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그 동안 원장수녀는 방문동정회 수녀원에 묵었다. 거기 원장은 마담 드 샹탈. 1 우리는 잔느 수녀가 성 프랑수아의 성스러운 친구요 제자한테도 안 도트리시나 고약한 오를레앙 가스통에게 할애한 만큼 많은 지면을 할애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자서전을 펼쳤지만, 실망하고 말았다. 성 샹탈을 언급한 유일한 문구는 오로지 이것 하나.
「성유가 묻은 슈미즈가 더러워졌다. 마담 샹탈과 그녀의 수녀들이 성유 묻은 속옷을 빨았다. 그 뒤 성유 자국들이 본래 색깔을 되찾았다.」
방문동정회의 설립자 같이 주목할 만한 인물에 대해 이상하게 침묵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저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여태껏 그래 왔듯이 테레사 성녀라도 되는 듯 행동해봤자 통찰력 뛰어난 마담 드 샹탈한테는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나?
진정 성스러운 이들한테는 감히 어쩌지 못하는 재능이 있어서, 겉에 드러내는 마스크가 아니라 본연의 자체에서 사람을 꿰뚫어보는 법. 이 선량한 노부인의 지혜로운 눈길 앞에서 가엾은 잔느가 영적으로 발가벗김 당한 상태를 갑자기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귀향길에 브리아르에서 예수회 수사 둘이 수녀들과 작별했다. 잔느 수녀는 저에게 온전한 정신을 되돌려 주려고 무진 애를 쓴 사람과 그 이후 더 이상 못 보게 됐다. 수렝과 토마스는 보르도가 있는 서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다른 이들은 파리로 떠났다. 거기서 잔느가 다시 왕비와 만났는데, 참으로 적절한 시간에 셍제르맹에 도착했다.
그날 밤, 1638년 9월 4일 한밤중, 왕비에게 산통이 시작된 것. 노트르담 뒤퓌 대성당에서 가져온 축복받은 성모 거들이 왕비 허리춤에서 바짝 조이고 원장수녀의 슈미즈가 왕비 복부를 덮었다. 다음날 오전 11시 안 도트리시가 옥동자를 순산했다. 5년 뒤 루이 14세가 될 운명인 아기. 수렝의 글을 보자.
「그렇게 성 요셉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왕비께서 순산케 했을 뿐 아니라 권한과 관대함에서 둘도 없는 왕을, 드물게 신중하고 놀랍도록 현명하고 전례 없이 신앙심 두터운 왕을 프랑스에 선사하신 것이다.」
왕비가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자마자 잔느가 제 슈미즈를 챙겨 루덩으로 떠났다. 수녀원 숙사 문들이 그녀 앞에서 활짝 열렸다가 그녀 뒤에서 다시 닫혔다. 영원히. 그녀의 영광된 삶의 어수선한 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이제부터 제 숙명이 되어야 한 따분한 일상에 금방 적응하기 어려웠다. 성탄절을 얼마 앞두고 폐색전에 걸렸다. 그녀 말에 따르면, 목숨은 이미 절망적이었다. 그녀가 고해사제에게 말했다.
「우리 주께서는 나에게 하늘나라로 가려는 갈망을 많이 주셨어요. 하지만 그뿐 아니라, 만약 지상에서 조금 더 머문다면 내가 그분께 적잖이 봉사할 수 있으리라는 점도 알게 하셨지요. 그러니, 신부님, 성유를 나한테 문질러 주세요, 그러면 당장에 회복될 거예요.」
기적이 일어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잔느의 고해사제는 이 축복받은 기회를 보라고 손님들을 초대하기까지 했다. 성탄절 밤 ‘우리 교회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서 내 회복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 원했다.’ 신분 높은 객들은 병자가 누워 있는 방에 더 가까운 쪽으로 자리를 받았다. 쇠창살 사이로 저 안쪽이 들여다보였다.
「한밤중이 지나 내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예수회의 알랑주 신부가 제의를 포함해 정식으로 갖춰 입은 뒤 성스러운 슈미즈를 들고 우리 방에 들어왔다. 내 침상으로 다가와서 성물을 내 머리에 대고 성 요셉의 호칭기도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다 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내 머리에 성물을 대자마자 난 즉각 완전히 회복됐음을 느꼈다. 하지만 신부님이 호칭기도를 마칠 때까지 아무 내색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도가 끝나고 나서야 치료됐다고 밝히고는 옷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이 두 번째, 지나치게 연출된 기적은 관중에게 각별한 인상을 일으키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런 기적이 그 뒤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삼십년전쟁 2은 여전히 끝날 줄 몰랐다. 리슐리외는 갈수록 더 부를 쌓고 민중은 갈수록 더 도탄에 허덕였다. 농민들이 과도한 세금에 분노하여 들고일어나고, (파스칼의 부친을 포함하여) 부르주아가 국채 이자 인하에 반대하여 들고일어났다.
우르술라회 수녀들은 루덩에서 별 다른 사건 없이 살았다. 몇 주 만에 한 번씩 (이전처럼 보포르 공작을 닮았지만 단지 더 아담하여, 3피트가 좀 넘고 16세쯤 돼 보이는) 수호천사가 원장수녀 왼손에서 희미해지는 철자들을 다시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멋진 성해함에 담긴 슈미즈는 성 요셉의 성유와 함께 수녀원의 가장 귀중하고 효력 있는 성물 축에 들었다.
1642년 말 리슐리외가 죽고 몇 달 뒤 루이 13세가 무덤으로 갔다. 다섯 살짜리 왕을 대신하여 안 도트리시와 그녀의 정부인 마자랭 추기경 3이 나라를 서툴게 통치했다.
1642년 잔느 수녀가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고, 새로운 영적 조언자로 예수회 수사인 생주르 신부를 얻어서 그에게 자신의 글과 또 악마에 관한 수렝의 미완성 원고를 보냈다.
생주르가 이 원고를 에브뢰 주교에게 빌려 주고, 루비에의 마귀 들린 자들을 책임지는 주교는 루덩에서 벌어졌던 대로 더 새롭고 혐오스러운 광기와 악의의 향연을 계속했다. 로바르데몽이 원장수녀한테 편지를 보냈다. ‘내 보기에, 당신이 생주르 신부와 주고받은 서신들이 이번 일에서 한몫 톡톡히 했소이다.’
시농에서 바레 신부가 조직하고 연출한 마귀 들림은 루비에의 것보다 성공적이지 못했다. 처음엔 물론 다 잘 돌아가는 듯 보였다. 도시 최고 가문의 여인들을 포함하여 일단의 젊은 여인들이 심리적 감염에 굴복했다. 그 다음엔 다 순서대로 진행됐다. 신성 모독, 발작, 중상과 비방, 음란한 언행…
한데 불행히도, 귀신들린 처녀들 중 벨로켄이라는 여자가 지역 성직자 길루어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교회에 가서 그녀가 높은 제단에 닭 피를 한 병 쏟아놓고는, 엑소시즘 도중에 바레 신부한테 그 피는 간밤에 길루어가 자기를 겁탈할 때 흘린 것이라고 고백했다. 바레가 처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녀 몸에 들어앉은 다른 악마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동료 성직자에 대한 유죄 증거를 더 확보하려고.
그러나 일은 추악하게 끝났다. 벨로켄한테 닭을 판 여인이 낌새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어 법정에 고발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바레가 머리 꼭대기까지 화를 냈고, 벨로켄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심기증에 시달려 자리에 누웠다. 악마들은 이 질병이 길루어의 마법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런 소리에 흔들리지 않은 경찰이 더 많은 증인을 소환했다. 그러자 겁에 질린 벨로켄이 투르로 달아났다. 거기 대주교는 마귀 들림을 신봉하는 이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 대주교가 부재중이어서 보좌사제가 직무를 대행하는데, 그는 마귀 들림 현상을 잘 안 믿는 편이었다. 보좌사제가 벨로켄의 사연을 듣고는, 산파 둘을 불러서 길루어 신부가 정말 가엾은 처녀 복부에 손상을 가했는지 검사하게 했다. 알고 보니 통증은 거짓이 아니긴 했지만 초자연적인 원인 때문이 아니라 작은 포탄 조각이 자궁에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심문을 받고 처녀는 그걸 제 손으로 집어넣었다고 자인했다. 이 사건 이후 불쌍한 바레는 교구를 잃고 투렌에서 추방됐다. 그는 사람들한테 까맣게 망각된 채 생을 마감했다. 르망에 있는 수도원에서.
그러는 동안 루덩에서는 악마들이 제법 잠잠히 지냈다. 사실 잔느 수녀 증언에 따르면 이런 일도 있긴 했다. ‘끔찍이도 무섭게 생긴 사내 둘이 내 앞에 나타났는데 심한 악취를 풍겼다. 둘 다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붙잡아 옷을 찢고 침대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 삼십 분 넘게 몽둥이로 나를 때렸다.’
다행히도 슈미즈가 얼굴에 둘려 있었기 때문에 원장수녀가 제 알몸을 보는 치욕은 면했다. 악취 풍기는 두 남자가 슈미즈를 다시 내리고 사라졌을 때, 그녀는 ‘자신의 순결을 깨는 무슨 짓이 벌어지지는 않았음을 알았다.’
그런 식의 공격이 몇 번 더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십 년에 걸쳐 잔느가 기록한 기적들은 주로 좀 더 천상의 성격을 띠었다. 예를 들면, 한번은 어떤 힘이 그리스도에게 수난을 가한 도구들을 이용하여 그녀 심장을 둘로 갈랐다. 그건 물론 내부에서 일어난 일로 겉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또 죽은 수녀들의 영혼이 나타나서 연옥에 관해 얘기한 경우도 여러 번 됐다.
물론 그 동안에도 손바닥의 성스러운 글자들은 면회실 쇠창살을 통해 고관들과 독실한 이들과 그저 호기심 많거나 대놓고 의심하는 사람들한테 계속 전시됐다. 천사는 이름자를 갱신할 때마다, 아니면 그냥 짬짬이 나타나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그 조언을 잔느가 지루하게 긴 글로 적어 영적 조언자에게 전달했다.
천사는 다른 삼자들 일에 관해서도 조언했다. 예를 들어, 소송에 연루된 신사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딸을 좀 손해나지만 지금이라도 시집보내는 게 나은지 아니면 더 좋은 신랑감을 바라면서 버티는 게 더 나은지 알고 싶어 안달하는 어머니들에 대해서.
(1648년 삼십년전쟁이 끝났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세가 꺾이고 게르마니아 주민 삼분지 일이 사라졌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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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 St. Jeanne Chantal (1572–1641) - 로마가톨릭 성인, 성모 방문동정회 설립. 귀족 가문 출신, 28세에 남편 샹탈 남작을 여읜 뒤 기도에 몰두. 살레의 성 프랑수아를 만난 뒤 그의 제자요 친구가 되다. 1610년 안시에서 수도회 설립, 69개 수녀원을 운영하고 영적 조언자로 활동하면서 과부들과 병든 여인들을 돌봄. [본문으로]
- 삼십년전쟁 - 1618-1648 어간에 주로 오늘날 독일과 유럽 많은 국가들이 개입된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유럽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분쟁들 중 하나. 분쟁의 발단과 참여국들의 목적은 지극히 복잡다단. 처음엔 신성로마제국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교도들의 종교적 충돌로 시작됐지만, 이후 유럽 열강이 개입하는 단계로 확대됐고, 이 단계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많이 줄고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부르봉왕가와 합스부르크왕가의 대립이 주요인이 됐다. 무력 충돌이 벌어진 전 지역이 군대의 징발로 헐벗게 됐고 기아와 질병으로 게르마니아, 보헤미아, (북해 연안) 저지대, 이탈리아에서 주민 수효 격감하고 전쟁 당사국들은 대부분 파산의 지경에 이르렀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일부인 오스나브뤼크와 뮌스터 강화조약으로써 독일의 30년 전쟁이, 에스파냐와 네덜란드 간의 80년 전쟁이 비로소 막을 내렸다. 프랑스 영토 확장, 프로이센 왕국 등장, 신앙의 자유. [본문으로]
- Jules Mazarin (1602-1661) - 이탈리아의 가톨릭 추기경, 로마교황청 외교관, 정치가, 1642년부터 (프롱드 난 시기에 잠시 밀려났지만) 죽을 때까지 프랑스의 재상. ‘잿빛 추기경’인 조셉 신부가 죽은 뒤 리슐리외가 파리로 불러들였으며, 이후 리슐리외의 정책을 그대로 추진. 루이 14세의 대부, 안 도트리시와 내연 관계라는 설도. 예술품 및 다이아몬드 등 보석 수집광.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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