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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젊은 시절 모습

 


11

 

 

  비극에 우리는 참여하고, 코미디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비극의 저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 속에 있다고 느낀다. 독자나 청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코미디에서는 창작자와 문학적 피조물 간에, 구경꾼과 구경거리 간에, 일체화가 전혀 없다. 작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에 투사하지 않으며 관객도 그들과 거리를 둔다. 작자는 바깥에서 보고 판단하고 묘사한다. 관객 역시 바깥에 머물면서 작자가 묘사한 것을 관찰하고 작자가 판단하는 대로 판단하고 코미디가 꽤 괜찮다면 웃음을 터뜨린다. 

 

  순수 코미디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뛰어난 코미디 작가들이 혼합된 코미디 장르를 택하는 것이며, 거기서는 동일시에서 밀어내기로, 또 그 반대로 초점이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순간에 우리는 그저 보고 판단하고 웃기만 한다. 그러다가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지켜보는 대상에 불과했던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나아가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관객들한테서 늘 밀어내기 반응을, 즉 순전히 코믹한 효과를 야기하는 불행한 사람 축에 들었다. 자신이 겪은 큰 고통에 독자들 공감을 사기 위해 고백 서신을 끊임없이 썼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 서신들을 오늘날 우리가 읽으면서 가련한 그녀를 코믹한 형상으로 여기는 까닭은 그녀가 철저하게 배우 같은 인생을 살았으며, 배우로서도 거의 늘 자신한테마저 정직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의 고백을 행하는 ‘나’는 때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잡탕이고 때론 악귀 들린 여인들의 여왕이요 때론 제 2의 테레사 성녀이며, 또 때로는 연기를 다 걷어치운 채 영악하고 일순간 진실한 젊은 여인, 자신이 누구이며 다른 더 공상적인 인물들과 어떻게 결부돼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야 응당 없었겠지만, 그러면서도 코미디 기법을 죄다 동원했으니, 한 마스크에서 다른 얼굴로 급전, 지나치게 과장된 언행, 자신의 진짜 욕망을 아주 단순하게 합리화하는, 경건하면서도 장황한 선동 따위가 그것이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의 위선

 

  게다가 수신자들이 다른 쪽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생각지 않고 제 생각만 담은 편지를 수없이 써 보냈다. 예를 들어, 그랑디에 공소장에서 우리는 원장수녀와 몇몇 수녀가 후회하는 마음에 자기네 진술이 완전히 거짓이라며 철회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데, 허영심과 자만, 냉담함으로 채색된 진부한 공언이 가득한 자서전에서 자신의 가장 큰 범죄, 무고한 사람을 고문과 화형으로 몰아간 악의적인 거짓 증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명성을 안긴, 이 끔찍한 스토리 전반에서 미더운 일화를 단 하나도 들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이며 지은 죄에 대한 공개적인 참회 따위 말이다. 

  그보다는 로바르데몽과 카푸친회 수사들이 “당신의 통회는 악마들의 간책이고, 당신 거짓말은 거짓이 아니라 신성한 진실이오!” 하는 냉소적 장담을 믿는 쪽으로 돌아서자고 작심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녀가 이 사건에 대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한다 해도, 악마의 제물이었다가 하나님 기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필히 손상될 터이다. 잔느는 기이하고 비극적인 사실들은 은폐하면서 자신을 과장되고 허구적인 인물로 만드는 쪽을 택했다. 이야말로 코미디의 특성이 아니고 뭐겠는가.  

 

 장 조셉 수렝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은 삶의 여정에서 어리석고 무분별하고 심지어 괴기한 것을 많이 생각하고 쓰고 행했다. 그러나 그의 서신들과 회고록을 읽은 사람 누구한테든 그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형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괴상하고 어떤 면에서는 마땅하다 싶어도) 그가 겪은 고통에 우리는 금방 공동 참여자가 되니까

  그가 내면에서 꾸밈없이 자신을 알았던 것만큼 우리는 그를 안다. 그의 고백을 행하는 ‘나’는 언제나 장 조셉일 뿐이다. 그의 고백은 진실한 것이라 믿을 수 있다. 가련한 잔느처럼 자신을 몽상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녀처럼 비밀을 흘리고 숭고한 것을 우스꽝스럽고 익살맞은 것으로 바꾸며 끝을 맺는, 사람들 눈길 끌어 모으기에 급급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수렝이 거쳐 간 길고 험한 십자가 길의 시작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다. 이 사람은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니고 영적 완성이라는 최고 이상에 고무됐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잘못 해석한 교리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가뜩이나 허약한 체질이 아주 빨리 망가지고 불안정한 기질이 혹사당했다. 루덩에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아픈 사람이었다. 거기서 다른 엑소시스트들이 과도하게 적용한 악마 숭배를 저지하려 애썼지만, 결국 그 자신이 근본악이라는 생각과 사실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악령의 제물이 됐다

 

예수회 수사 장 조셉 수렝

 

  악마들은 자기네와 삶이 아니라 죽음을 놓고 싸우는 사람들의 맹렬함에서 힘을 빨아들인다. 광란에 빠진 수녀들과 악의에 찬 엑소시스트들은 악령을 더 키웠을 뿐이다. 악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작동하면서 대개는 의식적으로 억제되던 경향이 (엄격한 종교적 규율이 감응하는, 방종과 신성 모독의 경향이) 표면으로 튀어나왔다. 

  랑탕과 트랑킬은 ‘벨리아르에 지배돼 수족이 묶여’ 발작하다가 죽었다. 수렝도 그렇게 자초한 시련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각주:1]   

 

  루덩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엑소시즘을 시행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틈틈이 많은 서신을 썼다. 그러나 경솔한 친구인 아티시 신부에게 보낸 서신에서만 은밀한 속내를 드러냈다. 명상과 고행, 마음 정화 등이 그가 다룬 일반적 주제였다. 악마들과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았다. 한 수도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당신의 정신기도에 관해 말하자면 어떤 주제를 미리 정했음에도 거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보기엔 나쁜 징표가 전혀 아닙니다. 어떤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에 임하시라고 조언합니다. 

  예전에 당신이 얘기 나누고 소일을 돕기 위해 다레락 부인한테 들르곤 하던 때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때 당신은 그녀와 아무 이야기나 다 태평하게 주고받았지요. 무슨 얘기를 할까 미리 정하지 않고서도 서로 즐겁게 대화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친밀함을 만들고 키우겠다는 평범한 의도를 가지고 그녀한테 갔습니다. 하나님께도 바로 그런 식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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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친구한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쓴다. 

  「우리 소중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하자는 대로 하시게. 그분께서 역사하실 때는 영혼이 제멋대로 놀지 않아야 하네. 그렇게 하시게, 그분의 사랑과 권능의 빛에 자신을 드러내시게. 분주한 근심걱정일랑 한 편에 밀어두게나, 그런 것에는 정화를 요하는 결점이 많으니까.」 

 

  그렇다면 영혼이 그 빛을 받아야 하는 이 사랑과 권능이란 무엇인가

  「이 사랑이 하는 역사는 부수고 깨고 무너뜨리고 나서 새롭게 하고 다시 만들고 소생시키는 것일세. 이 역사는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진정 달콤하네. 더 무서울수록 더 바람직하고 더 매혹적이야. 바로 이 사랑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송두리째 내놓아야 하고. 이 사랑이 자네를 사로잡고 소멸시킬 정도로 자네 안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 난 행복하지 못할 것이야.」 

 

  수렝의 경우엔 자신을 소멸하는 과정이 막 시작됐을 뿐이다. 1637년 거의 내내, 또 1638년 초 몇 달 동안 계속 아팠다. 하지만 간간이 차분한 상태가 찾아들기도 했다. 아직 견딜 만큼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꾸 벗어나는 게 병이었다. 이십오 년 뒤 그가 <다른 삶의 연구의 실험 과학>에서 이렇게 쓴다.

  「이 강박 관념에는 비상한 정신적 활기와 쾌활함이 수반됐는데, 바로 그 덕분에 인내하며 만족스럽게 이 멍에를 이겨낼 수 있었다.」

 

  사실, 지속적인 집중은 이미 불가능했다. 공부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생 초기에 쌓은 지식으로도 눈부신 글을 간간이 써 내기에는 충분했다. 제 뜻을 자유로이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모르고 입을 뗄 수나 있을까 염려하면서 죄수가 단두대에 오르는 심정으로 설교단에 오르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느꼈다. 

  「내면 감정의 출렁임과 강한 은혜의 열기를. 그 은혜가 하도 강해서 강력한 목소리와 생각을 가지고 가슴을 트럼펫처럼 확 쏟아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어딘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도관을 따라 힘과 지혜가 내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다가 급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파이프가 막히고 계시의 급류가 말랐다. 질환이 새로운 형태를 띠었다. 그건 하나님과 제법 정상적으로 접촉하는 영혼의 발작적인 강박 관념이 아니라 그 접촉과 빛을 완전히 차단하면서 사람을 본래보다 더 작은 뭔가로 웅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슷한 현상을 겪은 한 수녀에게 1638년도에 보낸 많은 서신들에서 수렝이 자기 질환의 새로운 단계를 묘사한다. 

 

  그의 고통은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기도 했다. 며칠이고 몇 주일이고 계속되는 고열 속에서 허우적대며 극도로 쇠약한 상태에 빠졌다. 어떤 때는 국부 마비 같은 것에 시달렸다. 아직은 수족을 좀 놀릴 수 있지만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고 종종 통증까지 수반됐다. 

  가장 작은 움직임도 고문이요, 가장 사소하고 평범한 일도 헤라클레스의 노동이었다. 예를 들어, 법의에 달린 호크 하나 끄르는 데도 두세 시간이 걸렸다. 옷을 다 벗는 것은 이미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거의 이십 년 동안 옷을 입은 채 잠잤다. 그러나 (지독히 혐오하는 이가 꼬이지 않게 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 셔츠는 갈아입어야 했다.  

 

  「속옷 갈아입는 일이 아주 고통스러웠다. 어떤 때는 지저분한 셔츠를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느라고 토요일 밤부터 주일 아침까지 날을 새기도 했다. 통증이 어찌나 심했든지, 그래도 가냘픈 행복을 찾는 듯싶다면 그건 언제나 목요일 이전이었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셔츠 갈아입을 생각을 하면서 목요일부터는 두려움에 떨었으니까.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이 고문을 다른 그 어떤 고통과도 기꺼이 바꾸었을 것이다.」  

 

  음식 먹는 일도 옷을 입고 벗는 것 못지않게 힘들었다. 셔츠는 일주일에 한 번만 바꾸었다. 그러나 고기를 자르고 포크를 입에 올리고 컵을 쥐고 기울이는 시지포스의 노동은 날마다 겪어야 하는 시련이었다. 입맛이 전혀 없는데다가 먹은 것을 다 토하거나, 그게 아니면 지독한 소화불량에 시달릴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 

 

  의사들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다. 사혈을 하고 하제를 써서 장을 세척하고 온욕을 처방했다. 다 소용없었다. 여러 증상은 분명 신체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원인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환자의 썩은 피와 병든 체액이 아니라 정신에 있었다

 

  (악마들이 떠남으로써 정신이 마귀 들림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 한 레비아탄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이제 싸움은 하나님이라는 이데아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이 ...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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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린도후서 6:15). 4대 악마, 사탄, 바알세불, 벨리아르, 몰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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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만년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작하자 일이 분 뒤 발람이 나타났다. 사지를 뒤틀고 경련을 일으키고 하느님을 거세게 모욕하는 말이 나오고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잔느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곧 임신 막달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어서 가슴도 복부만큼이나 산더미처럼 부풀었다. 엑소시스트가 각 부위에 성유물을 대자 부풀어 오른 게 가라앉았다. 

  킬리그루가 한 발짝 다가서서 수녀의 손을 쥐어 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맥박을 짚어 보니, 느리고 희미했다. 원장수녀가 그를 밀치고는 제 두건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거의 배코 치다시피 한 머리가 금방 드러났다. 그녀가 두 눈알을 굴리며 혀를 쑥 빼물었다. 혀는 엄청나게 부풀었는데 색깔이 검으며 모로코가죽처럼 바닥이 우둘투둘했다. 수렝이 발람에게 성체에 경배하라 이르면서 그녀를 풀어주었다. 잔느가 장의자에서 마룻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오랫동안 발람이 완강하게 버텼지만, 결국에는 소정의 의식을 이행했다. 킬리그루의 기록을 계속 보자. 

 

  「그러고는 바닥에 눕자 허리를 뒤로 활처럼 꺾고 발뒤꿈치와 배코 친 맨머리로 몸을 지탱하면서 탁발수사를 따라 마룻바닥을 돌아다녔다. 또 다른 기이하고 부자연스러운 포즈들도 많이 취했는데, 그런 자세를 난 여태 본 적도,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여긴 적도 없었다. 게다가 이건 잠깐 취하다 만 동작이 아니라 한 시간 넘게 계속됐다. 그럼에도 그녀는 호흡 하나 흩트리지 않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내내 혀를 밖으로 빼물고 있었는데, 그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팽창돼 한순간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마치 그녀를 산산조각 내는 듯한 공포의 비명이 나온 뒤 줄곧 한 단어만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바로 “요셉”이었다. 그 소리에 성직자들이 다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건 신의 표시야, 저 자국을 봐!” 

  그녀가 내뻗은 손을 보면서 한 수도사가 자국을 찾았다. 몬태규 씨와 나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그녀 손바닥에서 다소 불그레한 색깔이 짙어지며 정맥을 따라 1인치쯤 반점들이 나타나더니 글자가 뚜렷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건 그녀가 읊조린 것과 같은 단어, ‘요셉’이었다. 이 자국은 악마가 약속한 것이라고, 예수회 수사가 말했다. 떠날 때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는…」 

 

  엑소시즘 과정은 아주 상세하게 기록됐으며 매번 담당 엑소시스트가 그 문건에 서명했다. 그런 문건에 몬태규가 영어로 추신을 달고, 거기에 그와 킬리그루가 자기네 이름을 적었다. 사실, 킬리그루는 서신을 유쾌한 문투로 맺는다. 

  「이런 일을 자네가 다 믿을 것이라 기대하네. 세상에는 자네의 겸손한 친구 토마스 킬리그루보다 더 뻔뻔한 자들과 허풍쟁이들이 많이 있으니 말일세.」 

 

  시간이 흐르면서 손바닥에는 요셉 이외에 예수, 마리아, 살레의 프랑수아 이름자도 나타났다. 처음 나타날 때는 발갛던 이름자들이 한두 주일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그때마다 잔느의 천사가 다시 또렷하게 만들곤 했다. 

  이 현상은 1635년 겨울에 시작돼 1662년 성 요한의 날까지 불규칙하게 계속됐다. 그리고 그날 이후 수렝이 기록한 것처럼 「그걸 보려고 끈질기게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주님께 열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건져 달라고 원장수녀가 정성껏 기도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모를 이유로」 이름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수렝과 동료 몇몇, 또 대다수 일반 구경꾼들은 이 기발한 성흔 형태를 전능자께서 내린 특별한 은혜라고 믿었다. 하지만 더 교육받은 동시대인들은 이 기적에 의문을 품었다. 애초부터 마귀 들림이라는 것도 믿지 않은 마당에 이제 신비한 철자들의 거룩한 근원 따위는 더더욱 안 믿었다

  그들 중 몇몇은, 예를 들어 존 메이틀랜드 같은 이는, 이름자를 산성 물질로 손바닥에 새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다른 이들은 색깔 넣은 전분으로 표면에 선을 넣을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많은 이들은 철자들이 양손이 아니라 왼손에만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오른손잡이가 써 넣기에 더 편하지 않겠어? 

 

  잔느 수녀의 전기를 펴낸 가브리엘 레게 박사와 질 투레트 박사는 둘 다 샤르코[각주:1]의 제자인데, 자기암시에 의해 손바닥에 글자가 생겼다고 믿는 편이며 히스테릭한 낙인의 현대적인 사례 몇몇을 인용하여 그런 관점을 옹호한다. 여기서 덧붙일 것은 많은 히스테리 환자의 피부는 특별한 민감성을 지닌다는 점. 그런 사람의 피부는 손톱으로 살짝 긁기만 해도 붉은 자국이 생겨서 몇 시간이고 없어지지 않는다. 

  자기암시에 의한 것이든 의도적인 속임수이든 혹은 그 둘의 혼합이든 우리에겐 각자 나름대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 그 두 가지가 다 섞인 쪽으로 기운다. 낙인 혹은 성흔은 잔느 스스로도 진정 기적 같은 것이라 여기기에 충분할 만큼 자연스레 생겼을 터이다. 만약 그게 진짜 기적이었다면 대중에게 더 교훈이 되고 그녀 자신에게는 더 신뢰할 만한 것이 되게끔 그 현상을 개량해도 무리가 없었을 텐데. 

  그녀 손바닥에 나타난 거룩한 이름자들은 월터 스코트의 장편소설들과 비슷한 것이었으니, 달리 말하면, 사실에 기초하되 상상력과 가공 기법에 훨씬 더 많이 신세진 것이었으리라.

 

  (내막이야 어떠하든) 잔느 수녀는 이제 본인만의 고유한 이적의 소유자가 됐다. 그건 그냥 개인 차원의 것이 아닐 뿐더러 장기간에 걸친 것이었다. 거룩한 이름자들이 희미해지면 그녀의 천사가 나타나서 즉각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명한 방문객들이나 이적에 갈급한 보통 구경꾼들한테 언제든 보여줄 수 있었다. 이제 그녀 자신이 걸어 다니는 성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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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카론이 1636년 1월 7일 그녀를 떠난 뒤 베게모트만 남았다. 그러나 이 신성 모독의 악령은 다른 악마들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억척같았다. 엑소시즘도 고행도 묵상기도도 다 소용없었다

  의지가 없고 훈련되지 않은 정신에 신앙이 강요되다 보니 역작용이 나타났다. 즉, 정신이 감응(유도)적인 반발을 일으킨 결과 외려 거칠고 충격적인 불신앙으로 접어들었고, 그리하여 그 인격에 강요된 진리들을 다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정과 저항은 악령이 되어 잔느의 무의식에 둥지를 튼 채 혼란과 스캔들을 일으키며 떠나지 않으려 했다

 

악령을 내쫓는 엑소시즘 시행 하의 수녀

 

  수렝이 열 달 넘게 씨름한 끝에 마침내 10월에 베게모트를 완전히 격퇴했다. 수도회 관구장이 그를 보르도로 소환하고, 다른 예수회 수도사가 원장수녀를 감독하게 됐다. 

 

  레쎄 수사는 이른바 ‘단순한 엑소시즘’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잔느 수녀 말에 따르면, 그는 엑소시즘 중에 악마들이 성체를 우러러 받드는 장면을 가장 좋아했다. 수렝이 ‘말을 공격해서 기사를 끌어내리려 했다’면 레쎄는 기사를 직접 대놓고 공격했다. 말의 감정에 개의치 않고, 말을 달래려는 시도도 전혀 하지 않고

  원장수녀의 기록을 보면 「어느 날 저명인사들이 모이자, 수도사가 그들의 영적 복리를 위해 엑소시즘을 시행하기로 했다.」 원장수녀가 자기는 몸이 아픈데 엑소시즘을 거치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영적 지도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엑소시즘을 시행하고 싶어 안달이 난 수사는 나한테 용기를 내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엑소시즘을 시작했다.」 그녀가 평소에 하던 묘기를 잘 해냈는데, 그 결과 고열에 허리 통증이 심하게 도져서 자리에 눕게 됐다.

 

  위그노이지만 도시에서 최고로 꼽히는 의사 팡통을 불렀다. 그녀한테 사혈을 세 번 하고 약제를 주었다. 효과가 있어서 병자가 「속을 다 비우고 더러운 피를 쏟았다. 그게 이레나 여드레쯤 갔다.」 상태가 호전됐다가 며칠 지나 다시 악화됐다. ‘레쎄 수사는 엑소시즘을 재개할 만하다고 여긴 모양이지만 난 극심한 구역질과 구토에 시달렸어.’ 열이 다시 오르고 옆구리 통증이 극심해지고 각혈이 시작됐다. 

  다시 부름 받은 팡통이 흉막염이라고 진단했다. 이레 동안 일곱 번 사혈하고 관장을 네 번 했다. 그런 뒤 그는 병세가 치명적이라고 알렸다. 그날 밤 잔느가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가 하는 말. 넌 죽지 않을 거야, 하지만 하나님이 너를 일부러 지극히 위험한 상태까지 데려가실 텐데, 네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회복하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권능을 똑똑히 보이기 위함이지. 

 

  이틀 동안 상태가 악화되기만 하고 기력도 거의 쇠한 듯 보였기에 2월 7일 죽어가는 여인한테 병자성사를 거행했다. 그 동안에 사람을 보내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그녀가 기도를 읊조렸다. 

  “주여, 당신께서는 이 병을 고치심으로써 당신 권능의 특별한 은혜를 보이고자 하심을 내가 잘 알고 있나이다. 이것이 그런 경우라면, 의사가 볼 때 가망 없다고 판단할 만한 상태로 나를 이끄소서.” 

 

  팡통이 도착해 병자를 살펴보고 진단을 내렸다. 한두 시간 뒤에는 숨이 끊어질 겁니다. 그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서 그때 파리에 머물고 있던 로바르데몽에게 보낼 보고서를 썼다. 

  맥박이 불규칙하고 복부가 비정상적으로 팽창돼 있으며, 관장은 물론이고 그 어떤 치료법으로도 소용없을 정도로 쇠약한 상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고통’을 덜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녀에게 작은 좌약을 하나 삽입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낱 완화제일 뿐이기에 다른 뭔가를 기대해선 안 되지요. 병자는 임종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섯 시 반 잔느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자신의 천사를 보았다. 천사는 기다란 금발 고수머리를 휘날리는 18세 매혹적인 젊은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수렝의 말에 따르자면, 이 천사는 앙리 4세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손자요 세자르 방돔의 아들인 보포르 공작과 똑 닮았다. 이 왕자는 악마들을 보려고 얼마 전 루덩에 왔었는데, 어깨까지 늘어진 금발이 원장수녀한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천사에 이어 성 요셉이 나타나더니 그녀 오른편 옆구리에, 통증이 극심한 부위에, 손을 얹어 무슨 기름을 발라 문질렀다. ‘그러자 난 정신을 차리고 완전히 회복됐다.’ 

 

  (그건 또 하나의 이적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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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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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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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an Martin Charcot (1825-1893) - 프랑스의 의사, 신경병 학자, 현대 신경학의 창시자. 히스테리 치료에 최면 기법을 이용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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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그가 펴놓은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졌다. 이야말로 징후야! 파리라니, 그것도 호두알만한 크기! 바알세불이 파리들의 명령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러가라! 성스러운 수난자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랑탕이 넘실거리는 화염 위로 소리쳤다. 

  파리가 기이하게 큰 소리를 윙윙 내며 날개 쳐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뉴스 데이의 이름으로…” 

 

The Devils of Loudun 1634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그 대신 발작하듯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열한이 숨 막혀 죽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는 거야! 사탄의 마지막 간계를 짓누르려고 랑탕이 연기 속으로 성수를 끼얹었다. 

  “물러가라, 불 뿜는 괴물아! 이 성수가 사탄의 요술을 깨부술 것이야!” 

  그게 먹혀들었다! 기침이 그쳤다. 단말마의 비명이 한 번 더 울리고는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수도사들이 경악스럽게도 화염 한복판에서 희끗거리는 물체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 

  “Deus meus, miserere mei Deus.”[각주:1]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내 적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발작적인 기침이 몇 번 더 나왔다. 곧 이어서 기둥에 묶은 밧줄이 사라지고 희생양이 이글거리는 통나무들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불길이 여전히 날름거리는 가운데 수사들이 계속 성수를 뿌리며 특유의 가락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갑자기 교회 첨탑에서 비둘기 떼가 날아 내려 넘실거리는 화염과 연기 기둥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새떼를 향해 궁수들이 미늘창을 흔들고 랑탕과 트랑킬이 성수를 끼얹기 시작했다. 하지만 헛수고. 비둘기들은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연기 속으로 뛰어들고 불길에 날개를 그슬리며 뱅뱅 감돌기만 했다. 

  양 진영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주임신부의 적수들은 새들이 악마 군단임이 확실하며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고 떠들었다. 주임신부의 친구들은 비둘기들이 성령의 엠블럼이요 그가 결백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그것들이 인간과 다른, 그저 저희 본능에 따르는 비둘기 떼였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은 듯싶다

 

  장작불이 다 수그러들자 형리가 유해를 삽으로 떠서 나침반의 각 기본 방위마다 한 삽씩 흩뿌렸다. 그러자 군중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손가락 데어가며 뜨거운 가루를 뒤적이면서 이빨과 머리뼈며 골반 뼛조각들과 불탄 살점으로 보이는 꺼먼 덩어리 따위를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몇몇은 그저 기념품 사냥꾼인 것이 분명하지만, 대다수는 행운을 안기거나 미지근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부적으로, 두통이나 변비나 누군가의 원한을 막아주는 호부로 삼기 위해 성유물을 찾았다

  이 시커먼 물건들은 주임신부가 결백하든, 아니면 그에게 뒤집어씌운 죄를 정말 범했든 상관없이, 기적 같은 효능을 지닐 것이야! 

 

  이적을 행하는 힘은 성유물의 원천이 아니라 그것이 얻은 평판에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 존재들 중 일부는 광고만 잘 돼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든 건강이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루르드[각주:2]부터 마법에 이르기까지, 갠지스 강에서부터 특허 의약품이며 에디 부인에 이르기까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각주:3]의 이적 행하는 팔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보고 숭배하도록 제프리 초서[각주:4]의 면죄부 판매인이 유리잔에 넣어 다닌 ‘돼지 뼈다귀들’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만약 수도사들 말처럼 그랑디에가 마법사였다면, 아주 좋지. 마법사 유해에는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단 말이야. 만약 주임신부가 무죄였다고 해도 괜찮아, 그는 수난자가 되고 유해는 성스럽게 여겨질 거야. 

  잠깐 새 유해가 다 사라졌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지독하게 피곤하고 목도 마르지만 주머니에 두둑하게 채운 성유물에 좋아하면서 마실 것과 신발 벗을 기회를 찾아 각자 흩어졌다.

 

  그날 저녁 아주 짧은 휴식과 아주 가벼운 요기 뒤에 수도사들이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다시 모였다.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행하자, 그녀가 적당한 발작 상태로 들어서서 랑탕 수사 물음에 대답했다. 그 검은 파리는 바로 바루크였어, 주임신부와 사이좋은 악마 말이야. 

  한데 어째서 바루크가 감히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진 것이지? 

 

엑소시즘을 받은 원장수녀

 

  잔느가 특유의 곡예 동작을 뽐내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가 세우고는 마침내 답변했다. 바루크는 그 책을 불속에 내던지려고 한 거야. 

  그건 다 그럴 듯하게 들렸고, 그러자 수도사들이 일단 엑소시즘을 여기서 멈추고 다음날 아침 중인환시 하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수녀들을 성 십자가 교회로 데려갔다. 관광객들이 아직 도시에 많이 남아 있던 터라 교회가 인파로 미어터졌다. 원장수녀에게 들붙은 악마를 불러냈다. 평범한 의식이 끝난 뒤 원장수녀는 자신이 이사카론이며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악마라고 밝혔다. 내 안에 있던 다른 악마들은 다 지옥으로 갔어, 요란한 파티로 그랑디에의 영혼을 환영해야 하니까! 

  아주 세세한 질문들을 받고 잔느가 엑소시스트들이 한 말을 모두 확실히 보증했다. 맞아, 그랑디에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건 늘 사탄을 의미한 거야, 또 악마를 부인할 때 그건 실제로 그리스도를 부인한 거지. 

 

  랑탕은 그랑디에가 지옥에서 어떤 형벌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원장수녀가 최악의 형벌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흠, 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 어떠냔 말이다! 

  잔느가 한참이나 끙끙대다가 대답했다. “그랑디에는 죗값에 맞게 특별한 형벌을 받지, 특히 정욕의 죗값을 톡톡히 치렀어.” 

  그러면 처형은 어땠나? 마법사가 고통 겪지 않도록 악마가 도와주었나? 

  이사카론이 대꾸했다. 아, 아니야, 사탄은 엑소시즘에 눌려서 기가 꺾였어. 만약 불길에 성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주임신부는 고통이란 걸 못 느꼈을 거야. 하지만 랑탕과 트랑킬, 미카엘이 애쓴 덕분에 극심한 고통을 맛봤지. 

  그런 것쯤이야 지금 그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다른 엑소시스트가 소리쳤다. 랑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지옥 쪽으로 몰아갔다. 지옥의 많은 방들 중 그 마법사는 어디에 떨어졌지? 루시퍼가 그자를 어떻게 맞이했나? 지금 이 순간 그자에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잔느 수녀의 이사카론이 수도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사카론의 상상이 메말랐을 때, 아그네스 수녀가 도우러 나섰다. 그녀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 쓰러졌고, 그녀 입을 통해 악마 베헤리트가 제 얘기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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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이 보기에 랑탕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넋이 빠진 사람 같았다. 어디 아픈 겁니까? 

  랑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프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개운치 못한 점이 있소. 죄인이 그리에 신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했는데,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어. 글쎄, 고해를 가로막아서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아닌가? 

  동료들이 갖가지로 안심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랑탕이 고열에 빠졌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게야. 날 벌하시는 게야.” 연신 중얼거렸다. 

 

  외과의 만누리가 사혈을 하고 약제사 아담이 관장기를 통해 하제를 넣었다. 고열이 가라앉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랑탕이 이제 헛것을 보고 듣기 시작했다. 고문 받으며 그랑디에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장작불 위에서 적수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악마들이 떼거리로 어른거렸다. 그들이 그의 몸으로 들어왔고, 광란 상태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발길질하고 베개를 물어뜯게 만들고, 가장 무서운 신성 모독의 말들을 그 입에 가득 채웠다

 

  9월 18일, 그랑디에 화형 이후 꼭 한 달 지나, 자기한테 병자성사를 베풀던 성직자의 손에서 십자가를 쳐냈다. 그러고는 랑탕이 급사했다. 

  로바르데몽이 호사한 장례비를 댔고, 트랑킬 수사가 설교에서 고인을 신성함의 모델이라 불러 추켜세우며 사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선포했다. 그랑디에를 징벌했다 하여 하나님의 충실한 종에게 복수한 것이오. 

 

  다음 차례는 외과의 만누리였다. 랑탕 수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번은 밤중에 포트 뒤 마트레이 인근에 사는 어떤 병자에게 사혈을 해주러 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롱불 든 하인을 앞세우고 가던 그가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임신부는 악마의 표식들 때문에 바늘로 찔리던 그날처럼 알몸으로 성채 바깥 기슭과 코르들리에 수도원 정원 사이 그랑파베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만누리가 발을 멈추었다. 그가 시커먼 허공을 응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뭘 원하느냐!” 하고 묻는 소리를 하인이 들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외과의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금방 땅바닥에 엎드려 애절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역시 숨이 끊어졌다. 

 

  이제 루이 쇼베 차례가 됐다. 마녀재판이라는 대단히 멍청한 짓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반듯한 치안판사들 중 한 사람. 원장수녀와 많은 수녀들이 그가 마법을 한다고 비난했고, 그들의 고발과 증언을 바레는 자신의 교구에서 여러 마귀 들린 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쇼베는 추기경이 그 광기 어린 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미칠 화에 지극히 겁을 내는 바람에 정신이 상했다. 검은 멜랑콜리에 빠지고 정신쇠약까지 보이다가 겨울이 가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트랑킬은 다른 사람들보다 근성이 더 강했다. 네 해가 지나 1638년 악마에 지나치게 몰두한 후과에 마침내 굴하고 말았다. 그랑디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악마들을 더 키웠고, 터무니없는 공개 엑소시즘으로 악마들이 계속 횡행하게끔 했다. 이제 악마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금물이다. 트랑킬은 제가 열심히 뿌린 것을 거둬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환영들이 드물게 나타나고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악마 개꼬리와 레비아탄이 조금씩 우위를 점하게 됐다. 말년에 트랑킬은 제가 그렇게나 정성 들여 히스테리를 조장했던 수녀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욕설을 내뱉고, 혓바닥을 빼물고, 쉰 목소리를 내고, 개처럼 짖어대고,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푸친회 기록을 보면, ‘악취 풍기는 지옥 올빼미’라 명명한 악마가 동정을 버리고 겸허와 인내와 믿음과 헌신을 다 내팽개치라 유혹하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가 성처녀와 성 요셉을, 성 프란체스코, 성 보나벤투라[각주:5]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마귀 들림이 더 악화되기만 했다. 

 

  1638년 성신강림대축일에 트랑킬이 마지막으로 강론했다. 이삼일 더 그럭저럭 미사를 집전하고 나서 자리보전하고 말았다. 원인은 심신증이 분명하지만 상당히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는 추잡하고 외설한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야말로 악마 계약의 일부인 것이 분명했다! 음식물을 조금 넣을 때마다 악마들이 그를 아주 건강한 사람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격렬하게 구역질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한 두통과 심장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건 ‘갈레노스나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에도 언급되지 않은 종류였다.’ 주말에 이르러 ‘오물과 악취를 연신 내뿜는데, 어찌나 역겨운지 수발드는 이들이 당장 치웠음에도 방안에 있기가 끔찍할 정도였다.’ 

 

  성신강림대축일 다음날인 월요일 병자성사를 베풀게 됐다. 한데 악마들이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나와 침대 곁에 있던 다른 탁발수사의 몸으로 들어갔다. 새로 악귀 들린 사람이 어찌나 광포하게 굴든지 동료 대여섯 명이 겨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끌어내기 전에 그 사람은 거의 숨이 끊긴 트랑킬 수사를 마구 걷어차려고 들었는데, 그걸 말리느라 다들 무진 애를 먹었다. 

  그 대신 장례는 화려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시신으로 몰려들었다. 혹자들은 시신에 묵주를 놓았고, 혹자들은 법의 조각을 베어냈다. 성물처럼 간직하려고 말이다. 밀려드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관에 금이 가고, 각자가 자투리라도 얻으려고 서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시신이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존중받을 만한 이들 몇몇이 예절도 모르는 자들을 내쫓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신부는 벌거숭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법의를 쥐어뜯으면서 시신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트랑킬 신부의 법의 조각들도 이제 성유물이 됐다. 그가 산 채로 불태운 사람의 유해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 불분명해졌다. 마법사는 수난자 같이 죽고, 그의 악마 같은 집행자는 죽은 뒤 성인이 된 것. 그러나 영혼에 바알세불이 들어앉은 성인으로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였으니… 페티시는 그저 페티시일 뿐이라는 점!![각주:6]

  (8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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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1. 하느님,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틴어) [본문으로]
  2. Lourdes - 프랑스 남서부 마을, 성모 마리아가 기적의 치료를 해준다고 하는 성지 [본문으로]
  3. Francis Xavier (1506–1552) - 현 에스파냐 지역인 나바르왕국에서 출생. 로마가톨릭 선교사, 예수회 공동 설립자, 성 이냐시오의 제자. 그의 성유물 중 오른팔은 1614년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분리한 뒤 로마에 있는 교회 은제 성골함에서 전시돼. [본문으로]
  4. Geoffrey Chaucer (1343–1400) - 영국문학의 아버지, 중세 잉글랜드 최고 시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구역에 최초로 안장되다. ‘면죄부 판매인 이야기’는 <켄터베리 이야기>에 실렸다. 사람들 속이는 방법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교훈으로 끝난다. [본문으로]
  5. St. Bonaventura (1221–1274) - 이탈리아 중세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알바노 추기경, 가톨릭 교부. [본문으로]
  6. fetish – 맹목적 숭배물, 미신의 대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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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 기둥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수사

 


 

  그 사이 랑탕과 트랑킬은 자백받지 못한 상황을 만회하려 들었다.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다가와서 묻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마법사가 죄를 인정하지 않더군,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말이오. 그 이유야 빤하지, 그자가 하나님을 부르며 힘을 달라고 호소했는데, 그자의 하나님이란 루시퍼이고, 그 루시퍼가 고통을 못 느끼게 만든 게요. 그러니, 우리야 하루 종일 쐐기를 박고 또 박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런 확신이 맞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엑소시스트인 미카엘 수사가 작은 실험을 했다. 며칠 뒤 실험 결과를 공개 강연에서 전했는데,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기록했다. 

  「이 미카엘 수사는 악마가 그랑디에한테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즉, 지옥의 고통을 겪으며 무릎이 다 으스러진 채 녹색 담요를 덮고 장의자에 널브러져 있어서, 수사가 담요를 거칠게 걷어내고 부서진 정강이와 무릎을 쿡쿡 찔렀는데도 끽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카엘 수사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첫째, 그랑디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둘째, 사탄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다. 셋째, (수사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그가 호의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실제로는 악마를 부른 것이며, 악마를 증오한다고 말할 때 그건 하나님을 증오한다는 의미였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기둥에 묶여서 화염 맛을 톡톡히 체감하게끔 우리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미카엘 수사가 사라지자 다시 전권대행 차례가 됐다. 로바르데몽이 자신의 제물 곁에 두 시간 넘게 머물면서 서명을 받기 위해 갖은 설득 기술을 다 동원했다. 서명만 받으면, 자신이 취한 불법적 절차가 다 무마되며, 추기경에 대한 평판이 깔끔해지고, 또 히스테리 부리는 수녀들이 고해사제들에 의해 체제의 적들을 고소하도록 유도되는 모든 경우에서 앞으로 종교재판 식의 수법을 써먹어도 괜찮을 터였다. 서명을 꼭 받아야 했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 설득을 지켜본 가스탱은 ‘그런 번드르르한 근거며 그런 감언이설이며 위선적인 탄식과 흐느낌 같이’ 가증스러운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 어떤 회유에도 그랑디에는 그가 알고 신이 알듯이 (전권대행도 분명 마찬가지이고) 전부가 날조인 자술서에 서명한다는 건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로바르데몽이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간수장 라그랑제에게 형리들을 부르라고 지시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죄인을 끌고 가는 행렬

 

  그들이 왔다. 그랑디에한테 녹황색 긴 셔츠를 입히고 목에 밧줄을 걸고 마당으로 끌고 나갔다. 나귀 여섯 마리를 맨 수레가 대기 중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죄인을 들어 올려 장의자에 묶었다. 마부가 말들한테 고함을 질렀다. 행렬이 천천히 대로로 들어섰다. 일단의 궁수들이 앞에 서고 로바르데몽과 그의 온순한 재판관 열셋이 수레 뒤에서 걸었다. 

  대로 한가운데서 수레가 멈추고, 둘러선 시민들한테 판결문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낭독됐다. 나귀들이 또 움직였다. 

  그 다음엔 (주임신부가 여러 해 동안 의젓한 풍모로 드나들던) 성 베드로 사원 정문 곁에 와서 행렬이 또 멈췄다. 두 손에 2파운드 양초를 들리고 의자에 묶인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들어 내리고는 판결문에 적힌 대로 무릎 꿇고 죄를 사해 달라고 빌게 했다. 그러나 무릎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에, 땅바닥에 내려놓자 그가 얼굴을 땅에 박으며 엎어졌다. 형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 순간 교회에서 코르들리에회 감독관인 그리에 수사가 달려 나와 경비하는 궁수들을 밀치고 몸을 굽혀 죄수를 끌어안았다. 크게 감동한 그랑디에가 신부에게 자신과 교단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사실, 이 코르들리에 교단만이 루덩 전역에서 주임신부의 적들에게 협조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리에 수사가 유죄 판결 받은 이를 위해 기도하겠노라 약속하면서 하나님과 구세주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모친의 전갈을 전했다. 모친께서는 성모마리아 발밑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그대에게 축복을 보냈다오. 

 

  두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몰려든 군중이 짠한 마음이 되어 수군거렸다. 수군거림을 듣고 로바르데몽이 대노했다. 꾸민 대로 척척 되는 일이 어째 하나도 없는 거지?! 정상대로라면 어수선한 군중은 악마와 내통한 자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린치를 가해야 마땅한 것을. 한데 그러기는커녕 그의 가혹한 운명을 안타까이 여기고 있다니! 

 

  그가 황급히 행렬 앞으로 뛰어 나와 경비병들에게 코르들리에회 수사를 내쫓으라고 새된 목소리로 명령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열성을 발휘하여 그랑디에의 배코 친 머리를 곤봉으로 갈겼다. 

 

  질서가 복원되자 주임신부가 판결이 명한 대로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국왕과 사법부에 용서를 구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비록 도덕적으로 크나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 죄는 절대 저지르지 않았소이다.     

  형리들이 그를 다시 수레에 태우는 동안, 탁발수사 하나가 관광객들과 주민들에게 지루하고 장황한 훈계를 해댔다. 

  참회하지 않은 마법사를 위해 기도할 생각일랑 절대 하지들 마시오! 그건 곧 여러분이 아주 무서운 죄를 짓는다는 뜻이니까!! 

 

고문을 당해 하반신이 일그러진 그랑디에

 

  행렬이 움직였다. 우르술라회 수녀원 정문 앞에서 하나님과 국왕과 정의에 용서를 비는 의식이 재현됐다. 그러나 법정 서기가 원장수녀와 수녀들한테도 용서를 간청하라고 명령하자, 죄수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친 적이 없지만, 저 여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는 있소이다. 

 

  그러다가 필리프 트렌캉의 남편이자 가장 사나운 적수인 무소를 보자 지난 일은 다 잊어 달라 청하고는 본연의 정중함을 갖춰 덧붙였다. “난 당신의 온유한 종으로 죽겠소이다.” 무소가 얼굴을 팩 돌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랑디에의 적수들이 모두 그렇게 비기독교적인 가혹함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랑디에가 부적절한 행위로 기소된 1차 재판 때 그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 성직자들 중 한 사람인 베르니에가 군중을 헤치고 나와서 용서를 청하며 그를 위해 미사를 올리겠다고 했다. 주임신부가 그 손을 잡아 감사의 입맞춤을 했다. 

 

  성 십자가 광장에는 육천이 넘는 인파가 그 절반을 수용하기에도 벅찬 공간으로 들어서려고 밀고 밀렸다. 창문들이 전부 임대됐고, 심지어 지붕과 교회 홈통 주둥이 위에도 구경꾼들이 자리 잡았다. 판사들과 로바르데몽의 특별한 친구들을 위해 특별관람석이 설치됐지만, 어중이떠중이가 다 차지했다가 경비병들이 들이대는 창끝에 밀려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일진일퇴의 격전을 치르고 나서야 VIP들이 겨우 저희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인사들조차 지정 좌석까지 가는 데 무진 애를 먹었다. 죄수를 실은 수레가 장작더미 한가운데 선 기둥까지 마지막 백 야드를 가는 데도 자그마치 삼십 분이나 걸렸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호송병들이 미늘창을 휘두르며 길을 내야 했다. 

 

  성 십자가 교회 북쪽 담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높이 15피트 되는 굵은 기둥이 서 있었다. 기둥 밑에는 통나무와 나뭇가지, 짚더미가 잔뜩 쌓이고, 희생자가 으스러진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만큼 장작더미 2피트쯤 위로 작은 철제 의자가 기둥에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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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중대한 성격과 거대한 악평에도 불구하고 처형에 든 비용은 지극히 수수했다. 화형에 드는 장작과 죄인을 매단 기둥 비용으로 들랴르라는 사람한테 19 리브로 16 수를 지불했다. 1 파운드에 3 수 4 데니르 꼴로 무게 12 파운드인 철제 의자와 의자를 기둥에 연결하는 데 든 쇠못 여섯 개 값으로 대장장이 자크가 42 수를 받았다. 시농 시의 본당 신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궁수들을 파견하느라 빌린 말들 하루 임대, 또 나귀 여섯 필 하루 임대와 짐마차와 마부 둘에 비용 108 수가 들었다. 죄수의 셔츠 두 벌 (고문당할 때 입은 것과 화형 당할 때 입은 녹황색 셔츠) 값으로 4 리브르가 들었다. 공식 사죄 의식에 쓴 2 파운드짜리 양초는 값이 40 수이고, 형리들에게 제공한 포도주 값이 13 수였다. 여기에 성 십자가 교회 문지기와 조수들에게 준 수고비까지 계산하면, 도합 29 리브로 2 수 6 데니르가 들었다.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내려 철제 의자에 앉히고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 교회를 둥지고 앉은 그에게 특별관람석과, 또 한때 사제관만큼이나 편하게 지내던 저택 전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저택 담장 안에서, 그가 아담과 만누리에게 상처 되는 농담을 여러 번 던지고, 캐서린 암몽의 편지들을 낭독하여 모임을 즐겁게 하고, 젊은 처녀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며 유혹하고, 가장 좋은 친구를 철천지원수로 만들었다

  그 루이 트렌캉은 이제 자기 거실 창가에 앉아 있고, 그 곁에 참사회 위원 미뇽과 티보가 있었다. 한때 우르뱅 그랑디에였다가 이제 배코 친 불구자로 변한 그를 바라보며 세 사람이 의기양양하여 낄낄거렸다. 

 

  주임신부가 고개를 들다가 그들과 눈길이 마주쳤다. 티보가 오랜 지기한테 하듯 손을 흔들고, 트렌캉이 물 탄 백포도주를 마시다가 제 사생아 손녀의 아비를 위해 축배를 들었다. 

  그랑디에가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일면 수치심 때문에, 왜냐면 라틴어 수업과 절박하게 눈물 흘리는 처녀를 나 몰라라 한 것이 떠올랐으니까. 또 저들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참담한 심정이 되어 하나님이 지금 여기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혹여 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간수장 라그랑제.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짓을 용서해 달라 청하고 두 가지를 약속했다. 군중에게 고별사를 행할 수 있도록 하겠고, 장작에 불을 붙이기 전에 목 졸라 질식시키겠습니다. 그랑디에가 감사를 표했다. 간수장이 몸을 돌려 지시하자, 형리가 즉시 올가미를 준비했다. 

 

  그러는 중에 탁발수사들은 엑소시즘을 수행하느라 분주했다. 그들 입에서 라틴어가 흘러 나왔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의 적들이 놀라 달아나리라. 유다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다윗의 뿌리를 차지했구나. 이제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이름으로, 그의 아들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한 성령의 이름으로 너, 나무의 축생을 물리치나니…”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 연설하는 두 수도사

 

  그들이 장작더미와 짚단과 또 이글거리는 석탄이 담긴 화로에 성수를 뿌렸다. 그들은 땅과 허공에, 희생자와 형리들과 구경꾼들한테도 성수를 뿌렸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저 마법사가 극도의 고통을 겪지 않게끔 악마가 방해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야. 

 

  주임신부가 군중을 향해 몇 번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탁발수사들이 그 얼굴에 성수를 끼얹거나 철제 십자가로 입술을 때렸다. 그가 가격을 피하자,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배교자가 구세주를 외면하는구나! 랑탕 수사는 시종일관 범죄를 시인하라고 요구하며 “Dicas!” 하고 으르렁댔다. 

 

  이 레치타티보는 구경꾼들 뇌리에 박혀서, 짧고 참담한 여생 중에 랑탕은 이미 루덩에서 ‘디카스 수도사’로 유명해졌다

  “Dicas! Dicas!” 

  그랑디에가 시인할 것이 하나 없다고 천 번째로 대꾸하고 덧붙였다. 

  “자, 이제 나한테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죽이시오.” 

  랑탕이 처음엔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비기독교적인 증오를 보임에 군중이 항의하자, 그가 장작더미 위로 기어올라 주임신부 볼에 입맞춤했다. 

  “유다!” 누군가가 외치자 많은 사람들이 가세했다. 

  “유다, 유다!”  

 

  그 함성을 듣자 랑탕이 걷잡을 수 없이 화를 내며 장작더미에서 뛰어내리더니 짚단을 들어 화로에서 불붙이고는 불덩이를 희생자 얼굴 앞에 대고 흔들었다. 네가 누구인지 고백해라! 사탄의 하수인임을 자백하란 말이다! 참회하게 만들겠어, 네 주인을 부정하게끔 만들겠다! 

 

  “수도사여,” 그랑디에가 차분하고 온유한 품위를 보이며 입을 뗐는데, 그건 자신을 박해하는 자의 거의 광적인 증오와 묘하게 대비됐다. “난 이제 곧 하느님을 만날 터이고, 그분께서 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실 것이오.” 

  “인정해라!” 수도사가 절규하다시피 했다. “인정해! 넌 한순간 후면 죽을 것이야!” 

  “한순간 후면...” 주임신부가 느릿느릿 되풀이했다. “한순간 후면, 그때 난 공정하고 무서운 심판장으로 갈 터이고, 존경하는 수도사여, 당신도 곧 그 심판에 부름을 받을 게요.”

 

  랑탕이 그 뒷말을 다 듣기도 전에 들고 있던 횃불을 장작더미에 놓인 짚단 위로 던졌다. 밝은 오후 햇빛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불꽃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지면서 마른 나뭇가지 다발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바지직 소리를 내며 장작더미가 금방 타올랐다. 상대에게 뒤질세라 미카엘 수사가 장작더미 맞은편에서 짚단에 불을 놓았다. 퍼런 연무가 바람 한 점 없는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기둥 주변에 쌓인 나뭇단 하나에 불이 붙으면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장작더미에 불을 던지는 수도사

 

  죄수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흥겨운 불꽃 군무를 보게 됐다.   “나한테 약속한 게 이런 것이오?” 그가 절박하게 항의하는 투로 간수장을 불렀다. 그리고 갑자기 신성한 존재가 사라진 듯했다.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고, 그저 공포뿐이었다

 

  간수장이 화가 잔뜩 나 탁발수사들에게 고함지르며 가까이 있는 불길부터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꺼야 할 불길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트랑킬이 주임신부 뒤편에 쌓인 짚단에 불을 붙이고, 랑탕이 화로에서 다른 횃불을 또 붙였다. 

 

  “그의 목을 졸라라!” 간수장이 지시했다. 그러자 군중이 그 외침을 따라했다. “목을 졸라라, 목을 졸라!” 

  형리가 올가미를 가지러 달려갔지만,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몰래 로프에 매듭을 만들어 놓은 바람에 당장 쓸 수가 없었다. 매듭을 다 끌렀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단말마의 비명에서 구해 주려던 죄인 주변으로 이미 화염이 장벽을 치고 연기 커튼이 자욱했다. 그 동안에 수도사들은 성수 단지를 내두르며 장작불에 끝까지 남은 악마들을 내쫓았다. 

  “물러가라, 마귀들아!” 

  벌겋게 달구어진 통나무들 사이에서 성수가 쉬쉬쉬 하는 소리를 내며 금세 수증기로 변했다. 화염 장벽 저편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래, 엑소시즘이 먹혀들었다는 뜻이지! 탁발수사들이 감사 기도를 읊느라 행동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갱신된 신념과 배가된 힘으로 다시 작업에 나섰다.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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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3

루덩의 악마들 9편 5

루덩의 악마들 8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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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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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수녀들을 대상으로 엑소시즘을 펼치다

 


 

8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악마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이 대전제에 따르면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 입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바르데몽은 위그노들을 지독히 싫어하는데, 그들이 사탄의 친구이며 충실한 종복이라고 귀신들린 수녀 열일곱 명이 성찬례에서 단언하면 그만이었다. 

 

  상황이 그런 만큼 전권대행은 낭트칙령[각주:1]을 무시해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 느꼈다. 먼저 루덩의 칼뱅주의자들이 자기네 묻힐 곳을 박탈당했다. 그들 죽은 몸뚱이를 어디 다른 곳에 파묻으라고 해. 

 

  이어서 프로테스탄트 칼리지 차례가 됐다. 넓고 편리한 학교 건물이 몰수돼 우르술라회로 넘어갔다. 사실, 그들이 그 동안 수녀원으로 임차한 건물에는 사방에서 도시로 몰려든 독실한 순례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이제 마침내 수녀들이 날씨가 어떻든 성 십자가 교회나 샤토 교회까지 터벅터벅 걸어갈 필요 없이 입에 맞는 관중 앞에서 엑소시즘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위그노 못지않게 가증스러운 자들도 있었으니, 바로 그랑디에가 유죄이고 마귀 들림이 실제로 있으며 카푸친회가 새로 내놓은 교리의 절대적 정통성을 한사코 믿지 않으려 드는, 나쁜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랑탕과 트랑킬이 설교단에서 신랄하게 몰아쳤다. 

  저들은 이단자보다 나을 게 하나 없소! 저들이 의혹을 품는 것은 크나큰 죄이며 저들은 이미 저주받은 것과 진배없단 말이오!! 

 

  또 한편에서는 메스멩과 트렌캉이, 의심하는 자들은 국왕에게 불충하며 (더 흉하게도) 추기경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다녔다. 그리고 미뇽이 맡고 있는 수녀들과 카르멜회 히스테리 환자들의 입을 통해 많은 악마들이, 그자들은 전부 사탄과 결탁한 마법사라고 떠들었다. 

  시농에서 바레가 관장하는 마귀 들린 자들 중 누군가한테서는 흠 잡을 데 없는 치안판사 세리제조차 흑마법으로 장난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 다른 마귀 들린 자는 두 성직자, 부롱 신부와 프로지에 신부가 강간을 기도했다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원장수녀의 고발로 마들렌 드브루가 요술을 부린다는 혐의로 체포돼 수감됐다. 친척들이 재산과 고위층 연줄 덕에 그녀를 간신히 보석으로 빼냈다. 그러나 그랑디에 재판이 끝난 뒤 마들렌은 다시 체포됐다. 그녀가 항소법원[각주:2] 판사들에게 호소하자 로바르데몽에게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전권대행이 자신을 비난한 여인을 맞고소했다. 마들렌에게는 다행히도, 리슐리외는 판사들과 다툴 만큼 그녀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로바르데몽에게 소송을 취하하라는 지시가 내렸고, 원장수녀는 복수의 기쁨을 접어야 했다. 

  그 뒤 가엾은 마들렌은 모친 사후에 제 연인이 하지 말라고 설득했던 일을 하고 말았다. 삭발하고 어느 수녀원 담장 안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

 

  그러는 동안 악마들이 시민들을 겨냥해 내뱉은 이런저런 고발이 바람에 일어난 먼지처럼 난무하게 됐다. 지역 상류층 아가씨들이 그들 공격 대상으로 찍혔다. 아그네스 수녀는, 루덩만큼 음란기로 가득한 도시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클레어 수녀는, 죄 지은 여인들 이름을 꼽으면서 그들의 죄목을 늘어놓았다. 루이스 수녀와 잔느 수녀도 가만있지 않았다. 루덩의 처녀들은 죄다 마녀의 싹을 품고 있어! 

 

  이 엑소시즘은 매번 음란한 몸짓과 추잡한 언사와 광적인 웃음 따위로 끝났다. 

  그 다음에는 도시의 존경받는 인사들한테 비난이 쏠렸다. 

 

  그들이 마녀 집회에 다니면서 악마 엉덩이에 입을 맞추잖아. 

  또 그 부인들은 인큐버스와 사통하고, 그 누이들은 옆집 암탉들에게 마법을 걸고, 그 노처녀 숙모들은 도덕적인 젊은이를 신혼 첫날밤에 임포텐츠로 만들지 뭐야. 

  그랑디에도 그래, 벽돌로 막아놓은 창문의 공기구멍 틈새로 그 동안 자기 정액을 절묘하게 나눠주고 있었던 거야. 마녀들한테는 보상을 하고, 추기경 파의 아내와 딸들에게는 합당치 않은 치욕을 안기려는 속셈에서 말이지. 

 

수녀들한테서 악마를 쫓아내는 의식

 

  그런 고약한 망언들을 로바르데몽과 그의 서기들이 하나도 빼지 않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악마들한테서 비난받은 이들이 (달리 말해, 로바르데몽과 엑소시스트들한테 눈엣가시가 된 이들이) 로바르데몽 집무실로 소환돼 심문 받으며 위협과 협박을 겪었다. 도시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7월 어느 날 로바르데몽이 악마 베헤리트한테 힌트를 얻어 젊은 처녀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는 성 십자가 교회의 문을 다 잠그라고 명령했다. 카푸친회 수도사들이 사탄과 결탁한 흔적을 찾는다는 명분 아래 처녀들 몸을 더듬었다. 철저한 수색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표식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군, 베헤리트가 정식으로 강요당했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 

 

  몇 주일 동안 카푸친회와 레콜레트회와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모든 설교단에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의혹 품은 이들이 납득하지 못했고, 그랑디에 사건을 매우 불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불만과 저항이 더 커지기만 했다

  익명의 운쟁이들이 전권대행을 두고 짤막한 풍자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그 시구에 오래 된 가락을 붙여 거리에서 선술집에서 잔을 들고 노래하며 국왕의 전권대행을 조소했다. 그를 조롱하는 글귀들이 밤마다 교회 현관에 나붙었다. 

 

  도대체 누구 소행인지 개꼬리와 레비아탄에게 추궁하자, 이 악마들이 어떤 신교도와 어린 학생 몇몇을 범인으로 꼽았다. 그들을 체포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수 없게 되자 풀어주어야 했다. 이제 밤마다 파수꾼들이 교회 밖에 배치됐다. 그러자 비판하는 글귀가 다른 대문들에 걸리기 시작했다. 

 

  분개한 전권대행이 7월 2일 포고문을 발동했다. 

  ‘악마 때문에 고통 받는 수녀들이나 다른 주민들, 엑소시스트들이나 엑소시즘 조력자들을 적대시하여’ 행동하거나 또 입을 놀리는 것조차 차후로는 엄금한다. 이를 어긴 자는 누구든 1만 리브르 벌금에 처하고, 필요한 경우 재정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더 중하게 부과할 것이다. 

  그 뒤 비판이 더 조심스러워지자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이 여론을 겁내지 않고 허튼 비방을 마음껏 지껄일 수 있게 됐다. 

 

  <루덩 주임신부 재판에 대한 의견과 판단>이라는 글의 익명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만을 말하는 하나님이 이제 밀려나고 그분 자리에 사탄이 앉아서 거짓과 허튼소리만 해대는데, 그 허튼소리를 진실처럼 믿어야 하다니, 이야말로 이교 사상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게다가 항간에 나도는 얘기로는, 악마가 마법사와 주술사라면서 많은 이름을 읊어대는 것이 권력에는 아주 편리하단다. 이제 이 불행한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고 재산이 압류될 것이다. 그리고 몰수된 재산 일부가 주임신부의 죽음과 도시 대부분 명가들의 파멸을 은근히 바랄지도 모를 피에르 메노와 그의 사촌인 참사회 위원 미뇽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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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초 트랑킬 신부가 새로운 교리를 기술하고 거기에 근거를 부여하여 얇은 책자를 냈다. 그 교리란 바로,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는 것. 이 책자를 푸아티에 주교가 승인하자 로바르데몽은 정통 신학에서 최신의 발견이라 부르며 환영했다

 

  이제 의심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그랑디에는 마법사로 아예 굳어지고, 겁 없이 옳게만 나서는 세리제 판사 역시 주술사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추기경 지지파에 속한 부모를 둔 처녀들을 제외하고, 루덩의 처녀들은 모두 매춘부와 마녀가 됐다. 또 시민 절반에게는 악마의 존재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미 저주가 내렸다. 

 

  트랑킬의 소책자가 나오고 이틀 뒤 수석 치안판사가 도시 명사들을 소집했다. 시민들이 처한 곤경을 논의한 끝에 세리제 판사와 보좌관 쇼베가 파리로 가서 전권대행의 전횡을 막아 달라고 국왕에게 청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반대한 사람은 검찰관 무소, 경찰 수뇌 에르베와 메노뿐이었다. 에르베는 루덩의 시민들을 전부 사탄의 종복으로 규정하는 새 교리에 동의하느냐고 치안판사가 묻자 “국왕과 추기경, 푸아티에 주교께서 마귀 들림을 믿는 바에야 나로서도 달리 방법이 있겠소?” 하고 대꾸했다. 

 

  정치적 보스에 대해 부하들이 무의식적으로 지니는 이 무류(無謬) 의식은 오늘날 우리네 귀에도 낯설지 않으며 아주 자연스러우리라

 

  다음날 세리제와 쇼베가 루덩 시민들의 정당한 불만과 불안이 명료하게 기술된 청원서를 들고 파리로 떠났다. 그 문건에서는 로바르데몽의 처리 방식이 준엄한 비판을 받았고, 카푸친회가 내놓은 새로운 교리는 ‘하나님 율법을 파괴하며’ 교회 박사들과 성 토마스와 소르본대학 학자들의 견해에 상충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소르본 학자들은 비슷한 교리를 이미 1625년에 공식 규탄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루덩의 시민들은 트랑킬의 소책자를 소르본에서 검증하도록 국왕 폐하께서 명해 주십사 탄원하고, 나아가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한테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중상모략 받은 모든 이들이 ‘이런 문제들의 정상적 심판 기구인’ 파리 고등법원에 상소하도록 허용해 주십사고 간청했다. 

  두 치안판사가 궁정에서 다르마냑을 찾아 부탁하자, 그가 즉각 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회답은 퉁명스러운 거절. 그러자 세리제와 쇼베가 국왕의 개인비서에게 청원서를 맡기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이 사람은 추기경의 심복이자 루덩 시민들의 공공연한 적대자였다. 

 

  그들이 파리에 있는 동안 루덩에서는 로바르데몽이 새 포고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그 어떤 공개 집회도 금지하며, 위반할 시 2만 리브로 벌금이 부과될 것이다. 이후로 악마의 존재에 의혹을 품는 이들이 더 이상 골칫거리가 되지 못했다. 

 

엑소시스트들과 국왕 전권대행

 

  이제 예비조사가 다 끝나고 마침내 재판을 개시할 때가 됐다. 로바르데몽은 루덩의 주요 치안판사들 중에서 몇몇을 재판부에 기용할 수 있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무너졌다. 수석 치안판사인 세리제를 비롯해 부르네, 샤를 쇼베, 루이 쇼베 등이 모두 사법살인에 끼어들기를 거부했다. 국왕의 전권대행이 감언이설로 꾀어 보다가 잘 안 먹히자, 추기경 예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어떤 후과가 따를지 생각해 보라고 은근히 겁을 주었다. 그래봤자 헛수고. 법률가 네 사람이 꿋꿋하게 버텼다

 

  할 수 없이 시농, 샤텔로, 푸아티에, 투르, 오를레앙, 라 플레시, 생멕상, 보포르 등 인근 도시에서 재판관을 찾아야 했다. 결국 유순한 판사 열셋으로 재판부를 꾸렸다. 검사를 기용하는 문제도 썩 순탄치 못했다. 피에르 푸르니에라는, 지나치게 꼼꼼한 법률가가 추기경의 룰에 따라 게임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전적으로 신임할 수 있는 도시 검찰관을 선정했다. 

 

  8월 둘째 주 중반에 재판 준비가 다 끝났다. 미사를 드리고 성찬례에 참석한 뒤 재판관들이 카르멜회 수도원에 모여 지난 몇 달 로바르데몽이 수집한 증거를 죄다 청문하기 시작했다. 푸아티에의 주교는 마귀 들림이 실제 있는 현상이라고 공식적으로 담보했다. 이는 곧 진짜 악마들이 우르술라 수녀들의 입을 통해 말한 것이며, 그 진짜 악마들이 그랑디에가 마법사라고 몇 번이나 단언했다는 의미. 한데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즉, 악마들은 엑소시스트들의 감시를 받으며 진실을 말한 것이고, 그렇다면… 증명은 끝난 셈이다. 

  유죄 판결이 아주 확실했고, 그 확실함이 얼마나 소문났는지 처형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이미 루덩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무더운 팔월 (루덩 시 인구보다 두 배가 많은) 3만 명이 음식과 숙소와 처형대 가까운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우리 선조들이 공개 처형이라는 스펙터클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 대다수는 참으로 믿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의 휴머니즘 달성을 자축하기 전에 몇 가지를 기억해 보자. 

  첫째, 오늘날 시민들에게는 처형 현장을 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처형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교수형이 인형극처럼 흥미롭게 보이던 시대에 장작불 위 화형이야말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각주:3]이나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각주:4]처럼 보기 드문 사건이고, 그걸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비가 많이 드는 순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공개 처형이 사라진 것은 대다수가 바랐기 때문이 아니다. 지극히 섬세한 개혁가 소수가 그걸 금할 만큼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문명화(개화)란 개개인이 야만적 행위를 자행할 기회를 체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라 정의할 수도 있겠다. 

  한데 근년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억제되던 끝에 이제 우리보다 더 나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야만적인 행위에 기꺼이 몰두하면서 이전의 양상으로 기꺼이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왕과 추기경, 로바르데몽과 고용된 재판관 열셋, 시민들과 관광객들 모두 결말이 어떻게 날지 알고 있었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은 죄수 하나뿐이었다. 

 

  (8월 첫째 주 끝에 가서도 그랑디에는 자신이 평범한 재판의 피고이며, 이전 조사에서 잘못된 것들은 다 우연한 실수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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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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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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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법칙 14가지 (1. 오디오) -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파스칼

고대 아라비아 우화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과의 관계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로운 생각과 말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과학 실험 3가지

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1. 나바르 왕 앙리가 프랑스 왕위 계승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대신 위그노의 종교 자유와 시민권을 보장하는 칙령을 1598년 선포. 이로써 위그노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는 교회의 화합 아래 강대국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칙령에 교황 클레멘스 8세와 프랑스 로마가톨릭, 파리 고등법원 등이 큰 불만. 나중에 리슐리외 추기경은 낭트칙령에서 정치 관련 조항을 국가에 위험하다고 여겨 알레 칙령(1629)으로 무효화. 1685년 루이 14세가 완전히 폐지, [본문으로]
  2. Messieurs des Grands-Jours - 왕국의 전 지역을 다니며 지방 사법부의 스캔들과 오심을 조사하는 순회 항소법원. [본문으로]
  3. Bayreuth Festival -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해마다 열리는 음악 축전. <니벨룽겐의 반지> 등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만 공연. [본문으로]
  4.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 - 독일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 오버아머가우 주민들이 1634년부터 전통적으로 행하는 공연.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1632년 10월에 성인 사망률 1에서 1633년 3월 20까지 올라갔다. 주민들은 하느님이 이 역병을 물리쳐 주신다면 예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공연을 평생 하겠노라고 다짐. 사망률이 점차 줄면서 1633년 7월에 1로 가라앉자 주민들은 구원을 받은 것이라 믿었다. 1634년 처음 공연 시작. 전 세계에서 수십 만 관객이 몰려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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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이야말로 얼마나 가련한 순진함이란 말인가! 오호라, 인간 두뇌가 무엇이든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 

  오필리아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알아, 그러나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는 몰라.”[각주:1] 그래, 우리는 누구나 거의 모든 짓을 다 할 수 있다. 아무리 엄한 규율 아래서 성장한 사람이라 해도 그렇다. 

 

  이른바 ‘감응 (혹은, 유도) 법칙’은 뇌와 신경계의 하위 수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뇌피질에서도 발생하며, 모든 강렬한 감정은 그 반대되는 것을 동반한다.[각주:2] 모든 긍정적인 것은 그에 상응하는 부정적인 것을 낳는다. 뭔가 빨간 것을 볼 때, 주변에 녹색 잔상이 따라 붙는다. 어떤 근육 그룹이 작동할 때, 반대 그룹도 자동으로 반응한다. 또 최고 수준의 두뇌 활동에서 애정이 종종 증오를 수반하고 존중과 경외에서 초래된 비웃음 같은 것이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한마디로, 감응 과정은 어디서나 작동한다

 

  잔느 수녀와 그녀의 동료 수녀들은 어려서부터 신앙과 순결을 귀에 못이 박혀라 들으며 자랐다. 바로 이 때문에, 감응 이론에 의하면, 그들 심리에 신성 모독과 외설스러움이 자리 잡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종교문학에는 신앙과 순결에 거스르는 괴물 같은 유혹, 영적 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특히 부닥치는 유혹에 대한 언급이 많다. 지혜로운 지도자들은 그런 유혹이 정상적이고 영적 생활에 거의 불가피한 특징이라 하며, 그런 만큼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각주:3] 

 

   이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이 평상시에는 억눌리거나, 혹여 의식 수준에 들어선다 해도 언행으로 배출되지 않게끔 의지력이 단단히 단속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으로 쇠약해지고 금지되며 실현될 수 없는 환상에 몰입함으로써 광적이 된 원장수녀는 이 감응 후과를 통제할 수 없게 됐다. 히스테리 행위는 전염성이 있어서 그녀 사례를 다른 수녀들이 따랐다. 수녀원 전체가 금방 신성을 모독하고 음란한 소리를 지껄이며 지독한 발작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마귀에 들씌웠다는 수녀들

 

  저들 수도회와 나아가 교회 전체를 광고하며 동시에 그랑디에를 파멸시키기 위해, 엑소시스트들은 스캔들을 조장하고 키우면서 수녀들의 병적 상태를 철저히 이용했다. 수녀들이 괴상한 묘기와 신성 모독과 추잡한 행위를 과시하도록 장려했다. 그러면 늘 구경꾼들이 흥분했으니까. 

 

  원장수녀가 질환 초기에 자신이 귀신들리지 않았다고 고백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단지 그녀의 고해사제와 엑소시스트들이 그녀한테 악마들이 가득 찼다고 끊임없이 주입한 뒤에야 자신이 마귀에 들렸으며 이후 자신의 비즈니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임을 확신하게 됐다.     

 

  몇몇 다른 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1634년에 발간된 책자를 보면 아그네스 수녀는 엑소시즘 중에 자신은 악귀 들리지 않았다고 자주 말했지만 탁발수사들이 고집하여 엑소시즘을 받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6월 26일 엑소시스트가 클레어 수녀 입술에 불붙은 유황을 실수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가엾은 처녀가 눈물을 터뜨리며 소리 쳤다. “내가 악귀 들렸다고 자꾸 말들 하기에 난 그렇게 믿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잖아요!”」 

 

  단순한 히스테리에서 시작된 작업이 미뇽과 바레, 트랑킬 등의 공조 하에 거대한 쇼로 바뀌었다. 동시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그걸 알아차렸다. 앞에 인용한 소책자의 익명 저자가 이렇게 쓴다. 

  「여기에 협잡이 없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수녀들이 정말 마귀에 사로잡혔다고 해야 하나? 혹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어리석음과 상상의 장난에 눌려서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닌가?」 

 

  후자 같은 추정의 형태로 작자는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수녀들이 재계와 밤샘 기도를 지나치게 하고 지옥과 사탄을 너무 많이 숙고했기 때문에. 둘째, 그들을 악마가 유혹하고 있다고 단언하는 고해사제가 그들 상상에 안기는 자극. 끝으로, 그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며 고해사제가 무지의 소치로 그들이 마귀에 들렸거나 마법에 걸렸다고 상상하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즉각 영적 딸들한테도 사실처럼 믿게 했을 수 있다. 

 

  우리 스토리는 세 번째 원인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예전에 수은과 안티몬 치료로 인한 중독이나 오늘날 잦은 현상인 설파제 중독과 혈청 질환처럼, 루덩 수녀원을 휩쓴 유행병은 일종의 ‘의원성 질환’으로, 환자들 건강 회복에 지나치게 몰두한 치료자들 스스로 일으키고 촉진한 것이었다

  또 엑소시스트들이 취한 조치가 가톨릭교회 종규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임을 기억하면, 그들의 책임은 훨씬 더 크다. 이 종규에 따르면, 엑소시즘은 3자들 없이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며, 더욱이 악마들이 저희 소견을 지껄이도록 허용하지 않아야 했다. 악마들이 무슨 소리를 떠든다 해도 절대 믿어서는 안 되며, 악마들 말은 철저히 무시해야 했다. 

 

  한데 루덩에서는 어떻게 했는가. 수녀들을 수많은 구경꾼들 앞에 흥밋거리로 내놓고, 그들의 악마들한테는 섹스에서부터 성변화(聖變化)에 이르기까지 어떤 얘기든 다 늘어놓도록 조장했으며, 악마들의 진술이 죄다 절대적 진실로 수용되고 악마들 자체를 저승에서 온 귀빈처럼 대접하며 그들 언급이 거의 성서와 같은 권위를 지녔던 것이다

  악마들이 신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해도 구경꾼들은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게 바로 악령들이 흔히 하는 짓이니까! 그런 신성 모독과 음담패설이 또한 관중을 끌어들였다. 그런 얘기를 독실한 사람들이 열심히 들었으며, 다음날에는 구경꾼이 수천 명으로 늘었다.  

 

 공연은 실제로 인기 좋았다. 끔찍한 신성 모독과 가장 추잡한 음담패설 따위가 만에 하나 마귀에 사로잡힘의 충분한 증거가 아니라면, 발작 상태에서 기기묘묘하게 몸을 비틀고 꼬는 것은 어떠하며 곡예사처럼 움직이는 묘기는 또 얼마나 멋진가 말이야! 

 

  공중부양은 레퍼토리에서 금방 제외됐다. 수녀들이 실제로 떠오를 수 없었으니까. 그 대신 그들은 마룻바닥에서 가장 놀랍고 아슬아슬한 재주를 여럿 선보였다. 

  니옹의 기록을 보면, 간간이 「그들은 왼쪽 발을 어깨 너머로 돌려서 볼에 닿게 했다. 또 발을 머리 위로 넘겨 엄지발가락으로 코를 건드리기도 했다. 다른 수녀들은 몸과 마루 사이에 틈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 다리를 한껏 벌렸다. 원장수녀의 경우 120센티미터가 조금 더 되는 키에도 불구하고 양쪽 발가락 사이가 2미터를 넘길 정도로 가랑이를 쫙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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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녀들의 퍼포먼스 기록을 읽다 보면… 여성 영혼에는 타고난 종교적 성향 못지않게 타고난 자기과시욕이 느긋하게 공존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영원한 여성성에 관한 한 자기과시 취향이 고유한 듯 보인다. 그저 재주넘기와 공중제비에서 자신을 내보일 호기만 기다리는 것일 뿐. 

  수녀원에 틀어박혀 명상에 잠기는 사람들 경우 그런 욕망이 특히 발달했다고 짐작할 수 있겠다. 일곱 악마와 참사회 위원 미뇽 덕분에 잔느 수녀가 두 다리를 벌려 바닥에 앉는 연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여러 모로 판단컨대, 수녀들은 아크로바트를 공연하면서 크게 만족했다. 니옹의 기록을 보면, 여러 달 동안 ‘최소한 하루 두 번씩 악마들에게 고문당하면서도’ 그들 건강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다소 골골하던 여인들도 악마에 들씌우기 전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내재해 있던 자기과시 성벽과 숨어 있던 카바레 무용수와 스트리퍼 기질이 표면으로 돌출할 기회를 얻었고, 처음 한동안 이 가엾은 처녀들은 늘 기도해야 하는 임무도 없이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 행복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중간 중간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저들한테 어떤 폭압이 가해지고 있으며 또 저들 애정 판타지의 대상이었던 불행한 사람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문득 문득 알아차리곤 했다. 

 

마귀 들렸다는 수녀들을 상대로 엑소시즘 시행

 

  우리가 앞에서 봤듯이, 6월 26일 클레어 수녀는 엑소시스트들이 대하는 투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녀가 7월 3일에는 성안 채플에서 갑자기 통곡하면서 지난 몇 주일 동안 자기가 그랑디에에 관해 한 말은 새빨간 거짓이요 중상비방이며, 죄다 랑탕 수사와 미뇽, 카르멜회 수사들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눈물 섞어 털어놓았다. 나흘 뒤 양심의 가책과 반항심이 더 커져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 정문에서 붙잡혀 발버둥치고 훌쩍거리는 상태로 다시 수도사들에게 넘겨졌다. 

 

  그런 장면을 보고 대담해진 아그네스 수녀는 (킬리그루가 한 해 지나서도 여전히 카푸친회 수사들 발밑에서 설설 기는 것을 본 그 미녀는) 그녀의 잘 빠진 두 다리를 훔쳐보러 온 구경꾼들에게 무서운 엑소시스트들 손아귀에서 구해 달라고 눈물 흘리며 호소했다. 

  그러나 마지막 말휘갑은 언제나 엑소시스트들의 권리였다. 아그네스 수녀의 애원이나 클레어 수녀의 탈출 시도며 양심선언, 도덕적 불안 등은 모두 그랑디에의 주인이자 수호자인 악마의 간계로 치부되고 말았다

 

  만약 수녀가 주임신부에게 불리한 발언을 모두 취소했다면, 이야말로 사탄이 그녀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며 처음 확언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논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된 것은 바로 원장수녀의 경우였다. 한 치안판사가 그랑디에의 범죄 행위 목록을 간결하게 작성했다. 이 문건 여섯 번째 항목은 이렇다. 

 

  「수녀들이 겪은 고통 중에서 원장수녀의 경우가 가장 괴이했다. 그녀는 진술을 마친 다음날 로바르데몽이 다른 수녀를 심문하는 동안 슈미즈 하나만 걸친 채 수녀원 뜰에 나타나서 목에 밧줄을 두르고 손에 양초를 든 채 퍼붓는 빗속에서 맨머리로 두 시간이나 서 있었다. 

  그러다가 숙사 객실 문이 열리자 달려 들어가 로바르데몽 앞에 무릎 꿇더니 무고한 그랑디에한테 저지른 악의적 비난을 바로잡으러 왔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다시 달려 나가서 뜰에 있는 나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겼다. 다른 수녀들이 구하러 달려들지 않았다면 목을 매달았을 것이다.」   

 

  원장수녀가 거짓 비난 행위를 참회하고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는 점을 정상인이라면 충분히 짐작했을 터. 그러나 로바르데몽은 안 그랬다! 그에겐 이 통회의 연극이 발람이나 레비아탄이 꾸민 짓이며 마법사의 주문으로 강요된 것임이 명백했다. 

 

원장수녀가 나무에 목을 매달려고 하다

 

  흠, 잔느 수녀의 고백과 자살 시도는 주임신부의 죄를 면케 하기는커녕 오히려 유죄라는 점을 더 굳혀주는 게야! 

 

  그런 몸부림은 다 쓸모없는 짓이었다. 그들 스스로 감옥을 만든 꼴이 됐다. 이제 사실처럼 구체화된 음탕한 몽상의 감옥, 이제 드러난 진실처럼 취급된 의도적 거짓말의 감옥 말이다. 거기서 수녀들이 달아날 길은 전혀 없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이제 그들의 참회를 받아들일 수도 없을 만큼 멀리 나아갔다. 그리고 진술을 부인한다는 자체가 그들에게 위험한 짓이었다. 그랑디에를 두고 한 말을 철회함으로써 그들은 현세에서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징벌을 면치 못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망설임과 주저 끝에 다시 엑소시스트들 편에 서기를 택했다. 수도사들도 계속 강조했다. 

  가책의 고통이란 그저 악마적인 환상일 뿐이야. 돌이켜보니 거짓말인 듯싶은 것이 실제로는 아주 건강한 진실이지. 그 정통성이며 사실과 부합한다는 점을 교회가 다 보증할 테니 아무 걱정들 말어. 

 

  그런 말을 그들이 귀담아들으면서 그렇게 믿으려고 또 고생했다. 그리고 이 가증스러운 허튼소리를 믿는 체만 하고 지나치기 어렵게 됐을 때, 그들은 섬망 상태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수평적으로, 일상적 현실 수준에서는, 이 감옥에서 달아날 길이 없었다. 상향적 자기초월로 말하자면, 온통 악귀들에 붙들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 영혼을 끌어 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훨씬 더 넓게 열려 있었다. 바로 거기로 그들은 자꾸만 내려갔다. 때로는 죄의식과 자기비하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자발적으로, 또 때로 그들의 광기와 엑소시스트들의 암시가 너무 강할 때는 의지에 반하여, 자꾸만 밑으로 내려갔다. 

  발작을 향해 밑으로, 돼지처럼 지저분함을 향해 밑으로, 미친 듯 격렬한 행위를 향해 밑으로… 내려갔다. 본연의 인격 수준 아래로 한참 내려가서 여인들은 어두운 비인간적 세계로 가라앉았는데, 거기서는 귀족 출신 여인이 관중을 즐겁게 하려고 묘기 부리는 것이, 수녀가 신성을 모독하고 품위 없는 자세를 취하며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더 아래로, 지각 마비 상태로, 강경증 상태로, 완전한 무의식이며 완벽한 망각 상태라는 궁극적 행복을 향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7-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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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Lord, we know what we are, but know not what we may be." - <햄릿> 4막 5장. [본문으로]
  2. Ischlondsky의 (런던, 1949) 참고 - 저자 주. [본문으로]
  3. 1923년 1월 26일 자 편지에서, 돔 존 채프먼은 이렇게 적는다. 「17-18세기에 많은 독실한 이들은 하느님께 버림받은 것 같을 때 의심의 시기를 거쳤습니다. 오늘날은 그런 일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은 다른 종류의 시험을 견뎌야 하지요. 갑자기 믿음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을 갖는 되는 겁니다. 즉, 신앙의 어떤 부분이 아니라 종교 자체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이때 유일한 치유는 그런 의혹을 경멸하고, 거기에 주목하지 않으며, 하느님을 위해 원하시는 대로 고통 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그분께 단언하는 것뿐. 믿지 않는 이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겠지요.」 - 저자 주. *Dom John Chapman (1865-1933) - 로마가톨릭 성직자, 영국 베네딕트회 대수도원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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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악마의 기운

 


 

  우리의 두 번째 사례는 최면에 걸린 사람으로, 최면에 의해 강경증(强勁症) 상태로 들어선 경우이다. 최면의 본질이며 그 암시가 자율신경계에 어떻게 영향 끼치는지를 우리는 아직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최면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상태에서 그들 잠재의식의 어떤 부분이 최면술사가 건넨 암시에 몸이 따르게 한다는 것쯤은 우리가 알고 있다. 

  피험자가 최면에 잘 걸리는 타입이라면 노련한 최면술사는 그를 언제든 강경증 같은 경직 상태로 유도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경직 상태를 루덩의 독실한 신자들은 사탄의 소행으로 여긴 것이다. 정말 그랬다. 왜냐하면 그 당시 개념으로 보아 그런 희귀한 현상은 수녀들이 속임수를 썼거나, 아니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이 분명하니까. 

 

  만약 당신이 아리스토텔레스며 성 아우구스티누스, 갈레노스[각주:1], 아랍 학자들의 저술을 다 읽는다 해도, 오늘날 우리가 무의식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언급은 눈곱만치도 없다는 점을 발견하리라. 우리네 선조들에겐 한 쪽에 영혼이나 의식적인 자아가, 또 다른 쪽엔 하나님과 성인들, 일단의 선하고 악한 스피릿들만 있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의식적 자아의 활동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며 어떤 면에서는 더 효율적인 무의식의 활동이라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개념을 그 시대에는 도저히 갖출 수 없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당대 이론에는 무의식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지금 우리가 무의식의 활동으로 설명하는 희귀한 현상을 그때는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 인간 외적인, 외계 혼령들의 행위로 치부해야 했다. 그러니까 발작을 일으키면서 나타난 강경증은 속임수 아니면 악마들이 들끓는다는 징후였다

 

  토마스 킬리그루[각주:2]가 젊은 시절인 1635년 가을 루덩에서 시행된 한 엑소시즘을 참관했다. 진행을 맡은 탁발수사가 이 영국인에게 수녀의 돌덩이 같은 팔다리를 만져 보라고 했다. 사탄의 파워와 그보다 더 큰 전투 교회[각주:3] 파워를 느끼고 인정하고서, 하나님 뜻이라면, 이단적 종교를 버리고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의미였다. 친구 월터 몬테규는 그 이전 해에 그렇게 했다. 이 사건을 묘사하는 편지에서 킬리그루가 이렇게 썼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돌덩이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단단한 근육과 강한 팔과 뻣뻣한 다리만 느꼈을 뿐.」 

  (수녀들이 프라이버시와 존중 받을 권리를 얼마나 철저히 박탈당했는지에 주목하자.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도사는 장터에서 여흥 돋우는 쇼의 여리꾼처럼 행동한다. “여러분, 이쪽으로 오시오! 주저 말고! 눈으로 못 믿겠다면 만져 볼 수 있어요. 이 뚱뚱한 여인의 허벅지를 꼬집어 봐요, 그러면 우리가 하는 말이 백 프로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겁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반려자들이 카바레 사회자나 서커스 열광자로 바뀌곤 했다.) 

 

  킬리그루의 편지가 이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수녀 몸뚱이가 아주 딱딱하고 쇳덩이보다도 무거웠다고 긍정한다. 필경 그들은 나보다 믿음이 더 컸고, 그래서 기적이 나보다 그들한테 더 잘 보였나 보다.」 

  여기서 ‘기적’이라는 단어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수녀들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 것이라면 시체처럼 경직된 사지는 초자연적인 원인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데카르트가 등장하고 인간 본성에 관해 더 ‘과학적인’ 이론이 웬만큼 퍼졌다 해도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적었다. 외려 몇몇 측면에서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비현실적인 관점을 견지하게 됐다. 악마를 그 누구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지만, 그와 동시에 한때 악마의 힘으로 치부하던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더 이상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적어도 이전의 엑소시스트들은 트랜스나 강경증, 다중인격, 초감각적 지각 같은 사실을 반박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 기이한 현상을 데카르트 이후에 등장한 심리학자들은 난센스며 허구로 여기거나, 그게 아니라면 ‘상상의 작업’ 결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과학자들에게 ‘상상’이란 ‘환상’과 거의 같은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된 현상들은 (메스머[각주:4]가 자기장 최면으로 효과를 본 치료 같은 것은) 무시하는 게 더 안전하고 적절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관념을 데카르트가 기하학적 범주에 집어넣고자 강력히 시도한 끝에 뭔가 경탄할 정도로 ‘명료한 생각들’이 형성됐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명료한 생각들은 거대한 의미를 지니는 어떤 사실들을 무시하게 만든다. 이 사실들에 데카르트 이전 철학자들은 진지하게 대했지만, 당시 지배적인 몇몇 심리 이론의 영향으로 그 사실들을 그저 초자연적인 원인 탓으로 돌려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이해되지 않는 사실들을 수용할 수 있으며 악마를 들먹이지 않고도 이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스피릿’이나 ‘순수 에고’나 ‘아트만’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인간 마인드를 데카르트 철학의 영혼이며 데카르트 이전 시대의 영혼과는 완연히 다른 뭔가로 납득할 수 있다. 

  예전 철학자들은 영혼이 단일하며 나뉘지 않고 불멸이라는 도그마를 굳게 믿었다. 한데 우리가 보기에 영혼은 명백히 복합적 요소들의 혼합이며, 요소들 덩어리인 영혼은 분해되고, 육신이 죽은 뒤에도 뭔가 다른 형태를 띠면서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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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은 사이키[각주:5]가 아니라 스피릿에 속하며, 이때 사이키가 선택한다면 스피릿과 합치될 수도 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이성의 근간에는 의식이 있다. 이성과 의식은 제 육체와 상호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존재의 육체나 다른 이성이며 의식과는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데카르트는 인간 육신을 자율 규제하는 오토마톤으로 간주했고, 그래서 다른 부차적 영혼들이 존재할 필요성을 못 봤다. 한데 이제 우리는 의식적인 ‘나’와 ‘생리적 무의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사이에 잠재의식의 폭넓은 활동 범주가 있다고 짐작한다. 

 

  게다가 만약 초감각적 작용과 사이코키네시스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무의식 수준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들 의식이며 물적 대상들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데카르트와 그 후계자들이 무시하기로 하고 또 그의 전배들은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악마의 틈입으로만 설명할 수 있었던, 그 기괴한 해프닝들을 오늘날 우리는 인간 심리의 자연스러운 가능성으로 돌린다. 또 이 심리의 영역이며 힘과 약점은 오늘날 과학적 관념을 한참 뛰어넘는다. 

 

  그 당시 사람들은 루덩에서 발생한 일들을 협잡이라 여기지 않았다면 순전히 심리적 측면에서는 마법과 악마의 간계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수녀들 행동을 순전히 심리적 측면이 아니라 생리적 원인으로 돌리려 한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잔느 수녀가 내보인 것 같은 현상을 생리 기능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며, 물리적 대응 수단이 적절하다고 했다. 이 이론을 굳게 믿는 이들은 회초리라는, 오래 된 수단을 써 보라고 제시했다

 

  탈망[각주:6]의 기록을 보면, 쿠드레-몽팡시에 후작은 귀신들렸다 하여 엑소시스트들 손에 맡겼던 딸 둘을 집으로 데려간 뒤 ‘잘 먹이고 호되게 회초리질을 했다. 그러자 악마가 즉각 달아났다.’ 루덩에서도 마귀 들림의 나중 단계에서는 채찍질이 아주 많이 처방됐다. 수렝의 기록을 보면, 교회 의식을 비웃기만 하던 악마들이 회초리를 보자 부리나케 달아난 경우가 왕왕 생겼다. 

 

  많은 경우 예전 회초리질은 아마도 현대의 충격 요법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즉, 무의식이 육체적 고통을 아주 겁내어, 그런 고통을 또 겪느니 차라리 미친 듯 행동하기를 그만 두는 식.[각주:7] 19세기 초까지도 광기가 확실하다 싶은 경우에는 채찍질을 동원한 충격 요법이 어김없이 적용됐다. 

 

베들람의 아늑한 방에서 

스물 하나 될 때까지 나는 

단단한 수갑 차고 달콤한 채찍 맞으며 

기도와 절식도 원 없이 했구나. 

이제 난 노래하니, “아무 음식이든, 

먹을거리든 마시고 입을 거리가 좀 있어요? 

아주머니, 혹은 하녀여, 날 겁내지 말아요. 

불쌍한 톰은 그 누구도 해치지 않아요.”[각주:8]

 

  불쌍한 톰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신민이었다. 그러나 2백 년이 지나 광기 어린 조지 3세 치하에서도 잉글랜드 의회 양원은 궁정 의사들한테 미친 왕을 채찍질하도록 위임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평범한 노이로제나 히스테리에 회초리질이 효과를 본다고 간주됐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었다. 이런 질환은 당시 의학 이론에 따르면 흑담즙이 잘못된 부위에 지나치게 누적돼 생겼다. 로버트 버튼은 이렇게 말한다. 

  「갈레노스는 이런 질환을 모두 검은 냉기 탓으로 돌리면서, 이 질병 탓에 스피릿이 검어지며 뇌 물질이 흐리고 어두워진다고 생각한다. 또 그 결과 주변 대상이 다 끔찍하게 보이며, 마인드 자체는 검은 체액에서 나오는 이 어둡고 칙칙하고 짙은 기운 때문에 늘 어둠과 공포와 비탄에 잠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갈레노스의 이런 판단을 두고 아베로에스[각주:9]가 비웃고 작센의 헤라클레스도 빈정댄다. 그러나 엘레니우스 몬탈투스, 로도비쿠스 메르카투스, 알토마루스, 기네리우스, 브라이트, 라우렌티우스 발레시우스 등은 갈레노스의 관점에 적극 동조했다. 

 

  정신이 흐트러지면 흑담즙이 생성되고, 침울함은 스피릿을 흐리게 하고, 흐려진 스피릿이 공포와 비탄을 야기한다는 게 그들이 내린 결론이다. 라우렌티우스는 검은 기운이 특히 횡격막을 공격하고 이어서 정신을 공격한다고 추정하는데, 그건 태양이 구름에 가려 흐려지는 것과 같다. 

  갈레노스의 견해에 그리스와 아라비아의 거의 모든 저자를 비롯해 라틴계 저자들도 다 동의한다.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겁을 내듯이, 흑담즙질 성향인 사람들은 내면에 늘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 검은 기운이 (예수회 신부 토마스 라이트가 애착에 관한 소론에서 주장하듯이) 심장 부근의 검은 피에서 나오든지 혹은 위장이나 비장, 횡격막, 혹은 뭔가 잘못된 부위들 전부에서 나오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검은 기운이 정신을 집요한 감옥에 잡아두고 끝없는 공포와 불안, 슬픔 따위 힘든 감정으로 괴롭힌다는 점.」 

 

  그런 식으로, 생리적 관점에서 정신질환은 건강하지 못한 혈액이나 병든 내장에서 발생하는 연기나 안개 같은 것으로 여겼으며, 이 ‘검은 기운’이 뇌나 정신을 직접 흐리거나 아니면 자연스럽고 활기차고 생명력 있는 스피릿들이 흘러야 하는 여러 튜브를 막는 것이라 했다. (당시에는 신경 조직을 속이 빈 관처럼 여겼으니까) 

 

  (근세 과학 문헌을 읽다 보면 가장 거친 초자연주의와 가장 거칠고 나이브한 유물주의 같은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데 이 덜 다듬어진 유물주의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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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Claudius Galenus (129-201경) - 고대 로마의 의사, 자연과학자. 고대 의술의 대가. [본문으로]
  2. Killigrew (1612–1683) - 잉글랜드의 극작가, 연출가, 극장 운영. 국왕 찰스 1세의 시동으로 출발해 찰스 2세의 침실 시종관. 위트에 능한 대화 상대, 자유분방한 인물. [본문으로]
  3. Church Militant - 싸우는 교회, 현세에서 악과 싸우는 교회. *기독교 신학에서, 그리스도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렇게 나뉜다. 1) 전투 교회 - 지상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포함 (에베소서 6: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2) 승리의 교회 - 현세에서 악과 싸워 이겨 승천한 천국의 영혼들을 포함 3) 참회의 교회 - 지금 연옥에 있는 이들을 포함. [본문으로]
  4. Friedrich Mesmer (1734-1815) - 유대계 오스트리아 의사. 1775년 ‘동물 자기론(磁氣論)’ 발표. 뉴턴 역학 초기의 가설인 '에테르'란 개념을 환자 치료에 이용했다. [본문으로]
  5. psyche - 전통적으로, 영혼은 살아있는 것에만 고유한 것으로 인식돼 왔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 영혼을 사이키라 불렀다. [본문으로]
  6. Gédéon Tallemant (1619-1692) - 프랑스의 시인. 여러 인물에 관해 간결한 이야기 모음집 덕분에 후세에 기억된다. 루이 14세 시대 파리의 유명한 문학 살롱 주인인 마담 랑부이에가 앙리 4세와 루이 13세 치세의 상세한 자료를 많이 제공. 당대 문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이 저술에 파스칼과 라퐁텐도 들어 있다. [본문으로]
  7. 정신병 치료 방법과 결과가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였다. 한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그 문건들을 연구하고 나한테 들려준 바로는, 아주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니, 정신질환 치유 비율은 2백 년에 걸쳐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전혀 다른 방법들을 쓰고 있음에도 그렇다고 한다. 현대 정신 분석가들의 치료율은 1800년도 정신병 의사들의 치료율보다 더 높지 않다. 1600년도 정신병 의사들도 비슷했을까? 정확한 답을 우린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17세기에는 정신질환자들을 아주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많은 경우 병을 악화시켰을 텐데, 이 주제를 우리는 저 뒷장에 가서 다시 다룰 것이다. - 저자 주. [본문으로]
  8. - 1600년도쯤 잉글랜드에서 널리 퍼진 발라드. 작자 미상. 베들람은 정신병원. '베들람의 톰'은 미치광이라는 뜻으로, 근세 이후 영국에서 미쳤거나 미친 체한 거지와 부랑자를 일컬을 때 쓴다. 그들은 베들람의 환자였다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추정된다. 이 장시는 이후 현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시와 글과 소설과 노래 앨범 등에 영감을 주거나 인용됐다. 예,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서 존 캔티가 에드워드 왕자에게 “베들람의 톰처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고 말한다. [본문으로]
  9. Averroes (1126-1198) - 아랍의 종교철학자. 본명은 이븐 루슈드. 코르도바에서 이슬람 종법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모로코에서 죽다. 자연과학, 의학, 수학, 신학, 철학 등 당대 모든 학문을 섭렵. 독자적 저술도 적잖이 있으나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자로 명성을 떨쳤다. "자연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해석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베로에스가 처음 해석했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유일한 이슬람 학자. 단테는 <신곡>에서 그를 비기독교 세계의 현자 대열에 두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 유대 세계의 최고 철학자인 마이모니드에게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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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루덩의 악마들

 


6

 

  수석 치안판사 세리제는 예비 조사를 통해 확신하게 됐다. 

  그래, 진짜 마귀 들림 같은 건 없어! 그저 수녀들이 질환에 걸렸을 뿐이며, 여기엔 협잡 기미도 좀 보이는군. 게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 쪽의 상당한 악의, 또 이 일에 관련된 교회 관계자들의 맹신과 광기, 개인적 이해관계 따위로 상황이 조장된 게야. 흠, 저 엑소시즘이라는 코미디를 그만두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되겠어. 

  그러나 수녀들의 혼과 넋을 쏙 빼놓는 그 계획을 중단시키려 하자 미뇽과 바레가 주교의 명령서를 의기양양하게 꺼내들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수녀들에게 퇴마 작업을 계속 시행하라. 그걸 보자 세리제가 교회와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엑소시즘을 계속하도록 허락은 했지만 그 퍼포먼스 때 자신이 꼭 참관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몇 번 하던 중 한번은 굴뚝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벽난로에 검은 고양이가 불쑥 나타났다. 저건 사탄의 자식이 틀림없어! 날카로운 단정이 튀어나온 동시에 사탄의 자식이 구석으로 내몰렸다가 결국 붙잡혀서 성수를 홈빡 뒤집어썼다. 수도사들이 분주하게 성호를 그어대며 그 짐승한테 다시 지옥으로 사라지라고 라틴어로 명령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 끝에 알고 보니 이 위장한 악마는 수녀들이 귀여워하는 녀석으로, 이름이 톰이었다. 녀석은 지붕 위에서 뛰어다니다가 더 빠른 길로 집에 들어오려 했던 것일 뿐. 수녀원 아치 밑에서 라블레를 떠올리게 하는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다.[각주:1]     

 

  다음 날 미뇽과 바레가 뻔뻔스럽게도 세리제의 코앞에서 수녀원 숙사 현관을 걸어 잠갔다. 그가 동료 치안판사들과 함께 쌀쌀한 가을 날씨에 밖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종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동안 안에서는 그의 지시를 어기고 두 수도사가 공식 참관인 없이 저희 제물들에게 퇴마 작업을 시행했다. 

 

루덩 수녀들을 대상으로 미뇽이 퇴마 작업

 

  화가 잔뜩 난 치안판사가 집무실로 돌아와 무례한 엑소시스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했다. 그들 행위는 협잡과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게다가 이런 구절도 들었다. 그랑디에가 악마들과 결탁했다면서 원장수녀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마당에 비밀로 해야 할 것이 무에 있겠소. 오히려 이제 모든 것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공정하게 행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런 단호함에 깜짝 놀란 엑소시스트들이 사죄를 구하며 황급히 알렸다. 수녀들이 진정됐으니 당분간은 엑소시즘이 불필요하게 됐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랑디에가 주교한테 호소하기 위해 푸아티에로 말을 달렸다. 그러나 그가 들렀을 때 라로슈포제는 접견을 거부하고 수하를 통해 이런 취지의 메시지만 덜렁 보냈다. 

  그랑디에 신부는 왕실 판사들한테 소를 제기해야 하고, 이 사건에서 정의가 승리한다면 본 주교는 대단히 행복할 것이다. 

 

  주임신부가 루덩으로 돌아와서 즉각 수석 치안판사에게 미뇽과 그 패거리의 못된 짓거리를 금해 달라고 청했다. 세리제가 신속하게 금지 명령을 내렸다. 차후로는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 성 베드로 교회 주임신부에 대한 중상과 비방을 엄금한다. 이와 더불어 미뇽에게 엑소시즘을 더 이상 시행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참사회 위원이 날카롭게 응수했다. 

  나는 교회 지도부에만 매여 있을 뿐이며, 악마가 개입돼 있기에 완전히 종교적인 이 사건에서 사법 당국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소. 

 

  그 사이에 바레가 시농에 있는 제 교구로 돌아갔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을 더 이상 벌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참사회 위원 미뇽은 조프리디 신부 재판을 다룬, 미하엘리스 수사의 베스트셀러를 매일 몇 시간씩 신도들에게 읽어 주면서 그랑디에는 화형 당한 프로방스 동료 못지않게 위험한 마법사이며 당신들 역시 그의 마법에 걸렸다고 떠들어댔다

 

  그 무렵 수녀들이 어찌나 기이하고 난잡하게 행동했는지 수녀원 기숙학교에 딸을 맡긴 부모들이 경악했다. 기숙학교에는 금방 학생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고, 아직 과감하게 수녀원을 드나드는 통학생 몇 명이 가장 불안케 하는 소식을 들고 나와 사람들 상상을 계속 자극했다. 

 

  수학 시간에 클레어 수녀가 대뜸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지 뭐예요, 마치 누군가가 간지럼 태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식당에서 마르타 수녀가 루이즈 수녀와 드잡이를 했는데, 둘 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댔어요! 

 

마귀 들렸다는 수녀를 상대로 엑소시즘을 시행하는 수도사

 

  11월 하순 바레가 시농에서 돌아온 뒤 그의 영향을 받아 수녀들 증세가 대번에 악화됐다. 수녀원이 이제 정신병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외과의 만누리와 약제사 아담이 불안한 마음에 도시 일류 의사들에게 와서 보고 자문 좀 해주십사 청했다. 그들이 수녀원에 와서 수녀들을 일일이 검사한 뒤 수석 치안판사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결론은 이랬다. 

  「수녀들이 물론 제 정신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이 악마며 악령들의 작용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이른바 마귀 들림은 모든 면으로 판단컨대 실제가 아니라 허황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 보고서로 상황이 종료된 듯했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들과 그랑디에의 적수들한테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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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랑디에가 세리제에게 다시 탄원하자 세리제가 엑소시즘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가학을 끝장내려고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똑같은 스토리가 반복됐다. 즉, 미뇽과 바레가 사법 당국 지침을 또 무시했고, 수석 치안판사는 수도사들을 상대로 물리력을 동원할 때 생길 파문을 우려하여 또 움츠러든 것. 

  그 대신 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 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대미문의 불량한 짓’을 예하께서 막아 주십사고 촉구했다. 이런 내용도 적었다. 즉, 그랑디에는 평생 그 수녀들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만약 수녀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악마들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안다면 자신에게 가하는 중상비방과 모욕에 복수하기 위해 왜 악마들을 이용하지 못하겠습니까?」 

  이 서한에 라로슈포제가 응답하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주교의 판결에 감히 반박했을 때 그는 치명적인 모욕감을 느꼈었다. 따라서 시건방진 주임신부를 괴롭힐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전적으로 옳고 적절하고 합당했다. 

 

  그러자 세리제가 서신을 한 통 더 썼다. 이번에는 주교 관구 법률 감독관에게 보냈다. 주교한테 보낸 것보다 더 상세하게 적은 이 서신에서 그는 루덩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광대극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미스터 미뇽은 미스터 바레를 이미 성자로 칭하며, 두 사람은 자기네 상급자들의 평가도 기다리지 않은 채 서로를 성자 반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바레는 악마가 수녀들 목소리로 말하면서 문법이 틀리면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구경꾼들 중에서 의심하는 사람들을 불러내 제가 하는 대로 마귀 들린 수녀 입에 손가락을 넣어 보라 하기도 하지요.[각주:2]

  프란체스코회 루소 수도사는 그렇게 하다가 어찌나 세게 물렸는지 다른 손으로 수녀의 코를 잡아당겨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손가락을 빼내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서 “오, 이 악마, 악마야!”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는 생선 토막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내쫓는 식모들 고함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이 사건 이후 성수에 담근 손가락을 마귀가 왜, 어떻게 깨물 수 있었는지 진지하게 토론한 끝에 성직자들은 주교께서 교회에 성유를 너무 적게 내리는 바람에 주입된 영력이 손가락까지 미치지 못한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몇몇 풋내기 성직자들이 엑소시즘을 해 보겠다고 나섰다. 개중에 필리프 트렌캉의 오빠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젊은이가 라틴어를 워낙 시원치 않게 하는 바람에 학식 있는 이들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는 데뷔하자마자 멋쩍게 물러나야 했다. 세리제의 서한을 보면 그뿐이 아니다. 트렌캉이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녀는 발작의 최고조에서도 그의 손가락을 제 입에 넣지 못하게 하면서 다른 성직자를 붙여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손가락이 너무 지저분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카푸친회의 속관구장 신부는 루덩 주민들의 각박함에 놀라고 믿으려는 마음 없음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면서 투르 시에서는 이런 기적을 주민들이 믿게 만들기가 버터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고 우리한테 장담하지요. 그를 비롯해 몇몇 성직자들이 줄곧 단언하기를, 이런 기적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죄다 무신론자이며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서신에도 역시 답장을 못 받았다. 악몽 같은 광대극이 12월 중순까지 연일 계속됐는데, 그맘때 다행히도 보르도 대주교인 수르디스가 생주앙 드 마른 대수도원에 머물려고 왔다. 그랑디에가 비공식적으로, 세리제가 공식적으로, 대주교에게 작금의 상황을 알리고 개입을 요청했다. 수르디스가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개인 주치의를 득달같이 파견했다. 

  수녀들은 이 의사가 황당무계한 짓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의 주인인 대주교가 이 스토리를 대놓고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서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어린 양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수녀들이 마귀에 들씌웠다는 징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보고서에 그렇게 썼다. 

 

  1632년 12월 말 대주교가 포고령을 공표했다. 미뇽에겐 앞으로 엑소시즘 시행이 금지됐고, 바레는 계속할 수 있지만 대주교가 지명한 두 명의 엑소시스트와, 즉 푸아티에에서 온 예수회 수사와 투르에서 온 오라토리오회 수사와 함께 해야 하게 됐다. 그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엑소시즘에 참여할 권한을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금지령은 거의 불필요했다. 그 뒤 몇 달 동안은 퇴치할 악마들이 없었으니까. 수도사들의 암시와 주입으로 더 이상 자극되지 않은 수녀들의 광란 발작은 암담한 숙취 상태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런 상태에서 정신적 혼란이 수치심이며 자책이며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자각과 뒤섞였다. 

  대주교 말씀이 옳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악마라곤 애초부터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저지른 끔찍한 행위와 언사는 깡그리 우리 죄가 될 수 있잖아!   

  마귀 들렸다고 간주된 상태에서는 아무도 그들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이제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성 모독과 음란한 언행, 거짓과 중상비방에 대해 그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해명해야 하리라. 수녀들한테 지옥이 아가리를 발바투 벌렸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돈줄이 뚝 끊기고 사람들이 모두 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여학생들 부모며 도시의 독실한 귀부인들, 구경꾼 무리, 심지어 일가친척까지 모조리 이 불행한 여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그야말로 일가친척들까지도! 

  왜냐하면, 대주교 판결에서 분명해졌다시피 그들은 협잡꾼 아니면 우울증 환자들로 드러남으로써 집안 명예도 더럽혔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자 다들 내놓은 자식이 되었고 집에서 보내오던 용돈마저 딱 끊겼다. 숙사 식탁에서 고기와 버터가, 주방에서 하녀들이 사라졌다. 숙사의 크고 작은 일을 수녀들이 직접 하게 됐고, 그게 끝나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바느질을 하거나 양털로 실을 뽑았다. 탐욕스러운 장사꾼들은 수녀들의 절박함과 불운을 악용하여 정상적인 노동 대가보다 더 헐한 값을 지불했다. 

  가련한 여인들이 배곯고 힘겨운 작업에 시달리며 극히 추상적인 두려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외려 얼마 전 악령에 사로잡혔을 적의 행복한 나날을 그리워하게 됐다. 겨울 끝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됐건만 그들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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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François Rabelais (1494-1553) -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중견 작가, 의사, 인문학자, 자연주의자, 휴머니스트, 법률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현대 유럽문학에 기초를 놓은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도처에서 횡행하는 끔찍한 사회적 질환에 거대한 웃음보따리를 처방했다.” ‘라블레 풍의 웃음’이란 솔직하고 거칠면서 풍자적이고 유머가 풍부한 웃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2.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요한복음 20: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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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vintage Huxley the devils of loudun

 


 

  한때 '천사들의 수녀' 잔느요, 이제 루덩의 우르술라회 수녀원 책임자인 사람의 인격이 완전히 짓밟히고 파괴됐다. 사도 바울을 패러디하여 그녀가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리라. “내가 살고 있긴 하되 이미 내가 아니라, 오물과 굴욕과 생리 기능만이 내 안에서 살고 있구나.”[각주:1]

 

  악마들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더 이상 피험자가 아니라 그저 대단한 흥밋거리일 뿐이었다. 그건 끔찍하지만 또한 놀랍기도 했다. 즉, 인격에 대한 폭력이자 동시에 새로운 것의 발견이요, 문자 그대로 황홀경의 체험, 미우면서도 아주 친숙한 ‘나’한테서 벗어남이었다. 

 

 이 시기에 잔느 수녀는 악마에 들씌웠다는 느낌을 전혀 몰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뇽과 바레가 그녀 안에 악마들이 들끓고 있다고 말하고, 그들의 엑소시즘으로 유도된 광란 상태에서 그런 얘기를 그녀 스스로 입에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일곱 악마에 (아스모데우스를 내쫓은 뒤 여섯이라고 치자) 사로잡혔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이 아주 작은 몸뚱이에 그런 게 들어앉았다고는 말들 하는데… 그 상황에 대해 그녀가 행한 분석이 여기 있다. 

 

  「사람이 악마한테 동의하거나 계약을 맺지 않았는데도 마귀에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당시에 난 믿지 않았다. 한데 그건 착각이었다. 왜냐면 가장 순수한 사람이며 가장 성스러운 사람조차 악마에 지배될 수 있으니까. 물론 나야 순결한 사람 축에 들지 못했다. 죄를 범하고 은혜를 계속 내치면서 나 자신을 악마에게 바친 적이 수천 번은 됐으니… 악마들이 내 마음에 둥지를 틀고 내 의지를 장악했다. 내 영혼에서 악의 싹들을 찾아내 나를 자기네 악마 같은 본성으로 끌어들였어… 

 

  대개 악마들은 내 영혼에 있는 감정을 이용했는데, 어찌나 능숙하고 교묘한지 내 안에 악마가 있다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악마에 사로잡힌 게 아니냐고 사람들이 의심하는 빛을 보일 때 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할 때면 난 맹렬한 분노를 느껴서 적의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그랑디에 꿈을 꾸지 않을 수 없던 사람이요 바레가 실험실 동물처럼 다룬 사람이, 엑소시즘을 받지 않는 동안에는 자신을 비정상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불행한 상황 때문에 수녀원 담장 안에서 산 채로 시들어갈 운명에 처한, 평범한 여인의 감정을 굴욕감이며 환각적 관능이 아직은 다 억누르지 못했다. 

 

  바레와 다른 엑소시스트들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그들은 자서전을 남기지 않고 서신도 쓰지 않았다. 이태쯤 뒤 수렝 수사가 무대에 등장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심리적 난장판에 관여한 남성들은 저희 스토리를 개인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수렝은 내향적인 성격에 자신과 대화하며 동료들의 과묵함을 대신하여 펜과 종이로 메우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우리가 사건들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처음에 루덩에서, 나중에 보르도에서 보낸 이 초기 몇 해를 묘사하면서 수렝은 육체가 거의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렸다고 하소한다. 그가 악귀 들린 수녀들 사이에서 엑소시스트로 살았다는 점으로 보자면 그런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줄곧 성적 흥분 상태에 빠져 히스테리 부리는 여인들 속에서 그는 유일한 남자였다. 그것도 무엇이든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수녀들이 무방비 상태로 복종하는 까닭에 사탄과 싸움의 지휘관으로서 당당한 남성다움을 외려 더 강조해야 했다. 그들의 수동성은 그가 지배한다는 느낌을 더 키워 주었다. 통제되지 않는 광란 한가운데서, 그는 정신이 또렷하고 강했다. 짐승 같은 상태 한가운데서, 그 하나만이 사람다웠다. 악마들 한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의 대표자였다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그는 더 낮은 질서의 이 피조물들을 하고픈 대로 다룰 권한을 지녔으니, 그들이 갖은 재주를 다 부리게 하고 그들을 발작 상태로 이끌고 그들을 감당키 힘든 암퇘지나 암소처럼 거칠게 다루고 관장기나 채찍을 처방하기도 했다. 

 

  [*저자 주 ☞ 토마스 킬리그루는 1635년 루덩에서 본 매혹적인 수녀 아그네스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미모가 뛰어나면서도 충격적일 만큼 추잡한 행위를 보인 이 수녀를 엑소시스트들은 ‘착한 악마’라고 불렀다. 

  「그녀는 아주 젊고 아름답고 늘씬하고 상냥하니, 한마디로 그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다. 사랑스러운 얼굴에 멜랑콜리 수심이 깊게 서렸다. 내가 채플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베일로 얼굴을 가렸지만, 금방 다시 눈길을 드러냈다. (*킬리그루는 당시 스무 살에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으니까.) 비록 노예처럼 꽁꽁 묶여 있다 해도, 그 검은 눈에서 이전 승리들의 반짝임을 읽을 수 있었다.」 

 

  자, 아그네스는 탁발수사의 수중에 든 노예 같았다. 킬리그루의 다음 묘사를 보면 이 불행한 처녀를 수도사가 두 발로 짓밟았다. 그녀가 발작 상태에서 마룻바닥을 대굴대굴 구르자 그가 의기양양하게 내려다보았다. 

  「그건 참으로 애처로운 장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퇴마라는 기적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싹 가시는 바람에 그만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마귀에 들린 여인들은 정신이 좀 들 때마다 저희 주인인 엑소시스트들한테 생리 현상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털어놓고 무의식의 습기 찬 심연에서 훑어 모은 가장 난잡한 몽상들을 낱낱이 묘사했으리라. 그들 인격의 필수 부분이었던 규약과 범절을 깨며 어떤 외설스러운 즐거움을 맛보는지 고백하면서! 

 

  엑소시스트들과 마귀 들렸다고 추정된 수녀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 식인지를 1658년에서 1661년까지 부르고뉴 주 옥손 지역 우르술라회 수녀들의 마귀 들림에 대한 동시대 보고서 중 다음 대목이 잘 알려준다. 

 

  「수녀들이 이렇게 단언한다. (이 점은 성직자들도 그렇다.) 곧, 엑소시즘으로 성직자들이 서혜부 헤르니아, 자궁탈출증, 혹은 자궁통 같은 질환에서 그들을 벗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또 사악한 마법사들 때문에 생긴 자궁 열상을 치료해 주고, 그자들이 심어 놓은 은밀한 가시며 흉한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남은 초 토막과 매듭, 기타 학대 도구들을 부끄러운 부위에서 뽑아내기도 했다. 또 성직자들이 수녀들의 배앓이와 위장통, 편두통을 치료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유방 울혈도 치료했다고 분명히 밝힌다. 

  그뿐 아니라 엑소시즘으로 출혈을 체크하고, 악마들이며 마법사들과 성교로 인한 복부 팽창은 성수를 잔뜩 마시게 하여 없애 버렸다고 단언한다. 수녀들 중 셋은 악마들과 성교하여 처녀성을 빼앗겼다고 서슴지 않고 밝힌다. 또 다른 수녀 다섯은 마법사와 주술사와 악마들 수중에서 고통을 많이 겪었다고 똑똑히 말한다. 그 행위를 수치심 때문에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앞의 셋이 묘사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진술이 사실임을 앞에 나온 엑소시스트들이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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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저분한 것들이 천연스레 나오는데다 외과적 지식은 또 얼마나 상세한가! 도덕적으로 불결한 만큼 육체적으로도 불결하다. 생리적 비참함이 영적이며 지적인 비참함과 맞먹는다. 이 모든 사연 위에 억압된 관능이 악취 물씬 풍기는 연무처럼 드리워 있다. 칼로 벨 수 있을 만큼 두텁게, 도처에, 피할 수 없이! 

  부르고뉴 고등법원 결정에 따라 그 수녀들을 방문한 의사들은 마귀 들렸다는 증거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 대신 거의 모든 수녀들이 예전에 우리네 선조들이 자궁광란이라 부르던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보게 됐다. 이 질환의 증상은 ‘억제할 수 없는 성적 쾌락 욕구가 수반된 신열’과 더 젊은 자매들 경우에 ‘섹스 이외의 것은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귀 들린 수녀들이 있는 수녀원 분위기가 바로 그러했다. 엑소시스트들과 수녀들 간의 내밀한 관계는 부인과 전문의와 환자, 조련사와 동물, 존경받는 정신과 의사와 수다스러운 신경증 환자 간의 친밀한 관계를 전부 합해 놓은 것과 같았다. 담당 성직자는 그들과 매일 밤낮으로 몇 시간씩을 보냈다. 

  옥손 지역 우르술라 수녀들 사건 경우 엑소시스트들의 파워가 지나치게 컸으며, 개중 몇몇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저들 위치와 전권을 남용한 듯 보인다. 그러나 루덩에서 잔느 수녀와 다른 히스테리 환자들을 다룬 신부와 수도사들에게는 그런 비난이 돌아가지 않았다. 거기서도 수렝이 증언한 것처럼 유혹은 늘 있었지만, 엑소시스트들이 잘 물리쳤다. 오랜 기간 긴장된 방탕은 상상에서만 일어났을 뿐 육욕적인 것은 전혀 아니었다

 

  아스모데우스 퇴치는 그 자체로 두드러진 승리였고 수녀들도 그맘때에는 악귀 들린 역할에 훈련이 잘 됐기 때문에, 미뇽을 비롯해 그랑디에의 적대자들이 이제 공식 행동에 돌입해도 충분하겠다는 자신감을 느꼈다. 

  10월 11일 베니에르 교구 주임신부인 피에르 랑지에가 도시의 수석 치안판사인 세리제를 집무실로 찾아갔다. 우르술라회 수녀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간략히 알린 뒤 그와 그의 부관 루이 쇼베가 와서 직접 확인해 보라고 초빙했다. 초빙이 수락됐고, 당일 오후 두 치안판사가 서기를 대동하고 수녀원을 방문했다. 

 

  그들을 바레와 참사회 위원 미뇽이 맞이하여 「천장 높은 방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침대가 일곱 개 놓였는데, 그 중 하나에 수련수녀가, 다른 하나에는 원장수녀가 누워 있었다. 후자 주위에는 카르멜회 수사 몇 명과 수녀 몇 명, 외과의 만누리, 또 성 십자가 교회 참사회 위원이자 성직자인 마튀렝 루소가 둘러서 있었다.」 

 

  수석판사와 부관을 보자 원장수녀가 (서기가 상세히 기록한 것을 보면) 「아주 난폭하게 뒤척이면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불을 끌어올리고는 이를 바드득 갈고 경련을 일으키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몸을 뒤틀어대니 미치광이와 매한가지로 보였다. 그녀 오른편에 카르멜회 수사가, 왼편에 앞에서 말한 미뇽이 서 있는데, 그가 엄지와 검지를 수녀원장 입에 집어넣고 우리더러 보란 듯이 주문을 읊으며 엑소시즘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엑소시즘 실행

 

  이 엑소시즘과 주문 읊는 과정에서 두 가지 ‘징표’ 때문에 잔느 수녀가 악마와 계약을 맺게 됐음이 드러났다. 먼저 그녀 법복에 산사나무 가시 세 개가 들러붙었고, 다음에는 그녀가 층계에서 장미 다발을 발견하고 주워서 허리춤에 꽂은 것. 

 

  「그 순간 오른손이 마구 떨리면서 그랑디에에 대한 날카로운 욕망에 사로잡히고는, 내면에 각인된 그 모습에서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었다. 기도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꽃다발은 누가 보낸 것인가?” 

  라틴어로 한 질문에 원장수녀가 한참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Urbanus.” 

  그러자 미뇽이 말했다. “Dic qualitatem.” 

  그녀가 대답했다. “Sacerdos.” 

  “Cujus ecclesiae?” 그가 묻자 앞의 수녀가 답했다. 

  “Santi Petri.” 

  그런데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나왔다.」[각주:2]

 

  엑소시즘이 끝나자 미뇽이 수석 치안판사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참사회 위원 루소와 부관 쇼베가 있는 자리에서 촌평 삼아 한마디 꺼냈다. 

  지금 이 상황은 루이 조프리디의 경우와 아주 흡사해 보입니다. 

  프로방스의 성직자였던 조프리디는 마르세유 우르술라회 수녀들에게 마법을 걸어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20년 전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조프리디를 언급함으로써 속내가 드러났다. 주임신부를 상대로 한 새로운 싸움 전략이 명백하게 나타났다. 그랑디에는 마법과 주술을 행한다고 기소돼 재판을 받을 터였다. 무죄 판결이 난다 해도 평판이 돌이킬 수 없이 더럽혀지고, 유죄 선고를 받으면 장작불 위에서 산 채로 화형을 당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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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5편 4

 

 

  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본문으로]
  2. (*우르바누스-우르뱅의 라틴어 이름) (*그의 직분을 말하라) (*성직자) (*어떤 교회의?) (*성 베드로 교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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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그 다음에 일어난 사건은, 이 기나긴 시리즈에서 결국 주임신부를 파멸로 이끈 결정적 사건은, 다소 터무니없는 장난이었다. 이 장난은 젊은 수녀들과 상급 학생 몇몇이 어린 학생들과 독실하고 순진한 늙은 수녀들을 놀래 주려고 꾸민 것으로, 핼러윈 때 흔히 볼 수 있는 유령과 폴터가이스트[각주:1]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수녀들과 기숙학생들이 살고 있는 건물은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에 싸여 있었다. 그런 까닭에 늙은 영적 지도자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연 수의를 둘러쓴 형체가 수녀원 숙사 복도에서 배회하는 장면이 목격됐을 때, 거기 거주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유령이 처음 출현한 뒤 문마다 빗장이 단단히 걸렸다. 그러나 유령들은 길잡이를 따라 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오거나 방안에 있는 제 5열의 도움으로 숨어들었다. 한밤중에 침대 욧잇들이 벗겨지고 자고 있는 얼굴들을 얼음장 같은 손길이 더듬었다. 머리 위 다락방에서 신음소리와 쇠사슬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소녀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존중받는 수녀들이 성호를 그으며 성 요셉을 불렀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유령들은 이삼일 잠자코 있다가 또 나타나는 것이었다. 기숙학교와 수녀원 전체가 패닉에 휩싸였다

 

  참사회 위원 미뇽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장난에 참여한 여학생들이 고해 시간에 죄다 밝혔으니까. 침실에 나타나는 인큐버스, 기숙사를 배회하는 유령들, 다락에 숨어든 몹쓸 장난꾼들… 그 정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줄기 빛이 퍼지고 섭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퍼뜩 깨단했다. 

  그래, 이야말로 최상의 조건이군! 이걸 이용하면 되겠어! 

 

  그가 장난꾼들을 꾸짖고는, 이 몹쓸 짓에 관해 누구한테든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장난질의 희생자들한테는 그들이 본 게 유령이 아니라 악마들임에 틀림없다고 말함으로써 새로운 공포를 불어넣었다. 또 외설스러운 환영에 시달리는 원장수녀와 수녀들한테는 밤마다 찾아오는 방문객이 꿈이 아니며 실제로 사탄의 물리적인 희롱이 분명하다고 확실하게 설명했다

 

  그 뒤 그가 주임신부의 강력한 적대자 네댓 명과 함께 시내에서 5킬로쯤 떨어진, 트렌캉의 교외 저택에 모였다. 그 전략협의회 자리에서 미뇽은 수녀원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설명하고,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그랑디에한테 강력한 타격을 안길 수 있겠다고 선동했다. 서로 머리를 맞댄 결과 비밀 병기들과 심리전과 초자연적 정보부 따위를 죄다 갖춘 작전계획이 수립됐다. 음모자들이 희희낙락했다. 

  그자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번에는 절대 못 빠져나갈 게야! 

 

  작전 계획에 따라 미뇽이 카르멜회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유능한 엑소시스트. 

  수도사들 중에 적임자 한 분 안 계시겠습니까? 

  수도원장이 적극 천거하고 나섰다.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을 추천해 주었다. 성 미셸의 요셉 수사, 성 샤를의 피에르 수사, 앙투안 수사. 

 

   미뇽의 주도로 그들이 간단치 않은 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그들 작전은 아주 성공적이어서 불과 며칠 만에 아주 늙은 두셋을 제외하고 수녀들이 모두 밤마다 주임신부 형상의 악마를 보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수녀원 밖으로 새나가기 시작했다. 소도시 주민들이 다들 수군댔다. 

  아, 글쎄, 그 착한 수녀들이 다 악마에 씌웠다지 뭐야. 그 악마들이 저 도깨비 같은 그랑디에의 사주를 받아서 수녀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지? 

  당연히 프로테스탄트들이 가장 좋아했다. 

  저런, 저런, 로마교황의 성직자가 우르술라회 수녀원 전체를 타락시키려고 사탄과 밀통하다니! 라 로셸을 무참히 함락시키니까 이런 변이 생기는 거야! 

 

  한데 당사자는 그런 수군거림에 그저 어깨 한 번 추썩이는 것으로 반응하고 말았다. 나로서야 원장수녀나 그녀의 정신 나간 자매들을 한 번 본 적도 없는 걸. 그 실성한 여인들이 나에 관해 무슨 얘기를 지껄이든, 그건 그들 정신질환의 소산일 뿐이오. 그러니까, 님포마니아[각주:2]와 결합된 멜랑콜리라는 질환이야. 남자들과 접촉 차단된 가엾은 여인들이 인큐버스와 교접한다고 상상할 만도 하지. 

 

  그런 촌평을 전해 듣자 미뇽이 미소만 가볍게 지으며 덧붙였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웃는 게야. 

 

우르술라회 수녀원에서 엑소시즘을 집행하다

 

  몇 달 동안 악마들과 영웅적으로 씨름하면서도 마귀 들린 여인들한테서 퇴마 작업이 아주 힘겨운데다 성과가 별로 없자 미뇽이 지원군을 요청하게 됐다. 

  먼저 부름받은 사람은 피에르 랑지에, 베니에 교구의 주임신부. 그는 교구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주교의 앞잡이라는 사실 때문에 다들 꺼려했다. 참사회 위원 미뇽이 일부러 랑지에를 초빙한 것은 상부에서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마귀 들림과 엑소시즘이 다 공식적이고 교규에 합당한 작업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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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지에한테 다른 신부가 또 합류했는데, 그는 기질이 전혀 달랐다. 인근 시농 도시에 있는 생 자크 교구의 주임신부인 바레는 하나님보다 악마를 훨씬 더 실제적이고 흥미로운 존재로 보는 부정적인 기독교인 축에 들었다. 그는 모든 것에서 ‘갈라진 발굽’[각주:3] 자국을 보았으며 인간 삶에서 유별나거나 파멸을 초래하거나 지나치게 즐거운 사건은 죄다 사탄의 짓으로 인식했다. 무엇보다도 사악한 벨리아르바알세불과 맞서 드잡이하기를 즐겼고,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하는 짓이 악귀 들린 사람들을 조작해 내고는 엑소시즘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의 수고 덕분에 시농 도시에는 광란하는 처녀들이며 마법에 걸린 아낙네들이며, 또 어떤 마법사들의 악의적인 주문 때문에 부부간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남편들로 득실거렸다. 그의 교구에서는 그 누구도 삶이 따분하다고 불평할 수 없었다. 교구 주임신부와 악마가 있는 한 지루한 순간이란 결코 없었으니까

 

  미뇽의 초대를 바레가 잽싸게 수락했다. 며칠 뒤 제 교구의 가장 광적인 신도들로 구성된 행렬을 이끌고 바레가 루덩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문을 다 닫아 걸고 엑소시즘이 진행됐다는 얘기를 듣고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성스러운 작업을 어떻게 많은 사람한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게요! 군중이 다 보고 신앙심을 더욱 굳힐 기회를 왜 안 주는 거요? 

  그래서 우르술라회 수녀원 문들이 활짝 열리고, 호기심에 끌린 무리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미 세 번째 시도에서 바레는 원장수녀를 심각한 발작 상태로 몰아가는 데 성공했다. ‘이성과 범절을 상실한’느가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굴렀다. 구경꾼들이 매우 즐거워했다. 특히 양쪽 허벅지가 허옇게 드러날 때 더 그랬다. 

 

엑소시스즘 때 바닥에 뒹구는 잔느

 

  많은 ‘격한 몸짓과 저주와 으르렁거림과 입안 뒤쪽 이빨 두 개가 부러질 정도로 이빨 갈기’가 끝난 뒤 마침내 악마가 신부의 명령에 순종하여 제물을 평온하게 놔두었다. 원장수녀가 기진하여 누워 있고, 바레가 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어서 참사회 위원 미뇽의 차례가 되어 클레어 수녀를 택했다. 또 요셉 수사가 보조 수녀를, 랑지에 신부가 가브리엘 자매를 맡았다. 퍼포먼스는 해가 떨어져서야 끝났다. 구경꾼들이 가을 석양 속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야아, 지난번에 난쟁이 둘과 조련된 곰들을 데리고 이동 서커스단이 다녀간 이래로 우리 한적한 루덩 시에서 이렇게 멋진 쇼를 본 건 처음이야! 

  암, 그렇고말고, 게다가 서커스와 달리 여기서는 구경꾼들한테 땡전 한 닢 안 받잖아? 

  아, 그래, 그들이 헌금 쟁반을 들고 다니긴 했지만, 은화 대신 동화를 던진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도 않는 걸. 

 

  이틀 지나 1632년 10월 8일 바레가 처음으로 큰 승리를 거뒀다. 불쌍한 원장수녀 육신에 똬리를 튼 일곱 악마들 가운데 하나인 아스모데우스를 내쫓은 것이다. 귀신들린 여인의 입을 통해 아스모데우스는 그녀 아랫배에 단단히 숨어 있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건 바레가 악마와 두 시간 넘게 사투를 벌인 끝에 올린 전적인데, 그 과정은 이랬다. 

 

  수녀원 숙사 아치 밑에서 라틴어가 연신 낭랑하게 울렸다. 

  "Exorcise te, immuundissime spiritus, omnis incursio adversarii, omne phantasma, omnis legio, in nomine Domini nostri Jesus Christi; eradicare et effugare ab hoc plasmate Dei.”[각주:4]

  이어서 성수를 듬뿍 뿌리고, 고통 받는 여인에게 두 손을 얹고, 영대로 덮고, 성물들을 접하게 하고, 라틴어 기도문이 다시 울렸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관 이름으로, 너의 조물주와 세상의 조물주 이름으로, 너를 지옥 불구덩이로 내던질 권세를 지닌 이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케케묵은 뱀아, 교회 품으로 돌아가야 할 이 주님의 종복한테서 두려움과 환난을 다 끌어안고 속히 물러가거라.” 

  그러나 아스모데우스가 물러가기는커녕 깔깔대며 신을 모독하는 말을 몇 마디 지껄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패배를 인정했겠지만 바레는 달랐다. 원장수녀를 제 독실로 옮기라 이르고 급히 사람을 보내 약제사를 데려오게 했다. 

 

관장기는 17세기에 주요 의료도구

 

  아담이 제 직업의 고전적 상징인 관장기를 들고 달려왔다. 그렇게 커다란 구리 관장기를 오늘날에는 몰리에르 코미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17세기에는 주요 의료 도구였다. 아담이 관장기에 성수를 가득 채운 뒤 원장수녀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아스모데우스가 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감지하고 히스테리를 부렸다. 하지만 헛수고. 원장수녀의 두 팔과 두 다리가 묶이고 뒤틀리는 몸통을 강한 손들이 억눌렀다. 아담이 상당한 기술을 발휘하여 그녀 몸에 이적을 행하는 기구를 집어넣었다. 2분 뒤 아스모데우스가 고분고분 사라졌다.[각주:5]

 

  몇 해 지나 쓴 자서전에서 잔느 수녀는 뭔가에 들씌운 처음 몇 달은 정신이 하도 혼란스러워 저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 진술이 정말일 수 있다. 혹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잊고자 하여 억누르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더 생생하게 뇌리에 남는 것들이 많이 있는 법이니까. 예를 들면, 아담이 사용한 관장기 같은… 

 

  지나치게 과장된 자아에서 완전한 자기비하로 넘어가는 길은 많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타고난 에고이즘과 실망스러운 환경 여건에 억눌리면서 자기초월의 갈망을 더욱 키웠다. 만년에 그녀는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상향적 자기초월을 달성하려 노력하는 척했고 실제로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 그녀에게 유일한 탈출 방법은 성적 관심으로 하향하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일부러 상상에 잠겨서, 개인적으론 모르는 사이지만 성적 자극을 일으키기로 소문난 그랑디에와 음탕한 장면을 마음속에서 조심스레 그렸다. 그러나 조심스레 가끔 하던 탐닉이 시간이 흐르면서 습관으로 변했다. 그리고 습관은 성적 판타지를 이제 절실한 요구로 바꿔 놓았다. 환영들이 그녀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어른거렸다. 제 상상의 주인이 되는 대신 그녀는 이제 그 노예가 됐다

 

  노예 상태는 인간을 굴욕적으로 만들고, 제 생각과 행동을 제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인식은 ‘나’라는 자아의 경계를 파괴한다. 하지만 이때 자기초월 충동은 애석하게도 자아를 위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아래로 끌어내린다. 잔느는 스스로 불러들인 색정적 이미지들의 예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자유는 스스로 혐오하는 자신이 되는 자유였다. 악습과 중독이라는 지하 감옥으로 점점 더 떨어지기만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내면에서 분투하던 중에 이제 무지막지한 바레의 수중에 들게 된 것이다. 하향적 자기초월이라는 판타지가 짐승 같은 현실로 바뀌었으니, 그는 그녀를 인간 이하의 뭔가로 다루었다. 재주 부리는 원숭이처럼 어중이떠중이한테 보여주기 위한 짐승으로 다루었다. 그저 고함치고 조종하고 반복하는 암시에 고분고분 따라서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하고 혼절하기도 하다가, 결국엔 그나마 남아 있던 의지에 반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중인환시 하에 강제로 결장 세척까지 당하고 말았다. 바레와 그의 조수들이 그녀에게 행한 짓은 공중화장실에서 범한 강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 저자 주 ☞ 17-18세기 의술에서 관장기는 오늘날 피하주사기만큼이나 흔하게 쓰였다

  로버트 버튼의 기록을 보면… 「관장기는 인기가 좋다. 트린카벨리[각주:6]는 그걸 일급 치료 수단으로 꼽고, ‘작센의 헤라클레스’[각주:7]는 관장기의 효용성을 한층 더 두둔한다. 그는 건강을 염려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관장기 한 번 사용으로 치료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말한다.」 버튼은 이렇게도 썼다. ‘관장기를 잘만 사용하면 대부분 질환에서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네 선조들은, 물론 의사나 약제사를 부를 형편이 되는 계층이라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커다란 관장기와 좌약에 익숙했다. ‘카스티야 비누, 진하게 끓인 꿀, 혹은 더 강한 것으로는 메꽃이나 크리스마스로즈 같은 약초 우린 물’ 따위를 누구나 상당히 많이 직장에 집어넣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잔느 수녀와 동시대인인) 부샤르가 어린 시절 제 누이들한테 어린 친구들이 놀러오던 때를 회상하면서 당시 사내애들과 계집애들이 ‘의사 놀이’를 하는 중에 관장기 삼아 작고 부드러운 막대기를 서로 집어넣었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유년기 기억은 평생 간다. 그렇기 때문에 약제사의 괴물 같은 관장기는 많은 이들에게 관능적인 상상을 계속 어른거리게 했다. 

 

  바레의 영웅적인 행위 이후 150년이 지나서 사드 후작[각주:8]의 주인공들은 성적 쾌감을 키우기 위해 엑소시스트의 이 비밀 병기를 자주 이용했다. 

  후작보다 한 세대 이전에 프랑수아 부셰[각주:9]는 당대의, 어쩌면 모든 시대의, 가장 멋진 핀업 걸(Pin-up Girl)을 만들어냈는데, 이 그림의 제목이 <관장기를 기다리며>이다. 

 

부셰의 Pin-up Girl 관장기를 기다리며

 

  비루한 음란물이며 고급진 포르노에서 라블레 식의 재미와 끽연실 조크까지는 한 발짝에 불과하다.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걸쭉한 농담 던지는 노파를 우리는 다 기억한다. 몰리에르의 <억지 의사>에서 사랑에 빠진 스가나렐이 떠오르는데, 그는 자클린에게 키스가 아니라 ‘아담하고 부드러운 관장기’를 간청한다. 

 

  바로 그렇게 아담하며 (여기서는) 신성한 관장기를 성수를 채워 바레가 집어넣은 것이다. 이 과정에 부여된 성례의 의미와 상관없이 그건 결국 수녀원장에게는 관능적 체험이며, 수치심에 대한 폭압이며, 포르노 식의 체험으로 농축된 심벌임이 확실하다.] 

 

  (한때 천사들의 수녀 잔느요, 이제 루덩의 우르술라회 수녀원 책임자인 사람의 인격이 완전히 짓밟히고 파괴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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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poltergeist - 떠들썩한 장난꾸러기 요정. 소리를 내거나 물건을 움직여서 자기 존재를 알림. [본문으로]
  2. nymphomania - 여자색정증(色情症) - 여성의 비정상적인 성욕 항진증. [본문으로]
  3. 갈라진 발굽 - 악마의 본성, 사악한 의도, 악마의 간계 등을 의미함. 성서에서 정결한 동물과 불결한 동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 바로 갈라진 발굽. 어떤 문화에서는 악마와 연관돼, 예를 들어, 기독교 미술과 저술에서 사탄은 종종 갈라진 발굽으로 묘사된다.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부정한 것이다.” (레위기 11:4) [본문으로]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더러운 귀신아, 악의 사절아, 물러가라, 너희 군대야 썩 물러가라, 어서 냉큼 달아나 이 신의 종복을 평온하게 내버려 두어라.” [본문으로]
  5. 바레가 그렇게 급진적인 퇴마 방법을 처음 고안한 것은 아니다. 이 사례 이전에도 프랑스의 한 귀족이 그런 식으로 악마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에도 남아프리카 몇몇 부족은 세례식에 성수가 담긴 관장기를 이용한다. - 저자 주. [본문으로]
  6. Vittore Trincavelli (1496-1568) - 이탈리아의 저명한 외과의. 그리스 고전의 편집자. [본문으로]
  7. Hercules of Saxonia (1670-1733) - ‘괴력의 아우구스투스’라 불리기도 했다. 1694년부터 작센의 선거후, 1697년부터 폴란드 왕, 리투아니아 대공. 스웨덴과 맞선 북방전쟁(1700-1721)에서 표트르 1세의 동맹자. [본문으로]
  8. Marquis de Sade (1740-1814) - 프랑스의 귀족, 혁명적 정치가, 철학자, 작가. 도덕과 종교, 법률로도 구속받지 않는 절대 자유를 주창. 그의 이름에서 나중에 ‘사디즘’ 용어가 나왔다. [본문으로]
  9. François Boucher (1703-1770) -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화가, 판화가, 장식미술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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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우울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희망이 있어, 그럴 듯한 스캔들을 만드는 거지. 그자를 현장에서 붙잡을 수 있게끔 어떡하든 상황을 조장하는 게요. 그 죽은 양조업자의 과부하고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약제사가 우울한 표정으로 알렸다. 

  그쪽에는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정보가 없어요. 여편네가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 그 집 하녀는 매수가 안 되고… 그렇잖아도 내가 간밤에 덧창 틈으로 동정을 살피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누군가가 이층 창문에서 철철 넘치는 요강을 쏟아 붓지 뭐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주임신부는 여전히 태연하고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평소처럼 제 비즈니스와 쾌락을 즐기며 나다녔다. 곧 아주 이상한 소문이 약제사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임신부가 마드무아젤 드브루와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군. 

  아, 그 고상하고 독실한 체하기로 유명한 마들렌하고? 

 

  마들렌은 르네 드브루의 세 딸 가운데 둘째이고, 르네 드브루는 재산이 넉넉한데다가 귀족이며 지역 최고 가문들과 혈연관계가 두터웠다. 마들렌의 두 자매는 이미 시집을 갔다. 하나는 내과의한테, 또 하나는 지방 대지주한테. 그러나 서른이 다 된 마들렌은 미혼으로 자유로이 살았다. 구혼자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그녀가 다 퇴짜를 놓았다. 집에 남아서 늙은 부모를 보살피며 자신만의 관심사를 생각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그녀는 신중하고 초연한 태도 아래 강한 감정을 억누르며 조용하고 수수께끼 같은 젊은 여인 축에 들었다. 나이 든 세대는 그녀를 칭찬하지만 동갑나기와 후배 중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까칠하고 젠체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또 자기네 요란한 놀이에서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흥을 깨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나치게 독실했다. 

  종교야 아주 좋지, 하지만 사생활의 신성함을 침범당해서야 되겠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툭하면 성찬례를 받고 하루걸러 고해를 하고 성모 상 앞에서 몇 시간씩이나 무릎 꿇다니 말이야. 

  아냐,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너무 심해. 

  그들이 그녀를 멀리했다. 그건 마들렌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 부친이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친이 암에 걸렸다. 노부인이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병치레하는 동안 그랑디에가 자주 찾아왔다. 배부른 줄 모르는 과부와 검찰관 딸의 일만으로도 정신없지만, 가엾은 여인에게 종교적 위안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죽음의 침상에서 드부르 부인은 딸한테 그의 조언을 잘 따르라고 당부했다. 주임신부가 마들렌의 물질적, 영적 문제들을 제 일처럼 잘 지켜주겠노라 약속했다. 나중에 약속을 지켰다. 비록 자신의 특유한 방식으로 했지만.

 

  모친이 죽고 한동안 마들렌은 세속 인연을 다 끊고 수녀원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 생각을 영적 조언자한테 밝히면서 상담했을 때, 그가 그 계획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랑디에가 강력히 주장했다. 

  수녀원 안보다 바깥에서 당신은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오. 우르술라회나 카르멜회의 수녀가 되면 자기 재능을 감추는 꼴이 될 게요. 당신 자리는 여기, 루덩에 있소. 당신 소명은 썩기 쉬운 허영심만을 생각하는 멍청한 처녀들한테 반짝이는 지혜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오. 

 

  그가 청산유수로 말했고, 그 말에는 신성한 영력이 있었다. 두 눈에서 불길이 일고, 내면의 열기와 영감으로 얼굴이 환히 빛나는 듯했다. 마들렌이 생각했다. 이분은 사도처럼 보여, 천사처럼 보여. 이 말이 다 옳아,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녀가 양친 모시고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 집이 아주 어둡고 쓸쓸해 보였기에 거의 모든 시간을 친구인 (거의 유일한 친구인) 프랑수아즈 그랑디에와 함께 보냈다. 그녀는 사제관에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둘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깁거나 성모나 성인들을 위해 화려한 수를 놓으며 앉아 있는 자리에 때때로 그랑디에가 끼어들었다. 

이보다 더 자연스러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세상이 갑자기 더 환해지고 신성한 의미로 충만한 것처럼 보였으며, 마들렌 얼굴이 행복에 겨워 장밋빛이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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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번에는 그랑디에가 제 그물에 걸려들었다. 그의 전략은, 그건 바로 노련한 유혹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인데, 겉으로는 냉담한 척하면서 상대 마음에 불을 지피고, 그걸 정점까지 끌어올린 뒤 결국 제 교활함의 결실을 따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캠페인이 진척되면서 또 뭔가가 잘못 되고 있었다. 혹은, 뭔가가 잘 되고 있었다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저 관능적 만족이나 또 하나의 순진한 제물에게서 거두는 헛된 승리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분방한 기질의 소유자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로 바뀌었다. 이건 도덕적 성장에서 중요한 행보. 하지만 가톨릭교회 성직자에게 혼인이란 윤리와 신학과 교회와 사회라는 측면에서 숱한 곤경을 거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성직자의 독신주의에 관한 소론을 쓴 이유는 바로 그런 곤경에서 조금이라도 헤어나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부도덕한 이단자라 여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면서도 강력한 욕망으로 생긴 행동 방침을 단념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 충동이 본질적으로 좋으며 더 높고 더 풍성한 삶을 향한 것이라 인식될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바로 이런 면에서, 특정 시대와 지역에서 유행하는 철학 용어들을 동원하여 비정통적 행위를 당대 세태에 맞추면서 충동이나 본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흥미진진한 문학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의 소논문은 이런 감동적인 옹호 장르에서 상당히 특이한 모델이었다. 그는 마들렌 드브루를 사랑하며 이 감정에 추한 게 전혀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의 규율로 보자면, 가장 행복한 육적 사랑마저도 악으로 인식됐다. 

  따라서 그런 규율이 축자적으로 해석돼서는 안 되며, 자신이 불혼 서약을 하면서도 그걸 꼭 지키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논거를 찾아내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게 옳은 행동이라고 확신시키는 논거를 찾기란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한텐 식은 죽 먹기. 그에게는 제가 쓴 소논문의 논리가 참으로 그럴듯해 보였다. 

 

  더욱 놀랍게도, 그런 논리가 마들렌이 보기에도 전혀 흠이 없었다. 종교적 성향에 지나치게 기울고 신념이 아니라 습관과 기질에서 정조를 지키는 그녀는 교회 법규를 지상명령으로 간주했기에 순결 깨는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면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본성에 어울리는 열정으로. 가슴에 그런 이유가 있는 마당에 그랑디에가 불혼 서약이 절대적인 게 아니며 성직자도 혼인할 수 있다고 입증하자 그 말을 믿었다. 

  만약 간통이 아니라 교회가 축복하는 혼인으로 사랑하는 이와 맺어졌다면 그녀는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사랑할 수 있었으리라.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그녀의 의무였을 터이다. 사랑의 논리가 완벽했다. 연인이 쓴 소논문의 윤리적, 신학적 논거가 마들렌에게는 아주 미덥게 보였다.

 

  그랑디에는 드브루 부인한테 한 약속도 지켰다. 즉, 언젠가 밤에 어둠침침하고 메아리만 울리는 교회당에서 자신이 후견을 맡은 처녀와 혼례를 치른 것.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는가? 

  성직자로서 그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고는 이제 신랑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그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성직자 역할로 돌아온 그가 축사를 읊조리고 다시 신랑으로 돌아가서 그 축사를 무릎 꺾고 받았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의식이었다. 법과 관습과 교회와 국가에 개의치 않고, 그들은 예식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그러니 하나님 눈에도 그 혼인이 적법한 것이라 확신했다.[각주:1]

 

그랑디에 신부와 마들렌의 혼인

 

  그러나 하나님 눈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사람들 눈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루덩의 선량한 주민들 관점에서 마들렌은 주임신부의 또 다른 내연녀일 뿐이었다. 

  순진하고 얌전한 듯싶지만 사실은 sainte nitouche[각주:2] 였던 거야. 

  숙녀인 체했지만 매춘부라는 게 금방 드러났어. 

  법의 걸친 저 프리아포스[각주:3]에게, 비레타 쓴 숫염소에게, 가장 몰염치한 방식으로 제 몸뚱이를 내준 거지! 

 

  아담의 약제용 악어 아래 저녁마다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가 가장 크고 원한이...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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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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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3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6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1560년 푸아티에 지방의 위그노 교회 회의록을 보면, 성직자들이 내연녀와 몰래 혼인하는 일이 아주 잦았다. 이때 여자가 칼뱅파 신자이면, 교회의 중대한 문제가 됐다. - 저자 주. [본문으로]
  2. ‘성녀 니뚜슈’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관용적 표현을 의인화한 것. 직역하면, ‘남자를 멀리하는 성녀’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마치 성녀라도 되는 듯이 굴며 남자와 손가락만 스쳐도 큰 봉변당한 양 호들갑 떠는 여자를 놀리는 데 쓰는 표현. [본문으로]
  3. priapus - 그리스, 로마 전설에서 남근으로 표시되는 풍요의 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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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1

 

  이름난 풍자 작가요 나중에 주교가 된 조셉 홀[각주:1]이 1605년 처음으로 플랑드르[각주:2] 지역을 방문했다. 

  「여로에서 우리는 파괴된 교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도처에 남은 거친 잔해들이 신앙과 더불어 동족상쟁 역시 처절했음을 여행자에게 말해준다. 오오, 전쟁의 참혹한 흔적이여! 그러나 교회들은 무너졌다 해도 (경탄스럽게) 도처에서 예수회 칼리지들이 나타난다. 내가 들른 도시마다 이 학교들이 이미 문을 열었거나 세워지는 중이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연 정책이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이 사람들은 저주를 가장 많이 받는 곳에서 (여우처럼) 일을 가장 잘 꾸려 간다. 저희 진영에서 극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모든 이들한테 미움을 받고 우리의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이 독한 잡초들은 쑥쑥 자란다.」   

 

  칼리지들은 아주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바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 홀과 그 세대가 잘 알고 있었듯이 예수회원들은 이른바 ‘정책’을 가장 중시했다. 예수회가 학교를 계속 세운 까닭은 적대자며 자유사상가며 프로테스탄트들에 맞서 로마가톨릭교회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예수회원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쳐 교회 이익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계층을 만들고자 했다.[각주:3]

 

  이런 현상을 체루티가 아주 잘 표현했다. 「우리가 다리를 곧게 펴 주려고 갓난애 아랫도리를 천으로 동여매듯이, 사람을 평생 건강하고 유복한 상태로 만들려면 유년기부터 의지를 동여매야 한다.」 (이 언급에 줄 미슐레[각주:4]가 극도로 분개했다.) 

  교육자들 의도야 정말 단호했지만 그 뜻을 알리고 지도하는 방법이 미흡했다. 학생들 의지를 천으로 동여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최우수 생도들 중 몇몇은 칼리지를 졸업하자 열렬한 자유사상가가 됐고, 장 라바디[각주:5]처럼 프로테스탄트가 된 이들도 있었다. ‘정책’이 관련된 이상 교육 체계는 설립자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다중은 정략적 측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저희 자식들이 젊은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것을 다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중요할 뿐이었다. 이런 요구에 예수회원들이 다른 대다수 교육 공급자들보다 더 잘 부응했다.

 

  「예수회 지붕 아래서 보낸 일곱 해 동안 나는 무엇을 눈여겨보았던가? 온건하고 근면하고 절도 있는 생활. 예수회 수사들은 하루 모든 시간을 우리들 교육에, 혹은 그들 서원을 엄격히 실행하는 데 바쳤다. 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나처럼 그들 밑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이 증언하기를 바란다.」  

  볼테르가 그렇게 적었다. 이 말은 예수회 교수법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와 동시에, 볼테르의 생애 자체는 학습을 ‘정책’이라는 목표에 맞추려고 한 교육자들의 시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한층 더 확실하게 입증한다.[각주:6]   

 

  볼테르가 칼리지에서 공부하던 때, 예수회 학교들은 이미 잘 알려지고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 이전 교육 현장에서는 칼리지의 많은 장점이 정말 혁명적이었다. 대다수 교육자들이 회초리 휘두르는 능력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이던 그 시기에, 예수회원들의 교육 방식은 제법 인도적이었으며 교수진도 신중하게 선별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여기서는 고급 라틴어를 가르치고 광학과 지리와 수학, 극작 분야에서 최신의 성취를 들려주고 (그들의 학기 말 연극 공연은 유명했다), 좋은 예절과 교회에 대한 존중과 (적어도 프랑스에서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는) 국왕 권위에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회 칼리지들이 전형적인 상류 부유층 취향에 맞았다. 즉, 애지중지하는 아이가 구식 교육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다고 마음먹은 어머니들, 그 자신이 학식을 갖추고 있으며 건전한 교리와 키케로 식 달변에 관심이 큰 숙부들, 또 그 자신이 애국심 있는 관리로서 군주제 원칙을 인정하거나 미리 앞을 내다보는 부르주아로서 예수회가 폭넓은 연줄로 제자들한테 좋은 직무나 궁정의 한 자리, 교회 명예직 따위를 찾아주겠지 기대한 아버지들… 바로 그들 입맛에 딱 맞은 것이다. 

 

  예를 들어, 루앙 시의 코르네유 부부 같은 이들을 보자. 가장은 왕실 고문변호인이고 아내는 변호사 딸인 마르트 르 프장. 어린 아들 피에르가 특출한 재주를 보이는데, 어떻게 칼리지에 보내지 않을 수 있겠나?[각주:7] 

   혹은 렌 시의회 고문인 조아킴 데카르트를 보자. 그는 1604년 총명한 막내아들 르네를 여덟 살밖에 안 됐지만 공부시키느라 라 플레시로 데려간다.[각주:8] 얼마 전 국왕의 승인을 받아 문을 연 예수회 칼리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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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거의 비슷한 시기, 생트 시에 학식 있는 참사회 위원인 그랑디에가 있다. 그에게 조카가 있으니, 비록 데카르트나 코르네유 같이 부유한 귀족은 못 되더라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인 또 다른 법률가의 아들이다. 우르뱅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이제 열네 살이며 지극히 영리하다.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생트 인근에는 보르도의 예수회 칼리지보다 더 좋은 학교가 없었다. 

  이 유명한 배움터에는 소년들을 위한 중등 과정과 우아한 예술을 가르치는 칼리지, 신학교, 사제 임명 뒤에도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형제들을 위한 심화 과정이 다 있었다. 조숙하고 영리한 우르뱅 그랑디에가 여기서 십년을 넘게 보냈다. 중등학생에서 신학 대학생으로, 그리고 나이 스물다섯 된 1615년 이후 예수회 수련수사로… 그렇긴 해도 수도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예수회 엄한 규율을 따를 소명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니야, 수도회 안이 아니라 수도원 담장 밖에서 교구 신부로 커리어를 쌓고 싶어. 재주가 뛰어난데다가 막강한 교회 조직의 비호를 받는 사람은 이 직업에서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어떤 고관대작의 종교의식 담당이나 나중에 프랑스 육군원수나 추기경이 될 사람의 영적 카운슬러가 되는 거야. 또 주교 회의나 왕실 공주들 앞에서, 심지어 왕비 면전에서 뛰어난 언변을 과시할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야. 어디 그뿐이랴, 외교 사절이나 고위 행정직, 수입 좋은 명예직, 구미 당기는 불로소득 따위도 가능해. 또 (귀족 출신이 아니기에 확률이 떨어지긴 해도) 운이 좋다면 주교 예모로 머리를 장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생 노년이 화려하게 보장되는 거야. 

 

  그의 이력 초기에는 그런 장밋빛 꿈이 다 이뤄질 수 있는 듯싶었다. 신학과 철학을 이태 동안 깊이 연구한 뒤 스물일곱 나이 젊은 그랑디에 신부가 오랜 기간 근면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예수회가 루덩 시에 있는 생피에르 뒤 마르셰 교구라는 중요한 생활 수단을 선사한 것. 같은 후견인들 덕분에 성 십자가 공주 성직자단 교회의 참사회 위원도 됐다. 사다리에 발을 걸쳤으니, 이제 할 일은 올라가는 것만 남았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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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1

 

  1. 조셉 홀 (Joseph Hall1, 574-1656) - 잉글랜드의 주교, 모럴리스트 문인, 풍자가. 호주가 발견되기 이전 남부 대륙의 환상적인 여행과 거기 풍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다르면서도 같은 세상 mundus alter et idem>(1605)의 저자. 이 책은 여러 모로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전신으로 평가된다. [본문으로]</걸리버></다르면서도>
  2. 플랑드르 - 현재의 벨기에 서부,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서부를 포함하는 지역. [본문으로]
  3. 예수회 - 종교개혁 시기인 1534년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로마가톨릭 수도회. 과격한 전투적 가톨릭 수호 선교기관. 1. 교육에 중점 2. 종교개혁에 대항 3. 세계 선교 등이 주요 목표. [본문으로]
  4. Jules Michelet (1797-1874) - 프랑스의 역사가, 사회평론가. 교회권력 반대자. 역사와 사회, 자연에 관해 아주 주관적인 책을 명료하고 격동적인 언어로 여러 편 썼다. ‘르네상스’ 용어의 창시자. [본문으로]
  5. Jean Labadie (1610-1674) - 프랑스 신학자,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고 경건주의 단체인 라바디파를 만들었다. (경건주의/Pietism - 정통 프로테스탄트에 맞서는 신비주의적 가르침, 보수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특색) [본문으로]
  6. Voltaire (1694-1778) - 프랑스의 작가, 사상가,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자. 18세기 유럽의 전제 정치와 종교적 맹신에 저항하고 진보적 이상을 고취. 비판 정신과 재치, 풍자 같은 프랑스 정서 특유의 자질을 구현한 작품 활동으로 유럽 문명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7. 피에르 코르네유(1606-1684) - 몰리에르,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 [본문으로]
  8.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프랑스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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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리버 리드, 영화 악마들, 켄 러셀 감독,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3)

 

5

 

 

  그의 삶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졌다. 30년대 중반 ‘평화서약 연합’의 반전 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이후 나치 치하에서 박해받는 유대인들 인권 수호에도 나섰다.

 

  1937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역사가요 과학 저술가, 철학자인 제럴드 허드(Heard)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의 온후한 기후가 시력 향상에 도움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와서, 지역의 지성인들이며 힌두이즘과 불교에 심취한 지식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주로 로스앤젤레스 남부에서 죽을 때까지 살게 됐는데 처음 한동안은 뉴멕시코 주 타우스라는 마을에 머물기도 했다. D. H. 로렌스가 20년대에 거주한 이후 작가와 화가들의 작업지가 된 여기서 헉슬리는 에세이 <수단과 목적>을 썼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해방, 평화, 정의, 형제애’를 꿈꾸기는 해도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뜻을 함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검증한다. 

 

  1938년 크리슈나무르티를 알게 되면서 그 가르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허드를 통해 동양의 종교와 철학을 연구하는 베단타학파 회원이 되고 이태 뒤 젊은 영국인 소설가 이셔우드를 이 서클에 소개한다. 세 사람은 명상과 채식주의, 아힘사(불살생) 원칙을 비롯해 철학과 종교에서 브라마난다의 폭넓은 지식에 심취하게 됐다. 

  유럽 문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아시아 종교를 발견한 것… 그 얼마 뒤에 쓴 에세이 <만년 철학>에서 헉슬리는 널리 알려진 몇몇 신비주의 가르침을 논한다. 

 

  에세이스트요 사회비평가로서 과학과 기술이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 문제를 주로 다루며 내보인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은 독자들한테서 저항감을 야기하기도 했다. 철학적 신비주의와 동양의 가르침, 초심리학 같은 영적 주제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일부 아카데미 서클에서는 그를 현대 사상의 리더요 당대 최고 수준의 지성인으로 여겼다. 말년에 남긴 언급 하나.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인류의 존재 문제를 숙고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들면서 나는 갖가지 물음에 대한 대답이 딱 하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로, 우리 각자가 조금만 더 착해지려 애쓰자. 그러면, 다 된다.

 

   로스앤젤레스 시기 이후 내놓은 다섯 편 장편소설 중 첫 번째인 <숱한 여름을 보낸 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할리우드 백만장자 이야기로, 1939년 픽션 부문에서 영국의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을 받았다. 특유의 위트와 지적 달변이 가득한 이 풍자소설에서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을 거론하는데, 개중 몇몇은 나중에 그의 마지막 장편인 <>에서 주된 주제가 된다.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몰려든 많은 유럽 작가들이 그랬듯이, 헉슬리도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애니타 루스의 소개로 MGM과 접촉하여 이셔우드와 공동 집필 등으로 여러 편을 썼지만 제대로 빛을 본 것은 <오만과 편견> 정도. 할리우드는 헉슬리의 성향이며 추구하는 바와 잘 안 맞았다.

 

   50년대 초 내놓은 논픽션 <루덩의 악마들>은 그의 작품 활동 지평에서 상당히 독특하며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역사적 일화에 대한 눈부시게 상세한 심리 탐구. 

    

  인간 지각의 확장과 영성에 (그의 용어로는, 자기초월) 관한 관심으로 마지막 십년을 거의 다 보냈다. 

  메스칼린이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1953년 전문의의 관리 하에 직접 실험에 나섰다. 주변 세계 지각에 관한 실험 결과물이 바로 유명한 철학적 에세이 <지각의 문>과 속편 <천국과 지옥>. 이는 보편적 행복의 공식을 찾아내려는 몸부림. 

 

  20세기 가장 유명한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의 저자가 이젠 다양한 사이키델릭을 실험하면서 지각의 확장 수단을 찾으려 애썼다. 예전에는 환영을 보는 이들과 신비주의자들과 예언자들한테만 허용된 영역으로, 보통 사람들도 지각을 확장함으로써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일까. 

 

  <지각의 문>은 60년대 수천 명 급진적 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됐고, 그 저자는 히피와 사이키델릭 운동의 ‘영적 아버지’가 됐으며, 한 록그룹으로 하여금 ‘The Doors’라는 이름으로 전설이 되게 했다. 

 

  이런 흐름에서 헉슬리의 계승자들이 나타났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주요 작가인 윌리엄 버로우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작가 켄 키지,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톰 클레이튼 울프, 페루 태생으로 <돈 후안의 가르침>의 작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같은 이들.

 

   1955년 아내 마리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 직전에 소설 <천재와 여신들>을 발표. 이듬해 이탈리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의 지각 확장 실험을 도와 오던 로라 아처라와 재혼했다.  

   

  66세가 되던 1960년 암 진단을 받은 뒤 마지막 장편 <>을 쓴다. <멋진 신세계>에서 삶의 극단적인 합리화가 물질적 번영과 더불어 사람들의 정신적 황폐를 초래함으로써 무시무시한 미래 형상을 제시한 작가가 이제 <섬>에서는 동양의 철학과 정신에 눈길을 돌리며 정신적 교착에서 벗어날 출구를 모색한다. 

  가상의 섬 팔라에서 사람들은 서구 물질문명의 처방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산다.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 엽기적인 줄거리와 잘 엮인 <섬>은 헉슬리가 인류에게 남긴 유언.  

 

  1962년 인간 잠재력을 주제로 에살렌 대학에서 행한 강연은 이후 ‘인간 잠재력 회복 운동’의 모태가 됐다.

  1963년 11월 22일 후두암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해서 종이쪽에 적은 글귀로 아내한테 뜻을 알렸다. 

  ‘LSD 100 마이크로그램 피하 주사.’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지각의 문’을 그렇게 장식했다. 아내 로라가 쓴 헉슬리 전기 <이 영원한 순간>을 보면, 그녀는 오전 11시 45분 주사를 놓고 두 시간 뒤 한 번 더 투여했다. 그날 17시 21분 할리우드 집에서 평온하게 영원한 안식처로 떠났다. 

 

  그의 죽음에 대한 언론 보도는 그 몇 시간 전에 발생한 케네디 암살과 <나니아 연대기> 작가 C. S. 루이스의 사망 소식에 가려 그의 명성에 비해 크지 못했다. 

  이 예사롭지 않게 일치한 죽음이 보스턴칼리지 철학 교수 피터 크리프트에게 영감을 주었고, <천국과 지옥 사이 - 죽음 저편 어딘가에서 존 F. 케네디와 C. S. 루이스와 올더스 헉슬리의 대화>라는 장편소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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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간과 사회의 발전 가능한 길들을 모색하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대열에 들어선 헉슬리는 마지막 장편 <섬>에서 인류 미래에 대한 회의론을 극복했다. 노년 들어 그는 에세이 제목 <지각의 문> 같은 인생 방향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루덩의 악마들>에 묘사된 것 중 많은 부분은, 헉슬리의 관념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잘못된 ‘지각’을 지닌 후과이다. 즉, 탐욕과 두려움과 편협 때문에 잔느와 수녀들이 그랑디에를 상대로 행한 중상비방, 독단적인 교리에 의거하거나 빙자하여 엑소시스트들이 저지른 폭압, 일신의 안위를 위해 조작된 증거마저 인정하며 사법살인을 저지르는 어용 판사들, 독재를 굳히기 위해 종교재판을 부활하려는 목적으로 루덩 현상을 이용하려 한 리슐리외의 속셈 따위는…

  모두 헉슬리가 보기엔 이 비극적 사건의 주된 원인이라기보다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 모든  바탕에는 그들의 잘못된 지각(인식)이 도사리고 있던 것일 뿐. 

 

루덩의 악마들 1634

 

 

  가련하고 불행한 그랑디에 신부에 이어 소개되는 장 조셉 수렝 수도사의 스토리는 총체적 인식의 힘이 얼마나 크고 기적 같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즉, 주변과 만물에 대한 지각이 올바른 경우 영혼뿐 아니라 육신마저 치유될 수 있다는 점! 

 

  수렝이 영웅적인 의지를 발휘하여 갖은 유혹과 싸우고 엄격한 금욕을 실천하며 고행하는 동안에도, 매 순간 악령에 들린 듯이 악마들을 믿으며 원장수녀를 치유하려 들면서 정신력을 헛되이 소모하는 동안에는, 그런 젊은 예수회 수사가 헉슬리 눈에는 영적으로 완전치 못하고 잠재적으로 아픈 사람으로 보인다. 

  수렝이 이십년 가까이 심신증적 마비 상태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것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비정상의 필연적인 귀결로 해석된다.

 

  「사람을 자연과 떨어진 상태에서 묘사하는 시는 사람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실제로 확고하게 연관된 인간 외적 세계는 무시하고 인간 영혼 안에서만 하나님을 알고자 애쓰는 영성은 거룩한 존재의 충만함을 알 수 없다.」 (본문에서) 

 

  하지만 비정상은 결국 바로잡히고, 수렝이 아직은 확신 없는 발길을 낙엽 수북이 쌓인 정원으로 처음 내딛는… 장면은 상징적으로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니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시험과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고,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치유됐다. 혹은, 헉슬리의 용어를 쓰자면, 올바른 지각을 획득했다. 

 

  지각은… 사람이 교회의 독단적 교리에 구속된 상태를 훌훌 떨치고 자연과 하나 된다는 생각을 굳히는 순간부터 올바른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게 곧 조물주와 합일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니까.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헉슬리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 동시대인으로서, 헉슬리가 만년에 내놓은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즉, 인간과 신의 올바른 관계는 자연을 거스르거나 정복함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생긴다는 것, 바로 이 점을 마르셀이 우리한테 입증했다. 

  이런 생각들은 <명상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마스 트러헌은 조물주가 당신 피조물에 나쁘게 대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거꾸로, 모든 피조물을 통해 조물주를 찬미할 필요가 있으며, 모래알에서 무한한 공간을, 꽃송이에서 영원한 시간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트러헌이 보기에 백합들과 까마귀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존재한다. 자, 여기 모래가 있고, 모래 알갱이들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것들을 사랑스럽게 응시하라. 그러면 그 안에서 영원성도 무한성도 보게 되리니.」 (본문에서)

 

   수렝의 스토리는 마르셀 사상의 몇몇 기초적 명제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즉, 객관적 세계와 우리네 개인적이고 소중한 존재의 세계는 분명히 구분돼야 하며, 가혹한 혼돈 속에 있는 현실 자체가 아니라 주변 현실에 대한 우리네 태도가 중요할 뿐이라는… 

  삶이란 신비이고, 삶의 여러 신비함은 늘 직관적으로 납득된다. 우리가 도그마에 묶여 있는 한, 설령 그것이 아무리 무조건적 믿음을 주입하는 것이라 해도 삶은 우리네 의지와 따로 놀면서 제대로 살아 보려는 시도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헉슬리는 종교의 의미와 바른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개개인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버리도록 돕는다면 종교는 응당 깨달음의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깨달음의 길에서 장애가 될 수도 있으니… 공포와 협량, 의분, 기업애국주의, 십자군 식의 증오 같은 감정을 고무하고 정당화하며, 또 어떤 신학적 개념들과 어떤 신성한 단어들만 중언부언할 때, 그렇다.」 (본문에서) 

  「선행을 통해 성자와 합일하고 계시에 온유함으로써 성령과 합일하면 성부와도 의식적이고 변모되는 합일이 가능해진다. 이런 합일 상태에서 사물과 현상은 들뜨고 과장된 자아의 프리즘을 통해 감지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달리 말해, 최종 정체성에서 모든 존재의 신성한 근간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된다.」

 

   교회 역사가 증명하듯이 수렝은 1665년 행복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 (반면에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참회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했다). 이승에서 만물의 질서에 대해 새로운 지각을 얻은 덕분에 그에게 지복이 강림했는지, 우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수렝의 생각이 헉슬리가 언급한 방향으로 실제 발전했다면, 그는 자신이 섬긴 교회와 힘겨운 갈등을 겪었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교회는, 특히 예수회는, 자연을 죄악의 왕국처럼 간주했기에 모든 감각에 재갈 물리기를 요구했으니까.  

 

  헉슬리의 인식에서는 그와 반대로 자연과의 유기적 결합이 정신뿐 아니라 신체 건강의 담보이다. (마르셀의 영향이나 불교철학에서 퍼온 논거들과 함께, 만년에 아주 강하게 몰입한) 이런 사상은 그가 2차 대전 직후 정신적 굴곡을 겪고 나서 발표한 모든 글에 다 배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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