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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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르술라회 수녀들은 악마들에 들씌웠고 그랑디에는 마법을 부린다고 기소됐다. 그 먼 시대의 기록을 읽으면서 우리는 미소를 억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실소를 날리거나 홍소를 터뜨리기 전에 17세기 전반에 그런 기소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그 시대에 마법은 어디서나 형사 범죄로 간주된 만큼 이 문제의 법적 측면부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 말기에서 제임스 1세 치세 어간에 가장 위대한 잉글랜드 법률가인 에드워드 코크1 경은 마법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조언을 얻거나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 악마와 협의하는 자.’
1563년 법령에 따르면 마법에는 마법사나 마녀가 누군가의 생명을 해하려 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에만 사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제임스 1세 통치 첫해에 더 가혹한 법이 채택됐다. 1603년 이후에는 초자연적 수단에 의한 살인만이 아니라 그저 마녀라고 증명되기만 해도 중대한 범죄가 됐다.
마녀라고 고발된 사람의 행위는 점치는 경우처럼 해가 없거나, 나아가 주문이나 부적으로 치유하는 경우처럼 외려 이로울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악마와 협의하여’ 혹은 요술이라는 악마적인 방법으로 직접 수행됐다고 증명만 되면 그 행위는 범죄이며 그런 행위로 고발된 자는 사형을 면치 못했다. 이것이 잉글랜드의, 즉 프로테스탄트의, 법이요 판결이었다. 그러나 그건 가톨릭 국가들의 교회법이며 관습과도 완전히 일치했다.
도미니크회 신학자들이요 (가톨릭 못지않게 루터파와 칼뱅파에서도 거의 2백 년 동안 모든 마녀 사냥꾼들의 교과서요 휴대품이었던) <마녀들의 해머>를 쓴 크래머와 슈프렝거는 마녀와 점쟁이, 주술사들이 사형 당해 마땅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권위 있는 인물들을 많이 인용한다.2
「왜냐하면 마법은 하나님 권세에 맞서는 대역죄이니까. 그런 고로 자백을 받기 위해 그들을 (고발된 자들을) 고문해야 한다. 마법으로 기소된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고문할 수 있다. 그리고 유죄로 드러난 자는 범죄를 자인한다 해도 그 악행에 합당한 벌을 받고 고통을 맛보게끔 법에 규정된 모든 고문을 맛봐야 한다.」
이런 법들의 이면에는 악마가 인간사에 개입하여 불화의 씨앗을 뿌린다는 먼 옛날의 전통과, 무엇보다도 악마가 현세의 지배자요 하나님과 하나님 자녀들의 옹추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악마는 본연의 수단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인간을 방편으로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인간과 피조물에게 해를 끼치는 데 악마가 직접 나서기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마녀 이용을 선호하는지 묻는다면, 여기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악마는 마녀들을 앞세워 위해 가하기를 훨씬 더 좋아하니까.
첫째, 하나님께 헌신적인 피조물을 찬탈함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하여 더 진노하게 되면 하나님은 악마에게 인간을 해치도록 힘을 더 많이 허용하기 때문이다. 셋째, 악마에겐 또 하나의 기독교 영혼을 파멸시키는 것이 유리하니까.」
중세와 근세 기독교 세계에서는 마법사와 그 고객을 20세기 ‘공공의 적’처럼 대했다. 즉,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을, 스탈린 시대에 자본주의자들을, 아메리카합중국에서 코뮤니스트와 그 동조자들을 대하듯이 말이다. 그들은 외국 열강의 앞잡이 취급을 당했으니, 아무리 좋게 봐도 반애국주의자요 최악의 경우엔 매국노, 이단자, 인민의 적이었다.
지난 시대 이 극히 추상적인 퀴슬링 부류에게 부과된 형벌이 죽음이었듯이 현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정치적, 세속적 악마 숭배자들을 기다리는 형벌도 죽음인데, 이들을 어떤 나라들에서는 코뮤니스트(빨갱이)라 부르고 또 어떤 나라들에서는 반동주의자라 부른다.3
일시적으로 리버럴했던 19세기에 줄 미슐레4 같은 역사가들은 한때 마법사들이 겪어야 했던 그 만행을 용서하기 힘들 뿐 아니라 이해하려 들지도 못했다. 인류 과거에 지나치게 준엄하게 대하면서도 그들은 자기네 현재에는 또 지나치게 자족했으며 미래에 대해서는 한참 더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평가했다. 바로, 우리 시대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은 합리주의자로서, 이단자 박해며 마녀와 마법사들의 고문이나 화형 같은 극악무도한 행위가 전통적 종교의 쇠퇴와 더불어 막을 내리리라 순진하게 상상했다. 바로, Tantum religio potuit suadere malorum.5
하지만 우리 시대에서 뒤돌아보면, 종교의 모든 폐해는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아도 무성할 수 있음을 우리는 본다. 또 확신에 찬 유물론자들이 값싸게 날림으로 내놓은 이상을 절대자라도 되는 양 숭배할 태세가 돼 있으며, 열렬한 휴머니스트들이 사탄 신봉자들을 몰살하는 종교재판관의 열정으로 저희 적들을 박해할 수 있음도 우리는 본다.
그런 행동 패턴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어 왔으니, 인간의 그 어떤 신앙보다도 더 오래 됐다. 우리 시대에 악마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은 사탄의 존재를 하나님만큼이나 확실하게 믿은 선조들처럼 행동하기를 즐긴다. 그들은 저희 가혹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기네 이론들을 도그마로 바꾸고, 자기네 내규를 제 1원리로 격상시키고, 자기네 정치 보스들을 신으로 추앙하고, 자기네한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악의 화신이라 공표한다.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것을 신성한 것으로 맹신적으로 바꿈으로써, 그들은 가장 추악한 작업에 탐닉할 토대를 마련한다. 그것도 맑은 양심을 간직하며 지고지순하게 일한다고 확신하면서! 그러다가 작금의 믿음과 신조가 낡아져 다시 터무니없어 보이게 되면 새로운 추세가 만들어질 터이고, 그리하여 태고의 광기가 적법성이네 이상주의네 진짜 종교네 하는 상습적인 가면을 계속 쓰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펴봤듯이 마법과 관련된 법령은 대체로 지극히 단순했다. 악마와 자의로 상대했다고 드러나기만 하면 누구든 사형 대상이었다. 이런 법령이 실제에서 어떻게 집행됐는지 기술하려면 많은 지면이 필요하리라.
일부 판사들의 명백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판관들은 공정하게 심리하려고 애썼다는 점만 말해 두겠다. 그러나 그 공정한 재판조차도 현재 우리네 서구 기준으로는 정의를 서툴게 흉내 낸 괴물 같은 것이었다.
<마녀들의 해머>의 한 대목을 보자.
「어떤 증인이든 피고를 상대로 무엇이든 증언할 수 있게 법으로 허용한다.」
어린애를 포함해 누구라 할 것 없이, 더욱이 피고의 치명적인 적대자조차, 증언이 허용됐다. 재판 과정에서 별의별 증언과 증거가 다 채택됐으니, 쑥덕공론이며 주워들은 풍문이며 추정이며 꿈 얘기, 하다못해 귀신들린 자한테서 나온 진술도 다 인정됐다. 그리고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고문이 거의 다반사였다. 게다가 최종 선고와 관련해 판사들의 거짓된 약속도 흔했다.
이 거짓 약속 문제를 <마녀들의 해머>에서 사려 깊고 철저하게 다룬다. 세 가지 가능한 선택이 있다.
만약 첫 번째를 고른다면, 재판관은 (물론 다른 마녀들 이름을 폭로하는 조건으로) 마녀에게 목숨 부지를 약속하고, 그걸 지킬 수 있다. 이때 유일한 속임수는 피고로 하여금 사형 대신 추방 같이 다소 가벼운 형벌로 감형될 것이라 기대하게 해놓고 실제로는 독방에서 빵과 물로 연명하는 종신형을 언도하는 것.
두 번째 선택은 이러했다. 「그런 식으로 마녀를 감옥에 넣은 뒤 목숨은 살리겠다는 약속을 한동안 지키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 결국 화형에 처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 가능성은 재판관이 마녀에게 목숨을 끊지 않겠다고 안전하게 약속하고는 나중에 그가 아니라 약속과 무관한 다른 재판관이 화형을 선고하는 것이었다.」
(‘안전하게’라는 단어 하나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계획적인 거짓말은 거짓말쟁이의 영혼을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린다. 그러므로 거짓말이 정 필요하다면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제 자신에게, 혹은 거의 속지 않는 하나님께, 그럴 듯하게 보이게끔 꾸며야 한다. 안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를 천국에 결코 들이지 않을 테니까.)
현대 서구인의 관점에서 중세나 근세 마녀재판의 가장 무도한 측면 못지않게 가장 터무니없는 특징은 일상생활의 특이하고 적절치 못한 사건들은 거의 다 마법사가 마술을 부려 악마가 틈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치부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중에 왕좌법원 수석재판관이 된 매튜 헤일 경6 주재 하에 1664년 잉글랜드에서 재판 받은 두 마녀 중 하나가 교수형을 선고받은 사건의 증언 일부가 여기 있다.
피고는 이웃 남자와 언쟁 중에 저주를 퍼부으며 위협했다. 그 직후, 증인이 진술한 것처럼, ‘그가 기르는 암퇘지들이 새끼를 낳았는데 까불고 뛰어다녀야 할 것들이 왠지 금방 다 죽고 말았어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금 지나서는 그 남자에게 ‘엄청나게 큰 이들이 바글바글 끓었지요.’ 그렇게 불가사의한 해충을 상대로 웬만한 수단으로는 싸울 수 없었기에 증인은 자기의 가장 좋은 옷 두 벌을 불태워야 했다.
매튜 헤일 경은 공정한 재판관이요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학식 있는 사람으로서 문학과 법률의 횃불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그런 증거를 진지하게 채택할 수 있었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거의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원인은 아마도 헤일이 다른 이들처럼 지나치게 독실한 신자였다는 점에서 찾아야 하리라.
기독교 근본주의 시대에 신앙이 투철하다는 것은 악마의 존재를 믿으며 악마의 종복인 마녀들을 박멸할 의무를 지닌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유대-기독교7 전통은 모두 초자연적인 사건들에 대한 믿음 위에서 세워졌기에 노파의 저주며 돼지새끼들의 죽음, 이들이 득실거린 것은 다 사탄과 그 신봉자가 개입하여 생긴, 불가사의한 사건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관련 포스트: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 Sir Edward Coke (1552–1634) - 잉글랜드의 변호사, 판사, 정치인. 보통법 법정에 왕의 개입을 막기 위해 힘썼다. 보통법에 관한 그의 글들은 거의 300년 동안 최종적인 법률 문서 역할을 했다. [본문으로]
- (라틴), (독어) - 악마학과 마녀 재판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저술. 흑마법에 관한 고대 전설들과 이단에 대한 교리를 한데 묶은 지침서. 도미니크회 종교재판관이자 수도원장인 헨리 크래머(1430-1505)와 도미니크회 신학자요 쾰른대학 학장인 야콥 슈프렝거(1436-1495)의 공동 저술. 저자들은 “무당(마녀)를 살려두지 말라”(출애굽기 22:18) 하는 성서 구절을 행동으로 구현하려고 애썼다. 1484년 초판 이후 1520년까지 적어도 13판, 이후 1669년까지 적어도 16판 이상 발간됐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라틴어로.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가 칙서로써 이 저술을 공인. <마녀들의 해머>는 이후 비슷한 지침서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마냐 사냥이라는 (현대 시각으로는 ‘광적인’) 흐름에 물꼬를 활짝 텄다. [본문으로]</마녀들의>
- Vidkun Quisling (1887-1945) - 노르웨이 정치인, 행정가. 1933 노르웨이 파시스트 리더, 2차 대전 중 히틀러 추종 세력과 협력, 독일 패망 후 사형. 매국노, 반역자의 대명사가 됐다. [본문으로]
- Michelet (1798-1874) - 프랑스의 낭만적 경향의 역사가. 각 민족의 역사와 역사적 발전의 철학적 의미를 결합하는 새로운 역사 정립을 옹호. 1855년 <프랑스 역사>에서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정의. [본문으로]</프랑스>
- So potent was religion in impelling to evil. 인간을 아주 강하게 악으로 몰아넣은 것은 종교였다. -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장시 1권. [본문으로]
- Sir Matthew Hale (1609-1676) - 올리버 크롬웰의 공화정 시기에 가장 유명한 법관이었지만, 그럼에도 찰스 2세 치아에서 잉글랜드 수석 재판관이 됐다. 영국 보통법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법학자들 중 한 사람. [본문으로]
- Judeo-Christian - 십계명 같이 기독교와 유대교의 공통 윤리 기준을 강조하기 위해 1950년 이후 사용된 용어. 이는 미국 시민 종교의 일부가 되며 종교의 내부 협동을 증진키 위해 자주 쓰인다. 최근에는 ‘아브라함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슬람까지 포함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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