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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07.18 루덩의 악마들 8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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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철창 너머로 대화하는 잔느 수녀

 


 

  하지만 수렝이 본 것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못 봤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그가 다른 수도사들처럼 가혹한 엑소시즘을 공공연히 벌이는 대신 피후견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 보낸다는 것. 그녀를 가르쳐서 (그녀의 악마들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완성의 길로 이끌려는 시도가 동료들한테는 그저 허튼짓으로 보였을 뿐이다. 더욱이 수렝 본인도 악령에 사로잡혀서 종종 엑소시즘을 필요로 하는 마당에

  (5월에 왕제인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악마들에 대한 호기심을 풀려고 왔을 때, 잔느 수녀 몸에서 불시에 출격한 이사카론이 수렝에게 들러붙었다. 마귀 들린 여인이 정신 멀쩡하게 조용히 냉소 짓고 있는 동안 엑소시스트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서 뒹굴었다. 그런 장면에 왕제야 당연히 좋아했지만, 수렝에게 그 일은 불가사의한 섭리로 인해 겪어야 한 숱한 굴욕의 일부였다.) 

 

  동료들은 수렝의 의도나 활동의 순수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행위를 무분별하다 여겼으며, 그런 무분별로 인해 험담이 나도는 데 쓴 입맛을 다셨다. 이미 여름 막바지에 수도회 관구장은 수렝을 보르도로 소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럿 접하게 됐다. 

 

  원장수녀 역시 시련을 적잖이 맛봐야 했다. 그녀는 성처녀라는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고, 그 역할에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 기대했다. 한데 그렇기는커녕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자매들과 대화할 때 그들에게 들러붙은 악마들을 통해 내게 많은 고통을 내리셨어. 내 행동과 생활방식이 바뀐 것을 보고 대다수 수녀들이 반감을 크게 품은 거지. 그들을 악령들이 자꾸 부추겼다. 원장수녀를 저렇게 바꾼 것은 바로 악마들인데, 이제 그녀는 너희를 멸시하면서 망신 주려 들 것이야! 내가 자매들과 있을 때마다 악령들은 몇몇 자매를 꼬드겨 내 언행을 비웃고 놀리라고 충동질했다. 그건 나한테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었고.」 

 

  수녀들은 엑소시즘 중에 원장수녀를 가리켜 ‘신을 섬기는 악마’라 불렀다. 수렝을 제외하고 다른 엑소시스트들도 정말 그런 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성 요셉한테서 묵상기도의 은사를 받았다고 잔느가 다른 수녀들한테 단언해봤자 소용없었다. “하나님 권세로써 정관(靜觀)의 경지에 오르고, 그리하여 큰 계시를 얻었으며, 우리 주님이 특별하고 은밀하게 내 영혼에 와 닿았어요” 하고 겸손하게 설명해봤자 씨도 안 먹혔다. 

거룩한 지혜의 이 살아 있는 샘물 앞에서 부복할 만도 했거늘 엑소시스트들은 이것이 마귀 들린 자가 흔히 겪는 망상이라고 폄하할 뿐이었다. 그런 몰이해와 냉혹함에 부닥치면 원장수녀가 주춤하여 광기에 빠지거나, 아니면 소중하고 선량하고 사람 잘 믿는 수렝 수사와 함께 다락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렝 수사조차 그녀한테는 고난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내렸다는 특별한 은혜 운운을 죄다 믿을 준비가 충분히 돼 있었다. 하지만 거룩함에 대한 그의 이상은 불편할 정도로 높고, 그가 평가하는 잔느 수녀 품성은 불편할 정도로 낮았다

  혹자가 자신을 교만하고 방탕한 사람이라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그런 불쾌한 진실을 다른 사람 입으로 듣는 것은, 차이가 아주 크다.

 

  잔느의 흠결을 들추면서 수렝이 만족을 얻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그런 면을 바로잡아 주려고 늘 애썼을 뿐이다. 그는 원장수녀가 악마들에 사로잡혔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악마는 제물의 흠결을 이용하여 권세를 부린다는 점도 굳게 믿었다. 흠결을 제거하면 악령도 떨어질 터. 그렇기 때문에, 수렝의 말에 따르자면, ‘기수를 안장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말을 공격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말은 공격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왜냐하면 잔느 수녀가 ‘완성을 얻어 신에게 나아가기로’ 굳게 결심했다 할지라도, 스스로는 이미 성자라고 여기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그저 지각없는 (혹은 지나치게 의도적인) 코미디언으로 볼 때 가슴 아팠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신성함으로 들어서는 과정이 지극히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장수녀 잔느

 

  수렝은 그녀가 체험하는 법열이나 무아지경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거기에 그녀가 우쭐거렸다. 암,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나 그보다 아직은 참회와 고행에 더 진지하게 대했다. 그래서 그녀가 주제넘게 굴 때마다 호되게 꾸짖었다. 그녀가 공개적인 참회나 수련수녀 신분으로 강등 같이 여봐란 듯한 속죄 장면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할 때, 수렝은 그런 것보다 작고 눈에 띄지 않지만 꾸준한 고행이 더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가끔 일어난 일이지만 그녀가 귀부인처럼 행세할 때면, 그는 그녀를 부엌데기처럼 대했다.

 

  그런 취급에 감정이 격해지자 그녀가 레비아탄의 오만한 분노나 신에 대한 베게모트의 불경스러움, 발람의 외설스러운 농담 따위에서 도피처를 찾았다. 

  수렝은 이때까지 악마들이 아주 즐기던 엑소시즘에 의존하는 대신 사납게 들끓는 그들한테 스스로 채찍질하라고 명령했다. 자기계발을 위해서는 거리낌 없음과 진짜 갈망을 늘 지니고 있는 원장수녀가 여기에 동의하자 다른 악마들도 따라야 했다. 악마들이 말했다. “우리는 교회에 맞설 수 있고, 성직자들한테 덤빌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암캐의 고집에는 저항할 수 없어!” 

 

  악마들이 저들 특질에 따라 불평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도 고행용 채찍을 참아냈다. 레비아탄이 가장 세게 때리고, 그 다음이 베게모트였다. 그러나 발람과 특히 이사카론은 통증을 지독히 무서워했다. ‘정욕의 악마가 채찍을 맞으며 울부짖는 장면은 정말 볼만했다’고 수렝이 말한다. 채찍질은 실상 가벼운 것이었다. 하지만 비명이 귀청을 때리고 눈물이 폭포 같았다. 

악마들은 정상 상태에 있는 잔느 수녀보다 아픔을 더 견디지 못했다. 한번은 레비아탄 때문에 야기된 심신증 증세를 떨치기 위해 그녀가 한 시간 내내 제 몸을 채찍으로 때렸다. 그러나 대개는 자기징벌 몇 분이면 악령들이 달아났고, 그러면 잔느 수녀가 완전한 경지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그건 고난의 행진이었다. 한데, 적어도 원장수녀가 보기에 완전한 경지에는 한 가지 중대한 흠이 있었다. 그건 수렝 신부가 쩍하면 강조하는 작은 고행처럼 사람들 이목을 끌지 못한다는 점. 잔느가 혼자 중얼거렸다. 

  넌 이미 정관의 경지에 올라섰어, 저 높은 곳과 사적으로 접하는 영광을 얻었어. 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사람들한테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없잖아! 

 

  자신이 받은 은혜를 사람들한테 말했지만, 그들 반응이라야 기껏해야 고개를 젓거나 어깨를 추썩이는 것일 뿐. 그녀가 축복받은 마더 테레사가 했을 법한 행동을 하고 다닐 때,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거나 화를 내며 그녀를 위선자라 불렀다. 더 설득력 있는 뭔가가, 사람들 눈길을 끌고 분명히 초자연적인 뭔가가 필요했다. 악마의 이적 따위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잔느 수녀가 마귀 들린 여인들의 여왕 노릇을 그만두고 생전에 성인 반열에 오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녀가 보인 성스러운 기적들 중 첫 번째가 1635년 2월에 일어났다. 

 

  하루는 이사카론이 털어놓는 얘기가 이랬다. 익명의 마법사 셋이 말이야, 둘은 루덩 출신이고 하나는 파리지앵인데, 축성된 면병 세 개를 가로챘어, 그리고 그걸 불태우려고 한단 말이야! 

  수렝이 즉각 이사카론에게 명했다. 네가 파리로 가서 그들이 매트리스 밑에 숨겨둔 면병을 가져 오거라! 

  이사카론이 사라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이사카론을 도우라고 발람한테 명령했지만 한사코 거부하며 수렝의 천사와 싸우다가 결국 복종하게 됐다. 다음날 저녁식사 후 벌이는 엑소시즘 때 면병 세 개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명령이었다. 

 

  지정된 시각에 발람과 이사카론이 수렝 앞에 나타나 잔느 몸 안에서 이리저리 나대며 저항하던 끝에 면병이 제단 위 벽감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고서 악마들은 원장수녀의 아주 작은 몸뚱이가 길게 늘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한껏 내뻗은 팔 끝에서 손이 벽감으로 들어가더니 꼼꼼하게 접힌 종이쪽을 들고 나왔는데, 거기에 면병 세 개가 싸여 있었다.

 

  이 안쓰러울 정도로 수상쩍은 경이로움을 수렝은 중요한 징표로 간주했다. 그러나 잔느의 자서전에는 이 스토리가 그리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 남을 잘 믿는 영적 지도자를 멋지게 골려준 트릭을 부끄럽게 여긴 걸까? 아니면, 그 기적을 썩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은 건가? 이 사건에서 그녀가 주된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한테는 전적으로 본인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이적이 필요했고, 그 원하던 것을 그해 가을에 결국 얻었다. 

 

  수도회 내부 여론에 견디다 못해 아키텐 관구장이 10월 말경 수렝에게 보르도로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그 자리에는 좀 덜 기이한 엑소시스트를 지명했다. 이 소식이 루덩까지 알려지자 레비아탄은 기뻐 날뛰었지만 제 정신으로 돌아온 잔느 수녀는 되레 침울해졌다.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성 요셉에게 기도한 끝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서 이 오만한 악마를 물리치게 하리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그 뒤 사나흘 동안 자리보전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아져서 자기한테 엑소시즘을 시행해 달라고 청했다. 「그건 많은 귀빈들이 엑소시즘을 보러 교회에 와 있던 그날 (11월 5일) 생긴 일이었다. 난 여기서 신의 특별한 섭리를 보았다.」 (VIP들이 교회에 올 때면 늘 ‘특별한 섭리’가 나타났다. 바로 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악마들이 늘 가장 아슬아슬한 묘기를 부린 것이다.) 

 

  엑소시즘이 시작되고 금방 ‘레비아탄이 나타나서 성직자한테 승리를 거뒀노라고 떠벌렸다.’ 수렝이 성체에 경배하라고 이르면서 악령에게 역공을 가했다. 그러자 여느 때처럼 레비아탄이 울부짖으며 발광했다. 

  그때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허락하셨다.’ 레비아탄이 엑소시스트 발밑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혹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잔느 수녀가 그렇게 한 것. 악령은 수렝의 명예를 더럽히고자 간계를 꾸몄노라 시인하고는 용서를 빌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발작을 일으킨 뒤 원장수녀 몸에서 떠났다. 영원히. 

 

  이야말로 수렝의 승리이자 그의 방법론이 옳다는 증거였다. 이 장면에 감명 받은 다른 엑소시스트들이 수렝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고, 수도회 관구장이 수렝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했다. 

  잔느 수녀가 원하던 바를 얻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이 악마들을 웬만큼은 지배할 수 있다는 점도 과시했다. 악마들이 그녀를 미치광이처럼 날뛰게 만들 수 있지만,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악마들을 영원히 내쫓을 수도 있는 것

 

  레비아탄이 달아난 뒤 핏빛 십자가가 원장수녀 이마에 나타나더니 세 주일 내내 또렷한 형태를 유지했다. 이적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더 효과적인 뭔가가 뒤따라야 했다

  이제 발람이 뜻을 밝혔다. 난 원장수녀 몸에서 떠날 용의가 있는데, 떠나게 되면 기념으로 내 이름을 그녀 왼손에 적어 넣겠어, 그러면 죽을 때까지 손바닥에 남아 있을 거야. 하지만 못된 장난을 일삼는 스피릿의 서명을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예측을 잔느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흠, 악령한테 예를 들어 성 요셉의 이름자를 쓰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렝의 조언을 좇아 그녀가 성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아홉 번 연속 영교 과정에 들어섰다. 그 아흐레 기도를 막으려고 발람이 별의별 짓을 다했다. 그러나 육신에 병이 도지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히는 짓도 소용없었다. 원장수녀가 꿋꿋이 맞섰다. 

 

  언젠가 아침에 미사 드리기 직전 (못된 장난과 신성 모독의 악령들인) 발람과 베게모트가 그녀 두개골로 기어들어 어찌나 소란 피우고 혼란스럽게 하든지 그녀가 잘못인 줄 빤히 알면서도 식당으로 달려가고픈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거기서 ‘나는 음식에 게걸스레 달려들어 굶주린 장정 셋이 온종일 먹는 것보다 더 많이 먹어 치웠어.’ 그렇게 잔뜩 배를 채운 뒤 성체 배령은 불가능했다. 이것이 모든 구상을 위협하게 됐다.

 

  비탄에 잠긴 잔느가 수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가 영대를 걸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악령이 다시 내 머리에 파고들더니 곧장 나로 하여금 산더미처럼 많은 양을 토하게 만들었다.’ 그런 뒤 발람이 이제 수녀의 위장이 텅 비었다고 장담하자, 수렝은 그녀가 성체를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런 곡절 끝에 나는 성 요셉을 향한 아흐레 기도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11월 29일 못된 장난과 사악한 웃음의 악마가 마침내 떨어져 나갔다. 이 사건 때 구경꾼들 중에 영국인 두 명이 있었다. 맨체스터 백작의 아들로서 얼마 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신개종자의 열정으로 기적을 믿는 월터 몬테규, 또 그의 젊은 친구이자 부하이며 나중에 극작가가 된 토마스 킬리그루. 

  며칠 뒤 킬리그루가 잉글랜드에 있는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루덩에서 본 것을 낱낱이 전달했다. 그는 그 경험이 ‘자신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각주:1]

 

   방문 첫날 수녀원 교회에서 그는 귀신들린 수녀 네댓이 무릎 꿇고 나직이 기도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들 등 뒤에 엑소시스트가 한 명씩 서서 줄을 쥐고 있는데, 그 다른 끝이 각 수녀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그 줄마다 작은 십자가들이 매달려 있어서 악마들의 작은 광란을 통제하는 개줄 역할을 했다. 그렇긴 해도 아직은 모든 게 평온하고 차분했으며 ‘나는 무릎 꿇은 것 외에 특기할 만한 장면은 전혀 못 봤다.’ 

 

  그러나 삼십 분 뒤 개중에 두 수녀가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하나는 수도사 목에 들러붙고, 다른 하나는 혀를 내밀고 제 엑소시스트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입맞춤하려고 들었다. 그러는 동안 으르렁대는 소리가 숙사와 교회를 가로막은 격자 창살을 통해 사납게 들려 왔다. 

 

  그 다음에 젊은 킬리그루를 월터 몬테규가 불러 마귀 들린 수녀들이 과시하는 독심술을 직접 경험하라고 했다. 악마들이 개종자의 생각은 읽을 수 있지만, 킬리그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아맞힐 수 없었다. 독심술을 자랑하는 중에 악마들은 칼뱅을 위해 기도하고 로마가톨릭교회를 저주했다. 그러다가 악귀 하나가 문득 사라졌기에 구경꾼들이 그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수녀가 응답하는데 어찌나 추잡하든지, 그 답변을 <유럽 매거진> 편집인이 지면에 싣지 못할 정도였다. 

  이어서 예쁘고 어린 아그네스 수녀를 대상으로 엑소시즘이 시작됐다. 킬리그루가 이 장면을 어떻게 묘사했는지는 이미 앞의 장에서 얘기했다. 이 아름다운 피조물을 다부진 농민 둘이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엑소시스트가 가슴에 이어 하얀 목을 발로 밟는 광경은 젊은 신사의 가슴을 공포와 혐오로 채웠다

 

  다음날 그런 장면이 모조리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엔 퍼포먼스가 흥미는 더 일으키고 비위는 덜 거스르는 식으로 끝났다. 킬리그루가 이렇게 쓴다. 

  「기도가 끝나고 그녀(원장수녀)가 탁발수사(수렝) 쪽으로 돌아서자 그가 그녀 목에 작은 십자가들이 달린 밧줄을 걸고 세 번 돌려 묶었다. 그녀는 내내 무릎 꿇고 앉아서 줄이 바짝 조일 때까지 기도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일어나서는 묵주 알 세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제단에 경의를 표한 뒤 장의자로 갔다. 그건 엑소시즘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채플 안에는 그런 것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정신분석학에서 쓰는 소파의 이 원형이 아직도 현존할까? 궁금하다.)

 

  「이 장의자 머리는 제단 쪽을 향해 있었다. 그녀가 어찌나 겸허한 자세로 다가갔는지, 수도사들의 기도가 없이 그 참을성 하나만으로도 악마를 내쫓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장의자에 와서 눕더니 제 몸을 수도사가 로프 두 개로 의자와 함께 묶도록 거들었다. 허리 부위를 묶고, 허벅지며 다리를 또 묶었다. 그렇게 묶인 상태에서 성체가 담긴 상자를 들고 있는 성직자를 보자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치 고문을 앞둔 사람처럼 온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만이 내보인 특별한 겸허함과 참을성이 아니었다. 다른 수녀들도 그런 경우에 다 그렇게 했으니까. 엑소시즘이 진행됐을 때, 마귀 들린 다른 수녀가 다른 수도사를 부르더니 장의자에 누워서 단단히 묶어 달라고 했다. 

  그들이 본래 모습일 때 얼마나 얌전하게 제단으로 나아가는지, 수녀원에서 얼마나 조신하게 걸어 다니는지를 보면 야릇한 마음이 든다. 그들의 표정과 얼굴은 신앙에 삶을 바친 처녀들답게 정숙하다. 이 원장수녀도 엑소시즘을 시작할 때는 차분하게 누워 있었다. 잠자는 듯이…」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작하자 일이 분 뒤 발람이 나타났다. 사지를 뒤틀고 경련을 일으키고 하느님을 거세게 모욕하는 말이 나오고...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7-1편 3

루덩의 악마들 6편 3

루덩의 악마들 5편 2

루덩의 악마들 4편 4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2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이 서신은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1803년 2월 호 <유럽 매거진>에 실렸다. - 저자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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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그가 펴놓은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졌다. 이야말로 징후야! 파리라니, 그것도 호두알만한 크기! 바알세불이 파리들의 명령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러가라! 성스러운 수난자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랑탕이 넘실거리는 화염 위로 소리쳤다. 

  파리가 기이하게 큰 소리를 윙윙 내며 날개 쳐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뉴스 데이의 이름으로…” 

 

The Devils of Loudun 1634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그 대신 발작하듯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열한이 숨 막혀 죽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는 거야! 사탄의 마지막 간계를 짓누르려고 랑탕이 연기 속으로 성수를 끼얹었다. 

  “물러가라, 불 뿜는 괴물아! 이 성수가 사탄의 요술을 깨부술 것이야!” 

  그게 먹혀들었다! 기침이 그쳤다. 단말마의 비명이 한 번 더 울리고는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수도사들이 경악스럽게도 화염 한복판에서 희끗거리는 물체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 

  “Deus meus, miserere mei Deus.”[각주:1]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내 적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발작적인 기침이 몇 번 더 나왔다. 곧 이어서 기둥에 묶은 밧줄이 사라지고 희생양이 이글거리는 통나무들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불길이 여전히 날름거리는 가운데 수사들이 계속 성수를 뿌리며 특유의 가락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갑자기 교회 첨탑에서 비둘기 떼가 날아 내려 넘실거리는 화염과 연기 기둥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새떼를 향해 궁수들이 미늘창을 흔들고 랑탕과 트랑킬이 성수를 끼얹기 시작했다. 하지만 헛수고. 비둘기들은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연기 속으로 뛰어들고 불길에 날개를 그슬리며 뱅뱅 감돌기만 했다. 

  양 진영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주임신부의 적수들은 새들이 악마 군단임이 확실하며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고 떠들었다. 주임신부의 친구들은 비둘기들이 성령의 엠블럼이요 그가 결백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그것들이 인간과 다른, 그저 저희 본능에 따르는 비둘기 떼였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은 듯싶다

 

  장작불이 다 수그러들자 형리가 유해를 삽으로 떠서 나침반의 각 기본 방위마다 한 삽씩 흩뿌렸다. 그러자 군중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손가락 데어가며 뜨거운 가루를 뒤적이면서 이빨과 머리뼈며 골반 뼛조각들과 불탄 살점으로 보이는 꺼먼 덩어리 따위를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몇몇은 그저 기념품 사냥꾼인 것이 분명하지만, 대다수는 행운을 안기거나 미지근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부적으로, 두통이나 변비나 누군가의 원한을 막아주는 호부로 삼기 위해 성유물을 찾았다

  이 시커먼 물건들은 주임신부가 결백하든, 아니면 그에게 뒤집어씌운 죄를 정말 범했든 상관없이, 기적 같은 효능을 지닐 것이야! 

 

  이적을 행하는 힘은 성유물의 원천이 아니라 그것이 얻은 평판에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 존재들 중 일부는 광고만 잘 돼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든 건강이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루르드[각주:2]부터 마법에 이르기까지, 갠지스 강에서부터 특허 의약품이며 에디 부인에 이르기까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각주:3]의 이적 행하는 팔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보고 숭배하도록 제프리 초서[각주:4]의 면죄부 판매인이 유리잔에 넣어 다닌 ‘돼지 뼈다귀들’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만약 수도사들 말처럼 그랑디에가 마법사였다면, 아주 좋지. 마법사 유해에는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단 말이야. 만약 주임신부가 무죄였다고 해도 괜찮아, 그는 수난자가 되고 유해는 성스럽게 여겨질 거야. 

  잠깐 새 유해가 다 사라졌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지독하게 피곤하고 목도 마르지만 주머니에 두둑하게 채운 성유물에 좋아하면서 마실 것과 신발 벗을 기회를 찾아 각자 흩어졌다.

 

  그날 저녁 아주 짧은 휴식과 아주 가벼운 요기 뒤에 수도사들이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다시 모였다.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행하자, 그녀가 적당한 발작 상태로 들어서서 랑탕 수사 물음에 대답했다. 그 검은 파리는 바로 바루크였어, 주임신부와 사이좋은 악마 말이야. 

  한데 어째서 바루크가 감히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진 것이지? 

 

엑소시즘을 받은 원장수녀

 

  잔느가 특유의 곡예 동작을 뽐내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가 세우고는 마침내 답변했다. 바루크는 그 책을 불속에 내던지려고 한 거야. 

  그건 다 그럴 듯하게 들렸고, 그러자 수도사들이 일단 엑소시즘을 여기서 멈추고 다음날 아침 중인환시 하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수녀들을 성 십자가 교회로 데려갔다. 관광객들이 아직 도시에 많이 남아 있던 터라 교회가 인파로 미어터졌다. 원장수녀에게 들붙은 악마를 불러냈다. 평범한 의식이 끝난 뒤 원장수녀는 자신이 이사카론이며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악마라고 밝혔다. 내 안에 있던 다른 악마들은 다 지옥으로 갔어, 요란한 파티로 그랑디에의 영혼을 환영해야 하니까! 

  아주 세세한 질문들을 받고 잔느가 엑소시스트들이 한 말을 모두 확실히 보증했다. 맞아, 그랑디에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건 늘 사탄을 의미한 거야, 또 악마를 부인할 때 그건 실제로 그리스도를 부인한 거지. 

 

  랑탕은 그랑디에가 지옥에서 어떤 형벌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원장수녀가 최악의 형벌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흠, 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 어떠냔 말이다! 

  잔느가 한참이나 끙끙대다가 대답했다. “그랑디에는 죗값에 맞게 특별한 형벌을 받지, 특히 정욕의 죗값을 톡톡히 치렀어.” 

  그러면 처형은 어땠나? 마법사가 고통 겪지 않도록 악마가 도와주었나? 

  이사카론이 대꾸했다. 아, 아니야, 사탄은 엑소시즘에 눌려서 기가 꺾였어. 만약 불길에 성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주임신부는 고통이란 걸 못 느꼈을 거야. 하지만 랑탕과 트랑킬, 미카엘이 애쓴 덕분에 극심한 고통을 맛봤지. 

  그런 것쯤이야 지금 그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다른 엑소시스트가 소리쳤다. 랑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지옥 쪽으로 몰아갔다. 지옥의 많은 방들 중 그 마법사는 어디에 떨어졌지? 루시퍼가 그자를 어떻게 맞이했나? 지금 이 순간 그자에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잔느 수녀의 이사카론이 수도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사카론의 상상이 메말랐을 때, 아그네스 수녀가 도우러 나섰다. 그녀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 쓰러졌고, 그녀 입을 통해 악마 베헤리트가 제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날 저녁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이 보기에 랑탕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넋이 빠진 사람 같았다. 어디 아픈 겁니까? 

  랑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프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개운치 못한 점이 있소. 죄인이 그리에 신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했는데,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어. 글쎄, 고해를 가로막아서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아닌가? 

  동료들이 갖가지로 안심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랑탕이 고열에 빠졌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게야. 날 벌하시는 게야.” 연신 중얼거렸다. 

 

  외과의 만누리가 사혈을 하고 약제사 아담이 관장기를 통해 하제를 넣었다. 고열이 가라앉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랑탕이 이제 헛것을 보고 듣기 시작했다. 고문 받으며 그랑디에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장작불 위에서 적수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악마들이 떼거리로 어른거렸다. 그들이 그의 몸으로 들어왔고, 광란 상태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발길질하고 베개를 물어뜯게 만들고, 가장 무서운 신성 모독의 말들을 그 입에 가득 채웠다

 

  9월 18일, 그랑디에 화형 이후 꼭 한 달 지나, 자기한테 병자성사를 베풀던 성직자의 손에서 십자가를 쳐냈다. 그러고는 랑탕이 급사했다. 

  로바르데몽이 호사한 장례비를 댔고, 트랑킬 수사가 설교에서 고인을 신성함의 모델이라 불러 추켜세우며 사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선포했다. 그랑디에를 징벌했다 하여 하나님의 충실한 종에게 복수한 것이오. 

 

  다음 차례는 외과의 만누리였다. 랑탕 수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번은 밤중에 포트 뒤 마트레이 인근에 사는 어떤 병자에게 사혈을 해주러 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롱불 든 하인을 앞세우고 가던 그가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임신부는 악마의 표식들 때문에 바늘로 찔리던 그날처럼 알몸으로 성채 바깥 기슭과 코르들리에 수도원 정원 사이 그랑파베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만누리가 발을 멈추었다. 그가 시커먼 허공을 응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뭘 원하느냐!” 하고 묻는 소리를 하인이 들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외과의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금방 땅바닥에 엎드려 애절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역시 숨이 끊어졌다. 

 

  이제 루이 쇼베 차례가 됐다. 마녀재판이라는 대단히 멍청한 짓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반듯한 치안판사들 중 한 사람. 원장수녀와 많은 수녀들이 그가 마법을 한다고 비난했고, 그들의 고발과 증언을 바레는 자신의 교구에서 여러 마귀 들린 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쇼베는 추기경이 그 광기 어린 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미칠 화에 지극히 겁을 내는 바람에 정신이 상했다. 검은 멜랑콜리에 빠지고 정신쇠약까지 보이다가 겨울이 가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트랑킬은 다른 사람들보다 근성이 더 강했다. 네 해가 지나 1638년 악마에 지나치게 몰두한 후과에 마침내 굴하고 말았다. 그랑디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악마들을 더 키웠고, 터무니없는 공개 엑소시즘으로 악마들이 계속 횡행하게끔 했다. 이제 악마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금물이다. 트랑킬은 제가 열심히 뿌린 것을 거둬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환영들이 드물게 나타나고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악마 개꼬리와 레비아탄이 조금씩 우위를 점하게 됐다. 말년에 트랑킬은 제가 그렇게나 정성 들여 히스테리를 조장했던 수녀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욕설을 내뱉고, 혓바닥을 빼물고, 쉰 목소리를 내고, 개처럼 짖어대고,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푸친회 기록을 보면, ‘악취 풍기는 지옥 올빼미’라 명명한 악마가 동정을 버리고 겸허와 인내와 믿음과 헌신을 다 내팽개치라 유혹하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가 성처녀와 성 요셉을, 성 프란체스코, 성 보나벤투라[각주:5]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마귀 들림이 더 악화되기만 했다. 

 

  1638년 성신강림대축일에 트랑킬이 마지막으로 강론했다. 이삼일 더 그럭저럭 미사를 집전하고 나서 자리보전하고 말았다. 원인은 심신증이 분명하지만 상당히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는 추잡하고 외설한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야말로 악마 계약의 일부인 것이 분명했다! 음식물을 조금 넣을 때마다 악마들이 그를 아주 건강한 사람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격렬하게 구역질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한 두통과 심장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건 ‘갈레노스나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에도 언급되지 않은 종류였다.’ 주말에 이르러 ‘오물과 악취를 연신 내뿜는데, 어찌나 역겨운지 수발드는 이들이 당장 치웠음에도 방안에 있기가 끔찍할 정도였다.’ 

 

  성신강림대축일 다음날인 월요일 병자성사를 베풀게 됐다. 한데 악마들이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나와 침대 곁에 있던 다른 탁발수사의 몸으로 들어갔다. 새로 악귀 들린 사람이 어찌나 광포하게 굴든지 동료 대여섯 명이 겨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끌어내기 전에 그 사람은 거의 숨이 끊긴 트랑킬 수사를 마구 걷어차려고 들었는데, 그걸 말리느라 다들 무진 애를 먹었다. 

  그 대신 장례는 화려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시신으로 몰려들었다. 혹자들은 시신에 묵주를 놓았고, 혹자들은 법의 조각을 베어냈다. 성물처럼 간직하려고 말이다. 밀려드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관에 금이 가고, 각자가 자투리라도 얻으려고 서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시신이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존중받을 만한 이들 몇몇이 예절도 모르는 자들을 내쫓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신부는 벌거숭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법의를 쥐어뜯으면서 시신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트랑킬 신부의 법의 조각들도 이제 성유물이 됐다. 그가 산 채로 불태운 사람의 유해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 불분명해졌다. 마법사는 수난자 같이 죽고, 그의 악마 같은 집행자는 죽은 뒤 성인이 된 것. 그러나 영혼에 바알세불이 들어앉은 성인으로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였으니… 페티시는 그저 페티시일 뿐이라는 점!![각주:6]

  (8편 끝) 

 

관련 포스트: 

 

  1. 하느님,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틴어) [본문으로]
  2. Lourdes - 프랑스 남서부 마을, 성모 마리아가 기적의 치료를 해준다고 하는 성지 [본문으로]
  3. Francis Xavier (1506–1552) - 현 에스파냐 지역인 나바르왕국에서 출생. 로마가톨릭 선교사, 예수회 공동 설립자, 성 이냐시오의 제자. 그의 성유물 중 오른팔은 1614년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분리한 뒤 로마에 있는 교회 은제 성골함에서 전시돼. [본문으로]
  4. Geoffrey Chaucer (1343–1400) - 영국문학의 아버지, 중세 잉글랜드 최고 시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구역에 최초로 안장되다. ‘면죄부 판매인 이야기’는 <켄터베리 이야기>에 실렸다. 사람들 속이는 방법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교훈으로 끝난다. [본문으로]
  5. St. Bonaventura (1221–1274) - 이탈리아 중세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알바노 추기경, 가톨릭 교부. [본문으로]
  6. fetish – 맹목적 숭배물, 미신의 대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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