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루덩의 악마들 5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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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의자에 앉아 생각하는 모습

 


 

  루덩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수녀들이 집단으로 악령에 사로잡혔다는 주장과 마귀 들림의 단초가 그랑디에의 마법이라는 주장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다음에서 나는 그의 죄목을 주로 다루고, 마귀 들림 문제를 그 다음 장에서 검토하려고 한다. 

 

  초기 엑소시스트 팀의 멤버였던 트랑킬 신부는 1634년 <루덩 수녀들 마귀 들림과 우르뱅 그랑디에 재판에서 관찰된 공정한 절차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자를 냈다. 제목 자체가 거짓이다. 왜냐하면 이 책자에 진실한 얘기는 전혀 없고, 재판을 의심쩍게 여기며 인정하지 않으려는 여론을 상대로 엑소시스트들과 판사들을 그럴 듯하지만 서툴게 옹호할 뿐이기에 그렇다. 

  1634년 대다수 교양인들은 수녀들이 마귀 들렸다는 얘기를 썩 믿지 않고 그랑디에의 무죄를 확신하면서 아주 불공정한 재판 과정에 충격 받고 분개했음이 분명하다. 트랑킬 신부는 작은 설교 같은 달변으로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인쇄에 들어갔으나,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실, 국왕과 왕비는 마법이 있다고 확고하게 믿는 이들이었지만 대다수 궁정 신하들은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엑소시즘을 보러 온 사람들 중 거의 모든 교양인은 수녀들이 정말로 악마에 사로잡혔다고 믿지 않았다. 마귀 들림이 진짜가 아니라면 그랑디에도 당연히 유죄일 수 없었다

 

  현장을 찾은 의사들 대다수는 수녀들의 질환에서 초자연적인 것은 전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떠났다. 질 메나주, 테오프라스트 르노도, 이스마엘 부요 등을 비롯해 그랑디에 사후 이 사건에 관해 글을 쓴 다른 문필가들도 그의 무죄를 용감하게 주장했다.[각주:1] 

   그러나 수많은 무지한 가톨릭교도들은 마법의 실체를 믿는 쪽에 속했다. (무지한 프로테스탄트들이 로마가톨릭 진영에서 벌어진 이 사건에 지극히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보였음은 당연하다.) 엑소시스트들이 모두 그랑디에의 유죄와 수녀들의 마귀 들림을 믿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그들은 그랑디에를 장작불에 올려놓기 위해 미뇽 같은 사람의 증거 조작도 가로막지 않았다. (심령주의의 내력을 살펴보면 사기 행위, 특히 종교를 빙자한 사기 행위가 신앙과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된다.) 

 

  대다수 성직자들이 재판에 어떻게 대했는지,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활동 성격상 역시 엑소시즘을 수행해야 하는 수도사들은 아마도 미뇽과 바레 편을 들었으리라. 그러나 세속 성직자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저희 동료가 악마한테 영혼을 팔고 열일곱 수녀들에게 마법을 걸었다고 믿고, 그렇게 설교했을까? 

  고위 성직자 계층에서 의견이 날카롭게 갈렸음은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다. 보르도 대주교는 그랑디에가 무죄이며 수녀들이 미뇽의 교묘한 행위와 자궁광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확신했다. 반면에 푸아티에 주교는 수녀들이 정말 마귀에 들렸으며 그랑디에가 마법사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다면 왕국의 으뜸 성직자요 추기경 공작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나중에 우리가 보게 되듯이, 리슐리외는 어떤 상황에서는 마법의 실체를 완전히 의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마법사를 화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둘 다 위선을 떤 것이 분명하지만 그 상반된 태도 양쪽에 다 확신이 있었다는 점도 아주 확실하다. 

 

  마법이란 흑마법이든 백마법이든 (신성하지는 못해도) 초자연적인 수단으로써 자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과 과학의 결합이다. 모든 마녀들은 마법과 악령의 힘을 이용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이탈리아에서 La Vecchia Religione[각주:2]라 부르는 것을 지지하기도 했다. 

 

마법을 시행하는 여인들

 

  마거릿 앨리스 머레이[각주:3]는 뛰어난 연구서인 <서구의 마녀 숭배> 머리말에서 이렇게 적는다.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효험 발휘하는 마법’과 ‘의식 절차가 있는 마법’을 분명히 구분한다. 효험 발휘하는 마법이라 함은 선이나 악, 살인이나 치료를 의도하여 전문적인 마녀나 기독교인이 사용하는 모든 부적과 주문을 말한다. 그런 부적과 주문들은 모든 민족과 모든 나라에서 흔하며, 모든 종교의 성직자와 신도들이 관행적으로 쓰고 있다. 이는 인류 보편적 유산의 일부인 것을… 

 

  의식 절차가 있는 마법 혹은 내가 부르는 식으로 ‘다이애나 숭배’로 말하자면, 이건 중세 후반에 ‘마녀’로 알려진 사람들의 의식이요 종교적 믿음을 포함한다. 크리스트교 이면에 공동체의 많은 계층이 참여한 예배 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이 여러 증거로 입증된다. 많은 계층이라고 하지만 주로 더 무지하고 문맹이며 유럽 국가들 중 인구 적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것은 기독교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서구의 가장 오래 된 종교로 보인다.」 

 

  서구가 ‘기독교로 전환된’ 이래 천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흐른, 그 은총의 1632년에도 고대의 다산 종교는 뼛속까지 ‘반정부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상당히 손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엔 나름대로 신관들과 신앙인들과 영웅적 순교자들이 있었고 교회 조직도 갖추었다. 그것은 코튼 매더[각주:4]의 말대로라면 조합교회의 조직과 똑같았다. 

  고대 신앙이 그때까지 잔존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것은 지금의 과테말라 토착민들이 알바라도[각주:5]가 발을 내딛은 이후 그들 첫 세대에 비해 더 두드러지게 가톨릭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된다. 어쩌면 칠팔백 년 뒤 중앙아메리카의 종교적 상황은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소수의 고대 종교 신봉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한 17세기 유럽과 비슷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 주 ☞ 몇몇 지역에서는 주민 대다수가 다이애나를 숭배하고 추종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니콜 레미, 앙리 보게, 피에르 랑크르 등이 각각 17세기 초 로렌, 쥐라, 바스크 지역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각주:6] 

  그들 책을 보면, 그 외진 지역들에서 많은 사람이 적어도 웬만큼은 옛 종교를 지켰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안전을 기하기 위해 낮에는 기독교 신을, 밤에는 악마를 숭배했다. 바스크족의 많은 성직자들은 백미사와 흑미사, 양쪽 미사를 다 올렸다

  피에르 랑크르는 이 괴짜 성직자들 중 셋을 장작불에 태워 죽이고, 사형수 독방에서 탈출한 다섯 명을 놓쳤으며,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의식 절차가 있는 마법의 주된 식전은 이른바 Sabbath였다. 이 단어의 기원은 불확실한데 히브리어의 동음이의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배스는 일 년에 네 번 열렸다. 2월 2일 성촉제, 5월 1일 예수 십자가 주간, 8월 1일 수확제, 10월 31일 핼러윈에. 이건 다 아주 성대한 페스티벌이었다. 독실한 신자들이 아주 먼 지역에서 종종 수백 명씩 참석하곤 했다. 

  아직 고대 종교를 믿는 마을들에서는 작은 회중을 위해 사배스 개최 중간 중간에 매주 ‘에스뱃 Esbat’을 베풀었다. 모든 떠들썩한 사배스에는 악마가 필히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것은 전통에 따라 다이애나 컬트의 두 얼굴 가진 신으로 분장한 남자 모습이었다

 

  숭배자들이 그의 ‘뒤쪽 얼굴’에, 즉 동물 꼬리 아래 악마 둔부에 달린 마스크에 입을 맞춤으로써 이 신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고 나서 적어도 몇몇 여성 신자들을 위하여 신과의 교접 의식이 벌어졌는데, 이때 신은 뼈나 쇠붙이로 된 인공 음경으로 치장했다. 

 

  이어서 (사배스는 야외 신령한 나무나 바위 곁에서 열렸으니까) 피크닉이 시작되고 춤판이 벌어지고, 마지막으로 상대를 가리지 않는 섹스 향연이 열렸다. 이 향연은 본래 원시 사냥꾼들과 가축 사육자들이 생계 의존하던 동물들의 다산을 증진하기 위한 주술적 기능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배스 Sabbath 다이애나 컬트

 

  사배스의 분위기는 서로 태평하게 뒤섞여 어울리며 원시적인 흥겨움과 분방함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축제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고 고문당하면서도, 화형 기둥에 묶여서도, 자기네한테 큰 행복을 안긴 종교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다

 

  교회와 세속 치안판사들이 보기에 악마 파티 회원은 마법이란 범죄를 더 중하게 저지른 자들이었다. 사배스에 열심히 참석한 마녀는 호젓하게 제 일을 행한 마녀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로 간주됐다. 마녀 집회에 참석함은 기독교보다 다이애나 컬트를 더 중시한다고 대놓고 밝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마녀들과 마법사들은 은밀한 형제단 같은 것을 조직했고, 이 조직을 야심에 불탄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제임스 보스웰이 그런 목적으로 스코틀랜드의 마녀 집회를 이용했음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외국과 브리튼의 가톨릭교도들이 여왕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마녀들과 마법사들을 고용했다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녀의 고문단이 확신한 것은 그 확신이 옳고 그름을 떠나 더더욱 분명한 사실이다. 장 보댕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마법사들이 일종의 마피아 조직을 구성해 모든 도시와 마을 각계각층에 은밀하게 회원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한층 더 혐오스러운 죄를 씌우려고 그랑디에는 효력 발휘하는 마법뿐 아니라 사배스 의식에도 참석했으며 ‘악마 교회’의 멤버였다고 재판에 고발됐다

  세례를 당당하게 포기한 예수회 제자, 악마에게 경의 표하기 위해 제단을 황급히 물러난 성직자, 요술쟁이들과 지그 춤을 추며 마녀들과 염소들과 인큐버스들과 어울려 건초더미에서 뒹구는 진지한 신학자그런 형상이 만들어 낸 스펙터클은 독실한 가톨릭교도들을 오싹하게 만들고, 속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프로테스탄트들에게 기쁨을 안기게끔 잘 계산된 것이었다

 

(<루덩의 악마들> 5편 끝)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4편 2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Gilles Ménage (1613-1692) - 프랑스의 인문학자, 법률가. *Theophraste Renaudot (1586-1653) - 루덩에서 태어났고, 스케볼라 생트마르트의 친구였다. 의사, 저널리스트. 1631년 프랑스 최초의 뉴스페이퍼인 주간지 창간. '프랑스 저널리즘의 아버지'.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 가운데 그의 이름을 딴 것이 있다. *Bouillaud (1605-1694) - 루덩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사서, 수학자, 천문학자, 성직자. (이 책에 나오는 그랑디에 신부의 부제로 일했다.) [본문으로]
  2. (이탈리아의) 옛 종교. 기독교 이전 유럽의 신비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고대 이탈리아의 마녀 종파. 그리스도교가 퍼지면서 악마로 취급되고 배척됐다. 1980년대 이래 그리마씨에 의해 퍼진 Stregheria는 마법을 뜻하는 고대 이탈리아어이며, 바로 이 옛 종교의 회복 움직임. [본문으로]
  3. Margaret Murray (1863-1963) - 영국의 이집트학자, 인류학자, 고고학자, 문화학자, 저술가. 이집트 미라를 공개적으로 풀어 헤친 첫 여성. 또한 마녀 숭배 가설을 널리 전파. 1921년 출간된 는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본문으로]
  4. Cotton Mather (1663-1728) -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설교가, 저술가, 에세이스트. 신비적 요소와 근대 과학에 동시에 눈길 돌려서, 마녀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천연두 예방 접종을 장려. 마녀 재판에서 (그랑디에의 경우처럼) '유령 증거'가 채택되지 못하도록 힘썼다. [본문으로]
  5. Pedro de Alvarado (1495–1541) - 에스파냐의 정복자, 과테말라 통치자. [본문으로]
  6. *앙리 보게 (1550-1619) - 당대 유명한 재판관. 마법으로 기소된 사람들을 모두 처형했다. <마녀 처형에 관한 법률 지침서> *Pierre de Lancre (1553–1631) - 보르도의 마녀 재판관. 바스크 지방의 프랑스 역내에서 마법 관행을 근절하라는 앙리 4세의 명을 받고 1609년 라브르 지역에서 넉 달 동안 수십 명을 사형했다. 그 자신의 허풍에 따르면 6백 명 넘는 남녀를 고문하고 화형에 처했다고도. 사배스, 수화광(獸化狂), 사배스 중에 성관계 등을 분석하며 마법에 관해 많은 책을 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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