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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

  9장. 우리 삶에서 

 단어들이 차지하는 역할  

 

인간의 삶에서 단어의 역할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정보 채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의 감각적 흐름에서 특정 대상들을 뇌가 구별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 마인드가 현실의 모델을 만든다는 것을 우린 이미 살펴봤다. 

뇌의 여러 감각 정보 처리 센터. 운동, 촉각, 시각, 청각, 말,균형

 

이밖에, 우리 삶이 대부분 펼쳐지는 추상적 현실이 (세계가, 실재가) 언어 덕분에 만들어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의 말을 구성하는 단어와 용어들이다. 우리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데 하도 익숙해진 바람에, 단어가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됐다.

이제는 단어들이 문자 그대로 우리의 현실을 이루고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편이 됐다. 언어 자체와 언어 구조가 우리네 주관적 실재의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식에서 큰 오류가 하나 벌어졌으니, 우리가 단어를 실제 대상과 혼동하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살펴본다.

 

단어들의 의미는 어떻게 형성되나  

 

모든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다. 그 단어에 부합하는 이미지 세트가 그 단어의 의미이다. 

‘공’이란 단어를 예로 들자. 만약, 아이가 어려서부터 축구공들만 보았으며, 공은 둥글고 발로 차면서 놀 수 있다고 어른들이 말하고 공을 갖고 노는 방법을 보여주었다면, 어린애는 ‘공’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둥글며’, ‘갖고 놀 수 있다’는 이미지와 함께 공을 차고 놀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둥근 축구공
아이들이 축구를 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공’이란 단어에 대한 이해와 개념이 굳어지는데,

그때 또 이런 것을 본다. 

럭비공

그리고 “이것도 공인데, 미식축구에서는 이런 공을 쓴단다” 하는 얘기를 듣는다. 아이가 처음엔 당황할지 모른다. 공은 둥근 모양이라고 확실히 알고 있는데 이건 고구마처럼 길쭉하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아이의 마인드는 이것도 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고, 이때 아이의 인식에서 ‘공’이란 단어의 의미가 조금 바뀌게 된다. 

이제 이 개념의 의미가 넓어져서 둥근 형태의 공만이 아니라 고구마처럼 생긴 공도 포함된다. 게다가 저런 공으로 미식축구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사람이 겪는 경험을 통해서 단어들의 의미가 형성된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사내애가 둘 있다. 하나는 동그란 모양의 공만 본 한국 소년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마 모양의 공만 본 미국 소년. 둘이 만나서 공 모양이 어떤지를 두고 다투기 시작한다. 하나는 공이란 다 둥글다고 열변을 토하고, 다른 하나는 공은 다 고구마처럼 생겼다고 입에 게거품을 문다. 

둘 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면서, 아니라면 손가락에 장을 지져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은, 둘 다 옳다. 둘 다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옳다. 다만 두 사내애는 우리네 각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형성된 주관적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또한 ‘공’이란 사람의 경험을 가리키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당신의 경험을 그 사람도 맛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 공 같은 경우 문제는 아주 간단히 해결된다. 서로 상대에게 자신의 공을 내보이면서 이것이 ‘공’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공에 대한 경험을 두 소년이 금방 서로 나누게 되고, 언쟁이고 자시고 더 이상 따질 것도 없을 것이다. 

 

보았다시피,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 하나는 1) 사람의 경험이다. 사람이 어떤 경험을 겪는다. “그 경험은 무엇무엇이라 불려” 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말한다. 그러면 이 명칭을 그 사람은 자기가 겪은 경험과 연관 지을 것이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이 또 있는데, 바로 2) 그 단어를 정의하는 것이다. 

단어의 정의란… 그 단어의 의미를 다른 단어들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바로 앞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정의에 대한 예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단어의 정의는 단어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다음 예를 보자. 

한국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 따위로 나타낸 종이를 겹쳐서 한데 꿰맨 물건
러시아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인쇄물의 하나로서, 용량이 48쪽 넘고 통상 하드커버로 제작되며, 텍스트 정보와 그래픽 정보를 담은 종이들을 한데 묶은 비정기적 출판물.

 

어떤 정의든 상관없다. 만약 당신이 책이란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저런 정의로써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한 권이라도 봤다면, 이 정의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다. 안 그러면, 저런 문장들로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단어를 정의할 때는 그 의미를 생생히 보여주는 예를 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례는 어떤 단어의 의미를 실제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생생하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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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아마존강 유역에 ‘피라하’란 부족이 있다. 그들 언어는 아주 독특하다. 그들 말에는 ‘어제’, ‘내일’, ‘엄마’, ‘아빠’, ‘전부’, ‘일부’, ‘나의’ 같은 개념이 없다. (‘부모’라는 단어는 있다.) 한데 이런 개념이 없이도 그들은 아주 잘 산다. 그들의 세상 모델에는 시간, 소유, 재산, 분할이란 개념이 없다. 이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한데,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려면 그들 속에서 살아볼 필요가 있다. 그 문화에서 태어나면 더 좋고. 

어쨌든, ‘내일’이나 ‘부분/몫’ 같은 기본적 단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다시금 입증한다. 즉, 우리가 익숙하게 쓰면서 그 이면에 실제로 뭔가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아주 많은 단어가 사실은 실재의 (현실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네 언어와 문화의 답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피라하 부족의 언어와 달리 우리네 언어에는 그런 용어들이 있고, 이것이 이 용어들을 토대로 하는, 세상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우리한테 일관되게 만든다. 게다가 우리네 언어에는 특별한 단어와 개념이 여럿 있어서, 이것이 우리 세계관에 아주 강하게 작용하여 우리의 주관적 세계를 만들고 체계화한다. 

 

이는 우리 언어의 주요어, 키워드들이다. 이 핵심 단어들이 우리 경험의 구조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있다’, ‘…이다’, ‘존재하다’, ‘시간’, ‘미래’, ‘현재’, ‘과거’, ‘공간’, ‘나’, ‘…을 하다’, ‘대상’, ‘물건’, ‘원인’, ‘결과’, ‘나의’, ‘가지다’, ‘소유하다’, ‘속하다’, ‘과정’ 등등. 

 

“이건 내 전화기야” 하고 말할 때, 나와 이 전화기를 연결하는 특별한 뭔가가 세상에 있나? 전화기가 나한테 귀속됨이 목전의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건 아예 없다. 한데 우리는 그런 귀속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의’ 전화기가 망가지면 아주 속상할 정도로 믿는다. 피라한 부족에겐 ‘나의’라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둘러싼 문제도 없다. 한데 우리는 이웃보다 더 많은 사유재산을 차지하려고 열 올리며 자기 삶을 쏟아붓는다. 

 

이 키워드들이 우리 언어의 구조를 어떻게 만드나? 몇 가지 예를 들자. 

- 시간 개념이 언어에 아주 깊이 침투해서, 그 언어의 모든 동사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다. 예를 들면… 갔다, 간다, 갈 것이다. 

- 뭔가를 소유한다는 생각 또한 우리네 언어에 잘 파고들었다. “내 집 마당에 밤꽃이 피었어.” 

- ‘있다’와 ‘존재하다’ 같은 단어는 뭔가가 있거나 없다는 생각을 우리가 품게 한다. 예를 들어, “화성에는 생명체가 있다.” 

- ‘…이다’라는 단어는 비일비재하게 쓰인다. “나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은 진보적이야”, “입만 열면 불평이다” 등.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뒤에서 따로 살펴보겠다. 그 단어들에 들어있는 착각이나 환상의 속성을 알게 되면, 당신의 세계관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단어들의 작위성

 

단어의 다른 측면 가운데 작위성을 살펴보자. 단어와 용어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언어에 도입된다. 주로 편리함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에 관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할 때, 그는 자신의 어휘에 있는 단어들을 쓰려고 한다. 어휘가 충분치 못하다면, 새로운 단어와 용어를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쉽게 하는 모든 장치를 가리키기 위해 ‘운송 수단’이란 용어가 도입됐다. 자연에는 ‘운송 수단’ 같은 물체나 대상이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언어에 도입됐으며,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특정 장치를 가리키는 데 쓸 수 있다.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장치’라는 어구를 두 번 쓴 점에 주목하라. 이 기다란 표현 대신 이제 우리는 ‘운송 수단’이란 용어를 간편하게 쓸 수 있다. 게다가 이 표현을 다른 용어들과 결합하여 여러 문장에서 아주 잘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송 수단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도시에서 교외로 실어 날랐다.” 

여기에는 어떤 운송 수단을 이용했는지, 얼마나 되는 사람들인지, 어떤 도시인지가 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 과정의 어떤 장면을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기까지 한다. 

 

또 다른 예로 ‘질병’이란 단어를 보자. 질병이란 단어는 대개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아주 다양한 불쾌한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질병’이란 단어 하나로 언급함으로써 우리는 몸에서 느끼는 갖가지 징후를 사실상 단순화하고 마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질병의 증상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간과하거나 과대평가하기 쉽다. 

 

다시 강조하건대, ‘운송 수단’이나 ‘질병’ 같은 것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사람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을 가리키는 편리한 용어일 뿐이다. 즉, 개인적 경험의 어떤 부분을, 대상이나 과정의 어떤 집합을, 이 용어로 정의하는 것이다.

 

곧, 단어란… 사람의 어떤 경험을 가리키며 철자들로 이뤄지고 어떻게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한데 단어가 그냥 뭔가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면 난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부를 수 있다. ‘램프’라는 단어를 예로 든다면, 그 단어로써 보통사람은 빛을 내며 대개 유리로 둘러싸인 어떤 물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내가 내 언어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램프’가 아니라 이를테면 ‘팡켄’이라 부르고, 그래서 예를 들어 “팡켄 불빛이 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팡켄’이라는 단어에 내가 집어넣은 의미를 당신은 집어넣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우리가 대화하면서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용어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이것이 그냥 중요한 게 아니라 때론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마인드’라는 단어를 이용하면서 우리는 그 단어에 ‘들어오는 감각 정보의 흐름으로 현실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뇌의 능력’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데 많은 사람이 ‘마인드’라는 단어로 전혀 다른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뜻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이 구구할 수 있는) 단어들이 우리 언어에 아주 많다. 예를 들면, ‘자유’, ‘정의’, ‘평화’, ‘사랑’, ‘가족’, ‘행복’ 등이 그렇지 않은가? 

 

이런저런 단어에 사람마다 여러 의미를 집어넣는다는 점을 알아차린다면, 이런 말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즉, “당신은 마인드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마인드는 생각이자 정보 처리 능력이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마인드는 주로 마음을 뜻하지요.” 따라서 어떤 주제를 두고 대화하기 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우리 대화에서는 다들 쓰는 단순한 용어들을 사용하며, 이 용어들로 널리 통용되는 의미에 최대한 가까운 의미를 담으려고 한다. 어떤 경우에든 각 용어에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필요하다면 정의를 덧붙인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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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08. 마인드가 

 실재의 (현실의) 모델을 만들다 (1)  

 

우리 뇌의 작업을 통해 주관적 실재가 생김을 알아봤다. 

주관적 실재를 만들기 위해 뇌가 하는 작업을 우리는 앞으로 마인드의 작업이라 부르겠다. 마인드는 지각 기관과 기억에서 나오는 정보를 기반으로 주관적 실재를 만드는 뇌의 특별한 역량이다. 즉, 우리가 지금 외적 실재와 내적 실재에서 인식하는 것은 모두 마인드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앞에서 살펴봤다. 이제 우리는 실재의 모델을 만드는 방법으로 이 지식을 일반화할 것이다. 

 

객관적 실재는 직접적인 지식으로 지각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아냈다. 하지만 최소한 생존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객관적 현실에) 어떻게든 적응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해, 객관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면, 인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후손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야수와 자연재해 등 위험에서 자신을 지킬 수도 없었을 테니까. 

따라서 자연은 눈, 귀, 코 등 현실 지각 기관을 우리에게 부여했다. 하지만 외부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 정보를 가공하여 의식에 제시함으로써 사람이 외부세계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연이 뇌를 만든 것이다. 시각과 청각, 운동감각의 이미지들 형태로 실재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은 뇌 덕분이다. 이 이미지들이 의식에 나타나며, 사람은 그것들을 인식하면서 세상에서 방향을 잡기 시작한다. 

 

이미 얘기한 대로, 뇌는 인간 의식에서 현실의 모델을 꽤 적절하게 만든다. 이건 당연한데, 그 모델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실재) 자체가 아니라 현실(실재)의 모델일 뿐이라는 점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모델이 하도 현실적으로 보여서, 우리는 모델을 진짜 현실과 혼동한다. 이것도 자연에 의해 구상된 것이다. 

이 모델은 세상에 존재한다는 환상이 완전하게끔 작동해야 하며, 그때 세상 속에서 방향 잡는 것이 가장 완벽할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각자가 살고 있는 주관적 실재는 (현실은) 세상에 적응하고 거기서 생존하기 위해 마인드가 만들어 낸 현실 모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성인의 주관적 실재는 당면한 실재와 추상적 실재의 두 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모델 층은 동시에 작용한다. 물론, 원한다면 우리가 자신의 의식에서 각 층을 별도로 구별할 수도 있긴 하다. 지각의 여러 수준을 탐구할 때 이것을 우린 이미 해 보았다. 

 

만약 주변을 둘러보고 지금 당장 일어나는 것에 주의를 돌린다면, 당신은 눈앞에 당장 펼쳐지는 실재(현실)의 층을 구별할 것이다. 이건 마인드가 실재(현실)에서 만들어 내는 모델의 첫 번째 수준이다. 당면한 현실 수준에서 세상 모델을 만드는 이 과정은 순간적으로 저절로 일어난다. 이를 확인하려면, 당신이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 흐름에서 어떤 대상을 식별하지 않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간단히 말해, 당신이 어딘가를 바라볼 때,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을 보는 게 아니라 어떤 대상을 자동으로 본다. 이 그림을 한번 보시라.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 자동으로 눈에 들어오는 대상.

 

이것이 사실상 흰 무엇 위에 검은 뭔가가 있는 것일 뿐이지만, 마인드는 자동으로 대상을 식별한다. 여기서는 자동으로 식별되는 대상이 두 개나 된다. 키스하는 커플이 보이지 않나? 이 그림에서 그저 희끗희끗한 얼룩이나 서툰 그림이 아니라 입맞춤하는 두 얼굴과 끌어안은 두 손을 보았다면, 이제 이 형상들을 떨쳐내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 마인드가 당신 의식에서 그 이미지들을 자동으로 만들어 낼 테니까 말이다. 

 

주변 현실을 매 순간 그냥 바라보기만 할 때도 같은 현상이 생긴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여러 감각 정보에서 마인드가 어떤 대상을 만드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하다. 이건 당신이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일어난다. 

 

하지만 마인드가 금방 알아보지 못하는 대상이 시야에 들어올 때는, 마인드가 이 대상에 적절하게 아는 대상을 찾을 때까지 당신의 주의가 그것에 확 쏠린다. 누구한테나 이런 경우가 있었을 텐데, 즉, 모든 게 평소처럼 잘 돌아가다가 눈길이 문득 알지 못할 것에 쏠린다. 그러면 그게 무엇인지 감 잡지 못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다리가 셋인 여자? 눈의 착각

 

이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보기 힘들지 않았나? 다리가 세 개인 여자? 그런 걸 우리 마인드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본 다음에 (이건 당연해, 이미지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항아리를 보고, 이제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다 풀렸다. 실재의 (현실의) 그림을 인식한 것이다. 앞으로 이 그림을 또 보는 경우에는 항아리를 금방 알아볼 것이다

 

그러면 이건 무엇인가?

엉덩이처럼 생긴 버섯

 

우리의 마인드가 그것에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을 금방 구별하고 강조하는 방식이 재미있지 않나? 

그런 예를 몇 가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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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가운데 있는 점을 15초 동안 들여다보라. 

 

그림에 색깔이 있나? 중앙을 보지 말고 확인해 보라. 

 

이번에는 이 그림의 중앙을 잠시 보라. 어떤 색깔의 점이 회전하나? 

원을 따라 점이 있나? 중앙을 보지 말고 확인해 보라. 

 

 

이제 다음에 보는 것은 아마도 착각이나 착시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일 것이다.

 

바둑판 모양의 여러 칸에서 두 칸의 색깔은 서로 다른가? 같은가?

(author: Edward H. Adelson) 

 

А와 В 칸의 색깔이 같다고 생각하나? 다르다고 여기나? 확인해 보라. 

종이에서 1센티 원을 오려서 차례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칸에 가져다 대 보라.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판의 다른 부분은 보이지 않고 저 특정 칸의 색깔만 보이게 하라. 안 그러면 아무것도 안 보일 것이다. 

두 칸의 색깔은 아주 똑같다! 우리 마인드가 하나는 흰색이고 다른 것은 회색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우리의 마인드는 우리의 경험에 따라 우리가 현실을 (실재를) 최종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지금까지 다룬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을 다시 반복한다. 당신이 바로 지금 주변에서 관찰하는 목전의 현실은 (실재는) 세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마인드가 작업한 결과이다. 마인드는 여러 대상과 물체를 우리 의식에서 바로바로 만들어 낸다.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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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마인드의 작업 >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 ... ) 

  추론의 수준  

 

단어들이 나타난 덕분에, 거기에 담긴 의미를 잘 다룰 수 있게 됐다. 

문장이나 문구가 그렇게 생겨났다. 

예를 들어, “엄마가 창틀을 닦았어” 같은 문구는 서로 연결된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 ‘엄마’, ‘창틀’, ‘닦다’란 단어 각각에 나름의 의미가 있고, 이 의미가 각 개인에게 적절한 이미지 형태로 제시된다

게다가 전체 문구도 당신 마인드에서 어떤 (정적이거나 동적인) 장면으로 역시 반영될 것이다. 

 

문구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실재(현실, 세계)를 지각하는 다음 단계인 추론 수준으로 이동한다. 

이 수준에서 우리는 단어들로 이뤄진 복잡한 의미 구조를 만든다. 문구의 각 단어는 나름의 독특한 뜻을 지닌다. 이 단어들이 일정한 순서로 배열돼 만들어진 문구는 각 단어의 의미를 결합하는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창밖에 비가 내린다”는 문구를 보면 당신 의식에서 창밖에 내리는 비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이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특정 단어들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사람마다 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는 문구를 접할 때 당신 마인드에서 무엇이 생기는지 주의를 기울이라. 그리고 이 사진과 비교해 보라. 

 

비가 내리는 거리를 자동차 창문 너머로 내다보다

 

당신 마인드에는 아마 다른 그림이 나타났을 텐데... 왜냐하면, 어떤 문구를 접할 때 어떤 사람에게 생기는 이미지와 의미는 그 사람이 그 문구의 단어들에 집어넣는 의미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생기니까 그렇다. 

 

여러 문구 덕분에 우리는 마인드에서 아주 복잡한 의미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텍스트를 읽을 때, 당신 마인드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문구와 전체 텍스트의 의미가 한꺼번에 형성될 것이다. 즉, 당신 눈은 지금 이 철자들을 보고 있고, 이때 당신 마인드의 내부화면에서는 이 텍스트의 의미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 주목하라. 

 

이런 텍스트가 있다고 치자. 

Bueno, no es una maravilla de casa, pero se puede vivir bien. Tiene dos habitaciones y una sala espaciosa que usamos como un dormitorio más. Qué vamos a hacer? Somos cuatro personas en mi familia. Tiene también una cocina bastante grande, lo que está muy bien. Y por último un cuarto de baño y un balcón. Como ven ustedes, es una casa normal y corriente. 

놀랐나? 이건 에스파냐어이다.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들이 생겼나? 에스파냐어를 모른다면, 생길 수 없다. 왜냐하면, 저 문구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띠지 않으니까. (<07-2 구체적인 대상들을 지각하는 수준>에서 소개한 동영상과 같은 이치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 관한 여러 댓글 가운데 “오랜만에 진짜 악마를 봤다”는 댓글에 수많은 사람이 찬성을 눌렀다. 

이 문장을 접하면서 당신 마인드에서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가 형성되고 당신의 세계 그림이 바뀌지 않았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바뀌지 않았나? 이 문장을 신뢰도 높은 인쇄매체나 방송매체를 통해 읽거나 듣는다면, 이 정보를 (더 확실하게) 믿을 것이다. 

 

추론 수준에서 우리는 당면한 실재(현실, 세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며, 실재를 이제 자기 마인드에서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 텍스트를 (몰입하여) 읽는 동안 당신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하고 신체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대신 당신 마인드에 생성된 그림과 이미지에 빠져 있다. 게다가 마인드에 있는 이 그림들을 지금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이웃집 여자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해 보자. 

“내일 우리 아파트 동의 보일러를 다 수리할 예정이래요. 오늘 503호에서 물이 새서 아래층 몇 가구가 피해를 봤어요. 관리인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배관을 긴급히 손봐야 한다고 했지요.” 

이것이 당신에게 닥친 당신의 실재(현실)이다. 이제 당신의 실재는 자기 마인드에서 방금 상상한 것이다. 그 뒤 30분 동안 당신은 이모저모 생각할 것이다. ‘내일 배관을 손보는 시간에 집에 있어야 하는데, 직장에서 어떻게 일찍 나오지?’ 

 

이건 다 당신 마인드에서 일어난다. 그런 걸 생각하는 동안, 당신은 자신만의 실재를 (현실을), 단어들로 이뤄진 실재를 만든다. 이 실재는 당신 마인드에서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바로 코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 코앞에 이 텍스트가 흰 종이에 검은 철자들로 있고, 엉덩이 아래 의자를 느끼고, 동시에 창밖 거리에서 어떤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이 텍스트에 내가 담은 의미가 아니라 이 단어들로써 내가 가리키는 것에 주의를 돌린다면, 당신은 목전의 구체적인 실재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런 얘기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왜냐하면,
우리는 마인드의 형상들 수준에서, 추론의 수준에서 사는 데 하도 익숙해지다 보니, 구체적으로 지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인드가 우리한테 말하는 것을 실재라 (현실이라) 여기게 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 믿었나? 확인해 봤나? 우리는 권위 있는 사람이나 정보 소스의 말을 (처음엔 부모, 다음엔 교사나 서적 등을) 믿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사실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일 뿐이다.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 이상, 이것은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 이미지들로 지금 우리의 (주관적) 세계가 이뤄져 있다. 바로 그런 세계에서, 마인드의 이미지들 세계에서,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살고 있다. 

 

자, 단어들과 의미들의 세계가 우리한테는 (우리처럼) 합리적인 사람들이 사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인드 작업의 중요성과 지식을 통한 세상 인식의 이점을 축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 우리의 감각기관이 바로 지금 지각하는 목전의 실재와 (현실과) 우리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이걸 구분하는 게 중요한 것이,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결론이 나오기에 그렇다. 

이제 마인드가 만든 추상적 실재(현실)에서 사는 이점에 눈길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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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눈앞의 당면한 현실에서만 계속 산다면 (어린애들은 그렇게 한다), 우리의 세계가 크게 제한될 것이다. 당신의 세계가 당신이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만 들어있다고 상상해 보라. 상당히 따분하다. 눈앞의 현실이라는 범주에 국한되어 우리 세계가 아주 작아질 것이다. 

언어가 나타날 때, 우리의 주관적 세계는 세상에 대한 지식의 성장과 함께 아주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우리 세계는 우리가 그것에 대한 지식만큼 점차 커질 것이다. 여러 국가와 행성, 우주, 원자, 분자, 경제, 정치, 그 외에 아주 많은 것이 우리 세계 안에 나타난다. 이제 당신의 세계는 온 우주이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주다. 

 

단어들과 언어를 활용할 때 또 다른 이점은, 그것들이 추상적이긴 해도 객관적 실재를 (현실을) 웬만큼은 반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대중매체를 통해 미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건 아직 당신에게 정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갈 수 있다. (한데, 비행기에 대해서도 똑똑한 사람들한테 들었기 때문에 이 이동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예전엔 읽기만 하던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단어들 덕분에, 우리는 언젠가 다른 사람이 획득한 정보를 간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지식을 그가 언어로써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았다면, 이건 그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인류 존재 내내 수많은 사람이 거둔 성취와 달성을 언어 형태로 간직하면서, 우리는 1천 년 전 사람들이 살던 세상과 아주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1천 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우리는 역사 지식 덕분에 안다. 이 지식을 우리는 그것이 정말 사실인 것처럼 이용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 어쩌면 우리 모두 프리메이슨에게 세뇌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관적 세계의 일반 모델  

 

그렇게, 우리에겐 실재를 (현실을) 지각하는 여러 수준의 형태로 주관적 세계의 모델이 나타났다. 전체적인 개관을 한 번 더 제시한다. 

주관적 세계의 일반 모델. 추론 수준, 단어와 명칭 수준, 구체적 대상 수준, 감각 정보의 수준, 추상적 실재, 당면한 실재

유의할 점 – 언어를 쓰는 성인의 경우 이 수준이 전부 동시에 존재하며, 더 높은 수준은 더 낮은 수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 예를 들어, 추론 수준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서 단어들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또, 물질과 마찬가지로, 마인드로 하여금 구체적인 대상을 만들게 하는 감각 정보가 있어야만 의식에 구체적인 대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실재를 지각하는 더 높은 수준들은 사람이 점차 발달하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갓난애한테 추론 수준이란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갓난애는 학습과 마인드 발달의 단계를 많이 거쳐야 한다. 

1. 처음에 갓난애한테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시각, 청각, 운동감각 인상 등의 흐름으로 감각 정보만 나타난다. 
2. 다음에 객관적 세계에 머무는 경험을 쌓으면서, 아이의 마인드가 이 모든 감각적 어수선함 속에서 구체적인 대상들을 식별하기 시작한다. 
3. 그 이후 부모한테서 이런저런 단어를 들으면서 아이는 그 단어들을 자신의 주관적 세계의 특정 대상들과 연결하는 법을 배운다. 단어와 명칭의 수준이 그렇게 나타난다. 
4. 단어들을 문구에 배열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아이는 자기 마인드에서 이미지와 의미의 형태로 가상현실을 만든다. 이것이 추론의 수준이다. 

 

현시점에서 당신은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서 이 수준들 가운데 어떤 것이든 떼어낼 수 있다. 아, 물론, 객관적 실재의 수준은 제외하고 그렇다. 즉, 이 텍스트를 당신 마인드에 나타나는, 의미 정보의 집합으로 지금 당장 인식한다. 그러면서 이건 다 그저 단어들일 뿐이며, 당신이 읽은 각 단어 속에는 거기에 당신이 집어넣는 형상과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 모든 이미지가 마인드에서, 내면세계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 이미지들을 당신 이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실제로 지금 당신 앞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이 종이쪽과 이 철자들, 당신이 바로 지금 듣는 이 소리, 당신 손의 느낌 같은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즐기기만 할 수 있다. 이 여러 느낌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느낌들이 그냥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당연히 어려울 테지만… 당신 의식에 있는 이 구체적인 대상들 이면에서, 시각 채널의 색깔 있는 점들과 청각 채널의 갖가지 소리와 운동감각 채널의 감촉 등의 형태로 감각 정보의 흐름을 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7장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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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마인드의 작업

7장.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계속>)

 

  구체적인 대상들의 수준  

 

 

갓난애와 달리 우리는 성숙하고 경험 있는 사람으로서 시각과 청각 채널에서 어수선함이나 잡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과 물체를 보고 듣는다. 

대체로 모든 채널에서 그렇다. 

우리의 감각 정보는 체계적이고 구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어떤 표상으로 본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보자. 

 

사람이 태어난 직후 처음 접하는 대상은 (산파를 제외하고) 엄마이다. 엄마는 갓난애가 처음 보고 듣고 느끼는 대상. 이 대상은 아기의 모든 지각 채널에 나타난다. 이 대상을 아기가 처음에는 자기의식에 들어오는 다른 감각 신호들과 당연히 구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대상이 (엄마가) 아기의 시야와 모든 채널에 아주 자주 들어온다. 아기는 엄마 목소리를 듣고 엄마 체온을 느끼고 엄마한테서 풍기는 냄새를 맡는다. 다른 신호들 속에서 엄마를 별개의 대상으로 서서히 식별하기 시작한다. 

 

이후 더 자라고 외부세계와 더 많이 접촉하면서 아기 의식에 다양한 정보가 더 많이 들어간다. 또 외부세계는 여전히 정돈된 공간이며 어떤 대상들로 이뤄져 있는 까닭에, 예를 들어 장난감이나 주변 다른 사람들, 자기 울음소리 같은 대상들이 아기의 의식에서 점차 개개의 대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대상들을 아기의 마인드가 다양하게 들어오는 감각 정보와 구별하게 된다. 

이것은… 아기가 주변 사람들 움직임을 눈으로 좇아가고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뒤척이고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하는 것 등을 보면 분명해진다. 

 

모든 감각 정보의 흐름에서 어떤 안정되거나 고정적인 대상을 구별하는 능력은 아마도 뇌 기능에 내재돼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세계 자체도 상당히 구조화되어 있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하다. 그래서 세계에 있는 여러 대상과 그것들의 형태와 움직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마음속에서 그려 보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자. 그런데 바깥세상에서 대상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알고리듬은 누구한테든 끊임없이 작동한다. 이런 점을 이제 분명히 알아보자. 

 

이런 그림이 있다. 

색깔 있는 얼룩점들의 집합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세계를 감각 수준에서 지각할 때 나타나는 감각적 어수선함과 비슷하다. 여기에 어떤 시각 정보와 어떤 점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어떤 대상을 식별해 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여기서 우리가 얼룩이나 점 이외에 다른 것을 왜 못 보느냐 하면, 이 점들이 우리가 살면서 익숙하게 관찰해 온 형상을 이루지 않거나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 그림들에서는 어떤 대상을 분별하거나 선택할 수 있다.

색깔 있는 점들이 배열되어 여러 꽃 모양을 이룬다.
흰 구름이 끼어 있는 푸른 하늘
산비탈에 튀어나온 나무 그루터기

 

이 그림이나 사진도 본질에서는 다양한 색깔의 점들이 일정하게 배열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뇌가 이 점들에서 익숙한 이미지를 자동으로 찾아낸다. 꽃, 구름, 하늘, 그루터기

한데, 우리가 꽃과 구름, 그루터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저 그림과 사진에서 그런 대상과 물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 안 그럴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바다, 갈매기, 나무, 파도, 구름, 하늘, 바위 위에 여인 형상

 

여기에도 역시 색깔 띤 점들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지만 살면서 우리가 여러 얼굴을 자주 접한 덕분에 이 그림에서 사람 얼굴을 쉽게 구별한다. 원한다면, 얼굴로 사람의 성별을 가릴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저 그림에 실제로는 얼굴이 없다. 새들과 나무, 물 위의 파도, 서 있는 여인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얼굴을 보고, 우리에겐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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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질문: 그렇다면, 이 그림에 얼굴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대답: 이 그림에 있는 것이라곤 색깔 띤 점들뿐이다. 그림에서 우리가 찾아내는 형상은 모두 우리 뇌가 (혹은, 마인드가) 만든 것이다. (실제로는 얼굴이 없다!) 바로 우리 뇌가 외부세계에서 그런 형상을 종종 관찰해 온 까닭에 이제 그것을 어떤 그림에서든 어떤 순간에든 식별할 수 있다. 

 

시각 채널에서 여러 대상이나 물체를 순간적으로 식별하는, 마인드의 이 능력을 우리는 외부세계에서 방향 잡고 적응하는 데 이용한다. 만약 (아래 그림 같은) 형태가 시야에 들어올 때 마인드가 침대를 금방 식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몇 발짝 안 가서 거기에 부딪칠 것이다. 

침대와 소파 등이 놓인 침실

 

우리는 시각 채널을 살펴봤다.

청각 채널에서는 구체적인 대상들 수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우리가 이미 앞에서 다룬 사례가 있다. 

 

여기 어떤 외국어로 하는 얘기가 있다. 

 

우리 한국인에게 이건 (시각 채널에서 색깔 띤 점들의 집합처럼) 단지 소리의 집합일 뿐이다.

이건 우리한테 왜 한낱 잡소리 모음에 불과할까? 왜냐하면, 이 소리에서 우리가 청각 채널에 익숙한 대상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여기서 아는 단어들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데, 이 언어에 어려서부터 익숙한 러시아인은 이 잡음(?)에서 특정한 단어들을 찾을 뿐 아니라 거기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청각 신호가 우리 한국인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건 한국인들에게 소음이나 잡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단어들이다. 앞의 동영상에 있는 (한국어를 모르는) 러시아인이 이 동영상을 어떻게 인식할지 상상해 보라. 

 

그런 식이다. 모든 것이 바로 그렇게 작동한다. 우리 주변에는 감각적인 소음과 혼란과 어수선함의 연속이요 일색이다. 그러나 그 소음과 어수선함 속에서 우리 뇌가 (마인드가) 아는 대상들을 즉각 식별해 낸다. 

구체적인 대상들 수준에서 주관적인 실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목소리 훈련 안내

지금 살펴본 수준은 구체적인 대상들의 수준이라 불린다. 왜냐고? 왜냐하면, 이 대상을, 혹은 물체를, 우리가 바로 지금 보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특정한 대상이다. 예를 들어, 이 사과가 그렇다. 

사과

 

이것은 구체적이고 특정한 사과이지 그냥 일반적인 ‘사과’가 아니다. 게다가 이 구체적인 대상에는 이 지각 수준에서 아직 이름이 없다. 이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은… 특정 순간에 나머지 모든 정보 속에서 특정 대상을 식별하는 것뿐이다.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자. 태어난 뒤 다른 여러 정보 속에서 엄마를 구별하는 갓난애는 이게 자기 엄마인지 아직 모른다. 갓난애 마인드에는 아직 아무 이름도 없다. 아기는 세상을 어떤 특정 순간에 어떤 대상들의 집합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지각 수준에서 (세계를 구체적인 대상들로 지각하는 수준에서) 세상이 어떻게 지각되는지 우리는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냥 주변을 둘러보기만 하면 된다. 

이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보나? 

당신이 눈길 돌리는 곳에서 무엇을 보나? 

포착하지 못한 세계의 디테일을 마인드에서 끝까지 그리지 말라. 

그냥 앞에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라. 

예를 들어, 지금 이 글을 쓸 때, 나는 내 손과 자판, 모니터, 마우스를 본다. 내 등 뒤에 의자 등받이가 있지만, 지금 내 눈으로 그걸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기억에 따라 세계의 그림을 마저 그린 것은 내 마인드이다. 

 

만약 마인드의 이 작업 순간을 인식하며 마인드가 마저 그리는 것을 죄다 내던진 채, 지금 벌어지는 것에 이름 붙이지 않고 관찰만 한다면, 실재를 지각하는 이 수준에서 - 구체적인 대상들의 수준에서 - 세계가 어떻게 반영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게 될 것이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아이들이 이 수준에서 실재를 지각한다. 
어린애들은 특정 순간에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지각한다. 
선()의 대가들이 ‘지금 여기’의 삶에 관해 설파할 때 바로 이걸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보라, 얼마나 간단한가. 
아이들도 이걸 할 줄 안다. 한데 성인들은 다 잊은 것 같다. 

 

이런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실재를 지각하는 다음 수준을 살펴볼 때 알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수준으로 넘어가자.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가운데 <단어와 명칭의 수준>으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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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마인드의 작업  

 

앞에서 우리는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두 가지 형태의 실재가 있음을 알아보았다. 

객관적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며 인간 마인드로는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주관적 세계는 객관적 실재가 인간 의식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반영’이란 단어는 이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거울이 앞에 있는 대상을 되비치듯이, 우리네 의식은 객관적 세계에 대한 거울과 같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거울이 아니야.

의식이란 객관적 세계를 각 개인의 주관적 세계 형태로 반영하는 ‘거울’이다. 

일그러지고 흐릿한 의식의 거울

게다가 이 의식의 ‘거울’은 일그러지고 흐릿하다. 그래서 거기 있는 객관적 세계는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있는 것을 정확히 옮긴 것일 수가 없는데, 그건 왜냐하면, 주관적 실재가 우리네 불완전한 감각기관들과 뇌와 마인드의 작업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우리 주관적 세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이번 대목에서 알아보자. 


 

  07.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이제 우리는 객관적 세계가 어떤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본다. 이 반영의 여러 수준을 살펴보고, 이 수준 각각이 어떻게 존재하며 작동하는지 생각해 보자. 그 결과 사람들의 주관적 실재의 다단계 모델을 얻고, 이 모델에서 당신은 당신의 주관적 세계와 그 구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델은 폴란드 학자 알프레드 코집스키가 처음 연구했다. 그가 최초로 이것을 인간 경험의 모델로 설명하고 제시했다. 

 

주관적 실재의 구조 모델을 우리는 두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것이다. 1) 이것이 주관적 경험에서 어떻게 제시되는지, 또 2) 이것이 객관적 프로세스에 의해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 이전에, 실재를 (현실을, 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는 여러 수준에 대해 감을 잡도록 도표를 미리 제시한다. 

객관적 실재, 주관적 실재, 추로, 단어와 명칭, 구체적인 물체, 감각 정보, 객관적 실재의 수준, 추상적 실재, 당면한 실재.

 

객관적 실재의 수준 

 

엄밀히 말해 주관적 세계에 해당하지 않는 기초 수준부터 먼저 시작한다.

이건 객관적 실재의 수준이다.

객관적 실재를 앞의 몇몇 장에서 이미 살펴봤기에 더 다루지 않겠다. 단지, 객관적 실재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가 직접 인식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만 다시 상기하자. 이 수준은 그 자체로 저절로 존재하며, 우리가 그것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전부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의식에 반영된 것일 뿐이다. 

 

객관적 수준을 학자들이 어떻게든 연구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의 현재 발전 단계에서 우리한테 객관적 세계는 기본 입자들이 늘 나타나고 사라지는 물리적 진공의 형태로 제시된다.

기본 입자들이 모여 원자를 이룬다.

원자들이 모여서 분자가 된다.

원자와 분자들이 우주 물질을 이룬다. 

기본 입자들이 가득한 물리적 진공 상태

 

우리가 지각하는 은 (기본 입자의 일종인) 광자들의 흐름이거나 전자기장의 파동이다. 

소리는 어떤 물체가 진동할 때 대기 중의 파동으로 나타난다.

맛과 냄새는 이런저런 물질의 분자들로 만들어진다. 

촉각은 사람 피부에 어떤 물체가 물리적으로 닿을 때 생기며, 또 외부 환경의 온도 영향에 의해서도 생긴다. 

 

이 '객관적 실재의 수준'은 인간의 주관적 세계에서 절대 나타나지 않지만, 주관적 세계를 분석하는 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수준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며, 이 영향을 나중에 사람이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의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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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정보의 수준 

 

객관적 세계의 현상이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나? 어떤 영향을 미치나?

그런 영향의 예로서 우리는 두 가지 정보 채널을 살펴보겠다.

시각 채널과 청각 채널을 택하는 것은, 이 둘이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전달하기 때문이다. 

 

시각 채널, 즉, 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앞에서 이 과정은 이미 설명했다. 간략히 반복하면, 빛이 사람 시야의 여러 곳에서 나오는 전자기파 흐름 형태로 눈의 망막으로 들어간다. 망막의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도움으로 빛이 신경 임펄스로 변환되고, 이것이 신경 경로를 따라 사람의 뇌로, 구체적으로는 대뇌피질의 시각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 영역은 뇌 후두부에 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시각 정보는 대뇌피질의 시각 영역에서 처리된다. 

시각적 형상. 빛, 뒤집힌 이미지, 시신경 따라 전달, 뇌에서 재현.

 

이것은 이 과정의 객관적 측면에 관한 것이다. 주관적 수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 

주관적 세계의 관점에서는 시각 채널에서 인식이 일어난다. 즉, 사람이 뭔가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감각 정보) 수준에서 보이는 것에는 어떤 구별된 대상이 없다. 시각적인 어수선함과 혼잡과 혼란함만 있을 뿐이며, 이것에서 나중에 마인드가 (지력이, 뇌가) 구체적인 대상들을 구별해 낼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자.

지금 당신 컴퓨터 화면에 있는 그림을 잡아서 자세히 본다면, 이 그림이 수많은 색깔의 점들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들의 색상이 화면에 분산됨으로써 전체적으로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컴퓨터 화면의 그림을 이루는 수많은 색깔 있는 점들

 

즉, 모니터 화면은 사실상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일 뿐이다.

시각 정보도 감각 수준에서는 대략 그런 식으로 반영되는 것이니,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이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점들마저도 없다. 그저 보이는 뭔가가 있는 것일 뿐이다.

 

짐작하건대, 젖먹이들은 세상을 이 (감각 정보) 수준에서 시각적으로 지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젖먹이들은 아직 외부세계와 색상을 모르고 세계가 여러 물체로 이뤄진다는 사실도 모른다. 세상에 나온 갓난애의 시력이나 시야에는 그저 뭔가를 본다는 인상과 느낌만 있을 뿐이지, 시각 채널에서 물체며 색상, 다른 현상들이 아직 나뉘지 않았다

 

그런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보는 것이 그저 색깔 있는 점이나 얼룩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상상해 보라. 

물체들을 구별하지 말고, 당신의 시야를 색상들의 난무처럼 보기만 하라.

뚜렷한 윤곽의 물체들이 없는 시각적 채널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뚜렷한 윤곽의 물체들이 없는 시각적 채널

 

이 그림엔 물체가 전혀 없다. 그저 색깔 띤 점들만 있을 뿐이다.

만약 이것이 시각 채널에서 흔히 일어나듯이 계속 움직이고 바뀐다면, 그건 대략 갓난애가 세상을 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우리는 색깔과 반점들을 자동으로 분리하고 강조한다는 것에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색깔과 얼룩들을 구별하고 선택하는) 이 작업은 이미 다음 단계의 인식 과정이다. 

 

청각 채널을, 듣기를 간략히 살펴보자.

감각 정보 수준에서 청각 정보의 개념은 시각 정보의 경우와 같다.

즉, 이건 어떤 소리 내는 물체를 구별함 없이 들리는 것 전부이다. 

 

청각 채널의 경우 감각 수준은 어수선한 소리일 뿐이다, 즉, 이런저런 소리가 번갈아 나는 것이다.

말소리며 목소리, 알고 있는 현상이나 물체의 소리 등을 식별하지 않으면서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에 귀 기울여 본다면, 이건 단지 어떤 소리의 흐름에 불과할 것이다. 이 소리의 흐름을 앞에 나온 그림의 반점들과 비슷하게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감각 수준에서 청각 정보는 그저 귀에 들어오는 것일 뿐이다. 

 

물론, 시각 채널에서든 청각 채널에서든 우리가 이런저런 물체를 구별하지 않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절로 구별된다. 하지만 빗소리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사람 목소리를 전혀 들어보지 못한 갓난애는, 비록 귀가 듣고 있다고는 해도, 이 여러 소리를 자신의 청각 채널에서 개개의 대상으로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갓난애한테 소음일 것다. 

(<구체적인 대상들의 수준>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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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 책 표지

 


 

3편

 

3-1

 

  우르뱅 그랑디에가 승리와 패배와 또 위태로운 승리를 반복하면서 끝없이 싸움을 벌이는 동안 그보다 더 젊은 동시대인도 나름대로 투쟁을 벌였는데, 그건 비교할 수 없이 더 높은 상을 얻기 위한 싸움이었다. 

  보르도 칼리지에서 공부하면서 장 조셉 수렝[각주:1]은 신학생이나 예수회 수련수사들 가운데서 용모 준수한 젊은 성직자를 자주 보고, 그의 근면과 재능을 예로 드는 교사들의 말을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1617년 그랑디에가 보르도를 떠난 뒤 수렝은 그를 더 이상 못 봤다. 1634년 늦가을 그가 루덩에 왔을 때 주임신부는 이미 죽고 그의 유해는 사방으로 흩뿌려진 뒤였다.

 

  나이가 엇비슷한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서 같은 선생들 밑에서 같은 인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했다. 한 사람은 세속의 신부요 다른 사람은 예수회 수도사로 둘 다 성직자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도록 운명 지워졌다

  그랑디에는 평범하고 감각적인 사람이었다. 단지, 관능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두드러졌을 뿐. 그의 삶의 기록이 충분히 증명하듯이 그의 세상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자주 등장하는 의미의 세상이었다. 

  “불행하구나, 유혹이 가득한 이 세상!” 

  “이제 이 세상에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승의 자만이며, 다 아버지한테서 나온 것이 아니요 세상에서 온 것이라. 이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할지니.”[각주:2]

 

  ‘이 세상’이란... 인간의 경험으로 각각의 자아에 나타나고 자아로써 형성되는 것. 그것은 자아의 지시에 따르는, 물질적이고 불충분한 삶. 그것은 우리네 음욕과 공포가 하도 크기에 자연스러움을 상실한 세계. 그것은 영원성에서 분리된 유한. 자체의 비이원적인 근간에서 고립된 상태의 다양함. 불행의 연속 같은 시간 흐름. 그것은 현실이라 불리는, 무수히 많은 아름답고 신비한 개개의 것들을 대신하는 언어적 범주의 체계. 그것은 페티시즘이 되어 버린 거짓 이데아. 그것은 우리네 실용적 어휘와 동일시된 우주. ‘이 세상’ 맞은편 위에 ‘다른 세상’이 있고, 거기 하나님 왕국이 숨어 있다. 

 

  수렝은 자의식적인 삶을 시작한 이래 바로 이 왕국으로 늘 끌렸다. 그의 가족은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데다 신앙이 독실했다. 이 신앙은 실용성과 자기희생 정신을 띠었다. 그의 부친은 임종 전에 상당한 재산을 예수회에 희사했고, 모친은 남편 보낸 뒤 카르멜회 수녀가 됨으로써 자신의 숙원을 이루었다. 부모가 사내애를 체계적이고 양심적으로 엄하게 키울 수밖에 없었다. 

 

장 조셉 수렝 수도사

 

  오십 년 지나 유년기를 돌아보면서 수렝은 아주 짧은 시기 하나만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여덟 살 때 지역에 역병이 창궐했다. 소년을 안전한 시골집으로 보냈다. 때는 여름이고 시골은 그림 같이 아름다우며, 여자 가정교사는 소년한테 공부라는 멍에를 지우지 말고 삶을 마음껏 누리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친척들이 별의별 놀라운 선물을 싸 들고 아이를 찾아오곤 했다.

  「난 날마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놀았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안쓰러운 의미를 담고 있는 문구인가!) 그 격리 기간이 끝난 뒤 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힘겨운 시기가 시작됐다. 하나님을 공부한다는 게 어찌나 힘들었는지 불과 네댓 해 전에야 평생 처음으로 안도감을 맛봤다. 그 이전에는 고통이 계속 커지기만 하여 때로는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한계까지 이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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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조셉이 예수회 수사들의 생도가 됐다. 그들이 그에게 그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쳤고, 그래서 무대를 선택할 시간이 됐을 때 젊은이는 주저 없이 예수회 일원이 됐다. 하지만 다른 원천에서 그는 라틴어보다 더 좋은 뭔가를, 스콜라신학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배웠다. 

 

  수렝이 칼리지에서 공부한 청소년기 다섯 해 동안 보르도 지역 카르멜회 수녀원 원장은 ‘천사들의 수녀 이사벨’이라 불린 에스파냐 수녀였다. 이사벨 수녀는 테레사 성녀[각주:3]의 동료이자 제자였는데, 중년에 들어 다른 수녀 몇 명과 함께 프랑스로 파견돼 테레사 성녀의 가르침과 영성과 신비주의 교리를 전파하고 있었다. 참된 마음으로 듣고자 갈망한 모든 경건한 영혼에게 이사벨 수녀는 이 알아듣기 힘든 가르침을 언제든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찾아와 열심히 듣는 이들 가운데 좀 왜소한 편인 열두 살 남학생이 있었다. 소년은 장 조셉, 그건 그가 자유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편. 

  하나님의 사랑을, 그분과 합일되는 기쁨을, 온유와 겸양, 가슴의 정화, 분주하고 어지러운 마음 비우기 등을 유창하지 못한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목소리를 소년은 널따란 객실 창살 너머에서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듣곤 했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면서 소년은 ‘이 세상’이며 육체와, 지상의 주권자들이며 지상의 권세와 싸우겠다는 단호한 결의로 마음이 꽉 차는 것을 느꼈다. 싸워서 이겨야 비로소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자격이 생길 터. 장 조셉이 주저하지 않고 영적 투쟁의 길을 택했다.

 

  열세 살을 갓 넘겼을 때 하나님 은혜의 신호요 다가올 승리의 전조인 듯싶은 것이 소년에게 시현됐다. 어느 날 카르멜회 교회에서 기도하는 중에 초자연적인 빛을 보게 됐다. 그건 하나님의 본질을 밝히는 동시에 모든 거룩한 특성을 명시하는 듯한 빛이었다. 

  그 계시며 그 체험에 수반된 환희의 기억이 죽는 날까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신비한 느낌이, 그랑디에나 부샤르와 똑같은 사회적, 교육적 환경에 처한 그를 다른 이들과 달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승의 자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물론, 그런 정욕과 자만을 그가 전혀 몰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그런 유혹을 지독하게 감지했다. 

 

  수렝은 몸이 허약하고 신경이 예민하면서 관능적 충동이 특히 강한 유형에 속했다. 게다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나이가 들어서는 그 재능에 자신을 다 바치면서 신앙보다는 미학 문제를 다루는 직업 문인이 되려는 유혹도 자연스레 겪었다. 

  가장 존경받을 만한 ‘안목의 정욕’에 굴복하고 싶다는 마음은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는 야심과 명성 애호 때문에 더 커졌다. 그는 명성이라는 맛을 음미하고 비평가들의 칭송과 열광하는 독자들의 갈채를 거부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즐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저급한 정신이 육적 삶의 유혹에 약하듯이 고급한 정신은 지적 삶의 유혹에 약하다. 장 조셉의 경우 수치스러운 유혹 못지않게 명예로운 유혹도 아주 강했다. 창작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경험으로 알았다. 단지 열세 살 때 접한 그 찬란한 광채를 기억하는 덕분에 헛된 명성이라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수렝은 동정남으로 죽었으며 작품 대부분을 제 손으로 소각했다. 또 명성으로 말하자면, 이름을 날리지 않은 상태로 그친 게 아니라 (우리가 보게 되듯이) 외려 나쁜 평판을 남기는 것에 만족했다. 저 뒤에 가서 묘사되는, 상상도 못할 고난과 시련에 맞서면서 그는 영웅적인 근기를 발휘하며 기독교적 완성을 향해 고통스럽게 나아갔다. 

 

  하지만 그 이상한 고행 스토리를 살펴보기 전에 그런 불가사의한 편력에 나서는 선남선녀들은 어떤 동기를 지니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다른 얘기를 해야겠다. 

(3-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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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Jean-Joseph Surin (1600-1665) - 프랑스의 예수회 신비주의자, 설교가, 종교 저술가, 엑소시스트. 8세에 순결서원, 10세에 카르멜회에서 명상을 배우고, 16세에 수련수사. 20대에 파리 클레르몽 칼리지에서 공부. 성직자로서 준엄한 자기부정을 실행, 사회 접촉을 거의 다 끊었다. 1634년 9월 루덩에 파견돼 잔느의 엑소시스트로 활동하면서 악령에 들씌우게 됐다. 20년 넘도록 환각과 망상, 발작, 신체 마비, 언어 능력 상실 등에 시달렸다. 그런 와중에도 간간이 힘찬 음성과 달변으로 강론을 펼쳐 주치의가 기적 같다고 했다. 죽기 8년 전에 악령을 떨쳤다. 영성에 관해 뛰어난 저술을 몇몇 남겼다. [본문으로]
  2. 마태복음 18:7, 요한복음 12:31, 요한일서 2:15-17. [본문으로]
  3. St. Teresa of Ávila (1515-1582) -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로마가톨릭 성인, 교회박사, 카르멜회 수녀, 반종교개혁에 관한 여러 글의 저자, 정신 기도를 통한 관상 생활 신학자. 카르멜회 개혁가,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맨발의 카르멜회’ 창설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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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365-3)  

 

웃음이란... 아이들 환히 웃는 모습

 

웃음 터질 만한 일이 생기기를 꼭 기다려야 하나요? 

인생 자체만으로도 웃음 짓기에는 충분해요. 

 

우리네 인생은 정말 터무니없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잖아요. 

우리네 인생은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멋지잖아요! 

그렇게 어지러이 뒤섞인 것이야말로… 바로 우주 차원의 거대한 조크 아니겠어요? 

그네 타면서 환히 웃는 소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웃는 거예요. 

당신이 웃기로 마음먹기만 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잘 웃지 않게 됐어요. 

거의 웃지를 않으며, 어쩌다 웃는다 해도 진실하게 웃지 않아요. 

 

사람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듯이 웃고, 

어떤 의무를 수행하듯이 웃는단 말이죠. 

하지만 웃는 것 자체가 기분 좋잖아요! 

누구한테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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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군가를 즐겁게 하려고 웃음 지을 필요가 없어요. 

당신이 기쁘지 않다면 그 누구도 기쁘지 않을 테니까요. 

이유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자신을 위해 웃으세요. 

 

웃음이야말로 진정한 구원

 

웃기 위한 조건은 이미 완벽하게 다 갖춰져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대개 웃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주 인색해서… 

웃음에 인색하고, 사랑에 인색하고, 삶에도 인색합니다. 

 

이 인색함을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마자, 

우리에게는 다른 차원이 열립니다. 

웃음이야말로 참된 종교이자 구원입니다. 

나머지는 다 탁상공론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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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 있든, 거기에 온전히 있으라 ​(1)  

 

- 평범한 무자각의 예를 더 들어줄 수 있나?

 

당신이 처한 상황이나 주변 환경, 생활 형편, 다른 이들의 언행이나 하다못해 날씨를 두고도 말이나 생각으로 불평하는 자신을 포착할 수 있는지 보라. 

 

어디에 있든... 거기에 온전히 있으라

 

불평이란 전부 지금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야. 

거기에는 자기도 모르는 부정적인 충전이 늘 실린다. 

그래서 불평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피해자나 희생양으로 만든다. 

 

불평하는 대신 자신이 체감하는 것을 터놓고 말하고 얘기하라. 그러면 힘을 얻는다. 

그러니 필요하거나 가능하다 싶을 때 행동하거나 얘기함으로써 상황을 바꾸라.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받아들이라. 그 외에는 전부 미친 짓이다.

 

평범한 무자각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지금> 순간의 부정과 연결된다. 

<지금> 개념에는 당연히 <여기>도 포함돼. 

​자신이 처한 ‘지금 여기’에 저항하고 있나? 

‘여기’보다 다른 어딘가에 있기를 늘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여기’는 아주 좋을 리가 만무하다. 혹시 나도 그런 축에 들지는 않는지, 자기관찰을 통해 알아보라. 

어디에 있든, 거기에 온몸과 온 마음으로 있으라. 

 

만약 ‘난 지금 여기가 견디기 힘들고’ 그래서 불행하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세 가지 있다. 

1)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피하기 
2) 그 상황을 바꾸기
3) 그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자기 삶을 책임지고 싶다면,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며, 지금 당장 해야 한다. 그 다음에 결과를 받아들이라. 핑계대거나 변명하지 말고.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전혀 없이. 심령을 더럽히지 말고. 자신의 내면 공간을 늘 맑게 유지하라. 

 

현재 처한 상황을 벗어나거나 바꾸는 행동을 취한다면…

먼저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나 태도를 최대한 내던지라. ​

필요한 것에 대한 직관이나 통찰력에서 나오는 행동이 부정성에서 비롯되는 행동보다 더 효율적이다.

무엇이든 행동을 취하는 것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을 때가 많다. 불편하거나 불쾌한 상황에 오랫동안 매여 있는 경우에 특히 더 그렇다. 만에 하나 그 행동이 오류가 된다 해도 최소한 뭔가는 배우게 되고, 그런 경우에 그건 단순히 실수로만 남지는 않는다. 꼼짝도 안 한다면, 아무 것도 습득하지 못해. ​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고 있나? 

그 두려움을 인식하고 지켜보고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것과 완전히 함께하라. 그렇게 하면 그 두려움과 당신 생각의 연결이 끊어진다. 

두려움이 자기 마인드에 스며들게 놔두지 마. <지금> 순간의 힘을 활용해. 두려움은 그 앞에서 버틸 수 없어. 

만약 자신의 ‘지금, 여기’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정말 아무 것도 없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면… 내면의 저항을 내던지고 그 ‘여기와 지금’을 통째로 받아들이라. 그러면… 자신을 비참하거나 분노하거나 가엾게 느끼기를 즐기는 <불만에 찬 거짓 나>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이걸 우리는 승복(承服)이라 부른다. 

승복은 나약함이 아니다. 거기엔 거대한 힘이 들어 있어. 승복한 사람만이 영적 파워를 지닌다. 승복을 통해 우리는 그 상황에서 내적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내 쪽에서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는데도 상황이 변하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든 우리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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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뭔가 꼭 해야 하는데 꾸물거리면서 하지 않는 일이 있나?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일어나서 하라.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그 순간 자신의 무활동이나 게으름이나 소극성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라. 그 상태에 완전히 들어서라. 그걸 즐기라. 할 수 있는 만큼 빈둥거리거나 행동하지 말라. 

 

그 상태에 의식적으로 완전히 들어선다면, 금방 거기서 나올 것이야. 어쩌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내적 갈등이나 저항이나 부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음,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미래로 나아가느라 바빠서 현재 순간을 거기 도달하는 수단 정도로 치부하나? 스트레스란…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 있고 싶어 하거나 현재에 있으면서 마음은 미래에 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 분열이 우리 내면을 쪼개 놓는다. 내면을 그렇게 쪼개면서 산다는 것은 정말 무분별한 짓이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뭐” 해봤자 그 무분별이 (미친 짓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필요하다면, 미래를 그리지 않고 현재에 저항하지 않으면서도 빨리 움직이고 부지런히 일할 수 있다. 달려갈 수도 있다. 일단 움직이고 일하고 달린다면… 거기에만 몰두하라. 그 순간에 팽배하게 흐르는 에너지를 즐기라. 

 

그러면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신을 (현재에 있는 나와 미래에 가 있는 나) 둘로 쪼개지도 않는다. 그냥 움직이고 일하고 달리면서, 그걸 즐기라. 

아니면 모든 걸 다 내던지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럴 때 자기 마인드를 주시하라. 마인드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넌 일해야 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마인드를 지긋이 지켜보라. 거기에 미소 지으라.​ 

 

주의나 눈길이 자꾸 과거로 돌아가나? 

 

주의나 눈길이 자꾸 과거로 돌아가나?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과거에 대해 자주 말하거나 생각하나? 자신의 성공담, 모험이나 체험, 혹은 자신이 피해자가 됐던 스토리나 당했던 끔찍한 일, 혹은 누군가에게 한 짓 등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죄책감이나 자부심, 분개, 적대감, 후회, 원망, 자기연민 같은 것이 일어나나? 

만약 그렇다면, 그건 거짓된 자아감을 강화할 뿐 아니라 또한 마음속에 과거를 쌓아둠으로써 자기 몸의 노화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자기 과거에 심하게 매달리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지나간 순간을 다 묻어두라. 그건 우리한테 필요 없어. 

현재와 확실히 연관될 때만 입에 올리라. 

이 순간의 힘과 <존재>의 충만함을 느끼라. 자신의 존재를 느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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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생활 여건에서 삶을 찾기  

 

 

- 지금 내가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돼. 공교롭게도 나는 현재 내 삶에 불만이 아주 크다. 이건 사실이야,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데 “모든 게 잘 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려 든다면, 자신을 속이는 짓이겠지. 

내 현재 순간은 아주 불행하다. 전혀 자유롭지 못해. 그나마 계속 움직이는 것은 미래에 좀 나아질까 하는 희망과 가능성 때문이야. 

 

생활 여건에서 삶을 찾기

 

당신은 현재 순간에 주의를 집중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주의와 관심과 눈길은 완전히 시간에 얽매여 있다. <지금> 순간에 전적으로 실재하면서 동시에 불행할 수는 없어. 

당신이 ‘내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엄밀히 하자면 ‘나의 생활 형편이나 상황’이라 불러야 한다. 이것이 과거나 미래라는 심리적 시간이다. 

 

과거의 어떤 일들은 당신이 원하던 대로 잘 풀리지 않았어. 당신은 지금도 과거에 일어난 일에 여전히 저항하며, 이젠 지금 있는 것에도 저항하고 있다. 

희망이 당신을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도 당신 주의의 초점을 미래에 맞추게 한다. 이렇게 초점을 계속 미래에 집중하면서 현재 순간을 계속 부정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늘 불만인 것이다. 

 

- 맞아, 내 지금의 생활 형편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후과이지만 그게 여전히 내 현재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갇혀 있다는 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자신의 생활 여건이나 상황을 잠시 잊고, 자신의 삶에 주의를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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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뭐가 다른데?

 

당신 삶의 상황은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당신의 삶은 지금이다.

당신 삶의 상황은 마인드의 산물이지만, 당신의 삶은 생생한 실체이다. 

 

‘삶으로 이어지는 좁은 문’을 찾아내라. 그건 <지금> 순간이라 불린다. 

이 순간까지로 자기 삶을 좁혀 보라. 

대부분 삶의 상황이 그렇듯이, 당신 삶의 상황에는 문제들이 가득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당장 이 순간에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나?’ 

찾아보라. 10분 뒤나 내일 말고 지금 당장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찾아냈나?

우리가 문제로 가득 차 있을 때, 거기엔 새로운 뭔가가 들어설 여지가 없고 해결책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마다 여지를 좀 만들고 공간을 좀 비워 두라. 그러면 삶의 상황 속에서 삶을 찾을 수 있다.

 

감각을 충분히 활용하라.

지금 있는 곳에 있으라. 

 

주변을 둘러보라. 해석하지 말고 그냥 둘러봐.

빛과 모양과 색상과 질감을 보라. 

 

사물 하나하나가 조용히 실재하고 있음을 감지하라. 

그 모든 것이 있게끔 하는 공간을 감지하라. 

 

여러 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판단하지는 말라. 

이 소리들 아래 있는 고요에 귀를 기울이라. 

 

무엇이든 만져 보라. 그것의 <존재>를 느끼고 인정하라. 

자기 호흡 리듬을 관찰하면서, 드나드는 공기를 느끼라. 몸 안의 생명 에너지를 느끼라.

 

내 안팎에 있는 모든 것이 있게끔 하라. 

모든 것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지금> 순간으로 더 깊이 들어서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비실제적 관념의 죽은 세계를 떠나며 시간이라는 죽음의 세계를 넘어서는 것이야. 병들고 무분별해져서 우리 생명력을 헛되이 소모케 하는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이 미친 마인드는 지구도 서서히 망가뜨리고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현재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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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 시간의 광기  

 

 

심리적 시간의 집단적 증상을 들여다본다면 이것이 정신질환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러 증상은... 

이를테면 코뮤니즘이나 국가사회주의(나치즘), 여러 형태의 내셔널리즘 같은 이데올로기 형태에서, 혹은 지복이 미래에 있으므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맹목적인 전제 하에 작동하는 경직된 종교적 신앙 체계에서 발견된다. 

 

심리적 시간

 

목적이 되는 그 끝은… 

마인드가 투사된 미래의 한 시점이요 미래에 대한 관념이며, 이 미래에 행복이나 성취, 평등, 해방 등 어떠한 형태로든 구원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거기에 도달하려는 수단이 현재에서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고문하고 죽이는 일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소비에트연방이나 중국 등 몇몇 국가에서 코뮤니즘이라는 사회적 이상을 발전시키고 이른바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명분 아래 5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건 미래의 천국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현재에서 지옥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으스스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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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시간이 심각하고 위험한 정신병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이런 마인드 패턴이 우리 각자의 삶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나? 

당신은 지금 있는 곳 말고 다른 어떤 곳으로 가려고 늘 애쓰나? 
당신이 하는 일 대부분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성취나 실현 가능성이 항상 코앞에 있거나, 아니면 섹스나 먹을거리, 술, 마약, 혹은 스릴이나 흥분 같은 잠깐의 쾌락에 국한돼 있나? 
당신은 뭔가가 되거나 뭔가를 달성하고 얻는 데 늘 집중하나? 혹은 그 대신에 새로운 스릴이나 쾌락을 쫓아다니나? 

이런저런 물건을 더 많이 갖게 되면, 성취감을 더 느끼거나 충분히 만족하거나 심리적으로 든든해진다고 믿나? 
당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어떤 남자나 여자를 기다리고 있나?

마인드와 동일시되거나 깨닫지 못한 보통의 의식 상태에서는… 

<지금> 순간에 숨어 있는 파워와 무한한 창의적 잠재력이 심리적 시간에 완전히 가려 있다. 

 그러면 삶은 활력과 신선함과 경이감을 잃는다. 

 

생각과 감정과 행동과 반응과 욕망의 낡은 패턴이 끝없이 반복되고, 우리한테 일종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마인드의 각본은 <지금> 순간의 실체를 왜곡하거나 은폐한다.  

그런 다음에 마인드는… 불만족스러운 현재에서 도피하기 위해 미래에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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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실생활에서 시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라. 

이런 시간을 우린 ‘시계의 시간’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실무를 처리한 뒤에는 즉각 현재 순간의 깨어 있는 의식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과거와 동일시되고 미래에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투영하는 심리적 시간이 늘어나지 않는다.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기

 

시계의 시간은 단순히 약속을 잡거나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필요한 건 아니야.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때도 필요하다. 

시계의 시간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일할 때도 필요해. 또 과거에서 얻은 물리나 수학의 법칙들과 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기초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할 때도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나 미래에 눈길 돌리지 않고서는 뭔가를 할 수 없는 실생활 영역에서도 현재 순간은 여전히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즉, 과거의 모든 교훈이 지금 적절해지고 지금 적용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뿐 아니라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업도 지금 이뤄진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늘 <지금>에 주의를 집중하면서도 지엽적으로는 여전히 시간을 의식한다.

달리 말해, 그들은 시계의 시간을 계속 이용하지만 심리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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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실행하면서 물리적 시간을 부지중에 심리적 시간으로 전환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예를 들어… 

과거에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제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면, 이건 시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과거 실수를 마음에 담아둔 채 자신을 탓하거나 후회하거나 죄책감이 든다면, 이건 그 실수를 ‘나'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이 실수를 자아감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며, 
그것이 심리적 시간이 되고, 
이 심리적 시간은 늘 그릇된 정체성 감각과 연결된다.
용서하지 않으면 심리적 시간의 무거운 짐이 반드시 뒤따른다.

 

목표를 세우고 그걸 향해 노력한다면, 시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고 있지만, 이 순간에 밟고 있는 단계를 존중하며 거기에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혹시 행복과 성취를 추구하거나 거기서 더 완벽한 자아감을 찾느라고 목표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지금> 순간이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 그건 본래 가치를 상실하고 미래로 가는 단순한 디딤돌 정도로 축소된다. 

 

그러면 시계의 시간이 심리적 시간으로 바뀐다. 

그러면 우리네 인생 여정은 더 이상 가슴 설레는 체험이 아니라 제 기한에 도달하고 뭔가를 얻고 뭔가를 해내야 하는 욕구가 된다. 

그러면 길가의 꽃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그 향내를 못 느낄 뿐 아니라, <지금> 순간에 존재할 때 주변에 펼쳐지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감지하지도 못한다. 

 

 

- <지금>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은 알겠는데, 시간이 완전히 환상이라는 말에는 썩 동의하기 어렵다. 

 

‘시간은 환상’이라고 말할 때, 내 의도는 철학적 언급을 하자는 게 아니야. 단지 간단한 사실 하나를 상기시키는 거야.

이 사실은 하도 뻔해서 포착하기 힘들지 모르고 무의미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일단 충분히 실감하기만 하면 마인드가 만들어 낸 이른바 ‘문제들’과 복잡함을 날카로운 칼처럼 자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순간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전부야. 

우리네 삶이 ‘이 순간’이 아닌 적은 절대 없어. 이것이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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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 상황에서… 

의식이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에서 현재로 자연스레 이동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과거와 미래를 지니는 인격이 잠깐 물러나면서 강렬하게 의식하는 존재가 들어서는데, 이건 아주 고요하면서도 아주 기민한 상태이다. 그 어떤 반응이 필요하다면 이 의식 상태에서 나온다.

 

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

 

어떤 이들이 등반이나 자동차 경주 같이 위험한 활동을 즐기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혹시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활동이 그들을 <지금> 순간으로… 시간에서 자유롭고 문제에서 자유롭고 생각에서 자유롭고 성격 부담에서 자유로우며 살아 있다는 느낌이 팽팽한 상태로 밀어 넣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실재하는 상태에서 한순간이라도 미끄러지거나 벗어나면 죽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데, 그들이 그런 상태에 들어서기 위해 특정 활동에 의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프스 험준한 고봉을 오르지 않고도 그 상태로 들어설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 

 

예로부터 갖가지 유파의 영성 대가들은 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로 <지금> 순간을 언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걸 교회에서도 사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 하나는 분명하다. 

 

교회에 나간다면 이런 복음서 구절을 들을 것이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니.” (마태 6:34) 

혹은 “쟁기를 손에 쥐고 뒤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으리.” (누가 9:62)

아니면,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시간을 초월한 <지금> 속에서 편안히 살며 신의 은총을 듬뿍 받는 아름다운 꽃들에 관한 구절을 들을 수 있다.

 

한데, 이런 가르침의 심오하고 근본적인 본질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야 할 운명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적으로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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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禪)의 모든 본질은 <지금> 순간이라는 면도날 끝을 따라 걷는 것 그 어떤 문제든 그 어떤 고통이든 ‘본질상 내가 아닌 것은 그 무엇이든’ 우리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하고 완전하게 현존하는 것이다. 

<지금> 순간에서는, (과거나 미래 같은) 시간이 없을 때는, 우리네 문제라는 것이 죄다 사라진다.

고통 받는 데는 시간이란 개념이 필요하다.

고통은 <지금> 순간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임제종의 한 고승은 제자들이 시간에서 주의를 돌리게 하려고 종종 손가락을 치켜들고 느긋하게 묻곤 했다.

“이 순간에 무엇이 부족한가?” 

 

이건 마인드 수준의 답을 요하지 않는 강렬한 질문이야. 

이 질문은 <지금> 순간에 주의를 집중케 하려고 고안한 것이다. 

선의 전통에서 비슷한 물음에 또 이런 게 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지금> 순간은 이슬람의 신비한 분파인 수피즘의 가르침에서도 중심을 차지한다. 수피교도들은 “수피는 지금 시간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위대한 시인이자 수피교의 설법자인 루미는 “과거와 미래가 우리 시야에서 신을 가리니, 그 둘을 불태우라”고 선언한다. 

 

13세기의 영성 대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보기 좋게 요약했다. 

시간은 빛이 우리한테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신에게 다가가는 길에서 시간보다 더 큰 장애물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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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란 환상을 떨치기 

 

- 나를 내 마인드와 분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우린 다 거기에 푹 빠져 있잖아. 

당신은 어떻게 물고기한테 나는 법을 가르치나? 

 

마인드와 동일시되지 않으려면 시간에 묶이지 않기

 

핵심은… 시간이라는 망상을 떨쳐 내는 데 있다. 시간과 마인드는 불가분하다.

시간을 마인드에서 걷어내라. 시간을 이용하겠다고 선택하지 않으면 그건 멈춘다.

 

자기 마인드와 동일시된다는 것은 시간 속에 갇힌다는 뜻이며, 

이건 또 거의 기억이나 회상, 기대나 예상만 가지고 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과거와 미래에 끝없이 함몰되며,

현재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뿐더러

현재 순간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게 된다. 

 

그런 강박 충동이 생기는 까닭은…

과거가 우리한테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믿고,

미래가 어떤 형태로든 자기실현과 구원에 대한 기대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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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시간 감각이 없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제 구실을 하겠는가? 노력해야 할 목표가 전혀 없을 거야. 내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이니까, 시간을 지운다면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게 될 거야. 내 생각에, 시간은 아주 소중한 것이며 그걸 허투루 낭비하기보다는 지혜롭게 쓰는 법을 배워야 해.

 

시간은 소중한 것이 전혀 아니야. 왜냐하면 시간은 환상이니까

우리가 소중하게 인식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의 한 시점… 바로 <지금> 순간이다. 

이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야. 

과거나 미래 같은 시간에 더 몰두할수록, 가장 소중한 것인 <지금> 순간을 더 많이 놓친다.

 

- 그게 왜 가장 소중하지? 

 

왜냐하면… 

첫째, 오로지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게 전부야. 우리네 삶은 이 끝없는 현재라는 공간에서 다 펼쳐지며, 이 끝없는 현재만이 늘 불변이다. 삶은 지금이야. 우리네 삶이 지금이 아닌 적은 결코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야. 

둘째, <지금>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마인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간을 초월하고 형태가 없는 <존재> 영역에 이르는 유일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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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지금> 순간에 뿌리 내리기  

 

자신을 마인드에서 찾지 않기

  

- 완전한 의식이나 영적 깨달음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내 마인드의 작동에 관해 아직도 많이 알아야 할 것 같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마인드 문제는 마인드 수준에서 해결될 수 없어. 마인드의 기본적인 기능 장애가 무엇인지 납득하게 되면… 따로 알거나 이해해야 할 것이 별로 없다. 

마인드의 복잡한 성질을 연구하면 훌륭한 심리학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마인드를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광기를 연구한다 해서 멀쩡한 정신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인드와 동일시하지 말라
... 거짓된 나인 <에고>가 생겨나고, 여기서 모든 고통과 불행이 시작된다.

 

무자각 상태의 기본 메커니즘을 우린 이미 알아봤다. 즉… 

마인드와 동일시함으로써 --> 
거짓된 나인 <에고>가 생겨나고 --> 
이 에고가 <존재>에 뿌리내린 <참된 나>를 대체하면서 --> 
예수가 이른 대로, 우리는 ‘포도나무에서 잘려 난 가지’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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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의 욕구에는 끝이 없다. 그건 자신이 취약하고 위협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두려움과 결핍의 상태에서 산다. 마인드의 근본적인 기능 장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되면, 그 장애의 무수한 증상을 일일이 탐구할 필요가 없으며 그 장애를 개개인의 복합적인 문제로 만들 필요도 없게 된다. 

 

물론 <에고>는 그런 문제를 아주 좋아한다. 에고는 미망에 빠진 자아감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 ‘빈대 붙을’ 뭔가를 늘 찾고 있으며, 이른바 문제라는 것들에 쾌히 들러붙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 경우 자아감의 상당 부분이 자신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 에고는 문제에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는데… 왜냐하면 그건 자신이 없어진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무자각적인 에고는 아픔과 고통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무자각의 뿌리가 감정이나 마인드와 자신을 동일시함에 있다는 점을 알기만 하면, 우리는 마인드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우리는 실재하게 된다. 실재할 때… 마인드가 본래대로 있게 하면서도 그 그물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다. 

마인드 자체에 기능 장애가 있는 건 아니야. 이건 아주 훌륭한 도구야. 
기능 장애는 우리가 마인드에서 자신을 찾고 그걸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할 때 생긴다. 
그때 마인드는 에고의 마인드가 되어 우리 삶 전체를 쥐고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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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몸체와 동일시하려는 에고 

 

금방 앞에서 설명한 과정은 대단히 강력하면서도 간단하다. 

이것을 어린애한테도 가르칠 수 있고 언젠가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축에 들어갈 것이다. 

 

고통의 몸체
고통의 몸체에 하도 익숙해지다 보니,고통 자체가 '나'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내면에서 벌어지는 것을 감시하는 자로서 존재한다는 기본 원칙을 이해하게 되면

그리고 그것을 체감함으로써 확실히 깨닫는다면… 가장 강력한 변환 도구를 마음대로 부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아무런 내적 저항 없이 아픔을 술술 털어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삶의 대부분을 자신의 감정적 아픔덩어리와 바짝 동일시하면서 살아왔고 자아감의 전부나 상당 부분이 아픔덩어리에 들어 있다면, 내적 저항이 특히 더 클 수밖에 없다.

이건… 아픔덩어리에서 불행한 자신을 만들어 냈으며 마인드가 만들어 낸 허구를 ‘나 자신’이라 믿는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무자각적인 두려움 때문에 모든 분리에 (즉, 동일시하기를 멈춤에) 강한 저항이 생길 것이다. 달리 말해, 잘 모르는 것에 뛰어들어서, 불행하지만 친숙한 ‘나’를 잃기보다는… 차라리 아픔을 겪는 게, 아픔덩어리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여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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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우에 해당된다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저항을 관찰하라. 

아픔에 집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라. 
경계 태세를 아주 높이라. 
불행한 상태에서 맛보는 기묘한 만족감을 관찰하라. 
그것에 관해 얘기하거나 생각하려는 강박 충동을 관찰하라. 
저항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들면, 그 저항이 멈출 것이다. 
그때 아픔덩어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증인으로 머물러 아픔덩어리의 변형을 주도할 수 있다.

 

이건 오로지 각자가 개인적으로만 할 수 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러나 운이 좋아서 이미 높은 수준의 의식을 갖춘 이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현존 상태에서 연결될 수 있다면, 대단히 유익하게 과정을 앞당길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각자의 빛이 빠르게 더 강해질 것이다. 막 불붙기 시작한 통나무를 이미 훨훨 타고 있는 것 곁에 잠시 두었다가 떼어 놓으면, 첫 번째 통나무는 훨씬 더 강렬하게 타오를 것이다. 결국, 그건 같은 불길이야. 

 

그런 불꽃이 되는 것이 영적 마스터의 기능들 중 하나이다. 일부 치유 전문가들도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데, 단, 이미 마인드 수준을 넘어섰고 누군가와 작업하는 동안 강렬한 의식적 존재 상태를 만들어 유지할 수 있는 경우에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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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아픔: 

 고통의 몸체 녹이기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설 수 없는 한… 

우리가 겪는 감정적인 아픔은 모조리 우리 안에 웅크리고 있는 다른 아픔의 잔재 뒤로 숨어든다. 

그건 이미 거기에 있던 과거의 아픔과 합쳐져서 우리네 마인드와 몸에 기식하게 된다. 

여기에는 우리가 태어난 세상의 무지와 무자각 때문에 어린 시절에 겪어야 한 아픔도 물론 들어간다. 

고통의 몸체

이 퇴적된 아픔이 우리 몸과 마인드를 점령하고 있는 부정적 에너지장이다. 이것을 만약 보이지 않지만 제 나름대로 움직이는 실체로 볼 수 있다면, 진실에 매우 근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아픔덩어리이다. (혹은, 고통의 몸체이다.) 

이 아픔덩어리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휴면 상태와 활동 상태. 

 

아픔덩어리는 대체로 전체 시간의 9할 정도는 졸고 있지만, 심히 불행한 사람의 경우엔 100% 시간 내내 꿈틀거릴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거의 전적으로 아픔덩어리를 통해 사는 반면에,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을 특정 상황에서만 겪을 수 있다. 이를테면, 아주 무간한 사이에서, 혹은 과거의 상실이나 절망, 배신 또는 신체나 감정의 상처 등과 연결된 상황에서 그렇다.  

 

이 졸고 있는 고통의 몸체를 무엇이든 꿈틀거리게 할 수 있다. 특히 당사자의 과거 아픔 패턴과 공명하는 것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조는 상태에서 깨어날 채비가 돼 있을 때, 그건 가까운 누군가의 악의 없는 말이나 생각으로도 활성화될 수 있다. 

 

어떤 고통의 몸체는 계속 징징대는 아이처럼 밉살스럽고 불쾌하지만 비교적 해롭지 않다.

또 어떤 아픔덩어리는 사악하고 파괴적인 괴물이요 진짜 악마이다. 개중에 어떤 것은 물리적 폭력도 꺼리지 않으며, 더 많은 것은 감정적인 폭력을 삼가지 않는다.  

어떤 고통의 몸체는 그 주인의 주변 사람이나 지인들을 공격하는 반면에, 또 어떤 것은 직접 주인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아주 부정적이고 자멸적인 성격을 띤다. 질병이며 불행한 일이 그렇게 해서 종종 발생한다. 제 주인을 자살로 몰아넣는 아픔덩어리도 있다. 

잘 안다고 여겨 오던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설고 혐오스러운 괴물이 되어 내 앞에 마주할 때, 우리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아픔덩어리를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 안에서 관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한테 불행의 징후가 되는 것을 죄다 주시해야 하니… 그것이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고통의 몸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짜증이나 성급함, 울적한 기분, 괜히 어깃장 놓으려는 태도, 노여움, 분노 발작, 우울증, 또 대인관계에서 극적인 행동을 취하려는 욕구 등의 형태를 띨 수 있다. 

이 고통의 몸체가 졸다가 잠깨려는 순간을 포착하라.

 

다른 모든 현존하는 실체와 마찬가지로 고통의 몸체도 생존하기를 원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동일시할 때만 생존이 가능하다. 그때 그건 벌떡 일어나서 우리를 지배하여 ‘우리 자신이 되고’ 우리를 통해 살 수 있다. 그건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우리를 필요로 한다. 

그건 그 자체 에너지에 공명하는 우리네 체감에서 에너지를 얻으며 노여움이나 증오, 비탄, 감정 폭발, 파괴적 성향, 폭력, 심지어 질병 같이 아픔을 더 키우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이로 삼는다. 그리하여 고통의 몸체가 우리를 장악했을 때, 그건 자체 에너지 주파수를 되쏘는 상황을 우리 삶에서 만들어 그 에너지를 먹고 산다.  

아픔은 아픔만 먹고 살 수 있다. 아픔은 기쁨을 먹고 살 수 없다. 소화해내지 못하니까고통의 몸체에 한번 정복당하면, 우리는 아픔을 더 많이 원하게 된다. 

그래서 피해자나 가해자가 된다. 직접 고통을 겪거나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하고 싶어진다. 혹은 둘 다를 동시에 원한다. 전자와 후자는 실제로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난 아픔을 전혀 원치 않아!” 하고 맹렬히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네 생각과 행동은 자신과 다른 이들한테 계속 아픔을 주게끔 설계돼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이런 점을 우리가 진정 의식한다면… 그 패턴은 녹아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누가 아픔을 더 많이 바라겠으며, 의식적으로 미치광이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아픔덩어리는 에고가 드리운 그림자로서, 실제로 우리네 의식의 빛을 겁낸다. 그건 발각될까봐 겁낸다. 그것의 생존 여부는… 그걸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동일시하느냐, 또 내면에 도사린 아픔 직시하기를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느냐에 좌우된다. 만약 이 아픔덩어리를 직시하지 않고 우리 의식의 빛을 거기에 비추지 않는다면… 그건 계속 발톱을 드러낼 것이다. 

고통의 몸체가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위험한 괴물로 보일 수 있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이건 한낱 실체 없는 환영에 불과한 것이며 우리 현존의 힘에 대항할 수도 없다. 

 

몇몇 영적 가르침은 모든 고통이 궁극적으로 환상이라고 언명하는데, 이건 진실이다. 

한데 “당신도 진실이라고 여기나?” 하는 점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저 언명을 진실로 만들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고통을 겪으면서도 계속 이건 환상이라고 말만 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인가? 

그렇게 한들 과연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까? 

이제 우리는 각자의 생생한 체감을 통해 이 진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고통의 몸체는 우리의 관찰을 받아 정체가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관찰하고 내면에서 그 에너지장을 느끼고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그것과의 동일시가 깨진다.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열린다. 난 그것을 현존이라고 부른다. 

 

이제 우리는 아픔덩어리의 목격자나 감시인이다. 이건… 아픔덩어리가 우리를 참칭하면서 우리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고, 우리한테서 더 이상 에너지를 빨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자신의 심원한 힘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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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픔덩어리와의 동일시를 깰 만큼 충분히 의식하게 될 때… 그건 어떻게 되나? 

고통의 몸체를 만드는 것은 무자각인데, 의식이 그것을 의식(자각)적인 것으로 변질시킨다이 보편적 원리를 바울 사도가 잘 표현했다. “모든 것은 빛을 받으면 보이게 되고, 빛에 드러나는 것은 무엇이든 스스로 빛이 된다.” (에베소서 5:13) 

우리는 어둠과 싸울 수 없듯이 고통의 몸체와도 싸울 수 없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내적 갈등이 생겨 고통이 더 많아질 것이야. 주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시한다는 것은 그걸 그 순간에 실재하는 것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고통의 몸체
고통의 몸체 = 아픔 덩어리 = 과거의 누적된 아픔

아픔덩어리는 갇힌 생명 에너지로 이뤄진다. 이 에너지는 우리의 전체 에너지장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며 마인드와 동일시라는 부자연스러운 과정의 결과 한동안 독자성을 띤다. 이건 불시에 스스로 돌변하여 자기 꼬랑지를 삼키려고 하는 짐승처럼 반생명적인 것이 된다. 

우리네 문명이 어째서 생명 파괴적인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생명을 파괴하는 힘마저도 여전히 생명 에너지이다.

 

우리가 마인드와 떨어져서 감시자가 될 때도, 고통의 몸체는 한동안 여전히 꿈틀대면서 우리를 자기와 자꾸 동일시하게 만들려고 꾀를 낼 것이다. 우리가 동일시하기를 그만둠으로써 에너지를 더 이상 공급하지 않더라도 아픔덩어리는 타성 때문에 스스로 돌아가는 물레바퀴처럼 한동안은 꿈틀거린다. 이 단계에서 그것이 신체 여러 부위에 괴로움과 아픔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그게 오래 가지는 않는다. 

현재에 계속 머물면서 예리하게 의식하라. 
항상 경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 공간을 지키라. 
이 아픔덩어리를 직접 관찰하고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실재해야 한다. 그러면 그건 우리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네 생각이 아픔덩어리의 에너지장과 동조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과 동일시되며 우리의 생각으로 다시 그걸 먹여 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노여움이 아픔덩어리의 주된 에너지 진동이고 우리가 화를 내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한 짓이나 그자를 한번 손봐줘야겠다는 생각을 품는다면, 우리는 무자각 상태가 되며 아픔덩어리가 곧 ‘나 자신’이 된다. 분노가 있는 곳에는 그 밑에 늘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혹은, 어두운 분위기가 찾아들고 갖가지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내 삶이 참으로 하찮고 끔찍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몇몇 생각의 벡터가 고통의 몸체와 같은 방향을 달리게 되어 우리는 무자각에 빠지고 아픔덩어리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여기서 ‘무의식이나 무자각’은 어떤 정신적 패턴이나 감정적 패턴과 동일시된다는 뜻이다. 이건 감시자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뜻도 포함한다. 의식적으로 오랫동안 계속 주의를 기울이면… 아픔덩어리와 우리네 생각 과정의 연결이 차단되어 아픔덩어리가 변질하게 된다. 고통이 우리 의식의 불꽃에 연료가 되고, 그 결과 의식의 불길이 더 환히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쇠를 귀금속으로 변형하는 고대 연금술의 밀교적 의미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깨어난 의식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의식의 계층화가 멈추고 내면의 분열이 치유됨으로써 우리는 다시 온전해진다. 그때 우리의 책임은 아픔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정을 요약해 보자. 

자기 내면의 감정에 주의를 집중하라. 
그것이 바로 아픔덩어리라는 것을 알아두라. 

그것이 내면에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라. 
그것을 생각하지 말라. 즉, 감정이 생각으로 바뀌지 않게 하라. 
그것을 판단도 분석도 하지 말라. 

아픔덩어리의 특질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들지 말라.
계속 현재에 머물면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계속 관찰하라. 
감정적인 아픔뿐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관찰자’요 말없는 감시인이 있다는 점도 인식하라. 

이것이 바로 <지금> 순간의 힘이요, 우리네 본연의 의식적인 현존의 힘이다. 

그렇게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많은 여성들 경우, 아픔덩어리가 특히 생리를 앞두고 눈뜬다. 그것이 잠깨는 이유 등에 관해서는 뒤에 가서 더 자세히 얘기하겠다. 지금은 이런 점만 말하고 싶다. 즉… 

그 순간에 방심하지 않고 늘 조심하며 내면에서 느끼는 것에 지배되는 대신 그걸 죄다 지켜볼 수 있다면… 가장 강력한 영적 수행 기회를 얻게 되며, 그때 과거의 모든 아픔을 빠르게 변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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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깨어 있는 의식 -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현재에서 더 이상 고통을 만들지 않기

  

- 그 어떤 인생도 아픔과 슬픔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것을 피하려 들기보다는 그런 것을 안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아픔의 진단

사람들이 겪는 아픔 대부분은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마인드를 지켜보지 않고 마인드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놔두는 한 아픔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내는 아픔은 늘…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에 자기도 모르게 저항할 때 생긴다. 

생각 수준에서 하는 저항은… 어떤 형태의 판단이다. (평가, 분류, 낙인찍기, 비판 등). 
감정 수준에서 하는 저항은… 어떤 형태의 부정성이다. (부정적인 생각, 감정, 태도).

아픔의 통렬함은 현재 순간에 저항하는 정도에 따라 다르고, 이 저항의 정도는 또 우리가 마인드와 얼마나 크게 동일시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마인드는 늘 <지금> 순간을 부정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한다. 

달리 말해, 자기 마인드와 더 동일시될수록 더 큰 고통을 겪는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는 순간을 더 많이 존중하고 수용할수록 우리는 아픔과 고통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에고 마인드에서 더 자유로워진다. 

 

그렇다면 마인드는 왜 <지금> 순간을 습관적으로 부정하거나 거기에 맞서는 건가? 

왜냐하면, 마인드는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이 없으면 기능하지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하기 때문인데, 또 그런 이유에서 시간을 초월한 순간인 <지금>을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간과 마인드는 사실상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인류가 없고 식물과 동물들만 있는 지구를 상상해 보라. 거기에도 과거와 미래가 있을까? 

그곳에서도 어떤 의미로든 시간을 얘기할 수 있을까? 

거기서 누군가가 “지금 몇 시야?” 혹은 “오늘은 며칠이야?” 하고 묻는다면, 그런 질문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야. 그런 물음에 참나무나 독수리는 어리둥절하여 “시간이 뭔데?” 하며 되묻고는 이렇게 대꾸하리라. 

“아아, 그건 물론 지금이지. 시간이란 바로 지금이야.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어?!” 

 

그래, 이 세상에서 우리에겐 마인드만큼이나 시간도 필요하지만, 마인드와 시간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지점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마인드의 기능 장애와 아픔과 슬픔이 자리 잡은 곳이다. 

마인드는 자신의 통제력을 담보하기 위해 현재 순간을 과거나 미래로 계속 덮으려 든다. 그 결과, <지금> 순간과 불가분한 <존재>의 생명력과 무한한 창조적 잠재력이 시간에 의해 감춰지고, 우리네 진짜 본질은 마인드에 의해 흐려진다. 

시간이 점점 더 무거운 짐이 되어 인간 마인드에 쌓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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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다 이 무게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지금>이라는 소중한 순간을 무시하고 부정하거나 미래의 어떤 순간에 이르는 수단으로 축소하면서 시간의 하중을 계속 키우고 있다. 미래의 어떤 순간이라는 것은 결코 실제가 아니라 마인드에만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인간의 집단 마인드개별 마인드에 퇴적된 시간 속에는 또한 과거의 아픔이 엄청나게 많이 잔존한다. 

만약 자신이나 다른 이들한테 더 이상 아픔을 초래하지 않고자 한다면, 만약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는 과거 아픔의 잔재에 새 아픔을 보태고 싶지 않다면… (과거나 미래 같은) 시간을 더 이상 만들지 말라. 혹은, 삶의 실제 측면을 다루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은 만들지 말라.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나? 

현재 순간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임을 절실히 깨달으라. 
<지금> 순간을 삶의 주된 초점으로 삼으라. 
만약 예전에는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 속에 주로 머물다가 가끔씩 <지금> 순간에 들르기만 했다면, 이제는 <지금> 순간으로 거처를 옮겨 살면서 실제 상황의 어떤 측면에 필요하다 싶을 때만 과거와 미래를 잠깐 찾아가라. 

현재 순간에 늘 “예스”라고 말하라. 
이미 있는 것에 내면에서 저항하는 것보다 더 무익하고 비합리적인 것이 또 뭐가 있겠나? 
지금 있고 언제나 지금에 있는 삶에 맞서는 것보다 더 비상식적인 것이 또 뭐가 있겠나? 
지금 있는 것에 승복하면서 삶에 “예스”라고 말하라. 
그렇게 할 때… 삶이 어떻게 갑자기 더 잘 풀리기 시작하는지를 직접 보라.  

 

- 현재 순간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더러 있다. 불쾌하거나 끔찍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럴 때는… 현재 순간에 마인드가 어떻게 꼬리표를 붙이는지 지켜보고, 이 분류 과정과 끊임없는 판단이 어떻게 아픔과 불행을 만들어 내는지 관찰하라. 

마인드의 작동 구조를 주시함으로써 마인드의 틀에 박힌 저항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되고, 그때 현재 순간이 있게끔 할 수 있다. 그러면 외부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내면 상태를, 진정한 내적 평온을 맛보게 된다.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냥 관찰하고 필요하거나 가능한 경우에 조치를 취하라. 

먼저 받아들이고 나서 행동하라. 
현재 순간에 어떤 게 담겨 있든 간에, 그걸 마치 내가 선택한 것처럼 받아들이라. 
현재 순간에 있는 것에 맞서지 말고 그것과 함께 늘 일하고 움직이라. 
그것을 적이 아니라 친구요 동맹으로 만들라. 
그러면 삶이 온통 기적처럼 달라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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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1)

(20) 의식의 진화

(19) 문제란 전부 마인드의 착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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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Stalking/명상의 길2019. 3. 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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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흡 관찰> 명상  

 

<The Power of Now>의 저자요 영적 마스터인 에크하르트 톨레가 '지금, 여기'의 상태를 체감하고 심화하는 데 도움 되는 명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합니다. 

 

호흡 관찰 명상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유용한 명상 실천입니다. 

매일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면 다른 모든 형태의 명상에 든든한 토대가 생겨요. 

 

호흡 관찰 명상에 잠긴 여성

 

우리가 알다시피, 자기 호흡에 대한 명상은 이미 수천 년 동안 수행돼 온 것이지요?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다스리고,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고, 영적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고대 힌두교도와 불교도들이 이 명상을 수행했습니다.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정신 사납게 오가는 마인드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자신의 호흡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이렇게 마인드를 훈련함으로써 한 번에 한 가지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력을 키우게 됩니다. 

 

이 실습은 또

몸과 마인드를 진정시키며,

흥분과 불안을 덜어내고

높은 심박과 혈압을 낮추는 데 아주 좋습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현저하게 줄여 줘요. 

영적 발달과 심신 건강에 관심이 있다면, 이 호흡 실습이 기존의 모든 명상 가운데 단연 으뜸입니다.

 

수행 시간: 매일 아침저녁 10-15분.

 

준비: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조용한 공간을 찾는다. 

방석이나 등받이 곧은 의자가 필요. 가볍고 편안한 옷차림. 

실내 조명은 희미하고 빛이 스며들지 않으며 온도도 적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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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방법 

1. 

베개나 방석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이때 둔부가 살짝 올라간다. 

이런 <연꽃 자세>를 취하기 어렵다면 의자에 앉아도 좋다. 

어떤 상태에서든, 등을 곧게 펴고 어깨에 힘 뺀 채 가지런히 하고 아래턱이 바닥과 수평이 되게 한다.

두 손을 무릎 위에 편하게 놓는다. 

눈길을 살짝 내려뜨려 1미터 앞 한 지점을 응시한다. (혹은, 눈을 감는다.) 

 

책상다리로 앉고 두 손을 앞에 모아

2.

주의를 내면으로 돌려서 호흡에 집중한다.  

호흡을 일부러 더 깊게 하려 들지 말고 저절로 그렇게 되게 하라.

호흡을 관찰하다 보면 들숨과 날숨이 저절로 더 깊고 길어질 것이다. 

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공기를 느끼라. 

들숨 때 아랫배가 불룩해지고 날숨 때 꺼지는 것을 느끼라.

 

3.

숨을 내쉴 때마다 숫자를 세면서 열이 되면, 다시 처음부터 센다.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렇구나' 하고 그냥 놔두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그냥 알아차리기만 하고 주의를 다시 호흡으로 돌리라. 숫자 세는 데 집중하라. 

여러 생각이 주의를 산만하게 했다면… 그걸 알아차리는 즉시 생각이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생각이 들어왔다가 나가게 하고 주의를 다시 호흡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의자에 똑바로 앉아서

4.

이 상태를 10분에서 15분쯤 유지하라.  

이제 눈을 뜨라.  

눈을 뜬 채 제 자리에 일이 분 더 앉아 있으라…

 

* 도움이 좀 되겠나요? 

다음엔 <음료를 마실 때 하는 명상>을 소개하겠습니다. 빠이~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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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구두가 나는 아니야!" 

 

 

- 멋진 자동차를 한 대 뽑았어요. 신나지요. 괜히 ''도 잡고 싶고... 그런데 어느 날 옆구리에 흠집이 난 걸 발견했어요. 속상해요, 안 해요? 화가 나요, 안 나요? 그래서 며칠 동안 우울하고 밥도 잘 안 넘어갔다구요? .

여러 벌의 구두가 있지만, 이 구두들이 나는 아니야

-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자기 시간이나 생활도 팽개치고 직장에 '올인'해요. 몰지각한 상사가 가끔 눈꼴시게 굴어도 꾹 참아요. '에이, 요즘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여기서 떨려나면 어떡해? 이게 내 밥줄이니까 견뎌야지 별 수 있겠어?' .

 

- 자기 일이나 취미 활동도 포기하고 아이들 키우는 데 헌신했어요. 가끔 속 썩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쁘게 잘 크는 걸 보니까 흐뭇했어요. 자신이 대견스럽게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 크고 나니까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내 곁을 떠나서 잘 찾아오지 않아요. 전화도 별로 안 해요. '에그, 자식도 크면 남이야!' 절로 탄식이 나와요. 허전함과 상실감마저 든다구요? .

 

이런 말이 (진리가) 하나 있더군요.

우리는...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들에 지배당하지만, 자신과 분리하는 것들은 지배하고 컨트롤한다.

(이 말에서, 동일시/identification 대신 '집착' 같은 단어를, 분리 대신 '초연(하게 대하다)' 같은 단어를 써도 무방하겠네요.)

 

우리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순간이나 시기에 가장 소중해 (때론, 절실해) 보이는 것을 자기 자신과 같은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커요. , 살면서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신이 주로 수행하는 역할, 혹은 자신의 주된 정신 방향이나 기능을 자신과 동일시해요.

 

자동차며 직장이며 자녀를, 성공이나 출세나 직위를, 아름다운 외모나 옷이나 액세서리를, 근사한 집이나 돈이나 하다못해 구두까지도... '나한테 중요한 것'이라 여길 수는 있는데, 그게 곧 <나 자신>이라 착각할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어떤 문제가 생기냐구요?

'나에게 아주 좋고 소중하고 절실한' 것들에 얽매여, 그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더 소중한 <>를 홀대하면서 그 <>가 한껏 펼 수 있는 것을 가로막는 셈이 되니까요. 게다가 <>가 없는 바에야 자동차며 자녀들이며 출세며 돈이며 예쁜 얼굴이며 정의를 위한 투쟁이며 교회 열심히 나가는 것 등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도 나오지 않았겠어요? (이 대목에서 자칫 곡해를 살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말이 길어지니까 일단 넘어가기로 하지요. ^^)

 

자기 안팎의 어떤 것을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한동안 즐겁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여기엔 심각한 단점이 있어요. <>에게 위험하기까지 해요.

 

먼저, 외적인 요소를 들어볼까요. 결론적으로...

직장을 잃는다고 해서 <>가 죽나요? (당장엔 힘들 수 있지만, 다른 직장을 찾으면 돼요.)

실패했다고 해서 <>가 사라지나요? (칠전팔기는 <>를 잘 간수할 때 가능하잖아요?)

자동차가 긁혔다고 해서 <>까지도 긁어야 (속상해하고 화내야) 하나요?

자식들이 '코빼기도 잘 안 비친다' 해서 원망할 필요가 있나요? 그들에겐 그들 삶이 있는 걸요. 새도 키워 놓으면 나가서 따로 둥지 틀잖아요? 그게 자연과 삶의 정상적인 흐름인 걸요. ', 그래. 어릴 때처럼 늘 곁에서 재롱 떨고 등 두드려 주기를 바랄 순 없어. 열심히 키워서 내보냈으니, 내 할 일은 다 했어. 이젠 나도 내 삶을 살아야지.'

자신의 주된 역할이나 기능을 계속 자신과 동일시하면...
결국엔 사는 게 힘들어질 수 있어요. 아니, 그러기가 십상이에요. 상실감이나 좌절감에 빠지기 쉽고, 그래서 위험하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죠.

 

인형을 끌고 어딘가로 나아가는 어린 아이

나이 들면서 체력이 달리는 운동선수, 젊었을 때의 미모가 시들어 가는 여배우, 졸업 후에 새로운 책임감에 시달리는 대학생, 치열하게 일했지만 어쩌다 실패한 사업가, 근사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재산가... 등이 힘들어하고 절망에 빠진다면, 그건 그들이 '전성기의 체력', '한창 때 미모', '학생 신분', '일이나 돈'을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이에요.

 

내적인 요소로 보자면, 자신의 머리나 (지력이나) 자기감정이나 몸 같이 자신의 특정한 일부와 동일시하는 경우에 일이 더 안 풀리고 삶이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왜냐구요? 왜냐하면... 흔히 하는 이런 말들이 반증이 될 수 있겠네요.

"머리만 믿고 까불다가 낭패를 봤어.'

"자기감정에 사로잡혀서 상황을 직시하지 못했어."

자신의 특정한 일부를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 자신이라 여기는 것은) 우리네 <진짜 나>에 본래부터 깃들어 있는 무한한 힘을 스스로 제한하는 셈이에요. (지금 우리 얘기는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한 토막이에요.)

그 결과, '어디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하든 늘 기껍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내가 요것밖에 안 되나',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야?'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 쉬워요. 그러면 우울해지지 않겠어요? 자칫 열등감에 시달릴 수도 있어요.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Assagioli

이건 다 <> 자체는 지극히 다양하고 심오하고 힘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한 <>의 일부만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진면목을 스스로 다 드러내지 않기 (혹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점을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Assagioli가 알아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과 명상을 결합하여 <psychosynthesis, 정신종합요법>을 만들어 냈어요. '동일시''분리'라는 용어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이론과 실습이 좀 많은데, 여기서는 '개인의 신체며 감정이며 지력과 분리하는' 실습을 하나 간략히 소개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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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곳에 홀로 편하게 앉아서 긴장을 푸세요. (이완 실습을 미리 해도 좋아요.) 

숨을 깊고 느리게 몇 번 들이쉬고 내쉬세요. (이완과 호흡 실습은 우리 블로그에 많아요.) 

다음에 아래 텍스트를 의미 새겨 가면서 자신에게 천천히 말해 주세요.

1.

나에게 몸이 있지만, 몸이 나는 아니다. 내 몸은 건강하거나 아플 수 있고, 피곤하거나 가뿐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상태가 나에게, <참된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내 몸이 내가 세상 살면서 인식하고 활동하는 데 소중한 도구임은 분명해. 하지만, 도구보다 더 큰 무엇은 아니야. 나는 늘 건강하도록 몸가축에 소홀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몸은 아니야. 나에게 몸이 있지만, 이 몸이 곧 는 아니다.

(그 다음엔 눈을 감고 1~2분 동안 뜻을 음미하면서 몇 번 더 비슷하게라도 되풀이하세요. 마지막 어구가 핵심이에요. 이건 요 다음 2번과 3번에서도 마찬가지에요.)

2.

나에게 감정이 있지만, 이 감정이 나는 아니야. 내 감정은 다양하고 변덕스럽고 때론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 감정은 사랑에서 증오로, 평온에서 분노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바뀔 수 있어. 하지만 내 본성과 내 진짜 천질은 바뀌지 않는다. <>는 언제나 그대로 나야. 이를테면, 분노의 파도에 휩쓸릴 때가 더러 있지만, 시간 지나면 그게 사라진다는 걸 난 알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분노가 아니다. 더 나아가, 내 감정이 <>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 내 감정을 내가 지켜보고 이해하면서 다스리고 활용하고 조화롭게 통합하는 법도 점차 배울 수 있어. 내 감정이 나는 아니야. 나에게 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이 곧 나는 아니다.

3.

나에게 마인드가 (마음이, 지력이) 있지만, 마인드가 나는 아니야. 내 마인드는 뭔가를 탐구하고 나를 표현하는 데 소중한 도구야. 하지만 그것이 내 본질은 아니다. 사상이며 지식이며 경험을 새로 얻을 때마다 내 마인드의 내용은 늘 달라진다. 가끔은 내 말을 안 듣기도 해.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인드가 나라고 말할 수는 없어. 마인드는 내 안팎의 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는 기관인 것이지 가 아니야. 나에게 마인드가 있지만, 이 마인드가 곧 나는 아니다.

 

이건... 우리한테 중요하긴 하지만 정작 <> 자신보다는 덜 중요한 것을 떼어내는 (분리하는) 단계에요. 물론, 그 다음에 동일시 단계가 이어지겠지요. 그건 별도로 다루겠어요.

 

결국 <분리> 작업이란 가장, 정말, 진짜 소중하고 본질적인 것과 그 아래로 중요한 것들을 구별하는 일이에요. 구분하고 판별할 줄 알면, 일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삶을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겠어요?

"마음에 너무 담아두지 마."

"뭐 사소한 일에 목숨 걸 일 있나!"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런 말들도 분리의 중요성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보리수 밑에서 명상에 잠기다

 

저 실습을 상황에 맞게 더 확장하고 변형할 수 있어요.

(지금 나에게 소중하고 절실한) 이 자동차가, 이 직장이, 직업이, 출세가, 성공이, 자녀들이, 부모가, 학업이, 발표가, 면접이, 돈이, 집이, 예쁜 얼굴이, 근육질 몸이, 옷이, 하다못해 이 구두까지도... <>인 것은 아니야. 절대 아니야. 

 

여기서 두 가지만 덧붙여야겠네요.

1.

노파심에서 먼저...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해서 일이나 자녀나 학업 등등에 소홀히 대해도 된다는 것은 정말로 절대 아니에요. 저렇게 한다면, 오히려 저 모든 것이 더 잘 될 거예요. 그 이유는... 저렇게 할 때 우리가 더 자유롭고 편해지며 크고 넓게 보게 되니까요.

"잡으려면 먼저 놓아주라" 하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겠어요.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서는 대신, 한 발짝 물러서고 승복하고 용인하고 받아들이기 같은 개념으로 저절로 이어지는 듯한데, 이 역시 우리가 따로 다룰 대목이에요.)

2.

'그렇다면, 그놈의 <>는 도대체 뭔데 돈이나 출세나 권력보다도 더 소중하다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드나요? ... 이건 제법 긴 얘기가 되겠어요. 이때의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만 안기는) '거짓된 나'<에고>가 아니라, 진정 <참된 나>를 가리킨다는 것만 우리가 일단 알아두지요. 그리고 그 안에 (우리 내면에!) 보물이 들어 있어요. (<낡은 궤짝의 비밀> 포스팅을 보면 좋겠어요.)

 

한창 때 미모로 대중의 사랑을 받다가 나이 들어 그 미모가 사라지면서 인기도 사라지자, 실망하고 좌절하던 끝에 아예 세상을 등진 여배우들이 나라 안팎으로 제법 있어요. 그들이 만약 '한창 때 미모'를 곧 자기 자신이라 여기지 않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닦았다면, 나이 들어서도 외려 더 꽃 파웠을 거예요. 예를 들어, 아프리카 아이들 돌보는 오드리 햅번...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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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이란 

 자신의 생각 위로 올라서는 것  

 

 

-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무래도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 

 

우리네 마인드는 활동의 도구요 수단이다. 그것은 특정 작업에 이용할 수 있고, 그 작업이 끝나면 내려놓게 돼 있다. 그게 마인드의 소명이다. 그런 만큼,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즉, 대다수 사람들이 하는 생각의 8할에서 9할쯤은 쓸데없이 반복되는 것일 뿐 아니라, 또 이 반복적인 생각의 대부분은 그 기능 장애와 종종 부정적인 성격 때문에 해롭기도 하다는 것. 이게 사실이라는 점은 자신의 마인드를 잘 관찰해 보면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무익하고 해로운 과정이… 생명 에너지가 심각하게 유출되는 원인이다.

 

깨달음이란, 에크하르트 톨레


이렇게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실 중독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중독 형태의 특징이 무엇인가? 아주 간단히 말해… 그걸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야. 대안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중독 상태가 우리 자신보다도 더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또 우리한테 거짓된 쾌감을 안기는데, 이 거짓된 쾌감이 나중엔 반드시 고통으로 바뀐다. 


- 우리는 왜 강박적인 생각에 중독되나?

 

왜냐하면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동일시하기 때문인데… 이건 우리가 자아감을 마인드의 내용과 움직임에서 끌어낸다는 뜻이다. 또 왜냐하면, ‘만약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게 될 텐데’ 하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조건에 입각하여 자신에 대한 심상을 형성한다. 이 허깨비 같은 자신을 <에고>라 부를 수 있다. 에고는 마인드의 움직임으로 이뤄지며, 끊임없는 생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에고>라는 용어를 여러 사람이 제각각으로 이해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에고란… 자신을 무의식중에 마인드와 동일시함으로써 생겨난 <거짓된 나>를 의미한다.

 

에고한테는 현재 순간이란 게 거의 없다. 그건 과거와 미래만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게 진실에 완전히 거꾸로 가는 까닭은… 에고 모드에서 작동하는 마인드의 기능에 문제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마인드는 과거를 생생하게 유지하는 데 늘 신경 쓴다. 왜냐하면, 마인드가 보기엔… “아, 과거가 없다면, 넌 도대체 누구야? 네가 있을 수 있겠어?” 

마인드는 계속 살아남고 미래에서 해방이나 충족 같은 것을 찾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미래에 투영한다. 흔히 이런 식으로 말한다. “언젠가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 난 행복하고 만족할 거야, 편안해질 거야.” 

 

에고가 현재와 관련이 있는 듯 보일 때조차도 에고가 보는 건 사실상 현재가 아니다. 즉, 에고는 과거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현재를 완전히 잘못 지각한다. 혹은, 마인드가 투사된 미래의 목표로 나아가는 수단 정도로 현재를 축소하기 일쑤이다. 자신의 마인드를 관찰해 보면, 이것이 <에고>의 작동 방식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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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에 이르는 열쇠는 현재 순간에 있다. 

그러나 마인드가 곧 자신이라 여기는 한, 그 현재 순간을 찾을 수 없다. 

 

- 난 분석하고 판별하는 능력을 잃고 싶지 않아. 더 명료하고 더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괜찮지만, 내 마인드를 잃고 싶지는 않아. 사유하는 재능은 우리한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야. 그게 없다면 우리는 그저 또 하나의 동물에 불과하지 않겠나? 

 

마인드가 우세한 상태는… 의식 진화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 단계로 긴급히 넘어가야 한다. 안 그러면, 계속 괴물로 커지는 마인드에 의해 우리가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생각과 의식은 동의어가 아니다. 

생각은 의식의 작은 측면에 불과하다. 

생각은 의식 밖에서 실재할 수 없지만, 의식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깨달음은 생각 위로 올라선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거나 동식물 수준으로 회귀한다는 뜻이 아니야.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사고력을 여전히 이용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집중적이고 효율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또 생각하는 마인드를 주로 실용적인 목적에 이용하면서도, 무의식적인 내면 대화에서는 벗어나 내적인 고요와 평온을 맛본다. 

 

마인드를 이용할 때, 특히 창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때, 생각과 고요 사이를, 마인드와 무념 사이를, 몇 분마다 오가면 좋다. (no-mind 상태인) 무념이란… 생각이 제거된 의식이다. 그렇게 해야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 생각에 진정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훨씬 더 광대한 의식 영역과 연결되지 못한 생각은 금방 빈약하고 무분별하고 파괴적인 것이 되고 만다.

 

마인드는 본질상 생존을 위한 장치이다. 다른 마인드들을 공격하고 방어하기,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분석하기 등은 마인드가 곧잘 해내지만, 그런 건 다 창의적인 것이 전혀 못 된다. 진정한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알든 모르든, ‘마인드가 없는’ 상태에서, 내면의 고요에 머물러서, 뭔가를 만들어 낸다. 그때 마인드가 창의적 임펄스와 직관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위대한 과학자들조차 그들의 창의성이 심적으로 고요한 시기에 번뜩였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미국의 가장 저명한 수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작업 방법을 알기 위해 전국적으로 조사한 결과 아주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다. 생각은 ‘부차적인 역할만 할 뿐인데, 그마저도 창의적 과정의 짧고 결정적인 마지막 단계에서만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아주 많은 학자들이 창의적이지 못한 까닭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을 멈추는지 모르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지구상의 생명이나 우리 몸이 만들어져 지속되는 기적은 마인드나 사고 활동의 결과가 아니다. 마인드보다 훨씬 더 큰 지능이 (혹은, 지혜가) 작동하는 게 분명하다. 크기가 1천 분의 1 인치밖에 안 되는 사람 세포 하나가 어떻게 6백 쪽짜리 책 1천 권에 해당하는 DNA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인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안에서 일하는 지혜가 얼마나 광대한지, 또 우리네 지식이 얼마나 초라한지 더 깨닫게 된다. 마인드가 이 내면의 지혜와 다시 연결될 때, 그건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된다. 그러면 그 자체보다 더 큰 뭔가를 제공한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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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당신과 당신 마인드는 같은 것이 아니야

 

깨달음에 가장 큰 장애물

 

-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한 거지가 어떤 거리에서 삼십 년 넘게 구걸을 해 왔다. 

어느 날 낯선 사람이 그 곁을 지나갔다. 

거지가 낡은 모자를 기계적으로 내밀면서 “동전 한 닢만 적선하십시오” 하고 우물거렸다.  

행인이 “나한테는 당신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군요” 대꾸하고는 “한데 거기 깔고 앉은 건 뭐지요?” 하고 물었다.   

“아, 이건 별것 아닙니다. 그저 낡은 궤짝이에요. 아주 오래 전부터 깔고 앉던 거지요.”  

“그 안을 한번 들여다보기는 했나요?” 

“아뇨,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러지 말고 한번 들여다보구려.” 행인이 적극 권했다. 

거지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귀찮다는 듯이 궤짝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궤짝 안에는 금덩이가 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니던가!

 

You are not your mid. - Eckhart Tolle


당신에게 줄 것 하나 없이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권하는 행인이 바로 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우화처럼 무슨 궤짝 속을 들여다보라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난 거지가 아니야!” 하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자신의 진정한 보물은 <존재>의 빛나는 기쁨과 여기서 나오는 깊고 확고한 평온인데… 이걸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재산이 아무리 많다 해도 거지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바깥에서 작은 쾌락이나 성취를 찾고 인정받기를 갈망하며 안전을 모색하고 사랑을 원한다. 한데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세상이 제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물이 정작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뭔가 초인적인 성취 같은 걸 떠올리게 하고, 우리네 <에고>는 그런 식으로 몰아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존재>와 하나 된다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일 뿐이다. 

이건 헤아릴 수 없고 불멸인 뭔가와 연결된 상태이며, 좀 역설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자신이면서도 또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무엇과 연결된 상태이다. 

이건 우리의 이름과 형태를 넘어서서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실체를) 찾는 것이다. 

 

이 연결을 느낄 수 없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이며 주변 세상과 분리됐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고립된 파편으로 인식한다. 
이때 두려움이 생기며, 자기 안팎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충돌이 일상사가 된다. 

 

깨달음을 ‘고통의 끝’이라고 간결하게 표현한 붓다의 정의가 정말 마음에 와 닿는다. 여기에 초인적인 것이라곤 없다, 안 그런가?

정의로서는 물론 완전하지 못하다. 깨달음은 고통이 아닌 것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고통이 없을 때 남는 건 무엇인가? 

 

이에 관해 부처는 말을 아끼는데, 그 침묵은 우리 스스로 헤아려 보라는 암시이다. 그는 부정적인 정의를 이용함으로써… 이 정의를 믿어야 할 무엇이나 초인적인 성취로 마인드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즉, 깨달음이 우리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자들은 깨달음이란 붓다가 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한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적어도 이승에서는 아니라고 믿는다.

 

- 당신은 <존재>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존재>란… 태어났다가 죽고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많은 생명 형태들 너머에서 늘 존재하며 영원한 ‘하나의 생명’이다. 하지만 존재는 모든 형태의 가장 안쪽에 보이지 않는 불멸의 본질로서 그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형태의 깊은 곳에도 있다. 즉, <존재>는 우리 각자의 가장 심원한 자아이자 실체로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거기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마인드로 포착하려 들지는 말라. 그걸 이해하려 들지 말라. 

마인드가 고요할 때만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현존하면서 <지금> 순간에 주의를 완전히 집중할 때 비로소 <존재>를 느낄 수 있지만, 마인드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존재>를 다시 또렷하게 인식하고 ‘그 느낌을 실감하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

 

- 당신이 쓰는 <존재>는 신(神)과 같은 뜻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신이란 단어를 안 쓰나?

 

신이란 단어는 수천 년 동안 오용되는 바람에 본래 의미를 다 잃었다. 난 그 단어를 쓴다 해도 아주 가끔만 쓴다. 내가 말하는 오용이란… 이 단어에 깃들어 있는 무한한 광대함과 신성한 영역을 한 순간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마치 자기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아는 것처럼 이 단어를 입에 올린다는 뜻이다.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자기네가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그렇게 한다. 이런 오용 때문에 “우리의 신만이 유일한 진짜 신이고, 너희 신은 가짜야”라거나 니체의 유명한 언급 “신은 죽었다” 같이 터무니없는 확신과 주장, <에고> 식의 망상 따위가 생기는 것이다. 

 

신(神)이란 단어는 닫힌 개념이 되어 버렸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아마도 허연 수염 달린 노인의 심상이 떠오르겠지만, 이건 우리 바깥에 있는 누군가나 무엇인가에 대한 심적 관념인 것일 뿐이다. 아, 그래, 이것이 남성이나 남성적인 것이라는 점도 거의 확실하다. 

 

신이나 <존재>는 물론이고 그 어떤 단어도 그 단어 이면의 형용키 어려운 실체를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단지 중요한 것 하나는… “단어가 가리키는 ‘그것’을 우리가 체감하는 데 이 단어가 도움이 되나, 아니면 방해가 되나?” 하는 점이다. 이 단어는 그 이면의 초월적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머릿속에 아주 쉽게 날아들어 우리가 믿는 어떤 생각이나 정신적 우상이 되는 걸까? 

 

<존재>라는 단어는 신이란 단어처럼 그 무엇 하나 명확히 밝히거나 알려주지 못한다. 하지만 <존재>라는 단어에는 열린 개념의 이점이 있다. 이 단어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것을 (그것의 본질, 역할, 의미를) 어떤 조건적이고 유한한 대상으로 축소시키지 않는다. 

 

<존재>를 심상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존재>를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질이며,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저런 사람이야’ 하면서 자신을 다른 무엇과 동일시하기 이전에 ‘내가 있다’고 실감하고 내 실재를 느낌으로써 즉각 다가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존재>라는 단어에서… <존재>를 체감하는 쪽으로 작은 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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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실체를 체감하는 데 가장 크게 방해되는 건 무엇인가?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즉, 생각이 집요하게 이어지도록 부추기는 마인드를 바로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잡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건 끔찍한 재앙인데, 이런 점을 우리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의 누구나 다 잡생각에 시달리니까, 이게 마치 정상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소음 때문에 내면의 고요한 영역을 찾기 어려워

그리고 이 그칠 줄 모르는 정신적 소음 때문에 우리는 <존재>와 불가분한 내면의 고요한 영역을 발견하기 어렵다. 또 이 소음 때문에 <마인드가 만든 거짓된 나>가 생겨나서 우리한테 두려움과 고통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부분은 잠시 뒤에 자세히 살펴보겠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언급을 내놓았을 때, 그는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발견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상 그건 가장 근본적인 착각을 드러낸 것이다. 즉, 생각을 <존재>와 같은 것으로 보았고, 자신을 생각과 동일시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강박적인 ‘생각꾼’은 자신이며 주변 세계와 확실히 분리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문제며 대립이며 충돌이 끊이지 않는,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마인드는 갈수록 더 분열되고 있다. 

 

깨달음이란… 흠 없이 온전한 상태, 하나가 되기 때문에 평온한 상태이다. 
깨달음이란… 삶이 ‘의식에 나타나고 드러난’ 측면인 이 세상에서 삶과 하나 될 뿐 아니라 우리네 가장 심원한 자아이며 ‘드러나지 않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은’ 삶과도 하나 되는 상태이다. 한마디로, <존재>와 하나가 됨에 깨달음이 있다. 
깨달음이란… 내 안팎으로 끊임없는 갈등이며 고통의 종식일 뿐 아니라, 또한 자기도 모르게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더 이상 노예처럼 얽매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야말로 얼마나 크나큰 해방이란 말인가! 

 

자기 마인드를 자신이라 여길 때… 개념이나 꼬리표, 형상, 단어, 판단, 정의라는 이름의 흐릿한 차단막이 생기고, 그래서 진정한 관계가 다 차단된다!

마인드와 동일시할 때… 나와 나 자신 사이에, 나와 내 동료들 사이에, 나와 자연 사이에, 나와 신(神) 사이에 이 차단막이 드리우고, 이 차단막 때문에 이른바 분리 망상이 생긴다!!

즉, ‘내가 있고 또 나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게 되니… 물질적인 외양과 개개의 형태들 기저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과 하나라는 사실 말이다. ‘잊는다’는 것은 이 일체감을 더 이상 자명한 실체로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과 하나임을 진실이라 믿을 수는 있지만, 그게 과연 진실인지는 알지 못한다. 

믿음이 위안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믿음에 얽매이지 않으며,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믿음이다. 

 

생각하는 과정은 병이 되었다. 질병은 상황의 균형이 깨질 때 생긴다. 이를테면, 신체 세포의 분열과 증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 과정이 신체 전반과 조율되지 않은 채 계속된다면 세포들이 급증하면서 병이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인드는 (머리, 지력, 마음은)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더없이 훌륭한 도구이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아주 파괴적인 도구가 된다.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마인드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대개 그걸 아예 이용하지 않아. 그 대신 마인드가 우리를 이용한다. 바로 이게 병이다. 우리는 자기 마인드가 곧 ‘나 자신’이라고 믿는다. 이건 망상이야. 이 도구가 우리를 점령했다.

 

- 그 말에 난 썩 동의하지 않아. 대다수 사람들처럼 나도 목적 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면서 내 마인드를 이용한다. 늘 그렇다. 

 

크로스워드 퍼즐을 푼다거나 원자탄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마인드를 이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개가 뼈다귀 핥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마인드는 어떤 문제에 매달리기를 좋아한다. 이 때문에 마인드는 십자말풀이를 하고 원자탄을 만드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다. 

이런 질문을 하나 해 보자. 

당신은 원할 때면 언제나 자기 마인드에서 벗어날 수 있나? 

마인드 ‘끄는’ 단추를 발견했나?

 

- 흠, 생각하기를 완전히 멈춘다는 뜻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아주 잠깐이면 몰라도. 

 

그렇다면 그건 마인드가 당신을 이용한다는 뜻이야.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했고, 그래서 마인드의 노예가 됐다는 것도 모른다. 이건 우리가 자기도 모르게 뭔가에 홀리고 난 뒤, 우리를 홀린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자유는… 우리를 점유하고 있는 실체인 ‘생각꾼’이 본연의 우리가 아님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이걸 알 때 그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생각꾼’을 지켜보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이 활성화된다. 

 

그러면 생각 너머에 무한한 지혜가 (혜심/慧心이) 있으며, 생각은 이 지혜의 미미한 일부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아름다움, 사랑, 창의, 기쁨, 내면의 평화 등 정말 중요한 것은 전부 마인드 너머에서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된다. 비로소 우리는 깨어나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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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The Power of Now

내 안에 있는 보물

(1) 당신 마음은 당신이 아니야!

삶의 법칙 30가지 (2-1)

당신이 환생했다는 징후 13가지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잠재의식을 통해 내 성격 알아보기

사람과 물건

관계에 고요와 평정의 공간 들이기 위해 경청을. 50

자신과 타인을 판단과 평가 없이 대하기 49

에고가 아니라 '참된 나'로 관계를 맺기 48

내면의 목표와 무위(無爲) 기법 44

물리적 형태들 세계에서는 행복과 불행이 같은 것 43

사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승복은... 40

고통의 몸체에 먹이 주지 않기 35

무자각 상태에서 벗어나기 12

<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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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순간의 힘  

 

일상에서 깨달음 얻기

 

Eckhart Tolle 지음

 

김성호 옮김

 

마인드 너머. 행성, 장미, 어린 왕자

 

차 례

 

옮긴이의 말

머리말

 

1장. 당신과 당신 마인드는 같은 것이 아니야 

 

깨달음에 가장 큰 장애물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깨달음이란 자신의 생각 위로 올라서는 것 

감정은 마인드에 대한 몸의 반응 

 

2장. 깨어 있는 의식: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현재에서 고통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과거의 아픔: 고통의 몸체 녹이기 

 고통의 몸체와 동일시하려는 에고 

두려움의 근본 원인 

<에고>가 완전함을 추구하는 방식

 

3장. <지금> 순간에 뿌리내리기 

 

자신을 마인드에서 찾지 않기

시간이란 망상을 떨치기

<지금> 순간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어

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기

심리적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심리적 시간의 광기 

부정성과 고통의 뿌리는 시간 속에 들어 있어 

당신의 생활 여건에서 삶을 찾기

문제란 전부 마인드의 망상이야

의식 진화에서 급격한 도약 

존재한다는 기쁨 

 

4장. <지금> 순간을 회피하려는 마인드의 술책 

 

<지금> 순간의 상실이 주된 망상이야

평범한 무자각과 심각한 무자각 

“그들은 뭘 추구하는 거야?” 

평범한 무자각에서 벗어나기 

불만과 불행에서 해방되기 

<지금> 어디에 있든, 거기에 온전히 있으라

인생 여정의 내적인 목적 

과거는 당신의 현존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5장. 현존하는 상태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거야

‘기다림’의 심원한 의미 

아름다움은 당신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순수 의식의 구현

그리스도: 당신의 신성한 현존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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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내면의 몸체 

 

<존재>란 당신의 가장 깊은 본질 

단어와 말 너머를 내다보기

자신의 보이지 않는 불멸의 실체를 찾기 

내면의 몸체와 연결하는 방법 

몸을 통한 변용

몸에 대한 수훈(垂訓)

내면에 깊이 뿌리 내리기

몸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용인하기 

<드러나지 않은 세계>와 연결 

노화 과정의 완화 

면역체계 강화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이동하기 

마인드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경청 능력 

 

7장. <드러나지 않은 세계>로 들어서는 들머리 

 

몸 깊숙이 침잠하기 

기(氣) 에너지의 원천 

꿈꾸지 않는 수면 

그 밖의 여러 들머리 

고요 

공간 

공간과 시간의 본래 속성 

의식적인 죽음 

 

8장. 깨달음 얻은 대인관계 

 

어디에 있든 <지금> 순간에 들어서기 

애증 관계 

파멸적인 의존성과 온전함의 추구 

의존 관계에서 깨달음 얻은 관계로 전환하기 

영적 실천으로서 상호관계 

왜 여성들이 깨달음에 더 가까이 있나

여성들의 집단적 아픔덩어리 해소하기 

자신과의 관계를 거부하기 

 

9장. 행불행 너머에 있는 평온 

 

좋고 나쁨 너머에 있는 최고선 

당신의 고달픈 인생 드라마를 끝내기 

삶의 비영속성과 순환

부정성을 활용하고 극복하기 

동정심의 본질

다른 질서의 현실을 향하여 

 

10장. 승복의 의미 

 

<지금> 순간 받아들이기 

마인드 에너지에서 영적 에너지로 승화 

대인관계에서 승복하기 

질병을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재앙이 닥칠 때

고통을 평온으로 바꾸기 

십자가의 길 

선택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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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 의식을 몸에 연결하여 '존재'에 뿌리 내리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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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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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계. 승복이라는 의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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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진동을 키우는 방법 21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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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현안에 관심  

 

"우리가 소통과 스피치를 연마하는 까닭은…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야!"

 

그렇습니다, 바로 그래요.

"아, 그래? 목소리를 잘 조율하고 소통과 스피치의 각종 스킬을 부지런히 실습해서 갖추기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야?!"

 

이런 의문을 품다 보면, 뭔가 채워야 할 과제가 더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뭔가 부족한 듯싶어요.

기법은 기법일 뿐, 그것 하나로는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기 힘들 겁니다. 아니, 그것 하나에만 능통하다면 외려 세상을 더 어지러운 것으로 만들게 될지도 모르죠. 

 

왜냐구요? 

왜냐하면, 궤변과 윤색이 판치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아, 말만 빤지르르하게 잘 하는 사람은 싫어!" 

이런 평판은 "No, thank you~" 아니겠어요? 

 

목소리 소통 훈련

 

잘 다듬은 목소리, 소통과 스피치의 테크닉 이외에 세상을 바꾸는 데 정녕 무엇이 필요할까요?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세상을, 사회를, 사물을, 사안을, 사람을 보는 눈! 올바른 안목, 아니겠습니까? 

 

우리 주변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필요가 있어요.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어떤 쪽으로 전개되며 어떤 귀결로 이어질지, 짐작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국제 관계 분야에 대한 글이며 뉴스 따위에 눈길 돌리는 이유와 목적은 딱 한 가지… 

'두루 안목을 넓히기 위함'입니다! (물론, 관점은 저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어요. 또, 그게 바람직한 양상일지도 모르겠구요.)

또 고전이며 교양 서적 등에 눈길 돌리는 것도 결국엔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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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중산층 기준의 요소는 이렇다고 합니다. (순서는 상관없습니다. 영국에서도 비슷해요.)

1. 악기를 하나쯤 프로 뺨치게 다룰 줄 아는가.
2. 운동을 하나쯤 프로 뺨치게 할 줄 아는가.
3. 집으로 지인들 초대해서 대접할 만한 요리 솜씨 하나쯤 확실히 갖추었는가.
4. 외국어를 한두 가지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아는가.
5. 어떤 곳에서 어떤 이들과 어떤 주제로든 막힘 없이 대화할 수 있는가. (독서, 경험, 사색 등)

 

(아파트 평수, 연봉, 현금 보유액 따위) 우리 한국의 중산층 기준을 이 자리에서 들먹이고 싶진 않습니다, ㅎㅎ (거기 어느 한 가지, 사람 냄새 풍기는 게 있나요?) 우리 사이트에서는 신언서판과 Mind stalking 이외에도 사회 현안에 관한 글을 자주 올리고 함께 생각함으로써 올바른 안목의 형성과 확장을 꾀하고자 합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자면, 저 프랑스 중산층 기준 요소에서 5번 항목에 해당하는 내공을 키우기 위함이라고 보면 딱 맞을 거예요. ^^ 

 

이런 내공은 우리 사회에서 다가올 대격변 시기를 크게 흔들림 없이, 평온하게 헤쳐 나아가는 데도 크게 도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더 나은 쪽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우리도 한몫을 거들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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