능한 미래 상황을 미리 짚어보거나 상상한다.  그러면서 일이 잘못 되거나 안 좋은 결과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우리는 근심 걱정이라 부른다. 
때로는 이 사운드트랙에 시각적 형상이나 '정신적 필름‘이 수반되기도 한다. 

 

머릿속 목소리가 혹시 당면한 상황과 관련된다 하더라도, 그 상황조차 머릿속 목소리는 과거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머릿속 목소리가 조건에 얽매인 마인드에서 나오는데, 또 이 제한된 마인드는 우리네 인생 내력뿐 아니라 우리가 물려받은 사회적, 문화적 사고방식의 반영이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과거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며, 그 결과 현재에 대해 완전히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다. 

 

머릿속 목소리가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징벌하고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갉아먹는 고문자를 자기 머릿속에 둔 채 살고 있다. 이것이 질병뿐 아니라 크나큰 비참함과 불행의 원인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자기 마인드의 전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이 진정한 해방이다. 이 길을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중중대는 목소리에 최대한 자주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하라. 

반복되는 생각 패턴에, 아마도 몇 년씩이나 양쪽 귀 사이에서 뱅뱅 돌았을 낡은 레코드판 소리에, 특히 주목하라. 

이것이 내가 말하는 ‘생각꾼 지켜보기’이다. 

 

달리 말해, 머릿속 목소리를 들으면서 목격자로 머릿속에 실재하라. 

그 목소리를 들을 때 편견을 갖지 말라. 즉, 판단하지 말라. 

듣는 것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라. 그렇게 한다는 것은 같은 목소리가 뒷문으로 다시 들어왔다는 뜻일 테니까. 

 

저기에 목소리가 있고 여기에 그것을 듣고 지켜보는 ‘나’가 있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있다’는 실감이나 나의 실재감은 생각이 아니다. 이건 마인드 너머에서 생기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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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그 생각뿐 아니라 그 생각의 목격자로서 자기 자신도 분명히 알게 된다. 새로운 차원의 의식이 들어선 것이다. 생각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는 그 생각의 이면이나 기저에 있는 의식적인 실재를 느낀다. 

이것이 우리의 더 깊은 자아이다. 

그러면 생각은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잃고 금방 잠잠해진다. 왜냐하면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함으로써 마인드에 에너지 공급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생각하기를 끝내는 작업의 첫걸음이다. 

 

생각이 잠잠해질 때 머릿속 흐름이 중간 중간 끊어지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인드가 없는 틈새이다. 혹은 무념(無念)의 간격이다. 이 틈새들이 처음엔 짧아서 몇 초에 불과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이 틈새들이 생길 때, 우리는 내면에서 고요와 평온을 느낀다. 

이렇게 하여 <존재>와 하나 됐다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나아간다. 

물론 그 이전에 이 상태는 대개 마인드에 의해 가려져 있다. 

 

이 연습을 계속 할수록 고요와 평온의 느낌이 더 깊어질 것이다. 사실, 이 느낌의 깊이에는 끝이 없다. 또한 내면 깊은 곳에서 신비하게 솟아나는 기쁨도 느끼게 될 텐데… 이것이 바로 <존재>의 기쁨이다. 

 

건 트랜스 (꿈결, 비몽사몽) 같은 상태가 아니다. 전혀 아니야. 여기서는 의식이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아. 외려 그 반대이다. 평온을 얻느라고 의식 수준을 낮춰야 하며 고요를 얻느라고 활력과 기민함을 잃는다면, 그런 것은 얻으려 애쓸 가치가 없으리라. 

이 내면의 연결 상태에서는 마인드와 동일시할 때보다 훨씬 더 경계하고 깨어 있게 된다. 

우리는 완전히 현존한다. 게다가 신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에너지장의 진동수가 이 상태에서 높아지기도 한다. 

 

이 무념(無念)의 영역에 더 깊이 들어서면서 우리는 순수 의식 상태를 실감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우리 자신의 현존이 어찌나 강렬하고 기쁘게 느껴지는지, 이에 비하면 생각이며 감정이며 육체며 바깥세상 모든 것이 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건 이기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심 없는 상태이다. 자신의 실재를 실감함으로써 우리는 이전에 ‘나 자신’이라 여기던 것을 훨씬 더 넘어서게 된다. 이 실재는 본질적으로 ‘나’이면서 동시에 이 ‘나’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더 크다. 여기서 내가 전하려는 것이 역설적이거나 모순된 듯이 들릴지 모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생각꾼 지켜보기’ 이외에도 <지금> 순간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머릿속 흐름에서 틈새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순간을 그냥 강렬하게 의식하기만 하라. 그렇게 하는 자체가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마인드의 움직임에서 의식을 끌어내 무심의 틈새를 만드는데, 이 틈새 안에서 우리는 높은 경계심과 인식 상태에 있으면서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이걸 우리는 일상에서도 연습하고 실행할 수 있다. 우리네 일상 움직임은 목적을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것을 행할 때 거기에 온통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 자체가 적어도 그 순간에는 목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이나 직장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계단 하나하나에, 동작 하나하나에, 심지어 호흡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라. 거기에 전적으로 현존하라. 몰입하라. 

또는 손을 씻을 때, 그 행동과 관련된 모든 감각적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라. 즉, 흐르는 물소리며 손놀림이며 비누 냄새 등에 집중하라. 

혹은 차에 탈 때, 차 문을 닫고 나서 아주 잠깐 휴지를 취하고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라.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절절이 느껴 보라. 

 

‘이런 실습을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확인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내면에서 체감하는 평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분리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마인드의 흐름에 틈새를 만들 때마다 (no-mind, 무념의 찰나에 접할 때마다) 의식의 빛이 더 선명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린애들 장난에 미소 짓듯이 머릿속 목소리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자신을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건 자기 마인드의 내용을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자아감이 더 이상 거기에 좌우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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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당신과 당신 마인드는 같은 것이 아니야

 

깨달음에 가장 큰 장애물

 

-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한 거지가 어떤 거리에서 삼십 년 넘게 구걸을 해 왔다. 

어느 날 낯선 사람이 그 곁을 지나갔다. 

거지가 낡은 모자를 기계적으로 내밀면서 “동전 한 닢만 적선하십시오” 하고 우물거렸다.  

행인이 “나한테는 당신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군요” 대꾸하고는 “한데 거기 깔고 앉은 건 뭐지요?” 하고 물었다.   

“아, 이건 별것 아닙니다. 그저 낡은 궤짝이에요. 아주 오래 전부터 깔고 앉던 거지요.”  

“그 안을 한번 들여다보기는 했나요?” 

“아뇨,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러지 말고 한번 들여다보구려.” 행인이 적극 권했다. 

거지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귀찮다는 듯이 궤짝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궤짝 안에는 금덩이가 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니던가!

 

You are not your mid. - Eckhart Tolle


당신에게 줄 것 하나 없이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권하는 행인이 바로 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우화처럼 무슨 궤짝 속을 들여다보라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난 거지가 아니야!” 하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자신의 진정한 보물은 <존재>의 빛나는 기쁨과 여기서 나오는 깊고 확고한 평온인데… 이걸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재산이 아무리 많다 해도 거지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바깥에서 작은 쾌락이나 성취를 찾고 인정받기를 갈망하며 안전을 모색하고 사랑을 원한다. 한데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세상이 제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물이 정작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뭔가 초인적인 성취 같은 걸 떠올리게 하고, 우리네 <에고>는 그런 식으로 몰아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존재>와 하나 된다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일 뿐이다. 

이건 헤아릴 수 없고 불멸인 뭔가와 연결된 상태이며, 좀 역설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자신이면서도 또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무엇과 연결된 상태이다. 

이건 우리의 이름과 형태를 넘어서서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실체를) 찾는 것이다. 

 

이 연결을 느낄 수 없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이며 주변 세상과 분리됐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고립된 파편으로 인식한다. 
이때 두려움이 생기며, 자기 안팎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충돌이 일상사가 된다. 

 

깨달음을 ‘고통의 끝’이라고 간결하게 표현한 붓다의 정의가 정말 마음에 와 닿는다. 여기에 초인적인 것이라곤 없다, 안 그런가?

정의로서는 물론 완전하지 못하다. 깨달음은 고통이 아닌 것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고통이 없을 때 남는 건 무엇인가? 

 

이에 관해 부처는 말을 아끼는데, 그 침묵은 우리 스스로 헤아려 보라는 암시이다. 그는 부정적인 정의를 이용함으로써… 이 정의를 믿어야 할 무엇이나 초인적인 성취로 마인드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즉, 깨달음이 우리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자들은 깨달음이란 붓다가 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한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적어도 이승에서는 아니라고 믿는다.

 

- 당신은 <존재>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존재>란… 태어났다가 죽고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많은 생명 형태들 너머에서 늘 존재하며 영원한 ‘하나의 생명’이다. 하지만 존재는 모든 형태의 가장 안쪽에 보이지 않는 불멸의 본질로서 그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형태의 깊은 곳에도 있다. 즉, <존재>는 우리 각자의 가장 심원한 자아이자 실체로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거기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마인드로 포착하려 들지는 말라. 그걸 이해하려 들지 말라. 

마인드가 고요할 때만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현존하면서 <지금> 순간에 주의를 완전히 집중할 때 비로소 <존재>를 느낄 수 있지만, 마인드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존재>를 다시 또렷하게 인식하고 ‘그 느낌을 실감하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

 

- 당신이 쓰는 <존재>는 신(神)과 같은 뜻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신이란 단어를 안 쓰나?

 

신이란 단어는 수천 년 동안 오용되는 바람에 본래 의미를 다 잃었다. 난 그 단어를 쓴다 해도 아주 가끔만 쓴다. 내가 말하는 오용이란… 이 단어에 깃들어 있는 무한한 광대함과 신성한 영역을 한 순간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마치 자기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아는 것처럼 이 단어를 입에 올린다는 뜻이다.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자기네가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그렇게 한다. 이런 오용 때문에 “우리의 신만이 유일한 진짜 신이고, 너희 신은 가짜야”라거나 니체의 유명한 언급 “신은 죽었다” 같이 터무니없는 확신과 주장, <에고> 식의 망상 따위가 생기는 것이다. 

 

신(神)이란 단어는 닫힌 개념이 되어 버렸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아마도 허연 수염 달린 노인의 심상이 떠오르겠지만, 이건 우리 바깥에 있는 누군가나 무엇인가에 대한 심적 관념인 것일 뿐이다. 아, 그래, 이것이 남성이나 남성적인 것이라는 점도 거의 확실하다. 

 

신이나 <존재>는 물론이고 그 어떤 단어도 그 단어 이면의 형용키 어려운 실체를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단지 중요한 것 하나는… “단어가 가리키는 ‘그것’을 우리가 체감하는 데 이 단어가 도움이 되나, 아니면 방해가 되나?” 하는 점이다. 이 단어는 그 이면의 초월적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머릿속에 아주 쉽게 날아들어 우리가 믿는 어떤 생각이나 정신적 우상이 되는 걸까? 

 

<존재>라는 단어는 신이란 단어처럼 그 무엇 하나 명확히 밝히거나 알려주지 못한다. 하지만 <존재>라는 단어에는 열린 개념의 이점이 있다. 이 단어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것을 (그것의 본질, 역할, 의미를) 어떤 조건적이고 유한한 대상으로 축소시키지 않는다. 

 

<존재>를 심상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존재>를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질이며,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저런 사람이야’ 하면서 자신을 다른 무엇과 동일시하기 이전에 ‘내가 있다’고 실감하고 내 실재를 느낌으로써 즉각 다가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존재>라는 단어에서… <존재>를 체감하는 쪽으로 작은 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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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실체를 체감하는 데 가장 크게 방해되는 건 무엇인가?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즉, 생각이 집요하게 이어지도록 부추기는 마인드를 바로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잡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건 끔찍한 재앙인데, 이런 점을 우리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의 누구나 다 잡생각에 시달리니까, 이게 마치 정상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소음 때문에 내면의 고요한 영역을 찾기 어려워

그리고 이 그칠 줄 모르는 정신적 소음 때문에 우리는 <존재>와 불가분한 내면의 고요한 영역을 발견하기 어렵다. 또 이 소음 때문에 <마인드가 만든 거짓된 나>가 생겨나서 우리한테 두려움과 고통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부분은 잠시 뒤에 자세히 살펴보겠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언급을 내놓았을 때, 그는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발견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상 그건 가장 근본적인 착각을 드러낸 것이다. 즉, 생각을 <존재>와 같은 것으로 보았고, 자신을 생각과 동일시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강박적인 ‘생각꾼’은 자신이며 주변 세계와 확실히 분리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문제며 대립이며 충돌이 끊이지 않는,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마인드는 갈수록 더 분열되고 있다. 

 

깨달음이란… 흠 없이 온전한 상태, 하나가 되기 때문에 평온한 상태이다. 
깨달음이란… 삶이 ‘의식에 나타나고 드러난’ 측면인 이 세상에서 삶과 하나 될 뿐 아니라 우리네 가장 심원한 자아이며 ‘드러나지 않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은’ 삶과도 하나 되는 상태이다. 한마디로, <존재>와 하나가 됨에 깨달음이 있다. 
깨달음이란… 내 안팎으로 끊임없는 갈등이며 고통의 종식일 뿐 아니라, 또한 자기도 모르게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더 이상 노예처럼 얽매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야말로 얼마나 크나큰 해방이란 말인가! 

 

자기 마인드를 자신이라 여길 때… 개념이나 꼬리표, 형상, 단어, 판단, 정의라는 이름의 흐릿한 차단막이 생기고, 그래서 진정한 관계가 다 차단된다!

마인드와 동일시할 때… 나와 나 자신 사이에, 나와 내 동료들 사이에, 나와 자연 사이에, 나와 신(神) 사이에 이 차단막이 드리우고, 이 차단막 때문에 이른바 분리 망상이 생긴다!!

즉, ‘내가 있고 또 나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게 되니… 물질적인 외양과 개개의 형태들 기저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과 하나라는 사실 말이다. ‘잊는다’는 것은 이 일체감을 더 이상 자명한 실체로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과 하나임을 진실이라 믿을 수는 있지만, 그게 과연 진실인지는 알지 못한다. 

믿음이 위안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믿음에 얽매이지 않으며,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믿음이다. 

 

생각하는 과정은 병이 되었다. 질병은 상황의 균형이 깨질 때 생긴다. 이를테면, 신체 세포의 분열과 증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 과정이 신체 전반과 조율되지 않은 채 계속된다면 세포들이 급증하면서 병이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인드는 (머리, 지력, 마음은)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더없이 훌륭한 도구이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아주 파괴적인 도구가 된다.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마인드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대개 그걸 아예 이용하지 않아. 그 대신 마인드가 우리를 이용한다. 바로 이게 병이다. 우리는 자기 마인드가 곧 ‘나 자신’이라고 믿는다. 이건 망상이야. 이 도구가 우리를 점령했다.

 

- 그 말에 난 썩 동의하지 않아. 대다수 사람들처럼 나도 목적 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면서 내 마인드를 이용한다. 늘 그렇다. 

 

크로스워드 퍼즐을 푼다거나 원자탄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마인드를 이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개가 뼈다귀 핥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마인드는 어떤 문제에 매달리기를 좋아한다. 이 때문에 마인드는 십자말풀이를 하고 원자탄을 만드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다. 

이런 질문을 하나 해 보자. 

당신은 원할 때면 언제나 자기 마인드에서 벗어날 수 있나? 

마인드 ‘끄는’ 단추를 발견했나?

 

- 흠, 생각하기를 완전히 멈춘다는 뜻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아주 잠깐이면 몰라도. 

 

그렇다면 그건 마인드가 당신을 이용한다는 뜻이야.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했고, 그래서 마인드의 노예가 됐다는 것도 모른다. 이건 우리가 자기도 모르게 뭔가에 홀리고 난 뒤, 우리를 홀린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자유는… 우리를 점유하고 있는 실체인 ‘생각꾼’이 본연의 우리가 아님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이걸 알 때 그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생각꾼’을 지켜보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이 활성화된다. 

 

그러면 생각 너머에 무한한 지혜가 (혜심/慧心이) 있으며, 생각은 이 지혜의 미미한 일부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아름다움, 사랑, 창의, 기쁨, 내면의 평화 등 정말 중요한 것은 전부 마인드 너머에서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된다. 비로소 우리는 깨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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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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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순간의 힘  

 

일상에서 깨달음 얻기

 

Eckhart Tolle 지음

 

김성호 옮김

 

마인드 너머. 행성, 장미, 어린 왕자

 

차 례

 

옮긴이의 말

머리말

 

1장. 당신과 당신 마인드는 같은 것이 아니야 

 

깨달음에 가장 큰 장애물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깨달음이란 자신의 생각 위로 올라서는 것 

감정은 마인드에 대한 몸의 반응 

 

2장. 깨어 있는 의식: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현재에서 고통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과거의 아픔: 고통의 몸체 녹이기 

 고통의 몸체와 동일시하려는 에고 

두려움의 근본 원인 

<에고>가 완전함을 추구하는 방식

 

3장. <지금> 순간에 뿌리내리기 

 

자신을 마인드에서 찾지 않기

시간이란 망상을 떨치기

<지금> 순간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어

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기

심리적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심리적 시간의 광기 

부정성과 고통의 뿌리는 시간 속에 들어 있어 

당신의 생활 여건에서 삶을 찾기

문제란 전부 마인드의 망상이야

의식 진화에서 급격한 도약 

존재한다는 기쁨 

 

4장. <지금> 순간을 회피하려는 마인드의 술책 

 

<지금> 순간의 상실이 주된 망상이야

평범한 무자각과 심각한 무자각 

“그들은 뭘 추구하는 거야?” 

평범한 무자각에서 벗어나기 

불만과 불행에서 해방되기 

<지금> 어디에 있든, 거기에 온전히 있으라

인생 여정의 내적인 목적 

과거는 당신의 현존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5장. 현존하는 상태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거야

‘기다림’의 심원한 의미 

아름다움은 당신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순수 의식의 구현

그리스도: 당신의 신성한 현존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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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내면의 몸체 

 

<존재>란 당신의 가장 깊은 본질 

단어와 말 너머를 내다보기

자신의 보이지 않는 불멸의 실체를 찾기 

내면의 몸체와 연결하는 방법 

몸을 통한 변용

몸에 대한 수훈(垂訓)

내면에 깊이 뿌리 내리기

몸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용인하기 

<드러나지 않은 세계>와 연결 

노화 과정의 완화 

면역체계 강화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이동하기 

마인드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경청 능력 

 

7장. <드러나지 않은 세계>로 들어서는 들머리 

 

몸 깊숙이 침잠하기 

기(氣) 에너지의 원천 

꿈꾸지 않는 수면 

그 밖의 여러 들머리 

고요 

공간 

공간과 시간의 본래 속성 

의식적인 죽음 

 

8장. 깨달음 얻은 대인관계 

 

어디에 있든 <지금> 순간에 들어서기 

애증 관계 

파멸적인 의존성과 온전함의 추구 

의존 관계에서 깨달음 얻은 관계로 전환하기 

영적 실천으로서 상호관계 

왜 여성들이 깨달음에 더 가까이 있나

여성들의 집단적 아픔덩어리 해소하기 

자신과의 관계를 거부하기 

 

9장. 행불행 너머에 있는 평온 

 

좋고 나쁨 너머에 있는 최고선 

당신의 고달픈 인생 드라마를 끝내기 

삶의 비영속성과 순환

부정성을 활용하고 극복하기 

동정심의 본질

다른 질서의 현실을 향하여 

 

10장. 승복의 의미 

 

<지금> 순간 받아들이기 

마인드 에너지에서 영적 에너지로 승화 

대인관계에서 승복하기 

질병을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재앙이 닥칠 때

고통을 평온으로 바꾸기 

십자가의 길 

선택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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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 추구하는 이들의 오해 5가지  

 

 

깨어 있는 의식과 자아 각성을 추구하고, 

나아가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오해가 (혹은 착각이) 몇 가지 있다.

 

깨달음 얻고자 명상에 잠긴 이들

 

1. 자각과 깨달음을… 자신의 바깥에서, 산속이나 광야에 머물거나 기도원 등지에 틀어박혀서 어떤 경전 등 외부 요인들을 이용하여, 찾으려는 열성 (X)

 

깨달음의 원천은 항상 우리네 <나> 안에 있다. 

우리의 존재가 (실재, 현존이) 바로 깨달음의 근원이다. 외부 조건은 죄다 한낱 조건일 뿐이지 원천이 못 된다. 

외부의 어떤 환경이나 상황을 통해 자아각성과 깨달음의 토대를 든든히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필요에서 더 나아가… 일정한 의식과 상황과 사람들이 끊임없이 필요하다고 당신에게 지시하는 숭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금물이다. 

 

2. 깨달음을… 도달해야 하는 현상이나 습득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X)

 

우리가 도달하는 장소나 자리는 전부… 조만간 우리가 거기서 떠나거나 아니면 그 자체가 사라지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갖고자 애쓰는 대상은 무엇이든… 조만간 우리의 관심을 잃거나 그 자체로 더 이상 흥미로운 것이 못 된다. 

 

자각은 장소나 대상이나 현상 따위가 아니다. 

자각을 (나아가서 깨달음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하자면… 늘 있어 왔으며, 거기에 이르려 하는 누구나 나름의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는 상태라 할 것이다. 

 

3. 누구한테나 적합하며 보편적인 깨달음 방법을 찾으려 드는 것 (X) 

 

우리네 삶은 다 제각각 독특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살려고 하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얻기란 불가하다. 

누군가와 비슷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본연의 자신으로 있으면서, 거기서 유현한 의미를 찾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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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각이나 깨달음을 명료한 논리적 용어로 설명하려 드는 것 (X)

 

삶이 무엇인지 알기에 어떤 묘사나 설명으로는 불충분하며, 살아 봐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언어로는 절대로 다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한테 벌어지는 모든 일을 정의하려 들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 한다. 왜냐하면 일일이 정의하려 들다 보면 우리 스스로 조만간 궁지로 내몰릴 테니까. 

 

5.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이들과 자기 자신에게 입증하려 드는 것 (X)

 

자각은 그냥 자각인 것이다. 입증되는 것도 아니며, 부인되는 것도 아니다. 

자아 각성이나 깨달음은 우리의 존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본래 내재된 상태를… 어떻게든 구별하거나 강조하거나 확인하려 들 필요가 없다.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나머지는 다 저절로 이뤄질 것이다. 

P. S. 
어떤 가르침도 당신 내면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절대 믿지 말라. 
그 언급 하나하나를 자신의 생생한 체험으로 검증하면서 나름의 길을 가꾸라. 
지금 이것을 포함하여 그 누구의 조언도 따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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