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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07.18 루덩의 악마들 9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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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the devils of loudun 삽화

 


 

  악마들이 떠남으로써 정신이 마귀 들림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 한 레비아탄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이제 싸움은 하나님이라는 이데아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해도 화합될 수 없는, 그의 스피릿 안에서 벌어졌다

 

  하나님이라 명명된 무한함은 본성이라 불리는 유한함을 포함해야 하며, 이 무한함은 공간의 모든 점들과 시간의 매 순간에 전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오늘날 우리한테는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명백한 결말을 회피하고 그 현실적인 결과를 모면하기 위해 구학파의 엄격한 기독교 사상가들은 창의력을 소비하고 준엄한 기독교 모럴리스트들은 설득과 강요를 다 허비했다. 그 사상가들은 선포하기를, 이는 타락한 세상이며 인간의 본성은 철저히 썩었다고 했다. 그 모럴리스트들은 말하기를, 그런 고로 모든 전선에서 본성을 상대로 싸워야 하니, 안에서는 억누르고 밖에서는 무시하여 가치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라는 선물을 얻고자 희망함은 오로지 본성의 경험 소여(所與)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한테 주어진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임으로써만이 우리는 신의 선물도 받을 자격을 갖출 터이다. 우리가 원초적 사실에 다가든다는 것은 일상의 많은 자잘한 사실을 거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선종의 한 선사가 이르기를, “진리를 찾아 헤매지 말라, 그저 고정 관념에 붙들려 있지만 않으면 되느니” 했다. 기독교 신비주의자들도 대략 같은 말을 하긴 하되, 본질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그들은 얘기가 교리와 신앙 조문, 경건한 전통 등에 관한 것일 때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고정 관념’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기껏해야 이정표일 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면 우리는 길을 잃을 게 확실하다. 존재라는 원초적 사실에는 일상의 사실들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말로써는, 혹은 말로써 고무된 판타지로는, 그것을 알 수 없다.  

 

  하느님 왕국을 지상에 임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네 상상이나 종작없는 추론으로는 임하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지상에서 실제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분리성이라는 주장이나 갈망과 혐오, 보상의 판타지, 사물의 본성에 대한 기성 전제들 따위가 가득한 영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시늉을 하는 한, 하나님 왕국이 지상에 도래하기란 기대난망. 

  먼저 인간의 왕국이 와야 하고, 그런 뒤에야 하나님 왕국도 올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죽일 게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억누르고 내치는, 우리네 숙명적 성향을 죽여야 한다. 우리는 편견을 떨치고, 현실을 개조한다고 뿜어대는 언어의 덫을 제거하고, 현실이 기대와 맞지 않을 때 숨어드는 몽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는 살레의 성 프랑수아가 보인 ‘거룩한 무심함’이요, 코사드[각주:1]의 ‘내맡김’이요, 삶에서 벌어지는 것을 모두 매 순간 자의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종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완전한 길의 징표인 ‘선호하기를 거부함’이다.

 

  교회 권위자들과 자신의 경험에 의거하여 수렝은 영혼이 세상 존재의 거룩한 근간과 합일돼 변모하면서 하나님을 직접 인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네 최초 조상의 죄 때문에 본성이 완전히 타락한 결과 조물주와 피조물들 사이에 거대한 간격이 생겼다는 견해도 소중히 여겼다. 

  신과 우주에 대해 그런 관념을 견지하면서 수렝은 이런 논리적 귀결에 이르렀다. 즉, 자살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본성적인 요소를 죄다 몸과 마음에서 근절할 필요가 있다고. 한데,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노년에 인정했다.

 

  「여기서 이런 점을 말해둬야 하겠다. 루덩으로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나는 신에게 다가들리라 기대하면서 육욕을 죽이느라고 고행에 너무 몰두했다. 이 노력에 가상한 열의가 있었을지언정 거기엔 또 속박과 편협한 이성도 아주 많았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편협한 도그마에 빠졌고, 그 도그마는 온건할지 몰라도 적잖이 비난받을 만한 것이었다.」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을 구별하며 신이 당신의 피조물과 반대편에 있다는 견해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수렝은 본성에 대한 이기적 태도며 본성 자리에 설정된 몽상과 허황한 생각을 억누른 것이 아니라 본성 자체를, 이 특별한 행성에서 육체를 부여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고행으로 억누르고 극복하려 애썼다. 

  그의 조언은 이렇다. 

  「인간의 원초적 모습인 본성을 증오하라. 그 본성이 신께서 예비하신 모든 굴욕을 감내하게 하라.」 본성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 선고는 공정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께서 마음대로 우리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것이 그분의 의지라는 것을 수렝은 가장 쓰라린 경험으로 알았다. 

 

  본성은 터무니없고 무분별하다는 견해를 소중히 여기면서, 그는 노이로제가 종종 수반되는 지적 피로를 인간적 추잡함에 대한 증오와 사람들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혐오로 바꾸었다. 이 증오와 혐오가 특히 더 강한 것은, 그가 아직도 미련을 품고 있으며 사람이라 불리는 역겨운 존재들이 야기한 갖가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편지에서 그는 누군가가 부탁한 일을 벌써 며칠째 처리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 작업이 입맛에 맞았으며, 그의 병든 본성에 어떤 안도감마저 안겼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하, 상태가 좀 나아진 것은 ‘크리스트교를 배신했기’ 때문이었군. 다시 비참한 상태에 빠지고, 이 상태는 죄책감 때문에 더 악화됐다. 그는 극심한 가책을 느낀다. 그러나 그건 그를 행동케 하는 가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동할 능력이 없는 상태임을 발견하니까. 

  그래서 ‘자기 죄를 물처럼 삼키고 빵처럼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의 의지와 행동 능력은 마비됐지만 감수성은 아직 살아 있다.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이전처럼 고통을 겪을 수는 있다. ‘사람은 더 많이 벗겨질수록, 가격을 더 아프게 느끼는 법.’ 

 

  그는 ‘죽음의 공허’에 있다. 그러나 이 공허는 그냥 텅 빈 곳이 아니다. 그건 격심하고 완전한 공허요, ‘끔찍하고 참담한 나락이며, 거기에는 도움이나 구원 받을 기대가 없고’ 거기서는 조물주가 영혼을 괴롭히며 그 조물주에게 제물은 증오만 품을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주인은 홀로 지배하기를 요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종의 삶을 고난으로 바꾸는 것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본성은 궁지로 내몰려서 죽음을 향해 천천히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이제 인격은 더 이상 없으며 그 혐오스러운 요소들만 있을 뿐이다.

 

  수렝은 더 이상 생각이나 연구나 기도를 할 수 없고 좋은 일을 할 수 없으며 사랑과 감사를 지니고 조물주에게 가슴을 열 수도 없다. 그러나 ‘그의 본성의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측면’은 아직 살아서 ‘죄악과 꺼림칙한 일에 빠졌다.’ 뭔가 무관한 작업을 하면서 옆으로 빠지려는 번다하고 경망한 갈망이 거기에 해당하는데, 그건 자만심과 자기본위와 공명심 못지않은 죄이니까. 

  내면에서 노이로제와 엄격주의에 시달린 그가 외면에서 고행으로 본성을 더 빨리 파괴하기를 꿈꾼다. 이전처럼 안도감을 주는 작업이 아직 몇몇 있지만 그 작은 기쁨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외향적인 공허를 내향적 공허와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끼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외부 도움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본성은 철저한 무방비 상태로 신의 자비에 노출될 테니까. 의사들은 고기를 더 많이 먹으라 하지만 그 권고를 따를 수 없다. 신께서 이 질병을 정화의 수단으로 주셨다. 너무 일찍 좋아지려고 애쓴다면 그건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터

 

  그렇게 건강을 거부하고 비즈니스와 휴식도 거부했다. 그러나 재능과 학식을 눈부시게 발휘한 활동 분야가 그래도 남아 있었다. 강론, 신학 저술, 설교집, 경건한 장시들. 거기에 많은 노력을 쏟아 왔고, 그것들을 여전히 일면 뿌듯하게 여긴다. 

  길고 고통스러운 망설임 끝에 그 동안 써온 것을 모조리 파기하기로 결심한다. 몇 권 책의 원고와 다른 많은 글들을 찢어발기고 불태웠다. 이제 그는 「갖고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고통에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가 됐다.」 그는 이제 「내 본성이 거부하는 험로를 걸으라고 하는 그분의 작업을 밀고나가는 숙련공」 같이 됐다

 

  몇 달 지나니 그 길이 어찌나 힘든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1639년부터 1657년까지 그 누구한테도 서신을 보내지 않았다. 이 기간 내내 병리적 문맹이라는 괴이한 질환에 시달리면서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없었다. 말하기조차 힘든 때도 더러 있었다. 그는 홀로 유폐 상태에 있고 바깥세계와 연락을 모두 차단했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 스스로 하나님한테서 도피하기로 내린 결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안시에서 돌아오기 얼마 전 자신이 이미 현생에서 저주를 받았다는 확신에 (여러 해 동안 지탱돼 온 확신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처절한 절망감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일뿐. 그 다음엔 지상의 지옥에서 한층 더 끔찍한 지옥으로 떨어지겠지. 

 

  고해사제와 수도회 상급자들이 안심시켰다.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고 생명이 있는 한 확고부동한 저주란 있을 수 없다오. 이 점을 한 신학자는 장 조셉에게 삼단논법을 동원해 입증하고, 또 다른 이는 2절판 묵직한 서적을 들고 진료소로 찾아와서 교회 박사들의 권위를 들먹이며 입증했다. 

 

  하지만 죄다 소용없었다. 수렝은 자신이 길을 잃었음을 알았다. 한때 자기가 물리쳤던 악마들이 영원한 화염 속에 그의 자리를 환호하며 준비해 두었음을 알았다. 다른 수도사들도 저희 내키는 대로 다 떠들었다. 그러나 사실들과 고통 받는 이의 행위가 그 어떤 말보다 더 크게 말했다. 그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모든 사건, 모든 생각, 모든 느낌이… 절망을 굳히기만 했다. 벽난로 곁에 앉았다면, 이글거리는 잉걸이 (영원한 저주의 상징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교회에 들어섰다면, 그 순간 신의 심판에 대한 어구나 사악한 자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늘 들리고 울렸는데,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설교를 들었다면, 회중에 길 잃은 영혼이 있다고 설교자가 단언하는 것을 꼭 듣게 되는데, 그게 바로 그의 영혼이었다. 

 

자만심의 악마 레비아탄

 

  언젠가 그가 죽어가는 형제의 침상 곁에서 기도할 때, 갑자기 자신이 그랑디에처럼 마법사가 되어 악마들에게 무고한 사람 육신에 들어가라고 명령할 힘을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것을 지금 그가 하고 있다. 즉, 죽어가는 사람에게 주문을 걸고, 자만심의 악마인 레비아탄에게 이 육신으로 들어가라 명령하고, 정욕의 악마인 이사카론못된 장난의 스피릿인 발람신성 모독의 왕인 베게모트로 하여금 무방비 상태의 제물에게, 영겁의 목전에서 마지막 중대한 행보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덤벼들라 권하고 있다. 그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에 영혼이 사랑과 믿음으로 충만하다면 모든 게 다 좋을 것이다. 만약 안 그렇다면… 

 

  수렝이 실제로 유황 냄새를 맡고 울부짖음과 이빨 가는 소리를 들었다. 한데 이게 뭐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혹은 자발적이었나?) 그가 악마들을 계속 부르면서 악마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돌연 침대에서 몸을 뒤틀며 헛소리를 했다. 한데 그건 이전처럼 하나님 뜻에 복종이며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며 거룩한 자비와 천국의 기쁨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검은 날개가 펄럭인다는 둥 공격적인 의심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공포에 관한 횡설수설이었다. 강한 두려움을 느끼며 수렝이 퍼뜩 깨달았다. 그래, 내 느낌이 옳았어, 난 마법사가 된 거야!   

 

  자신이 저주받았다는 이 외적 증거에 어떤 낯설고 초자연적인 힘으로 고무된 내적인 확신이 추가됐다. 이렇게 적는다. 「하나님을 말하는 사람은 엄격함과 (또 감히 말하자면) 상상을 초월하는 괴로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의지가 마비되고 허탈 상태가 갈마들며 근육이 경련돼 침대에 붙박여 있는 오랜 시간에 그는 ‘이와 비교할 통증은 세상에 더 없을 정도로 신의 분노가 거세다는 인상’을 받았다. 

 

  (몇 번이나 해가 바뀌면서 고통의 양상도 이모저모로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결코 가시지 않았다. 그는 그걸 이지적으로 알았다. ... <계속> 

 

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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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en Pierre de Caussade (1675-1751) - 프랑스의 예수회 성직자, 종교 저술가. <신의 섭리에 내맡김 abandonment to divine providence>. 그는 현재 순간은 신께서 주신 성찬이요 그것에 내맡김과 그것을 필요로 함은 신성한 상태라고 믿었다. 얼핏 가톨릭 교리에 배치되듯 보이기에 그의 책은 1861년까지 출간 금지. 저자 본래 뜻에 더 합당한 버전은 1966년도에야 출간됐다. 그의 종교적 관점에서 어떤 작가들은 대승불교와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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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악마에 들씌웠다고 하는 원장수녀 잔느

 


9

 

  마법사 그랑디에가 사라졌는데도 에아자즈자불론 같은 악마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이 사실을 많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놀랍지도 않은 것이, 근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그 결과가 늘 따르는 법이니까

  수녀들의 히스테리를 악마라는 형상으로 구체화한 것은 바로 미뇽과 엑소시스트들이었고, 이제 악마들을 여전히 붙잡아 두고 있는 것 또한 그들이었다. 주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하루 두 번씩, 마귀 들린 수녀들이 익숙한 공연을 펼쳤다. 예상한 대로 그들 상태는 그랑디에가 살아 있을 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외려 좀 더 악화됐다. 

 

수녀들을 상대로 계속되는 엑소시즘

 

  9월 말경 로바르데몽이 예수회에 도움을 요청했노라고 추기경께 보고했다. 예수회 수사들은 학식과 재능을 겸비했다는 평판을 누리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을 섭렵한 그들 권위에 의존한다면 군중은 ‘루덩의 마귀 들림이 명백한 사실임을 크게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 분명합니다

 

  교단의 비텔레스키 장군을 비롯해 많은 예수회원들은 그 동안 이 마귀 들림 사건에 관여하기를 정중히 거부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도 달리 두수가 없었다. 로바르데몽의 요청 이후 왕명이 신속하게 나왔다. 한층 더 어려운 인물인 추기경 예하께서 국왕의 입을 통해 명하니 마냥 거부할 수만도 없어! 

 

  1634년 12월 15일 예수회 수사 넷이 루덩에 도착했다. 그들 가운데 장 조셉 수렝이 있었다. 아키텐 수도회 관구장인 보이르 수사가 젊은 그를 엑소시스트로 선택했는데, 나중에 협의회 조언에 따라 지시를 철회했다. 하지만 늦었다. 수렝이 이미 마렌을 떠나 루덩으로 향한 것. 그렇게 하여 그가 임무를 맡게 됐다. 

 

  그때 수렝 나이 서른 넷, nel mezzo del cammin,[각주:1] 성격이 형성됐고 사고방식이 굳어졌다. 동료 수도사들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종교적 열의를 인정하고 금욕 생활과 기독교적 완성을 향해 달리는 열정을 존중했다. 

  하지만 그들의 감탄은 뭔가 조마조마한 염려로 인해 다소 줄어들었다. 수렝 수사가 신앙의 길에서 영웅적 덕목을 갖추기는 했지만, 아주 조심스러운 동료들과 상급자들은 그 인격에서 뭔가 불안한 특징을 본 것이다. 

  그들은 그의 언행에서 어떤 과도함과 터무니없음을 간파했다. 그가 즐겨 하는 말은 이랬다. “하나님 일에 관해 지극한 생각을 지니지 못하는 사람은 그분께 결코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오!” 

 

  물론 맞는 말이었다. 그 지극한 생각이 옳은 방향에 있다면 말이다. 이 젊은 수도사의 극단적인 견해 중 일부는 상당히 정통적이긴 해도 분별이라는 탄탄대로에서 일탈한 듯 보였다. 예를 들어,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사는 이들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마치 적수인 듯이 그들한테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 입장은 그와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 먹는 형제들을 썩 편치 않게 했을 것이다. 

  반사회적이라 부를 만한 극단적인 생각들로 인해 경건함에서도 지나치게 단호했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허영심을 신성 모독처럼 몹시 슬퍼하고, 우리의 무지와 경솔함을 가장 준엄하게 벌해야 합니다.” 

 

  완성을 위한 이 냉혹한 엄격주의에다 이른바 ‘특별한 은혜’에 대한 관심이 자못 컸는데, 그런 면을 그의 선배와 동료들은 무분별하며 위험하기까지 한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런 ‘특별한 은혜’란 성인들에게 허용돼 가끔 이적을 행하기도 하지만 구원과 신성화에는 전혀 필요치 않은 것이었으니까

  그의 친구인 앙지노 신부가 여러 해 지나 이렇게 썼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런 측면에 강하게 이끌렸으며, 거기에 의미를 지나치게 많이 부여했다. 그런 쪽에서 그저 비위를 맞추고, 그가 다수에겐 익숙지 않고 평범치 않은 길을 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루앙에서 ‘2차 수련기’를 마치고 네 해쯤 보낸 항구 도시 마렌에서 수렝은 주목할 만한 두 여인의 영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한 사람은 마담 베르제, 부유하고 신을 공경하는 상인의 아내였으며, 또 하나는 마들렌 부아네, 프로테스탄트 땜장이의 딸이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 

  이 둘은 적극적인 명상가요 (특히 베르제 부인이) ‘특별한 은혜’의 혜택을 입었다. 그들에게 나타나는 계시와 법열에 관심이 얼마나 컸든지 수렝이 베르제 부인의 일기를 수십 쪽이나 옮겨 적고 두 여인을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작성하여 친구들이 돌려가며 읽게 했다. 물론 그 자체에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본질상 기연미연하며 함정과 위험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대상에 왜 그렇게 눈길을 집중해야 하는 것인가? 평범한 은혜로도 영혼이 천국에 이를진대, 어째서 특별한 은혜에 그렇게 안달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런 기적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하나님인지 악마인지, 혹은 상상의 소산이거나 협잡의 산물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판국에 말이다

  만약 수렝 수사가 완성으로 나아가기 원했다면 수도회 다른 수사들이 필요로 하고 좇아가는 왕도를 따라야 했으리라. 순명과 적극적 열정의 길, 육성기도와 광범위한 명상의 길을

 

  그를 비판하는 이들이 볼 때 더 안 좋은 것은, 수렝이 아픈 사람이며 노이로제의, 혹은 당시 표현대로 ‘멜랑콜리’의, 희생자였다는 점이다. 루덩에 오기 두 해쯤 전에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심신증 장애로 고생했다. 육체를 조금만 움직이려 들어도 날카로운 근육통이 생겼다. 글을 읽으려 하면 견디기 힘든 두통이 났다. 정신은 흐리고 혼란스러웠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 

  그의 행위와 가르침의 특이함이 혹여 건강하지 못한 신체에 살던 아픈 정신의 소산은 아니었을지? 

 

  많은 동료 수도사들은 마지막까지도 수녀들이 정말 마귀에 들린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다고 수렝은 기록한다. 한데 그 자신은 루덩에 오기 전부터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초자연적인 것이 늘 확연하고 놀랄 만큼 가득하다고 믿었다. 그런 확신은 또 그가 남을 대단히 잘 믿는 기질이 되게끔 했다. 누군가가 성인이나 천사나 악마들과 접촉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걸 의심이나 비판도 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영적 분별력[각주:2]이 상당히 부족했다

  사실 그는 판단력과 평범한 상식조차 결여된 상태였다. 모순적이지만 제법 널리 퍼진 현상이 있지 않은가. 즉,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면서도 어떤 구석에서는 뭔가 좀 어수룩한 사람 말이다

  테스트 씨가 제 얘기를 하면서 맨 처음 꺼낸 말을 수렝은 결코 편하게 입에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리석음은 나의 강점이 아니야.”[각주:3] 예리한 두뇌며 고결함과 더불어 어리석음 또한 그의 강점이었다. 

 

  트랑킬과 미뇽,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벌인 공개 엑소시즘에서 수렝은 마귀에 사로잡힌 자들을 처음 봤다. 마귀 들림이 실제 있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루덩에 와서 목격한 장면들로 인해 그 확신이 한층 더 굳어졌다. 이제 그는 악마들이 아주 진짜임을 알게 됐고, 「불행한 수녀들을 두고 신께서 무한한 연민을 품도록 하셨기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말하자면, 그는 연민을 낭비했다. 혹은 적어도 잘못 발휘했다. 잔느 수녀가 남긴 글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악마에 들렸다는 수녀들을 대상으로 엑소시즘

 

  「악마는 내가 흥분 상태에서 받아들인 어떤 쾌락과 내 몸에 행한 특별한 일들로 종종 나를 즐겁게 했다. 이런 일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크나큰 기쁨을 얻었고, 다른 자매들보다 내가 더 힘겨운 고통을 겪고 있다고 구경꾼들한테 보인다는 점에서 뿌듯했다.」 

 

  하지만 쾌감이란 지나치게 늘어지다 보면 그 정반대의 것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엑소시스트들이 너무 과하게 나오기 시작하자 마귀 들림은 즐거운 것이 못 됐다. 적당히만 한다면 공개 엑소시즘은 이 젊은 여인들한테 여느 향연처럼 본질상 유쾌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엄격한 도덕성을 가지고 자성하는 데 익숙해진 그들이 마음 한 구석에서 뭔가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비록 악마로 인해 발작을 일으킨 상태에서 나온 언행에는 영혼이 책임질 게 전혀 없다고 엑소시스트들이 단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잔느 수녀는 늘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

 

  「그건 놀랍지도 않아. 왜냐하면 내 심신 기능 부조는 대개 나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악마는 내가 제공한 자극에 작용했을 뿐임을 아주 명백히 감지했으니까.」 광포하게 행동할 때조차, 본인이 그걸 자유로이 원했기 때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혼란스럽게도 난 확실히 느꼈어. 악마가 그런 짓을 하게끔 내가 만들었으며, 내가 협조하지 않았다면 악마에겐 그렇게 할 힘이 없었을 거야! 강하게 저항하면, 그 모든 마귀 들림 징후가 올 때만큼이나 한순간에 사라졌지. 하지만, 오호라, 악마들에게 저항하고픈 마음이 그리 자주 들지 않았던 것을.」 

 

  수녀들은 발작 상태에서 저지른 언행이 아니라 그 발작에 저항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죄를 범했음을 인지하면서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죄를 확신하다가 방탕하게 펼쳐지는 마귀 들림과 엑소시즘은 마치 행복한 휴일처럼 다가왔다. 그들이 눈물을 흘렸다면, 그건 광란과 꼴불견을 연출할 때가 아니라 중간 중간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수렝한테는 원장수녀의 악마를 내쫓는 임무가 루덩에 도착하기 오래 전에 부여됐다. 예수회 수사들한테 도움을 청했으며, 아키텐 지방에서 가장 경건하고 능력 있는 젊은 수도사를 당신의 영적 상담자로 지정했소. 그런 얘기를 로바르데몽한테 들은 잔느의 얼굴이 대뜸 퍼렇게 질렸다. 

 

  예수회 수사들이란 언제든 쉽게 속일 수 있는 카푸친회나 카르멜회 수사들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들은 총명하고 공부를 많이 했어, 더욱이 이 수렝 수도사는 정결하고 덕이 높은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이요, 위대한 명상가로 유명하잖아. 나를 당장 꿰뚫어볼 테고, 내가 언제 정말 마귀에 들씌웠으며 언제 쇼를 하거나 악마들에게 자진 협조하는지 알아차릴 텐데. 

  그녀가 로바르데몽에게 이전 엑소시스트들을 계속 붙여 달라고 애원했다. 상냥한 참사회 위원 미뇽과 선량한 트랑킬 수사와 훌륭한 카르멜회 수사들한테 계속 맡겨 주세요. 그러나 로바르데몽과 그의 상전인 리슐리외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들에겐 마법의 실체를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게 해주는 확인이 필요했고, 그건 예수회 수사들만 제공할 수 있었다. 잔느 수녀가 마지못해 따랐다. 

 

  수렝이 도착할 때까지 남은 몇 주일 동안 그녀가 새 엑소시스트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고자 진력했다. 다른 수녀원들에 있는 지인들한테 편지로 정보를 청하고, 지역 예수회 수사들한테도 세세하게 캐물었다. 유일한 목적은 「나한테 지정된 사람의 기질을 연구하고 최대한 많이 알아낸 뒤 그에게 내 영혼의 상태를 전혀 알리지 않으면서 될 수 있는 한 마음의 문을 닫아거는 것이었어. 이런 결심은 아주 확고했다.」 

 

  새 엑소시스트가 도착했을 때는, 그가 마렌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그녀가 제법 많이 알게 됐고, 그래서 ‘부아네트’ 얘기를 빈정거리는 투로 늘어놓았다. (잔느의 악마들은 마들렌 부아네를 그렇게 놀림조로 불렀다.) 그 말을 듣고 수렝이 깜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알지? 이야말로 진짜 기적이로군! 비록 지옥의 기적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명백한 사실이야. 

 

  잔느가 새 엑소시스트에게 제 비밀을 털어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외려 심한 반감을 품고, 그걸 드러내면서 결심한 대로 움직였다. 그래서 수렝이 그녀의 영혼 상태를 알아보려고 질문할 때마다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그녀 말로는, 「악마들이 안팎에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다가서면 즉각 달아났으며, 그가 제 말을 들어보라고 몰아세우면 킥킥대며 혀를 내밀었다. 그녀 말대로라면, 「나는 그의 인내를 여러 모로 시험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너그러워서 그런 당돌한 언행을 전부 악마의 소행으로 돌렸다.」 

 

  수녀들이 다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고, 악마들 탓이라 함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죄를 범했다는 확신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러나 원장수녀한테는 다른 자매들보다도 더 큰 죄책감에 짓눌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랑디에가 처형된 뒤 곧 정욕의 악마 이사카론이 「내 느슨함을 이용하여 순결을 깨려고 사납게 유혹했어. 그가 내 육신에 세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격렬하게 작용했지. 그런 뒤 악마는 내 뱃속에서 아이가 크고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주입했고, 난 그 사실을 굳게 믿어서 모든 증상을 내보인 거야.」 

 

  자신의 재액을 다른 수녀들한테 고백하자, 곧 많은 악마들이 그녀가 임신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었다. 이 사건을 엑소시스트들이 전권대행에게 알렸고, 전권대행은 추기경 예하께 서면으로 보고했다. 알고 보니, 벌써 석 달 동안 달거리가 없으며 헛구역질이 심하고 소화불량에다 가슴에서 젖이 나오고 배가 눈에 띄게 불렀습니다. 

 

  (몇 주일이 흐르면서 원장수녀가 심신의 고통에 한층 더 휘둘렸다. 정말 임신한 것이라면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내가 이끄는 수녀원과 우르술라회 전체가 무시무시한 치욕을 맛볼 텐데.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은 이사카론의 방문. 악마가 거의 밤마다 찾아왔다...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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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테의 <신곡>의 첫 구절.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 che la diritta via era smarrita. 우리 인생 여정 중반에 접어들어… [본문으로]</신곡>
  2. discernment of spirits - 가톨릭신학 이론에서, 영적 동인(動因)들을 그 도덕적 영향으로 평가하고 판단함을 가리키는 용어. 성 이냐시오가 제시하는 룰이 있다. [본문으로]
  3. 프랑스의 시인, 에세이스트, 철학자 폴 발레리(1871-1945)의 소설 <테스트 씨와 보낸 저녁>의 유명한 오프닝. "Stupidity is not my strong suit" [본문으로]</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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