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전망이 하도 우려스럽다 보니까 증인 중 하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쪽을 택했고 다른 하나는 고발을 취하했을 뿐 아니라 고발장에 서명하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인정하기까지 했다.
성직자 두 명 중 나이 더 많은 마르탱 부요는 검찰관에게 한 진술을 벌써 오랜 전에 거둬들였고, 이제 재판 재개를 며칠 앞두고 젊은 메샹 대리 신부는 그랑디에의 아우를 찾아가서 두려움과 후회에 떨며 일종의 양심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했던 말은, 그러니까, 주임신부가 신앙이 없고 교회 바닥에서 하녀들이며 귀부인들과 뒹굴고 사제관에서 한밤중에 여인들과 파티를 벌였다는 얘기는 죄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심문자들의 회유와 사주를 받아 그렇게 진술했을 뿐이지요.
성 십자가 교회의 참사회 위원 한 사람이, 트렌캉 검찰관이 자기를 몰래 찾아와 동료 성직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라고 매수하려 들다가 협박까지 했노라고 고백하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추악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사건이 재판에 회부됐을 때 주임신부에게 불리한 증언은 하나 없고 외려 고발인들에게 불리한 증거가 한가득했다. 루덩의 검찰관이 체면을 완전히 구겼을 뿐 아니라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하게 됐다.
만약 딸에 관해 진실을 말한다면 그랑디에는 유죄가 되며 나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행위는 해명되고 웬만큼 용서될 게야. 그러나 진실을 밝히면 필리프가 오욕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나 자신도 경멸이나 처량한 동정의 대상이 되겠지.
처절한 고민 끝에 결국 함구를 택했다. 필리프는 치욕에서 벗어났지만 그가 증오하는 그랑디에는 죄를 면했고, 대지주요 법률가요 공복으로서 그의 평판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말았다.
이제 그랑디에는 영적 간음을 범했다는 이유로 화형 당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사목 활동 금지는 풀리지 않았다. 라로슈포제 주교의 마음이 누그러들지 않는 한 상급심에 항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르도의 대주교구는 그맘때 에스쿠블로 수르디스 가문의 봉토였다. 모친이 앙리 4세의 총애를 받는 가브리엘 데스트레1의 숙모라는 사실 덕분에 프랑수아 수르디스는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서 초고속으로 올라섰다.
나이 스물셋에 추기경 예모를 받고, 한 해 지나 1599년에는 보르도 대주교가 됐다.
1600년 젊은 추기경이 로마로 행차했는데, 거기서 자랑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었다. Cardinale Sordido, arcivescovo di Bordello.2
보르도로 돌아와서 그는 두 가지 주된 재미에 폭 빠졌다. 종교 건물들 건축, 또 지방 고등법원과 충돌, 사소한 문제들로 맹렬하게. 그 기관을 한 번은 종을 울리고 저주를 내리며 교회에서 파문하기도 했다. 거의 삼십 년 군림하던 끝에 1628년 그가 죽은 뒤 아우 앙리 수르디스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새 대주교에 관해 탈망3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모친인 마담 수드리스가 죽음의 침상에서 아들한테 말했다.
“네 생부는 시베르니 재상이란다, 그런 만큼 내가 너를 위해 말레제 주교구와 몇 가지 좋은 한직을 주선해 놓았고 또 너한테는 큰 다이아몬드를 물려줄 테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작고한 내 남편 유산에는 눈길 돌리지 않으면 좋겠구나.”
앙리가 대답했다.
“어머니, 난 당신이 썩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소문을 절대 믿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소송을 통해 다른 형제와 누이들처럼 자신의 법적 상속분 5만 리브르를 받아냈다.」
(이전에 숙부 소유였던 또 다른 봉토인) 말레제의 주교로서 앙리 수르디스는 즐겁고 태평한 세월을 보냈다. 그건 당시 젊은 조신들에게 전형적인 인생이었다. 불혼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쾌락을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쾌락에 활수가 어찌나 좋든지 가족의 친구인 마드무아젤 튈레가 프랑스식 실용성에 입각하여 주교의 처제인 잔느 수르디스에게 조언했다.
“당신이 시숙인 말레제 주교와 로맨스를 맺는 게 좋겠어요.”
“오, 맙소사!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잔느 부인이 놀라 소리치자 상대가 태연히 대꾸했다.
“무슨 말이냐고요? 돈이 집 밖으로 새나가면 안 좋다는 말을 하는 거지요. 당신 큰 동서도 그 시숙이 말레제 주교였을 때 시숙과 그렇게 했거든요.”
분별없는 애정 놀음 중간 중간 젊은 주교는 전쟁터에 나갔다. 처음엔 땅에서 병참감과 포병 감독관을 하다가, 나중에 바다에서 제독으로 함대를 지휘하고 최초의 해군 대신이 되었다. 사실, 프랑스 해군은 실질적으로 그가 창설한 것이다.
앙리 수르디스가 보르도로 돌아와서는 장형이 남긴 전통을 따랐다. 즉, 지방장관 에페르농과 충돌하곤 했는데, 주교를 예포 발사로 예우하느냐 마느냐, 가장 신선한 생선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 등등… 아주 중차대한 문제들을 두고 그랬다.
충돌이 무르익어서 한번은 지방장관 수하들이 대주교 마차의 채를 잡아 뽑아 행차를 가로막았다. 이 능욕에 보복하기 위해 대주교가 에페르농의 근위대원들을 즉각 교회에서 파문하고 성직자들에게 지방장관 개인 예배당에서 미사 집전을 금했다. 그뿐 아니라 에페르농 공작이 회개하고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보르도의 모든 교회에서 기도하라고 지시했다.
격노한 공작이 대주교 궁 안에서 3인 이상 모임은 무엇이든 금지함으로써 역공을 날렸다. 이런 명령이 내렸음을 알게 된 수르디스가 거리로 달려 나가 사람들에게 교회의 자유를 지켜달라고 외쳤다. 소란과 고함에 지방장관이 관저에서 나와 대주교와 일대 일로 마주치자 정신 잃을 정도로 화가 나서 단장으로 그를 내리쳤다. 수르디스가 그 즉시 파문을 선포했다.
사건 청문회 때 리슐리외 추기경은 수르디스 편을 들었다. 공작은 자기 봉토로 추방됐고 대주교는 승리자로 남았다. 한참 뒤에 그도 실총됐다.
탈망이 이렇게 적는다. ‘유배지에서 그는 신학을 조금 공부했다.’
그런 기질의 사람은 우르뱅 그랑디를 이해하고 인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자신이 육적 위안에 무심하지 않기에 주임신부의 사소한 기쁨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전투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기에 아랫사람들의 호전적 태도도 기꺼이 감싸주었다. 게다가 주임신부는 언변이 뛰어난데다가 종교나 도덕에 관해 위선적인 말도 삼가고 유용한 정보와 재미난 일화를 잔뜩 갖고 있어서, 한마디로 아주 좋은 대화 상대 축에 들었다.
주임신부가 1631년 봄 대주교를 뵙고 온 뒤 다르마냑이 그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분은 당신한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소이다.’ 그리고 그 호감이 곧 실제에서 나타났다. 대주교가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푸아티에가 아니라 보르도 대주교 재판정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나라 안에서는 리슐리외 추기경이 주도한 대규모 국가적 혁명이 꾸준히 진척되고 있었는데, 그 거센 바람이 이제 거의 갑작스레 이 작은 지방 드라마에 관련된 사람들 사생활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프로테스탄트와 봉건적 거물들의 힘을 분쇄하기 위해 리슐리외가 국토 내에 있는 모든 요새도시를 파괴해야 한다고 국왕과 왕정회의를 설득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탑들이 이미 파괴되고 해자들이 흙으로 메워지고 성벽들이 가로수 길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루덩 성 차례가 됐다.
로마인들이 세운 뒤 중세 시대 내내 개축과 확장을 몇 번이나 반복한 이 성은 푸아투 주 전역에서 최강의 철옹성이었다. 열여덟 개 탑으로 수비되는 성벽이 도시가 서 있는 구릉을 둘러싸고, 그 안에 해자와 내성이 하나 더 있고, 그 안에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우뚝 솟은 거대한 중세 아성이 있었다. 그건 현 지방장관 다르마냑이 1626년에 개축한 것. 보강과 내부 리모델링에 상당한 자금이 들었다.
국왕은 한때 자신의 시종장이었던 그에게 외성이며 다른 것들은 다 파괴한다 해도 지방장관의 아성만큼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사적으로 언질을 주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리슐리외에겐 국왕과 달리 독자적인 견해가 있었다. 그가 보기에 다르마냑은 그저 왕의 작은 총신일 뿐이고 루덩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위그노들의 소굴이었다. 사실, 이 위그노들은 얼마 전에 같은 위그노들이 남쪽에서 로앙 공작4 지휘하에, 또 라 로셸5에서 잉글랜드와 동맹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여전히 정부에 충성을 보였다.
하지만 오늘 충성한다 하여 내일 반역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어쨌든 그들은 이단자들이야. 아니, 안 돼, 성채는 뿌리째 파괴하고 도시는 예부터 내려오던 특전을 깡그리 잃어야 해, 왜냐면 프로테스탄티즘에 전염된 도시가 그런 특전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까.
그 여러 특전을 자신의 도시로, 제 조상들 둥지 가까이에 급하게 세운 도시로 넘긴다는 게 추기경의 계획이었다. 그 도시에도 리슐리외라는 이름이 붙었다.
(루덩의 사회적 정서는 성벽 파괴에 강하게 반대했다... <2편 6 계속>)
관련 포스트: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 d'Estrees (1573-1599) - 앙리 4세는 본래 프로테스탄트였지만 종교전쟁이 끝난 뒤 파리를 얻고 프랑스를 다시 통일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대왕 칭호를 받을 만큼의 정치적 업적 외에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다. 데스트레는 앙리 4세 사이에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보았으며 넷째 출산 중에 자간을 일으켜 사산하고 다음날 숨졌다. [본문으로]
- 언어유희 - ‘수르디스 추기경, 보르도 대주교’ 대신에 ‘방탕한 추기경, 보르델/유곽 대주교’ [본문으로]
- 탈망(Gedeon Tallemant, 1619-1692) - 프랑스 작가, 짤막한 전기 모음집 [본문으로]
- 로앙 (Henri Rohan, 1579-1638) - 프랑스의 군인, 저술가, 위그노파 지도자. <회고록> [본문으로]</회고록>
- 프랑스 서부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위그노전쟁(1562-1598) 때 위그노파의 강력한 요새.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배경. [본문으로]</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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