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루덩의 악마들 4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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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 수녀원 원장 잔느와 수녀들

 


 

4

 

하나님 섬김이라는 소명을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17세기 수녀원 생활이 죽도록 따분하게 보였을 터이다. 그날이 다 그날 같은 생활은 그저 자잘한 사건과 소문들, 가끔 들르는 방문객들과 담소, 혹은 여가에 시시한 손작업 등으로 그 단조로움이 조금 덜어졌을 뿐. 

수렝 신부가 여러 서신에서 짚을 엮어 만든 장식물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가 아는 많은 수녀들이 남는 시간 대부분을 이 작업으로 보냈다. 그들의 걸작은 역시 지푸라기로 만든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미니어처 지푸라기 마차. 그건 어떤 귀족 여성 후원자의 경대에 놓일 선물이었다. 

 

콜롱비에 신부가 방문동정회[각주:1] 수녀들에 관해 이렇게 적는다. 

이 수도회의 드높은 도덕적 지향과 개중에 고결한 수녀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담장 안에는 규율을 지키고 미사를 드리고 기도회에 다니고 고해성사를 보고 성찬례에 참여하지만, 그걸 다 그저 종이 울리고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수녀들의 행위에는 정성이 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네 작은 생각과 계획들로 바빠서 하나님 일에는 거의 무심하다. 

모든 따스한 감정은 수녀원 안팎에 있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쏟고 주님께는 그저 맥없고 진실성 없는 눈길만 돌리니, 그런 것은 그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든 영혼이 전능자에 대한 사랑으로 영원히 불타는 둥지가 되어야 할 공동체들이 평범하고 지루함 속에서 의미 없이 생활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녀원 모습

 

저 유명한 포르루아얄 수녀원[각주:2]장 라신[각주:3]에게 아주 감탄할 만한 공동체로 보인 까닭은 ‘그 객실들에는 적막이 지배하고, 수녀들이 대화에 끼어들려 안달하지 않고, 헛된 세상사에 관심 두지 않고, 심지어 이웃을 두고 뒷공론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포르루아얄의 이런 보기 드문 장점을 통해 우리는 그보다 못한 수녀원들의 결함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다. 

 

1626년 루덩으로 이전한 우르술라회[각주:4] 수녀원은 다른 여성 거처들보다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열일곱 수녀는 거의 젊은 귀족 영애들이었다. 그들이 수도생활에 들어선 까닭은 복음서 말씀을 따르고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계층의 구혼자들이 수락할 만한 지참금을 집안에서 마련할 여유가 못 됐기 때문이다. 여기 수녀들은 그 어떤 특별한 스캔들로도 경건함으로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켰지만 종교적 열성과 경건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루덩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 주민들은 절반이 신교도로서 수녀원에 아주 인색했고 수녀들한테도 돈이 없었다. 낡고 음울한 하우스 하나만 임차했는데, 그것도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다들 들어와 살기를 마다하는 건물이었다. 건물에 가구도 없어서 수녀들이 처음엔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들은 도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는 수업료로 생활할 요량이었지만 여학생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드 사질리, 데스쿠블로, 바르베지에, 라모테, 벨시엘, 댐피에르 같은 귀족 출신들이 제 손으로 갖은 잡일을 하게 됐고, 재계일인 금요일뿐 아니라 월, 화, 수, 목요일에도 식탁에 고기가 놓이지 못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던 끝에 그들을 구한 것은 속물근성이었다. 

 

루덩의 부르주아들이 알고 보니… 아주 적은 돈으로도 자기네 딸들이 좋은 프랑스어와 궁정 매너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한때 추방됐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재종누이와 수르디스 추기경의 더 가까운 인척과 후작의 작은딸과 푸아티에 주교의 질녀한테서 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수녀원에 기숙 학생들과 통학 학생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여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번영도 찾아왔다. 이제 지저분한 일은 하녀들이 맡고, 식탁에 쇠고기와 양고기가 다시 나오고, 마루에 깔렸던 짚 매트리스가 나무 침상으로 교체됐다. 

 

루덩 소도시 전경

 

이 새 공동체의 원장이 1627년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새 원장이 임명됐다. 그녀 이름은 ‘천사들의 수녀 잔느. 속세에서 이름은 잔느 벨시엘, 코제의 남작인 루이 벨시엘과, 또 남작 가문 못잖게 전통 있고 저명한 가문 출신인 샤를롯데 데실레의 딸이었다. 1602년생이니까 이제 이십대 중반.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쳐져서 몸매가 좀 기형이었다. 아마도 골결핵의 후유증이리라. 

잔느도 당대 대다수 귀족 영애들처럼 빈한한 교육을 받았다. 그 대신 그녀에겐 타고난 지능에다 한가락 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 성격 때문에 그녀가 다른 이들에겐 고통이 되고 제 자신에겐 최악의 적이 됐다. 

 

이 어린애 같은 사람은 기형적인 신체 때문에 볼품이 없었다. 자신이 추하다는 느낌과 혐오나 동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그녀에게 고질적인 분한을 일으켰다. 그 분한 때문에 누구를 좋아할 수도 없고 누구한테서 사랑받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다 보니 그들도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방어적인 갑각 속에 살며 자신의 적들을 공격할 때만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녀에게는 모든 사람이 선험적으로 적이었으며, 난데없는 빈정거림이나 이상하고 발작적으로 터뜨리는 조소가 공격 수단이었다

 

수렝이 그녀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알고 보니, 원장수녀의 기질은 뭔가 특이하게 명랑해서 늘 날카로운 웃음과 조롱을 날리는데, 그런 고약함은 그녀 안에 들어앉은 악마 발람이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의 성격은 하나님 사업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진지함과 정반대이며, 뭔가 악의적인 기쁨이 그 영혼을 차지하여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필수적인 양심의 가책을 파괴했다

이 불길한 까불거림을 한 시간만 대해도 내가 여러 날 정성껏 쌓은 공력이 무너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나운 적에게서 그녀가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하려고 난 무던히 애썼다.」

‘하나님 사업’과 아주 잘 양립할 수 있는 웃음이 있다.
곧, 겸허하고 자기비판적인 웃음, 온후하고 너그러운 웃음, 이 세상의 비뚤어진 부조리에 대한 좌절과 분개를 대신하는 웃음. 

 

그러나 잔느의 웃음은 그런 것들과 전혀 달랐으니, 그저 조소 아니면 냉소뿐이었다. 그런 웃음을 늘 다른 이들한테만 퍼부었지 자신에게는 절대 돌리지 않았다. 곱사등이의 비웃음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다 깔보면서 자기 아래에 두려고 들었다. 또 그녀의 냉소란 잠깐일지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갈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대 기준에 엄숙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모든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요 조롱이었다

 

루덩 수녀원 원장수녀 잔느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숱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렇게 불쾌한 아이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부모는 딸을 인근 수녀원 원장으로 있는 늙은 숙모에게 보내고 말았다. 두세 해 만에 불명예스럽게 돌아왔다. 다른 수녀들이 그녀와 잘 지내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세월은 흐르는데 부친 저택에서 사는 게 어찌나 지겨운지 종교적 은둔처라도 차라리 집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그러자 푸아티에에 있는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들어가서 초심자 수련 기간을 보내고 수도서원을 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훌륭한 수녀가 못 됐다. 하지만 집안이 부유하고 영향력 있기 때문에 방자한 피후견인을 수녀원장이 꾹꾹 참으며 데리고 있게 됐다. 

그러다가 거의 하룻밤 새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수녀원이 루덩으로 이전한 뒤 잔느가 아주 경건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바뀐 것! 푸아티에에서는 말도 안 듣고 열의도 안 보이고 제 할 일에도 태만하던 젊은 여인이 이제 완벽하게 독실한 사람이 되어서 온유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처신했다. 그 놀라운 변화에 감명 받은 늙은 수녀원장이 퇴임하면서 잔느 자매를 강력한 후임자로 추천했다. 

 

그 개심 사연을 15년 뒤 잔느가 이렇게 기술한다. 

「난 늘 지도부 눈에 띄려 애썼고, 숙사에 수녀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수녀원장은 곧 공동체의 모든 일을 나한테 맡기게 됐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일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좋은 자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수녀원장에게 숱한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난 그녀 기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그녀는 곧 나를 모든 이들에게 모범으로 삼았다. 그녀는 내가 선하며 덕을 행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한껏 부풀려서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좋게 보이고 내 성향에 호감을 갖게끔 위선을 떨었다. 수녀원장은 나한테 많은 특전을 용인했으며, 그것을 난 마음껏 써먹었다. 그녀 자신이 선하고 덕이 있는데다 나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한다고 믿는 만큼 나를 훌륭한 수도사들과 대화하도록 자주 불렀다. 난 그녀 비위를 맞추려고 거기에 따랐다. 게다가 그건 시간 죽이기에도 좋았다.」 

 

훌륭한 수도사들과 나누는 대화는 숙사의 널따란 객실을 두 부분으로 가른 철창을 통해 벌어졌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영적 삶에 관해 새로 번역된 책들을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었다. 

어떤 날은 블로시우스[각주:5]의 해설서, 또 어떤 날은 테레사 성녀의 자서전 혹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혹은 천사들의 본성에 관한 델 리오의 저술 등이었다. 

 

그런 책들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수녀원장이며 수도사들과 토론하면서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바뀌는 것을 알았다. 객실에서 나누는 경건한 대화와 신비주의 서적 공부는 이제 더 이상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각별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됐다. 단, 그 목표가… 

그녀가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지혜로운 카르멜회 수사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그건 「영적 삶으로 돌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제 지능을 뽐내고, 모든 수녀원에 있는 다른 수녀들을 능가하려는 욕심에 지식을 채우기 위함일 뿐이었다.」 

 

루덩 수녀원 수녀들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곱사등이의 갈구가 또 다른 출구를 찾았다. 남들을 교묘하게 다루는 새롭고 재미난 분야 말이다. 빈정대고 냉소 터뜨리기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신비주의 신학과 영성 연구에 들인 결과, 그 분야에서 학식 갖춘 상담자요 전문가가 됐다. 

새로이 습득한 지식에 기고만장한 그녀가 이제 다른 자매들을 더욱 더 경멸과 연민이 출렁이는 느낌으로 내려다보며 흐뭇해했다. 

 

그래, 이 불쌍한 멍청이들이 신앙심은 깊어서 정결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고 있지. 그러나 정결이 도대체 뭐야! 무지와 둔감함일 뿐이잖아! 특별한 은혜에 대해 저들이 뭘 아나? 영적인 접촉을, 황홀함과 계시를, 감각의 유혹과 죽임을, 제까짓 것들이 알기나 하겠어?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 절로 만족스레 나왔다. 

흥, 저들은 아무 것도 몰라! 반면에, 난 사실상 모든 지혜를 터득했고, 하고 있잖아!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유난히 처지고 키가 난쟁이만한 그녀가 그렇게 우쭐댔다

 

(마담 보바리는 생을 비극적으로 마쳤다. 자신을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그렇다...  <루덩의 악마들> 4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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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Order of the Visita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 성모 마리아 방문 동정회. 1610년 살레의 성 프랑수아(1567-1622)와 성 쟌느 샹탈(1572-1641)이 설립. [본문으로]
  2. Port Royal -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 1204년 설립돼 17세기에는 얀센파의 거점. 유명한 학자며 계몽된 교육자들이 이 공동체 주변에서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 [본문으로]
  3. Jean Racine (1639-1699) - 고전주의 시대 프랑스 비극 작가, 문필가.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로 꼽힌다. 포르루아얄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피제니’, ‘페드르’. [본문으로]
  4. 우르술라회 - 로마가톨릭 여성 수도회. 성 안젤라 메디치가 1535년 11월 이탈리아 브레시아에 설립. 주로 소녀들 교육, 병자와 빈자 구휼 활동. 그들의 수호성인은 우르술라 성녀. [본문으로]
  5. Blosius - 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인 316년 아르메니아에서 처형된 순교자, 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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