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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the devils of loudun 삽화

 


 

  악마들이 떠남으로써 정신이 마귀 들림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 한 레비아탄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이제 싸움은 하나님이라는 이데아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해도 화합될 수 없는, 그의 스피릿 안에서 벌어졌다

 

  하나님이라 명명된 무한함은 본성이라 불리는 유한함을 포함해야 하며, 이 무한함은 공간의 모든 점들과 시간의 매 순간에 전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오늘날 우리한테는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명백한 결말을 회피하고 그 현실적인 결과를 모면하기 위해 구학파의 엄격한 기독교 사상가들은 창의력을 소비하고 준엄한 기독교 모럴리스트들은 설득과 강요를 다 허비했다. 그 사상가들은 선포하기를, 이는 타락한 세상이며 인간의 본성은 철저히 썩었다고 했다. 그 모럴리스트들은 말하기를, 그런 고로 모든 전선에서 본성을 상대로 싸워야 하니, 안에서는 억누르고 밖에서는 무시하여 가치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라는 선물을 얻고자 희망함은 오로지 본성의 경험 소여(所與)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한테 주어진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임으로써만이 우리는 신의 선물도 받을 자격을 갖출 터이다. 우리가 원초적 사실에 다가든다는 것은 일상의 많은 자잘한 사실을 거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선종의 한 선사가 이르기를, “진리를 찾아 헤매지 말라, 그저 고정 관념에 붙들려 있지만 않으면 되느니” 했다. 기독교 신비주의자들도 대략 같은 말을 하긴 하되, 본질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그들은 얘기가 교리와 신앙 조문, 경건한 전통 등에 관한 것일 때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고정 관념’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기껏해야 이정표일 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면 우리는 길을 잃을 게 확실하다. 존재라는 원초적 사실에는 일상의 사실들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말로써는, 혹은 말로써 고무된 판타지로는, 그것을 알 수 없다.  

 

  하느님 왕국을 지상에 임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네 상상이나 종작없는 추론으로는 임하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지상에서 실제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분리성이라는 주장이나 갈망과 혐오, 보상의 판타지, 사물의 본성에 대한 기성 전제들 따위가 가득한 영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시늉을 하는 한, 하나님 왕국이 지상에 도래하기란 기대난망. 

  먼저 인간의 왕국이 와야 하고, 그런 뒤에야 하나님 왕국도 올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죽일 게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억누르고 내치는, 우리네 숙명적 성향을 죽여야 한다. 우리는 편견을 떨치고, 현실을 개조한다고 뿜어대는 언어의 덫을 제거하고, 현실이 기대와 맞지 않을 때 숨어드는 몽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는 살레의 성 프랑수아가 보인 ‘거룩한 무심함’이요, 코사드[각주:1]의 ‘내맡김’이요, 삶에서 벌어지는 것을 모두 매 순간 자의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종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완전한 길의 징표인 ‘선호하기를 거부함’이다.

 

  교회 권위자들과 자신의 경험에 의거하여 수렝은 영혼이 세상 존재의 거룩한 근간과 합일돼 변모하면서 하나님을 직접 인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네 최초 조상의 죄 때문에 본성이 완전히 타락한 결과 조물주와 피조물들 사이에 거대한 간격이 생겼다는 견해도 소중히 여겼다. 

  신과 우주에 대해 그런 관념을 견지하면서 수렝은 이런 논리적 귀결에 이르렀다. 즉, 자살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본성적인 요소를 죄다 몸과 마음에서 근절할 필요가 있다고. 한데,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노년에 인정했다.

 

  「여기서 이런 점을 말해둬야 하겠다. 루덩으로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나는 신에게 다가들리라 기대하면서 육욕을 죽이느라고 고행에 너무 몰두했다. 이 노력에 가상한 열의가 있었을지언정 거기엔 또 속박과 편협한 이성도 아주 많았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편협한 도그마에 빠졌고, 그 도그마는 온건할지 몰라도 적잖이 비난받을 만한 것이었다.」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을 구별하며 신이 당신의 피조물과 반대편에 있다는 견해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수렝은 본성에 대한 이기적 태도며 본성 자리에 설정된 몽상과 허황한 생각을 억누른 것이 아니라 본성 자체를, 이 특별한 행성에서 육체를 부여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고행으로 억누르고 극복하려 애썼다. 

  그의 조언은 이렇다. 

  「인간의 원초적 모습인 본성을 증오하라. 그 본성이 신께서 예비하신 모든 굴욕을 감내하게 하라.」 본성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 선고는 공정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께서 마음대로 우리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것이 그분의 의지라는 것을 수렝은 가장 쓰라린 경험으로 알았다. 

 

  본성은 터무니없고 무분별하다는 견해를 소중히 여기면서, 그는 노이로제가 종종 수반되는 지적 피로를 인간적 추잡함에 대한 증오와 사람들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혐오로 바꾸었다. 이 증오와 혐오가 특히 더 강한 것은, 그가 아직도 미련을 품고 있으며 사람이라 불리는 역겨운 존재들이 야기한 갖가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편지에서 그는 누군가가 부탁한 일을 벌써 며칠째 처리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 작업이 입맛에 맞았으며, 그의 병든 본성에 어떤 안도감마저 안겼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하, 상태가 좀 나아진 것은 ‘크리스트교를 배신했기’ 때문이었군. 다시 비참한 상태에 빠지고, 이 상태는 죄책감 때문에 더 악화됐다. 그는 극심한 가책을 느낀다. 그러나 그건 그를 행동케 하는 가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동할 능력이 없는 상태임을 발견하니까. 

  그래서 ‘자기 죄를 물처럼 삼키고 빵처럼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의 의지와 행동 능력은 마비됐지만 감수성은 아직 살아 있다.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이전처럼 고통을 겪을 수는 있다. ‘사람은 더 많이 벗겨질수록, 가격을 더 아프게 느끼는 법.’ 

 

  그는 ‘죽음의 공허’에 있다. 그러나 이 공허는 그냥 텅 빈 곳이 아니다. 그건 격심하고 완전한 공허요, ‘끔찍하고 참담한 나락이며, 거기에는 도움이나 구원 받을 기대가 없고’ 거기서는 조물주가 영혼을 괴롭히며 그 조물주에게 제물은 증오만 품을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주인은 홀로 지배하기를 요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종의 삶을 고난으로 바꾸는 것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본성은 궁지로 내몰려서 죽음을 향해 천천히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이제 인격은 더 이상 없으며 그 혐오스러운 요소들만 있을 뿐이다.

 

  수렝은 더 이상 생각이나 연구나 기도를 할 수 없고 좋은 일을 할 수 없으며 사랑과 감사를 지니고 조물주에게 가슴을 열 수도 없다. 그러나 ‘그의 본성의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측면’은 아직 살아서 ‘죄악과 꺼림칙한 일에 빠졌다.’ 뭔가 무관한 작업을 하면서 옆으로 빠지려는 번다하고 경망한 갈망이 거기에 해당하는데, 그건 자만심과 자기본위와 공명심 못지않은 죄이니까. 

  내면에서 노이로제와 엄격주의에 시달린 그가 외면에서 고행으로 본성을 더 빨리 파괴하기를 꿈꾼다. 이전처럼 안도감을 주는 작업이 아직 몇몇 있지만 그 작은 기쁨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외향적인 공허를 내향적 공허와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끼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외부 도움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본성은 철저한 무방비 상태로 신의 자비에 노출될 테니까. 의사들은 고기를 더 많이 먹으라 하지만 그 권고를 따를 수 없다. 신께서 이 질병을 정화의 수단으로 주셨다. 너무 일찍 좋아지려고 애쓴다면 그건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터

 

  그렇게 건강을 거부하고 비즈니스와 휴식도 거부했다. 그러나 재능과 학식을 눈부시게 발휘한 활동 분야가 그래도 남아 있었다. 강론, 신학 저술, 설교집, 경건한 장시들. 거기에 많은 노력을 쏟아 왔고, 그것들을 여전히 일면 뿌듯하게 여긴다. 

  길고 고통스러운 망설임 끝에 그 동안 써온 것을 모조리 파기하기로 결심한다. 몇 권 책의 원고와 다른 많은 글들을 찢어발기고 불태웠다. 이제 그는 「갖고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고통에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가 됐다.」 그는 이제 「내 본성이 거부하는 험로를 걸으라고 하는 그분의 작업을 밀고나가는 숙련공」 같이 됐다

 

  몇 달 지나니 그 길이 어찌나 힘든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1639년부터 1657년까지 그 누구한테도 서신을 보내지 않았다. 이 기간 내내 병리적 문맹이라는 괴이한 질환에 시달리면서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없었다. 말하기조차 힘든 때도 더러 있었다. 그는 홀로 유폐 상태에 있고 바깥세계와 연락을 모두 차단했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 스스로 하나님한테서 도피하기로 내린 결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안시에서 돌아오기 얼마 전 자신이 이미 현생에서 저주를 받았다는 확신에 (여러 해 동안 지탱돼 온 확신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처절한 절망감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일뿐. 그 다음엔 지상의 지옥에서 한층 더 끔찍한 지옥으로 떨어지겠지. 

 

  고해사제와 수도회 상급자들이 안심시켰다.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고 생명이 있는 한 확고부동한 저주란 있을 수 없다오. 이 점을 한 신학자는 장 조셉에게 삼단논법을 동원해 입증하고, 또 다른 이는 2절판 묵직한 서적을 들고 진료소로 찾아와서 교회 박사들의 권위를 들먹이며 입증했다. 

 

  하지만 죄다 소용없었다. 수렝은 자신이 길을 잃었음을 알았다. 한때 자기가 물리쳤던 악마들이 영원한 화염 속에 그의 자리를 환호하며 준비해 두었음을 알았다. 다른 수도사들도 저희 내키는 대로 다 떠들었다. 그러나 사실들과 고통 받는 이의 행위가 그 어떤 말보다 더 크게 말했다. 그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모든 사건, 모든 생각, 모든 느낌이… 절망을 굳히기만 했다. 벽난로 곁에 앉았다면, 이글거리는 잉걸이 (영원한 저주의 상징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교회에 들어섰다면, 그 순간 신의 심판에 대한 어구나 사악한 자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늘 들리고 울렸는데,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설교를 들었다면, 회중에 길 잃은 영혼이 있다고 설교자가 단언하는 것을 꼭 듣게 되는데, 그게 바로 그의 영혼이었다. 

 

자만심의 악마 레비아탄

 

  언젠가 그가 죽어가는 형제의 침상 곁에서 기도할 때, 갑자기 자신이 그랑디에처럼 마법사가 되어 악마들에게 무고한 사람 육신에 들어가라고 명령할 힘을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것을 지금 그가 하고 있다. 즉, 죽어가는 사람에게 주문을 걸고, 자만심의 악마인 레비아탄에게 이 육신으로 들어가라 명령하고, 정욕의 악마인 이사카론못된 장난의 스피릿인 발람신성 모독의 왕인 베게모트로 하여금 무방비 상태의 제물에게, 영겁의 목전에서 마지막 중대한 행보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덤벼들라 권하고 있다. 그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에 영혼이 사랑과 믿음으로 충만하다면 모든 게 다 좋을 것이다. 만약 안 그렇다면… 

 

  수렝이 실제로 유황 냄새를 맡고 울부짖음과 이빨 가는 소리를 들었다. 한데 이게 뭐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혹은 자발적이었나?) 그가 악마들을 계속 부르면서 악마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돌연 침대에서 몸을 뒤틀며 헛소리를 했다. 한데 그건 이전처럼 하나님 뜻에 복종이며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며 거룩한 자비와 천국의 기쁨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검은 날개가 펄럭인다는 둥 공격적인 의심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공포에 관한 횡설수설이었다. 강한 두려움을 느끼며 수렝이 퍼뜩 깨달았다. 그래, 내 느낌이 옳았어, 난 마법사가 된 거야!   

 

  자신이 저주받았다는 이 외적 증거에 어떤 낯설고 초자연적인 힘으로 고무된 내적인 확신이 추가됐다. 이렇게 적는다. 「하나님을 말하는 사람은 엄격함과 (또 감히 말하자면) 상상을 초월하는 괴로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의지가 마비되고 허탈 상태가 갈마들며 근육이 경련돼 침대에 붙박여 있는 오랜 시간에 그는 ‘이와 비교할 통증은 세상에 더 없을 정도로 신의 분노가 거세다는 인상’을 받았다. 

 

  (몇 번이나 해가 바뀌면서 고통의 양상도 이모저모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결코 가시지 않았다. 그는 그걸 이지적으로 알았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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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en Pierre de Caussade (1675-1751) - 프랑스의 예수회 성직자, 종교 저술가. <신의 섭리에 내맡김 abandonment to divine providence>. 그는 현재 순간은 신께서 주신 성찬이요 그것에 내맡김과 그것을 필요로 함은 신성한 상태라고 믿었다. 얼핏 가톨릭 교리에 배치되듯 보이기에 그의 책은 1861년까지 출간 금지. 저자 본래 뜻에 더 합당한 버전은 1966년도에야 출간됐다. 그의 종교적 관점에서 어떤 작가들은 대승불교와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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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악마에 사로잡힌 잔느 수녀


 

  그건 또 하나의 이적이었다. 자신을 지배한 것을 자신이 적어도 웬만큼은 지배했다는 점을 다시금 과시한 셈. 저번에는 의지를 발휘하여 레비아탄의 추방을 넌지시 암시하더니, 이번에는 분명 치명적인 급성 심신증 질환의 증세를 다 떨치겠다고 의지를 보이고는 그렇게 한 것이다.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갖춰 입고 채플로 내려가서 다른 자매들과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의사 팡통을 부르러 다시 사람을 보냈고, 달려온 위그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했다. 하나님 권능은 지상의 치료법들을 단연 능가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으며, 앞으로는 우리 치료도 거부하겠지.」 이건 원장수녀의 기록. 

 

  의사 팡통만 가여운 신세가 됐다! 로바르데몽이 루덩으로 돌아온 뒤 사법위원회에 소환됐고, 위원회는 그에게 잔느의 회복이 기적이라는 증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그가 거부했다. 거부하는 근거를 설명해 보라는 압력을 받자 죽을병에 걸렸다가 급작스레 건강해지는 경우는 흔히 자연스레 생길 수 있다면서 이렇게 답변했다. 

 

  “인체에는 체액이라는 물질이 있어서, 느낄 수 있게 배출되거나 피부 모공을 통해 느낄 수 없게 방출되거나, 아니면 생명에 중요한 신체 기관에서 덜 중요한 기관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때, 체액의 작용으로 생긴 불안한 증세는 치료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수 있지요. 이것은 체액이 자연에 의해 완화됨으로써 그렇습니다. 혹은 처음 해로운 체액을 그보다 덜 포악한 다른 체액이 대체할 때도 그렇습니다.” 

 

  팡통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체액은 용변을 보거나 구토하고 땀이며 피를 흘릴 때 배출됩니다. 이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요. 이런 식의 배출은 더운 체액, 특히 담즙이 많은 환자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데, 그들이 질병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은, 진작 썼지만 효능이 늦게 나타나는 약제 때문일 수 있습니다. 체액은 환자 몸에서 좀 빠져나오면서 병의 선행 원인뿐 아니라 복합적 원인도 함께 가지고 나오는 게 분명합니다. 아, 여기에 덧붙일 것이, 여러 체액은 균형 잡힌 움직임 등 자체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듯이, 몰리에르는 자신의 희곡에서 당대 의사들의 무지를 전혀 과장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적었을 뿐이다

 

  이틀이 지났다. 원장수녀가 문득 무슨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 나를 치료해준 성 요셉의 기름을 다 닦아내지 않았으니까 자국이 슈미즈에 아직 남아 있을 거야. 부원장이 보는 앞에서 수녀복을 걷어 올렸다. 

  「우리 둘은 놀라운 향내를 맡았다. 나는 슈미즈를 벗어서 허리춤을 잘라냈다. 슈미즈에는 신성한 향유가 다섯 방울 떨어져 있어, 거기서 천상의 향기가 풍겼다.」 

 

  <젠체하는 새침데기들>[각주:1]에서 고르기부스가 하녀한테 묻는다. “네 젊은 여주인들은 어디 있느냐?” 마로트가 대답한다. “자기네 방에 있지요.” “거기서 뭘 하는 거지?” “입술에 바르는 포마드를 만들어요.” 

  그 시대에는 패션을 아는 여인이라면 누구나 엘리자베스 아덴[각주:2]이 되어 화장품을 제 손으로 만들어야 했다. 얼굴 크림과 손 로션, 입술연지와 향수를 만드는 레시페는 비밀 병기처럼 소중히 간직되고 특별한 친구들 사이에서만 너그럽게 주고받았다. 

 

  잔느는 어려서 집에 있을 때나 수녀원에 들어온 뒤에나 뛰어난 화장품 제조자요 아마추어 약제사였다. 성 요셉의 성유는 신성한 것이 아니라 지상 어딘가에서 나온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거기엔 다들 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다섯 방울이 있었다. 원장수녀가 이렇게 적는다.

  「이 축복받은 성유를 사람들이 얼마나 경건하게 믿으며 이 다섯 방울로써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이적을 역사하셨는지 참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잔느 수녀한테는 이제 자신의 신용을 위한 일급 경이로움이 두 가지나 됐다. 성흔이 나타나는 손, 향내 풍기는 슈미즈. 그 둘은 그녀가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영원한 증거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아직 모자랐다. 

 

  그녀가 루덩에 박혀 있다가는 자기 재능을 매장하는 꼴이라고 느꼈다. 물론 순례자들이 있고 대공들과 귀족들과 고위 성직자들이 도시로 찾아왔다. 

  그러나 루덩까지 올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국왕과 왕비를 생각해 봐! 또 예하께서는 어떻고! 게다가 공작이며 후작들, 프랑스의 장군들, 로마교황의 사절들, 전권대사며 특명대사들, 소르본 박사들, 참사회장들, 대수도원장들, 주교며 대주교들을 생각해 봐! 이 훌륭한 분들이 경이로운 일에 감탄하고, 하느님의 놀라운 호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인 사람을 직접 보고 말을 듣도록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한데 그런 소망을 제 입으로 드러낸다면, 그건 주제넘은 짓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얘기를 먼저 끄집어낸 것은 베게모트였다. 

  한번은 가장 격렬한 엑소시즘이 끝났을 때 레쎄 수사가 악마한테 물었다. 어째서 이다지도 고집스레 저항한 것이냐? 악귀가 대답했다. 원장수녀가 사보이 공국 안시에 있는 살레의 성 프랑수아 묘지로 성지 참배를 떠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몸뚱이에서 나가지 않겠어!   

 

  엑소시즘을 하고 또 했다. 저주를 억수로 받으면서도 베게모트가 그저 미소만 지었다. 게다가 이전의 최후통첩에다 다른 조건을 하나 덧붙이기까지 했다. 반드시 수렝 수사를 불러와야 해! 안 그러면 안시 순례조차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엑소시즘을 받는 원장수녀 잔느

 

  6월 중순 수렝이 다시 루덩에 나타났다. 그러나 성지 참배 출발은 옛 엑소시스트를 불러들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로 드러났다. 예수회 장군 비텔레스키는 제 휘하의 수도사가 수녀와 함께 프랑스를 돌아다닌다는 발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 푸아티에 주교 쪽에서도 자기네 수녀가 예수회 수사와 돌아다닌다는 발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비 문제도 있었다. 왕실 금고는 흔히 그렇듯이 텅 비었다. 수녀들에게 지급한 보조금이며 엑소시스트들에게 들인 급료로 마귀 들림 사건에 국왕은 이미 막대한 금액을 들였다. 그런 마당에 사보이로 유람을 떠난다니! 

 

  그런데도 베게모트는 끝까지 버텼다. 그가 선심 쓰듯 하면서 루덩을 떠나는 데 동의했지만, 그것 또한 잔느와 수렝이 나중에 안시로 성지 순례를 반드시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결국 제 뜻을 관철시키고야 말았다. 수렝과 잔느가 성 프랑수아의 묘지에서 만나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단, 거기까지는 각자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조건 하에. 두 사람이 그렇게 하기로 서약했고, 그 얼마 뒤 10월 15일 베게모트가 자취를 감췄다. 잔느가 마침내 자유로운 몸이 됐다. 두 주일 뒤 수렝이 보르도로 돌아갔다. 

 

  이듬해 봄 트랑킬 수사가 악령의 광란에 휘둘린 끝에 죽었다. 

  국고에서 급료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살아남은 엑소시스트들이 본래 저희 소속 거처로 다 돌아갔다. 그들이 떠나자 남아있던 악마들도 곧 하나씩 둘씩 사라졌다

  여섯 해 쉴 새 없이 벌이던 투쟁 끝에 전투 교회가 악을 상대로 한 싸움을 그만두었다. 
그러자 교회의 적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신속하게 사라졌다. 길고 떠들썩했던 파티가 끝났다. 
만약 엑소시스트들이 없었다면, 악마들도 없었으며, 그런 파티도 결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9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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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 몰리에르의 단막 코미디. 1659년 파리 프티 브르봉 극장에서 초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본문으로]
  2. Elizabeth Arden (1884-1966) - 캐나다 출신 사업가로 미국에서 화장품 제국을 이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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