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인 거야!"
"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지옥인 거야!"
얼핏 듣자면,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임을 알게 됩니다.
사르트르는 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 없이 혼자 살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이 서로한테 어쩌면 필요악인가요?
물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일 수 있지만, 또 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각자가 서로 하기 나름! 이게 중요하겠지요.
2장
가르생.
가르생 혼자 있다. 청동 장식품에 다가가서 손으로 톡톡 건드린다.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난다. 문 쪽으로 다가가서 벨을 누른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두세 번 계속 눌러 보지만 소용없다. 그러자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역시 꿈쩍도 않는다. 그가 소리쳐 부른다.
가르생: 안내인! 안내인!
대답이 없다. 가르생이 문을 세게 두드리면서 안내인을 계속 부른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안내인과 함께 이네스가 들어선다.
3장
가르생, 이네스, 안내인.
안내인: 부르셨나요, 선생님?
가르생: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이네스를 보고는 바꿔 말한다) 아니요.
안내인: (이네스를 보면서) 여기가 부인 방입니다. (이네스가 대꾸하지 않는다.) 혹시 물으실 게 있다면... (이네스가 계속 입을 다물자, 실망한 빛으로) 우리 손님들 대다수는 저한테 여러 질문을 하지요. 하지만 제가 강요하진 않습니다. 어쨌든, 칫솔이며 초인종, 벽난로 위에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이 신사분이 이미 알고 계시니까 잘 대답해 주실 겁니다. 이 분과 저는 얘기를 좀 나누었거든요.
(안내인이 나간다. 침묵. 가르생은 이네스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네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르생 쪽으로 몸을 홱 돌린다.)
이네스: 플로렌스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이 침묵한다.) 난 플로렌스에 관해 묻는 거예요. 그녀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네스: 이건 다 당신이 궁리한 거지요? 떼어 놓고 고문하는 것 말이에요. 한데 내가 알기에 당신은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플로렌스는 귀찮은 멍청이였고, 난 그녀를 조금도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구요.
가르생: 미안하지만,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닌가요?
이네스: 당신... 하는 일이 고문이잖아요.
가르생: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거 참, 정말 우스꽝스럽군요! 내가 고문자라니! 그러니까 이 방에 들어와서 나를 보고는 이곳 직원이라고 생각했군.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요! 저 안내인이 멍청해서 그래, 우리를 서로 소개했어야지! 나를 고문자로 보다니! 난 조세프 가르생이라고 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지요. 우리 둘 다 이를테면 같은 배를 탄 셈이니까, 제가 물어봐도 될까요? 마담은...
이네스: (무뚝뚝하게) 이네스 세라노라고 해요. 마담이 아니라 마드무아젤이에요.
가르생: 좋아요, 어쨌든 시작은 됐어요. 자, 우리 사이에 얼음이 깨졌는데, 내가 아직도 고문자처럼 보이나요? 아, 그리고 고문자들은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요? 당신은 분명 뭘 좀 아는 것 같은데.
이네스: 그들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가르생: 겁먹은 표정이요? 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얘기로군요. 그들이 누구한테 겁을 먹나요? 자기네가 고문한 사람들한테?
이네스: 그래, 맘껏 웃어요. 하지만 내 말은 틀리지 않아요. 나는 유리 같은 데 비친 내 얼굴을 자주 들여다봤어요.
가르생: 유리에?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저들은 정말 못돼먹었군. 유리 같은 건 다 치웠으니 말이에요. (휴지) 어쨌든 분명히 말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경망스럽게 구는 건 아니에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압니다. 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전혀.
이네스: (어깨를 추썩이며) 그건 당신 문제구요. (휴지) 당신은 항상 여기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가끔 산책이라도 하나요?
가르생: 문은 잠겨 있습니다.
이네스: 거 참 고약하네요.
가르생: 내가 있어서 당신이 많이 불편할 겁니다. 사실 나도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해요.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건 혼자 있을 때 더 잘 되니까요. 하지만 우린 어떻게든 잘 지낼 거라고 믿어요. 난 말이 많지 않고 많이 움직이지도 않아요. 평화로운 부류에 속하는 편이지요. 단지 하나, 감히 제안하자면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정중하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게 서로를 다치지 않는 최상의 방법 아니겠어요?
이네스: 난 예의를 잘 차리지 못해요.
가르생: 그렇다면, 내가 두 몫으로 정중하게 처신해야겠군요.
(침묵. 가르생이 소파에 앉는다. 이네스가 방안을 앞뒤로 서성인다.)
이네스: (그를 바라보면서) 당신 입이...
가르생: (생각을 떨치면서) 뭐라구요?
이네스: 입 좀 가만둘 수는 없나요? 입을 계속 씰룩거리고 있잖아요. 보기가 참 안 좋아요.
가르생: 정말 미안하오. 난 그런 줄 몰랐어요.
이네스: 그래서 지적하는 거예요. (가르생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저 봐, 또 그러네. 당신은 예의 운운하면서 자기 얼굴 하나 컨트롤하려 들지도 않는군요. 당신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요.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나한테 옮기면 안 돼요.
(가르생이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가르생: 당신은 어때요? 두렵지 않은가요?
이네스: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예전엔 두려워할 이유가 웬만큼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단 말이죠.
가르생: (맥없이) 더 이상 희망은 없어요. 하지만 아직도 그 “예전”입니다. 우리 고통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마드무아젤.
이네스: 그건 알아요. (휴지)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가르생: 모르겠소. 기다려야겠지요.
(침묵. 가르생이 다시 제 자리에 앉는다. 이네스가 또 앞뒤로 바장인다. 가르생이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이네스를 흘낏 보고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에스텔과 안내인이 들어선다.)
4장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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