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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0 루덩의 악마들 10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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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The Devils of Loudun

 


 

  리슐리외 추기경은 세속적으로도 성직자로서도, 또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지위에서도 높은 지위에 걸맞게 굴고자 하면서 절반 신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노인은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함께 앉아 있기가 힘들 만큼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질병에 시달렸다.

  오른손 골결핵과 항문균열이 있었으니,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고름 냄새를 늘 풍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사향과 영묘향으로 감추려 했지만 썩은 고기 냄새 같은 악취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한테 물리적 혐오 대상이라는 굴욕적인 사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권위는 절반 신과 같은데 육신은 죽음을 달고 있는 것이 극심한 대비였다. 동시대인들은 이 패러독스에서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받았다. 

 

   (치질 치료에 기적 같은 묘약으로 알려진) 성 피아크르[각주:1]의 성유물을 모(Meaux) 도시에서 추기경 궁으로 가져왔을 때, 익명의 시인이 이 사건을 두고 시를 읊었다. 이 시에 조나단 스위프트[각주:2]가 매우 즐거워했을 터이다. 

 

대신의 집무실들을 거쳐 아주 잽싸게 

성스러운 유해를 날라 왔구나. 

그래봤자 기적의 향내를 

맡는 기쁨은 거의 누리지 못했을 게야.

추기경의 썩은 엉덩이가 끊임없이 줄줄 흘려댔으니. 

 

  위대한 인물의 항문균열을 묘사하는 다른 발라드도 있었다. 현실적 인간의 썩어가는 몸과 그의 영광된 페르소나 간의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줄 고티에의 표현을 빌자면, 이 경우 실제를 판타지와 떼어놓는 ‘보바리 각도’가 180도에 근접했다. 

 

  왕들과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절대 권위를 당연시하도록 교육받고, 그렇기 때문에 지배자들이 풍기는 허식의 거품을 터뜨릴 기회를 즐겁게 받아들인 세대에게 리슐리외 추기경의 경우는 가장 만족스러운 우화였다. 

 

리슐리외 추기경과 로바르데몽

 

  휴브리스[각주:3]는 그에 걸맞은 네메시스[각주:4]를 불러들이게 마련이다. 심한 악취와 살아 있는 몸뚱이에서 배를 채우는 벌레들이 동시대인들 눈에는 추기경의 업보였다

  추기경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성유물도 작용하지 않고 의사들도 포기했을 때, 위대한 인물 곁에 불러들인 사람은 치유 능력이 용하다고 소문난 시골 노파였다. 무슨 주문을 웅얼거리면서 노파가 병자에게 이적을 행한다는 영약을 먹였다. 그건 백포도주 1파인트에 녹인 말똥 4온스. 

  유럽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흔들던 절대자는 그렇게 입에서 배설물을 음미하며 저승으로 떠난 것이다. 

 

  잔느가 만났을 때, 리슐리외는 영광의 절정에 있었지만 이미 병이 깊어서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며 의사가 늘 달라붙어야 했다. 

  「그날 추기경께서는 사혈을 했다. 루엘 대저택의 문들이 굳게 닫혀서 주교들과 프랑스 육군원수들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기실로 안내됐다. 비록 예하께서는 침대에 계셨지만.」 

  저녁식사 후 (「식사는 아주 호사스럽고, 예하의 시동들이 우리를 시중들었다」)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를 처소로 인도했다. 그들이 추기경 예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굽혔고, 예하 계신 곳에서 감히 의자에 앉을 수 있는지를 두고 오랜 시간 설전이 이어졌다. (「예하께서는 예우해주시고 우리로서는 한사코 사양하느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결국 난 권유에 따라야 했다」) 

 

  리슐리외는 원장수녀가 하나님께 큰 책임이 있다는 말로 말문을 텄다. 이런 불신의 시대에 교회의 명예를 세우고 영혼들을 구제하고 악인들을 무찌르라고 그분께서 특별히 당신을 선택하신 게요. 

  잔느 수녀가 감사의 찬가로 응답했다. 세상이 우리를 미친 사기꾼으로 취급하는 마당에 예하께옵서는 저희에게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요 보호자요 수호자 역할을 해주셨음을 저와 제 자매들이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추기경은 그런 감사를 받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했다. 외려 나는 고통 받는 이들을 도울 기회와 수단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낄 뿐이외다. (원장수녀 기록에 의하면, 그는 ‘매혹적으로 우아하고 온화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위대한 인물이 물었다. 당신 왼손에 새겨진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보아도 되겠소? 

  성스러운 글자들에 이어 성 요셉의 성유 차례가 됐다. 잔느가 슈미즈를 펼쳐 보였다. 성물을 손에 들기 전에 추기경이 나이트캡을 경건하게 벗었다. 축복받은 물건을 냄새 맡고는 “참으로 좋은 향기로다!” 하고 외치면서 두 번 입맞춤했다. 그 뒤 슈미즈를 ‘존경과 경탄하는 자세로’ 접어서 침대 곁탁자 위에 놓인 성해함에 넣었다. 그건 성유에 있는 위광이 성해함에 든 물건들에도 전해지게끔 하려는 모양이었다. 

 

  리슐리외의 부탁을 받고 원장수녀가 (글쎄, 이미 천 번도 더 했을) 자신의 치료 이적(異跡)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릎을 꺾자 추기경이 다시 축복했다. 인터뷰가 끝났다. 다음날 예하께서 성지 참배 경비에 쓰라고 그녀에게 500 리브르를 보내 왔다. 

 

  이 면담에 대한 잔느의 기술을 읽다 보면 추기경이 오를레앙 공 가스통[각주:5]에게 보낸 서신들이 절로 떠오른다. 그 서신에서 그는 오를레앙 공이 마귀 들림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믿는다고 역설적으로 빈정댔다

  「루덩의 악령들이 전하 영혼에 변혁을 일으키는 바람에 전하께서 예전에 남용하던 신성 모독적인 언사를 이제 완전히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행복하오이다. 루덩의 악마들 덕분에 전하께서 받은 계시가 전하를 덕행으로 이끄는 오랜 여정에 곧 나서도록 도울 것이외다.」 

 

  루덩에 관한 언급이 하나 더 있다. ‘루덩의 악마들 중 하나’인 전령을 통해 왕제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리슐리외는 그 병이 ‘전하께서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전하께 동정을 표하며, 질병 탈출 방법으로 ‘조셉 신부의 엑소시즘’을 제안한다.    

 

  왕제에게 보낸 이 서신들은 그랑디에를 악마들과 결탁했다 하여 화형에 처한 사람이 쓴 것이면서도 오만한 태도만큼이나 반어적인 의혹으로 가득하다. 오만함은 자신의 사회적 상급자를 ‘깔아뭉개려는’ 다그침에서 드러나는데, 이런 부적절하고 유아적인 요소는 그가 평생 품고 있던 콤플렉스에서 비롯됐다

 

리슐리외 초상화

 

  그렇다면 의심쩍은 태도와 냉소적인 아이러니는 또 어떤가? 마법과 마귀 들림, 손바닥 글자 낙인과 축복받은 슈미즈에 대해 예하의 진정한 견해는 무엇이었나? 내 짐작에… 문외한들 속에서 기분 좋을 때 리슐리외는 루덩 스토리 전체가 완전한 협잡 아니면 자발적인 망상, 혹은 그 둘 다라고 간주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가 만약 악마를 믿는 척했다면, 그건 오로지 정치적 이유에서 나온 것이었을 뿐

 

 한데, 오호라, 그 과정을 대중은 그가 바라던 만큼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그렇게 미심쩍게 여기는 분위기가 커지자 마법과 싸운다는 명분하에 종교재판 식의 게슈타포를 만들어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음, 뭔가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는 것은 언제든 바람직한 자세야. 결과가 신통치 못했다 하더라도 이 실험은 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잖아. 사실,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화형에 처했지. 그러나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오믈렛을 만들 수 있으랴. 게다가 그 주임신부는 골칫거리였으니 제거하는 게 더 좋았어. 

  그러나 그 뒤 어깨 통증이 도지고 상처 때문에 난 누공도 견디기 힘든 통증을 안기면서 밤마다 잠을 깨웠다. 리슐리외가 의사들을 연신 불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에 있었던가! 

 

  그 시대 의술 효험은 주로 ‘자연의 치유력’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의 이 비참한 몸뚱이에서는 자연도 치유력을 잃은 듯 보였다. 리슐리외가 경악했다. 

  이게 혹여 초자연적 것에 기인한 병이라면 어떡하지? 

  성물들과 성상들을 가져오게 하고, 자신의 회복을 위해 다들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이 위대한 인물이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남몰래 별점도 치고, 미덥게 여기는 부적들도 만지작거리고, 어린 시절 늙은 유모한테 배운 주문도 웅얼거려 보았다

 

  병이 깊어졌을 때, 대저택 문들이 ‘추기경과 프랑스 육군원수들한테도’ 굳게 닫혔을 때, 그는 무엇이든 다 믿을 준비가 돼 있었다. 우르뱅 그랑디에가 무죄라는 사실뿐 아니라 이적을 행한다는 성 요셉의 성유조차도

 

  잔느 수녀한테 예하 접견은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후 기나긴 승승장구 여정의 일환일 뿐이었다. 루덩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안시로, 도처에서 열렬한 환영과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동했다. 대귀족들이 베푸는 환대가 그녀 허영심을 가득 가득 채워 주었다

  투르에서는 베르트랑 드쇼 대주교가 ‘극진한 친절과 호의’로 맞이했다. 그는 팔순의 노신사로서 도박에 쏟는 열정으로 유명했는데, 근자에는 오십이나 나이 어린 슈브레즈 부인에게 코믹한 사랑에 빠져 만인의 웃음가마리가 되었다. 슈브레즈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줄 것이야.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을 때 내 허벅지를 슬슬 꼬집도록 놔두기만 하면 돼.”  

 

  잔느의 얘기를 듣고 나서 대주교는 그녀 손바닥에 나타난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의사 위원회가 검사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 검사를 원장수녀가 완벽하게 통과했다. 그녀가 묵고 있는 수녀원 주변에 하루 사천 명씩 몰리던 군중이 단박에 칠천으로 늘었다. 

  대주교 면담이 한 번 더 있었는데, 이번엔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배석했다. 왕제가 투르에 온 까닭은 연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 루이즈 마벨라, 그녀는 나중에 그의 아들을 낳고 버림받은 뒤 결국 수녀가 됐다. 잔느의 기록을 보자. 

 

  「오를레앙 공께서는 객실 문까지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나한테 따스한 인사말을 건네고 악령을 기적처럼 퇴치했다고 축하한 뒤 덧붙였다. “나도 루덩에 가본 적이 있는데 당신 안에 들어앉은 악마들한테 아주 질겁했다오. 그 악마들 덕분에 난 욕하는 버릇을 고치고 앞으로는 더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서 루이즈가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가 투르를 떠나 앙부아즈로 갔다. 성스러운 이름자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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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 Fiacre (?-670) - 아일랜드에서 출생, 정원사들의 수호성인. 프랑스에서 더 잘 알려져. [본문으로]
  2. Jonathan Swift (1667-1745) - 아일랜드 출신 풍자 작가, 에세이스트, 시인, 성직자. <걸리버 여행기> [본문으로]</걸리버>
  3. Hubris 혹은 hybris - 지나친 자부심이나 오만. 현실감을 잃고 자신의 권한이나 업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를 가리킴. 특히 권좌에 있는 자가 그러할 때 자주 쓰인다. 휴브리스는 흔히 '정신박약 상태'와 연결된다. [본문으로]
  4. Nemesis - (그리스 신화에서) 복수의 여신. 인과응보, 필연적 결과, 천벌. [본문으로]
  5. Gaston duc d’Orleans (1608-1660) - 앙리 4세와 마리 메디치의 2남, 루이 13세의 아우.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강력한 왕위 계승 후보자. 다른 귀족들이나 모후와 함께 형인 루이 13세와 리슐리외에 맞서 에스파냐와 내통하는 등 몇 차례 반란을 시도했으나 다 무위에 그쳤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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