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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6편 4

by Chimin303 2019.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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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Biography

 


 

  1634년 봄과 여름 내내 펼쳐진 엑소시즘의 주목적은 수녀들한테서 악령을 내쫓는 게 아니라 그랑디에의 범죄를 입증할 증거 확보였다. 조준 방향은 주임신부가 정말로 마법사이며 수녀들을 미혹에 빠뜨렸음을 입증하는 것. 

  사탄이 직접 증언한다면 더 바랄 게 없지.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사탄은 거짓의 아버지, 그러니까 사탄의 증언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잖아. 

 

  논란이 일자 로바르데몽과 엑소시스트들과 푸아티에 주교 등은 “로마교회 성직자들이 정식으로 강요하면 악마들조차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고 단정하고 나섰다. 달리 말하자면, 히스테리를 부리는 수녀가 엑소시스트의 부추김으로 맹세코 확언하는 것이라면 이제 무엇이든 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신성한 계시가 된 것이다. 

  이 새로운 독트린은 교회 재판관들에게 정말 편리했다. 그러나 거기엔 한 가지 심각한 흠이 있었다. 그 자체가 명백히 이단적인 것이었으니까

 

  이미 1610년 정통한 신학자 위원회는 ‘악마의 증언’을 수용해도 좋은지 여부를 논의한 끝에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파리 학부의 박사들로서 아래 서명한 우리는 위원회에 위임된 어떤 문제들을 검토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즉, 악마들의 비난은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 더욱이 어떤 사람의 과오를 찾아내기 위해, 혹은 그가 마법사인지 결정하기 위해 엑소시즘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도 금물이다

  나아가 우리는 이런 점에도 의견을 모았다. 즉, 앞서 말한 엑소시즘이 영성체를 모신 자리에서 벌어지고 하나님 이름으로 언급된 서약을 수반했다 할지라도 (이런 의식 자체를 우리는 용인하지 않는데), 그 어떤 경우에도 악마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악마는 늘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니까.」 

 

  이 문건에는 이런 언급도 있다. 악마는 인간의 공공연한 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영혼에 위해를 가할 수만 있다면 엑소시즘의 여하한 격통도 견딜 준비가 돼 있다. 만약 악마의 증언을 인정한다면 가장 도덕적인 사람들이 큰 위험에 처할 것이다. 왜냐면 사탄은 바로 그런 이들을 상대로 가장 포악하게 날뛰니까. 

 

  「그렇기 때문에 성 토마스도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각주:1]의 권위를 인용하여 악마는 진실을 말할 때조차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는가. 마귀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으로써 진실을 말할 때조차, 그 입을 다물라고 명령한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우리는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증거가 없다면 악마들이 비난하는 사람을 고소해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가 보기에 프랑스에서는 이것이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런 공술을 판사들이 인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신학자 위원회의 결정 이후 24년이 지나서 로바르데몽과 그의 동료들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왜냐하면 인간애와 분별력이라는 기독교 정통 관점을 엑소시스트들은 지극히 어리석고 극히 위험한 이단으로 대체했으며, 그런 이단을 리슐리외의 에이전트들이 열심히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한때 성 베드로 교회의 부제로 그랑디에 밑에서 봉직한 성직자이자 천문학자인 이스마엘 부요는 그런 새 교리를 ‘불경하고 잘못되고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것’이라 여겼다. 왜냐면 그런 독트린은 「기독교인을 우상숭배자로 바꾸고, 기독교 근간을 허물고, 중상비방의 문을 열고, 악마가 몰록이 아니라 극악무도하고 악의에 찬 도그마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제물로 삼게끔 할 테니까.」 

 

  그러나 이 ‘극악무도하고 악의에 찬 교리’를 리슐리외가 전적으로 용인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사실을 로바르데몽이, 또 추기경의 주치의이자 <루덩의 데몬 마니아>의 작자인 메스나르디에가, 기록하고 있다. 

  공인되고 때론 사주되기도 했으며 늘 정중하게 경청된 ‘악마의 공술들’은 로바르데몽이 필요로 한 만큼 빠르게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보니 그는 그랑디에가 그저 마법사일 뿐 아니라 또한 ‘옛 종교’의 고위 신관이었다고 몰아치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런 바람이 알려지자 ‘마귀 들린 여인’ 하나가 (카르멜회 엑소시스트한테서 정식으로 강요당한 악마의 입을 통해서) 당장에 고백한 바가 이러했다. 즉, 그녀가 주임신부한테 몸을 팔았고, 주임신부가 감사의 보답으로 그녀를 사배스에 데려가 악마의 궁에서 공주로 만들어 주겠다고 제의했다고… 그랑디에는 그 처녀를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사탄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 말을 의심함이 곧 신성 모독이 됐으리라

 

악마의 표식을 찾기 위해 그랑디에의 몸을 거의 해부하다시피 하다

 

  잘 알려지다시피, 어떤 마녀에겐 여분의 젖꼭지가 있고 또 어떤 마녀에겐 바늘로 찔러도 통증을 못 느끼며 피도 나오지 않는 무감각한 부위가 하나 이상 있다. 그건 악마의 손끝이 건드려서 생긴 것. 한데 조사해 보니 그랑디에한테는 여분의 젖꼭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악마가 제 소유라고 표시한 무감각한 부위나 반점을 그의 몸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뜻. 그런 반점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가?

 

  4월 26일 엑소시즘 중에 원장수녀가 발작 상태에서 그 답을 주었다. 그랑디에한테 반점이 모두 다섯 개 있는데, 하나는 죄인한테 낙인을 찍는 어깨 부위에, 두 개는 항문 위쪽 둔부에, 또 양쪽 고환에 한 개씩 있어! 

 

  그 진술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외과의 만누리가 검사에 나섰는데, 그건 거의 소규모 해부나 다를 바 없었다. 약제사 둘과 의사 몇 명이 입회한 가운데 그랑디에를 발가벗기고 온 몸의 털을 다 깎고 두 눈을 가렸다. 그 뒤 만누리가 길고 날카로운 외과용 탐침을 뼈가 닿는 데까지 찔러 넣었다

  이 무지하며 거드름 피우는 멍청이를 주임신부가 십년 전 트렌캉 검찰관의 객실에서 많이 비웃었다. 이 멍청이가 이제 복수에 나섰다. 통증이 어찌나 심한지 그랑디에가 비명을 내지르는데, 그 소리가 벽돌 쌓아 막은 창문을 뚫고 호기심에 몰려드는 사람들한테도 들렸다. 

 

  그랑디에 기소장의 공식 요약을 보면, 그런 무감각한 부위들을 찾아내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에 원장수녀가 말한 다섯 개 중에서 두 개만 겨우 발견했다. 그러나 로바르데몽의 목적에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곁들여 말하자면, 만누리가 쓴 방법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몸부림칠 정도의 찌르기를 스무 번쯤 한 뒤 탐침을 몰래 돌려서 뭉툭한 끝으로 주임신부의 살을 찌른 것이다. 놀랍게도 그때는 통증이 없었다. 그건 곧 ‘악마의 반점’이 거기 있다는 뜻. 만약 시간만 충분했다면 만누리는 분명히 악마의 마크를 다 찾아냈을 것이다. 

  만누리한테는 불행하게도, 약제사 한 사람이 (투르에서 온, 신뢰하기 힘든 이방인이) 이 실험을 검증하라고 로바르데몽이 끌어들인 시골 의사들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덜했다. 그 약제사는 만누리가 쓰는 속임수를 알아채고 항의했다. 하지만 헛수고. 그의 소수 의견은 무시되고 말았다. 그 대신 만누리와 다른 참관자들은 공조 체제를 흐뭇하게 과시했다. 이제 로바르데몽은 그랑디에와 사탄의 연합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라고 공표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대부분은 과학으로 확증할 필요도 없었다. 가설에 따라 피고가 악마와 관계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랑디에와 그를 고발한 수녀들이 대면하게 됐을 때 그들은 악마들 입에서 나오는 비명을 내지르며 미나드[각주:2] 패거리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 

  우리한테 마법을 건 게 바로 이자야! 지난 넉 달 내내 밤마다 수녀원을 넘나들며 우리를 꼬드기면서 음란한 감언이설을 속삭인 게 바로 이자란 말이야!! 

  귀에 들리는 넋두리와 원성을 로바르데몽과 서기들이 죄다 성실하게 기록했다. 프로토콜이 적절하게 작성돼 서명이 얹히고, 그 사본들이 공문서관에 보관됐다. 사실상 신학적으로, 또 이제 법적으로도, 죄업이 다 입증됐다

 

악마 계약서
악마 계약서

 

  주임신부가 유죄라는 사실을 더욱 굳힐 요량으로 엑소시스트들이 악마 계약의 물증을 수색했는데, 수녀들 독실에서 징표 몇 가지가 불가사의하게 나타났다. 어떤 것은 (더 놀랍게도) 발작하는 중에 튀어나온 구토물이었다. 이 징표들 때문에 수녀들이 마법에 걸렸고 지금도 그런 상태에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구겨진 종잇장이 나왔는데, 거기엔 핏방울이 세 군데 찍히고 오렌지 씨 여덟 개가 들어 있었다. 여기에 지푸라기 다섯 개가 추가됐다. 또 석탄재와 지렁이 몇 마리, 머리카락 몇 가닥, 못 몇 개가 든 꾸러미가 추가됐다. 

 

  그러나 평소처럼 다른 수녀들을 압도하며 가장 확실한 물증을 내놓은 장본인은 천사들의 수녀 잔느였다. 6월 17일 레비아탄이 날뛰는 중에 그녀가 어린애 심장 조각을 입에서 내뱉었다. 그것은, 그녀의 악마에 따르면, 1631년 오를레앙 인근 사배스에서 제물로 쓰인 어린애 것이라 했다. 그것으로도 성이 안 찬 잔느가 축복받은 면병의 재와, 그랑디에의 피와 정액을 악마 계약의 물증이라고 내놓았다

 

  새로운 교리 때문에 곤혹스러운 순간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아침 (영성체 앞에서 정식으로 강요당한) 악마가 로바르데몽 남작은 오쟁이 진 남편이라고 한마디 던졌다. 이 발언을 서기가 성실하게 기록했는데, 그 엑소시즘 때 자리에 없었던 남작이 나중에 기록을 읽어보지 않고 서명함으로써 조서를 담당한 기관들이 남작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 스토리가 알려지자 라블레 식의 웃음과 농담에 끝이 없었다. 그건 물론 대단히 화나는 일이지만 심각한 후과는 없었다. 명예를 훼손하는 서류들이야 언제든 파기할 수 있고, 멍청한 서기들은 내쫓으면 되고, 주제넘은 악마들은 단단히 혼을 내거나 엉덩이를 호되게 갈김으로써 본연의 의무를 깨닫게 했다. 흠, 알고 보니, 대체로 새 교리는 불리한 점보다 이로운 점이 훨씬 더 많군! 

 

  악마들을 심문할 때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지를 로바르데몽이 재빨리 알아차렸다. 즉, (영성체를 앞에 두고 정식으로 강요된, 즉 거짓말을 못하는 악마의 입을 통해)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추기경을 멋지게 추켜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1634년 5월 20일 엑소시즘 시행 기록을 보자. (이건 전부 로바르데몽이 직접 적은 것) 

 

  「질문: 프랑스의 수호자인, 위대한 추기경에 대해 뭐라 말하겠느냐? 

  악마가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하며 대답: 그이는 내 모든 친구들한테는 천벌이야. 

  질문: 네 친구들이란 누구냐? 

  대답: 이단자들이지. 

  질문: 이 위대한 분은 또 어떤 면에서 걸출하신가? 

  대답: 인민의 지복을 위해 애쓰고, 하느님께서 내리신 지혜로운 통치력을 발휘하며, 또한 기독교 세계에 평화를 보전하려 갈망하고, 정성을 다해 폐하를 보필한다는 점에서 그렇지.」 

 

  이야말론 아주 근사한 진상물이었다. 그것도 성식서원에 묶여 진실만 말할 수 있는 지옥 생물들 입에서 나왔으니! 수녀들은 광란 상태에서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자기네 빵 어느 쪽에 버터가 발려 있는지는 똑똑히 기억했다

  <루덩의 마귀 들린 여인들 내막>(파리, 1874)이라는 책의 저자인 의사 가브리엘 레게는 이렇게 지적한다. 「악마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처녀 마리아를 향해서는 늘 불손한 말을 퍼부었지만, 루이 13세를 두고는, 특히 추기경 예하를 두고는 못된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하늘을 상대로야 무슨 허튼소리든 내키는 대로 뿜어대면서도 벌 받지 않을 수 있음을 수녀들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추기경 예하께 무례하게 군다면… 

  자, 이제 그랑디에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보도록 하자. 

 (6편 끝) 

(7편 1로 이어짐)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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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hannes Chrysostomos (347?-407) -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초기의 중요한 교부. 설교와 퍼블릭 스피킹에서 달변, 교회와 정치 리더들의 권력 남용 규탄, 금욕적 감성 등으로 유명했다. 사후에 그리스어 별명 크리소스토모스가 붙었다. ‘구변 좋은’이란 뜻. 영어로는 Chrysostom. [본문으로]
  2. maenad -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의 (로마 신화에서 바쿠스의) 추종자들. 문자 그대로, 광란에 빠진 여인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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