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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Ken Russel film Devils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은 이사카론의 방문. 악마가 거의 밤마다 찾아왔다. 독방 어둠 속에서 그녀가 무슨 기척을 듣고 침대가 흔들리는 걸 느끼곤 했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욧잇을 벗기고, 누군가가 그녀 귀에 달콤하고 음탕한 말을 속삭였다. 방안에 이상한 불빛이 어른거리면서 염소와 사자와 뱀과 남자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때론 강경증 상태에 빠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수 없이 누워 있는 동안, 작은 야수들이 이부자리 아래서 앞발로 간지럼을 태우고 주둥이로 더듬으며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언구럭 부리는 목소리가 간청했다. 한 번만 더, 그냥 사랑만 조금 줘, 그냥 아주 조금만 예뻐해 줘. 그녀가 “내 정조는 하나님 수중에 있으며, 그분께서 뜻대로 처리하실 것”이라 대답하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침대에서 내동이친 뒤 얼마나 무섭게 때렸는지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얼굴이 퉁퉁 붓고 온몸에 시퍼런 멍이 가득했다. 

 

  「그런 일이 아주 종종 생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감히 바란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주셨다. 그런데도 나는 이 자잘한 싸움들을 우쭐댈 만큼 마음이 불량하여, 하느님께 합당하게 처신하는 한 내 소행을 두고 가책할 일은 전혀 없다고 여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책을 억누르기 힘들며, 하나님 뜻대로 내가 처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는 것도 알았고.」 

 

  그러니까 원흉은 이사카론이었다. 그래서 수렝은 이 악마를 상대로 기력을 다 쏟으며 요란한 의식을 거행했다. “내 말을 듣고 썩 물러가라, 사탄아!” 

  하지만, 오호라, 축문이 먹혀들지 않았구나. 「내가 받는 유혹을 그에게 고백하지 않기 때문에, 유혹이 점점 더 거세게 나를 쫓아 다녔어.」 이사카론이 더 못되게 굴면서 잔느 수녀의 절망도 더 커지고 꾸준히 진전되는 임신에 대한 불안도 더 강해졌다. 

 

  성탄절을 얼마 안 남기고 그녀가 약재 몇 가지를 입수했다. 그건 분명 쑥과 쥐방울덩굴과 콜로신스였으리라. 갈레노스 의술에서 추천하며 곤경에 빠진 처녀들이 낙태 효과가 있다고 필사적으로 기대하는 세 가지 약용 식물. 한데 아기가 세례도 받지 않고 죽는다면? 아기 영혼은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거야. 그녀가 제풀에 놀라 약재를 내던졌다. 

  다른 계획이 생겼다. 주방으로 가서 가장 큰 칼을 빌려 와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 세례를 주는 거야, 그 다음엔 살아남든지 아니면… 

다락방으로 향하는 원장수녀 잔느

 

  1635년 새해 첫날 그녀가 총고해를 했다. 「하지만 고해사제한테 내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어.」 다음날 칼을 품고 세례용 물 대접을 들고 수녀원 꼭대기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벽에 그리스도 책형상이 걸려 있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내 죽음과 작은 피조물의 죽음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왜냐하면 세례를 베푼 뒤에 아기를 목 졸라 죽일 생각이었으며, 나도 죽을지 몰랐으니까.」 

 

  옷을 벗는 동안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사악한 의도를 내던지게 할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법의를 벗은 뒤 가위로 슈미즈에 큰 구멍을 내고 칼을 집어 들어 ‘죽을 때까지 쑤셔 넣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위장에 가장 가까운 갈비뼈 사이로 꽂기 시작했다. 

 

  그러나 히스테리를 잘 일으키는 사람들은 자살을 종종 시도하긴 해도, 성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 기적이여, 자비로운 신의 뜻이 나타나 내 손을 붙잡았으니! 갑자기 어떤 힘이 나를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친 거야. 칼이 손에서 빠져나가 십자가 밑에 떨어졌어.」 

  그리고 한 목소리가 외쳤다. “멈추어라!” 

  그녀가 그리스도 책형상으로 눈길을 들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을 그녀에게 내뻗었다. 신의 음성이 들리자 악마들이 놀라서 길길이 날뛰었다.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원장수녀는 앞으로 생활 양상을 싹 바꾸고 처신도 달리 하겠노라 결심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임신 상태는 계속되고 이사카론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한번은 밤중에 그녀에게 협상을 제시했다. 나한테 조금만 더 온순하게 군다면 신통한 고약을 가져다주겠어, 그걸 배에 바르면 임신이 멈출 거야. 원장수녀가 조건에 응하겠다고 거의 마음먹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거부했다. 그러자 대노한 악마가 그녀를 호되게 때렸다. 

  또 어떤 때는 이사카론이 눈물 흘리며 애처롭게 호소하는 바람에 마음이 움직여 ‘그의 간청을 다시 들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충동이 실행됐다. 그런 식의 한밤중 만남이 계속되면 안 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질겁한 로바르데몽이 르망으로 사람을 보내 유명한 의사 두솅을 초빙했다. 의사가 와서 원장수녀를 꼼꼼히 검사한 끝에 임신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 말에 로바르데몽이 기절초풍했다. 이 소식을 프로테스탄트들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데 관계자들한테는 다행스럽게도, 이사카론이 공개 엑소시즘 때 나타나서 의사의 확인을 단호하게 반박했다. 아침 헛구역질부터 젖 분비까지 그런 증상은 죄다 악마들이 꾸민 짓일 뿐이야! 「그러더니 이사카론이 내 몸에 자기가 모아둔 피를 나로 하여금 죄다 쏟아내게 했어. 이 일은 주교와 의사 몇몇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벌어졌다.」 그 뒤로 임신 증세가 다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주님께 찬양을 돌렸고 원장수녀도 그렇게 했다. 적어도 입으로는.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의심을 품었다. 이렇게 기록한다. 「악마들은 나를 설득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생각해 봐라, 네가 배를 가르지 않게 된 기적은 하나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한 짓이었어! 그러니 너는 그 일을 그저 환상이라 여기고 잠자코 있어야 한다. 고해 시간에도 입에 올릴 필요가 없는 거야!」 

  사실, 나중에 그녀는 그런 의심에서 벗어나고, 실제로 기적이 벌어진 것이라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수렝에게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기적이었다. 그에게는 루덩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불가사의했다. 그의 믿음은 게걸스럽고 무분별한 것이었다. 그는, 마귀에 들림을 믿었다. 그는, 그랑디에가 유죄라고 믿었다. 그는, 다른 마법사들이 수녀들을 홀리고 있다고 믿었다. 또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는 교회 원칙도 믿었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이 가톨릭 신앙을 공고히 하며, 성변화가 실재한다고 증언하는 악마들 얘기를 듣고 무수한 자유사상가와 위그노가 개종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 마지막으로, 잔느 수녀를 믿고 그녀 상상의 소산을 다 믿었다

 

  남들 말을 쉽게 믿는 것은 심각한 지적 결함이다. 그런 결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가장 ‘불가항력적인 무지[각주:1]뿐이다

  그러나 수렝의 무지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요, 심지어 자발적인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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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당대에 우세한 지적 풍조인 미신과 맹신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수회 동료들은 수렝처럼 무턱대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마귀 들림이라는 현상을 의심하면서 새 엑소시스트가 하는 짓을 황당하게 보았으며, 동료가 특별한 은혜와 실총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쏟는 뜨거운 관심을 다소 민망하게 여겼다. 우리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어리석음은 수렝의 강점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결함과 숭고한 열정도 그의 강점이었다. 그의 목표는 기독교적 완성, 곧 육욕을 죽임으로써 영혼이 하나님과 합일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 이 목표를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성령에 이르는 온유함과 정화의 길로 그와 함께 나서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제시했다. 

 

  그에게는 이전에도 영적 딸들이 있었다. 이 원장수녀가 그들처럼 하지 못할 것이 무언가? 그런 생각을 이미 마렌에 있을 때 떠올렸고, 그걸 계시처럼 느꼈다. 그저 엑소시즘 하나에 그치지 말고 잔느 수녀를 영적 생활로 이끌어야 해, 그 문을 이미 이사벨 수녀와 랄망 신부께서 내게 열어주지 않았던가. 그녀 영혼을 광명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마귀 들림에서 구해 내겠어

  흉중에 담아둔 과제를 잔느 수녀한테 끄집어낸 것은 루덩에 오고 하룬가 이틀 지나서였다. 그리고 이사카론이 터뜨리는 요란한 웃음소리와 레비아탄이 화가 나서 내뿜는 욕지거리를 응답으로 들어야 했다. 그들이 수렝에게 상기시켰다. 이 여인은 우리 소유이며 악마들의 공용 거처라는 걸 모른단 말이냐! 

 

  그가 그녀에게 영적 훈련을 얘기하면서 다그쳤다. 이제 하나님과 합일하기 위해 영혼을 다듬어야 할 때가 됐소! 왜냐하면, 그녀가 정신 기도를 수행한 지 벌써 이태가 넘었기 때문이다. 관상기도가 정말 필요하오! 기독교적 완성이! 그러자 악마들 웃음소리가 더 낭자하게 울렸다. 

 

  그렇다 하여 물러설 수렝이 아니었다. 신을 모독하는 말과 어지러운 발광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꾸준히 책무를 수행했다. 그녀 궤적에 ‘천국의 사냥개[각주:2]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사냥감을 쫓아다닐 작정이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바로 영생을 의미하니까. 원장수녀가 달아나려 했다. 그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기도와 설교를 계속 들려주었다. 영적 생활을 얘기하고, 몹시 힘든 준비 단계를 이겨내도록 그녀에게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애원하고, 하나님과 합일하는 지복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럴 때마다 잔느가 요란한 웃음을 터뜨리거나 그에게 소중한 부아네트를 두고 놀리거나 트림을 꺽꺽 해대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돼지처럼 꿀꿀거리면서 훼방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가 지칠 줄 모르고 소곤거렸다

 

  한번은 악마가 특히 혐오스러운 언사와 행동을 과시한 뒤에 수렝이 기도했다. 신이여, 그녀한테서 이 고통을 거두시고 차라리 이 죄인한테 시련을 안기소서! 그는 악마들이 잔느 수녀에게 겪게 한 고통을 죄다 느껴 보기 원했다. ‘그녀를 치유하여 덕을 수행하게 인도함으로써 거룩한 신을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설령 나한테 귀신이 든다 해도 개의치 않으리. 그보다 더 심한 것도 간구했다. 미치광이로 취급돼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당하는 것조차 감내하리니. 

 

  한데 그런 식의 기도는 절대 해선 안 된다고 모럴리스트들과 신학자들이 우리한테 못 박는다. 불행히도 조심성은 수렝의 덕목에 들지 못했다. 현명치 못하고 완전히 잘못된 간원을 입에 올린 것이다.[각주:3]

   그러나 기도란 진심 어린 것이라면 응답 얻는 길을 가지고 있다. 간혹 신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어떤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그 생각이 사실이나 상징에서, 현세나 꿈에서, 물질적이든 심리적이든 어떤 형태를 취하며 구체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짐작할 수도 있겠다. 

 

  수렝은 잔느 수녀가 겪은 고통을 자신도 겪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자신이 악마에게 사로잡히기를 꿈꿨다. 그리고 1월 19일 그렇게 됐다. 

  어쩌면 그런 일은 그가 기도하지 않아도 일어났을지 모른다. 악마들은 이미 랑탕 수사를 죽였고 트랑킬 수사도 곧 같은 길을 가야 했다. 수렝에 따르면, 엑소시스트들은 악마를 쫓아내려 했지만 실제로는 외려 불러들여서 살아 있게끔 최선을 다한 셈이 됐고, 그 악마들에 웬만큼 시달리지 않은 엑소시스트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네 관심과 눈길을 악에, 혹은 악이라는 생각에 집중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까!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악마에 맞서 더 많이 투쟁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모든 십자군 전사는 실성하기 쉽다. 적들의 것이라 여기는 사악함을 줄곧 떠올리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악함이 자신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마귀 들림은 초자연적인 것보다 세속적인 경우가 더 흔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증오하는 타인과 증오하는 계급이나 인종, 민족에 대해 맹렬히 생각하기 때문에 마귀에 들씌우게 된다

  작금의 세계 운명은 제 스스로 마귀 들린 자들 손아귀에 있다. 즉, 반대자들한테서 보려고 애쓰는 악에 외려 들씌운 채 그 악을 명백히 드러내는 자들 손에 달렸다. 그들은 악마를 안 믿는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영혼을 악마에 내맡기려 애써 왔고, 성공했다 하여 의기양양하다. 하나님보다 악마를 훨씬 더 많이 믿는 한 그들이 마귀 들림에서 언젠가 벗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초자연적이며 추상적인 악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수렝은 세속적으로 마귀 들린 자들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광기로 자신을 몰아갔다. 하지만 선에 대한 생각 역시 초자연적이며 추상적이었고, 결국엔 선에 대한 믿음이 그를 구했다

 

  (5월 초 친구이자 예수회 동료인 다티시 수사에게 그 동안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적어 보냈다...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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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Invincible ignorance - 신학적 개념에서, 불가항력적 무지. 개인이 통제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책임이 없는 무지. 현대 영어에서는, ‘구제 불능의 바보’라는 뜻으로도 쓴다. [본문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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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그가 펴놓은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졌다. 이야말로 징후야! 파리라니, 그것도 호두알만한 크기! 바알세불이 파리들의 명령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러가라! 성스러운 수난자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랑탕이 넘실거리는 화염 위로 소리쳤다. 

  파리가 기이하게 큰 소리를 윙윙 내며 날개 쳐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뉴스 데이의 이름으로…” 

 

The Devils of Loudun 1634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그 대신 발작하듯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열한이 숨 막혀 죽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는 거야! 사탄의 마지막 간계를 짓누르려고 랑탕이 연기 속으로 성수를 끼얹었다. 

  “물러가라, 불 뿜는 괴물아! 이 성수가 사탄의 요술을 깨부술 것이야!” 

  그게 먹혀들었다! 기침이 그쳤다. 단말마의 비명이 한 번 더 울리고는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수도사들이 경악스럽게도 화염 한복판에서 희끗거리는 물체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 

  “Deus meus, miserere mei Deus.”[각주:1]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내 적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발작적인 기침이 몇 번 더 나왔다. 곧 이어서 기둥에 묶은 밧줄이 사라지고 희생양이 이글거리는 통나무들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불길이 여전히 날름거리는 가운데 수사들이 계속 성수를 뿌리며 특유의 가락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갑자기 교회 첨탑에서 비둘기 떼가 날아 내려 넘실거리는 화염과 연기 기둥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새떼를 향해 궁수들이 미늘창을 흔들고 랑탕과 트랑킬이 성수를 끼얹기 시작했다. 하지만 헛수고. 비둘기들은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연기 속으로 뛰어들고 불길에 날개를 그슬리며 뱅뱅 감돌기만 했다. 

  양 진영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주임신부의 적수들은 새들이 악마 군단임이 확실하며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고 떠들었다. 주임신부의 친구들은 비둘기들이 성령의 엠블럼이요 그가 결백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그것들이 인간과 다른, 그저 저희 본능에 따르는 비둘기 떼였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은 듯싶다

 

  장작불이 다 수그러들자 형리가 유해를 삽으로 떠서 나침반의 각 기본 방위마다 한 삽씩 흩뿌렸다. 그러자 군중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손가락 데어가며 뜨거운 가루를 뒤적이면서 이빨과 머리뼈며 골반 뼛조각들과 불탄 살점으로 보이는 꺼먼 덩어리 따위를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몇몇은 그저 기념품 사냥꾼인 것이 분명하지만, 대다수는 행운을 안기거나 미지근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부적으로, 두통이나 변비나 누군가의 원한을 막아주는 호부로 삼기 위해 성유물을 찾았다

  이 시커먼 물건들은 주임신부가 결백하든, 아니면 그에게 뒤집어씌운 죄를 정말 범했든 상관없이, 기적 같은 효능을 지닐 것이야! 

 

  이적을 행하는 힘은 성유물의 원천이 아니라 그것이 얻은 평판에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 존재들 중 일부는 광고만 잘 돼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든 건강이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루르드[각주:2]부터 마법에 이르기까지, 갠지스 강에서부터 특허 의약품이며 에디 부인에 이르기까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각주:3]의 이적 행하는 팔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보고 숭배하도록 제프리 초서[각주:4]의 면죄부 판매인이 유리잔에 넣어 다닌 ‘돼지 뼈다귀들’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만약 수도사들 말처럼 그랑디에가 마법사였다면, 아주 좋지. 마법사 유해에는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단 말이야. 만약 주임신부가 무죄였다고 해도 괜찮아, 그는 수난자가 되고 유해는 성스럽게 여겨질 거야. 

  잠깐 새 유해가 다 사라졌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지독하게 피곤하고 목도 마르지만 주머니에 두둑하게 채운 성유물에 좋아하면서 마실 것과 신발 벗을 기회를 찾아 각자 흩어졌다.

 

  그날 저녁 아주 짧은 휴식과 아주 가벼운 요기 뒤에 수도사들이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다시 모였다.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행하자, 그녀가 적당한 발작 상태로 들어서서 랑탕 수사 물음에 대답했다. 그 검은 파리는 바로 바루크였어, 주임신부와 사이좋은 악마 말이야. 

  한데 어째서 바루크가 감히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진 것이지? 

 

엑소시즘을 받은 원장수녀

 

  잔느가 특유의 곡예 동작을 뽐내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가 세우고는 마침내 답변했다. 바루크는 그 책을 불속에 내던지려고 한 거야. 

  그건 다 그럴 듯하게 들렸고, 그러자 수도사들이 일단 엑소시즘을 여기서 멈추고 다음날 아침 중인환시 하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수녀들을 성 십자가 교회로 데려갔다. 관광객들이 아직 도시에 많이 남아 있던 터라 교회가 인파로 미어터졌다. 원장수녀에게 들붙은 악마를 불러냈다. 평범한 의식이 끝난 뒤 원장수녀는 자신이 이사카론이며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악마라고 밝혔다. 내 안에 있던 다른 악마들은 다 지옥으로 갔어, 요란한 파티로 그랑디에의 영혼을 환영해야 하니까! 

  아주 세세한 질문들을 받고 잔느가 엑소시스트들이 한 말을 모두 확실히 보증했다. 맞아, 그랑디에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건 늘 사탄을 의미한 거야, 또 악마를 부인할 때 그건 실제로 그리스도를 부인한 거지. 

 

  랑탕은 그랑디에가 지옥에서 어떤 형벌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원장수녀가 최악의 형벌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흠, 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 어떠냔 말이다! 

  잔느가 한참이나 끙끙대다가 대답했다. “그랑디에는 죗값에 맞게 특별한 형벌을 받지, 특히 정욕의 죗값을 톡톡히 치렀어.” 

  그러면 처형은 어땠나? 마법사가 고통 겪지 않도록 악마가 도와주었나? 

  이사카론이 대꾸했다. 아, 아니야, 사탄은 엑소시즘에 눌려서 기가 꺾였어. 만약 불길에 성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주임신부는 고통이란 걸 못 느꼈을 거야. 하지만 랑탕과 트랑킬, 미카엘이 애쓴 덕분에 극심한 고통을 맛봤지. 

  그런 것쯤이야 지금 그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다른 엑소시스트가 소리쳤다. 랑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지옥 쪽으로 몰아갔다. 지옥의 많은 방들 중 그 마법사는 어디에 떨어졌지? 루시퍼가 그자를 어떻게 맞이했나? 지금 이 순간 그자에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잔느 수녀의 이사카론이 수도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사카론의 상상이 메말랐을 때, 아그네스 수녀가 도우러 나섰다. 그녀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 쓰러졌고, 그녀 입을 통해 악마 베헤리트가 제 얘기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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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이 보기에 랑탕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넋이 빠진 사람 같았다. 어디 아픈 겁니까? 

  랑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프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개운치 못한 점이 있소. 죄인이 그리에 신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했는데,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어. 글쎄, 고해를 가로막아서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아닌가? 

  동료들이 갖가지로 안심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랑탕이 고열에 빠졌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게야. 날 벌하시는 게야.” 연신 중얼거렸다. 

 

  외과의 만누리가 사혈을 하고 약제사 아담이 관장기를 통해 하제를 넣었다. 고열이 가라앉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랑탕이 이제 헛것을 보고 듣기 시작했다. 고문 받으며 그랑디에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장작불 위에서 적수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악마들이 떼거리로 어른거렸다. 그들이 그의 몸으로 들어왔고, 광란 상태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발길질하고 베개를 물어뜯게 만들고, 가장 무서운 신성 모독의 말들을 그 입에 가득 채웠다

 

  9월 18일, 그랑디에 화형 이후 꼭 한 달 지나, 자기한테 병자성사를 베풀던 성직자의 손에서 십자가를 쳐냈다. 그러고는 랑탕이 급사했다. 

  로바르데몽이 호사한 장례비를 댔고, 트랑킬 수사가 설교에서 고인을 신성함의 모델이라 불러 추켜세우며 사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선포했다. 그랑디에를 징벌했다 하여 하나님의 충실한 종에게 복수한 것이오. 

 

  다음 차례는 외과의 만누리였다. 랑탕 수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번은 밤중에 포트 뒤 마트레이 인근에 사는 어떤 병자에게 사혈을 해주러 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롱불 든 하인을 앞세우고 가던 그가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임신부는 악마의 표식들 때문에 바늘로 찔리던 그날처럼 알몸으로 성채 바깥 기슭과 코르들리에 수도원 정원 사이 그랑파베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만누리가 발을 멈추었다. 그가 시커먼 허공을 응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뭘 원하느냐!” 하고 묻는 소리를 하인이 들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외과의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금방 땅바닥에 엎드려 애절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역시 숨이 끊어졌다. 

 

  이제 루이 쇼베 차례가 됐다. 마녀재판이라는 대단히 멍청한 짓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반듯한 치안판사들 중 한 사람. 원장수녀와 많은 수녀들이 그가 마법을 한다고 비난했고, 그들의 고발과 증언을 바레는 자신의 교구에서 여러 마귀 들린 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쇼베는 추기경이 그 광기 어린 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미칠 화에 지극히 겁을 내는 바람에 정신이 상했다. 검은 멜랑콜리에 빠지고 정신쇠약까지 보이다가 겨울이 가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트랑킬은 다른 사람들보다 근성이 더 강했다. 네 해가 지나 1638년 악마에 지나치게 몰두한 후과에 마침내 굴하고 말았다. 그랑디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악마들을 더 키웠고, 터무니없는 공개 엑소시즘으로 악마들이 계속 횡행하게끔 했다. 이제 악마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금물이다. 트랑킬은 제가 열심히 뿌린 것을 거둬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환영들이 드물게 나타나고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악마 개꼬리와 레비아탄이 조금씩 우위를 점하게 됐다. 말년에 트랑킬은 제가 그렇게나 정성 들여 히스테리를 조장했던 수녀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욕설을 내뱉고, 혓바닥을 빼물고, 쉰 목소리를 내고, 개처럼 짖어대고,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푸친회 기록을 보면, ‘악취 풍기는 지옥 올빼미’라 명명한 악마가 동정을 버리고 겸허와 인내와 믿음과 헌신을 다 내팽개치라 유혹하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가 성처녀와 성 요셉을, 성 프란체스코, 성 보나벤투라[각주:5]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마귀 들림이 더 악화되기만 했다. 

 

  1638년 성신강림대축일에 트랑킬이 마지막으로 강론했다. 이삼일 더 그럭저럭 미사를 집전하고 나서 자리보전하고 말았다. 원인은 심신증이 분명하지만 상당히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는 추잡하고 외설한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야말로 악마 계약의 일부인 것이 분명했다! 음식물을 조금 넣을 때마다 악마들이 그를 아주 건강한 사람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격렬하게 구역질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한 두통과 심장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건 ‘갈레노스나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에도 언급되지 않은 종류였다.’ 주말에 이르러 ‘오물과 악취를 연신 내뿜는데, 어찌나 역겨운지 수발드는 이들이 당장 치웠음에도 방안에 있기가 끔찍할 정도였다.’ 

 

  성신강림대축일 다음날인 월요일 병자성사를 베풀게 됐다. 한데 악마들이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나와 침대 곁에 있던 다른 탁발수사의 몸으로 들어갔다. 새로 악귀 들린 사람이 어찌나 광포하게 굴든지 동료 대여섯 명이 겨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끌어내기 전에 그 사람은 거의 숨이 끊긴 트랑킬 수사를 마구 걷어차려고 들었는데, 그걸 말리느라 다들 무진 애를 먹었다. 

  그 대신 장례는 화려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시신으로 몰려들었다. 혹자들은 시신에 묵주를 놓았고, 혹자들은 법의 조각을 베어냈다. 성물처럼 간직하려고 말이다. 밀려드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관에 금이 가고, 각자가 자투리라도 얻으려고 서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시신이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존중받을 만한 이들 몇몇이 예절도 모르는 자들을 내쫓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신부는 벌거숭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법의를 쥐어뜯으면서 시신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트랑킬 신부의 법의 조각들도 이제 성유물이 됐다. 그가 산 채로 불태운 사람의 유해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 불분명해졌다. 마법사는 수난자 같이 죽고, 그의 악마 같은 집행자는 죽은 뒤 성인이 된 것. 그러나 영혼에 바알세불이 들어앉은 성인으로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였으니… 페티시는 그저 페티시일 뿐이라는 점!![각주:6]

  (8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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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1. 하느님,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틴어) [본문으로]
  2. Lourdes - 프랑스 남서부 마을, 성모 마리아가 기적의 치료를 해준다고 하는 성지 [본문으로]
  3. Francis Xavier (1506–1552) - 현 에스파냐 지역인 나바르왕국에서 출생. 로마가톨릭 선교사, 예수회 공동 설립자, 성 이냐시오의 제자. 그의 성유물 중 오른팔은 1614년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분리한 뒤 로마에 있는 교회 은제 성골함에서 전시돼. [본문으로]
  4. Geoffrey Chaucer (1343–1400) - 영국문학의 아버지, 중세 잉글랜드 최고 시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구역에 최초로 안장되다. ‘면죄부 판매인 이야기’는 <켄터베리 이야기>에 실렸다. 사람들 속이는 방법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교훈으로 끝난다. [본문으로]
  5. St. Bonaventura (1221–1274) - 이탈리아 중세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알바노 추기경, 가톨릭 교부. [본문으로]
  6. fetish – 맹목적 숭배물, 미신의 대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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