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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헉슬리)67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초기 단계에서 수렝의 치유는 암흑으로부터 ‘행복하고 건강한 의식’으로 이동하는 데 있지 않았다. 이 건강한 의식은 인간 마인드가 절대자의 마인드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정말 누구인지 문득 인식할 때 다가온다. 한데 그는 그저 하나의 병적 상태에서 다른 병적 상태로 옮겨갔을 뿐이며, 그 상태에서 ‘특별한 은혜’는 이전에 있던 특별한 슬픔처럼 평범해진 것이다. 이런 점은 언급해야겠다. 즉, 병고에 가장 시달린 시기에도 수렝은 기쁨의 찰나를 여러 번 경험했으며, 그럴 때마다 저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께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이라고 짧게나마 확신했다는 점. 기쁨의 번쩍임이 이제 더 늘어나고, 그런 확.. 2019. 7. 21.
루덩의 악마들 11편 5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일본 임제선 창시의 주요 인물인 남포소명은 이렇게 설파한다.   「눈먼 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마음에서 부처가 자신의 황금 입술에서 단어들을 농담조로 흘렸다. 그 뒤로 하늘과 땅이 뒤얽힌 말 덤불로 가득 찼다.」   이 덤불들이 극동에서만 자란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가지고’ 왔다면, 그건 그분과 그분 후계자들이 그들 통찰력을 말로써 구체화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말들처럼, 기독교적 언급들은 때론 너무 공격적이고 때론 너무 개괄적이고 불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늘 구구한 해석의 여지를 많이 허용한다.   이런 가.. 2019. 7. 21.
루덩의 악마들 11편 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Chimin)  16-17세기 작가들과 극작가들이 가장 즐겨 취한 주제들 중 하나는 정신 멀쩡한 사람을 미쳤다고 공표하고 갖가지 모욕과 조롱을 안기는 것. 예를 들어, 말볼리오[각주:1]가 그렇고, 혹은 그림멜하우젠의 [각주:2]에 나오는 비참한 희생자를 떠올릴 수 있다. 한데 실생활에서 벌어진 사실들은 픽션에서 다룬 것보다 한층 더 불쾌한 것이었다.  루이즈 트롱셰가 파리에 있는 살페트리에 정신병원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회고록을 남겼다.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소리치고 혼자 깔깔대고 다니다가 1674년 병원에 수용됐다. 한데, 그렇게 돌아다닐 때 왜 그런지 떠돌이 고양이들이 그녀를 엄청나게 따라 다니는 바람에 .. 2019. 7. 21.
루덩의 악마들 11편 3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Chimin)     몇 번이나 해가 바뀌면서 고통의 양상도 이모저모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결코 가시지 않았다. 그는 그걸 이지적으로 알았다.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하중으로, 신의 심판의 무게로 느꼈다. 그 압박을 견딜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건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느낌은 자꾸만 나타나는 환영들 때문에 더욱 굳어졌다. 그 환영들이 어찌나 생생하고 진짜 같은지, 정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인지 그 자신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거개가 그리스도의 환영이었다.   그러나 구세주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의 그리스도였다. 가르치는 그리스도나 수난 겪는.. 2019. 7. 21.
루덩의 악마들 11편 2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악마들이 떠남으로써 정신이 마귀 들림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 한 레비아탄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이제 싸움은 하나님이라는 이데아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해도 화합될 수 없는, 그의 스피릿 안에서 벌어졌다.    하나님이라 명명된 무한함은 본성이라 불리는 유한함을 포함해야 하며, 이 무한함은 공간의 모든 점들과 시간의 매 순간에 전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오늘날 우리한테는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명백한 결말을 회피하고 그 현실적인 결과를 모면하기 위해 구학파의 엄격한 기독교 사상가들은 창의력을 소비하고 준엄한 기독교 모럴리스트들은 설득과.. 2019. 7. 20.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번역, 주석, 해설 – Chimin) 11    비극에 우리는 참여하고, 코미디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비극의 저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 속에 있다고 느낀다. 독자나 청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코미디에서는 창작자와 문학적 피조물 간에, 구경꾼과 구경거리 간에, 일체화가 전혀 없다. 작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에 투사하지 않으며 관객도 그들과 거리를 둔다. 작자는 바깥에서 보고 판단하고 묘사한다. 관객 역시 바깥에 머물면서 작자가 묘사한 것을 관찰하고 작자가 판단하는 대로 판단하고 코미디가 꽤 괜찮다면 웃음을 터뜨린다.    순수 코미디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뛰어난 코미디 작가들이 혼합된 코.. 2019.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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