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4)

Books/장 폴 사르트르2019. 4. 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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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폴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No exit

 

  (5장 계속)  

 

     에스텔: 그만, 제발 그만해요.

     이네스: 지옥에 있다구요! 저주받은 영혼들, 그게 우리란 말이에요! 우리 셋 다!

     에스텔: 입 다물고 조용히 해요. 그런 악담은 못 들어 주겠어요.

     이네스: 저주받은 영혼, 위선적인 성자, 그게 바로 당신이에요. 저 신사 양반, 고상한 반전주의자도 마찬가지지. 우리는 삶을 충분히 만끽했어, 안 그래요? 세상에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불태운 이들이 있었는데, 우린 그걸 보며 그저 낄낄대기만 했지요. 그러니 이제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예요. 

 

 

     가르생: (손을 들어 올리면서) 그 망할 놈의 입 좀 그만 나불거리시오!

     이네스: (담담하면서도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오, 이런! (휴지) 잠깐만! 이제 이해가 되네. 왜 우리 셋을 여기에 함께 집어넣었는지 알겠어요!

     가르생: 더 입을 놀리기 전에 생각을 두 번 하는 게 좋을 게요.

 

     이네스: 잠깐,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 알게 될 거예요. 아주 간단해! 이곳에는 신체적 고문 같은 게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옥에 있어요.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으니, 우리끼리만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거예요. 안 그런가요? 간단히 말해, 있어야 할 누군가가 없는 것인데, 그건 바로 공식적인 고문자란 말이죠. 

     가르생: (혼잣말로) 나도 그 점에 주목했어.

     이네스: 인적 자원을 줄인 게 분명해요. 혹은 악귀들을 줄였다고 해도 틀리진 않겠어요. 고객들이 직접 움직이는 셀프서비스 카페처럼 말이죠.

     에스텔: 무슨 뜻인지 난 도무지 모르겠군요.

     이네스: 내 말은 우리 각자가 다른 두 사람에게 고문자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뜻이에요.

     (휴지. 다들 그 말을 곱씹는다.) 

 

     가르생: (나직한 소리로) 아니, 난 당신들의 고문자가 절대 되지 않을 거요. 당신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을 뿐더러, 당신들한테 관심도 없소. 눈곱만치도. 그러니 해결책은 아주 간단해요. 우리 각자가 자기 구석에 머물러서 다른 이들에겐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 거요. 당신은 여기에, 당신은 여기에, 그리고 난 저기에. 그리고 그냥 조용히 지내는 거요, 말 한마디 없이. 뭐가 어렵겠소? 우리 각자에겐 제 할 일이 있어요. 난 내 생각만 가지고도 만 년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에스텔: 그럼, 나도 입을 다물어야 하나요?

     가르생: 그렇소. 그러면 우린 구원을 찾을 수 있을 게요. 이네스,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절대 쳐들지 맙시다. 동의하시오?

     이네스: 동의해요.

     에스텔: (다소 주저하다가) 나도 그래요.

     가르생: 그럼, 안녕.

 

     (그가 자기 소파로 물러나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침묵. 이네스가 나직이 콧노래를 부른다.)

     (그러는 동안 에스텔은 볼에 파우더를 두드리고 립스틱을 바른다. 파우더를 두드리면서 차분한 표정으로 거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자기 핸드백을 뒤지다가 가르생에게 고개를 돌린다.) 

 

     에스텔: 실례지만, 혹시 거울 갖고 계시나요? (가르생이 반응하지 않는다.) 작은 손거울이라도 없어요? (가르생이 계속 침묵한다.) 나한테 말은 하지 않더라도 거울은 빌려줄 수 있잖아요!

     (가르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말이 없다.)

     이네스: (달래는 말투로) 걱정 말아요. 내 손가방에 거울이 있어요. (자기 핸드백을 뒤진다. 아쉬운 표정으로) 없어졌네! 입구에서 저 사람들이 빼낸 게 틀림없어. 

     에스텔: 어쩜 이렇게 지겨울 수가!

     (휴지. 에스텔이 눈을 감으면서 쓰러질 듯 휘청거린다. 이네스가 다가가서 부축한다.)

 

     이네스: 왜 그래요?

     에스텔: (눈을 뜨고 미소 짓는다) 아주 야릇한 느낌이 들어요. (그녀가 제 몸을 톡톡 두드린다.) 당신은 이렇게 한 적이 없나요? 나 자신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심이 돼요. 그러면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몸을 건드리는데, 사실 크게 도움 되지는 않아요.

     이네스: 당신은 운이 좋군요. 난 늘 나 자신을 의식해요, 마음속에서 말이죠. 뼈저리게 의식해요.

     에스텔: 아, 네, 마음속에서… 하지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것은 죄다 상당히 모호하지 않나요? 그냥 졸리기만 할 뿐이에요. (휴지) 내 침실에는 큰 거울이 여섯 개 있어요. 저기 있네요. 난 거울들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거울들이야 나를 못 보지요. 거울마다 카펫이며 장의자며 창문이 투영되고 있는데… 하지만 내가 없는 거울은 얼마나 공허한가요! 난 사람들과 얘기할 때면 내 모습이 비치는 거울이 곁에 있는지 늘 확인하곤 했어요. 얘기하는 나 자신을 지켜보았지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을 볼 때면 더 조심하게 됐어요. (낙담한 투로) 오, 이런, 립스틱이! 입술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을 거야. 거울 없이는 잘 그릴 수가 없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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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네스: 내가 당신의 거울이 돼 줄까요? 이쪽으로 오세요. 내 소파에 당신 자리가 있어요. 

     에스텔: (가르생을 가리키면서) 하지만…

     이네스: 그 사람은 잊읍시다. 

     에스텔: 하지만 우린 서로를 다치게 할 텐데.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이네스: 나를 잘 봐요. 내가 당신을 해칠 것 같나요?

     에스텔: 거야 누가 알겠어요.

     이네스: 어쩌면 당신이 나를 더 아프게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쩌겠어?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당신의 그 예쁜 손으로 당하는 것도 괜찮을 거야. 여기 앉아요. 더 가까이, 더 바짝. 내 눈을 봐요, 뭐가 보이죠?

     에스텔: 오오, 당신 눈 속에 내가 있네요. 하지만 하도 작아서 잘 못 보겠어요.

     이네스: 하지만 난 그쪽을 볼 수 있어. 아주 샅샅이. 뭐든 물어 봐요. 세상 모든 거울처럼 난 솔직하게 비춰 줄 거야. 

 

     (에스텔이 도움 청하듯이 가르생 쪽으로 수줍게 몸을 돌린다.) 

 

     에스텔: 이보세요, 미스터 가르생! 우리 수다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가르생이 대꾸하지 않는다.)

     이네스: 저 사람 걱정은 말아요. 그냥 우리만 있다고 생각하고… 자, 물어봐요.

     에스텔: 내가 입술을 잘 발랐나요?

     이네스: 어디 보자. 아니, 좀 흉하게 됐어요.

     에스텔: 그럴 줄 알았어요. 다행히도 (그녀가 가르생을 곁눈질하면서) 나를 보는 사람이 없네. 다시 발라야지.

     이네스: 그게 좋겠어. 아니, 그렇게 말고. 입술 선을 놓치지 않아야 돼. 잠깐! 내가 손을 잡아줄게. 그래, 거기야. 아주 좋아요.

     에스텔: 내가 여기 들어올 때처럼 잘 그려졌어요?

     이네스: 훨씬 더 좋아요. 더 또렷하고 더 관능적이고 더 섬세해. 이렇게 그리니까 요 입이 아주 악마처럼 보이네.

     에스텔: 당신은 친절하군요! 정말 좋아요? 내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미치겠어요. 미스 세라노, 이젠 정말 잘 그려졌어요?

     이네스: 나를 그냥 이네스라고 부르지 않을래?

     에스텔: 입술이 잘 그려진 게 확실하죠?

     이네스: 넌 정말 사랑스러워, 에스텔.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에스텔: 근데, 당신 취향을 내가 어떻게 믿지요? 내 취향과 같은가요? 아아, 정말 답답해 미치겠네.

     이네스: 내 취향도 너랑 같아, 왜냐면 넌 내 마음에 드니까. 나를 봐. 아니, 똑바로 봐. 이제 미소를 지어 봐. 나도 그리 추하지는 않아. 내가 네 거울보다 더 멋지지 않나? 

     에스텔: 오, 모르겠어요. 당신은 날 좀 겁나게 해요. 물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런 적이 없지요. 물론 내 모습을 난 잘 알았어요. 내가 길들인 어떤 것처럼… 한데 지금은 내가 미소를 지으면 미소가 당신 눈동자 속으로 가라앉을 테고,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신만이 알겠죠.

     이네스: 왜 나를 ‘길들이면’ 안 되는 거야? (둘이 마주본다. 에스텔이 좀 홀린 듯이 미소를 짓는다.) 이봐! 나를 그냥 이네스라고 불러 주면 좋겠어. 우린 좋은 친구가 돼야 해.

     에스텔: 난 여자들하고는 쉽게 친구가 되지 못해요.

     이네스: 특히 우체국 사무원하고는 그렇단 말이지? 근데, 네 뺨 아래 지저분하게 벌긋벌긋한 점은 뭐야? 뾰루지야?

     에스텔: (흠칫 몸을 떨면서) 뾰루지라고요? 어머, 지저분해라! 어디 있어요?

     이네스: 여기, 여기 있잖아! 거울로 종달새 잡는 방법을 알지? 난 너의 lark mirror이고, 사랑스러운 넌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어. (*lark mirror - 반짝이는 물건에 호기심 많은 작은 새들을 유인하여 잡는 데 쓰는 작은 거울.) 뾰루지 같은 건 전혀 없거든. 근데, 왜 있는 것처럼 했냐구? 거울이 거짓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혹은 내가 저 남자처럼 눈을 감고 널 안 본다면, 너의 사랑스러움을 뭐에 쓰겠어? 아아, 겁먹지 마, 난 너를 안 볼 수 없어. 눈길을 돌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너한테 잘 해줄 거야, 아주 잘 할 거야. 단지 너도 나한테 잘 해야 돼.

     (휴지.)

     에스텔: 나한테 정말 마음이 끌렸어요?

     이네스: 정말 그래!

     (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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