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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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 없는 방> 

 

 

장-폴 사르트르 지음 

김성호 옮김

 

19 세기 많은 철학자들이 실존주의의 개념을 발전시켰지만, 이 개념을 널리 알린 이는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였다. 1944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연극 <출구 없는 방/ Huis Clos/ No Exit>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니까. 
이 작품에는 안내인, 가르생, 에스텔, 이네스 등 네 캐릭터만 등장하며, 무대는 벽난로 위에 커다란 청동 장식품이 놓이고 앙피르 풍 가구가 배치된 객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이라는 식의 실존주의적 사고가 배어 있다.

이 희곡을 읽으면서,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두 사람과 함께 객실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사르트르 희곡 출구 없는 방 No Exit

 

1장

 

     가르생, 안내인. 

     (앙피르 풍의 가구가 갖춰진 객실. 벽난로 위에 청동 흉상이 놓여 있다.)

 

     가르생: (안내인을 따라 방에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니까, 여긴가요?

     안내인: 예,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그러니까, 이건, 보이는 그대로군요. 

     안내인: 그렇습니다.

     가르생: 앙피르 풍의 가구 같은데… 아, 그래, 여기에 서서히 익숙해지겠지요?

     안내인: 사람마다 하기 나름이지요.

     가르생: 그러면 여기 방들은 다 이런 모습인가요? 

     안내인: 어찌 그렇겠습니까? 우리는 이를테면 중국인이나 인도 사람을 위한 방도 다 제공합니다. 그들한테 앙피르 양식의 안락의자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가르생: 그럼, 나한테는 어떤 양식이 맞겠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시오? 이런! 그게 무슨 상관이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견딜 수 없는 가구들 사이에서, 거짓된 상황에서 살면서 그런 삶을 마음껏 즐겼지요. 루이 필립 양식의 식당처럼 거짓된 상황…, 그 양식을 알아요? 요는, 말하자면, 가짜 속에 또 가짜가 있다는 것이오. 

     안내인: 앙피르 풍으로 꾸민 객실도 전혀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가르생: 그래요? 아, 좋아요, 좋아. 그렇다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하지만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저 아래에서 우리한테 하는 얘기를 당신은 알고 있나요?

 

     안내인: 무슨 얘기 말인가요?

     가르생: 흠... (방안을 휘둘러보면서) 이곳에 관해 하는 말들 말이오.

     안내인: 사실, 그런 건 다 허튼소리에 불과해요.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들은 여기 와 본 적이 없는데.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그들이 여기 오려면...

     가르생: 아, 맞아요. (둘이 웃는다.) (가르송이 정색하면서) 한데 고문대는 어디 있소?

     안내인: 뭐라구요?

     가르생: 흠, 고문대며 불에 달군 인두, 에스파냐 부츠 따위 기구들 말이오. 

     안내인: 아, 지금 농담하시는 거지요?

     가르생: (그를 주시하면서) 농담이냐구요? 아니요, 여기서 웃을 일이 뭐 있겠소. (침묵. 가르생이 앞뒤로 바장인다.) 여긴 거울이 없군요. 창문도 하나 없네. 깨질 물건은 하나도 없어. (문득 어조를 높여서) 한데, 내 칫솔은 왜 압수한 거요?

     안내인: 아, 좋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아직 이른바 인간적 품위를 떨치지 못한 건가요? 이런 표현, 미안합니다.

     가르생: (화가 나서 안락의자 팔걸이를 내려치며) 빈정대지 마시오. 내 처지를 분명히 알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건 못 참아...

     안내인: 아, 알겠습니다! 기분 상하게 할 뜻은 없습니다. 댁은 뭘 원하시나요? 고객들은 다 똑같은 질문들을 던져요.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정말 멍청한 질문들이지요. 다들 “고문실은 어디 있어요?” 하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좀 진정되면 칫솔을 요구하는데, 그래봤자 개인위생을 염려해서 그러는 건 전혀 아니에요. 한데 정말이지, 당신들은 생각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요? 대답해 보세요, 당신이 왜 이를 닦아야 하는 겁니까? 

 

     가르생: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래, 그럴 필요가 없군. (다시 사방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거울은 왜 들여다보고 싶어 하나? 하지만 벽난로 위에 있는 저 청동 흉상으로 말하자면… 내가 저기서 눈을 떼지 못할 순간이 올 것 같아요. 눈을 떼지 못하겠지요? 

좋아요, 우리 툭 털어놓고 얘기해 봅시다. 난 내 처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오. 이게 어떤 느낌인지 말해 볼까요? 한 남자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데, 두 눈은 아직 물 위에 내놓고 있는 꼴이오. 그리고 무엇을 볼까요? 그 사람 이름이… 아, 바르베디앙, 그가 만든 청동 흉상을 보겠지요. (*Barbedienne, 1810-1892, 프랑스 금속세공인). 이건 악몽이오! 이게 저들의 의도 아닌가요? 

아, 아니야, 당신은 질문에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겠지. 그래서 더 묻지 않을 게요. 하지만 나한테 함부로 대하지는 마시오, 나를 놀라게 하면서 즐길 생각일랑 접어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 (다시 앞뒤로 바장인다.) 자, 칫솔은 필요 없게 됐어. 침대도 그렇고. 여기서는 다들 잠도 안 자는 모양이구려? 

     안내인: 그렇습니다. 

 

출구는 없다
사르트르 희곡 <출구는 없다>

 

     가르생: 그럴 줄 알았소. 잠을 왜 자야 하지? 졸음이 당신 뒤편에서 조용히 다가들고 눈이 저절로 감기는 것을 느끼지만, 침대로 갈 필요가 없지. 소파에 눕는데, 이런, 잠이 달아나고 마네. 두 눈을 부비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고.

     안내인: 당신은 정말 낭만적이군요!

     가르생: 그런 소리 마시오. 난 눈물 흘리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을 게요. 금방 말한 대로 상황을 직면할 거요. 공정하고 당당하게 마주할 것이오. 내가 짐작도 하기 전에 상황이 뒤통수치기를 바라지 않아요. 이걸 당신은 낭만적이라고 부르는군요. 여기선 휴식이 필요 없다는 뜻이오? 휴식이 필요 없다면 잠을 왜 자나? 안 그렇소? 잠깐만. 이봐요, 여기선 징벌을 어떻게 받지요? 어디서? 아, 알겠어, 휴식도 없이 내닫는 삶이로군.

     안내인: 휴식도 없다니요?

     가르생: (그를 흉내 내면서) 휴식도 없다니요? (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시오. 내 그럴 줄 알았어! 당신 눈길이 왜 이다지도 뻔뻔스러운지 이제 알겠소. 근육 위축증에 걸렸군!

     안내인: 무슨 뜻이지요?

 

     가르생: 당신 눈꺼풀 말이오. 우리네 눈꺼풀은 위아래로 움직여요. 이걸 가리켜서 깜빡거림이라고 하지. 이건 찰칵 하고 내려가면서 휴식을 취하는 작고 검은 셔터 같은 것이라오. 모든 것이 검게 변하고 두 눈은 축축해지지요. 그러면 얼마나 휴식이 되고 상쾌해지는지 당신은 모를 게요. 한 시간마다 4천 번의 짧은 휴식이 있다오. 4천 번의 짧은 멈춤을 생각해 봐요! 뭐라구요? 내 눈꺼풀도 닫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어리석게 굴지 마시오. 눈꺼풀 없는 것이나 잠을 못 자는 것이나 매한가지야. 난 절대 다시 잠자지 않을 거요. 

하지만 어떻게 견디냐고? 이해하려고 해 봐요. 보다시피, 난 놀리기를 좋아해요, 이건 나의 제 2의 천성이고, 난 자기 자신을 놀리는 데 익숙하다오. 자신을 괴롭히는 데 익숙하다고 해도 되겠지. 난 멋지게 괴롭히지 못해. 그러나 휴식도 없이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저 아래에서 나한테는 밤이 있었다오. 난 잠을 잤어요. 늘 곤히 자곤 했어. 일종의 보상 같은 거지요. 그리고 행복한 꿈도 살짝 꾸었지. 거기엔 푸른 들판이 있었다오. 그냥 평범한 들판인데, 거기서 한가롭게 거닐곤 했지… 여긴 지금 낮이오?

 

     안내인: 램프 켜져 있는 게 안 보입니까? 

     가르생: 아, 그래요, 알겠어. 그러니까 이게 당신네 낮이로군. 바깥은 어떻소?

     안내인: (놀라서) 바깥이라니요?

     가르생: 이런 젠장, 무슨 뜻인지 알잖소. 저 벽 너머 말이오!

     안내인: 거긴 통로가 있습니다. 

     가르생: 그러면 통로 끝에는?

     안내인: 객실들이 더 있고 통로도 더 있고 또 여러 계단이 있지요.

     가르생: 그 다음엔 뭐가 있나요?

     안내인: 그게 전붑니다. 

     가르생: 당신도 쉬는 날이 있을 텐데, 그때는 어디로 가시오?

     안내인: 숙부한테 갑니다. 3층에서 선임 안내원으로 일하지요. 

     가르생: 흠, 그렇군. 전등 스위치는 어디 있지요?

     안내인: 여기에 스위치 같은 건 없습니다.

     가르생: 뭐라구요? 그렇다면 불을 못 끈다는 뜻이오?

     안내인: 아, 관리실에서 전기를 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층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엔 전기가 넘치니까요.

     가르생: 거 참 좋군. 그러니까 늘 눈을 뜨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오?

     안내인: (빈정대듯이) ‘산다’는 표현을 쓰셨나요? 

     가르생: 말꼬리 잡지 마시오. 눈을 감지 않는다. 영원히. 눈앞엔 늘 대낮이야. 또 머릿속에도. (휴지.) 벽난로 위에 있는 저 청동상을 전등 위에 떨어뜨리면 불이 나가지 않을까? 

     안내인: 그건 아주 무겁습니다.

     (가르생이 청동상을 들어 올리려 한다.)

     가르생: 맞네. 정말 무겁군. (침묵.)

     안내인: 그럼, 더 하실 말씀 없다면, 물러가겠습니다.

     가르생: (흠칫 놀라면서) 뭐, 간다구요? 잘 가시오. (급사가 문에 이른다.) 잠깐. (급사가 몸을 돌린다.) 이게 벨 맞소? (급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원할 때 벨을 누르면 당신이 나타나나요?

     안내인: 원칙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끔 말을 안 들어요. 배선에 문제가 좀 있지요.

     (가르생이 벨 쪽으로 다가가서 누른다. 벨이 울린다.)

     가르생: 잘 작동하는군!

     안내인: (놀라서) 정말 작동하네요. (역시 벨을 누른다.) 하지만 좋아하진 마세요, 변덕이 심하니까요. 이제 정말 가야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가르생: (손짓으로 그를 세우면서) 저기…

     안내인: 네?

     가르생: 아니, 아무 것도 아니요. (그가 벽난로 쪽으로 가서 페이퍼 나이프를 집어 든다.) 이건 또 뭐지요?

     안내인: 보시다시피, 책갈피를 자르는 칼입니다. 

     가르생: 여기 책이 있다는 말이오? 

     안내인: 아니요. 

     가르생: 그러면 이걸 뭐에 써먹나? (안내인이 어깨를 추썩인다.) 됐어, 가 봐요.

     (안내인이 퇴장한다.)

 

1장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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