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루덩의 악마들 8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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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마법사임을 시인하라고 고문 받은 그랑디에

 


 

  로바르데몽의 시대 이후 악이 발전도상에서 제법 전진했다. 코뮤니스트 독재자들 치하에서 인민재판에 나온 사람들은 기소된 죄를, 심지어 머릿속에서 생각만 한 것조차도, 반드시 시인해야 한다. 예전 시대에는 피고들이 자기네 죄목을 반드시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랑디에 같은 경우 모진 고문을 당하고 화형 기둥에 묶이면서도 자신의 결백을 지켰다. 그런 경우가 절대 독특한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들도 남자 못지않게, 불굴의 의지로써 그런 고통을 견뎌냈다

 

  우리 선조들은 고문대며 ‘아이언 메이든’, ‘에스파냐 부츠’, 물고문 따위를 고안했다. 하지만 그들은 의지를 깨고 인간성을 옥죄는 더 섬세한 기술에서 배울 게 아직 많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것을 아예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인간 의지는 자유롭고 영혼은 불멸이라 가르친 종교 안에서 양육됐고, 적대자들과 관계에서도 그런 신념에 준해 행동했으니까

 

  그래, 반역자라 할지라도, 사탄 숭배로 유죄 판결 받은 사람일지라도, 아직 구제받을 수 있는 영혼을 지녔다.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포악한 재판관들도 종교적 위안을 거부하는 법이 없었다. 완전히 타락한 영혼이란 기독교에서는 없으니까. 처형 전후에 성직자가 늘 가까이 있으면서 떠나는 범죄자를 그의 창조주와 화해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우리네 조상들은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괴롭히거나 바퀴 위에서 찢어놓은 대상들조차, 일종의 축복받은 모순을 가지고, 그 인격만큼은 존중했다

 

  한데, 그때보다 더 개명된 우리 시대의 전체주의자들에겐 영혼과 창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조건반사와 사회적 수단에 의해, 좋게 말해서 아직 인간 존재라 불리는 것으로 주조된 고깃덩이만 있을 뿐이다. 이 생물사회학적 산물에겐 본질적인 값어치가 없으며 자결권 같은 것도 전혀 없다. 그것은 사회를 위해 존재하며 집단 의지에 따라야 한다. 

 

  물론 실제에서 사회란 국민국가에 지나지 않고 집단의지란 독재자의 권력 행사 욕구일 뿐이다. 그런데 그 권력욕이 때론 누그러들고 때론 극단적 광기로 치달으며 ‘휴머니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멋진 미래를 사이비 과학 이론으로 약속하면서 범죄를 자행한다. 이때 개개인은 사회의 생산물이요 도구로 취급된다. 사회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정치적 보스들이 저희가 사회의 적으로 공표한 사람들을 상대로 여하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음이, 바로 이 때문이다. 총을 쏘아 (혹은 이문을 남기려면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혹사시켜)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이 한낱 사회의 생산물이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공식 이론은 사람들이 사회적 동물에 불과하다고 선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거짓을 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의 적들’의 인격을 필히 파괴해야 한다. 이런 과제쯤이야 인간을 짐승으로 바꾸고 자유로운 인격을 복종하는 로봇으로 바꾸는 방법을 꿰고 있는 자들에겐 전혀 어렵지 않다. 

 

  인격은 중세 신학자들이 교리에 따라 억지로 추정한 것보다 훨씬 덜 획일적이고 훨씬 더 자유롭다. 영혼은 정신과 같은 것이 아니지만, 그것과 결합된다. 영혼은 정신과 의식적으로 합치되기 전까지는 썩 안정적이지 못한 심리적 요소들이 헐겁게 묶인 패키지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잔혹한 의지를 갖고 기술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자라면, 누구든 이 견고하지 못한 결합체를 아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 부류의 잔혹성을 17세기에는 거의 생각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연관 기술도 전혀 발달하지 못했다. 로바르데몽은 절실하게 필요했던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 비록 그랑디에한테 고해사제를 선택하도록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유죄 확정된 마법사한테도 영적 위안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트랑킬과 랑탕의 종교 예식이 제시됐지만, 지극히 자연스레 거부됐다. 그러자 그랑디에한테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순교자의 고통을 준비하라고 15분을 주었다. 주임신부가 무릎 꿇고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신이자 의로운 심판자시여, 무기력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구원자시여, 나를 지키시고 이제 닥칠 고통을 견디도록 힘을 주소서. 내 영혼을 당신 성인들의 진복팔단 안에 받아주고, 내 죄를 사하고, 당신 종복들 중에서도 가장 역겹고 천박한 이 몸을 긍휼히 여기소서. 

  오, 우리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여[각주:1], 당신께서는 저들이 지우는 죄를 내가 짓지 않았음을 아시나이다. 내가 감내해야 하는 불길은 내 정욕에 대한 징벌일 뿐임도 아시나이다. 인류의 구세주시여, 내 적수들과 고발인들을 용서하소서. 그러나 그들이 저희 죄를 깨닫고 뉘우치게 하소서. 

  오오, 성모 마리아여, 참회하는 자들의 수호자시여, 내 불행한 모친을 당신 품안에 너그러이 받아 주소서. 아들 잃게 되는 그녀를 위로해 주소서. 그 아들은 이제 곧 떠나게 될 이 세상에서 모친이 견뎌야 할 고통 하나만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그가 잠시 침묵했다. 내 의지가 아니라 당신 의지대로 하소서. 하나님이 여기 고문 형틀 속에 계시고, 그리스도가 지금 극도의 고통 시간에 계시나니. 

 

  주임신부의 기도를 듣고 간수장이 기억나는 대로 노트에 적었다. 로바르데몽이 다가가서 젊은 장교가 무엇을 기록하는지 물었다. 대답을 듣고 화가 나서 노트를 빼앗으려 했지만, 간수장이 제 물건을 내놓지 않았다. 전권대행은 노트를 다른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말라는 명령으로 그쳐야 했다. 그랑디에는 참회하지 않은 마법사인데, 참회하지 않은 마법사들이 무슨 놈의 기도란 말인가. 

 

  재판과 처형에 관해 트랑킬 수사가 기록한 것과 공식 관점에서 기록된 다른 이야기들에서는, 그 마지막 시간에 주임신부가 아주 악마처럼 처신했다고 한다. 기도하는 대신 음란한 노래를 불렀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상을 얼굴에 가져다대자 질색하며 고개 돌렸다. 성모 마리아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고, 가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토해냈지만 누구든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단어로 그가 루시퍼를 암시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이 선전자들한테는 불행하게도 다른 기록들도 우리한테 전해졌다. 로바르데몽은 일을 은밀하게 처리하려 했지만 간수장은 강요된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 이벤트들을 편견 없이 지켜본 증인들이 또 있었다. 그 중에 예를 들어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천문학자 이스마엘 부요가 있고, 다른 몇몇은 익명의 기록을 증거로 남겼다. 

 

두 다리를 참나무 판자 네 개 사이에 압착하고 쐐기를 내리치는 고문

 

  15분이라는, 짧은 집행 연기 시간이 끝났다. 죄인을 묶어 바닥에 길게 뻗게 하고 두 다리를 참나무 판자 네 개 사이에 압착했다. 바깥 두 개는 고정되고 안쪽 두 개는 죌 수 있었다. 움직이는 안쪽 판자 두 개 사이로 쐐기들을 박아 넣을수록 희생자의 두 다리가 기계의 고정된 틀에 끼어 바스러지게 된다.

 

  일반 고문과 특수 고문의 차이는 판자들 사이에 점점 더 두꺼운 쐐기를 얼마나 더 많이 박아 넣느냐에 달렸다. 특수 고문은 (즉각적이 아니라 해도) 필히 죽음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지체 없이 처형될 사형수한테만 적용했다

 

  고문할 준비를 하는 동안 랑탕과 트랑킬 수사가 밧줄과 판자, 쐐기들, 나무망치 따위에서 귀신을 내쫓았다. 그건 아주 필요한 일이었다. 안 그러면, 죄인한테 육체적 고통으로써 정화되는 고문 효과를 악마들이 교묘한 기술로 방해할 테니까. 탁발수사 둘이 성수를 뿌리며 독경을 마치자 형리가 앞으로 나와 크고 묵직한 나무망치를 들었다가 장작 패는 사람처럼 내리쳤다. 요란한 비명이 터졌다. 랑탕이 제물에게 몸을 숙여 라틴어로 물었다. 시인하지 않겠나? 그랑디에가 고개를 저었다. 

 

  첫 번째 쐐기가 무릎 사이에서 깊이 박혔다. 이어서 두 번째 쐐기를 양발 사이에 끼우고 내려친 뒤, 세 번째 더 두꺼운 쐐기의 얇은 끝이 첫 번째 쐐기 바로 밑으로 들어갔다. 나무망치가 쿵 소리를 내고 날카로운 비명이 터진 뒤 잠시 적막이 깔렸다. 제물의 입술이 실룩였다. 

 

  오, 뭐야, 자백하는 건가? 탁발수사가 귀를 들이댔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단어만 몇 번 반복된 뒤 “나를 버리지 마소서, 이 고통 때문에 당신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하는 말이 들렸다. 

  수사가 형리에게 작업을 계속하라고 일렀다. 

 

  네 번째 쐐기를 두 번째 가격하자 발과 발목의 뼈 여러 개가 부서졌다. 한순간 주임신부가 의식을 잃었다. 

  “Cogne, cogne!” 랑탕 수사가 형리한테 소리쳤다. “쳐라, 더 쳐!” 

  주임신부가 다시 눈을 뜨고 나직하게 말했다. 

  “수도사여, 성 프란체스코의 관대함은 다 어디로 간 게요?” 

  성 프란체스코를 신봉하는 자가 대꾸하지 않았다. 

  “Cogne!” 

  형리에게 다시 소리치고, 나무망치가 떨어진 뒤 죄인을 다그쳤다.

  “Dicas, dicas!” 

  그러나 자백할 것이 없었다. 그러자 다섯 번째 쐐기가 박혔다. 

  “Dicas!” 해머가 허공에서 주춤했다. “자백하라!” 

  희생자가 형리와 탁발수사를 번갈아 쳐다보고 눈을 감았다. 

  “원하는 대로 날 괴롭히시오.” 그가 라틴어로 말했다. “곧 다 끝날 것이오. 영원히.” 

  “Cogne!” 

  나무망치가 다시 곤두박질쳤다. 

 

고문 당하는 주임신부

 

  숨을 헐떡이는 형리가 한여름 더위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나무망치를 조수한테 넘겼다. 이제 트랑킬이 죄수에게 말할 차례였다. 그는 자백하면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다음 세상뿐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여러 모로 좋은 게야. 

 

  주임신부가 다 듣고는 그 말이 끝나자 물었다. 

  “수도사여, 양심적으로 말해 주오. 사람이 행하지도 않은 죄를 그저 일순간 고통 피할 요량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믿는 게요?” 

 

  이 분명 사탄 같은 궤변을 애써 무시하고, 트랑킬이 계속 으르렁거렸다. 주임신부가 자신의 진짜 죄를 인정할 수는 있다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난 남자이고, 여인들을 사랑한 것일 뿐…” 

  그러나 그건 로바르데몽과 수사들이 원한 답변이 아니었다. 

  “넌 마법사이고, 악마들과 내통한 것이야.” 

 

  그런 죄는 짓지 않았다고 주임신부가 다시 항변하자, 여섯 번째 쐐기가 가격을 받아 깊숙이 박히고, 이어서 일곱 번째, 이어서 여덟 번째가 또 박혔다. 일반 고문에서 특수 고문의 전통적 한계까지 이르렀다. 무릎과 정강이, 발목, 발뒤꿈치 뼈들이 으스러졌다. 그러나 수사들은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 그저 절규하는 비명 뒤에 잠시 적막이 이어지고, 간간이 나직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만 들렸을 뿐. 

-

  쐐기 여덟 개가 통상적인 한 벌이었다. 로바르데몽이 쐐기를 더 많이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건 특수 고문마저 넘어서는 잔혹한 짓. 형리가 창고에 가서 쐐기 두 개를 더 가져왔다. 그 쐐기 두 개가 앞의 것들보다 더 두툼하지 않은 것을 알고 로바르데몽이 부아가 나서 형리를 태형에 처하겠다고 을러댔다. 

  그러나 그 새에 수도사들이 꾀를 냈다. 무릎에 박힌 일곱 번째 쐐기를 꺼내 발목에 있는 여덟 번째 쐐기에 이중으로 박으면 돼! 

 

  이번에 나무망치를 흔들어 댄 사람은 랑탕 수사였다. 

  “Dicas!” 내리칠 때마다 외쳤다. “Dicas! Dicas!” 

  트랑킬도 지지 않았다. 동료한테서 나무망치를 넘겨받고 열 번째 쐐기를 조정한 뒤 세 번 있는 힘껏 내리쳐 때려 박았다. 그랑디에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 흠, 이러면 안 돼,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기도 전에 숨이 끊어져서야! 게다가 쐐기들도 동이 났다. 마지못해 로바르데몽이 중단을 명했다. 이런 고집불통은 영원히 고문 받아 마땅하지만, 하는 수 없지. 

 

  그랑디에가 겪은 수난의 첫 단계는 45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형리들이 고문대를 분해하여 치우고 축 늘어진 죄수를 의자에 앉혔다. 그가 무참히 으스러진 다리를 내려다본 뒤 눈을 들어 전권대행과 공범자 열세 명을 응시하며 라틴어를 섞어 말했다. 

 

  “신사 여러분, 당신들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겠소?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각주:2]

 

  로바르데몽의 지시로 죄인을 옆방으로 데리고 가 장의자에 눕혔다. 8월 푹푹 찌는 날이지만 주임신부가 한기에 떨었다. 그건 지나친 외부 충격의 후과. 간수장이 낡은 담요를 덮어주고 포도주를 한 잔 따라 놓았다

 

  (그 사이 랑탕과 트랑킬은 자백 받지 못한 상황을 만회하려 들었다.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다가와서 묻는 사람들에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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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archer of hearts - “마음을 살피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성령이 하느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27) [본문으로]
  2.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한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애가 1:12)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절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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