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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등 인상파 대가들과 같은 반열에 놓는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1864-1901)의 기구한 운명과 작품

 

 

삶과 창작과 사랑의 비극

저명하고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앙리 로트렉은 운명에 의해 정상적인 삶에서 바닥으로 던져졌다. 이건 그의 구원이기도 하고 파멸과 성공과 수치이기도 했다. 극적인 운명, 단순한 상업광고를 높은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화가로서의 재능, 굳은 의지와 삶에 대한 애정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인물.

 

키 작은 천재의 인생 비극

 

이젤 앞에 있는 앙리

 

프랑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1864년 태어났다. 가문의 혈통을 중시한 부모는 사촌지간이었고, 유전적으로 열등한 자식을 낳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고 병치레가 잦았다.
나이 열셋에 앙리는 말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지고, 1년 뒤 같은 상황에서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뼈를 다 맞추었지만, 그 뒤로 성장이 멈추어 키가 150센티미터에 그쳤다. 이건 Piknodizostoz라는 희귀한 난치병일 가능성이 높다. 

아들에게 기대가 컸던 아버지가 이 건강 문제에 크게 실망하고 화를 내기까지 했다. 백작 부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아들은 집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앙리 툴루즈-로트렉의 초상화: 조반니 볼디지 작(作)

 

그의 머리와 두 손은 지나치게 큰데 두 다리는 짧고 두 발은 작았다. 지나치게 큰 두개골을 항상 검은 모자로 숨기고 묵직한 턱은 무성한 수염으로 가렸다. 그의 옷장을 헐렁한 바지와 긴 코트 등속이 차지했다. 또 변함없는 특징은 구부러진 대나무 지팡이를 항상 짚고 다니는 것.

운명은 그에게 가혹했다, 그는 매일 자신이 남들과 다를 바 없음을 증명해야 했다. 더 못난 것이 하나 없으며, 외려 많은 면에서 더 낫다는 것을. 또한 그에게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그리고 술독에 빠지고 파리 보헤미안 생활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거기서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었다. 사랑까지도. 그런 생활이 입맛에 딱 맞았다.

 
자화상
 

나이 열아홉에 그는 몽마르트와 매춘 업소의 단골이 되었고, 파리의 밤 생활 관찰과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했다. 그는 본성적으로 재미와 즐거움, 축제를 찾아다녔다. 달리 말하자면, 가족한테 얻지 못한 것을 편견이 없고 반짝이는 재미가 있는 세계에서, 기형적으로 작은 사람을 편안하게 받아들인 세계에서 찾아냈다. 그 세계에서 그는 사실상 죽는 날까지 지낸다.

 

앙리 로트렉의 사랑과 고통


성장이 멈추어 키가 아주 작았지만, 그의 물건은 지나치게 컸다. 그 스스로 자신을 주둥이가 아주 커다란 주전자라고 불렀다. 그는 자기 그림의 모델들과 분방한 성생활을 벌였는데, 특히 젊은 마리 샤를의 입에서 그의 비상한 성적 능력에 관한 소문이 퍼졌다.

 

몽마르트의 거주자들한테서 그는 인기가 매우 좋았다. 왜냐면 그들과 허물없이 친절하게 배려하며 지냈으니까. 그는 매음굴의 여성들을 거리낌없이 극장에 초대하고 그들과 파리의 밤거리를 누비고 선물을 주곤 했다. 심지어 댄서며 창녀, (매춘을 부업으로 하는) 세탁부들한테 열정적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런 여성 탐닉으로 인해 등이 굽은 돈 후안이라는 별명마저 얻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랑을 꿈꾸지 않았다. 자기를 있는 모습 그대로 정말 사랑할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평생 꿈꾸었다.

 
 
앙리 로트렉의 유화
 

그리고 한번은 그에게 운명의 여신이 미소 지은 듯했다. 같은 계층의 여성과 만나게 됐다. 순수한 영혼과 천사의 마음씨를 지닌 그녀의 이름은 알리나였다. 로트렉은 술을 끊고 요란한 파티도 더 이상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아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충격받은 부모가 딸 알리나를 얼마 전까지 머물던 수녀원으로 돌려보낸 것. 로트렉은 자신이 평온한 가정을 꾸릴 팔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욕실의 여인>. 1889. 67 X 54. 파스텔화. 프랑스 파리 오르세 박물관 소장.
 

앙리 로트렉은 몽마르트에서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가벼움과 젊음, , 아름다움 등에 계속 빠졌다. 고삐 풀린 재미, 단순하고 저속한 유흥이 그의 기질에 맞았다. , 자신을 향한 비뚤어진 시선과 동정, 경멸에 무심한 척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코르셋 차림의 여인>
 
구원과 예술
 
사진. 앙리 로트렉의 망중한
 
귀족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기회를 박탈당한 앙리 로트렉은 그림 그리기에 전념했고, 그것이 그에게 구원이 됐다.

세 살 때 (돌이 지나 죽은) 아우의 세례식에서 그림 솜씨로 이미 가족을 놀라게 했으며, 화가로 대성할 것이라고 짐작들 했다. 아우가 죽은 뒤 부모가 이혼했고, 한동안 어린 앙리는 유모와 살았다. 여덟 살이 되어서야 모친의 시골 영지로 돌아갔다. 

동물을 주로 그리는 화가 르네 Princeteau의 스튜디오에서 첫 기초를 닦기 시작했다. 그는 부친의 지인이며 청각장애가 있는 화가였다.

18세 되는 1882년 파리로 나와 대학 입시를 치렀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나이 스물하나 되는 1885년 앙리는 마침내 몽마르트로 거처를 옮겨, 작은 작업실에서 미친 사람처럼 그림에만 몰두했다. 에드가 드가의 대담하고 거친 듯한 선과 색채에 깊은 인상을 받고 일본 판화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독창적이고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 나아갔다.

 

당시 몽마르트는 사실상 파리 예술의 중심지였다. 여기서 앙리는 자기 창작의 소재를 발견하곤 했다. 파리 보헤미안의 사는 방식, 카바레와 댄스 룸과 댄서들 또 여배우와 매춘부 등의 삶.

 
 
<물랭 루주의 라 귈류 Goulue>. 1891-1892. 80 X 60.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물랭 루주의 인기 댄서 루이즈. 별명 귈류는 대식가라는 뜻으로, 그녀가 공연하면서 손님들 테이블을 다니며 음료를 마구 마셔서 붙었다. 오른쪽은 친언니, 왼쪽은 애인. 로트렉은 이 그림을 '물랭 루주 시리즈' 가운데 가장 좋은 작품으로 여겼다.)
 
1886년 화가 페르낭드 코르몽의 스튜디오에서 반 고흐를 알게 됐고 둘은 굳은 우정을 나누었다.
둘 다 꼬인 운명으로 세상에서 버림받았지만, 위대한 후기 인상파 작가로 남은 것이다. 다 격렬한 기질과 엄청난 창조적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을 보는 눈은 서로 달랐다. 빈센트가 세상을 사랑하고 공감하려고 애썼다면, 앙리는 세상과 차갑게 거리를 두면서 관찰하기만 했다.

로트렉이 다른 화가 앙리 드 그로에게 결투를 신청했는데, 그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을 폄하했기 때문이다1890 초 브뤼셀의 전시회에 반 고흐가 자기 작품 여섯 점을 내놓았는데, 대중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부정적인 평가 드 그로가 앞장섰다. 이를 두고 로트렉이 격분한 나머지 결투를 신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드 그로가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했다.

 

반 고흐가 죽기 전 그의 초상화를 로트렉이 파스텔로 그렸다. 두 화가가 나이트클럽에 있던 어느 날 밤, 혼자 생각에 잠긴 옆 모습. 매부리코와 듬성듬성한 눈썹이 잘 포착돼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 1887. 앙리 로트렉 작
 
사회의 이단자들 속에서 살면서, 로트렉은 울적함이나 환희, 슬픔, 무심함을 드러내는 여성들 얼굴을 즐겨 관찰했다. 그의 손으로 화폭에 옮겨진 젊은 여성이나 이미 시든 여성들의 얼굴은 부어오른 눈과 피곤한 입매를 달고 있다.
앙리 로트렉은 모델들을 절대 미화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왜곡하곤 했다. 여성 모델들을 왜 그렇게 흉한 모습으로 그리냐고 물으면, 그는 그들이 추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노래하는 이베뜨 쥘베르>

 앙리가 가장 좋아하던 카바레 가수의 이미지에 놀랐다. 선명한 빨강 머리, 얇은 입술,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깡마르고 큰 키, 기다란 검은 장갑. 그녀의 이미지를 담은 화집을 냈는데, 이것이 그녀의 가족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녀에게 고소하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쥘베르 자신도 로트렉의 그림을 처음 보고서 "내가 그렇게 흉칙하는 않아!" 소리쳤다. 하지만 그 화집이 가수에게 진정한 명성을 안겼고, 스캔들은 눈 녹듯이 가라앉았다.

 

그는 자신의 기형적인 모습을 두고 자연도 사람들도 용서할 수 없었다. 모델들을 종종 그로테스크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비꼬아 묘사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복수했다. 그가 비록 모든 모임에서 언제나 관심을 끌었지만, 그건 그에게 외려 불쾌하기만 했다. 그런 명성을 꿈꾼 게 아닌데.

 

그의 작품들로는 파리 매춘 업소와 그 종사자들의 삶을 다룬 연작이 유명한데, 그 가운데 한 여성이 애정에 굶주린 화가에게 매독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물랭 루주의 댄서>. (잔느 아브릴은 앙리의 또 다른 뮤즈. 앙리가 죽을 때까지 둘은 친구로 남았다.)
 
<키스>
 

상업 포스터 장르에서 도약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은 상업 포스터 제작에 진지하게 관여했으며, 광고 포스터를 높은 예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물랭 루주 광고 포스터

 

1889년 파리에 최초의 카바레 '물랭 루주'가 문을 열었다. 처음에 영업이 신통치 않자 물랭 루주의 소유주가 카바레 광고 포스터 제작을 앙리에게 부탁했다. 이 일이 이후 그의 모든 작업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얼마 뒤 앙리의 작품을 보고는 의뢰자가 그 파격성에 질겁했다. 하지만, 12월 하룻 저녁 3천 매가 파리 전역에 붙었고, 인상적인 이미지를 본 사람들이 카바레로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물랭 루주의 인기가 하늘을 뚫을 듯이 치솟았다. 그 뒤 앙리는 물랭 루주를 무상을 출입할 권리를 얻었다. 

이 포스터를 다른 화가들은 회화 장르를 망치려는 악마의 손장난이라고 불렀다. 하룻밤 사이에 로트렉이 인기와 명성을 얻었고, 유명 인사와 스타들이 그런 광고를 하고 싶어 줄지어 그를 찾아왔다.

 

물랭 루주 광고 포스터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여러 분야에서 그를 찾았다. 각종 인쇄물에 들어갈 삽화 주문이 쇄도했고, 그는 만화를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다. 한번은 콘페티와 자전거 광고 포스터 제작 의뢰를 받고 런던으로 갔는데, 거기서 작가 오스카 와일드를 만나 친구가 되고,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대다수 예술사가들은 만약 앙리 로트렉이 없었다면 현대의 광고 예술가 앤디 워홀(Warhol)도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앙리가 평범한 광고를 문화적 현상의 표식으로 만들었고, 그리하여 팝 아트 시대를 연 것이다.

 

*팝 아트 - 현대 미술에 나타난 양식의 하나1950년대 중후반 주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전개전통적 예술 개념의 타파를 시도하는 전위적인 미술 운동으로 광고 디자인만화사진텔레비전 영상 따위를 그대로 그림의 주제로 삼는 것이 특징주요 예술가로는 리히텐슈타인(LichtensteinR.), 올덴버그(OldenburgE.), 워홀(Warhol, A.) 

 

또 다른 시련 


운명이 마침내 그에게 사람들한테서 진정으로 인정받는작은 선물을 건넨 것이다. 그러나 이 행복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런 성공에 고무된 앙리가 1893년 파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어 회화 작품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대중의 판결은 가혹했다. ‘예술과는 전혀 동떨어진, 음탕한 난쟁이의 지저분한 작품들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그에게는 상상하지도 못한 충격이었다. 상업 포스터로 얻은 인기와 즐거움에 이미 익숙해졌는데 말이다. 편견과 규칙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을 세상은 용서하지 않은 듯했다. 그의 항변. “내 그림들은 지저분한 게 아니라 솔직한 거야. 사실, 추한 것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런 앙리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부모와 일가친척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그가 저명한 귀족 가문을 더럽혔다고 보았다. 언젠가 그의 모친에게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고 묻자. 백작 부인은 내 아들만 아니라면 다 좋다고 대답했다. 모친은 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들을 예술가로 여기지 않았다.

하기야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그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더 무슨 말을 하랴. 그의 숙부는 사람들 보는 자리에서 조카의 그림 여덟 점을 불태우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하찮은 쓰레기가 우리 가문에 더 이상 수치를 안기지 않을 것이오.그런데 이 숙부는 앙리가 대여섯 살 때부터 그림 공부를 지지하고 지원하던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물감을 선물하고, 미래의 꿈을 함께 나누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야...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사람의 패러디야.” 이 고백에서 뼛속 깊이 사무친, 운명에 대한 원망이 엿보인다. 그는 더 이상 환상을 품지 않았으며, 갈수록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누구한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그는 그림 그리기를 중단하게 됐다.

 

앙리 로트렉의 모친의 초상화

인생 후반에 그는 너무 자유로워서 방종하다 싶게 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항상 가지고 다니기 위해 지팡이에 구멍을 뚫었다. 모친이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미치지 않았지만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병원을 나왔으나 삶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들 보기에 외모가 기이한 이 천재의 운명은 다른 재능 특출한 사람들의 운명과 궤를 같이했다. 요절. 서른일곱 해의 인생 여정. 1901년 모친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 알코올 중독과 매독으로.

가족은 가문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앙리의 각종 작품을 수집하여 영지에 있는 성에 숨겨 두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앙리가 멸시받던 광고를 고도의 예술 수준으로 끌어올렸음을 깨달았다. 그의 그림들은 오늘날 수백만 달러에 팔리고 있다.

 

<세탁부>. 1886. 93 X 75&nbsp; (*당시 이 일을 하는 여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매춘을 겸했고, 그래서 프랑스 미술에서 인기 있는 테마였다.)

 

앙리 툴루즈-로트렉이 1886-1887년 캔버스에 그린 유화 <세탁부>는 200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익명의 구매자에게  2240만 달러에 팔렸다.

20년에 불과한 활동 기간에 유화 737, 수채화 275, 판화 363, 소묘/데생 5084점을 남겼다.

 

이후 그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1952년 영화 <물랭 루주>가 그것인데, 여기서 그의 역할을 배우 José Ferrer가 연기했다. 

 

* 앙리 로트렉의 그림이 마음에 드시나요? 어떤 그림을 꼽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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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의 수수께끼

 

사람의 운명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 하나는 운명이 미리 정해진 무엇이라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이런 개념에는 별다른 출구가 없어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최고 등급의 운명을 얻지 못했다면, 거기서 더 나아질 희망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기꺼워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미래가 다소나마 내다보이고

그 불확실성으로 사람을 놀래지 않을 때, 이건 결국 편안하고 단단하지 않은가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운명이 숙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불만과 내적 저항의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행운이나 성공을 잡지 못한 사람은 자기 운명을 두고 한탄한다.

인생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야누구는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는데 누구는 항상 결핍에 시달리다니.

누구한테는 모든 게 쉽게 주어지는데, 누구는 쳇바퀴에 올라탄 다람쥐처럼 뱅뱅 돌아도 되는 게 하나 없어.

누구는 미모와 두뇌와 힘을 타고나는데, 또 누구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평생 2등급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하는 거야?

왜 이렇게 불공평해?

무한한 다양성을 품고 있는 삶이 어째서 어떤 사람들한테는 어떤 제한을 두는 거지?

덜 훌륭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런 거야?

 

박탈감에 휩싸인 사람은 분노가 아니라면 최소한 비통함을 느끼면서, 자신이 왜 열악한 처지에 놓이게 됐는지

규명해 보려고 든다. 그때 전생의 죄업에 대한 응보 따위 갖가지 가르침이 나타난다.

신은 자신의 태만한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전념하지만, 그 권능에도 불구하고 양육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신은 살아서 지은 죄를 벌하는 대신, 징벌을 왠지 뒤로 미룬다. 하지만, 기억도 하지 못하는 일을 두고

사람을 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불평등이나 불공평에 대해 다른 시각도 있다.

지금 궁핍과 고통을 겪는 이들이 큰 보상을 받으리라고 희망을 주는 것이기는 한데, 이것 또한

어디 천국이라든가 다음 생애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는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달래지는 못한다. 삶의 과거나 미래의 존재 여부가

사실상 중요하지 않은데, 왜냐면 사람은 오직 하나, 이번 생애만을 기억하고 인식하니까. ,

지금 삶이 유일한 것이니까.

 

운명 예정설을 믿는다면,

슬픔이나 우울함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방법은 온유함이나 순종일 것이다.

그리고 또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한 사람이 되라는 식의 새로운 설명이 나온다.

낙관주의자가 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라고 한다.

누군가가 불행하다면, 그건 그 사람이 늘 불만에 차 있고 너무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당연히 행복해야 한다고. 삶에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에 사람들은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잿빛 현실을 기쁨으로 대한다는 것이

어째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이 든다.

더 큰 뭔가를 바랄 수는 정녕 없는 걸까?

어째서 억지로 기뻐해야 하는 거지?

이건 결국 자신을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주변에는 이른바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늘 어른거리는데, 그들은 보편적인 사랑이나 용서를 촉구한다.

이런 얘기를 듣는 사람은 가혹한 현실에 직접 부딪치지 않으려고

머리에 이불을 뒤집어쓰듯이 이런 환상에 끌릴 수 있고, 실제로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기는 한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왜 자꾸 용서하라고 하는 거지?

별 관심도 없는 자들을 왜 자꾸 사랑하라고 하는 거지? 그게 무슨 소용이람?

어떤 행복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강요된 행복이 되고 만다. 마치 기쁨이 저절로 나타나서는 안 되고

튜브에서 치약을 짜듯이 자신에게서 쥐어짜야 한다는 듯이 말이야.

 

삶이 하나의 예정된 운명으로 귀결될 만큼 따분하고 원초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취하는 것에 기뻐하기를 더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운명의 개념은 또 다르다.

사람은 자기 행복을 스스로 일구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알다시피, 행복을 얻으려면 싸워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어쩌겠어?

이른바 뭘 좀 안다는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하겠지.

행복을 너에게 주어진 만큼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 열심히 일해서 자기 행복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 같다.

 

교훈적인 이야기들에서는, 주인공들이 밤낮으로 용감하게 싸우고 헌신적으로 일함으로써

상상을 넘어서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보여준다. 역경과 고난을 다 거친 뒤에야 비로소 주인공들은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다들 잘 되는 건 아니야. 백만이 싸우고 땀 흘리지만

진짜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위해 평생 치열하게 싸워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삶이 왜 이래? 왜 이렇게 가혹하고 무자비한 거야?

 

세상과 싸우고 자기 몫을 얻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면, 자신과 싸워야 해.

만약 누군가가 가난하고 병들고 못 생기고 불행하다면, 그건 그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거야. 뭔가

완전치 못하고, 그러니 스스로 변해야 해. 사람은 애초에 결함과 죄업의 집합체이고, 그러니

그런 걸 다 바꾸고 없애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건 삭막한 그림이 아닌가?

 

여기서 결론은, 사람이 운이 없어서 부유하고 행복하게 태어나지 못했다면,

그의 팔자는 자기 십자가를 묵묵히 지거나 평생 싸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런 삶은 어째 내키지 않는다.

이 모든 갑갑하고 어두운 상황에 빛줄기는 정말 없는 것일까?

 

그래도 출구는 있다.

이 해결책은 앞에 열거한 것들과 다르게 아주 단순하면서도 유쾌하기까지 하다.

왜냐면 차원이 완전히 다르니까.

 

트랜서핑에서 운명의 개념은 본질상 다른 세계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이 말을 듣고, 앞질러서 손사래를 치며

, 또 괴상하고 황당한 생각을 불어넣으려고 하는구나소리치지는 마시라.

우리한테 알려진 운명 개념은 다 특정한 세계관에 기반을 두며,

이 세계관은 또 어떤 입증되지 않은 출발점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유물론은 세상이 물질로 이뤄졌으며 정신이나 의식은 물질의 산물이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또 관념론은 그 정반대의 주장에 근거한다.

두 가지 주장 다 입증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을 기반으로 여러 세상 모델이 세워지는데,

그 각각이 아주 설득력 있어서 헌신적인 옹호자들을 찾고 있다.

철학이나 과학, 종교의 각 유파는 이 세상을 나름대로 설명하는데,

그 각각이 또 나름대로 옳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왜냐면 우리는 절대 진리를 결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을 터인데, 이건

우리가 이용하는 개념들 자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시각 장애가 있는 세 사람에 관한 유명한 우화에서,

한 사람은 코끼리 코를, 다른 사람은 다리를 또 다른 사람은 귀를 각각 만져 보고는,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각자 나름대로 판단을 내린다.

이런 걸 보면, 누구의 묘사만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고 증명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각각의 묘사가 작동한다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현실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환상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 환상이 어디서 나오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른바 영화같은 것을 본다는 건가?

이건 물론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어떤 면에서는 일리가 있다.

이것과 완전히 상반되는 견해도 있다.

물질세계는 엄격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메커니즘일 뿐이며, 여기서 우리의 의식은

그 무엇도 결정할 수 없다는 것. 여기에도 또 확실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인드는 모호함이 없이 단단한 기반을 취하려고 애쓰게끔 설계됐다.

그래서 하나의 이론을 날려버리고 다른 이론을 내세우고 싶어지는데, 사실, 이것이 수천 년에 걸쳐

과학자들이 해 오는 일이다.

진리를 찾는 싸움이 끝날 때마다 싸움터에서 유일하게 상처받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

그 어떤 이론도 다면적인 현실의 특정한 측면만 나타내는 것일 뿐이라는 점.

 

각각의 이론이 작동하고, 그래서 존재할 권리가 있다.

운명에 대한 모든 개념도 역시 다 작동한다.

 

만약 당신이 운명은 예정된 무엇이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당신은 자신의 운명을 자발적으로 누군가의 손에 내맡기는 것이며, 파도의 의지에 따라

떠다니는 조각배가 되겠지.

 

만약, 당신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고 여긴다면, 당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의식적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 자신의 작은 배를 조종하려고 파도와 싸워야 하겠지.

 

여기서, 우리 각자의 선택은 항상 실현된다는 점에 주목하시라.

당신이 선택하는 것을 당신은 얻게 된다. 어떤 세계관을 선택한다고 해도 진실은 당신 편에 설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논쟁을 벌일 텐데, 그건 그들 역시 옳기 때문이다.

 

만약 현실이 드러내는 어떤 현상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지식의 전반적인 분야를 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식이 내적으로 일관성을 띠며 또 현실이 드러내는 모습 한 가지를 잘 반영할 것이다.

전반적인 지식의 기초로는, 끝까지 이해되지 않았어도 현존하는 사실을 하나 이상 취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 양자물리학은 증명할 수 없는 진리, , 가정 몇 가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 가정들 자체가 이 지식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실증할 수 없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에서 미시세계의 대상은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하다.

파동과 입자의 이 이중성을 과학자들이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게 되자,

그냥 주어진 것으로, , 가설로 받아들였다.

양자물리학의 가설들은 현실이 드러내는 다양한 모습을 조화롭게 만드는데, 이건

코끼리가 누구에겐 기둥처럼 또 누구에게는 뱀처럼 보이는 것을 조정하는 것과 같다.

 

만약 미시세계의 물체를 묘사할 때 입자의 특성을 기본으로 선택한다면,

닐스 보어가 만든 원자 모델이 나온다. 이 모델에서는 태양계의 행성들처럼 전자들이 핵 주위를 맴.

만약, 파동을 주요 속성으로 택한다면, 원자는 파동들의 중으로 바뀔 것이다.

 

두 가지 모델 다 작동하면서 현실이 드러내는 개개의 모습을 반영한다.

여기서도 또,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을 얻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체로, 모든 현상은 확실히 작동하여 존재할 권리가 있는, 지식 분야의 출발점, , 가설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진리를 찾으면서 항상 세상의 특정한 측면을 연구함으로써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애써 왔다.

과학적 지식의 여러 산맥은 이런저런 자연 현상의 묘사와 설명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지식의 여러 분야가 생겨났고,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

 

세상자연은 오직 하나이지만,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의 한 얼굴을 다 관찰하고 규명하기도 전에, 이것과는 일치하지 않는 다른 얼굴이 또 나타난다.

이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현실의 다양한 발현을 결합하려고 시도하는데, 이건 거의 불가능하다.

지식의 모든 분야를 통합하고 조화하는 유일하며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이건

현실이 드러내는 여러 모습의 다양함과 다면성이다.

변성이야말로 우리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다.

 

여러 지식 분야의 지지자들이 개별적인 현상들은 규명하려고 애쓰면서도 바로 이런 사실을

무슨 이유에선지 그냥 피해 간다. 사실, 여기서 또 무엇을 끄집어낼 수 있을 듯싶은가?

다변성은 좌표 격자의 제로/0처럼 출발점 역할을 할 것이다.

이에 비하면, 다양한 지식 분야의 출발점은 다 이차적이다.

그런데 이 시작점에 아무런 정보도 없는 것처럼 다들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보가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놀라운 정보가.

 

관리인이 내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우리는 바로 이 다변성의 특성을 시작점으로 삼을 것이다.

달리 말해현실에는 무한히 다양한 형태의 발현이 있다는 사실을 가설로 잡는다.

우리 가정의 일반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얼마나 흥미롭고 예상치 못한 지식이 들어 있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먼저, 현실이 드러내는 여러 모습과 형태에는 근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면,

이 다양성은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우리 세상의 모든 법칙이 어디에 적혀 있는가?

우리 세상은 공간과 시간에서 물질의 움직임으로 드러난다. 이 움직임은 특정한 법칙을 따른다.

아시다시피, 점들은 특정한 수학 공식에 따라 함수 그래프에 배치된다.

함수 공식은 그래프에서 이 움직이는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식이란 법칙처럼 인간 마인드의 추상적인 발명품이고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공식을 전부 자연이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프에서 점의 위치를 저장하는 방법은 또 뭐가 있나? 물론,

모든 점의 좌표를 무한히 크게 배열하여 그렇게 할 수 있다.

인간의 기억 용량은 한정돼 있어서 무한대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자연한테는 무한대가 문제 되지 않는다.

자연에서는 그래프 위 점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공식으로 일반화할 필요가 없다.

만약 함수의 선을 무한히 작은 점들로 나누면, 각각의 점을 원인이요 그 뒤에 오는 것을 결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간과 시간에서 물질적인 점의 모든 움직임을 무한히 작은 원인과 결과들이

무한히 길게 이어진 사슬 형태로 나타낼 수 있다.

 

우리의 지식에서는 물질의 움직임을 법칙 형태로 제시하는데,

자연에서는 이 움직임이 끝없이 많은 원인과 결과로 자연적인 형태에 담겨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물질의 모든 가능한 이동점에 대한 자료가 어떤 정보 마당에 저장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선택의 공간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여기에는 과거에 있었고 지금 있고 앞으로 있을 모든 것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선택의 공간은 매우 물질적인 정보 구조이다.

이 공간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건의 모든 가능한 선택을 포함하는 무한한 정보 마당, 정보 필드이다.

선택의 공간에는 모든 것이 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이 정보가 어떻게 저장되는지는 알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목적에 중요하지 않으니까. 다만,

선택의 공간이 공간과 시간에서 모든 물질 운동의 좌표 격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 중요할 뿐이다.

 

공간의 각 점에는 이런저런 사건의 선택/옵션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는 옵션/선택이 시나리오와 무대 장면으로 구성된다고 간주할 것이다.

무대 장면은 현상의 형태나 외양이고,

시나리오는 물질이 움직이는 경로이다.

선택의 공간을 편의상 여러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구역마다 그 자체의 시나리오와 무대가 있다.

구역 간의 거리가 클수록, 시나리오와 무대 장면의 차이가 더 크다.

인간의 운명 또한 많은 선택으로 나타난다.

 

선택의 공간이 무한한 만큼, 이론적으로 인간 운명의 시나리오와 무대 장면에는 그 어떤 제한도 없다.

사소한 사건이라도 다 운명의 전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팔자가 바뀔 수 있다.

물질의 다른 모든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은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다.

선택의 공간에서 결과는 항상 그 원인에 가까이 있다.

하나가 다른 것에 이어지기 때문에, 운명의 구역들이 생명선에 정렬돼 있다.

같은 생명선에 있는 여러 구역의 시나리오와 무대 장면은 대개 비슷하다.

사람의 삶은 시나리오와 무대 장면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같은 생명선을 따라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러다가 운명이 방향을 바꾸고 다른 생명선으로 넘어간.

 

연극을 봤다고 상상하자.

다음 날 같은 연극을 보러 다시 그 극장에 갔는데, 무대가 달라졌다. 이건 가까이 있는 생명선들이다.

다음 시즌에 같은 배우들이 나오는 연극을 봤는데, 시나리오가 상당히 바뀌었다. 이 생명선은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다. , 같은 작품을 다른 극장에서 보는데, 희곡의 해석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 생명선은 첫 번째 것과 이미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현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선택의 수효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모든 출발점이 연쇄적인 인과관계를 낳는다.

출발점을 선택함으로써, 현실이 드러내는 어떤 형태를 얻게 된다.

어떤 출발점을 선택하면 그에 맞추어 현실이 생명선을 따라 펼쳐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을 얻는다.

선택이 이미 무한히 존재하는 만큼, 우리는 선택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걸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택이라는 간단한 일 하나로 자기 운명을 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선택은 어떻게 하는가.

이것을 트랜서퍼링이 알려준다.

 

, 무수히 많은 잠재적 가능성을 포함하는 정보 구조가 있다.

이 잠재적 가능성은 시나리오와 무대 장면이 있는 선택 사항들이다.

이 구조에 들어있는 것에 맞추어 물질적 구현이 발생한다.

택의 공간을 통해 물질이 움직이는 과정을 이런 상상의 실험 같은 것으로 엿볼 수 있다.

 

물이 담긴 튜브를 상상하시라.

냉각 링이 튜브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면서, 물이 링 안에서만 빠르게 얼어붙는다.

얼음 결정체가 물이 담긴 튜브를 타고 이동하게 된다. 물 분자는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로 거의 같은 곳에 남아 있다.

링을/고리를 통과하는 순간, 그 안에 있는 분자들이 특정한 구조의 얼어붙은 결정체로 굳어졌다가,

이곳의 물이 다시 녹으면서 분자들이 활발해진다. 결정체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달리 말해,

이 경우에 얼음은 물에 뜨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물이 담긴 튜브의 얼음 결정체가 아니라, 구조이다. , 얼어붙은 상태가 움직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튜브 속의 물은 선택의 공간이고,

얼음 결정체는 선택한 것이 물질로 구현된 것이다.

분자들은 사람들이며, 결정체 구조에서 분자들의 위치는 운명의 선택으로서 실현된다.

냉각 링을 무엇에 견줄 수 있는지는 명확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달리 말해,

정보 구조가 어떻게, 왜 물질로 변하는가? 하는 점 말이다.

미시세계에서 물질은 에너지 덩어리로 나타날 수 있다.

공 상태에서 미세입자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소멸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질은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적절한 물질적 실체를 지니지 않는다. 단 하나,

만질 수 있는 것에 무형의 에너지 기반이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런 물리학적 지식을 너무 지루하게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트랜서핑의 출발점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알게 되는 것은 제법 충격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야 하고,

그러니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해 주면 좋겠다.

 

바다의 파도는 선택한 것이 공간에서 구현됨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비유가 될 수 있다.

지진으로 바다에 파도가 생겼다고 가정하자.

파도는 해면에서 툭 튀어나온 혹처럼 움직이지만, 물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움직이는 것은 물의 질량이 아니라 에너지 잠재력이 드러난 것이다.

해안 근처에서만 물이 육지로 흘러든다. 다른 파도도 다 마찬가지다.

이 비유에서

바다는 선택의 공간이고,

파도는 물질적인 구체화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나.

한편으로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물질적 구체화가 생겨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선택이 그대로 남아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모든 것이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라는 뜻인가?

사실, 그렇지 못할 게 뭐 있나?

 

시간도 사실상 공간처럼 정적이다.

영화 필름이 돌아가고 프레임들이 잇따라 이어질 때만 시간의 흐름이 감지된다.

그 필름을 쭉 펼치고 모든 프레임을 한꺼번에 보자. 그러면 시간은 어디로 갔나?

모든 프레임이 동시에 있다.

우리가 프레임을 연속적으로 보기 전에는 시간이 멈춰 있다.

이런 일이 삶에서 일어나고, 따라서 모든 것이 왔다가 간다는 생각이 우리 의식에 깊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정보 마당에 기록된 것은 전부 실제로 항상 거기에 있었고 항상 있을 것이다.

생명선들은 영화 필름처럼 존재한다. 지나간 것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앞으로 있을 것이, 이미 있다.

삶의 현재 한 자락은 생명선의 이 자락에서 선택의 공간이 물질적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화를 내면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내 운명의 무수히 많은 선택이 항상 고정적으로 존재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그런 게 왜 누구한테 필요할 수 있나? 신에게? 자연법칙에? 어째서

 

그렇다면 좌표 평면에 있는 을 상상해 보시라.

이미 학교 다닐 때 우리는 이런 모델을 알게 됐다. ,

평면에 있는 점은 x와 y의 어떤 좌표든 지닐 수 있다는 것.

어떤 좌표든이라는 데 주목하시라. 마이너스 무한대에서 플러스 무한대까지 말이다.

그런데 점은 어떻게 어떤 좌표든 지닐 수 있는 건지물어볼 생각을 왜 아무도 하지 않는 건가

 

이제 또 점이 함수의 선을 어떻게 지나가는지 상상해 보면 놀란다.

«나의 지나간 길이 항상 존재했고 항상 남아 있을 것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아직 가야 할 길이 이미 표시돼 있었다니, 어찌 그럴 수 있나

하지만 이건 점의 길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고,

그래서 놀랄 게 하나도 없.

 

선택의 공간은 거푸집 역할을 하며, 선택한 것이 물질적으로 어떻게 구체화하는지를 결정한다.

어두컴컴한 숲과 손전등 든 사람을 상상하시라.

이 사람이 숲을 걸으면서 주변의 작은 구역을 비춘다.

물질적인 구현은 빛의 얼룩처럼 나타난다.

어두운 숲 전체는 선택의 공간이고,

빛을 받은 구역은 그 구역에서 선택한 것이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비치는 빛이 되나? 달리 말해,

무엇이 불을 댕기나, 즉, 무엇이 거푸집에서 선택한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바꾸나?

 

여기에 답하려면 다른 출발점을 또 택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생각이 물질적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현실은 두 가지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

한편으로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 달리 의식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생각은 사람이 행동하는 동기가 될 뿐만 아니라 또한 주변 현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는 최악의 예상은 대체로 실현된다.

불길한 예감은 어째 틀리는 법이 없어.”

물론, 이건 생각이 구체화한 게 아니라 다가올 불길한 것을 예감하는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실제로, 초자연적 현상들에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것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드러내는 이 형태를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생각이 주변 현실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사실은 많다.

 

어떻든, 사람의 의식이 그의 운명을 만든다.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 책 전반에서 얘기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주장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

생각 에너지의 방출이 우리가 선택한 것을 물질적으로 구체화하게끔 이끈다는 것.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전달하는 생각이, 우리를, 우리의 물질적 실제와 운명을,

그 생각과 일치하는, 선택 공간의 어떤 구역으로 이끈다는 것.

이것이 현실 트랜서핑의 첫 번째 황금률이다.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의식이 실제를 결정하는 형태에서 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건 일상생활의 사실뿐 아니라 양자물리학의 실험에서도 입증된다.

생각의 방출이 선택의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메커니즘 자체는 우리한테 중요하지 않다.

정보가, 어떤 식으로 전달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지, 혹은

다른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 불분명하다,

 

편의상 우리는 이렇게 가정할 것이다. ,

생각 에너지의 방출이 여러 선택이 있는 공간의 특정한 구역을 비추고’, 이 결과

선택한 것이 물질적으로 구체화한다고 말이다.

방출은 구역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변수를 지닌다.

생각의 방출이 자신의 구역을 찾고, 선택한 것이 구체화하고, 그리하여 의식이 실제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단지 현실 구현의 한 가지 형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냥 앉아서 묵상이나 자기관찰만으로는 자신의 현실을 만들 수 없다. 물론,

말 그대로 허공에서 물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기는 한데, 그런 이들은 극소수이며,

그런 능력을 뽐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특정한 행동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동이 가시적이고 쉽게 설명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익숙하다.

그런데 생각의 영향은 눈에 띄지 않게 나타나므로, 설명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

생각과 그에 이어지는 사건과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곧 현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을 얻는다.

 

이런 반박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바다와 산, 행성, 은하계 등이 내 생각이 방출돼 나온 산물이란 말인가

사람은 이따금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미미한 틈새를 차지할 뿐이다. 우리 세계에는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으며, 그 각각이

현실을 만드는 데 한몫을 한다.

모든 존재가, 생명체가 생각 방출의 매개 변수를 지닌다.

식물의 방출을 정신적인 것으로 보는 게 불편하다면, 그걸 다른 식으로 불러도 좋다, 그런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으니까.

무생물한테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방출 같은 것이 전혀 없다고 장담하는 것도 금물이다.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으며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영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고.

각각의 존재는 나름의 의식을 지니며 자신의 세계를 형성한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그 안에 신의 일부분이 들어 있고,

그리하여 그분이 온 세상을 주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각자 자기 생명선을 따라간다.

이와 동시에, 모든 사람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물질세계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하나이다.

하지만 각자의 구체적인 실현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를테면, 당신이 관광객으로서 아름다운 도시를 걷고 있다고 치자.

경치를 감상하고 멋진 건축물에 감탄하고 화단과 분수와 공원 길과 잘 나가는 사람들의 웃음 띤 얼굴을 본다.

당신이 지나가는 곳에 노숙자가 서 있다. 그도 당신과 같은 세상에 있다, 다른 차원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당신이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을 본다. 그는 쓰레기통에 있는 빈 병을 보고, 지저분한 담장을 보고,

빈 병을 경쟁자한테 빼앗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감시의 눈길을 던지는 경찰을 본다.

당신과 그가 살고 있는 생명선이 서로 다르다.

두 사람의 생명선이 선택의 공간에 있는 한 점에서 교차했,

그래서 물질적인 구현으로서의 이 세상은 두 사람에게 하나이다.

 

물질적 자연의 현상은 전부 에너지를 기반으로 삼는다, 에너지장이 으뜸이고 나머지 물리적 현상은 다 부차적이다.

과학자들이 에너지의 여러 발현을 단일한 필드의 이론으로 통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조만간 뭔가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에도 또 뭔가를 통합해야 할 텐데, 그건 현실의 발현 형태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것들을 우리는 다루지 않을 것이며,

보이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추상적인 힘을 에너지라고 간주하겠다.

인간의 생각 에너지가 아주 물질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목적에는 충분하다.

생각 에너지는 사람 머릿속에 갇혀서 맴도는 게 아니라, 공간으로 퍼져서 주변의 에너지 필드와 상호작용한다.

이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이제는 거의 없을 것이다.

 

편의상, 생각 방출의 매개 변수로 그 방출의 주파수를 전파의 주파수처럼 볼 수 있다. 

우리가 뭔가를 생각할 때, 생각 에너지의 주파수가 선택의 공간에 있는 특정한 영역에 맞춰진다.

에너지가 선택의 공간에 있는 한 구역에 들어갈 때, 그 선택이 물질적으로 구체화한다.

에너지는 복잡한 구조를 지니며, 이 세상 모든 것을 관통한다.

에너지는 사람의 몸을 지나가면서 생각으로써 조정되고, 빠져나가면서 이 생각과 일치하는 매개 변수를 띠게 된다.

무선송신기가 그런 원리로 작동한다.

에너지의 매개 변수는 생각의 성격을 흡수한다.

그런 식으로, 나가면서 생각의 방출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선택 공간의 구역을 물질적으로 구체화한다.

사람이 나쁘거나 좋은 것을 생각할 때, 생각 에너지를 선택의 공간에 방출하는 것이다.

변조된 에너지가 특정한 구역에 쌓이며, 이것이 그 사람의 삶에 적절한 변화를 일으킨.

 

삶의 상황은 사람의 구체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의 성격으로도 만들어진다.

만약 세상에 적대적이라면, 세상도 그렇게 응대할 것이다.

만약 줄곧 불평만 늘어놓는다면, 그렇게 할 이유가 갈수록 더 늘어날 것.

현실에 대한 태도가 부정적이라면, 세상은 나쁜 쪽으로 당신을 대할 것.

 

이와 달리, 긍정적인 태도는 당신의 삶을 아주 자연스럽게 더 나은 쪽으로 바꿀 것.

사람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을 얻는다.

좋든 싫든 현실이 그렇다.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 일관되게 흐르는 동안, 사람은 같은 생명선 위에 있다.

실제 현실에 대한 태도가 다른 쪽으로 바뀌는 즉시, 생각 방출의 매개 변수가 새로운 성격을 띠게 되고,

당신 세계의 물질적 구현이 다른 라인으로 넘어간다.

거기서는 사건들이 이미 다른 시나리오에 따라, 당신 방출의 매개 변수에 맞게 펼쳐진다.

그 대본이 마음에 안 들면, 당신은 싸우면서 상황을 바꾸려고 애쓸 것이다.

장애물을 만나면, 부정적으로 반응하면서 불만을 토하거나 우울증에 빠진다.

그러면 생각의 방출이 장애물이 더 많아지는 생명선에서 재구성된다.

그 결과, 삶이 어딘가로 기울게 된다.

 

이런 과정은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자기 생각으로써 선택 공간의 문제 영역으로 스스로 들어서는 것이다.

우리는 내 행동으로 장애를 극복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실제로는,

선택하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장애물과 싸움을 택하면, 장애물을 가득 얻는다.

문제에 골똘하다 보면, 문제가 늘 삶에서 나타나게 된다.

당신의 행동은 지금의 생명선에서 상황을 어떻게든 바꿔 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공간에서 우리가 시나리오를 바꿀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저 다른 것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다.

대본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바꾸려고 할 때, 마음에 들지 않는 그것을 생각한다. 그러면

당신의 선택이 보기 좋게 실현되어,

원치 않는 것을 얻는다.

 

지금 우리가 놓인 생명선에서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동안, 마음에 안 드는 전시물을 치우거나 옮겨놓을 수 없는 것과 똑같다.

그곳에서 당신은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더 마음에 드는 걸 보려고 다른 전시실로 이동하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당신이 원하는 게 있는 생명선으로 그저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생각이 다 실현되는 건 아니며, 모든 소원이 다 이뤄지는 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각의 내용이 아니라 생각의 질이다.

그냥 꿈이나 소망은 아직 선택이 아니다.

꿈은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서 당신이 알게 되는 몇 가지 조건을 실행해야 한다.

 

선택의 공간에는 누구한테나 무한한 운명선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만큼, 우리는 자기 운명을 탓할 수 없다.

단지, 선택할 줄 모른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세상은 모든 다양함에서 나타나며, 모든 취향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나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다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지식의 여러 유파에서도 세상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쪽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관념론은 세상이 환상이라고 주장하고, 여기에 세상이 동의한다.

유물론은 그 반대를 주장하고, 여기에도 세상이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자기네 태도나 입장을 강요하면서 서로 싸우는데,

세상은 그들이 다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게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선택의 공간은 이른바 환상이라고 불리는 것이며,

물질적 구체화는 물질세계로 이해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선택하는 것을 얻는다.

 

이슬람교 원리에 밝은 사람은, ‘사람의 운명은 코란에 적혀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운명은 정해져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여러 종교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보인다.

실제로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단지, 종교는 

이 운명의 선택이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 뿐이다.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게 어느 정도 사실인 까닭은, 선택의 시나리오를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운명을 바꾸기 위해 주변 세상과 싸우는 것은 아주 힘들고 감사할 줄 모르는 짓이다.

싸울 필요가 없다,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런 얘기는 아주 특이하고, 그래서 합리적인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이 선택의 모델을 기꺼이 받아들이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나 역시

트랜서퍼링이 정말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으니까.

어떤 절대적인 진리를 얻으려 하면서,

특정한 모델을 선호하는 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모델이 아니라 모델을 통해 얻는 실제 결과이다.

똑같은 물리적 현상을 서로 다른 수학적 모델이 여러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분석 기하학 전문가들이 갑자기 수학적 분석을 거부하고

기하학이 유일하게 미더운 수학 분야임을 증명하고 나선다면, 황당하지 않을까?

다행히 수학자들은 서로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철학이나 종교의 활동가들은 그러지 못했다.

 

선택의 공간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나?

이 물음에 답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네 삼차원적 인식의 관점에서, 그건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한 평면이 있으며 거기 2차원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시라.

그들은 3차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 보기에는, 평면이 유일한 세상이고,

그들은 그 너머에 또 뭔가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델에 3차원을 추가하면 그런 평면을 무수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니, 우리 세상과 나란히 무수한 평행 세계가 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내보일 수 없다고 해도 염려하지는 마시라.

 

여러 평행 세계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믿기가 어렵다.

하지만, 물체의 속도가 증가하면 질량이 증가하고 크기가 감소하며 시간이 느려진다고 하는

상대성 이론을 믿기는 쉬울까?

우리네 개인적 경험으로는 이걸 아직 믿을 수 없다.

우리가 그걸 믿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실질적 이로움을 여기서 끄집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무한성 앞에서 어떤 모델이 더 우월하다고 다투는 건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짓이다.

거리를 늘리는 쪽으로 무한성을 상상해 보자. 그 먼 곳에는 끝이 없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나, 거리를 축소하는 쪽에서도 무한성에는 역시 끝이 없다.

우리는 보이는 우주의 한정된 부분만 관찰할 수 있다.

망원경도 현미경도 한계가 있다.

미시세계의 무한성은 거시세계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우리한테 보이는 우주가 이른바 빅뱅의 결과라는 가설이 있다. 그 이후 우주는 쉴 새 없이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우주에서는 물체들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역시 엄청난 거리를 고려할 때, 우주는 아주 오랫동안 느리게 팽창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알려지기로,

진공 상태에서는 기본 입자들이 매 순간, 어디선가 생겨나고 금방 사라진다.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을 고려할 때,

그런 입자 하나하나를 우리의 우주와 비슷한 별개의 우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기본 입자들의 구조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 않는가. 소립자들은 물리학자들한테

파동의 형태로도 입자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미시세계로 한층 더 멀리 들어갈수록,

상대적인 거리가 그만큼 거대해지고,

내부 관찰자에게 시간은 다시 느려진다.

외부 관찰자에게 우리의 우주는,

공에서 생겼다가 사라지는 소립자처럼, 일순간 존재하는데,

내부 관찰자인 우리에게 우주는 수십억 년 존재할 것이다.

 

커피를 한 모금 삼킬 때 잠깐 생각해 보시라.

내가 얼마나 많은 우주를 삼킨 거야?

무수히 많아,

왜냐면 무한성은 부분들로 나뉘지 않으니까.

미시세계 안으로 예를 들어 비행한다고치면, 이것 역시,

바깥 우주의 끝없는 광활함으로 가는 것처럼, 멀고 오래 걸린다.

 

시간 역시 공간처럼 앞으로도 뒤로도 무한하다.

시간의 조각 조각은 무한히 작을 수도 있고 무한히 클 수도 있다.

시간의 자락 위에 있는 점을 어떤 것이든// 그 양쪽으로 시간의 무한성이 뻗어나는 기준점으로 볼 수 있다.

이 기준점을 시간의 조각에 따라 옮긴다 해도,

앞에서나 뒤에서나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서로 중첩된 여러 세계의 이 모든 무한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우주의 중심이 모든 점에서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면

어떤 면에 있는 어떤 점이든 같은 무한성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이렇게 모든 점에 우주의 중심이 동시에 있는 까닭에 모든 사건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무한성을 한눈에 포착하는 것도 역시 불가능하지 않은가. 우리가

마음속으로 우주에서 아무리 멀리 나아간다고 해도,

같은 무한함이 계속 펼쳐진다.

우리의 가시적인 우주가 4차원 공간에서 유한한 구체로 바뀐다는 더 복잡한 이론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한성에 대한 개념이 더 쉬워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 여러 차원이 또 무한히 많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이런 걸 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큼,

그저 좁은 시야에 만족하고 뭔가를 알아듣는 척하는 수밖에 없다.

 

현대 과학에는 이해할 수 없고 설명되지 않는 것이 대체로 많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의 성과를 이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트랜서핑의 원리를 이용하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것이다.

단지, 왜 어떻게 이게 작동하는지 같은 물음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으면 된다.

그런 물음은 어린애가 물리학자에게 «물체들은 왜 서로 끌어당기나요하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과학자는 «왜냐하면 중력 법칙이 작용하니까» 하고 대답하겠지.

그런데 또 질문이 나온다.

«그럼, 중력 법칙은 왜 작용해요? 그러니까, 물체들은 왜 서로 끌어당기냐구요

이렇게 뱅뱅 돌기만 할 때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뭔가를 설명하려는 이런 헛된 작업을 멈추고, 선택의 모델이 주는 결과를 그냥 이용할 것이다.

우리가 모든 걸 다 알고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선택의 모델에서는

사람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만든다.

하지만 트랜서핑에서 말하는 운명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운명과 다르다.

차이가 무엇인가?

그건, 자기 행복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행복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선택의 모델을 금방 받아들이거나 금방 거부하려 들지는 말라. 그냥 이렇게 자문하시라.

‘내 행복을 위해 세상과 싸워서 나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나?’

그리고 그런 자세로 싸움을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볼지는 각자가 스스로 결정한다.

사실, 평생 투쟁하면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세상이 스스로 당신한테 오게끔 만드는 게 더 쉽지 않은가? 왜냐면

세상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을 실현해 주기만 하니까.

 

선택된 주문은 항상 무조건 실행된다.

하지만, 선택은 소원이 아니라, 당신이 알아야 할 다른 무엇이다.

소원은 동화에서만 이뤄진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흔히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소원을 이루기는 아주 힘들거나// 아니면 불가능해!”

 

우리는 앞에서 나온 관리인의 수수께끼를 푸는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원이 왜 실행되지 않고 꿈이 왜 이뤄지지 않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요약

 

* 현실은 수없이 다양한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은 바로 그 다변성이다

* 모든 세상 모델은 현실의 개별적인 측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 모든 지식 분야는 현실이 물질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의 선택된 측면에 기초한다.

* 당신의 선택은 항상 실현된다. 선택하는 것을 얻게 된다.

* 선택의 공간이란 바로 과거에 있었고 지금 있으며 앞으로 있을 정보 마당이다.

* 정보 마당에는 모든 사건의 잠재적인 옵션이 들어 있다.

* 이 옵션은 시나리오와 무대 장면으로 구성된다.

* 선택의 공간을 여러 구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각 공간에는 나름의 옵션이 있다.

* 구역 간 거리가 더 멀수록, 옵션의 차이가 더 크다.

* 매개 변수가 거의 같은 구역들이 하나의 생명선을 이룬다.

* 물질적 구현은 에너지 잠재력으로서 공간에서 움직인다

* 생각 에너지의 방출이 선택한 것을 물질적으로 구현되게 이끈다.

* 모든 유기체는 물질적 구현에 나름대로 이바지한다.

* 생각 방출의 변수가 바뀔 때, 다른 생명선으로 이동하게 된다.

* 우리는 시나리오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는 있다.

* 행복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다. 그저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x7fc75v0TM&list=PL1DpsJaWzR9t8DGNKxMyyLb0t6o7pNKHw&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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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선택의 모델. 

 

선택의 모델은 세상의 구조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각. 이것이 트랜서핑의 개념적 기반.

원하는 것을 힘들여 성취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럼, 이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트랜서핑에 대한 이론적 소개.

 

 

새벽 별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웃집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 가증스러운 짐승이 항상 나를 깨운다. 정말 지긋지긋해!

이 고약한 녀석이 내는 소리에 내가 왜 잠을 깨야 하는 건가?

산책이나 나가서 마음을 달래야겠다. 그래야 옆집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가라앉힐 수 있으려나.

개를 보면, 그 주인도 알 수 있다.

내 인생에는 항상 추잡한 것들이 기어들어 정말 짜증 나게 한다. 옷을 입는데도 신경이 곤두선다.

슬리퍼는 또 왜 안 보이나.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찾으면 내다 버리고 말아야지, !

 

바깥에는 안개가 끼고 공기가 축축하다. 어두운 숲을 지나 미끄러운 길을 걷는다.

잎사귀들이 거의 다 떨어져서 반쯤 죽은 나무들 잿빛 줄기가 드러났다.

나는 왜 이 음울한 습지에 살고 있나?

담배를 꺼낸다. 피울 마음은 별로 없는데, 습관이/ 피워야 한다고 부추긴다. 피워야 한다고?

언제부터 내가 담배에 얽매이게 됐지?

그래, 아침부터 빈속에 담배는 정말 역겹다. 예전에는 흥겨운 모임에서 담배가 만족을 안겼고,

유행이나 자유, 스타일의 상징 같은 것이었지.

하지만, 그 축제의 날들은 지나가고 비 내리는 잿빛 일상이 끈적끈적한 문제들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몇 번씩이고 담배를 꺼내 문다. 이제 이걸 태우면서 숨 좀 돌리고,

다시 차가운 일상으로 뛰어들어야겠다.

 

담배 연기가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화난 아이처럼 잠깐 눈을 찡그렸다. 다 지겨워졌다.

그때 내 생각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교활하게 굽은 자작나무 가지가 얼굴을 따끔하게 때렸다.

빌어먹을! 화가 나서 그걸 부러뜨려 한옆으로 내던졌다. 그건 나무에 걸려서 광대처럼 까불며 흔들거렸다.

이 세상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나의 무력함을 놀려대는 것만 같다. 무거운 발걸음을 우울하게 옮긴다.

 

세상과 싸우려 들 때마다, 세상이 처음에는 한발 물러서서 희망을 주다가도

그다음엔 곧 내 콧잔등을 보기 좋게 갈기곤 했지.

자기 앞에 있는 장애물을 다 쓸어내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건 영화에서만 나오는 얘기야.

인생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아. 인생은 룰렛 게임과 비슷해. 처음에 한두 번, 두세 번은 이긴다.

그러면 의기양양해져서 세상이 다 내 주머니에 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 털리고 말지.

파티에 내놓은 거위와 같은 꼴이야. 처음엔 통통하게 살찌우고 그다음에 흥겨운 음악과 웃음소리를 날리면서 구워 먹거든. 네가 실수했어. 이건 너의 파티가 아니야. 네가 실수한 거야

 

그렇게 즐겁지 못한 생각에 잠겨 바다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작은 파도들이 모래 해안을 사납게 물어뜯었다.

바다는 나한테 축축한 냉기를 불친절하게 불어넣었다.

살이 오른 갈매기들이 바닷가를 느릿느릿 걸으면서 뭔가를 쪼아댄다.

그 녀석들 눈에는 감정이나 이성이 눈곱만치도 없다. 그저 차갑고 검은 공허뿐이다.

그 눈들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 세상이 되비치는 듯했다. 그 세상 역시 차갑고 적대적이다.

 

웬 노숙자 하나가 해변에서 빈 병을 줍고 있었다. 저 얼간이가 꺼지면 좋을 텐데. 난 혼자 있고 싶다.

아니, 나한테 오는 것 같은데, 구걸하려는 모양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어.

어디에고 평온이란 없구나. 정말 피곤하다.

이 피로감은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쉴 때도 그렇다.

내 삶이란 게 감옥에 갇혀 사는 것과 다를 바가 뭔가.

곧 모든 게 바뀌어야 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처럼 보여. 그러면 다른 사람이 되어 인생을 즐길 수 있겠지.

하지만 이건 다 미래의 일이다. 당장은 여전히 우울한 고역이야.

계속 기다리지만, 그 미래가 잘 오지를 않는구나.

이제는 여느 때처럼 맛없는 조반을 때우고 따분한 일을 하러 가서, 또 누군가에게 필요한 결과를 짜내겠지.

하지만 그건 나한테 필요한 게 아니다. 부담스럽고 무의미한 삶의 하루를 또 보내야 한다.

 

새벽 별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금방 보았던 우울한 꿈은 무엇일까? 마치 전생의 한 자락이 돌아온 것 같은데. 그냥 꿈이었다니,  다행이다.

내 고양이가 하는 것처럼 안도하면서 한껏 기지개를 켰다. 이 태평한 녀석은 사지를 쭉 뻗고 누운 채,

나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걸 귀로만 보여준다. 이 수염 달린 녀석아, 일어나라. 같이 산책하러 나갈래?

날이 화창하기를 바라면서 바다로 갔다.

 

오솔길은 숲을 가로질러 뻗어 있고, 새벽 별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갖가지 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뭔가가 관목 속에서 먹이야! 먹이!” 유별나게 짹짹거리고 있었다.

, 저 녀석이군. 작은 털북숭이, 어찌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거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들 목소리가 이렇게나 다채로운데도, 그 어떤 것 하나도 전체 합창에

불협화음이 없구나, 여기서 나오는 조화로운 교향곡은 그 어떤 정교한 오케스트라도 흉내 내지 못할 거야.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흘러들었다. 이 마법 같은 조명이 여러 색상의 깊이와 풍부함을 살리면서 

숲이 멋진 홀로그램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바다가 나왔다.

에메랄드빛 파도가 따스한 바람과 나직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해변은 무한히 넓고 텅 빈 듯 보였지만, 나는 아늑함과 평온함을 느꼈다.

사람들 북적거리는 세상이 나에게 이 한적한 공간을 특별히 마련해 준 건 아닌가.

누군가는 이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 낸 환상이라고 여긴다. , 아니야, 이런 아름다움이 그저 나의 감각기관과 뇌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지.

 

새벽녘 우울한 꿈의 흔적을 더듬다가 나의 이전 삶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실제로 상당히 우울했으며 밝은 게 아니었다.

이 세상이 나에게 마치 빚을 지고 있는 듯했고, 그걸 요구하려고 든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 하지만 그런 요구에 세상은 쌀쌀맞게 등을 돌리곤 했지.

 

그럴 때, 경험 많은 조언자들이 들려주던 말.

세상이 그리 쉽게 굴복되는 건 아니야, 세상은 정복해야 하는 것이야.”

그래서 나는 이 세상과 싸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얻어낸 것 하나 없이 녹초가 됐을 뿐이다.

그때에도 조언자들은 준비된 대답을 읊었다.

너한테 문제가 있어, 먼저 자신을 바꿔야 해, 그러고 나서 세상에 뭔가를 요구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 싸우려고 해 봤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건 한층 더 힘겨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꿈을 꾸었는데, 어딘가 자연보호구역에 있는 것 같았다.

형용키 어려운 아름다움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장관에 연신 감탄하면서 계속 걸었다.

그때 허연 수염을 한 노인이 화난 듯한 표정으로 불쑥 나타났다. 보호구역의 관리인이었다.

그는 말없이 나를 훑어보았다.

내가 다가가면서 입을 열려고 하자, 노인이 재빨리 손을 젓고는 차갑게 말했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소, 제멋대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방문자들한테 지쳤어,

그들은 항상 불만에 차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고 소음을 일으키면서 나중에는

쓰레기 더미만 남기고 떠난다오.”

나는 알아들었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걸었다.

 

자연보호구역의 예사롭지 않은 풍광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여기를 왜 이제야 온 거지?

넋이 나간 듯 목적도 없이 걸으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변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은

그 어떤 생각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웠다. 말로 나타내는 건 더욱더 그렇다.

내 머릿속에는 황홀한 공허만이 자리 잡았다.

 

잠시 뒤 그 관리인이 다시 나타났다. 얼굴에 새겨진 엄격한 표정이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그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푸른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자,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계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계곡 아래에 마을 같은 게 있었다. 장난감 같은 집들이 녹음방초에 묻혀 있는 것이,

무슨 마법의 동화에 나오는 삽화처럼 보였다.

이게 뭔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 가슴 뭉클하게 바라볼 수 있을 텐데. 이런 건 다

그저 꿈에서나 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의아한 눈길을 관리인에게 돌렸지만, 그는 수염을 움찔거리기만 했다. 그건 마치

더 놀랍고 예상치 못한 일이 앞으로도 일어날 거요!” 하고 말하는 듯했다.

 

계곡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어떻게 이 보:호구역에 들어섰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노인한테서 어떤 설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어색하게 꺼낸 듯했다.

이런 아름다움 속에서 살 수 있는 행운아들은 정말 좋겠네요.

그 말에 노인이 딱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자네가 저들 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누가 막기라도 한단 말인가?”

 

내가 닳아빠진 레코드를 돌렸다.

누구나 호화롭게 태어나는 건 아니지요. 자기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관리인이 나를 웬 멍청이가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쏘아보면서 말했다.

요는, 누구나 자기 운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야. 우리한테 딱 하나 주어진 자유란 바로

선택의 자유지. 다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삶에 대한 그런 견해가 나에겐 지극히 생소한 것이기에, 반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관리인은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소리! 자네한테는 선택권이 있네, 다만 그걸 이용하지 않는 것이지. 선택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말일세.”

이게 무슨 말이야, 막걸리야?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이 세상에서 모든 게 허용된단 말인가.

그때 문득 이게 다 한낱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혹스러움이 어찌나 큰지, 이 이상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몰랐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노인한테 이렇게 넌지시 말한 것 같다.

꿈속에서야 무슨 소리를 못하겠습니까, 아니, 현실에서도 그렇구요. 그게 노인장께서 누리는

자유의 전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나의 빈정거림에도 노인은 태연하게 쓴웃음만 날렸다.

꿈속의 인물과 논쟁에 엮이다니... 이 터무니없는 상황을 깨닫자 나는

얼른 잠을 깨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졌다.

노인이 내 생각을 읽은 듯했다.

됐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그들이 자네 같은 멍청이를 나한테 보낼 줄은 몰랐네.

그래도 내 임무는 다해야겠지.”

 

그 말에 나는 임무란 무엇이며 또 그들이란 누구인지 물었다.

노인은 내 질문을 무시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보기에는 어리석은 수수께끼를 건넸다.

사람은 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를 얻을 수 있다네. 자네한테 이런 수수께끼를 하나 주지.

이 자유를 어떻게 얻어야 하겠나? 이걸 알아맞힌다면, 자네의 사과는 하늘로 떨어질 것이네.”

 

여기서 사과는 또 왜 나온담? 나는 그만 자제심을 잃고 그런 수수께끼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고 내뱉었다.

이건 그저 꿈일 뿐이고, 동화에서야 별의별 기적이 다 일어나지만, 현실에서 사과는

결국 땅으로 떨어지는 법이지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이 나직하게 소리쳤다.

이제 그만하게! 가자구, 내가 보여줄 게 있네.”

 

잠을 깬 뒤, 아쉽게도 그 꿈의 뒷부분이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정보를 그 관리인이 나한테 불어넣었다는 느낌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무슨 뜻인지 모를 단어가 하나 기억에 남았다. 트랜서퍼링.

그리고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은 이런 것뿐이었다.

나의 세계를 더 잘 가꾸려고 스스로 애쓸 필요가 없고, 모든 건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나의 안녕을 위해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졌다는 것.

또한 지구상에서 내 자리를 위하여 세상과 싸워서는 안 되며, 이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을 선택하는데, 이걸 가로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그런 생각들이 처음에는 터무니없어 보여서 그 꿈도 금방 잊어버리고 말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자신이 놀랍게도 알아낸 것이 있었다. 그 관리자-노인의 선택하다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명료한 그림이 기억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관리인이 내준 수수께끼는 어디서나 나오는 지식처럼 저절로 풀렸다.

하루하루 새로운 뭔가를 알아냈고, 그때마다 엄청난 놀라움에 떨었다. 그건 두려움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 모든 지식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성적으로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런 것이 내 머리에서는 생겨날 수 없었다는.

 

트랜서퍼링을 알게 된 뒤 내 삶은 새로운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창작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자기 손으로 만든 작품이 얼마나 큰 기쁨과 만족을 안기는지 실감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자기 운명의 창조 과정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이다. 다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운명의 창조라는 용어가 여기서는 썩 적절하지 않다.

 

트랜서퍼링은 자기 운명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과 똑같다. 이게 다 무슨 뜻인지, 이제 얘기하려고 한다.

왜 사과가 하늘로 떨어질수 있는지’,

새벽 별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무엇인지,

또 아주 범상치 않은 여러 가지를 여러분은 이제 알게 될 것이다.

 

관리인의 수수께끼 (계속)

 

(오디오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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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공간

 

머리말

 

사람은 누구나 편안하고 넉넉하게 살고 싶어 한다. 질병에 시달리지 않고 풍파도 없이.

하지만 실제 인생은 그렇지 못해서, 폭풍우 속에 떠 있는 종이배처럼 사람을 뒤흔들어

툭하면 불안이나 좌절, 나아가서 분노 따위를 안기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니행복을 찾으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찾고 시도해 본다.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마음을 다스리기에 괜찮은 방법들이

정말로 더러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좋은 가르침마다 또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거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마저 나올 때가 있다.

 

트랜서핑이라는 기법에는 아주 기묘하고 특이한 것이 많이 나온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정말이지, ‘믿거나 말거나이다. 다행히도 여기에 있는 방법은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트랜서핑은 진부한 관점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이루게 하는 강력한 기법이다.

달리 말해, 내 운명을 내 마음대로 다루는 것. 이게 말이 되나?

그런데 여기에는 기적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현실이, 알고 보니,

그 어떤 신비주의보다 더 놀랍더라.

 

성공 비결, 부자가 되는 법, 행복해지는 길 등을 알려주는 책은 많다. 귀가 솔깃해지는 제목들이다.

누가 그걸 원치 않는단 말인가.

하지만 거기서는 무슨 실습이나 명상, 자기완성 같은 것이 주를 이룬다.

그것도 필요하긴 하지, 그런데 금방 따분해진다인생 자체가 이미 끊임없는 시험이고 시련인데,

그들은 또 긴장하고 자신에게서 뭔가를 짜내라고 하는 거다.

 

너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러니까 변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래, 나 자신에 백 프로 만족을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긴 그대로 살 수는 없단 말인가? 그러면 왜 안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지 않는가?

바깥에서, 주변에서 누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트랜서핑에서는 나 자신을 바꿀 필요도 없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자기 계발에 해결책이 있는 게 아니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면 된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외려 자신에게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실습이나 명상, 자기 계발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트랜서핑은 새로운 자기완성 방법론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을 근본적으로 달리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다.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그냥 들어오게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다 많은 오류를 저지른다. 그러고 나서는,

그때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바로잡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꾼다.

그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실수는 바로잡을 수 있다.

이게 곧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심지어는 과거로 전진!” 같은 것이다.

이 표현의 의미는 이 책 끝에서 알게 된다.

 

이제부터 하려는 얘기는 여러분이 그 어디서도 듣거나 읽어볼 수 없던 것이다.

그러니, 예상치 못한 것에 대비하시라. 그건 아주 놀랍고도 유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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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출신 소비에트 극작가 미하일 불가꼬프의 세계적인 명작을

2005년 러시아 TV에서 10부작으로 방영. 

 

판타지와 종교 역사, 로맨스, 예술과 삶의 의미, 선과 악, 신과 악마, 악의 응징, 사탄의 존재와 역할,

권력 풍자, 사회 고발 등에 관해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다층적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자못 흥미롭다.

 

스탈린 정권에 억압받던 작가가 1940년 죽은 지 28년 뒤에 소련에서 처음 출간됐으나,

이미 그 이전에 영국 등 유럽 국가들에서 출간돼 비상한 관심을 끈 바가 있다. 그 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먼저 영화화됐고, 러시아에서도 영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으레 그렇듯이, 작품의 진수를 맛보려면 원작 소설을 접하는 것이 가장 좋으나,

영상으로 접하는 것도 나름대로 볼 만하다.

 

1부에서 10부까지 번역하고 자막이 달려 유튜브에 실린 것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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