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8월 첫째 주 끝에 가서도 그랑디에는 자신이 평범한 재판의 피고이며, 이전 조사에서 잘못된 것들은 다 우연한 실수이고 이제 정의가 복원돼 풀려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의 진술서와 국왕께 보내기 위해 감옥에서 몰래 전달한 서신들을 보면 그는 재판관들이 진술서와 논리적 증거들을 접하면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여전히 확신했다. 또 그들이 가톨릭 교리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저명한 신학자들 의견에 고개 숙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건 가련한 망상인 것을!
로바르데몽과 그의 온순한 재판관들은 오직 한 사람의 앞잡이였을 뿐이며, 그 한 인물은 사실이나 논리나 법이나 신학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고 단지 개인적인 복수와 1630년대에 전체주의적 독재 수단들을 얼마나 안전하게 추진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조심스레 설계한 정치 실험에만 골몰했다.
악마들이 다 공술한 뒤 죄수가 피고석으로 불려 나갔다. 변호인이 큰 목소리로 낭독한 진술서에서 그랑디에는 지긋지긋한 고발인들의 증언에 응답하고, 불법적인 조사와 로바르데몽의 편견을 강조하고, 엑소시스트들이 마귀 들린 자들을 계획적으로 선동한다고 비난했으며, 카푸친회가 내놓은 새 교리가 위험한 이단적 발상임을 입증했다.
그렇게 변론하는 중에 판사들은 안락의자를 빙빙 돌리며 하품하고, 서로 소곤거리며 키득거리고, 콧구멍을 후비고, 깃털 펜을 찍찍대며 종이에 낙서나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그랑디에가 희망이 전혀 없음을 문득 깨달았다.
그를 다시 감옥으로 압송했다.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다락방의 열기가 견디기 힘들었다. 짚더미에 누워 전전반측하는 동안 바깥에서 브르타뉴 사람 몇몇이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대단한 쇼를 구경하러 와서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죽이려 애쓰는 중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며칠뿐…
한데 이 모든 고난은 합당한 게 아니었다. 그는 아무 짓도 안 했고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래, 완전히 결백해. 그러나 그자들의 악의와 원한이 그를 쫓아다녔다. 끈질기게, 끊임없이. 그리고 이제 조직적 불공정이라는 거대한 기계가 다가들고 있었다. 그는 싸울 수 있었지만, 그들이 훨씬 더 강했다. 그가 기지와 달변을 동원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이제 자비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소용없을 터, 그들은 그저 낄낄대기만 할 테니.
그는 올가미에 걸렸다. 고향 들판에서 소년 시절 그가 잡은 토끼처럼. 올가미에 걸려 끽끽대며 토끼가 몸부림칠수록, 올가미는 더 조여들지만 비명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이지는 못했다. 끽끽대는 소리를 멈추게 하려면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치면 그만이었다.
그가 갑자기 분노와 좌절과 자기연민과 끔찍한 두려움에 참담하게 억눌리는 자신을 보았다. 끽끽거리며 버둥대는 토끼에게 그는 자비로운 가격을 한 방 날렸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은, 그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나? 그가 국왕에게 바친 서신의 마지막 대목을 떠올렸다.
「십오륙 년 전 보르도에서 공부할 때, 한 수도사가 마법사로 몰려 화형 당한 일을 기억합니다. 그때는 그가 죄를 범했다고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들과 동료 수도사들이 그를 구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경우에는 마법 따위를 전혀 범하지 않았음에도 수도사들과 수녀들과, 동료 성직자들이 나를 파괴하려고 공모했다는 점에 적잖이 통탄한 따름입니다.」
그가 눈을 감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수도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날름대는 불길 사이로 그 수도사는 외쳤다. “예수, 예수, 예수…” 그리고 그 비명은 분명치 않게 되고, 덫에 걸린 토끼가 끽끽대는 소리와 다를 바 없게 됐다. 가엾게 여기는 자 하나 없고, 고통 덜어주는 자 하나 없었다.
두려움이 어찌나 참기 힘들었든지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제 목소리에 놀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일어나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에 칠흑 같은 어둠… 갑자기 수치심이 일었다.
한밤중에 울부짖다니, 놀란 여인처럼, 놀란 어린애처럼!
이맛살을 찌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 아무도 그를 겁쟁이라 부르지는 않았다. 그들이 못된 짓을 다 해보라고 해! 무엇에든 맞설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은 그의 담대함이 저희 원한보다 더 크며, 어떤 고문으로도 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다시 자리에 누웠으나 잠을 이루려는 건 아니었다. 의지는 굳건하지만 육신은 패닉 상태.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신경계의 생각 없는 두려움에 진저리치면서, 순전히 육체적인 공포를 이겨내려고 의식하다 보니 근육이 죄다 팽팽해졌다. 기도해 보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의미가 없고 그리스도와 마리아 역시 공허한 이름이었다.
생각은 온통 목전에 둔 굴욕과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죽음, 자신을 제물로 삼은 괴물 같은 불공정에만 쏠렸다.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데 그건 사실이고,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아아, 대주교의 충고를 듣고 해포 전에 다른 교구로 갔더라면! 기욤 오뱅의 말은 왜 안 들었을까? 그냥 남아 있다가 체포되다니, 정말 얼빠진 짓이었어.
그들 말을 들었다면 삶의 모습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하니, 당장의 처지가 한층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한층 더. 그래도 견뎌야 해, 대장부답게! 그들은 그가 머리 조아리고 구걸하는 걸 보기 원해. 그러나 그들한테 그런 만족을 안기는 일은 결코 없을 게야, 결코! 그가 이를 윽물고 그들 앙심에 맞서자고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귓속에서는 피가 쿵쿵 뛰고, 짚더미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한밤중 공포가 한없이 늘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다 끝나고 희붐하게 동살이 잡혔다. 그건 다른 공포, 무한정 더 끔찍하고 최종적인 공포까지 하루도 안 남았다는 뜻.
새벽 다섯 시 감옥 문이 열리고 간수장이 방문객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암브로시오 수사. 죄수를 돕거나 위로할 길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순수한 자비심에서 스스로 온 것.
그랑디에가 서둘러 옷차림을 갖춘 뒤 무릎을 꺾고 여태껏 살면서 저지른 과오와 부족한 점을 낱낱이 고해하기 시작했다. 그건 다 오래 전에 지은 것으로, 이미 다 속죄하고 교회로부터 사면 받은 죄업이었다. 그러나 그 예전 죄업들이 이제 그의 앞에 새로운 빛 속에서 나타났다.
은혜가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하나님 안전에서 일부러 문을 몇 번이나 쾅 닫았는지 그가 생전 처음 깨달았다. 말과 형식에서는 기독교인이고 성직자였어, 한데 생각과 행위와 감정에서는 그저 자신만을 앞세웠을 뿐이다. “내 왕국이 오게 하시고, 내 뜻이 이뤄지게 하소서.”
한데 그가 봉공한 왕국은 정욕과 탐욕과 허영의 왕국이었으며, 그가 이루려던 뜻은 남들보다 두드러지고 남들을 짓밟고 승리하여 크게 기뻐하는 것이었다.
생전 처음,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교리에 따른 것도, 신학적 정의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건 후회와 자책의 번민 같이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고해를 마치고 그가 처절하게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겪을 고통 때문이 아니라, 여태껏 행한 것 때문에.
암브로시오 수사가 사죄경을 읊고 나서 그에게 성체를 건넨 뒤 하나님 뜻에 관해 잠시 논했다.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아무 것도 거부하지 마시게. 죄스러운 행위만 아니라면, 우리한테 생기는 모든 일을 온유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네. 매 순간 일어나는 것은 다 그 특정 순간에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일세. 고통도 예정된 것이요, 불행도 예정된 것이며, 개인의 약함과 부조리에서 비롯된 굴욕도 예정된 것이라네. 그 뜻에 따르다 보면 그 시련이 하나하나 이해될 것이야. 깨달음이 있으면 시련도 변모되어, 자연인 (미개인) 눈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보일 것이네.
주임신부가 경청했다. 그건 다 제네바 주교의 글에 들어 있고, 성 이냐시오가 설파한 것. 예전에 이미 다 들은 것일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설교단에서 그렇게 말하던 것이었다. 그것도, 이 늙어 힘없는 암브로시오 수도사보다 천 배는 더 유창하고 힘차게.
그러나 노인은 그 말을 진솔하게 입에 올렸고, 당신이 하는 말을 확실히 믿었다. 합죽이가 된 입에서 우아하지도 않게 나오며 문법조차 잘 안 맞지만 그 단어들은 등불 같아서, 과거 상처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미래의 즐거움이나 환상적 승리를 지나치게 음미하느라 어두워졌던 마음에 불현듯 빛을 밝혔다.
쇠약하고 늙은 목소리가 입안에서 우물거렸다.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오. 그리스도가 지금 계신다오. 여기, 임자 감옥 안에, 임자의 굴욕과 임자의 고통 한가운데, 거(居)하신다오.”
문이 다시 열리고 간수 봉탕이 들어섰다. 그는 암브로시오 수사의 방문을 전권대행에게 보고했고, 로바르데몽은 수도사께서 당장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 만약 죄수가 고해하기 원한다면, 그를 담당하는 트랑킬과 랑탕 수사를 청하면 되는 거야.
늙은 탁발수사가 쫓기듯이 나갔지만, 그가 남긴 말은 남아서 그 의미가 점점 더 또렷해졌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고, 그리스도가 지금 계신다오.” 그건, 영혼에 관한 한, 언제 어디서나 매 순간 함께 한다는 뜻이었다.
적수들에 맞서 의지 불태우고, 불공정한 판사들에게 대들고, 꺾이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자고 결의 다지는 따위가 다 얼마나 헛된 짓인가! 하나님이 늘 곁에 계신다면 정말 무의미한 일이 아니런가?
일곱 시에 주임신부를 카르멜회 수도원으로 이송했고, 재판관들도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 거기로 모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홀 안에 계셨다. 심지어 로바르데몽이 피고를 심문하며 궁지로 몰아갈 때조차 그리스도가 불행한 자와 함께 계셨다. 그랑디에가 내보이는 차분한 품위에 판사 몇몇이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트랑킬 수사는 아주 단순하게 해석했다.
저건 다 다 악마의 소행이지요! 차분한 듯 보이는 건 악마의 자손이 취하는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란 말이오. 또 품위란 것도 회오할 줄 모르는 자부심의 발로에 불과한 것이오.
판사들이 피고를 대면한 것은 불과 세 번이었다. 그러고 나서 18일 새벽 일상적인 기도를 경건하게 마치고 선고를 내렸다. 전원 일치 판결.
죄수는 ‘일반 심문과 특별 심문’을 받아야 함. 그 뒤 성 베드로 교회와 성 우르술라 교회 정문 앞에서 목에 밧줄 걸고 2파운드 양초를 든 채 무릎 꿇고 하나님과 국왕과 정의에 용서를 구할 것. 그 다음에 성 십자가 광장으로 이송돼 기둥에 묶여서 산 채로 화형을 당하고, 그 뒤 유해는 사방으로 흩날릴 것.
이 선고를 트랑킬 수사는 진실로 하늘이 내린 것이라 기록했다. 왜냐하면 로바르데몽과 그의 판관 열세 명이 「지상에서 제 역할을 철저하게 수행한 것만큼이나 신을 공경함이 크고 헌신이 열렬해서 마치 하늘에 있는 듯했으니까.」
선고가 내리자마자 로바르데몽이 외과의 만누리와 푸르노한테 당장 감옥으로 가라는 명령을 보냈다. 만누리가 먼저 도착했다. 하지만 이전에 그가 뽐낸 탐침 묘기를 두고 그랑디에가 내뱉은 말에 어찌나 당황했든지 패닉 상태가 되어 물러났다. 죄수의 처형 준비를 동료가 떠맡았다. 판사들은 그랑디에의 머리와 얼굴, 몸통까지 샅샅이 면도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주임신부의 결백을 확신하는 푸르노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을 두고 정중히 양해를 구한 뒤 작업에 착수했다.
주임신부가 알몸이 됐다. 면도칼이 피부를 따라 움직였다. 몇 분 만에 그의 몸에는 거세당한 남자 몸뚱이처럼 털 한 오라기도 남지 않게 됐다. 이어서 무성하고 검은 고수머리가 바짝 잘리고, 남은 강모는 두피에 비누칠해 면도로 밀었다. 그 다음엔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콧수염과 입술 밑 작은 삼각 수염이 사라졌다.
(“이제 눈썹 차례로군” 하는 목소리가 문간에서 들렸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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