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하지만 수렝이 본 것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못 봤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그가 다른 수도사들처럼 가혹한 엑소시즘을 공공연히 벌이는 대신 피후견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 보낸다는 것. 그녀를 가르쳐서 (그녀의 악마들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완성의 길로 이끌려는 시도가 동료들한테는 그저 허튼짓으로 보였을 뿐이다. 더욱이 수렝 본인도 악령에 사로잡혀서 종종 엑소시즘을 필요로 하는 마당에.
(5월에 왕제인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악마들에 대한 호기심을 풀려고 왔을 때, 잔느 수녀 몸에서 불시에 출격한 이사카론이 수렝에게 들러붙었다. 마귀 들린 여인이 정신 멀쩡하게 조용히 냉소 짓고 있는 동안 엑소시스트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서 뒹굴었다. 그런 장면에 왕제야 당연히 좋아했지만, 수렝에게 그 일은 불가사의한 섭리로 인해 겪어야 한 숱한 굴욕의 일부였다.)
동료들은 수렝의 의도나 활동의 순수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행위를 무분별하다 여겼으며, 그런 무분별로 인해 험담이 나도는 데 쓴 입맛을 다셨다. 이미 여름 막바지에 수도회 관구장은 수렝을 보르도로 소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럿 접하게 됐다.
원장수녀 역시 시련을 적잖이 맛봐야 했다. 그녀는 성처녀라는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고, 그 역할에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 기대했다. 한데 그렇기는커녕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자매들과 대화할 때 그들에게 들러붙은 악마들을 통해 내게 많은 고통을 내리셨어. 내 행동과 생활방식이 바뀐 것을 보고 대다수 수녀들이 반감을 크게 품은 거지. 그들을 악령들이 자꾸 부추겼다. 원장수녀를 저렇게 바꾼 것은 바로 악마들인데, 이제 그녀는 너희를 멸시하면서 망신 주려 들 것이야! 내가 자매들과 있을 때마다 악령들은 몇몇 자매를 꼬드겨 내 언행을 비웃고 놀리라고 충동질했다. 그건 나한테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었고.」
수녀들은 엑소시즘 중에 원장수녀를 가리켜 ‘신을 섬기는 악마’라 불렀다. 수렝을 제외하고 다른 엑소시스트들도 정말 그런 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성 요셉한테서 묵상기도의 은사를 받았다고 잔느가 다른 수녀들한테 단언해봤자 소용없었다. “하나님 권세로써 정관(靜觀)의 경지에 오르고, 그리하여 큰 계시를 얻었으며, 우리 주님이 특별하고 은밀하게 내 영혼에 와 닿았어요” 하고 겸손하게 설명해봤자 씨도 안 먹혔다.
거룩한 지혜의 이 살아 있는 샘물 앞에서 부복할 만도 했거늘 엑소시스트들은 이것이 마귀 들린 자가 흔히 겪는 망상이라고 폄하할 뿐이었다. 그런 몰이해와 냉혹함에 부닥치면 원장수녀가 주춤하여 광기에 빠지거나, 아니면 소중하고 선량하고 사람 잘 믿는 수렝 수사와 함께 다락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렝 수사조차 그녀한테는 고난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내렸다는 특별한 은혜 운운을 죄다 믿을 준비가 충분히 돼 있었다. 하지만 거룩함에 대한 그의 이상은 불편할 정도로 높고, 그가 평가하는 잔느 수녀 품성은 불편할 정도로 낮았다.
혹자가 자신을 교만하고 방탕한 사람이라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그런 불쾌한 진실을 다른 사람 입으로 듣는 것은, 차이가 아주 크다.
잔느의 흠결을 들추면서 수렝이 만족을 얻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그런 면을 바로잡아 주려고 늘 애썼을 뿐이다. 그는 원장수녀가 악마들에 사로잡혔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악마는 제물의 흠결을 이용하여 권세를 부린다는 점도 굳게 믿었다. 흠결을 제거하면 악령도 떨어질 터. 그렇기 때문에, 수렝의 말에 따르자면, ‘기수를 안장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말을 공격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말은 공격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왜냐하면 잔느 수녀가 ‘완성을 얻어 신에게 나아가기로’ 굳게 결심했다 할지라도, 스스로는 이미 성자라고 여기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그저 지각없는 (혹은 지나치게 의도적인) 코미디언으로 볼 때 가슴 아팠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신성함으로 들어서는 과정이 지극히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렝은 그녀가 체험하는 법열이나 무아지경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거기에 그녀가 우쭐거렸다. 암,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나 그보다 아직은 참회와 고행에 더 진지하게 대했다. 그래서 그녀가 주제넘게 굴 때마다 호되게 꾸짖었다. 그녀가 공개적인 참회나 수련수녀 신분으로 강등 같이 여봐란 듯한 속죄 장면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할 때, 수렝은 그런 것보다 작고 눈에 띄지 않지만 꾸준한 고행이 더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가끔 일어난 일이지만 그녀가 귀부인처럼 행세할 때면, 그는 그녀를 부엌데기처럼 대했다.
그런 취급에 감정이 격해지자 그녀가 레비아탄의 오만한 분노나 신에 대한 베게모트의 불경스러움, 발람의 외설스러운 농담 따위에서 도피처를 찾았다.
수렝은 이때까지 악마들이 아주 즐기던 엑소시즘에 의존하는 대신 사납게 들끓는 그들한테 스스로 채찍질하라고 명령했다. 자기계발을 위해서는 거리낌 없음과 진짜 갈망을 늘 지니고 있는 원장수녀가 여기에 동의하자 다른 악마들도 따라야 했다. 악마들이 말했다. “우리는 교회에 맞설 수 있고, 성직자들한테 덤빌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암캐의 고집에는 저항할 수 없어!”
악마들이 저들 특질에 따라 불평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도 고행용 채찍을 참아냈다. 레비아탄이 가장 세게 때리고, 그 다음이 베게모트였다. 그러나 발람과 특히 이사카론은 통증을 지독히 무서워했다. ‘정욕의 악마가 채찍을 맞으며 울부짖는 장면은 정말 볼만했다’고 수렝이 말한다. 채찍질은 실상 가벼운 것이었다. 하지만 비명이 귀청을 때리고 눈물이 폭포 같았다.
악마들은 정상 상태에 있는 잔느 수녀보다 아픔을 더 견디지 못했다. 한번은 레비아탄 때문에 야기된 심신증 증세를 떨치기 위해 그녀가 한 시간 내내 제 몸을 채찍으로 때렸다. 그러나 대개는 자기징벌 몇 분이면 악령들이 달아났고, 그러면 잔느 수녀가 완전한 경지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그건 고난의 행진이었다. 한데, 적어도 원장수녀가 보기에 완전한 경지에는 한 가지 중대한 흠이 있었다. 그건 수렝 신부가 쩍하면 강조하는 작은 고행처럼 사람들 이목을 끌지 못한다는 점. 잔느가 혼자 중얼거렸다.
넌 이미 정관의 경지에 올라섰어, 저 높은 곳과 사적으로 접하는 영광을 얻었어. 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사람들한테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없잖아!
자신이 받은 은혜를 사람들한테 말했지만, 그들 반응이라야 기껏해야 고개를 젓거나 어깨를 추썩이는 것일 뿐. 그녀가 축복받은 마더 테레사가 했을 법한 행동을 하고 다닐 때,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거나 화를 내며 그녀를 위선자라 불렀다. 더 설득력 있는 뭔가가, 사람들 눈길을 끌고 분명히 초자연적인 뭔가가 필요했다. 악마의 이적 따위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잔느 수녀가 마귀 들린 여인들의 여왕 노릇을 그만두고 생전에 성인 반열에 오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녀가 보인 성스러운 기적들 중 첫 번째가 1635년 2월에 일어났다.
하루는 이사카론이 털어놓는 얘기가 이랬다. 익명의 마법사 셋이 말이야, 둘은 루덩 출신이고 하나는 파리지앵인데, 축성된 면병 세 개를 가로챘어, 그리고 그걸 불태우려고 한단 말이야!
수렝이 즉각 이사카론에게 명했다. 네가 파리로 가서 그들이 매트리스 밑에 숨겨둔 면병을 가져 오거라!
이사카론이 사라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이사카론을 도우라고 발람한테 명령했지만 한사코 거부하며 수렝의 천사와 싸우다가 결국 복종하게 됐다. 다음날 저녁식사 후 벌이는 엑소시즘 때 면병 세 개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명령이었다.
지정된 시각에 발람과 이사카론이 수렝 앞에 나타나 잔느 몸 안에서 이리저리 나대며 저항하던 끝에 면병이 제단 위 벽감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고서 악마들은 원장수녀의 아주 작은 몸뚱이가 길게 늘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한껏 내뻗은 팔 끝에서 손이 벽감으로 들어가더니 꼼꼼하게 접힌 종이쪽을 들고 나왔는데, 거기에 면병 세 개가 싸여 있었다.
이 안쓰러울 정도로 수상쩍은 경이로움을 수렝은 중요한 징표로 간주했다. 그러나 잔느의 자서전에는 이 스토리가 그리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 남을 잘 믿는 영적 지도자를 멋지게 골려준 트릭을 부끄럽게 여긴 걸까? 아니면, 그 기적을 썩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은 건가? 이 사건에서 그녀가 주된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한테는 전적으로 본인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이적이 필요했고, 그 원하던 것을 그해 가을에 결국 얻었다.
수도회 내부 여론에 견디다 못해 아키텐 관구장이 10월 말경 수렝에게 보르도로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그 자리에는 좀 덜 기이한 엑소시스트를 지명했다. 이 소식이 루덩까지 알려지자 레비아탄은 기뻐 날뛰었지만 제 정신으로 돌아온 잔느 수녀는 되레 침울해졌다.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성 요셉에게 기도한 끝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서 이 오만한 악마를 물리치게 하리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그 뒤 사나흘 동안 자리보전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아져서 자기한테 엑소시즘을 시행해 달라고 청했다. 「그건 많은 귀빈들이 엑소시즘을 보러 교회에 와 있던 그날 (11월 5일) 생긴 일이었다. 난 여기서 신의 특별한 섭리를 보았다.」 (VIP들이 교회에 올 때면 늘 ‘특별한 섭리’가 나타났다. 바로 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악마들이 늘 가장 아슬아슬한 묘기를 부린 것이다.)
엑소시즘이 시작되고 금방 ‘레비아탄이 나타나서 성직자한테 승리를 거뒀노라고 떠벌렸다.’ 수렝이 성체에 경배하라고 이르면서 악령에게 역공을 가했다. 그러자 여느 때처럼 레비아탄이 울부짖으며 발광했다.
그때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허락하셨다.’ 레비아탄이 엑소시스트 발밑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혹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잔느 수녀가 그렇게 한 것. 악령은 수렝의 명예를 더럽히고자 간계를 꾸몄노라 시인하고는 용서를 빌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발작을 일으킨 뒤 원장수녀 몸에서 떠났다. 영원히.
이야말로 수렝의 승리이자 그의 방법론이 옳다는 증거였다. 이 장면에 감명 받은 다른 엑소시스트들이 수렝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고, 수도회 관구장이 수렝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했다.
잔느 수녀가 원하던 바를 얻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이 악마들을 웬만큼은 지배할 수 있다는 점도 과시했다. 악마들이 그녀를 미치광이처럼 날뛰게 만들 수 있지만,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악마들을 영원히 내쫓을 수도 있는 것.
레비아탄이 달아난 뒤 핏빛 십자가가 원장수녀 이마에 나타나더니 세 주일 내내 또렷한 형태를 유지했다. 이적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더 효과적인 뭔가가 뒤따라야 했다.
이제 발람이 뜻을 밝혔다. 난 원장수녀 몸에서 떠날 용의가 있는데, 떠나게 되면 기념으로 내 이름을 그녀 왼손에 적어 넣겠어, 그러면 죽을 때까지 손바닥에 남아 있을 거야. 하지만 못된 장난을 일삼는 스피릿의 서명을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예측을 잔느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흠, 악령한테 예를 들어 성 요셉의 이름자를 쓰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렝의 조언을 좇아 그녀가 성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아홉 번 연속 영교 과정에 들어섰다. 그 아흐레 기도를 막으려고 발람이 별의별 짓을 다했다. 그러나 육신에 병이 도지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히는 짓도 소용없었다. 원장수녀가 꿋꿋이 맞섰다.
언젠가 아침에 미사 드리기 직전 (못된 장난과 신성 모독의 악령들인) 발람과 베게모트가 그녀 두개골로 기어들어 어찌나 소란 피우고 혼란스럽게 하든지 그녀가 잘못인 줄 빤히 알면서도 식당으로 달려가고픈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거기서 ‘나는 음식에 게걸스레 달려들어 굶주린 장정 셋이 온종일 먹는 것보다 더 많이 먹어 치웠어.’ 그렇게 잔뜩 배를 채운 뒤 성체 배령은 불가능했다. 이것이 모든 구상을 위협하게 됐다.
비탄에 잠긴 잔느가 수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가 영대를 걸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악령이 다시 내 머리에 파고들더니 곧장 나로 하여금 산더미처럼 많은 양을 토하게 만들었다.’ 그런 뒤 발람이 이제 수녀의 위장이 텅 비었다고 장담하자, 수렝은 그녀가 성체를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런 곡절 끝에 나는 성 요셉을 향한 아흐레 기도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11월 29일 못된 장난과 사악한 웃음의 악마가 마침내 떨어져 나갔다. 이 사건 때 구경꾼들 중에 영국인 두 명이 있었다. 맨체스터 백작의 아들로서 얼마 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신개종자의 열정으로 기적을 믿는 월터 몬테규, 또 그의 젊은 친구이자 부하이며 나중에 극작가가 된 토마스 킬리그루.
며칠 뒤 킬리그루가 잉글랜드에 있는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루덩에서 본 것을 낱낱이 전달했다. 그는 그 경험이 ‘자신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1
방문 첫날 수녀원 교회에서 그는 귀신들린 수녀 네댓이 무릎 꿇고 나직이 기도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들 등 뒤에 엑소시스트가 한 명씩 서서 줄을 쥐고 있는데, 그 다른 끝이 각 수녀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그 줄마다 작은 십자가들이 매달려 있어서 악마들의 작은 광란을 통제하는 개줄 역할을 했다. 그렇긴 해도 아직은 모든 게 평온하고 차분했으며 ‘나는 무릎 꿇은 것 외에 특기할 만한 장면은 전혀 못 봤다.’
그러나 삼십 분 뒤 개중에 두 수녀가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하나는 수도사 목에 들러붙고, 다른 하나는 혀를 내밀고 제 엑소시스트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입맞춤하려고 들었다. 그러는 동안 으르렁대는 소리가 숙사와 교회를 가로막은 격자 창살을 통해 사납게 들려 왔다.
그 다음에 젊은 킬리그루를 월터 몬테규가 불러 마귀 들린 수녀들이 과시하는 독심술을 직접 경험하라고 했다. 악마들이 개종자의 생각은 읽을 수 있지만, 킬리그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아맞힐 수 없었다. 독심술을 자랑하는 중에 악마들은 칼뱅을 위해 기도하고 로마가톨릭교회를 저주했다. 그러다가 악귀 하나가 문득 사라졌기에 구경꾼들이 그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수녀가 응답하는데 어찌나 추잡하든지, 그 답변을 <유럽 매거진> 편집인이 지면에 싣지 못할 정도였다.
이어서 예쁘고 어린 아그네스 수녀를 대상으로 엑소시즘이 시작됐다. 킬리그루가 이 장면을 어떻게 묘사했는지는 이미 앞의 장에서 얘기했다. 이 아름다운 피조물을 다부진 농민 둘이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엑소시스트가 가슴에 이어 하얀 목을 발로 밟는 광경은 젊은 신사의 가슴을 공포와 혐오로 채웠다.
다음날 그런 장면이 모조리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엔 퍼포먼스가 흥미는 더 일으키고 비위는 덜 거스르는 식으로 끝났다. 킬리그루가 이렇게 쓴다.
「기도가 끝나고 그녀(원장수녀)가 탁발수사(수렝) 쪽으로 돌아서자 그가 그녀 목에 작은 십자가들이 달린 밧줄을 걸고 세 번 돌려 묶었다. 그녀는 내내 무릎 꿇고 앉아서 줄이 바짝 조일 때까지 기도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일어나서는 묵주 알 세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제단에 경의를 표한 뒤 장의자로 갔다. 그건 엑소시즘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채플 안에는 그런 것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정신분석학에서 쓰는 소파의 이 원형이 아직도 현존할까? 궁금하다.)
「이 장의자 머리는 제단 쪽을 향해 있었다. 그녀가 어찌나 겸허한 자세로 다가갔는지, 수도사들의 기도가 없이 그 참을성 하나만으로도 악마를 내쫓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장의자에 와서 눕더니 제 몸을 수도사가 로프 두 개로 의자와 함께 묶도록 거들었다. 허리 부위를 묶고, 허벅지며 다리를 또 묶었다. 그렇게 묶인 상태에서 성체가 담긴 상자를 들고 있는 성직자를 보자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치 고문을 앞둔 사람처럼 온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만이 내보인 특별한 겸허함과 참을성이 아니었다. 다른 수녀들도 그런 경우에 다 그렇게 했으니까. 엑소시즘이 진행됐을 때, 마귀 들린 다른 수녀가 다른 수도사를 부르더니 장의자에 누워서 단단히 묶어 달라고 했다.
그들이 본래 모습일 때 얼마나 얌전하게 제단으로 나아가는지, 수녀원에서 얼마나 조신하게 걸어 다니는지를 보면 야릇한 마음이 든다. 그들의 표정과 얼굴은 신앙에 삶을 바친 처녀들답게 정숙하다. 이 원장수녀도 엑소시즘을 시작할 때는 차분하게 누워 있었다. 잠자는 듯이…」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작하자 일이 분 뒤 발람이 나타났다. 사지를 뒤틀고 경련을 일으키고 하느님을 거세게 모욕하는 말이 나오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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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 이 서신은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1803년 2월 호 <유럽 매거진>에 실렸다. - 저자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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