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48) 계단 에스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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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 29 (계단 에스프리)  

 

 

종이라고 하는 것은 치면 소리가 난다. 

쳐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버린 종이다. 

대개 사람이란 사랑하면 따라오기 마련이다. 

사랑해도 따라오지 않는 사람 역시 세상에서 버린 사람이다.

만해 한용운 (1879-1944,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1879~1944)

 

 

언젠가 우리 스피치 강좌에서 한 회원이 이런 푸념을 늘어놓더군요.

 

「얼마 전 여고 동창회에 나갔는데 말이에요, 뭐, 다 좋았어요. 오랜만에 보는 동창들도 있어서 각자 사는 얘기도 주고받고… 근데 막판에 무슨 대화가 오가던 중에 한 애가 내 신경을 건드리지 뭐에요. 글쎄, 나더러 뭐라는 줄 알아요?  

“우리 여자들한테도 예쁘지 않을 권리가 있긴 한데, 넌 특권을 남용하는 것 같아. 니 얼굴을 보면 사람들 고개가 돌아가지 않겠어?”

 

그 말에 다들 “어머, 말도 참 맛깔나게 한다”면서 깔깔대고 웃는 거예요. 물론 나만 빼고 말이지요. 부아가 치밀었지만, 웃자고 하는 말이라는 투에 대놓고 퍼붓기도 마땅치 않았어요. 그러면 나만 밴댕이 소갈머리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아마 내 표정은 좀 일그러졌겠지만. 

일단 입은 다물고 있으면서도, 뭔가 ‘맛깔난’ 말을 찾아서 일침을 가해야겠다고 전의를 불태우는데, 아아, 희미한 생각들만 머릿속에서 뱅뱅 돌뿐, 적당한 대꾸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기분 잡쳤지요. 

 

다행히 곧 자리가 파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어요. 

‘니 부모의 실수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출산 조절을 잘 해야 한다는 거 아니겠니? 게다가 더 안타까운 점은, 니 얼굴을 보면 사람들 위장이 뒤집힌다는 거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떠올렸어요. 쓰리던 속도 조금은 풀렸어요.

 

한데 문제는, 그런 날카로운 응수가 왜 상황이 끝난 뒤에야 떠오르느냐, 이거에요! 그 자리에서 바로 되받아쳤다면 잘난체하는 고 계집애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난 순발력이 달리는 모양이에요. 속상해 죽겠어요. 즉흥적으로 재치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그런 게 있다면, 열심히 배울 텐데…」  

 

음… 그 심정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 경우가 있어요. 상대방의 은근한 빈정거림이나 신경 거스르는 언사로 인해 속에서 발끈하여 적절하게 되갚음을 해주고 싶은데 딱히 뾰족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다가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뭔가가 번뜩 떠오르는 경우 말이에요. 

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상태를 당신 하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대다수 사람들이 그런 경우에 많이 부닥칩니다. 

 

어떤 자리에서 불시의 독설이나 공격에 당장에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매다가 나중에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떠오르는, 재치 있는 말대꾸나 촌평, 통렬한 대응이나 반박, 뒷궁리 같은 것을... 

프랑스인들은 ‘Esprit d’ Escalier’라고 일컫습니다. 
이걸 독일인들은 Treppenwitz로 옮겨 쓰고, 영어권에서는 afterwit나 hindsight로 씁니다. 

 

우리말로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계단에서 번뜩이는 기지(機智)나 재치’쯤 되겠는데, 뭐 더 간명한 표현이 없을까요? 

당신이 에스프리를 발휘 좀 해 주세요. 저로서는 우선, 앞의 제목처럼, ‘계단 에스프리’라고 어설프게 옮겼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을 속상하고 아쉽게 하는 저런 상태나 현상을 프랑스인들은 왜 ‘계단 에스프리’라고 칭하게 됐을까요? 이런 내막이 있습니다. 

 

백과전서파의 핵심 인물이요 철학자인 니 디드로(1745-72)가 루이 16세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고관 네케르의 저택 만찬에 언젠가 참석했어요. 둘러앉은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디드로에게 어떤 견해를 밝혔는데, 마땅히 응수할 말을 찾지 못해서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어야 했지요. 그때의 상태를 나중에 이렇게 밝힙니다. 

 

「나는 상당히 민감한 편이기에 만찬 내내 상대가 제시한 논거에 골몰하면서 당혹감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만찬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비로소 생각을 번뜩 정리하게 됐다.」

 

예전 서양 저택에서는 객실이나 살롱을 가장 편하고 좋은 층으로 여기는 이층에 주로 두었어요. 거기로 계단을 따라 출입했고. 

디드로의 이런 고백 이후에 그런 현상을 Esprit d’ Escalier(계단에서 번뜩이는 기지)’로 칭하게 됐다고 하네요. 하하,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언급도 흥미로워요. 

“계단 에스프리 같은 고충은 사람들이 글을 쓰게 되는 중요한 동기들 중 하나이다.” 

네, 그래요, 일리가 있어요, 정말. 

 

바로 앞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그런 현상에 부닥쳤다고 해서 ‘순발력에 문제가 있나’, ‘임기응변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염려할 필요는 없어요. 

천하의 장 자크 루소(1712~1778)도 그런 문제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정도니까요. 

자전적 기록인 <고백록>에서 이렇게 고백했어요. 

 

「그런 사회적인 실패와 놓친 기회들 때문에 내가 사람들을 혐오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신 대화’에서는 그 누구 못지않게 잘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조금 위로가 됐습니까? 

하지만 그런 위로에 안주하기만 한다면 자기 발전이란 기대 난망.

(Funny) Insult, (Snappy) Put-Down, Comeback 같은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세요.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좀 들이세요. 

그러다 보면, 재미를 맛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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