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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the doors of perception

 


 

  초기 단계에서 수렝의 치유는 암흑으로부터 ‘행복하고 건강한 의식’으로 이동하는 데 있지 않았다. 이 건강한 의식은 인간 마인드가 절대자의 마인드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정말 누구인지 문득 인식할 때 다가온다. 한데 그는 그저 하나의 병적 상태에서 다른 병적 상태로 옮겨갔을 뿐이며, 그 상태에서 ‘특별한 은혜’는 이전에 있던 특별한 슬픔처럼 평범해진 것이다.  

 

  이런 점은 언급해야겠다. 즉, 병고에 가장 시달린 시기에도 수렝은 기쁨의 찰나를 여러 번 경험했으며, 그럴 때마다 저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께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이라고 짧게나마 확신했다는 점. 

  기쁨의 번쩍임이 이제 더 늘어나고, 그런 확신이 순간적인 것에서 지속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영적 체험이 잇따르고, 모든 계시가 환하여 기운을 주고, 모든 느낌이 더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합당하게 섬기려면, 영적 환희와 알 수 있는 은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 현상에 매달리는 건 금물이에요. 믿음이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야지요. 믿음 하나만이 우리를 순결한 상태에서 하느님께 들어 올립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 영혼을 텅 빈 상태로 만드는데, 바로 이 빈 자리를 하나님이 채워 주시니까요.」 

 

  이십여 년 전 조언을 청한 한 수녀에게 수렝이 그렇게 적어 보냈다. 자비를 베풀어 처음 치료에 나선 바스티드 수사가 수렝에게 한 말도 그런 맥락이었다. 

  영적 체험이란, 그게 아무리 고양된 것이든 위안을 주는 것이든 깨달음이 아니요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조차 못 되지요. 

  이런 말을 바스티드가 혼자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기독교계의 공인된 신비주의자들이 있고,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 말씀도 인용했다. 

 

  한동안 수렝은 바스티드의 조언을 따르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의 특별한 은혜가 그에게 끊임없이 줄기차게 내렸다. 그리고 그 특별한 은혜를 거부하자 신의 기적은 무미건조함과 황량함으로 바뀌었다. 신께서 다시 돌아섰으며, 그를 예전의 절망 끝에 남겨둔 것만 같았다. 바스티드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성 요한이 남긴 언급에도 불구하고, 수렝이 다시 자신의 환영들과 자신의 화법으로, 자신의 황홀경과 신령 감응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바스티드와 수렝 간에 논란이 벌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두 논쟁자와 그들의 상급자인 앙기노 신부가 천사들의 수녀 잔느에게 부탁하게 됐다. 

  특별한 은혜에 대해 당신 수호천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봐 주시려오? 

  수호천사가 처음엔 바스티드의 관점에 호의를 보였다. 수렝이 이의를 제기했고, 잔느 수녀와 예수회 수사 세 사람 간에 많은 서신이 오간 끝에 천사는 양측이 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정성을 다하는 만큼 양쪽 다 옳다고 공표했다. 수렝도 앙기노도 만족하게 됐다. 

  하지만 바스티드가 제 입장을 고수하면서, 더 나아가 잔느 수녀가 이제는 보포르라는 천상의 카운터파트와 소통을 그만둘 때가 됐다고 말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관계를 반대한 사람은 바스티드만이 아니었다. 

 

  1659년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알리기를, 어떤 저명한 성직자께서 불평하신다고 했다. 「마치 당신이 당신 천사의 조언을 팔아먹는 상점을 열었으며, 사람들이 혼인이나 송사 같은 일을 앞두고 궁금할 때마다 안내소처럼 당신을 찾아간다고 말이오.」 그런 일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바스티드 수사 말씀대로 천사와 관계를 아주 끊으라는 건 아니고 영적 자문만 구해야 한다. 

 

  세월이 흘렀다. 수렝이 많이 좋아져서 병자들을 직접 찾아보고 고해를 듣고 설교하고 글을 쓰고 신자들에게 구두와 서면으로 가르침을 베풀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의 행동은 여전히 뭔가 좀 특이했고, 그래서 상급자들은 그가 주고받는 편지들을 검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혹여 정통 교리에 어긋나거나 최소한 곤경에 빠뜨릴 만치 황당한 언사가 나오지는 않을까 두려워한 것. 그러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면서 <영적 교리 문답>을 구술했던 인물은 이제 아주 신중해져서 부주의한 행동과 거리가 멀었다. 

 

  1663년 <실험 과학>을 썼고, 이 책에서 자신의 귀신들림과 이후에 체험한 시련을 기술했다. 당시는 루이 14세의 재앙적인 국정 운영이 이미 출범한 때였다. 그러나 수렝은 ‘현세의 공적 업무와 원대한 도모’ 따위에 흥미가 없었다. 그에겐 성체 성사가 있고, 읽고 되새길 복음서가 있고,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실 어떤 면에서 그것들은 충분하다 못해 그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늙어가고 기력이 점차 쇠했으며 「사랑은 쇠약함과는 썩 잘 어울리지 않으니까. 또 왜냐하면 사랑은 그 활동의 압력을 견디는 튼튼한 그릇을 요하니까.」 

 

  두어 해 거의 조병 상태에서 보낸 안녕 기간이 지나갔다. 주기적으로 쉽게 찾아들던 특별한 은혜가 이젠 과거지사가 됐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더 좋은 뭔가가 있었다. 잔느 수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하나님께서 근자에 그분 사랑을 조금 알게 해 주셨다오. 하지만 영혼의 깊이와 활동은 얼마나 다른지! 왜냐하면, 요컨대 영혼의 깊이는 끝이 없어서 거기에 은혜라는 초자연적인 보물로 꽉 차는데, 그 영혼이 움직임에서는 아주 빈약하니 말이외다. 

  정말 그래요, 영혼은 깊숙한 곳에서 하나님을 정말 확실하고 섬세하고 풍부하게 느끼며, 이때 크나큰 위안을 주는 사랑과 경이로운 심장 확장도 수반되는데, 문제는 이런 것 무엇 하나 다른 이들한테 전달할 수가 없다는 것.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은 자칫 외부에 이런 인상을 줄 수도 있어요. 곧 (종교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재능이 다 결여되고 완전히 하찮은 존재로 작아졌다는…  

  영혼이 활동하여 바깥으로 세차게 분출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다는 건 참으로 비통한 일이외다. 그게 심해지면 압박이 생기는데, 그 고통이란 상상을 초월하지요. 영혼 깊은 곳에서는 마치 수분이 축적되는 듯하며, 이 많은 수분이 빠져나갈 출구가 없는 까닭에 견딜 수 없는 무게로 영혼을 짓누르면서 영혼의 힘을 소진한다오.」 

 

  지독히 역설적으로 보자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에 영원의 요소가 담겨 있고, 바로 이 모순이 파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것은 축복받은 고통이요, 경건하게 바라는 죽음이거늘. 

 

  황홀경을 체험하며 환영들 속에서 수렝은 분명 그림 같은 풍경을 거치지만 화려하게 빛나는 막다른 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었다. 이제 ‘특별한 은혜’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총체적 인식(지각)에 자유로이 근접할 수 있기에 그는 참된 각성과 광명을 감득할 준비가 됐다

  이제 드디어 그는 바스티드가 촉구한 대로 ‘선한 믿음’ 안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그는 세상과 제 삶의 정해진 사실들 앞에서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벌거벗은 상태가 됐다. 즉, 제 삶을 텅 비웠으니 신께서 채울 수 있게 하려는 것이요, 가난한 사람이 됐으니 신께서 최고 부자로 만드실 수 있게 됐다

 

 죽기 이태 전에 이렇게 썼다. 

  「듣자하니, 진주조개를 채취하는 잠수부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닥에서 수면으로 뻗어 물 위에서 코르크나무에 묶여 떠 있는 파이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파이프를 통해 바다 바닥에 머물면서 숨 쉰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훤히 설명해주는 알레고리다. 

  영혼에도 숨 쉬는 파이프가 있어 땅에서 하늘로 뻗어 있고, 제노바의 성 캐서린 말씀대로 채널이 있어 하나님 가슴으로 바로 이어진다. 이 파이프를 통해 영혼이 지혜와 사랑을 호흡하며 유지되는 것이다. 

  영혼은 지상이라는 바닥에서 진주를 찾으려 헤매면서 다른 영혼들과 소통하고 신의 뜻을 설파하고 하나님 사업을 수행한다. 이때 늘 파이프가 있어서, 영생과 평안을 안기기 위해 하늘로 이어지고… 이런 상태에서 영혼은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 보기에 영혼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이… 왜냐하면 환영이나 무아지경이나 일시적 감각 정지 없이, 현세의 일상적 고통 속에서, 연약함과 많은 무기력 속에서, 우리 주께서는 우리네 이해력과 잣대를 뛰어넘는 귀중한 뭔가를 주시니까…  

  이 귀중한 무엇이란 바로 사랑의 상처 같은 것, 그건 피 한 방울 내지 않으면서 영혼에 파고들어 영혼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을 동경하게 만든다.」 

 

  그렇게 파이프를 입에 물고 다른 세계의 공기를 들이마셔 폐가 확장된 가운데 지상이라는 바닥에서 진주를 찾으면서 노인은 완성을 향해 전진했다. 죽기 몇 달 전 자신의 마지막 신앙 저술을 끝냈다. <하나님 사랑에 관한 물음 Questions sur l'Amour de Dieu>. 

장 조셉 수렝 Questions sur l&#39;Amour de Dieu

  이 책을 몇 대목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마지막 장벽이 무너졌고 또 하나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 왕국이 지상에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 가슴과 바로 연결된 채널을 통해, 이 영혼에 흘러든 것은 바로… 

 

  「평정. 하지만 그저 잔잔한 바다나 조용한 강물 같은 평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평정이요 안식으로서 홍수 때 급류처럼 우리한테 들어오고, 숱한 폭풍우를 거친 영혼은 마침내 이 범람하는 평정을 누린다. 또 하늘이 내린 안식은 영혼에 들어서서 영혼을 정복할 뿐 아니라 수많은 물살이 하나로 합치듯 영혼과 합류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이 하프와 류트의 아름다운 음악을 천둥소리처럼 언급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그러하니, 천둥소리를 잘 조율된 류트처럼, 또 류트의 심포니를 천둥 굉음처럼 만드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정 또한 제방들을 쓸어버리고 강안으로 차오르며 호안을 산산이 부수는 격류 같은 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과연 믿을까? 

  한데 바로 그런 일이 나한테 벌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평화와 잔잔한 사랑이 그 노정에 있는 것들을 죄다 분쇄하게 할 권능을 갖고 계시니…     

  하늘이 주신 평정은 한 지역을 흐르다가 제방을 부순 뒤 다른 지역으로 휘도는 강물과 같다. 이때 만물의 질서가 다 깨지는 듯한데, 왜냐하면 이 흐름이 멈출 줄 모르고 도도하게 밀려드니까. 그런 평정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다. 오직 하나님의 평정만이 그렇게 행진할 수 있다. 땅은 파괴하지 않고, 전능자께서 예정하신 하상을 채우기만 하면서

 

  그 물은 고요하다 해도 그 흐름은 굉음을 내며 맹렬하게 움직인다. 굉음은 분노 때문이 아니라 수량이 넘치기 때문에 나오는 것, 물은 폭풍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연의 평온을 간직하면서 스스로 이동하는 것, 그것은 바람 한 점 없을 때도 움직인다. 바다가 땅과 만나며 그 경계와 입맞춤을 한다. 바다는 위풍당당하게 육지로 진격한다.     

  영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니, 오랜 시련 끝에 무한한 평정이 영혼에 강림할 때, 그때는 바람이 불어도 그 표면에 파문이 일지 않는다. 하나님의 평정이란 바로 그런 것이며, 거기엔 신의 보물과 그분 왕국의 풍요가 다 들어 있다. 

 

  이 범람에는 그것이 닥칠 것임을 알리는 바다제비와 예고자가 있으니, 그것은 홍수보다 먼저 나타는 천사들. 그들은 다른 세계의 표식을 갖고 있으며, 그들 목소리는 천상의 하모니로 가득하고, 영혼이 헐떡거릴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다. 하지만 이 헐떡임은 공포가 아니라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     

  이 범람은 과하다 하여 그 누구며 무엇에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저 그 노정에서 장애물들을 쳐내는 것일 뿐. 탐욕의 짐승들은 모두 급습하는 평정을 피해 달아난다. 그리고 평정과 함께 예루살렘에 약속된 보물이, 계피나무며 호박이며 진귀한 것들이 모두 다가온다. 

  천상의 평정은 바로 그렇게, 모든 지복을 수반하며 풍요롭고 성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삼십여 년 전 마렌에서 젊은 수도사는 대서양 조류가 조용히 저항할 수 없이 차오르는 것을 자주 지켜보았다. 매일 보던 그 기적의 기억은… 이 완성된 영혼이 존재의 ‘원초적 사실’을 아름답게 찬미하면서 적어도 ‘영혼을 다 분출할’ 수 있게 한 수단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제 영혼이 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1665년 봄 죽음이 왔을 때, 야콥 뵈메[각주:1]의 말대로, “그는 더 이상 어디로도 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거기에 가 있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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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이 첫 번째 공격에 이어 그랑디에가 카르멜회의 주요 수입원을 겨냥해 무례한 언급을 연달아 퍼부었다. 바로 ‘르쿠브렁스의 성모’로 불린, 이적 행하는 성상을 두고 말이다. 

  루덩 시 전체 구역의 사분지 일이 순례자들을 들이기 위한 여관과 하숙집으로 가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순례자들은 이 성상에 건강이나 신랑감, 자식이나 더 좋은 행운을 빌기 위해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제 르쿠브렁스의 성모에 위협적인 경쟁자로 아딜리에 성모가 나타났다. 아딜리에 교회는 루덩에서 불과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소뮈르에 위치했다.

 

  질병 치료나 여성 모자에 패션이 있듯이 가톨릭 성인들한테도 유행이 있다. 웅장한 교회들은 성상이며 성물들에 관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으니, 오랫동안 모셔오던 것들을 새로운 이미지며 성유물로 가차 없이 대체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그러면 예전 것들은 뭔가 더 새롭고 한순간 더 매혹적인 요술사 때문에 대중의 호평에서 밀려나기 마련이다. 

  아딜리에 성모상이 르쿠브렁스 성모상보다 왜 갑자기 훨씬 더 우월한 듯 보이게 됐을까? 이유야 많겠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아딜리에의 성모상을 오라토리오회 수사들이 관리했다는 점. 

 

아딜리에 성모상

 

  그랑디에의 전기를 맨 처음 쓴 오뱅 목사는 「오라토리오회 성직자들이 유능하며 카르멜회 수사들보다 수완이 더 좋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있다」고 했다. 알려진 대로, 오라토리오회 구성원들은 세속의 성직자이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그랑디에가 르쿠브렁스 성모상에 회의적인 냉담을 표했을 것이다. 

 

  자기 카스트에 대한 충성 때문에 그는 세속 사제단의 이익과 영광을 위하고 수도사들의 불신과 파멸을 위해 움직였다. 물론, 그랑디에가 루덩에 오지 않았더라도 르쿠브렁스 성상은 예전 명성을 잃었을 게 분명하지만, 카르멜회 수사들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인과관계가 복잡한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칫 감정만 소모될 수도 있다. 반면에, 여러 결과를 어떤 단일한 원인 때문으로, 또 가능하다면 개인적 원인 때문으로 돌리기란 얼마나 더 쉬우며 얼마나 더 그럴듯한가! 이런 경우 일이 잘 될 때면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 하나를 골라 그에게 공훈을 돌리고 영웅처럼 떠받드는데, 그렇지 못할 때면 어떤 속죄양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상당한 적대자들을 둔 마당에 그랑디에가 자신에게 엄청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적대자를 또 금방 만들었다. 1618년 초 인근 지역 고위 성직자들이 참가한 종교회의에서, 쿠세에서 온 수도원장을 호되게 몰아붙였다. 루덩 거리를 통과하는 장엄한 행진 때 그 고위 성직자보다 제가 앞장서겠다고 무례하게 주장한 것. 

  주임신부의 주장과 태도가 원칙적으로는 잘못된 게 아니었다. 그의 교회에서 주관하는 행진에서 성 십자가 교회의 참사회 위원에겐 쿠세의 대수도원장보다 앞서서 걸을 권리가 있었다. 이 권리는 그 수도원장이 주교라 해도 유효했다. 

  그러나 정중함 같은 미덕도 있고 신중함이라는 덕목도 있는 법. 쿠세의 수도원장은 또 뤼송의 주교이고, 그 뤼송의 주교는 바로… 아르망 드 리슐리외였으니! 

 

  그 시기에 리슐리외는 실총 상태에 있었다. 한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 넓은 마음으로 정중하게 대해야 하지 않았겠는가. 1617년 리슐리외의 후견인이자 이탈리아의 엽기적인 인물 콘치니가 암살됐다. 이 궁정 쿠데타는 뤼네가 꾸미고 젊은 왕이 재가한 것.[각주:1]

  그러나 그 추방이 영원하리라 추정할 만한 근거가 있었던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한 해 지나, 아비뇽에서 짧은 유배 기간 이후,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인 뤼송의 주교가 파리로 부름을 받았다. 1622년에 이르러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 겸 추기경이 됐다

 

  아주 금방 프랑스의 절대 통치자가 된 인물을 그랑디에는 그저 자기주장이라는 쾌감 하나 때문에 괜히 기분 상하게 했다. 이 거친 언행을 나중에 후회할 이유가 생기리라. 하지만 당장에는 제가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서 어린애 같은 만족에 잠겼다. 평민이요 무명의 교구 성직자가 왕비의 총신이요 주교요 귀족의 콧대를 꺾은 거야! 선생을 비웃고도 벌 받지 않고 넘어간 어린 학생처럼 그가 우쭐댔다

  몇 해 뒤 리슐리외도 부르봉가 대공들을 무시하면서 그런 만족감을 맛보았다. 그의 늙은 숙부는 조카가 사보이 대공 앞에서 느긋하게 걸어가는 장면을 보고 질겁했다. “오, 이럴 수가! 오래 살다 보니, 귀족도 아닌 변호사 라포트의 외손자가 샤를 5세의 손자에 앞서서 방으로 걸어가는 걸 다 보는구나!” 이 유치하고 당돌한 행동도 벌을 면했고, 리슐리외도 어린애 같은 우월감을 맛보았다. 

 

  루덩에서 그랑디에의 삶이 이제 궤도에 올랐다. 성직자 책무를 수행하고, 직무 중간에 종종 예쁜 과부들을 조심스레 찾아다니고, 지적인 친구들 저택에서 저녁마다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계속 늘어나는 적대자들과 충돌을 빚었다. 그것은 머리와 가슴에도, 생식선과 부신에도, 사회적 페르소나와 그의 사생활에도 똑같이 만족스럽고 아주 괜찮은 생활이었다

  오싹한 일이나 명백한 불운이 아직은 삶에 나타나지 않았다. 즐거움이 거저 나오고, 아무런 제재도 안 받으며 욕망을 채우고, 아무런 후과 없이도 증오할 수 있다고 상상했다. 

 

  한데 운명은 당연히 대차 청구서를 이미 작성했다. 단지, 조용히 진행했을 뿐. 그는 양심의 가책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조금씩 무감각해지고, 내면의 빛이 계속 어두워가고, 영원의 모습이 열리는 영혼 창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당대 체질의학에 따르면 그랑디에는 쾌활하고 격하기 쉬운 기질을 지녔다. 곧, 그에겐 세상만사가 순탄한 듯했다. 세상만사 오케이라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지상의 일을 잘 주관하신다는 뜻이지! 주임신부는 행복했다.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병(躁病) 단계에 있었다. 

 

  1623년 봄 스케볼라 생마르트가 충분히 길고 영광스러운 삶을 마쳤다. 노인이 마르셰 성당에 화려하게 안장됐다. 반년 뒤 루덩과 샤틀레로, 시농, 푸아티에 지역 고위인사들이 죄다 참석한 추도식에서 위대한 인물을 기려 그랑디에가 연설했다. (발자크의 문체상 혁명적인 서신들 초판이 그 다음해에 나왔으니까 아직 낡지 않은) 그건 ‘열렬한 인문주의자’ 풍으로 행한 길고 장중한 웅변이었다.[각주:2] 꼼꼼하게 정성 들인 문장들이 고전작품들과 성서의 인용으로 반짝거렸다. 여봐란 듯이 넘치는 박식이 매 순간 자기만족적으로 드러났다. 미문은 인위적인 포효로 길게 이어졌다. 

  이 스피치를 청중이 아주 좋아했다. 1623년도 취향에 딱 맞은 것.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졌다. 아벨 생트마르트가 주임신부 웅변에 하도 감동 받아서 라틴어로 시를 지어 내놓았다. 검찰관 트렌캉도 모국어로 쓴 시로 주임신부의 달변을 한껏 추어올렸다. 

 

추도식을 영광스레 거행하기 위해 

이 즐라토우스트가 간택된 데는 근거가 없지 않아. 

고인을 적절하게 칭송하면서 그가 

기적 같은 달변을 쏟았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가엾은 트렌캉! 뮤즈들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진실하지만 일방적이었다. 그는 그들을 사랑했으나, 그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은 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그가 작시에는 서툴렀을지 모르나, 최소한 시를 논할 줄은 알았다. 

 

  1623년부터 검찰관 객실이 루덩의 지성적 삶의 중심이 됐다. 그건 생마르트가 떠났기 때문에 상당히 허약한 삶이었다. 트렌캉 자신이야 책을 많이 읽었지만 친구들과 일가붙이 대다수는 그렇지 못했다. 이전에 생마르트 모임에서 배제됐던 이 사람들이 검찰관 저택은 무상으로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문가에 나타났다 싶으면 학식 깃들고 고상한 대화는 창문 너머로 날아갔다. 수다만 일삼는 여인들이며, 법규와 소송절차 이외에는 아는 게 없는 변호사들이며, 개와 말들이 유일한 관심사인 토호들과, 달리 뭘 하겠는가? 

 

  약제사 아담과 외과의 만누리도 그 객실 단골이었다. 전자는 코가 아주 길고, 후자는 너부데데한 얼굴에 올챙이배. 그들은 소르본 박사답게 아주 점잔 빼면서 안티몬과 사혈의 이점이며 관장 비누와 총상 치료 때 소작 기구의 유용함 등에 관해 장황하게 떠벌리곤 했다. 그러다가 목소리를 낮추고는 후작 각하의 매독이나 왕실 고문변호사 부인의 두 번째 유산, 치안판사 누이의 어린 딸을 고생시키는 위황병 얘기도 (물론 언제나 극비로) 풀어놓았다. 황당하면서도 거들먹대고 근엄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약제사와 외과의는 운명적으로 경멸 대상이었다. 그들은 비아냥거림을 스스로 벌고 조롱의 예봉을 자초했다. 

  비웃음의 대상과 기회를 결코 놓치는 법이 없는 주임신부가 그들에게 그들이 자청한 것을 마음껏 퍼부었다. 아주 금방 그에게 적대자 둘이 더 생겼다.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상황이 무르익어 갔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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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앙리 4세의 왕비인 마리 드 메디치는 아들 루이 13세가 성년이 됐음에도 권력을 놓지 않고 이탈리아에서 데리고 온 콘치니를 앞세워 국정을 주물렀다. 그러나 루이 13세는 콘치니를 암살하고 그의 아내를 반역죄로 참수했으며, 모후를 1617년 3월 3일 블루아 성으로 추방함으로써 통치권을 찾았다. 이 거사를 총신 뤼네 공작이 주도했다. 또 이맘때 마리 메디치의 신임을 얻고 있던 리슐리외는 파리에서 쫓겨나게 됐다. [본문으로]
  2. 장 루이 드 발자크 (Jean-Louis de Balzac, 1597-1654) - 프랑스 서간체 문학의 대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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