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그건 또 하나의 이적이었다. 자신을 지배한 것을 자신이 적어도 웬만큼은 지배했다는 점을 다시금 과시한 셈. 저번에는 의지를 발휘하여 레비아탄의 추방을 넌지시 암시하더니, 이번에는 분명 치명적인 급성 심신증 질환의 증세를 다 떨치겠다고 의지를 보이고는 그렇게 한 것이다.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갖춰 입고 채플로 내려가서 다른 자매들과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의사 팡통을 부르러 다시 사람을 보냈고, 달려온 위그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했다. 하나님 권능은 지상의 치료법들을 단연 능가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으며, 앞으로는 우리 치료도 거부하겠지.」 이건 원장수녀의 기록.
의사 팡통만 가여운 신세가 됐다! 로바르데몽이 루덩으로 돌아온 뒤 사법위원회에 소환됐고, 위원회는 그에게 잔느의 회복이 기적이라는 증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그가 거부했다. 거부하는 근거를 설명해 보라는 압력을 받자 죽을병에 걸렸다가 급작스레 건강해지는 경우는 흔히 자연스레 생길 수 있다면서 이렇게 답변했다.
“인체에는 체액이라는 물질이 있어서, 느낄 수 있게 배출되거나 피부 모공을 통해 느낄 수 없게 방출되거나, 아니면 생명에 중요한 신체 기관에서 덜 중요한 기관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때, 체액의 작용으로 생긴 불안한 증세는 치료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수 있지요. 이것은 체액이 자연에 의해 완화됨으로써 그렇습니다. 혹은 처음 해로운 체액을 그보다 덜 포악한 다른 체액이 대체할 때도 그렇습니다.”
팡통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체액은 용변을 보거나 구토하고 땀이며 피를 흘릴 때 배출됩니다. 이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요. 이런 식의 배출은 더운 체액, 특히 담즙이 많은 환자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데, 그들이 질병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은, 진작 썼지만 효능이 늦게 나타나는 약제 때문일 수 있습니다. 체액은 환자 몸에서 좀 빠져나오면서 병의 선행 원인뿐 아니라 복합적 원인도 함께 가지고 나오는 게 분명합니다. 아, 여기에 덧붙일 것이, 여러 체액은 균형 잡힌 움직임 등 자체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듯이, 몰리에르는 자신의 희곡에서 당대 의사들의 무지를 전혀 과장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적었을 뿐이다.
이틀이 지났다. 원장수녀가 문득 무슨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 나를 치료해준 성 요셉의 기름을 다 닦아내지 않았으니까 자국이 슈미즈에 아직 남아 있을 거야. 부원장이 보는 앞에서 수녀복을 걷어 올렸다.
「우리 둘은 놀라운 향내를 맡았다. 나는 슈미즈를 벗어서 허리춤을 잘라냈다. 슈미즈에는 신성한 향유가 다섯 방울 떨어져 있어, 거기서 천상의 향기가 풍겼다.」
<젠체하는 새침데기들> 1에서 고르기부스가 하녀한테 묻는다. “네 젊은 여주인들은 어디 있느냐?” 마로트가 대답한다. “자기네 방에 있지요.” “거기서 뭘 하는 거지?” “입술에 바르는 포마드를 만들어요.”
그 시대에는 패션을 아는 여인이라면 누구나 엘리자베스 아덴 2이 되어 화장품을 제 손으로 만들어야 했다. 얼굴 크림과 손 로션, 입술연지와 향수를 만드는 레시페는 비밀 병기처럼 소중히 간직되고 특별한 친구들 사이에서만 너그럽게 주고받았다.
잔느는 어려서 집에 있을 때나 수녀원에 들어온 뒤에나 뛰어난 화장품 제조자요 아마추어 약제사였다. 성 요셉의 성유는 신성한 것이 아니라 지상 어딘가에서 나온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거기엔 다들 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다섯 방울이 있었다. 원장수녀가 이렇게 적는다.
「이 축복받은 성유를 사람들이 얼마나 경건하게 믿으며 이 다섯 방울로써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이적을 역사하셨는지 참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잔느 수녀한테는 이제 자신의 신용을 위한 일급 경이로움이 두 가지나 됐다. 성흔이 나타나는 손, 향내 풍기는 슈미즈. 그 둘은 그녀가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영원한 증거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아직 모자랐다.
그녀가 루덩에 박혀 있다가는 자기 재능을 매장하는 꼴이라고 느꼈다. 물론 순례자들이 있고 대공들과 귀족들과 고위 성직자들이 도시로 찾아왔다.
그러나 루덩까지 올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국왕과 왕비를 생각해 봐! 또 예하께서는 어떻고! 게다가 공작이며 후작들, 프랑스의 장군들, 로마교황의 사절들, 전권대사며 특명대사들, 소르본 박사들, 참사회장들, 대수도원장들, 주교며 대주교들을 생각해 봐! 이 훌륭한 분들이 경이로운 일에 감탄하고, 하느님의 놀라운 호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인 사람을 직접 보고 말을 듣도록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한데 그런 소망을 제 입으로 드러낸다면, 그건 주제넘은 짓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얘기를 먼저 끄집어낸 것은 베게모트였다.
한번은 가장 격렬한 엑소시즘이 끝났을 때 레쎄 수사가 악마한테 물었다. 어째서 이다지도 고집스레 저항한 것이냐? 악귀가 대답했다. 원장수녀가 사보이 공국 안시에 있는 살레의 성 프랑수아 묘지로 성지 참배를 떠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몸뚱이에서 나가지 않겠어!
엑소시즘을 하고 또 했다. 저주를 억수로 받으면서도 베게모트가 그저 미소만 지었다. 게다가 이전의 최후통첩에다 다른 조건을 하나 덧붙이기까지 했다. 반드시 수렝 수사를 불러와야 해! 안 그러면 안시 순례조차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6월 중순 수렝이 다시 루덩에 나타났다. 그러나 성지 참배 출발은 옛 엑소시스트를 불러들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로 드러났다. 예수회 장군 비텔레스키는 제 휘하의 수도사가 수녀와 함께 프랑스를 돌아다닌다는 발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 푸아티에 주교 쪽에서도 자기네 수녀가 예수회 수사와 돌아다닌다는 발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비 문제도 있었다. 왕실 금고는 흔히 그렇듯이 텅 비었다. 수녀들에게 지급한 보조금이며 엑소시스트들에게 들인 급료로 마귀 들림 사건에 국왕은 이미 막대한 금액을 들였다. 그런 마당에 사보이로 유람을 떠난다니!
그런데도 베게모트는 끝까지 버텼다. 그가 선심 쓰듯 하면서 루덩을 떠나는 데 동의했지만, 그것 또한 잔느와 수렝이 나중에 안시로 성지 순례를 반드시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결국 제 뜻을 관철시키고야 말았다. 수렝과 잔느가 성 프랑수아의 묘지에서 만나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단, 거기까지는 각자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조건 하에. 두 사람이 그렇게 하기로 서약했고, 그 얼마 뒤 10월 15일 베게모트가 자취를 감췄다. 잔느가 마침내 자유로운 몸이 됐다. 두 주일 뒤 수렝이 보르도로 돌아갔다.
이듬해 봄 트랑킬 수사가 악령의 광란에 휘둘린 끝에 죽었다.
국고에서 급료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살아남은 엑소시스트들이 본래 저희 소속 거처로 다 돌아갔다. 그들이 떠나자 남아있던 악마들도 곧 하나씩 둘씩 사라졌다.
여섯 해 쉴 새 없이 벌이던 투쟁 끝에 전투 교회가 악을 상대로 한 싸움을 그만두었다.
그러자 교회의 적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신속하게 사라졌다. 길고 떠들썩했던 파티가 끝났다.
만약 엑소시스트들이 없었다면, 악마들도 없었으며, 그런 파티도 결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9편 끝)
관련 포스트: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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