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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은 지혜  

 

당신 파트너에겐 결코 책임이 없어요. 

 

적절한 순간에 지혜를 발휘한다면, 당신은 정말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 순간이 지난 뒤에야 현명해집니다. 

뒷북치는 지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우리는 저지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서로 목소리 높여 언쟁하며 불필요한 말을 잔뜩 퍼붓고 난 뒤

이제 당신은 정신이 들어서 공연히 언쟁했음을 알게 되는데…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이미 상처 주고 해를 끼친 마당에 

그런 지혜는 쓸모가 없어요. 

그건 거짓된 지혜입니다. 

 

그건 에고의 속임수이기도 해요! 

그런 지혜는 도움이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그 순간에, 

자각이 생겨서 그런 행위의 무의미함을 알아야 합니다.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런 짓은 하지 않았겠지요. 

자신의 자각을 거스를 수는 없는데, 그런데도 그렇게 한다면, 

그건 자각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다른 뭔가를 자각이라고 받아들인 겁니다. 

 

파트너에겐 결코 책임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당신 안에서 뭔가가 끓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누구보다도 더 친밀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칫 당신의 쓰레기 하적장이 되기 쉽습니다. 

거리에서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 쓰레기를 내던지지는 않지요. 

 

파트너한테는 잘못이 없어요

 

그러나 그걸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깨지기가 아주 쉬우니까요. 

만약 당신이 지나치게 멀리 나아가 선을 넘는다면, 

사랑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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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에겐 결코 책임이 없어요. 

이 점을 늘 인식하면서 필요한 순간에 떠올릴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누군가한테서 뭔가 잘못을 발견하게 되는 즉시, 

그런 자신을 포착하고 즉각 멈추세요. 

그리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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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문제라 여기는 것은 전부 

마인드가 일으키는 착각이야  

 

- 묵직한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다. 개운해진 느낌을 분명히 느껴… 

하지만 나의 여러 문제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 해결된 게 아니잖아. 

그 문제들을 일시적으로 회피하는 꼴이 되는 건 아닌가? 

 

만약 당신이 천국이나 극락에 있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 못 가서 마인드는 “좋아, 하지만…” 하고 말할 것이야. 우리 대화는 결국 당신의 문제 해결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니야. 그게 아니라… 

문제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하자는 것이다.

 

난 어떤 문제에 시달려” 하고 말할 게 아니라, ‘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상황이란… 
지금 처리하거나, 아니면, 달라지거나 처리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있는 그대로 놔두고 지금 순간에 ‘실재한다는 사실’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만 있다. 

 

모든 문제는 마인드가 만들어 내는 것이며 존속하기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금> 순간에 현존할 때 문제 따위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문제란 마인드의 망상

 

<지금>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고, 이 순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들 해 보시라. 

 

 

“나한테 어떤 골칫거리가 있다”는 답변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군. 그 이유는… 

<지금> 순간에 완전히 주의를 집중할 때는 문제가 생길 수 없기 때문이야. 다만, 처리하거나 받아들여야 할 상황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걸 왜 문제로 삼나? 

그 뭔가를 왜 골칫거리로 바꾸나? 

삶 자체가 도전적이고 흥미진진한 것이 아니던가? 

문제며 골칫거리 따위가 우리한테 왜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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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는 갖가지 문제를 무의식적으로 좋아한다. 

왜냐하면 문제들이 일종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건 일반적인 현상이면서도 무분별한 짓이야. 

 

해결하기 어렵거나 대응하기 곤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지금 당장 진정으로 뭔가 행동할 의향이나 가능성이 없이 그 상황에 정신적으로 머물러 있다는 뜻이며, 또 그 상황을 자기도 모르게 자아감의 일부로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생활 상황에 하도 압도되는 바람에 삶의 감각을, <존재>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는 뜻이다. 혹은,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고, 앞으로 하려거나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어리석은 짐처럼 마인드에 품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만들면, 아픔도 생긴다. 

이것을 막으려면, 간단한 선택과 간단한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자신에게 더 이상 아픔을 초래하지 않을래. 골칫거리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어.” 

 

이건 단순하지만 매우 근본적이고 철저한 선택이다. 

고통에 정말 시달리고 역겨울 정도로 아픔을 겪지 않는 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지 않는 한, 고통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아픔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더 이상 고통을 안기지 않는다. 또한 문제를 일으키는 부정적 성향으로써 아름다운 지구며 자신의 내면 공간, 인간의 집단 심리를 더 이상 더럽히지 않게 된다. 

 

 

생사를 가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다면, 그 순간 자신에게 다른 문제 따위는 전혀 없었음을 알 것이다. 마인드가 멍청한 짓을 하면서 그 상황을 문제로 만들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급박한 상황에서는 마인드가 작동을 멈추고 우리는 <지금>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게 되며, 무한히 더 강력한 뭔가가 상황을 떠맡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용감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가 적잖이 오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긴급한 상황에서 우리는 살아남거나 살아남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야. 

달리 말해, 그런 상황에서는 문제 같은 게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문제라는 것은 전부 환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한테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이 말을 자기네 자아감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잘못된 자아감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어.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전반적인 정체성을 자신의 문제나 고통에서 무의식적으로 규정해 온 것이다. 그런 게 없다면,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사람들이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행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두려움에서 유발되는데, 이 두려움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금> 순간에서 멀어짐과 늘 연결된다. <지금> 순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두려움 역시 전혀 없게 된다.

 

지금 당장 수습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때 현재 순간의 깨어 있는 의식에서 행동이 나온다면, 그건 명확하고 기민할 것이다. 또한 효과적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 행동은 과거라는 조건에 얽매인 마인드에서 나오는 반응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일 것이다. 

시간에 얽매인 마인드가 반응했다면, 그런 경우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금> 순간의 한가운데 그냥 머물러 있는 게 더 효과적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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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성과 고통의 뿌리는 

 시간 속에 들어 있어  

 

 

- 하지만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늘 망상인 건 아니잖아. 현재는 아주 힘들지만 미래에는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대개 미래는 과거의 복제이다. 피상적인 변화는 가능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드물며, 이마저도 우리가 <지금> 순간의 힘에 접근함으로써 과거를 녹여 없앨 만큼 충분히 현존할 수 있는지 여부에 좌우된다. 미래라고 인지하는 것은 지금 우리 의식 상태의 고유한 부분이다. 

 

부정적 성향과 고통의 뿌리

 

만약 마인드가 과거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우리는 같은 것을 더 많이 겪을 것이다. 

과거는 현재가 부족할 때 영속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네 의식의 성질이 미래를 형성하는데… 이 미래는 물론 <지금> 순간으로서만 체감할 수 있다. 

 

당신은 어쩌다가 1천만 달러를 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의 변화는 미미한 것이다. 거액이 들어왔다 해도 환경만 좀 더 호사해졌을 뿐이지 예전 패턴대로 계속 행동할 거야. 

인류는 원자를 분리할 줄 알게 됐다. 예전에는 나무 몽둥이로 사람을 열, 스물 죽일 수 있었던 데 비해 지금은 한 사람이 단추만 누르면 백만 명을 죽일 수 있다. 

이게 진정한 변화일까? 

 

만약 지금 이 순간 우리네 의식의 질이 미래를 결정한다면, 이 의식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우리가 현존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과거가 녹아 사라질 수 있는 곳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지금>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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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성은 죄다 심리적 시간의 퇴적과 현재의 부정에서 야기된다. 

 

불안이나 걱정, 긴장, 압박감, 고심 등 든 형태의 두려움은 다 미래가 너무 많고 현재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죄책감이나 후회, 분노, 불만, 슬픔, 낙담, 괴로움, 갖가지 불용(不容) 등은 다 과거가 지나치게 많고 현재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부정적 성향을 전혀 띠지 않는 의식 상태가 가능하다는 점을 대다수 사람들은 믿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모든 영적 가르침이 가리키는 해방된 상태이다. 이것이 또 환상적인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구원의 약속이다. 

 

시간이 우리네 고통이나 문제의 원인임을 인정하기가 힘들 수도 있어. 

그런 것들은 우리 인생의 특정한 상황 때문에 생긴다고 믿는다. 

진부한 관점에서는 그게 맞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에 애착을 갖고 <지금> 순간을 거부하면서 문제 일으키는 마인드의 기본적인 기능 장애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이른바 문제들이 실제로 줄줄이 나올 것이다.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나 문제가 모두 오늘 어떻게 해서 기적처럼 제거됐다 해도 더 많이 실재하지 않고 더 자각하지 않았다면, 비슷한 문제나 고통의 원인이 그림자처럼 계속 따라다님을 곧 발견할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단 하나인데… 시간이란 족쇄에 묶여 있는 마인드가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다.  

 

- 나의 여러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시점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맞는 말이야. 당신이 그 시점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거야. 왜냐면 지금 그 시점에 있으니까. 

 

시간 속에는 구원이 없다. 우리는 미래에 가서 자유로워질 수 없어. 

자유에 이르는 열쇠는 현재이므로, 오직 지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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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실생활에서 시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라. 

이런 시간을 우린 ‘시계의 시간’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실무를 처리한 뒤에는 즉각 현재 순간의 깨어 있는 의식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과거와 동일시되고 미래에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투영하는 심리적 시간이 늘어나지 않는다.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기

 

시계의 시간은 단순히 약속을 잡거나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필요한 건 아니야.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때도 필요하다. 

시계의 시간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일할 때도 필요해. 또 과거에서 얻은 물리나 수학의 법칙들과 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기초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할 때도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나 미래에 눈길 돌리지 않고서는 뭔가를 할 수 없는 실생활 영역에서도 현재 순간은 여전히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즉, 과거의 모든 교훈이 지금 적절해지고 지금 적용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뿐 아니라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업도 지금 이뤄진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늘 <지금>에 주의를 집중하면서도 지엽적으로는 여전히 시간을 의식한다.

달리 말해, 그들은 시계의 시간을 계속 이용하지만 심리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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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실행하면서 물리적 시간을 부지중에 심리적 시간으로 전환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예를 들어… 

과거에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제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면, 이건 시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과거 실수를 마음에 담아둔 채 자신을 탓하거나 후회하거나 죄책감이 든다면, 이건 그 실수를 ‘나'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이 실수를 자아감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며, 
그것이 심리적 시간이 되고, 
이 심리적 시간은 늘 그릇된 정체성 감각과 연결된다.
용서하지 않으면 심리적 시간의 무거운 짐이 반드시 뒤따른다.

 

목표를 세우고 그걸 향해 노력한다면, 시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고 있지만, 이 순간에 밟고 있는 단계를 존중하며 거기에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혹시 행복과 성취를 추구하거나 거기서 더 완벽한 자아감을 찾느라고 목표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지금> 순간이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 그건 본래 가치를 상실하고 미래로 가는 단순한 디딤돌 정도로 축소된다. 

 

그러면 시계의 시간이 심리적 시간으로 바뀐다. 

그러면 우리네 인생 여정은 더 이상 가슴 설레는 체험이 아니라 제 기한에 도달하고 뭔가를 얻고 뭔가를 해내야 하는 욕구가 된다. 

그러면 길가의 꽃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그 향내를 못 느낄 뿐 아니라, <지금> 순간에 존재할 때 주변에 펼쳐지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감지하지도 못한다. 

 

 

- <지금>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은 알겠는데, 시간이 완전히 환상이라는 말에는 썩 동의하기 어렵다. 

 

‘시간은 환상’이라고 말할 때, 내 의도는 철학적 언급을 하자는 게 아니야. 단지 간단한 사실 하나를 상기시키는 거야.

이 사실은 하도 뻔해서 포착하기 힘들지 모르고 무의미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일단 충분히 실감하기만 하면 마인드가 만들어 낸 이른바 ‘문제들’과 복잡함을 날카로운 칼처럼 자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순간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전부야. 

우리네 삶이 ‘이 순간’이 아닌 적은 절대 없어. 이것이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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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 ‘생각꾼’을 지켜본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

 

만약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요" 하고 말한다면, 정신과의사한테 가보라는 말을 들을 게 분명하다. 실제로 모든 사람은 늘 자기 머릿속에서 그런 목소리를 듣는다. 

이건 자신도 모르게 여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 끝없는 머릿속 독백이나 대화를 멈출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생각꾼을 지켜보기

늘 뭔가를 쉴 새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이른바 '맛이 간' 사람들을 거리에서 간혹 본다. 한데, 그 미친 사람들이 하는 짓과 우리를 포함해 이른바 '정상적인' 사람들이 하는 짓의 차이란 기껏해야 우리는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는다는 점일 뿐이다. 

이 머릿속 목소리는 늘… 누군가나 뭔가를 촌평하고, 주장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불평하고,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이 머릿속 목소리는… 어떤 순간에 우리가 처한 상황과 별반 관련 없는 것이 많다. 이건 대체로 최근이나 먼 과거를 떠올리거나 가능한 미래 상황을 미리 짚어보거나 상상한다.  그러면서 일이 잘못 되거나 안 좋은 결과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우리는 근심 걱정이라 부른다. 
때로는 이 사운드트랙에 시각적 형상이나 '정신적 필름‘이 수반되기도 한다. 

 

머릿속 목소리가 혹시 당면한 상황과 관련된다 하더라도, 그 상황조차 머릿속 목소리는 과거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머릿속 목소리가 조건에 얽매인 마인드에서 나오는데, 또 이 제한된 마인드는 우리네 인생 내력뿐 아니라 우리가 물려받은 사회적, 문화적 사고방식의 반영이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과거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며, 그 결과 현재에 대해 완전히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다. 

 

머릿속 목소리가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징벌하고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갉아먹는 고문자를 자기 머릿속에 둔 채 살고 있다. 이것이 질병뿐 아니라 크나큰 비참함과 불행의 원인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자기 마인드의 전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이 진정한 해방이다. 이 길을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중중대는 목소리에 최대한 자주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하라. 

반복되는 생각 패턴에, 아마도 몇 년씩이나 양쪽 귀 사이에서 뱅뱅 돌았을 낡은 레코드판 소리에, 특히 주목하라. 

이것이 내가 말하는 ‘생각꾼 지켜보기’이다. 

 

달리 말해, 머릿속 목소리를 들으면서 목격자로 머릿속에 실재하라. 

그 목소리를 들을 때 편견을 갖지 말라. 즉, 판단하지 말라. 

듣는 것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라. 그렇게 한다는 것은 같은 목소리가 뒷문으로 다시 들어왔다는 뜻일 테니까. 

 

저기에 목소리가 있고 여기에 그것을 듣고 지켜보는 ‘나’가 있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있다’는 실감이나 나의 실재감은 생각이 아니다. 이건 마인드 너머에서 생기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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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그 생각뿐 아니라 그 생각의 목격자로서 자기 자신도 분명히 알게 된다. 새로운 차원의 의식이 들어선 것이다. 생각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는 그 생각의 이면이나 기저에 있는 의식적인 실재를 느낀다. 

이것이 우리의 더 깊은 자아이다. 

그러면 생각은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잃고 금방 잠잠해진다. 왜냐하면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함으로써 마인드에 에너지 공급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생각하기를 끝내는 작업의 첫걸음이다. 

 

생각이 잠잠해질 때 머릿속 흐름이 중간 중간 끊어지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인드가 없는 틈새이다. 혹은 무념(無念)의 간격이다. 이 틈새들이 처음엔 짧아서 몇 초에 불과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이 틈새들이 생길 때, 우리는 내면에서 고요와 평온을 느낀다. 

이렇게 하여 <존재>와 하나 됐다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나아간다. 

물론 그 이전에 이 상태는 대개 마인드에 의해 가려져 있다. 

 

이 연습을 계속 할수록 고요와 평온의 느낌이 더 깊어질 것이다. 사실, 이 느낌의 깊이에는 끝이 없다. 또한 내면 깊은 곳에서 신비하게 솟아나는 기쁨도 느끼게 될 텐데… 이것이 바로 <존재>의 기쁨이다. 

 

건 트랜스 (꿈결, 비몽사몽) 같은 상태가 아니다. 전혀 아니야. 여기서는 의식이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아. 외려 그 반대이다. 평온을 얻느라고 의식 수준을 낮춰야 하며 고요를 얻느라고 활력과 기민함을 잃는다면, 그런 것은 얻으려 애쓸 가치가 없으리라. 

이 내면의 연결 상태에서는 마인드와 동일시할 때보다 훨씬 더 경계하고 깨어 있게 된다. 

우리는 완전히 현존한다. 게다가 신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에너지장의 진동수가 이 상태에서 높아지기도 한다. 

 

이 무념(無念)의 영역에 더 깊이 들어서면서 우리는 순수 의식 상태를 실감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우리 자신의 현존이 어찌나 강렬하고 기쁘게 느껴지는지, 이에 비하면 생각이며 감정이며 육체며 바깥세상 모든 것이 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건 이기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심 없는 상태이다. 자신의 실재를 실감함으로써 우리는 이전에 ‘나 자신’이라 여기던 것을 훨씬 더 넘어서게 된다. 이 실재는 본질적으로 ‘나’이면서 동시에 이 ‘나’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더 크다. 여기서 내가 전하려는 것이 역설적이거나 모순된 듯이 들릴지 모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생각꾼 지켜보기’ 이외에도 <지금> 순간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머릿속 흐름에서 틈새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순간을 그냥 강렬하게 의식하기만 하라. 그렇게 하는 자체가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마인드의 움직임에서 의식을 끌어내 무심의 틈새를 만드는데, 이 틈새 안에서 우리는 높은 경계심과 인식 상태에 있으면서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이걸 우리는 일상에서도 연습하고 실행할 수 있다. 우리네 일상 움직임은 목적을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것을 행할 때 거기에 온통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 자체가 적어도 그 순간에는 목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이나 직장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계단 하나하나에, 동작 하나하나에, 심지어 호흡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라. 거기에 전적으로 현존하라. 몰입하라. 

또는 손을 씻을 때, 그 행동과 관련된 모든 감각적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라. 즉, 흐르는 물소리며 손놀림이며 비누 냄새 등에 집중하라. 

혹은 차에 탈 때, 차 문을 닫고 나서 아주 잠깐 휴지를 취하고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라.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절절이 느껴 보라. 

 

‘이런 실습을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확인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내면에서 체감하는 평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분리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마인드의 흐름에 틈새를 만들 때마다 (no-mind, 무념의 찰나에 접할 때마다) 의식의 빛이 더 선명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린애들 장난에 미소 짓듯이 머릿속 목소리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자신을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건 자기 마인드의 내용을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자아감이 더 이상 거기에 좌우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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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당신과 당신 마인드는 같은 것이 아니야

 

깨달음에 가장 큰 장애물

 

-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한 거지가 어떤 거리에서 삼십 년 넘게 구걸을 해 왔다. 

어느 날 낯선 사람이 그 곁을 지나갔다. 

거지가 낡은 모자를 기계적으로 내밀면서 “동전 한 닢만 적선하십시오” 하고 우물거렸다.  

행인이 “나한테는 당신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군요” 대꾸하고는 “한데 거기 깔고 앉은 건 뭐지요?” 하고 물었다.   

“아, 이건 별것 아닙니다. 그저 낡은 궤짝이에요. 아주 오래 전부터 깔고 앉던 거지요.”  

“그 안을 한번 들여다보기는 했나요?” 

“아뇨,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러지 말고 한번 들여다보구려.” 행인이 적극 권했다. 

거지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귀찮다는 듯이 궤짝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궤짝 안에는 금덩이가 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니던가!

 

You are not your mid. - Eckhart Tolle


당신에게 줄 것 하나 없이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권하는 행인이 바로 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우화처럼 무슨 궤짝 속을 들여다보라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난 거지가 아니야!” 하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자신의 진정한 보물은 <존재>의 빛나는 기쁨과 여기서 나오는 깊고 확고한 평온인데… 이걸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재산이 아무리 많다 해도 거지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바깥에서 작은 쾌락이나 성취를 찾고 인정받기를 갈망하며 안전을 모색하고 사랑을 원한다. 한데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세상이 제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물이 정작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뭔가 초인적인 성취 같은 걸 떠올리게 하고, 우리네 <에고>는 그런 식으로 몰아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존재>와 하나 된다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일 뿐이다. 

이건 헤아릴 수 없고 불멸인 뭔가와 연결된 상태이며, 좀 역설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자신이면서도 또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무엇과 연결된 상태이다. 

이건 우리의 이름과 형태를 넘어서서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실체를) 찾는 것이다. 

 

이 연결을 느낄 수 없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이며 주변 세상과 분리됐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고립된 파편으로 인식한다. 
이때 두려움이 생기며, 자기 안팎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충돌이 일상사가 된다. 

 

깨달음을 ‘고통의 끝’이라고 간결하게 표현한 붓다의 정의가 정말 마음에 와 닿는다. 여기에 초인적인 것이라곤 없다, 안 그런가?

정의로서는 물론 완전하지 못하다. 깨달음은 고통이 아닌 것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고통이 없을 때 남는 건 무엇인가? 

 

이에 관해 부처는 말을 아끼는데, 그 침묵은 우리 스스로 헤아려 보라는 암시이다. 그는 부정적인 정의를 이용함으로써… 이 정의를 믿어야 할 무엇이나 초인적인 성취로 마인드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즉, 깨달음이 우리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자들은 깨달음이란 붓다가 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한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적어도 이승에서는 아니라고 믿는다.

 

- 당신은 <존재>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존재>란… 태어났다가 죽고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많은 생명 형태들 너머에서 늘 존재하며 영원한 ‘하나의 생명’이다. 하지만 존재는 모든 형태의 가장 안쪽에 보이지 않는 불멸의 본질로서 그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형태의 깊은 곳에도 있다. 즉, <존재>는 우리 각자의 가장 심원한 자아이자 실체로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거기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마인드로 포착하려 들지는 말라. 그걸 이해하려 들지 말라. 

마인드가 고요할 때만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현존하면서 <지금> 순간에 주의를 완전히 집중할 때 비로소 <존재>를 느낄 수 있지만, 마인드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존재>를 다시 또렷하게 인식하고 ‘그 느낌을 실감하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

 

- 당신이 쓰는 <존재>는 신(神)과 같은 뜻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신이란 단어를 안 쓰나?

 

신이란 단어는 수천 년 동안 오용되는 바람에 본래 의미를 다 잃었다. 난 그 단어를 쓴다 해도 아주 가끔만 쓴다. 내가 말하는 오용이란… 이 단어에 깃들어 있는 무한한 광대함과 신성한 영역을 한 순간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마치 자기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아는 것처럼 이 단어를 입에 올린다는 뜻이다.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자기네가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그렇게 한다. 이런 오용 때문에 “우리의 신만이 유일한 진짜 신이고, 너희 신은 가짜야”라거나 니체의 유명한 언급 “신은 죽었다” 같이 터무니없는 확신과 주장, <에고> 식의 망상 따위가 생기는 것이다. 

 

신(神)이란 단어는 닫힌 개념이 되어 버렸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아마도 허연 수염 달린 노인의 심상이 떠오르겠지만, 이건 우리 바깥에 있는 누군가나 무엇인가에 대한 심적 관념인 것일 뿐이다. 아, 그래, 이것이 남성이나 남성적인 것이라는 점도 거의 확실하다. 

 

신이나 <존재>는 물론이고 그 어떤 단어도 그 단어 이면의 형용키 어려운 실체를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단지 중요한 것 하나는… “단어가 가리키는 ‘그것’을 우리가 체감하는 데 이 단어가 도움이 되나, 아니면 방해가 되나?” 하는 점이다. 이 단어는 그 이면의 초월적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머릿속에 아주 쉽게 날아들어 우리가 믿는 어떤 생각이나 정신적 우상이 되는 걸까? 

 

<존재>라는 단어는 신이란 단어처럼 그 무엇 하나 명확히 밝히거나 알려주지 못한다. 하지만 <존재>라는 단어에는 열린 개념의 이점이 있다. 이 단어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것을 (그것의 본질, 역할, 의미를) 어떤 조건적이고 유한한 대상으로 축소시키지 않는다. 

 

<존재>를 심상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존재>를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질이며,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저런 사람이야’ 하면서 자신을 다른 무엇과 동일시하기 이전에 ‘내가 있다’고 실감하고 내 실재를 느낌으로써 즉각 다가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존재>라는 단어에서… <존재>를 체감하는 쪽으로 작은 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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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실체를 체감하는 데 가장 크게 방해되는 건 무엇인가?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즉, 생각이 집요하게 이어지도록 부추기는 마인드를 바로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잡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건 끔찍한 재앙인데, 이런 점을 우리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의 누구나 다 잡생각에 시달리니까, 이게 마치 정상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소음 때문에 내면의 고요한 영역을 찾기 어려워

그리고 이 그칠 줄 모르는 정신적 소음 때문에 우리는 <존재>와 불가분한 내면의 고요한 영역을 발견하기 어렵다. 또 이 소음 때문에 <마인드가 만든 거짓된 나>가 생겨나서 우리한테 두려움과 고통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부분은 잠시 뒤에 자세히 살펴보겠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언급을 내놓았을 때, 그는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발견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상 그건 가장 근본적인 착각을 드러낸 것이다. 즉, 생각을 <존재>와 같은 것으로 보았고, 자신을 생각과 동일시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강박적인 ‘생각꾼’은 자신이며 주변 세계와 확실히 분리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문제며 대립이며 충돌이 끊이지 않는,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마인드는 갈수록 더 분열되고 있다. 

 

깨달음이란… 흠 없이 온전한 상태, 하나가 되기 때문에 평온한 상태이다. 
깨달음이란… 삶이 ‘의식에 나타나고 드러난’ 측면인 이 세상에서 삶과 하나 될 뿐 아니라 우리네 가장 심원한 자아이며 ‘드러나지 않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은’ 삶과도 하나 되는 상태이다. 한마디로, <존재>와 하나가 됨에 깨달음이 있다. 
깨달음이란… 내 안팎으로 끊임없는 갈등이며 고통의 종식일 뿐 아니라, 또한 자기도 모르게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더 이상 노예처럼 얽매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야말로 얼마나 크나큰 해방이란 말인가! 

 

자기 마인드를 자신이라 여길 때… 개념이나 꼬리표, 형상, 단어, 판단, 정의라는 이름의 흐릿한 차단막이 생기고, 그래서 진정한 관계가 다 차단된다!

마인드와 동일시할 때… 나와 나 자신 사이에, 나와 내 동료들 사이에, 나와 자연 사이에, 나와 신(神) 사이에 이 차단막이 드리우고, 이 차단막 때문에 이른바 분리 망상이 생긴다!!

즉, ‘내가 있고 또 나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게 되니… 물질적인 외양과 개개의 형태들 기저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과 하나라는 사실 말이다. ‘잊는다’는 것은 이 일체감을 더 이상 자명한 실체로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과 하나임을 진실이라 믿을 수는 있지만, 그게 과연 진실인지는 알지 못한다. 

믿음이 위안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믿음에 얽매이지 않으며,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믿음이다. 

 

생각하는 과정은 병이 되었다. 질병은 상황의 균형이 깨질 때 생긴다. 이를테면, 신체 세포의 분열과 증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 과정이 신체 전반과 조율되지 않은 채 계속된다면 세포들이 급증하면서 병이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인드는 (머리, 지력, 마음은)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더없이 훌륭한 도구이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아주 파괴적인 도구가 된다.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마인드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대개 그걸 아예 이용하지 않아. 그 대신 마인드가 우리를 이용한다. 바로 이게 병이다. 우리는 자기 마인드가 곧 ‘나 자신’이라고 믿는다. 이건 망상이야. 이 도구가 우리를 점령했다.

 

- 그 말에 난 썩 동의하지 않아. 대다수 사람들처럼 나도 목적 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면서 내 마인드를 이용한다. 늘 그렇다. 

 

크로스워드 퍼즐을 푼다거나 원자탄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마인드를 이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개가 뼈다귀 핥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마인드는 어떤 문제에 매달리기를 좋아한다. 이 때문에 마인드는 십자말풀이를 하고 원자탄을 만드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다. 

이런 질문을 하나 해 보자. 

당신은 원할 때면 언제나 자기 마인드에서 벗어날 수 있나? 

마인드 ‘끄는’ 단추를 발견했나?

 

- 흠, 생각하기를 완전히 멈춘다는 뜻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아주 잠깐이면 몰라도. 

 

그렇다면 그건 마인드가 당신을 이용한다는 뜻이야.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했고, 그래서 마인드의 노예가 됐다는 것도 모른다. 이건 우리가 자기도 모르게 뭔가에 홀리고 난 뒤, 우리를 홀린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자유는… 우리를 점유하고 있는 실체인 ‘생각꾼’이 본연의 우리가 아님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이걸 알 때 그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생각꾼’을 지켜보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이 활성화된다. 

 

그러면 생각 너머에 무한한 지혜가 (혜심/慧心이) 있으며, 생각은 이 지혜의 미미한 일부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아름다움, 사랑, 창의, 기쁨, 내면의 평화 등 정말 중요한 것은 전부 마인드 너머에서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된다. 비로소 우리는 깨어나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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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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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 마음은 당신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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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환생했다는 징후 1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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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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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순간의 힘  

 

일상에서 깨달음 얻기

 

Eckhart Tolle 지음

 

김성호 옮김

 

마인드 너머. 행성, 장미, 어린 왕자

 

차 례

 

옮긴이의 말

머리말

 

1장. 당신과 당신 마인드는 같은 것이 아니야 

 

깨달음에 가장 큰 장애물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깨달음이란 자신의 생각 위로 올라서는 것 

감정은 마인드에 대한 몸의 반응 

 

2장. 깨어 있는 의식: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현재에서 고통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과거의 아픔: 고통의 몸체 녹이기 

 고통의 몸체와 동일시하려는 에고 

두려움의 근본 원인 

<에고>가 완전함을 추구하는 방식

 

3장. <지금> 순간에 뿌리내리기 

 

자신을 마인드에서 찾지 않기

시간이란 망상을 떨치기

<지금> 순간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어

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기

심리적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심리적 시간의 광기 

부정성과 고통의 뿌리는 시간 속에 들어 있어 

당신의 생활 여건에서 삶을 찾기

문제란 전부 마인드의 망상이야

의식 진화에서 급격한 도약 

존재한다는 기쁨 

 

4장. <지금> 순간을 회피하려는 마인드의 술책 

 

<지금> 순간의 상실이 주된 망상이야

평범한 무자각과 심각한 무자각 

“그들은 뭘 추구하는 거야?” 

평범한 무자각에서 벗어나기 

불만과 불행에서 해방되기 

<지금> 어디에 있든, 거기에 온전히 있으라

인생 여정의 내적인 목적 

과거는 당신의 현존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5장. 현존하는 상태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거야

‘기다림’의 심원한 의미 

아름다움은 당신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순수 의식의 구현

그리스도: 당신의 신성한 현존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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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내면의 몸체 

 

<존재>란 당신의 가장 깊은 본질 

단어와 말 너머를 내다보기

자신의 보이지 않는 불멸의 실체를 찾기 

내면의 몸체와 연결하는 방법 

몸을 통한 변용

몸에 대한 수훈(垂訓)

내면에 깊이 뿌리 내리기

몸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용인하기 

<드러나지 않은 세계>와 연결 

노화 과정의 완화 

면역체계 강화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이동하기 

마인드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경청 능력 

 

7장. <드러나지 않은 세계>로 들어서는 들머리 

 

몸 깊숙이 침잠하기 

기(氣) 에너지의 원천 

꿈꾸지 않는 수면 

그 밖의 여러 들머리 

고요 

공간 

공간과 시간의 본래 속성 

의식적인 죽음 

 

8장. 깨달음 얻은 대인관계 

 

어디에 있든 <지금> 순간에 들어서기 

애증 관계 

파멸적인 의존성과 온전함의 추구 

의존 관계에서 깨달음 얻은 관계로 전환하기 

영적 실천으로서 상호관계 

왜 여성들이 깨달음에 더 가까이 있나

여성들의 집단적 아픔덩어리 해소하기 

자신과의 관계를 거부하기 

 

9장. 행불행 너머에 있는 평온 

 

좋고 나쁨 너머에 있는 최고선 

당신의 고달픈 인생 드라마를 끝내기 

삶의 비영속성과 순환

부정성을 활용하고 극복하기 

동정심의 본질

다른 질서의 현실을 향하여 

 

10장. 승복의 의미 

 

<지금> 순간 받아들이기 

마인드 에너지에서 영적 에너지로 승화 

대인관계에서 승복하기 

질병을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재앙이 닥칠 때

고통을 평온으로 바꾸기 

십자가의 길 

선택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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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행복에 이르는 문

마인드는 지금 순간을 두려워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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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마인드의 위험한 술책

4단계. 의식을 몸에 연결하여 '존재'에 뿌리 내리기 17

5단계. 내면의 목격자가 되기 22

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7단계. 고통의 몸체 다스리기 32

8단계. 승복이라는 의미 37

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42

10단계.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들과도... 47

깨달음 추구하는 사람들

(6) 고통의 몸체 녹여 없애기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1)

신언서판에 대해

(5) 깨어 있는 의식 - 고통 탈출

명상, 호흡 관찰

'나'를 찾기 - 분리, 동일시

내 안에 있는 보물

내면의 빛

신, 우주, 인간, 목소리

영적 진동을 키우는 방법 21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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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 추구하는 이들의 오해 5가지  

 

 

깨어 있는 의식과 자아 각성을 추구하고, 

나아가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오해가 (혹은 착각이) 몇 가지 있다.

 

깨달음 얻고자 명상에 잠긴 이들

 

1. 자각과 깨달음을… 자신의 바깥에서, 산속이나 광야에 머물거나 기도원 등지에 틀어박혀서 어떤 경전 등 외부 요인들을 이용하여, 찾으려는 열성 (X)

 

깨달음의 원천은 항상 우리네 <나> 안에 있다. 

우리의 존재가 (실재, 현존이) 바로 깨달음의 근원이다. 외부 조건은 죄다 한낱 조건일 뿐이지 원천이 못 된다. 

외부의 어떤 환경이나 상황을 통해 자아각성과 깨달음의 토대를 든든히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필요에서 더 나아가… 일정한 의식과 상황과 사람들이 끊임없이 필요하다고 당신에게 지시하는 숭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금물이다. 

 

2. 깨달음을… 도달해야 하는 현상이나 습득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X)

 

우리가 도달하는 장소나 자리는 전부… 조만간 우리가 거기서 떠나거나 아니면 그 자체가 사라지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갖고자 애쓰는 대상은 무엇이든… 조만간 우리의 관심을 잃거나 그 자체로 더 이상 흥미로운 것이 못 된다. 

 

자각은 장소나 대상이나 현상 따위가 아니다. 

자각을 (나아가서 깨달음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하자면… 늘 있어 왔으며, 거기에 이르려 하는 누구나 나름의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는 상태라 할 것이다. 

 

3. 누구한테나 적합하며 보편적인 깨달음 방법을 찾으려 드는 것 (X) 

 

우리네 삶은 다 제각각 독특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살려고 하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얻기란 불가하다. 

누군가와 비슷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본연의 자신으로 있으면서, 거기서 유현한 의미를 찾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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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각이나 깨달음을 명료한 논리적 용어로 설명하려 드는 것 (X)

 

삶이 무엇인지 알기에 어떤 묘사나 설명으로는 불충분하며, 살아 봐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언어로는 절대로 다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한테 벌어지는 모든 일을 정의하려 들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 한다. 왜냐하면 일일이 정의하려 들다 보면 우리 스스로 조만간 궁지로 내몰릴 테니까. 

 

5.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이들과 자기 자신에게 입증하려 드는 것 (X)

 

자각은 그냥 자각인 것이다. 입증되는 것도 아니며, 부인되는 것도 아니다. 

자아 각성이나 깨달음은 우리의 존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본래 내재된 상태를… 어떻게든 구별하거나 강조하거나 확인하려 들 필요가 없다.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나머지는 다 저절로 이뤄질 것이다. 

P. S. 
어떤 가르침도 당신 내면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절대 믿지 말라. 
그 언급 하나하나를 자신의 생생한 체험으로 검증하면서 나름의 길을 가꾸라. 
지금 이것을 포함하여 그 누구의 조언도 따르지 말라.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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