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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61

Point Counter Point (2) * * * 월터가 문을 닫고 시원한 밤거리로 나섰다. 연민과 회한을 안고 희생자의 모습을 피해 범죄 현장에서 달아나는 범죄자도 이보다 더 큰 안도감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거리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홀가분했다. 기억과 예상에서 벗어나 홀가분했다. 두어 시간 동안은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돼. 오로지 지금 여기서, 매 순간 그의 육신이 처한 곳에서만 홀가분하게 살 수 있게 됐다. 자유야! 그러나 그건 공허한 입찬소리였으니,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달아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 목소리가 쫓아왔다. “당신은 가야 해요.” 그의 범죄는 살인일 뿐 아니라 협잡이기도 했다. “가세요.” 그는 얼마나 점잖게 거부했던가! 끝에 가서 얼마나 너그럽게 동의했던가! 그건 가장 잔혹한 가장질이었다... 2021. 9. 27.
Point Counter Point (1) 올더스 헉슬리 연애 대위법 Aldous Huxley POINT COUNTER POINT (First published in 1928) 참고: *대위법 (counterpoint) - 서양 음악의 기본 원리로, 독립성이 강한 복수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기법. 각 성부(聲部)가 명료하게 식별될 수 있는 독립적인 선율을 지니며 여러 성부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해 조화를 이룬다. CHAPTER 1 “늦지 않게 올 거지요?” 마저리 칼링의 목소리에 불안이 감돌았다. 애원조가 배어 있었다. “응, 늦지 않을 거요.” 월터가 대꾸하면서도 늦을 게 분명하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 목소리는 그를 짜증 나게 했다. 그건 모음을 좀 길게 빼면서 느긋한데다가 지나치게 차분했다. 불행에 처해서도 말이다. “자정 넘.. 2021. 9. 27.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초기 단계에서 수렝의 치유는 암흑으로부터 ‘행복하고 건강한 의식’으로 이동하는 데 있지 않았다. 이 건강한 의식은 인간 마인드가 절대자의 마인드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정말 누구인지 문득 인식할 때 다가온다. 한데 그는 그저 하나의 병적 상태에서 다른 병적 상태로 옮겨갔을 뿐이며, 그 상태에서 ‘특별한 은혜’는 이전에 있던 특별한 슬픔처럼 평범해진 것이다. 이런 점은 언급해야겠다. 즉, 병고에 가장 시달린 시기에도 수렝은 기쁨의 찰나를 여러 번 경험했으며, 그럴 때마다 저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께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이라고 짧게나마 확신했다는 점. 기쁨의 번쩍임이 이제 더 늘어나고, 그런 확.. 2019. 7. 21.
루덩의 악마들 11편 5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일본 임제선 창시의 주요 인물인 남포소명은 이렇게 설파한다.   「눈먼 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마음에서 부처가 자신의 황금 입술에서 단어들을 농담조로 흘렸다. 그 뒤로 하늘과 땅이 뒤얽힌 말 덤불로 가득 찼다.」   이 덤불들이 극동에서만 자란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가지고’ 왔다면, 그건 그분과 그분 후계자들이 그들 통찰력을 말로써 구체화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말들처럼, 기독교적 언급들은 때론 너무 공격적이고 때론 너무 개괄적이고 불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늘 구구한 해석의 여지를 많이 허용한다.   이런 가.. 2019. 7. 21.
루덩의 악마들 11편 3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Chimin)     몇 번이나 해가 바뀌면서 고통의 양상도 이모저모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결코 가시지 않았다. 그는 그걸 이지적으로 알았다.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하중으로, 신의 심판의 무게로 느꼈다. 그 압박을 견딜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건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느낌은 자꾸만 나타나는 환영들 때문에 더욱 굳어졌다. 그 환영들이 어찌나 생생하고 진짜 같은지, 정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그 자신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거개가 그리스도의 환영이었다.   그러나 구세주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의 그리스도였다. 가르치는 그리스도나 수난 겪는.. 2019. 7. 21.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Chimin) 11    비극에 우리는 참여하고, 코미디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비극의 저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 속에 있다고 느낀다. 독자나 청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코미디에서는 창작자와 문학적 피조물 간에, 구경꾼과 구경거리 간에, 일체화가 전혀 없다. 작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에 투사하지 않으며 관객도 그들과 거리를 둔다. 작자는 바깥에서 보고 판단하고 묘사한다. 관객 역시 바깥에 머물면서 작자가 묘사한 것을 관찰하고 작자가 판단하는 대로 판단하고 코미디가 꽤 괜찮다면 웃음을 터뜨린다.    순수 코미디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뛰어난 코미디 작가들이 혼합된 코.. 2019.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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