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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0 루덩의 악마들 9편 6
  2. 2019.07.18 루덩의 악마들 8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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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악마에 사로잡힌 잔느 수녀


 

  그건 또 하나의 이적이었다. 자신을 지배한 것을 자신이 적어도 웬만큼은 지배했다는 점을 다시금 과시한 셈. 저번에는 의지를 발휘하여 레비아탄의 추방을 넌지시 암시하더니, 이번에는 분명 치명적인 급성 심신증 질환의 증세를 다 떨치겠다고 의지를 보이고는 그렇게 한 것이다.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갖춰 입고 채플로 내려가서 다른 자매들과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의사 팡통을 부르러 다시 사람을 보냈고, 달려온 위그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했다. 하나님 권능은 지상의 치료법들을 단연 능가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으며, 앞으로는 우리 치료도 거부하겠지.」 이건 원장수녀의 기록. 

 

  의사 팡통만 가여운 신세가 됐다! 로바르데몽이 루덩으로 돌아온 뒤 사법위원회에 소환됐고, 위원회는 그에게 잔느의 회복이 기적이라는 증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그가 거부했다. 거부하는 근거를 설명해 보라는 압력을 받자 죽을병에 걸렸다가 급작스레 건강해지는 경우는 흔히 자연스레 생길 수 있다면서 이렇게 답변했다. 

 

  “인체에는 체액이라는 물질이 있어서, 느낄 수 있게 배출되거나 피부 모공을 통해 느낄 수 없게 방출되거나, 아니면 생명에 중요한 신체 기관에서 덜 중요한 기관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때, 체액의 작용으로 생긴 불안한 증세는 치료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수 있지요. 이것은 체액이 자연에 의해 완화됨으로써 그렇습니다. 혹은 처음 해로운 체액을 그보다 덜 포악한 다른 체액이 대체할 때도 그렇습니다.” 

 

  팡통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체액은 용변을 보거나 구토하고 땀이며 피를 흘릴 때 배출됩니다. 이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요. 이런 식의 배출은 더운 체액, 특히 담즙이 많은 환자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데, 그들이 질병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은, 진작 썼지만 효능이 늦게 나타나는 약제 때문일 수 있습니다. 체액은 환자 몸에서 좀 빠져나오면서 병의 선행 원인뿐 아니라 복합적 원인도 함께 가지고 나오는 게 분명합니다. 아, 여기에 덧붙일 것이, 여러 체액은 균형 잡힌 움직임 등 자체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듯이, 몰리에르는 자신의 희곡에서 당대 의사들의 무지를 전혀 과장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적었을 뿐이다

 

  이틀이 지났다. 원장수녀가 문득 무슨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 나를 치료해준 성 요셉의 기름을 다 닦아내지 않았으니까 자국이 슈미즈에 아직 남아 있을 거야. 부원장이 보는 앞에서 수녀복을 걷어 올렸다. 

  「우리 둘은 놀라운 향내를 맡았다. 나는 슈미즈를 벗어서 허리춤을 잘라냈다. 슈미즈에는 신성한 향유가 다섯 방울 떨어져 있어, 거기서 천상의 향기가 풍겼다.」 

 

  <젠체하는 새침데기들>[각주:1]에서 고르기부스가 하녀한테 묻는다. “네 젊은 여주인들은 어디 있느냐?” 마로트가 대답한다. “자기네 방에 있지요.” “거기서 뭘 하는 거지?” “입술에 바르는 포마드를 만들어요.” 

  그 시대에는 패션을 아는 여인이라면 누구나 엘리자베스 아덴[각주:2]이 되어 화장품을 제 손으로 만들어야 했다. 얼굴 크림과 손 로션, 입술연지와 향수를 만드는 레시페는 비밀 병기처럼 소중히 간직되고 특별한 친구들 사이에서만 너그럽게 주고받았다. 

 

  잔느는 어려서 집에 있을 때나 수녀원에 들어온 뒤에나 뛰어난 화장품 제조자요 아마추어 약제사였다. 성 요셉의 성유는 신성한 것이 아니라 지상 어딘가에서 나온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거기엔 다들 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다섯 방울이 있었다. 원장수녀가 이렇게 적는다.

  「이 축복받은 성유를 사람들이 얼마나 경건하게 믿으며 이 다섯 방울로써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이적을 역사하셨는지 참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잔느 수녀한테는 이제 자신의 신용을 위한 일급 경이로움이 두 가지나 됐다. 성흔이 나타나는 손, 향내 풍기는 슈미즈. 그 둘은 그녀가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영원한 증거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아직 모자랐다. 

 

  그녀가 루덩에 박혀 있다가는 자기 재능을 매장하는 꼴이라고 느꼈다. 물론 순례자들이 있고 대공들과 귀족들과 고위 성직자들이 도시로 찾아왔다. 

  그러나 루덩까지 올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국왕과 왕비를 생각해 봐! 또 예하께서는 어떻고! 게다가 공작이며 후작들, 프랑스의 장군들, 로마교황의 사절들, 전권대사며 특명대사들, 소르본 박사들, 참사회장들, 대수도원장들, 주교며 대주교들을 생각해 봐! 이 훌륭한 분들이 경이로운 일에 감탄하고, 하느님의 놀라운 호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인 사람을 직접 보고 말을 듣도록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한데 그런 소망을 제 입으로 드러낸다면, 그건 주제넘은 짓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얘기를 먼저 끄집어낸 것은 베게모트였다. 

  한번은 가장 격렬한 엑소시즘이 끝났을 때 레쎄 수사가 악마한테 물었다. 어째서 이다지도 고집스레 저항한 것이냐? 악귀가 대답했다. 원장수녀가 사보이 공국 안시에 있는 살레의 성 프랑수아 묘지로 성지 참배를 떠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몸뚱이에서 나가지 않겠어!   

 

  엑소시즘을 하고 또 했다. 저주를 억수로 받으면서도 베게모트가 그저 미소만 지었다. 게다가 이전의 최후통첩에다 다른 조건을 하나 덧붙이기까지 했다. 반드시 수렝 수사를 불러와야 해! 안 그러면 안시 순례조차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엑소시즘을 받는 원장수녀 잔느

 

  6월 중순 수렝이 다시 루덩에 나타났다. 그러나 성지 참배 출발은 옛 엑소시스트를 불러들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로 드러났다. 예수회 장군 비텔레스키는 제 휘하의 수도사가 수녀와 함께 프랑스를 돌아다닌다는 발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 푸아티에 주교 쪽에서도 자기네 수녀가 예수회 수사와 돌아다닌다는 발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비 문제도 있었다. 왕실 금고는 흔히 그렇듯이 텅 비었다. 수녀들에게 지급한 보조금이며 엑소시스트들에게 들인 급료로 마귀 들림 사건에 국왕은 이미 막대한 금액을 들였다. 그런 마당에 사보이로 유람을 떠난다니! 

 

  그런데도 베게모트는 끝까지 버텼다. 그가 선심 쓰듯 하면서 루덩을 떠나는 데 동의했지만, 그것 또한 잔느와 수렝이 나중에 안시로 성지 순례를 반드시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결국 제 뜻을 관철시키고야 말았다. 수렝과 잔느가 성 프랑수아의 묘지에서 만나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단, 거기까지는 각자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조건 하에. 두 사람이 그렇게 하기로 서약했고, 그 얼마 뒤 10월 15일 베게모트가 자취를 감췄다. 잔느가 마침내 자유로운 몸이 됐다. 두 주일 뒤 수렝이 보르도로 돌아갔다. 

 

  이듬해 봄 트랑킬 수사가 악령의 광란에 휘둘린 끝에 죽었다. 

  국고에서 급료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살아남은 엑소시스트들이 본래 저희 소속 거처로 다 돌아갔다. 그들이 떠나자 남아있던 악마들도 곧 하나씩 둘씩 사라졌다

  여섯 해 쉴 새 없이 벌이던 투쟁 끝에 전투 교회가 악을 상대로 한 싸움을 그만두었다. 
그러자 교회의 적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신속하게 사라졌다. 길고 떠들썩했던 파티가 끝났다. 
만약 엑소시스트들이 없었다면, 악마들도 없었으며, 그런 파티도 결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9편 끝)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3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 몰리에르의 단막 코미디. 1659년 파리 프티 브르봉 극장에서 초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본문으로]
  2. Elizabeth Arden (1884-1966) - 캐나다 출신 사업가로 미국에서 화장품 제국을 이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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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그가 펴놓은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졌다. 이야말로 징후야! 파리라니, 그것도 호두알만한 크기! 바알세불이 파리들의 명령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러가라! 성스러운 수난자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랑탕이 넘실거리는 화염 위로 소리쳤다. 

  파리가 기이하게 큰 소리를 윙윙 내며 날개 쳐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뉴스 데이의 이름으로…” 

 

The Devils of Loudun 1634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그 대신 발작하듯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열한이 숨 막혀 죽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는 거야! 사탄의 마지막 간계를 짓누르려고 랑탕이 연기 속으로 성수를 끼얹었다. 

  “물러가라, 불 뿜는 괴물아! 이 성수가 사탄의 요술을 깨부술 것이야!” 

  그게 먹혀들었다! 기침이 그쳤다. 단말마의 비명이 한 번 더 울리고는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수도사들이 경악스럽게도 화염 한복판에서 희끗거리는 물체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 

  “Deus meus, miserere mei Deus.”[각주:1]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내 적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발작적인 기침이 몇 번 더 나왔다. 곧 이어서 기둥에 묶은 밧줄이 사라지고 희생양이 이글거리는 통나무들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불길이 여전히 날름거리는 가운데 수사들이 계속 성수를 뿌리며 특유의 가락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갑자기 교회 첨탑에서 비둘기 떼가 날아 내려 넘실거리는 화염과 연기 기둥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새떼를 향해 궁수들이 미늘창을 흔들고 랑탕과 트랑킬이 성수를 끼얹기 시작했다. 하지만 헛수고. 비둘기들은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연기 속으로 뛰어들고 불길에 날개를 그슬리며 뱅뱅 감돌기만 했다. 

  양 진영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주임신부의 적수들은 새들이 악마 군단임이 확실하며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고 떠들었다. 주임신부의 친구들은 비둘기들이 성령의 엠블럼이요 그가 결백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그것들이 인간과 다른, 그저 저희 본능에 따르는 비둘기 떼였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은 듯싶다

 

  장작불이 다 수그러들자 형리가 유해를 삽으로 떠서 나침반의 각 기본 방위마다 한 삽씩 흩뿌렸다. 그러자 군중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손가락 데어가며 뜨거운 가루를 뒤적이면서 이빨과 머리뼈며 골반 뼛조각들과 불탄 살점으로 보이는 꺼먼 덩어리 따위를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몇몇은 그저 기념품 사냥꾼인 것이 분명하지만, 대다수는 행운을 안기거나 미지근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부적으로, 두통이나 변비나 누군가의 원한을 막아주는 호부로 삼기 위해 성유물을 찾았다

  이 시커먼 물건들은 주임신부가 결백하든, 아니면 그에게 뒤집어씌운 죄를 정말 범했든 상관없이, 기적 같은 효능을 지닐 것이야! 

 

  이적을 행하는 힘은 성유물의 원천이 아니라 그것이 얻은 평판에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 존재들 중 일부는 광고만 잘 돼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든 건강이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루르드[각주:2]부터 마법에 이르기까지, 갠지스 강에서부터 특허 의약품이며 에디 부인에 이르기까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각주:3]의 이적 행하는 팔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보고 숭배하도록 제프리 초서[각주:4]의 면죄부 판매인이 유리잔에 넣어 다닌 ‘돼지 뼈다귀들’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만약 수도사들 말처럼 그랑디에가 마법사였다면, 아주 좋지. 마법사 유해에는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단 말이야. 만약 주임신부가 무죄였다고 해도 괜찮아, 그는 수난자가 되고 유해는 성스럽게 여겨질 거야. 

  잠깐 새 유해가 다 사라졌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지독하게 피곤하고 목도 마르지만 주머니에 두둑하게 채운 성유물에 좋아하면서 마실 것과 신발 벗을 기회를 찾아 각자 흩어졌다.

 

  그날 저녁 아주 짧은 휴식과 아주 가벼운 요기 뒤에 수도사들이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다시 모였다.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행하자, 그녀가 적당한 발작 상태로 들어서서 랑탕 수사 물음에 대답했다. 그 검은 파리는 바로 바루크였어, 주임신부와 사이좋은 악마 말이야. 

  한데 어째서 바루크가 감히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진 것이지? 

 

엑소시즘을 받은 원장수녀

 

  잔느가 특유의 곡예 동작을 뽐내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가 세우고는 마침내 답변했다. 바루크는 그 책을 불속에 내던지려고 한 거야. 

  그건 다 그럴 듯하게 들렸고, 그러자 수도사들이 일단 엑소시즘을 여기서 멈추고 다음날 아침 중인환시 하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수녀들을 성 십자가 교회로 데려갔다. 관광객들이 아직 도시에 많이 남아 있던 터라 교회가 인파로 미어터졌다. 원장수녀에게 들붙은 악마를 불러냈다. 평범한 의식이 끝난 뒤 원장수녀는 자신이 이사카론이며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악마라고 밝혔다. 내 안에 있던 다른 악마들은 다 지옥으로 갔어, 요란한 파티로 그랑디에의 영혼을 환영해야 하니까! 

  아주 세세한 질문들을 받고 잔느가 엑소시스트들이 한 말을 모두 확실히 보증했다. 맞아, 그랑디에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건 늘 사탄을 의미한 거야, 또 악마를 부인할 때 그건 실제로 그리스도를 부인한 거지. 

 

  랑탕은 그랑디에가 지옥에서 어떤 형벌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원장수녀가 최악의 형벌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흠, 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 어떠냔 말이다! 

  잔느가 한참이나 끙끙대다가 대답했다. “그랑디에는 죗값에 맞게 특별한 형벌을 받지, 특히 정욕의 죗값을 톡톡히 치렀어.” 

  그러면 처형은 어땠나? 마법사가 고통 겪지 않도록 악마가 도와주었나? 

  이사카론이 대꾸했다. 아, 아니야, 사탄은 엑소시즘에 눌려서 기가 꺾였어. 만약 불길에 성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주임신부는 고통이란 걸 못 느꼈을 거야. 하지만 랑탕과 트랑킬, 미카엘이 애쓴 덕분에 극심한 고통을 맛봤지. 

  그런 것쯤이야 지금 그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다른 엑소시스트가 소리쳤다. 랑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지옥 쪽으로 몰아갔다. 지옥의 많은 방들 중 그 마법사는 어디에 떨어졌지? 루시퍼가 그자를 어떻게 맞이했나? 지금 이 순간 그자에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잔느 수녀의 이사카론이 수도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사카론의 상상이 메말랐을 때, 아그네스 수녀가 도우러 나섰다. 그녀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 쓰러졌고, 그녀 입을 통해 악마 베헤리트가 제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날 저녁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이 보기에 랑탕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넋이 빠진 사람 같았다. 어디 아픈 겁니까? 

  랑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프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개운치 못한 점이 있소. 죄인이 그리에 신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했는데,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어. 글쎄, 고해를 가로막아서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아닌가? 

  동료들이 갖가지로 안심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랑탕이 고열에 빠졌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게야. 날 벌하시는 게야.” 연신 중얼거렸다. 

 

  외과의 만누리가 사혈을 하고 약제사 아담이 관장기를 통해 하제를 넣었다. 고열이 가라앉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랑탕이 이제 헛것을 보고 듣기 시작했다. 고문 받으며 그랑디에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장작불 위에서 적수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악마들이 떼거리로 어른거렸다. 그들이 그의 몸으로 들어왔고, 광란 상태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발길질하고 베개를 물어뜯게 만들고, 가장 무서운 신성 모독의 말들을 그 입에 가득 채웠다

 

  9월 18일, 그랑디에 화형 이후 꼭 한 달 지나, 자기한테 병자성사를 베풀던 성직자의 손에서 십자가를 쳐냈다. 그러고는 랑탕이 급사했다. 

  로바르데몽이 호사한 장례비를 댔고, 트랑킬 수사가 설교에서 고인을 신성함의 모델이라 불러 추켜세우며 사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선포했다. 그랑디에를 징벌했다 하여 하나님의 충실한 종에게 복수한 것이오. 

 

  다음 차례는 외과의 만누리였다. 랑탕 수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번은 밤중에 포트 뒤 마트레이 인근에 사는 어떤 병자에게 사혈을 해주러 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롱불 든 하인을 앞세우고 가던 그가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임신부는 악마의 표식들 때문에 바늘로 찔리던 그날처럼 알몸으로 성채 바깥 기슭과 코르들리에 수도원 정원 사이 그랑파베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만누리가 발을 멈추었다. 그가 시커먼 허공을 응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뭘 원하느냐!” 하고 묻는 소리를 하인이 들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외과의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금방 땅바닥에 엎드려 애절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역시 숨이 끊어졌다. 

 

  이제 루이 쇼베 차례가 됐다. 마녀재판이라는 대단히 멍청한 짓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반듯한 치안판사들 중 한 사람. 원장수녀와 많은 수녀들이 그가 마법을 한다고 비난했고, 그들의 고발과 증언을 바레는 자신의 교구에서 여러 마귀 들린 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쇼베는 추기경이 그 광기 어린 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미칠 화에 지극히 겁을 내는 바람에 정신이 상했다. 검은 멜랑콜리에 빠지고 정신쇠약까지 보이다가 겨울이 가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트랑킬은 다른 사람들보다 근성이 더 강했다. 네 해가 지나 1638년 악마에 지나치게 몰두한 후과에 마침내 굴하고 말았다. 그랑디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악마들을 더 키웠고, 터무니없는 공개 엑소시즘으로 악마들이 계속 횡행하게끔 했다. 이제 악마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금물이다. 트랑킬은 제가 열심히 뿌린 것을 거둬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환영들이 드물게 나타나고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악마 개꼬리와 레비아탄이 조금씩 우위를 점하게 됐다. 말년에 트랑킬은 제가 그렇게나 정성 들여 히스테리를 조장했던 수녀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욕설을 내뱉고, 혓바닥을 빼물고, 쉰 목소리를 내고, 개처럼 짖어대고,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푸친회 기록을 보면, ‘악취 풍기는 지옥 올빼미’라 명명한 악마가 동정을 버리고 겸허와 인내와 믿음과 헌신을 다 내팽개치라 유혹하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가 성처녀와 성 요셉을, 성 프란체스코, 성 보나벤투라[각주:5]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마귀 들림이 더 악화되기만 했다. 

 

  1638년 성신강림대축일에 트랑킬이 마지막으로 강론했다. 이삼일 더 그럭저럭 미사를 집전하고 나서 자리보전하고 말았다. 원인은 심신증이 분명하지만 상당히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는 추잡하고 외설한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야말로 악마 계약의 일부인 것이 분명했다! 음식물을 조금 넣을 때마다 악마들이 그를 아주 건강한 사람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격렬하게 구역질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한 두통과 심장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건 ‘갈레노스나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에도 언급되지 않은 종류였다.’ 주말에 이르러 ‘오물과 악취를 연신 내뿜는데, 어찌나 역겨운지 수발드는 이들이 당장 치웠음에도 방안에 있기가 끔찍할 정도였다.’ 

 

  성신강림대축일 다음날인 월요일 병자성사를 베풀게 됐다. 한데 악마들이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나와 침대 곁에 있던 다른 탁발수사의 몸으로 들어갔다. 새로 악귀 들린 사람이 어찌나 광포하게 굴든지 동료 대여섯 명이 겨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끌어내기 전에 그 사람은 거의 숨이 끊긴 트랑킬 수사를 마구 걷어차려고 들었는데, 그걸 말리느라 다들 무진 애를 먹었다. 

  그 대신 장례는 화려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시신으로 몰려들었다. 혹자들은 시신에 묵주를 놓았고, 혹자들은 법의 조각을 베어냈다. 성물처럼 간직하려고 말이다. 밀려드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관에 금이 가고, 각자가 자투리라도 얻으려고 서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시신이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존중받을 만한 이들 몇몇이 예절도 모르는 자들을 내쫓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신부는 벌거숭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법의를 쥐어뜯으면서 시신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트랑킬 신부의 법의 조각들도 이제 성유물이 됐다. 그가 산 채로 불태운 사람의 유해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 불분명해졌다. 마법사는 수난자 같이 죽고, 그의 악마 같은 집행자는 죽은 뒤 성인이 된 것. 그러나 영혼에 바알세불이 들어앉은 성인으로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였으니… 페티시는 그저 페티시일 뿐이라는 점!![각주:6]

  (8편 끝) 

 

관련 포스트: 

 

  1. 하느님,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틴어) [본문으로]
  2. Lourdes - 프랑스 남서부 마을, 성모 마리아가 기적의 치료를 해준다고 하는 성지 [본문으로]
  3. Francis Xavier (1506–1552) - 현 에스파냐 지역인 나바르왕국에서 출생. 로마가톨릭 선교사, 예수회 공동 설립자, 성 이냐시오의 제자. 그의 성유물 중 오른팔은 1614년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분리한 뒤 로마에 있는 교회 은제 성골함에서 전시돼. [본문으로]
  4. Geoffrey Chaucer (1343–1400) - 영국문학의 아버지, 중세 잉글랜드 최고 시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구역에 최초로 안장되다. ‘면죄부 판매인 이야기’는 <켄터베리 이야기>에 실렸다. 사람들 속이는 방법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교훈으로 끝난다. [본문으로]
  5. St. Bonaventura (1221–1274) - 이탈리아 중세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알바노 추기경, 가톨릭 교부. [본문으로]
  6. fetish – 맹목적 숭배물, 미신의 대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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